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9장-11장 강해

10강. 로마서11장25절-36절, 그리스도의 사랑

변명섭 2025. 1. 7. 08:44

로마서9장-11장 강해
10강. 그리스도의 사랑(롬11:25-36) 
로마서11장25절에서36절까지입니다 
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27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28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30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31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지난 아홉 번을 통해서 드린 로마서9장에서11장 말씀 속에서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린 것이 기억나는데 한 마디로 말하면 이런 말인 것을 여러분들이 생각날 겁니다. 예정론이라는 신학적인 큰 틀 안에서 알미니안적인 하나님의 계획이라 한다면 그것이 전체의 한 줄기라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하나님은 자기자녀들을 예정론측면에서 이렇게 예정하셨다 사도바울에게 말씀하셨잖아요. 그러면서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들을 9장에서 뭐라고 불렸냐면 긍휼의 자녀들 또는 귀히 쓰는 그릇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고 또 예정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자들을 천히 쓰는 그릇 또는 진노의 그릇이라 이렇게 말을 했다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어떤 분들은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은 불공평하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성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긍휼의 그릇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 유대인과 이방인이 있다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은 하나님의 자녀지만 예수님의 복음의 비밀에 대해서 잠깐 눈을 떴다가 유대인은 눈을 감게 되고 그와 동시에 이방인들이 눈을 뜨게 되는데 그것을 이방인의 부요함이라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이방인이 이렇게 부요함을 받아가지고 언제까지 이방인들이 부요함을 받느냐면 하나님이 이방인을 예정한 숫자가 있습니다.
이방인의 예정한 숫자가 찰 때까지 이방인의 부요함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이 어느 정도 찰 때 유대인들 중에서 일부가 눈을 뜨게 된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25절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25절에 말씀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러면서26절에 이방인의 숫자가 차면 온 이스라엘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이 말씀을 한국말로 사도바울에게 하신 말씀으로 신비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신비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사람이 인간이 이성으로는 도저히 깨달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성을 가지고 볼 때 이성적으로 위배가 되어 있고 그 원칙과 상반되거나 또는 성취되는 겁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볼 때 그러니까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이렇다는 것을 우리이성의 눈으로 볼 때 이해가 안 되고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다 까지도 말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3장4절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이다 그랬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신비스러움이다 
이런 말로 표현을 했습니다. 왜냐면 사람이 자기이성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개미라는 저차원의 존재가 지금 제가 설교하는 저를 들여다볼 수가 있습니다. 개미 눈으로 그렇지만 제가 말하는 깊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저 개미가 이해할 수 없는 겁니다. 그렇지만 개미는 개미 나름대로 자기친구들끼리 하는 말이 나 저기 있는 저 물체가 뭐라고 말하는지 나는 안단다. 
자기네들끼리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 너 뭘 아니?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한다. 자기네 스타일말로 하는 겁니다. 개미가 자기네의 이성을 가지고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자기네들끼리 서로 싸움하는 겁니다. 아니다 기다하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개미신학을 가지고 서로 싸움하는 겁니다.
우리인간신학자들의 문제가 이것입니다 자기가 뭘 좀 안다 그래서 그걸 가지고 하나님이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부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가 이 세상에 이성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고등학문을 공부하고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고 나니까 그것이 다 초등학문이었다 
그랬습니다. 초등학문 그러면서 이분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려면 너희들이 얼마만큼 가야 되는지 아느냐? 그러면서 하는 소리가 하나님의 신비하심의 넓이를 먼저 깨달으라. 우리는 어떤 사물을 볼 때 이게 Box입니다
이 Box를 이해하려면 이 Box가 얼마나 넓은가 먼저 알아야 합니다.
넓이만 알아가지고는 안 됩니다. Box의 깊이를 알아야 됩니다.
그다음에 높이를 알아야 됩니다. 그다음에 길이를 알아야 됩니다.
넓이와 깊이와 높이와 길이가 이렇게 하나님이 엄청나게 크신 분이십니다 길이라는 단어는 움직이는 겁니다. 이것이 이 끝에서부터 저 끝까지 통이 움직이는 겁니다. 이걸 뭐라고 그러느냐면 역사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역사 시간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볼 때 정적으로밖에 안 봅니다. 정적으로 보는데 많은 부분은 깊이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높이를 볼 줄 알아야 됩니다. 그다음에 넓이를 볼 줄 알아야 됩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크신 분이라는 걸 그분의 복음이 하나님의 말씀이 거기다가 움직이는 시간개념을 가지고 봐야 합니다. 역사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지혜 있는 자다 그것을 우리는 저 사람 영성이 있다 그럽니다. 
우리가 보통 영성이 있다 그러면 길길이 뛰기만 하면 영성이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영성이 아주 초등학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알려면 오각이 발전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오각입니다 오각이 뭡니까?
영의 눈이 밝아야 합니다. 영의 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됩니다.
세상 돌아가는 걸 봐도 그걸 보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다음에 맛을 알아야 합니다. 영감이라고 그럽니까? 
맛을 알아야 합니다. 냄새 그다음에 느낌 이게 오각입니다 
이럴 때 아하! 저분이 영성이 있는 분이다 하나님의 크기를 그분의 속성을 내가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많은 부분에서 이런 걸 이해하는 사람은 어떤 사물이나 어떤 사람을 볼 때 아하! 저분이 이 부분에서는 약하구나?
이 부분에서 발전이 안 되었구나? 그것이 보이게 됩니다. 
어떤 A라는 사람이 오각을 다 가지고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어느 한쪽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발전시켜야 됩니다. 어떤 분들은 고집이 있는 분들은 발전하려고 그러지 않습니다. 그분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자기가 그동안에 배워왔던 또는 훈련받아왔던 어떤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만 가지고 고집하는 분이 있습니다. 오각을 가지고 다 보는 사람이 볼 때는 어디가 조금 절름발이입니다 겉으로 보면 어른 같은데 내용으로 보면 어린아이입니다 이런 부분들이 눈에 보이기시작하는 겁니다.
이런 것은 젊은 사람들은 안 됩니다 제가 지내고 보니까 인생을 오래 살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경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 영성을 봐야 합니다. 이게 하나님의 구원계획입니다 처음에는 유대인을 통해서 그다음에는 이방인이 부요하게 되고 나중에 가서 이방인의 숫자가 차면 유대인을 하나님이 눈을 뜨게 해서 유대인전부 다 구원을 받잖아요.
이게 하나님의 구원계획이거든요 이것을 하나님은 이미 아브라함을 불렸을 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가 깊은 눈으로 보지 못했던 겁니다.
우리가 잘 아는 창세기12장2절3절에 아브라함과의 계약에 뭐라고 그랬냐면 아브라함아 내가 너와 네 자손들에게 복주겠다 그다음에3절에 그랬습니다.
너와 네 자손을 통해서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때 만민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고임(Goim)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고임(Goim)이라는 히브리말은 뭐냐면 유대인들을 제외한 이방사람들이라는 소리입니다 그걸 고임(Goim)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항상 그분들은 구별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사람들 복수입니다 자기네 유대인들은 고임(Goim)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뭐냐면 아민(Ammim)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분명히 아브라함에게 말할 때 너희들을 통해서 고임(Goim)이 이방인들이 복을 받겠다는 겁니다. 그리고2천년 후에 예수님께서 지상명령을 내리실 때도 똑같이 마태복음29절19절과20절에 그러므로 너희들은 가서 만민을 제자로 삼아 그랬지 않습니까? 그 당시에 만민을 히브리말을 쓴 게 아니고 헬라어를 썼습니다. 그리스말로도 똑같이 에뜨네(Ethne)라는 말을 썼습니다. 에뜨네(Ethne)라는 말은 이방인들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유대인들은 에뜨네(Ethne)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라오이(Laoi)그럽니다. 이런 말을 썼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예수님은 에뜨네(Ethne)라는 말을 썼습니다. 
내 민족이 아닌 타민족을 영어로 ethnic people 이라는 그런 표현을 똑같이 썼습니다.

그래서 만민이 복을 받는다. 할 때는 우리는 유대인을 제외하고 하는 소리입니다 유대인을 제외하고 이방인들이 복을 받는다. 이방인이 영적으로 부요해진다는 겁니다. 지금 현재 에뜨네(Ethne) 다시 말하면 이방인의 에뜨네(Ethne)가 어떤 선교신학자들은 24000개라고 보는 분들도 있고 어떤 분들은 12000개로 보고 있습니다. 이게 언어그룹입니다 
언어와 문화의 단위그룹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만민이라는 말은 개인, 개인 하나하나를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언어그룹을 말합니다. 
예컨대 한국민족 같으면 세종대왕이 만들어놓은 글을 말을 쓰고 있는 한민족이 그룹별로 남한이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도 똑같이 그 말을 쓰는데 문화가 다릅니다. 같은 세종대왕이 만든 말을 쓰는데 문화가 다릅니다.
그러니까 한국말을 쓰는 에뜨네(Ethne)가 2개가 있습니다.
러시안코리언들 차이니스코리언들 제펜니스코리언들 아메리카코리언들 다 다릅니다. 같은 한국말을 쓰는데 문화가 다른 사람들 오늘날 세계 언어가6500개라 그럽니다. 그런데 문화민족은 12000개로 제가 말씀드리는 겁니다.
하나님은 문화민족별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예정해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우리한국 문화 중에 조선족이 있습니다.
한민족을 구원시킨다는 것은 조선족은 현재 크리스천비율이 얼마냐면 약3%밖에 안 됩니다 중국에 있는 조선족은 그런데 남한에 있는 한국 사람들은 크리스천비율이 약20%입니다 그러니까 조선족이20%까지 되어야 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3%에서 그대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북한은 기독교인이 약5만 명 정도가 있다고 그럽니다. 
거기서 끝날 수도 있습니다. 어째든 복음이 언어민족 속에 들어갔거나 십자가가 구경되었거나 교회가 하나라도 있거나 이렇게 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현재 약12000언어민족 중에서 약8000언어민족이 소위 복음을 들어봤고 교회가 하나라도 있는 겁니다. 문제는 약4000언어민족이 아직도 이방인들의 숫자가 차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현재 약2000언어민족은 그의 금년이나 내년 안에 복음이 들어가거나 또는 선교사가 들어가거나 또는 성경이 번역되거나 복음이 최소한 거기에 도착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2000이 문제입니다 나머지2000의 문화민족을 어떻게 복음화 하느냐? 이게 초점입니다 그것은 컴퓨터를 사용해서 또는 위성라디오를 통해서 또는 기타 등등 다른 매체들을 통해서 급속도로 지금 가도록 준비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방인의 숫자가 차지는 것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방인의 숫자가 차지고 있는데 가장 미전도 언어민족이 어디에 제일 많으냐면 아시아에 제일 많습니다. 
전 세계인구가80억인데 70%가 아시아인구입니다 그런데 아시아가 복음화가 가장 안 되었습니다. 가톨릭까지 또는 자유진영의 기독교인들까지 합하면 3%밖에 안 됩니다 아시아인구3%가 소위 크리스천들입니다 
우리같이 복음주의 그러니까 예수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 주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아시아에서1%밖에 안 됩니다 아시아가 가장 미 복음화가 된 지역입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을 우리나라를 이렇게 사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시아는 미국선교사가 가서는 이제 복음이 잘 전파가 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식민주의적인 방법으로 과거에 해왔기 때문에 아시아 사람들은 아시아 사람들로 라는 피치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민족을 이런 측면에서 사용하고 계신 게 분명합니다.
필리핀에서 오신 선교사님도 경험하고 계시지만 필리핀에 우리한국선교사가 얼마입니까? 약500명이라 합니다. 우리나라 전체선교사가 약2만 명 가까이 됩니다 이렇게 아시아지역이 추수가 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가 어디에서 나타나느냐면 유대인들 중에서 눈 뜬 유대인들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유대인들이19세기 들어와서부터 눈을 뜨기 시작하는 겁니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알기 시작하는데 대표적인 분이 레오폴드 호프만 콘(Leopold Hoffman Cohn)이라는 사람으로 헝가리에 살았던 유대인 랍비입니다 약1870년에 이분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여호와가 예수님인 걸 깨닫고 이분이 영국에 가서 신학교육을 받고는 핍박을 하도 많이 받았기에 이분이 미국 블루클린으로 이민 갔습니다. 그곳에서 유대인들을 상대로 조그맣게 초전 피플 미니스트리(The Chosen People Ministries)라는 선교회를 만들었습니다. 유대인들 상대로 복음을 전했는데 이분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았지만 엄청난 핍박 속에서 복음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이분들을 통해서 유대인복음화를 위해서 선교하는 유대인들의 선교기관이 전 세계에 약25개가 있습니다. 이중에 대표적인 곳이 Jews for Jesus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 특별히 유대인만 위해서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통계에 의하면 지금 전 세계에 유대인이 얼마나 있느냐면 약1400만 명이 있습니다.
이중에 기독교인들이 소위 크리스천비율이 0.7%로 약10만 명입니다
이분들은 이미 자기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아 유대인공동체에서 쫓김을 당하면서 예수님을 섬기는데 이분들은 아주 목숨을 바치면서 예수님을 섬깁니다.
지금 미국이나 캐나다나 이런 곳에 복음주의신학교에 가보면 40-50명 중에서 2-3명이 유대인들입니다 아주 뜨겁습니다. 어디가나 유대인들이 앉아 있습니다. 소련에 가도 마찬가지고 어디가나 유대인들이 앉아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키르기스탄에 가서 신학생들100여 명을 모아놓고 3박4일을 강의를 하는데 그중에 2명이 유대인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손을 들고서 제 앞으로 오는 겁니다. 어디가나 유대인들이 다 있습니다.
이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주 놀랍게 기적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났다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유대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신데 이분들은 이방사람들을 전도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만 전도하기 위해서 이분들은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까 지금 유대인의 숫자가 크리스천의 숫자가 얼마라 그랬습니까? 10만 명을 육박하고 있는데 계시록7장에 보면 들림 받기 바로 직전에 요한이 환상을 봤는데 열두지파를 대표로 해서144000의 유대인들이 있는  모습을 본 것이 계시록7장을 보면 나옵니다.
그래서 과거에144000명이 과연 누군가? 여호와의 증인은 자기네들이다 
나중에 그 숫자가 차버렸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증인이 문제가 생겼습니다. 또 여러 신학자들이 그것을 여러 방법으로 해석을 해왔는데 요즘 와서는 새롭게 유대인의 숫자가 지금10만이고 열두지파를 통해서12000명씩 하면144000명입니다 혹시 이 숫자가 아닌가? 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도 여기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숫자가 지금 약10만이지만 그렇게 빨리 늘지 않습니다. 한 사람 전도하는데 그렇게 힘듭니다.
그래서 만약에 계시록7장에144000명이 오늘날 유대인의 크리스천이라고 가정한다면 예수님의 공중 재림 직전에 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지금이 과연 예수님의 공중 재림과 멀지 않았구나? 라는 하나의 추측도 우리가 해볼 수 있는 겁니다. 어째든 유대인의 오늘날 크리스천들은 7년 환란이 있을 때 환란을 통과하는 사람들로 성경에 보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은 7년 환란 때 핍박을 엄청나게 많은 받은 후에 예수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 엔타이 세미티즘(Enthai Semitism)다시 말하면 반 유대주의사상이 지금도 전 세계가 반 유대주의사상으로 흘러가고 있잖습니까?
7년 환란 때는 그게 더 심해져가지고 유대인들이 이 세상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핍박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앞으로 7년 환란을 3차 전쟁으로 가정한다면 그럴 때가 올 텐데 이럴 때 남은 자 소위144000명 이분들이 남은 자로써 소수의 하나님이 선택한 자들입니다 1세기에도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나 바울이나 열두제자나 120문도 소수의 유대인들 마지막 때 소수의 유대인들이 유대인복음화를 위해서 이분들이 7년 환란 때 특히 후3년 반 때 사용을 받는 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온 유대인들이 후3년 반 때 회개를 하면서 예수그리스도가 나의 구주구나 라고 외칠 때가 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대로 온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이런 것이 미스터리(mystery)신비라는 겁니다. 
우리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아랍테러사건도 이성으로는 아랍테러사건을 우리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신문이나 또는 정치인들이나 또는 역사가들은 이성적인 눈으로 아랍테러사건을 보고 신문에 보도하고 TV에 나오고 글 쓰고 그럽니다. 
그런데 우리 같은 영의 사람들은 이성적인 쪽도 봐야 되고 그와 동시에 영적인 측면에서 이해하는 그러한 눈을 가져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이성의 눈은 어디까지나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영의 사람들은 그렇다고 해서 이성의 눈이 불필요하다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그기에 머물려 있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예정 속에서 이성의 눈을 더 크게 높게 깊게 넓게 길게 뜨라고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특히20세기에 들어와서는 2차 전쟁이후부터는 특히 이성의 눈을 더 크게 뜨도록 과학을 발전시키고 문학을 발전시키고 공학을 발전시키고 생명공학을 발전시키고 전자공학 컴퓨터를 발전시켜서 이성의 눈을 많이 뜨도록 왜냐면 혼의 부분을 마음의 눈을 넓게 가지도록 그래서 고등교육을 받아야 됩니다. 이성의 마음의 큰 그릇에 성령님의 큰 비밀을 거기다가 집어넣어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과 베드로의 차이전이 여기에 있는 겁니다. 바울은 교육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이성의 눈이 밝았고 귀가 밝았고 오각이 발달되었든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그렇지 않았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늦게 바울을 불렸지만 성경의 비밀의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겁니다. 신약의 절반을 그분이 쓰게 하신 겁니다. 그와 같이 우리는 세상의 신문의 내용도 TV도 보고 세상 상식과 세상공부도 많이 해야 됩니다 치유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같은 맥락입니다
내 속에 있는 마음의 그릇을 넓히면서 그 속에 있는 더러운 것을 제거하면서 내 그릇을 넓히고 높게 하고 길게 하고 깊게 하는 것이 치유사역입니다
그것을 무시하면 큰일 납니다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오늘날 미국이나 서구에 치유사역부분에 상당히 관심을 두고 있는 이유가 이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이런 게 치유가 되지 않으면 어떤 문제가 오느냐면 극단적인 부분이 나옵니다. 자유신학이 뭐냐면 이성적으로 극단적으로 가다가보면 자유신학이 되어 버립니다. 모든 사물과 하나님의 말씀을 이성의 눈으로 자꾸 보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영성이 빠져버립니다
그런데 자유신학에서 우리가 배울 게 많습니다. 왜냐면 이성을 발전시켜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우리 신학자들은 자유신학의 그걸 유심히 봅니다. 
아하! 이분들이 이 부분에서 약하구나? 소위 복음주의신학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그분들이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걸 우리가 볼 줄 알아야 됩니다. 보면서 아하! 이분들이 어딘가 부족하구나? 약하구나?
그런데 성령 쪽만 극단적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성 부분을 무시해버리고 이성을 배제한 성령 이것은 또 문제가 심각한 겁니다. 밸런스를 맞추어야 합니다. 이 두 부분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영성의 필요성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영성의 눈으로만 들여 보다보면 이성으로 이해 안 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는 믿음의 눈으로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방인의 숫자를 채우는 일 유대인들의 눈을 감겼다가 나중에 뜨는 일 이 모든 것은 이성의 눈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 겁니다. 영성의 눈으로도 영성이 깊이 떠있지 않으면 넓게 떠있지 않으면 길게 떠있지 않으면 이걸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성의 눈으로 볼 때 뭐라고 말하느냐면 아하! 이것은 하나님의 예정이구나? 하나님의 예정이라는 큰 틀을 우리가 영의 눈으로 보는 겁니다. 아하! 이것이 하나님의 예정이구나? 엄청나게 큰 그릇의 소유자가 우리에게 한 부분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뜻이구나? 이것을 볼 줄 알아야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내가 왜 이 교회에 앉아있지? 이것도 이성의 눈으로 보면 안 되잖아요. 이것은 하나님의 철저한 뜻에 의해서 여기 앉아있구나?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고집이 센 사람은 이런 부분에서 문제를 야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집 센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자기고집이 자기 아집이 녹아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이 가면서, 가면서 유들유들해지는 겁니다. 
그게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을 다 내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어디 부족한 게 보여도 어떤 때는 비 성서적인 부분이 보여도 그냥 않아주는 겁니다. 가시역할을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성령 충만한 게 아니잖아요. 어디 이성적인 부분에서 어딘가 잘못되면 그렇게 표현을 합니다.
그러니까 치유사역이 필요하다고 보는 겁니다. 우리가 영적이라고 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이성의 자기감성에 지배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는 영적이라고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자기이성 자기고집 자기스타일에 잡혀있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영적일수록 그게 더 심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동체가 파괴적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영적일수록 우리는 더 이성적이 되어야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패러독스(역설,paradox)입니다  
영적일수록 이성적이 되어야합니다. 이것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고린도전서13장에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성적이라는 것은 뭡니까?
사람들과 관계성입니다 당신은 성령 충만 하느냐? 그러면 오래 참으라는 겁니다. 이게 다 우리이성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투기하지 말라. 온유 하라.
자랑하지 말라 무례히 행치 말라 너 이익을 위해서 공동체를 어렵게 만들지 말라 성 내지 말라 이게 전부다 이성적인 이야기들입니다 
관계성을 잘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정이라는 한 틀 속에서 이렇게 해라 이렇게 해라 하는 것은 알미니안적입니다 노력을 우리에게 요구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분은 이렇게 되어야 되는데 하나님의 예정은 이렇게 되어야 되는 사람이야! 하나님이 쓰시려면 그런데 고집을 부리면서 그렇게 안하려고 그럽니다. 알미니안적으로 노력을 안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합니까? 어떤 때는 작대기 때리기도 하고 누구를 통해서 말을 듣게 하고 그래도 안 들으면 한번 머리통을 치기도 하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분은 이렇게 저렇게 해서 하나님이 잘 빚져나갑니다
이게 정말 하나님의 예정 안에서 사랑을 받는 사람들은 이렇게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인데 말을 안 들으면 하나님의 예정 안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쓸려고 하는데 너무 고집이 세어 말을 안 들으면 하나님이 어떤 때는 놓아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 너 멋대로 해라면서 ......
이렇게 놓임을 당하면 안 되잖아요 저희 교회교인들은 그런 사람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영적일수록 이성적이어야 합니다. 
여기 앉아 있는 분들은 수준이 높은 분들이기 때문에 제 말을 알아들을 겁니다. 제일 중요한 게 영적인 사람은 관계성을 가져야 합니다. 
관계성에 이상이 있을 때는 아하! 내가 아직도 어딘가 모자라구나?
그걸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영적으로 높을 때 그렇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 관계성에 중심이 있는 사람은 오래 참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낮은 부분이 자랄 때까지 참아야 합니다.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오래 참고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이 말입니다
우리예수님이 엄청나게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들은 모르겠습니다. 
우리주님은 엄청나게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나 같으면 엄청나게 매를 맞을 텐데 하나님이 참고, 참고 하면서 매를 때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가이드하시고 이렇게 가이드하십니다 그래 알겠니? 알겠어요.
이야기해봐라 오! 주여 주님 왜 이렇게 잘 참으십니까? 그 성품 저에게도 좀 주세요. 그래 조금 가져라 하고 던져주십니다 그분성품처럼 참고, 참고 참는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영성이라는 것은 이성을 수반한다.
이것이 신비하다는 겁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비밀입니다 
우리예수님도 마찬가지로 영적이지만 이성적이십니다. 
이분은 이성적이면서 영적이었습니다. 이게 패러독스(역설,paradox)입니다 
우리는 이런 예수님을 매일매일 닮아가는 것이 크리스천들입니다
이것을 성화라 그럽니다. 갈수록 매일매일 주님을 닮아갈수록 내가 주님의 영광체가 나에게 와서 옷 입힘을 우리가 받아야합니다. 
나도 모르게 내 속에 주님의 영광체가 와서 옷 입힘이 있을 때 나중에 우리가 생명이 다해서 하늘나라에 갈 때 우리주님이 뭘 보겠습니까?
얼마나 내가 예수님의 성품과 예수님의 모습으로 영광체화가 되었나? 
그걸 보시는 겁니다. 그렇게 된 다음에 하늘보좌에 영광체가 엄청난 영광체가 있는데 그 가까이 가느냐 못 가느냐는 나의 영광 체 정도의 차이에 맞추어서 나의 영광체가 많지 않으면 주님의 성품으로 닮지 않았으면 아무리 일을 많이 하고 아무리 우리가 헌금을 많이 내고, 기도 많이 하고 해도 주님께서 나는 네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 그런 분들은 저 멀리 가서 떨어져 살게 하십니다. 주님보좌가까이 살려면 그분들은 계급이 높은 분들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랬습니다. 그분의 편지 속에 항상 이야기하는 게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하기를 원하노라 그러니까 내가 그리스도화가 되는 모든 부분에서 예수님처럼 되어가는 그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을 때 저 분은 몇 학년 몇 점짜리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한번 대입해보는 겁니다. 그럴 때 얼마만큼 장성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저도 그렇고 여러분들도 그렇고 이만큼 장성하게 해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부족한 가운데서도 계속해서 성화 장성케 되는 복을 누렸으면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소원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비밀입니다 신비입니다 
결론적인 말씀이지만 어떤 때는 내 사업이 지금 잘 안 되고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나를 장성케 하기위한 하나의 과정 속에서 행하는 그리스도의 비밀이구나? 어떤 분들은 남편을 먼저 불려 가신 경우도 있고 자녀가 누구처럼 공부를 잘 못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분은 결혼하려는데 결혼도 잘 안 되는 경우도 있고 건강에 문제가 있는 분들도 있고 여러 가지 형편들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장성케 해주려고 나에게 이런 것을 경험하게 하려고 내가 실수했지만 주님 안에서 이끌어가고 계시는구나? 내가 어딘가 부족함이 많았지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이렇게 이끌어주시는구나 이걸 생각하면 주님의 은혜밖에 다른 말로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오! 주님! 내가 사는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 안에서 내가 최선을 다하도록 성령님이여 도와주시옵소서.
순종하도록 성령님이여 도와주시옵소서. 그렇기 때문에 바울에게 하신 말씀 은혜 안에 살기에 너희들은 어떤 상황에 있든지 범사에 감사하라 어떤 상황에 있든지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라 내가 너를 내 예정 안에 두고 너의 손을 붙잡고 내가 같이 걸어가고 있다 그러니까 주위의 환경 때문에 내 눈에 차지 않는다고 감사가 없어지고 불평이 있고 걱정이 많고 그러지 말라 범사에 감사해라 그러면 너도 모르게 너 길을 인도하는 것을 네가 느끼고 그것을 깨닫게 될 거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비밀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비밀 우리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매일 고백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데리고 가더라도 저는 이 삶 속에서 항상 살 수 있는 복된 자가되게 해주십시오. 주님 앞에 매일 고백 드리면서 사는 그러한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