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 21강. 발 씻기, 가룟 유다, 새 계명, 베드로 세 번부인 (요13:1-38) 2010년8월29일 말씀
제가 항상 말씀드리지만 요한복음강해를 한 장 전체를 하기 때문에 13장도 38절까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 읽는 못하고 두 절만 읽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34절과 35절입니다. 3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13장은 상당히 우리에게 익숙한 장이기도 하고 또한 중요한 장이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기에 대한 말씀을 심도 있게 해드리려고 하는 생각입니다 고난주일이 어느 날부터 시작합니까? 1월10일 그게 어느 날입니까? 주일입니다 그날을 종려주일이라 그럽니다. 요한복음은 고난주일에 관한 이야기가 자세하게 없습니다. 종려주일에 대해서도 없고 그다음에 월요일에 무화과나무저주사건이야기도 없습니다. 그다음에 화요일에 예수님이 설교를 몇 번 하셨습니까? 열두 번 하셨습니다. 마지막 열두 번째가 감람산설교입니다 화요일설교도 요한복음에는 없습니다. 그다음에 수요일에는 뭘 하셨습니까? 수요일에는 베다니 시몬 집에 들어가서 예수님이 향유를 받으시는 사건이 수요일입니다 이 사건도 요한복음에는 없습니다. 그러면 목요일이 1월14일입니다 목요일 낮에 한 사건은 4복음서에 없습니다. 그런데 목요일 저녁시간이 무슨 말이냐면 성서적으로 유대인시간에 의하면 금요일시작입니다
금요일에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날에 성만찬 소위 말하면 유월절음식을 잡수셨던 닐로 구약의 사람들도 그 날에 유월절음식을 잡숫는 날입니다 그 사람들이 1월15일 날에 그리고는 양을 잡는 사건이 목요일저녁 다시 말하면 금요일시작입니다 예수님이 이 시간을 본인이 실천하기 위해서 한집을 선택하셔가지고 거기서 유월절음식을 잡숫는 겁니다.
음식을 잡숫는 장면부터 요한복음13장은 시작하는 겁니다. 요한복음13장은 12장에서 점프해가지고 금요일유월절음식을 잡숫는 그날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13장의 구조가 제일먼저 그분이 음식을 잡수시면서 뭘 하시냐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겁니다. 그런데 4복음서에는 발 씻기가 실은 먼저가 아닙니다. 그날 예수님이 먼저 하신 게 성례전에 빵을 가지고 이것은 내 몸이다 그다음에 포도주는 내 피라고 말씀하신 것 이것을 식사하시면서 먼저 하셨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나오는 성경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이 요한복음에는 기록이 안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26장26절에서29절 마가복음14장21절에서25절 누가복음22장14절에서20절에 보면 마태, 마가, 누가는 성례전을 먼저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이 성례전말씀을 안 하셨습니다. 성례전 하시는 목적이 뭘까요 예수님이 구약의 유월절어린양이심을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 목적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요한복음1장부터 12장까지 오면서 예수님의정체성이 유월절어린양 되심을 항상 강조하셨잖아요. 그것을 실제로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날에 예수님이 유월절어린양이 실제로 되는 날입니다
이걸 말씀하시면서 너희들이 이제는 이것을 계속 기억하라는 겁니다.
기념하라 그랬잖아요. 그런데 이 말씀이 요한복음에만 없는 겁니다.
그러면 요한복음에는 뭐부터 시작하느냐면 이 말씀을 하시고는 식사도중에 발 씻기를 하신 겁니다. 발 씻기를 하셨는데 발 씻기를 거꾸로 공관복음에는 없습니다. 지금 오늘 우리가 보는 빌 씻기는 요한복음에만 있는 아주 재미있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발 씻기 끝난 다음에 예수님이 식사를 하시면서 가룟 유다가 배반할 것을 예언하십니다. 이 예언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다 있습니다. 그리고는 가룟 유다가 이 예언을 받고는 식사 도중에 떠나는 장면도 요한복음에만 있습니다. 이렇게 떠난 다음에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서 설교를 하십니다. 식사도중에 설교를 하시는데 요한복음13장 중간부터14장15장16장까지 10가지 제목을 놓고 설교를 하시는 겁니다.
이제 우리가 그것을 나중에 자세히 볼 터인데 첫째 성부와 성자가 영광 받으신다. 그다음에 예수님이 내가 낙원에 간다. 너희들에게 새 계명을 줄 거다. 그다음에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거다 그다음에 제자들이 14장부터 그러는 겁니다. 예수님이 내가 떠난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걱정하니까 위로해주시면서 너희들에게 보혜사성령님을 보내주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15장에 가서 너희들이 내 제자가 되려면 포도나무에 매달려 있어야 된다. 예수님이 그 말씀을 하시면서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이 내 제자가 되는데 세상 사람들이 너희들을 미워할 거다 제자가 되려면 미움을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보혜사성령님의 사역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설명해주는 겁니다. 그러면서 너희들이 내가 떠나니까 이렇게 슬픔이 있지만 나중에는 기쁨이 있을 거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유월절만찬설교입니다
이걸 우리가 자세히 볼 겁니다. 이 시스템을 먼저 아셔야 됩니다. 그리고는 17장에 가서는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장면입니다 식사도중에 기도하시는 장면입니다 손을 올리시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시고는 17장 전체가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기도도 세 가지로 나눕니다, 자신을 위한 기도 제자들을 위한 기도 또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한 기도 이렇게 해서 기도하시는 장면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이런 전체구조 속에서 뭘 먼저 보느냐면 13장의 구조입니다
13장의 구조하는 것은 다시 말하면 발 씻기, 가룟 유다 배반예언, 새 계명,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것을 말씀한 것이 13장구조입니다
그러면 제가 성경말씀을 가지고 보겠습니다. 13장4절에 보면 저녁을 잡수시던 자리에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면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목욕한 사람이야기하고 목욕을 하지 않은 사람을 이야기하고 이런 말씀을 하시는 장면이 주욱 나옵니다. 그것은 나중에 제가 설명을 할 겁니다. 제목은 성만찬 준비입니다 성만찬을 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과정이 있는데 준비하는 과정이 요한복음에는 기록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만찬을 준비하는 과정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준비과정을 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 마태복음26장17절에서19절입니다.
이 말씀을 보시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17무교절의 첫날에(1월15일, 또는 예비일입니다 그 다음날인 1월16일이 안식일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준비하는 날이 금요일입니다 그게 유월절 첫날입니다 다시 말하면 무교절 첫 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는 겁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8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19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이렇게 마태복음은 아주 일반적인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냥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예수님이 어디 어느 집에 가서 그 집을 빌려 다라고 그래라 그러면 줄 것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누가복음22장7절에서13절과 또 마가복음14장12절에서16절은 비슷한데 요한복음에 없는 내용입니다 뭐냐면 7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 날이 이른지라 8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이때 보면 제자들을 보냈다 그랬는데 여기 보면 두 사람을 보낸 겁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9여짜오되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0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11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12그리하면 그가 자리를 마련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준비하라 하시니 13그들이 나가 그 하신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준비하니라
그러니까 분명히 큰 다락방을 빌린 겁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다락방이 누구의 다락방인가 여기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추측하기로 마가의 다락방 같습니다. 그러면 마가의 다락방이라면 주인이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로 나중에 사도행전2장에 연계된 다락방이 아닐까 하고 추측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 우선 배경설명을 보시고 그리고 예수님이 성만찬에서 성례전을 하시는 장면을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거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제가 안하겠습니다. 그 성경말씀은 마태복음26장 마가복음14장 누가복음22장 이 내용을 보세요. 그러면 예수님의 몸과 피 입니다. 우리는 지금 요한복음이기 때문에 발 씻기부터 보겠습니다. 그러면 발 씻는 목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 목적을 우리가 알아내어야 합니다. 성만찬의 목적도 예수님이 누구라고 했습니까? 구원 주되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제자들에게 재확인시키는 겁니다. 우리는 그저 발 씻기 내용을 보면 보통 아! 발 씻으면서 우리끼리 서로 섬기라고 발 씻으라는 구나 이 수준입니다 그 수준이 아닙니다.
발 씻기는 거기에 보면 중요한 내용들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내용이 뭐냐면 목욕한 사람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목욕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면 첫째 열한제자들입니다 가룟 유다는 거기서 빠집니다. 두 번째로 13장10절에서 그랬습니다. 온 몸이 깨끗한 사람들입니다 또 세 번째로 10절에서 뭐라고 그랬냐면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에 의해서 발 씻김을 받아야 예수님과의 관계가 정립된다는 겁니다. 8절에 보면 그러니까 목욕한 사람인데 목욕은 했는데 발 씻김을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발 씻김을 받는 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목욕 했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우리 원죄가 해결된 사람들입니다 발 씻기를 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잡음 죄가 계속해서 해결이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성화문제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성화가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러시는 겁니다. 목욕한 사람들은 발 씻김이 필요한데 서로서로 발을 씻겨주어야 된다는 겁니다. 서로서로 14절에서17절에 보면 그럽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내가 너희들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는 수평관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끼리 수평관계를 잘 하라는 겁니다. 사랑해주고 용서해주고 자비를 베풀고 그러니까 목욕한 사람은 택함 받은 사람들입니다 18절에 보면 칼빈주의적인 사고가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항상 택함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6장37절에 봐도 그렇고 또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8장29절에서30절에 유명한 말이 예수님이 바울에게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아신 자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미리 정하셨으니 그런 사람들을 부르고 의롭고 영화롭게 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목욕한 사람은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을 목욕시키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 같이 앉았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의 예외가 누굽니까? 가룟 유다입니다 그 양반이 있는데서 지금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가룟 유다가 있는데서 그러면 제목을 바꾸어서 목욕을 안 하는 사람은 도대체 누굴까요? 그다음에 그 사람들의 특색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가룟 유다인 겁니다. 13장10절에 써놓았습니다.
두 번째는 11절에 보면 이 사람은 깨끗하지 않다는 겁니다. 원죄가 있다는 겁니다. 세 번째는 예수님을 선생님이나 또는 주(主)로 고백을 못한다는 겁니다. 13장13절에 그랬습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는 발을 씻을 필요가 없는 겁니다. 13장10절에 그랬습니다. 그다음에는 마귀사탄의 자녀라는 겁니다.
13장2절과 27절에 그랬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제가 심각한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제목을 뭐라고 붙이냐면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할 것을 예언 한 겁니다. 이 예언은 마태복음26장21절에서25절에 나옵니다.
예수님이 예언하셨습니다. 또 마가복음14장18절에서21절에 예언 했습니다
그다음에 누가복음에는 자세히 명시를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22장3절 한 절에만 딱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22장3절에 한 마디가 뭐냐면 열둘 중 하나인 가룟 유다라고 부르는 이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이 말 한 마디만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13장18절과 21절에서30절에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자세히 주욱 설명했습니다. 그 내용은 여러분들이 본문을 읽어 보면 아십니다. 이렇게 예언을 하셨는데 그다음에 가룟 유다는 하나님이 예정하신 분입니다 우연이 가룟 유다가 나타난 게 아닙니다. 그러면 가룟 유다의 예언을 어디에서 먼저 봐야 하느냐면 우리가 하나님의 대 구원계획이 무엇입니까? 창세기3장15절에서 우리가 봐야 합니다. 창세기3장15절에서 여자의 후손과 그다음에 사탄의 후손이 나옵니다. 이 부분을 보세요. 내가 할 때 내가 누굽니까?
14절에 누굽니까? 여호와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여호와하나님이 누굽니까?
우리가 예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야기하시는 겁니다.
내가 너로 할 때 너는 누굽니까?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너가 누굽니까?
여기서 여자가 뱀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입니다 루시퍼입니다.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할 때 여자는 누굴까요? 직설적으로 보면 그대로 보면 거기에 나오는 상황을 보면 하와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여자는 하와인데 하와를 우리가 이브(eve)라고 그럽니다. 이브(eve)라는 히브리어의 뜻이 뭐냐면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the Life입니다.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브(eve)가 생명이면 그러면 우리가 영적으로 보는 겁니다.
아하! 요한복음14장6절에 예수님이("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그러는 겁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브(eve)라는 여자라는 단어가 두 가지의 차원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성서에서는 이렇게 해석하는 게 많습니다. 두 차원으로 보는 겁니다. 첫째 차원은 뭐냐면 그 여자는 하와라는 겁니다. 이브(eve)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영성 화 시키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생명이고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내가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사탄아 너와 나와 원수가 된다는 소리입니다
예수님과 원수가 된다는 소리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다음에 뭐라고 그랬냐면 네 후손도 그랬습니다. 그러면 네 후손이 누굽니까? 사탄입니다.
사탄의 후손인 겁니다. 그런데 사탄의 후손인데 보면 다시 말하면 루시퍼의 후손인데 누군지는 모릅니다. 너의 씨드(씨, seed)가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그러면 여자의 후손이 누굽니까? 예수님입니다
갈라디아서4장4절에 보면 예수님이라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여자의 후손입니다 아버지가 없는 남자의 후손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그러는 겁니다. 예수님은 여자의 후손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누구와 누구의 싸움입니까? 사탄의 한 후손과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과 싸움입니다.
그런데 누가 어디를 칩니까? 사탄의 자녀는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치고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은 사탄의 자녀의 머리를 친다는 겁니다.
그러면 누가 이깁니까? 머리를 치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기는 겁니다.
이렇게 상징적으로 예언을 하신 겁니다. 이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 영적전투가 일어날 것을 보여주고는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구원계획이 처음에 가죽치마를 입은 어린양 두 번째는 아벨의 어린 양 그다음에 노아 때 방주의 어린양 그리고 아브라함 때 모리아 산에 어린양 그다음에 모세 때 유월절에 어린양 또 모세 때 성막에 어린양 다윗과 솔로몬 때 성전에 어린양 그래가지고 예수님이 그 성전이 나다는 겁니다. 요한복음2장에서 이렇게 연계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자의 후손이 예수님인데 사탄의 후손은 누구냐면 알고 보니까 그놈이 가룟 유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가룟 유다는 사탄의 똘만이 중에 한 놈인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열두제자들을 뽑을 때 이미 가룟 유다를 뽑아 놓은 겁니다. 그래가지고 제자들도 모르면서 3년 공생애하는 중간 정도 되었을 때 요한복음에서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6장70절과71절에 70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71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미래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아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는 겁니다. 저 양반은 지금 전혀 그렇게 안 보이지만 많은 데몬(demon)중에 한 데몬(demon)이라는 겁니다. 많은 마귀 중에 한 마귀인 겁니다.
어떻게 영물인 데몬(demon)이 사람이 될 수 있느냐 입니다.
가능합니까? 가능한 겁니다. 영적인 존재가 영물이 차원을 낮추면 사람이 되는 것만이 아니고 나중에는 나무도 되고 돌도 되고 그럽니다.
예수님도 구약에서 예수님도 하나님이신 영체신데 이분도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분이 사람이 되어서 구약에서 나타난 일들이 많잖아요. 특히 창세기18장1절2절, 창세기19장, 또는 창세기16장16절에 하나님의 사자라도 하갈에게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이 천사라도 나타나시고 또는 40년 광야생활 할 때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여러 모습을 나타났는데 그 중에 한 모습이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10장4절에 예수님이 바위로도 반석으로 나타난 겁니다.
이렇게 고차원의 영물이 저차원으로 바뀔 수가 있습니다. 이게 성경적인 예언의 근거입니다 두 번째는 뭐냐면 이렇게 가룟 유다가 사람으로 와 가지고 영적 싸움을 준비할 것을 구약에서 예언 했습니다. 시편41편9절에 보면 다윗의 예언입니다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이 말이 뭐냐면 다윗이 환상을 보니까 구약에서 다윗이 환상을 볼 때마다 누구를 표상해서 봤습니까? 이분이 예수님을 표상하면서 봤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에서 다윗이 본 것들을 나중에 예수님께서 확인하시는 겁니다. 그걸 내가 왜 너에게 보여주었는지 아느냐 그것이 하나의 그림자로써 내가 보여 주었는데 실체는 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멋도 모르고 본 겁니다. 그런 내용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시편16편 같은 데도 그랬습니다. 다윗이 갑자기 죽었는데 자기 몸이 섞지 않고 부활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시편16편에 그러니까 나중에 베드로가 오순절다락방사건을 통해서 이분이 설교를 하시는 겁니다.
디아스포라사람들에게 사도행전2장14절부터 그럴 때 그러는 겁니다.
그때 다윗이 본 시편16편이 다윗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부활하신 것이 얼마 전에 50일 전에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셨던 예수님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하나의 그림자였다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여기도 똑같이 지금 가까운 친구가 다윗을 대적하는데 발꿈치로 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발뒤꿈치를 들어서 친다는 겁니다. 아주 가까웠던 친구가 이렇게 말씀하신 이 말씀을 오늘 본문 요한복음13장18절에 예수님이 뭐라고 하였냐면 18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그러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가룟 유다가 조금 있으면 발꿈치를 가지고 자기를 찰 거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미 누구에게 예언했습니까? 다윗에게 시편41편9절에 예언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아래위로 다 봐야 합니다. 두 번째로 스가랴에게도 예언 한 것이 있습니다. 스가랴11장12절13절에 보면 예수님이 은30냥에 팔릴 것을 주전500년에 스가랴에게 예언 한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대로 성취되는 겁니다. 또 세 번째는 스가랴서11장14절에 이렇게 받은 은30냥을 토기장이에게 던질 것을 또 예언하신 겁니다. 이와 관련해서 스가랴에게만 하신 것이 아니고 예레미야 선지자에게도 예언한 겁니다. 예레미야18장2절에서12절에 19장1절에서13절에 그러니까 다윗에게 예언하시고 스가랴에게 예언하시고 예레미야에게도 예언하신 겁니다. 이 예언들을 성취하기 위해서 제목을 바꾸어서 예언 성취과정을 보면 첫째 예수님이 가룟 유다를 제자로 뽑은 겁니다.
마태복음10장2절 마가복음3장16절에서19절에 제자들 이름이 거기에 나옵니다. 누가복음6장13절에서16절에 제자들12명의 이름이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가룟 유다 이름이 있습니다. 나중에 가룟 유다가 죽은 후에 사도행전1장13절에는 그 대신에 누가 제자가 되었습니까? 맛디아가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제자를 뽑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아까 다윗에게 말한 시편41편9절을 성취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가룟 유다를 가장 신임하는 재무담당으로 뽑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예수님이 자상하십니다. 재무담당이 가장 심임 받는 분이 아닙니까? 요한복음13장29절에 보면 재무담당이라 그랬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가까웠냐면 예수님이 떡을 떼시면 가룟 유다에게는 직접 주셨습니다. 13장26절에 보면 떡을 먹으라고 그런데 가룟 유다가 제자로 뽑혔을 때는 그렇게 악한 일을 했습니까? 별로 하지를 않았습니다.
본래 존재는 마귀인데 사람으로 내려와 가지고 사람모습으로 되어가지고 평범한 일반 사람들과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영의 성분을 다 포기해버린 겁니다. 완전히 사람이 된 겁니다. 똑같이 우리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의 존재이신데 이분도 빌립보서2장7절에 완전히 신성을 포기했던 것처럼 가룟 유다도 완전히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이분이 하나님이 창세기3장15절에 또 다윗과 예레미야와 스가랴 선지자에게 예언하신 이것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분에게 가룟 유다에게 뭐가 들어가야 합니까? 사탄이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지만 성령님의 세례를 받아야 되듯이 영적인 파워가 들어가 주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보면 사탄이 마귀가 가룟 유다에게 들어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본문13장2절에 보면 유월절 만찬 전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원어를 보면 과거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만찬 전에 이미 그런 마음을 준 겁니다. 벌써 마귀가 들어가 가지고 이 양반을 그렇게 하도록 생각나도록 그러니까 마귀가 뒤에 숨어가지고 이 양반을 자꾸 조정하면서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너가 이 일을 해야 된다 그걸 주욱 가르쳐주는 겁니다.
이분이 그런 마음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니까 이게 자기 마음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성만찬 때 갈등이 있었겠습니까? 없었겠습니까? 가룟 유다가 안 그래도 갈등이 있는 겁니다. 이런 마음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니까 갈등이 있는데 예수님이 그냥 유다가 나를 배반할 것이라고 예언을 그 자리에서 해버리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저 양반은 목욕이 필요 없다는 겁니다. 발 씻을 필요도 없다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내가 떡 한 조각을 주는 자가 있는데 제자들이 그게 누굽니까? 하니까 떡 한 조각을 받는 저자가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저자에게는 하가 있을 텐데 차라리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다는 겁니다. 왜냐면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런 갈들도 가지게 되고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런 아픔도 있고 자기도 표현 못하는 고통들이 가룟 유다에게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걸 보시면서 인간적인 연민까지 느끼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태어나도록 하신 겁니다. 태어나도록 했지만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그 순간에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겁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완전히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고민도 하시고 나중에 십자가도 안 지려고 고민까지 하시고 그랬잖아요. 똑같이 영적인 존재가 육을 가지고 있을 때는 이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27절에 보면 사탄이 아예 가룟 유다 속에 들어갔다 그랬습니다. 들어갔는데 이제는 예수님이 들어간걸 보시고는 너 이제 너 할 일 속히 해라고 명령을 내리시는 겁니다.
창세기3장15절의 그 계획을 이제는 해라 그러니까 가룟 유다가 떠났다 그랬습니다. 도대체 떠났다 했는데 오늘 말씀을 보면 떠났는데 거기 뒤에다가 요한이 토씨를 달았습니다. 떠났는데 요한이 뒤에다가 토씨를 달았습니다.
성령님이 요한에게 말씀하신 겁니다. 30절에 보면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그랬습니다. 실제로 밤에 나간 겁니다. 밤이라는 것은 영적으로 무엇입니까? 어두움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가룟 유다가 나가가지고 어디로 갔습니까? 성서에는 자세하게 나옵니다. 누가복음에만 어디로 갔는지 자세하게 나옵니다. 누가복음22장4절에서6절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제가 성경을 흩어져 있는 것을 이것저것 제가 잘 알려주는 것이니까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누가복음에만 있습니다. 어디로 갔느냐면 대제사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갔습니다. 성령께서 가도록 한 겁니다. 왜냐면 이미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이분들이 논의를 했습니다. 소위 공의회에서 산헤드린에서 해가지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결정까지 내린 겁니다.
내렸기 때문에 이제는 이미 성령님께서는 아시고 가룟 유다를 그분들에게 보낸 겁니다. 그래가지고 서로가 만났습니다. 이제는 단합이 된 겁니다.
그래가지고 이 지도자들과 유다가 서로가 대화하는데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체포할 것인가 방법을 논의했습니다. 그리고는 약속했습니다.
유다야 우리가 돈을 줄게 돈 까지 약속했습니다. 뇌물사건은 이게 사탄의 사건입니다. 우리나라도 공무원들 사업하는 사람들 뇌물을 많이 주고 왔다 갔다 하잖아요. 그것은 사탄의 일들입니다 뇌물을 준다니까 동의 했습니다.
그래가지고 가룟 유다가 실제로 책임을 졌기 때문에 유다가 계획을 짜는 겁니다. 어떤 계획을 하느냐면 첫째 무리가 없는 기회를 노리는 겁니다.
왜냐면 무리들이 있는데서 예수님을 체포하면 백성들이 소요가 무서웠습니다. 마태복음26장5절 마가복음14장2절 누가복음22장2절에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조용할 때 아무도 없는데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을 후보지로 선정했다 그랬습니다. 요한복음18장2절에 겟세마네 동산은 사람들이 많이 안 다니고 예수님이 자주 그곳에 방문하는 곳이기 때문에 유다도 자주 따라다니면서 지형지물을 보았기 때문에 알았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예수님을 체포하는 겁니다. 가룟 유다가 이분들을 데리고 간 장면을 우리가 다 알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이렇게 체포당하시고 사형선고까지 받으시고 그런 장면이 요한복음에 주욱 나옵니다. 똑같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은30냥을 이분들에게 받은 것을 반환하고 그리고는 신기한 게 분명히 아까 선지자들에게 말한 것처럼 그 30냥을 대제사장들에게 받아가지고 토기장이의 밭을 사가지고 나그네들의 묘지로 삼았다 그랬습니다.
그 돈을 다시 제사장들이 받아 가지고 그 돈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 가지고 나그네의 공동묘지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이게 신기한 겁니다.
그리고 그것도 예언이 되어 있거든요 그러면 토기장이가 누굽니까?
토기장이는 로마서9장21절에서24절에 보면 토기장이는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뭐라고 그랬습니까? 진흙이다 그랬잖아요. 토기장이의 밭이다 그러니까 토기장이의 밭은 예수님의 땅입니다 그런데 나그네의 묘지로 삼았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 저도 묵상을 많이 했습니다. 아하! 토기장이 이야기가 로마서9장에 나오는데 보면 두 가지 사람이 있는데 만들어 낸 그릇이 어떤 그릇이 있느냐면 귀히 쓰시는 긍휼의 그릇이 있고 그다음에 무슨 그릇이 있느냐면 천히 쓰는 그릇인데 진노의 그릇이 있다는 겁니다.
토기장이가 두 가지의 사람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토기를 만든 것이 이르듯이 토기장이의 밭을 샀는데 나그네의 묘지로 나그네는 분명히 진노의 사람들의 무덤이 아닐까하고 보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안 믿는 선택받지 않는 사람들의 무덤으로 예컨대 은30냥은 가룟 유다에 속해 있으면서 이것을 그쪽 용도로 쓰도록 하지 않았나.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목을 바꾸어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도록 한 목적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왜 이런 방법을 쓰실까요? 거기에 대한 당위성을 우리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창세기3장15절에서도 그렇고 왜 가룟 유다라는 그런 사람이 등장해서 이렇게 해야 됩니다 많은 자유신학 자들이나 또는 복음주의사람들도 가룟 유다는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다 왜 가룟 유다을 인본적인 차에서 말씀하시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 안에 영적인 깊이 숨겨있는 주님의 뜻을 가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왜 그럴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시잖아요.
신성을 포기하셨잖아요. 빌립보서2장7절에 그래서 우리가 12장에서 지난시간에도 봤지만 예수님이 갑자기 유월절사건 가까이 오니까 십자가을 지시는 것에 대한 부분에서 딴 생각을 하시는 부분을 우리가 읽었습니다.
예수님이 왜 그럴까요? 완전한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똑같이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될 수 있으면 이 잔을 받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잖아요. 이분이 완전한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계획 창세기3장15절을 자칫하면 이루지 못할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는 겁니다.
예수님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이 훈련받는다면 조금 이상하지만 피조물의 그러한 스타일로 완전히 인성이 된 예수님을 예수님이 사람으로서 훈련 받기 위해서 주님께서 가룟 유다를 주지 않았나.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뭐냐면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사람이 되시니까 이 훈련 없이는 생각이 바뀔 수가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신데 그러니 하물며 우리가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그냥 오락가락하는 겁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들도 그렇습니다. 이제 예배 끝나고 집에 갈 때 되면 세상 사람들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오락가락오락가락 합니다.
그것은 당연히 있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예수님도 이런 위험도 까지 가지고서 인간이 되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막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가룟 유다를 허락하신 겁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지 않으셨더라면 그분이 만약에 제자들하고 도망갈 확률이 높았을 겁니다.
야! 갈릴리로 올라가자 이렇게도 하실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아니 하셨지만 보시면 하나님이 쓰셨던 특별한 하나님의 제자들은 다 나름대로 가룟 유다를 허락했습니다. 바울도 가룟 유다가 필요했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이 가룟 유다가 우리에게는 필요한 겁니다. 이 가룟 유다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겁니다. 물질 적으로 또는 관계적으로 또는 건강으로 또는 외롭게 만들고 사람들에게 핍박받게 하시고 그러니까 제자들에게 다 가룟 유다가 있었잖아요. 다 핍박받았잖아요.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도 가룟 유다가 왜 필요했습니까? 아버지의 뜻을 이분이 아버지의 뜻만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서 가룟 유다를 집어넣어 준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어려움이 있고 자녀가 속 섞이고 사업이 잘안 되고 건강문제가 있고 할 때마다 가룟 유다가 있구나. 왜냐면 예수님이 가룟 유다가 있을 때마다 어떻게 한다고 그랬습니까? 야고보도 어떻게 한가고 그랬습니까? 페리라스모스 시험입니다 그럴 때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가룟 유다가 있었으니까 우리가 눈을 저 나라로 뜰 수가 있었던 겁니다.
안 그러면 자꾸 눈이 밑으로 가라앉는 겁니다. 그러니까 가룟 유다가 필요 합니까 안 필요합니까? 필요합니다. 베드로도 가룟 유다가 필요했습니다.
베드로 전 후서에 보면 그랬습니다. 너희들 이 훈련을 받고 가룟 유다의 훈련을 받고 나중에 제대로 된 하나님의 종이 죌 수 있다고 말했고 야고보도 그랬고 바울도 그랬고 그분들의 서신을 보면 다 그랬습니다. 이게 필요한 겁니다. 여기에 동의하십니까? 다 잘 되어 보세요. 교회에 안 나옵니다.
크리스마스 때나 한번 나올까요? 이게 우리의 약한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주변에 가룟 유다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 많잖아요. 우리가 네가 그런 일을 당하기 때문에 이런 모든 큰 그림으로 볼 때 주변에 가룟 유다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가 그분들을 위로해줄 수 있고 격려해줄 수 있고 위해서 기도도 해주고 그렇게 할 수 있잖아요. 정죄하는 마음이 없어집니다. 세 번째 보면 새 계명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가룟 유다사건을 보여주시고는 새 계명을 주시기 위해서 하시는 말씀이 애들아 나는 이제 아버지와 같이 영광을 이미 받았다 그래놓고 나는 이제 낙원으로 간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너희들 서로 사랑해라 이것이 새 계명이라는 겁니다. 왜 새 계명은 우리 예수님의 계명을 화요일 날에 주실 때는 새 계명이 제일 큰 계명이 아닙니다. 화요일 날에 말씀하신 것 화요일 날에 설교하신 것 중에 일곱 번째 설교가 무엇이었습니까? 마태복음22장37절에서40절입니다. 며칠 전에 하신 말씀이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 무엇입니까? 수직계명이고 두 번째 계명이 수평계명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분의 수직계명을 그동안에 계속 이야기하셨습니다. 지금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구원주다 나에 의해서 너희들이 이제는 목욕할 필요가 없다 이제는 목욕을 받았으니까 예수님의 구원주적인 설교를 주욱 하시고 그다음에 몸의 살과 피 이것도 다 예수님의 구원주적인 수직적인 이야기를 다 하신 겁니다.
예수님의정체성을 너희들이 안 다음에는 너희들끼리 이제는 수평적으로 사랑하라 그것이 새 계명이라는 겁니다. 새 계명은 발 씻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용서해주고 사랑해주고 격려해주고 서로 씻어주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이 말씀을 받아가지고 이분이 질문하는 겁니다.
36절에서38절에 도대체 어디로 가십니까?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딴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너는 조금 있다가 나를 세 번 부인하겠다는 겁니다. 왜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도록 만들까요. 이것도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적인 계획입니다
베드로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베드로가 이렇게 하도록 이미 다 플랜을 짜신 겁니다. 그리고는 그렇게 할 거라고 그러는 겁니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 주님이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하! 베드로가 조금 있으면 제자들 중에서도 제일 높은 위치에 앉게 되고 자기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베드로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교만이 엄청나게 하늘을 찌르듯 할 겁니다. 주님이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교만이 하늘을 찌르듯 할 텐데 그 교만을 꺾어야만 예수님의 제자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구약에서 모세도 그런 훈련을 받았고 다윗도 이런 훈련을 받았고 제일 교만을 꺾을 수 있는 우리가 가장 아픈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존심을 건드리는 겁니다. 자존심을 낮추어 놓는 그것이 최고의 아픔입니다. 베드로의 자존심을 낮추게 하는 이 역할을 시키는 겁니다. 그래야 이분을 주님이 쓰실 수가 있는 겁니다. 알다시피 베드로는 3년 공생애 동안에 가장 예수님의 총애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자존심이 대단히 센 사람이었습니다.
이분의 형제인 안드레가 먼저 예수님을 만났지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잡아다가 안드레보다 높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베드로가 혹시 딴 짓 할까봐 그리고 베드로 와이파가 아마도 예수님을 따라가지 못하게 방해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의 장모님을 감기 들게 해가지고 장모님을 고쳐드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와이퍼가 선을 들어버리는 겁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라고 여자들은 자기 친정만 돌보면 되잖아요. 그리고 예수님이 3년 공생애 중간에 물어보잖아요. 애들아! 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마태복음16장16절에 유명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천국열쇠를 너에게 줄게 하면서 높이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머지 사람들은 질투가 나면서 어떻게 성질도 별로인 사람인데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그래도 다른 제자들은 교육 받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별로인 북쪽 갈릴리 지방에 형편없는 사람을 왜 올리십니까?
그리고는 베드로를 데리고 변화 산에 올라가서는 한 바탕 영적세계를 구경하고 내려 왔잖아요. 이런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성질도 급했고 교육수준도 별로 안 좋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별로 안 좋았고 사회적으로 저변인물이었고 이런 베드로가 조금 있으면 높아지고 감투를 쓰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자질이 안 된 사람을 높은 자리에 앉혀 놓으면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코를 낮추는 겁니다.
코를 낮출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가 예수님을 부인하도록 부인 하는데 생각만 하면 밤잠 못 자게끔 후회하도록 이렇게 만들어 놓는 겁니다.
그러니까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거다 하니까 베드로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37절에 뭐라고 대답하는 줄 아십니까? 내가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이렇게 또 사기를 치는 겁니다. 부인 절대로 안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내가 목숨까지 받치겠습니다. 그러는 겁니다. 이 말 해놓고 얼마 후 무슨 사건이 일어났습니까? 예수님을 부인하고 십자가사건 때 멀리서 구경만 하다가 안 되겠다고 보따리 싸고는 자기 고향으로 갔잖아요. 예수님이 부활한 사건까지도 아마 알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아예 고향으로 도망 가버렸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셨잖아요. 고향에서 나타나가지고 유명한 요한복음21장15절부터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면서 세 번 물어 보잖아요 사랑하느냐고 물어 볼 때 아가페사랑이 아닙니다. 나를 필레오 사랑하느냐 나를 그러니까 예수님이 너 나를 아가페 사랑하느냐 이렇게 물어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의 대답이 필레오 사랑합니다. 라고 대답하는 겁니다.
맞는 말입니다 양심은 있습니다. 두 번째 또 아가페 사랑하느냐 그러니까 필레오 사랑합니다. 라고 대답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세 번째로 필레오 사랑하느냐 그러니까 예 필레오 사랑합니다. 아주 완전히 코가 내려 간 겁니다. 이런데다가 주님께서 너 지금 조금 있으면 띠를 띠고는 나를 위해서 종이 될 거라는 겁니다. 이래가지고 이분이 어느 정도 만져진 겁니다.
오순절 다락방 사건이 있은 후에 사람이 완전히 변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변했습니다. 많이 낮아진 겁니다. 그런데 이분이 예루살렘교회에서 지도자가 되고 이러면서 그 성품이 그대로 있는 겁니다. 그래서 실수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특히 바울 같은 사람이 주님을 만나서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이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는데도 바울을 옛날에 바울에 대한 감정이 있는 겁니다.
바울이 자기네들을 핍박했잖아요. 그 감정을 용서를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을 우습게 알고 만나지도 않으려고 그러고 그리고는 나는 어느 정도 성공한 목회자다 너 내 앞에 오지도 말라 이렇게 교만을 떠는 겁니다. 나중에 바울이 1차 여행을 끝내고서 복음을 전했는데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막 욕을 하는 겁니다. 은혜의 복음만 전하지 율법의 복음은 안 전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행전15장에서 바울이 밑으로 내려와서 이분들에게 저 잘못했습니다. 이러니까 바울에게 막 꾸중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나중에 갈라디아서에서 그러는 겁니다. 그 양반이 나를 꾸중하지만 내가 그 양반보다 더 높다면서 영적지도자들이 서로 붙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바울도 아직 덜 깨어졌고 베드로도 덜 깨어진 사람입니다
이런 가운데서 서로서로가 이분들도 가룟 유다를 만난 거나 똑 같습니다.
훈련을 받는 겁니다. 훈련을 받고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중에 베드로가 베드로 전서 후서를 쓰면서 자기가 주님께 가기 직전이거든요 그 안에 내용을 보면 훈련 받아서 아주 말랑말랑하게 된 그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면 왜 이분이 이렇게 예수님을 부인하도록 만들었습니까? 겸손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결론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3장의 구조는 예수님 발 씻기와 가룟 유다의 배반, 예언, 새 계명,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하는 겁니다.
이 내용을 보면 발 씻기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한 겁니다. 예수님은 구원주시다 너희들은 목욕을 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너희들이 발을 자꾸 씻어야 되는 것은 이제는 성화되어야 된다는 잡음 죄를 매일 씻어내라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새 계명을 부어주시는 겁니다. 너희들 서로 사랑해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은 내 제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가룟 유다가 배반하게 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나약한 부분을 보완시켜주기 위해서입니다. 창세기3장15절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룟 유다가 없으면 예수님도 혹시 오락가락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붙잡아 주시겠죠?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까 그렇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도 이렇게 보완책이 필요하듯이 하나님의 제자들인 우리는 말할 것도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화를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하도록 실수하도록 부끄럽게 하도록 함으로써 갈등을 가지면서 겸손하게 하는 겁니다. 오늘 13장의 내용을 가지고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메시지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발 씻기를 통해서 베드로의 세 번 부인사건 이런 걸 우리가 다 보면서 하나의 정보로만 듣지 마시고 이걸 자꾸 묵상하는 겁니다.
이렇게 묵상하면서 13장에서 가르쳐주시는 예수님의정체성문제 가룟 유다를 허락하신 목적 세 번 베드로가 부인 하게하는 목적 이것이 다 이렇게 숨겨져 있구나? 이것을 이렇게 보시면서 이것이 나의 것이 되려면 자꾸 묵상하셔야 합니다. 묵상하기 전에 무엇을 해야 되느냐면 공부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공부하는 겁니다. 이 내용을 우리가 의미를 아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을 외우시고 묵상하셔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이런 부분들을 묵상하는 겁니다. 저도 이렇게 묵상을 하면서, 하면서 저에게 주님이 다 주신 것이기 때문에 제가 여러분들에게 뱉어내는 겁니다. 그래서 같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하나님이 참으로 대단하신 하나님이시구나. 참 대단하신 분이시구나 창세기3장15절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분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이렇게 하시는구나. 다윗에게 스가랴에게 예레미야에게 다 말씀하시고 이런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고 이걸 그대로 이루시면서 또 베드로를 쓰시려고 베드로를 코를 낮추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그렇게 하시고 이 모든 자세한 내용들을 보면 아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주님이 앞으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실까 기대되는 겁니다. 어려울 때마다 이분들이 예수님이 이런 경험을 한 걸 보시면서 묵상하시면서 아하! 주님이 나를 승리하게 하시겠구나? 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것을 항상 묵상하시면서 주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하늘의 상이 큼이라 이런 모든 제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요한복음13장 이 말씀이 저희들을 떠나지 않도록 한분 한분에게 깊이 임하게 해 주시옵고 이 말씀 속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아버지의 뜻이 우리들의 삶 속에서 적용되므로 우리가 하루하루 사는 삶이 주 안에서 새 힘을 받는 삶이 말씀을 통해서 일어나게 하셔서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더욱 겸손해지고 아버지하나님의 뜻 안에서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또 우리 주변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사랑하고 그러므로 해서 더욱 주님의 뜻을 이루는 귀한 도구가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NWdhBkjOVx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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