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

25강. 요한복음16장1절-22절, 제자와 보혜사

변명섭 2021. 9. 25. 13:24

요한복음 강해 25강. 제자와 보혜사(요16:1-22) 2010년9월26일 말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요한복음16장1절에서22절까지인데 길기 때문에 제가 앞에 몇 절만 읽겠습니다. 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2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3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성만찬 설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5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6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7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아멘
지난시간에 공부한 내용을 다시 복습을 하면 왜냐면 이 복습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지난시간에 설교의 제목이 포도열매와 포도주였습니다.
지난시간에 다시 말하면 15장에서 말하는 가장 큰 주제가 있었습니다. 
뭐냐면 참 제자의 특색이 있었습니다. 참 제자는 어떤 특색을 가졌느냐면 첫째는 참 제자는 창세전에 택함을 받았다는 겁니다. 이 아이디어를 잊지 말아주세요. 두 번째는 뭐냐면 이 세상에서 이분들은 미움을 받고 핍박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참 제자의 특성을 말씀하시고 도대체 이 제자는 누가 택하는가? 그럴 때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택하는데 누구를 통해서냐면 예수님을 통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언제 택하였느냐 그러면 언제입니까? 창세전에 어떤 사람들을 택하였느냐? 그러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어떤 분들은 교육도 많이 받고 좋은 가문출신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은 많지 않고 대부분이 그 반대의 사람들을 많이 택하였다 그랬습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택하였나? 그럴 때 뭐라고 그랬냐면 이 세상에서 택했다 그랬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면 무슨 세상이 또 있습니까? 저 세상이 있습니다. 그러면 택하신 목적이 무엇인가? 그러면 이분들이 과실을 많이 맺게 해서 이 말은 뭐냐면 예수님의 성품을 많이 닮아서 성령의 9가지 열매의 성품으로 닮아서 그러니까 예수님을 닮는 겁니다. 이렇게 해가지고 이분들이 창조의 목적을 회복하는 일에 사용 받는 도구들인 겁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저세상이야기를 나가서 외쳐라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이렇게 선택을 하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둘 것은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너희들이 핍박을 받게 되는데 무고히 핍박을 받는다고 그랬습니다. 
무고히 이유 없이 그런데 이것은 이미 구약에서 예정되었다는 겁니다.
핍박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포도열매를 맺었지만 우리가 정말 저사람 괜찮은 크리스천이다 정말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었다 이 수준에 있는 크리스천은 제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 그 수준은 제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 수준에서 열매를 맺어서 열매가 포도즙 틀에 들어가야 됩니다. 고통을 당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보여주신 겁니다. 
3년 공생애 동안에 괜찮은 분으로써 열매를 보여 주셨지만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분이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그래서 포도주 즙 틀에 들어간 겁니다. 그래가지고 피를 흘리신 것은 포도주를 만드신 겁니다. 
포도주는 무엇입니까? 요한복음6장53절에서55절에 보면 이 포도주는 나의 피다 그리고 참 음료다 이것을 먹어야지만 너희에게 생명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을 고통을 당하고 미움을 당하고 피를 흘려야지만 나중에 순교까지 가야지만 이 세상 사람들을 저 세상 사람으로 만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기독교는 예수 믿고 그냥 이세상이 잘되고 하는 것은 제자들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겁니다. 이것은 일반크리스천들에게는 해당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크리스천은 두 가지 크리스천이 있습니다. 크게 나누면 일반크리스천들 이분들은 어떤 분들이냐면 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이 안 되는 크리스천들 그런 사람들이 다수입니다 그런데 소수를 뽑으셔서 이 세상에서 뽑아가지고 저 세상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들로 만드는 그래야지만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회복하는 일에 주님께서 이 사람들을 쓸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소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여건을 제시하였는데 몇 가지 성경구절을 제가 드리겠습니다. 
첫째가 뭐냐면 우리가 잘 아는 같은 요한복음12장24절25절입니다. 
한 알의 밀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그냥 일반 크리스천들입니다 
그런데 그 밀이 죽는 크리스천은 제자들인 겁니다. 이런 제자들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25절에 이런 말씀을 써놓았습니다.
제자들에게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그다음에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완전히 거꾸로입니다. 일반크리스천들은 자기 생명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런데 제자는 자기생명을 미워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게 진짜 망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진짜 영원히 보존되는 엄청난 복이 그기에 숨겨져 있다는 겁니다.
두 번째 말씀이 누가복음14장26절입니다.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내 제자가 되려면 너희들은 내 부모처자 형제 자녀 네 목숨까지 미워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 말씀은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해당됩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소수의 제자들에게 해당되는 겁니다. 세계관과 가치관에 변화입니다 이 변화를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세 번째 말씀은 마태복음22장14절에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습니다. 하늘나라에 그런데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는 겁니다. 크리스천은 많은데 택함을 받은 사람은 적다는 겁니다. 네 번째로 디모데후서3정1절에서2절에 보면 말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날 텐데 말세는 예수님시대부터 시작해가지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예수님 재림까지 그 시간을 말세라 그럽니다. 지금은 말세 중 말세입니다
이 말세에 여러 가지 징조들이 있는데 그 중에 첫째 징조가 뭐냐면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겁니다. 이 당시에 바울이 순교직전에 하신 말씀인데 디모데야! 크리스천들도 다 자기를 사랑하지 절대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거나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다 지기중심이라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부분의 예수 믿는 사람들 우리나라만이 아닙니다. 전 세계가 다 똑같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 이 세상 사람들과 비슷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의 차이점은 뭐냐면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윤리적으로는 이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은 겁니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거꾸로 보면 일반사람들이 볼 때는 어떻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더 못된 사람들이 많은가? 그럽니다.
어떻게 교회들마다 보면 서로경쟁하고 옆 교회끼리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교회 안에 들어가면 서로 싸움하고 저 사람들 우리보다도 못해 그럽니다. 
우리는 저녁에 술집에 가서 술 한 잔 먹고 오해가 다 풀리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것도 안 된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 그러는 겁니다. 
이런 상황은 과거2천년 기독교역사에서 항상 있어왔습니다. 왜 그럴까요?
법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지만 윤리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겁니다. 윤리적으로는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요? 이것은 우리에게 큰 질문 중에 하나입니다 왜 제자는 소수만 제자가 될까요? 왜 크리스천전부가 다 제자가 못 될까요? 여기에 대한 답을 제가 드리려고 그럽니다. 이걸 논리적으로 잘 들으세요. 왜냐면 세상 사람들은 빼놓고 모든 크리스천들은 다 피조물들입니다 우리는 다 피조물들입니다 피조믈들이기 때문에 지난시간에 칼빈의 교리 중에 하나가 사람은 다 부패하다는 겁니다. 완전히 부패한 겁니다. 스스로가 저 세상을 볼 수 있는 저 세상의 기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 세상의 기준 속에서 살다가 이 세상에서 떠나는 것이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 세상은 진리의 세상이 아니라고 그랬잖아요. 우리가 플라톤의 2원론에서도 봤잖아요. 이 세상은 어두움의 세상이고 진리가 아닌 세상이고 그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천들이 법적으로는 예수님의 보혈 때문에 법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지만 크리스천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저세상처럼 살수가 없다는 겁니다. 사람은 크리스천인데도 이것이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시각입니다 너희들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이 세상에 눈이 보이는 것 이 세상필요에 눈이 가가지고 저세상을 생각도 안하게 되고 보지도 못한다는 겁니다. 그게 사람인 겁니다. 왜냐면 사람은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크리스천들은 법적으로 위치를 바꾸어 놓은 것뿐이지 내 속에 있는 더러운 질투심 미움 성질부리는 것 이간질 하는 것 기타 등등 더러운 마음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딜레마는 아니지만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낸 목적이 구원만 시키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내가 왜 왔다 이 세상 이게 영원한 세상이 아니고 저세상이 영원한 세상이라는 것을 이야기를 해주어야 되는데 그래서 너희들은 언젠가는 저 세상에 가게 되어 있는데 저 세상에 대해서 알려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하나님의 자녀들은 입도 벙긋하지 않는 겁니다. 저 세상에 대해서는 직장생활을 해도 그렇고 가정생활해도 그렇고 그냥 이 세상에 눈이 내려와 가지고 이 세상에서 잘살고 이 세상걱정 이 세상 이야기 이 세상에 욕심이 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창조주가 아시는 겁니다. 피조물은 다 그렇다 그런데 그 중에 소수의 피조물을 내가 창세전에 택해가지고 이 양반들은 이 세상에 살지만 저 세상 이야기를 하도록 창조가 하실 것을 계획하신 겁니다. 그런데 자기가 잘 나서도 아니고 선택받은 사람들은 자기가 노력해서도 아닌 겁니다.
이것은 창조주가 일방적으로 그냥 은혜로 뽑아놓는 겁니다. 뽑아놓고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뽑아놓고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뽑아가지고 저세상을 보도록 훈련을 시켜야 됩니다. 저 세상을 보도록 훈련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 사람들과 이 세상조직이 이 사람들을 미워하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핍박을 시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서 정이 뚝 떨어지게 만드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훈련계획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이 훈련을 받으면 눈이 어디로 가게 됩니까? 눈이 자기도 모르게 위로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왜냐면 이 세상이 재미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이 세상 사람을 만나면 겁이 나는 겁니다. 다 나를 핍박할 것 같고 저 세상이야기 조그만 하면 와서 막 집어내는 겁니다. 교회 안에서도 교재나 하고 재미있게 지내는데 매일 심각하게 저세상이야기만 하는 사람이 있으면 교회 안에서도 그 사람은 외로운 겁니다. 
왜냐면 교회 안에 법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지만 교회가 이 세상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목사라고 그래서 다 저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선교사라 그래서 아닙니다. 안수집사, 권사 장로 아닙니다.
대부분은 저 쪽에 속해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한번 여쭈어 보겠습니다. 그러면 거꾸로 자신이 나는 제자인지도 모르겠다고 점검을 하려면 어떻게 자신을 점검하면 됩니까? 지금 제가 말씀드린 것을 역으로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나는 어떻게 눈만 뜨면 이 세상 생각보다는 저 세상 생각에 관심이 있고 어떻게 하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지상 계명이 관심이 있고 수직적인 계명에 수평적인 계명이 또 지상사명 복음을 전하는 이 일에 이렇게 관심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관심이 있는데 그러니까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목적을 두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겁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교회도 열심히 나오고 선교도 열심히 하고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우상인 돈을 나는 교회에다가 많이 내고 하여튼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겁니다. 그런데 뭔가 잘 안 돼 주변에서 자꾸 나를 미워하고 핍박을 합니다. 동창회에 가도 친구가 없고 고향사람들 모여도 말할 친구가 없고 동네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해도 말동무가 하나도 없고 이게 주파수가 안 맞는 겁니다. 여러분들 중에 동기동창회에 가서 같이 술 먹고 놀면서 야! 하면서 떠드는 사람은 제자입니까? 아닙니까? 아닙니다. 벌써 동창회가서 재미있다 그러고 노래방에 가서 재미있다 그러고 TV에 나오는 연속극 보면 재미있다 그러고 거기에 시간이 많이 빼앗기고 이러면 아하! 나는 제자가 아닌 모양이구나. 주파수가 안 맞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한번 점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 느낌은 그러는 겁니다. 그럴 때는 이렇게 주님과 대화하는 겁니다. 주님! 분명히 저를 제자로써 예정하셨죠? 이렇게 여쭈어보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일날 6시간7시간 말씀 때문에 앉아 있고 그 말씀 때문에 내가 그래도 즐기잖아요. 분명히 주님이 나를 제자로 부르셨군요. 그런데 제가 아직도 제자가 되는 준비단계에 있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할 필요도 있습니다. 저는 우리AMI공동체 사람들은 주님께서 제자로 부르신 것 같습니다. 제자로 부르면 어떤 분들은 빨리 가고 속도와 위치가 다르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안 그러면 보통 주일 예배에 목사님의 설교가 20분에서30분인데 저는 한 시간 반을 해도 그 다음 주되면 또 와서 앉아 있습니다. 그런 걸 보면 이분들을 주님이 붙잡으셨구나. 오늘은 15장 마지막 부분을 지난시간에 잠깐 봤는데 15장 마지막 부분을 보면 15장25절에서27절입니다.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이렇게 제자들인 너희들은 연고 없이 세상에서 미움 받을 거라는 겁니다. 이것은 구약에서 이미 예언되었다는 겁니다. 25절에 그랬습니다. 그리고 26절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부탁하여 제자들에게 보혜사 곧 진리의 영을 보내줄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보혜사 진리의 영을 받을 것이로구나. 라고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진리의 영을 받으면 26절에 뭐라고 말씀하였냐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정체성을 그동안에 들어왔는데 그 정체성을 증거 하도록 도와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의정체성을 이사람 저 사람에게 이야기할 때 아하! 보혜사성령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구나. 이렇게 우리가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15장에 이렇게 말씀을 끝내시고는 16장으로 들어갑니다. 16장1절에 그러는 겁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그때 이것이라 하면 도대체 이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2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나타나는데 유대인들을 가지고 이여기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하나님을 신성 모독하니까 저 제자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저 제자들을 죽이겠다는 그런 일들이 일어 날거라는 겁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것이 너희에게 이르노니 할 때 이것은 무엇입니까? 길게 보면 뭐냐면 성만찬설교내용입니다 성만찬 때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겁니다. 
발 씻기를 하시면서 원죄와 잡음 죄에 대해서 가르쳐주시고 가룟 유다가 누구라는 것을 가룟 유다가 사탄의 후손이라는 것을 창세기3장15절에 나오는 여자의 후손과 사탄의 후손이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지상계명 수직 수평계명을 가르치시고 예수님이 길이여 진리요 생명 되심을 가르쳤고 그러니까 예수님 외에는 아버지께로 갈수 없다는 것을 그다음에 보혜사성령님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고 그다음에 15장에 와서는 참 포도나무 농부 가지를 비유로 말씀하시고 그다음에 15장후반부에 와서는 제자의 특색들을 가르쳤습니다.
제자는 선택받고 핍박받을 것을 그러니까 일곱 가지 크게 보면 일곱 가지 내용을 가르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16장1절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가르쳐준 이름의 목적이 무엇이냐면 제자들이 실족하지 않게 함이라는 겁니다.
제자들이 실족하게 된다는 겁니다. 언젠가는 걸어가다가 발이 걸려서 넘어지는 것을 실족한다는 겁니다. 왜냐면 이분들이 유대인들에게 뭘 당하느냐면 출교를 당한다고 그랬습니다. 출교를 당한다는 말이 뭐냐면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쫓겨난다는 소리는 유대인으로써 취급을 받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제자들은 유대인들이지만 그래서 모든 권리가 다 박탈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될 것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유대인으로써 종교파문을 당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고 가족들도 피해를 당하고 이제는 가족들도 그 동네에서 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자녀들도 미움 당하고 왕따 당하고 차별 당하고 이분들은 저 놈들은 매국노 집안이다 이완용집안이다 이렇게 말할 거라는 겁니다. 
변절자 가족이다 언젠가는 이분들은 그러다가 죽게 되는 겁니다. 
이런 일들이 제자들의 삶 속에서 있게 될 터인데 그럴 때마다 성만찬설교의 일곱 가지를 기억하라는 겁니다. 그럴 때마다 기억을 하는데 기억을 하도록 도와주는 분이 누구냐면 보혜사성령님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에게는 보혜사가 절대로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멋있는 분이십니다. 그 중에 한 가지 멋있는 부분은 우리가 베드로를 다루면서 보면 베드로가 언젠가는 실족하게 되어 있거든요 베드로도 열두제자들도 다 마찬가지로 이분들이 예수님을 다 떠나잖아요.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을 보면서 이분들은 다 고향으로 도망 가버렸잖아요. 실족해버렸습니다. 이렇게 베드로가 실족할 것을 미리 경험하도록 예수님께서 계획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26장31절에서35절에서 무슨 계획을 하였냐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럽니다. 오늘 밤에 다 나를 버리리라 오늘 밤은 성만찬하는 날입니다
오늘 밤에 다 나를 버리리라 그것도 스가랴서13장7절에 예언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떼가 흩어진다고 스가랴에게 13장7절에 말했는데 이 말이 그대로 이루어 질 텐데 예수님이 내가 목자로써 취함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게 십자가사건을 경험하는데 그럴 때 제자들 열두 명이 다 도망간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예언하시는 겁니다. 
실족당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주여 이 친구들이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진실로, 진실로 두 번 말씀하시는 겁니다. 진실로, 진실로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내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그러는 겁니다. 예수님이 계획하시는 겁니다. 
너 피조물인지 모르느냐 너는 변하는 존재야 너 이익에 반하면 너는 변하는 존재야 내가 3년을 훈련시켜도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아무리 말해줘도 지적으로만 이해하는 거지 그것을 행동화 뭇 한다 그렇기 때문에 너는 변한다. 
너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그러니까 베드로가 큰 소리를 치는 겁니다. 네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큰 소리를 치는 겁니다. 예수님이 거기에 대해서 대답안 하십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야! 일어나 가자하면서 성만찬이 끝난 겁니다.  
데리고 겟세마네로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다음에 예수님이 가야바 뜰에서 붙잡혀가지고 심문받고 이러는 장면이 나오는데 베드로가 이미 도망가 버렸습니다. 저 멀리서 비자가 너도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있었다.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니까? 이분이 아주 오리발을 내미는 겁니다. 예수님이 예언하시는 그대로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몇 시간 후에 이분이 대답하는 걸 보면 이런 대답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앞으로 기독교계에 대 거물이 될 사람인데 이런 야비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나는 내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겁니다. 자기 몸을 아끼느라고 이런 약삭빠른 거짓말로 대답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의 사탄의 간교한 쓴 뿌리가 없습니까? 있습니까? 있는 겁니다. 저는 이걸 보면서 나는 이런 대답을 난 할 텐데 내가 약간 낫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가져 보았습니다. 여러분들 대부분이 이분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 있었을 때 예를 들어서 물어보는 겁니다. 너도 갈릴리사람 예수와 함께 있는 동료냐 그럴 때 여러분들 대부분이 맞아요.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이 말을 들었던 다른 비자가 이 사람 나사렛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뭐라고 대답하느냐면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그랬습니다. 맹세하고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그러는 겁니다. 저도 이걸 보면서 이런 사람을 주님이 들어다 쓰시는 겁니다. 이 말을 듣던 옆에 있던 사람이 하시는 말씀이 여보 당신 너도 진실로 그 당이다 내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너 갈릴리 엑센트가 그로다 아주 정곡을 찌르는 겁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대답하는 장면을 보세요.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며 뭐라고 저주했겠습니까? 예수님을 막 욕을 했을 겁니다. 저주하면서 맹세하기를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까 닭이 세  번우는 겁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심히 통곡하드라 그랬습니다. 베드로에게 이런 경험이 필요합니까? 안 필요합니까? 필요합니다. 자시가 피조물이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변화는 존재라는 것을 아주 뼈아프게 경험하게 하는 겁니다.
우리 제자 되는 사람들은 이런 뼈아픈 자기 스스로의 못난 부분이 경험이 되어야 됩니다. 이걸 경험 안하고 제자가 절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걸 경험 안하고 제자가 되면 그 제자는 말이 제자지 교만한 제자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타이틀은 제자가 되었어도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타이틀 모습이 제자기 때문에 포지션이 제자기 때문에 제자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돈벌이도 많이 하고 권력을 잡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자기의 이익으로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지고 예수의 이름으로 소위 종교지도자가 되는 겁니다. 제자들이 왜 이런 실수를 했어야 합니까? 그러면 첫 번째로 제자들이 피조물이며 인간이기 때문에 그 한계성을 노출시켜야 됩니다. 
제자들은 디모데후서3장2절 말씀처럼 자기를 사랑하는 존재인 것을 적나라하게 노출시켜야 됩니다. 제자들은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이해관계와 상충되면 어떻게 됩니까? 돌변한다는 것을 노출시켜야 됩니다. 인간은 변하는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을 신뢰하면 실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가나안혼인잔치를 하신 후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2장24절에서25절에 하시는 말씀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막 따르면서 예수님대단하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러는 겁니다. 나는 저 사람들을 의탁하지 않는다. 왜냐면 친히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에 사람들을 의착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다 피해야 됩니까? 아닙니다. 사람을 믿으면 안 됩니다. 특히 우리민족은 가까운 친구가 되면 믿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그 사람을 믿었는데 나 이렇게 됐어 우리 크리스천들도 신앙생활같이 하다가 어떤 오해가 생겨가지고 서로가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길거리서 만나면 서로 쳐다 도 안 봅니다. 
예전에는 그렇게 친했는데 이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 사람 험담을 하고 과거에는 그렇게 친했는데 저 사람들이 왜 갑자기 저렇게 되었지 왜 그렸습니까? 사람을 너무 믿다 보면 그렇습니다. 사람은 사람입니다
저 사람 나에게 신세 많이 졌는데 왜 갑자기 저렇게 나를 공격하지 이런 일들이 너무나 많잖아요. 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우리크리스천들은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은 변하기 때문에 믿으면 안 됩니다 
믿는 것 대신 변하는 존재인 것을 인식하고 일방적으로 사람은 그냥 사랑해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이나 기대의 대상이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그냥 인정해주고 안아주는 겁니다. 저 사람이 변하면 변하는구나. 그리고는 그 자체를 인정해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냥 주고 기대하지 않는 겁니다. 제자들을 봐도 다 이렇게 변하는 사람들이었잖아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너희들이 앞으로 지도자가 될 텐데 너희들도 이렇게 변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스스로가 느껴라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 사람들을 변하는 것을 그냥 잡아다가 일방적으로 아가페사랑으로 하신 겁니다. 일방적으로 잡아다가 쓰신 겁니다. 그러면서 훈련시키시는 겁니다. 너희들 변하지 말라 그러면서 훈련기간이 상당히 길었습니다. 
왜 베드로의 약한 모습을 노출시켰을까요? 다시 한 번 말하면 베드로는 장차 초대교회의 최고수장으로 예정 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최면도 봐 주셔야 되잖아요. 예수님께서 그런데 이런 추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노출시키게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베드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너는 진흙 같은 존재고 변하는 존재다 나의 일방적인 사랑 아니면 너는 존재목적도 가치도 없다는 겁니다. 이런 형편없는 너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가 너를 예정해서 너를 훈련시켜서 나의 창조목적을 너가 순종케 하고 많은 사람에게 순종케 하는 도구로 사용하려고 하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너는 너가 잘 나서가 아니고 너는 그냥 은혜를 받아서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는 딴 사람들 변하는 사람들 보고 정죄하거나 그런 사람들 핍박하거나 그러지 말아라. 너도 똑같은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변화되는 사람들이 변화지 않도록 적어도 예수 화 되도록 하는 하나님의 선물이 있는데 그 선물이 보혜사라는 겁니다. 보혜사성령님과 교제를 하고 이분과 관계를 깊이 맺으면 이 문제가 하루아침에는 안 되지만 서서히 해결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성령님에 대해서 조금 구체적으로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과거에 이 부분을 다루었지만 오늘은 조금 더 체계 있게 다루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혜사성령과 우리가 보통 부르는 성령과 보혜사성령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냥 보혜사 성경에는 성령하면 원어로 프뉴마(Pneuma) 그랬습니다. 이것을 성령이라 그럽니다. 그다음에 또 성서에서는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는 보혜사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 두 성령이 다른 성령입니까? 아닌 겁니다. 한 성령입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니까 잘 들으세요. 한 성령인데 위치와 기능에 따라서 이름이 달라지는 것뿐입니다. 한 성령인데 우선 성령의 존재적 의미에서 예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아버지의 영,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성령, 아들의 영, 주 하나님의 영, 주의 영, 예수그리스도의 영, 성령 열 가지의 존재적 성령님들의 이름들이 있습니다. 기능적 성령의 이름들이 있습니다. 
생수, 보혜사, 진리로 인도하는 영, 장례 일을 알려주는 영,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영, 요한복음에는 성령님의 기능적인 이름들을 최소한 다섯 가지를 열거했습니다. 그러면 우선 기능적 성령님의 이름들 중에서 생수와 보혜사가 어떻게 다르냐면 우선 기능적인 측면에서 제가 말씀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위치적으로 성령님의 이름이 다르게 표현이 됩니다. 우선 성령님은 무소부재하십니다. 무소부재하시니까 성령님은 모든 곳에 다 계십니다. 
그런데 특히 성령님이 내 속에 내 마음에 하트(heart)속에 들어와서 계시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이 성령님을 그냥 성령 프뉴마(Pneuma)그러는 겁니다. 
이 성령님은 들어오실 때 왜 들오느냐면 나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들어오시는 겁니다. 그런데 이 성령님은 누구의 영이라고 그랬습니까?
예수님의 영 또는 그리스도의 영, 아버지의 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계시다는 거나 똑같습니다. 예수님이 영으로 내 속에 계시는 겁니다.
또 성부하나님도 영으로 계시는 겁니다. 이렇게 지금 왜냐면 성령님은 아버지의 영이라고 그랬거든요 마태복음10장20절 16장17절 로마서8징16절에 성령님을 내가 모시고 계시다는 것은 저나 여러분은 아버지가 내속에 계시고 성자도 내속에 계시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내속에 계신데 이렇게 내속에 계신 성령님을 예수님이 뭐라고 표현하느냐면 생수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이것을 요한복음3년 공생애 중간정도 되었을 때 요한복음7장38절에 설명을 합니다.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영광 받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사건입니다 십자가사건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성령님이 우리 속에 배속에 들어오지 않는 다는 겁니다. 배속을 영어로 뭐라고 그럽니까? 더 인너 모스트 비기닝 하트(heart)을 그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때가 되면 제자들이나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사람들은 프뉴마(Pneuma)성령님이 내속에 들어와서 나의 하트(heart)속에 들어와서 계실 거라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을 뭐라고 그럽니까? 구원받았다 그러는 겁니다. 
구원을 주시는 성령님이십니다. 내 하트(heart)에 내재하는 성령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안에서 이분이 절대로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령님이 딴 곳에는 안 계십니까? 계십니다. 지금 내속에도 계시지만 성령님이 지금 우주에 편만해 계십니다. 우주에 편만해있는 성령님인데 내 옆에 졸졸 따라다니면서 나를 도와주시는 성령님한분이 있다는 겁니다. 
그 성령님을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성령님이라 그러는 겁니다.
같은 성령님인데 파라(para)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내 옆에서 걸어간다는 뜻입니다 그다음에 클레토스(kletos)는 초청을 받는 자라는 소리입니다
수동적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는 한마디로 말하면 나를 따라 다니면서 초청하기를 기다리는 분 이런 소리입니다 
이분은 하트(heart)에 계신 성령님을 따라다니면서 기능적으로 자꾸 나를 흔듭니다. 애야! 나하고 같이 놀자 나하고 같이 대화 좀 하자 그래서 나를 불려라 나를 초청해라 그렇게 요구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항상 걸어 다니면서 보혜사성령님 안녕하세요. 하면서 인사도 하고 그렇게 하셔야 됩니다. 그런데 보혜사성령님은 실제로 누굽니까?
예수님의 영이니까? 예수님이 옆에 계신 거나 똑같은 겁니다. 
다시 보면 내속에 계신 성령님은 그냥 가만히 계시기만 합니까? 
아닙니다. 이분이 생수로 계시기 때문에 생수의 역할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내속에 있는 성령님과 교재를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목사님들이 축도할 때 사도바울이 축도한 겁니다. 고린도교회에 예수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하나님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교재하심이 그랬습니다. 교재라는 게 뭐냐면 내속에 계신 프뉴마(Pneuma)성령님과 교재를 해야 되고 내 옆에 계신 보혜사성령님과 교재를 하셔야 되는 겁니다. 
이게 크리스천들의 복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안에 계신 성령님과 교재를 하는 겁니다. 성령님 오늘 기쁘십니까? 영의 눈을 뜨고서는 내 속에 계신 성령님과 대화하는 겁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물 같이 내속에 있는 쓴 뿌리들을 씻어내는 겁니다. 물의역할을 하시는 성령님이 프뉴마(Pneuma)성령님이십니다. 그러니까 항상 나를 씻어주시는 겁니다. 문제는 내 속에 더러운 쓴 뿌리들이 있는데 나를  이렇게 씻어주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또 무슨 역할을 하느냐면 성령님이 씻는데 바울이 로마서8장26절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이 로마서8장의 사람들과 7장의 사람들이 다릅니다. 성령님에 붙잡혀 사는 사람들을 로마서8장의 사람들입니다 
매일 성령님과 대화하는 사람들은 내 속에 계신 성령님을 어떻게 합니까?
내가 빌 바를 알지 못하는데도 나를 대신해서 탄식하면서 아버지께 기도해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령님과 내가 초점만 맞추고 있으면 이분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내가 몰라도 이분이 잘 아시니까 나의 더러운 성품들을 제거해주시는 역할을 하신다는 겁니다. 로마서8장26절에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8장28절에 뭐라고 그랬습니까? 이런 사람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니까 제자들입니다. 일반 크리스천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지상계명에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이 세상에 돈을 사랑하고 자녀도 사랑하고 가족도 사랑하고 이러면 여기에 들어가지 않는 겁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성령님이 내속에서 나를 위해서 중보해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모든 것이 합해서 선을 이루니라 그러니까 우리의 목적은 무엇이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이 저에게 물어볼 것입니다 
목사님 그러면 우리가족은 어떻게 하고 사업은 어떻게 하고 뭐는 어떻게 하고 자녀들은 어떻게 합니까? 잊어버려야 합니까? 잊어버리는 게 아닙니다.
너희들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여봐라 그러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다. 이것을 경험해보라는 겁니다. 먼저 이 세상 것을 가지고서 걱정하고 이 세상것 때문에 온 정성이 빠져있고 우리교회도 그런 분들 있습니다.
눈만 뜨면 이 세상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이 안에도 많습니다. 
제가 보면 오! 주여 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잔소리 안합니다. 가만히 놓아  둡니다. 왜냐면 성령님이 만져야지 어떻게 합니까? 대화를 하면우리가 어떻게 하면 주님의 나라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우리가 마음을 하나로 묽어서 하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런 그룹이 되기를 저는 바라는 겁니다.
이게 제자그룹입니다 이 이야기를 할 때는 오해도 없고 다툼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주님만 쳐다보고 있으니까 무엇을 하는 데 다툼이 있고 뭐가 있고 섭섭하다 이러면 아! 주님우리는 아직 멀었습니다. 
이렇게 프뉴마(Pneuma)성령님이 역사하시잖아요. 그래서 나의 쓴 뿌리들을 제거해주시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러는 겁니다. 요한복음14장16절과 15장 마지막과 16장에서 하시는 말씀이 애들아 너희들이 이렇게 실족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아버지께 부탁하겠는데 내 이름으로 보혜사성령님을 보내주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보혜사성령님은 항상 여기에 계십니다. 
없었던 분을 보내주시는 게 아니고 계시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너희들 옆에 보혜사성령님이 와서 계시다는 겁니다.
그러면 너희들이 보혜사성령님을 가지게 될 텐데 언제 가지느냐면 예수님께서 보혜사성령님은 프뉴마(Pneuma)성령님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시는 겁니다. 그러면 프뉴마(Pneuma)성령님은 언제 가지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이 일어나고 그 후에 예수님이 부활하시고는 부활의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그 때에 제자들이 깨닫고는 예수님을 졸졸 따랐던 겁니다. 그러니까 부활한 예수님을 보고 이분들의 마음에 변화가 온 겁니다. 그래가지고 예수님은 저분은 그동안 요한복음1장에서부터 지금까지 예수님의정체성을 이야기하셨는데 그 정체성에 맞는 분이구나 저분은 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구나 창조주시구나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 이것을 깨달은 겁니다. 깨닫는 순간에 이분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분들에 뭐가 들어갔습니까? 보혜사성령님이 저들의 하트(heart)속에 들어간 겁니다. 그래가지고 이분들은 크리스천이 된 겁니다. 크리스천이 되었는데 열두제자만이 아닙니다. 몇 명이었습니까? 약600여명이었습니다.
40일 동안에 6백여 명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15장5절에서8절에 보면 나옵니다. 40일 동안에 같이 다녔던 분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분들이 약 600여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크리스천이 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후에 따라다녔던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 600여명을 모아놓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예들아! 너희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라. 예루살렘에서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40일 되는 그날에 승천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사도행전1장3절 말씀입니다. 
너희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약속한 성령이 오기를 기다리라는 겁니다. 그때 그 성령은 무엇입니까? 보혜사성령님인 겁니다. 이미 이 사람들은 무엇을 받았습니까? 프뉴마(Pneuma)성령님은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보혜사성령님 내가 약속한 언제 약속했습니까? 요한복음14장16절 15장16장에서 말씀하신 약속한 것을 기다려라 그러면 그 성령님이 오시면 너희들은 물로 세례를 받았던 것이 이제는 불로 세례를 받으리라 그러시는 겁니다. 요한복음1장5절에 그리고는 그 유명한 사도행전1장8절에 하시는 말씀이 이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들은 권능을 받아가지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나의 증인이 되리라 그러니까 이 보혜사성령님을 받으면 어떤 사람으로 변한다는 겁니까? 권능을 받게 되고 왜 권능을 받게 됩니까? 쓴 뿌리들이 어느 정도 제거가 되는 겁니다. 성화되면서 그때부터 입을 열면 예수님을 증거 하는 이야기만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배웠지만 프뉴마(Pneuma)성령님은 생수같이 기능적으로 역사하시고 보혜사성령님은 어떻게 역사하십니까? 첫째 바람같이 사도행전2장2절입니다. 또 불 같이 2장3절입니다. 그다음에 비둘기같이 마태복음3장16절입니다.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내려오셨습니다. 
또 빛 같이 다메섹에서 성령님께서 바울에게 빛 같이 내려오신 겁니다. 
이렇게 보혜사성령님이 어떤 때는 불 같이 와서 우리의 쓴 뿌리들을 태우고 또 생수가 그것을 씻어내고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역사를 하시는 겁니다. 
바람같이 해서 싹 내보내기도 하시고 비둘기 같이 빛 같이 이런 현상을 뭐라고 그럽니까? 이런 현상을 성령세례 사도행전1장5절에 성령 충만 사도행전2장4절에 또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 이사야서61장2절 고린도후서1장21절 요한1서2장20절 또는 27절에 그러면 보혜사께서는 내속에 들어오셨다가 볼 일 보시고 나가십니까? 나가는 게 아닙니다. 보혜사성령님이 다시 말하면 프뉴마(Pneuma)성령님과 같은 성령님입니다 그래서 보혜사성령님이 내속에 들어오시면 프뉴마(Pneuma)성령님과 같은 성령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재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보혜사성령님을 받으시면 이 안에 성령님이 계신데 이 성령님은 무엇입니까? 강하게 역사하시는 미사일부대라고 생각하시면 어떨까요? 같은 성령님이신데 그래서 내속에 들어와서 내재하시는 겁니다. 일단 내속에 들어오시면 보혜사성령님은 내재하십니다.
요한복음14장17절에 그랬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14장16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들에게 다른 보혜사를 줄 터이니 너희와 함께 거하고 너희 속에 계심이라 그랬습니다. 보혜사성령님을 너희들에게 보내 줄 텐데 다른 보혜사 그랬습니다. 요한복음14장16절에 다른 이라는 뜻이 알로스 영어로는 언아드(another) 알로스(alors)라는 헬라어는 본질이 똑같다는 겁니다. 본질은 똑같은데 기능적으로 다르다는 뜻입니다.  알로스(alors)라는 단어가 그럴 때 쓰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다른 보혜사라니까 보혜사가 둘이 있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언아드 헬퍼(another helper) 언아드 파라글레토스(another parakletos)니까 이 안에 계신 프뉴마(Pneuma)성령님도 보혜사 성령님입니다 그런데 다른 보혜사를 준다니까 보혜사란 뜻이 무엇입니까?
도와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해석을 파라글레토스(parakletos를 여러 가지로 해석을 했습니다. 첫째 컴퍼트(Comfort) 위로자라고 해석한 성경이 있습니다. 또는 에버케이트(Advocate) 변호자라는 소리도 있습니다. 
또는 헬퍼(Helper)돕는자 그다음에 카운슬러(Counselor) 보혜사를 이렇게 설명했는데 알고 보면 은밀한 의미에서 보면 내 안에 계시는 프뉴마(Pneuma)성령님도 보혜사입니다 나를 도와주는 분입니다 그런데 기능적으로 조금 다르게 도와주는 것뿐입니다. 같은 성령님이신데 도와주는 방법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4장17절 이하에 보면 그러시는 겁니다. 이 진리의 영이 너희에게 오면 너와 함께 계실 것이요 그때 함께한다는 것은 바깥에 계신 뜻입니다 그리고는 너희 속에 계심이라 그럴 때 이분이 또 바깥에도 계시지만 너희 속에도 계시겠다는 겁니다. 
로마가톨릭의 이사상은 성령의 발원에 대한 문에 때문에 그리스사람들과 싸움이 붙었습니다. 로마가톨릭에서는 뭐냐면 지금 여기에 나오는 성경 말씀하고 똑같습니다. 성부하나님에게서 발원하는데 성령님은 성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오신다는 겁니다. 성서에 보면 그대로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14장16절과26절에 그랬습니다. 성자를 통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리스사람들은 아니다 성부하나님께서 직접 예수를 통하지 않고 우리에게 오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 때문에 싸움이 난걸 우리가 필리오케(Filioque)라 그랬습니다. 이게 라틴어로 무슨 말이냐면 앤드 프롬 더 선(and from the son)이라 그랬습니다. 성령님이 아버지에게서 오지만 앤드 프롬 더 선(and from the son)을 통해서 온다. 
프롬 더 선(from the son)이라는 소리가 필리오케(Filioque)입니다
그런데 그리스사람들은 필리오케(Filioque)가 아니다 직접 아버지에게서 우리에게 직접 오신다. 이런 개념입니다. 그래서 소위 그리스정교회 러시아정교회 애굽정교회 에티오피아정교회 시리아정교회들은 다 필리오케(Filioque)를 무시를 합니다. 지금도 그럽니다. 여기서 신학적인 차이점이 조금 있습니다. 그다음에 제목을 바꾸어서 그렇다면 예수님이 왜 육신으로 남아있지 왜 떠나야 되는가? 이게 우리의 질문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보면 왜 떠나셔야 되는가? 그러면 거기에 대한 우리의 논리적인 대답을 해주어야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육체로 계실 필요가 없는 겁니다. 왜냐면 창세기3장15절을 성취하기 위해서 성육신하실 것을 예언하셨잖아요.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예언하셨는데 이것이 끝난 겁니다. 그래서 저 세상에서 이 일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는데 자기가 하시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저 세상으로 가시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자기 고향이니까 두 번째는 예수님이 육신으로 이곳에 계시면 제자들에게는 도움이 안 됩니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이곳에 계시면 제자들이 육신으로 계신 예수님을 자꾸 의지하게 됩니다.
의지하다보면 이분들은 영적으로 나약한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예수님도 육신을 가지고 계시면 육신 때문에 그분이 당하셨던 모든 문제점들 우리가 기억하죠. 똑같은 겁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면 제자들을 부른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 육신으로 있지만 저 세상 메시지를 전하기위해서 선택받은 존재들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저 세상 메시지를 전하려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셔가지고 육신적으로 그들을 도와주면 저 사람들은 저 세상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못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러는 겁니다. 내가 떠나야지만 너희들에게 유익하다는 겁니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혜사 너희들을 도와주는 성령님이 오시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면 보혜사성령님이 옆에 계시지만 너희들은 이 성령님에게 의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꾸 육신의 예수님께만 의지하게 된다는 겁니다. 똑같이 우리가 돈이 많고 이 세상에서 뭐가 많습니다. 가진 게 많고 잘 되고 그러면 그기에 의지하지 절대로 저세상에 의지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예외는 항상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걸 이 세상 것을 많이 가진 사람들인데 이것은 쓸모없다고 생각하고 저쪽에 의지하는 사람은 진짜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걸 어떻게 말로 표현 합니까? 그렇기 때문에 보혜사가 여기에 계시다는 것을 영의 눈을 뜨고 보게 하게 되는 그러한 사람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지 말아야 된다는 겁니다. 떠나셔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사란들에게 보혜사 성령님도 주시지만 또 무엇을 주십니까?
이분들이 영의 눈이 떠니까 보호천사들도 주시고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시편34편7절에 그리고는 시편91편에 보면 그 예수님이 영으로 오셔가지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피난처가 되시고 요새가 되시고 방패가 되시고 손 방패가 되시고 사냥꾼의 올무와 극한 전염병에서 건지시고 보호천사들의 깃으로 덮으시고 이런 일들이 예수님이 올라가시면 우리에게 있게 된다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곳에 있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왜 안 됩니까? 
눈에 보이는 곳에 있으면 우리 눈이 저 세상으로 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세상에 계신 예수님만 바라보게 된다는 겁니다. 이게 우리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겁니다. 요한복음은 1장부터 계속 나오잖아요. 이 세상 저세상, 이 세상 저세상 두 이원론적인 이야기를 계속하시는 겁니다. 그러면 보혜사의 주요 기능이 열 가지가 있습니다. 보혜사는 쓴 뿌리를 제거해주고 우리를 성화시키고 30가지 성령의 은사들이 활성화 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시고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며 장래 일을 알에 해주시고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보혜사성령님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증거 하게 하시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생각나게 하시고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 실족하지 않게 도우시고 제자들의 근심을 기쁨으로 변화시키고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한다고 그랬습니다. 이 부분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분인데 간단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16장8절에서11장의 말씀입니다. 보혜사성령님이 오시면 죄에 대해서 먼저 책망한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죄에 대해서 책망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다가 이야기하는 겁니다. 죄라는 게 무엇입니까? 헬라어로 하말티아(aJmartia)입니다 
화살을 쏘았는데 과녁에 벗어났다는 것을 하말티아(aJmartia)라고 그럽니다. 
다시 말하면 죄라는 것은 우리가 원죄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죄에 대해서 하말티아(aJmartia)인간을 만든 피조물을 만든 창조의 목적이 있습니다. 창조의 목적은 창조주를 경외하고 경배하고 찬양하는데 목적이 있는데 이것이 빗나간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청조의 목적에서 빗나간 겁니다. 이것을 보혜사성령님이 오셔가지고 너희들이 이런 사람이다 창조의 목적에 위배된 행동을 하는 그러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책망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뭐냐면 의의에 대해서 창조의 목적에 위배하는 사람들은 의인이 아니고 죄인입니다 그런데 의인 예수님이 오시면 이 문제를 해결해주시는데 의인이 이렇게 이 세상에 내려오셨다 우리에게 의인이 되기 위해서 이것을 믿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너희들도 의인이 된다. 의인인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똑같이 의인이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거기에 대해서 가르친다는 겁니다. 책망한다는 것은 깨닫게 해준다는 뜻입니다 보혜사성령님이 예수를 믿으면 내가 의인이 된다.
그 예수는 의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역할을 보혜사성령님이 하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심판에 대해서 이 세상은 두 가지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들이 있는데 이 두 자녀들을 나중에 추수가 끝나면 나중에 심판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13장47절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각종물고기를 담는 거물을 예를 드시면서 천국은 그렇다는 겁니다. 이제 나가서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를 잡아가지고 나쁜 고기들은 뽑아다가 풀 무불에다가 던져 버린다는 겁니다. 
천국은 이렇게 심판이 있다는 겁니다. 이런 것은 다 보혜사성령님을 받은 사람은 이런 것이 머리가 정돈되고 깨닫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16장에서 결론적인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왜 제자들이 근심을 했을까요. 
예수님이 지금 유월절만찬설교를 하시면서 결론적으로 너희들이 근심이 많다는 겁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분들이 왜 이렇게 근심을 하실까 예수님이 곧 떠나시는데 예수님이 내가 너희들과 있지 않는다. 이러실 때 분명히 그랬을 겁니다. 아! 우리도 떠나야 되겠구나. 가족들 사업 직장 다 버리고 이분을 따랐는데 이제는 소망이 없구나. 이런 장례에 대한 불투명한 생각도 가졌을 테고 또 가족들에게 다시 돌아가려니 체면이 말이 아니고 면목이 없는 겁니다. 사업도 새로 시작해야 되고 직장도 새로 시작해야 되는 겁니다. 이런 인간적인측면에서의 이러한 부분도 있지만 이분들이 가장 걱정했던 것이 뭐냐면 성만찬설교내용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성만찬설교내용을 들어보니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15장19절에 세상이 너희들을 미워한다는 겁니다. 핍박한다는 겁니다.
15장20절에 세상이 너희를 출교시킬 것이라는 겁니다. 너희들이 유대인 공동체에서 왕따 당할 것이라는 겁니다. 16장2절에 그다음에 너희들을 나중에 결국 죽일 거라는 겁니다. 16장2절에 조금만 있으면 너희들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그러는 겁니다. 16장17절에 이분들이 보지 못한다고 그랬는데 또 본다고 그러니까 이게 불안하고 헷갈리는 겁니다. 이 모든 것을 이 사람들이 보면서 이러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다대고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결론적으로 16장20절에 그랬습니다.
너희는 곡하고 애통할 때가 온다는 겁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사라지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사건을 통해서 소망이 없어 보이고 이럴 때는 곡하고 애통할 때가 오는데 조금 있으면 보혜사성령님이 너에게 오면 너희들에 이 곡과 애통이 기쁨으로 변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16장21절에 그랬습니다. 여자가 해산하는 예를 드시는 겁니다. 여자가 해산할 때가 되면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니까 너희들은 여자가 애기를 낳아서 기쁨.
애가가 나오는 게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다시 성령님의 보혜사로 다시 오시는 이 기쁨 다시 오시는 영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생각할 때 애기 낳는다는 겁니다, 똑같이 우리가 마태복음24장에서 예수님이 오시기 직전에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있는데 전쟁이 나고 미움이 있고 고통당하고 너희들이 핍박당하고 하는데 이것은 애기를 낳는 재난의 시작이라는 겁니다. 출산의 고통이 있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따다다 따 하고 나타나신다는 겁니다. 똑같이 기쁜 소식이 있기 전에 항상 이런 어려움이 있다는 겁니다. 제자들이 이걸 경험하시고는 보혜사성령님을 오순절 다락방에서 만나시고는 그때부터 이분들이 사도행전을 보면 기쁨들이 많았습니다. 이분들이 주님을 섬기는 기쁨들이 말도 없이 많았습니다. 
성만찬설교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주욱 이 설교를 하시고는 너희들이 이제는 출교를 당할 텐데 죽임을 당할 텐데 그럴 때마다 성만찬설교를 기억해라는 겁니다. 그러려면 너희들의 생머리로는 안 된다. 보혜사성령님이 너희에게 오시면 이것을 기억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보혜사성령님의 열 가지 기능 아까 봤지만 이 기능을 기억하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메시지 중에 한 메시지를 제가 전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복 있는 제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 산상수훈에서 가르쳤습니다. 
복 있는 제자가 되려면 그래서 복 있는 자는 복 있는 자는 할 때는 일반크리스천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복 있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팔복을 말씀하셨습니다. 팔복을 제가 다시 한 번 간단하게 설명해드리면 오늘 말씀과 연계가 됩니다. 첫째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심령이 가난해야 됩니다. 심령이 무엇입니까? 내속에 하트(heart)입니다 하트(heart)가 프토코스(ptokos)가난입니다 예수님의 성품이 하나도 없다고 고백하는 겁니다. 그게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런 마인드가 어떻게 나올까요? 제자들이 그러니까 크리스천들이 네속에 계신 프뉴마(Pneuma)성령님과 교제하는 사람입니다 
프뉴마(Pneuma)성령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항상 내 마음 속에 뭐가 있느냐면 왜 내가 예수님의 성품이 없지 왜 내가 저 사람만 보면 질투심이 생기지 왜 나에게 불편하게 한 사람에게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지 이것을 성령님과 대화하는 겁니다. 내가 예수님보다도 세상 것을 더 사랑하지 이걸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이게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누구와 대화를 먼저 하라고 합니까? 내속에 계신 프뉴마(Pneuma)성령님과 대화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크리스천들의 복 받는 제자의 기본생활지침입니다 이걸 묵상하세요. 이렇게 묵상하는 사람은 천국이 저희 것이요 그랬습니다. 이미 현재형입니다 이미 우리는 낙원에 가 있지 않지만 이 세상 삶 자체가 낙원이 된다는 겁니다. 천국 현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다음 단계가 무엇입니까? 애통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내가 왜 이렇지 왜 이렇지 이것 때문에 더 애통하는 겁니다. 
내가 왜 예수님을 닮지 못하지 내가 왜 이렇지 신앙 생활하는 데도 왜 이렇게 애통하는 사람은 그다음에 약속한 게 위로를 받을 것이요 그랬습니다.
위로하는 데만 인간적인 위로하는 게 아닙니다. 위로 받는다는 것은 위로 자 
컴퍼트(Comfort)보혜사가 나에게 오게 된다는 겁니다. 보혜사가 와서 바람으로 불로 빛으로 비둘기로 내속에 들어와서 내속에 있는 쓴 뿌리들을 제거해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내가 성화되는 겁니다. 
프뉴마(Pneuma)성령님과 교제하고 보혜사성령님과 교제하는 그러면 내가 조금씩, 조금씩 성화되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온유한자가 되는 겁니다. 
온유한자는 그저 복실 강아지처럼 주인의 말을 잘 듣는 사람입니다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지상계명과 지상사명에 순종하는 마음이 들어오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그랬잖아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뭡니까? 낙원에 천국에 가면 많은 통치지역을 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은 영적으로 이미 높은 계급에 있다는 소리입니다
영적으로 그게 복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복 있다고 그러니까 진짜 복입니다 예수님이 함부로 복 있다는 말을 안했습니다. 진짜로 복 있는 제자는 이 수준으로 가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된 사람은 그다음에 의에 배고파하고 목말라한다는 겁니다. 의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입니다 배고파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영의 양식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말씀을 더 먹으려고 배고파하는 겁니다. 식욕이 막 생기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그래서 여기에 앉아 있잖아요. 식욕이 생기는 사람입니다
그리고는 주린다 그랬습니다. 그다음에 목말라한다 그랬습니다. 
의의의 영이 무엇입니까? 성령님입니다 생수에 목말라한다는 겁니다. 
생수는 무엇입니까? 프뉴마(Pneuma)성령님입니다 보혜사성령님도 마찬가지로 성령님의 세례를 받기 위해서 목말라한다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채워진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내가 변화가 되면 그다음 삶 속에서 나타는 게 긍휼한자가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긍휼을 내가 매일 받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그렇다고 해서 죄를 안 짓는 게 아닙니다. 또 죄를 짓는 겁니다. 
생각으로 죄를 짓고 행동으로 죄를 짓지만 주님이 이런 사람들은 방향이 제대로 서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자꾸 긍휼을 베풀어 줍니다. 
그러니까 내가 긍휼을 받으니까 또 주변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어주는 사람들입니다 긍휼이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저 사람이 나보다도 못하고 다 못하는데 그렇지만 불쌍하게 생각해주고 감싸주고 안아주고 좋은 말 해주고 덮어주고 이런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긍휼을 베풀어주면 내가 긍휼을 받는다고 주님이 해잖아요. 그러니까 너희가 그런 걸 하면 너희가 피조물이니까 아직도 문제가 많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나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니까 용서해주는 게 무엇입니까? 너희가 용서를 먼저 해주어라 그러면 내가 용서를 해주겠다. 그랬잖아요. 똑같습니다. 긍휼이라는 게 용서와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가까이 가는 이런 사람들에게 주님이 더 마음을 순수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음이 청결한 자는 순수한 자는 하나님을 본다는 겁니다.
영계를 보기 시작하는 겁니다. 영계가 눈에 보이는 겁니다. 저세상이 보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데 저 세상이 보이니까 저세상을 보는 제자들은 무섭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본질을 저 세상을 향해서 외치는 겁니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 이런 세계관과 가치관의 변화가 오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화평케 하다는 겁니다. 수직적인 화평 전도와 선교입니다
수평적인 화평 이런 일들을 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나누어주고 싸움이 있는 곳에 가서 싸움을 말리고 이런 사람은 주님이 그랬잖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으리라 우리가 성장의 6단계 그기에 아들이 다섯 번째 단계입니다 상당히 높은 단계입니다 이런 사람이 되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되면 주님이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 겁니다. 이런 사람에게 또 용광로 속에 집어넣는 겁니다. 그래서 나 때문에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내가 누구라는 것을 전하는 너희들은 이런 과정 속에서 계속해서 용광로 속에 집어넣는다. 사람들이 너희들을 이렇게 핍박하고 거짓말로써 모든 악한 말을 너희들에게 하고 내 자존심을 건들리고 이런 말들을 하고 다닐 때 복음을 열심히 전하고 주님을 정말 사랑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최선을 다하는데 이런 것들은 주님이 허락한다는 겁니다. 그럴 때마다 뭐라고 그랬습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랬습니다. 왜냐면 눈을 저쪽에 뜨고 들여다봐라 거기에 상이 엄청나게 많이 기다리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눈을 저쪽으로 향해라 이쪽으로 향하지 말고 그러기 위해서 계속해서 핍박을 줄 거다 바울도 베드로도 주님이 사랑했던 모든 제자들은 다 이 과정을 겪었습니다.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데 더 어려운 겁니다. 잡놈들이 더 덤비는 겁니다. 그래도 그 사람들을 미워하면 안 되는 겁니다. 주님이 허락하시는 겁니다.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데 세상일이 더 안 됩니다. 그래도 할렐루야 하셔야 됩니다. 결론적으로 나중에 잘 되게 하십니다. 이런 핍박까지 갔을 때 주님께서 뭐라고 그랬습니까? 너희들은 이 단계까지 간 사람들은 너희들은 소금이라는 겁니다. 앞에 주욱해서 여섯 단계 화평까지는 무엇일까요?
핍박 전까지는 그냥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름다운 열매 맺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수준에 있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열매 맺어서 핍박은 포도주 틀에 들어가는 겁니다. 틀에 들어가야 되는 겁니다. 틀에 들어가면 그다음에 소금이 되어서 나오는 겁니다. 틀에 들어가서 완전히 포도주가 되어서 그 포도주를 먹어야 되잖아요. 포도주를 먹으면 살아나잖아요. 예수님이 그랬잖아요. 너희들이 이 포도주를 먹으면 살아난다고 그것이 빛이 되는 겁니다. 빛이 되어야지만 이 밑의 어두운 세상을 빛을 비추면서 이 세상에 어두움을 쫓아내는 일들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빛과 소금을 이야기하잖아요. 순서가 성서에서는 빛과 소금이 아니잖아요. 소금과 빛입니다 제가 요한복음15장16장에서 항상 강조하는 내용이 끝난 겁니다. 지난시간에 주님께서 포도열매 포도주, 그렇다면 제가 한 마디만 하고 끝내겠습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선택받았다고 한다면 우리 삶은 어떤 삶이 되어야 됩니까? 그렇다면 예수님께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되고 전지를 당해야 되고 양질을 열매를 맺어야 되고 그래가지고는 포도즙 틀에 들어가서 포도주를 만드는 일에 우리가 참여해야 됩니다. 내가 죽어야 되는 겁니다. 그리고 나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저 세상 관으로 서서히 바뀌어야 되고 주님을 섬길 때마다 핍박이 나에게 올 때 그것 가지고 화를 내지 말고 내가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되는 겁니다. 
팔복을 사람으로 내가 변화를 받게 되는데 이런 사람은 다수가 아니고 소수라는 겁니다. 이 소수 속에 들어온 것을 즐거워하는 내가 되었을 때 여러분이 되었을 때 아하! 나를 제자로 선택하셨구나?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선교를 왜 합니까? 선교지에 가서 이 메시지를 전해주려고 하는 겁니다. 선교지에 가서 선교지에 있는 나라 예를 들어서 미얀마에 가면 미얀마에도 그동안 많은 크리스천들을 하나님이 만들어 내었지만 그 안에 소수의 제자들을 발굴해가지고 그 제자들인 너희들이 어떻게 살아라 너희들이 미얀마를 영적으로 쥐고 있다 그것을 가르쳐주고 제자들을 만들어 내는 일에 그런데 제자들아 너희들이 핍박을 받을 거다 미움을 받을 거다
이것을 가르쳐주어야 됩니다. 그걸 가르치기 위해서 저희들이 선교를 하는 겁니다. 거기에 있는 수많은 크리스천들에게 먹을 것 주고 그저 기분 좋게 해주고 그렇게 하는 사란들은 그렇게 하라고 그러십시오. 우리는 소수의 제자들을 만들어내는 그 일에 조금이라도 헌신하는 것이 우리사역에 초점입니다 왜냐면 그 제자들을 통해서 이 어두움의 세력들이 쫓겨나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그 소수를 가지고 그랬잖아요. 예수님 후에 1세기 때 보면 소소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다수를 통해서 역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에 눈을 두고 있는 크리스천들은 다수를 자꾸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면 큰 역사가 일어나는 줄 알고 볼룸을 생각하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기도제목은 그런 사람들을 우리 비전 캠프나 비전 스쿨에 보내주기를 위하여 주님께 간구하고 그런 사람들을 보내 주시는 겁니다. 우리4층에 학생들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위해서 그분들을 뒤에서 밀어주고 도와주는 겁니다. 저는 말씀으로 가르치고 여러분들은 뒤에서 밥도 해주고 헌금도 내시고 여러 가지로 여러분들은 이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뜻이 이것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염두에 두시고 제자로 선택 받았는데 소수구나 그런데 이분들은 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게 되어 있구나. 
이 세상에서 인기가 없겠구나. 그런데 이분들은 강력한 성령님과의 교제를 하는 분들이구나. 내속에  프뉴마(Pneuma)성령님인 보혜사성령님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창조주의 높고 넓은 깊은 뜻을 저희들이 헤아릴 수는 없지만 성서 속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이렇게 섭력해보면 분명 구약에서 나오는 많은 주님의 제자들도 신약에서 나오는 주님의 제자들도 하나같이 창조 전에 예정하셨다고 하신 말씀 우리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지만 소위 말씀을 상고하면서 우리가 이해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혹시 저희들이 이런 부분에서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성령님이시여 내 속에 계신 프뉴마(Pneuma)성령님이시여 내 옆에 계신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성령님이시여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지혜를 주셔서 주님의 오묘한 말씀을 잘 이해하고 소화하고 이 말씀에 의해서 아름다운 포도열매를 맺는 우리가 되게 하셔서 때가 되면 이 포도즙 틀에 넣어서 우리가 온전한 맛있는 파워풀한 능력 있는 포도주로써 우리의 삶을 주님께 바치는 귀한 복된 자들이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것은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될 수가 없습니다.
내속에 계신 프뉴마(Pneuma)성령님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성령님이시여 우리를 예정 하셨다면 이러한 제자가 되도록 계속해서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AIQHWxurc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