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현목사 강해설교 녹취록/에베소서

9강, 에베소서1장1절-2절, 바울의 인사(3)

변명섭 2020. 2. 5. 05:53

에베소서 9강, 바울의 인사(3) (엡1:1-2)
바울의 인사 에베소서1장1절과2절을 제가 다시 읽겠습니다, 
이 말씀 속에 중요한 의미가 너무나 많이 들어있어서 제가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는데 이 부분만 지나면 읽기가 쉬워집니다, 
1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이렇게 읽어보면 이 안에 뜻이 많이 숨겨져 있습니다,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이 두절이 상당히 중요한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있는데 제가 지난시간에 바울의 인사에7강과8강에서1절을 가지고2시간을 보냈습니다, 
바울은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쫒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그랬습니다, 
여기 보면 또 성부하나님을 먼저 이야기하고 그다음에 성자하나님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할 때 은혜와 평강이 어디서 나온다는 소리입니까, 지금 여기 보면 은혜와 평강이 누구에게 나오느냐면 아버지와 주 예수그리스도로부터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갓 파덜 앤드 갓 썬(GOD father and GOD Son) 그랬습니다, 
이게 바울신학인데 바울이 우리에게 항상 이야기할 때 성령의30가지 은사들이 실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성부하나님으로부터 시작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성부로부터 시작되는데 성부가 직접 우리에게 안 주십니다
꼭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래서 이 신학적인 이슈 때문에 로마가톨릭하고 그리스정교회하고 신학적인 싸움이 붙었습니다, 
그래가지고 나중에 그리스정교회가 이것 때문에 로마가톨릭에서 빠져나와서 그리스정교회가 된 겁니다, 그 전에는 같은 로마가톨릭이었는데 이 사건을 무엇이라고 그러느냐면 필레오케(FILIOKE)라 그럽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영어로 앤드 프롬 더 썬(and From the Son)이런 뜻입니다 이 말이 뭐냐면 성령이 어디에서 발원하느냐 그것 가지고 신학적인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 로마가톨릭에서는 파덜 앤드 프롬 더 썬(father and From the Son)그랬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로마가톨릭이 그런 걸 강조하는데 로마가톨릭이 주후590년에 그레고리1세가 첫 교황이 되어서 이것이 공식화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리스사람들이 성령님은 성부하나님에게서만 발원한다, 이렇게 주장해가지고 그것 가지고 서로 신학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정치적인 의미도 있었지만 이것 때문에 1054년에 희랍정교회가 새로 생기면서 갈라졌습니다, 그래서 필레오케(FILIOKE)성부와 성령 성자 사이에서 성령의 발원하는 이 문제 때문에 큰 교단이 갈라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이 문제가 심각해졌는데 그런데 가톨릭이 이 전통을 가지고 오면서 종교개혁을 했던 루터나 킬빈도 이 사상만은 그대로 전수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 사상을 그대로 지금 안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필레오케(FILIOKE)가 아니다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바울도 여기서 보면 분명히 두 위의 이름을 이야기했잖아요,
성부아버지와 성자에게서 나오는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항상 이렇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것보다 더 구체적으로 할 때는 목사님들이 축도하잖아요, 축도도 사도바울이 한 축도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성자의 은혜와 성부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제하심이 너희에게 임할지어다,
이렇게 삼위하나님을 항상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바울의 신학을 공부하면서 삼위일체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성서 읽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제가 간단하게 삼위일체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아주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걸 영어로 트리니티(Trinity)또는 트리윤 갓(Triune GOD)이라 그럽니다, 
삼위가 하나로 되어있다 그래서 삼위라 그럽니다, 
삼위일체가 이것 때문에 논란이 많아가지고 이단이라고 하는 그룹이 많이 나왔는데 예컨대 여호와의 증인 같은 곳을 이단이라고 하는 이유가 성부하나님 한분만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성자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고 인간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성령하나님은 이 세상 여기에 와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분들은 성부하나님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성부하나님도 계시지만 성자하나님이 인간구원을 위해서 내려왔다는 이 사건 이게 기독교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것을 놓쳐버린 겁니다, 
그런데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그분이 사람이 아닙니다, 완전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아들이라 그러시는 겁니다, 
그런데 또 재미있는 게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래서 성자하나님이 성부하나님보다 격이 낮은 분이 아닙니다, 이 성부 성자 성령하나님이 격이 똑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위치가 똑같습니다, 계급이 같습니다, 
계급이 같으신데 기능이 조금 다릅니다, 같은 하나님이신데 기능만 차이가 납니다, 능력도 같으시고 모든 포지션도 같으시고 질도 같으시고 양도 같으시고 모든 것이 다 같은 하나님이신데 위가 3위라는 겁니다, 
영어로 쓰리 포슨즈(three Porson)라 그럽니다, 
우리인간으로써 이해하기 힘든 부분인데 그런데 기능이 다르다고 그랬습니다, 기능이 다르다는 것이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제가 예전에도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성부하나님은 어떤 기능을 가지고 계신 분이냐면 이분은 계획을 하시는 분입니다 플랜(plan)을 짜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분만 플랜(plan)을 짜시는 것이 아니고 성자 성령하나님도 같이 플랜(plan)을 짜시지만 어떤 코미티(상호, comity)를 같이 위원장으로 우리개념으로 생가하시면 됩니다, 플랜(plan)을 짜는 대표적인 분이 성부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플랜(plan)을 짠 것을 수행하시는 하나님이 누구냐면 성자하나님이십니다 수행하시는 분이 성자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수행을 할 때 능력이 필요합니다, 힘이 필요합니다,
힘을 제공하시는 하나님이 성령하나님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능하게 하는 또는 힘주시는 힘을 제공하는 분이 파워를 제공하시는 하나님이 성령하나님입니다 이렇게 기능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서 아담이 죄를 지었잖아요,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삼위하나님이 모여서 회의를 하셨습니다, 회의를 하셔가지고 아담이 저렇게 죄를 지었으니까 아담을 처음 아담으로 만들어주어야겠는데 다시 한 번 회복시키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그래서 계획이 무엇입니까 아들을 이 세상에 내려 보내지 않고 아들로 하여금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게 하자 이게 창세기3장15절 말씀입니다, 
이것을 결정하신 겁니다, 결정하셔가지고 실제로 피조물들과 관계를 맺으시는 분은 성자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회의를 하셔가지고 최고 결정권은 성부하나님이 가지고 계시지만 실제로 결정하신 것을 수행하시는 분은 성자하나님이십니다 이걸 항상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성자하나님이 인간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 인간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런데 성자하나님이 인간으로 내려 오셔가지고 성령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이분이 일을 하지 못하십니다, 그래서 난 아무것도 못한다, 그럽니다, 
그래서 이분이 인간으로 오셔가지고 어떻게 했습니까, 
오셔가지고 성령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으셨습니다, 
누굴 통해서입니까,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이 물로 세례를 줄 때 성부하나님이 나타나셨잖아요, 그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러시고는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와서 힘을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이분이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래서 이분이 하나님아버지께 기도하시는 겁니다, 
아버지 절 좀 이렇게 도와주세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성령님을 보내시는 겁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받고 힘을 내고 이런 모습 속에서 한 가지 꼭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피조물과 하나님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꼭 아버지가 인간에게 와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복음1장에 보면 아무도 아버지를 본 사람이 없다고 그랬습니다, 
아버지 성부하나님은 보좌에 계시기만 합니다, 
그리고는 성자하나님이 모든 피조물들과의 관계를 직접 관계를 맺으십니다,
이 개념을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으면 그다음부터는 일이 잘 풀립니다,
이 우주의 모든 삼라만상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우리가 단적으로 보면 성자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겁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그냥 쉽게 말하면 그래서 요한이 요한복음1장2절3절에 그랬잖아요, 예수를 통하지 않고 이 만물이 만들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겁니다, 다 지하에서부터 땅 위 우주 꼭대기까지 모든 만물은 다 예수님이 만드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누구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없는 겁니다, 
성령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이분이 만들지를 못합니다, 
이분들이 아주 묘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하나님이나 성자하나님이 우리 만들자 이래가지고는 안 된다는 겁니다, 성부하나님이 만듭시다, 라고 도장을 찍고 결정해야만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결정을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삼위하나님이 결정해가지고 마지막 결정을 성부하나님이 하시지만 알고 보니까 삼위하나님이 다 창조주십니다 창조에 다 관여하신 분들입니다 
그래서 창세기에 보면 엘로힘(Elohim)이라 그랬습니다, 
창세기1장1절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랬잖아요,
그럴 때 엘로힘(Elohim)이 단수가 아니고 복수입니다 그러니까 삼위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셨는데 가능적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삼위하나님을 보면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가 근방 알 수가 있습니다, 이분들이 얼마나 점잖은 분인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크리스천들이 삼위하나님의 모습을 우리가 닮아야 됩니다,
이분들은 절대로 서로 헐뜯지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올리는 연습을 하십니다, 이분들의 삶이 그렇습니다, 성자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셔가지고 내가 하나님이다 이분이 그러지 않으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놈의 자식들아 나를 따르라 이분이 그러지 않으십니다, 
그냥 기다리면서 때가 되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걸 누가 말해줍니까 
성부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요단강에서 세례 받을 때 봤잖아요,
세례요한도 이분이 성자하나님이라는 걸 잘 모릅니다, 
그러니까 세례요한에게 너가 세례를 주는 이분이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러는 겁니다, 하나 밖에 없는 내 아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주욱 나가시다가 나중에 마태복음17장에 변화산 사건이 있을 때도 그랬잖아요, 변화산 사건이 있기 전에 16장에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그러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고백을 시키잖아요, 
이분이 그 말을 들으시고는 아니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너 말이 맞다 너에게 이걸 알려준 것은 성부하나님이 너에게 알려주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를 하는 겁니다, 맞다 고 그래놓고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음성이 내려오는 겁니다, 이 사람이 나의 아들이다, 라고 말씀하시잖아요,
그러니까 제자들이 깜짝 놀라잖아요, 이런 식으로 성부하나님이 성자하나님을 항상 증거 해줍니다, 성자하나님이 스스로가 내가 누구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십자가사건 바로 직전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너가 그리스도냐 그러니까 너가 말했다 이 정도로 말씀하시지 내가 맞다 이렇게 말을 안 하시는 겁니다, 아주 겸손하십니다, 
이걸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하나님이 그럽니다,
너희들이 나가서 나를 증거 할 텐데 누가 있어야지만 너희들이 나를 증거 할 수 있다는 겁니까, 성령을 너희들이 받아야지만 성령이 내가 누군지를 증거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성령 받지 않고 예수가 누구라는 것은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령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신 목적은 예수하나님이 누구라는 것을 증거하기위해서 성령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리가 성령 받고 하나님의 은사 받고 하지만 최대목적은 예수님을 증거하기위해서 성령세례를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누가 성부하나님을 증거 합니까, 예수님이 항상 그러잖아요.
나는 아버지가 보내서 내가 왔다 요한복음3장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할 때 독생자와 관계에서 그 하나님이 누굽니까 좋은 의미에서 성부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항상 그러시잖아요,
너희들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께 기도하라는 겁니다,
나에게 기도하지 말고 성령님께 기도하지 말고 성부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를 증거 해주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복음17장에서 아버지에게 기도하시는 걸 보면 아버지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서로 존중하면서 하나인 것처럼 저쪽에 있는 제 네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서로 존중하면서 하나가 되게 하십시오,
그때 하나는 지금 삼위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구약에서 여호와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선지자들에게도 나타나시고 아브라함 모세에게도 나타나셨거든요
그런데 그분들이 나타나실 때 여호와하나님이신데 신약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성자하나님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왜 성부하나님이 아닐까요, 성부하나님은 피조물과 직접관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피조물들은 성부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성부하나님이 나타나신 게 아닙니다, 그러면 인간들과 관계하기위해서 누가 나타났습니까, 성자하나님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는 이렇게 신약처럼33년을 인간으로 내려오셔서 산 게 아니고 전지전능 무소부재 그러니까 이분이 잠깐 사람으로도 될 수 있고 자기마음대로 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천사도 될 수 있고 예수님이 어떤 때는 돌이 되셨습니다, 바위, 40년 광야생활 할 때 주님이 바위가 되셔가지고 너희들 필요한 것 나에게 말해라 그러면서 바위에서 물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10장4절에 뭐라고 그랬느냐면 바울에게 바울아 그때 물이 나왔던 그 바위가 누군지 아느냐 그게 나였단다, 그러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 모습으로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래가지고 예수님이 인간이 되셔가지고 유대인지도자들은 성부하나님만 생각하고 있는 분들인데 애들아 내가 너 네들이 그렇게 존경하고 존경하는 성부하나님이 보낸 아들이다 이렇게 말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내가 2천 년 전에 너 네들 조상 아브라함과 나와 같이 놀았단다, 그러는 겁니다, 
2천 년 전에 우리나라 같으면 웬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여보세요 나 옛날에 단군왕검하고 같이 놀았다고 그러면 정신병자라 그럴 겁니다,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그러는 겁니다, 
당신이 지금30살 조금 넘은 젊은이가 50살도 안된 젊은이가 아브라함 우리선조를 만나서 같이 놀았다고 정신 빠진 놈 봐라 이렇게 하시는 겁니다, 
요한복음8장54절에서57절 스토리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 말을 받아가지고 그러는 겁니다, 나는 아브라함보다도 훨씬 전부터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33살 된 예수님이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것 하나만 봐도 예수님이 구약 때 계셨다는 겁니다, 
우리가 그 전에 예수님과 아브라함이 대화한 장면을 섭력했는데 기억나십니까, 그리고는 모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히브리서11장24절에서26절에 분명히 그랬습니다, 
모세가 바로 왕 곁에서40년 후에 떠날 때 여호와께서 또는 여호와의 사자가 이런 말을 씁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천사들도 될 수 있고 예수님도 될 수 있습니다, 모세보고 너 떠나라 그럴 때 그때 모세에게 떠나라고 말한 게 히브리서11장에 말하는 분이 예수님이 와서 떠나라고 그랬다는 겁니다, 
히브리서11장24절부터보면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이렇게 그리스도를 위하여 떠났다는 겁니다,
모세가 그러니까 그 당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와가 할 때 누가 나타나서 말했다는 겁니까, 예수님이 나타나서 그분에게 말씀하셨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시대에 나타나신 장면을 보면 분명히 아십니다,
첫째 요한복음8장54절에서57절에  두 번째는 모세에게 히브리서11장24절에서26절 그다음에 선지자들에게 준걸 한번 봅시다, 
마태복음23장37절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지도자에게 직접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면 선지자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냐면 유명한 선지자로부터 주욱 나가다가 마지막 주전400년 때 말라기 선지자입니다 
그러니까 약400년 동안 선지자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들이 하나같이 여호와께서 선지자들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가서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경고를 주어라 말 안 들으면 내가 혼내어 주겠다, 그 소리입니다 선지자들이 와서 딴 소리 한 게 아닙니다, 너희들 우상섬기지 말라 나만 집중적으로 섬겨라 그런데 이분들이 그렇게 안 했잖아요, 그럴 때마다 선지자가 와서 우상섬기지 말라고 말할 때마다 소위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이 선지자들을 다 돌로 쳐 죽였다는 겁니다, 그럴 때마다 선지자가 예수님이 지금 하시는 말씀인데 이 말씀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그 주 화요일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사람들아 내가400년 동안 선지자들을 보냈단다, 그런데 말입니다
32살 정도 되는 젊은 청년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선지자들을 보냈단다, 그런데 그 선지자들을 돌로 쳐서 너희들이 다 죽였단다, 그럴 때마다 내가 화가 났지만 너희들을 암탉이 자기새끼들을 날개아래 보호하는 식으로 내가 너희들을 지금까지 잘 보호하여 주었다,
37절에33살 잡수신 한 인간인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그 당시에 주전850년부터 주전430년 그 당시에 내가 거기에서 암탉이 자기새끼들을 날개아래 보호하는 식으로 내가 너희들을 지금까지 잘 보호하여 주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호와가 누구였다는 겁니까, 예수님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섬기는 예수님이 신약에서만 계시는 예수님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구약에만 계시지 않았습니다, 천지창조 전에 영원세계부터 이분이 계셨던 분입니다 그래서 이분이 아버지와 대화하실 때 요한복음17장4절에서 그랬습니다, 마지막 식사하시면서 설교를 다 하신 다음에 아버지와 대화하는 겁니다, 아버지와 나는 창세전에 아버지와 내가 가졌던 영화 그 영화를 내가 생각합니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창세전에 아버지와 내가 가졌던 영화를 다시 말하면 영원한 그때 피조물들을 만들기도 전에 그때부터 아버지와 나는 같은 존재로써 영화를 같이 누리지 않았습니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가볍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이분은 하나님이시면서 창조주도 되시고 지금 이 순간에도 천지만물의 모든 피조물들 창조물들을 한 손에 딱 쥐고 피조물들의 생사화복을 쥐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대단하신 분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우리가 섬기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깊이 깨닫고 매일매일 이분의 위대하심을 크심을 매일매일 인정하고 존경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너 네들 피조물 이놈들아 너희들이 만들어 놓은 우상을 의지하고 자기를 의지하지 않으니까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습니까, 그래도 왜 참으시면서 봐주잖아요,
성서말씀 전체가 뭡니까,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계명이 우상섬기지 말고 아버지를 사랑하라는 겁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소리는 거꾸로 말하면 아버지 외 딴 데 기대지 말라는 소리입니다 예수님 사랑한다는 소리는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님 외 딴 놈들에게 내가 신경 안 쓰고 딴 놈에게 내가 의지하지 않고 딴 놈들은 전부다 쓰레기들이라고 생각하는 그 마음을 가진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딴 게 아닙니다, 
헌금 많이 내는 게 아닙니다, 이분만 절대자로써 내가 의지하는 겁니다,
이게 예수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사역 많이 하고 뭐 많이 하고 유명하고 이게 예수님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사역을 많이 하는 것이 잘못하다가는 우상 섬기는 겁니다, 예수님을 절대화 하지 않고 주님 일 많이 하는 것 그것은 다 우상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매일 기도 하는 게 딴 게 아닙니다,
이것주세요 저것 주세요가 기도가 아닙니다, 그 예수님을 제가 존경합니다,
의지합니다, 무섭습니다, 우리를 왜 참으시면서 기다리시면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고백하는 겁니다, 
예수님과 나와 대화하는 겁니다, 제 기도는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너무 위대하십니다, 주님이 손가락한번 잘못 쓰시면 저는 죽습니다, 저는 항상 그렇게 그 생각하면서 절 좀 봐주세요,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 주님이 조그만 생각을 달리하면 저는 그냥 가는 사람입니다 이걸 매일 고백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것만 정립하면 기도가 끝나는 겁니다, 
다른 기도는 그분이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만 정립해 놓으면 나머지는 주님이 내 마음을 아시기 때문에 내가 뭘 원하시는지 다 아십니다 그러니까 때를 따라서 다 주십니다,
기도를 하라는 것은 이것을 정립하라고 기도를 하라는 겁니다, 
나의 한계성과 무능함과 불확실성을 고백하고 모든 것은 우리 주님의 발등상아래 있고 손아귀 안에 있다는 것을 내가 고백하는 겁니다, 
그리고 인정하고 의지하는 겁니다, 주님이 가지고 계신 엄청난 파워를 무섭게 생각하고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할 때 경외라는 말이 그 소리입니다 이분의 절대성을 의지해야 됩니다,
네 번째는 이분 예수님이 여호와가 구약에서 이렇게 지내시다가 신약에 와서 육신으로 사람이 되셨습니다, 요한복음1장14절에 이분이 사람이 되신 겁니다, 사람이 되셔가지고 우리 인간들에게 이름을 주셨습니다, 
여호와. 야훼, 여호와 샬롬, 여호와 라파. 여호와 닛시. 여호와 이레 등 굉장히 많습니다, 이러다가 신약에 와서는 모든 구약의 이름들을 하나로 묽어가지고 주신 이름이 예수입니다 헬라어로 예수스입니다,
이 말이 뭐냐면 자기 백성을 저들의 죄에서 구언할 자입니다 
예수스라는 이름이 이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 보면 자기 백성입니다
그러니까 이 단어하나만 봐도 예정론입니다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정해놓은 백성이 있는 겁니다, 자기 백성을 저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 그래서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구원자 영어로 세이버(savior)로 구원자 또는 구속주. 구속자 예수라는 이름이 그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이름을 이렇게 가졌기 때문에 구약에서는 어떤 스타일로 이름이 이어왔느냐면 어린 양으로 왔잖아요, 그래서 요한이 그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입니다, 
요한복음1장19절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그 어린양을 계속 죽이는 연습을 했잖아요, 
그 어린양의 피에서 죄 사함 받는 그러다가 진짜 어린양이 나타나신 겁니다, 
그래가지고 어린양으로써 이분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잖아요,
다 이루시면서 숨을 거두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뭡니까 다 이루었다 그러시는 겁니다, 어린양의 사명을 그게 요한복음19장30절에 있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겁니다, 이분이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알다시피 부활하셨습니다, 그다음에40일 후에 승천하셨습니다, 
그다음에 이분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시 재림하겠다는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분이 하시는 말씀이 재림을 약속하시고는 다 떠나신 다음에 이분이 재림을 약속하신 것이 주후30년입니다 그리고 주후95년에 밧모 섬에서 요한에게 하시는 말씀이 계시록1장8절에서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내가 알파와 오메가라는 겁니다, 이 말이 뭐냐면 역사를 끝내는 게 오메가거든요
그러니까 인간구원 역사를 내가 시작했고 끝을 내는 것도 나라는 소리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요한에게 계시록22장13절에서 그러는 겁니다, 
내가 알파와 오메가다 그러면서 내가 곧 다시 오겠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신약이 끝나는 이야기입니다 이분이 자기가 알파와 오메가라는 걸 구약 때 이사야에게도 여러 번 이야기했습니다,
이사야에게 여호와께서 하면서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내가 알파와 오메가다 그랬습니다, 이사야서41장4절이나 또는 44장6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구속자하면 예수스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라 나 외 다른 신이 없느니라 신약에서 분명히 예수님이 알파와 오메가다 그랬습니다, 
구약에서 이사야에게 여호와가 그 당시에 여호와 이름으로 내가 구속주고 내 이름이 또 알파와 오메가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구약에서도 있었다는 겁니다, 
구약의 여호와가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가끔 예수님께서 구약에서 스스로를 예수님이 파덜(father)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몆 번 있었습니다, 자기가 아버지라고 예레미야3장4절,19절20절에 보면 다윗에게 하시는 말씀이 여호와께서 말하기를 내가 너 친구다 그럽니다, 그럴 때 이분이 어떤 때는 내가 아버지다,
그래놓고 또는 친구라고 그럽니다, 신약에서는 내가 너희들의 친구다, 
라는 것이 요한복음15장14절15절에 보면 그랬습니다, 
너 네들이 내가 명령하는 나의 계명을 잘 지키면 너희들은 나의 친구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상황에 따라서 이분이 어떤 때는 그렇게도 표현을 합니다, 그 상황에 맞추어서 표현을 합니다, 그렇지만 파덜(father)그래서 성부하나님을 이야기하는 아니라는 겁니다, 
구약사람들은 예수님을 부르시는 이름을 여호와라 그럽니다, 
여호와를 야훼(YAHWEH)라 그럽니다, 야훼(YAHWEH)라는 이름을 이분들이 이스라엘사람들이 야훼(YAHWEH)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못했습니다, 이분들이 아주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래서 이 사람들은 성경을 읽다가 야훼(YAHWEH)라는 이름이 나오면 멈추고 머리로만 끄떡 그렸습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이 지금도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다가 야훼라는 말을 못하고 머리로만 끄떡 그립니다,
너무나 크신 하나님의 이름이니까 그래서 야훼(YAHWEH)라는 이름을 이스라엘사람들이 글을 쓸 때 발음을 하지 않기 위해서 모음을 없애버리고 자음으로만 YHWA 이렇게만 써놓습니다, 발음을 하지 말라고 이렇게 써놓아도 이분들이 여호와시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호와가 예수님이신데 이스라엘사람들이 그분이 예수님이인지를 지금도 모르는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사람들이 이렇게 하다가70인 역이라는 말을 들었을 겁니다, 
70인 약이라는 것은 구약은 헬라어가 아니고 히브리어로 되어 있잖아요,
히브리어로 되어 있는 구약을 알렉산드리아라고 애굽에 있는 큰 항구도시입니다 여기에 많은 이스라엘사람들이 오랫동안 살면서 히브리어를 다 잊어 버렸습니다, 그래가지고 히브리어를 모르니까 구약을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할 수 없어서 70인의 학자들이 모여가지고 히브리어로 되어있는 구약성경을 헬라어 그리스어로 번역한 구약성경이70인 역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160년-200년 전으로 해서 쓴 책입니다,
그래서 이때 여호와를 어떻게 번역하였느냐면 이런 이슈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히브리어로 아도나이(Adonai)라고 이 말이 뭐냐면 더 로드(the Lord), 로드(Lord)라는 것은 주종관계에서 주인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이분을 로드(Lord)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한국말로 우리는 주님 이렇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발음하는 주님, 이 말이 헬라어로 뭐라고 그러느냐면 키리오스(Kyrios)라 그럽니다, 이 말이 주님이라는 뜻이고 로드(Lord)라는 소리입니다 여호와를 제호바(Jehovah)라 그랬잖아요, 
번역이 다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전부 로드(Lord)로 번역이 다 되어 버렸습니다, “주”라 그래서 구약에서는 전부 여호와라고 번역이 되어 있지만 신약에 와서는 여호와라는 말이 없어지고 다 주님 이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산약에서의 주님이 구약에서는 누굽니까 여호와 이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이라고 번역을 했으니까 바울이 편지를 쓰실 때 주님하면 누굴 이야기합니까, 성자하나님을 말할 때 주님 그럽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 이렇게도 쓰잖아요, 
그러니까 “주” 가 들어가면 예수님입니다 이걸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왜 주님이 예수님일까요 이게 중요한 개념입니다 우리 피조물들이 직접 관계하는 분이 누굽니까, 예수님입니다 또 직접 관계하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렇지만 성부하나님은 우리가 직접 관계 안 하십니다, 
그분에게 대화할 때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누구를 통해서 나의 말을 전달합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합니다, 그러잖아요, 
우리와 직접 관계하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분이 누굽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 예수님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하면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번역도 그렇게 더 로드(the Lord)라고 한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 할 때 성부하나님을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절대로 사도바울은 성부하나님을 주님이라고 표현을 안 합니다
성부하나님이 주님이라면 성부하나님께 우리가 잘못하는 겁니다,
성부하나님을 우리와 관계하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이라는 것은 나와 직접 관계를 맺는 내가 인격적으로 대화하는 의지하는 이런 분이기 때문에 주님 그러는 겁니다, 우리가 노예이기 때문에 노예들은 주님(주인)과 이야기하는 겁니다, 우리의 주인이라는 겁니다, 
직접 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분도 예수님입니다 우리 성부하나님이 쩨쩨하게 그런 걸 안 하십니다, 그러면 성자하나님이 그런 걸 한다고 해서 성부하나님보다 낮은 분은 또 아니십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예수님과 관계하는 겁니다, 사도바울의 편지를 우리가 이런 부분에서 이해가 되어야지만 우리가 그분의 편지를 읽을 수가 있습니다, 
다음시간에 뵙겠습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zE3_1xF0Ro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