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 제48강 바울의 빌레몬서 집필 2012년11월18일 말씀
오늘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지난시간에 저희들이 바울이 골로새서를 집필하셨기에 골로새서에 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골로새서출신 사역자 에바브라가 로마로 방문해 가지고 두기고를 먼저 만나서 골로새교회 사정을 보고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두기고가 에바브라에게 말하기를 바울에게 우리 가서 이 사실을 보고하자 그래서 바울이 이 사실을 보고 받고 골로새서를 집필하였습니다,
그런데 두기고가 이 편지를 들고 가기로 결단하고 또 그렇게 준비하고 있는 그런 상항 속에서 빌레몬서를 쓰게 된 겁니다 빌레몬서는 바울이 쓴13권 또는14권 중에 가장 짧은 서신입니다 단어를 세어 보니까 335개의 단어 밖에 없습니다,
이 서신에 그리고 한 장으로 되어 있는데 25절로 되어 있습니다,
아주 짧은 서신입니다 그리고 개인에게 쓰신 서신인데요,
내용을 들여다보면 빌레몬에게 썼지만 실제로는 빌레몬 개인에게 쓰신 편지가 아닙니다, 그런데 바울이 개인에게 쓴 편지가 3개가 있습니다,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그리고 빌레몬서 이렇게 세 가지의 개인 서신들이 있는데 디모데전후서나 또는 디도서는 수신자가 그분들 디모데 또는 디도인데 이 빌레몬서는 빌레몬이름은 있지만 우리가 되돌아보면 수신자가 여러분들입니다 나중에 우리가 자세히 볼 것입니다 바울 이분이 골로새서를 집필하면서 마음에 부담이 있었습니다, 거룩한 부담인데요, 이 부담이 뭐냐면 골로새교회에 담임목사 되는 분이 누구냐면 빌레몬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과 자기 옆에 와 있는 오네시모와의 관계에서 갈등이 있는 것을 바울이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것 때문에 항상 바울의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특히 골로새서를 쓰면서 이 두 분과의 관계를 개선해주기 위해서 빌레몬서를 써야 되겠다, 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래서 빌레몬서20절에 보면 바울이 내가 너희들을 생각하면 기쁨과 평안이 없다, 라고 이렇게 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두 분 사이가 왜 좋아져야 되느냐면 인간적인 문제만이 아니고 복음의 진보를 위해서 우리 빌립보서1장12절에 그랬습니다, 복음의 진보 로마제국의복음화 하기 위해서는 이 두 분의 관계가 좋아져야 된다는 겁니다, 이 빌레몬의 문제점들을 우리가 조금 보면 이 문제점 때문에 바울이 갈등이 있었던 겁니다, 기쁨이 없었고 평안이 없었습니다,
빌레몬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첫째는 오네시모를 원수로 생각한 겁니다,
왜냐면 자기에게 재산상 피해를 주었기 때문에 또 자기를 배반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용서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목회자인데 사역자인데 용서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벌써 몇 년이 되었는데도 왜냐면 그 이유는 빌레몬이라는 사람이 목회자이면서 그 당시 사회제도인 노예제도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크리스천이지만 그러니까 노예제도에서는 노예가 주인의 돈을 훔쳐가거나 그리고는 주인의 품에서 도망가는 것은 이런 상식적으로 있을 수도 없고 사회법으로는 이 노예를 체포 해다가 죽여야 되는 그러한 사회법이 있기 때문에 빌레몬이 크리스천이지만 이 사회법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 사회법으로 꽉 차 있습니다, 그래서 빌레몬에게는 평강이 없었습니다,
이 형제 생각만 하면 그리고 또 소문을 들어보니까 지금 자기 노예가 바울 옆에 이분이 있다는 것도 나중에 다 알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더 불편한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 불편한 모습을 교인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담임목사님이 어디에 앙금이 있다 그래서 설교 때 마다 가끔 오네시모에 대해서 나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오네시모를 헐뜯는 이야기 자주하고 그러니까 교인들이 들을 때 우리 목사님이 성경에 없는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별로 그렇게 신임을 가지지를 않았습니다, 이런 목사님의 영적문제 때문에 우리가 지난 시간에 봤지만 골로새교회담임목사님이거든요 교회가 여러 가지 문제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영적지도자의 문제 때문에 우리가 지난시간에 골로새서에서 봤지만 신학적인문제 이단들이 그 안에 있었고 교인들 간에 가정문제 그다음에 민족 간에 문제 이런 문제들이 그 교회 안에 상존해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도 이렇게 보고는 골로새서를 쓰면서 이 교회가 가지고 있는 이 문제점들을 담임목사님의 문제가 해결 되었을 때 이것이 풀어질 수 있다,
라고 본 겁니다 담임목사님의 쓴 뿌리가 그러면 이 담임목사님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게 무엇인가 이사람 시각을 변화시켜주어야 되는 겁니다,
영적시각을 뭐냐면 큰. 큰 그림을 보게 해주는 겁니다, 이 사람이 그걸 보지 못하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바울이 항상 이야기하거든요 갈라디아서3장28절에 그 유명한 말씀 너희는 크리스천들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다 서로가 다르지만 다른 것 안에서 하나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걸 영어로 유니티 인 바이블 시티(unity in bible city)서로 다르지만 예수님 안에서 하나라는 겁니다, 빌레몬이 이사상이 없었던 겁니다,
그런 개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오네시모를 용서해주지 못하는 겁니다,
바울은 이런 개념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에베소에서도 있었기 때문에 에베소서6장9절에 사람들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특히 상전들아 그러는 겁니다,
상전들을 노예들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그분들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는 경우가 그 안에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빌레몬서16절에도 똑같이 바울이 그랬습니다,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는 이제는 너희 종이 아니라는 겁니다, 종의 개념에서 벗어나서 사랑받는 우리형제라는 겁니다, 이렇게 바울이 지적합니다, 그래서 빌레몬서17절에 그랬습니다,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동역 자 그리고 형제로 삼으라는 겁니다, 너희에게 재산적인 피해를 주었고 너를 배반한 자지만 이것은 비 그리스도인들이 보는 시각에서는 그렇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의 시각에서는 이제는 큰. 큰 그림 안에서 믿음의 눈으로 볼 때는 우리는 형제자매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렇기 때문에 시각을 바꾸라는 겁니다,
여기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중요한 분기점이 있습니다, 우리교회에서도 이것을 못하는 사람은 왜냐면 시각을 이 세상 시각으로 보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할 때 이게 100년 후가 아니잖아요, 10년 후도 될 수 있고20년 후도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1년 후도 될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는 저 세상에서 같이 사는 같은 시민임을 항상 우리가 알고 있을 때 그것을 항상 그리고 있을 때는 무슨 피해를 나에게 저분이 줘도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겁니다,
시각의 변화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이것이 굉장히 우리에게는 중요하게 요구 되는 겁니다, 빌레몬은 그렇기 때문에 오네시모 때문에 쓴 뿌리가 이런 부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쓴 뿌리가 점점 더 노골화 되어가지고 이분이 어디까지 갔느냐면 우리의 추측입니다 체포 팀을 구성해가지고 로마로 보내가지고 오네시모를 체포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재정적으로 가능한 분입니다 부자이기 때문에 밑에 또 자기일꾼들도 많고 이 파렴치한 놈을 가서 잡아 가지고 죽여 버리겠다는 그러니까 빌레몬은 어떤 개념이냐면 목사지만 사회법을 중요시하는 겁니다,
인간이 그럴 수가 있느냐 우리도 보면 교회 안에서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될 때 사회법에 다가 우리가 고소하는 경우가 지금 우리나라교계에서는 굉장히 심합니다, 한국교계에는 이 문제가 엄청나게 심각하다는 겁니다,
말도 못하게 많다 합니다, 교회 문제들을 사회법에다가 고소하고 고소당하는 것들이 똑같이 이렇게 빌레몬이 쓴 뿌리가 있기 때문에 주일 설교 때 마다 교인들에게 직접 간접으로 이 문제를 비쳤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 우리 주변에 도둑놈이 하나 있는데 예수 믿는다고 로마에 가서 전도한다고 다니고 우리 식으로 말하면 바울선생님 밑에 가서 아양을 떨고 있고 잡아다가 혼 좀 내어 줘야 된다고 양심도 없는 자식이다 하면서 아마 주일날 열을 내면서 설교를 여러 번 했을 겁니다,
그런데 교인들도 그걸 다 알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골로새지방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겁니다, 에바브라가 그때 그 교회사역자였거든요 에바브라가 예배시간마다 담임목사님의 열을 내는 모습을 항상 보면서 교인들도 수근수근 하고 교회가 그런 분위기인 것을 에바브라가 마음이 아파한 겁니다,
그래서 에바브라가 로마로 갔잖아요, 이런 교회 문제를 가지고 보고하러 갔잖아요, 그래서 골로새서를 바울이 쓰게 되었는데 그럴 때 이 골로새교회 문제점들을 다 이야기하면서 오네시모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따로 보고를 드린 겁니다,
이 오네시모와 우리 담임목사님과의 관계성 그러니까 바울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데 두기고도 그러는 겁니다, 이것은 우리 실력으로는 안 된다 옆에 있는 디모데까지도 이 문제는 우리가 심각하게 다루어야지 오네시모도 이미 이렇게 그쪽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바울 옆에 와서 덜덜덜 떨고 있는 겁니다, 이것 어떻게 해야 좋습니까, 나도 불안합니다, 여기까지 서로 가준 겁니다,
에바브라가 와서 그 교회문제를 다 보고를 한 겁니다,
또 오네시모의 문제까지도 다 보고를 한 겁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바울에게 제안을 하는 겁니다, 바울선생님 우리 이렇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저기 있는 저 골로새사람들이 빌레몬부터 시작해서 분명히 체포 조를 이쪽으로 보낼 겁니다, 그래서 체포당해 가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지금 주님 안에서 아주 훌륭한 사역을 하고 있는 오네시모가 사형 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체포 조가 오기 전에 골로새서를 지금 내가 가지고 가니까 두기고가 그러는 겁니다, 제가 가가지고 골로새서를 들고 갈 때 내가 가서 화평의 일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에바브라가 좋습니다,
당신이 가십시오, 화평의 일을 해보십시오, 그런데 두기고가 그러는 겁니다,
내가 오네시모를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러는 겁니다, 위험이 이제 따르는 겁니다, 내가 데리고 가가지고 오네시모가 빌레몬 앞에 무릎을 굵고 용서를 구하게 하고 내가 옆에서 계속 빌레몬의 마음을 감동시키겠습니다,
이렇게 제안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바울선생님 내가 이렇게 할 테니까 바울선생님이 편지를 하나 멋있게 하나 쓰십시오, 그러면 내가 이 편지까지 내가 들고 갈 겁니다,
그러면 이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기도 가운데 그래 내가 친필로 내가 편지하나 써줄게 그 편지가 빌레몬서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결심한 겁니다, 내가 편지를 쓸 테니까 두기고야 너 골로새서를 배달할 때 내가 빌레몬에다가 주는 편지까지도 같이 배달해라 골로새서4장7절에 이미 그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다음에 오네시모도 너가 데리고 가라 골로새서4장9절에 벌써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네시모도 죽을 각오를 하고 두기고와 같이 보기를 원합니다,
발신자가 누구냐면 1절에 보면 그리스도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가 그랬습니다, 바울이 디모데까지 거기다가 같이 삽입하였습니다,
실은 디모데가 글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리고는 수신자 이름을 거기에 보면 빌레몬 하나만이 아닙니다, 빌레몬 외에 압비아라는 여자 이름이 나옵니다,
압비아 2절에 그리고 아킵보라는 남자 이름이 나옵니다,
2절에 그리고 빌레몬 집에서 예배드리고 있는 교인들에게 그랬습니다,
2절에 보면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골로새교회가 건물이 없고 누구네 집이 골로새교회였냐면 빌레몬의 집이 골로새교회였습니다,
거기 있는 교인들에게 그러니까 지금 수신자가 골로새에 있는 교인들 다입니다, 누구누구입니까 빌레몬에게 그다음에 압비아에게 또 아킵보에게 그리고는 빌레몬 집에 있는 모든 교인들에게 교회는 교인들입니다 여기 보면 우리가 한 부분에서 우리가 관심 있는 게 그 당시에는 건물이 없었구나,
교회가 대개 다 가정교회였구나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골로새교회도 그렇고 그러면 성경에서 가정교회들에 관한 내용들이 가끔 나오는 것이 있거든요 그걸 참고로 적어보세요 1세기 때 가정교회를 성경에서 적어놓은 것을 보면 우선 라오디게아교회도 가정교회였습니다,
골로새서4장15절에 보면 눔바라는 여자집이 라오디게아교회였습니다 그러니까 여자들이 오늘날도 앞장서는 분들이 꼭 있습니다,
눔바, 그다음에 로마에 가정교회도 지금 바울이 있는 그 당시에 그 전에도 로마에 선교사로 약35명을 파송했잖아요, 그때 그분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든 교회가 로마교회인데 그게 누구네 집이었냐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집이였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브리스길라 이름이 먼저 나오는 항상 여자가 앞장서는 우리교회도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여자가 앞장서는 겁니다,
로마서16장5절에 보면 그러니까 로마의 교회가 브리스길라 집이였구나,
우리 알다시피 예루살렘교회도 누구네 집에서 시작이 되었습니까,
마리아 요한 마가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집에서 사도행전12장12절에서 보면 우리가 에베소가정교회도 보면 그 당시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집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16장19절에 보면 빌립보교회도 누구네 집이었습니까,
루디아의 집이었습니다, 사도행전16장40절에 이렇게 주욱 보면 다 여자들이 앞장서가지고 1세기 때 보면 자기 집을 내어 놓는 겁니다,
남자들은 무엇입니까 그냥 따라가는 겁니다,
여자가 앞장서면 이게 성경적인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렇죠, 남자가 앞장서는 집은 오늘 빌레몬 집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빌레몬도 조금 있으면 알겠지만 그 와이프가 대단한 여자입니다 그렇다면 빌레몬은 도대체 누군가 한본 봅시다,
빌레몬은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 이쪽에 세 도시가 있는데 분지 안에 세 도시가 있는 겁니다, 이 분지 안에 가장 돈이 많고 땅이 많았던 대지주라고 우리가 보고 있는 겁니다, 그 지방에 최고부자입니다 노예가 많았고 또 종교는 바벨론종교를 믿었던 이런 배경을 가진 사람이 빌레몬입니다 그런데 바울과의 관계는 어떻게 전개되느냐면 바울이 이 도시에 가서 전도할 때 바울이 전략적으로 이 사람에게 가서 복음을 전했던 모양입니다 주후50년에 그래서 이분이 기독교로 개종을 한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2차 여행 때 그리고는 이분이 뜨거워져가지고는 이분과 부인까지도 다 같이 자기 집을 교회로 내어놓은 겁니다,
빌레몬서2절에 보면 그래서 지금까지 자기 집을 골로새교회로 쓰고 있는 겁니다, 이분은 대지주이기 때문에 바울이 보면 이런 사람들을 복음화 시켜놓으면 그 밑에 있는 노예들은 자동적으로 다 기독교인이 되는 겁니다,
강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소위 가부장제도 유교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집안에 어른이 기독교인이 되면 가족들은 주르륵 다 기독교인 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나라에 가도 가부장적인 나라들은 집안에 제일어른 한분을 복음화 시켜놓으면 주르륵 다 되는 겁니다, 아프리카에고 그렇고 아시아에 많은 나라들 보면 그게 우리가 선교하는데 선교전략 중에 하나입니다 집안에 어른 복음화 시키는 것이 여기 바울도 집안에 어른을 복음화 시켜놓으니까 밑에 있는 노예들까지 다 복음화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도망간 오네시모도 노예 중에 하나니까 분명히 빌레몬 때문에 기독교인 된 형식적이라도 기독교인이 되었을 겁니다,
예배참석하고 그러니까 이분이 자기 집이 좁으니까 마당에 노예들을 앉혀놓고 예배를 드렸을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기독교인이 된 후에 자기 집을 내놓고 하니까 1절에 보면 이분에 대해서 바울이 형용사를 붙어 놓은 게 있습니다,
너는 나와 디모데에게 사랑을 받는 자다 그랬습니다,
그리고는 12절에 칭찬을 했습니다,
너는 나와 디모데의 동역자다 그리고는 20절에 바울이 너는 나의 형제다 이렇게 까지 이분을 칭찬하면서 이분의 장점을 부각시켰습니다,
그다음에 거기 나오는 두 번째 편지 수신자가 압비야라는 여자 이름이 나옵니다, 압비야 이 여자는 누굴까 그의 대부분이 뭐라고 그러느냐면 빌레몬의 부인이다 그러는 겁니다, 보통 성경에서는 남자이름만 쓰지 부인 이름은 안 쓰거든요 여자는 별로 그렇게 그런 사회에서는 남자는 그 가족을 대표하는데 바울은 왜 압비야 이름을 편지에다가 집어넣었을까요, 왜냐면 여자가 세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이 여자의 도움이 필요한 겁니다, 오네시모를 용서해주려면 그래서 이 여자이름을 집어넣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이 여자를 성경에서 2절에 어떻게 그랬냐면 바울과 디모데의 자매다 그랬습니다, 이렇게 이 여자를 올려놓고 그다음에 세 번째 인물이 또 나옵니다, 아킵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이 아킵보가 누구냐면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이 사람이 빌레몬의 아들이라고 보는 겁니다, 그리고는 골로새교회의 부사역자로 보는 겁니다, 왜냐면 골로새서4장17절에 바울이 아킵보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아킵보야 주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잘 이루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아들이 지금 직분자입니다 그래서 아마 에바브라가 그 교회에 있을 때 아마 부목사님 정도 하시다가 에바브라가 바울을 만나려 로마로 간 뒤에 그 자리 후임자로 이킵보가 맡지 않았나,
라고 추측을 해보는 겁니다, 그런데 2절에 보면 아킵보를 바울이 상당히 중요한 인물로 묘사를 했습니다, 뭐냐면 나와 디모데와 함께 군사 된 자라고 그랬습니다, 이 집안이 남편 부인 아들 이렇게 볼 때는 소중한 분들이고 또 빌레몬서를 쓸 때 빌레몬 개인 한분 에게 썼지만 수신지는 온 가족이름을 거기다가 집어넣은 겁니다, 왜 그럴까요,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쓸 때나 디도서를 쓸 때는 수신자를 한사람만 이야기하였는데 왜 그러느냐면 저는 이렇게 묵상하면서 바울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이 문제는 오네시모의 문제는 빌레몬 개인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 이 가족문제고 교회문제까지 연계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교회가 동의를 해주어야 된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수신자들을 많이 만들어놓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빌레몬을 설득시키는 분들이 나머지 분들이라고 우리가 생각하고 바울이 이것을 기대하면서 그분들 이름을 거론 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네시모에 대해서 한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네시모는 누구인가 말할 것도 없이 빌레몬 집에 노예입니다 우리가 추측하기는 빌레몬이 개종하기 전부터 이 집에 노예로 있었다고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빌레몬이 개종하는 그때도 개종을 목격한 사람 중에 한사람이고 그때 바울에 의해서 개종했다는 것도 오네시모가 다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빌레몬이 개종하고는 자기 집을 내어놓고 있을 때 그 도시사람들만이 아니고 노예들도 다 마당에서 예배를 드릴 때도 오네시모도 거기에 앉아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노예들 중에서 오네시모는 특별히 예정론에 의하면 예정된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로 그러나 이분의 귀를 여신 겁니다,
복음의 이야기를 이렇게 예배 때 듣다 보니까 복음에 대한 갈증이 생겼던 겁니다, 오네시모에게 그러니까 내가 이러고 노예로만 있으면 안 되겠다 한번 바울그룹 속에서 뛰고 쉽다는 소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바울그룹들은 떠나버린 겁니다, 골로새교회 개척해놓고 그러니까 오네시모가 내가 저 사람들과 같이 저 대열에 속하였으면 하는 이런 마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 사람들을 통해서 내가 기독교를 더 알고 싶다는 그런 갈망을 가졌을 겁니다, 그게 주후50년입니다 그러고 있는데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빌레몬도 그렇고 또 그 아들도 그렇고 에베소에 특별공부하려 간다는 소식을 들은 겁니다, 그게 뭐냐면 두란노 서원입니다 그게 주후53년에서55년입니다 특별공부하려 간다고 2년 동안 자리를 비우는 겁니다, 이런 소식을 듣고는 나도 갔으면 하는데 갈 수가 없는 겁니다, 아마 이때 도망나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추측들입니다 그러고 있는데 또 들려오는 소식은 거기서 공부한사람 중에 약35여명이 로마로 갔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겁니다,
그래서 아마 오네시모가 나도 이런 생활 집어치우고 로마로 한번 갔으면 그래가지고 그분들 한번 만났으면 하는 이런 생각을 하셨든 것 같습니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잖아요, 도망가는 것도 문제지만 제 생각에는 이분이 여기저기에서 조금씩 돈을 훔쳤든 것 같습니다 돈을 모아가지고 여행경비를 만들어 가지고 로마로 갔던 모양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로마에 도착하였습니다,
제가 관심 있는 것은 어떻게 로마에 가서 바울을 만나게 되었나, 이겁니다,
이것은 어떤 문헌에도 여기에 대한 자세한 대답이 없습니다,
제가 혼자서 기도하면서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주님 어떻게 해서 바울을 만났을까요, 그런데 제 아이디어가 세 가지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겁니다,
첫째 아이디어는 뭐냐면 오네시모가 로마에 가가지고 생활비가 부족하잖아요,
그러니까 도둑질을 조금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경찰에 잡힌 모양입니다 경범죄로 그래가지고 로마 시위대 안에 집어넣어서 청소를 하던지 뭘 시킨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바울을 만나지 않았나, 이렇게 한번 상상을 해 볼 수가 있습니다, 바울을 만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두 번째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빌레몬이 파워가 있는 사람이니까 로마경찰에다가 아마 투서를 보내지 않았나,
거기에 도둑놈이 한 놈 가있는데 그놈이 내 노예인데 이놈이 거기 가서 왔다 갔다 합니다, 그 놈을 잡으라는 투서 때문에 잡혀가지고 시위대 안에 들어갔다가 바울을 만나지 않았을까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겁니다,
또 한 가지 상상은 이 사람이 그냥 로마에 갔는데 가자마자 바울이 시위대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시위대 안에 군인들에게 돈 얼마주면 왔다 갔다 할 수 있잖아요, 바울의 제자들도 바울에게 드나들었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해서 바울에게 가지 않았나, 라고도 우리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바울을 가서 만난 겁니다,
바울도 이렇게 보니까 안 그래도 이사람 사건 때문에 궁금했는데 지금 나타난 겁니다, 나타나니까 붙잡아 놓고 말씀을 전하기 전에 바울에게 성경 좀 가르쳐주세요, 하고 덤벼들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오네시모에게 열심히 말씀을 가르쳤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저는 목숨을 복음을 위해서 바치겠습니다, 라고 헌신까지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바울이 이 사람을 보니까 대단한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빌레몬서를 보면 대단한 사람인 것을 우리에게 암시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첫째 뭐냐면 오네시모가 바울을 만난 후에 영적 신분의 변화가 있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었습니다, 바울을 만난 후에 영적신분의 변화 어떤 변화냐면 첫째 바울이 오네시모를 나의 영적아들이다 이렇게 칭하였습니다, 10절에 영적아들은 디모데와 디도가 받았던 겁니다, 우리 디도서1장에 보면 나옵니다, 그 수준으로 올려놓은 겁니다, 영적아들로 그러니까 브리스길라의 남편 아굴라니 두기고니 이런 사람에게는 이런 말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양반이 디도나 디모데수준인 바울의 영적아들로 칭하는 이 수준까지 갔습니다, 거기다가 바울이 또 뭐라고 그랬냐면 12절에 이 사람은 나의 심복이다 그랬습니다, 세상에 갑자기 심복이 된 겁니다,
누가나 디모데 같은 사람이 심복인데 두기고나 이렇게 말하시고는 말씀이 골로새서4장9절에는 이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나의 실실하고 사랑받는 형제다 그랬습니다,
바울이 신실하다는 말이 헬라말로 피스토스라는 말인데 바울이 이 피스토스라는 단어를 사람을부를 때 자주 쓰지 않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변화지 않는 신실한 사람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 양반이 그 명칭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빌레몬서11절에는 그랬습니다, 오네시모는 나에게 유익한 자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영적인 신분이 급상된 사람입니다 바울에게 지금 문제가 뭐냐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영적으로는 이렇게 급상승되었는데 소위 육적신분은 그대로 있는 겁니다, 육적인 신분은 예컨대 아직도 노예의 신분으로 꼬리표가 달려있는 겁니다, 도망자의 신분으로 꼬리표가 달려있는 겁니다,
사형수의 신분으로 꼬리표가 달려있는 겁니다, 이런 꼬리표를 달고 있으면 복음 사역자가 되는데 거침돌이 되는 겁니다, 한계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이 사람에게 이 꼬리표를 잘라 주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꼬리표를 잘라줄 수 있는 사람은 빌레몬 밖에는 없는 겁니다,
바울이 이 꼬리표를 자를 수가 없는 겁니다, 빌레몬이 잘라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방법이 뭐냐면 바울이 빌레몬이 꼬리표를 자르도록 도와주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것을 위해 계획을 한 것이 있는 겁니다,
세 가지 부분으로 계획을 하였습니다, 첫째는 설득자로 두기고를 임명한 겁니다, 두기고야 너 거기 가서 이 사람 설득시켜라 두 번째는 위험부담을 무렵 쓰고 본인인 오네시모도 데리고 가라 오네시모가 직접 가서 용서해주십시오,
하고 무릎을 굵어라 이게 두 번째로 바울의 해결방법입니다 세 번째는 뭐냐면 내가 친필로 빌레몬에게 간곡한 호소를 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빌레몬서는 바울이 빌레몬에게 간곡하게 호소하는 장면입니다 오네시모를 위해서 그러면 바울의 편지 빌레몬서의 구조를 같이 봅시다,
바울이 이렇게 편지를 쓸 때 마다 구조가 아주 조직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적당히 하는 게 아닙니다, 이분에게 성령님이 지혜를 주었기 때문에 아주 조직적으로 구조를 해놓았습니다 일곱 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가 뭐냐면 처음에 인사부터 합니다, 그게 우리가 배우는 것입니다 인사부터 1절부터3절입니다, 두 번째는 이분에게 먼저 감사하다는 것을 꼭 말씀합니다,
4절에서7절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너 정말 믿음이 있고 사랑이 많아서 너 네 교회에 교인들을 사랑해준 것에 대해서 내가 감사하다 이런 말을 씁니다,
그리고는 너가 손을 흔드니까 교인들에게 칭찬 받는 분이라는 것을 그래서 교인들이 너를 보면 많은 기쁨을 얻는다는 이런 식의 칭찬을 해줍니다,
그리고는 하시는 말씀이 내가 너를 위해서 중보기도도 열심히 한다 이런 말로 지금 4절에서7절에 감사와 칭찬의 말씀을 하십니다, 굉장히 지혜롭습니다,
지금 이렇게 화가 나 있는 형제에게 목사라도 화가 나면 대개 무섭거든요 이런 사람에게 이렇게 해서 화를 내리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뭐냐면8절부터11절에 이분에게 호소를 합니다, 우리말로 간구한다, 이렇게 말합니다,
호소하는 겁니다, 부탁하는 겁니다, 윗사람이 밑에 사람에게 내가 오네시모를 위해서 너희에게 조금 부탁할 것이 있다 이런 말로 하는 겁니다,
네 번째 단계로는 그렇지만 그기에 대하여 내가 왜 부탁하는지 목적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목적을 뭐라고 그러느냐면 오네시모가 나와 너에게 굉장히 유익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또 내가 이 사람을 내 동역자로 쓰기로 원한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은 이제 당신의 종이 아니다 우리 형제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용서해줘라 그리고는 신분상승 시켜주어라 이런 말로 이야기하는 겁니다, 11절에서16절에 그리고는 다섯 번째로 결론을 딱 내리는 겁니다,
이아들이 가면 나를 영접하듯이 그를 영접하라 그러는 겁니다,
바울이 지혜롭게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했을 때 내가 기쁨이 나한데 있겠다는 겁니다, 평안이 나에게 있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부탁하는 것 꼭 순종해다오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17절에서22절에 그리고는 마지막 여섯 번째로 문안을 드리고 23절24절에 그리고는 일곱 번째로 마지막 인사하는 장면입니다,
25절에 그러면 일곱 가지 단계를 우리가 조금 자세하게 보고 싶습니다,
왜냐면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또 우리가 배워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빌레몬을 설득하기 위하여 성령님이 주신 바울의 지혜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주욱 보니까 열 가지로 구별이 됩니다, 첫째가 뭐냐면 수신자를 여러 명으로 한 겁니다, 이것도 지혜입니다 1절에서3절에 왜 그럴까요, 나머지 분들이 빌레몬을 설득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두 번째는 빌레몬에게 감사 말을 먼저 하는 겁니다, 무슨 감사냐면 성도들을 당신을 믿음으로 사랑한다는 그 사실에 대해서 감사하다 한 겁니다,
4절에서 7절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당신들 교인들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내가 많은 기쁨이 나에게 있다는 말로 표현하는 겁니다,
또 네 번째로는 당신을 위해서 내가 중보기도도 하고 잇다는 말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 조금씩, 조금씩 빌레몬을 설득하는데 먼저 준비 시키는 겁니다,
그러면서 내가 너에게 부탁이 잇다 하면서 이번이 처음 시작하는 말이8절9절에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은 늙은이다 그런 말을 합니다, 늙은이다 하는 말이 원어로 보면 프레스부테스 이 말은 뭐냐면 노인이다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나라는 그 당시에 노인이 몇 살 부터라고 우리가 생각이 되느냐면 50세가 넘으면 노인으로 볼 수가 있는 겁니다, 그걸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8장57절에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그럴 때 너 나이 50도 되지 않았는데 아브라함을 봤다고 그러느냐 기억나시죠, 이스라엘사람들은 그 당시에 50이 환갑 이였던 모양입니다 우리는 60이 환갑인데 지금은 70도 환갑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준이 그렇게 된다고 이해하시고 그러니까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노인이다 노인이 네게 담대히 명령할 수가 있다 그때 바울이 몇 살 이었습니까,
주후61년이나62년이라고 가정한다면 바울이 57세 정도라고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볼 때는 나는 환갑을 훨씬 지난 어른이다 이런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른이가 때문에 오네시모를 너 용서해주어라 이놈아 한마디로 명령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분 신분상승 시켜주어라 이렇게 할 수 있는데 내가 그렇게 강압적으로 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너에게 부탁조로 이야기하겠다, 부탁조로 그러면서 바울이 뭐라고 하시냐면 오네시모는 내 아들이다 너에게는 유익한 사람이다 11절에 그리고는 나의 신복이라는 겁니다, 12절에 과거에는 종이였으나 이제는 사랑받는 형제라는 겁니다, 16절에 그리고는 과거에는 너가 나를 섬겼지만 이제는 너 대신 오네시모가 나를 섬기는 자가 되었다는 겁니다, 나의 동역자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러는 겁니다, 내가 아직까지도 너가 오네시모의 법적인 소유권자인 것을 내가 인정한다는 겁니다, 바울이 그럽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오네시모를 너에게 보낸다,
내가 이걸 인정 안하였으면 너에게 보낼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내가 그냥 이 사람을 그냥 써버리면 되는데 너 권리를 내가 인정하기 때문에 너에게 보내는데 이사람 이제 용서해주고 신분상승 시켜 달라 13절14절에 그러는 겁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부탁하는 겁니다, 다섯 번째로 오네시모를 내가 보낼 테니까 잘 용서해주어라 사형시키지 말라 그러면서 17절에 그럽니다,
나를 영접하듯 그를 영접해달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기가 막힌 말을 합니다, 이분에게 만약에 불리한 행위가 있거든 또 빚진 것이 있으면 왜냐면 불리한 행위는 도망한 것 아닙니까 거기다가 돈까지 훔쳐간 게 있는 겁니다,
이런 것이 있으면 나에게 청구해라 그런 소리입니다 18절에 그러는 겁니다, 내가 다 갚아주겠다는 겁니다, 빚진 것 그러면서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너 나에게 빚진 것 생각해라 그런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말 안하겠다, 19절에 보면 너 나에게 빚진 것 많다 내가 그렇지만 말 안하겠다,
그리고 무엇인지도 말 안하겠다, 그렇지만 너 나에게 빚진 것 하고 그다음에 오네시모가 너에게 빚진 것 하고 상쇄하자 이겁니다, 바울이 복음비즈니스맨입니다, 상쇄하자는 겁니다, 그러면서 너 이렇게 하면 내형제 오네시모를 용서해주면 대단히 기뻐하겠다는 겁니다, 20절에 그리고 나도 평안이 나에게 올 곳 같다는 겁니다, 너가 이렇게 해주면 그렇기 때문에 21절에 제발 순종해라 내가 말하는 것 그래서 내가 친필로 너에게 지금 글을 쓴다는 겁니다,
내가 이런 확신이 없으면 내가 안 썼을 거랍니다,
그러면서 21절에 바울이 지금 너 말이야 내가 지금 너에게 부탁하잖아 내가 확신한다, 내가 부탁한 그 이상으로 내말에 너가 동조할 거라고 이런 말을 합니다,
더 행할 줄로 내가 아노라는 겁니다, 이것은 빼도 박도 못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마지막으로 기가 막힌 말을 합니다, 여기 보면 성령님이 이분에게 이런 지혜를 준 겁니다 너 내가 갈 처소를 예비하라는 겁니다,
이 말이 내가 가서 점검하겠다는 겁니다, 내가 지금은 묽혀 있지만 바울은 언젠가는 곧 풀려날 것을 미리 아시고 빌레몬아 내가 가서 확인할거야 너에게 가서 이 문제를 해결했는지 안했는지 그 말이나 똑 같습니다, 내 처소를 예비하라는 겁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꼭 가겠다는 겁니다, 편지로 끝내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꼭 가서 확인할거야 너가 내 말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이것이 빌레몬서입니다 바울에게 주님이 주신 지혜입니다 빌레몬에게 주신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노예도 목회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이 세상눈으로 보면 노예가 너의 재산상 피해를 준 자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자지만 이제는 크리스천이 되어 가지고 큰 그림을 큰. 큰 그림을 믿음의 눈으로 본 시각의 변화를 가지고 패러다임 시프트를 하면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 형제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세상 법으로 보면 그것은 우리는 은혜를 베풀고 용서를 베풀고 사랑을 베풀어주고 이 사람을 덮어주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 법으로 보면 너가 손을 봐도 된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제는 저세상 사람이기 때문에 저세상 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자 라는 메시지를 빌레몬에게 보낸 겁니다,
우리도 이 메시지를 대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골로새교인들에게도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겁니까, 이 내용은 이 세상 법보다 저세상 법이 더 우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합니다, 그러니까 크리스천들끼리 서로 싸움하지 말고 서로 용서해라는 겁니다, 메시지가 이 편지에 담겨져 있습니다, 신분 상승시켜 라는 이 메시지는 쉬운 것이 아닙니다, 특히 빌레몬에게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빌레몬이 사회관습법으로 볼 때는 안 되는 겁니다, 사람의 인식의 벽이 있는 겁니다,
사회통념 전통문화의 큰 벽이 있기 때문에 그 벽을 넘어설 수가 없는 게 빌레몬의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벽을 넘으려면 큰. 큰 그림을 봐야 됩니다,
바울은 이미 큰. 큰 그림을 봤기 때문에 오네시모를 사용하신 겁니다,
노예 신분을 아들로 삼았습니다, 바울은 이미 큰. 큰 그림을 봤기 때문에 자기 제자에게 체면을 무릅쓰고 자존심 다 내려놓고 빌레몬에게 부탁까지 하는 겁니다, 이 큰. 큰 그림을 봤기 때문에 바울이 이렇게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골로새서3장1절에 바울이 항상 말하는 게 있습니다,
너희들은 위에 것을 찾으라, 위에 것을 찾는 사람은 이것이 가능한 겁니다,
어떻게 하면 이 위에 것을 찾게 됩니까, 바울이 에베소교회다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빌레몬아 너도 이 은혜를 깨달아라, 그다음에 마지막으로 오네시모를 향한 교훈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바울이 이 편지 속에서 오네시모보고 하는 말이 오네시모야 나의 리드 쉼 스타일을 배우라 너도 장차 사역을 하다보면 기독교의 지도자가 되면서 보면 너 같은 소외된 사람들이 너 눈에 보이게 된다는 겁니다,
너 같은 사람이 이 세상 시각으로 보면 정말용서 못하는 사람들이 너가 앞으로 사역을 하다보면 보인다는 겁니다, 그럴 때 나처럼 그런 사람을 이 세상 시각으로 보지 말고 그분들의 가능성을 보고 말씀을 가르쳐 주고 인격적으로 친구가 되어 주고 그 사람의 약점을 너가 몸소 없애주는 일에 앞장서는 지도자가 되어라 다시 말하면 소외 자들을 살려주는 그래서 너가 지금 이렇게 되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너도 앞으로 이런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우리가 이런 질문을 합니다,
바울이 어떻게 해서 이런 사람이 되었는가, 바울은 본래 율법주의자였습니다,
율법을 보면 못 견디는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에 충실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이를 율법에 의해서 죽였던 사람입니다 예루살렘교인들을 핍박했던 사람입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이렇게 잘랐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부드럽게 되었을까요, 이것이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잖아요, 이 사람도 주님이 훈련시킨 겁니다, 은혜의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바울을 훈련을 많이 시켰습니다, 하루아침에 변화지가 않습니다, 그러니까 어려움을 집어넣어 가지고 예수님을 만나서 다메섹사건 때 외롭게 되었을 때 아나니아를 만나게 하고 하나님이 돕는 자를 던져주는 겁니다, 예루살렘에 와서도 바나바를 만나게 해주시고 다소에서 7년 동안 혼자 외롭게 있을 때 바나바가 가서 바울을 데려오게 하고 1차 여행 갔을 때도 바나바를 붙여주시고 2차 여행 때도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누가나 디모데나 실라나 이런 신실한 사람들을 옆에 항상 붙어주시고 빌립보에 가서도 루디아를 붙어주시고 데살로니가에 가서도 많은 핍박을 받을 때 그곳에 있는 귀족들을 붙어주시고 고린도에 가서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가이오와 많은 제자들을 붙어주시고 3차 여행 때도 두란노 서원에서 사역할 때도 주변에 제자들을 붙어주시고 예루살렘에 가서도 항상 어려울 때 마다 핍박받을 때 마다 옆에 돕는 자를 붙어주시고 심지어는 벨릭스. 베스도. 아그립바 왕 같은 사람도 붙어주시고 지금 로마에 연금 상태에 있을 때도 항상 외롭지만 주변에 신실한 형제자매들을 붙어주시고 이분은 항상 자기의 인생 삶을 보면서 주마등처럼 이렇게 때를 따라서 외로울 때 마다 어려울 때 마다 옆에 돕는 사람들을 힘을 얻어서 지금까지 온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오네시모를 보면서 자기 자신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 사람 살려주어야지 자기 옛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겁니다, 저 사람은 죽은 사람이야 저 사람 내가 살려주어야지 그래서 신분상승까지 시켜주어야지 예수님의 마음을 바울이 가지게 된 겁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 이러다 보니까 이것이 가능했던 겁니다,
우리 빌레몬서서 이런 측면에서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지혜의 서신이라 저는 이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두 번째는 사람을 살리는 서신이다 세 번째는 화평의 서신이다 네 번째는 리드 쉼 가이드라인의 서신이다 다섯 번째로는 큰. 큰 그림을 보게 하는 서신이다 이렇게 특징을 하번 표현하고 싶습니다,
결론적인 마지막이야기 한마디만 하고 끝내려고 합니다, 노예제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빌레몬서를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뭐냐면 바울도 그렇고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차원에서 이 서신이 써진 겁니다,
노예제도는 이게 악법이다 없애야 된다, 라는 그러한 기록이 없습니다,
성경전체를 주욱 보면 노예제도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악법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가 잘 아는 아브라함 때 창세기15장13절에서17절에 우리가 잘 알잖아요, 예언하시기를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아 너 후손이 어느 때가 되면 너 후손들이 어떤 나라에 가서 400년 동안 노예가 되었다가 돌아오리라 이것은 노예제도를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하나님의 장중에서 이것을 활용하시는구나,
라고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봐도 구약의 역사에서 봐도 앗수르 제국을 세워서 이스라엘사람들을 노예화시키고 바벨론 제국을 통해서도 그렇고 페르시아제국 로마제국까지 강하게 해가지고 이스라엘사람들을 노예화시키고 바울도 여기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다가 바울에게 성령님이 하시는 말씀이 로마서13장1절에서7절입니다,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겁니다, 바울이 그것을 깨달은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그분의 편지 속에서 보면 네로 왕을 욕할 것도 없고 로마제국을 공격하는 정치적인 발언을 한 것도 없습니다, 다 주님의 장중에서 이것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류역사를 보면 노예제도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인류역사라는 것은 초대역사라는 것은 1세기부터 해서 590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레고리1세 교황 되는 이것을 우리가 초대역사라 그러는데 서양사에서는 이 때도 보면 노예제도가 아주 전 국가에 퍼져있었고 두 번째 봉건주의 시대가 중세라 그럽니다, 이것을 590년부터 1517년입니다 이것도 완전히 노예 시대였습니다, 그리고는 식민주의시대 그 후에 일어납니다,
종교개혁 때부터 해서 2차 전쟁이 끝나고 1945년 이것도 보면 다른 형태의 노예제도입니다 큰 나라들이 힘 있는 10여개 나라들이 전 세계를 다 노예화시킨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후에 2차 전쟁이 끝나고 나서 민족주의라는 주의가 1945년부터1970년까지 각 나라가 독립이 되면서 조그만 나라들이 독립이 되면서 거기에서 소위 독재자들이 나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고 전 세계가 모두 군인 독재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것도 다른 형태의 노예주의입니다 소수가 힘과 권력을 가지고 다수가 고생하는 빈부의 격차 권력의 격차 양극화되는 공산주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공산주의도 1917년 볼셰비키혁명 후부터 지금까지 보면 특히 1990년대까지 여기 보면 똑같이 다 노예주의나 마찬가지입니다 소수가 주인이고 나머지는 다 노예 생활하는 지금 1900년부터 20세기 들어와서 지금까지 자본주의를 보면 엄밀한 의미로 들여다보면 이것도 노예주의의 하나의 다른 형태로 보고 있습니다, 빈부의 격차 자본과 비 자본 이런 식으로 보면 인류역사가 다 형태는 다르지만 노예주의 주인이 있고 나머지는 다 노예처럼 사는 이런 것을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유럽 같은 나라가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이 다 예정하셨기 때문에 노예 주의로 아프리카를 그냥 지배해버린 겁니다,
그래가지고 거기에 경제적인 정치적인 이득을 보면서도 거기에 선교사들이 따라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쉽게 전할 수가 있는 겁니다,
강제성을 띄고서 막 전하니까 제일 높은 집주인이 크리스천이 되면 노예들이 다 똑같이 크리스천이 되니까 이런 식으로 세계복음화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하나님께서는 노예제도를 이미 암시적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 같습니다,
복음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러면 이 노예들은 돈이 없는 가난한 백성들은 힘이 없는 백성들은 이 세상에서 소망이 없는 것을 깨닫게 되고 저 세상을 바라보도록 하나님이 만드시지 않았나,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한 가지 우리가 의문점이 하나 있는 게 소위 벡인 기독교인들이 아프리카사람들을 노예화시켜가지고 유럽으로 많이 들어갔지만 주로 북미 중미 남미 이쪽으로 아프리카사람들을 노예로 데리고 갔잖아요 그럴 때 그게 다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했거든요 선교사들도 거기에 한 몫 끼여 가지고 그럴 때 이것이 왜 기독교인들이 나쁜 짓을 하는가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서는 그것 다 노예제도도 하나님이 인정했기 때문에 그걸 사용하시려고 하는 건데 이분들이 성경해석을 잘못 해석한 것도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창세기9장20절에서27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노아가 세 아들과의 관계 속에서 노아가 술에 취하였을 때 노아의 술 취함을 보고 노아에게 나쁜 짓을 했다,
라고 성경에 보면 가나안 인데 함의 네 번째 아들인데 백인들은 이것을 어떻게 해석을 했느냐면 함이 그렇게 했다 함이 노아에게 저주를 받았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사람들을 마음대로 다룰 수가 있다고 보는 겁니다,
야벳은 유럽 사람인데 야벳이 창대해지면서 야벳이 그 사람들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고 그렇게 해석을 해버린 겁니다, 요즘 와서는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지금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사람들이 점령하고 가나안 후손들은 없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을 통해서 아프리카가 엄청난 고생을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신기하게도 이 고생을 했던 아프리카사람들이 지금은 기독교인이 제일 많아진 겁니다, 아프리카는 약50%가 기독교나라가 된 겁니다,
우리 아시아는 고작해야 5-6%이지만 미국도 지금 백인사회는 기독교가 서서히 몰락이 되어가고 있지만 미국에는 지금 뜨거운 교회들 열심 있는 교회들 선교하는 교회들이 흑인교회들입니다 그러니 미국은 지금 흑인교회들이 얼마나 뜨거운지 모릅니다, 신기한 겁니다, 주님께서는 이 흑인들을 마음을 가나하게 만들어서 이 어려움 속에서 저 세상을 바라보게끔 하나님이 은혜를 끼치신 것 같습니다,
우리 북한도 지금 저렇게 있는 것도 주님께서 주님의 장중에서 북한사람들을 사랑하고 우리민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저렇게 하지 않나 우리가 그런 시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권이라는 인간의 시각으로 보면 노예제도는 악법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노예제도는 복음화의 도구로 큰. 큰 그림 속에서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은 과거2000년 동안 이 복음화에 도구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 때문에 우리는 항상 핍박을 받아 왔습니다, 노예 식으로 핍박받아 왔든 겁니다, 등 따뜻하고 몸이 편하고 이런 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종말 때도 똑같이 그렇게 하겠다는 겁니다,
종말 때도 이 세상은 점점 어려워 질것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환란과 미움과 핍박이 엄청나게 엄습해 올 것을 마태복음24장9정10절에서 예언 하셨습니다,
이 전지하신 하나님이 이런 걸 다 아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런 노예제도를 다 만들고 할 수도 있거 안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분이 다 허락하신 것을 보면 이것은 하나님의 숨겨놓은 미스터리가 우리에게 있구나,
우리는 완전히 이해 못하지만 이번에 빌레몬서를 공부하면서 이 노예제도의 미스터리까지도 한번 우리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는 겁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저희들이 바울을 통해서 글을 쓰게 하신 빌레몬서 이 속에 숨겨있는 하나님아버지의 뜻을 상고했습니다, 온전한 상고는 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이 속에 숨겨있는 아버지의 뜻을 저희들이 어느 정도 깨닫고 어떻게 우리가 또 앞으로 주님의 뜻을 향해 가야 될지도 가르쳐 주셔서 날로. 날로 주님의 뜻으로 넘쳐나는 지혜 자가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POWwEOgcZNw
'황용현목사 강해설교 녹취록 > 사도행전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50강, 바울의 디모데전서 집필 (0) | 2019.12.18 |
---|---|
49강, 바울의 출옥과4차 선교여행 (0) | 2019.12.18 |
47강, 골로새서 집필 (0) | 2019.12.18 |
46강, 바울의 에베소집필 (0) | 2019.12.18 |
45강, 바울의 빌립보서 집필 (0) | 2019.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