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현목사 강해설교 녹취록/에베소서

7강, 에베소서1장1절, 바울의 인사(1)

변명섭 2020. 1. 31. 19:37

에베소서 7강, 바울의 인사(1) (엡1:1)
바울선생님이 편지를 쓸 때 편지첫머리에 항상 인사를 합니다,
인사를 하는 특징들을 보면 제일 먼저 자기 자신의 영적 신분을 꼭 밝힙니다,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불리 움을 받았다는 말을 꼭 쓰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이 말씀이 상당히 깊이 있지만 제가 자세히 다룰 겁니다, 그다음에 자기가 인사할 때 수신자가 누군가 수신자를 꼭 밝힙니다,
바울서신 외 다른 서신은 수신자가 정확하게 안 밝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분은 꼭 수신자를 밝히면서 아주 조직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다음에 바울은 인사하시면서 이분들에게 결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간구하는 겁니다, 꼭 이분의 편지 속에는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간구하노라 는 이런 사상이 깊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분이 인사를 했지만 마지막에 편지를 끝내잖아요,
끝내면서 마지막인사를 할 때도 이분이 똑같이 은혜와 평강을 간구합니다,
바울의 편지 중에서 특징부분에서 인사부분에서 특징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바울편지를 보면 제일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울이 우리의 삶 속에서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꼭 요구를 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편지내용을 주욱 쓰시면서 편지 목적이 무슨 목적으로 쓴 줄 아느냐 그러면서 목적이 뭐냐면 당신들이 성서의 모든 지식을 많이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결론적으로는 성서를 많이 알므로 자신의 삶 속에서 은혜가 가득 차있고 평강이 가득 차있기를 원하노라 입니다,
이게 성서 공부하는목적 중에 목적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 은혜가 없고 은혜라는 것은 소위 무료로 받은 선물인겁니다, 
영로로는 그레이스(grace)라 그럽니다, 그래서 영어사전에 그레이스(grace)가 뭐냐면 프리 기프트(Free Gift)라고 쓰여 있습니다, 
선물인데 무료 선물입니다 그래서 이 은혜는 내가 베풀 수가 없습니다, 
내가 받아야지만 베푸는 겁니다, 내가 있어야지만 베풀잖아요,
은혜를 누구에게서 받았습니까, 하나님께 예수님께 성령님께 은혜를 받았잖아요, 그러니까 은혜를 많이 받을수록 이웃에게 베푸는 겁니다, 
그런데 바울이분이 편지를 몇 개를 썼습니까, 13개를 썼습니다,
어떤 분은 14개를 썼다고도 합니다, 히브리서까지 바울이 썼다고 이야기하는데 많은 학자들은 히브리서는 바나바가 썼다라고 보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를 빼놓고는13개의 서신을 썼는데 이 서신들 중에서 주욱 나가다가 두 서신 예컨대 이분이 주후68년에 순교 당했는데 순교 당하기 직전 주후65년 경에 서신을 두 개를 썼습니다, 마지막서신인데 이것이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입니다 이때 바울이 다른 서신들은 다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간구하노라 그랬는데 바울이 디모데전서와 후서에서는 세 부분에서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기를 간구하노라 그랬습니다, 
여기에 보면 바울이 안 쓰던 말을 썼습니다, 긍휼이란 말을 집어넣었습니다,
그것도 가운데가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기를 간구하노라 
저는 성서를 이렇게 보면서 성령님이 나에게 조명해주시는데 왜 바울이 긍휼을 거기다가 집어넣어 주었을까요, 
그래서 제가 바울이 이때가 꼭60세 때입니다 바울이 주후5년에 태어났습니다, 딱60세 되는 해니까 바울이 이때까지 많은 훈련을 받았고 인간관계에서 얼마나 성숙했느냐면 은혜와 평강만이 아니고 모든 사람을 다 긍휼을 여기는 저분이 실수하면 저분이 아직 몰라서 그래 저분이 아직 그 단계까지 가지 못하니까 저렇게 실수를 하는구나,
그걸 위해서 내가 기도해주어야지 용서해주어야지 위로해주어야지 그러한 마음을 바울이 그 정도 나이가 되었을 때 가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편지를 쓸 때 성령님이 바울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서 모든 사람에게 긍휼한 마음을 가져라 그러면 평강이 온다는 겁니다,
이게 순서가 은혜가 있어야지만 그다음에 긍휼이 따라오고 긍휼이 있어야지만 평강이 따라오고 그래야지만 정말 주님을 섬기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직도 이 단계까지 가지 않으면 지식을 많이 배우다 보면 다른 사란에게 긍휼을 베푸는 그런 것이 약하고 도리어 소위 비판을 하고 정죄하고 얕보고 하는 이런 마음이 오거든요 그러면 스스로가 나는 아직도 한참 가야 하겠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지금 우리 모두가 가는 도중입니다 70살이 다 되었는데도 가는 도중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바울이 이렇게 해서 인사부분에서 여러 분야를 제가 다룰 것인데 저자에 대해서 봅시다, 에베소서의 저자가 누군가 누가 썼는가,
그러면 알다시피 바울이 분명히 에베소서를 쓴 걸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보면 어디에서 바울이 썼다고 되어 있습니까,
1장1절을 보세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분명히 저자가 바울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학을 공부한 학자들은 어떻게 보면 비평적인 시각을 가지고 성경을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학자들 중에는 에베소서가 바울이 쓴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냐면 편지내용을 보면 바울스타일이 아니다, 라고 보는 분들이 있고 또 어떤 분은 바울이 공통적으로 쓰는 단어들이 있는데 단어 중에서 바울이 쓰지 않는 단어가 몇 개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학을 깊이 공부하다보면 이런 걸 가지고 싸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학문을 하다보면 불필요한 공부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볼 때 바울이 썼습니다, 바울이 쓴 편지 중에 바울이름이 나오는 편지 내용이 있습니다, 에베소거도 그렇고 골로새서1장1절에 보면 그렇고 갈라디아서1장1절에 보면 자기 이름이 나옵니다,
그다음에 고린도후서1장1절에 보면 바울이름이 나옵니다,
그래서 나 바울은 그럽니다, 이분은 분명히 바울인데 왜 바울이 저자냐면 이분이 자기 신분을 밝히는 것뿐 아니고 모든 문장체를 보면 전부 바울스타일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본인의 사도의 권위를 항상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의 사도의 권위를 담대하게 말하는 걸 보면 분명히 바울임이 틀림없습니다, 문장만이 아니고 단어를 쓰는 것만 봐도 사도바울입니다
바울의 다른 편지들과 내용들이 비슷합니다, 
그리고 구조를 봐도 우리가 지난번에 다섯 가지 구조를 봤잖아요, 
구조를 봐도 바울스타일입니다 다른 분들은 이런 구조로 쓰지를 않으십니다,
그다음에 단어를 쓴 걸 봐도 단어들이 바울이 쓰는 단어들이 따로 있습니다,
저자들마다 자기가 많이 쓰는 공통적인 단어들이 있습니다, 
저도 이렇게 말하다 보면 저도 많이 쓰는 단어가 있잖아요,
누구나 다 많이 쓰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바울이 쓰는 단어가 몇 개가 있느냐면2177개의 단어를 공통적으로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서를 보면 1203개의 단어가 바울이 공통적으로 속해있는 단어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동사니 명사니 이런 것들이 그래서 보면 에베소서는 분명히 바울이 썼다라고 보는 겁니다, 그것뿐 아닙니다, 
문법에 동사구 명사구 하는 구를 봐도 바울이 전체 구를 618개를 쓰는데 이중에550개의 구가 에베소서에 나와서 중복이 되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성서에서는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게 동사인데 동사를 봐도 에베소서의 동사가 148개고 빌립보서 동사가129개가 같은 동사들로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면 같은 동사를 쓰니까 분명히 빌립보서도 바울이 썼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에베소서도 바울서신이라는 겁니다, 
본인이 바울서신이라고 말하는 것 외 객관적으로 봐도 그렇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재미있게 두기고가 이 편지를 배달한 분입니다
두기고가 편지를 배달할 때 에베소교회만 보낸 게 아니고 골로새교회에는 골로새서 편지를 같이 들고 간 겁니다, 
그래서 보면 골로새서의 저자가 바울이라고 했으니까 에베소서의 저자도 바울임이 틀림없는 겁니다, 그래서 두기고가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같이 들고 갔기 때문에 저자가 바울이 이라고 보는 겁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때 바울이 저자가 아닐 수가 없다는 겁니다, 
또 한 가지는 신학적으로 보면 바울의 신학은 항상 편지에서 뭘 강조하느냐면 하나님의 주권을 항상 강조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보면 1장3절이나9절이나11절이나 또는12절이나 2장4절에서7절까지 모든 에베소서 내용들을 보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합니다, 그다음에 구원은 십자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바울은 항상 강조합니다, 그래서1장7절에서나 또는 2장13절에서18절까지 내용을 보면 구원은 십자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바울의 독특한 스타일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사건과 부활과 또는 이분의 승천까지 이 부분을 항상 이야기합니다, 그래서1장20절에서22절까지 게다가 이분은 항상 성령님에 대해서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강조합니다, 성서에 보면 상당히 이 부분이 많습니다, 1장18절이나22절에 3장5절이나16절, 4장1절에서4절, 4장30절, 5장18절에서6장18절까지 이 모든 부분에서 보면 바울이 성령에 대해서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름을 사도바울이라 그랬잖아요,
그래서 이름에 대하여 한번 봅시다, 이분이 본래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히브리어로 "사울(שאול)"은 동사 "사알(שאל)"의 수동태이다. 동사 "사알"은 '묻다, 요청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영어로 번역하면 "ask"다. 그러므로 "사울은" 동사 'ask' 의 수동태 'asked'가 된다. 
사울이라는 이름의 사전적 의미는 "구하여진" 혹은 "요청하여진"이다. 다시 말하면 이름이 요구받는 자라는 소리입니다 항상 요구를 받으십니다,
사울이란 뜻이 뭘 요구 받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 항상 요구 받는 다는 그런 뜻인데 이분이 바울로 바뀌었습니다. 언제 바울로 이름이 바뀌었습니까, 사울은 유대사람의 이름인데 이제 헬라사람의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헬라어로 Pau/loj(파울로스)라는 이름은 그 기원이 라틴어의 ‘작은(little/적은)’이라는 형용사에서 왔습니다,
이름이 사도행전13장9절에서 이분이 안디옥교회를 떠나서 선교사로써 구보로 섬에 가가지고 성령님이 이분의 이름을 바울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다시 말하면 선교지에 나가서 완전히 이방인이름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선교지에 나가서 1차 여행을 시작하면서 사도행전13장에서 안디옥교회 지도자 이름이 다섯 명이 나오는데 거기 보면 제일 마지막 다섯 번째 분이 바울이라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그다음에 2절에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여기서는 바울의 이름이 안 나옵니다, 
그런데4절에 보면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이게 구보로 로 가는 장면입니다 가다다 그다음에9절에 보면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이분이 첫 설교하는 장면입니다 
성령님이 이때 사도행전13장9절부터 누가에게 저 사람 이름이 사울이 아니고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겁니다, 
그 후부터 사울이라는 이름이 안 나옵니다, 
왜냐면 선교지에 나가서 유대인사람 이름을 쓰면  복음을 전하는데 도움이 안 됩니다 그래서 그런 겁니다, 선교지에 나가서 그 나라사람들의 이름 그다음에 그분들의 음식도 먹고 그분들의 사고방식으로 빨리 변해주어야 됩니다,
그래서 이름까지 하나님이 바꾸어 놓는 겁니다, 
우리예수님도 본래 이름이 하나님인 갇(GOD)이십니다 그런데 사람의 이름으로 예수스 이렇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사람을 통해서 사람에게 전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지장을 주는 방법으로 쓰지 않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저도 이방으로 많이 다니기 때문에 이름을 오늘날 전 세계에 이름이 영어 이름이기 때문에 그래서 제 이름이 토마스입니다 그래서 외국에 나가서는 외국 사람은 제 이름이 황용현 이라는 걸 모릅니다, 그냥 토마스라고 알고 있습니다,
황용현 하면 누군지 모릅니다, 왜냐면 이방선교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바울이라는 뜻이 뭔지 아십니까, 영어로는 ‘작은(little/적은)’자라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이 그랬습니다, 천국에서는 작은 자가 큰 자다 그랬잖아요, 그것과 똑같이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름을 고치는 몇 사람을 보면 유명한 베드로 같은 사람도 본래이름이 시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페트로스로 바꾸었습니다, 페트로스의 뜻은 조그만 돌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게바라는 이름은 갈릴리사람들이 쓰는 아람어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사도된 바울은 하면서 본인이 꼭 사도라 합니다, 
이분이 예수님의 12제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본인이 영적권위를 사도 적 권위로써 자기를 사도라 합니다, 
사도를 헬라어로 아포토로스(avpo,stoloj)라 하고 영어로는 아포슬(apostle 사도)이라 그럽니다, 사도의 뜻이 뭐냐면 어떤 특별한 예수에 의해서 특수임무를 수행을 위해 임명받은 자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님의 에이전트(Agent 대리인)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사도(아포슬 apostle)입니까 첫째 예수님의 12제자들은 마가복음3장14절에 보면 이 사람들을 사도(아포슬 apostle)라고 했습니다, 
그다음에 바울은 로마서1장1절, 에베소서1장1절에 본인이 아포슬(apostle)이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요즘 한국기독교신문을 보면 어떤 사람이 내가 아포슬(apostle)이다 그래가지고 신문에 자기 사진을 내면서 자기가 사도라고 하는 사람을 제가 봤습니다, 우리말로는 내가 사도라는 말이 조금 어색합니다, 
그러니까 사도적인 이런 권위를 가진 그룹들은 하나의 교단을 만들어가지고 외국에서는 아폴스 처어치(Aphols church)라는 교단도 여러 개가 있습니다, 
이렇게 특수한 그룹이란 걸 나타내기 위한 그룹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외국에는 있습니다, 
그다음에 야고보 예수님의 동생입니다 이분도 특별히 사도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1장19절에 보면 어떤 분들은 바나바도 사도 속에 들어간다, 그래서 사도행전14장14절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16장7절에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안도리고와 유니아 이분들도 사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기한 게 히브리서에 보면 예수님을 사도라는 증명을 준 게 있습니다, 히브리서3장1절2절에 보면 그랬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렇게 말하느냐면 예수님은 누구의 에이전트(Agent 대리인)이십니까, 성부하나님의 에이전트(Agent 대리인)입니다
또는 성부하나님의 사도라는 입장에서 예수님을 사도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바울이 꼭 사도이름을 자기 편지마다 쓰는데 서도이름을 사용하지 않는 서신이 있습니다, 빌립보서. 데살로니가 전 후서. 빌레몬서에서는 본인이 사도라는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사도라는 말을 왜 쓰느냐면 가끔 가다가 이분의 권위를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꼭 자기 편지에다가 나는 사도 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꼭 쓰십니다, 성서에서는 바울의 권위를 덤벼드는 그룹 중에 어느 교회가 심했느냐면 고린도교회가 가장 심했습니다, 
그래서 권위를 고린도전서9장에 보면 전부 바울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나옵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11장에 보면 고린도교회가 이분의 권위에 대해서 도전하는 내용들에 대해서 내가 사도 다 사도의 권위로써 너희들에게 말한다, 함부로 나에게 덤벼들지 말라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주욱 나옵니다, 
특히 고린도전서9장에는 고린도교회 사람들이 바울에게 그럽니다,
당신 말이야 우리가 주는 헌금가지고 베드로도 자기 와이퍼 데리고 선교여행을 다녔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래서 바울이 베드로도 자기 와이퍼를 데리고 선교여행을 다녔는데 나도 그런 자격이 없느냐고 만문을 합니다,
그 말을 보면 바울도 부인이 있었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너희들이 이런 말할 줄 알고 내가 너 네들이 준 돈 한 푼도 안 썼다고 그럽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내가 너 네들이 준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권한이 사도로써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세 가지 이유를 대는 겁니다, 첫째로 군인들이 전쟁을 할 때 의복이니 음식이니 모든 비용을 정부에서 대준다는 겁니다, 
누가 자기비용으로 군복무를 하겠느냐 그럽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영적전투를 하는데 하나님이 나의 모든 비용을 대어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농부가 자기가 농사를 지어서 열매를 자기마음대로 먹는 게 뭐다 나쁘냐는 겁니다, 예컨대 내가 너희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영적으로 다 자라게 했는데 너 네들이 헌금한 돈 내가 쓰는 것이 뭐가 나쁘나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세 번째는 모세 때 모세에게 율법을 주셨는데 소가 연자 맷돌을 돌리면서 보통 때는 입을 가려놓지만 연자 맷돌을 돌릴 때는 일하면서 마음대로 먹게끔 입을 열어 놓아 마음대로 먹으면서 연자 맷돌을 간다는 겁니다, 이렇게 세 가지 이유를 대면서 내가 너 네들이 준 돈을 가지고 내 생활비 쓴 것이 뭐가 나쁘나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한 거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렇지만 내가 당신들이 준 돈을 가지고 한 번도 내가 써보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할 줄 알고 내가 낮에는 텐트 만드는 일을 했고 저녁에는 말씀을 가르치면서 틈틈이 내가 돈벌이를 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내가 사도로써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그런 권위가 다 있는데도 이런 권위를 내가 취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고린도전서9장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왜 그러느냐면 너 네들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실족할 까봐 내가 안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사역자들이 하나님의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권한을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헌금 낸 돈 제가 마음대로 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안 쓰는 겁니다, 왜 안 쓰는 겁니까,
실족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그래서 안 쓰는 겁니다, 
문제는 그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서에서는 안 나오지만 바울이 뭐라고 하느냐면 나는 종이다, 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 개념을 제가 설명하여 드리겠습니다, 종을 영어로 뭐라고 그럽니까, 
서어번트(servant)라고 그럽니다, 또는 영어로 슬레이브(slave)라고 표현합니다, 노예라는 소리입니다 꼭 이분의 편지에서 에베소서에서는 안 나오지만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노예다 예수그리스도의 노예인 나 바울은 꼭 이렇게 나옵니다, 이 종이라는 걸 성서에서 보면 두 가지 종이 있습니다, 
두 가지 종이 뭐냐면 신명기15장12절에서18절에 보면 두 가지 종이 나옵니다, 모든 종은 7년 동안 종노릇하다가 주인이 그 종을 놓아주는 겁니다, 
이걸 일반종이라는 겁니다, 7년이 되면 자유하게 하라는 겁니다,
자유하게 하는데 그냥 놓아주지 말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 주어서 자기 혼자 나가도록 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물질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 주어서 보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종은 왜 너가 마음 넓게 대하느냐면 과거 애굽에서 너희들이 종살이할 때 고생한 것 생각나느냐 그 생각을 하면서 이 종이 요구하는 걸 다 들어주라는 겁니다, 
종이라는 하나님의 종의 하나의 예표로써 보여 주는 겁니다, 
그런데 두 번째 종은 무슨 종이냐면 귀 뚫린 종이라고 그럽니다,
귀 뚫린 종은 어떤 종이냐면 7년이 되었는데 이 종이 주인에게 와가지고 하는 소리가 주인님 나 정말 주인님 사랑합니다, 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주인 가족들도 내가 사랑합니다, 그리고 제가 노예지만 행복합니다,
라고 그럽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집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라고 그럽니다, 7년이 되어서 나가야 되는 데 자기는 안 떠나겠다는 종이 있습니다, 
계속 머물려있기를 간구하는 종이 있습니다, 
그러면 주인이 어떻게 하느냐면 이리로 좀 오느라하여 송곳으로 문지방에 송곳을 귀에다가 대고 망치로 귀를 뚫습니다, 
그래서 귀 뚫린 종이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귀를 뚫습니다, 
그리고 하는 소리가 너는 이제부터 영원히 나의 종이라는 겁니다,
이제는 영원히 그런데 여기서 보면 이 안에 여자종도 있는데 남편이 없는 여자 종이 있습니다, 여자종도 만약에 안 가겠다고 그러면 그 여자 종도 귀를 뚫으라는 겁니다, 이것을 이렇게 보면 여자 목사님들도 우리가 허용해야 된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목사들 중에서도 두 가지 종이 있습니다, 일반종이 신학교 나와서 목회를 하거나 하나님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귀 안 뚫린 하나님의 종이 있고 귀 뚫린 하나님의 종이 있습니다, 귀 뚫린 종은 어떤 특수한 종이 있습니까, 
우리주님과 사랑의 관계가 있고 그리고 주님 앞에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고 주님에게서 떠나지 않고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하나님의 종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속화 된 다른 데를 생각안 하는 하나님의 종이 있습니다,
저쪽의 종은 뭡니까 종은 종인데 세상을 더 좋아하는 세속적인 종이라는 겁니다, 우상을 섬기는 종이라는 겁니다, 예컨대 우상을 섬기는 종 물질. 명예. 가타 등등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보이는 것에 의지를 많이 합니다,
정치그룹을 의지하거나 또는 큰 교단을 의지하거나 어떤 분은 박사학위를 의지하거나 전적으로 주인인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이 일반종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귀 뚫린 종이 아니라는 겁니다, 귀 뚫린 종은 완전히 주인에게 의지하여 주인에게 완전히 맡겨 버리는 겁니다, 영원히 주인님 저를 책임지십시오, 하는 겁니다,
그러면 종과 주인과의 관계성이 어떠냐면 주인의 책임이 주인이 볼 때는 종들이 뭡니까 종들이 주인의 재산입니다 만약에 종들이 병이 나거나 또는 죽거나 이러면 재산손실입니다 주인의 책임은 종들을 무료로 잘 먹여야 되고 건강도 잘 지켜주어야 되고 또 자녀를 많이 낳을 수 있도록 해야 되고 그래서 주인은 종들을 잘 보호하여 주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주인이6년까지  보호해주는 종이 있고 또 영원히 보호해주는 종이 있습니다, 그러면 종의 입장에서는 어떻습니까, 
종의 입장에서는 주인과의 관계는 종의 입자에서는 주인에게 충성만 하면 됩니다, 주인을 존경하고 주인을 경배해드리고 주인 속을 안 썩이면 됩니다,  
그것만 해주면 됩니다, 열심히 주인에게 충성해주면 나머지 생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녀들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 주인이 알아서 해주니까 왜냐면 주인이 알아서 안 해주면 주인이 손해를 봅니다, 그러니까 주인이 손해 본다고 생각하면 종이 주인을 보면 주인이 나에게 잘해준다는 생각이 틀림없다 생각하니까 바깥을 볼 필요가 없잖아요,
그게 진짜 귀 뚫린 종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우상을 섬기는 것은 바깥을 보고 딴 주인을 보는 것과 똑 같은 겁니다, 
우리가 딴 주인을 보지 말고 내 주인만 쳐다보고 그분에게만 의지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 주인이 알아서 하나하나 다 해결해주십니다
그것을 믿는 겁니다, 그 마음이 올 때까지 주인에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나와 주인과의 관계에서 그러면 틀림없이 그 주인이 보호하십니다, 
그러니까 목회자들은 그 주인과 관계만 잘 정립하도록 매일 정신을 거기다가 갔다 됩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알아서 하실 겁니다, 
그 관계만 정립하는 그것이 노예들의 할 일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귀 뚫린 종입니다 그래서 주님 저는 귀 뚫린 종입니다, 라고 말해봅시다, 다음시간에 뵙겠습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znwhmtBcVG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