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패러독스(paradox)시리즈 (역설의 진리)
2강. 예수님이 왜 핍박을 받으셔야했는가?(눅14:26-27)2011년12월16일
제가 얼마 전에 어떤 한분을 만나 뵈었는데 이분이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인데 이런 질문을 저에게 합니다. 무슨 질문이냐면 다 같은 질문들인데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왜 인간을 구원할 때 구원하는 방법을 십자가라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을 쓰지를 안했을까요? 이렇게 물어보는 겁니다.
왜 하나님이신데 고통도 받고 핍박도 받고 가난해지고 사람들에게 배척도 당하시고 심지어는 조롱도 당하시고 죄인들처럼 십자가에서 강도와 같이 죽임을 당해야만 됩니까? 이걸 저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런 질문을 여러분스스로도 조용히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아직 정돈이 안 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런 부분을 서로가 나누면서 왜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는가? 같이 상고했으면 좋겠습니다. 인간구원을 위해서 이런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요? 의문입니다. 꼭 이렇게 했어야만 되느냐 입니다. 이것이 우리기독교의 패러독스(paradox)중에 하나입니다
제가 이번에 기독교의 패러독스(paradox)에 관한말씀을 드리지 않습니까?
패러독스(paradox)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역설이란 말인데 모순인 것 같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것이 정설이다 이런 말을 패러독스(paradox)라 그럽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위해서 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 이렇게 아들이 편하게 왕처럼 아니면 존경받는 모습으로 보내지 않으시려고 하나님이 결정을 하셨습니다. 인간들에게 보내실 때 그래가지고 우리가 잘 아는 창세기3장15절에 여자의 후손으로 내려오신다는 말을 우리가 수많이 들었습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내려오신다. 하면서 내용을 보면 고통을 받으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을 그기에 보여 주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시면서 그때부터시작해서 계속해서 구약 전체를 보면 동물을 잡아서 제사지내는 방법을 계속해서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나중에 제사지내는 것이 천막에서 하다가 성전으로 오고 성전자체가 예수님의 모습이라 그러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서 계속해서 구약전체에서 예수그리스도가 고통을 받으면서 오신다는 그러한 내용을 구약전체에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이 사랑하셨던 선지자들에게 이 예수가고통의 종으로 오실 것을 이분저분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연히 나타나신 게 아니고 아주 계획적으로 고통 받으신 분으로 오신다고 계속해서 말씀하시면서 그중에 대표적인 몇 분의 이야기를 해드리려고 그럽니다. 대표적인 분이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오시기 몇 년 전 분입니까? 700년 전 분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이사야야! 소위 구세주가 오실 터인데 그 구세주가 어떻게 오시냐면 이사야서53장3절 말씀대로 동족인 유대인에게 엄청난 배척을 당할 거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구세주가 인간으로 오시는데 배척을 당하는 사람으로 그분이 취급을 당할 거라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뭐냐면 그는 멸시를 받아서 많은 유대인들이 그분들 다 싫어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간고(슬픔)를 많이 겪는다는 겁니다.
질고(고통)를 많이 당한다는 겁니다. 고통을 많이 당하고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면서 사람들이 그분을 볼 때 귀히 여기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이런 모습으로 예수님이 오신다는 겁니다. 이 모습으로 오신다고 말씀하신 분이 삼위일체론에 의하면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선지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이런 말을 한 겁니까? 예수님자신이 이사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런 식으로 올 것이다 그리고 이분이 실제로 오셔가지고 어떻게 했습니까?
요한복음1장11절에 요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분이 자기 땅에 왔는데 자기 백성들이 이분을 영접하지 아니했다는 겁니다. 요한복음5장43절에 본인이 직접 하신 말씀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들이 영접하지만 나를 너희들이 영접 아니 한다는 겁니다. 왜냐면 이미 구약에서 말씀하신 것을 지금 이루시는 겁니다. 누가복음4장29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갔는데 예수님을 동네 밖으로 쫓아내었습니다. 그래가지고 예수님을 어디까지 밀어 내었냐면 동네 밖에 산이 있는데 산 밑에 낭떠러지에 밀쳐서 떨어뜨리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그걸 보고는 피해서 딴 데로 가셨다 그랬습니다. 누가복음4장29절에 이 사람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하시면서 누가복음17장25절에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자신이 먼저 많은 고난을 받게 될 것이고 이 세대에 내가 버림받은바 되어야 할지니라. 자기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꼭 받아야 되고 그다음에 사람들에게 버림을 꼭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왜냐면 이분이 구약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렇게 말했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계획이 그렇다는 겁니다. 또 하나님의 계획을 보면 다윗에게 말씀하신 게 있습니다. 시편41편9절에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다윗이 자기 모습을 보면서 환상으로 보면서 다윗의 모습이 신약에 와서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시를 쓸 때 자기모습으로 환상이 보이는 겁니다.
이게 다윗이 예수님의 표상인데 그래서 그랬습니다.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자기 발꿈치를 들고서 자기를 대적한다는 겁니다.
다윗이 보니까 자기모습인데 이분은 그 모습이 예수님인지 몰랐잖아요.
그런데 보니까 자기와 가까운 한 양반이 자기를 대적하고는 나중에 발굼치를 들고는 자기를 공격한다는 겁니다. 이 사건이 누구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까? 가룟유다를 통해서 이루어진 겁니다. 그러면서 가룟유다를 통해서 이루어질 때 이 말씀이 꼭 이루어져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가룟유다가 배반한 사건 마가복음14장10절에 그럽니다.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11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그러니까 예수님은 지금 이렇게 핍박을 당하면서도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룟유다가 재정 부장이었잖아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배반을 당하는 경험을 하셔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실 것을 다윗에게 주전1000년에 가르쳐주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되실 거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스가랴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약600년500년 된 분인데 이분에게 뭐냐면 하나님의 아들이 은30냥에 팔릴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스가랴서11장12절에 그런데 정확하게 마태복음26장15절에 예수님이 은30냥에 팔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가룟유다 대제사장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들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를 주겠느냐 그 대제사장들이 은30냥을 달아서 던져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스가랴에게 예언했던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겁니다. 은30냥이 조그만 동물가격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그렇게 낮은 가격으로 본다는 겁니다.
아주 낮게 이런 이야기가 성경 여러 군데에 있습니다.
다윗에게 또 말씀하시기를 시편27편12절에 그랬습니다.
구세주예수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위정자들이 많이 나온다는 겁니다. 거짓말로 증거 하는 자들이 많이 나와 가지고 악을 토해낸다고 그랬습니다.
불의한 증인들이 많이 나오는데 예수님이 실제로 불의한 증인들에게서 많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마태복음26장60절61절에 보면 거짓증인들이 많이 나와서 예수에 대해서 거짓으로 말하면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고 나중에 가서는 예수님이 죄가 없는 것을 깨닫고 그러데 이 사람이 거짓말한 것이 또 하나있습니다. 하면서 이분이 성전을 헐라 그러면서 3일 안에 다시 짓겠다고 했는데 이분이 그런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까지 말 덤벼드는 겁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여러 모로 사람들 앞에서 상처를 받고 인격적으로 모독을 당하고 예수님이 이렇게 하신다는 겁니다. 또 이사야서에 그랬습니다.
아사여서53장7절에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고통을 당할 때 침목하고 말을 안 한다 그랬습니다. 사람들에게 고통을 당할 때 그래서 이사야서53장7절에 예수님이 어떤 모습으로 계실까?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는 겁니다.
시편38편13절14절에도 똑같이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못 듣는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말 못하는 자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14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내 입에는 반박할 말이 없나이다.
이런 식으로 다윗자신이 공격을 받는데 가만히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실제로 그랬습니다. 공격당할 때 말을 안했습니다.
가만히 계셨습니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면 수염을 뽑히고 나의 뺨을 맡기며 침 뱉음을 받겠다고 이사야에게 50장6절에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신약에 와서 예수님의 삶 속에서 이 말씀하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설명하는 겁니다. 마가복음14장65절에 그랬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이럴 때도 예수님이 가만히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유 없이 미워함을 많은 사람들에게 당했습니다. 그래서 시편69편4절에 다윗에게 보여준 게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미워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성육신해서 인간으로 오실 때 보면 요한복음15장23절에 그랬습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가 엄청나게 많다는 겁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어려움을 많이 당하시면서 이분이 나중에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마태복음8장20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지금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오셔가지고 어떤 대접을 받을 것을 말씀하시는데 이것을 이미 선지자들에게 다 말씀하셨다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말씀하신 것이 그대로 현실 속에서 하나하나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이사야에게 다시 말한 게 있습니다.
이분이 죄인들과 한께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다는 겁니다.
이사야서53장12절에 그랬습니다.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이분이 십자가에 매달려 강도를 위해서 기도했잖아요? 이걸 이사야에게 다 보여주신 겁니다.
이걸 그대로 하신 겁니다. 마태복음27장38절에 하신 말씀을 그대로 이루신 겁니다. 이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그런데 한강도가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나를 낙원에 가게 해주세요. 하니까 주님께서 너는 나와 같이 간다고 그랬잖아요.
이게 그냥 우연히 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 계획하신 겁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주욱 보면서 이 모든 사건들을 이렇게 보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부분을 제가 섭력해봤는데 이런 것들이 십자가를 지실 때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십자가속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는가?
오늘 제목이 왜 예수님이 왜 핍박을 받으셔야했는가? 왜 이렇게 꼭 하셔야만 하는가? 제가 다시 한 번 정리해보면 예수님의 삶의 모습을 우리가 십자가를 통해서 볼 수 있는데 첫째 예수님의 삶의 모습에서 자기 민족에게 배척을 당하셨습니다. 이분을 사람들이 싫어했습니다. 멸시 했고 또 이분이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간고를 겪었고 그다음에 고통도 당하셨습니다.
이게 예수님의 모습 중에 하나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이 가까운 친구에게 배반을 당하셨습니다. 거기다가 값없는 동물취급을 받았습니다.
은30냥에 팔렸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거라고 예언했던 겁니다. 그리고 주변에 거짓증인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있는 말 없는 말 거짓말을 해가지고 예수님을 괴롭히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또 이분이 고소를 당할 때 침목을 했습니다. 자기변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매 맞고 수염까지 뽑히고 수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고 모욕을 당했습니다. 이것도 시시한 병졸에게 그다음에 별 이유 없이 예수님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거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죄인들과 함께 십자가에서 죄인들과 함께 죽으셨습니다. 강도들이 당하는 그러한 벌을 그대로 같이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계획하신 겁니다. 이렇게 아들이 죽을 거라는 겁니다. 꼭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뭘 시사해줍니까? 이 사건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가 섬기는 우리의 주님이 이런 고통을 당하실 거라는 겁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그리고 오늘 말씀 속에서 누가복음14장27절 말씀을 보면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26절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자기십자가가 뭐냐면 그게 26절 말씀입니다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이게 자기십자가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며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아야만 된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주님을 따라 가려면 특히 제자가 되려면 이런 환경 속에서 편안한 가정을 가지고 가족들과 좋은 관계를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그렇지만 가족에 매달려서 눈이 가족에게만 있고 또 주변에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눈이 가 있고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크리스천은 되지만 제자는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족 때문에 하루24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자기 집안에 자기 일만 가지고 24시간 보내는 사람들은 제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냔 크리스천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때 아픔이 있는 겁니다. 그것이 자기십자가입니다 내가 손해 보는 일들이 많고 참아야 되는 일들이 많고 지금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부분에서 예수님께서 받지 않아야 되는 부분들을 많이 받으셨습니다. 왜 그랬냐면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려면 제자가 되려면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이 다 잘되고 모든 것이 다 내 뜻대로 되면 제자가 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제자라는 것은 뭘 하는 사람입니까? 제자는 소수인데 다수크리스천들이 아닙니다. 소수크리스천들 가지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다수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이 고통을 당하는 것 때문에 이익을 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까 그런데 소수크리스천들은 제자들은 뭘 하는 사람들이냐면 하늘나라에 일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자들입니다 하늘나라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하늘나라에 일들 하늘나라에 비밀들을 그런데 하늘나라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저 위에 있습니다. 미래의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도 하늘나라 중에 하나지만 이것은 잠깐 있는 거고 그러니까 제자들은 예수그리스도의 대사입니다 대사로써 저쪽나라에 일들을 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제자들입니다
그들이 우리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눈이 이 세상일에 가 있는 게 당연하지만 이 세상 모든 일이 잘 되면 이분의 눈이 저쪽으로 가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걸 아십니다. 우리피조물들이 가지고 있는 약한 점입니다 우리의 단점입니다 우리 눈의 위치가 우리가 보이는 여기에 모든 일이 잘 되면 여기에 소망을 두게 되고 여기에 기쁨을 두게 되고 여기에 관심이 있고 비전도 이 땅에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을 가르치는 분들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저쪽나라에 대해서 가르치고 저쪽나라에 가서 복을 받으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제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고통을 받아야 됩니다.
경험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생명을 주기위해서는 너희들이 고통을 받아야 되는데 눈이 이 땅에 있으면 안 되는데 그것은 말로만 해가지고는 안 된다는 겁니다. 절대로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피조물들은 말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직접 보여주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시시한 피조물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가룟유다을 누구보다 사랑하셨잖아요.
그렇지만 가룟유다가 나중에 은30냥에 파는 일도 하고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저분이 하면서 위증도 하고 고소도 하고 그럴 때 제자들 보고 가만히 있으라는 겁니다. 너희들 수염도 뽑는 단다. 내가 뽑혀볼게 한번 보라는 겁니다. 너희들 매 맞는 단다. 내가 매 맞혀 볼게 한번 당해봐라 너희들이 침 뱉음을 당하고 모욕을 당하는 것을 다 경험해보라는 겁니다.
이유 없이 미워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제자가 아니냐는 뭘 보면 알겠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섬기면서 지금 여기에 나오는 카테고리 속에 다는 아니지만 일부가 들어 왔느냐 안 들어 왔느냐 입니다. 배척도 당해보셨습니까? 어떤 때는 가족들에게 여기에 몇몇 분들은 남편들에게 핍박을 받는 분들이 있잖아요. 보이지 않게 그분들은 제자입니다 그런 남편이 아니면 그분은 오늘날 제자가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남편을 일부러 그렇게 만드시는 겁니다. 거꾸로 자녀들이 말을 안 듣는 겁니다. 하나님이 다 계획하신 겁니다. 나를 제자로 만들기 위해서 어디에 약한 부분들 자라지 못할 부분들 그것이 십자가라 합니다. 우리들에게 그런 십자가가 있습니다.
저도 지금 가족들 다 떨어져 있잖아요. 이제 갈 수도 없고 올 수도 없고 제가 가족을 만나려 집에 가면 우리가족들이 그럽니다. 아빠 오는 것은 좋은데 아빠가 가는 것을 생각하니까 안 오는 것이 좋겠다는 겁니다.
아빠가 떠나는 것을 아파하는 겁니다. 이게 빼도 박도 못하는 겁니다.
여기 다 집어던지고 갈 수도 없고 올 수도 없고 이런 아픔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다 있잖아요. 제자들 우리아삽도 그랬잖아요.
지난시간에 아삽도 이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여기 앉아 있는 하나님의 제자들이여 예수님의 제자들이여 아픔들이 다 있습니다. 없으면 제자가 아닙니다. 어떤 한부분에 아픔이 있습니다. 이것을 해결이 안 되는 아픔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내가 주님 앞에 가까이 올 수 있고 그것 때문에 내가 겸손해지고 이것 때문에 주님과 내가 깊은 대화도 하게 되고 안 그러면 내가 이것이 없으면 교만해질도 있는 확률이 있는 그래서 하나님이 그것을 놓지 않습니다. 사도바울도 마찬가지였잖아요. 똑같이 어떤 분들에게는 거처가 없는 그런 아픔도 주십니다. 예수님처럼 그러니까 예수님이 가진 아픔을 다 가지면 보통사람이 아닙니다. 다 가지면 좋습니다. 거처도 없었고 죄인들을 위해서 죽게까지 하셨잖아요. 이유 없이 미움 당하시고 매 맞고 고소당하시고 거짓증인들이 많고 은30냥에 팔리고 가까운 친구들이 배반하고 배척당하고 이런 모든 부분들이 그러면 여러분들이 만약에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종이라고 그러면 우리가 생각하는 목사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야 되고 목사님이 되면 교인이 많아지면 근사한 자동차도 타야 되고 대형교회목사님이 되면 판공비도 많아야 되고 우리 체면이 있잖습니까? 우리가 말하는 우리들의 목사들의 개념이 그렇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이런 식으로 해서 존경받아야 되고 위치가 높아야 되고 이것이 성서적으로 보면 잘못된 개념입니다
예수님의 종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기독교에 제3세계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미국도 보면 번영신학이라고 그래서 예수 믿으면 모든 게 잘 되고 예수 믿으면 성공하고 예수 믿으면 돈도 많이 벌고 건강해지고 예수 믿고 잘만 하면 교회도 엄청나게 복 받고 뭐든지 다 잘되는 겁니다. 이것이 지금 전 세계에 이 말이 흘려가고 있습니다. 예수 믿어서 잘 되면 좋죠. 그런데 잘 되면 어떻게 됩니까?
잘 되면 십자가신앙을 잃어버립니다. 그게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잘 되는 것이 복이 아니라는 겁니다. 피조물들아 커지는 게 복 인줄 아느냐 아니라는 겁니다. 커지지 말라 그랬습니다. 제자들보고 너희들 커지지 말라 작은 자가 하늘에서 큰 자라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이 우리가 커지는 것을 싫어서 그럽니까? 아닙니다. 커지는 걸 좋아하세요. 그렇지만 너희 피조물들아 커지면 딴 짓한다는 겁니다.
여러분들 주변을 한번 보세요. 커지면 딴 짓합니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커지는 걸 원하지만 딴 짓하지 않으면서 커지면 그게 복 중의 복입니다 우리AMI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정도 가다가 하나님께서 어느 정도 커지니까 너 그러다가 안 되겠다 하고는 싹 앉혀놓으십니다.
제가 그걸 압니다. 황 목사야 너 이러다가 날개 달면 딴 짓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앉혀놓으십니다. 그러면 제가 압니다. 아하! 내가 어디에 주님 앞에 잘못된 부분이 있구나? 주님! 제가 주님 앞에 물어봅니다.
주님 뭘 저에게 말씀하십니까?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게 뭡니까?
제가 주님과 대화하는 겁니다. 주님은 제 대화를 받고 싶어 하십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날개를 접고 겸손해지면 그다음에 날개를 달게 해주십니다. 날개 달고 또 올라가다가 어느 정도 되면 또 날개를 아마도 접으실 겁니다. 그러면서 제 날개가 단단한 날개가 되지만 겸손한 날개로 가면서 그게 복 중에 복이 아닙니까? 우리 모두에게 그게 다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 세대에 원하시는 그 일에 절 보고 초점을 맞추라고 주님이 계속해서 저에게 가르쳐주시는 겁니다. 기복신앙이라고 뭐든지 하면 잘되는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어느 정도 주십니다. 어떤 자녀들에게 주십니까? 영적어린아이들에게 그렇게 주십니다. 어린아이들은 훈련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하면 탁탁 주십니다. 그리고 돈도 줍니다. 부동산을 샀더니 두 배로 올라갑니다. 그런 사람들은 우리예수님을 우리하나님을 그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게 영적어린아이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자라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니까 어른이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입니다
그러면서 어떤 때는 하나님이 훈련시켜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분들은 그런 과정을 통해가지고 빨리 성숙한 사람으로 하나님이 만들어 주십니다.
나중에 손해 보는 일을 해도 기쁨이 오고 고통이 있어도 기쁨이 오고 멸시를 당해도 기쁨이 오고 이렇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도 주님을 이렇게 섬기다 보면 십자가과정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고통의 신학 십자가의 신학이 진정한 의미의 주님이 원하는 신학입니다 그런데 이 고통의 신학이 우리에게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는 겁니다. 깊은 내면에 기쁨이 있고 소망이 있고 환희가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고 그걸 우리가 체험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우리주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통을 당하면서도 마음속에 깊은 기쁨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그랬습니다. 그가 앞으로 하늘나라에 가서 받을 기쁨을 생각하시면서 모든 고통을 참으셨다 그랬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것을 이분이 다 보고서 그 기쁨을 생각하면서 이 고통을 이분이 참으셨다 그랬습니다. 제가 결론적으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주님이 우리에게 이런 걸 보여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주님을 섬기면서 건강에 좀 이상이 옵니다. 그러면 그게 뭡니까? 그게 복의 사인입니다
십자가의 하나의 사인입니다 물질에 조금 문제가 옵니다. 그게 뭡니까?
주님을 열심히 섬기는데 그것은 복의 사인입니다 주님을 열심히 섬기는데 인간관계성에 문제가 옵니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내가 이상한 소리 듣고 정말 억울한 일들을 당합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십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하라고 그랬습니까? 예수님이 어떻게 했습니까?
가만히 침목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잖아요. 우리가 그대로 배우는 겁니다. 내가 불이익을 당했을 때도 침목하고 가만히 있어주는 겁니다.
그 연습을 우리가 해야 되는 겁니다. 오해를 당해도 마찬가지고 멸시을 당하고 배반까지 당할 각오를 하셔야 됩니다. 정말로 주님의 제자가 되시려면 이런 경험을 많이 당하셔야 됩니다. 왜냐면 우리주님이 우리에게 내 십자가는 이런 스타일로 네가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아까 제가 말씀드린 열 가지 예수님이 받으셨던 그것을 우리가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야고보에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이런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뻐하라는 겁니다. 지금 주님이 당하시는 우리삶속에서 예수님을 섬기다보면 당하는데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게 되면 주님이 보실 때 너희는 정말로, 정말로 온전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높은 계급으로 훈장 받는 그런 위치에 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야고보서1장12절에 이런 말씀을 하셨잖아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는 겁니다. 이게 내가 계속 낮아지는 훈련입니다
낮아지는 훈련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훈련입니다 이것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섬기기 때문에 오는 고통을 받는 자는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많지가 않습니다.
절대로 많지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뭐냐면 주님을 따르기 때문에 더 잘되는 게 그게 눈에 보이는 복을 추구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추구하는 겁니다. 그런데 소수의 크리스천들은 주님의 방법으로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복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옳다 인정을 받은 후에는 하나님이 볼 때 합격이다 이제 어느 정도 되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죽을 때 하나님께서 그러실 겁니다.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이 사람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는 겁니다, 이 생명의 면류관은 하늘에 올라가면 엄청난 높은 위치에 앉혀놓으시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육신하셔서 고통을 당하시면서 십자가사건을 보여주시면서 모든 것이 실은 본인에게 괴롭지만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너희들 네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그러면 네가 내 제자라는 겁니다. 제자라는 것은 많은 사람이 아니고 소수의 하나님사람입니다 나를 따라 올 때 환경적으로 어렵지만 내 마음 속에는 기쁨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찬양 속에서 기쁨이 있고 그 속에서 보이지 않는 환희와 만족과 감사가 찬양 속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이것이 있다는 겁니다.
왜냐면 하늘의 상급이 분명히 있다고 그랬잖아요. 하나님의 약속이니까 하늘의 상급이 우리에게 많을 겁니다. 예수님이 왜 고통을 당하시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까?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 딴 방법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우리의 위해서 제자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좋은 일들 너희들은 나를 보지 않고 나에게 관심이 없어지고 미래에 대한 관심조차 하늘에 대한 관심이 없단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의 눈이 저 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내가 지금 보여줄 테니 이렇게 삶을 살아야지만 너희들이 저 나라를 볼 수 있단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걸 그대로 따라오라는 겁니다. 그러면 너희들에게 엄청난 복이 있는데 그 복을 지금 여기서 말하기를 생명의 면류관을 내가 너희들에게 줄 거라는 겁니다. 너희들에게 대단히 좋단다. 해보라는 겁니다.
그래서 알았어요. 따라가는 사람들이 제자들이라는 겁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런 사람들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주변이 그런 사람들이 있잖아요. 감사합니다. 오늘 특별히 기도하시면서 오늘 말씀을 깊이 생각해주세요 주님 나에게 육의 가시가 하나씩 최소한 하나씩 있습니다.
나의 아픈 부분들 하나님이 나에게 이걸 허락하셨구나. 여기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하시고 이게 네 십자가구나 생각하시고 감사로 주님 앞에 대화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오늘 말씀의 주제와 연결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주시면서 네가 이런 아픔을 통해서 주님이 나를 제자로 만들고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려고 그러시는구나? 주님 감사합니다.
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을 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입니다 아멘.
이 말씀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일점 일획도 가감이 없습니다. 그대로 이루어 주실 겁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우리 믿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그대로 믿읍시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ELBeyzo8JL4&list=PLtkvObidqrDQzO7s6LdE1QW17YzkwN1Vu&inde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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