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시리즈

7강. 고린도전서14장13절-19절, 방언기도

변명섭 2024. 7. 28. 10:47

기도시리즈
7강. 방언기도 (고전14:13-19)
오늘 말씀은 고린도전서14장13절부터19절까지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9 그러나 교회에서 내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아멘.
오늘은 특별히 제가 방언에 대한 말씀을 같이 나누려고 합니다. 
방언은 영어로 텅(tongues)이라 그럽니다. 혀 바닥을 내보이다 이렇게 번역이 됩니다. 방언 때문에 2천년의 기독교역사 속에서 상당히 많은 문제들을 일으켜왔고 이것 때문에 교회가 많은 진통을 겪었던 그러한 일들이 여기저기에서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방언에 관한부분을 순서대로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서 방언에 대한 말씀을 제가 여러분들에게 자세히 드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하나의 설교로만 듣는 것보다 하나하나 순서대로 기억하는 것도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서 그런 마음으로 말씀을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방언하면 크게 대별해서 두 가지가 있습니다. ABA에서도 제가 말씀드렸지만 고린도전서13장1절에 보면 방언이 두 가지가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첫째 방언이 뭐냐면 그냥 사람의 말을 하는 방언입니다 예컨대 제가 갑자기 러시아말을 하거나 또는 스페인 말을 하거나 이태리 말을 하거나 이렇게 각 나라 내가 모르는 말을 하는 그걸 대인 방언이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런 방언이 있고 두 번째 방언은 무슨 방언이냐면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라라라라 솔라 솔라 이렇게 말하는 방언이 있습니다. 이것을 대신 방언이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렇게 크게 대별해서 두 가지 방언이 있는데 방언을 하는 목적이 뭐냐면 전도를 위해서 또는 선교목적을 위해서 하는 방언을 대인 방언이라 그럽니다. 예컨대 여기 갑자기 미국사람이 있는데 한국말을 한 마디도 못하는 분이 예배를 드리다가 한국말을 갑자기 하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 있는 분 중에 저 사람이 왜 갑자기 한국말을 하지하고 들어보니까 경상도 말도 아니고 전라도 말도 아니고 정확하게 서울표준말로 하는 겁니다. 그러면 아이구! 저것 하나님이 하셨구나! 하나님을 영접하는 주님을 영접하는 그런 기적들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대인 방언을 하는 경우가 있고 그다음에 대신 방언을 하는 경우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겁니다.
그냥 라라라 루루루 하는 이렇게 둘로 나누는데 예수님께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3년 동안 훈련을 시키신 다음에 이분이3년 동안에는 제자들에게 방언이라는 말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계셨잖아요. 그때 처음10일 동안에 하신 말씀이 마가복음16장15절에서17절에 제자들아 너희들 나가서 온 천하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라는 겁니다. 온 천하에 다니면서 소위 지상명령입니다
너희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마다 믿는 사람들이 나올 텐데 내가 누구라는 것을 그분들이 믿을 때마다 세례를 주라는 겁니다. 세례를 주고나면 믿는 자들 가운데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면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나타나는 사람도 있고 어떤 분들은 방언으로 말을 한다는 겁니다. 마가복음16장15절에서17절 말씀입니다 이렇게 제자들에게 약속을 하시는 겁니다.
제자들도 처음 듣는 말입니다 방언 이게 뭡니까? 귀신 쫓아내는 말은 그렇지만 방언이것이 뭡니까? 이렇게 이분들도 의문을 가지고 있다가 30일을 더 지났습니다. 소위40일째 되는 날에 부활하셔가지고 있는데 주님이 하신 말씀이 있잖아요? 예수님이 성만찬 때 약속하신 말씀 내가 너희들에게 보혜사성령을 주겠다는 그 말씀을 너희들이 받기 위해서 내가 말하는 한 곳에서 열심히 기도하라 그래서 이분들이10일 동안에 기도했잖습니까? 
예수님은 승천해 올라가시고10일 동안에 기도를 예루살렘 소위 마가다락방에서 기도를 했잖습니까? 마가다락방에서 열심히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예수님이 약속하신 방언이 이분들에게 떨어진 겁니다. 그런데 그 방언은 대인 방언으로 떨어진 겁니다. 그래가지고 그분들이 15개 나라의 말로 하다보니까 주변에 있던 디아스포라들 소위 이민 나갔던 유대인들 중에서 저 사람들이 갈릴리 사람들이 우리말을 하느냐? 우리고향 말을 하면서 놀라가지고 그분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크리스천들이 되는 그러한 역사들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있다가 이분들이 또 방언을 하는데 고넬료의 집에서 베드로가 설교를 하는데 설교가 그의 끝나 가는데 고넬료의 식구들 이태리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방언으로 말하는데 이때는 대인 방언을 하지 않고 대신방언을 하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베들로의 설교가 끝났는데 라라라라 막 하는 겁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놀래가지고 도대체 이게 뭡니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방언을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다 준다고 했는데 이게 은사기 때문에 은사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무료선물(free gift)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를 영어로  (gift of the holy spirit) 이렇게 주는데 이것을 하나님이 뭐냐면 한 성령님이 무료로 선물로 던져주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준다는 겁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선물로 주는데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준다는 겁니다. 다양각색으로 성령의 은사가 약30여개가 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은사들이 아홉 개가 고린도전서12장에 보면 대표적인 지혜의 은사, 지식의 은사, 능력행하는 은사, 믿음의 은사, 방언하는 은사,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 예언의 은사, 병 고치는 은사, 영 분별하는 은사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들인데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주는데 그중에 한 은사가 방언입니다 방언은 은사가30개 중에 한 은사입니다
한 은사인데 모든 사람들이 받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필요한사람에게 주시는 은산데 이 은사를 받으면 상당히 좋습니다. 그래서 오늘 왜 좋은지 제가 말씀을 드리려고 그럽니다.
왜 이 은사를 우리가 받아야 되는가? 그런데 이 은사를 받으려면 조건이 있습니다. 마가다락방에서 받았던 그 패턴을 우리가 따르면 됩니다.
예컨대 어떻게 하느냐면 첫째 조건이 집중적으로 하나님께 나의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10일이라는 기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집중적으로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썼다는 말은 계속해서 쉬지 않고 예수님을 집중적으로 보면서 그분에게 내 마음을 바쳤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방언을 받으시려면 이 은사를 받으시려면 우선 내가 주님 앞에 예수님에게 집중적으로 나의 마음을 바쳐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가 필요한 겁니다. 기도는 집중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깊이 묵상한다는 것은 내 마음을 주님 앞에 집중시키는 겁니다. 어떤 분들이 이 훈련이 잘되면10분 안에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1시간2시간씩 걸리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기도를 얼마나 길게 했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얼마나 집중을 잘 하느냐 집중을 하면 어떻게 되느냐면 보혜사성령님이 내 주변에 계시다가 나에게 임하시는 겁니다.
성령님이 나에게 임하셔가지고 성령님이 내 속에 깊이 들어오시는 것을 성령 충만 한다고 그럽니다. 성령님이 들어와서 내 몸을 완전히 지배하고 계실 때 성령 충만이라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집중적으로 주님을 생각하며 성령님께 의지할 때 은사가 나에게 내려오는 겁니다. 30가지은사가 지혜의 은사, 지식의 은사, 기타 등등 많은 은사들이 나에게 내려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집중하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세대는 마귀가 지배하고 있으니까 우리의 마음을 주님 앞에 집중시키지 못하는 일들이 주변에 너무나 많은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과 우리가 싸울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겁니다.
고넬료의 집에서 하나님이 이 은사들을 그 가족들에게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이 누구시다 예수님이 누구시다 그분이 어떻게 해서 인간이 되셨고 그분이 우리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 분이라고 설명을 해주니까 이분들이 거기에 집중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위에 성령이 충만 하면서 기름 부으심이 그들에게 내려오시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행전10장44절에서46절의 말씀인데 모든 사람에게 성령님이 내려오시니 그랬습니다.  
보혜사성령님이 내려오신 겁니다. 내려오시는데 이방인들에게도 성령님의 기름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그랬습니다. 기름 부어 주신다는 말은 물로 부어 주심같이 성령님이 그분들에게 임하니까 저들의 입에서 방언이 따다따다따다 막 나왔다는 겁니다. 방언이 나오는데 이분들이 성서에 보면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을 하면서 방언이 따다따다따다 나왔다는 겁니다.
방언이 집중하는 겁니다. 그런 집중된 사람들에게 가끔 스스로 방언이 터지지만 어떤 때는 그분들이 방언이 터지도록 성령님이 더 충만해지도록 성령 충만한 목사님이나 주변에 친구들이 손을 얹어서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도와주는 소위 안수라 합니다. 도와주는 겁니다. 안수를 통해가지고 방언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받는 사람의 그릇이 문제입니다
그릇이 마음 문이 성령님께 의지하며 마음 문이 열려있어야 됩니다. 
받는다는 소원을 가지고 보혜사성령님이 나에게 충만해지도록 마음 문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이개 방언과 다른 은사를 받는 중요한 조건입니다
그런데 방언이 좋다고 해서 방언을 막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방언 연습시킨다 합니다. 라라라 해봐라. 조금 더 크게 해라. 이래라. 저래라. 연습시키는 겁니다. 이런 모든 전제조건과 관계없이 그냥 외부에 나타나는 모습으로 연습시키는 방언은 잘못된 겁니다. 연습을 하면 누가 들어가겠습니까? 마귀의 방언이 들어갑니다. 무당들도 방언을 합니다. 
다른 종교도 영계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 방언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방언한다고 그래서 그게 다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님의 방언이라고 생각하시면 우리가 착각하는 겁니다. 방언은 연습을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왜 연습을 합니까? 이걸 하면 좋다고 그러니까 별난 방법을 다 만들어서 방언을 하기만 하면 된다는 과정이 중요한 게 아니고 결과에 우리가 치중하다보니까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과정이 중요한데 방언에 대해서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방언은 왜 받아야 되느냐면 방언의 유익성이 왜 하나님이 우리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방언을 주겠다고 그랬고 또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에게 방언을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방언을 받아야 됩니다. 아멘. 
방언을 받아야 됩니다. 첫째 우리가 왜 방언이 필요하냐면 우리가 아까도 보듯이 초대교회 때 예루살렘교회는 방언을 처음으로 받았을 때 어떻게 받았습니까? 대인 방언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대인 방언을 받을 수 있으면 받아야 됩니다. 그 목적은 무엇입니까? 전도와 선교목적입니다 우리가 선교지에 갔을 때 갑자기 그 나라말을 하는 그런 기도와 찬양을 할 수 있는 은사를 받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그분들이 갑자기 나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방언을 주십시오. 
첫째 유익성은 대인 방언을 받으므로 해서 선교와 전도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게 첫째 조건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나를 위한 겁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내가 이 은사가 필요합니다. 
주님! 나에게 주십시오. 내가 기도할 때 이 방언을 주십시오. 할 때는 목적이 이걸 해가지고 내가 사람들에게 유명해지고 내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아주 존경받는 그러한 포지션이 되기 위해서라면 조그만 마음이라도 내 속에 있으면 주님이 역사하지 않습니다. 우리주님은 우리의 심정을 보기 때문에 역사를 안 하십니다 만약에 역사를 했으면 하나님이 하시는 게 아니고 성령님이 하시는 개 아니고 악령이 역사를 합니다. 그러니까 항상 두려움이 역사를 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분별한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저분이 지금 방언을 하는데 저 방언이 지금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지 악령이 주시는 것인지 분별하는 분별력을 가지는 것도 은사 중에 하나입니다 분별력을 우리가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분별력을 가지려면 뭘 보고 분별합니까? 성령님이 주시는 것이라고 했을 때 그분의 인격을 보면 압니다. 그분의 라이프스타일을 보면 압니다. 그분이 말하는 거나 그분의 평소 행동을 보면 압니다. 그러면 아하! 저분이 하는 행동이나 인격을 보면 비성서적인 사람인데 방언한다고 라라라 하고 예언한다고 라라라 하고 아하! 저것은 딴 놈이 주는 것이구나. 이렇게 영 분별할 줄 아셔야 됩니다.
두 번째 혜택은 오늘 고린도전서14장 전체입니다 두 번째 혜택은 뭐냐면 예언은 교회공동체유익을 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 예언이라고 그랬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언은 교인들을 화평케 해주는 말을 하고 격려하는 말을 해주고 또 편안하게 해주는 말을 해주고 이렇게 고린도전서14장3절에 보면 나옵니다. 그런데 방언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방언은 대신 방언은 라라라 하는 방언은 뭐냐면 내가 덕을 입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이 말이 뭐냐면 내가 덕을 입는다는 말은 밧데리 충전하는 그런 뜻입니다 내가 지금 영적으로 피곤해있고 힘이 없을 때 영적으로 충전시키는 일을 하는 목적이 방언이라는 겁니다. 대신 방언이라는 겁니다. 대신방언은 기가 막히게 우리에게 도움 되는 방언입니다 내가 영적으로 힘이 없어서 만사가 다 귀찮아질 때 나를 충전시켜주는 도움을 주는 은사가 대신방언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충전해주는 이걸 받기 싫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거기다가 이사야서28장11절12절에는 이런 방언을 너희들이 받을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면서 뭐라고 그러느냐면 너희들에게 안식을 주고 너희들의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겠다는 겁니다. 이 방언을 하면 내가 안식을 하면 안식이라는 말은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리고 마음이 상쾌해진다는 겁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재충전을 주기 위해서 너희들에게 이 방언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대신방언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안 받을 수 없잖습니까? 첫째 유익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대인 방언은 선교와 전도를 위해서 대인 방언이 필요하고 두 번째는 나를 충전시켜주는 도구로써 이 방언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세 번째 유익이 뭐냐면 우리가 잘 아는 로마서8장26절27절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한 도우시나니 성령님이 도우시는데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니 뭘 기도할지 알지 못하는데도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해주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님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해서 간구해주신다는 겁니다.
예컨대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나는 뭘 기도해야 좋을지 모르고 기도할 마음도 별로 없고 그런데 나를 사랑하시는 성령님이 내 입을 통해서 우리성부하나님이 듣고 싶어 하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나를 통해서 네가 이런 이러한 도움이 필요한데 그걸 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내가 뭘 구할지도 모르고 밧데리가 다 나가가지고 뭘 구할지도 모르고 있는 이때 성령님이 나를 대신해서 하나님아버지가 듣고 싶어 하는 내가 꼭 해야 되는 기도를 성령님이 대신 해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이렇게 할 때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지만 성령님이 내가 꼭 해야 되는 기도를 아버지께서 꼭 들어야 되는 기도를 대신 해준다는 겁니다. 이게 보통 이익입니까?
그런데 어떻게 해주느냐면 아버지 뜻 대로입니다. 아버지 뜻대로 기도해준다는 겁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기도해도 내 뜻대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안 듣습니다. 그러니까 듣는 사람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가지고 하나님이 좋아하는 말을 내가 해주어야 합니다.
우리인간끼리 대화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자녀들이나 친구들이나 나와 대화할 때 내가 원하고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나에게 해주어야지 내가 듣고는 기분이 좋아서 그분에게 베풀 것도 베풀고 하지 동문서답을 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우리주님이 주기도문에서도 분명하게 가르쳤습니다.
너희들 중언부언하지 말라 중언부언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버지가 들어도 관심이 없는 듣는 분이 관심이 없는 내용을 가지고 계속 반복을 하는 기도는 하지 말라 마태복음6장7절입니다. 우리가 거꾸로 뒤집어서 말하면 과연 아버지가 듣고 싶어 하는 기도가 뭔가? 그 기도를 주님이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시는 겁니다. 주기도문으로 이렇게 기도하라 그래놓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하나님의 뜻을 놓고 기도하라는 겁니다. 
그 뜻을 밝히 깨닫고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은 만민이 복음을 받아서 주님께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가 일용할 양식을 매일 먹고 내가 잘되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거든요 하나님의 큰 뜻 주님의 재림 전까지 만민이 복음 화되는 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 뜻을 향해서 하나님이 저를 사용하십시오.
내 시간을 사용하십시오. 내 물질을 사용하십시오.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나에게 건강 주십시오.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 내가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가지겠습니다. 이 뜻을 위해서 모든 것이 이 뜻을 위해서입니다.
이 뜻을 위해서 주변사람들을 내가 용서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 뜻에 부합되게끔 기도하는 것이 의미 있는 기도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걸 잘 못할 때가 많잖아요. 그럴 때 성령님이 내 대신 이 뜻을 위해서 기도해주신다는 겁니다. 방언을 할 때 라라라 할 때 아버지가 듣고 싶어 하시는 기도를 성령님이 나를 대신해서 해주시는구나? 그러니까 방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잖아요. 첫째 해택이 뭡니까? 대인방언 두 번째는 대신방언인데 나를 충전시켜주는 겁니다. 세 번째 해택은 아버지 뜻에 맞추어서 아버지가 듣고 싶어 하는 기도를 대신 나를 통해서 해주신다는 겁니다. 
방언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복입니다 네 번째 유익이 뭐냐면 3층천 우주에 하나님아버지가 있는데 1층천과2층천에 마귀가 깔려 있거든요 어두움의 세력들이 깔려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단어로 기도하면 이놈들이 다 듣고는 딱딱 막아버립니다 3층천에 계신 아버지하나님께 상달이 잘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를 세게 해야 된다고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막 소리지렵니다. 소리지련다고 해서 세게 올라가는 게 아닙니다.  
악을 쓴다고 해서 높이 올라가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훈련 받을 때도 많잖아요. 방해하는 이놈들을 무찌르고 우리의 기도가 3층천보좌에 상달되어야 되는데 그 상달을 어떻게 하느냐면 고린도전서14장2절에 보면 방언으로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그랬습니다. 알아듣는 자가 없습니다.
비밀을 말하는 것은 신비들을 말하는 것인데 신비라는 것은 우리의 개념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는 신비로운 것을 말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방언으로 말을 할 때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비를 말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귀 놈들도 못 알아듣는 겁니다. 내가 성령님이 주시는 방언으로 말할 때는 마귀가 그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비를 말하기 때문에 마귀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겁니다. 그러니까 라라라라 할 때 1층천과2층천에서 폼을 잡고 있는 마귀 놈들의 자식들이 내가 말하는 것을 주파수가 달라서 못 알아듣는 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기도가 어떤 기도입니까? 3층천하늘보좌에 그대로 뚫고 올라가는 겁니다.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3층천에 기도하는 그 순간에 상달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브리엘천사보고 그 기도제목을 들고 내려가라 그래서 가브리엘천사가 기도제목을 들고 내려가려고 보니까 1층천2층천에 있는 마귀들이 방해를 해가지고 못 내려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귀들이 아는 겁니다.
무슨 메시지를 가지고 내려온다는 것을 아는 겁니다. 그러니까 못 내려오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이21일 동안 기도를 한 겁니다. 왜냐면 대답이 없으니까 21일 되는 날에 가브리엘천사가 내려오는데 미가엘 천사가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서 가브리엘천사가 미가엘 천사가 나를 도와줘가지고 그놈들을 다 뚫고 21일 만에 너에게 왔다는 겁니다. 다니엘서10장에 보면 그 이야기가 나옵니다. 왜 그러겠습니까? 기도라는 것은 중간에 잡놈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네 번째 해택이 뭐냐면 마귀가 알아듣지 못하니까 방언을 못하게끔 하는 그 해택이 우리에게 있다는 겁니다. 방언기도 첫째 해택이 무엇입니까? 전도와 선교 두 번째는 영적 밧데리 충천시켜주는 겁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네 번째 마귀가 방해하지 못하도록 듣지 못하는 겁니다. 그냥 직통으로 기도하게끔 하는 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직통으로 기도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도 매일매일 방언기도를 합니다. 어떤 때는 갑자기 누구를 생각하면서 혼자서 라라라라 합니다. 아무 때나 그러면 주님께서 성령님께서 아무개가 지금 도움이 필요하구나? 그러니까 저는 뭐가 필요한지 모릅니다.
그분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그분을 위해서 따다따다 합니다. 
어떤 때는 그분이 전화가 옵니다. 아! 내가 이런 어려움이 생겼는데 해결했습니다. 하고는 아하! 그 해결을 시켜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기도하게 하셨구나? 선교지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라라라라 혼자서 라라라라 걸어가면서도 라라라라 합니다 저도 이게 뭔지 모르지만 인도를 바라보면서 아프리카를 바라보면서 미얀마를 바라보면서 그기에 어떤 한 개인을 바라보면서 라라라라 이렇게 계속해서 기도해주는 겁니다. 사도바울도 그랬지 않습니까? 내가 누구보다도 방언으로 기도를 많이 한다. 대부분의 나의 기도는   방언이라는 겁니다. 방언기도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방언기도를 많이 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방언기도로 인해서 야기된 많은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점들을 제가 몇 가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방언기도가 좋기 때문에 방해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방언기도를 통해서 1세기 때 오순절교회를 통해서 안디옥교회 사도바울 이런 분들은 다 방언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방언이 고린도교회에 가서는 방언 때문에 교회가 아주 시끄러워졌습니다. 이렇게 시끄럽고 이 교회 저 교회가 방언 때문에 싸움도 일어나고 시끄러워지고 그리고 점점 교회가 1세기2세기3세기4세기5세기 정도 들어갔을 때 가톨릭교회가 생겨나면서 교회가 소위 신학적으로 지적인 교회로 변천이 되면서 방언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지적으로 가다보면 이상한 소리하고 이러니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그러는 겁니다. 왜 잘못되었다고 그러느냐면 이유는 방언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 방언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성경구절하나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3장8절에 보면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피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니라 이 말씀이 있습니다.  
아래위를 보지 않고 이 말만 보면 이분들은 어떻게 이야기하느냐면 하나님의 말씀이 신약에 들어왔을 때는 성경말씀이기 때문에 예언이니 방언이니 이 모든 은사들이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겁니다. 특히 눈에 보이는 은사들은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방언기도도 어린아이 때 하는 것이지 모든 것은 다 필요 없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고린도전서13장의 말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고 사랑이라는 열매가 모든 은사들을 사랑 안에 있는 하나의 가지들이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 있을 때는 그 속에 다 들어가 버린 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은사들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은사들이 다 묻혀버린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인데 그것을 그렇게 생각안하고 방언이 필요 없다 성경에 봐라 폐했다 그랬지 않습니까?
3세기4세기부터 방언으로 하는 말은 마귀 말이다 그래가지고 그때부터 정죄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언을 못하게 가톨릭교회가 그것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천년이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소수의 수도원에서 기도를 하는 분들은 방언의 은사를 경험했지만 바깥에 나와서 그것을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계속해서1세기부터16세기까지 16세기에 기독교에 종교개혁이 일어날 때입니다 방언하는 사람들이 그의 없었습니다. 방언하는 사람들은 이단성이 있다고 제쳐버린 겁니다. 
개신교도 마찬가지로 계속 나가다가 방언이 갑자기 터질 때가 있었습니다. 
그게 언제냐면1900년입니다 지금부터124년 전입니다 교회에 방언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가 성령님께서 인도를 하지 않으니까 역사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가1900년에 미국에서 방언의 역사가 갑자기 일어나기 시작한 겁니다. 미국의 가운데 있는 주가 캔사스주라고 하는데 캔사스주 도청소제지 이름이 토피카캔사스라 그러는데 여기에서 갑자기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기도하다가 오순절 때 일어났던 그 사건이 일어난 겁니다.
방언이 갑자기 터지고 예언이 터지고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겁니다.
그래가지고 거기 있는 사람들이 놀라가지고 과거1900년 동안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다가 1세기 때 있었던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는구나?
그래가지고 이 그룹들이 LA쪽에 있는 아주사거리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예배 보다가 다시 이 사건이 일어난 겁니다. 성령의 오순절사건이 아주사거리에 있는 교회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많은 선교사들이 불을 받아가지고 아프리카니 남미니 아시아 쪽으로 성령의 불이 흩어진 것이 지금부터124년 전입니다 그분들이 일어나가지고 불이 전 세계로 퍼지니까 각 교회마다 100명이 있으면 그 중에서3-4명이 갑자기 그 불을 받는 겁니다.
불을 받아가지고 갑자기 라라라라 하고 이러니까 목사님이 그런 말 하지마라 그게 이단이야! 하지마라는 일들이 교회마다 일어났습니다.
전통적인 교회들이 예를 들어 성공회니 장로교니 감리교니 성결교니 루터교니 전통적인 교회들이 갑자기 교인들 중 일부가 방언이 막 터져가지고 주체를 못하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교회에서 안 된다. 교회에서 쫓아내고 그랬습니다. 그래가지고20세기 초에 1900년부터1930년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각 전통적인 교단 안에서 굉장히 교회에 시끄러운 문제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방언 때문에 교단들이 막 갈라지고 교회가 갈라지고 교단이 갈라지는 일들이 그때부터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안 교단들이 아까 말한대로 성공회니 장로교니 루터교니 침례교니 감리교니 이런 모든 교단들이 약1600년 만들어진 교단들입니다 이분들이 전통적으로 개신교 쪽으로 나온 교단들인데 갑자기20세기 들어오면서 1900년도에 들어와서 새로운 운동들이 일어나니까 쫓겨난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교단을 만든 것이 오순절교단입니다 그러니까 주류교단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모여서 라라라라 방언만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전통적인 교단에서 볼 때는 미친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사람이 한쪽으로 왔다가 한쪽으로 기우려지면 그쪽으로 확 기우려집니다. 다른 게 안 보이는 겁니다. 그게 사람의 약점입니다
이분들은 모여서 그냥 라라라라 라라라 하는 겁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오순절교회에서 훈련받은 선교사가 우리나라에도 왔습니다. 그분들이 오기 전에 우리나라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 우리나라에도 불이 떨어져가지고 1903년에 한국에 와 있었던 선교사들이 모여가지고 원산에서 기도모임을 가졌습니다.
선교사들이 원산에 모여가지고 왜 한국이 이렇게 복음화가 안 되느냐?
우리선교사들이 과거10여년 이상을 열심히 복음을 전했지만 이게 잘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네끼리 모여서 회개를 했습니다. 회개를 막 하고 있는데 우리가 잘 못했다 우리가 한국 사람들을 무시했다 회개를 하고 있는 데 갑자기 그분들에게 성령의 불이 떨어졌습니다. 캐나다선교사가 주동이 되어서 했는데 그래가지고 원산에서 성령의 불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성령의 불이 떨어진 게 1903년입니다 그러니까 딱121년 전입니다 지금이2024년 아닙니까? 그래서 원산 성령강림사건100주년 기념을 했습니다. 그래서 원산에 선교사님들이 모여 있을 때 한국학생들 한국의 전도사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전도사가 길선주전도사입니다 
이분들이 거기서 불을 받고는 1907년에 평양 산정현교회에 모여서 부흥회를 했습니다. 한국 사람들 중심으로 거기에 길 목사님 중심으로 해서 성령의 불이 한국 사람들에게 떨어졌습니다. 그것이 순수 한국교회에 성령의 불이 떨어진 하나의 효시가 됩니다. 그래서 2007년에 성령 대 강림 오순절교회100주면 기념을 월드컵구장에서 했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성령의 불이 우리나라장로교단에도 떨어지고 감리교 특히 성결교 안에도 떨어져가지고 성결교 이성복 목사님 같은 부흥사들이 나오고 성결교사람들이 불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6.25가 있었고 6.25가 끝난 후에 미국의 존 허스턴 목사님이라고 오순절계통의 미국선교사가 조용기 목사님에게 그 불을 던져 주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이1955년에 이분이 불을 받아가지고 신학교에 가서 소위 우리나라오순절교단의 효시가 되는 그 일들이 일어난 겁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오순절교회들이 조용기 목사님을 중심으로 해서 나가면서 방언을 하고 병도 고치고 그런 식으로 막 나가다가 지금까지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에 그 불이 옮겨갔습니다. 그래서 오순절운동이 어떤 한 교단만이 아니고 많은 교단에 방언운동이 많이 퍼졌습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고 전 세계에 퍼져가지고 오늘날 오순절교단이 개신교교단 중에서 제일 큰 교단으로 발전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가장 빨리 교인증가속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교단이 오순절교단입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까 과거50년 동안에 이런 운동이 일어나다 보니까 꼭뒤에 가서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겁니다. 비성서적인 불신앙의 도구가 방언이 됩니다. 어떻게 되느냐면 오순절교단에서 어떤 교리를 만들었냐면 방언하면 물질도 생기고 병도 낫고 하니까 오순절교단이 기복신앙 쪽으로 교리가 흘려 갔습니다. 기복신앙 쪽으로 흘려간 게 우리나라가 대표적입니다
기복신앙 쪽으로 잘된다. 잘된다. 잘되는 겁니다. 병도 낫고 사업도 잘되고 돈을100만원 집어넣으니까 눈 뜨고 나니까 천만 원이 되고 그러니까 교회들이 하루아침에 막 커지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막 모이는 겁니다. 이렇게 하니까 소위 전통교회에서 이게 비성서적이다 그래가지고 이단시비에 휩쓸리는 겁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장로교도 감리교도 모든 전통적인 교단들도 많은 부분에서 오순절운동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장로교단은 가만히 앉아서 거룩. 거룩하는 예배방식인데 장로교단도 이제는 은사집회를 해서 방언을 하는 그런 분들도 있잖아요. 목사님들이 그렇게 은사를 받아가지고 하는 경우가 있는 겁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까 오늘날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대표적인데 특히 방언은사를 비성서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오늘 고린도전서14장에 고린도교회가 문제가 있었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었느냐면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한 사람이 갑자기 일어나서 라라라라 방언으로 뭐라고 하는 겁니다. 성령님이 지금 나에게 말한다. 
그러면서 그리고 사회 보는 사람이 방언으로 라라라라 하고 서로가 방언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시끄러워지는 겁니다.
왜냐면 방언 못 받은 사람은 이게 뭡니까? 자기네들끼리 왔다 갔다 하고 그러니까 바울선생님이 그 소식을 듣고 그 문제는 이렇게 해결하라 하고 편지 쓴 것이 고린도전서14장 오늘 말씀입니다 성령님이 뭐라고 그러느냐면 방언을 할 때는 꼭 통역이 대동해야 된다는 겁니다. 통역 그러니까 대인 방언입니까? 대신 방언입니까? 대신 방언을 할 때는 통역이 그러니까 방언통역도 은사 중에 하나입니다 꼭 통역이 따라와야 된다는 겁니다.
통역이 없이 방언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왜 잘못되었냐면 그 이유는 뭐냐면 방언자체가 나빠서가 아니고 방언을 하다보면 마귀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마귀 말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정확하게 체계화하기 위해서 그러는데 그것보다는 문제가 뭐냐면 방언하는 그 자체에 시험 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보면 누가 일어나서 잘났다고 방언을 하면 저 사람소리 듣고 싶지 않아서 난 이교회 안 나온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 때문에 소수의 넘어지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절대로 공중 앞에서는 방언으로 말하지 말라는 겁니다. 한 사람이라도 실족하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중요한 개념이 뭐냐면 실족하는 자들 때문인 겁니다. 마태복음18장에 나 때문에 실족하면 연자 맷돌을 메고 물에 빠져 죽으라고 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때문에 저 사람 때문에 나 교회에 안 오겠다. 그러면 굉장히 중요한 큰 죄를 짓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방언 할 때는 꼭 통역이 일어나서 통역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미국이나 캐나다에 가면 주일 예배 때 방언하고 찬양하는 그런 교회들이 많습니다. 찬양할 때 전부 일어나서 찬양을 합니다.
찬양이 멈춘 다음이 갑자기 한 여자가 라라라라 막 방언을 합니다.
그러면 한 사람이 일어나서 그 방언을 통역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또 한 사람이 라라라라 방언을 하면 또 한 사람이 방언통역을 해주고 대게 방언하는 내용들을 보면 누굴 욕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전부 힘주는 이야기를 합니다. 나 하나님이 지금 말한다. 너희들이 찬양하는 것을 지금 즐겁게 받고 있다 내가 참으로 기쁘다 이런 방언을 쫘악 합니다.
이렇게 모두에게 힘을 주는 이야기만 해주는 겁니다. 지금 이것이 성서적인 방언기도입니다 그리고 통역하는 사람이 없으면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기도원이나 이런데 가면 앞에 나가서 찬양 인도하는 목사님이나 또는 전도사님이나 설교하는 분이 갑자기 방언으로 말합니다. 통성기도 합시다. 그래놓고 라라라라 막 떠듭니다. 이게 잘 한 겁니까?
못 한 겁니까? 우리는 그게 통상 통념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안 하면 은혜롭지 않다는 겁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면 비성서적으로 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여기 앉아 있는 분들과 우리기도 같이 합시다 그러면서 기도를 크게 할 때는 다 같이 크게 해야 되고 혼자서 쥐 뿔 나게 크게 하는 그것은 안 된다는 겁니다. 
왜 안 됩니까? 기도소리 때문에 딴 사람들이 시험받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하려면 다 같이 크게 하고 안 하려면 다 같이 조용하게 절대로 옆 사람에게 지장을 주면 안 됩니다 대부분의 우리한국교회 새벽기도가면 그냥 막 떠듭니다. 그러니까 아주 시끄러워서 어떤 때는 그 소리를 안 들으려면 내가 소리 질려야 됩니다. 그러니까 소리 지려기 시합하다가 오는 겁니다.
아무개 기도소리 듣는 연습도 하고 그러니까 이게 의도가 잘 못 된 겁니다
주님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내가 더 성령 충만하고 더 거룩하게 보이려고 하는 이런 의도가 깔려 있는 겁니다. 이게 방언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들입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중요한 열매가 절제열매가 있습니다. 
방언이 막 나오더라도 아하! 내가 하면 안 된다 그럴 때는 혼자서 중얼중얼 혼자서 중얼중얼 사무엘 서에 나오는 한나의 기도를 보세요? 
혼자서 중얼중얼 입술만 따다따다 하는 그러니까 우리교회는 성숙한 교회가 되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 안에 깊이 있는 속이 뭐냐면 동기가 뭐냐면 제가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방언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받아야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받는 은사는 아닙니다. 왜냐면 이게 좋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이게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선교의 도구로써 자기 덕을 세우기위해서 온전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게 하기위해서 또 마귀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를 지켜 영향을 주려면 방언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방언을 이렇게 성경의 가르침대로 안 하면 마귀가 와서 방언을 시킵니다. 마귀의 방언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귀중한 은사를 위해서 간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이걸 우리게 주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나에게 주십시오. 나에게 주십시오. 항상 예수님께 이야기할 때 이런 식으로 나에게 준다고 그랬잖아요? 이러면 꼼짝을 못합니다.
말씀으로 우리가 이야기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신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냥 주십시오. 하면 안 되니까 우리가 주님에게 집중을 해야 됩니다
집중하는 연습 그래서 집중하기 위해서는 성령이 충만해지면 그러면 성령님이 내 입을 열고 이렇게 말을 하게 합니다. 방언이 왜 좋으냐면 아까 말한 유익성이 다 있지만 아하! 성령님이 나에게 임재 하셔서 나에게 역사하시는구나? 항상 이것을 우리가 확인하면서 매일매일 사는 겁니다.
방언을 받았습니다. 은사는 내가 처음에 받을 때는 어린아이 수준처럼 낮은 수준으로 하나님이 은사를 주십니다. 지혜의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식의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크게 안 줍니다 어릴 때 수준으로 조금씩 그렇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계속해서 발전시켜야 합니다.
지식도 발전시켜야 됩니다. 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 분별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은사는 자꾸 발전시켜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발전시키지  않으면 그 은사는 소멸됩니다. 아니면 줄어들고 줄어듭니다. 똑같이 방언의 은사를 받았으면  그 방언을 계속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매일 매일기도 속에서 사도바울도 하루 종일 자기는 방언으로 기도한다고 그랬잖아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24시간 쉬지 말고 기도하다는 것은 어떻게 합니까? 아무도 못하잖아요. 그게 아니고 걸어가면서 운전하면서도 밥 하면서도 계속해서 방언을 개발하고 확인하시고 이렇게 하셔야 됩니다.
방언기도가 나의 삶 속에서 그냥 나의 기도의 대부분이 되도록 방언기도를 많이 하시길 바랍니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우리교회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 받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1PHsTqLTZ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