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시리즈

8강. 히브리서5장7절, 예수님의 기도생활

변명섭 2024. 8. 8. 11:15

기도시리즈
8강. 예수님의 기도생활(히5:7)
오늘 말씀은 히브리서5장7절의 말씀입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아멘. 오늘 기도시리즈는 여덟 번째로 우리예수님께서 어떻게 기도생활을 하셨는가에 대한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여러 요소들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말씀은 특히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으로 생각하기에 한분도 딴 생각하지 마시고 오늘 말씀에 잘 경청하시고 우리 삶속에서 말씀이 적용되기를 바랍니다. 4복음서에서 예수님의 기도생활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4복음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4복음서에 예수님의 기도생활에 관 이야기가 열일곱 번 나옵니다. 그중에 일곱 번이 다른 곳에서 나오고 열 번이 누가복음에 나옵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기도에 관한 특히 그분이 기도생활 했던 부분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학자들이 왜 하필이면 누가복음에 예수님의 기도생활에 대해서 많이 나올까요? 몇 가지 의견을 서로 나누는 가운데서 누가는 예수님을 어떻게 보았냐면 완전한 인간으로 보셨던 겁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완전한 하나님으로 보시고 그리고 마태는 예수님을 왕 중의 왕으로 보시고 마가는 예수님을 고난의 종으로 보셨습니다. 그래서 누가라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완전한 인간이라는 측면을 고려하시면서 인간이 되신 예수님하나님께 다시 말하면 성부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시면 안 되신 그 입장을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에게 이해가 조금 안 될지 모르지만 제가 여기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을 드리려고 그럽니다. 
어떻게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이 되셔가지고 기도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하나님이신 그분이 그리고 이분이 인간이 되셔가지고 기도를 하시는데 오늘 본문말씀을 하셨지만 이분이 보통 기도가 아닙니다.  
그는(예수님)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성부하나님에게 그다음에 성령하나님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 그랬습니다. 같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 앞에 통곡을 하며 눈물을 흘리며 간구와 소원을 올렸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경건(공경)하심으로 성자하나님이 성부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심한 통곡과 눈물과 간구로 기도를 드렸더니 그 성부하나님이 들어주셨다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을 해도 우리가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왜 안 될까요?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왜 이렇게 기도를 해야 되느냐 입니다. 그런데 특히 하나님이신 이분이 인간의 약한 부분의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기도를 할 필요가 있느냐 입니다. 여기에 대한 의문이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수십 년을 하셔도 여기에 대한 의문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이분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전지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전능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무소부재하십니다 어디든지 다 계신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신 그분이 왜 기도가 필요합니까? 그것도 자기와 같은 수준인 같은 계급인 성부하나님이 삼위일체론에 의하면 같은 분입니다 같은 위치에 있는 분입니다
삼위 위만 다르고 격만 다르지 같은 위치에 있는 그 하나님이신데 그분에게 기도를 할 필요가 있느냐 입니다. 게다가 우리예수님은 창조주십니다
그분의 손에 의해서 이지구의 모든 것이 지음을 받지 않는 것이 없는 예수님이 창조주시고 이분이 또 모든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시고 그 만유를 한손에 쥐고 계신 분이십니다 이런 대단하신 분이 왜 이렇게 아주 처절한 모습으로 말씀을 하시면서 대화할 필요가 없는 자기와 같은 격인 아버지에게 왜 기도를 해야 되느냐 이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완전한 인간이 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속성들을 다 가지고 인간이 되셨습니다. 인간이 되셨는데 어떻게 되었냐면 하나님의 본인의 속성을 다 가지고 계시면서 인간이 되신 게 아닙니다.
빌립보서2장6절부터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들어보세요.
그리고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말씀하신 겁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냐면 예수님은 완전한 근본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의 본체라 그랬습니다. 내용이 변함이 없는 본체라는 겁니다.
본인이 인간으로 이렇게 오셨지만 내용상으로는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분이 하나님하면 성부하나님을 우리가 일반적으로 지칭을 합니다.
성부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7절에 자기를 비워가지고 뭘 비웠냐면 이분이 본체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다 털어서 비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다 비워버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자기를 비워서 종의 형체를 가지고 사람들과 같이 되었다 그랬습니다.
이때 원어를 보면 종의 형체라는 것은 종의 형체를 그대로 가지고서 하나님의 신성을 다 포기하시고 그러니까 이분은 본래 하나님이신데 인간이 되셔가지고 겉모양은 본래 하나님의 모양을 그대로 가지고 계시지만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모양으로 온전히 겉모양이 변해버렸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속성을 다 가지고 사람과 같이 되었다 그랬습니다. 되었다는 단어가 기그네스타이 라는 헬라어가 무슨 말이냐면 일시적으로 잠깐이라는 소리입니다. 잠깐 하나님이 사람과 같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잠깐이 몇 년 동안입니까? 33년 동안 사람과 같이 되어가지고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다 포기해버리시고 잠시 사람과 같이 되어가지고 사람의 형체로 나타나가지고 우리가 말하는 완전한 인간이 되신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은 그 당시 인간이 되었을 때 예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이 땅에 와서 계신 분이십니다. 지금 하늘에는 누구누구가 계십니까?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이 계시고 성자하나님은 완전히 사람이 되셔서 우리역사 속에 내려오셨다는 겁니다. 그 성자하나님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지만 이분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죄를 짓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또 지를 안 지으신 분이시고 못 지으신 분이십니다 이 부분이 사람과 다른 부분이지 나머지는 사람의 모든 속성을 다 가졌습니다. 이 예수님이 이 하나님이 이 창조주가 그러니까 엄청난 변화입니다 엄청난 양보입니다 
엄청난 우리인간에 대한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나의 친구가 되신 겁니다. 이것을 우리가 깊이 깨달을 때 오늘 성가대가 부른 찬양이 엄청난 나에게 감동을 주십니다. 우리하나님의 자녀가 이 감동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속성들을 가지고 계시면서 육체적으로 배고픔도 느끼시고 졸음도 느끼시고 피로도 느끼시고 갈증도 느끼시고 다 느꼈습니다.
그것뿐입니까? 정신적으로 예수님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이신 분이 그리고 감정적인 기폭도 있었습니다. 화도 내시고 어떨 때는 막 우시기도 하시고 슬퍼도 하시고 기분 좋으시면 웃으시고 이런 모든 감정의 기폭도 다 가지셨고 자기가 사랑했던 제자들이 배신했을 때 마음의 외로움도 느끼시고 여러 가지로 우리가 평상시 느끼는 모든 것을 다 가졌습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마음속에 신성부분이 남아있기 때문에 본인이 인간으로 내려오신 목적이 뭔지는 본인이 알고 계십니다.
알고 계신데 육의 몸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인간의 나약한 피조물이 가지고 있는 육의 몸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이분의 나약성이 여기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지금 여기 배고픔 졸음 감정적인 기폭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가 구속자로써 구원자로써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야 된다는 것도 다 알고 계시고 그것 때문에 오신 것을 본인이 알고 계십니다.
알고 계시지만 인간의 약한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이 인간의 약한 부분 쪽에서 그쪽으로 깊이 치우치다보면 본래 본인이 하나님아버지와 성령하나님과 성자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구속주로 내려오신 이 부분에 대해서 자꾸 마음에 갈등들이 오는 겁니다. 육적인 부분 속에서 깊이 들어가다 보면 그게 우리인간의 나약한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본래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그것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는 육을 가지신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 아세요. 아버지와 계속해서 연결선을 가지고 대화를 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성부하나님의 주시는 성령하나님의 마음과 연약한 인간이 된 성자하나님의 마음과 계속해서 열람이 되어야 됩니다. 열람이 되지 않으면 인간이 되신 성자하나님이 여기서 이걸 이겨나가지 못하는 겁니다.
왜냐면 마귀의 방해들이 많고 육으로 인간의 모습으로 왔기 때문에 육의 나약한 때문에 이것이 잘 안 되는 겁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녀들이지만 우리도 아직 육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육의 나약한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기대치에 우리가 차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마음은 하고 싶은데 우리제자들에게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는 겁니다. 우리예수님도 그걸 그대로 경험하시는 겁니다. 우리예수님은 우리에게 본인의 라이프스타일 기도에 관한 라이프스타일을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우리가 왜 기도를 해야 되느냐를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줄 겁니다.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분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누가복음3장21절부터 나오는 말씀입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는 인간 예수가 어떻게 했냐면 세례를 받자 말자 예수님이 성부하나님께 성령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누가복음3장21절에 보면 세례만 받으신 게 아니고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내용은 우리가 모릅니다. 성자하나님이 완전히 인간이 되셔가지고 성부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내용은 제가 추측건대 성부하나님! 성령하나님! 우리가 처음 계획해서 인간구원을 위해서 나를 여기에 보내신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내 마음에 갈등이 없게 나를 붙잡아주세요, 
아마 이렇게 기도하셨을 겁니다. 그러니까 기도를 끝내니까 무슨 사건이 일어났느냐면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왔다 그랬습니다. 성령이 그냥 내려온 게 아니고 나중에 오순절성령세례 받는 것과 똑같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인간예수께서 기도하시니까 보혜사성령님이 임하셨다 
비둘기 같이 그랬습니다. 임하셔서 예수님의 몸속 깊은 곳에 성령님이 쫘악 임하셨던 것입니다 다시 요즘 말로 말하면 성령세례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인간예수님이 받으셨습니다. 예수님도 이걸 받으셔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세례를 받으시고는 갑자기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그 말씀이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예수님의정체성을 다시 한 번 예수님에게도 알리시고 세례를 준 요한에게도 알리시고 주변에 많은 사람들에게도 알렸습니다. 예수님도 본인의정체성을 계속해서 재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나의정체성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확인해야 됩니다. 확인이 언제 되는지 아십니까? 예수님도 확인을 어떻게 받았습니까? 기도를 하시면서 기도하셔서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임하면 그때 내가 나의정체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도안하면 우리하나님의 자녀들이 구원은 그냥 받았지만 기도안하면 영생이 나에게 깊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기도한다는 뜻은 뭔가요? 예수님이 기도한다는 뜻은 나의 육신이 약하다는 겁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지만 우리예수님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내가 지금 육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의 나약성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자칫하면 마귀의 공격도 있고 본래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이 궤멸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을 다시 열람하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하나님의 뜻이 되도록 열람시켜주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러면 거기서 파이프라인에서 힘이 내려옵니다. 기름 부으심이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내 뜻을 이루기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주님이 그 기도를 받지 않으십니다. 마귀가 받습니다. 기도가 어떤 기도입니까? 우리가 그래서 보좌의기도 왕상의기도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면서 주님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지난 과거에 일곱 번을 그 말씀을 계속 드렸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위해서 계속기도해서 그분의 뜻이 내 뜻으로 연합되도록 이것이 전정한 의미의 깊은 기도입니다 주님은 기도하실 때 이 기도를 하시는 겁니다. 오리지널아버지의 뜻이 이 뜻인데 그 뜻에서 내가 변이되지 않도록 그래서 기도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이 계속해서 기도를 안 하시면 이분이 육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이게 자꾸 마음의 갈등이 오는 겁니다.
예수님도행동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깊은 기도를 안 하면 우리도 하루아침에 달라집니다. 환경에 지배를 받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뜻을 이루려고 그러고 내 욕심이 먼저 나오고 내 주장이 나오고 알고 보면 기도도 그런 식으로 밖에 기도하게 되는 우를 범할 수가 있습니다. 주기도문에서 주님이 말씀했잖아요. 중언부언하지 말라 하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는 겁니다.
이렇게 기도를 한 다음에 하나님께서 우리주님이 첫 번째는 제가 세례 받으실 때 기도하셨던 장면을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그 성령의 능력을 받으셔가지고 이분이40일 금식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능력을 받으시고 그다음에3년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순절다락방에서 나오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우리에게 임해야지만 그다음에 우리가 주님 일을 우리가 할 수가 있습니다. 세계선교도 할 수 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 능력을 받으셨습니다. 성경 공부하는 거나 또는 설교를 이렇게 들으시는 것은 이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 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만나서 그분의 진액을 빨아먹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공부 많이 하고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것도 좋지만 그 수준에만 머물면 안 됩니다 기도로써 힘을 받아가지고 기도로써 하나님의 진액을 내가 빨아 먹어야지만 그때 능력이 나타나는 겁니다.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합니다. 그게 기도가 절대적입니다 기도 없이는 오순절다락방에서 기름 부으심을 받았을 때는 어떻게 했습니까? 10일 동안 전혀 기도에 힘썼다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주님은 너희들은 먼저 기도 생활하라는 겁니다. 여러분들 집에 가서도 조용한 골방에서 혼자 아니면 새벽에 여기 나오시든지 어디에 계시든지 주님과 나와 기도의 경험을 깊이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주님은 두 번째로 제자들을 뽑을 때 이미 하나님이 열두 제자들이 누구누구라는 것을 성부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잖아요. 그분이 다 계획하신 분 아닙니까? 여러분들 그러면 가룟유다도 계획하셨습니까? 
제 생각에는 하나님이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잘못 뽑으신 게 아닙니다.
계획을 성부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성령하나님께서 다 하셨는데 성자하나님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성자하나님이 이성을 가지고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완전한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열두 명을 뽑으시는데 우리예수님이 다시 성부하나님께 여쭈어보는 겁니다. 누구를 뽑을까요? 그래서 이분이 산으로 올라가서 성부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깊은 기도를 밤이 새도록 철야기도를 했다고 그랬습니다. 정확하게 많은 제자들 중에서 누구를 고를까요?
그래서 성부하나님께 물어보시고, 물어보시고 그래가지고 그기에 대한 답을 받으시고 내려와 가지고 많은 제자들을 앉혀놓고 너, 너, 너 해서 열두 명을 뽑았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를 뽑으실 때도 우리예수님은 꼭 성부하나님께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과 자기의 뜻과 열람을 시키는 겁니다. 
열람을 시켜서 마음에 서로가 하나가 되어서 누구누구라는 것을 정확하게 받으신 다음에 일을 하셨습니다. 기도하시는 첫 번째 이유는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두 번째는 뭐라고 그랬습니까? 하나님과 나와 마음이 열람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서 기도를 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누가복음6장12절13절에 제자들을 차출하는 겁니다. 제자들을 차출할 때도 기도를 주님이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교회안수집사님이나 또는 권사님이나 집사님이나 장로님이나 성령님께서 나에게 감화 감동주시고 아버지께서 이렇게 해라 하실 때 하는 겁니다.
그런 응답이 없으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주님이 보시기에 준비되었다 그 사람 지금은 안 되었지만 그래도 앞으로 준비할 수 있는 그릇이 준비 되었다는 주님이 확인시켜주었을 때 하는 겁니다. 
너 마음대로 할래!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나를 안 시켜주니까 이 교회 떠나래! 이런 사람들 얼마나 많습니까? 떠나지 않기 위해서 붙잡아주는 하나의 도구로써 한다면 그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세 번째로 우리주님이 언제 어떻게 기도하였냐면 변화 산에 올라 가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변화 산에 올라갔는데 예수님이 변화 산에서 그 당시만 해도 변화 산이 그냥 산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예수님이 기도를 하시니까 성부하나님께 기도를 하시니까 갑자기 예수님의 용모가 변해버리는 겁니다. 기도를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기도를 하시니까 하늘의 영광이 예수님 앞에 쫘악 나타나고 과거에 성육신하시기 전 본래 예수님모습이 하나님의 모습으로 변하고 옷이 희어지면서 광채가 났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이분이 과거의 모습으로 오리지널 본인의 모습으로 돌아가시려도 육이 싹없어지고 오리지널모습으로 돌아가시려도 성부하나님께 부탁드리고 성부하나님과 마음이 열람이 되었을 때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이게 하늘나라에 삼위하나님의 원칙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바울을 통해서 너희들 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랬잖아요. 쉬지 말고 너의 마음을 성부하나님께 성령하나님께 성자하나님께 마음을 갖다 열람시키라는 겁니다.
그럴 때 능력이 나타나는 겁니다. 파이프라인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한다는 겁니다. 하늘의 비밀이 보이기 시작하고 다시 말하면 영적으로 높아지려면 영성이 높아지려면 우리예수님이 변화 산에서 기도를 하셨을 때 이분의 영적으로 높은 부분이 보였듯이 광채가 나타났듯이 내가 기도를 해야지만 하나님의 보좌에서 흐르는 광채가 나에게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를 할 때 광채가 자동적으로 오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광채는 내 속에 죄의 성분들이 제거 되었을 때 오는 겁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모든 미움과 질투와 좌절과 걱정거리들이 조금 조금씩 제거되었을 때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의 성품들이 나에게 대체될 때 이럴 때 내 속에서 성화작용이 일어나면서 광채가 나에게 비춰지는 겁니다. 그러려면 이 성화작용이 어떻게 하느냐면 기도를 통해서 한다는 겁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씻으시는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태우시는 능력 씻으시는 능력 새롭게 변화시키시는 능력으로 내가 매일 옷을 입어서 나를 변화시켜주는 겁니다. 이것이 변화시키는데 개념적으로 되는 게 아니고 기도를 통해서 성령님이 나에게 임했을 때 강하게 역사했을 때 내가 변화를 받으면 내 속에서 새로운 개체로 변화된 모습이 내 속에서 이렇게 나타나는데 평소에는 안 보입니다 우리가 다 안 보이지만 영의 눈을 떠서 보면 그분의 광채가 보이는 겁니다. 저분이 하나님의 자녀지만 광채가 있는 그게 보입니다. 얼마만큼 성화된 사람인가? 아닌가? 열어봐야 하는데 어떻게 아느냐면 기도를 통해서 우리예수님도 기도를 통해서 그 광채를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도를 통해서 어떤 경험을 우리주님이 하느냐면 이게 대단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우리주님이 제자들에게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야고보서1장에 보면 시험이라는 단어가 원어로 두 가지 단어가 나옵니다. 시험이라는 단어가 우리나라 말로는 그냥 시험이라 했지만 원어에는 두개의 다른 단어가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같은 시험으로 번역했는데 첫째 단어가 뭐냐면 페이라스모스라는 시험을 영어로 테스트(Test) 트리얼(Trial) 이렇게 번역을 해놓았습니다. 
같은 시험인데 이게 뭐냐면 하나님이 나를 더 훈련시키기 위해서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나를 더 성장시키기 위해서 어려움을 하나님이 허락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페이라조라는 말은 뭐냐면 내가 어떤 일에 잘못해서 내가 죄를 지어서 하나님이 마귀를 허락해서 어려움을 당하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내 잘못 때문에 받는 시험입니다 그것을 페이라조라 그럽니다. 오늘 예수님이 겟세마네동산에서 잠을 자고 있는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 할 때 뭐라고 썼느냐면 페이라스모스라 그랬습니다.
그리고 주기도문에서도 시험에 들이 않게 우리를 보호해주십시오.
라는 말 이때도 페이라스모스라 그랬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정신을 차리고 항상 내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열람되는 것을 원하시는데 열람되는 기도를 하지 않을 때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렇게 되도록 훈련을 시키는 겁니다. 그럴 때 페이라스모스를 허락하십니다.
계속해서 어렵게 만듭니다. 뭐가 잘 풀리지 않습니다. 내가 죄를 지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해서 정신을 차려서 하나님을 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 허락하신 페이라스모스가 있습니다. 
예컨대 제 남편이 교회에 안 나옵니다 그게 내 잘못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남편이 교회에 안 나오는 분들 있잖아요. 나를 더 하나님과 가까이 만들고 남편 때문에 자녀 때문에 하나님이 당분간 허락하시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게 페이라스모스입니다 그럴 마다 이런 페이라스모스가 있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랬습니다. 왜냐면 이것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도구가 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주님이 주기도문에서는 될 수 있으면 이런 경험을 하지 않고 나에게 오는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겁니다. 그때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이런 불필요한 훈련을 받지 않고 주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나? 입니다. 그래서 잠언3장6절에도 그랬잖아요.
이렇게, 이렇게 하면 너희 길을 지도하시리라 다시 말하면 너희 길을 똑바로 만들리라 다시 말하면 꾸불꾸불하지 않고 똑바로 지름길로 빨리 가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이렇게, 이렇게 하면 짧게 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어려움이 와서 이게 잘 풀리지 않으면 내가 제대로 하긴 하는데 잘 안되면 아하! 이게 페이라스모스구나? 하나님! 내가 페이라스모스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주님과 나와 깊은 열람되는 기도를 하라는 겁니다. 문제는 열람되는 기도 아버지의 마음과 예수님의 마음이 열람되듯이 여기 나와 아버지의 마음과 열람되는 기도를 하라는 겁니다. 기도를 하는 목적이 뭐냐면 인격적으로 하나 되기 위해서 기도하라는 겁니다. 뭘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어린애들 기도입니다 인격적으로 하나 되기 위해서 예수님의 이 모습을 제가 겟세마네동산의 이 기도를 보면 아하! 예수님도 사람이었구나? 라는 걸 제가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이분도 시험을 받으시구나? 라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겟세마네동산에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올라갔는데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애들아 원어로 돌맹이 하나 던져서 가는 거리에 가서 내가 기도를 할 테니까 너 네들은 이쪽에 그냥 있어라 그리고 예수님이 돌맹이 던지는 그 거리로 가셨습니다. 가서 예수님이 혼자서 어떻게 기도하였냐면 나는 마음에 고민이 많고 지금 슬프다는 겁니다. 왜 예수님이 구원자로 오셔가지고 그 당시 육은 조금 괴롭겠지만 십자가에 돌아가시니까 그렇지만 육은 괴롭겠지만 앞으로 모든 인류가 다 살아날 것을 생각하니 기뻐해야 되는데 왜 거꾸로 심히 고민스럽고 슬퍼다 그랬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예수님도 시험받으셨습니다. 육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이분도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왜냐면 마음은 본인이 죽어야 되고 왜냐면 그것 때문에 본인이 이렇게 인간으로 오셨는데 그런데 육적인 부분 당면과제인 육적인 부분을 생각할 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라 그리고 깨어 있어라 나는 괴롭다 그랬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이런 괴로운 모습을 아버지성부하나님께 기도하시는 걸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성부하나님께 뭐라고 그랬는지 아세요?
첫째 기도가 마태복음26장39절에 나오는데 이분이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십자가사건을)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다시 말하면 제가 십자가 안 지게 해주소서. 그러는 겁니다. 예수님이 시험에 들었습니까? 안 들었습니까?
그것 때문에 오셨는데 그것 때문에 구약전체스토리가 그렇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의 최대의 사건이 그것 때문인데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인데 이분이 지금 하시는 말씀이 제가 가능하다면 십자가 안 지게 해주십시오.
인간의 나약성 완전한 인간이 되신 자기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님이 원치 않는 짓을 저도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이고 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도 그러시는데 그러니까 육을 가진 우리는 주님 앞에서 똑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불가능 한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이웃들이 육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수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저 사람 목산데 저 사람 전도산데 선교산데 집산데 장론데 권산데 왜 저러지? 하면 육을 가졌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이해해주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육의문제를 우리가 극복하고 육의 나약성을 극복하고 영적인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면 더 깊은 기도를 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기도를 하셨는데도 지금 이렇습니다.
이미 전에 보세요. 예수님이 변화 산에서 사건도 경험하셨잖아요.
비둘기가 내려와서 성령세례도 받으셨잖아요. 다 받으셨는데 육의 부분에서 다 받으셨는데도 시간이 가니까 이게 희미해지는 겁니다.
이래가지고 나중에 마지막 순간에 가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이런 말씀을 하면 안 되는 말씀을 이분이 하시는 겁니다. 우리성부하나님이 보실 때 얼마나 섭섭하셨겠습니까? 그런데 이분이 그 말씀을 딱 해놓고 할 수만 있거든 제가 십자가 안 지게 해주소서. 하시고는 다시 신성수준으로 말씀을 바꾸어서 하시는 말씀이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말씀을 바꾸는 겁니다. 왜냐면 육을 가진 사람은 오락가락하는 게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잖아요. 죄를 지어놓고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이러면 안 되잖아요 안 되잖아요 당연히 이런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게 성령에 잡힌 사람과 잡히지 않는 사람과의 기도의 차이점입니다.
성령에 잡히지 않는 사람은 잘못해놓고도 그냥 그것이 아하! 그런 갑다.
그렇지만 잘못해놓고는 아하! 주님 내가 이러면 안 되잖아요.
이 부분이 차이가 나는 겁니다. 우리주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예수님도 이런 분이었습니다. 이분이 이렇게 육신의 연약함을 직접체험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육신의 연약함을 보시고 우리를 체휼하신다고 그랬습니다. 본인도 경험했기 때문에 아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극복하기 힘들다는 것을 다 아십니다 그러니까 이라가 이런 부분에서 딜레마가 있을 때 주님이 우리를 안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친구라 그러시는 겁니다.
이런 경험을 이분이 하시고 주님 제가 될 수 있으면 십자가 안지겠습니다.
경험하시고는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대로 하십시오. 그래놓고는 이분이 마음이 이상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기도하시고는 다시 제자들에게 와서 제자들을 보니까 다 졸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애들아! 너희들 시험받지 않게 일어나서 기도하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구나? 본인의 고백입니다 본인의 고백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생각했을 겁니다. 베드로야! 이 사건이 끝나고 겟세마네동산에서 내려오면 나를 잡아갈 것이고 너는 나를 세 번씩이나 부인할 거다 그러니까 보세요. 베드로가 거기서 하나님아버지와 깊은 기도가 있었더라면 아마도 세 번 부인하지 않을 줄도 있었습니다. 
영성을 깊이 가졌으면 그렇지만 하나님이 그것도 아마도 그대로 허락하셨던 것 같습니다. 네가 그래야지만 너 스스로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를 네가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걸 허락하셨을 겁니다. 그뿐입니까 나머지 제자들 예수님의 십자가사건 후에 다 도망갔잖아요. 왜냐면 깊은 기도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들도 그냥 성경 공부만 했던 겁니다.
예수님의 관한 것만 알았지 그 하나님과의 깊은 기도가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다 도망갔습니다. 누가복음에는 그렇게 자세하게 설명 안했지만 마태복음에는 그게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기도하실 때 누가복음22장43절44절에는 뭐냐면 두 번째 기도하려 가실 때 어떻게 했느냐면 천사가  와서 예수님을 도왔다고 그랬습니다. 천사가 와서 예수님이 이런 좌절 속에 계실 때 기도도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를 안 하시면 아주 어려운 상황 속에 들어가실 때 천사가 와서 예수님을 도와서 그에게 힘을 부어 주셨다고 누가복음22장43절에 그랬습니다. 힘을 부어 주셨다는 말은 뭐냐면 파워를 집어넣어 주어서 이분이 용기를 가지도록 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천사를 통해서 힘을 받으신 겁니다.
아! 내가 이제 십자가에서 이길 수 있겠구나! 그 고통을 내가 이길 수 있겠구나! 두려워하면 안 되겠구나! 그다음에 하나님의 뜻이 뭔지를 다시 재확인시키고 이제 내가 두려움에서 이길 수 있겠구나! 우리인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두려울 때 기도를 통해서 천군천사들을 통해서 힘을 받아야 되고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서 우리도 힘을 받아야 됩니다.
이 모든 걸 하려면 뭘 통해서 해야 됩니까? 기도를 통해서 밖에 안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 힘을 받았기에 그때부터 기도가 깊이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그전에는 그런 깊은 기도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분기도도 누가복음22장44절에 그랬습니다. 그가 더욱 간절히 기도를 시작했고 얼마나 간절했느냐면 땀방울이 났는데 그 땀방울이 피 방울처럼 그런 모습으로 땅에 뚝뚝 떨어졌다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더 깊은 묵상의 기도로 들어간 겁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기도를 하셨던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 기도의 내용은 마태복음26장42절에 그 기도의 내용이 다릅니다. 마태복음26장42절에 그랬습니다.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첫째기도하고 같습니까? 다릅니까? 그러니까 이 잔이 꼭 마셔야 되는 잔이라고 아버지가 생각하신다면 내가 꼭 마시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신 겁니다. 첫 번째 기도하고 다릅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아버지 뜻을 열람하는 기도를 할 수 있었을까요? 천사들이 와서 도와주고 내가 하나님과 깊은 묵상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마음과 내 마음이 열람되었을 때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의문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이렇게 깊은 영적 깊은 아버지와 관계 속에 들어간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그 말씀하시고는 하루 있다가 십자가에 아침9시에 달리셨는데 낮12시가 되었습니다. 3시간 이후에 운명하셨는데 3시간 동안 이분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아십니까? 하시는 말씀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분이 아버지에게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 말은 뭡니까? 
이분이 상당한 배신감과 스트레스를 받으신 겁니다. 하루 전만 해도 아버지 뜻대로 이 잔을 받겠습니다. 해놓고 하루사이에 육을 가진 사람들은 그러한 변화무쌍합니다. 육을 가진 사람들은 그러니까 계속해서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하려는 사람들도 시간이 조금 지나가면 또 딴 생각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완전한 인간이 되신 예수님이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예수님이 만약에 아버지와 깊은 관계를 유지하지 아니 하셨더라면 아마도 저 십자가 안지겠습니다.
이렇게 까지도 할 수 있는 그러한 시험까지도 받았을 겁니다.
마귀는 계속해서 예수님을 시험하시는 겁니다. 십자가를 지지 말라고 그렇지만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지셔야 되지만 그 과정이 조금 지연될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었을 겁니다. 예수님이 계속해서 기도로써 하나님과 열람되지 않았으면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기도로 더 열람되는 깊은 기도를 하지 않았으면 이런 시험을 받는데 이런 깊은 기도생활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끊임없이, 끊임없이 우리이름이 하늘나라에 기록될 하나님의 자녀지만 영적으로 마귀의 유혹을 우리가 이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예수님도 이기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가지고 계시면서 이렇게 주님께서 전투를 하셨습니다. 육신을 이기시려고 그러다가 나중에 숨을 거두시면서 하신 말씀이 요한복음19장31절에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 속에는 엄청난 감격이 있고 승리의 주님의 환희가 숨어 있지만 그 뒤에 깔려 있는 것은 엄청난 고통과 좌절과 배신감과 우리가 인간적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경험하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제가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예수님도 육을 가지고 계실 때 기도생활을 하지 않음으로 해서 경험하셨던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과 내 마음과 열람하는 기도를 끊임없이, 끊임없이 쉬지 말고 해야 합니다 안 해도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에게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구원계획 속에서 어떠한 도구로써 주님의 지상명령에 불리 움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끊임없이 기도하지 않으면 이 일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꼭 기도는 쉬지 말고 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예수님처럼 산 속에 들어가 혼자하시기도 하고 어떤 때는 걸어 다니면서 하시기도 하고 어떤 때는 군중 앞에서 그냥 하시지만 어떤 때는 그분과 깊은 기도를 못하셨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깊은 기도를 하려면 혼자서 조용히 묵상하며 관상기도 보좌를 향한 기도로 방언의 기도를 우리가 계속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실 때 주님이 보시기에 과연 내가 내 뜻대로 쓰실 수 있다고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도 그런 사람으로 사용 받지 않을까? 라는 그러한 말씀을 우리함께 상고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막연히 기도해요. 기도해요. 기도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기도하면 된다. 이것은 어린아이수준의 기도입니다
기도안하니까 안되지 않습니까? 그런 말을 하지만 조금 더 깊은 의미에서 기도를 우리는 깊이 성부하나님을 쳐다보면서 그분의 뜻을 우리가 깨닫고 그분의 뜻을 향해서 기도하고 그러니까 이제는 성자하나님이 내 옆에 계신 겁니다. 예수님이 내 옆에 계셔서 이분이 내가 뭘 경험하고 있는지 다 아십니다 본인이 직접 체험하셨기 때문에 그러니까 우리의 친구가 항상 되어주셔서 애야! 너 이런, 이런 부분에서 갈등 있는 걸 내가 안다 
네가 더 하려고 해도 잘 안 되는걸 안다 내가 도와줄게 도와주시잖아요.
그러니까 나의 친구 되시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그 대신에 그러지 말고 힘내라 내가 힘줄 테니 나도 그랬단다. 힘내라 보좌에 있는 아버지를 향해서 너 마음을 갖다 바쳐라 나도 그랬단다. 그렇게 하니까 나에게 힘을 다 쏟아라 너희들도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 기도 이 기도는 주님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다시 한 번 꼭 해야 되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영의 숨결이구나! 다시 깨닫기를 원합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Bq0eYSb-nV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