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

16강. 요한복음8장1절-59절, 진리가 참 제자들을 자유케 하리라

변명섭 2021. 10. 6. 07:32

요한복음강해 16강. 진리가 참 제자들을 자유케 하리라.(요8:1-59)

오늘 저희들이 요한복음8장 말씀을 공부할 터인데 오늘 말씀은 우리 기독교의 교리 중에서 아주 가장 중요한 교리 중에 하나를 다루게 될 터인데 이 말씀이1절에서59절까지 있는데 제가 중요한 두절만 읽겠습니다.

8장31절과32절입니다. 31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진리(예수님)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 말씀을 설명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8장 전체를 할애하셨습니다. 8장 전체가 어떻게 보기에는 그냥 이야기의 나열인데 그 안에 많은 비밀의 말씀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오늘 그 말씀들을 같이 보려고 그럽니다. 우리가 지난시간에는 초막절이야기를 했습니다.

7잘에서 예수님이 초막절말씀을 끝내시고는 8장1절을 보시면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니라 그랬습니다. 감람산에 가서 산에서 주무신 게 아니고 감람산 가까이 있는 마을이 어디냐면 벳바게라는 마을과 베다니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베다니는 누구의 집이었습니까? 마르다와 마리아 나사로의 집입니다

그 집에 가셨다는 말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그 집에 주무시고 다시 일어나셔서 그다음 날 아침에 2절에 보면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그냥 계신 게 아니고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가르치고 계신데 갑자기 3절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가지고 예수님께 말하는 겁니다.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 율법에 이런 여자는 돌로 치라 명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는 겁니다. 요한은 6절에 여기에 대한 말씀을 이렇게 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그러는 겁니다. 이분들은 예수님이 율법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율법에서 지난번에도 악식 일을 예수님이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 했거든요 안식일 날 병자도 고치고 그랬으니까 그리고는 이번에 다시 고소조건을 제공하는 겁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몸을 굽히면서 땅에 손가락으로 뭘 쓰셨다 그랬습니다. 쓰고 있는데 이분들이 예수님께 계속 묻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러니까 대답하시는 겁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이렇게 예수님이 말씀 하셨잖아요.

그러면서 예수님이 다시 몸을 굽히셨습니다. 그래가지고 손가락으로 땅에다가 또 뭘 쓰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9절에 그랬습니다. 이분들이 양심에 가책을 받아서 윗 어른 나이든 사람부터시작해서 하나하나씩 젊은이까지 나가고 예수님과 여자만 남게 된 겁니다. 예수님이 이 여자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너를 고소하는 자들이 어디에 있느냐 그러니까 이 여자가 보니까 없잖아요

11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렇다면 간음한 여자를 돌로 쳐서 죽이는 그러한 규례가 구약어디에 있습니까?

그 규례를 신명기22장23절에서24절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신명기22장23절에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을 했습니다.

약혼 한 후에 이 여자가 약혼을 한 남자 몰래 어떤 딴 남자와 통간을 했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느냐면 너희는 그 둘 다 그러니까 그 여자와 그 여자를 겁탈한 남자를 성읍에서 끌어내어서 돌로 쳐서 죽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돌로 쳐서 이런 성범죄를 한 사람을 죽이라는 말씀이 여기에 나옵니다. 신명기22장23절에서24절입니다. 이 외에는 돌로 쳐서 죽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죽이라는 말은 있지만 돌로 치라는 말이 없습니다.

이것을 배경으로 해서 여호와가 이렇게 구약의 율례를 주었는데 그 여호와가 누굴까요. 우리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이 율례를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첫 번째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는 구부리고 글을 쓸 때 뭐라고 썼겠습니까? 이 말씀과 대비하면서 보세요. 저는 이렇게 생각이 드는 겁니다. 첫째 이 여자에게 또는 이 사람들이 다 보는데서 이 여자가 너희들이 보기에 약혼한 처녀냐? 이걸 아마 썼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간통한 남자는 어디에 있느냐? 분명히 예수님이 이렇게 썼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에 대해서 너희들이 돌로 쳐 죽이려고 하니까 이 여자만 돌로 치면 안 되잖아요. 아까 신명기22장에서는 누구까지 같이 쳐야 됩니까? 그런데 이 여자가 일반여자면 돌로 치면 안 됩니다. 그런데 꼭 약혼을 한 여자야만 되는 겁니다. 돌로 맞으려면 아마 두 번째는 뭐라고 썼을 것 같습니까? 이분들이 거기서 아마 양심에 가책이 있었다고 그랬잖아요.

두 번째는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아마 신명기22장23절24절 말씀을 썼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구약에 바싹한 사람들입니다 이분들이 그 말씀에 의하면 이 여자는 돌로 치면 안 되겠구나 라고 아마 깨달은 것 같습니다.이렇게 참고로 하시고 그다음에 간음 중에 잡힌 여자 사건은 성경에는 요한복음에만 나옵니다. 다른 복음에는 안 나옵니다 그런데 성경에 많은 사본들이 있습니다. 사본들이라는 것은 성경 오리지널 원본이라 그러지 않습니까? 오리지널 성경은 없습니다.

주님께서 아예 없애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오리지널을 자꾸 카피한 겁니다.

카피한 것들을 사본이라 그럽니다. 카피한 것들 중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카피한 사본들이 많은데 초기에 사본들을 보면 요한복음8장에 나오는 간음 중에 잡힌 여자사건이 없습니다. 어떤 사본을 보면 이것이 없습니다.

이 이야기가 요한복음인데도 그래서 8장12절부터 나옵니다.

11절까지 간음 중에 잡힌 여자사건은 없습니다. 어떤 사본은 그러다가 나중에 어떤 다른 사본들을 보니까 초기사본들을 보면 거기에는 이 말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도대체 없다가 이 말이 성경에 있습니까? 이것가지고 신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한 겁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도 그러는 겁니다.

초기사본들이 잘못 되었다고 보는 겁니다. 원본에는 분명히 간음 중에 잡힌 여자사건이 분명히 있었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영어성경 NIV에도 보면 이 사건을 괄호를 쳐놓았습니다. NIV라는 성경도 100% 믿을 만한 성경은 아닙니다. 왜냐면 우리 요한복음의 구조를 보면 어떻습니까?

요한복음의 구조를 성령님이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어떤 사건을 던져놓고 장마다 그다음에 그 사건과 관계되는 영적의미를 설명해 줍니다.

요한복음은 항상 그랬습니다. 요한복음2장에는 무슨 사건이 있었습니까?

가나의 혼인잔치사건이 있었습니다. 3장에는 니고데모사건입니다

4장에는 무슨 사건이 있었습니까? 사마리아여자사건입니다 그다음에 5장에는 무슨 사건이 있었습니까? 베데스다연못사건입니다 6장은 무슨 사건이 있었습니까? 5병2어 사건입니다. 7장은 초막절사건입니다 그러다보면 구조적인 측면에서 봐도 8장에서는 간음한 여자의 사건이 있어야 됩니까? 없어야 됩니까? 있어야 되는 겁니다. 간음한 여자의 사건을 가지고 이 사건을 등장시켜가지고 최소한 네 가지의 깊은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는 겁니다. 그래서 첫 번째는 뭐냐면 예수님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이 사람들이 도대체 누군가? 예수님이 누군가? 예수님의 정체성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정체성을 8장에서 쫘악 설명하는 겁니다. 그리고 율법의 정체성 율법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 정의가 무엇인가? 이것을 8장에서 쫘악 설명해줍니다.

그다음에 율법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 이걸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율법과 구원과의 관계성 또 율법과 성화와의 관계성 상관관계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참 제자가 되는데 참 제자는 율법에서 자유를 가지게 된다는 겁니다.

이것을 설명해주는 겁니다. 오늘 이 네 부분을 우리가 심도 있게 공부하기를 원합니다. 요한복음8장의 구조가 첫 번째 간음 중에 잡힌 여인 8장1절에서11절에 두 번째로 정체성을 증거 하시는 예수님 8장12절에서59절입니다.

1. 예수님자신의정체성이 있습니다. 2. 율법 안에 있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정체성을 예수님께서 증거 하십니다. 예수님12절부터59절 전체에 이 두 가지를 증거 하십니다. 세 번째로 진리가 참 제자를 자유케 한다는 겁니다.

8장31절에서32절입니다. 네 번째로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면 영생한다는 말씀입니다. 8장51절에서52절입니다. 이렇게 해놓고 이 구조 속에서 두 번째 정체성을 증거 하는데 예수님자신의정체성을 증거 하는 겁니다.

8장12절에서59절입니다. 이 안에 보면 예수님이 자기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여러 가지 모습으로 18가지로 표현을 했습니다. 20가지로 자기의 정체성을 20가지를 제가 하나하나 드릴 테니까 적어세요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뭐라고 말씀하느냐면 8장에서 ①세상의 빛이다 그러는 겁니다. 본인이 내가 세상의 빛이다 12절입니다. ②생명의 빛이다 12절에 ③참 증거자다 14절에

④참 판단자다 16절에 ⑤자신을 위해서 증거 하는 자다 18절에 ⑥아버지께서 증거 해주시는 자다 18절에 ⑦낙원으로 가시는 자다 21절에 ⑧위에서 나시는 분이다 23절에 ⑨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시는 분이다 23절에서 그랬습니다.⑽아버지께서 들은 것을 말하시는 분이다 26절에 ⑾아버지와 함께하시는 아들이다 29절에 ⑿본인이 인자시다 인자라는 뜻은 하늘에서 내려온 자라는 뜻입니다. 8장28절에 ⒀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시는 자다 29절에 그랬습니다. ⒁진리를 말하시는 자다 45절에 ⒂아버지를 공경하면 아버지의 영광만을 구하는 분이다 49절과50절에 그랬습니다.

⒃영생케 하시는 자다 51절에서52절에 ⒄아브라함보다 크신 분이시다 53절에 그랬습니다. ⒄2천 년 전 아브라함을 방문했던 분이다 56절에 그랬습니다. ⒅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계셨던 분이다 58절에 그랬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자기의정체성을 지금 8장에서 열여덟 가지로 나타내셨습니다. 그다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정체성입니다 이것은 15가지로 주셨습니다. ⑴어두움에 다니는 자들이다 12절에 ⑵생명의 빛을 얻지 못한 자들이다 12절에 ⑶세상의 빛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다 12절에 ⑷예수님이 참 증거자 되심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13절에서14절에 ⑸육체를 따라 판단하는 자들이다 15절에 ⑹예수님과 아버지를 모르는 자들이다 19절과27절에

⑺죄 가운데서 죽을 자들이다 21절24절에 ⑻낙원에 오지 못할 자들이다 21절과35절에 ⑼아래서 난 자들이다 23절에 ⑽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다 23절에 ⑾예수님을 사마리아인 또는 귀신들린 자로 비난하는 자들이다 48절과52절에 ⑿죄의 종들이다 34절에 ⒀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인 마귀의 자녀들이다 43절에 ⒁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이 마음속에 없는 자들이다 37절에

⒂하나님말씀을 듣지 않는 자들이다 47절에 이렇게 해놓고 다음제목으로 넘어가보면 그렇다면 율법의 정의는 무엇인가? 지금부터 굉장히 주요한 개념들인데 우리 크리스천들이 이 부분이 약합니다. 혼돈스럽게 배워온 일들이 많습니다. 율법의 정의는 뭐냐고 그럴 때 율법을 갈라디아서3장24절에 뭐라고 그랬냐면 몽학선생이라 그랬습니다. 몽학선생이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가정교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율법은 뭐냐면 성서전체에서 적어도 열두 가지로 표현을 합니다. 이것을 하나하나 음미했으면 좋겠습니다.

⑴죄를 깨닫게 하는 법입니다 로마서3장20절에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하니까 용서를 주기위한 몽학선생입니다 우리가 죄를 깨달았으면 그다음에 율법이 몽학선생이니까 무엇을 주려고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합니까? 용서를 주기 위해서 죄를 깨닫게 하는 겁니다. 이 개념을 잊지 마세요 그러니까 율법을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죄를 깨닫게 해서 용서를 주시기 위해서 그래서 용서의 몽학선생입니다. ⑵율법이 심판을 하기위한 법입니다 로마서3장19절에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심판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겁니다.

그러니까 몽학선생이니까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 율법이 은혜의 몽학선생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우리가 죄를 심판받으니까 심판을 안 받게끔 하도록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 주신 겁니다. ⑶하나님의 진노를 보여주기 위한 법입니다 로마서4장15절에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뭐냐면 율법은 우리에게 긍휼을 보여 주기위한 몽학선생입니다 ⑷율법이 쓴 뿌리를 들어 내주는 법입니다 로마서7장7절부터13절입니다. 이것은 뭘 말합니까? 율법이 성화로 이끌어주는 몽학선생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깨달으면 내가 성화로 가도록 길을 가이드해주는 겁니다. ⑸율법이 또 죄의 법이라고 그랬습니다. 로마서7장25절에 죄의 법이니까 우리를 의의 법으로 이끌어주는 몽학선생입니다

죄를 깨닫게 한 다음에 ⑹사망의 법이라고 그랬습니다. 로마서8장2절에 생명의 법으로 이끌어 주는 몽학선생입니다 ⑺율법이 그림자 또는 모형이라고 그랬습니다. 히브리서8장5절에 실체이신 예수님을 보여 주기위한 몽학선생입니다 ⑻율법을 비유라 그랬습니다. 히브리서9장9절에 실체인 예수님을 보여 주기위한 몽학선생입니다 ⑼율법을 저주의 법이라고 그랬습니다. 갈라디아서3장13절에 축복의 몽학선생입니다 축복을 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법을 주신 겁니다. ⑽어두움의 법입니다 요한복음8장12절에 빛의 몽학선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는 세상의 빛이다 그러시는 겁니다.

⑾율법이 감옥의 법입니다 로마서8장32절에 자유를 주시는 로마서8장32절 또는 요한복음8장32절에 자유를 주시는 몽학선생입니다. ⑿율법은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이라 바울이 그랬습니다. 갈라디아서4장7절에 강하고 귀한 고등학문을 보여 주기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그다음에 제목을 바꾸어서 율법을 주신 두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 목적이 율법이 구원으로 이끄는 몽학선생임을 보여 주기위해서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내가 구원받을 수 있구나.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몽학선생입니다 로마서3장부터4장5장에 그 말씀이 있습니다. 로마서3장4장5장이 이것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율법을 왜 우리에게 주었냐면 우리가 성결로 이끄는 길로 가도록 이끄는 몽학선생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이 성결한 삶을 살도록 그것이 로마서6장7장8장에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로마서3장부터8장까지가 기독교의 아주 중요한 교리입니다 구원교리와 성결 교리를 여기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성결로 이끄는 성경구절을 제가 쫘악 드렸는데 우선 구원으로 이끄는 몽학선생을 우리가 잠깐 봅시다. 로마서3장19절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게 하려함이라 로마서3장19절에 율법의 첫째 목적이 구원으로 이끄는 몽학선생입니다

⑴율법을 주신 목적이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게 하기 위해서 율법을 준 겁니다.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게 하기 위해서 로마서3장19절에 그랬습니다. ⑵깨닫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원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다는 겁니다. 로마서3장20절에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다음에 로마서5장13절에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로마서5장20절에도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왜냐면 율법을 인간이 지킬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주신 목적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려고 아무리 애써도 우리는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로마서5장20절에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율법에 가입되면 죄를 더 짓게 된다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입니다 ⑶율법이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다주는 도구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로마서4장15절에 율법이 하나님의 진노를 도구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로마서4장15절에 이렇게 해서 율법은 우리에게 주신 목적이 율법을 통해서 나는 죄인이구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유럽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의에 내가 이룰 수가 없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몽학선생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위한 몽학선생이 율법이라는 겁니다. 두 번째 율법이 구원을 주신 목적이 뭐냐면 우리를 이렇게 구원 받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현상으로 닮아가도록 성결로 이끄는 몽학선생이라는 겁니다. ⑴로마서7장7절에서13절에 우리 속에 있는 쓴 뿌리를 들어내기 위해서 쓴 뿌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다는 겁니다.

로마서7장7절에서13절에 ⑵우리가 영의 사람들인데 육신에 속한 자라는 겁니다. 법적으로 영의 사람인데 육신에 속한 자라는 겁니다.

로마서에서는 그랬습니다. 육에 속한 자라는 것은 뭐냐면 이것은 예수 안 믿는 사람을 이야기할 때 육에 속한 자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육신에 속한 자라는 것은 뭐냐면 영의 사람인데 행동은 세상처럼 하는 것을 그러니까 성령의 열매가 맺히지 않는 사람들보고 이야기하기를 육신에 속한 자라고 그러는 겁니다. 이걸 구별하셔야 합니다. 육에 속한 자와 육신에 속한 자가 차이가 있습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육신에 속한 자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로마서7장14절에서25절에 그다음에 세 번째로 우리 크리스천들 속에 특히 육신에 속한 자 속에 두 법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두 법이 이것을 또 두 마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이런 말씀입니다 두 법이라는 것이 뭐냐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는 법이 있고 또 죄의 법 죄와 사망의 법이라고 그럽니다. 이 두 법이 우리 속에 있다는 겁니다. 로마서8장2절에 또는 로마서7장25절에 그래서 사도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로마서7장 마지막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내 속에 이 두 법이 있구나. 죄와 사망의 법 생명의 성령의 법 두 개가 있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이겨나갈까 율법을 가져다가 비추어보니까 우리 속에 이것이 보이는 겁니다. 네 번째로 예수님 안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다는 것을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다는 겁니다. 로마서8장2절에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로마서8장의 크리스천들은 성화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내가 완전히 해방당한 사람을 이야기할 때 로마서8장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걸 기초로 해서 율법과 구원 상관관계를 깨달으면 진리 안에서 자유를 가지는 겁니다.

그러면 율법과 구원의 상관관계는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의롭게 된다는 것은 내가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지금주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시는 겁니다.

왜냐면 여기에 보면 율법을 지키는 것은 갈라디아서2장16절에 뭐라고 쓰 있습니까? 너희들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율법은 제로입니다. 하나도 못 지킵니다. 지금 간음한 여자 이야기 했잖아요. 우리 산상수훈에서 배웠습니다. 예수님의 본래의 율법은 무엇입니까? 이성을 보고 이상한 생각을 하면 그 자체가 간음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벗어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모든 사람은 다 거기서 이미 끝나버리는 겁니다. 지금 이 여자문제 이것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진짜 율법은 감음하는 생각만 해도 그것은 벌써 끝났다는 소리입니다 또 뭐라고 그랬습니까? 살인도 저 사람이 너 왜 그래 하면서 누굴 비판만 해도 누구에 대하여 부정적인 이야기 한마디만 해도 그것은 살인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제로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사야서64장6절에 뭐라고 그랬습니까? 사람의 모든 선한 행위는 우리 주님의 눈으로 볼 때 걸레조각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의로운 행동으로 그분 앞에 의롭게 된 게 아니라는 겁니다. 갈라디아서3장10절이 다 그런 소리입니다 갈라디아서3장10절에 이랬습니다. 율법에 행위에 속한 자는 율법 가지고서 의롭게 되려고 하는 사람은 저주 아래에 있느니라. 그랬습니다. 갈라디아서3장10절에 기가 막힌 말 아닙니까? 율법가지고 내가 잘났다고 폼을 재면 너는 저주 받음 사람이라는 겁니다. 갈라디아서3장13절에도 똑같이 율법은 저주의 상징이다 그랬습니다.

갈라디아서3장20절에도 똑같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는 모든 인간은 저주아래 있느니라. 그랬습니다. 로마서3장20절에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을 받은 이유가 행위로 구원을 받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누구 때문에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 그럽니까? 예수님 때문에 그래서 율법은 그리스도를 향한 몽학선생이라 그랬습니다. 보세요.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서 100%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한 겁니다.

100% 그래서 갈라디아서3장13절에 뭐라고 그러는지 아십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은 것은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제로로 만들어 가지고 본인이 100%가 되기 위해서 구원을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저주를 받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저주를 받으시면서 뭐라고 그랬습니까? 엘리 엘리 라마사막다니 아버지, 아버지 왜 저를 이렇게 저주하십니까? 예수님께서 법적으로 저주받으시는 겁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우리를 속량하려고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양자의 권한을 주시기 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의 명분을 받은 겁니다. 갈라디아서4장4절에서5절입니다. 4절에 때가 차며 하나님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누굽니까? 마리아입니다 처녀에게 나게 하시고 여자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4장4절은 여자의 후손 창세기3장15절과 연계가 되어 있습니다.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우리가 보통 애기가 태어나면 아버지이름이 있잖습니까? 여기는 아버지가 없기 때문에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아래 나게 하신 것은 예수님이 율법 속으로 들어오신 겁니다. 5절에 그랬습니다. 율법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양자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율법 속에서 자유를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 이분이 이렇게 오셨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까지 정리하면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첫 번째 목적이 무엇입니까? 구원을 허락해주시기 위해서 율법이 구원의 몽학선생이 되는 겁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우리는 구원을 받으려면 구원은 무료선물이라고 그랬습니다. 에베소서2장8절과9절에 나옵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니고 무료선물이라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료선물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다는 겁니다. 도저히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 없다고 고백하게 만들어 놓은 다음에 여기 있다 이것 먹어라 이렇게 하시려고 율법을 주셨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된 존재라는 겁니다. 이 말이 뭐냐면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인간은 1%도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기준 속에서 볼 때 인간은 완전히 타락된 존재라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선행을 통해서 구원 받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인간은 그러기 때문에 완전한 율법 때문에 저주의 존재라는 겁니다.

율법의 저주 속에서 있는 존재라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결론은 무엇입니까? 왜 율법을 주셨습니까?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양자의 명분을 얻게 되는가? 예수님이 요한복음에서 이걸 계속 설명하는 겁니다.

첫째 니고데모와의 장면에서 예수님이 요한복음3장16절 말씀을 하신 겁니다. 우리가 잘 아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이게 중요한 겁니다. 믿어야 되는 겁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하셨다는 것을 율법 가지고는 안 된다 율법은 저주다 우리인간은 완전히 타락된 존재다 이것을 우리는 믿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 양자가 된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요한복음5장24절에 주님이 또 말씀하셨습니다. 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 말을 듣고 그다음에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5장24절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또 바울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에베소서2장8절에서9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 말씀들은 항상 외우시고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에베소교인들에게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이게 무료선물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너희율법을 통해서 율법을 지켜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물이라 율법은 제로라는 겁니다. 행위에서 율법을 정당하게 지켜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에베소서2장8절에서9절입니다.

이렇게 해서 율법은 첫째 구원을 우리에게 주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목적은 우리를 성결로 이끄는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만들어주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다는 겁니다. 이 부분은 우리에게 상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율법과 성화의 상관계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마태복음5장48절에서 특히 마태복음5장7절에 하신 말씀 기억나세요. 내가 율법을 패하러 온 것이 아니고 율법을 완전케 하려 왔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패하러 온 것이 아니고 지금 마태복음5장은 성결과 관계되는 말씀들입니다

여기 말씀을 보시면 우리가 온전하게 된 것은 누구 때문에 온전하게 되었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온전하게 된 겁니다. 다시 말하면 법적으로 이 말이 뭐냐면 예수님이 어떻게 하였냐면 이게 우리생활 속에 대입시키는 겁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사랑을 베풀었다는 겁니다.

일방적으로 그러니까 예수님의 사랑이 100%입니다 우리는 율법을 하나도 안 지켰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온전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법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말씀하시는 게 주님이 산상수훈에서 마태복음5장에서 이러는 겁니다. 5장39절에서44절에 예수님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예전에는 너희들에게 누가 너 눈을 뽑아버리면 너도 그 사람 눈을 뽑아라. 그랬습니다. 누가 너 손을 자르면 그 사람 손을 잘라라

율법이 그렇게 했는데 지금부터는 그게 아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겉옷을 달라면 속옷도 주어라 그러니까 지금은 무조건 주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으니까 누가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갖다 대어라 오리 가자고 그러면 십리도 가주어라 돈 꿔 달라면 그냥 주어라 원수를 사랑해라 그랬지 이제는 원수를 위해서 기도까지 해주어라 그러는 겁니다,

일방적으로 예수님을 따라 가려면 다 이렇게 하라는 겁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율법 쪽으로는 제로로 만들어놓고 사랑 쪽에 무게를 두고 사랑 쪽으로 100%하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게 쉽지 않습니다. 왜냐면 로마서13장10절에 그랬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그랬습니다. 이 말이 뭐냐면 사랑을 100%해야 되고 율법은 제로로 하라는 겁니다. 또 로마서13장8절에 그랬습니다.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 그랬습니다. 로마서13장8절에 사도바울의 모든 편지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라. 어떻게 살라는 내용을 보면 다 이 소리입니다 사도바울이 너희들이 이제는 율법으로 살지 말고 사랑 안에서 살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로마서12장9절에서21절에 말씀들을 쭈욱 보면 너희들은 이제부터 마음을 새롭게 하여 이 세상을 닮아가지 말아라. 하시면서 주욱 하시는 내용을 보면 형제를 사랑해라. 우애해라. 열심히 주를 섬겨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 환란 중에 참아라. 기도에 힘쓰라 성도를 도울 것을 서로 도와 나누어 주며 서 도와주어라 핍박 자를 축복해라 악을 선으로 이겨라 화평 하라 원수를 갚지 말라 원수를 위해서 기도해주라 등등 이런 모든 말씀을 하신 게 사랑 쪽을 100%채우라는 겁니다.

이게 성화라는 겁니다.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겁니다. 율법으로 사람을 보지 말고 그러니까 천국에 가서 높은 사람이 되려면 어떤 사람이 높아집니까?

사랑 쪽을 얼마만큼 많이 행하였냐. 입니다. 우리 크리스천 중에 어떤 사람들은 율법 쪽이 80%고 사랑 쪽이 20%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교회에 많으면 어떻게 됩니까? 시끄러워지는 겁니다. 교회법은 이런데 이것은 저런데 왜 저 사람은 저렇습니까?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고 그래서 티눈 이야기합니다. 어떤 교회는 50%50%가 있습니다. 이정도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율법이 20%되고 사랑이 80%되는 우리 AMI공동체는 적어도 이 정도 되어야 됩니다.

20% 80% 0% 100%는 힘들겠지만 천국에 가서 우리의 포지션이 결정이 어떻게 되느냐면 우리의 계급이 이것이 얼마만큼 퍼센트지에 따라서 결정되는 겁니다. 그 말 이해되세요. 우리가 성서를 아무리 많이 알아도 결론적으로 많이 알고 교만해지면 이쪽이 높아지는 겁니다. 율법이 높아지는 겁니다.

은혜 쪽이 약해지는 겁니다. 그러면 안 되잖아요. 우리가 말씀을 많이 배울수록 퍼센트지가 바뀌어져야 되는 겁니다. 이것을 깨달은 바울이 우리가 즐겨 쓰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걸 바울이 즐겨 씁니까? 갈라디아서2장19절에서20절을 우리크리스천들이 아주 즐겨 씁니다. 뜻도 모르고 즐겨 합니다.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갈라디아교인들에게 율법과 은혜를 설명해주는 게 갈라디아서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갈라디아교인들에게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이 율법 속에서 살면 안 된다는 겁니다. 너희들은 은혜 안에서 살라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갈라디아서사람들이 바울이 1차 여행 때 남 갈라디아 쪽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잖아요. 바울이 1차 여행 때 복음을 전하고 와가지고 갈라디아교인들 중에서 예루살렘제자들에게 배운 교인들이 반발을 하는 겁니다. 바울이 가르치는 내용이 제자들이 가르치는 내용과 다르다는 겁니다. 왜냐면 제자들이 그 당시에 가르칠 때는 율법 쪽을 많이 강조한 겁니다.

그런데 바울은 아니다 율법이 아니고 은혜다 이렇게 하니까 예루살렘 쪽에다가 보고를 하는 겁니다. 이 사람(바울이)이 우리에게 이상한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이 알고 있는 복음이 잘못된 복음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갈라디아교회다가 설명을 하는 겁니다.

율법보다 은혜가 더 중요하다 복음의 핵심이 그것이라는 겁니다.

그것을 설명하는 게 갈라디아서입니다 그러면서 2장19절을 보세요.

내가(바울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행하여 죽었나니 그랬습니다.

나는 이제 사람들을 율법적으로 안 본다는 겁니다. 잣대로 이웃을 정죄할 능력이 없다는 겁니다. 율법가지고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기 위해서 그렇다는 겁니다. 거꾸로 내가 모든 사람을 용서해주고 사랑해주고 이럴 때 자기가 살아난다는 겁니다. 은혜가 퍼센트지가 이쪽이 높아진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20절에 말씀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20절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사람들을 보면 이런 생각으로 20절을 좋아하는 게 아니고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서 20절을 좋아 합니다. 20절을 보세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제 나는 율법을 다 못 박아버렸다는 겁니다. 이웃을 상대로 해서 정죄하고 용서 못하고 눈을 눈으로 이를 이로 갚는 자기의 옛날모습 이것을 다 십자가에 못 박아버렸다는 겁니다. 나는 용서해주고 은혜를 베풀어주고 하는 그것으로 이제 바뀌었다는 겁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의의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거라는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산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이게 구원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예수님의 성품으로 나는 살고 있다는 겁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로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바치신 희생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그러니까 이분의 삶을 닮아가는 그런 믿음 안에서 나는 살고 있다는 겁니다. 이 말씀을 자기가 잘못해놓고 아! 나는 십자가에 못 박혀서 이런 수준이 아니라는 겁니다. 내 삶의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지는 겁니다. 모든 사물을 볼 때 내가 예수님을 닮아가야 되는구나.

옛날에 율법적인 사고방식은 그런 삶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다는 겁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겁니다. 왜냐면 내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이분에게서 무료로 그래서 갈라디아서4장7절에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은 이제 율법에 종노릇을 하지 말고 예수님의 형상으로 옷을 입어라

이제 하나님아들의 명분이 되었으니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인 율법에 종노릇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갈라디아교인들이 율법에 아주 강했습니다.

날짜, 달, 절기, 해를 지키는 이런데서 자유 하라 그랬습니다.

갈라디아서4장7절에서11절에 그것을 지키는 것은 그것을 지키는 그것이 너희들을 온전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거기에서 자유 하라 그래서 지금부터 중요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지금 말하는 겁니다. 오늘 요한복음8장에서 그러는 겁니다. 진리가 너희를 율법에서 자유롭게 해준다는 겁니다.

오늘 요한복음8장32절 본문의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똑바로 알게 되면 진리를 똑바로 알게 되면 율법에서 자유를 가지게 된다는 겁니다.

왜냐면 로마서10장4절에 그랬잖아요. 예수님이 율법의 마침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알게 되면 내가 율법을 지키는 자처럼 되고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느냐면 사랑으로써 율법의 마침이 된다는 겁니다.

사랑은 율법을 다 이룬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이 율법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 온 거라는 겁니다.

너희들은 제로가 되고 내가 100%가 되어 줄게 이러기 위해서 내가(예수님이) 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진리가 참 제자들을 율법에서 자유케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는 자들은 참 제자가 되는데 이 참 제자들은 율법에서 자유가 된다는 겁니다. 8장36절에 뭐라고 그러느냐면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여기서 너희가 누구냐면 유대인 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한 소수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 중에 참 제자가 나오는데 그러니까 같은 유대인크리스천이지만 두 가지 크리스천이 있는 겁니다.

아주 참 제자가 있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율법이 너희들을 자유롭게 해준다는 겁니다. 너 네들은 아브라함의 아들들인데 율법이 너희들을 자유롭게 해주는 특별한 아브라함의 자녀들이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결론적인 말인데 소수의 유대인들 중에서 크리스천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누구누구입니까? 요한복음 속에 보면 니고데모, 아리마대 요셉, 그리고는 열두제자들 나중에 사도바울까지 가는 겁니다.

다 유대인출신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참 제자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율법에서 자유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 쪽에 은혜 쪽에 강한 사람들이 이렇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지막 때 소위 메시아닉 쥬들도 이쪽이 강한 유대인들이 많이 나올 겁니다. 지금 대개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면 마지막 결론적으로 도대체 자유롭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자유롭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이게 중요한 결론입니다 첫째로 율법의 무용론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다시 말합니다. 율법이 필요 없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자유롭다는 것은 내가 율법 지킬 능력이 0%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자유롭다는 사람은 우선 두 번째는 내가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날 길이 전혀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는 율법으로는 죄만 더 깨닫게 된다는 것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그다음에는 사랑만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이쪽을 강하게 100%할 때 사랑하고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고 은혜를 100%베풀 때 율법이 필요 있습니까? 없습니까? 필요 없습니다. 왜냐면 100% 이쪽을 다 했기 때문에 내가 의인이 되기 위해서는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마태복음5장48절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랬습니다. 아버지가 온전하신 것처럼 너희들도 온전 하라 그랬습니다. 이 말이 뭐냐면 아버지가 온전하신 것은 100%입니다

이100%는 아버지가 율법을 지켜서 100%가 된 게 아니잖아요. 은혜를 베푸셔서 100%되신 겁니다. 은혜를 베푸셔서 그러니까 우리가 온전해지려면 이쪽 퍼센트지를 올리는 겁니다. 은혜 쪽을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다는 것은 뭐냐면 될 수 있으면 불법에서 자유롭게 되려면 율법을 제로로 만드는 게 자유롭다는 겁니다. 율법이 있는데 이쪽을 아예 제로로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은혜 쪽으로 사는 사람 이런 사람이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이 필요한데 율법 쪽으로 내가 살지 않는 겁니다.

그러면 어떤 크리스천이 이런 자유를 누리게 될까요?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는 자라고 그랬습니다. 말씀이 내 속에 들어와서 항상 거하고 있어야 되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지식으로 배우지만 거기에서 말씀이 우리 속에 깊이 거하면서 참 제자가 되는 겁니다. 바울 같이 그러니까 바울이 이 자유를 느낀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또 문제가 있는 겁니다. 무슨 문제가 있느냐면 바울이 깨달은 걸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게 있습니다. 갈라디아서5장13절에서24절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너희들이 이제는 율법을 지켜서 크리스천이 된 것이 아니고 주님의 은혜로 되었는데 그리고 너희들은 율법 속에서 자유를 가져야 되는데 이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 난 율법이 필요 없어 제 멋대로 살고 이렇게 하지 말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예수님의 형상으로 닮아가라는 겁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나는 이제 율법과 관계없는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겁니다. 왜냐면 이쪽을 내가 강하게 하다보면 하나님의 율법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겁니다. 이게 파라독스(paradox)입니다. 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체험하면 내가 왜 이렇게 은혜를 체험하지 나를 위해서 율법의 저주를 받으신 예수님 고맙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나 때문에 이 율법을 주셔가지고 몽학선생 역할을 해주셨네요. 주님 감사합니다. 그러면 내가 주님을 기쁘게 하는 게 뭘까요?

고맙게 생각하는데 기쁘게 하는 게 뭘까요? 하는데 주님이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지상 계명을 주셨잖아요. 그러니까 이분에게 내가 잘 보이고 이분에게 내가 고마움을 내 삶 속에서 표시 하려면 뭘 해야 되느냐면 율법의 최고봉인 지상계명에 내가 순종하는 겁니다. 이제 자발적으로 하는 겁니다.

그 전에는 무엇입니까? 강제로 짐을 지고 죄의식 가지고 하지만 이제는 거꾸로 기쁨을 가지고 나에게 이러한 비밀을 주셨는데 이 복을 주셨는데 제가 주님이 가장 원하는 것을 해드리겠습니다. 성령님 나를 도와주세요.

그리고 또 뭘 좋아합니까? 지상사명을 좋아하십니까? 그러니까 선교도 전도도 즐기면서 하는 겁니다. 율법 속에서 내가 매일 해야 된다 해야 된다 안 하면 이분이 나를 싫어하는데 이런 개념이 아닌 겁니다. 이제 내가 즐기면서 하는 겁니다. 이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어께가 가볍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안 해도 그분은 좋아하십니다. 내 마음을 아실 때 그러니까 이분과 나와 깊은 사랑의 관계 속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윗도 그러잖아요. 시편1편2절에 그랬잖아요. 여호와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즐거워해야 되는 겁니다. 그게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일 날 교회 오는 것도 가라고 그랬으니까 안식일 날을 지키라고 그랬으니까 억지로 와서 지키고 헌금하라했으니까 억지로 내고 이런 수준이 아닌 겁니다. 즐거워하는 겁니다. 내가 주님께 가서 박수도 치고 말씀도 받으면서 주님 기쁘시죠. 저도 좋아요 이렇게 하라는 겁니다.

선교도 똑같습니다. 선교헌금도 기쁘게 주님이 기뻐하시니까 은행에 있는 돈 찾아서 하는 겁니다. 자투리 돈 낼까 말까 이러지 마시고 바울은 이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로마서8장2절에 기가 막힌 말씀들을 많이 있습니다.

이분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어 사망의 법에서 너희를 해방시켰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방 된 사람은 율법의 저주에서 자유 함을 받았기 때문에 8장에 보면 기가 막힌 말씀 들이 많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흥분이 되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주님께서 로마서8장26절에 우리가 좋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지금 이렇게 즐거워하지만 우리 속에는 아직도 연약함이 있잖아요. 쓴 뿌리들이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이쁘니까 탄식하는 겁니다. 왜 그런 성품을 가지고 있느냐 그러면서 이분이 나를 위해서 간구해주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러니까 일반크리스천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율법이 아니고 주님의 사랑 속에 들어오려고 하는 이 사람들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바울은 이것을 깊이 깨달은 겁니다. 깨닫고는 35절부터39절에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우리를 위해서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다는 겁니다. 이 자유를 느낀 사람은 그러니까 바울의 고백인 갈라디아서2장19절에서21절에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주님께서 율법을 지키도록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도와주십니다. 그렇겠지만 율법 속에서 우리는 자유를 느끼는 겁니다. 이제는 자발적으로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가지고 율법을 지키는 겁니다. 노예감이나 죄책감이나 의무감이나 속박감이나 중압감이나 공포감을 가지고 율법을 지키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감사와 감격과 즐거움으로 기쁨으로 주님께서 지키도록 우리에게 오늘8장 말씀을 주신 겁니다. 그래서 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간음한 여자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 비밀을 오늘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런 참 제자가 되어서 정말 주 안에서 자유를 느끼는 이런 사람이 되면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젊어 보이고 나도 그렇게 되려고 애를 씁니다.

저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젊어 보인다. 왜냐면 자유를 느끼면 그렇게 되잖아요. 우리AMI형제자매들이여 우리 다 그렇게 됩시다.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깊이 만나면서 가까이 만나면서 예수님 안에서 자유를 느끼기를 소원합니다. 한분 한분에게 이 자유를 허락해 주십시오.

지금 이 시간에 저희들이 조용한 마음으로 이 자유를 위해서 각자가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주여 성령님이시여 우리의 마음을 감화 감동시켜주셔서 성령님 안에서 율법 안에서 자유가 체험되는 우리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그동안 저희들이 율법의 모습들이 있어 왔음을 고백하며 한꺼번에 율법의 모습이 정돈되지는 않지만 성령님 이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를 깨달았사오니 우리로 하여금 날로, 날로 율법 쪽에 퍼센트지 줄여가며 은혜와 사랑과 용서와 자비 쪽으로 우리의 퍼센트지를 늘려가는 지혜자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그러므로 해서 우리는 진리 속에서 예수님 안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복된 자들로 기름 부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