황용현목사 강해설교 녹취록/사도행전 강해

53강, 바울의 디모데후서 집필

변명섭 2019. 12. 18. 20:01

사도행전 강해 제53강, 바울의 디모데후서 집필 2013년1월20일 말씀

제가 오늘 디모데후서를 강해할 터인데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마지막서신이고 
상당히 내용이 길기 때문에 시간을 줄이는 의미에서 다른 이야기는 제가 안하고 사도행전강해로 직접 들어가겠습니다, 지도를 보시길 바랍니다, 
여기가 에베소고 여기가 빌립보고 여기가 니고볼리입니다, 
여기는 고린도고 여기는 아테네고 여기는 로마고 여기가 그리스와 이태리 여기가 스페인이고 여기가 터키입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순교하기 직전에 디모데에게 편지하신 바울의 마지막 서신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바울이 14권을 써셨는데 바나바가 히브리서를 썼다고 하지만 저는 바울이 썼다고 생각하고 히브리서까지 합치면 14권을 썼는데 그 중에 가장 마지막에 쓰신 서신이 디모데후서입니다 이 서신을 67년에 쓰시고는 68년에 순교를 당했습니다, 지난시간에 저희들이 네로 왕의 핍박한 이야기를 했는데 네로를 중심으로 해서 1세기 때 큰 핍박이 세 번 있었습니다, 
1세기 때 첫째가 뭐냐면 예루살렘교회를 향해서 핍박을 했습니다, 
그때 두 분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첫째분이 스데반이가 주후32년에 그리고 43년에서 44년으로 봐도 됩니다, 야고보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가 이 두 분을 통해서 순교를 하도록 한 후부터 예루살렘교회를 하나님이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 역할을 하게 하시면서 복음화가 시작이 되었는데요, 그 후에 네로 황제를 통해서 네로 황제는 54년부터 68년분이십니다, 이분의 재임기간 동안에 대부분의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지난시간에 말씀드렸지만 다시 참고로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54년에 알패오의 아들야고보 60년에 빌립 61년에 시몬 61년에 바나바 62년에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64년에 맛디아 65년에 베드로 66년에 다대오 68년에 바돌로매 또는 나단나엘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리고 68년에 마가 68년에 바울 이렇게 다 네로황제 재임기간입니다 이분들이 죽은 후에 네로 황제가 자살했다고 그랬습니다, 68년에 바울이 순교당한 직후에 그리고는 이제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입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81년부터91년 때의 로마 황제인데 82년에 도마가 인도에서 그리고 디모데가 90년에 에베소에서 그리고 누가가 91년 그리고 요한이96년 마지막 순교자입니다 이렇게 한 알의 밀이 되어가지고 1세기100년 가까이 약60-70년 동안 1세기 때 왜 이분들을 순교를 시켰느냐면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 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목적이 뭐냐면 로마제국이 복음화 되기 위해서 이분들이 모판이 되는 겁니다, 로마제국이476년까지입니다 앞으로 약400년 동안에 로마제국이 복음화가 되어야 되는데 이것을 위해서 모판으로 순교자들을 대거 하나님이 준비하셔가지고 죽게 했습니다, 
요한계시록6장9절에는 순교자는 어떤 사람인가 정의가 나오는데 순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다가 죽임을 당한 자 이렇게 정의를 내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다가 죽임을 당한 자 그런데 11절에 보면 순교자의 숫자가 정해져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그 숫자가 정해 놓으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숫자가 찰 때까지 순교자의 숫자는 계속 일어날 것인데 왜 그럴까요, 지난시간에도 제가 설명하였지만 이분들이 천국에서 가장 높은 계급에 있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계급사회이기 때문에 가장 높은 로얄 패밀리들을 미리 창세전에 예정하셨고 나중에 선택하셔가지고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중에도 이마 순교자가 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런 환경은 아니지만 모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가끔 선교지에 가서 하면 선교지에 앉아 있는 사역자들에게 순교자 될 사람 한번 일어나보세요 하면 200명이 앉아 있으면 200명이 다 일어납니다, 
순교자는 내가 원해서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예정하신 분들입니다 그래서 때가 되어서 이제 선택하셔서 부르신 겁니다, 그러니까 순교가 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순교자가 1세기 때 상당히 많았잖아요, 이분들이 무슨 정신을 가지고 계셨습니까, 이분들이 가졌던 정신이 뭐냐면 히브리서11장 믿음이었습니다, 
히브리서11장 믿음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은 내 본향이 아니다 나는 나그네다 이걸 항상 고백하셔야 됩니다, 두 번째는 뭐냐면 내 고향은 저쪽나라다 그다음에 세 번째는 저 나라에 가서 내가 상급을 받는다, 
라는 이 세 포인트입니다 이것을 설명한 것이 히브리서11장입니다 그러니까 순교자들은 이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순교자들이 이 믿음만 가진 게 아니고 매일매일 저 나라를 구경하면서 서원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 나라에 바울은 매일매일 드나들었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믿음기억하십니까 첫 번째 믿음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받는 구원적인 믿음입니다, 
두 번째 믿음은 뭡니까 이 세상에 살면서 예수님을 의지하며 이 세상을 내가 어떻게 극복하면서 잘사느냐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관한 믿음입니다, 그것도 다 필요한 믿음입니다,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하느냐 문제해결을 어떻게 하느냐 병을 어떻게 아픈 것을 고치느냐 이런 믿음을 다 가지면 가능합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의 믿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죽어라고 그러면 못 죽습니다, 손해 보라고 그러면 손해 못 봅니다, 
돈 좀 내라고 그러면 돈 안 냅니다, 내어도 기복신앙적인 사고방식은 내가 내면 이 세상에서 잘된다고 생각하는 믿음 이수준의 믿음이 두 번째 믿음입니다, 웬만한 분들 이 믿음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도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순교자들은 어느 믿음입니까, 저 세상을 내다보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가진 자들이 이 믿음은 이게 내가 원해서가 아니고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를 받아야 되는 겁니다, 신기한 게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그러면서도 무슨 믿음이 있었냐면 히브리서12장2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도 본향을 바라보면서 저 세계를 바라보면서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참았다는 겁니다, 
왜냐면 이제 저 세상에 가면 자기가 받을 그 즐거움 보람 그것을 생각하면서 내가 이 십자가를 지므로 해서 내가 선택한 자녀들이 구원받고 새 생명을 얻겠구나, 하는 이것을 생각하면서 부끄러움을 괴로움을 참았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완전한 신성을 포기해버리시고 완전한 인간이 되셨기 때문에 이분도 이 믿음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계속 기도하신 겁니다, 기도 안하면 이분도 자꾸 잊어버리시는 겁니다, 
본래 거기가 자기 본향인데 그런데 완전히 포기하는 바람에 신성을 이분도 이렇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가려면 이 믿음이 없이는 순교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스데반이도 순교할 때 이분이 저쪽 세계를 봤잖아요, 그러니까 이분이 편안하게 순교 했잖아요 순교자들은 이 대열에 들어가려면 이 수준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바울도 언제 이 믿음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울이 저는 주후35년에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이분은 즉각 이 믿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대단히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이 믿음은 주후35년에 바울이30세 때 받아가지고 지금68년 33년 후에 33년 동안 항상 이 믿음을 이분이 갖고 계셨던 겁니다, 
이 믿음은 그러다보니까 이분이 주후41년에 자기 고향에 있을 때 고린도후서12장1절2절에 보면 14년 전에 내가 3층천에 올라갔다 그랬습니다, 
14년 전에 지금 고린도후서를 언제 썼느냐면55년에 썼거든요 그러면55빼기14하면 41년입니다 주후41년에 바울이 어디에 계셨냐면 자기 고향 다소에 있을 때입니다 이때 이분이 이미 저 낙원에 올라가서 다보고 내려온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이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세상 것을 놓고 뛸 수 있었던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믿음을 달라고 주님 앞에 우리가 은혜를 달라고 간구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이분이 지금 빌립보에 들려서 이제 4차 여행 그의 끝날 때 여기 들려서 편지를 무엇. 무엇 썼습니까, 두 권을 썼습니다, 에베소에 있는 디모데에게 디모데전서를 쓰시고 그게 주후64년입니다 그리고 그레데 섬에 있는 디도에게65년에 디도서를 쓰시고 그래서 빌립보에서 바울이 두 편지를 썼습니다, 
쓰시고는 그레데 섬에 있는 디도에게 뭐라고 그랬습니까, 
너 내가 니고볼리에서 과동을 할 터이니 겨울을 지낼 터이니 너 목회 그만두고 빨리 나에게 오느라 그래서 성경에서는 거기까지 끝납니다, 
이제 바울이 분명히 빌립보에서 니고볼리로 내려갔던 겁니다, 
그게 66년 정도 될 것 같습니다 니고볼리로 내려갔는데 내려가서 보니까 누가 있습니까, 거기에 디도가 이미 와 있는 겁니다, 
디도서3장12절에 보면 그쪽으로 오느라 그랬거든요 왜 그랬느냐면 바울이 나중에 오늘 디모데후서4장10절에는 그랬습니다, 디모데야 디도가 나보러 니고볼리에 왔는데 내가 다시 선교사로 달마디아라고 지금 알바니아와 체코슬로바키아 그쪽으로 내가 선교사로 보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제 바울은 이미 알았습니다, 
자기가 체포당해여 로마로 끌려가서 거기에 감옥에 들어갈 것을 다 아신 겁니다, 지금 바울이 누구하고 거기에 있습니까, 
누가와 그다음에 몇 몇 분들 이름이 성경에 보면 나옵니다, 
오늘 디모데후서에 보면 그분들 이름은 우리에게 이미 알려진 이름이 아닙니다, 그분들이 있는데 지금 니고볼리에서 붙잡혀서 로마로 가게 되는데 왜 로마군인들이 바울을 체포했을까요, 무슨 죄목으로 그러면 이렇게 한번 적어보세요 첫째는 바울의 메시지 때문입니다, 
바울이 전하는 메시지가 예수님을 왕 중의 왕이라고 말하거든요 네로 왕이 싫은 겁니다, 네로 왕 입장에서는 자기가 왕 중의 왕이신데 그리고는 이분이 오실 것이라는 메시지를 자꾸 전했던 겁니다, 
재림의 메시지를 그것이 우선 싫었고 두 번째는 뭐냐면 주후64년에 로마 도시를 화재를 일으킨 후에 네로 왕이 로마법을 아주 공식적으로 바꾼 겁니다, 
바벨론종교를 자기네 나라에 공식종교였지만 더 강하게 공식종교라 하고 기독교를 반국가종교로 공포해버린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그때부터 심하게 핍박을 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래서 64년 직후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죽는 가운데 거기에 리드 급들을 잡아서 죽이려고 계획하셨는데 주후65년에 리드되는 베드로를 잡아서 이미 처형했고 그다음에 열두제자들도 한분. 한분 잡아서 처형한 것을 아까 우리가 보았습니다, 거기에서 가장 진짜 두목인 바울을 잡으려고 수소문하다가 바울을 지명수배 했는데 알고 보니 니고볼리에 있는 겁니다, 
그래서 니고볼리에서 잡혔습니다, 신기한 게 왜 니고볼리라는 이름도 없는 도시에서 그랬을까 이걸 저 혼자 생각했습니다, 
주님 왜 니고볼리입니까 니코라는 말은 니케(Like)라고 그래서 헬라 신중에 승리의 여신 우리 니이키 신발 있죠, 그것 이름이 승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니고볼리라는 말은 폴리스라는 말은 도시입니다 그래서 승리의 도시구나, 
바울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울이 영적싸움을 했는데 33년 동안 영적싸움을 하면서 이제는 이도시가 끝내는 도시입니다 그런데 승리하신 겁니다, 
이 싸움에서 그래서 니고볼리에서 체포당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하필이면 내가 왜 여기서 잡힐까 내 사역이 끝나는데 이마 주님께서 그랬을 겁니다, 너는 승리자다 개선장군이다 이렇게 아마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힘을 받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로마로 이송 받아가지고 감옥에 들어갔는데 이 감옥은 1차 때의 감옥과는 다른 겁니다, 1차 감옥은 시위대 가택연금 셋집에서 방문자들이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1차 감옥은 그런데 지금 이 감옥은 던전(dungen)이라고 그럽니다, 던전은 뭐냐면 깊은 어두운 땅굴이라는 소리입니다, 
땅굴 외부인이 절대로 드나들지 못하는 면회도 안 되는 특별한 허락 없이는 그리고는 홀로 있는 감옥입니다, 주변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가끔 누가는 허가를 받아서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음식을 들고 들어갔거나 아마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 이분에게 방문자가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게 누구냐면 오네시보로라는 사람입니다 오네시보로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면 여기 에베소사람입니다 디모데가 이 사람을 자기 대신 바울에게 헌금과 음식이나 옷가지를 들고 가서 위로 해드려라 아마 디모데가 이분을 이렇게 보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로마에 와 가지고 나중에 보겠지만 이분이 바울의 감옥을 찾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부지런히 여기저기를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하면서 나중에 찾아서 허가를 맡고 들어가서 바울을 만났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 사람을 만나고는 상당히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이분에게서 여러 가지 디모데의 사정을 듣고 바울이 디모데를 향해서 편지를 써준 겁니다, 그게 디모데후서인 겁니다, 
편지를 쓰서 이분이 그 편지를 들고 다시 에베소로 가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바울이 3차 여행 때 주후53년에서55년에 두란노 서원에서2년 동안 에베소에서 사역을 하실 때 바울을 많이 도운 사람으로 우리가 기억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네시보로는 에베소출신인데 바울을 많이 도와  주었다, 
라는 것은 디모데후서1장18절에 바울이 이 말을 합니다, 자기를 많이 도와 준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고마운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쓰실 때 디모데에게 개인적으로 썼지만 나중에 4장제일 마지막 절에 보면 너희와 하는 구절이 원어를 보면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절에 보면 디모데에게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4장22절에 보면 그랬습니다, 그래서 보면 디모데에게 개인적으로 썼지만 또 이 편지를 에베소교인들도 읽어라 하는 그런 의미가 거기에 숨겨져 있습니다,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원어를 보면 그러면 이 편지를 쓴 목적이 있습니다, 
목적은 첫째 목적이 뭐냐면 디모데에게 바울이 어떤 목적으로 썼느냐면 디모데야 나 상당히 외롭다 이러는 겁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이 편지를 썼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보면 내가 과거에 아시아지역 다시 말하면 에베소를 중심으로 해서 두란노 서원을 2년 동안 여기서 운영하시고 아시아의 일곱 교회 이 지역을 내가 방문하고 거기에 내가 많은 지도자들을 양성하여 놓았는데 이 사람들이 그의 다 떠나 버렸다는 겁니다, 
자기를 지금 감옥에 앉아서 편지에다가 그러는 겁니다, 
떠나버렸는데 그 중에 아주 나쁜 사람이 몇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떠난 사람들 중에서 그러면서 1장15절에 그분들 이름을 됩니다, 
부겔로와 허모게네다 그다음에 나중에 데마도 거론 합니다 4장10절에 내 제자들이지만 그 사람들 다 나를 떠났는데 이 사람들이 떠날 때 자기 선생님을 비난 하면서 떠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분들에게서 상처를 가졌기 때문에 성경에 그분들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니까 이 사람들 나중에 낙원에 갔는지 안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에 그 이름이 있을 정도면 그것도 좋지 않는 사람으로 좀 그렸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외롭다는 겁니다, 그렇게 정성을 드렸는데 그렇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이분이 또 그러는 겁니다, 4장10절부터12절에 보면 내 사랑하는 제자들이 지금 여기저기에서 내 주변에 없지만 지금 사역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분들이 내 옆에 있으면 좋겠는데 이분들은 좋은 사람들입니다 내 사랑하는 제자들인데 지금 사역 지를 다 퍼져서 일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지금 나에게 왔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내가 그런 입장이 되지 않으니까 외롭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주욱 보면 그분들의 이름을 됩니다, 
사역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됩니다, 그레스게는 지금갈라디아에서 사역한단다, 4장10절에 디도는 달마디아에서 사역한단다, 
4장10절에 두기고는 너 대신 에베소에 보냈다 4장12절에 그다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지금 에베소에서 사역한단다, 4장19절에 그리고 지금 편지를 배달하는 오네시보로 이 사람은 내 옆에 있다가 지금 갔단다, 
주욱 하면서 에라스도 드로비모 디모데 너는 지금 에베소에 있잖아 이러면서 나 혼자 지금 여기 홀로 있는데 누가만 지금 내 옆에 있단다, 
그리고 누가 주변에 몇 사람이 있는데 그분들 이름을 거론하였습니다, 
4장21절에 이름은 잘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오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 이 사람들이 밖에서 누가 주변에 있는 모양입니다 여가 보면 리노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서양 사람들은 이 사람을 나이너스(NIUS)라고 부르는데 이 나이너스가 왜 유명 하느냐면 베드로도 주님나라에 가고 바울도 간 후에 이들의 후임자가 있어야 되는데 로마교구장을 이 나이너스가 했다는 하나의 전설이 있습니다, 이분이 바울과 베드로가 순교를 당하고 그 후임자로써 이 나이너스가 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옛사람들이 다 떠나고 지금 제자들이 여기저기서 사역하고 있고 나는 지금 누가와 홀로 이렇게 있다 나 외롭다 그러니까 디모데야 너 사역 거기다가 놓고 내가 두기고를 보낼 테니까 나에게로 오느라 이런 편지입니다 그러면서 그러는 겁니다, 
너는 나의영적아들이다 나는 너 보기를 굉장히 원한다, 
1장4절에 그랬습니다, 네 번이나 디모데후서를 보면 너 나에게 방문해달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편지 속에 보면 4장9절,11절.13절,21절에 그러면서 내가 너를 보면 굉장히 기쁠 것 같다는 겁니다, 
내 마음에 지금 상처를 위로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오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내가 밤낮 너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는 겁니다, 1장3절에 왜냐면 너는 특별한 내 아들이라는 겁니다, 
1장4절5절에 그랬습니다, 너는 눈물이 있는 젊은 사역자고 거짓 없는 순수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 믿음은 너는 어디서 받았는지 아느냐 너의 외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받았다는 겁니다, 
너가 내 옆에 있기를 내가 가장 원한다, 너는 다른 사람보다 괜찮은 사람이다 우리가 살다보면 이런 경우가 있을 겁니다, 주변에 사람은 많지만 내 속을 다 털어서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은 바울도 보니까 누가도 아닙니다, 
바울이 가장 마음 주고 자기의 속을 털어낼 분은 디모데 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게 첫 번째 디모데후서를 집필하는 목적입니다 외로워서 디모데야 오느라 두 번째 목적은 디모데에게 그러는 겁니다, 
너 지금 네로 황제를 통해서 심한 핍박을 받고 있지 않느냐 너 만이 아니고 우리 지금 기독교공동체 전체가 지금 핍박을 받고 있다 그러니까 이럴 때마다 너는 내가 너에게 준 복음을 잘 지키라는 겁니다, 
1장14절에 그러는 겁니다, 우리가 이런 부분을 보면 조금 의문이 생깁니다, 세상에 바울은 매일 낙원에 드나드는 사람인데 그까짓 핍박을 받으면 어떻고 사람들 떠나면 어떻습니까, 소망을 하나님나라에 두고 있는 분인데 그렇게 생각이 안 듭니까, 바울은 대단한 영적거물인데 다 떠났다 그래서 그렇게 섭섭해서 그럽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 같네요, 이렇게 우리가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대답합니까, 우리 예수님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예수님도 저 세계 사람이고 저 세계로 올라갔는데도 눈이 이 세계에 계셨기 때문에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영의 사람이지만 저 세계를 매일 쳐다보고 있지만 매일 방문하지만 이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시각은 이 세계에 대부분이 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처럼 아무리 믿음이 있고 말씀을 아무리 잘하여도 우리는 인간을 통해서 위로가 꼭 필요한 겁니다, 
이 세상에서의 위로가 필요한 겁니다, 서론의 말씀입니다 우리 디모데후서의 구조가 조금 깁니다, 그래서 제가 구조에 맞추어서 하나하나 개요를 설명해 드리려고 합니다, 구조를 보면 일곱 단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 인사를 1장1절2절에 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전서나 디모데후서의 인사는 보면 다른 편지에는 이런 게 없는데 거기에 중간에 긍휼이 들어가 있습니다, 다른 편지에는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랬는데 그래서 지금 바울이 외로우니까 긍휼이 아주 목말랐던 모양입니다 지기를 조금 불쌍하게 보는 마음 위로하여 줄 분이 바울에게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너에게 긍휼이 있기를 원한다, 이렇게 인사를 하셨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단원에서는 1장3절에서18절에 디모데야 네로의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고 감옥에 있는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라 그랬습니다, 
지금 보시면 바울이 강조하는 게 뭐냐면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는 자기 제자들이 많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 떠난 사람들이 왜 떠났을까요, 바울이 로마 군인들에 의해서 경찰서에 들어가고 지금은 큰 감옥에 들어 간 겁니다, 평소에는 항상 파출소에 들어갔는데 그러니까 제자들이 두려운 겁니다, 그분 따라다니다가는 우리도 별로 재미없겠구나, 그뿐 아니라 바울은 죄인의 괴수 같은 분입니다 그 당시 상황에서는 혐오대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부끄럽다는 겁니다, 
바울이 이 단어를 썼습니다, 너 저 사람처럼 저러지 말라는 겁니다, 
떠난 제자들을 우리가 욕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세 번째 믿음 히브리서11장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거기다가 바울이 3장1절에 그랬습니다, 말세에 이런 일들이 있을 터인데 이런 고통이 있을 터인데 말세라는 것은 그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예수님의 초림부터 시작해서 재림까지의 기간을 말세라고 그랬습니다, 
말세에 사람들은 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겁니다, 그 말씀 기억나시죠, 
성령님께서 바울이 이것을 깨닫게 한 다음에 디모데에게 가르치는 겁니다,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지금 디모데후서나 성경에서는 기독교인들이지만 다 자기 위주라는 겁니다, 자기에게 이익이 안 되면 그러면 떠난다는 겁니다, 
그리고 억울한 일 당하면 그것을 용서를 안 해주고 자기에게 불리한 게 있으면 용서를 안 한다는 겁니다, 그게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겁니다, 
사람들이 그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디모데에게 이것을 가르쳐주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주욱 거기다가 설명을 합니다, 디모데야 너는 이런 사람 되지 말라는 겁니다, 왜 그런지 아느냐 디모데야 너는 1장9절에 그랬습니다, 
너는 창세전에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은혜로 세우심을 받은 자라는 겁니다, 나도 그렇다는 겁니다, 창세전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되는데 복음 때문에 우리가 어려워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이럽니다, 나는 창세전에 불리 움을 받아서11절을 보세요, 
나는 누군지 아느냐 바울이 33년을 주욱 주님을 만나고 복음을 전한 후에 자기의 위치를 이야기합니다, 나는 반포자다 그럽니다, 
그리고 나는 사도 다, 나는 교사다 그럽니다, 세 포지션을 이야기합니다, 
바울이 반포자라는 말은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말씀을 전파하는데 사도라는 뜻은 불리 움을 받아가지고 파송 받은 사람을 사도고 그리고 교사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여기에서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바울은 목사가 아닌 겁니다, 우리는 신학교 나오면 다 목사라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목사는 뭡니까 양을 치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외치고 그걸 위해서 사도로서 불리 움을 받아서 돌아다니고 그다음에 외친 다음에 가르치기를 잘하는 교사라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담임교회가 없었던 겁니다, 
이런 사람인데 바울이 1장8절에 그랬습니다, 
내가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서 내가 이런 포지션을 가지고서 복음을 전하는데 예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고난을 받아야 된다는 말씀을 나에게 하셨다 예수님도 고난을 받으셨잖아 그렇기 때문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야 되는 우리 존재들이다 반포 자가 되고 사도가 되고 교사가 되려면 그런데 너 알다시피 우리 예수님이 누군지 알지 이분이 하나님이 아니시나 이분이 우리에게 의탁을 하였는데 나가서 이 일을 하라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지키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핍박이 와도 어떤 부끄러운 일이 와도 견뎌 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디모데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1장3절에서8절에 디모데에게 간구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똑같이 네로의 핍박을 견뎌라 부끄러워하지 말라 너는 고난을 받아야 된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러는 겁니다, 
디모데야 우리를 보고 부끄러워서 도망간 사람 내가 몇 사람 알려줄게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아시아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 1장25절에 아시아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 아무개. 아무개들 그 당시에 두란노 서원에서 공부하던 사람들이 80명이상 100여명이 되었잖아요, 그래서 여기 저기 파송 받고 이랬잖아요, 
그런데도 어려움이 닥쳐오니까 다 바울을 뒤에서 욕을 하면서 그 사람 따라 다니면 안 된다고 하고는 다 떠났다는 겁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부겔로와 허모게네라는 겁니다, 분명히 이 사람들은 조용히 떠나지 않고 바울을 많이 속된 말로하면 헐뜯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그러시는 겁니다, 그 사람들만이 아니고 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나를 신실하게 따라다녔던 사람이 한 사람이 있단다, 
그게 오네시보로입니다, 그래서 지금 오네시보로를 통해서 내가 이렇게 방문 받고 내가 이 사람에게 편지를 너에게 보낸단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게 오네시보로다 그러시면서 이분이 16절과18절에 보시면 이 오네시보로가 나를 자주 유쾌하게 해주었다 내가 지금 감옥에서 공기가 탁하고 가슴이 답답하여 숨쉬기가 힘 던데 그런데 그냥 상큼한 공기가 와서 나를 후련하게 해주는 이런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영적인거성도 사람이기 때문에 핍박이 옵니다 주변에 내 사랑하던 사람들이 떠나면서 나를 헐뜯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고 그러니까 이 세상 빨리 갔으면 좋겠다, 하고 있는데 오네시보로가 나타나서 선생님 제가 왔습니다, 하면서 그러니까 바울이 기분이 유쾌하게 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그랬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런 기분전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이 걱정이 많고 뭐가 그렸습니까, 우리도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우리입니다 눈만 뜨면 낙원에 올라가 있는 게 아니고 이 세상 문제 속에서 살고 있는 게 우리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4장에서 그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7절8절에 나는 선한싸움을 싸웠다는 겁니다, 이게 선한 싸움이라는 겁니다, 
그리고는 나의 달려갈 길을 달려갔다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지금 선한싸움을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외로움이 있고. 좌절이 있고. 스트레스가 있고. 배신감도 있고 이런 경험을 해야 되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저 세상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보세요, 이 세상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그랬습니다, 
3장1절부터5절에 이 세상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도 자기만 좋아하고 자기만 사랑하고 돈 좋아하고 조금 불편한 사람이 있으면 용서 안하여주고 거역하고 배반하고 교회 안에도 그렸단다, 이 세상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까 우리가 저 세상만 바라보고 있으면 괜찮은데 이 세상 사람들하고 살고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있게 되어 있단다, 외롭게 되어 있단다,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디모데야 너는 그러지 말라는 겁니다, 디모데보고 너 앞으로 목회하다보면 앞으로 나처럼 반포 자가 되고 교사가가 되다 보면 주변에 그런 사람 많단다, 그런 사람들을 다 안아 주어라 왜 이 세상이 그렇단다, 
그 사람들 나빠서가 아니다 이 세상이 그렇단다, 
그래서 3장1절부터5절을 강조시킨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옆에 앉아 있는 아무개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다 성인들이 아닙니다, 
그분들 조금 건들려보세요 난리 납니다, 모두 지금은 다 가운입고 있습니다만 다 거룩해 보입니다,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조금만 자기 자존심 건드려 보세요, 그러면 무두들 다른 사람들 됩니다, 그게 우리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습니다, 다 자기를 사랑하는 그러한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 때 그렇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 소중하게 보이고 그런 사람을 볼 때 내가 안아줄 수 있는 겁니다, 세상이 그러니까 주님이 디모데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시각이 넓어지는 겁니다, 
시각이 넓어졌다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오네시보로 보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떠났는데 오네시보로는 거리가 얼마입니까 에베소에서 로마까지 이 먼 길을 바울에게 찾아와가지고 기분전환을 시켜주었기 때문에 바울이 이 사람을 잊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이분을 향해서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내가 지금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그 가족들에게 긍휼을 많이 베풀기를 내가 기도한다, 그럽니다, 
바울이 이렇게 특별한 한 사람을 놓고 그 가족을 향해서 기도하였다는 것은 이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가족들 통째로 긍휼 속에 있게 해주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가족이 어떤 실수를 해도 주님에게 잘못 보여도 바울의 기도 때문에 주님께서 다 긍휼히 여겨 주시겠다는 겁니다, 
왜냐면 너 가족 중에 한 사람이 너 네 할아버지가 너 네 아버지가 바울에게 긍휼을 베풀었기 때문에 내가 기억하고 너 후손도 이렇게 해주겠다는 겁니다, 여기서 1장이 끝납니다, 2장을 보시면 바울이 그럽니다, 
세 번째 단원입니다 바울이 핍박가운데 강해라 그럽니다, 
2장1절부터26절입니다, 그냥 강해라 그러니까 강하라는 말씀이 구체적으로 무슨 말씀입니까 바울이 하나하나 디모데에게 설명하여 줍니다, 
강해라는 거기에 무슨 뜻이 있느냐면 첫째 강해라하는 것은 너 앞으로 제자훈련 시킬 터인데 제자훈련은 내가 가르치는 원칙대로 시키라는 겁니다, 
그게 강하게 되는 거라는 겁니다, 2장2절3절에 그랬습니다, 
뭐라 그러냐면 우리 제자훈련 공부할 때 어떤 사람을 먼저 골라야 되느냐면 충성된 사람을 먼저 골라 라는 겁니다, 충성된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할례루야 하고 이러다가 조만간 자기하고 이해관계가 틀어지면 그냥 꼬리 내리고 도망 가버리는 끝까지 가지 않는 그런 사람들은 제자로 뽑지 말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뭐냐면 그것만 잘해도 안 된다는 겁니다, 잘 가르치는 사람으로 하라는 겁니다, 바울이 33년을 경험한 겁니다, 
경험하고서 이제 아주 결론적인 진액(엑기스)을 디모데에게 가르쳐 주는 겁니다, 너 이제 앞으로 과거에 내가 실패했다 봐라 두란노 서원에서 그렇게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잖아, 지금 다 도망갔다 몇 사람 밖에 안 남았잖아 그러면서 주님이 봐라 디모데야 앞으로 너가 영적으로 강해지려면 어떻게 하느냐면 첫째 충성된 사람이라는 게 변화지 않는 사람 그다음에 잘 가르치는 사람 이 두 가지가 중요한 겁니다, 이것을 잘하는 사람을 뽑는데 열심히 가르쳐가지고 이 사람들이 똑같이 제자들을 만들도록 동기부여 시켜 주어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게 우리 다단계와 똑같습니다, 예수님이 제자 훈련시킨 것이 다단계방법입니다 다단계의 원조인 미국의 암웨이 라고 그 암웨이 회사는 미국전체에서 네 번째로 큰 회사입니다 그 회사는 크리스천들이 운영합니다, 
미국의 큰 선교기금을 그 회사에서 전 세계에 지원합니다, 
대단한 회사입니다 그런데 저는 암웨이 하고 관계없지만 그런데 똑같습니다, 그 사람들이 쓰는 방법이 조건이 무엇이었습니까, 충성된 사람 그다음에 잘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제자 화하고 그 사람들이 또 제자 화 시키고 그러니까 4대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뽑은 겁니다, 
또 바울이 순교당한 후에 누구를 뽑는 겁니다, 
또 그다음에 이 사람들이 또 내려가는 겁니다, 바울의 영적4대 라인을 지금 설명해 주는 겁니다, 그러면서 두 번째로 영적으로 강해지는 방법이 뭐냐 하면 이렇게 뽑아 놓은 이 제자들을 세 가지 모습으로 비유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라는 겁니다, 이 제자들은 세 가지의 모습으로 그러므로 2장4절에서7절에 설명하였습니다, 뭐냐면 이 사람들은 첫째 군사들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사들은 고난을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나와 너와 같이 그다음에 이 군인들은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자기 생활에 얽매이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이 군인들은 꼭 이긴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면류관이 따라온다는 겁니다, 저는 군인이 아닙니다, 
두 번째 예를 드는 겁니다, 이분들은 군인들만 아니고 운동선수들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운동선수는 운동경기의 법대로 운동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 말이 무엇입니까 우리 운동선수는 하나님이 주시는 법이 있습니다, 
지상계명을 먼저 지켜야하고 그다음에 지상사명을 지켜야 된다는 겁니다, 
이 법이 있습니다, 이 법대로 운동을 해야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면류관을 받는다는 겁니다, 운동선수도 그러면서 세 번째 비유를 드는데 농부의 비유를 듭니다, 우리들은 제자들은 농부라는 겁니다, 
농부는 씨를 뿌려놓고는 수고하며 일을 하여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농부는 곡식을 추수해서 자기가 먼저 먹을 권리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제자훈련 시켜놓으면 제자들을 통해서 선생님으로써 대접받을 권리가 있는 겁니다, 추수의 기쁨이 있는 겁니다, 농부는 똑같이 면류관을 받는다는 겁니다, 이렇게 세 가지비유를 들면서 디모데야 너 충성되고 잘 가르치는 제자를 뽑아놓았는데 그 사람들의 모습이 이렇게 세 가지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이 뭐냐면 제자들은 고난의수반이 된다는 겁니다, 군인, 운동선수, 농부, 고난이 수반되는데 그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부활의 기쁨이 있다는 겁니다, 추수의 기쁨이 있다는 겁니다, 
면류관의 기쁨이 따라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너가 이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주님께서 총명을 주기를 내가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총명, 그러면서 바울이 2장8절에 예화를 드는 겁니다, 
예수님을 보아라, 그분은 죽으시고 부활하셨잖아 똑같이 나를 보아라, 
2장9절에 나도 똑같이 지금 죄인 같이 되어가지고 고난을 받지 않느냐 그렇지만 나는 이제 주님나라에 가서 나는 왕 노릇할 거라는 겁니다, 
디모데에게 이렇게 설명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한 단계를 더 올려서 2장20절에서 26절에 그러는 겁니다, 디모데야 우리가 이 세상 살다가 언젠가는 다 하늘나라에 갈 텐데 하늘나라는 계급사회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큰 집(하늘나라)에는 다양한 종류들의 그릇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금 그릇도 있고. 은그릇도 있고, 나무그릇도 있고. 질그릇들이 있는데 용도가 어떤 그릇은 귀히 쓰는 그릇이 있고 어떤 그릇은 천히 쓰는 그릇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늘나라는 이렇게 계급사회라는 겁니다, 
그런데 내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야 되는데 조건이 있다는 겁니다, 2장22절에서26절에 그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조건은 간단한 겁니다, 뭐라고 그러냐면 너 스스로들 깨끗하게 하라는 겁니다, 우리 복 있는 자들 마음이 가난하고 순수하라는 겁니다, 
쓴 뿌리가 없이 인격을 순수한 인격으로 만들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야지만 주님이 큰 그릇으로 깨끗한 그릇으로 만드는데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디모데에게 설명을 합니다, 너는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쫓으라,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려라 다툼이 있다 누가 무엇이라 그래도 그것가지고 싸움하고 이러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복음을 전하다보면 그걸 믿지 않아요, 왜 그렸습니까, 
그럴 때 그것 가지고 싸움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냥 딱 보고는 이분은 아직 유치원생이구나, 그러면 그 수준으로 해서 끝내라는 겁니다, 
그걸 가지고 싸움하지 말라는 겁니다, 대학교에서 배우는 미적분을 초등학교학생에게 모른다고 가르쳐주려면 그게 됩니까, 안되잖아요, 
그러니까 딱 보고는 지혜를 가져 라는 겁니다, 
이분에게는 이 정도만 이야기 하고 끝내야 합니다, 
그리고는 다투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고 거역하는 자에게 친절하고 주욱 좋은 말들 다 있습니다, 
그러면 너가 그렇게 하다 보면 그 사람이 때가 되면 스스로가 깨닫고 회개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디모데에게 설명하여 준 겁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 단원입니다 그러면서 3장1절에서부터 4장5절까지의 내용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그러는 겁니다, 디모데야 너도 과거 나하고 같이 20여년을일하고 있잖아 봐라 그렇게 너가 열심히 섬기고 가르치고 해도 사람들이 왜 변화지 않느냐 이겁니다, 그리고는 지금 다 떠나 버리고 우리는 지금 아주 어려운 가운데 있고 왜 이러는지 왜 사람들이 이렇게 성장하지 못하는가, 
이렇게 거기에 대한 대답을 해주는 겁니다, 
3장1절부터4장5절에 이렇게 말씀해주는 겁니다, 
말세다 우리가 지금 말세에 살고 있지 않느냐 그러는 겁니다, 
예수님의 초림에서 예수님의 재림까지가 말세라 그랬잖아요, 
이 말세에 고통 하는 산고가 있겠다는 겁니다, 
산고, 세상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기독교 안에서 크리스천들 안에서도 특히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산고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말이야 자기를 사랑하고 이기주의고 또 알다시피 디모데야 복음은 이타주의다 복음은 이타주의라는 겁니다, 다른 사람을 살려주는 일을 하려면 내가 희생해야 되는 겁니다, 한 알의 밀알이 죽어야 되는 겁니다, 
나도 이타주의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기주의는 복음의 원수입니다 
이기주의는 반복음사상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사상입니다 이웃을 죽이는 사상이 이기주의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12장25절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린다는 겁니다, 
자기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을 찾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이 그렇다는 겁니다, 신기한 게 왜 세상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까, 그것은 나중에 우리가 대답을 찾아야 합니다, 
처음에 자기사랑하고 이기주의가 극치를 달하고 지금 과거2000년 동안 그랬거든요 그다음에 2000년 전부터 사람은 돈 사랑한단다, 
물질만능주의 우리 알다시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예수님의 시체를 누가 훔쳐갔다고 그래서 제사장들이 봉투 갖다 준 것 아시죠, 
마태복음28장12절에 그 당시에도 봉투가 있었습니다, 
그다음에 자기자랑하고 교만하고 자기자존심강하고 훼방이라는 말은 타인을 공격한다는 소리입니다 부모거역하고 감사하지 아니하고 거룩하지 아니하고 라는 말이 뭐냐면 이 세상과 구별되지 아니하고 기독교인들이 무정하고 원통함을 풀지 않고 참소하고 절제하지 못하고 사납고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배반하며 조급하며 쾌락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그다음에 우리 잘 아는 기독교인인데 경건의 모습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다는 겁니다, 교회가 그렸다는 겁니다, 예배 많이 드리고 기도하고 뭐하고. 뭐하고 다 하지만 경건의 능력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을 못한다는 겁니다, 이게 교회라는 겁니다, 
이게 기독교인이라는 겁니다, 바울이 다 경험하시고 나서 유언의 말씀을 디모데에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디모데보고 그러는 겁니다, 
디모데야 이런 사람들에게 네가 돌아서라 그러는 겁니다, 
이런 사람과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겁니다, 
너가 영향을 받는다는 겁니다, 왜냐면 지금 디모데는 사역자입니다 이분은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되는 사람입니다 능력으로 사람을 변화시켜주는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사람 중에서는 그런 사람들의 영향을 받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사람은 영향을 받게 되어 있거든요 사람은 영향을 받게 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사람과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사람들을 복음화 시킵니까,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런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서 같이 돌아다니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그런 사람이 되어 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바울이 그러시는 겁니다, 바울의 유언입니다 이런 사람과 가까이 하지 말아라, 왜냐면 너가 물든다는 겁니다, 
사람은 물들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귀히 쓸 그릇이 되려면 디모데야 너는 이런 사람들 너가 안아주고 그런 사람들은 그렸다는 것을 그대로 용납해 주라는 겁니다, 내 실력으로는 못 고친다는 겁니다, 
그것은 누가 고칩니까, 성령님께서 고치시는 겁니다, 
내 실력으로 고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바울도 부겔로. 헤게모니 이런 사람을 못 고쳤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더 이야기하는 겁니다, 
아주 골치 아픈 사람하나 있었다 하시면서 구리 장색 알렉산드다 그러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나도 못 고쳤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 주의하라 이렇게 경고하여 줍니다, 그리고는 너는 너 스스로가 깨끗해져 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3장10절11절에 바울이 그럽니다, 디모데야 이제 나를 닮아라,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내가 너하고 같이 사역을 하면서 얼마냐 핍박을 많이 받았는지 너 다 봤지 그러는 겁니다, 이르듯이 너는 핍박과 고난 속에 있을 때 마다 너는 히브리서11장의 믿음이 점 점점 더 커지게 된다는 겁니다, 핍박과 고난이 없으면 히브리서11장의 믿음이 안 생긴다는 겁니다, 
이 세상으로 자꾸 눈이 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 세상도 보면서 이 세상도 동시에 같이 보는 이 믿음을 가지면 능력이 나온다는 겁니다, 

디모데에게 지금 말씀하시기를 그리고는 이런 걸 행하는 사람들을 내가 다 안아줄 수 있다는 겁니다, 두 시각을 가진 사람은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 말이야 눈이 저 위로 떠는 히브리서11장의 이 믿음을 가지는 눈을 뜨려면 그냥 되는 게 아니다 고난을 받아야 되는데 플러스 영적음식을 먹어야 된다는 겁니다, 영의 음식을 먹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뭐냐면 성경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두 가지의 기능이 있습니다, 
영양소의 기능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검입니다 에베소서6장17절, 히브리서4장12절은 양날달린 검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디모데야 너는 이제 영의양식을 먹고 너는 이미 어느 정도 영적성인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는 이제 나가서 전파하라는 겁니다, 
이 말씀은 너는 이미 그렇게 까지 되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디모데야 성경이 무엇인지 아니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면서 그 유명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3장15절에서17절입니다, 도대체 이 성경이 뭔지 아느냐 디모데야 너 어릴 때부터 외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이 말씀을 들어왔지 이 성경의 저자가 누군지 아느냐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 성경의 저자는 그러면서 그러는 겁니다, 이 성경은 무엇을 가르치는지 아느냐 두 가지를 가르친다는 겁니다, 첫째는 이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어가지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주어가지고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우리에게 주는 지혜자라는 겁니다, 구원을 위한 지혜서가 성경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무슨 믿음을 주는 겁니까, 
첫 번째 믿음은 구원을 받는데 필요한 말씀이 성경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성경은 영적성장을 시켜주는 영의양식이라는 겁니다, 
기독교인들에게 그러면서 이 성경은 우리를 교훈시켜주고 책망도해주고 바르게 고쳐주고 의로 훈련받게 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준다는 겁니다, 이 말은 무엇입니까 영의양식을 우리에게 주셔서 영적성장을 하도록 해주는 다시 말하면 두 번째 믿음을 키워주는 겁니다,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가면 세 번째 믿음까지 키워주는 이것이 성경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디모데야 너는 이제 성인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가서 전파하라 그런데 여기 보면 전파하라 그래놓고 4장2절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잘 아는 말들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는 겁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우리는 나가서 외치라는 겁니다, 
그런데 범사에 오래참고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지금 이 말씀을 교훈시키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말씀을 전해라는 겁니다, 
때를 구별하지 말고 그리고 환경을 구별하지 말고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누가 뒤에서 도와줍니까, 우리 예수님이 뒤에서 다 도와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냥 하는 겁니다, 왜냐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그렇게 하라고 그랬습니다, 이것 따지고 저것 따지고 하는 게 아닙니다, 
저도 옛날에 그런 것 따졌든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냥 하는 겁니다, 
바보처럼 어떻게 보면 저 사람 배운 사람이 왜 저러지 하지만 그냥 하는 겁니다, 하다보면 주님이 막 도와주시는 겁니다, 대부분이 지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4장3절4절에 디모데야 그런데 너 실망하지마라 너가 말씀을 열심히 전했는데도 너가 전하는 말씀에 귀를 기우리면서 듣는 사람은 많지가 않단다, 
그러는 겁니다, 그렇지만 전하라는 겁니다, 왜 많지가 않을까요, 
아까 3장1절부터5절에 기독교인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소수만 와서 듣지 많은 사람들이 듣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들어도 귀가 가려워져가지고 영의 귀가 가려워져서 이분들이 너가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관심을 별로 나타내지 않고 들어도 표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디모데에게 가르쳐주는 겁니다, 그런데 소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아느냐 그러는 겁니다, 
4장4절에 그랬습니다, 사리사욕을 충족시켜주는 가르침을 주는 선생을 좋아한다는 겁니다, 사리사욕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듣기 좋아하는 메시지 나에게 이익이 되는 메시지 이런 것을 주면 좋아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지금 오늘날 보세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으면 잘 된다, 번영신학입니다 예수 믿으면 다 복 받고 기복신앙입니다 예수 믿으면 병 다 고친다, 치료신학입니다 치유신학. 행복신학 이런 걸 좋아가지고 떼거지처럼 사람들이 모이고 예수님을 팔아가지고 그러니까 이런 허탄한 진리다 바울이 지금 디모데에게 이런 허탄한 진리를 이야기하는 스승이 많이 나올 거랍니다, 많다, 라고 분명히 4장3절에 그랬습니다, 이런 선생이 많이 나올 거라고 그런대로 많이 갈 거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디모데야 너 이제 알다시피 굉장히 외로워질 거다 실망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사람들이 이 크리스천들이 너를 핍박할 거라는 겁니다, 3장12절에 너는 이제 핍박당할 거라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디모데야 그러니까 너는 미리 영적감수성을 가지고 준비하고 있으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고난을 잘 받아 내라는 겁니다, 
이 어려움을 잘 견디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너는 환경에 지배 받지 말고 전도하는 일에 너 직무를 다하라는 겁니다, 가시밭길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도 가시밭길을 걸어 왔지만 디모데야 너도 이제 앞으로 너에게 지금 남아 있는 길이 가시밭길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또 질문이 있는 겁니다, 
왜 전도자에게 이 가시밭길을 허락하십니까, 
이 세상은 저 세상과 다른 세상입니다 그런데 보시면 이 세상의 모습을 3장1절에서5절에 설명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모습을 보면 저 세상 사람들의 모습과 완전히 상반되는 그러한 모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똑같이 하나님의 자녀들인데도 상반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겁니다, 
3장1절에서5절에 특히 2절에 보면 사람들은 그럽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산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경건의 모습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다 기독교인들 가지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왜 그럴까요, 
왜 이 세상에 사는 기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은 말할 것 없습니다, 
왜 이런 모습으로 살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셨나요, 
전능하신 분인데 왜 이런 걸 다 막아 버리시지 교회를 크리스천들을 아주 정말 거룩하게 만드시지 왜 교회 안이 복잡하게 이렇게 허락하셨나, 입니다, 
그리고는 지금 예언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바울이 벌써 이것을 들었기 때문에 바울이 지금 디모데에게 예언하시는 겁니다, 
보시면 하나님께서 루시퍼가 타락한 후에 사탄이라는 이름을 붙어가지고 이 세상에서 큰 권능을 행사하고 권력을 가지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탄을 이 세상임금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12장31절에 이 세상임금이랍니다, 예수님이 그놈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리고는 바울에게도 또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4장4절에 이 세상신이라 그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놈들을 자기네 종교의 하나님으로 섬긴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공중권세를 잡는 자라고 바울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에베소서2장2절에 이렇게 파워를 저놈들에게 주어서 저놈들이 이 사회를 쥐고 흔들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겁니다, 
그러면 왜 이런 걸 허락하십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 알다시피 제가 다 설명하였습니다, 7000년이라는 기간을 그렇게 허락하신 겁니다, 
그래서 이 7000년 기간 동안에 창조의 목적을 우리에게 재훈련시켜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다 계획을 짜신 겁니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것은 여러분들이 따로 공부해야 합니다, 그런데 때가 되면 다시 말하면 사탄을 거두어갈 때가 되면 더 악하게 논다고 그랬습니다, 
계시록12장12절에 그러니까 자기 때가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놈을 까불도록 만드는 때가 있는 겁니다, 때가 거둘 때가 되면 나 이제 끝났구나,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나쁘게 논다는 겁니다, 
2000년 전에 그놈들이 노는 것과 지금 노는 것 하고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은 이놈들이 더 나쁘게 놉니다, 그러니까 사회도 더럽지만 교회 안에도 더 더러운 겁니다, 200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여보면 지금 더하잖아요, 
지난 2000년 동안 교회 모습을 보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었던 것이 그대로 다 보입니다, 2000년 동안 우리가 앞으로 계속해서 공부할 겁니다, 애굽 정교회나 에티오피아 정교회 1세기 2세기 3세기 때 보면 4세기 시리아 정교회나 그리스정교회나 로마 가톨릭이나 그 안에 들여다보면 부패상은 말할 것도 없는 겁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가지고 영국성공회도 마찬가지고 루터교. 감리교. 개혁교. 침례교. 회중교회. 하나님의 성회 다 부패된 겁니다, 그 부패상은 겉으로는 번지러하지만 그 안이 더러운 겁니다, 
그 안에 2000년 동안 소수의 바울과 같은 디모데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그 안에서 많은 어려움을 당하면서 그 사람들을 통해가지고 복음이 퍼진 겁니다, 이 기독교의 진리가 그 사람들을 통해서 명명을 이어간 겁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남은 자의 신학이라 그럽니다, 
남은 자(렘런트remnant)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렇게 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웹 사이트가 활발하면서 안티기독교가 생겨납니다, 
옛날에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면 교회가 썩었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 사람들 눈으로 봐도 그런데 왜 이렇게 해놓았습니까 아까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봐도 이것은 신비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신비가 아닙니다, 여기에 대한 내용을 우리가 따로 공부해야 됩니다, 결론적인 말씀 몇 마디 하겠습니다, 바울이 순교 전에 이런 부정적인 예언을 디모데에게 해주는 이유가 뭡니까 디모데가 이 편지를 받고 힘이 짜악 빠졌을 겁니다, 우리 선생님 이제 나는 소망이 없습니까, 
이랬을 겁니다, 세상이 다 나쁘다고 그러고 다 아는데 선생님도 가시고 저는 어떻게 합니까, 소망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단편적으로 보면 이 편지가 겁주기 위한 편지 같습니다, 또 힘 빼는 편지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힘주기 위한 편지로 예언을 해주신 겁니다, 디모데야 내가 지금 예언적인 이야기를 해준다, 
앞으로 너 이렇게 사역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전에 한번 배웠습니다, 고린도전서14장3절에 예언의 목적이 있습니다, 예언의 목적이 첫째가 덕을 끼치기 위함입니다, 덕을 끼치기 위한다는 말은 예언 받는 사람이 자라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바울이 디모데에게 덕을 끼치기 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디모데야 지금 부정적인 이야기를 너에게 다 예언했잖아 너 이제 앞으로 그런 일들이 있을 때 마다 너가 이걸 소화할 줄 알아야 된다, 
감당하여야 된다, 그러면서 이런 것들 너가 잘 만들어 가지고 이것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그렇기 때문에 너는 히브리서11장의 믿음을 가지고서 살아야 된다, 세상은 점점 이렇게 될 거야 그러니까 바울이 디모데가 앞으로 사역하면 모든 이 부패상을 보면서 디모데가 그것을 소화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디모데에게는 이것이 힘 빼는 편지가 아니고 에너지를 집어넣어주는 편지입니다, 두 번째 예언의 목적이 뭡니까 격려해주는 겁니다, 
왜 이런 걸 합니까, 디모데야 천국은 계급사회다 그러니 너는 저 세상에서 면류관 받으라고 내가 지금 이 편지 주는 거다 저 세상에서 높임 받으려고 그렇기 때문에 이 메시지가 필요한 겁니다, 
격려의 메시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예언의 목적은 안위입니다 너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핍박가운데서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지만 너는 평강을 누려라 감사해라 바울이 그러시는 겁니다, 
빌립보서4장6절에서10절에 바울이 첫 번째 감옥에 있을 때 주후60년에 옥중서신을 썼잖아요, 그때 이분이 다 깨달았기 때문에 빌립보교인들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구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지각이 뛰어난 이란 말을 한국말 표현은 그렇게 했는데 원어에는 내가 생각하는 내가 상상하는 그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이성을 추월하는 그런 말입니다 이성을 초월한 평강이 나의 생각과 마음을 지배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바울은 이걸 경험했기 때문에 이분이 환경을 보면 어떤 때는 실망되고 외롭고 답답하고 그렇지만 또 눈을 올리면 이 고백이 나오는 겁니다, 이것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똑같이 디모데에게도 너도 이것을 계속 연습을 나처럼 하라는 겁니다, 이게 바울이 디모데에게 주신 유언장입니다 유언을 다 하신 다음에 4장6절에서8절에 그랬잖아요, 많이들은 이야기입니다, 
디모데야 나는 이제 떠날 날이 가까웠다 그러면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웠다 원어를 보면 현재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주욱 해오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도 끝난 게 아닌 겁니다, 그리고는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 그것도 현재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자기는 마라톤선수였다는 겁니다, 
지난 33년 동안 마라톤선수로 뛰었다는 겁니다, 이제 앞이 보인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빌립보서3장14절에 하신 말씀 있잖아요, 
푯대를 향해서 부름의 상을 향해서 쫓았단다, 마라톤선수입니다 단거리선수가 아니었습니다, 중간에 많이 떨어져 나간 사람들을 보면 100m. 200m. 500m. 1500m단거리선수들도 있었지만 바울은 마라톤선수였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저와 같이 마라톤선수가 되면 좋겠습니다, 길게 보고 부름의 상을 향해서 마라톤선수로 같이 가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그랬습니다, 
나에게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어있다 그럴 때 보면 현재형으로 써놓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지금 가서 받지도 않았는데 이미 저 나라에 의의 면류관이 있다는 겁니다, 그걸 본 겁니다 그러니까 현재형으로 쓴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그날에 의로운 재판장이 나에게 주실 것이라는 겁니다, 그날이 어떤 날일까요, 저는 단순하게 순교당하는 날로 봅니다, 
순교 당하자 말자 눈을 떠보니까 왕관이 탁 씌워지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그러는 겁니다, 디모데야 나만이 아니고 나같이 이 비전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러니까 히브리서11장의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주님을 섬기고 있잖아요, 
디모데가 이 말씀을 받았을 때가 언제입니까 주후67년입니다 그리고는 디모데가 언제 주님나라에 갔습니까, 아까도 말씀하셨습니다, 주후90년입니다, 90년에 참수 당했습니다, 바울은 이미 다 아셨습니다, 
23년 후에 사랑하는 아들이 참수 당할 것을 바울은 1년 후에 참수 당할 것을 자기가 알았고 그러니까 너 참수 당하기 전에 아직도 23년 남았다 23년 열심히 뛰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부탁의 말씀이 4장9절에서18절입니다, 
속히 나에게 오느라 너 보고 싶다 여기에 지금 누가만 있다 마가를 데리고 오너라 마가는 과거에 나하고 조금 불편했지만 마가는 베드로의 영적 아들인데 2년 전에 베드로를 주님이 데리고 가셨다 이제는 아버지를 잃어버린 고아다 내가 이제 데리고 내 아들로 삼아야 되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가를 데리고 오너라 지금 몇 년에 이야기하는 겁니까, 
67년에 이야기하는 겁니다, 마가는 68년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마차에 끌려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마가가 디모데와 같이 로마에 갔는지 안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안 간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마가는 에베소에서 애굽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왜냐면 마가가 주후43년에 이미 애굽에 내려가서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애굽 곱틱 교회를 그리고는 61년에 거기 가서 몇 년 동안 사역하고 마가도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분의 센타가 애굽 알렉산드리아였습니다, 그래서 마가가 1년 후에 순교 당할 것을 바울은 다 아시고 마가도 내 옆에 데리고 오너라 그리고 데마는 세상이 좋아서 다 갔고 나머지 내 사랑하는 디도나 두기고나 이런 사람들은 여기저기에서 사역하고 있다 너 올 때 드로아에 들려가지고 내 겉옷과 가죽종이책을 가지고 오느라 그러면서 다시 그러는 겁니다, 구리 장색 알렉산드를 너는 조심해라 그 사람 내가 가르칠 때 나에게 많이 대적하였다 나를 이단이라고 말하고 나에게 해를 많이 끼쳤다 그래서 내가 기도했다 내가 사탄에게 던져버렸단다 하나님의 종이 어떤 사람을 사탄에게 던지는 기도까지 했으면 무서운 기도입니다 그래서 이름을 알렉산드라는 이름을 가지면 안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랬습니다, 
이 사람 징계받기를 원한다, 왜냐면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반하는 행동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 말은 디모데전서1장20절에 알렉산드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알렉산드이야기는 두 번 나옵니다, 
전서에도 나오고 후서에도 나오고 그러면서 이분이 4장16절부터18절 마지막에 하신말씀이 내가 사역하는 동안에 나 홀로였단다, 
디모데야 내가 이제 여기 와가지고 재판장 앞에 섰는데 지금 여기 로마에 와가지고 그때도 나 혼자였다 왜냐면 로마정부에서 누가도 옆에 오지 못하게 해서 나머지 사람들은 다 나를 버렸다는 말은 가까이 오지 않았다는 소리 같습니다, 왜냐면 이 사람들이 두려워 가지고 부끄러워 가지고 내 옆에 오지 않아서 나 홀로 지금 이렇게 있었고 재판정에서도 홀로 있었고 지금도 홀로다 그러니 내가 너 위로가 필요하다 나에게 오너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그럽니다, 주님께서 그래도 나에게 위로를 주신 게 하나 있는데 64년에 로마 도시에 불이 났을 때 네로가 크리스천들을 다 죽이려고 수소문하고 다닐 때 베드로는 그다음에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죽었지만 나를 찾아다니는데 내가 자칫했으면 사자의 입에 물려 죽을 뻔하였다, 
그런데 주님께서 사자의 입에서 나를 건져 주셔서 그 후에 적어도 내가 4년을 더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은혜를 나에게 주셨다 그래서 내가 그 후에 사자에게 64년도에 내가 물리지 않고 너에게 두 번 내가 편지를 쓰고 디도에게도 편지를 쓰고 주님 사역을 더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고맙다 하나님께 감사하다 이런 결론을 내리면서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이제 나는 기다리는 것은 다른 것 없다 의의면류관 뿐이고 그런 의미에서 내가 나를 이렇게 과거 창세전에 나를 불려서 이렇게 선택하셔서 불려주셔서 나를 3년 동안 사역하면서 기독교인들을 핍박케 하는 일을 하다가 내가 예수님께 붙잡혀서 지난 33년을 주님을 섬겨왔는데 이제 나는 이 은혜를 받고 의의 면류관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세세무궁토록 드리기를 원한다, 
그리고는 아멘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19절에서22절에 마지막 인사를 했는데 이제 디모데후서가 67년에 집필이 되어가지고 디모데는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제 생각에는 이미 두기고에게 인수인계해주고 로마로 가서 바울을 만나고 바울이 순교당할 때 옆에 계셨을 것 같습니다, 
그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알고 보니까 23년 동안 여기 저기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시다가 에베소에서 참수 당하신 겁니다, 
이제 디모데후서가 끝났습니다, 그냥 하나의 옛날이야기로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상고하면서 바울이 낙원에 이렇게 올라가는 모습을 제가 한번 연상을 해 보았습니다, 
이분이 낙원에 올라가실 때 분명히 어색하지 않았을 겁니다, 
왜냐면 매일 드나들었으니까 반가운 곳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날 텐데 저 세상 낙원이 어색한 곳이 되지 않도록 매일매일 준비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또 이 세상이 3장1절부터5절에 나오는 그러한 세상인데 우리는 그런 세상이 되지를 않기를 간구하는 디모데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다시 한 번 간구하면서 우리가 이 일을 위해서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어떤 상황에 있던지 그냥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역을 정진하기를 다시 한 번 주님 앞에 약속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셔서 바울의 여정을 어느 정도 소화할 수 있는 영적능력을 지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하나의 정보로만 듣는 수준에 머물지 않게 해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보다도 한 단계 더 발전 되어서 바울의 삶을 닮아가고 디모데의 삶을 닮아가는 우리가 되도록 이끌어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되 3장1절부터5절의 말씀처럼 이 세상은 그렇고 그런 세상이란 것을 깨닫게 하시고 이 세상을 내가 잘 소화하면서 살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을 지혜를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디모데와 같이 누가와 같이 마가와 같이 두기고와 같이 디도와 같이 바나바와 같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같이 그리고 큰 집안에 아주 귀히 쓰임을 받는 금 그릇 은 그릇 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3EXayAuVR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