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패러독스

3강. 마태복음5장10절-12절, 왜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 핍박을 받아야 하는가?

변명섭 2024. 10. 5. 13:40

기독교의 패러독스(paradox)시리즈 (역설의 진리)
3강. 왜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 핍박을 받아야 하는가? (마5:10-12)  2003년8월7일
오늘은 세 번째로 제목을 이렇게 정했습니다. 왜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 핍박을 받아야 하는가? 제목이 이렇습니다. 왜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 핍박을 받아야 하는가? 여기에 대한 질문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사랑했던 사람들은 성경 속에서 보면 핍박을 꼭 받아야만 되었고 핍박이 그들에게 임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그기에 대한 우리의문점을 풀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말씀을 같이 나누기를 바랍니다. 알다시피 기독교의 역사는 핍박과 박해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구약에 선지자들을 보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도 우리예수님도 핍박을 대표적으로 받아왔던 분 중에 아주 대표적인 분이시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고 또 사도바울을 비롯해서 많은 사도들도 핍박을 받아왔고 또 그분들이 순교당한 후에 주후70년부터 기독교가 로마제국에 공인된313년까지 약250년260년 동안 소위 카타콤시대라 그러지 않습니까? 
예수 믿었던 분들이 엄청난 핍박을 받아 오면서 그 안에서 기독교를 이렇게 성장시켰습니다. 기독교하면 핍박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선 구약 속에 있었던 핍박에 관한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구약에서 핍박을 두 부류를 통해서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특히 첫째는 이방인을 통해서 받은 핍박도 있습니다. 이방인들을 통해서 받은 핍박들은 그렇게 심한 핍박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컨대 요셉 같은 사람들이 감옥에 들어갔고 또 유대인들이400년 동안 애굽에 노예생활을 했던 일들 또 40년 광야생활 그리고 유대나라는 나라가 하나님나라인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만든 나란데 유대나라하면 구약에서는 유대나라지만 신약에 와서는 크리스천들을 우리가 항상 이야기하잖습니까? 
그렇게 생각을 비교하면서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유대나라도 끊임없는 핍박 속에서 외세의 침략 속에서 주욱 지내오다가 이스라엘역사가 아브라함부터 지금부터4천 년 전인데 외세의 침략을 받지 않았던 때가 언제냐면 주전166년에서 주전63년입니다 약100년 기간입니다 그때를 하스모니아왕조라 그래서 마카비라는 사람으로 우리나라 같으면 김구 같은 사람인데 독립운동 하던 분이100년 사이에 예수님오시기160년 전입니다 그때부터 주전63년이 로마정권이 지배했던 때인데 그때까지 잠깐 독립을 했고 나라가 조금 조용해졌지 그 외에 그의4천년의 이스라엘역사가 외세의 침략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쓰시는 하나님이 사랑했던 분은 엄청난 어려움 속에서 계속해서 겪어 왔던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유명한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도 바벨론의 포로 속에서 사자 굴에 들어갔고 개인적으로 그렇고 국가적으로도 그렇고 하나님이 사랑했던 사람들은 엄청난 용광로 속에서 하나님이 집어넣었다가 뺐다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특히 하나님의 사람들을 용광로 속에 집어넣고 빼고 하는 일을 이방인들도 했지만 더 심하게 하는 분들이 같은 동족들입니다 예컨대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이 어떻게 하느냐면 그중에서도 하나님이 특별히 쓰시는 분들을 훈련시키는 일을 유대인자체내에서 그분들을 그렇게 훈련시킵니다. 
똑같이 오늘날도 신약에 와서 크리스천들도 훈련을 두 가지로 받습니다.
성도가 아닌 비 기독교계사람들을 통해서 공격도 받지만 더 심한 공격은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끼리 오는 공격이 더 심합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뭐라고 그랬냐면 너희들 기억나느냐 마태복음23장37절의 말씀인데 구약시대 때 이스라엘사람들을 들여다봐라 내가 보낸 선지자들이 있었는데 그 선지자들이 하나같이 이스라엘사람들에게 핍박을 엄청나게 받아가지고 그분들을 돌로 쳐가지고 죽였다는 겁니다.
선지자들을 누가 죽였느냐 소위 제사장들이 또는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사람들이 내가 보낸 사랑하는 선지자들을 다 죽였다는 겁니다.
이게 조금 아이러니컬(ironic)하잖아요. 그리고 예수님이 계속말씀하시길 오늘 제가 본문말씀인 마태복음5장10절에서12절의 말씀인데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는 겁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아 있나니 이의는 예수님을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만 아니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핍박을 받는데 그 핍박이 어디서 오느냐면 동료크리스천들에게서 온다는 겁니다.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뭐라고 그랬습니까? 11절에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이런 사람들이 교회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교회 안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왜냐면 12절에 그랬습니다. 
너희들은 이럴 때 기뻐하는데 왜 기뻐하는 줄 아느냐 말씀하시기를 너희선지자들이 이렇게 핍박을 받아 왔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뭐냐면 선지자들이 동료유대인제자사장들에게 또는 서기관들에게 또는 바리새인들에게 그렇게 받아 왔다는 겁니다. 이 말은 뒤집어 말하면 제자들 너희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 동료목사들이 동료전도사들이 동료집사 장로들이 너를 더 괴롭힐 거라는 겁니다. 제 말씀이 이해가 안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시는 게 그렇습니다. 그 안에서 훈련을 받는 다는 겁니다. 동료크리스천들 속에서 어떤 사람이 정말 주님이 원하는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그 안에서 주님과 깊은 대화와 주님에 의지하고 살려고 하면 꼭 교회 안에서 지도자급사람들이 그 사람을 괴롭힌다는 겁니다. 선자들이 그런 괴로움을 받아 왔다는 겁니다. 이게 이해가 안 됩니다.
이게 비신자들이 볼 때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기독교가 이런 식으로 기독교가 발전됩니까? 바울에게 이런 비밀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어떤 유대인이냐면 이방에 나가있는 유대인들을 전도를 했습니다. 바울이 회당에 가가지고 전도를 해서 많은 유대인들이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천들이 된 유대인들이 사도바울을 계속해서 괴롭혔습니다. 왜냐면 바울은 은혜를 전하는 사람인데 구약의 율법과 구약에서 가르치는 선조들의 가르침을 무시하는 사람이다 
이래가지고 바울을 그렇게 공격을 많이 했습니다. 동료크리스천들이 그래가지고 그분들이 에베소교회나 고린도교회나 또는 빌립보교회나 그기에 이방사람들이 크리스천이 된 사람들을 독려해가지고 바울을 같이 공격을 했습니다. 바울의 편지들을 보면 그의 다 그기에 대한 반발내용을 쓰신 편지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로마서를 쓰면서 그랬습니다. 
로마에 있는 교인들도 다 자기제자들인데 또는 자기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인데 계속해서 자기를 괴롭히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랬습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나 괴롭습니다. 그러니까 로마서11장에서 성령님께서 바울에게 하시는 말씀이 바울아! 너 엘리야 생각나느냐는 겁니다. 네! 생각납니다. 그게 언제나? 그 당시에서850년 전입니다 
엘리야 때 어떻게 했느냐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섬기지만 그의 다 하나님도 섬기고 바알신도 섬기지 않았느냐 그래서 내가 너를 불려가지고 애들아 바알 신을 섬기지 말라 네가 나팔수역할을 하라고 엘리야에게 말했지 않느냐 그러니까 엘리야가 어떻게 했습니까? 엘리야가 교계에 가서 회개하라 교회여 회개하라 너희들 왜들 이러느냐 그러니까 거기 있는 지도자들이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해서 엘리야의 부하들을 다 죽여 버리고 엘리야가 말하기를 나 혼자만 남았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엘리야가 나에게 하나님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여 저는 지금 저는 지금 나 혼자만 남아있습니다. 
교계가 왜 이렇습니까? 하니까 하나님이 엘리야야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이름도 없고 빛도 없는 7천명의 평신도들이 숨겨져 있단다. 
그 사람들이 너를 도와줄 거라는 겁니다. 이게 영계의 법칙입니다 
우리기독교가 겉으로 많아 나타나가지고 높은 위치에 있고 이렇게 하면 대단한 걸로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쓰신 분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높아지고 유명해지고 커지면 바알을 섬깁니다. 다시 말하면 물질을 섬기고 우상과 권력을 섬기고 명예를 섬기고 이렇게 됩니다. 이러면서 바울에게 말씀하시기를 바울아! 네가 지금 이 시대에 네가 엘리야다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남은자라는 말을 씁니다. 네가 엘리야처럼 남은자다 소수의 하나님이 특별히 쓰는 사람 중에 하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크리스천은 많지만 그 속에 하나님이 특별히 쓰시는 분들은 소수라는 겁니다. 이것을 남은자라 그럽니다. 구약으로 다시 돌아가서 선지자들도 핍박을 많이 받으면서 아까 제가 말씀드린 대로 제사장들에게 받았고 서기관들에게 받았고 또는 일반정치지도자들에게 핍박을 받으면서 받은 이유가 뭡니까? 이분들이 왜 선지자들을 핍박했습니까? 이분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아주 열심히 믿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분들은 종교성이 엄청나게 강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누굴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율법을 잘잘 다 외우고 모세오경을 다 알고 그런데 이분들이 어디에 빠져버렸냐면 구약에서 말하는 하나님여호와입니다 여호와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여호와를 몰랐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뭘 알았냐면 종교형식에 빠져버리고 예배라는 형식에 빠져버리고 제도에 빠져버리고 그 속에 들어가 가지고 종교형식과 예배와 제도 속에서 주체가 되는 하나님을 자세히 몰랐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주체가 되는 하나님이 누구라는 것을 선지자들을 통해서 알려주려고 하니까 거기에 대한 반발세력이 이렇게 크던 겁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우리가 커지고 유명해지고 돈이 많아지고 인기가 많아지고 이러다보면 그 속에 종교는 있고 기독교가 있고 뭐가 많이 있지만 그 안에서 진정한 의미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주님의 뜻을 펼치심과 주님이 원하시는 주님의 스타일이 그 속에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사랑도 별로 없고 완전히 조직화되어 버리고 제도화되어 버리고 이런 경우를 우리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될까봐 상당히 겁이 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자유를 주고 제도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우리가 그게 슴관이 되었기 때문에 제도에서 벗어나면 이게 안 되는 줄 압니다. 
어떻게 오랫동안 받아왔던 제도에서 벗어날까? 저 나름대로 노력해보지만 요즘 와서 그럽니다. 아하! 조금 강제성을 띄워야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요즘 와서 제가합니다. 제가 제도에서 탈피하려니까 이게 도저히 교통정리가 안 되는구나 우리가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제가 가끔 합니다. 요즘 와서 심각하게 합니다. 예컨대 중보기도모임에 가서 한번 합시다, 
하면 강제적으로 주변 분들이나 AMI교회 분들 예를 들어서 제직들 다 와야 된다. 강제적으로 해서 안 오면 제직에서 탈락이다 이렇게 하면 아마도 다 모일 겁니다. 할 수 없이 모일 겁니다. 그렇게 해서 모이는 게 뭡니까?
제도 속에서 살아남으려니까 내가 할 수 없이 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집사니까 권사니까 장로니까 할 수 없이 와야 된다.
왜냐면 목사님이 그렇게 강제성을 띄니 그렇게 해서 오는 것은 종교행위입니다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와서 은혜는 받을 수 있지만 그런 라이프스타일로 오는 것은 그런 사고방식으로 오는 것은 안 되는 겁니다.  
우리가 구약에서 유대인을 두 가지로 볼 수 있다고 제가 말했는데 다시 한 번 말하면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이냐면 선지자그룹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핍박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소수입니다 그다음에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비 선지자그룹들입니다 제사장들입니다 종교인들입니다.
서기관들입니다 정치지도자들입니다 일반이스라엘백성들입니다 
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 그룹은 다수입니다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파워는 이분들이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인기와 돈도 권력도 모든 영향력은 이분들이 다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두 그룹이 있는 겁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서 그런데 누가 누구를 핍박했습니까? 
다수그룹이 소수그룹을 핍박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관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소수그룹에 관심이 있는 겁니다. 그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들을 이루어내었습니다. 다수그룹도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어떤 일들을 해오지만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렇습니다. 악역을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해오는 그룹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위해서 소수그룹은 정말 선한 일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불리 움을 받아서 사용하는 사람들이고 그런데 선한 사람들은 소수그룹들을 악역을 하는 다수 그룹들이 이분들을 공격을 합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어려움을 당하면서 어디 가서 몸 둘 곳을 모르고 나중에 생명까지도 다 잃어버리면 그러한 일들까지 구약에서 패턴이 그대로 예표로 신약에서도 이 패턴이 그대로 나타나는 겁니다. 신약에 크리스천들도 두 가지 크리스천들이 있습니다. 핍박을 받는 소수그룹들이 있고 그다음에 핍박을 가하는 다수크리스천그룹들이 있습니다. 바울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주로 받은 핍박이 뭐냐면 동료유대인크리스천들입니다 그다음에 이방인크리스천 된 사람들을 통해서 바울도 계속해서 핍박을 받아왔습니다. 
순수이방인들 소위 크리스천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받은 핍박은 바울이 많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걸 깊이 생각 안했을 경우도 있을 겁니다. 
실제로 보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복 있는 자들이라 하면서 제자들을 훈련시키면서 너희들이 진짜 복 있는 자가 되려면 여덟 가지 복이 있는데 그중에 제일 높은 복이 의를 위해서 핍박 받는 자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너희들이 마음이 가난한자는 온유한자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하면서 주욱 나가다가 최고의 포지션에 올라가려면 너희들은 동료크리스천들에게 핍박을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왜냐면 선지자들이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선지자들에게 내가 표상으로 보여 주었기 때문에 너희들은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받느냐면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려고 하면 소위 동료크리스천들 악역을 하는 크리스천들입니다 
이런 크리스천들을 통해가지고 너에게 욕을 하고 핍박하고 거짓말로 너희를 거슬려서 모든 악한 말들을 한다는 겁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그룹 속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겁니다. 당하는 그룹 속에 있는 자가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게 역설이 아닙니까? 기독교의 역설입니다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앉혀놓고 제자들에게 뭐냐면 사람들이 너희들을 출회시킨다는 겁니다, 출회는 그분들이 섬기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 안에서 너희들을 쫓아낸다는 겁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너희들 다 죽일 거라는 겁니다. 이것이 너희들이 하나님 앞에 산제사 드리는 것이라고 요한복음16장2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자들이여! 너희들 언젠가는 엄청난 괴로움을 당하고 특히 주면에 소위 크리스천들에게 괴로움을 엄청나게 당하고 나중에 죽임까지 너희들이 당할 거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게 기독교의 패러독스(paradox)입니다 
우리는 보통 예수 믿으면 잘 되고 복 받고 예수 믿으면 모든 게 형통해지고 이렇게 우리가 배워왔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는 소리가 뭡니까?
나는 사도바울처럼 되겠습니다. 나는 베드로처럼 되겠습니다. 그러는데 실은 알고 보면 그분들이 잘 풀린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후서를 쓰실 때 고린도후서는 주후55년에 쓰신 겁니다. 이분이 주후46년에 1차 선교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래가지고 1차 여행 2차 여행 3차 여행 도중에 쓴 것이 고린도후서입니다 그러니까 46년에서66년이니까 몇 년입니까? 
9년 동안 선교여행을 하면서 이분이 엄청난 핍박을 자기가 받았다는 내용을 고린도후서11장22절부터27절에 쫘악 나열했습니다. 9년 동안 받은 그분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느냐를 제가 간단하게 그분의 고통을 말해보겠습니다
여러 번 옥에 갇힘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분이 대부분 유대들에게 받은 고통입니다 유대인동료크리스천들에게 또 유대교사람들에게 같은 동족들에게 받은 어려움을 보면 여러 번 옥에 갇혔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분이 우리가 아는 옥에 갇힌 게 언제입니까? 
그보다 5년 후인 주후60년에서61년에 로마감옥에 처음 들어갔을 때입니다
로마감옥에 두 번 들어갔습니다. 첫 로마감옥에 들어간 것이 60년에서62년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지금 로마감옥에 들어가기5년 전에 말씀하시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이분이 로마감옥은 장기간2년씩 들어가 있었던 것이고 제1차 감옥은 나중에 2차 감옥은 67년68년 때인데 그때는 기간은 없었는데 약1년 정도는 계신 것 같습니다 지금55년에 쓰시는 것은 과거9년 동안 짧게, 짧게 감옥에 여러 번 들어갔다는 겁니다. 우리 같으면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간 겁니다. 그냥 잡아다가 일주일씩 유치장에 들어가시고 이분이 수많이 그랬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분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주여! 저는 바울을 따라가려면 깜깜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제가 혼자 주님과 대화하면서 바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황 목사야! 너는 명함도 못 내놓겠구나. 
바울이 이렇게 고통을 당한 것을 보면 이분이 그랬습니다. 여러 번 옥에 갇히고 매도 수많이 많고 여러 번 죽을 번하였고 그다음에 유대인들에게 얻어  맞았는데 유대인들은 매를 40번을 때리지 못하고39번씩 다섯 번을 맞았다는 겁니다. 교육도 많이 받고 정말 인텔리였고 좋은 가문출신인 이분이 예수님 때문에 이런 엄청난 어려움을 당하는 겁니다. 태장이라고 그래서 큰 걸로 세 번을 맞았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돌로 한번 맞아가지고 그의 죽을 번하였고 
그다음에 1차2차3차 선교여행을 하면서 배를 타고 가다가 배가 파선이 몇 번 했느냐면 세 번 파선되었다는 겁니다. 그 당시 배를 가지고 지중해를 건넜으니까 지금 시리아 안디옥에서 배를 타고 그리스 고린도 로마까지 엄청난 거리를 배를 타고 건널 때 파도로 배가 파손될 때마다 배 밑에서 일주일씩 잠자지 못하고 죽는 것 같은 고생을 했다고 성경에 보면 쓰 있습니다. 
그것뿐입니까? 배에서 내려 강을 건널 때도 강이 범람해가지고 강도의 위험도 당하고 어떤 때는 동족의 위험도 당하고 어떤 때는 이방인들도 위협해오고 도시에 가나 광야에 가나 바다에 가나 많은 위험을 당하고 또는 거짓형제들이 자기를 고소해가지고 자기가 감옥에 또 들어가기도 하고 그다음에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었고 이런 이야기가 고린도후서11장22절부터27절까지 나옵니다. 이분이 이 말씀을 하시면서 고린도후서11장12장에서 우리에게 비밀을 가르쳐주는 게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그러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고생을 엄청나게 하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이 있다는 겁니다. 뭐냐면 이렇게 할 때마다 내가 연약하다는 것을 배웠다는 겁니다. 그 연약한 것이 다시 말하면 나는 이게 종잇조각과 같은 연약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나를 불려 가시면 나는 하시라도 가야 된다는 자기존재를 자기가 깨달았다는 겁니다. 자기는 피조물이구나. 제 아무리 복음을 많이 가지고 있고 하늘의 비밀을 많이 가져도 나는 연약한 종이 한 장이구나 하나님이 불려 가시면 나는 가는 존재라는 것을 이분이 깨달았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12장에 가서 내가자랑하려면 엄청난 자랑거리가 많다는 겁니다.
그중에 내가 낙원에 한번 들림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낙원에 올라가서3층천에 올라가서 하늘나라에 비밀을 다 보고 오고 하나님이 누구시라는 것을 다 보고 하늘의 소망을 다 보고 내려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자기가 그것 때문에 교만해질까봐 상당히 고민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날 보고 교만해지지 말라고 자기에게 육체의 가시까지 주었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무슨 병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육체의 가시가 있어서 그렇지만 내가 인간이기 때문에 주님 내가 교만하지 않겠습니다. 이 육체의 가시를 뽑아주십시오.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신 말씀 알잖아요. 너 그것 필요하다 너 그것 뽑아버리면 너는 교만해진다는 겁니다. 왜냐면 이 엄청난 하늘의 비밀을 깨달았기 때문에 자칫하면 너는 교만해지니까 너 그 가시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그 가시가 없으면 점프를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걸 하나님이 안 없애주시는 겁니다. 
그럴 때 우리주님이 그분에게 하신 말씀이 너 그것이 있기 때문에 네가 약해졌다 네가 약해져야지만 그리스도의 능력이 거기서 나타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그걸 들은 겁니다, 네가 약해질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네 속에서 임하니라 네 속에 임해진다는 겁니다. 약해질 때 이게 하늘의 비밀입니다 크리스천들이 가지고 있어야 될 비밀 중에 비밀입니다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교만 끼가 있으면 그리스도의 능력이 임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은 주님!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주님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한 걸음도 걸어갈 수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깊이 느낄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거기에 임한다는 겁니다. 바울이 그것을 깨닫고서 그래서 내가 이제 깨달았는데 내가 약할 때 강함이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겁니다.
우리도 이것을 경험하지 않으면 소위 남은 자 대열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크리스천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특별히 쓰시는 분들은 왜 하나님이 쓰느냐면 하나님의 뜻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땅 끝까지 나가서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불리 움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은 애누리 없습니다. 고통을 줍니다. 그리고 가시를 줍니다. 어딘가 약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그래서 까불지 못하게 만들어놓습니다 그게 복 중에 복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주님이 그랬잖아요. 그럴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의 상이 그기에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하늘의 상을 받는 다는 것은 하늘나라에 올라가면 지도자계급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소수들입니다 지도자계급에 있을 사람은 이 세상 삶에서 끊임없이, 끊임없이  어려움을 경험하면서 주님 앞에 가까이 가는 일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데서 예를 들어서 이렇게 말하면 싫어하는 사람이 그 중에서80-90%입니다 다 복 받으려고 기도원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갑니까? 기도원에 가는 이유들이 뭐냐면 내가 죽기 위해서 가는 것 보다는 문제해결을 위해서 갑니다. 그리고 문제해결이 잘 되면 그게 어떻게 보면 복이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교만해질 수 있고 주님을 멀리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문제해결해주지지만 사도바울에게 가시를 준 것처럼 가시를 항상 가지고살도록 하는 것이 복 중에 복 같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는 문제해결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소위 일반종교와는 그런 부분에서는 다릅니다.
거기에 대해서 동의하십니까? 야고보에게도 그랬잖아요. 너희들이 시험이 있을 때 기뻐하라 그랬잖아요. 왜냐면 이것은 하나님이 너를 상주기위해서 준비한 하나의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시험을 다 이긴 후에는 1장12절에 그랬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너희에게 주겠다는 겁니다.
면류관은 알다시피 하나님의 특별한 사람들에게 주는 계급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면류관이 크게 네 가지 면류관이 있습니다.
생명의 면류관, 기쁨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이런 면류관들은 다 썩지 않는 면류관들이라는 겁니다. 이게 다 하늘나라에 올라가면 나의 포지션이 결정되는 그러한 하나의 상징적인 예표입니다 왜냐면 하늘나라는 계급사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주님이 말씀하시는 마태복음5장에 그랬습니다. 기뻐하라, 기뻐하라 왜냐면 너희의 상이 큼이라 그랬습니다.
상주심이 아닙니다. 이게 조그만 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핍박을 받는 사람은 큰 상을 받는 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포지션이 굉장히 높아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 앞에 대화할 때 큰 상 주십시오. 할 필요가 있잖아요. 그러려면 큰 고통이 우리에게 따라오게 되어 있는데 문제는 그 고통을 고통으로 생각하면 정말 살지 못합니다. 그런데 고통 속에서 보이는 이 세계에서의 고통이 내면세계에서는 한량한 기쁨과 환희와 그것이 눈물로도 표시되고 여러 가지로 표시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하나님의 종들은 특히 이렇게 면류관을 주려고 하는 종들에게는 환경에서 오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복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렇지만 그 어려움이 내면에서는 엄청난 기쁨과 보람과 소망과 자랑이 있는 겁니다. 그것을 주님이 체험하시라고 그러니까 내적인 이 세계를 체험하기위해서는 외적인 세계를 좋지 않게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왜냐면 그래야지만 나의 영이 눈이 그쪽으로 내려가거든요
하늘나라를 보거든요 그런데 우리사람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환경이 다 좋아지면 내면세계와 저쪽하늘나라를 보지 않게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쪽 보이는 세계를 좋게 만들어 주시는 것은 그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큰 복이 아닙니다. 이 세상사는 동안에는 큰 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늘나라에 올라가면 면류관이 없는 겁니다.
이게 기독교의 역설입니다 가장 큰 상을 받는 분이 누군지 아세요?
하늘나라에 가면 순교자입니다 아예 이 세상에서 다 포기한 사람입니다
순교자대열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제가 언젠가 한번 말했지만 중국아미신학교에 지도자들100여명을 모시고는 이런,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상급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그분들에게 한번 물어 봤습니다. 순교자대열에 들어갈 사람 하나님에게 약속하는 마음으로 손들든지 다 일어서세요.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100여명이 다 일어납니다. 순교자대열에 들사람들 하나님과 약속한 겁니다.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입니까? 이 세상에서 높은 계급 소용없다는 겁니다. 순교자대열에 들어가서 저 나라에 가서 높은 계급으로 사는 게 자기네들은 큰 성공이라는 겁니다. 하나님께 약속했으니까 언젠가는 그분들 순교자될 겁니다. 다시 거꾸로 한국에 와서 순교자 될 사람들 손들어 보세요? 
얼마 전에 제가 그렇게 물어 봤는데 한 사람도 안 일어나는 겁니다. 
왜냐면 이 세상이 너무 좋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의 정도를 그렇게 측정해볼 수도 있습니다. 한번 손들어 보실래요? 순교자까지 가기는 쉽지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주님이 너희들이 나 때문에 욕을 당할 때 너희들의 상급이 탁탁 올라간다는 겁니다. 우리주변에 욕당하는 것은 모욕당한다. 
그랬습니다. 업심 여김을 당한다는 겁니다. 우리 삶 속에서 예수님 때문에 업심 여김을 당하고 모욕당하는 일이 우리주변에 뭐가 있습니까?
한번 가만히 생각해봅시다.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주변에 예를 들어서 추석에 며느리가 주님을 잘 섬기기 때문에 추석 때 제사문제 때문에 소위 집안에서 업심 여김을 당하고 친척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하는 그런 일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됩니까? 주님에게 주님!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제가 여기서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럴 때 상급이 면류관이 내 머리위에 하나씩 하나씩 올라오는 그러니까 이것이 보이는 않는 핍박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회에서 얼마든지 그런 환경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특히 복음주의자들이 종교다원주의자적인 목사님이나 학자들과 모임을 가지면 그 사람들은 우리복음주의자들을 우습게 압니다. 당신들 왜 이렇게 광신자들이야! 그리고 좁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아주 업심 여깁니다. 자기네들만 넓은 사람들이고 다른 종교도 다 구원이 있다고 보고 사랑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냐고 그런 걸 나타내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욕당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팰 수도 없고 이걸 무슨 이야기가 될 수가 없는 겁니다. 너도 학자고 나도 학자지만 자기네가 볼 때는 우리를 아주 엉터리학자들로 보는 겁니다. 그 사람들의 눈이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예를 들어서 우리복음주의사람들은 일반 조, 중, 동 그런 신문에 예를 들어서 우리가 글을 쓰면 그런 신문은 받아 주지도 않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보수적인 이야기를 쓰기 때문에 그런데 가끔 목사님이 나올 때는 종교다원주의적인 목사님들이 글을 쓸 때는 받아줍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다 업심 여깁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취급을 안 합니다. 
과격주의자들 또는 광신자들 또는 한쪽으로 너무 치우친 사람들 이렇게들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핍박을 받습니다. 정신적인 핍박이니 물질적인 핍박이니 이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에 가정교회 지하교회를 봐도 그분들이 육체적인 핍박을 받고 정신적인 핍박을 받습니다.
조그만 들키면 감옥에 들어가는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딜레마들이 있습니다. 이슬람권에 있는 많은 크리스천들 이분들을 이렇게 보면 주님의 눈으로 볼 때 그쪽 분들이 오늘날 과연 복 받은 사람들 같습니다.
오늘날 살고 있는 우리한국크리스천들은 핍박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별로 하늘나라에 가면 높은 계급에 앉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편하게 예수 믿으니까 그렇지만 우리조상들 일본시대 때 사람들 또는 6.25때 우리조상들 또는 초창기 사람들은 핍박을 받으면서 예수를 믿었잖아요. 그분들이 하늘나라에 가면 높은 자리에 계실 거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지금 편한 사회 속에서 이렇게 에어컨 틀어놓고 카펫 깔고 편하게 차타고 와서 편하게 예수 믿는 이런 우리들의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정말 핍박을 우리가 자처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가서 큰 상이 없겠구나? 라고 보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비추어볼 때 그래서 어떤 분들은 가정에서 핍박받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런 분들은 즐거워하세요. 감사하게 생각하세요. 우리나라에서 우리크리스천들이 정말 주님을 제대로 섬기려면 우리크리스천들이 소수크리스천들은 우리나라에서 핍박을 받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제 자신을 이렇게 봐도 우리크리스천들은 갈 때가 없습니다. 교회밖에 갈 때가 없습니다. 
극장을 가도 우리와 관계있는 곳이 아닙니다. TV를 켜도 그렇고 컴퓨터를 켜도 그렇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여기에 앉아 있잖아요. 갈 때가 없잖아요
이게 핍박 아닙니까? 이게 우리나라인데 정말 모든 것이 다 편리하게 되어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에버랜드에 가도 마찬가지고 제가 몇 년 전에 우리 집사람과 제주도 티켓을 누가 사주어서 가는데 제주도에 내려 관광버스를 타고3일 동안 돌아다니는데 관광버스 안내하는 여자가 우리를 앉혀놓고 음담패설부터 시작해서 우리를 데리고 노는 겁니다.
한사람씩 노래를 시키는데 우리는 제일 뒤에 앉았는데 유행가를 부르면서 나중에 우리차례가 와서 우리보고 부르라는 겁니다. 노래 아는 것도 없지만 안 한다고 꾸짖으면서 그 안에서 술 먹고 춤추고 이러고 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여! 쉬려고 왔다가 완전히 고역이군요? 그래서 그 다음날부터 그 버스를 안타고 우리끼리 다녔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가 기독교인이 많은 나라지만 그 안에 분명히 기독교인이 앉아 있을 겁니다. 그분들은 같이 놀아 줍니다. 그런데 안 되겠더군요. 그래서 아! 이것도 엄청난 핍박이구나.
여러분들은 그런데 가면 같이 놀아 줍니까? 여기 앉아 있는 분들은 아마도 그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같이 유행가 불러주고 그러지는 않겠지요.
하나님께서 이런 걸 이렇게 보면서 핍박이 없으면 우리가 근방 변질되어 버립니다. 기독교도 1세기 때 핍박이 많이 왔고 313년까지 핍박이 쫘악 왔습니다. 소위 카타콤시대라고 제가 말했잖아요. 그러다가590년이 되어가지고 그레고리1세가 첫 로마교황이 되었는데 그때부터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핍박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기독교인들이 행세를 하고 기독교인들이 힘을 쓸 때입니다 그래가지고1000년 동안 로마교회가 전혀 핍박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1000년 동안 로마교회가 다 부패해버린 겁니다. 
거기에서 종교개혁자들이 나와 가지고 그분들이 너희들 왜 이러느냐 하니까 다시 말하면 루터 같은 사람들 칼빈 같은 사람들이 나와 가지고 너희들 왜 이러느냐 하면서 회개하자 하니까 그 사람들을 그냥 핍박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따라 다니든 종교개혁자들이 다 감옥에 들어가고 죽임을 당하고 그랬습니다. 그런 패턴이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편해지면 변질되는 게 우리 사람입니다. 제가 말씀을 맺겠는데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꼭 핍박이 있어야 되나요. 왜 핍박이 꼭 필요합니까?
제가 대답을 다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결론적으로는 특별히 예정론에 의하면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내가 너를 특별히 잡아다가 쓰기 전에 이미 너를 하늘나라에 높은 계급에 앉혀놓고 나중에 영원한 세계에서 지도자대열에 있는 그러한 사람이라고 내가 예정을 해놓고 내가 너를 그 자리에 앉혀놓고 그 자리에 앉기 전에 면류관을 주기위해서 너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그걸 너는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거기에 예정된 사람이니 너는 이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뜻을 이루어야 된다. 그런데 너가 내가 원하는 뜻을 이루려면 이 세상에 모든 것이 편하면 너는 너 눈이 이 세상에만 가 있게 된다.
내적인 세계와 하늘나라세계의 눈이 어두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너는 핍박을 받아야 된다. 이 세상에 눈을 뜨지 못하게 그래서 하나님께서 핍박을 주기 시작하는 겁니다. 괴롭습니다. 그렇지만 이 비밀을 깨달을 때는 핍박이 핍박으로 느껴지지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들 특히 이방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핍박을 받고 있는 불교지역이나 공산지역이나 이슬람지역에 사람들을 돕는 일을 저희들이 하고 있는 우리기 때문에 우리도 동시에 같은 보이지 않는 핍박 속에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지만 그분들을 이해하고 주님의 뜻을 우리가 깊이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받는 핍박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로 올 수가 있습니다.
편치 않는 가운데서 이 일을 하도록 하나님이 하시는 겁니다.
펀치 않는 가운데서 그런데 이 속에는 기쁨이 꽉 차 있는 겁니다.
그냥 비전이 보이고 하나님이 가까이 와계신 것을 내가 매일 느끼고 그분과 대화하며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겁니다. 어려운 가운데서 한걸음, 한걸음 이어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삶이 재미있습니다. 아주 재미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핍박을 주시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많은 사람이 아니고 소수라 그랬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 소수는 이 핍박 속에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 우리같이 목사들만이 아닙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을 위해서 뒤에서 기도해주는 기도그룹들 뒤에서 일하는 스텝들 여러모로 이 일을 위해서 정성을 드리는 모든 분들 이분들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훈련을 시킵니다.
그래서 초점을 거기다가 맞추도록 훈련을 시팁니다. 어떤 때는 일이 잘 안 풀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기가 막히게 쫘악 풀어주시고 이렇게 가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매일 경험하면서 가도록 하나님이 쫘악 이끄십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패러독스(paradox)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계속해서 면류관의 크기를 만드는 일을 우리가 하고 있는데 그런데 이 면류관은 구원하고 달리 구원은 한번 받으면 특별한 일을 빼놓고는 이게 무효화되지 않지만 면류관관은 증감이 됩니다. 증가하고 어느 정도 쌓았는데 내가 어떤 실수로 하나님마음을 불편하게 했으면 이게 다시 격감이 됩니다.
면류관이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그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요한에게 하신 말씀이 계시록3장11절에 그랬습니다. 내가 속히 임하리니 빌라델비아 교회가 착한 일을 많이 한 교회입니다 그 교회도 교회적인 차원에서 그럽니다.
교인들도 마찬가지로 내가 가진 것을 굳게 잡어라 아무나 내 면류관이 빼앗지 못하게 깨어서. 깨어서 계속해서 전진하라는 겁니다. 
면류관 상급은 이게 빼앗길 때가 있습니다. 줄어드는 때가 있습니다.
언제 줄어드는지 아십니까? 주님의 재림을 향해서 우리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우리가 총력 을 다해야 되는데 총력 을 다하는 과정 속에서 내가 지금 면류관을 가지고 있는데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행동을 하지를 않습니다. 예컨대 총력 을 다하는 일에 방해역할을 하는 그런 일을 할 때 하나님께서 면류관 상급을 떨어뜨려 놓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예컨대 분리한 일을 하거나 이 일에 악역을 하는 겁니다. 
질투가 있어서 다툼을 만들어서 화평을 깨거나 자기 욕심이 그 안에 있거나 자기 영광을 위해서 하거나 이런 모든 부분에서 이 일을 위해서 가고 있는데 뭔가 건들려 놓습니다. 그러면 저는 탁 봅니다. 아하! 저분 영광이 떨어지는구나? 그러니까 조심해야 합니다. 항상 이렇게 큰 대 사명을위해서 내가 최선을 다하면서 내가 한 구석에서 모두 연결된 우리 몸에 연결된 바디가 잘 윤활유를 바르면서 갈 수 있도록 해주는 화평의 일을 하면서 가줄 때 하나님이 계속해서 면류관을 쌓아줍니다 그런데 이것이 자꾸 방해역할을 하면서 가면 하나님께서 그러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잡아다가 던지기도 하고 무섭습니다. 특히 선교 일에 거기에 동조해서 갈 때는 하나님께서 엄청나게 기뻐하십니다. 이게 최전방의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편하게 사시려면 여기에 끼지 않는 게 좋습니다. 끼였다 하면 같이 가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방해 일을 하면 이게 가는데 어려워집니다. 휘청휘청하면 하나님께서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면류관 쌓는 일을 같이 해주어서 지혜로운 자가 되어가지고 같이 쌓으면서 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서로사랑해주고 서로케어해주고 모든 것이 내 눈에 안차도 인내로 참아주고 그러면서 같이 가자 그러면서 계속가주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런 걸 보면 기뻐하십니다. 까칠까칠 하는 일 절대로 그러지 마세요. 그렇게 하면 손해 봅니다. 저는 이런 걸 보면서 저분이 손해 보는구나.
자기 나름대로 굉장히 똑똑하다고 하는데 손해 보는구나. 이러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오! 주님 그러지 않고 같이 쫘악 갈 때 주님이 기뻐하시니까 여기 나온 분들은 예외 없습니다. 벌써 면류관을1cm쌓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계속해서 쌓기를 바랍니다. 면류관을 쌓는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피스메이커해주는 일입니다 서로 격려하고 힘주면서 우리 야! 같이 가자 이렇게 하면서 계속 같이 갑시다. 오늘 제가 세 번째 패러독스(paradox)로 왜 선자들이나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도들이 핍박을 당해야만 했는가? 
거기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n1qTLncPWjo&list=PLtkvObidqrDQzO7s6LdE1QW17YzkwN1Vu&index=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