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시리즈

6강. 호세아6장3절-6절, 여호와를 알자

변명섭 2024. 7. 20. 08:59

기도시리즈
6강. 여호와를 알자(호6:3-6)
오늘 말씀은 호세아서6장3절에서6절까지 말씀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5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었으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아멘.
제가 이이들을 키우면서 이런 경험을 할 때가 많은데 특히 아들을 키우다보면 딸들과 차이가 많이 있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장성하여 운전을 해야 하는데 부모입장에서 운전을 하다보니까 걱정이 됩니다.
혹시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아이들 셋을 키우면서 하게 되는데 특히 아들은 운전을 할 때 과속도할 수 있잖아요 아들이 운전하는 것을 옆에 앉아서 보면 앞차가 있으면 앞차를 바짝 붙어서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잔소리를 했습니다. 절대로 이렇게 하지 말라 그리고 가끔가다가 고속도로에 바짝 붙어서 운전하지 말라고 써놓았습니다
그래서 저것 봐라 그러면 알았어요. 아빠 하고 한참 가다가 보면 또 그럽니다. 그래서 제가 또 잔소리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몇 년 지났습니다.
그리고는 운전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니까 내가 옆에 있으면 바짝 붙어서 운전을 안 하려고 하는 것을 내가 느꼈습니다. 그래서 아하! 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 아는구나? 두려워서 보다도 우리아버지는 이런 걸 싫어하는구나? 이런 느낌을 제가 가졌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중고등학교 다닐 때도 보면 머리를 잘 깎지를 않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머리 좀 깎아라.
그러면 자기는 이게 좋다는 겁니다. 그러면 아빠를 봐라 아빠는 보통3주 지나지 않아서 머리를 짧게 깎는데 너도 아빠 닮아서 머리를 짧게 하면 훨씬 좋게 보일 텐데 좀 깎아라. 그래도 안 깎는데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철이 더니까 나에게 잘 보여 주기위해서가 아니고 짧게 깎으니까 좋은 겁니다.
요즘은 장가가서 자기 처가 그렇게 잔소리를 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짧게 깎는데 제 마음 속에 아버지마음을 아는구나? 그래서 제가 볼 때마다 칭찬해주면서 머리 짧으니까 보기 좋다 그러면 씨익 웃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왜 하느냐면 자녀들을 키워다보면 부모와 자녀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서로의 끈끈한 이해관계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어떨 때 부모가 자녀를 사랑할 수 있느냐면 제 개인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이 아이가 아버지마음을 알고 있을 때 알고서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어 줄 때 그럴 때 자녀를 사랑하게 되고 참으로 예쁘고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아무리 내 자녀지만 뭐든지 거꾸로 나가는 자녀가 있잖아요. 아버지 말을 무시하는 경우가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있습니다. 아직10살 미만 아이들을 키우는 젊은 부모들은 무슨 소린지 잘 모르실 겁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그것이 이해가 될 겁니다
이게 보이지 않는 대화고 그 대화를 통해서 자녀와 사랑의 관계가 되는 것을 제가 간단히 말씀드렸는데 기도시리즈에서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인데 대화를 하는 과정 속에서 상대방을 알면서 대화를 해야 되는데 상대방을 아는 것이 아니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내가 일방적으로 말하는 그러한 대화가 상당히 많습니다. 일반기도도 그렇고 개인적인 인간관계서도 그런 것을 우리가 많이 보게 되는데 예를 들면 여기이야기는 아닌데 제가 북미지역에 살 때 제 주변에 있는 사람 중 한분의 말씀인데 그분이 여자 분인데 기도도 많이 하고 성경말씀도 많이 아는 나이도 지극하신 분인데 그분에게 전화가 가끔 옵니다. 전화가 오면 제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자기이야기만 그것도10분20분이 아니고 두시간세시간을 합니다. 이런 사람 주변에 가끔 있습니다.
뭐가 그렇게 말이 많은지 자기말만 계속하는 겁니다. 그래서 알았어요?
알았어요? 저는 시간이 없는데 저를 위해서 이야기하고 지나간 이야기하는데 끊을 수도 없고 일방적인 자기야기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하도 힘들어서 제가 전화로 듣다가 소화기를 내려놓고 한참 있다가 듣고 그분에게 미안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그런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전화 오면 아주 불편한 지금도 가끔 그분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가르칠 때 보면 학생들과 대화를 하면서 어떤 이슈를 놓고 서로 대화를 시키면 한참 대화하는 걸 보면 어떤 한 사람이 집중적으로 혼자서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면 제가 요구하는 대화가 아니고 딴 이야기로 그분의 목소리가 큽니다. 딴 분들은 가만히 있습니다.
그런데 말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그분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시끄러운 것이겠죠? 토픽하고 관계없는 이야기를 막하는 그런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런 분들의 말을 보통 듣지도 않습니다. 듣지 않지만 불편하잖아요.
대화라는 게 상대방을 인식하면서 상대방이 내 말을 잘 듣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상대방이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생각하면서 말을 해야 되는데 그쪽은 생각을 잘 안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내 생각만 집중적으로 말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할 때 듣는 사람들이 피곤한 겁니다. 저도 본래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서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저분이 듣던 말든 말을 일방적으로 하는 스타일의 한 사람이 저입니다 그래서 가끔 제가 우리 집사람에게 지적을 받습니다. 그런데 나보다 더 심한 사람들도 주변에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하다보면 주변사람들이 이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생각을 못하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게 하다보면 자기이야기에 도취되어가지고 이쪽에서 기대하고 있는 대화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소위 동문서답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우리가 신경을 써야 되는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서도 똑같습니다.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과 나와 인격적인 대화라고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잖아요.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시고 그분이 무슨 말씀을 나에게 듣고 싶어 하시고 성령님께서 나에게 말씀을 주셔서 아버지하나님께 여호와께 어떤 말을 해야 되는지 성령님이 가르쳐주도록 내가 성령님께 의지하면서 그분의 가르치심에 신경을 써주고 거기서 나오는 말씀이 하나님 앞에 그대로 상달되는 이것이 기도입니다 그러려면 어떤 부분이 우리가 필요하냐면 상대방이 과연 어떤 분이고 저분이 무엇을 요구하시고 저분이 무엇을 듣고 싶어 하시는지 그분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만 알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쉬워집니다. 크리스천들이 이런 부분에서 하나님과 관계에서 약한 점이성서 속에서 보면 많이 나옵니다.
이런 부분에서 그래서 우리가 호세아서를 보면 이스라엘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하는 사람들인데 실제로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이 안다는 것을 이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를 했냐면 성전이 있어서 거기서 예배드리고 또 동물을 잡아서 각을 떠서 제사 드리고 이분들이 그걸 많이 했고 새벽부터 늦게까지 시간만 있으면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행위 새벽기도부터시작해서 우리가 전도도 하고 예배드리고 찬양 드리고 성경공부하고 설교 듣고 이모든 것이 종교행위고 나의 믿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그 자체가 나를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호세아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3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그랬습니다.
여호와를 알아라. 유대인들아 왜냐면 힘써서 여호와를 알아라. 두 번 말씀하셨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힘써라. 는 말 프레스 온(press on)그랬습니다. 프레스(press)는 눌려가지고 온(on)은 계속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노력해서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라는 겁니다. 
그리고 나와 대화하자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6절에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범죄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너희들이 제사 많이 드리고 종교행위를 많이 하고 예배를 많이 드리고 나에게 기도도 많이 하고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과정 중에 과정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신앙 생활하는 것이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예배드리고 설교 듣고 기도하고 찬양 드리고 헌금내고 가는데 그게 우리 예배드렸다 
이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하는 하나의 필요한 과정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안다는 말이 뭡니까? 안다는 말이 뭐냐면 성경에서 그리스사람들 신약에서 안다는 말을 그리스말로 기노스코(Ginosco)라는 말을 썼는데 이 말은 그 사람들의 철학적인사상 속에서 지적으로 안다는 의미입니다 아카데믹하게 안다는 의미가 기노스코(Ginosco)라 그러는데 우리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그 기노스코(Ginosco)가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뭐냐면 구약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안다는 야다(Yada!)라는 말은 우리가 부부생활을 하면서 부부가 한 몸처럼 아는 식으로 그런 의미로 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지적으로 안다는 것이 아니고 그 지식이 가슴으로 내려가서 가슴 속에서 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이 온 몸에 퍼져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안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안다는 말은 기노스코(Ginosco)라는 단어가 아니고 야다(Yada!) 삶 속에서 그것이 흘려나가도록 행동화하는 것을 안다. 라고 그랬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여호와를 알아라. 여호와를 경험해라 그런 말입니다
경험해라 경험하면 그 여호와가 내 속에서 자연히 흘려나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다보면 모든 번제 드리고 제사 드리고 하는 것은 이것을 위해서 필요한 하나의 도구지 진짜 하나님을 알게 되면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알게 되면 하나님은 자비의하나님이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겁니다. 이게 왜 그러느냐면 이스라엘사람들이 모여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데 그 안에 용서가 없고 사랑이 없고 그 안에 다툼이 있고 미움이 있고 이러면서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각을 떼서 제사 드리고 번제 드리고 이런 걸 하면 주님이 너희들은 나를 모르는구나? 하나의 형식에 빠져있다는 겁니다.
똑같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툼이 있거나 그 안에 혈기가 있거나 용서가 없거나 사랑이 없거나 이해가 없거나 자비가 없거나 교회가 그렇다면 우리교회는 안 그렇지만 교회가 아무리 커도 그 교회 안에 마름 뼈 같은 이러한 부분이 있을 때는 주님이 보실 때 이것은 너희들이 나를 아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진정한 의미의 예배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아침에 여러분들과 같이 꼭 필요한 게 하나있습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기도밖에 딴 길이 없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기도도 그냥 입으로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속성을 묵상하는 겁니다. 예컨대 기도라는 것은 대화라 그랬습니다.
아까 우리아들의 예를 들었지만 우리아들이 나와 같이 육신적으로 같은 집에서 같이 살 때 아하! 우리아버지가 성품이 어떻구나? 우리아버지가 뭘 좋아하는구나? 뭘 싫어하는구나? 이것을 이놈이 깨닫는 겁니다.
깨닫고는 우리아버지가 싫어하는 것은 하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만 찾아서 하려고 노력하는 그럴 때 우리아들이 아버지를 안다고 그럽니다.
알고는 어떻게 하면 우리아버지를 기쁘게 해줄까? 이것이 효자입니다
똑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제가 이 시간에 간단하게 여러분들이 평소에 기도하실 때 이것주세요 저것주세요 하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연습을 하세요?
첫째 속성이 뭐냐면 이게 우리가 신학적으로도 항상 이야기하는 이야기들입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에 가장 위대한 속성이 뭐냐면 이분은 주권자입니다
주권자라는 말이 뭐냐면 이분이 우주의 삼라만상을 다 창조하신 분입니다
다 지으신 분이라는 걸 항상 그것을 머릿속에 깨닫고 그것만이 아니고 이렇게 창조하신 것을 지금도지배하시고 계시고 컨트롤하고 계시고 스스로 하나님의 장중에서 이것을 운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우리가 알고 있어야 됩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도 하루아침에 깨닫게 아닙니다. 어떻게 하느냐면 기도로서 이것을 항상 이야기해주어야 합니다. 우리하나님은  주권자십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우주의 별세계를 다 지으시고 운행하고 계시죠? 이런 말로 계속해서 하나님과 대화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까지 내려가느냐면 나까지 옵니다. 그 엄청난 우주 속에 조그만 먼지처럼 있는 나 자신도 하나님의 장중에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시고 계속해서 여기에대해서 고백을 하셔야 됩니다.
이것을 말로 하시기도 하고 깊은 묵상으로 하는 겁니다. 그리고 어떨 때는 피곤할 때는 드러누워서 하나님을 묵상하는 겁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제가 드러누워 있는 이 침대 이 자리도 하나님이 지배하고 계시죠? 
그리고 가까이 있는 내 자녀들을 보면서 내 자녀들도 지배하고 계시죠?
외국에 있는 내 자녀들 지배하고 계시죠? 아프리카에 있는 아프리카사람들 다 지배하고 계시죠? 저 산들 금강산 무슨 산 하나님이 다 지으시고 하나님이 만물을 다 주관하고 계시죠? 이것을 깊이 묵상하는 겁니다. 
우리마음이 세상일에 바쁘다보면 이런 묵상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마귀가 끊임없이 이런 묵상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잖습니까? 
그래서 제일먼저 하나님의 주권을 묵상하셔야 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만물이 여호와하면 예수님입니다 여호와 예수님으로부터 나왔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겁니다. 만물이 다 개미 한 마리까지 조그만 미생물 아메바까지 코끼리 큰 동물 만물이 여호와 예수님께로부터 나왔습니다. 
끊임없이, 끊임없이 자꾸 고백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걸 주관하고 계시죠?
그것뿐입니까? 예수님을 통해서 만물이 다 만들어졌고 예수님을 통해서 지배를 다 받으시는군요. 오늘날의 역사도 예수님을 통해서 움직이시고 예수님에 의해서 움직이시고 예수님 안에서 움직이시는군요. 이 주권자이심을 고백하는 겁니다. 우리아들놈이 아빠! 아빠는 우리집안에 주인이시고 아빠 때문에 우리자녀들이 복을 받고 있고 아빠 아니면 우리집안이 무너집니다.
아빠! 아빠가 최고입니다. 이렇게 자꾸 말해주면 기분 좋은 거나 똑같습니다. 우리하나님 앞에 하나님! 하나님은 우주만물의 통치자시고 지배자시고 이것을 주관하시는 주권자이십니다. 이것을 혼자 첫 기도로 항상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까 기도 속에서 하나님아버지를 이야기할 때 형용사를 집어넣어서 우주만물을 지배하시고 우리의 생사화복을 지배하시고 이 모든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을 한 손에 쥐고 계시는 하나님아버지시여! 여호와시여! 하나님을 형용사로 이렇게 높여드리는 겁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말은 첫째로 하나님의 중요한 속성하나를 깊이 묵상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여러 개가 있는데 몇 개를 드리겠습니다. 두 번째 속성이 있습니다. 
두 번째 속성은 이분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영원하신 분이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모든 사물은 피조물들은 영원하지가 않습니다. 언젠가는 없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영원이라는 말은 시작이 없고 끝이 없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시간이라는 게 없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인간으로 내려오셔 가지고 인간역사의 타임 속에 내려오셔서 인간역사를 시작했고 끝을 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분을 알파와 오메가라 그럽니다. 알파와 오메가는 시작과 끝입니다. 역사 속에 내려오셔 가지고 인간수준에서 시간개념을 이야기할 때 이야기하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 안에 들어오면 이분은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에 나도 피조물이지만 영원한 존재로 변화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니까 내가 예수님 때문에 영원한 그분 때문에 내가 영원한 존재로 되어버린 겁니다. 그 엄청난 복 이것을 묵상하는 겁니다. 이걸 깊이 묵상할 때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어려운 일들 이것들은 다 없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이것들을 내가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임합니다. 
주변 환경들이 나를 지배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묵상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처음에 하나님의 주권을 묵상하시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영원성을 묵상하시고 세 번째는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전지라는 말은 하나님이 모든 걸 다 알고 계신다는 겁니다. 이 우주 속에 있는 모든 걸 예컨대 지금60억 명의 세계인구가 있는데 60억 명의 세계인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한순간에 다 알고 계시다는 겁니다. 이게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아프리카밀립 속에 있는 한 할아버지에게 너 지금 무슨 생각하니?
왜 그런 생각하니? 그와 동시에 한국지리산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너 왜 그런 생각하니? 동시에 알고계십니다. 60억 명의 인구와 동시에 대화할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뿐 아니라 모든 생물과도 대화하시는 엄청난 지혜를 가지시고 엄청난 지식을 가지시고 능력을 가지신 분이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것을 깊이 묵상하시다 보면 여호와하나님! 예수님! 예수님 지금 황 목사가 1초 전에 무슨 생각을 하신 것 벌서 아시죠? 
그러면서 어떻게 해야 됩니까? 죄송합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우리주님이 이런 분이라는 걸 우리가 깊이 깨달을 때 죄송합니다. 라는 말밖에 딴 말은 할 말이 없습니다. 왜냐면 꿰뚫어보고 계시니까? 
꿰뚫어보고 들으시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우리주님이 마태복음10장30절에 내가 너희들 머리털까지 다 세고 있다고 그랬잖아요. 
머리털 세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전지전능하신 분 무소부재하신 분 우주 어느 곳에서나 동시에 나타나시는 분이십니다. 
이분이 지금 여기에도 와 계시고 내가 어디 가서 숨어있어도 주님이 거기에도 계신 겁니다. 숨을 곳이 없는 분 그러니까 입만 열면 주님! 보셨죠? 아셨죠? 죄송합니다. 밖에 할 말이 없는 겁니다. 이것을 깊이 묵상하는 것이 하나님을 여호와를 아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이런 분이라고 알 때는 우리가 말조심해야 됩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다 듣고 계시니까 생각도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생각하는 것도 다 감지하고 계시니까 그러니까 철저하게 이분이 이런 분이시구나 라는 것을 알 때 내 행동도 조심하게 되고 말도 조심하게 되고 우리가 실수하는 게 왜 그렇습니까? 깊이 여호와를 모르기 때문에 경험하지 않기 때문에 실수하는 겁니다. 여호와를 아는 것은 매일매일 기도 속에서 먼저 시작해야 되는 겁니다. 전능하신 분, 전능이란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신들을 합친 것보다 더 능력 있으신 분이십니다. 
이걸 다른 말로 표현하면 죽은 자의 생명도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이걸 조금 가볍게 생각하면 나에게 있는 시시한 문제들 해결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내 기준으로 하나님을 보실 때 해결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입자에서 볼 때는 해결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그런데 해결안 해준다고 해서 하나님이 아니신 것은 아니잖아요. 해결해주실 터인데 어떤 때는 나를 위해서 해결안해주실 때도 많습니다. 하나님의 큰 시각으로 볼 때 어떤 때는 10년 후에 이 문제를 해결해주시기도 하고 어떤 때는 죽기 직전에 해결해주시기도 하고 그러십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조그만 하나의 점입니다 우리의 시각으로 볼 때 엄청난20년30년 이야기하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잠깐만 기다리라고 그러십니다. 그래서 내가 이분을 알고 묵상하고 이분을 내가 깊이 내속에 소화할 때 우리가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사물을 해석하는 눈이 달라지고 또 나의 믿음이 달라지고 나의 성품이 달라지고 그렇게 됩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속성 몇 가지를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이분은 사랑이시다 그럽니다. 이분은 자비로운 분이시다 
이분은 용서를 기쁘게 해주시는 분이시다 은혜로우신 분이시다 이분은 기타 등등 많습니다. 이분이 하나님이시다 이런 모든 것을 특히 이분은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항상 느끼시고 나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그렇게 고대하시는 분이시구나 이렇게 이분의 속성들을 깊이 알고서 이 속성을 깊이 묵상할 때마다 그 속성의 성령님께서 나에게 들어오시도록 그래서 나의 피조물의 이 속성이 하나님의 창조주속성으로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는 그래서 그분의 속성을 내가 받아주는 것 이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이분의 속성을 받아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나의 피조물의 속성을 뱉어내는 겁니다.
뱉어내고 하나님의 속성을 나에게 주세요. 그래서 그분의 속성을 대체시키는 그것을 우리가 이 목숨 다할 때까지 계속해서 해나가는 것을 우리는 성화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모습으로 내가 조금씩, 조금씩 변해 가는데 어떤 분들은 이런 걸 잘 안하니까 하나님이 삶속에서 환경 속에서 어려움을 주어가지고 하나님께 가까이 오도록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려움을 허락해가지고 그게 하나님의 사랑의 사인입니다 어떤 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어려움을 주지 않아도 그걸 잘하는 분들에게는 어려움을 줄 필요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인데 왜 어려움을 줍니까? 어려움을 당할 때는 회개하는 겁니다. 주님 내가 어딘가 하나님보시기에 합당하지 못한 성품이 있으니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주님!
이 어려움 이것을 통해서 내가 더욱 주님을 가까이 갈 수 있게 해주세요.
이렇게 해서 어떤 과정을 통하더라도 내가 하나님의 성품으로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닮아가는 그리스도와 동질성의 사람으로 되도록 그분의 속성이 나에게 스며드는 이 일이 기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기도를 통해서 묵상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침시간이 중요한 겁니다. 아침시간에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게 좋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고 뭘 주십시오. 라는 것을 다 던져놓고 하나님의 속성을 생각하면서 기도를 한번 해보는 겁니다. 목상을 해보는 겁니다. 이걸 금년한해가 지나가기 전에 한번 계속해보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영성이 아주 깨끗해지고 모든 부분에서 자기가 변화되는 부분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리 그런 기도를 한번 해봅시다.
멀리 사는 사람들은 새벽기도 못 오는 분들은 한 달에 한번정도는 오세요.
한 달에 한번정도는 오셔서 이렇게 주욱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성화되니까 그러면 우리가 모르는 능력이 나타나고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모든 영적인 은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깨끗한 그릇 속에 나타나니까 그게 깨끗해지는 겁니다. 이런 부분을 우리가 하지 않고 무조건 은사주세요?
주여! 3창 부르고 이러다보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고 나의 기준으로 하나님을 이해하고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하니까 잡놈들이 들어옵니다.
잡놈들이 들어와서 은사 받아서 예언한다고 그러고 뭐한다고 그러고 은사 받아서 이렇게 하다보니까 이것이 그냥 복잡하게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사람들도 똑같습니다. 오늘 본문말씀 속에서 너희들 나를 제발 힘써 알라는 겁니다. 알라는 것은 야다(히브리어로 알다)나를 경험하라는 겁니다. 
내가 누군지를 경험하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분말씀이 나의 자비를 경험하면 자비를 베풀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이스라엘사람들이 크리스천공동체 안에서 이런 것이 없다는 겁니다. 제사는 많이 드리고 번제는 많아 드리는데 인애가 없다는 겁니다. 인애라는 것은 머시(자비,Mercy)가 없다는 겁니다. 용서가 없다는 겁니다.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불쌍한 마음이 안 들어간다는 겁니다. 고상한 사람들을 보면 고상한 그런 마음의 동조가 없다는 겁니다. 나밖에 내 생각만하고 나만 잘되면 되고 내 중심으로 가는 이게 마귀의 마음이라는 겁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공동체들이 이런 부분으로 많아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조금 더 커지면 내 교회밖에 없는 겁니다. 옆에 교회가 불나서 다 망하던 안 망하던 나는 모른다. 내가 속해있는 내 공동체 이런 생각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것이 사회공동체로 나가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이기주의가 강한지 모릅니다. 다른 나라는 보다 더 합니다.
이 동네를 보세요. 분당과 죽전 사이에 길을 만들었는데 분당사람들이 넘어오지 못하게 길을 막아놓았다고 하잖아요. 제가 이걸 보면서 막말로 분당사람들은 다른 동네 길로 다니지 않느냐? 자기밖에 모르는 사고방식 이것이 우리에게 팽배하게 있는 겁니다. 자기는 다른 동네 길 안 다닙니까?
분당에서만 있습니까?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고 전부가 다 같이 잘살기 위해서 우리가 이걸 해야 된다고 생각해야지 자기만 생각하는 자기부동산값만 생각하는 이런 나쁜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깔려 있습니다. 자기생각만 하는 사람들이 깔려 있습니다. 우리크리스천들은 그러지 말아야 되잖아요.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을 알고 그 속성이 나에게 들어오도록 그래서 내가 하나님으로 변화되도록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거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거다 이렇게 제가 결론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형식화된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어떻게 알게 될까요? 깊은 묵상을 통해서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걸 묵상하라는 겁니다. 여호수아에게도 하나님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라! 다윗에게도 너희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라! 구체적으로 하나님말씀이 뭐냐면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의 속성을 깊이 묵상하는 우리 모두가 금년 한 해 동안에라도 그렇게 한번 해봅시다.
이것저것 주세요. 라는 다 내려놓고 하나님을 묵상하는 연습을 한번 해봅시다. 아멘. 그러면 나머지는 줄줄 다 해결됩니다. 떨어져 나가고 줄줄 다 해결됩니다. 한번 큰 걸 놓고 묵상하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아멘. 눈을 감으시고 제가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을 해보세요?

제가2,3,4분을 드릴 테니까 혼자서 묵상해보세요 그냥 듣고 마는 것보다 하나님의 주권 전지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자비로우신 하나님! 사랑이신 하나님! 용서하시는 하나님!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 이런 하나님 그 하나님의 실체를 내가 깨닫게 해주시고 깊이 깨닫게 해주시고 넓게 깨닫게 해주시고 높이 깨닫게 해주시고 크게 깨닫게 해주시고 그 하나님의 사랑이 오래 참으심! 은혜 베푸심! 용서 베푸심! 이런 성품들이 나에게 흘려 내리게 해주시옵소서. 그리고는 환상으로 내 자신을 보고 흘러내리는 것을 묵상 속에서 경험하고 주변에 사랑하는 자들을 찾아보고 내 아들딸 하나하나 보면서 하나님의 성품이 아들딸에게 흘려 내려가는 것을 내가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겁니다. 내 남편, 내 부인, 내 부모님들, 시어머니, 시아버지, 장인, 장모, 사촌들, 삼촌들, 고모들, 처남들, 사랑하는 주변 분들만 가지고 그것이 더 넓어지면 주변에 우리교인들과 남을 위해서 중보해주시고 이렇게 주욱 흘려가는 겁니다. 이러다가 미션 팀들, 미얀마, 중국, 인도, 아프리카까지 가는 겁니다. 

지금 이 시간은 예수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하나님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깨닫게 하심과 순종케 하심과 하나님의 성품을 매일매일 묵상케 하시는 능력이 우리 모두에게 순간순간 매일매일 있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Ya-3-zStMk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