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 23강. 농부, 참 포도나무, 가지(요15:1-15) 2010년9월12일 말씀
본문말씀 몇 절을 읽겠습니다. 15장1절에 1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깨끗하게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면 전지한다는 말입니다. 3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라
이게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미 전지가 되었다고 3절에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공식적으로 크리스천들이 아닙니다. 이때는 그런데도 예수님이 이미 은혜로 너희들은 이미 전지까지 받았다는 겁니다. 그 말씀은 제가 나중에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머지 말씀들은 우리가 다 알기 때문에 제가 자중에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유명한 요한복음15장입니다 아주 유명한 장입니다
1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성만찬 하시면서 말씀하시는 장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이 성만찬하시면서 몇 장부터입니까? 13장 14장입니다 그리고는 지금 15장으로 들어가서 성만찬 가운데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리고는 16장까지입니다 17장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성만찬 중에 기도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다섯 장인데 처음 네 장은 13장14장15장16장은 4라는 성서적인 숫자로 이 네 장은 예수님이 가장 하고 싶어 하셨던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시는 아주 특별한 장입니다 성만찬을 같이 하면서 우리가 지난시간에 14장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였냐면 14장에서 시작을 이렇게 하셨습니다. 애들아! 내가 조금 있으면 이 세상을 떠난다.
그런 말씀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너희들 이제 걱정하지 말아라.
이렇게 시작하면서 지난 시간에 14장에서 네 가지의 주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들을 그분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첫째는 낙원 론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가르쳤습니다. 그다음에 길 론에 대해서 가르쳤고 그다음에 기도 론에 대해서 가르치시고 그다음에 보혜사성령 론에 대해서 강의를 하셨습니다.
이 강의를 14장에서 하시고는 제가 지난시간에는 너무 길어서 14장 마지막부분을 제가 자세히 안 했는데 14장을 끝내시면서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였냐면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성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는 겁니다.
이분이 하시는 말씀이 뭐냐면 이분이 아주 겸손하게 아버지와 자기의 관계성을 이야기하시면서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 그러시는 겁니다.
14장28절에서 그리고는 14장31절에서 하시는 말씀이 아버지가 명령을 나에게 하셨기 때문에 내가 이 세상에 왔다는 겁니다. 아주 겸손하시는 겁니다.
아버지가 자기보다 높으신 분이시라는 것을 이야기하시는 겁니다.
그다음에 14장31절에 뭐라고 그랬냐면 아버지께서 명한 것을 내가 순종할 터인데 내 순종하는 모습을 내가 보여주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이분이 지난14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14장28절에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 14장을 결론적으로 말씀하시면서 아버지가 명령을 해서 세상에 내려가라 그래서 내가 내려왔다는 겁니다. 14장31절에 그것뿐입니까 내가 내려와서 아버지가 멸한 것을 순종을 할 터인데 그 순종하는 모습을 당신들에게나 사람들에게나 보여주기 위해서 내가 내려왔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14장을 끝내는 겁니다. 그리고 14장만 아니고 요한복음을 보면 3장5장10장에서도 똑같은 예수님의 이런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3장에서는 그 유명한 3장16절17절에 뭐라고 그랬습니까? 아버지가 이 세상에 나를 보냈다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아주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그다음에 5장24절에서는 이분이 뭐라고 그러느냐면 내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를 믿는 자는 너희들이 영생을 얻고 심판에 이르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다는 겁니다. 5장24절에서 그리고는 10장에 가서는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10장36절에 나는 하나님아버지의 아들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들으면 아하! 성부하나님이 더 높으신 분이구나 이렇게 보이도록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하시고는 10장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아주 다른 표현을 하십니다. 자기가 성부하나님과 동격이고 동질이고 같다는 것을 10장에서 아주 강조하시는 겁니다. 10장30절에서는 이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그러는 겁니다. 그때 하나라는 뜻은 원어로 헨(Hen) 이 말은 위치도 같고 파워도 같고 질도 같다는 그런 의미에서 하나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10장33절에서는 똑같이 나는 하나님이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보통 하나님하면 이분은 아버지를 지칭했는데 나도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GOD입니다
창조주라는 뜻입니다 그다음에 10장38절에서는 이분이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는 것뿐만 아니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꼬르(equal)의 입장을 설명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10장36절에 나는 하나님아버지의 아들이다 그러는 겁니다. 아들이라는 뜻을 우리가 인간적인 뜻으로 여기서 해석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지금 말씀하시는 아들은 원어로 무엇입니까 휴이오스(HUIOS)입니다 휴이오스(HUIOS)라는 말은 대문자 H입니다 그 말은 동질이다 동격이다 본질이 같다는 겁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항상 뭘 형용사로 집어넣었냐면 독생자라는 겁니다.
독생자라는 뜻이 원어로 모노게네스(Monogenēs) 모노(Mono)라는 것은 유일하다는 뜻입니다 게네스(genēs)라는 뜻은 종자, 종류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종류를 가진 분은 이분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런 종류가 뭐냐면 하나님과 똑같은 아들이라고 부르는 이분이 아버지와 아들이 똑같고 동질이고 동격인 이런 분은 모노게네스(Monogenēs)이분들 밖에는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15장에 들어와서 오늘 말씀이 예수님이 또 자기의 겸손을 말하는 겁니다. 아버지와 이꼬르(equal)신데 이분이 비유를 드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아버지는 농부고 나는 참 포도나무라는 겁니다.
참 포도나무라는 겁니다. 그리고 너희는 가지라는 겁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더 높아 보이죠. 농부의 손에 포도나무가 있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자기의 겸손을 또 15장 비유에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왜냐면 우리에게 15장에서 주시는 메시지들이 있습니다. 이 메시지들을 쉽게 설명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또 이렇게 비유로써 설명해주는 겁니다. 그러면 우선 우리가 더 깊이 들어가기 전에 15장9절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15장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면 15장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조가 성립되어 있습니다. 첫째 구조는 뭐냐면 15장1절에서2절인데 성부성자그다음에 우리크리스천들의 상호관계성을 설명합니다. 성부는 농부고 성자는 참 포도나무고 크리스천은 가지라는 겁니다. 두 번째 메시지는 뭐냐면 포도나무에 세 가지종류의 포도나무가지가 있다는 겁니다. 15장2절에서6절에 세 가지의 가지가 있다는 겁니다.
이 가지가 뭐냐면 전지를 한 후에 많은 열매를 맺는 가지가 있고 또 전지를 하지 않는 가지인데 열매를 맺는 가지가 있고 세 번째 전혀 열매 맺지 않는 가지가 있다는 겁니다. 세 번째 구조에서 전지를 한 후에 많은 열매 맺는 가지의 특색을 설명합니다. 15장17절에서27절에 그리고 네 번째로 열매를 안 맺는 포도가지가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인가를 설명합니다.
15장2절 그리고 6절에서 그래서 첫 번째 성부성자 크리스천의 상호관계성을 제가 설명해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예수님이 포도나무라는 겁니다.
그리고 유일한 포도나무라는 겁니다. 그리고 제자들보고 너희들은 가지라는 겁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농부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아버지를 또 높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첫째가 과실을 맺지 않는 가지가 있는데 그것을 제거해버리는데 누가 제거해버리느냐면 예수님 내가 제거한다고 그러지 않는 겁니다. 농부가 아버지가 제거해버린다는 겁니다. 이렇게 아버지를 높이시는 겁니다. 2절에 보면 두 번째로 과실을 맺는 가지 중에 더 과실을 맺게 하기 위해서 전지를 하는데 전지하는 것도 아버지가 전지를 한다는 겁니다.
본인이 하는 게 아니고 이렇게 아버지를 높이시는 겁니다. 2절에 보면 그러면서 포도나무인 나는 아버지의 돌봄 속에 있다는 겁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느냐면 우리 알다시피 예수님이 빌립보서2장7절에 뭐라고 그랬습니까?
신성을 다 포기하신 완전한 인간이 되신 예수님 그분의 겸손을 지금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 비유를 가지고 지금15장의 비유로써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들이 있습니다. 첫째 이 메시지 중에서 우리가 구원론을 다시 한 번 배우게 됩니다. 두 번째는 구원 받은 크리스천들이 성화가 되어야 되는 겁니다. 성화 론입니다 성화를 우리가 배우게 됩니다. 거기에 대한 메시지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성화론 안에 네 가지의 메시지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먼저 성화되어야지만 제자가 된다. 성화되어야지만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겁니다. 성화되어야지만 전도하고 선교할 수 있다는 겁니다.
성화되지 않는 사람이 전도 선교하면 나중에 주님에게 기억이 안 된다는 겁니다. 성화되는 목적이 뭐냐면 창조의 목적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이 메시지들이 15장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면 제목을 바꾸어서 왜 예수님자신을 참 포도나무라 하셨냐. 그냥 포도나무가 아니고 이분이 참 포도나무라 하신 겁니다. 왜냐면 첫째 구약에서 포도나무라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구약에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나라나 또는 이스라엘백성들을 상징합니다. 구약에서 시편80편8절에서16절에 보면 또 이사야서5장1절에서7절에 예레미야서2장21절에 보면 다 이스라엘이나 이스라엘사람들을 포도나무다 그랬습니다. 포도나무인데 이분들이 이스라엘사람들이 아름다운 포도열매를 맺는 게 아니고 들 포도를 맺습니다. 가치가 없는 쓸모가 없는 그러한 포도를 맺는다는 겁니다. 들 포도를 이 말은 뭐냐면 영적의미로는 예수님이 나중에 신약에서 나는 포도나무인데 이스라엘사람들이 구약에서 예수님을 정확하게 보지 못한다는 소리입니다. 눈이 감긴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이 그래서 들 포도 맺는 이유를 신명기29장4절에 이미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귀가 있어도 내가 누군지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이런 말입니다. 그리고는 신명기32장20절과21절에 분명히 그랬습니다. 너희들은 귀가 멀어 내가 누군지를 모르게 된다는 겁니다.
여호와가 예수님인지를 이사야서6장9절에서13절에 똑같은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방인들이 보게 된다는 겁니다. 이 말씀을 저도 많이 했잖아요.
그래서 이스라엘사람들이 들 포도를 맺게 되는 그러한 일들을 하게 된다는 말은 이스라엘사람들이 영의 눈이 어두워져서 진짜 포도인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것을 그림자로 보여주신 겁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사람들을 포도나무라 그러는 겁니다. 그림자라고 하는 것은 성경어디에 나옵니까?
그림자 또는 모형 카피 또는 심볼 비유를 심볼이라고 그랬습니다.
히브리서8장5절에 히브리서9장9절에 또 히브리서10장1절에 이 말씀은 항상 우리가 기억하고 있어야 되는 겁니다. 왜냐면 구약에 모든 것들은 스토리들이나 예배방식이나 모든 이런 것들은 그림자고 모형이고 비유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도나무의 이야기들은 구약의 구림자고 모형이고 비유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러는 겁니다. 유월절성만찬하시면서 내일이면 십자가사건이 있는 그날입니다 이분이 하시는 말씀이 구약에 있었던 포도나무이야기 그다음에 지금 내가 오늘 너희들에게 포도주를 주면서 이것이 내 피 라고 말하는 모든 이것은 다 그림자라는 겁니다. 카피라는 겁니다.
모형이라는 겁니다. 심볼이라는 겁니다. 다른 말로 이분이 가짜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진짜라는 겁니다. 그러면 포도나무를 심어서 자라게 해서 포도열매를 많이 맺히게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목적은 간단합니다. 열매를 맺은 포도가지고 뭘 하는 겁니까?
포도주를 만드는 겁니다.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서 포도나무를 키우는 겁니다. 그래서 좋은 열매를 맺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러는 겁니다. 내가 진짜 포도나무고 그러면 예수님을 통해서 나오는 포도는 무엇입니까? 진짜 포도고 그다음에 포도주가 100% 진짜 포도주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진짜 포도주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이것은 내 피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피가 무엇입니까? 진짜 포도주인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게 많습니다. 요한복음6장53절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진짜 포도주를 잡수셔야지만 거기에 영생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제는 좋은 열매를 맺어야 되고 그래가지고 포도열매가 열매로써 남아 있으면 안 되는 겁니다.
그것이 진짜 포도주가 되어야 되는 겁니다. 이 사상을 잘 머리에 두시고 우선 참고로 성서에서는 좋은 열매 좋은 열매라는 이야기들이 여러 군데 나옵니다. 그래서 제가 좋은 열매를 성서 네 군데에 보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라는 이야기가 마태복음3장8절 성령의 열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갈라디아서5장22절23절에 또 마태복음7장16절에서20절에 보면 거짓선지자들의 속을 들여다보면서 더러운 열매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또는 에베소서5장9절에 보면 빛의 열매는 서로 사랑해주고 자비를 베풀어주고 이런 부분을 이야기했습니다. 의의열매 빌립보서1장11절에 다 뭐냐면 성령의 아홉 가지의 열매를 이런 식으로 성서에서는 표현을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열매가 목적이 아닙니다. 열매가 포도주가 되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열매가 들 포도로 만들어 놓았으면 포도주가 어떤 포도주입니까? 이게 가짜 포도주입니다
그러니까 열매가 된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성품으로 내가 변화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성품으로 여기 성령의 열매는 예수님의 성품 화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성품으로 되면 다시 말하면 좋은 포도열매가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성품으로 변화된 사람들이 무엇을 하느냐면 지상계명에 순종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간다는 목적이 뭐냐면 지상계명 다시 말하면 쓴 뿌리가 없어지면 성화된 사람은 지상계명에 순종하게 됩니다.
수직계명과 수평계명에 그런데 거기에서 머물려 있으면 안 되는 겁니다.
열매를 어떻게 해야 됩니까? 열매를 포도주로 만들어야 되잖아요.
포도주로 만들어야 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린 사건인데 예수님의 피를 보혈 화시키는 겁니다. 보혈 화시키면 어떻게 됩니까? 보혈을 먹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생명을 얻습니다.
똑같이 우리가 예수님님의 지상계명만 순종하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크리스천 삶은 그걸 포도주 화시켜야 됩니다. 포도주 화시켜서 다른 사람이 살아나도록 포도주을 먹여야 되는 겁니다. 먹여야 되잖아요. 그게 무엇입니까? 지상사명입니다 복음을 전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살아나게 해야 되는 겁니다. 내 민족과 타 민족을 그러니까 거룩한 삶을 사는 게 주님의 목적이 아닌 겁니다. 거룩한 삶을 살도록 내가 예수님 화된 후에 그다음에 행동으로 이것을 포도주로 만들어가지고 사람들을 살려주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들 포도주를 만들어가지고 전도한다. 선교한다. 이렇게 할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다는 겁니다. 들 포도는 어떻게 된 겁니까? 예수님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기독론이 약해지면 들 포도주를 만들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주후30년에 이미 이분이 참 포도나무가 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해라는 겁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너희들 내 성품을 닮아라. 그래서 너희들 열매를 맺으라는 겁니다. 성화되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어떻게 되느냐면 너희들은 포도즙 틀에 들어가 가지고 너희들은 짜임을 당해가지고 포도주를 만들라는 겁니다. 짜임을 당하는 게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15장 마지막 결론이 뭐냐면 너희들은 내 이름 때문에 핍박을 받겠다. 그랬습니다. 포도즙 틀에 들어가서 짜임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진짜 예수님을 만나고 진짜 포도주역할을 하려면 내 성품이 변해야 되고 예수님처럼 그리고는 내가 핍박을 받아야 되는 겁니다. 핍박 없이 기독교가 그냥 예수 믿으면 모든 게 잘 된다.
잘 된다 이 수준은 어린아이수준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핍박 받아야 됩니다.
내가 잘 못해서 핍박받는 게 아니고 예수님을 전하다 보면 진짜 포도주를 만들려면 핍박이 따라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선 세 가지 종류의 포도나무가지 모습을 우리가 한번 봅시다. 첫째 포도열매를 맺는 가지입니다
그런데 열매 맺는 가지 안에 두 가지의 가지가 있습니다.
뭐냐면 열매를 맺기는 맺는데 전지를 하지 않는 가지가 있습니다.
지금 열매가 이렇게 맺혔는데 이 밑에 전지를 하지 않는 가지들이 있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이 열매가 잘 맺히겠습니까? 안 맺히겠습니까? 잘 안 맺힙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이걸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지를 해주어야 되는 겁니다. 열매를 많이 맺히려면 이런 가지가 있느냐면 또 두 번째 가지는 뭐냐면 이 가지 전체에 열매가 많이 맺혔습니다. 그리고 전지를 다 해서 전지할 게 없는 겁니다. 가지에 열매만 잔뜩 맺혀있는 그러한 가지가 있는 겁니다. 두 가지가 다 열매가 맺혀있는 가지인데 하나는 열매가 약간 맺혀있고 잔지를 하지 않아 잔가지들이 많은 겁니다.
세 번째 가지는 뭐냐면 열매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 가지의 가지의 모습을 우리에게 설명해주는 겁니다. 그러면 첫 번째 가지를 한번 봅시다. 포도열매를 맺는 가지 중에 전지하지 않는 가지입니다 이 가지는 열매가 많이 맺힙니까? 안 맺힙니까? 맺기는 맺혔지만 열매 맺는 가지의 영양분을 빼앗아가는 일을 하는 겁니다. 전지의 대상되는 가지들이 그러니까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느냐면 첫째 과실을 적게 맺게 되는 겁니다. 또는 과실의 사이즈가 적은 겁니다. 또는 과실의 맛이 질이 별로 안 좋은 겁니다.
또 이 과실은 면역력이 약합니다. 병충해에 쉽게 병듭니다. 이런 크리스천들은 이단의 학설이니 종교다원주의니 이런 게 들어오면 그대로 감염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지금 열매가 맺혀있는 양질의 포도가 맺지 못하도록 양질의 포도주를 만들 수 없게 방해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생명을 얻게 하는 참 포도주를 만들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같은 교회 안에 교인들인데 왜냐면 지금 이런 게 예수님께 붙어 있잖아요. 같은 교인입니다
교인인데 성품이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혀 있지 않기 때문에 9가지 열매를 맺혀있는 정말 신실한 크리스천이 진짜 포도주를 만들어야 되는데 진짜 파워풀한 포도주를 만드는데 방해역할을 하는 겁니다. 교회 안에 그러니까 이런 잔가지들을 제거해야 되잖아요. 그러면 이 잔가지가 뭘까요?
왜 이런 잔가지들이 열매를 못 맺게 이게 제가 항상 이야기하는 쓴 뿌리들입니다. 크리스천들 속에 쓴 뿌리가 있는 사람들 질투, 미움, 용서 못함, 원수 맺음, 이기심, 욕심, 자기영광, 불순종, 우상숭배, 경쟁심, 다툼, 분리, 남을 깎아 내림, 싸움, 속임, 도둑질, 배역, 불신, 화냄, 근심걱정, 스트레스, 좌절, 거절, 배척, 열등의식 이런 모든 것들이 쓴 뿌리들입니다,
이런 쓴 뿌리들이 깊이 있으면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성령의 열매를 못 맺으니까 우리가 잔가지역할을 하는 겁니다. 이것이 교회 안에 들어오면 열매를 맺는 크리스천들이나 교회를 방해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본문 속에서15장에서 이런 쓴 뿌리가 있는 크리스천들을 전지를 하지 않는 이런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열다섯 가지로 표현 했습니다. 오늘본문에서 열다섯 가지를 제가 하나하나 말씀해드리겠습니다. 열다섯 가지의 이분들의 특징이 첫째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습니다. 이분들은 그러니까 구원받은 크리스천들입니다 4절에 보면 두 번째는 뭐냐면 이분들은 잔가지들과 잎사귀로 무성합니다. 누가 겉으로 보면 굉장히 무성한 나무로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겉으로 보면 괜찮아 보이는 겁니다. 큰 나무로 보이는 겁니다. 또 교회입장에서 보면 종교행위도 있고 개인적으로 마찬가지고 성공한 사람 같습니다.
성공한 교회 같습니다. 그런데 이 안에 보면 쓴 뿌리로 잔뜩 있는 형식주의 외식주의 과시주의 이런 것들이 다 잔가지로 우리가 표현이 됩니다.
잎만 무성해 보이는 겁니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열매 맺는 일에 방해하는 그러한 일들을 합니다. 세 번째 특징은 열매 맺는 가지의 영향분만 빨아먹고 있는 겁니다. 네 번째는 이 숫자가 많은 겁니다. 다섯 번째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런 사람은 기도응답을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7절에 보면
여섯 번째로 8절에 하신 말씀인데 창조목적에 위배되는 삶을 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지 못한다는 겁니다. 8절에 그랬습니다.
8절에 또 한 번 말하기를 이런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여덟 번째로 9절에 예수님의 사랑 안에 없다는 겁니다.
아홉 번째로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는 겁니다. 10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열 번째로 예수님의 기쁨을 전위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는데 그 기쁨을 전위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11절에 그랬습니다. 열한 번째로 예수님의 종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라는 겁니다. 14절에 그랬습니다. 열두 번째는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 때문에 세상에서 미움과 핍박을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크리스천의 삶에서 미움과 핍박을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이나 일반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겁니다. 18절에서20절에 그랬습니다. 열세 번째로는 이런 사람들은 보혜사성령님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26절에서27절에 그랬습니다.
열네 번째는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증거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26절에서27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열다섯 번째는 이 사람들은 제자로써 예수님의 택함 받지 않는 성도들이라는 겁니다. 16절과 19절에 그랬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교회마다 많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의 편지들을 보면 사도바울이 개척했던 모든 교회들이 교인들이 이런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전지를 하지 않는 가지들이 갈라디아교회 고린도교회 빌립보교회 로마교회 다 그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15장에서 전지하지 않는 가지의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러면 그다음에 세 번째로 보면 많은 열매를 맺는 가지의 특색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지를 해가지고 열매 맺는 가지의 네 가지의 특색이 있습니다. 첫째는 어떤 가지냐면 이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습니다.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는 이 가지에 작은 가지들과 잎사귀들이 많이 달려 있습니다. 쓴 뿌리들이 있는 겁니다. 성화를 열매 맺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로 뭐냐면 이걸 그냥 두는 게 아니고 전지를 당하는 가지들입니다. 그러니까 쓴 뿌리를 제거해서 성화되는 크리스천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의 성품으로 성화되는 크리스천들입니다 전지를 당했었으니까 열매가 맺히는 겁니다. 예수님의 성품으로 열매가 맺히니까 지상계명에 순종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농부가 이런 사람들에게는 더 많이 열매 맺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네 번째로 뭐냐면 이렇게 포도열매가 맺히면 아주 진짜 포도주를 만들어내는 일을 이분들이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만민이 생명을 얻도록 일을 한다는 겁니다. 전도와 선교를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분들은 창조목적에 부합된 삶을 살게 된다는 겁니다. 이제 요한목음15장에서 이런 사람들의 특징을 열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뭐냐면 기도응답을 받는 다는 겁니다. 7절에 왜냐면 이분들이 기도하는 목적이 자기의 어떤 개인 욕심을 위해서 기도하는 게 아니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서 아주 진짜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이분들의 기도를 착착 들어주신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뭐냐면 아버지께 영광 드리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계명에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8절에 그랬습니다.
세 번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8절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사라들이라고 그랬고 네 번째로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9절에 그랬습니다. 다섯 번째로는 예수님의 계명을 수직계명 수평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10절에 그랬습니다.
그다음에 여섯 번째로는 예수님의 기쁨을 전위 받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11절에 일곱 번째는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의 종이 아니고 예수님의 친구가 된다는 겁니다. 여덟 번째로 이 사람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고 세상에서 미움 받는다는 겁니다. 18절에서19절에 아홉 번째로 보혜사성령을 받고 예수님을 증거 하는 일을 하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26절에서27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열 번째로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의 택함 받고 세움 받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16절과 19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몇 가지의 가지들을 이야기했습니까? 지금 까지 두 가지의 가지들을 이야기 했습니다.
첫째는 가지인데 전지를 요하는 가지 그다음에 하나는 전지가 필요 없습니다. 열매가 맺혀있는 이런 가지들을 예수님이 지금 설명하는 겁니다.
세 번째 가지가 뭐냐면 열매 없이 잎사귀만 무성한 가지 이런 가지는 첫째 특색이 뭐냐면 한때는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포도나무에 영양분을 다 빼앗아 먹는 일을 합니다. 그러다보니까 성품도 변하지 않고 열매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이런 가지는 예수님이 2절에서 뭐라고 그랬냐면 잘라 버리겠다는 겁니다. 재해 버리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에 의해서 참 포도나무에서 잘라 버리겠다는 겁니다. 잘라 버리는데 6절에 뭐라고 그러냐면 밖에 버려 마르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밖에 버려 사르리라 그랬습니다. 이 말씀 자체를 보면 이분들은 아하! 한때 크리스천이었는데 이분들은 어떤 사람이라는 겁니까? 구원이 캔슬되는 이런 사람들이라는 것을 예수님이 가르쳐주시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 다 구원받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예수님께서 요한복음6장39절에 그랬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그러니까 아버지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그러니까 아버지가 주신자 중에서 예정론적안 측면인데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살리는 이게 하나님아버지의 뜻이고 예수님의 뜻이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하는 그 속에는 무슨 뜻이 숨겨져 있습니까?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겁니다. 똑같이 요한복음10장28절에는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그랬습니다.
이 말 자체를 보면 예수님의 손에서 아무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빼앗을 수 없다는 겁니다. 이 말은 뭐냐면 사탄이 예수님 손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빼앗아 갈 수가 없다는 겁니다. 사탄이 그렇게 못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뭐라고 그러느냐면 내가 성부하나님이 잘라버리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구원이 무효가 되는 것은 사탄이 하는 게 아닙니다.
누구의 손에 달려 있는 겁니까? 성부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겁니다.
왜냐면 자기가 잘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게 아닙니다. 그런데 성부하나님이 볼 때 저놈의 자식에게 내가 무료로 영생을 주었는데 열매도 안 맺고 그냥 열매 맺는 사람들 영양소를 전부 다 빨아 먹고 골치 아프면 이분이 잘라 버리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주었다가 이분이 빼앗아간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사탄이 몰고 다니는 게 아닙니다. 고린도전서를 강의할 때 구원이 무효가 되는 케이스들을 상고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느 교단은 무효가 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한번 구원 받았으면 다다
성서에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첫째로 출애굽기32장에 유대인들이 금송아지를 섬겼다가 모세가 너희들 이렇게 하면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워버리겠다는 겁니다.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워버리겠다는 말씀을 바울선생님도 로마서를 쓰시면서 로마서9장3절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 우리민족을 구원해주십시오. 아니면 나를 생명책에서 지워주십시오.
바울도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한 게 있습니다.
사데 교회 계시록3장에도 보면 그 속에 생명책에 이름이 지워진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중에 소수에게 말하는 겁니다. 너희들 이름은 생명책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잘 보관하라는 겁니다. 민수기16장사건 알잖아요. 모세에게 고라자손들이 덤벼들었다가 250명이 음부로 들어간 사건이 있습니다. 이런 모든 일들을 보면 하나님의 뜻은 한 사람도 구원에 탈락되기를 원치를 않으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매도 안 맺고 교회 안에서 말썽만 부리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영양가를 다 빨아먹고 교회가 시끄럽게 되고 교회 안에서 열매 맺어서 진짜 포도주를 맺혀야 되는데 교회 안이 시끄러워가지고 교회 모든 돈도 거기다가 투자하고 교회 안에 제직회도 만나면 싸움을 하고 교회가 열매를 맺어가지고 진짜 포도주를 맺어서 생명 살리는 일을 해야 되는데 교회 안에 잡다한 법정투쟁이 있고 뭐가 있고 싸움하고 집사 장로가 싸움하고 목사장로들이 싸움하고 그런 교회들이 꽤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다는 겁니까? 본래 진짜 포도주 만드는 일에 방해하는 사람들은 누군지 모르지만 주님께서 봐서 애는 안 되겠다 그러면 잘라 버리겠다는 겁니다. 이런 말씀을 예수님이 왜 제자들에게 하십니까?
제자들에게 미리 다 예언적인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제자들아! 너희들 조금 있으면 나의 제자들이 될 텐데 부활 후에 그리고는 조금 있으면 오순절 날이 되면 너희들이 이름난 제자들이 될 텐데 그리고 나가서 많이 전도할 때마다 이런 세 가지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미리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리고 과거2천년 동안에 기독교의 역사들을 들여다보면 이런 세 가지의 사람들이 거기에 쫘악 깔려 있었습니다. 그게 옛날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닙니다. 어디로 가나 어느 나라로 가나 이런 세 가지 사람들이 깔려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예언이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맞는 겁니다. 이제 결론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5장의 큰 교훈이 구원론입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되는 겁니다.
붙어만 있으면 되는 게 압니다. 성화 론입니다. 열매를 맺어야 되는 겁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성화 론입니다. 전지를 해야 됩니다. 전지를 하지 않는 사람들 성화되지 않는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래야 제자가 되고 기도도 응답받고 선교도 하고 창조의 목적에 부합하는데 제가 지금 말씀 드렸지만 15장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의 목적이 뭘까요? 장차 이런 세 가지의 크리스천들이 있다는 것을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15장 결론적인 부분에서 마지막에 뭐가 있느냐면 이렇게 양질의 열매를 맺고 양질의 포도주를 만드는 사람들 제자들보고 너희들이 이제 그렇게 할 터인데 너희들 준비하라 너희들이 핍박을 받을 거라는 겁니다. 핍박이 어디서 옵니까? 교회 안에서 우선 전지가 안 된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핍박을 해서 너희들의 힘을 빼고 영양소를 빼앗아 먹을 거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교회 밖에서도 핍박이 올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참 포도나무에 속해있기 때문에 19절에 그랬습니다. 너희들은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받았기 때문에 세상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19절에 그랬습니다. 20절에 뭐라고 그랬냐면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이 나를 전하면 진짜 예수를 전하면 너희들이 나 때문에 핍박받게 되었다는 겁니다. 왜냐면 이 세상이 나를 싫어하기 때문에 너희들도 미워한다는 겁니다. 21절에서24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위로의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들을 미워하면 그 사람들이 너희들만 미워하는 것이 아니고 나도 미워하고 아버지도 미워하는 것이 된다는 겁니다. 21절에서24절에 그렇기 때문에 위로를 받으라는 겁니다. 너희들 홀로가 아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그 사람들은 대가를 지불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열매를 맺고 진짜 포도주를 가지고 나가려면 핍박이 꼭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에게 그래야지만 우리 눈이 저 나라에 가지 핍박이 없으면 우리 눈이 이 땅으로 밑으로 자꾸 내려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용광로를 우리에게 꼭 주시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복 받는 사람 마태복음5장에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해지고 그리고는 나중에 여덟 번째로 무엇입니까? 복 있는 사람은 너희들이 내 이름 때문에 핍박 받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은 진짜 파워풀한 기독교인이 되는 겁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진짜 포도주를 전하는 사람은 유명해질 수가 없는 겁니다. 인기가 있으면 안 되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커지면 안 되는 겁니다. 소수가 되어가지고 핍박을 받아야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열두제자들 바울도 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조직화 되면서 이게 변질되어버린 겁니다. 로마가톨릭부터 시작해서 정교회부터 시작해서 건물 짓고 뭘 짓고 전체를 크게 만들고 모든 것을 크게 만들다 보니까 이게 변질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짜 우리 삶 속에서
진짜 과실을 맺는 포도나무를 어떻게 분별을 합니까? 분별방법을 하나하나 적어 봅시다. 첫째는 참 포도나무에 붙어있는가? 그걸 먼저 점검하는 겁니다. 대개 다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참 포도나무 다시 말하면 일반 포도나무가 아닙니다. 진짜 포도나무입니다. 다시 말하면 진짜포도나무니까 누굽니까? 예수님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론에 충실한 겁니다. 우리가 성경공부하고 예수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설교 듣고 이것만이 아닙니다.
예수에 대해서 예수만 말하는 기독론이 강하게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그것부터 우리가 점검해야 됩니다.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입만 열면 예수, 예수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그냥 예수가 아닙니다. 예수가 누구냐면 기독론이 강해야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신성 인성 그분의 부활 그분의 다시 오심 거기에 대해서 철저하게 훈련받아야 되는 겁니다. 그래야 우리가 참 포도나무에 달라붙을 수 있는 겁니다. 그것만 강하고 그다음에 무엇입니까?
참 포도나무에 있는 사람은 그다음에 뭐가 있어야 합니까? 전지를 당해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픔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으로 차지는 겁니다.
전지를 당하는 겁니다. 그러면 세 번째로 전지된 참 포도나무의 외형적 모습을 보면 전지를 당한 참 포도나무의 모습은 어떨까요? 전지를 당한 모습이 어떻게 되어 갑니까? 나무가 앙상해져버립니다 저도 캐나다 우리 집 뒷마당에 복숭아나무와 사과나무가 있는데 제가 요즘은 바빠서 집에 잘못 가지만 항상 제가 사과나무와 복숭아 나무을 봄이 되면 제가 전지를 합니다.
전지를 안 하면 엉망이 되어 버립니다. 가을이 되면 사과가 작고 벌레가 먹고 엉망인 사과가 나옵니다. 그래서 제가 전지할 때는 과감하게 합니다.
그러면 사과나무가 별로 볼품이 없게 됩니다. 그러면 가끔가다가 우리 집사람이 이런 걸 잘하기 때문에 저보고 더 잘라 라는 겁니다. 더 자르다보면 이제 몇 가지가 안 남습니다. 그런데 더 깎기가 미안하잖아요. 그렇지만 과감하게 깎아 주어야 되는 겁니다. 겉모양 보면 볼품없는 그냥 앙상해 보이는 나무입니다 이게 벌거벗은 나무처럼 무성해보이지가 않는 겁니다.
꼭 무슨 모습 같으냐면 털이 다 빠진 강아지 같습니다. 모양새를 봐도 불쌍해 보입니다. 처량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열매 맺는 크리스천을 만들려면 그렇게 초라하게 만들어 놓는 겁니다. 열두제자들이 다 그 당시에는 초라했습니다. 그 당시에 인기가 없었습니다. 예수님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거나 또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든 예수 믿는 이 사람들을 보고 너희들은 실패자들이다 꼭 소수만 따라 다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자였다는 겁니다. 왜냐면 벌거벗은 모습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로 그렇게 만든 겁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지금15장에 말씀하셨잖아요.
벌거벗은 모습이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작은 것들은 다 없애버려야 된다는 겁니다. 바울도 세상 것을 다 없애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고백하는 게 있습니다. 내가 없는 자 같으나 나는 부자라는 겁니다. 너희들이 볼 때는 나는 실패자 같으나 나는 성공자고 가난한 자 같으나 나는 부자고 불행한자 같으나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왜냐면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다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시각을 바꾸어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커지면 되는 게 아닙니다. 왜냐면 이것은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커지는 겁니다. 나무가 무성한 것은 그 안에 잡놈들이 다 들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게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를 못한다는 겁니다. 예수님도 그러니까 조그만 소수의 열두 명을 데리고 그분도 보잘 것 없는 하나님이신데 창조주신데 이런 앙상한 나무로 그분이 인생을 사셨습니다. 그러면서 제자들보고도 너도 앙상한 나무로 사는데 또 잡놈들이 와서 핍박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도 갈데없는 사람으로 되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은 죄 성이 있어서 예수님을 이용해가지고 자꾸 유명해지고 커지고 성공하려고 덤벼듭니다.
나의 어떤 욕심을 채우려고 듭니다. 그게 사람의 죄 성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주님이 이걸 싫어하십니까? 창조의 목적에 위배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우리 피조물은 이런 죄 성이 있기 때문에 창조의 목적에 다시 말하면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자랑하고 하나님만 영광 받고 이렇게 되게 하려면 내가 앙상한 가지가 되지 않으면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겁니다.
불가능 한 겁니다. 벌써 유명세를 타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커지고 성공했다 세상 사람들의 눈을 봐도 저 사람 저 목사 성공했다 저 사람 존경받는 사람이다 이렇게 되어 버리면 이미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려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해야지만 성공한 걸로 보는데 예수님은 그게 아닙니다. 시각을 우리가 바꿀 필요가 있는 겁니다.
교회가 세속화되어 버리면 그렇게 되어 버리는 겁니다. 시각이 세속적인 시각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얼마 전에 일주일 전에 한국에서 그래도 거물급 목사님이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목사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분은 보수 쪽에 사람이지만 진보 쪽 사람에게도 존경을 받았던 분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도 그분을 존경을 했습니다. 이분이 폐암진단을 받고 상당히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많이 들여다 본 것 같습니다.
2007년 우리나라가 평양 성령부흥이 1907년이거든요 100주년 기념으로 해서 개신교를 대표로해서 개신교의 목사님들과 교인들이 모인데서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분이 설교한 내용을 그대로 제가 여러분들에게 읽어 드리겠습니다. 옥한흠 목사님의 평양 대 부흥100주년 기념 설교 내용입니다 “저는 사데 교회를 보면서 오늘의 한국교회를 보는 것 같다는 불안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지금 주님께서 한국교회를 보시고 뭐라고 하실까요? 이름은 살았으나 행위가 죽었다고 책망하시지 않으실까요?
누가 아니요 하고 변명할 목사가 있겠습니까? 누가 아니요 하고 변명할 장로가 있습니까? 수십 년 목회를 하면서 목사의 입장에서 보면 이름은 요란하지만 행위가 죽은 교회를 만드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는 것을 저는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 여러분들 아시고 싶습니까?
이렇게 하면 됩니다. 목사가 말씀을 가르치거나 설교를 하면서 복음을 조금씩 변질시키면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복음이 얼마나 변질되고 있는지 조차도 모를 정도로 분간해지면 됩니다. 그러면 교회는 이름만 살아있고 행위는 죽어질 수 있습니다. 청중은 원래 귀에 듣는 좋은 말씀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습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하면 모두가 아멘 합니다.
믿음만 있으면 하늘의 복도 받고 땅에 복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할렐루야 하고 열광합니다. 그러나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요 구원도 확신할 수 없다고 하면 얼굴이 근방 굳어져 버립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자를 지적하거나 책망하면 예배분위기가 근방 싸늘해 버립니다. 듣기가 싫고 몹시 거북스럽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교회에서 사역할 때 저는 비슷한 반응을 가끔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청중에 반응에 예민해지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이 좋아하는 말씀을 일부로 골라서 설교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대신 죄라든지 회개라든지 순종이라든지 거룩 이라는 던지 하는 듣기 피곤한 말씀은 할 수 있으면 피하거나 꼭 말을 해야 할 때는 달래듯이 부드럽게 말하고 싶어 하는 유혹에 끌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의 이런 모습은 예수님이 절대로 바라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절대로 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이 강단에서 일어나고 있었고 그 결과 저도 모르게 복음을 조금씩, 조금씩 변질시키는 설교자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교회가 커지면 커질수록 말씀대로 순종하는 행위는 별로 관심이 없고 믿음만 가지고 떠드는 값싼 은혜에 안주하기를 좋아하는 무리들이 자꾸만 늘어가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를 여러분들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다는 놀라운 복음을 재발견한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의로운 행위는 아무런 공로가 되지 못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비텐베르크에서 34년 4천 번 이상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루터의 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의 메시지를 곡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순종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데 죄 조금 지었다고 해서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 거야 하면서자기욕심대로 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도시는 믿음의 방용이 만무 하는 타락한 사회가 되어 갔습니다. 이런 기막힌 상황을 지켜보는 루터는 자기설교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설교를 그만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탄식했다고 합니다.
선한 양심을 가진 목사라면 설교하기보다 차라리 수레를 끌고 돌을 운반하는 편이 낫겠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루터가 우리에게 주는 아주 값진 교훈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압니까?
교회지도자가 복음을 가르치면서 복음을 전하면서 믿음만 일방적으로 강조하고 믿음의 열매가 되는 행함을 등한시 다루던지 무시하면 입만 살고 행위가 죽어버리는 사데 교회가 되어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20장20절을 보면 바울은 유익한 말씀은 무엇이던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 없이 전하고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을 포함하여 한국교회에 많은 지도자들은 바울처럼 무엇이던지 거리낌 없이 전하는 용기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 것은 먹이고 쓴 것은 할 수 있으면 먹이지 않으려는 나쁜 설교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설교자는 청중에게는 인기가 있어서 사람들을 많이 끌어 모으는 데는 성공할지 모르나 행위가 죽은 교회를 만드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지도자 여러분 복음을 변질시켰다는 주님의 질책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우리가운데 몇 이나 됩니까? 입만 살았고 행위가 죽어버리는 교회를 만든 책임은 너희에게 있어 하고 따진다면 나는 아니요 하고 발을 뺄 수 있는 목회자가 몇 사람이나 됩니까? 평양 대 부흥의 진정한 기념은 복음을 변질시키고 행위가 죽은 교회를 만든 죄를 놓고 가슴을 치는 목회자들이 회개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를 향하신 간절한 주님의 소원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주님은 행위가 죽은 사데교회를 향해 회개하라고 명하십니다. 회개만이 살길이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를 향해서도 똑같은 명령을 하고 계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옥 목사님이 폐암선고를 받으시고 나이가 65세가 되셔서 그 교회를 후임자에게 맡기시고 주님과 깊은 대화를 하시면서 보니까 본인이 느꼈던 부분을 이 설교로 이렇게 하신 것 같습니다 이분이 이런 설교를 목회자들이나 한국교계에 던졌다는 것은 그 당시만 해도 이분은 참으로 훌륭한 분임이 틀림없습니다. 겸손한 분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분을 통해서 주님이 주시는 메시지가 우리 한국교회나 또는 이런 모습이 있는 세계교회가 하루아침에 변할 수는 없습니다. 오랫동안 타성에 젖어왔기 때문에 왜냐면 예수님이 오늘 요한복음15장의 말씀에서 가르쳐주신 대로 그렇지 않는 사람들은 소수라는 겁니다. 이렇게 되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옥 목사님도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영성이 뛰어나고 제자훈련에 전문목회자로 정평이 났지만 주님 앞에 가기 전에 자기 자신을 고백하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 모두가 저를 포함해서 자칫하면 나의 영광을 위해서 나의 욕심을 위해서 내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주님을 섬기다가 창조목적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지 않을까 상당히 저도 두렵습니다. 충현 교회를 당당하셨던 신성종 목사님 간증이야기 우리가 들었잖아요. 이분도 대형교회 목사님이었지만 자기 꿈 가운데 낙원에 가보니까 소위 유명세를 타던 그러한 목사님들은 딴 곳에 있는 분들도 있고 그리고 천국에 높은 자리에도 없고 반면 조그만 교회에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주님을 섬겼던 그러한 어촌이나 농촌에 목회자들이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그러한 간증을 우리는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님이 오늘 주시는 말씀 이것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미 기독교역사 속에서 이 진리의 말씀이 다 증명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진리의 말씀대로 갈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됩니까? 저도 마찬가지로 내 욕심을 버리고 우리가 크리스천의 삶을 살아도 나의 어떤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면 안 됩니다. 나의 어떤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면 안 됩니다
우리는 뭘 해야 합니까? 우리는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먼저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나머지 나의 모든 잡다한 문제들은 주님이 다 해결해주실 것을 믿고서 나오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교회는 교인이 늘어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양소를 빨아드리는 우리영양소를 빼앗아 가는 사람들이 우리교회에 모이면 안 됩니다. 교인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나와 여러분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여기에 모여 있으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뭘 못하게 됩니까? 진이 빠져가지고 우리는 무엇을 못합니까? 지상계명과 지상사명을 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교회시스템도 단순화해야 되고 하나로만 쳐다보고 있어야 됩니다.
이렇게 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선교지에 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메시지는 계속 똑같은 메시지입니다 선교지에 우리가 섬기는 제 3세계에 가도 이런 문제가 옥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이런 문제가 아주 대 유행입니다
미국이나 서구교회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커지려고 그러고 목사들이 유명해 지르고 그러고 교인 많이 만들어서 헌금도 많이 걷고 누가 봐도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그러다보니까 벌써 커진 목사님들 보면 자동차도 고급차타고 다니고 기사 있고 이 세상에 대기업에 높은 분들처럼 하고 다닐 때 보면 아하! 이것은 아니구나. 그런 것을 바라보면 안 됩니다.
저도 그런 기질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이 기질을 죽이려면 스스로 가지지를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도 불편한 게 많습니다.
핸드폰도 제가 일부로 안 가지는 겁니다. 누가 보면 핸드폰 안 가지는 게 뭐가 대단합니까? 그렇지만 없으니까 불편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한복음15장에서 주신 이 말씀 이게 진리의 말씀임을 주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이 역사 속에서 이미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인간은 피조물은 조금 커지면 자기가 잘 났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영광을 찾고 자기 욕심을 찾는 것이 피조물임을 주님 아시고 우리보고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은 스스로 작아져라 커지려고 하지 말아라. 말씀하셨잖습니까? 감사합니다. 우리교회 공동체 우리 모두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주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우리가 선한 일을 해도 숨어버리고 주님을 위해서 주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항상 숨어버리는 그러한 우리 모두가 되도록 주님께서 인도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u6BVx256T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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