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현목사 강해설교 녹취록/사도행전 강해

47강, 골로새서 집필

변명섭 2019. 12. 18. 18:04

사도행전 강해 제47강, 골로새서 집필 2012년11월11일 말씀
오늘 말씀 같이 보겠습니다, 골로새서4장10절의 말씀인데요, 
바울이 하시는 말씀이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이렇게 해서 주욱 사람이름이 나오는데요, 나와 함께 갇힌 여기다가 줄을 그으세요, 이분이 로마시위대에서 이 글을 집필하셨구나, 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로마시위대에서 바울이 로마시위대에서 쓰신 글이 네 가지가 있는 걸 우 리 알죠, 빌립보서.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이렇게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향해서 집필하신 내용을 같이 나누었습니다, 이때에 집필하신 동기가 에베소에 있는 교인들이 로마를 방문해가지고 두기고에게 에베소교회가 지금 어떤 문제가 있다, 
라고 보고를 한 것을 두기고가 바울에게 보고를 했기 때문에 그 내용을 받아서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향해서 글을 쓰셨다 이런 이야기를 지난시간에 했습니다, 이제 골로새서는 이와 조금 다른 상항입니다 골로새서는 어떻게 해서 쓰게 되었냐면 골로새 출신중에 한 분인 거기서 담임목사님격인 에바브라 라는 사람이 골로새교회 안에 여러 가지 문제 있는 것을 가지고 혼자서 기도하면서 고민 하다가 이분이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로마에 있는 바울선생님에게 직접 보고를 해야 되겠다, 
라고 생각하고 직접 이분이 로마를 방문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아시아 에베소출신인 두기고를 만나게 된 겁니다, 
두기고에게 이 모든 사실을 주욱 설명을 해 드렸더니 우리가 바울선생님에게 이 문제를 보고 드리자 그래서 이제 보고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 보고를 받은 겁니다, 그래서 에바브라가 직접 로마로 갔다, 라는 것을 잊지 말아 주세요, 그런데 에바브라가 골로새사람이거든요 골로새는 조금 특별한 도시입니다 어떤 부분에서 그렸느냐면 골로새 성지순례를 한 분들은 보셨겠지만 골로새가 있는 지역에 보면 오목 들어간 계곡이 있는데 그것을 루커스(Lycus)계곡이라 그럽니다, 
이 계곡 안에 도시가 세 도시가 있습니다, 에베소에서 라오디아 골로새까지 약150km정도 됩니다, 에베소에서 동쪽으로 그렇게 되는데 이 안에 세 도시가 삼각형으로 같이 있습니다, 라오디아가 제일 왼쪽에 있고 그다음에 오른 쪽으로는 골로새가 있고 그다음에 가운데 위에 히에라볼리 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삼각도시는 하나로 보시면 됩니다, 
라오디아. 골로새 히에라볼리 이 세 도시는 우리 알다시피 계시록2장과3장에 보면 아시아지역에 일곱 교회가 있음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여기 보면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그리고는 라오디게아 이렇게 일곱 교회이름이 나옵니다, 
라오디게아 그러면 항상 골로새도 포함된다. 
라고 생각하시고 히에라볼리도 포함된다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상식적으로 알아두시길 바랍니다, 라오디게아교회 하면 골로새교회 히에라볼리 이렇게 세 도시가 하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바울이 골로새서를 쓰면서 그랬습니다, 이 편지를 라오디게아교인들과 같이 나누어라 그랬습니다, 이걸 보면 그것이 확신이 옵니다 이 세 교회들은 바울이 2차 여행을 할 때 안디옥을 떠나가지고 더베와 루스드라 거기 가서 누구를 데리고 왔습니까, 디모데를 선택하고는 그다음에 이분이 아시아 쪽으로 갔다, 라고 저희들이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정확하게 어디 간 것은 적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16장9절에서11절에 보면 이분이 이쪽으로 갔다, 
라고 그랬는데 우리가 보기에는 이쪽을 가가지고 2차 여행 때 여기에 교회들을 다 개척을 한 걸로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2차 여행 때 그래가지고 에베소에 있다가 이분이 이 위로 드로아로 갔다가 마케도니아비전을 보고는 마케도니아로 건너가서 빌립보로 가서 그래서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교회 뵈레아교회 아덴교회 고린도교회 이렇게 다 개척한 겁니다, 여기 2차 여행 때 이렇게 다 개척한 겁니다, 
이때 라오디게아교회 골로새나 히에로볼리는 바울이2차 여행 때 개척했던 교회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바울이 이 교회는 오래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가 에바브라가 누군가 한번 우리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에바브라라는 사람이 라오디게아교회 골로새교회에 특히 골로새교회에 담임목사님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추측을 합니다, 
이 에바브라가 지금 바울에게 로마로 달려간 겁니다, 
가가지고 이쪽 세 교회의 상황을 보고를 드리고 그 보고를 받고는 골로새를 중심으로 해서 편지를 쓴 게 골로새서입니다 그렇지만 나머지 두 교회도 포함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면 편지를 쓰게끔 만든 에바브라 이 사람은 골로새출신이고 그리고는 바울이 골로새서1장7절이나4장12절에 이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을 사랑하는 그리고는 예수님의 신실한 일꾼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원어 성경에 보면 귀 뚫린 종 그냥 종이 아니고 다시 말하면 귀 뚫린 종 완전한 귀 뚫린 종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1장7절에 보면 이 사람이 바울과 함께 골로새교회와 라오디게아교회와 이 세 교회를 개척한 사람이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바울과 함께 골로새교회와 라오디게아교회와 이 세 교회를 개척한 사람이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바울에 의해서 2차 여행 때 개종을 이미 받은 겁니다, 바울이 그 도시에 갔을 때 개종 받고는 사역자로 들어와 가지고 골로새교회와 나머지 두 교회를 개척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이 아닌가,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후50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바울은 골로새를 떠났습니다, 개척해 놓고 그럴 때 이 사람은 거기 남아가지고 51년52년 이때 그냥 골로새에 남아기지고 이제 사역자가 되어가지고 그 지역 교회를 담당했다, 라고 보고 있습니다, 
골로새서1장7절에 보면 그러다가 골로새서4장12절13절에 보면 이분이 세 교회를 담임하면서 많은 수고를 한 사람이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세 교회를 다니면서 그러니까 51년52년 이때 바울은 이미 떠나버리고 그러면서 사역자를 하다가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려있었거든요, 
거기서 장시간 2년을 머물려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53년부터55년3차 여행 때 에베소에다가 두란노 서원을 세웠잖아요, 두란노 서원을 53년에 세웠을 때 그 때보면 아시아에 있는 지도자들을 다 두란노 서원으로 모이게 해서 공부 시켰다 그랬습니다, 
그럴 때 이 사람도 그래서 두란노 서원을 졸업한 후에 바울이 몇몇 사람들을 이미 로마로 선교사로 보내고 그리고 나머지 몇 사람은 자기가 데리고 또 같이 다녔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은 데리고 다니지 않고는 고향으로 보내 버렸습니다, 골로새교회 담임목사도 그리고는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교회도 관리하게 그게 56년에서60년까지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분은 그 세 교회의 담임목사로 열심히 섬겼던 분으로 우리가 보고 있는데 그러다가 주후60년이 되었습니다, 그 교회를 섬기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으니까 이분이 도저히 내가 이 교회 목회를 더 이상 할 수 없다, 
라고 보고 내가 바울 선생님이 지금 로마에 연금 상태에 있는데 위로 차 한번 가서 만나 뵙고 그리고는 나는 아예 이 교회에 안 오겠다, 
바울선생님 따라 다니겠다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래가지고 지금 바울선생님이 계신 로마로 이분이 가신 겁니다, 
가서 누굴 만났습니까, 두기고는 만나고 그다음에 바울선생님도 만나고 그래가지고 자기네의 문제점들을 이 세 교회의 문제점들을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제가 목회를 4-5년 해보니까 도저히 제 실력으로 목회를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안에 문제들이 이런 문제들이 있습니다, 
바울에게 보고했던 문제들이 뭡니까 한번 우리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가 심각한 신학의 문제점들이 있었습니다, 
이 세 교회가 어떤 문제가 있었냐면 구원론을 헷갈리게 가르쳤습니다, 
이 안에 유대인들이 주로 이런 문제를 일으킨 겁니다,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지난 시간에 에베소교회도 잠깐 있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그래도 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심했습니다, 
뭐냐면 우리 빌립보교회도 있었지만 구원론 문제입니다 구약의 규례를 지켜야지만 구원이 있다, 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골로새서2장16절에 자세하게 나옵니다, 어떤 부분을 이야기하느냐면 음식도 구약에서 가르치는 음식을 먹어야지만 구원이 있다, 라는 겁니다, 마시는 것도 또 절기도 지켜야 된다, 
일곱 절기 그 외에 또 다른 절기들 일곱 절기 외에도 수전절 부림절  이런 절기들이 9개 정도 있습니다, 그다음에 월삭이라고  뉴 문( New Moon) 이라 그럽니다, 뉴 문 이라는 것은 초승달입니다 달이 시작하는 그날도 성스럽게 우리가 지켜야 된다, 이것을 초승달 개념은 거기다가 세미라미스와 관계되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을 바벨론 종교와 관계되는 이런 것들도 지켜야 된다고 믿는 그다음 안식일 철저히 지켜야 된다, 
그다음에 2장11절에 할례를 꼭 받아야 된다, 
이런 문제들이 이교회 안에 지배하고 있어 아주바울선생에게 배울 때는 에바브라가 이런 걸 안 배웠는데 이런 걸 다 그림자라 그랬는데 이걸 가지고 나를 힘들게 만듭니다, 이겁니다 이 신학이슈가 있었던 겁니다, 두 번째 신학 이슈가 뭐냐면 영지주의라 그럽니다, 이건영이 진짜다 육은 악한 것이다 육은 언젠가는 다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육을 무시하고 영만 강조하는 것을 영지주의라 합니다, 쉽고 간단하게 표현하면 그러다 보니까 영지주의는 예수님을 이해하는데도 문제가 생기고 예수님은 영적인 분이기 때문에 영적인 분으로서 예수지 예수님이 인간으로 육신으로 왔다는 것은 그것은 그냥 하나의 환상이지 실체가 아니라는 겁니다, 왜 거룩한 하나님이 악한 육을 쓰고 올 필요가 있느냐 이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신성만 강조하고 이런 영지주의사상이 이 교회 안에 있었던 겁니다,
2세기에도 3세기에도 이 사상이 상당히 강했습니다, 
기독교 안에 영지주의사상이 있으니까 거기서 파생되는 사상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걸 금욕주의라 합니다, 금욕주의 이 사상도 이 교회에 있었습니다, 금욕주의란 게 2장20절에서23절에 나오는데 이 세상은 악한 거다, 그리고 영원만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다 거룩한 것들이 아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거룩하지 않기 때문에 썩어질 것이니까 육을 마음대로 다루어도 된다는 겁니다, 예컨대 그러니까 금식도 많이 하고 그리고 운동도 할 필요도 없고 음식 먹을 필요 없고 영양분 있는 음식 먹을 필요 없고 그냥 기도만하고 그냥 교회 생활만 열심히 하면 된다, 
라는 이런 사고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가끔 이런 것 볼 수 있습니다, 그다음 네 번째 문제가 뭐냐면 우리교인들 중에서 천사들을 숭배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겁니다, 천사숭배 2장18절에 보면 그다음 다섯 번째가 뭐냐면 가장 심각하게 다섯 번째는 우리교회가 기독론이 약하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삼위일체 되심 예수님의 창조주 되심 예수님의 구원자 되심 예수님의 교회머리가 되심 이런 부분이 약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1장15절에서18절에 이런 것을 다루었습니다, 
그다음에 이런 신학적인 문제만 해도 다섯 가지로 이렇게 다루어지는 겁니다, 이런 문제가 심각하게 우리교회에 있다는 겁니다, 
지금 누가 이것을 보고합니까, 에바브라가 보고를 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큰 문제가 뭐냐면 교인들 간에 문젠데 성화되지 않는 교인들이 꽉 차 있다는 겁니다, 우리교회에 3장5절에서9절에 거짓말잘 하고 욕심 많고 비방잘 하고 남을 물어뜯고 그다음에 음란한 사람들 별난 사람들이 우리교회에 많다는 겁니다, 그다음 세 번째 문제는 에베소교회나 다 같습니다 가정문제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부부문제 자녀문제 이런 것들이 3장18절에서21절까지 그리고는 직장문제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직장의 상관들과의 문제점들 그 문제는 3장22절에서4장1절까지 다루고 마지막으로 이 안에 우리는 유대인과 이방인들 간에 민족 갈등 문제도 심하지는 않지만 조금 있다는 겁니다, 
3장11절에서 다루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가장 심각하게 하는 문제가 뭐냐면 이교회는 신학문제가 가장 심각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도 거기에 대해서 동의하는 겁니다, 이교회는 빌립보교회가 가지고 있지 않는 이 신학문제들 또 에베소교회가 가지고 있지 않는 신학문제들이 있다는 겁니다, 
빌립보교회는 순 할례 당이라고 있었지만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지만 에베소교회는 신학문제보다는 관계성의 문제들 지도자들이 분리되는 이런 문제들이 심각했는데 물론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입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신앙문제만은 이런 이단 부분들이 많지는 않았는데 골로새교회와 이 세 교회와 이단문제가 심각했던 겁니다, 
이단적인 가르침 그래서 골로새교회는 여기에 집중해서 바울이 집필을 했습니다, 집필 동기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이 세 교회의 문제들을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그 원인을 알아내고 해결해주려고 편지를 쓰신 겁니다, 
그래서 이 세 교회 중에서 골로새교회가 대표적인 교회였습니다, 
왜냐하면 골로새 이 도시가 문헌을 보니까 가장 그 지역에서 부유했던 도시고 금융센터였고 의과대학이 거기에 있었고 방직공장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골로새가 그래서 그 지역의 센터도시였습니다, 
그래서 골로새서를 쓰시면서 골로새교인들아 너희들 가만히 있지 말고 다른 교회들과 나누라 그랬습니다, 골로새4장16절에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다음시간에 보겠지만 빌레몬서도 빌레몬이라는 사람이 골로새에 있는 사람입니다 큰 지주였던 모양입니다 골로새에서 이분이 바울에 의해서 개종된 사람입니다 우리 알다시피 이분 밑에 있는 종중에 하나가 오네시모입니다 그분이 도망가서 로마에서 개종한 이야기를 다음시간에 할 것입니다, 
그러면 골로새서의 수신자는 누구일까 수신자는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그래 놓고는 다시 말해 곧 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그랬습니다, 실실하다 는 말은 변하지 않는 형제들에게 보면 내용적으로는 모든 교인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특별한 교인들을 생각하면서 이 편지를 쓴 것 같습니다 발신지는 바울이 자기 이름만 쓴 게 아니고 디모데 이름까지 같이 집어넣었습니다, 나와 디모데는 이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배달자는 누구였을까 보면 4장7절에서9절까지 배달 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배달 자는 누구였냐면 4장7절에 보면 두기고입니다, 
두기고가 편지를 그러니까 에베소에 편지도 들고 가고 그래서 에베소에서 교통정리를 다 하시고는150km되는 길을 걸어갔는지 말 타고 갔는지 가서 지금 이 세 교회를 방문하신 겁니다, 방문하시고는 또 빌레몬서까지 갔다, 주고 그러면 배달 자로 두기고를 선정한 이유를 7절에 설명했습니다, 왜 두기고를 배달자로 했는가 보면 두기고가 바울이 지금 어떤 사정에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에서 바울과 같이 있었으니까 바울을 주욱 따라 다니고 그러니까 이 사람들에게 바울의 실정을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두기고가 그다음에 두 번째 이유는 왜 두기고를 선정했느냐면 로마와 아시아에 있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겁니다, 두기고를 사랑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이 사람은 신실한 일꾼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변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감정적으로 마음이 변하거나 굴곡이 있거나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예수님의 종이다 그랬습니다, 이런 사람은 정말 좋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이 사람이 예수님의 종이면서 나도 예수님의 종인 것 같이 나와 이 사람을 함께 예수님의 종이다 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이 두기고를 배달자로 보낸다, 이렇게 했습니다,
8절에 그 목적 중에 세 교회 입장에서 봐도 두기고를 보내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왜냐면 두기고가 이 세 교회의 사정을 잘 알고 이들에게 세 교회 문제점을 설명해줄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교회를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9절에 이분이 내가 두기고만 보내는 게 아니고 오네시모도 같이 보내겠다, 그러는 겁니다, 오네시모는 우리 알다시피 빌레몬 큰 지주 집에 속해있는 노예 중에 한분인데 이 형제를 내가 보내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형제는 너 네들이 볼 때는 세 교회가 볼 때는 빌레몬 집에 있는 노예지만 이제는 우리형제라는 겁니다,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형제가 되었다 그러니까 나중에 빌레몬 보고도 너 이사람 이제 노예로 생각하지 말고 형제로 생각해라 이렇게 한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조금 구체적으로 바울이 골로새교회를 향해서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쓴 내용을 잠깐 봅시다, 
첫째 신학적인 문제에서 구원론에 대해서 정리를 바울이 하는 겁니다, 
2장14절에서 22절에 설명이 나옵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모든 구약의 음식이나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이나 할례나 이런 것들은 다 예수님을 설명해주기 위한 그림자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체는 그리스도라 그랬습니다, 실체는 그리스도신데 이런 것들은 그림자로 보여 주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런 것들 가지고는 구원 받을 수 없다 그러면서 바울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셔서 이 구약의 모든 이런 의문에 쓴 증서들 이런 것들을 다 도말해 버렸다, 십자가에서 승리하시고 그렇기 때문에 2장14절15절에 그럽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잘못알고 있다 구원론을 이런 것들은 필요조건들이 아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로 영지주의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2장18절에 말씀하시기를 우리 한국말로는 뭐라고 그러느냐면 일부로 겸손함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일부로 겸손한 그 말이 무슨 말입니까, 
일부로 겸손함과 천사 숭배하는 이런 이야기 가운데 일부로 겸손한 것은 스스로 낮춘다는 소리입니다 그것을 영어성경에서는 자기 자신을 낮춘다는 소리입니다 그 다음에 또 이것을 거짓겸손이다 이렇게 말했는데 우리나라 말로는 일부로 겸손함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부로 겸손함 이것은 무슨 뜻이냐면 영만 최고고 육은 악이다 그러므로 육은 마음대로 다루어도 된다, 금식자주하고 잠도 자지 말고 운동도 하지 말고 골방에 앉아서 기도만 열심히 해라 육을 쳐가지고 복종해라 이런 개념이 어떤 그룹에게는 이런 게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일부로 겸손한 것이다 이렇게 바울이 표현한 겁니다, 일부로 겸손한 겁니다, 왜냐면 바울신학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우리가 잘 아는 데살로니가전서5장23절에 바울이 그랬습니다, 
너희들이 육과 혼과 영을 잘 균형 있게 주님 오실 때까지 보호하라 그랬습니다, 그러니 영만 아니라는 겁니다, 육과 혼과 영을 균형 있게 보호하라는 겁니다, 요한도 똑같이 이런 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3서1절2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네 영혼이 잘됨같이 내가 범사가 잘되고 강권하기를 네가 강구하노라 이걸 삼박자 구원이라고 그러잖아요, 
육. 혼. 영 세 개가 다 잘되기를 간구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영지주의가 잘못된 겁니다, 바울이 이것을 설명해줍니다 그다음에 금욕주의도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2장21절에서22절에 말합니다, 
뭐냐면 이세상것은 언젠가는 다 부패하기 때문에 이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의 생각은 영적인 사람이 되려면 세상 것 다 집어던지고 세상 것은 악한 것이니까 안 그러면 세상 것을 좋아하면 이것이 영성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고 보는 그것이 소위 금욕주의입니다 그래서 2장21절에 바울이 이랬습니다, 너희들 중에 에바브라가 보고한 내용입니다, 세상 것은 붙잡지도 말고 세상 음식은 맛보지도 말고 세상 것들은 만지지도 말라고 이렇게 지금 가르친다는 겁니다, 
금욕주의사람들이 우리 교회 안에서 그러니까 세상과 관계하지 말고 세상은 다 악하다고 보는 그러니까 바울이 그건 아니다 지금 이 말을 잘 들어야 됩니다, 음식을 분명히 바울이 이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디모데전서4장3절에는 음식은 하나님이 지으신바 이기 때문에 믿는 자들은 즐기지 않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으라는 겁니다, 
음식은 다 하나님이 만든 거라는 겁니다, 
이렇게 디모데전서4장3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7정19절에 모든 음식은 다 깨끗하다는 겁니다, 
이것은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를 들어서 음식이라 그래서 지금 우리 주변에 우리 음식들이 예수님이 지금 말씀하시는 모든 음식이라는 것은 소위 가공되지 않는 소위 공해음식은 포함되지 않는 자연식의 음식들은 다 하나님이 만든 겁니다, 자연음식들은 다 하나님이 만든 겁니다, 
그런데 인간이 이런 음식들을 다 더럽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 때문에 병도 오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그래서 자연식으로 돌아가자 라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만든 음식을 먹자는 겁니다, 그런데 육이 건강해 지려면 자연 음식을 먹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질문이 있습니다, 문제는 술이나 담배 또는 마약 같은 것 이걸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성경에 보면 예수님도 포도주 알콜이 있는 포도주를 드셨습니다, 그렇지만 과도하게 드시지를 않으셨습니다, 
왜 모든 음식은 다 하나님이 허락하셨습니다, 먹으라고 그래서 포도주도 바울이 디모데보고 지병이 있으니까 포도주 좀 먹으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한두 잔 먹으면 좋은데 많이 먹으면 그게 병이 되어 버리고 더 먹으면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술 취하지 말라 그랬습니다, 그것은 음식이니까 조금 먹으면 혈액순환에도 좋고 다 좋지만 과도하게 하면 안 좋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문제 때문에 바울이 가르치는 게 있습니다, 뭘 가르치느냐면 거침돌이슈입니다, 거침돌 이 거침돌이슈를 고린도전서에서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8장에서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이 술 이야기 하는 게 아니고 우상에게 바친 음식입니다 이것을 먹을 때 그 음식은 다 먹을 수 있다는 겁니다, 우상에게 바쳤다 그래서 안 먹을 수 있지만 그것은 괜찮다는 겁니다, 먹으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걸 먹어서 마음에 뭔가 꺼림직 하면 먹지 말라는 겁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소위 믿음이 적은 자들이 그걸 먹고는 그것 때문에 믿음이 뚝 떨어져버리는 겁니다, 죄의식 때문에 밤을 지새기 도 하고 믿음이 적은 자들은 그런 걸 먹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있는 자들은 그걸 먹을 수 있지만 너 가 먹어 으로써 믿음이 없는 자들이 보고 우리교회목사님들도 그걸 잡수시는데 전도사님들도 잡수시는데 권사님 장로님들도 잡수시는데 나도 먹어도 되겠구나, 
이러고 먹다보면 문제가 생긴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있는 자들은 혹시나 한두 사람이 그것 때문에 실족하면 안 되니까 그것을 먹지 말라는 겁니다, 술 같은 것도 마찬가지고 제가 술 먹어도 된다고 그러니까  여기 물 대신에 포도주 갖다놓고 먹으면서 설교합니다, 끝난 다음에 우리 술 한 잔 합시다, 하고 다 앉아서 하면 다 좋지만 먹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두 사람이라도 우리목사님이나 장로님이나 지금 우리 권사님들은 그냥 술 좋아하는 분이구나 그렇지만 믿음이 적은 사람이 그걸 보고는 막 먹다가 나중에 취해가지고 몸을 가누지 못하다 보니까 나중에 가족 간에 문제가 생기고 직장에 문제가 생기고 이렇게 문제가 생긴다고 보는 겁니다, 절제 못하는 사람은 이렇기 때문에 기침돌이 된다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 한 사람 때문에 조심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소자를 실망하게 하거나 넘어지게 한다면 연자 맷돌을 메고 물에 빠져 죽는 게 낫다는 겁니다, 왜냐면 그 소자를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보배로운 피를 흘린 그 사람이라는 겁니다, 
내가 그 형제를 위해서 피를 흘렸는데 그 형제가 넘어지면 너 가 책임지라는 겁니다, 모든 음식은 다 먹을 수 있는데 거침돌이 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성경구절을 드릴 테니까 적어놓아 보세요, 
로마서15장15절거기 보면 만일 음식으로 인하여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내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하리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내가 식물로 망하게 하니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다음에 고린도전서8장9절에서13절입니다, 
식물로 너희 자유 함이 악한 자들에게 거침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 사람들이 멸망한다는 겁니다, 만약 형제가 실족하게 되면 나는 (바울은)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겠다는 겁니다, 
똑같은 말입니다 그다음 마태복음18장6절에서10절에 마찬가지입니다 소자를 실족케 하는 자는 연자 맷돌을 메고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는 겁니다, 이런 말씀을 주욱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금욕주의사람들은 이런 사상이 아니고 무조건 세상 이런 것들은 다 나쁘니까 먹으면 안 된다 이것 먹으면 지옥 간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 개념과는 다른 겁니다,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나는 모든 음식에 대해서 나는 자유하다 나는 다 먹을 수 있다 그렇지만 거침돌 시키지 않기 위해서 나는 절제한다, 
이렇게 바울도 말씀 하셨습니다, 금욕주의와 다르다는 말을 비교시키기 위해서 설명하는 겁니다, 이해 되셨습니까, 그다음에 천사 숭배에 대해서도 말하는 겁니다, 그것은 우상숭배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러는 겁니다, 
바울이 2장18절에서 너희들이 일부로 겸손함 다시 말하면 영지주의나 금욕주의사상을 가지고 있거나 또는 천사숭배라는 이런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 너 네들은 상급을 빼앗긴다, 그랬습니다, 2장19절에 상급을 빼앗긴다, 구원문제가 아니고 상급문제라는 겁니다, 그래서 상급을 빼앗긴다, 
라는 것은 성경에 보면 여러 군데 나옵니다, 계급이 떨어진다는 소리입니다 계시록3장11절에도 빌라델비아 교회에 너희들이 내 면류관이 빼앗기지 못하게 하라 그랬습니다, 똑같이 고린도전서3장14절15절에도 너 네들이 우상을 섬기면 상급이 빼앗긴다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상급이 빼앗겨서 그냥 불 속에서 구원받은 사람처럼 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겨우 구원만 받는 거지 상급이 빼앗긴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사람들에게 이런 모든 행위들을 보면서 이런 것들은 세상의 초등학문이다 그랬습니다, 이런 모든 이슈들은 다시 말하면 구원이 무효가 된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구약에 모든 법을 지켜야지만 구원받는다, 예수님을 인정하면서도 그런 식으로 가는 것은 구원에서 반쪽구원이지 바울이 볼 때는 그것은 다 초등학문들이라는 겁니다, 
영지주의를 강조하는 것도 초등학문이라는 겁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아니면서 이런 것들은 엑스트라로 하는 겁니다, 
천사숭배도 하면서도 또 천사까지 로마가톨릭에서도 천사한데 경배하잖아요, 그래서 천사가 여러 가지로 많잖아요, 정교회도 마찬가지고 초등학문이라는 말은 2장8절과20절에서 말씀 하셨습니다, 
이런 모든 문제들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지금 기독론입니다 다섯 번째 문제점들을 기독론을 설명하는 게 바울이 골로새서1장15절에서2장7절까지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아주 정확하게 하십니다, 
제가 간단 간단하게 이분이 뭘 말씀하시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성부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분의 형상이다 그랬습니다, 이분의 이미지다 그랬습니다, 
1장15절에서 우리 성부하나님은 볼 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1장18절 디모데전서6장16절 그다음에 성자하나님은 성부하나님이 볼 때 볼 수 있다, 요한복음6장46절에 그랬습니다, 
그다음에 바울이 계속해서 말하기를 예수님은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자다 그랬습니다, 골로새서1장15절에 먼저 나셨다는 말은 장자라는 소리입니다 장자 장자라는 뜻은 뭐냐면 장자가 상속권이 있고 가장 특권이 있는 분을 말할 때 장자라는 말을 성경에서 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창조물들을 다스리는 특권이 있는 자다, 
이런 의미에서 먼저나신자다 또는 두 번째 해석은 뭐냐면 이분은 인간으로 내려오신 자라는 그러한 뜻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다음에 또 이분이 계속해서 말하기를 예수님이 말하기를 창세전에 계신자다 골로새서1장17절에 그랬습니다, 그다음에 예수님은 창조주다, 
라는 골로새서1장15절에 그런데 이분이 또 자기 영광을 받기 위해서 창조했다는 겁니다, 1장15절에서 이분은 교회의 머리시다, 
1장18절에서 첫 번째 부활자다 또는 이분이 만물의 으뜸이다 1장18절에서 이분은 십자가에 피 흘리시고 화평케 하신 분이시다 골로새서1장20절에서 이 신비 십자가의 대속의 신비는 만세전에 예정하셨다 골로새서1장26절27절에서 이분은 완전한 인간이시다 2장9절에서 이분은 천사들의 머리이시다 2장11절에서 그리고 이분은 우리의 주시다 2장6절에서 이렇게 해서 기독론을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골로새서입니다 왜 기독론을 자세하게 설명했을까요, 비기독교적인 사건들이 이교회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기독론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이교회가 교인들이 성화되지 않았다고 그랬잖아요,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믿음이 없어 그렇다는 겁니다, 어떤 믿음이냐면 히브리서11장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는 겁니다, 
히브리서11장 믿음이 무엇인지 우리 다 알잖아요, 
그래서 이분이 3장1절에 그랬습니다, 너 네들 크리스천이지만 위에 있는 것을 찾지를 않는 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땅에 것만 찾는다는 겁니다, 
3장2절에 이 위에 것을 찾는 사람은 다시 말하면 큰.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나중에 3장4절에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공중혼인잔치에 내려 올 때 그 영광을 가지고 내려올 때 같이 내려 고겠다는 겁니다, 혼인잔치에 참여한다는 겁니다, 나중에 낙원에 있다가도 특별한 그룹이라는 겁니다, 
위에. 위에 것을 찾는 기독교인들은 이 믿음을 가진 자들이 큰. 큰 그림을 가지게 되면 이런 모든 교회 안에서의 지금 성화문제가 서서히 해결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시각의 변화를 가진 사람들은 질투심도 서서히 없어지고 미움도 서서히 없어지고 긍휼한마음을 가지게 되고 온유한 마음 용서해주는 마음 이런 것들을 서서히 가지게 된다는 겁니다, 
골로새서3장5절에서 17절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위에 것을 찾는 사람은 그러니까 문제는 뭐냐면 우리가 아무리 성화하려해도 안되는 게 왜냐면 시각이 변화지 않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위에 것을 쳐다보는 사람은 이 밑에 문제들을 서서히 녹여 넬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시각은 항상 밑으로 내려오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는 안 되지만 최소한 이 논리는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겁니다, 
그럴 때 마다 눈을 자꾸 올리는 연습 이런 걸 한 사람은 가정문제도 해결되고 직장문제도 서서히 해결되고 모든 문제는 이 문제라는 겁니다, 
눈을 올리는 것 그러니까 눈을 올리려면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서서히 눈이 올라간다는 겁니다, 이런 문제를 주욱 골로새교인들에게 풀어 나가는 겁니다, 
그러면서 골로새서는 끝날 때 몇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 사람들을 조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골로새서는 끝나면서 이제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나하고 같이 로마에 있는 형제들이 아무개. 아무개, 아무개가 너희들에게 안부를 전해달란다고 말한다, 이런 말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사람들을 보면 안부를 전해달란다 그럴 때 이 말에 무슨 뜻이 들어 있습니까, 지금 로마에 있는 바울의 제자들 몇 사람이 골로새에 편지를 쓴다니까 또 나머지 두 교회에 편지를 쓴다니까 제 이름 좀 갖다 대시고 안부 좀 전해주세요 그런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생각나는 게 이 사람들은 바울이 거기에서 교회 개척할 때 같이 교회 개척했구나, 
이분들과 교제가 있었던 분들이구나, 그런데 지금 로마에 있구나, 
이렇게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들 이름이 첫째가 아리스다고 라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이 사람을 내 동반자 되는 나의 감옥에 동반자가 된다고 그랬습니다, 감옥생활에서의 동반자라 그럽니다, 
이 아리스다고가 사도행전에 보면 이사람 이름이 세 번 나옵니다, 
19장29절,20장4절,27장2절에 그다음에 두 번째 안부 전하는 사람이 마가입니다 마가, 어떻게 마가가 바울이 지금 로마에서 연금 상태에 있는데 거기에 있느냐 이겁니다, 그러니까 마가도 이교회교인들과 아는 사이인 겁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는 예수라는 이름인데 이사람 이름이 유스도라는 사람인데 예수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사람입니다 4장11절에 이 사람도 그렇고 네 번째는 에바브라도 안부를 전한다고 그러니까 에베브로도 편지 배달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교회 옛날 사역자였습니다, 
에바브로도 안부를 전한다, 그럽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사람이 누가 있느냐면 데마도 그랬습니다, 데마가 지금 어디에 있는 겁니까, 
바울이 지금 1차 연금 상태에 계신데 이 사람은 나중에 2차 감옥에 들어갔을 때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4장10절입니다, 뭐라고 그랬냐면 데마는 우리하고 같이 다니다가 세상이 좋아서 나를 떠나서 이제는 데살로니가로 갔다 이런 말을 써놓았습니다, 그리니까 중간에 탈락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때는 지금 있는 겁니다, 그러면 글을 한번 바꾸어서 우리가 한번 마가와 바울의 관계를 한번 우리가 심도 있게 봅시다, 이런 것을 우리가 왜 보느냐면 사람들은 이런 관계고 주님은 또 이렇게 쓰시구나, 그런데 그것이 우리에게 대입이 됩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이런 걸 제시해주는 겁니다, 
제목이 마가와 바울의 관계성이 어떻게 발전 되었나입니다, 
첫째 마가는 어떤 분이냐면 바울이 주후45년에 안디옥교회 전도사로 갔잖아요, 바울을 만나기 전에 마가는 이미 43년에 알렉산드리아에 선교사로 가서 교회를 개척한 사람입니다 알렉산드리아교회를 주후 43년에 개척했다,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지금도 애굽 곱틱교회 에서는 자기네가 마가의 후손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약 300년 가까이 290년 그때에 소위 아타나시우스와 연계되지만 여기 보시면 그런 마가인데 마가는 누구의 아들입니까 다락방주인 마리아의 아들입니다 사도행전12장12절에 그런데 거기다가 골로새서4장10절에 거기에 뭐냐면 바나바의 조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러니까 골로새서가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 관계를 정리해주는 구절이 골로새서4장10절입니다, 
그런데 영어성경에는 바나바의 카전 우리와의 촌수가 서양 사람들과 촌수 부르는 방법이 다릅니다, 우리는 삼촌 사촌 이렇게 하는데 이 사람들은 세칸 카전 서어드 카전 이렇게 막 나갑니다, 
카전이라는 말이 그게 아저씨도 카전이라 부르고 여기 지금 외삼촌 아닙니까, 외삼촌인데 세칸 카전 정도로 카전이라고 영어 성경에 쓰여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혼돈스러운 겁니다, 하여튼 마리아와 바나바는 오빠와 여동생 사이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다음에 바울과 바나바가 45년에 안디옥 교회를 같이 동역할 때 바울이 45년에 안디옥교회에 도착하였잖아요,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무슨 소식이 있었냐면 예루살렘교회가 기근이 생겨서 어려움이 있다고 그래서 안디옥교회에서 헌금을 들고 예루살렘교회로 내려갔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내려갔습니다, 내려가서 헌금 드리고는 올라 올 때 안디옥으로 다시 올라 올 때 마가를 데리고 올라왔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를 마가가 안디옥에 오게 된 것이 이렇게 해서 오게 된 겁니다 사도행전12장25절에 마가가 공식적으로 선교대열에 들어가는 그전에도 자기가 개인적으로 애굽에 갔었지만 그래가지고 1차 선교여행 떠날 때 46년 중간에 가다가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라는 데서 마가가 어머니 생각이 났는지 하여튼 어쩐지 가겠다고 해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사건이 사도행전13장13절에 이때부터 바울이 마가를 삐딱하게 본 겁니다 그때부터 그러다가 2차 여행을 준비할 때 50년입니다 바울이 나 마가는 안 데리고 간다 그리고는 바울이 대신 실라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래가지고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가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서 지금 바울의 선교여행을 쭉 갔고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서 구보로로 갔다 그랬습니다, 그리고는 소식이 없었습니다, 
사도행전15장36절에서39절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도행전은 그 후에는 마가의 이야기가 안 나옵니다, 왜냐면 마가는 어디로 갔을까 이제 사도행전에는 안 나오지만 마가는 베드로와 같이 다녔을 겁니다, 그럼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만 가만히 앉아 계실 설까, 아닙니다, 
그분은 교회가 다 흩트려 졌기 때문에 이분이 계속해서 터키지방과 그리스지방과 로마까지 이렇게 베드로도 다녔습니다, 다녔지만 교회 개척하려 다닌 것은 아니고 이미 개척된 교회에 가서 자기 제자들에게 격려해주면서 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럴 때 마가가 아마 같이 다녔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와 같이 그래서 베드로가 마가를 내 아들이라 그랬습니다, 
베드로전서5장13절에 보면 그래서 베드로가 베드로전서를 쓸 때 보면 64년이거든요 64년이니까 베드로가 65년에 순교 당했거든요, 
64년에 베드로 전 후서를 쓰면서 어디다 섰냐면 수신자를 보면 베드로의 제자들이 있는데 보니까 바울이 다 지나간 동네들입니다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 여기에 흩트려져 있는 베드로의 제자들에게 옛 예루살렘교회의 교인들 이분들에게 편지 쓴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베드로가 베드로전서를 쓸 때 이렇게 보면 나중에 여러분들 보시길 바랍니다, 베드로가 무엇이라고 썼느냐면 베드로전서 제일 마지막에 5장에 그랬습니다, 내가 바벨론에서 이 편지를 쓴다고 그랬습니다, 
바벨론에서 도대체 바벨론은 또 어디냐 이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거든요 그래서 우리 성서신학자들이 이 바벨론은 로마로 보는 겁니다, 
로마로 로마를 바벨론으로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편지를 쓸 때 거기 보면 베드로는 그리스말을 쓸 줄을 모르기 때문에 대필을 누가 해주었냐면 마가가 해주었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마가가 64년에 베드로 전 후서를 쓸 때 마가가 대필해주었다는 겁니다, 
내 아들 마가 그럽니다, 베드로전서5장14절에 그러면서 그걸 대필하면서 우리가 추측하기를 마가가 로마에서 베드로 전 후서를 쓰시고는 마가복음을 썼다 이렇게 추측하는 겁니다, 마가가  아 당시만 하여도 64년에는 네로가 로마도시를 화재를 일으켰던 해입니다 그래가지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것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불살랐다고 해서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받아서 영화에서 사자에게 물리는 사건들 그게 이때 사건입니다 그 일로 인해서 65년에 베드로가 순교 당했습니다, 이런 모든 과정들을 보면서 베드로전서5장12절에 보면 갑자기 실라가도 베드로와 같이 있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실라는 바울을 따라 다녔는데 갑자기 이제 베드로 쪽으로 붙었던  겁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실라 이야기를 조금 해 드리겠습니다, 실라는 예루살렘총회이후에 바나바와 바울을 따라서 안디옥으로 간 사람입니다 사도행전15장22절에서32절에 그리고는 2차 여행 때 바울을 따라 다녔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1차 여행 끝나고 2차 여행 중간에 데살로니가 전 후서를 쓸 때 51년에 데살로니가 전 후서를 쓸 때 보면 실라도 바울이 쓸 때 바울과 실라과 이러면서 실라도 같이 거기 있을 때 동역한 게 나옵니다, 실라가 바울의 오른팔이었던 것이 보입니다, 
그러다가 실라 이야기가 싹 성경에서 없어져 버립니다, 
그러다가 지금 보면 베드로전서5장12절에 보면 베드로가 쓴 글에서 마가와 실라가 같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마가가 베드로와 같이 다니다가 지금 보니까 바울이 지금 골로새서를 쓰고 계실 때 마가가 바울 옆에 있었음을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골로새교인들에게 마가도 안부 전한다, 그러는 겁니다, 주후60년61년에 이걸 쓸 때 마가가 로마에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54년에 베드로가 로마에서 베드로 전 후서를 쓸 때도 보니까 그 편지는 마가가 대필해준 겁니다, 그래서 마가가 주로 어디에 가 계신 겁니까, 로마에 주로 계신 계셨던 것이 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측하는 겁니다, 베드로선생도 로마에 계시고 바울이 지금 골로새서를 쓰실 때 베드로선생도 거기에 계시지 않았나, 
이렇게 추측할 수 있고 그리고 바울선생도 거기에 계셨고 마가도 거기에 계셨고 그런데 왜 성경에는 로마에서 베드로와 바울이 두 분이 교제했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는 겁니다, 점점 복잡해집니다, 
복잡하지만 그림을 그려보세요, 도대체 두 분이 교제하였다는 이야기는 없는 겁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바울과 마가는 관계성이 회복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언제 볼 수 있냐면 바울이 순교직전에 디모데후서를 쓰실 때 제일 마지막에 뭐라고 했습니까, 마가를 꼭 데리고 오하는 겁니다, 
디모데후서4장11절에 그러면서 그랬습니다, 어디로 데리고 오라는 겁니까, 로마로 데리고 오라는 겁니다, 왜냐면 바울이 지금 로마에 계시니까 그런데 누구한데 이 편지를 썼습니까, 디모데에게 쓴 겁니다, 
디모데는 그때 어디에 있었습니까, 에베소에서 목회하고 계실 때입니다 그럴 때 보면 마가가 그 당시에 어디에 계셨다는 겁니까, 
에베소에 계셨던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도 팔방미인입니다 그 먼 길을 우리가 이런 것을 보면서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교지에 여기저기 열심히 다녀야 됩니다, 이 당시에 이 사람들이 이렇게 다닌 겁니다, 
그러면서 디모데야 너 에베소에서 나 있는 로마로 와라 그럴 때 마가도 데리고 와라 왜냐면 내 사역에 아주 소중한 형제다 그런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관계성이 분명히 회복된 겁니다, 그런데 바울과 베드로의 관계성이 회복 되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그런 기록이 성경에는 안 보입니다 그분들의 밑에 있는 제자들끼리는 서로 교류했는데 이 두 어른이 둘이서 서로 같이 사역을 했다든가 이런 게 안 보입니다, 
이게 우리에게는 상당한 큰 의문점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가지고 저도 주님에게 주님 이게 왜 이렇습니까, 
천국에 가도 이 두 분은 서로 이야기도 안 하는 겁니까, 
이런 농담 섞인 의문도 가지게 되는 겁니다, 왜 바울과 베드로가 동역하지 못하는가, 이 논리가 2000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 계속 있어 왔습니다, 
지도자들 사이에서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제가 볼 때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동역하지 못하게 하셨던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그 이유는 뭔가 서로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피조물들의 한계점입니다, 
교육수준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바울은 디아스포라출신이고 베드로는 본토유대인이고 사회적인 배경이 다르고 가정배경이 다르고 정치적인 이념도 달랐습니다, 두 번째는 두 분의 성품은 비슷했습니다, 서로가 다 강성입니다 목표 지향적입니다, 직선적인 성품들입니다 둘 다 부딪치게 되어 있는 겁니다, 또 세 번째는 은사가 다릅니다, 두 분 다 리드들인데 리드 쉼 은사가 있지만 다른 리드 쉼 은사입니다 바울은 아카데미 화한사람입니다, 
또 가르치기를 잘합니다, 훈련 잘 시키고 그리고는 교회개척도 잘합니다, 
미 전도족속복음화에도 실제로 이분은 나가서 같이 뜁니다, 
그래서 이분은 항상 복음의 진보라고 빌립보에 썼잖아요, 
나무를 자르면서 길을 만들면서 간다, 이런 의미로서 개척정신이 있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남이 안하는 것을 자기가 먼저 가서 개척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런 스타일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 큰 리드지만 소위 남이 해놓은 것들이나 바울처럼 일일이 다 하는 것이 아니고 이 사람은 그냥 큰 리드 상징적인 리드 같습니다, 
그래가지고 그냥 방문해서 이 사람은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의 등을 두드려주고 격려해주고 상징적인 그냥 하나의 리드입니다, 
이런 사람도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그냥 한 시간 동안 설교 그냥 한번 해주고 너희들 힘내라 너희들 힘내라 그 말 한마디만 해주어도 그냥 은혜를 받는 그러면서 이분은 분명히 다니면서 처음에는 바울과 관계가 서먹했지만 바울의 가르침에 대해서 이분이 그냥 잘 가르친다, 
그분의 가르침을 반대하지 않고 너희들 거룩하게 살아라, 
예수님 중심적으로 살아라, 이렇게 큰 그림을 생각하는 큰 그림을 그려주면서 다녔던 지도자라고 저는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두 분이 서로가 상호보완관계가 간접적으로 있어오지 않았나, 주님이 이렇게 만드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둘이 가까이 있으면 둘이 싸우는 겁니다, 개와 고양이처럼 떨어뜨려놓으면 서로 멀리서 같이 보완시켜주는 바울과 베드로의 모델이 기독교에 지도자들 사이에서 항상 있습니다, 
그런데 또 의문점이 하나 들어오는 게 있습니다, 베드로가 65년에 순교 당했다면 그것이 진짜라면 바울이 65년에 디도서를 썼거든요 디도서 그리고 67년경에 디모데후서를 썼는데 그 두 편지 속에서 이 대 지도자가 주님나라로 갔으면 한마디라도 좀 언급을 하면서 그분 훌륭한 분이였다, 
우리도 조금 있으면 그분 가서 만날 거야, 한마디라도 써야 하잖아요, 
한마디도 없는 겁니다, 바울의 편지 속에 그것 보면 바울도 어떤 때 보면 콩알만 한 마음이 아닌가, 라고도 볼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 자기가 좀 싫은 사람이라 그래서 완전히 그냥 사랑은 모든 것을 믿음은 모든 것을 참으며하고 자기가 말해놓고는 이것을 자기가 실천을 못하는 이게 또 사람인 겁니다, 바울도 사랑장 보면 기가 막히잖아요, 그런 삶을 안 산 게 많습니다, 이것도 하나의 수수께끼입니다 우리가 주님 나라에 올라가서 이 두 분에게 한번 물어 봐야겠습니다, 
당신들 왜 서로가 격려해주는 말 한마디도 서로 안했느냐 베드로도 베드로 전 후서를 보면 바울에 대해서 한마디도 언급도 안했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고생한 사람을 놓고 64년에 썼으면 바울이 얼마나 고생한 후입니까 그래도 한마디도 쓰지를 않았습니다, 마지막 결론부분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결론이기 때문에 잘 정리하기 바랍니다, 
이 세교회가 지금 히에라볼리 라오디게아 골로새 이 세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이 뭐였냐면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이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지 않는 부분 이것이 특히 전신갑주의 진리의 띠 진리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기독론입니다 이것을 단단히 띠지 않기 때문에 헐렁. 헐렁하면서 치마가 내려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교회들이 많이 있는 것을 주님께서 아시아 일곱 교회를 이렇게 보여 주면서 요한에게 설명한 겁니다, 
앞으로2000년 기독교교회 안에서 이런 일들이 있을 것을 미리 다 예정하시고 보여 준 겁니다, 그게 아시아의 일곱 교회입니다, 
일곱 교회 모습을 보면서 이게 딱 보면 일곱 교회 중에서 다섯 교회는 이 부분이 약했던 것을 보여 줍니다 그다음에 두 교회는 강했습니다, 
강한 두 교회는 서머나 교회는 핍박을 받아 왔고 궁핍하고 가난했다 그래서 어려운 교회입니다 계시록2장8절에서11절에 그다음에 빌라델비아 교회는 3장7절에서13절에 말씀하시기를 조그만 교회라 그랬습니다, 
적은 능력을 가진 그리고는 이 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 다시 이 말은 기독론이 강했다 이 교회가 약했던 다섯 교회들은 에베소교회는 기독론이 약했던 것을 지난 시간에 봤습니다, 
그래서 촛대를 옮긴다고 그랬습니다,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라오게아 특히 라오디게아 교회는 뭡니까 이 골로새 교회를 지칭 하는 겁니다, 
그렇죠, 라오디게아교회는 골로새교회 또는 히에라볼리 교회를 통전 적으로 지칭하는 게 라오디게아교회입니다 라오디게아교회를 주님이 지금 이 편지를 골로새서를 쓰시고서는 35년 후에 라오디게아교회 문제를 라오디게아교회 모습을 딱 보여 주시는 겁니다, 35년 후에 그래서 라오디게아교회가 어떻게 발전 되었는가 35년 후에 우리 지난 시간에 에베소교회를 봤잖아요, 똑같이 35년 후에 이 라오디게아교회가 다시 말하면 골로새교회가 어떻게 변질되었느냐 기독론과 삼위일체론과 전신갑주를 입지 않으면 어떻게 변질되는가를 보여 주는 겁니다, 보면 예수님이 자기가 누구다 발신자를 아주 설명하는데서 보면 그분의 이름 속에서 이미 그것이 보여 집니다 3장14절에 나는 아멘이다. 아멘이다, 라는 말은 진리라는 소리입니다 아멘이시고 충성되고 참 된 진리라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의 근본이신이가 가라사대 창조의 근본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진리대시는 그래서 진리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진리가 진리의 띠가 허수 록 하면 교회를 향해서 진리의 주체되는 내가 말한다, 그런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진리의 주체되는 진리의 띠가 약한 교회야 진리의 주체가 말한다, 기독론이 약한 교회야 그런 소리냐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서 너 네들은 3장15절16절에 보면 너희들은 차지도 않다는 겁니다, 차지는 않다는 소리가 뭡니까 기독론을 완전히 부인하거나 기독론의 필요성을 배격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교회가 예수님에 대해서 적당히 그냥 알고 있는데 그래서 덥지도 않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론을 뜨겁게 활용하거나 전신갑주를 아주 탄탄히 입었거나 기독론을 배우기를 뜨겁게 원하거나 이것도 안 한다는 겁니다, 이교회가 미지근하다는 겁니다, 
별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그냥 대강 그냥 예수님이 날 위하여 죽었지요, 대강 그냥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지 깊이 들어 갈려는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더 가르쳐달라고 애원하지도 않고 그러면서 그냥 기독교는 예수 믿으면 복 받고 예수 믿으면 우리 성공하고 이 세상에서 성공이나 이 세상에 행복 이런 것만 그냥 추구하는 미지근한 저 세상을 보지 못하는 이런 교회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나 토해버리겠다 그러는 겁니다, 
오늘날도 이런 교회 많습니다, 그러면 그러는 겁니다, 
내가 너 네들 딱 보니까 너 네들이 자화상이 스스로 보는 너희들이 자화상이 있는데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뭐냐면 내가 보니까 너희들이 가련하다는 겁니다, 가난하다는 겁니다, 눈멀었고 발가벗었다는 겁니다, 
영적으로 3장17절에 그랬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너 네들이 자화상이 그런데 너 네들은 뭐라고 그러느냐면 우리는 부자다 그러는 겁니다, 우리는 부요합니다,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한다는 겁니다, 
이교회가 그러면서 그걸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접해보면 그러는 겁니다, 
우리교회 유고한 역사를 가진 교회입니다 우리교회 당회장도 유명하신 분이고 어디서 박사학위 받고 이전 목사님도 그렇고 우리교회는 유명한 목사님 많습니다, 유명한 신학자들 우리 교단 안에 많고 우리교회에도 많고 전통 있는 교단이고 건물도 보세요, 얼마냐 큽니까, 주일학교프로그램보세요 그리고 전도도 많이 합니다, 우리는 선교도 많이 하고 누가 봐도 성공한 교회입니다 부요한 교회입니다 은혜 서러운 교회입니다, 이걸 제삼자가 인정하지 않습니까,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교인들 들여다보면 기독론 잘 모르고 삼위일체론 잘 모르고 예수님의 완전한 전신갑주도 입지도 않는 사람이 그 교회에 많은 겁니다, 겉모습은 있는데 심지어 이런 교회를 보면 타 지역사람들이 이렇게 보면 저 교회 성공한 교회입니다 저 교회 목사님 성공했습니다, 
저 교회 교인들 다 유명하고 엘리트들입니다
무실론 자들도 그런 교회 보면 저 교회는 성공한교회입니다 안티기독교를 말하는 사람들도 저 교회 보면 다 성공한 교회라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볼 때는 가련하다는 겁니다, 공고하다는 겁니다, 
가난하다는 겁니다, 눈이 멀었다 그러는 겁니다, 왜 그럽니까, 
그런 교회가 분명히 많다는 겁니다, 문제는 뭐냐면 기독론에 대해서 기독론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정체성. 예수님이창조주 되심. 삼위일체하나님. 
예수님의 신성. 예수님의 부활. 예수님의 재림 그분이 심판 주되시고 이런 걸 철저하게 무장해야 되는데 그게 안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18절에 보면 예수님이 경고하시는 겁니다, 너 네들 볼로 연단하는 순금을 사가지고 부요하게 되라는 겁니다, 금은 예수님입니다 순수한 예수님 기독론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입니다 그래서 흰옷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보혈로 씻김을 받은 옷입니다 보혈의 씻기심을 받은 겁니다, 
구원의 옷입니다 가죽치마 기억나세요, 발가벗은 수치는 범죄 한 아담의 모습이 아닙니까, 창세기3장10절에 그러니까 이 사람이 벌거벗고 있다는 겁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안약을 사서 약을 발라라는 겁니다, 
영의 눈이 가려워져 있다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내가 볼 찌어다 문밖에서 내가 문을 두드리오니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교인들이 밖에 계신 겁니다, 이교회 안에 예수님이 안 계신 겁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크리스천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회개하라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열심을 내라 19절에 그랬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론공부 열심히 해라 예수님의정체성공부해라 전신갑주입어라 문 닫혔으면 문을 두드리면서 이것해라. 이것해라 그러면서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영적싸움인데 이것을 극복하는 자는 쉽지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들 속에 들어와서 너희들과 함께 먹고 너희들도 나와 함께 먹고 이걸 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19절에 그랬습니다, 이런 교회 안에 예수님이 사랑하는 자들이 들어 있다는 겁니다, 이런 교회 안에 다가 아니고 소수 사랑하는 자들이 있다는 겁니다, 이 사람들을 주님이 끌어내는데 이 사람들을 끌어내어가지고 이 사람들을 예수님의 기독론과 전신갑주를 입게 하시면서 이 사람들을 예수님의 보좌와 함께 앉게 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귀 있는 자들은 이 소수에게 하는 말을 들어라 이런 말씀은 라오디게아교회에게 하신 겁니다, 그런데 지금 골로새교회가 기독론 쪽에서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교회가 변질되어가지고 이런 모습까지 되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도 이제 이런 교회들이 스타일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왜냐하면 일곱 교회는 신학자들이 그럽니다, 
어느 세대나 이 일곱 교회스타일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세대주의 신학자들은 그걸 그렇게 안보고 일곱 교회가 세대별로. 세대별로 이렇게 있어도 라오디게아교회는 말세 때 교회라고 이렇게 보는 그런 식으로 봅니다, 세대주의에서는 그런데 저는 거기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습니다, 어느 때나 일곱 가지 스타일의교회가 있다고 보는 겁니다, 
문제는 딱 하나입니다 일곱 교회 중에서 두 교회는 기독론이 강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기독론이 강해야 됩니다, 지금 마지막 때 조짐 중에 하나가 기독론이 약해지면서 종교다원주의로 흘려가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예언 하신 겁니다, 마태복음24장에서 이와 같이 이미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때는 교회가 기독론이 약해지면서 다원주의 화 되는 이렇게 될 터인데 이것은 이미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고 유럽은 지금 전체 인구가 다 기독교인이다, 라고 말하더라도 그중에 1%2%만 기독론에 강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 외에는 구원이 없다 예수님에 대한 철저하게 구원적인 측면에서나 창조적인 측면에서나 예수님의 삼위일체예수님을 강조하는 분들이 1-2%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지금 많은 나라 중에 미국이 가장 기독교인도 많지만 복음주의기독교인이 가장 많은 나라가 미국입니다 기독교인 전체에서 약18-20%정도가 복음주의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론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정통 기독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미국도 계속해서 이 다원주의사상이 신학교 안에 들어가서 미국을 지금 급하게 다원주의 화 시키고 진보주의 화 시키면서 기독론을 약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미국선거를 이렇게 보면서 그대로 제가 제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오바마를 보세요, 오바마는 명색이 기독교인이라 그러지만 그 사람은 종교다원주의 믿는 기독교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은 누구나 다 받는다고 보는 겁니다, 
종교와 관계없이 이분은 심지어 동성연애 하는 사람들도 다 구원받는 다고 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동성연애를 인정하고 동성연애에 대해서 전혀 이상이 없습니다, 결혼까지도 동성결혼까지도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낙태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까 이분이 자기는 기독교인이라 하지만 알고 보면 일반사람들이 생각하는 기독교인이지 성경적인 기독교인은 아닌 겁니다, 이런 사람을 상대로 해서지금 보수 쪽인 공화당이 대통령을 뽑는데 신기하게도 미국은 몰몬교 사람을 대통령후보로 뽑았습니다, 
이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겁니다, 제가 미국에서40년 산 사람이기 때문에 이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겁니다, 개신교나라가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나라가 난리가 났습니다, 처음으로 비개신교 로마 가톨릭신자가 대통령이 된 겁니다 케네디가 그전에는 다 개신교였는데 이제 와서는 보세요, 
롬니는 몰몬교인데 몰몬교는 완전히 이단종교입니다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몰몬교는 성경도 따로 있고 예수님 말은 예수님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예수님이 아닙니다, 몰몬이라는  그 양반이 자기가 직접 메시지를 받았다고 그래서 글을 쓴 것이 몰몬교이거든요 그런데 몰몬은 보수그룹들입니다 아이도 많이 낳고 부인도 여러 명 가질 수 있습니다 미국이 그런 나라인데도 몰몬교 사람들은 부인을 많이 가질 수 있습니다 이주 묘한 교단인데 그 몰몬을 섬기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개신교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이단이라고 그러고 마귀의 자식이라고 그래서 자 쫓아내어가지고 유타주에 가서 거기 머물려거든요, 핍박을 받고 많은 사람들은 다른 나라로 쫓겨나가고 다시 올라온 페밀리들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미국의 기독교인들이 볼 때는 오바마나 롬니나 둘 다 기독교인으로 보는 겁니다, 
왜냐면 종교다원주의 개념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이러나. 저러나 다 기독교인으로 보는 겁니다, 이번에 놀라운 사실은 소위 복음주의로 복음주의라 그러면 전체 미국기독교인의 약20% 정도 되는 이 사람들이 롬니를 보는 눈에 시각이 변했다는 겁니다, 
이 사람들이 롬니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면 몰몬교지만 그래도 보수다 그래가지고 기독교인들이 많이 나온 겁니다, 그래서 데이트를 보니까 롬니를 못 찍는 이유가 복음주의 사람사이에서 롬니는 절대로 안 된다,
왜 몰몬이기 때문에 안 된다, 라고 믿는 사람이 복음주의 안에서 10% 밖에 안 되는 겁니다, 복음주의크리스천 안에서 10%만 롬니는 전대로 대통령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왜냐면 몰몬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겁니다, 
저도 그 그룹 속에 들어갑니다, 기권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사람 찍어주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미국에도 복음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겁니다, 
미국도 다시 말하면 종교다원주의로 가고 있는 겁니다, 
복음주의 안에서도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 겁니다, 
놀라운 일인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지금 WCC이걸 복음주의 안에서도 WCC를 동조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지고 있습니다, 
목사님들도 더 놀라운 것은 이번에 롬니가 빌리그레함 목사님을 찾아간 겁니다, 그 사람이 93세 정도 되었는데 빌리그레함 목사님을 찾아가서 인사드리고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러니까 빌리그레함 목사가 도와주겠다고 그리고는 그분이 발표한 내용을 보면 몰몬교는 이단이 아니다, 
라고 발표한 겁니다, 빌리그레함 목사도 나이가 들어가지고 머리가 핑 돌아간 모양입니다 복음주의 대표되는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빌리그레함 목사도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 반대하는 소위 복음주의 사람들 10%의 사람들만 앙앙 소리 지르지 나머지 대부분의 교인들은 보수라는 복음주의 사람들도 그럴 수 있죠 하고 이제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세상이 지금 급변하고 있는 겁니다, 종교다원주의로 미국이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어떻겠습니까, 제가 볼 때는 우리나라도 지금 급변하고 있는 겁니다, 마태복음24장10절에 보면 너희들 마지막징조 중에 하나가 내 이름 때문에 너희들은 만민에게서 어떻게 됩니까, 미움을 받으리라 핍박을 받으리라 죽임까지 가리라 이것이 마지막 때 징조라는 겁니다, 
지금 세상은 급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이런 사상이 급변하게 될 겁니다, 지금 우리가 이럴 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3세계에 우리가 섬기고 여행 다니는 제3세계는 아직도 그 물이 적게 들어가 있는 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왜 선교하는지 아세요, 
제3세계에 지도자들이나 거기에 있는 크리스천들을 이 물이 덜지 않게 가르쳐주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겁니다, 그렇지만 물 덜 것입니다 왜냐면 주님이 예언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갈 것입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그렇지 않게 되도록 노력하는 그 모습을 주님이보시고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저도 이번에 인도네시아 가서도 똑같습니다, 똑같은 이야기할 겁니다, 
지도자들에게 세상은 지금 이렇게 가고 있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뭐로 무장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되는 겁니다, 
이걸로 무장하지 않으면 골로새교회처럼 되어버리는 겁니다, 
그것이 라오디게아교회가 된 겁니다 앞으로 그런 일들이 점점 더 일어날 것을 예언하시면서 우리는 열심히 기독론을 예수님정체성을 그분을 향한 모든 메시지들을 열심히 전해야 되는 겁니다, 각오가 되었습니까,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이런 모든 상항들이 일어날 것을 예수님께서 이미 다 예언하셨는데 우리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바울도 이런 부분을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미스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이런 미스터리 속에서 저희들이 살고 있습니다, 
왜 이런 모든 과정을 겪어야 됩니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 기억납니다, 
마태복음24장에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애기를 낳기 전에 와야 하는 진통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 전에 반가운 소식이 올 터인데 이 진통을 겪어야지만 주님이 나타나신다고 하셨습니다, 
왜 이 진통을 겪어야 됩니까, 주님께서 아담이 타락한 후에 인간에게 경험해야 하는 이 애기 낳는 진통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타락의 그러한 소산으로 이 피조물들이 진통을 겪어야지만 예수님이 반가운 메시지를 가지고 오신다고 했기에 우리가 이 진통 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밖에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저희들에게 이 이해력을 넓혀 주셔서 우리가 이 세상사는 이 세상 이 마지막 때 이 세상사는 우리가 이 지혜를 가지고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이 세상 삶을 살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1tZBpCVZ-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