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

14강. 요한복음6장1절-71절, 오병이어와 생명의 떡

변명섭 2021. 10. 6. 07:21

요한복음강해 14강. 오병이어와 생명의 떡(요6:1-71)

오늘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같이 볼 터인데 요한복음6장1절에서 마지막71절까지 너무 길어서 제가 몇 절 몇 절 선별해서 같이 읽겠습니다.

먼저 9절에서14절을 읽겠습니다. 9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37절부터40절을 읽겠습니다.

37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아멘

44절을 보세요. 44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58절을 보세요.

58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또 64절입니다,

64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그리고 70절71절입니다. 70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71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아멘. 오늘도 량이 만을 것 같습니다. 6장은 특별한 장입니다. 왜냐면 1장에서부터 5장까지가 한주제로 가고 6장에 들어와서부터 새롭게 1장에서5장까지 하신 주제를 업그레이드시키는 겁니다.

업그레이드시키는 그러한 장이 6장입니다 그래서 업그레이드시켜서 계속 진행이 될 터인데 6장이 터닝 포인트입니다. 1장부터5장까지 주제가 뭐냐면 주제는 예수님에 대한 기독론입니다. 그다음에 성령 론 그다음에 구원론 이 세 가지가 주제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1장부터5장을 하나로 말한다면 첫째가 기독론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그다음에 성령론 성령이 누구신가?

그다음에 구원론 구원을 어떻게 받느냐? 예수님이 구원을 주시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느냐? 요한복음3장16절에 나오잖아요. 이렇게 해서 이런 주제를 가지고 주욱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2장을 잠깐 섭력해보면 2장에 보면 나오는 이야기들이 뭐냐면 구원론 쪽에서 보면 율법 가지고는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율법이 몽학선생이라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보여주기 위한 튜터(tutor)라는 겁니다.

갈라디아서3장24절에 몽학선생입니다. 그러듯이 율법은 불완전합니다.

율법은 그림자입니다 모형입니다 그런데 실체가 예수님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2장에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보여주는 겁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의 율법은 무엇일까요? 여섯 개의 돌 항아리 속에 있는 물입니다.

그게 그림자입니다 율법입니다 그래서 실체가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포두주가 되어야 되는 겁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면 포도주가 실체입니다

3장에서는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도 똑같이 그랬습니다.

니고데모는 율법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육으로 난 사람입니다

그래서 육으로 난 이야기를 자꾸 하는 겁니다. 그런데 실체가 무엇입니까?

영으로 난 사람은 무엇과 무엇으로 거듭나면 됩니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실체가 됩니다. 우리 육의 사람들은 실체가 아닙니다. 4장에서도 똑같이 그러는 겁니다. 사마리아여자사건을 가지고 예수님이 또 설명하시는 겁니다.

사마리아여자가 야곱의 우물에 가가지고 그 물을 마시고 있었던 겁니다.

야곱의 우물물이 그림자입니다 실체는 무엇입니까? 생수입니다 육으로 보이는 물은 그림자입니다 5장에 와서 베데스다 연못의 물은 그림자입니다

사람이 변화가 안 됩니다 그런데 그 물이 동하면 동하는 것은 성령님입니다

동하면 사람이 변화가 오는 겁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겁니다. 동하면 그 속에 예수님이 계시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그림자와 실체를 1장에서5장에 설명해주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항상 말씀하시는 게 너희들이 나를 믿고 그러면 거듭나는데 그런 사람은 영생을 받는다. 이 말씀을 자꾸 하십니다. 너희들이 나를 믿고 그러면 거듭나는데 그러면 영생을 받는다.

요한복음1장12절 3장16절 4장14절 5장24절에 계속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1장에서부터5장의 메시지의 주제입니다 이 주제를 가지고 말씀하시다가 6장에 들어와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겁니다. 업그레이드하시기 위해서 이분이 5장에는 예수님이 어디에 게셨습니까? 예루살렘에 계셨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이 예루살렘에 있잖아요. 그쪽에 계시다가 6장에 들어와서는 예수님이 이미 갈릴리로 올라 가셨습니다. 갈릴리로 올라가서 이분이 어디에 계시느냐면 가버나움 옆에 조그만 마을이 벳세다입니다 벳세다가 누구의 고향입니까? 베드로와 빌립의 고향입니다 그런데 오병이어사건이 어디서 일어났느냐면 벳세다에서 위로 올라가면 언덕이 있는데 이 언덕에서 일어난 겁니다. 벳세다 언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6장 처음시작이 벳세다 언덕으로 가시는 이야기가 6장 시작입니다. 가시면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유월절이 가깝기 때문에 내가 저리로 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겁니다. 몇 명이나 따라 갔겠습니까? 몇 명을 먹였습니까?

5천명이니까 엄청난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서 지금 오병이어사건이 있는 데로 따라 올라가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이분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면서 예수님의 목적은 무엇이냐면 제자들에게 세 가지 새로운 소위 신학이론을 가르쳐주려고 그러는 겁니다. 첫째가 무엇이냐면 성서 론입니다 바이블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냐? 성서 론입니다 둘째로 성결 론입니다

어떻게 하면 성결해지는가? 이 부분을 가르치지 위해서입니다.

세 번째는 무엇이냐면 이걸 다한 사람에게는 복음을 들고 나가야 된다는 그래서 선교론을 가르치려고 5병2어 사건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분이 이걸 하신 다음에 6장에서 보면 여기서 내려와 가지고 벳세다에 들려가지고 여기서 걸어가지 않고 제자들이 배들 타고 가버나움으로 갈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배를 안탔습니다. 제자들이 갈려고 그러는데 예수님이 물위로 걷는 사건입니다 제자들이 보니까 예수님이 저기서 물위로 걸어오는 것을 보는 겁니다. 그게 뭐냐면 벳세다와 가버나움사이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물위 걸어가는 사건이 6장에 주욱 나옵니다. 그다음에 가버나움에 도착을 했습니다. 가버나움에 도착을 해가지고 이분이 유대인회당에 들어가서 설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게 세 번째 장면입니다

6장22절부터59절입니다. 이게 세 번째 장면입니다 첫 번째 장면이 무엇입니까? 5병2어사건 그다음에는 물위로 걷는 장면 세 번째는 가버나움에 들려서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서 설교하시는 장면입니다 그 설교 장면이 소위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다 떡에 관한 이야기를 최소한 일곱 가지의 떡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다. 생명의 떡이다 산 떡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다 내 살이다 참 음식이다 떡에 관한 이야기를 가버나움 유대인 회당에서 쫘악 하시는 겁니다. 그 말씀을 하시고는 그다음에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느냐면 거기서 나오셔가지고 6장 마지막 부분에 나를 따라 다니는 제자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겁니다. 열두제자들만이 아닙니다. 나를 따라 다니는 제자들이 많았는데 그중에 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 사람은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믿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무슨 말씀을 하느냐면 아까 떡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네 번째 따르는 무리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장면에서 무슨 이야기를 주로 하느냐면 예정론에 관한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아버지가 택한 사람 외는 나에게 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굉장히 중요한 예정론 이야기를 제가 할애를 많이 하려고 그럽니다. 이렇게 네 부분으로 나눕니다. 첫 부분이 무엇입니까? 5병2어 두 번째는 물위로 걸어가시는 장면 세 번째 떡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고 마지막 네 번째는 무리들이 많이 따랐지만 무리들이 많이 떠나고 아주 소수만 남았는데 제자들보고 그러는 겁니다. 64절에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예수님이 미리 다 아셨다는 소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많은 무리들이 따라다녔는데 그 무리들 중에서 예수님께 올 사람이 누구고 떠날 사람이 누군지 미리 다 아셨다는 겁니다. 그 중에 가룟유다가 무슨 짓 할 것까지 다 아셨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71절에 보면 나오잖아요. 제자들에게 너희들 열두명 중에서 한 사람이 나를 팔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가룟유다는 마귀라 그러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6장의 전반적인 스토리입니다.

우선 전반적인 스토리를 먼저 정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6장의 주제가 무엇인가? 네 가지입니다. 첫째 성서론 두 번째는 성결론 세 번째는 선교론 네 번째가 예정론입니다. 이 네 개를 꼭 기억해 두세요

그러면 예수님이 이 네 학문을 어떻게 강의를 했는가? 강의 방법입니다

강의 방법을 어떻게 하셨냐면 처음에 5병2어와 물 위를 건너시는 겁니다.

이 표적을 가지고 성서론과 성결론과 선교론을 그 안에서 다 보여주시는 겁니다. 또 생명의 양식인 떡 이야기를 가지고 세 부분을 다 보여주시는 겁니다. 또 예정론은 뭘 가지고 설명하셨냐면 떡 부분과 제자들이 떠났다고 그랬습니다. 그 두 부분을 가지고 예수님이 예정론을 설명했습니다.

예정론은 두 군데서 설명했습니다. 처음에 떡 부분에서도 설명하시고 제자들이 갔다는 부분에서도 설명하시고 이런 식으로 설명하셨는데 우선 그렇게 아시고 예수님께서 5병2어에 대한 비밀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데 지난번에도 제가 간단하게 설명했지만 그 내용과 조금 차이도 있고 비슷합니다.

예수님이 성서론과 성결론과 선교론을 강의하기 위해서 5병2어사건을 준비하셨습니다. 5병2어사건을 일으키기 위해서 이분이 마음에 준비를 딱 하시는 겁니다. 뭘 하기 위해서입니까? 성서가 무엇이냐? 성결이 무엇이냐?

선교가 무엇이냐? 가르쳐주기 위해서 그래서 이분이 갈릴리호수로 간 겁니다. 성서에는 갈릴리호수가 이름이 세 개가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그중에 두 개가 나옵니다. 요한복음6장1절에는 분명히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그랬습니다. 디베랴라는 것은 로마 황제 이름입니다.

그 이름을 땄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5장1절에는 게넷사렛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래서 갈리리 바다는 누가복음5장1절과 요한복음6장1절에 갈릴리 바다 이름이 나오는데 합해서 세 개입니다. 세 가지의 신학이론을 가르치기 위해서 대상을 큰 무리들을 대상으로 하면서 예수님의 제자들까지 대상으로 했습니다. 약 5천 명을 대상으로 하는데 그 안에 조교가 두 분이 계셨습니다. 조교가 누구겠습니까? 빌립과 안드레가 조교입니다. 이 조교들을 주님이 사용하시는 겁니다. 보면 갑자기 예수님이 사람들이 모여 있는 데서 하시는 말씀이 아무도 이해가 안 되는 질문을 빌립에게 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게 하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6장6절에 하시는 말씀이 이는 빌립을 시험하기 위해서 그랬다 그랬습니다. 도대체 빌립은 어떤 사람입니까? 안드레와 베드로와 같은 동네 벳세다 출신입니다 요한복음1장44절에 보면 나옵니다. 예수님이 뽑은 몇 번째 제자입니까? 세 번째 제자입니다. 처음에 안드레 베드로 빌립입니다.

1장43절에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빌립을 만나자마자 직접 명령을 하는 겁니다. 나를 쫓으라 그러는 겁니다. 빌립이 이렇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가지고 자기 동네 나다나엘을 소개했습니다. 그러니까 빌립이 전도자입니다.

나중에 사마리아에 전도까지 나가는 전도자입니다.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소개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 생각인데 빌립이 여기보면 사람이 많아서 도시락을 주어야 되겠다는 말을 빌립에게 물어보는 것으로 봐서 제 생각에는 빌립이 아마도 열두제자들 중에서 총무 역할 하는 사람 같습니다.

나중에 14장에서 성만찬 때도 보겠지만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14장6절에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자가 없느니라 그랬습니다. 열두제자 중에 빌립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세요. 그리하면 좋겠나이다 이렇게 말하는 분이 빌립입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빌립을 분석해보니까 이 사람은 성품이 정확하고 꼼꼼하고 조직적이고 적당히 넘어가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확인해야 되는 논리적인 성품 같습니다. 자기의 논리나 이치에 맞지 않으면 질문을 해서라도 해결하려는 성품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빌립이 그런 성품이라는 것을 아시고는 빌립을 시험하려고 하는 겁니다. 왜냐면 도저히 불가능한 표적을 보여주고는 빌립에게 시험하는 겁니다. 5천 명을 먹여야 되잖아요.

그래서 빌림이 이렇게 질문하도록 유도하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은 가만히 보다가 주님이 하시는 큰 기적을 볼 수 있도록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질문을 하시면서 6절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지금 오병이어사건은 갑자기 생긴 게 아닙니다.

이미 이분이 아주 철저하게 계획하시고 오병이어사건을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빌립이 놀래가지고 당황해가지고 예수님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현실적으로 계산해서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만약에 베드로에게 물어봤으면 베드로는 어떻게 대답할까요?

제 혼자서 가만히 묵상 해봤습니다. 베드로에게 이 질문을 했으면 베드로는 분명히 이렇게 대답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 아마 저 사람들 도시락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자기네가 알아서 하겠죠 우리가 저 사람들 먹을까지 책임져야 됩니까? 우리가 자선단체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아마 베드로가 대답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자유신학을 하는 예수님의 기적을 믿지 않고 예수님의 신성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5병2어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아십니까? 이 사람들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예수님이 이런 기적을 일으킨 게 아니고 베드로가 하신 말씀처럼 이분들이 도시락을 다 싸가지고 왔습니다. 배고프니까 자기네가 벌려놓고 삽겹살 굽고 자기네가 싸온 걸 먹었는데 그걸 이렇게 표현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 하고는 이야기가 안되는 겁니다. 신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칩니다. 그렇게 가르치는 신학교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신학교의 약 80%가 이런 식으로 가르칩니다. 빌립이 대답하는 모습을 보더니 안드레가 두 번째 조연입니다.

안드레가 반응하는 모습을 9절에 보면 안드레는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여기 아이 하나가 있는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이 많은 사람을 어떻게 먹일 수 있습니까? 한 단계 업 그레이더 된 이야기입니다. 안드레도 분명히 그랬을 겁니다. 선생님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냥 배고파도 이 사람들 놓아두시고 열심히 하고 싶은 말씀 하십시오.

그랬을 겁니다. 예수님이 이분들의 이런 반응을 기대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예수님이 다 기대하신 겁니다. 이렇게 할 것을 예수님은 이 사람들이 이런 대답을 할 때 10절에 보면 그랬습니다. 애들아 이 사람들 전부 다 잔디밭에 앉혀라. 앉혀니까 약 5천 명이 되었다는 겁니다. 떡을 가지고 예수님이 축사를 했다고 그랬습니다. 축사를 했다는 말은 복을 내렸다는 소리입니다.

또 감사했다는 말을 쓸 때 예수님이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다 아시고 떡과 생선을 가지고 축사했습니다. 축사하는 그 순간에 변해버린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무엇입니까? 5병2어가 야곱의 우물물이고 여섯 개의 돌 항아리의 물이 포도주가 된 사건과 똑같은 겁니다. 야곱의 우물이 샘물이 된 겁니다. 축사하시니까 5병2어의 율법이 이제는 기적으로 변해가지고 생명이 되어버린 겁니다. 5천 명을 먹이는 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축사를 하시니까 변화되는 사건이 일어나니까 그러니까 율법이 그림자가 실체가 된 겁니다. 이렇게 변화되는 겁니다. 5병2어 축사의 변화사건이 율법이 예수님으로 변화되듯이 그림자가 실체가 되는 겁니다. 돌 항아리의 여섯 개의 물이 실체가 되어서 포도주가 되고 육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야곱의 우물이 생수가 되고 베데스다 물이 동하는 물이 되어서 사람들을 변하게 해주는 겁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련에 같은 겁니다. 제목을 5병2어 표적의 교훈이라고 적어 보세요. 5병2어 표적의 교훈 첫째 성서론을 강의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5장39절에 하시는 말씀이 성경을 서치해봐라 모두가 누구에 관한 이야기냐면 나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성경이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이래놓고 지금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모세오경입니다. 그다음에 또 빵 다섯 개는 무슨 의미가 있느냐면 6장에 보면 떡을 표현할 때 함축해서 다섯 가지로 표현했고 조금 벌려놓으면 일곱 가지로 표현했습니다. 6장32절에 첫째 참 떡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다음에 6장55절에 참된 양식이라고 그랬습니다. 참 떡 또는 참된 양식

두 번째 하나님의 떡이라 그랬습니다. 6장33절과 6장41절 50절 58절에

세 번째는 생명의 떡이라 그랬습니다. 6장35절 27절 58절에

네 번째는 산 떡이라고 그랬습니다. 6장51절 그다음에 다섯 번째는 예수님의 살이라 그랬습니다. 6장51절 53절에 이렇게 다섯 가지로 떡을 변형시키면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하! 5병이 예수님을 표현하는데 이렇게 다섯 가지로도 표현 하시구나. 이것을 생명의 양식이라 그랬거든요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러면 물고기는 무엇이냐? 2어 물고기 하면 생선으로 헬라어로 뭐라 합니까? 익스투스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익스투스 알파벳 하나하나를 보면 다 예수님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걸 영어로 I지만 발음을 Y 발음을 합니다. 그래서 헬라어로 예수스(Iesus)라 그럽니다. 영어로는 지저스(Jesus)라 그럽니다. 그다음에 한국어로는 무엇입니까? 예수(Iesu) 그러니까 원어하고 한국말이 비슷합니다. 예수(Iesu) 영어로 지저스(Jesus)라 쓰는데 이게 발음이 안 맞습니다. 우리말이 정확하게 맞는 겁니다.

그다음에 X는 우리가 크리스마스(Christmas) 할 때 크리스토스(Christos) 헬라어로 오스는 남성명사입니다. 여성명사는 아로 끝납니다. 예를 들어서 사마리아 쥬디아 빌라델비아 갈라디아 이탈리아 아갸야 아시아 아로 끝나는 것은 전부다 여성명사입니다. 오스는 남성명사입니다 그래서 크리스토스(Christos) 하면 크라이스트(Christ)기름 부음을 받은 자 그래서 익스투스 자체가 다 예수님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물고기가 예수님이라는 소리입니다. 예전에 1세기 때 카타콤사람들이 물고기 마크를 달고 다녔습니다.

뭐냐면 아엠 크리스천이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두 마리의 물고기는 구약과 신약 그러니까 5병2어의 상징은 무엇일까요?

첫째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두 번째는 고체 음식입니다. 빵도 그렇고 생선도 그렇고 고체 음식이기 때문에 영의 양식으로 표현되는 겁니다.

예수님이신데 영의 양식으로도 표현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영의 양식이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서를 의미하는 겁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을 상징하고 두 번째는 영의 양식 고체 음식이다

세 번째는 이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성경 말씀이다.

구약과 신약 두 마리의 물고기 그러면 포도주와 생수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포도주와 생수는 우리가 알다시피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액체 음식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6장에 복 있는 자는 의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의의에 주린다는 말은 헝그리(hungry)고체 음식입니다. 그다음에 목마르다.

액체 음식입니다. 그러니까 의의가 무엇입니까? 예수님 말씀과 성령님입니다. 물입니다. 포도주입니다. 그러니까 의의 속에는 고체 음식과 액체 음식이 포함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배고파하고 목마르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능이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양소를 공급하는 기능이 있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그럽니다. 시편119편103절 예레미야15장16절 에스겔2장9절 에스겔3장3절에 보면 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의 음식이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맛이 꿀같이 달다는 말을 써놓았습니다.

영양소를 보급하고 또 한 가지는 검으로써 역사한다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공격용 무기입니다. 검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6장7절 히브리서4장12절 계시록15장19절에 보면 양날 달린 겁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두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중요합니다. 앞으로 성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이 말씀이 음식이라 그랬잖아요

이 음식을 먹어야 됩니다. 이 음식을 먹는 걸 뭐라고 그럽니까?

먹는다는 것은 입속에 넣어서 내배 속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걸 성서에서 뭐라고 그럽니까? 손 예화를 잊지 마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잡으려면 새끼손가락으로는 안 된다고 그랬습니다. 새끼손가락은 뭡니까? 이 손가락은 듣고 보는 겁니다. 하나님말씀을 듣고 보기만 해서는 책을 들 수가 없습니다. 내 것이 안 됩니다. 사탄이 와서 빼앗아 갑니다. 내가 이렇게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귀하고 눈 가지고는 하나님 말씀이 내 것이 아닙니다.

그다음에 두 손가락은 조금 낫습니다. 두 번째 손가락이 무엇입니까?

쓰는 겁니다. 지금 여러분들도 쓰고 있잖아요. 쓰는 겁니다. 조금 낫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큰 책상이 있는 겁니다. 쓰라고 쓰가지고 됩니까?

두 손가락으로 잡을 수 있습니까? 잡지만 사탄이 빼앗아 가버립니다.

세 번째 손가락이 무엇입니까? 공부하는 겁니다. 공부하는 것은 뭐냐면 의미를 이해하는 겁니다.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셋째 손가락입니다.

세 손가락으로 성경책을 잡으면 잡힙니다. 그런데 이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또 빼앗깁니다. 이것 가지고 완전히 성경책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네 번째 손가락이 무엇입니까? 암기하는 겁니다. 메모리하는 겁니다.

메모리해도 내 것이 안 됩니다. 제일 힘이 센 손가락이 무엇입니까?

엄지입니다. 엄지로 잡아야 되는 겁니다. 엄지손가락이 묵상입니다.

그래서 이걸 제가 이렇게 표현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여기에 영적 빵이 있습니다. 이것을 내가 먹어야 되잖아요. 듣고 보기만 하는 것은 영적 빵을 이렇게 쳐다보기만 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아! 먹음직하다 그러는 겁니다. 듣고 보기만 하면 이 수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통 주일날 대부분의 교회들은 이것만 합니다. 구경만 하고 옵니다. 이 빵을 내가 손으로 만졌습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쓰는 겁니다. 괜찮구나. 맛있게 보인다.

아직까지 내 것이 아닙니다. 쓰는 게 내 것이 아닙니다. 도움은 되지만 이걸 잡아가지고 내 입에 집어넣었습니다. 입 안에서 뱅뱅 돕니다. 이게 공부하는 겁니다. 그래서 참으로 맛있다. 괜찮다 그렇지만 이게 내 속에 들어간 게 아닙니다. 내 입에서만 뱅뱅 굴리는 겁니다. 아직까지 성경공부가 좋지만 여기서 끝내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영양소가 아직까지 내 속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머리만 커진 겁니다. 머리만 커지면 어떻게 됩니까? 교만해집니다. 교만한 사람이 제일 먼저 나오는 게 남을 비평합니다.

겸손해지지가 않는 겁니다. 남을 비평하는 사람은 아하 이 사람은 머리가 큰 사람이구나. 근방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AMI성경 공부하는 분들이 저는 머리가 커질까봐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 겁니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그다음에 메모리하는 것은 이걸 넘기는 겁니다.

넘겨서 식도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 가지고 안 되잖아요.

식도에 넣었지만 그다음에 소화를 시켜야 되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속에서 소화를 시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듣고 쓰고 공부하고 이게 필요합니다. 내 속에 집어넣으려면 쳐다봐야 되고 만져야 되고 입에 집어넣어야 되고 순서대로 다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내 속에 집어넣은 다음에 소화를 시키는 겁니다. 그러면 영의 양식이니까 묵상을 많이 하셔야 됩니다.

묵상하기 전에 뭘 해야 됩니까? 많이 외우셔야 됩니다. 외운다는 것은 내 속에 집어넣는다는 겁니다. 제가 많이 이야기했는데 가장 외우기 쉬운 방법이 무엇입니까? 반복입니다. 반복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고 두 번째는 가르치는 겁니다. 남에게 자꾸 말해주는 겁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말하는 것이 내 귀로 다시 들어올 때 이게 메모리가 된다는 겁니다. 내 입에서 나온 목소리가 내 귀로 다시 들어올 때 그놈이 내 속으로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말을 많이 해야 됩니다. 저도 여기서 설교하면서 지금 내 공부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옆 사람과 이야기하세요. 이야기하세요. 그러잖아요. 이걸 다 제가 경험하고. 경험하고 해서 잔소리하는 겁니다.

하니까 되잖아요. 입을 많이 여셔야 됩니다. 이게 메모리 하는 연습입니다.

메모리 많이 하면 우리가 성경책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잖아요.

운전하면서도 내가 메모리 했으니까 그 말씀을 묵상할 수가 있잖아요.

전철에서도 묵상할 수도 있고 집에서 가만히 앉아서도 묵상할 수 있고 다 메모리 했으니까 말씀을 묵상하면 그 안에서 뭐가 나옵니까? 영양소들이 나오는 겁니다. 영양소들이 나오니까 이 영양소들이 영의 오각에 퍼지는 겁니다. 영의 오각이니까 영의 눈이 밝아지고 영의 귀가 밝아지고 영의 맛도 알고 촉감도 있고 영적으로 감수성도 있고 이렇게 영의 오각이 발전되는 겁니다. 그걸 지혜라고 그럽니다. 지혜가 생기는 겁니다. 말씀을 계속 잡수시고는 이것을 계속 소화시켜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잡수시기만 하면 안 되잖아요. 화장실에 가야 되잖아요. 그것을 영적 회개라 그럽니다.

그러니까 회개도 말씀에 근거해서 음식을 내 속에 다 집어 넣어놓고 말씀에 근거해서 내가 나 자신을 들려다 보고는 화장실에 가는 겁니다.

먹은 것만큼 화장실에 가야 되잖아요. 화장실에 많이 가야지 화장실에 안 가는 사람은 그 사람이 나중에 10일만 화장실에 안 가면 어떻게 됩니까?

팅팅 부어서 사람이 교만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회개를 안 하는 사람은 교만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공부하는 것 회개 안 하고 화장실에 안 가고 잡숫지도 않고 머리에만 남겨되면 그 사람은 교만해집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이렇게 섬길 때 내가 낮아지고 내가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면 찬양할 때도 일어나서 손드시고 일어나서 손드는 연습이 내가 교만해지는 교자를 꺾어 내리는 연습입니다. 그래서 내가 주님에게 완전히 항복하는 겁니다. 자꾸 연습하세요. 자꾸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마시고 이게 내가 주님 앞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주님의 자비를 내가 기됩니다. 고 표현하는 겁니다. 그 연습을 계속하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먹는 것은 좋은데 아무 영의 음식이나 먹으면 않되잖아요.

무엇을 먹으야 됩니까? 무교병을 잡수셔야 됩니다. 유교병을 먹으면 그 안에 잡다한 것들이 있는 음식을 먹으면 성인병 걸리잖아요. 영적 성인병 걸립니다. 그러니까 뭘 많이 먹었지만 잡다한 이스트가 들어 있는 것을 먹어버리면 아는 것만큼 다 먹었지만 몸에는 기형아가 되는 겁니다. 뭘 많이 알고 있고 배웠는데도 성품이 안 변하는 겁니다. 인격이 안 변하는 겁니다.

기형아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왜냐면 음식을 잘못 먹으면 그럽니다.

잡다한 불필요한 예수 외에 딴 음식을 이 음식은 누구 음식입니까?

예수님 음식을 먹어야 됩니다. 익스투스 6장에 몇 번을 이야기합니까?

최소한 일곱 번을 이야기했습니다. 이게 나다, 나 그러니까 음식을 무교병을 먹어야 되는 겁니다. 무교병은 맛은 없지만 여기 5병2어 에서 성결론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겁니다. 그다음에 선교론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겁니다. 예수님이 5병2어 에서 마태복음14장19절에 복음 전파순서를 가르쳐주시는 겁니다. 보면 제일 먼저 떡을 가져다 누구에게 주었습니까? 제자들에게 먼저 주었습니다. 마태복음14장19절에 요한복음에는 그 말씀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마태복음을 여기에 뽑아낸 겁니다. 그래가지고 제자들은 유대인입니다. 이 복음을 예수님 앞에서 제자들이 먼저 받았잖아요. 제자들의 손에 의해서 무리들에게 주는 겁니다. 무리들은 누굽니까? 유대인들입니다.

또는 거기에 디아스포라들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을 통해서 예루살렘교회에서 디아스포라와 유대인 본토인들이 복음을 받은 겁니다.

마태복음14장19절과 요한복음6장11절입니다. 그래가지고 유대인들이 이 빵을 다 먹고 부스러기 남은 겁니다. 마태복음15장27절에 부스러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나안 여자가 한 이야기 기억나세요? 이방인은 부스러기라도 먹습니다. 개는 그러면서 말씀하시잖아요. 부스러기 떡은 이방인 음식입니다. 마태복음15장27절 요한복음6장12절에서17절에 제자들에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열두바구니에 부스러기들을 담은 겁니다. 그러니까 열두바구니는 열두제자들입니다 열두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예수님이 뭐냐면 부스러기들입니다 제자들이 담고 있는 음식이 누구 음식입니까? 이방인을 위한 에뜨네(Ethne) 그래서 판타타 에뜨네(Panta ta Ethne), 에뜨네(Ethne)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주기 위한 음식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복음을 들고 어디로 가야 되는 겁니까? 이방인에게 들고 나가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네 유대인들에게 조금 했잖아요. 그리고는 빨리 이방인에게로 그래서 사도행전1장8절에 마찬가지로 마태복음28장19절에도 판타타 에뜨네(Panta ta Ethne)이방인에게 가라는 겁니다.

그래서 열두바구니 거기에 남은 조각들이 가득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선교가 제자들에게 너희들 전도는 내 민족에게 잠깐 하다가 거기서 빨리 나와서 이 바구니을 들고 이방인을 향해서 가지고 가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선교학을 가르쳐주는 겁니다. 다른 4복음서에는 7병2어가 안 나옵니다. 마태복음에만 딱 나옵니다. 7병2어가 5병2어 사건이 있은 후에 7병2어가 마태복음에만 나옵니다. 마태복음15장32절에서39절입니다.

7병2어에 보면 순서가 똑 같습니다. 뭐가 다르냐면 떡이 일곱 개가 다릅니다. 떡 일곱 개 그래서 보면 떡 일곱 개가 오늘 본문 요한복음6장에 나오는 떡이 일곱 가지 떡이 있습니다. 인자의 살, 참 하나님의 떡, 생명의 떡, 하늘에서 내려온 떡, 산 떡, 그다음에 참된 양식, 이렇게 해서 떡 일곱 개를 이렇게 표시했습니다. 그런데 4천 명이 먹고 일곱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그런데 한국말로는 광주리라고 그랬는데 요한복음에는 바구니라고 그랬잖아요. 바구니와 광주리는 다릅니다. 바구니는 조그만 겁니다. 광주리는 라지 바스켓으러 큰 광주리가 일곱 개입니다. 그런데 그기에 뭐가 담겨있습니까?

빵 부스러기들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이방인들 음식입니다.

일곱 광주리가 큰 것은 뭘까요? 일곱교회인 겁니다. 계시록2장과3장에 일곱 교회가 나오잖아요. 교회입니다. 일곱교회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를 지칭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하는 일이 뭐냐면 교회는 이방인을 위한 음식을 준비해서 내 민족이 아니고 타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음식을 준비하는 곳이 교회라는 겁니다.

내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전통과 교리와 자기네 교회 역사 속에 묻혀가지고 교회가 아주 잠자는 그런 교회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일곱 바구니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 안에 이방인 음식이 들어 있는데 그러니까 이것이 다 무엇을 말해줍니까? 아브라함과 계약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겁니다. 창세기12장2절과3절입니다. 그리고는 지상사명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5천 명을 먹였다. 4천 명을 먹였다.

이 뜻은 우리가 뭘 이해하게 되겠습니까? 말씀은 복음은 퍼져야 된다는 뜻이 그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5병2어, 7병2어가 이렇게 퍼진다는 겁니다.

5천 명, 4천 명이 먹을 수 있도록 복음은 퍼지게 된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로 뭐냐면 내 민족부터 시작해서 타민족까지 퍼져야 된다는 소리입니다. 민족의 벽을 넘어야 된다는 겁니다. 지금 요한복음의 서술 목적이 무엇입니까? 20장31절입니다. 이 복음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시고 그래서 그 예수님을 믿게 하여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돌아와서 구원받게 하기 위함이라 그랬습니다. 제자들이 이것을 나중에 깨달은 겁니다. 이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잖아요. 이분들이 주님을 섬기면서 나중에 깨달아 가지고 열두제자들이 이 말씀대로 살다가 주님에게 갔습니다.

이분들이 다 유대인 복음화를 위해서 애쓰지 않았습니다. 다 이방인 복음화를 위하여 애썼습니다. 그러다가 이분들이 다 순교를 당했습니다.

이분들이 어디 어디서 순교 당했느냐면 역사기록에 보면 베드로는 로마에서 순교 당했습니다. 선교의 열매입니다. 안드레는 스키티아라고 남 러시아쪽입니다. 마가는 알렉산드리아 애굽에서 순교 당했습니다. 마태는 에티오피아에서 순교 당했습니다. 도마는 인도에서 순교 당했습니다. 요한은 에베소에서 바돌로매는 알매니아에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세베데 아들의 야고보는 스페인에서 예수님 동생 야고보는 어떤 분들은 터키 어디에서 어떤 분들은 예루살렘에서 순교 당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다 순교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순교가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제자가 되려면 순교까지 각오를 해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 제목을 바꾸어서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 셨다는데 그게 무슨 뜻인가? 6장16절에서 21절입니다. 물 위로 갑자기 왜 5병2어 사건을 하신 다음에 물 위를 왜 걸어셨는가?

저는 이것 때문에 혼자서 묵상을 많이 했습니다. 주님 이게 왜 이렇습니까?

왜 갑자기 물 위를 걸어십니까? 주님이 저에게 메시지를 주시는 겁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가르치는 이 내용들 책을 보고 베낀 게 없습니다.

99.9%가 다 주님이 나에게 주신 걸 제가 벹어내는 겁니다. 이것도 주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뭐냐면 예수님 자신이 생선이 되심을 실제로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 생선이 특수생선입니다 생선 익스투스가 예수님 아닙니까? 그러니까 자기가 특수생선인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이걸 모본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이분이 자연을 정복하는 생선입니다.

창조주 예수님이라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그것 뿐입니까 물 위애서 물을 지배하는 생선입니다. 보통 생선은 물 속에서 왔다 갔다 하잖아요. 물 위에 발을 올려 놓고 지배하는 겁니다. 물이 무엇입니까? 2장3장4장5장에서 물이 율법입니다. 율법을 지배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물 위에서 걷는 생선입니다.

뭐냐면 아하! 율법 위에서 서 있는 예수님이구나. 베드로는 그 물 위를 따라 하다가 빠졌습니다. 베드로는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이지 율법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율법 위에 있는 예수님이 잡고 끌어올리니까 베드로가 올라 왔잖아요. 우리가 성서를 해석할 때 토막토막 해석하면 안되잖아요.

전체로 1장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연계가 되어 있는 겁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연계성을 가지고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요한도 마찬가지로 그 훈련을 지금 우리 교회가 하고있는 겁니다.

그다음에 주님이 주시는 마지막 신학 이론이 예정론입니다.

예정론은 대단히 중요한 주님이 주시는 신학 이론을 지금 6장에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특히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님 세 번째의 비유와 그다음에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저버리는 사건이 있잖아요. 네 번째 비유 이 속에서 예정론의 숨겨놓은 비유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걸 우리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목을 아버지께서 구원할 자를 예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예정하신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가 예정하신 분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첫째 6장37절에 보시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그러니까 아버지께서 주시는 사람이 있는 겁니다.

다 내게로 올 것이요 그분들이 예정된 사람은 다 나에게 온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다는 겁니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쫓아내지 않겠다고 예수님께서 그럽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예정하신 것이 아니고 누가 예정했습니까. 아버지께서 예정하셨다는 겁니다. 그 말씀을 같은 요한복음17장2절에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장면인데 예수님이 아버지와 기도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시는 모든 자에게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주지 않는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가 주신 사람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그런 권세를 가졌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다스리냐면 아버지께서 주신 사람이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똑같이 17장6절에서 9절까지 내용을 보면 세상 중에서 네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 이름을 나타냈나이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게 아무나 한게 아니고 주신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리고 다시 6장으로 가보면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은 다 구원받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6장38절 39절에 보면 내가 하늘로써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 그분이 누굽니까?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가 네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 살리는 것이라

이게 나중에 믿는 자가 받는 부활사건입니다. 보면 예수님께 주시는 자가 있는데 그 사람들 하나도 놓치지 않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40절에 보면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들을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이럴 때 보시면 아버지의 뜻은 보고 믿는 자마다 이게 전 세계인구 다 말합니까? 40절만 가지고 말하면 모든 인구 다 말하는 것 같습니다.

대상이 그런데 아닙니다. 37절 38절 39절을 보면 아버지가 주시는 자들이 있는 겁니다. 주시는 사람들 중에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믿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을 내가 다 데리고 오겠다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한복음3장16절에 뭐라고 그랬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사오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할 때 이게 해석이 두 가지 해석이 오는 겁니다. 소위 나중에 예정론적인 해석은 예정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믿는 자마다 할 때 그런데 비 예정적인 자유주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모든 인류가 다 이렇게 해석해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해석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요한복음 전체를 보고 전체 속에서 3장16절을 해석해야 되는 겁니다. 6장44절을 보면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내가 다시 살리리라 그러니까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 예수님이 구원 주가 되십니까? 예수님이 그리스도시군요 이렇게 하는 것이 잘나서가 아니고 누가 선택을 해서 누가 가게끔 이런 말을 하도록 한다는 겁니까? 아버지가 한다는 겁니다.

60절을 보세요.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데 지금 떡 이야기를 주욱 하니까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느니라 지금 육적인 눈으로 보지 말라는 겁니다. 영적인 눈으로 보라는 겁니다.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않는 자들이 있느니라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예정되어 아신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65절에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그러니까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뭘 보고 했는데 그 안에 예정이 안 된 사람들은 나중에 떠난다는 겁니다.

그러시면서 67절에 예수께서 열두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이런 말이 베드로가 잘나서 나옵니까?

아닙니다. 이 양반도 아버지에 의해서 예정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말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은혜입니다. 이분이 잘나서가 아닙니다. 우리도 그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68절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이 양반이 별로 똑똑하지도 않는 분이 그동안에 훈련 받드니 이런 영생의 말씀을 하십니다.

이게 다 주님이 성령님이 주시는 말씀입니다. 69절에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이분이 이런 말까지 해놓고는 나중에 또 오리발 내놓은 것 아시죠. 하나님이 아무리 택하셔도 사람은 사람인 겁니다. 가끔가다가 전기가 꺼졌다가 켜졌다가 하는 겁니다. 우리도 똑같습니다.

저도 이런 말을 하는 목사지만 저도 어떤 때는 전기가 꺼졌다가 켜졌다가 하는 겁니다

완전히 꺼지면 안 되지만 이런 가운데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70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리라 그랬습니다.

그러면 가룟 유다는 누가 택한 겁니까?

마귀로써 아버지가 택한 겁니다. 아버지가 택하였다는 게 어디에 나옵니까? 창세기3장15절입니다. 창세기3장15절에 어떻게 나옵니까?

여자의 후손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사탄보고 그럽니다.

사탄아 너 후손과 여자의 후손이 십자가에서 싸움할 거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탄의 후손이 성부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겁니다.

그럴 때 우리가 대답하는 게 이겁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왈가 불가 하겠느냐 이겁니다. 바울이 나중에 그러는 겁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는 피조물이 할 말이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가룟 유다를 하시겠다고 했으니 우리는 할 말이 없는 겁니다.

몇몇 유명인사들 바울 그다음에 베드로 이런 사람들이 어떤 신학을 가지고 있느냐를 봅시다. 바울은 아주 철저한 예정론자입니다

로마서1장1절에 보면 그린도전서1장1절 에베소서1장1절 골로새서1장1절 디모데후서1장1절 다 편지1절에 항상 말하는 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복음을 위해서 택하셨다. 그랬습니다.

이분은 많은 부분에서 아주 예정론자로써 강한 예정론자입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크리스천들보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2장10절에 디모데에게 그러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자기를 골치 아프게 만들지만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이기 때문에 내가 참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선교여행을 가서도 사도행전13장48절에 그러는 겁니다.

이분이 복음을 전했는데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설교를 한 후에 이방인들이 바울의 설교를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말씀을 찬송하면서 하는 말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 된 자는 다 믿더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나가 아니고 바울의 설교를 여러 사람들이 많이 듣는데 하나님이 작정한 사람 다시 말하면 이미 과거에 영생을 받기로 작정 된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자기가 설교하는 것을 듣고서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겁니다. 그뿐입니까. 유명한 로마서8장30절에 바울이 로마서8장이 굉장히 중요한 장입니다.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우리 크리스천들보고 로마 교인들에게 미리 정하신 그들을 그러니까 미리 정했다는 겁니다.

우리는 미리 정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또한 부르시고 과거에 정해놓은 사람들인데 창세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정해놓았다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나중에 그런 사람들에게 영화롭게 해준다는 겁니다.

이것도 다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고 이분들이 의롭게 된 다음에 그중에 다 영화롭게는 안 되잖아요. 그곳이 계급사회니까 아주 영화로운 사람들 안 영화로운 사람들을 미리 다 정해놓았다는 겁니다. 이러다 보면 이게 숙명론이라고 어떤 사람은 말할 수 있습니다. 숙명론은 아닙니다.

우리가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예정된 예정 안에서 우리가 자유의지를 잘 발전합니다. 발달시켜야 됩니다. 베드로를 보면 똑같습니다. 베드로전서1장2절에 보면 베드로도 예정론자입니다. 1장2절에 그랬습니다.

곧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오니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미리 아시고 택한 사람들에게 내가 편지한다는 겁니다.

베드로가 말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문제 때문에 기독교 안에서는 지금도 이제는 큰 싸움은 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엄청난 싸움을 했습니다.

칼빈(1509년-1564년)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이 1517년에 일어났습니다. 그때 있었던 사람으로 55세에 주님 나라에 간 사람입니다.

프랑스사람으로 이 사람이 개척한 교단을 개혁 교단이라고 그럽니다.

장로교를 이 사람이 개척한 게 아닙니다. 장로교를 개척한 사람은 존 낙스(knox)라고 그럽니다. 스코틀란드 사람입니다. 예정론을 교리화한 사람이 요한 칼빈입니다. 이분에 의해서 예정론을 따르는 교단들이 소위 장로교입니다

개혁 교단입니다. 순복음 교단입니다. 침례교 일부가 따릅니다.

이분들은 은혜를 강조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나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내가 이렇게 예정이 되었다고 이와 반대로 그의 같은 시대에 살던 사람인데 아르미니우스(Arminius)라고 이 사람은 1560년에 태어나서 1609년에 49세에 죽은 사람인데 이 사람은 네델란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칼빈주의와 정반대 학설을 만든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의 학설을 아르메니안니즘이라 그럽니다. 아르메니안니즘은 뭐냐면 자유의지론입니다.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학설은 유니버셜니즘이라고 뭐냐면 한국말로 보편주의라고 하는데 하나님은 모든 세계 인류를 다 구원받을 수 있는 찬스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문제는 사람이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내가 반응을 해서 하나님의 뜻에 내가 반응을 긍적적으로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겁니다. 문제는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노력을 강조를 합니다. 그런데 칼빈주의는 믿음만 있으면 구원받는다고 그럽니다. 믿음 그런데 그 믿음이 은혜로써 구원받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쪽은 뭐냐면 그 믿음에다가 행위를 보태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뭘 인용하느냐면 야고보서2장17절을 인용합니다. 뭐냐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이 말씀을 인용하는 겁니다. 이 말씀이 아닌데도 이분들은 그렇게 해석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상반된 구조 속에서 자유신학이 나온 겁니다.

인본주의가 나온 겁니다. 소위 종교다원주의도 이런 신학 이런 사상구조 속에서 나온 겁니다. 그러니까 아르메니안니즘이 파생적으로 이런 것들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아르메니안니즘을 추종하는 교단은 전 세계교단의 약 80%가 다 그렸습니다. 로마가톨릭, 성공회, 정교회,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의 일부 대부분의 자유주의 교단들은 아르미니우스에 속합니다.

이것 때문에 한 때는 서로 이단이라고 싸움을 엄청나게 했습니다.

아르미니우스 쪽과 칼빈 쪽이 나중에 요한 웨슬레가 감리교를 만든 후에 웨슬레가 아주 칼빈주의를 엄청나게 공격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도 장로교와 감리교, 성결교, 구세군, 이쪽이 아르미니우스 쪽입니다.

장로교와 순복음과 침례교 쪽이 칼빈주의입니다. 저는 칼빈주의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 게 그렇다면 과거 500년 동안 이걸 가지고 서로 싸움을 했는데 그렇다면 한 쪽만 하나님의 자녀인가? 그렇지는 않잖아요.

제가 느끼기에 그러는 겁니다. 우리 하나님은 칼빈주의시구나? 라는 것을 전제로 깔아 놓고 칼빈주의인데 칼빈주의로써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사람은 아르메니안 주의의 사고를 그 안에 또 하도록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두 주의가 한꺼번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큰 틀은 칼빈주의입니다. 예컨대 아브라함을 부를 때도 아브라함이 행위가 잘나서 부른 게 아니잖아요.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선택한 것 아닙니까? 바울도 마찬가지고 열두제자들도 마찬가지고 다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그냥 내가 너를 집었다는 겁니다. 이게 칼빈주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가지고 아브라함을 어떻게 사용을 할 것인가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모세를 불러서도 마찬가지고 저나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획이 있는데 그 계획 틀 안에서 그 계획을 이루는데 어떤 때는 내가 그 틀을 벗어나서 순종 안 하고 내 뜻대로 내 자유의지를 발휘 해가지고 내 뜻대로 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이분이 어떻게 합니까?

망치로 칩니다. 아니면 회초리로 때립니다. 이게 뭐냐면 이게 아르메니안 주의입니다. 너 순종해 순종하라는 말이 아르메니안 적인 그러한 단어들입니다. 그럴 때 주님이 기뻐하시는 겁니다. 순종할 때 기뻐하시는 겁니다.

어떤 때는 이렇게 울타리를 넘어갈 것을 아시면서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내가 불순종하거나 내가 실수하거나 죄를 짓거나 이러면서 회개할 때 이분이 기뻐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이분과 나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가는 게 아르메니안 주의입니다. 우리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자녀가 낳자마자 애가 처음부터 아주 착한 아이로 울지도 않습니다.

귀저기도 안 찹니다. 학교에서도 공부도 잘하고 한 번도 속섞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자녀가 재미있습니까? 속도 조금 섞이고 엄마 아빠에게 눈물을 조금 흘리게 하고 이러면서 가다가 또 미안해요. 하면서 돌아오고 이러면서 가는 아이가 부모와의 관계가 가까워지잖아요. 하나님도 똑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걸 안 하고도 하나님의 뜻을 잘하는 사람은 일부로 고생 안 시킵니다. 자유의지 발동을 자기가 주님의 뜻 안에서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칼빈주의의 큰 틀 안에서 아르메니안 주의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아르메니안 주의를 소위 너무 심하게 자기 의지를 발동해가지고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주 심하게 창조목적에 아주 심하게 위배하는 게 무엇입니까? 우상을 심하게 섬기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서에 보면 내가 예정을 해서 불렸지만 그 예정한 것이 무효가 되었다는 겁니다.

구원이 무효가 되는 게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나 무효가 되는 게 아니고 창조목적에 강하게 위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냐면 창조주의 자존심을 건드리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잖아요. 이런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끔가다가 있다는 겁니다.

첫째 어떤 사람일까요. 종교다원주의입니다. 예수님을 창조주로 구속주로 크라이스트로 알고 있다가 그 예수님이 타 종교에도 있습니다. 이렇게 나오면 얼마나 창조주가 화가 나시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구원을 무효시겠다는 겁니다. 마태복음24장24절에 나옵니다. 심지어는 택하신 자들까지도 사탄이 공격한다고 그랬습니다. 종교다원주의가 택하신 자들을 이미 택함을 받아가지고 구원을 받은 자인데도 그걸 빼앗아 가겠다는 겁니다. 히브리서6장4절에서6절에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번 구원받고 천국의 비밀도 깨닫고 성령의 역사도 다 경험 했는데 갑자기 이분이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건 다원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면 예수님이 그 사람을 위해서 다시 죽지 않겠다. 이렇게 십자가에 다시 그 사람을 위해서 못 박히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십자가사건 엄청난 가치 있는 이 사건을 부인하거나 약하시키면 주님이 안 된다는 겁니다. 이분의 자존심과 관계에서 우상 섬기는 그래서 십계명을 주실 때 그랬잖아요. 너희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말씀하시면서 우상을 섬길 때는 나는 갑자기 질투의 하나님으로 변한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32장 전체에 보면 소위 금송아지사건 있잖습니까?

그때 예수님이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 너희들 애굽에서 구원받은 너희들이지만 이렇게 와서 나를 섬기면서 우상을 이렇게 섬기면 내가 너희들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리겠다. 그랬습니다. 몇 사람이 지움을 받았습니까?

출애굽할 때 200만 명 이상이 나왔는데 그중에 3천 명 정도가 심하게 우상을 섬기니까 그렇게 해버린 겁니다. 또는 민수기 16장 1절에서 50절 스토리 고린도전서 강해할 때 제가 자세히 했으니까 제가 자세히 안 합니다.

이때도 보면 모세에게 원망를 하고 모세가 하는 일에 불평를 하고 덤벼들었던 분들 중에 250명 또 더 많은 분들이 음부로 내려간 사건이 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소자를 실족케하면 연자 맷돌을 메고 물에 빠져 죽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 6절에서 9절에 소자가 누굽니까? 나 때문에 저 사람이 예수님을 잘 믿다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나 때문에 저 사람이 다원주의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런 수준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사람들을 구원시켰는데 그 사람들의 구원을 빼앗아 가는 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잖아요. 하나님의 본래 뜻이 아니잖아요. 그걸 어디서 압니까? 요한복음 10장 28절에 그럽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누구든지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러니까 이게 하나님의 본래 뜻입니다. 아주 큰 하나님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만 하지 않으면 그러기 때문에 오늘 본문 6장에서도 똑같이 39절에 그랬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라 그러니까 예수님이 최선을 다해서 한 사람도 내가 잃어버리지 않고 아버지가 주신 사람들은 다 데리고 있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안에 이 말에 이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두 명을 놓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신 겁니다. 가룟 유다 사건을 우리가 봤지만 가룟 유다는 처음부터 예정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볼 것 없습니다. 제가 오늘 말씀을 끝내겠는데 긴 말씀으로 하지만 중요한 말씀들을 했습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을 정리해보겠습니다. 6장은 1장에서 5장에 나오는 내용을 업 그레이더 한 거다. 이렇게 알아 두세요. 어떻게 업 그레이더 되었습니까? 처음에 1장에서 5장은 어떤 내용입니까? 기독론과 성령론과 구원론을 주로 다루었습니다. 그러다가 6장에 들어와서 지금 성서론과 성결론과 선교론을 지금 다루는 겁니다. 5병2어 사건과 물 위로 걷는 사건과 생명의 양식사건 그리고 예정론을 탄식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따라 왔지만 그 사람들 일부는 구원에 예정 안 된 사람들은 떠난다는 겁니다.

이런 말씀하시면서 예정론을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가룟 유다도 이미 예정된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보면 예정론이 상당히 성서적이고 그렇다고 해서 자유의지론이 비성서적이 아닙니다. 자유의지론도 성서적입니다. 그렇지만 큰 틀 예정론 안에서 자유의지론의 바퀴들이 돌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두 학설이 공존하면서 지금까지 오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은 1세기 때 요한을 통해서 마가복음을 읽는 자들 누가복음을 읽는 자들 마태복음을 읽는 자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신성을 더 강조하기 위해서 요한복음을 쓰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마태, 마가, 누가를 인성 쪽에 강조했기에 공관복음이라 하셨고 요한복음은 특별히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는 복음으로써 이 복음이 우리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복음임을 우리가 알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제 요한복음 1장에서 5장까지 섭력했고 오늘 6장을 섭력했습니다. 6장 속에서 나오는 오병이어사건 물 위를 걸으시는 사건 참 양식이 되시는 사건 또 예정론의 모든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 예수님이 얼마나 자상하시고 얼마나 구체적이시며 또 우리로 하여금 빌립이나 안드레 같은 조연까지도 붙어주셔서 우리에게 주님의 마음을 전하려고 애쓰시는 주님의 마음을 섭력했습니다. 주님! 주님은 너무나 자상하시고 섬세하시고 배려하시는 분이심을 우리가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이것을 하나의 지식으로 명철로만 삼지 않게 해주시고 우리의 삶 속에서 이것이 적용되는 지혜로 발전되게끔 업그레이더 시켜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