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

22강. 요한복음14장16절-17절, 낙원, 길, 기도 보혜사

변명섭 2021. 9. 10. 08:57

요한복음강해 22강. 낙원, 길, 기도, 보혜사(요14:16-17)   2010년9월5일 말씀
오늘은 14장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또 16절과 17절입니다.
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헬라어로 알로스(ALOS)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지난 시간에 13장에서 예수님께서 식사 중에 새 계명을 주시겠다고 말씀 하셨잖아요. 그럴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13장 마지막 부분33절과 1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33절에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이 때 작은 자들아 그러는 겁니다. 이때 영적 단계 중에 하나인데 원어로 파이디온(PAIDION)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네피오스(NEOIOS)라고 말하지 않고 파이디온(PAIDION)도 아니고 그다음에 테크니온(TEKNION)이라고 그랬습니다. 작은 자를 테크니온(TEKNION)이라고 말한 겁니다. 이 정도 되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테크니온(TEKNION)수준은 되었던 모양입니다 성만찬할 때 쯤 되어서 그분들에게 부르기를 작은 자들아 이렇게 부르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에게 언제 했냐요? 우리가 항상 언제 하셨냐요? 라면서 질문을 던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요한복음8장21절에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유대인들 보고 하는 말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지금 어디 가시는지 아세요?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조금 있으면 알게 됩니다. 똑같이 다시 13장으로 넘어가서 36절에 이 말씀을 받아가지고 베드로가 반응하는 장면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하고 나니까 제자들 가운데서 흥분 끼가 생긴 겁니다. 이게 어떻게 이렇게 된 건가? 예수님이 지금 육체적으로 떠나신다는 말씀인데 하면서 걱정을 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분들이 어떤 걱정을 하느냐면 이분을 3년 동안 그래도 열심히 따라 다녔는데 우리생각에는 이분이 메시아로 생각하기도 하고 또는 어떤 때는 선지자로 또는 그리스도로 생각하기도 하고 마태복음16장16절에서는 베드로가 고백을 어떻게 했습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말씀하기도하고 요한복음1장부터 주욱 13장까지 보면 예수님이 기적도 일으키시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도 하시고 이렇게 다 하셨는데 그래서 이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이런 유명한 분을 따라다니면 출세도 할 것 같고 또 이분을 통해서 우리 민족이 지금 로마에 붙잡혀 있는데 해방도 될 수 있을 것 같고 여러 가지로 기대들을 많이 하고서 이분을 따라 다녔는데 이분이 갑자기 하시는 말씀이 떠나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당황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때까지 예수님을 저세상사람이라고 생각은 조금 했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고작해야 이 세상수준에서 예수님을 모시고 살다가 이 세상을 언젠가는 떠날 걸로 생각한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저세상 분으로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던 겁니다. 
우리 크리스천들도 그의 비슷합니다. 예수님을 섬기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이 세상에 관심이 더 많은 겁니다. 이 세상에 모든 필요한 것들을 채우려고 그러고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려고 그러고 이 세상, 이 세상 때문에 교회에 나오지 실은 저세상 생각은 별로 안하잖아요. 우리는 저세상 사람들인데도 제자들과 똑같이 그러니까 우리수준이 그저 테크니온(TEKNION)수준이라고 우리 스스로를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어떤 행복을 위해서 나의 어떤 소원을 위해서 교회에 나오는 겁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이 14장을 전개하기 시작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제는 수준을 한 단계 높혀 가지고 예수님이 이분들이 사고를 가진 이 수준에다가 한 수준을 높혀서 이분이 14장에서 4가지 이슈를 설명하는 겁니다. 첫째가 뭐냐면 낙원입니다 낙원에 관한 낙원 론을 설명하시는 겁니다. 뭐냐면 너희들은 고아가 아니다 이 세상에 살다가 너희들은 나처럼 낙원에 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낙원에 가서 너희들도 오도록 다 준비해놓겠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이분이 그러는 겁니다. 낙원에 가는데 조건이 있단다. 뭐냐면 낙원에 가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이 나란다. 그러는 겁니다. 나를 통해야지만 낙원에 간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낙원에 가는 사람들은 신분이 바뀌는데 어떻게 바뀌느냐면 천국백성이 된다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천국백성이 된 사람은 법적으로 천국백성이 된 사람만이 아니고 그 순간부터 뭘 하느냐면 너희들은 기도를 하게 된단다. 그러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백성은 영의 호흡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예수님이 그러는 겁니다. 내가 너희들과 떨어져 있지만 이제부터는 천국호흡을 하면서 삼위하나님과 인격적 교제를 하게 된단다.
그러는 겁니다. 이 말씀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기도에 관한 이야기를 주욱 하십니다. 그런데 기도라는 것은 맹맹한 우리의 정신으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기도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면 기도를 하기 위해서 보혜사 돕는 성령님을 너희들에게 보내 주겠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보혜사성령님이 주시는 기도로써 너희들이 영적호흡을 하게 되면 삼위하나님이 영광을 받게 된단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컨대 창조목적이 이제는 성취된단다.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을 통해서 그러면 삼위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 받는데 그것뿐만 아니라 너희들도 제자들도 이렇게 테크니온(TEKNION)수준에서 올라간 제자들도 기쁨이 있고 소망이 있게 된단다. 이 세상에서 모든 어려움들이 기쁨과 소망으로 변하게 된단다. 그러는 겁니다. 이 말씀이 14장에 구조입니다
그러니까 14장은 어떤 장입니까? 이분들에게 기쁨과 소망을 주기 위하여 약속한 장입니다 그래서 14장의 구조를 1절부터4절은 낙원 론입니다. 
그리고 5절6절이 길 론입니다. 세 번째 7절부터14절이 기도 론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로 15절에서 31절이 보혜사 론입니다 그래서 14장은 구조가 이렇게 4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첫째 구조인 낙원 론을 잠깐 보겠습니다. 1절부터4절입니다. 낙원 론을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이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 근심하지 말라 왜냐면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는 겁니다. 내 아버지 집에 그래서 낙원을 아버지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에 가면 집이 많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천국에 다녀온 사람들 낙원에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큰 집도 있고 작은 집도 있고 그렇다 그러잖아요. 천국이 낙원이 계급사회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우리도 큰 집에서 살아야겠습니다. 
지난번에 제가 고린도전서 강해를 하면서 분명히 말했습니다.
저 나라에 가면 큰 집도 있고 작은 집도 있고 그런 게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러는 겁니다.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집을 예비하려 간다는 겁니다. 이분들이 나중에 이것을 믿었기 때문에 순교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이분이 그러시는 겁니다. 내가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데리고 갈 터인데 다시 온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어떤 분들은 재림 때라고 말씀하실 수 있잖아요. 제 생각은 재림 때를 말씀하시는 것은 너무 큰 그림 같습니다. 다시 오신다 그러면 이분이 승천하시고는 이분 대신 누가 왔습니까? 성령님이 다시 오셨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지상사명을 주시면서 마태복음28장20절에 뭐라고 그랬습니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육신으로 우리와 함께 한 게 아니고 영으로 오셔서 함께 하시는 겁니다. 예전에는 육신으로 함께 하셨는데 그러니까 예수님의 영이 성령님입니다 그래서 성서에서는 예수님의 영을 여러 가지로 표현을 합니다. 사도행전16장7절에서는 예수님의 영이라고 그랬습니다.
또는 그리스도의 영이라고도 표현 했습니다 로마서8장9절에 또는 베드로전서1장11절에서 또는 예수그리스도의 영이라고도 표현했습니다. 
빌립보서1장19절에 또는 아들의 영 갈라디아서4장6절에서 그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버지의 영이라고도 표현했습니다. 아버지의 영 마태복음16장17절에 또는 마태복음10장20절에 또는 로마서8장11절에 또는 성령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도행전16장6절에 누가복음11장13절에 또는 이사야서63장11절에 또는 하나님의 영 이렇게도 표현 했습니다. 로마서8장9절에 고린도전서3장16절에 또는 하나님의 성령이라고도 표현했습니다.
에베소서4장30절에 이렇게 다양하게 성령님을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참고로 하시고 성서에서는 낙원이라는 이름이 3가지로 나옵니다. 낙원이라는 이름이 3층천  바울이 올라갔다온 고린도후서12장2절과4절에 또는 낙원이라 그래서 누가복음23장43절과 계시록2장7절에 또는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집이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14장2절입니다. 
낙원은 어떤 사람이 가는 곳입니까? 길 되시는 예수님의정체성을 믿는 자들이 가잖아요. 그래서 이걸 고백하는 사람이 예를 들면 누굽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옆에 같이 십자가에 달린 강도입니다 
누가복음23장43절에 예수님의정체성을 이분이 깨달은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너는 오늘 나와 낙원에 함께 있으리라 그랬습니다. 
낙원에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복잡한 조건이 없습니다. 
예수님의정체성 길 되시는 분만 그냥 믿으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길이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죽으면 어디로 갑니까? 낙원에 가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3층천으로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원은 새 하늘과 새 땅과 같습니까? 다릅니까? 다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떤 땅입니까? 나중에 천년왕국 끝나고 심판이 있은 후에 하나님이 2층천에 수많은 별들이 있잖아요. 2층천까지도 완전히 낙원 화시킨 겁니다. 그러니까 엄청난 사이즈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나라 또는 천국 또는 하늘나라 이렇게 표현한 겁니다. 그러니까 영원한 더 큰 오리지널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시리라 하실 때 창세기1장1절에서 그 당시 그때의 오리지널입니다 그런데 2층천은 사탄이 어둡게 파괴해버렸잖아요 2층천을 그래서 나중에 새롭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낙원은 2층천은 포함되었습니까? 
안 되었습니까? 포함이 안 된 겁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안 믿는 비신자는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어디로 갑니까? 음부에 갑니다. 그런데 신자들도 죽으면 천국이라는 말을 쓰지 말고 낙원으로 가는데 우리의 육이 갑니까?
아닙니다. 육은 그대로 이 땅에 머물면서 나중에 흙이 되어 버리고 그다음에 혼과 영이 낙원으로 올라가는 겁니다. 혼과 영이 똑같이 비신자가 죽으면 육은 이 땅에 머물려버리고 그분들의 혼과 영이 어디로 갑니까? 
음부에 간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성서에는 음부를 적어도 다섯 가지로 표현합니다. 같은 내용인데 우리가 알다시피 음부를 헬라어로 하데스(Hades)라고 표현한 게 있습니다. 그것은 누가복음16장23절에서 하데스(Hades)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하데스(Hades)라는 표현은 뭐냐면 누가복음16장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이때 음부를 이야기했습니다. 
두 번째는 주로 계시록에 나오는 단어들인데 무저갱이라고 그랬습니다.
밑바닥이 없는 갱 영어로 더 바탐레스 비트(  )계시록9장1절과 20장1절에 또는 구약에서 나오는 단어인데 소올(Soul)이라고 이것은 헬라어가 아니고 히브리어입니다 구약에서 소올(Soul)이라고 그래가지고 창세기37장25절 민수기16장30절에서33절 시편139편8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구약에서 요나가 고래 배속에 들어갔다고 그랬잖아요. 요나서2장2절에 그것을 한국말로 뭐라고 번역했느냐면 스올(Sheol)이라고 번역해놓았습니다. 스올(Sheol)이라는 것이 음부와 같다고 생각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계시록20장7절에서는 이것을 옥(prison)이라고 그랬습니다. 
이 모든 이름들이 비신자의 혼과 영이 가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학설이 있었습니다. 음부의 위치학설입니다 음부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면 두 가지가 있다고 그랬습니다. 하나는 2층천 어디에 있다고 보는 학설이 있고 그렇게 보는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또 어디에 있다고 그랬습니까? 지구의 핵에 있다 지구의 뚜께가 핵에서부터 약7000km라고 그랬습니다. 위의 4000km까지는 그래도 흙이 잇는데 나머지3000km는 라바(lave)로 그러니까 용암으로 되어 있다는 겁니다. 온도가 얼마라고 그랬습니까?
약6000-6200도라고 그랬습니다. 뜨거운 그곳을 음부로 보는 학설이 많습니다. 저도 그쪽으로 제 생각이 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음부인데도 두 가지 방이 있다는 학설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서어디를 봐야 합니까?
나사로의 부자의 비유를 보셔야 됩니다. 그게 누가복음16장19절에서31절입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그러면서 22절에 보면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면 두 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의 품과 음부가 있는데 여기 보면 음부에 누가 들어갔습니까? 부자가 들어간 겁니다. 일반 비유대인들로 보시면 됩니다.
그다음에 아브라함의 품은 유대인들이 들어간 곳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욱 내용을 보면 서로가 마주보고 목소리도 들리고 이러는데 신학자들 중에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품은 유대인들이 들어가는 곳이라는 겁니다. 왜냐면 유대인들은 언젠가는 구원받는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면 로마서11장25절에서 26절을 보면 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임시로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에 죽으시고 예수님이 음부에 내려가셨다는 이야기가 성경어디에 나옵니까? 
베드로전서3장18절19절에 예수님이 음부에도 들어가신 겁니다. 예수님이 그곳에 왜 들어가셨습니까. 예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이십니다. 음부도 그분의 영토입니다 그분이 관리하는 곳입니다 이분이 들어가 가지고 전도했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구약 때 이방인들이나 음부와 아브라함의 품까지 다 내려가신 겁니다. 내려가서 애들아!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죽었다 소위 칼빈주의에 의하면 미리 정해진 사람들을 그때 다 손들고 예수님 감사합니다. 
하고 예수님을 고백하고 이분들이 어디로 갔겠습니까? 낙원으로 갔을 것이라고 우리가 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유명한 인사들이 다 그렇게 갔을 겁니다. 그런데 또 의문점이 하나 생기는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변화산사건도 이렇게 보면 거기에 올라가 보니까 구약의 유명 인사들이 낙원에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런 분들은 특채를 하지 않으셨나.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특채를 해가지고 낙원에 데리고 가지 않았을까? 라는 그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하지 못할 게 뭐가 있습니까? 자꾸 우리의 논리가지고 이야기하면 이해가 안 되지만 이분은 전지전능 무소부재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어째든 이렇게 한 다음에 천년왕국이 끝나고 심판이 끝난 다음에 둘째 사망이 있겠다는 겁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분들을 음부에서 다 끄집어 내어가지고 어디로 데리고 가느냐면 지옥으로 보내겠다는 겁니다. 지옥은 영원한 쓰레기장입니다 그러니까 음부와 지옥은 다릅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심판대에 올라와가지고 보니까 예수님의 피가 그분들에게 없으니까 그대로 지옥으로 가는데 성서에서는 지옥을 여러 가지로 표현을 했습니다. 지옥을 헬라어로  게헨나(Gehenna)라 그럽니다. 
쓰레기장이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10장28절 마가복음9장43절.48절 또는 계시록에서는 지옥을 불  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음부에서 불 못으로 옮겨간다고 그랬습니다. 계시록20장14절에 그러고 불 못을 불과 유황 못 계시록20장10절에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계시록21장8절에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이분들이 음부까지 있었던 것은 첫째 육의 사망이지만 이제 이분들이 영원한 사망까지 가는 것을 요한은 계시록에서 둘째 사망이라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내용을 저는 자세히 설명했지만 제자들에게 먼저 한 겁니다. 제자들에게 낙원 론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두 번째로 길 론입니다
길 론을 이야기하실 때 꼭 하나님께서는 우리예수님께서는 어떤 사건을 어떤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길 론을 설명하시려고 어떤 사람을 사용하였냐면 도마를 사용했습니다. 도마를 사용하셔가지고 하시는 말씀이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도록 성령님이 도마 입을 열어가지고 질문하게 하시는 겁니다. 제자들이 다 듣고 있는 겁니다. 도마라는 이름은 신약에서 보면 영어로 토마스 헬라어도 똑같습니다. 그것을 헬라어로 디두모(didymus)라고도 써놓았습니다. 
이 뜻은 뭐냐면 쌍둥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도마하면 일반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생각합니까? 의심 많은 사람으로 우리가 표현하잖아요.
그런데 요한복음11장16절에 보면 나사로의 죽음에 관한 장인데 이때 내용을 앞뒤로 보면 이 사람이 헌신자로 나타납니다. 도마라는 사람이 나사로가 이렇게 죽은 것을 보더니 예수님이 그랬거든요 나사로가 죽은 것이 아니고 잠들었단다. 조금 있으면 깨어날 거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도마가 뭐라고 그랬냐면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우리도 죽으려 갑시다. 예수님이 우리를 깨워줄 테니 이런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분이 도마인데 도마를 통해서 지금 길 론에 대해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도마가 이렇게 질문을 했잖아요. 그 길을 어찌 알겠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이 잡아가지고 길 론을 설명하시는 겁니다. 뭐냐면 우리가 잘 아는 14장6절에 예수님이 그럽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아버지집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버지의 집이 어디입니까? 낙원입니다
낙원이 또 어디입니까? 3층천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면 이 말이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이 세 개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길이 매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내가 진리와 생명으로 너희가 아버지께로 갈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진리와 생명인데 변하지 않는 분이고 생명을 주는 분인데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이 낙원으로 가야 되는데 낙원으로 가게 하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이 나라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 보면 I am the way라고 그랬거든요 예수님이 직접 I am 내가 누구다 정체성을 직설적으로 본인이 말하는 게 요한복음에 일곱 번 있습니다. 나머지는 간접적으로 말씀하셨는데 이분이 직설적으로 일곱 이라는 숫자는 예수님의 완전 숫자입니다. I am 그러면서 뭐냐면 I am the 생명의 떡 그러는 겁니다. 그리고 세상의 빛이다 I am the light of world 그러는 겁니다. 8장12절에서9장5절에 양의 문이다 the sheep gate 그러니까 유일한 한분이라는 겁니다. 선한 목자다 I am the Good Shepherd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부활 생명이다 I am the resurrection life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11장25절에서 그다음에 여섯 번째가 오늘 본문입니다 
"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그리고 일곱 번째가 나는 참 포도나무다 I am the true vine 15장1절과 5절에 그러니까 낙원으로 갈려면 예수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종교다원주의는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종교다원주의를 우리가 이야기할 때 이 말씀을 꼭 해야 되는 겁니다. 요한복음14장6절 말씀입니다.
세 번째로 기도 론을 예수님이 가르쳐주었습니다. 기도 론을 가르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왜냐면 이제는 예수님이 이 세상을 육체적으로 떠나게 되어 있는 겁니다. 육체적으로 떠나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님과 인격적인 대화를 할 길이 없어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격적으로 대화를 해야 되는데 예수님은 삼위하나님께서는 항상 삼위하나님 중에서 가장 높으신 분을 아버지하나님으로 항상 이야기하십니다. 그런데 실제로 가장 높으신 분이 아닙니다.
아닌데도 항상 너희들이 삼위하나님께 기도를 할 때 아버지에게 기도하라는 겁니다. 아버지에게 이렇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또 한 유명 인사를 불려서 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하도록 하는 게 빌립입니다 
8절에 보면 빌립이 질문하는 겁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세요.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 족하겠나이다. 꼭 우리 같습니다. 빌립이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자기와 아버지와의 관계성을 설명을 하십니다.
예수님과 아버지와의 관계성입니다 첫째 예수님이 그러시는 겁니다.
아버지와 예수님과 자신은 하나다 이렇게 말합니다. 10장30절에서 그때 하나를 원어로 뭐라고 그랬습니까? 헨(hen)이라고 그랬습니다. 헨(hen)은 무슨 뜻입니까? 헨(hen)은 동격이고 동질이고 그다음에 100% 같다는 소리입니다 그럴 때 하나입니다 본질적으로 같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늘 본문에서 14장11절에서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두 번째 관계성 중에서 예수님이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겁니다. 같다는 의미가 그러니까 만약에 아버지가 더 높으시면 이런 말하면 큰일 납니다. 자기가 아버지 안에 있다고 말하고 끝내어야 되는데 그러는 겁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도 내 안에 계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상당히 당당한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여기서 깜짝 놀라는 겁니다. 어떻게 33살 잡수신 저분이 자기네가 생각하는 엄청난 창조주하나님을 보고 이렇게 말하느냐 이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보고 당신이 신성 모독했다고 죽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관계성은 예수님을 알면 아버지도 너희들이 알게 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나를 알면 아버지도 알게 된다는 겁니다. 8장19절과 14장7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로 이분이 그러시는 겁니다. 빌립아! 너희가 나를 봤으면 예수님을 봤으면 아버지를 본 것이라는 겁니다. 14장9절에 여기에 보면 우리한국말로 이렇게 되어있지만 영어로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면 현재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욱 지난3년 동안 너희들이 나를 봐왔다는 겁니다. 현재 완료라는 것은 지금까지 보고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3년 동안 너희들이 나를 본 것은 아버지를 본거나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인간은 아버지를 볼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요한복음1장18절에 우리피조물은 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를 보려면 그 아버지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그 안에 함께 계시는 아들을 보면 아버지를 보는 거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이 관계성을 믿는 자에게 엄청난 해택을 줍니다. 이 관계성을 내 머리로 믿으려고 하지 말고 보혜사성령님이 나에게 오시면 이 관계성을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래서 보혜사입니다 나를 도와주는 분이십니다 첫째 이 관계성에게 주는 해택이 첫째가 뭐냐면 그동안 예수님이 3년 동안 하신 일들 기적들을 보고 깨닫게 됩니다. 이 관계성을 믿으면 12절에 그랬습니다. 왜냐면 보혜사성령님이 와서 도와주기 때문에 그럽니다. 그런데 두 번째 이렇게 보혜사성령님이 믿게끔 와서 도와주면 너희들은 제자들은 예수님 보다 더 큰일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12절에 그래서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너희들이 내가 가면 너희들에게 보혜사를 보내 줄 텐데 그때부터는 너희들이 나보다도 더 큰 일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육신으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도와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겁니다. 이제 영으로 오시면 우리가 예수님이 육신으로 왔을 때보다 더 큰일들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너희들이 이런 해택을 받으라고 내가 너희들에게 보혜사성령님을 달라고 기도를 내가 할 터인데 그렇게 되면 아버지께서 너희들에게 보혜사성령님을 보내줄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서 보시면 우리에게 기도를 어떻게 하는가를 기도의 원칙을 가르쳐주십니다. 7절부터14절에 
그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이걸 잘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보혜사성령님이 나에게 오게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기도를 할 때 대상이 누구냐면 아버지께 기도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주기도문에서 마태복음6장9절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기도하라는 겁니다. 요한복음16장23절에 우리가 다음다음시간에 할건데 16장23절에도 예수님께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기도할 때 아버지께 기도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꼭 기도하실 때 아버지께 기도하십니다. 예수님도 그래서 17장에서 예수님이 이 모본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하면 지금 어느 하늘에 계십니까? 3층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향해서 기도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됩니까? 잘 안되잖아요. 그냥 입으로만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여 그 3층천에 계신 하나님아버지를 바라보아야 되는데 내 영이 올라가서 보라보면서 기도하는 것을 무슨 기도라 그랬습니까? 보좌의 기도라 그랬습니다. 보좌의 기도를 우리가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기도한다고 할 때 눈을 감으면 나의 혼과 영이 어디로 올라가야 됩니까? 3층천으로 올라가야 됩니다. 그런데 3층천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가 어떻게 대강 짐작을 합니까? 요한이 올라가서 경험했던 곳이 어디입니까?
계시록4장5장입니다 그러니까 그 말씀을 주욱 묵상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이사야도 봤잖아요. 이사야서6장부터7장8장까지 보면 이사야가 경험한 겁니다. 에스겔이 경험한 에스겔서에 보면 주욱 나옵니다. 
그분들이 올라간 3층천을 내가 그리면서 소원하면서 아버지 하나님 할 때 쫘악 보면서 이것이 어떤 때는 1초 만에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10초 어떤 사람은 1시간이 되어도 안 되는 분이 있습니다. 이것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음이 순수해야 됩니다. 마태복음5장8절입니다. 마음이 순수한 자가 이 기도가 잘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보좌의 기도를 하는데 누구 앞에 이야기합니까? 아버지 앞에 하는 겁니다. 그러면 아버지 안에 하는데 우리는 아버지를 보지도 못하는데 아버지 앞에 할 때는 그 옆에 누가 계십니까?
성자가 계시고 성령님이 거기서 운행하시는 겁니다. 삼위하나님께 기도하라는 소리나 똑같은 겁니다. 그런데 아버지께 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아버지 하나님! 하면 누가 듣습니까? 아버지도 들으시고 성자님도 들으시고 성령님도 동시에 들으십니다. 그런데 두 번째 조건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기도할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겁니다. 요한복음14장13절 16장23절14절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말은 뭐냐면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이 백여 가지 있는 것을 우리가 배웠잖아요. 그 모든 게 뭐냐면 예수님의 인격입니다 그러니까 막연히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니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백여 가지이름 그분의 사랑 은혜 자비 이것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우리가 부르는 겁니다. 그런데 세 번째로 예수님의 이름을 불려서 깊은 영성을 가지고 기도를 가능케 하시는 분이 누굽니까? 이분이 보혜사성령님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받은 퓨뉴마(Pneuma)성령님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내 하트(heart)속에 들어와서 나는 이미 구원 받는 똑같은 성령님 프뉴마성령님이나 파라 크레토스(Para Cletos)성령님이나 똑같은 성령님이십니다. 같은 성령님인데 기능적으로 차이가 있는 겁니다. 이미 내 속에 퓨뉴마(Pneuma)성령님이 계십니다. 생수처럼 안에서 움직인다고 그러잖아요.
생수 영인 퓨뉴마(Pneuma)성령님이 계신데 퓨뉴마(Pneuma)성령님과 내가 대화가 필요합니다. 퓨뉴마(Pneuma)성령님과 대화하는 사람은 일반적인 크리스천은 대화를 안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대화를 합니까? 
마태복음5장3절에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그랬습니다. 그때 심령이 뭐냐면 우리하트(heart)입니다 하트(heart)가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그랬습니다. 이미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내 속에 있는 퓨뉴마(Pneuma)성령님과 대화하는 사람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그러니까 내 속에 계신 성령님과 내가 대화하는 겁니다. 내가 왜 이렇습니까? 
내가 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주님과 대화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 성령님이 나를 위해서 중보 해준다고 그랬습니다. 
로마서8장26절에 내가 빌 바를 모르는 것까지도 탄식하면서 나를 위해서 중보 해주신다는 겁니다. 로마서8장26절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그다음에 보너스를 주는 게 있습니다. 보너스가 뭐냐면 우리가 마음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두 번째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제 애통하는 겁니다. 나의 쓴 뿌리를 제거하기위해서 나의 약한 부분들을 놓고서 애통하는 겁니다. 애통하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 그랬습니다. 그 위로 자가 누구냐면 보혜사성령님인 겁니다.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가 헬퍼(helper)또는 위로자 컴퍼트(comfort)또는 변호자(an advocate)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같은 성령님인데 내 속네만 계시지 않고 지금 바깥에도 나와 함께 계시잖아요. 여기도 계시잖아요.
우주에도 다 계시잖아요. 보혜사성령님이 내가 애통을 하면 바깥에 계신 성령님이 내 속에 강하게 들어오신다는 겁니다. 구원을 위해서 계신 성령님인데 바깥에서 이 성령님이 어떤 기능을 하느냐면 같은 성령님이신데 불같이 오시기도 하고 비둘기 같이 오시기도 하고 또 바람같이 오시기도 하고 또 뭐로 옵니까? 빛같이 오시기도 하고 이렇게 해가지고 엑스트라(extra) 공격을 하는 겁니다. 나에게 같은 성령님이신데 그래서 보혜사라는 말을 쓰는 겁니다. 파라 크레토스(Para Cletos), 파라(Para)라는 말은 바깥에 계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크레토스(Cletos)는 내가 애통을 해서 불려드리는 겁니다.
모셔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파라(Para)라는 말은 바깥에서 운행하시는 분이라는 뜻이고 크레토스(Cletos)는 내가 이분을 애통하면서 불려드려야 됩니다. 나의 인격의 변화를 위해서 이분을 불려드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찬양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불려드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파라 크레토스(Para Cletos)를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보세요. 열두제자들이 퓨뉴마(Pneuma)성령님은 언제 받았습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시는 그 순간에 이분들이 부활하시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잖아요. 그래서 40일 동안 이분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잖아요.
이미 그때 이분들은 퓨뉴마(Pneuma)성령님 구원은 이미 받은 겁니다.
구원받은 이들에게 주님께서는 너희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약속한 파라 크레토스(Para Cletos)를 받으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며칠 동안 애통했습니까? 10일 동안 어디서 애통했습니까? 마가의 다락방에서 애통해잖아요. 그러니까 파라 크레토스(Para Cletos)성령님이 저들에게 임한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14장16절 파라 크레토스(Para Cletos)성령님이라 그랬습니다. 이 성령님은 오순절 다락방에 내려오실 보혜사 성령님을 칭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크리스천들 모두다 퓨뉴마(퓨뉴마(Pneuma)성령님Pneuma)성령님을 다 받았기 때문에 구원은 받았기 때문인데 차이가 나는 게 뭐냐면 내가 마음이 가난해지고 이 안에 있는 쓴 뿌리들이 제거되면서 나의 인격이 변화를 위해서 파라 크레토스(Para Cletos)성령님을 갈급 하는 크리스천이나 아니냐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가 생기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격의 차이가 생기는 겁니다. 첫 번째 기도는 아버지께 하라 두 번째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라 세 번째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깊은 기도를 할 수 있는 가능케 하시는 분이 누구냐면 보혜사성령님이라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보혜사성령님인데 우리기도가 더불기도라는 겁니다. 내 속에 있는 퓨뉴마(Pneuma)성령님에게도 기도하고 또 바깥에 계신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불로 바람으로 빛으로 비둘기 같이 이렇게 그리고 이 속에 있는 성령님이 물같이 요한복음7장37절38절에 보면 생수가 내 뱃속에 흘려간다고 그랬습니다. 물같이 이렇게 하시는 분은 팔복에서 그다음에 무엇입니까? 
이렇게 하는 자는 온유한자가 된다고 그랬잖아요. 온유한 자가 되니까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온유한 자는 항상 주인의 말을 잘 듣는 사람입니다
이 부분에 정리가 되면 주인의 말에 순종잘 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하늘에서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많은 별들을 유업으로 받는다는 겁니다. 계급이 높아진다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되면 그다음에 오는 게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되는 겁니다. 의는 지금 말씀하시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에 주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배고파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배고파하고 목마른다는 것은 성령님에 생수에 목말라하고 그러니까 말씀을 더 먹기를 원하고 성령님의 세례를 더 받기를 원하고 이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게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하시는데 이렇게 하시는 사람에게 기도를 응답해주시는 겁니다. 기도응답자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게 오늘 본문14장13절14절에 뭐냐면 응답을 하시는데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내가 행하리라 그랬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면 직접 시행하시는 분은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이 말은 뭐냐면 예수님께서 아버지에게 보혜사를 보내서 보혜사가 와서 실제로 하시지만 예수님께서 어떤 때는 천사도 보내시고 예수님이 직접 명령하셔가지고 시행하시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가만히 계시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께서 시행을 직접 우리에게 오셔서 영으로 말씀도 해주시고 능력도 베풀어주시고 성령님이 하시는 것이 예수님이 하시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이렇게 해서 예수님이 실제로 시행하시겠다는 겁니다. 이렇게 하시면서 오늘 본문13절에서 예수님이 그러는 겁니다. 예수님이 시행하면 누가 영광 받느냐면 아버지께서 영광 받으신다는 겁니다. 목적이 뭐냐면 아버지께서 영광 받으시고 그다음에 예수님도 영광 받으시고 15장11절에 그랬습니다. 성령님도 영광 받으시고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창조목적으로 다시 우리가 돌아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삼위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겁니다. 이렇게 할 때 그러면 너희들에게 기쁨이 넘쳐난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어려움이 있지만 이 어려움이 나를 지배를 못하고 언젠가는 나는 낙원에 간다 이 세상은 빠이빠이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내 속에서 회개되고 그것이 내 눈에 보이고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어려움이 나를 지배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 속에서 기쁨이 나온다는 겁니다. 어려운 가운데서 기쁨이 나온다는 겁니다. 
이게 우리크리스천들이 가지는 특권인데 이것을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가르쳐주시는 겁니다. 이분들의 생활이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나중에 예수님이 가신다음에 순교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낙원을 봤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면 기도의 네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것을 쉽게 여러분들에게 알려 드리는데 이겁니다. 엑츠(ACTS_입니다. 사도행전 엑츠(ACTS)입니다 행위입니다. 
엑츠(ACTS)에서 기도의 네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A는 뭐냐면 아드레이션(Adoration)입니다 아드레이션(Adoration)은 내가 찬양하고 경배하고 흠모하는 이것을 아드레이션(Adoration)이라 그럽니다. 
두 번째가 뭐냐면 컨패션(Confession)으로 죄를 고백하고 나의 믿음을 고백하고 예수님의정체성을 고백하고 세 번째가 뭐냐면 땡스기빙(Thanksgiving)감사하는 겁니다. 네 번째 S는 뭐냐면 스리틱테이션(Solicitation)중보기도해주는 것, 남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스리틱테이션(Solicitation)이라 그럽니다.  아드레이션(Adoration), 컨패션(Confession),  땡스기빙(Thanksgiving)
스리틱테이션(Solicitation) 이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엑츠(ACTS)입니다
기도의 두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두 가지 모습이 뭐냐면 처음에 에베소서3장20절에 이것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고바울이 경험한 건데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라는 것은 우리들 속에 또는 우리들 바깥에 그러니까 (Pneuma)성령님과 파라 크레토스(Para Cletos)성령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시면 어떻게 되느냐면 우리가 입을 열어서 구하게 됩니다.
우리가 구하는 온갖 구하는 것이나 기도는 입을 열어서 말하는 것만이 아니고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그다음에 생각나게 하시는 겁니다. 
메디테이션(묵상, meditation)입니다. 메디테이션(묵상. meditation)이 더 깊은 기도입니다 그래서 입으로 말하는 기도와 그다음에 메디테이션(묵상, meditation)으로 성령님이 나를 지배하고 있어서 하루 종일 내가 예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메디테이션(묵상, meditation)하는 겁니다. 
이것이 기도인데 구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 순서가 어떤 게 먼저 입니까? 
구하는 것 입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메디테이션(묵상, meditation)은 깊은 마음의 기도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더 넘치도록 바울이 지금 에베소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 뭐라고 그랬습니까? 너희들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24시간 기도할 수 없잖아요 24시간을 이런 식으로 무엇을 하든지 주님과 대화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기도는 새벽에 새벽기도 열심히 해야 되고 막 소리 질러야 되고 뭘 해야 되고 이것은 어린아이 때 기도입니다. 24시간 기도하라는 겁니다. 걸어가면서 일하면서 설거지 하면서 공부하면서 끊임없이, 끊임없이 주님과 대화하는데 입으로 꼭 말을 해야지만 기도하는 줄 알잖아요. 그것도 기도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높은 수준은 무엇입니까? 메디테이션(묵상, meditation)입니다 자칫하면 우리가 나타나는 기도를 하다 보니까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한다고 마태복음6장에 나왔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우리 몸에 베여있기 때문에 우리는 보여 주는 스타일로 해야지만 기도하는 줄 아는 겁니다. 이제는 그 수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보혜사 론을 봅시다. 제가 보혜사 론을 웬만한 것은 다 이야기했는데 보혜사는 주님께서 14장16절에 다른 보혜사라고 그랬잖아요. 다른 보혜사라는 것은 영어로 어나드(another)인데 알 로스라 그래가지고 같은 질인데 모습이 다른 겁니다. 기능이 다른 겁니다. 그래서 같은 홀리 스피릿(holy spirit)인데 어나드 홀리 스피릿(another holy spirit)이라는 것은 똑같은데 기능적인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부르기를 파라 크레토스(Para Cletos)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래서 파라 크레토스(Para Cletos)가 제자들에게 올 텐데 파라 크레토스(Para Cletos)가 오시는데 퓨뉴마(Pneuma)성령님도 마찬가지고 같은 성령님이 오시는데 출처가 어디냐 입니다. 출처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본인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버지께 여쭙겠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께 여쭙겠다고 그랬는데 알고 보면 그게 아버지의 영입니까? 그런데 아버지의 영인데 또 성서에서는 예수님의 영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같은 삼위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겸손하셔서 항상 아버지께 여쭙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께 오시는데 여쭐 때 누구이름으로 준다는 겁니까? 
예수님이 내 이름으로 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피조물들은 누굴 통해야 됩니까? 우리는 꼭 예수님을 통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안 계시면 우리와 아버지와 연계가 안 되는 겁니다.
중간 연계를 시켜주는 피조물과 창조주와 연계되는 것은 창조주의 한분이 창조주의 한 위가 피조물이 되어서 우리와 만나주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려오신 게 아닙니까? 그래서 이것 때문에 필리오케 (Filioque)라는 말 들었죠  필리오케(Filioque)라는 말이 라틴말인데 앤드 프롬 더 선(and from the son)이라는 소리입니다 이것가지고 로마가톨릭하고 그리스정교회하고 싸움이 붙은 겁니다. 로마가톨릭에서는 뭐냐면 성령님이 아버지께로부터 오는데 아들을 통해서 오신다는 겁니다. 
그것이 필리오케(Filioque)아들을 통해서 그래서 우리개신교들도 다 그걸 믿습니다. 그런데 그리스정교회와 다른 정교회들은 애굽 정교회 러시아정교회 에티오피아정교회들은 아니다 아버지께서 직접 오신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그렇게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 두 계통의 신학자들이 모여 가지고 우리 이 문제 어떻게 해결하자 하고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근 천 몇 년 동안 이것 때문에 싸움하다가 그만큼 예수님의 발원이 어디냐면 우리는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성부하나님으로부터 발원되는데 누구를 통해서냐면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신다는 겁니다. 왜냐면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가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중간에 빼놓을 수가 없는 겁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보혜사성령님의 특색이 있습니다.
첫째는 뭐냐면 예수님이 승천 후에 아버지로부터 오는 진리의 영이라는 겁니다. 17절18절에 그리고는 그 영이 예수님의 영이라는 겁니다. 
26절에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신다는 겁니다. 두 번째로 세상 사람들은 이 영을 받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는 겁니다. 
17절에 세 번째로 제자들은 그런데 받고 보고 알게 된다는 겁니다.
17절19절에 제자들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크리스천들이 아닙니다.
모든 크리스천은 구원을 허락하신 퓨뉴마(Pneuma)성령님은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보혜사성령님의 특별한 은총은 제자 급이 되는 사람들이 갖는다는 겁니다. 어느 정도 헌신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이 갖고 보고 알게 되고 또 제자들과 함께 거하시며 그다음에 그 속에 들어와서 계시겠다는 겁니다. 17절에 네 번째 특성은 이 보혜사성령님을 받으면 그러니까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으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과외공부를 받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3년 공생애 동안에 예수님이 일으켰던 기적과 정체성교육과 지상계명과 지상사명의 의미와 목적이 생각나게 해준다는 겁니다.
26절에 예수님이 그동안 3년 동안에 했던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해주고 그다음에 가르치고 순종하도록 도와주신다는 겁니다. 23절에서24절에 그리고는 성령님이 무슨 역할을 하느냐면 육체적으로 내 옆에 안 계신 예수님이 이렇게 하셨다는 걸 알고는 이제는 예수님이 안 계셔도 고아처럼 버려졌다는 느낌을 가지지 않고 두려움이 없어지고 낙원의 소망을 누리면서 평안을 가지게 된다는 겁니다. 평안을 27절에 그렇기 때문에 이분들은 낙원에 소망을 가지기 때문에 순교까지 할 수 있는 원천이 생겨났던 겁니다. 
보혜사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음으로 해서 결론적인 말씀을 다시 정리해드리겠습니다. 우리가 고아입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고아가 아닙니다.
그러고 우리는 어디로 갑니까? 낙원에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을 간단하게 하는 겁니다. 우리는 천국백성입니다 천국백성이 된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영적 호흡을 해야 됩니다. 영적호흡을 하려면 맹맹한 걸로 안 됩니다 무엇을 받아야 됩니까? 보혜사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됩니다. 
그분의 도우심을 받으려니까 우리가 삼위하나님을 찬양을 하면 보혜사성령님이 내 옆에 계신 성령님이 내 속에 쫘악 들어오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찬양을 입으로만 하면 안 되고 마음 속 깊은데서 부터 찬양을 하면서 옆에 계신 예수님 보혜사성령님 보좌 이 비전을 보면서 찬양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내 속에 들어오신다는 겁니다. 내 속에 들어오시면 내 속에서 쓴 뿌리들이 빠져나가면서 예수님의 성품으로 변하면서 영의 눈이 더 떠지면서 낙원이 보이니까 이 세상에 두려움이 없어진다는 겁니다.
낙원이 보이십니까? 낙원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까? 그것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크리스천들은 저는 거기에 대해서 적을 게 몇 개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크리스천들의 죽음관입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낙원관입니다 
우리크리스천들이 죽었습니다. 죽으면 육은 이 땅에 있지만 그리고는 육은 100년만 있으면 흔적도 없이 싹없어지잖아요. 그런데 크리스천들이 왜 장례식 때 그렇게 웁니까? 그리고 엄숙해지고 장례식 때 웃는 크리스천들 봤습니까? 실은 우리가 장례식에 가면 이미 그 시체는 거기 있지만 이분은 지금 어디에 가 있습니까? 낙원에서 지금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특히 주님을 잘 섬겼다가 간 분들은 얼마나 부릅니까? 육신의 정 때문에 부모님이나 친척이나 친구가 떠나기 때문에 슬픔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슬픔이 나를 지배할 수는 없잖아요 장례식은 이 낙원관이 없는 사람들은 비 그리스도인들은 엄청나게 통곡하고 울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크리스천들은 장례식이 슬픈 자리가 아니잖아요. 절대로 슬픈 날이 아닙니다. 크리스천들은 무덤관도 달라야 됩니다. 크리스천들의 무덤 자리가 중요합니까? 중요하지 않습니까?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덤이 없어도 됩니다. 크리스천들은 무덤자리가 종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화장하잖아요. 화장해서 뿌려버려도 되는 겁니다. 왜냐면 이미 이 사람은 어디에 가 있습니까? 낙원에 가 있는데 그런데 누가 무덤자리를 중요하게 생각합니까?
타종교사람들에게는 중요한 겁니다. 조금 있으면 추석입니다
추석 때 특별히 시장 봐서 음식 만들어서 제사지낸다고 그럽니다. 
제사지내면서 그분 사진 앞에 또는 무덤에 가서 이것 잡수시라고 합니다. 왜 비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합니까? 비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종교마다 다르지만 특히 우리나라사람들이 믿고 있는 유교 불교개념이 뭐냐면 그분이 죽어서 귀신이 된다는 겁니다. 귀신이 되어 가지고 그분들의 영혼을 집에 모시고 그러잖아요. 특히 홍콩이나 싱가폴이나 말레시아나 또는 동남아시아에 있는 중국사람 집에 가보세요 식당에 가보세요 귀신단지 있잖아요.
자기 가게를 자기 사업체를 보호해준다는 겁니다. 그기에 음식을 먹으라고 집어넣어 줍니다. 싱가폴아파트 건물 복도에 가보세요 복도 앞에 방마다 자기 집에 들어가는 입구마다 귀신단지가 즐비하게 있습니다. 그리고 다 향을 피워놓아서 코를 막고 다닙니다. 아파트층층마다 그리고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있습니다. 왜냐면 이렇게 안 하면 이 귀신이 우리가족을 해코지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두려움 때문에 하는 겁니다. 또 그 속에 존경심도 있습니다. 부모님기억하고 존경해야 하기 때문에 해야 되지만 그 속에는 깊은 영적인 의미가 두려움이 있는 겁니다. 일본사람들도 보세요. 신사가 있잖아요.
일본사람들 잡에 들어가 보면 집집마다 조그만 신사가 다 있습니다.
왜냐면 부모님들 잘 모셔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음부에 들어갔다고 그러는데 이 사람들은 귀신이 되었다고 그럽니다. 그리고는 그 귀신들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겁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 우리 크리스천들이 이 사람들의 문화와 혼합해가지고 우리크리스천들이 추석을 섬기고 구정을 섬깁니다.
그리고 성묘 간다고 고속도로가 꽉 차버렸습니다 그 안에 예수 믿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가족들이 다 하니까 안 할 수가 없어서 가는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가서 달라야 합니다. 
생각이 달라야 됩니다. 우리 할머니할아버지 집안의 어른들 부모님들 지금 낙원에 가 계신데 보혜사성령님을 통해서 이 지혜를 가지시고 그런 가족들을 어떻게 인도하느냐에 대하여 지혜를 가질 필요가 있는 겁니다.
거기에 같이 묽혀 있으면 안 되잖아요. 혹시 우리교인들 중에서도 그럴 겁니다. 가족 중에 누가 세상 떠나면 분명히 교회집사고 안수집사고 권사고 장로인데도 무덤자리 잘 써야 됩니다. 돈 많이 주어서 비싼 걸로 아니면 추모관도 아주 좋은 자리에 해야 됩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 중에도 추모 관을 건립해가지고 거기에 항상 편안하게 계십니다. 기독교신문에 보면 광고가 풀 페이지로 나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성서적입니까? 
낙원에 간 사람인데 추모 관에 뼈 다고를 잘 모시면 이게 교회가 영적으로 지금 잠을 자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제가 혹시 여러분들보다 먼저 죽는다면 우리교회어디서 제 장례식 때는 밴드를 갖다놓고 춤을 추세요. 슬퍼하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 우리 목사님이 더디어 가셨네요. 기쁩니다. 우리도 따라 가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하셔야 됩니다. 중국 사람들 중에서 이렇게 제사상을 차려놓지 않고 하는 중국 사람들이 본토중국 사람들입니다 본토에 가면 그게 없습니다. 요즘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왜 없느냐면 홍의병 때 모택동 때 그 사람들은 공산당이 종교니까 무실 론입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의 잔재를 다 무너뜨렸거든요.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죽으면 공동묘지도 없습니다. 
그대로 다 태워버립니다 공동묘지도 없는 겁니다. 왜냐면 죽으면 무실론자들은 무엇입니까? 죽으면 끝나는 겁니다. 그걸로 그냥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중국은 그 많은 사람들이 만약에 공동묘지가 있었더라면 저 나라는 문제가 심각할 뻔했습니다. 가끔 묘지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처럼 이런 개념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 와서 다시 그것이 부활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동남아에 있는 중국 사람들은 그 믿음이 대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추석을 맞이해서 우리가 세상의 물에 빠지면 안 됩니다
그렇지만 가족들과 싸움할 수도 없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조금 아픕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낙원론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오늘날 길이라는 것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무엇입니까? 종교다원주의입니다 종교다원주의를 우리가 쫓아내어야 합니다. 예수님밖에 없는 겁니다. 
그다음에 기도 론입니다. 기도는 무엇입니까? 영적인 호흡입니다 영적으로 호흡을 하는데 우리 기도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왜 기도해야 됩니까? 
기도의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과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눈이 가 있고 창조주와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분과 주파수를 맞추어주어야 되는 겁니다. 시각을 저쪽 시각으로 자꾸 맞추어 주어야 되는 겁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주파수를 맞추는 연습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창조주와 삼위하나님과 나와 연합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분의 뜻과 나와 연합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기도문에서 주님이 항상 저희들에게 부탁하잖아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준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는 겁니다. 기도하라는 것은 내가 기도를 안 해도 그분은 다 이루십니다. 
그분 계획이 있잖아요, 그렇지만 나를 위해서 중요한 겁니다. 내가 기도함으로써 그분의 뜻을 나와 연합을 시키니까 보혜사성령님이 기도하면 자꾸 가르쳐주는 겁니다. 이분의 뜻을 이렇게 해서 왜 연합해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창조의 목적을 재확인하고, 재확인하고 그 목적대로 살기를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먹든지 입든지 자든지 공부하든지 뭘 하든지 세상에서 돈 벌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도록 창조의 목적입니다 저희들이 지금 나가서 열심히 전도하던 선교하던 다 목적이 제 이름을 날리기 위해서가 아니고 나의 어떤 뜻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고 주님의 창조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러니까 저도 이 일을 하면서 기도안하면 안 되잖아요. 왜냐면 저도 사람이니까 자꾸 내 뜻을 이루려고 그러고 나의 욕심을 이루려고 그러고 나의 어떤 소원을 이루려고 하는 게 사람의 속성입니다 그러니까 그 속성을 없애려면 기도를 해야 된다는 겁니다. 기도를 하다보면 세상에 필요한 것들 자녀문제 사업문제 건강문제 우리가 지금 당면한 문제가 많은데 이것은 어떻게 합니까? 기도하지 말라는 겁니까? 예수님이 그것도 기도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선순위가 무엇입니까?  
너희들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놓고 기도하라는 겁니다. 이걸 부합시키라는 겁니다. 창조의 목적과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을 부합시키라는 겁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기도 안 해도 예수님이 내가 알아서 네가 필요한 것을 다 채워주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거 기도도 안했는데 다 채워주시는 겁니다. 우선 이것을 해봤더니 그러니까 내가 한 게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주님이 하셨구나.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기도를 하니까 되더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도해, 기도해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하나님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지금 우리를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이게 지금 우리 몸에 우리 주변에 꽉 차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안하면 안 돼 기도해, 기도해, 기도해 그러면 이게 불교하고 똑같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불교 사람들 새벽기도 왜 합니까? 
이번에도 말레시아에 갔는데 새벽부터 이슬람 종소리 울리고 이슬람기도소리가 들리는데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제 숙소 바로 옆에서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속으로 그랬습니다. 저 사람들 왜 저렇게 하지 자기네 장사 잘되려고 자기자녀 잘되려고 그래서 새벽에 와서 그렇게 앉아 있는 겁니다. 
이 세상에 눈이 가 있는 겁니다. 그 중에서 알라처럼 아주 거룩한 사람 이렇게 기도하는 놈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알라가 뭐가 거룩합니까?
가짜신인데 사탄인데 그 사람들은 그런 기도하는 게 없습니다. 
다 이 세상 것을 놓고 기도하는 겁니다. 그런데 크리스천들도 똑같이 이 세상 것을 놓고 기도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괴로운 겁니다. 성서에서 예수님께서 그랬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들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나중에 아주 귀찮아서 기도를 그렇게 해도 준다는 겁니다. 그렇게 기도해도 줍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나의 어떤 필요한 것을 채움 받기 위해서 하는 게 기도가 아니잖아요. 너희들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영어로 시크(seek)하는 것은 그냥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잊어버린 보물을 찾듯이 시킹(seeking)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들을 너희들이 이 세상에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붙어주겠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거짓말 하시는 분이 아니잖아요, 
그렇게 하시라는 겁니다. 기도의 목적이 그런데 이런 기도를 하려면 나의 맹맹한 실력가지고 안 되는 겁니다. 누가 필요하다는 겁니까? 보혜사성령님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오늘 주님이 주시는 말씀이 보혜사성령님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요한복음14장에 네 가지 부분이 낙원 론, 길론, 기도론, 보혜사론 다음시간에는 15장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 똑같이 성만찬 때 말씀하시는 겁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아버지하나님! 아버지하나님 하면 우리의 혼과 영이 하늘보좌로 올라가고 내 옆에 계신 성령님과 대화하고 내 속에 계신 성령님과 대화하고 영에 계신 영으로 오신 예수님과 대화하는 그러한 기본자세로 만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기도함으로 해서 삼위하나님과 연람되고 연합되고 창조의 목적에 부합된 우리의 삶이 되었을 때 우리에게는 엄청난 기쁨이 있게 되고 이 세상에 모든 어려움들이 이 기쁨을 빼앗아 갈 수 없게 되면 파도는 치는데 깊은 물속에 잔잔함이 있듯이 우리에게 평강을 주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제자들도 이 약속을 이번14장에서 받았습니다.
주님 저희들도 이 약속을 받아서 우리의 삶이 주님 앞에 정말 온전히 받쳐지는 삶이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PlDTRyCa5t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