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강,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롬1:2-7) 2014년6월8일 말씀
오늘 본문은 로마서1장2절에서7절까지 말씀인데요,
이미2절3절4절을 가지고 제가 몇 번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읽지 않고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서술하시면서 제일 먼저 다른 편지에도 마찬가지지만 항상 자신의 정체성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뭐냐면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다
그리고는 또 예수그리스도의 사도 다, 라는 이 두 부분을 제가 주욱 설명하여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이분이 뭐라고 그러느냐면 복음의 정체성을 이분이 또 설명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복음이 뭔지 아느냐 그러면서 이분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다윗의 혈통으로 성육신하신다는 구약의 예언을 시작으로 해서 이분이 인간이 되셔서 대속의 죽음을 하시고 부활하신다, 그래서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으셨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가 되셨다,
라는 이 까지의 내용이 좁은 의미에서의 복음입니다
바울이 그래놓고는 여기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셔가지고 복음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부터 이제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내 민족과 타 민족에게 전할 때 이럴 때 복음의 정체성이 완성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냥 점진적으로 예수님이 이런 분이다,
라고 이해하는 여기에서 머물려는 것이 아니고 동적으로 이것을 행동화할 때 그럴 때 예수님의 복음이 완전히 정립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런 말을 하시면서 로마 교인들에게3차 여행 끝나면서 주후57년에 고린도에서 쓰신 겁니다, 이 편지를 끝내시고 이분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면서3차 여행을 끝냈습니다, 이분이 로마 교인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게 봐라 내가 주후35년에 내가 개종되어서 예수님을 만난 그때부터 시작을 해서 지금57년이니까 그러니까 22년 동안 내가 예수님의 정체성인 이 복음을 깨닫고 내가 열심히22년 동안 내 민족과 타 민족을 향해서 달려왔다 그러니까 복음을 내가 지금 완성시키고 있다,
라는 이런 차원에서 이분이 지금 로마 교인들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나는 그냥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적인 의미에서만 깨달은 것이 아니고 동적으로 내가 이것을 행하여 왔다 복음자체를 내가 행하여 왔다,
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분 속에 들어가 있는 마인드가 뭐냐면 내가 이렇게 1.2.3차 여행을 주욱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여 봤는데 그런데 이 복음을 믿는 자들이 많았는데 이것 때문에 감사도하고 감격도하고 하는데 그런데 이분들이 보니까 삶의 변화가 없다는 겁니다,
자기 경험에 의하면 그리고는 순종하는 사람들이 많지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항상 편지 속에서 인사할 때 이 복음이야기를 하시면서 따라오는 말이 뭐냐면 너희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을 찌어다,
라는 명령적인 간구를 꼭 던집니다, 이분의 편지 속에서 이분의 모든 편지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은혜와 평강이 따를 지어다, 그랬습니다, 원어에는 당신들에게 로마 크리스천들에게 은혜가 주어져야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평강을 받는데 누구의 평강을 받느냐면 성부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흘려 나오는 평강을 받는다는 겁니다,
이게 바울신학의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강이 아니고 아버지와 예수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평강을 받는다,
그럴 때 전제조건이 뭐냐면 은혜가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은혜를 먼저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오늘 이 부분을 제가 간단하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은혜 이것은 헬라말로 카리스라 그럽니다,
이것을 로마 카톨릭에서는 은총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또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페이브(Favor) 호의 저 사람이 나에게 호의를 베푸신다, 이런 의미가 그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성서에서는 카리스라는 단어와 같이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많이 씁니다, 카리스마는 우리나라말로 은사라는 단어로 표현됩니다, 은사라는 말은 뭐냐면 무료로 받는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프리 기프트(Free Gift)라는 뜻입니다 은사와 카리스는 다릅니다,
고린도전서12장9절에 보면 아홉 가지의 은사가 있다고 그랬습니다,
지혜의 은사들 지식의 은사들 있잖아요, 여기에서는 카리스마라 그랬습니다, 저 사람이 카리스마가 있다고 그러면 그것은 또 다른 의미입니다
평강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피스(Peace) 헬라말로는 에이레네라 그럽니다, 이 말을 평강 또는 평안 또는 화평 또는 화목이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에이레네 우선 사도바울의 서신을 주욱 보면 하나같이13개의 서신을 보면 바울이 이 단어를 썼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성경구절을 드리겠습니다, 고린도전서1장3절에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는 항상 바울은 편지를 쓰시고는 마지막 결말을 내리실 때 꼭 들어가는 단어가 있습니다, 뭐냐면 은혜와 평강을 안 쓰고 은혜가 있기를 원하노라 그렇게 결론을 내리십니다, 편지를 길게 쓰신 다음에 애들아 너희들에게 은혜가 있기를 원하노라 그러니까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라고 하면 안 됩니다 왜냐면 평강은 무엇에서부터 옵니까,
은혜로부터 오기 때문에 은혜가 지금 중요합니다,
그래서 은혜가 있기를 원하노라 고린도전서16장23절에 그랬습니다,
똑같이 고린도후서도1장2절에 은혜와 평강 고린도후서13장13절은 아주 유명합니다, 우리 목사님들이 축도할 때 쓰는 축도의 내용이 고린도후서13장13절입니다, 그다음에 갈라디아서1장3절에 똑같이 은혜와 평강 갈라디아서 끝나면서 6장18절에 은혜가 있기를 원하노라 그랬습니다,
또는 에베소서1장2절에 똑같이 에베소서6장24절 빌립보서1장2절 빌립보서4장23절 골로새서1장2절, 4장18절, 데살로니가전서1장2절 5장28절, 또 데살로니가후서1장2절 3장18절. 디모데전서1장2절 디모데에게 쓴 전서와 후서는 신기한 게 바울이 순교직전에 쓴 겁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쓸 때 거기에 하나가 중간에 들어간 겁니다, 뭐냐면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여기다가 긍휼을 가운데 붙여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은혜가 임하면 긍휼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영적아들에게 긍휼과 평강 그리고 끝날 때는 디모데전서6장21절에 은혜하나만 말했습니다, 똑같이 디모데후서1장2절에 은혜와 긍휼과 평안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리고 4장22절에 은혜로 끝냈습니다,
디모데에게만 긍휼을 가운데 집어넣었지만 긍휼을 집어넣지 않아도 긍휼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 조금 있으면 제가 설명할 겁니다, 디도서1장4절에 은혜와 평강3장15절에 은혜, 빌레몬서3절에도 은혜와 평강 또 25절에 은혜, 오늘 지금 로마서도 보시면 로마서1장7절에 오늘 본문말씀 은혜와 평강 그리고 로마서15장33절에 이분의 편지가 어떻게 보면 마지막입니다 16장은 자기 제자들에게 안부이야기들입니다
15장33절에 보면 거기에는 은혜 대신에 평강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참고로 베드로는 어떻게 편지를 쓰느냐면 베드로를 보면 베드로전서1장2절에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 지어다, 라고 말을 썼습니다,
이분은 성품이 강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선생님은 이런 식으로 썼습니다, 그다음에 베드로전서5장14절에는 평강이 있을 지어다 베드로후서1장2절에 똑같이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 지어다 이분도 순교직전에 쓴 편지이기 때문에 그동안에 여러분들이 은혜와 평강이 많았지만 더욱 많아지라고 아마 안타까워서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베드로후서3장18절에도 은혜가 있을 지어다, 라고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요한도 보면 요한2서1장3절에 은혜 긍휼 평강이 있을 지어다 이분은 마지막 결론을 내릴 때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요한1서, 3서 계시록 여기에는 이런 인사가 없습니다,
유다서1장1절에는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많을 지어다 이렇게 유다가 말했습니다, 히브리서나 야고보서는 이런 표현이 없습니다,
은혜와 평강할 때 평강을 먼저 쓰면 안 된다고 그랬습니다,
먼저 뭐가 필요합니까,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은혜가 어디에서 옵니까, 원천은 아버지와 아들에게 주어지는 그 두 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내가 잘 나서 받는 게 아닙니다,
이것은 칼빈주의에서는 특히 은혜를 강조하는데 이 은혜는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입니다 주권적인 무료선물입니다
내가 운이 좋거나 내가 노력을 하거나 또는 내가 기도를 해서 내 소원이 이겁니다 내 의지를 발동해가지고 받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프리 기프트라는 단어 카리스 카리스마 이런 단어에 숨겨진 내용이 거기에 있는 겁니다, 그래서 칼빈은 이 부분을 어떻게 강조하느냐면 저항하지 못하는 은혜 칼빈이 말하는 게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실 때는 내가 막을 길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항하지 못하는 은혜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분이 은혜를 베풀어 줄 때는 내가 막을 길이 없다는 겁니다, 일반적인 그냥 폭포수 같이 큰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겁니다, 이 은혜가 그러니까 우리 출애굽기33징19절에는 여호와께서 예수님께서 모세에게 이 은혜에 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세야 너가 잘나서가 아니고 모세가 자꾸 힘이 듭니다,
백성들이 내 말 안 듣고 우상 섬기고 특히 금송아지섬기고 나는 이걸 컨트롤 못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그러는 겁니다,
나는 은혜를 줄자에게 은혜를 내가 주고 긍휼을 베풀 자에게 긍휼을 내가 베푼다는 겁니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도 내가 은혜를 베풀지 않을 때는 지 아무리해도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일방적으로 주는 거랍니다
모세야 그러니까 너는 이 은혜를 받았기에 너가 잘나서가 아니고 일방적으로 내가 너 한데 지금 주는 거라는 겁니다, 출애굽해가지고 내 자녀들이지만 이스라엘사람들이 말 안 듣는 것 고집 센 게 다 나의 장중에서 하는 거다, 너가 우상 안 섬기는 것 금송아지 너 형은 섬겼지만 너가 금송아지 안 섬기는 것도 너가 나한데 너가 잘나서가 아니고 은혜를 지금 받아서 너가 지금 안하는 거야 그런 말슴을 지금 하시는 겁니다, 모세야 너 잘나서가 아니다 내가 너에게 은혜를 베풀었기 때문에 그렸다
그러니까 은혜를 받은 자 어떤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느냐면 내가 나 있는 모습 이런 모습임에도 불구하고(이러면서도 불구하고) 나 이 모습 이런데 저는 정말 은혜 받을 자격도 안 되는데 사람들이 날 보면 씨익 웃는데 이런 나의 추한 모습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분이 결정하시는 겁니다,
환경을 조성하시는 겁니다, 내가 은혜를 받도록 예컨대 은혜 받는 사람은 우선 어떻게 성품이 변해야 되느냐면 팔복의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팔복의 이런 사람이 되도록 환경을 통해서 나를 이끌고 말씀을 통해서 나를 이끌고 분위기를 통해서 이끌고 그래서 팔복의 사람이 나는 되기 싫은데도 되도록 이끄시는 겁니다, 모든 환경을 통해서 우리교회 성도들도 이렇게 보면 제가 특별히 재미있는 이야기하는 사람도 아니고 예화도 재미있는 예화 들려주는 사람도 아니고 우습게 이야기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딱딱한 이야기만 그것도 짧게 하는 것도 아니고 한 시간 한 시간 반 하는데도 앉아 있으면서 저와 영적으로 교감하는 걸 보면 아하! 이것은 주님이 주시는 은혜가 아니면 이끄심이 아니면 이것은 불가능하구나,
라는 것을 저도 느끼고 여러분들은 안 느끼십니까, 제가 짧게 설교하면 왜 짧습니까, 하면서 덤벼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길수록 좋습니다,
그럽니다, 이것도 주님이 우리에게 이 은혜를 베푸셔서 그런 겁니다,
이 은혜를 이렇게 느끼는 사람은 항상 감사의 말이 통합니다,
내가 이러면서도 불구하고 주님이 왜 이렇게 이끄시는지 왜 이런 일을 자꾸 주시지 그러니까 은혜가 충만할수록 항상 감사 감격 이걸 고백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불평이 내 입에서 안 나오는 겁니다, 벌써 내 입에서 어디에서 불편한 게 있어서 불평이 나오면 아하 내가 지금 은혜가 떨어졌구나,
순간적으로 은혜가 충만해지려면 항상 감사해야 됩니다, 바울이 이런 시각의 변화가 온 겁니다,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사물을 보는 시각의 변화가 온 겁니다 육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혼의 눈으로 사물을 보다가 이성적으로 사물을 보다가 이제는 한 단계 올라가서 영적시각으로 사물을 보는 겁니다,
이것이 은혜를 받은 사람이 나타나는 증거 중의 하나입니다,
사물을 세 눈으로 보는 겁니다, 육의 눈 이성의 눈 그다음에 영의 눈으로 보면서 그때. 그때 사물을 또는 역사를 어떤 사건을 이것을 잘 밸런스 맞추어 가면서 소화하는 능력이 바울이 이 경험을 했기 때문에 데살로니가교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데살로니가전서는 주후51년에 쓴 겁니다,
바울이1차 여행을 언제 했느냐면46년에서48년에1차 여행을 했습니다, 그리고는1차 여행 갔다 오고 그다음에2년 있다가50년에서52년에2차 여행입니다 2차 여행할 때 데살로니가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래가지고 데살로니가에서 계시다가 고린도에 내려오셨는데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 벌써 바울에 대한 불평을 하고 바울을 힐난하고 바울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하고 이런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럴 때 바울이 자존심이 많이 상했습니다, 그러면서 편지를 쓴 것이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어디에서 썼냐면 고린도에서 쓰실 때 이분이 데살로니가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성령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게 바울아 너 기분 나쁘지 너가 정성을 다해서 그분들에게 은혜를 많이 끼쳤는데도 감사가 없지 그 사람들 그러시면서 데살로니가전서5장 마지막 부분에서 유명한 말씀하시잖아요, 5장16절에서18절에 항상 기뻐하라, 데살로니가교인들아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바울 이분도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분이 은혜를 체험하면서 이제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으로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변화는 겁니다, 범사라는 말은 어떤 상항에 처하더라도 어떤 상항이 당신 앞에 지금 있더라도 그런 소리입니다
항상 감사하라는 겁니다, 이것은 시각의 변화가 보통 변화가 아닌 겁니다, 지금 바울에게 부정적인 이야기하고 바울이 그렇게 정성 드렸는데도 자기의 자존심 건들리는 이야기할 때 성령님이 바울에게 너 그것도 감사해라 바울이 은혜를 체험하다 보니까 그것을 소화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바울을 통해가지고 그 교회 교인들에게 너희들 범사에 감사하라 그러면서 이것이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란다, 그러시는 겁니다, 이게 아무리 이런 말을 해도 은혜를 받은 그 교회 몇 사람이 이것을 소화하고 삶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항상 기뻐할 수 있고 그리고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것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이 그러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그러면24시간 기도만 합니까, 그러면 이 세상 삶은 어떻게 삽니까,
기도라는 개념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된 개념 예컨대 어디 앉아서 무릎 굻고 앉아서 입을 열고 말하는 그것을 기도로 생각하거든요 그러나 그 기도는 아주 지엽적인 초기단계의 기도모습입니다,
이 기도는 우리시편19편14절에 보면 다윗의 기도스타일을 보면 다윗은 그분은 왕이시기 때문에 나라를 통치해야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골방에 앉아서24시간 기도만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다윗은24시간 어떻게 예수님과 이 채널을 연결시켰느냐면 이분의 고백이 이겁니다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그리고 나의 마음에 묵상이 주께 열람되기를 바랍니다, 이 말은 뭐냐면 이분이 입을 열고서 기도하는 게 있습니다,
그것도 기도입니다 그다음 마음에 묵상이 항상 일하면서도 국사를 보면서도 마음의 묵상이 항상 예수님 앞에 가 있고 예수님 뜻과 연계해서 모든 일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24시간 예수님과 동거하면서 대화하면서 세상일을 하면서 이렇게 있는 그 상태가 기도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말로 하는 그 기도는 낮은 수준의 기도입니다 마음의 묵상의 기도는 엄청난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을 깨닫고 에베소서3장20절에 바울이 하나님의 사랑이 크심을 깊고 높고 길고 또는 넓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시면서 그랬습니다,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 이것은 입으로 구하는 겁니다,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묵상입니다 거기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우리 예수님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기도는 입으로써 말하는 게 있고 그다음에 항상 생각하는 것 묵상하는 것 이것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빌립보서2장13절에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소원을 듣고 행하시는 분이 우리 소원이라는 게 말로 하는 게 아니거든요 내가 소원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걸 말하는 게 아닌데도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겁니다, 이분에게 초점을 맞추면 저는 가만히 앉아서 혼자 있으면서 전 세계가 가슴 속에 탁 들어오는 겁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대륙을 쳐다보면서 주님 그냥 그러면 아프리카를 향해서 내가 주님과 대화 하고 있는 겁니다, 인도가 보이고 중국이 보이고 여기가 보이고 저기가 보이고 이게 보이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 거기에 있는 사역자들 주님 이 혼돈된 이 복음에서 정돈되기를 소원합니다,
내가 입으로 말 안 해도 그것을 항상 마음속에 그리고 내 속을 주님에게 드리는 겁니다, 이렇게 은혜를 받은 사람은 제일 먼저 감사가 입에서 자꾸 나와야 됩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왜냐면 시각의 변화가 오는 겁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시각의 변화가 오면서 은혜를 받은 사람은 시각의 변화 중에 가장 큰 시각이 뭐냐면 창조의 목적에 나의 시각이 가게 되는 겁니다,
나를 창조하신 예수님이 우주를 창조하신 예수님 우리70억 인구를 창조하신 예수님 예수님이 가장 기대 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창조를 하실 때 목적이 무엇이입니까, 그러면 우리가 다 알잖아요 피조물들을 통해서 이분이 영광 받으시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그걸 자꾸 묵상하는 겁니다, 이하! 저를 통해서도 내 자식을 통해서도 우리교회 공동체를 통해서도 이분이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시는구나,
자꾸 우리가 묵상하는 겁니다, 묵상하는데 이것을 묵상하다보면 자동적으로 이분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뭔지를 내가 깨닫게 됩니다,
뭡니까 예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피조물을 섬기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겁니다, 그래서 십계명의 처음의 네 계명이 이스라엘사람들이 구약역사 속에서 혼쭐이 난 게 왜 혼쭐이 났느냐면 이 피조물을 섬겼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창조주를 섬기면서도 피조물을 섬겼기 때문에 바벨론 신을 섬기고 여러 가지 피조물을 만들어 가지고 섬겼기 때문에 신약에 와서도 우리하나님의 종이 되려면 은혜 받은 하나님의 종의 특색이 뭐냐면 이 피조물을 섬기지 않는 겁니다, 명예나 돈이나 권력이나 또는 학위나 여러 가지 우리를 편하게 해주는 보이는 피조물들 여기에 내 마음이 자꾸 가게 되어 있고 이놈들을 가지고 있으면 내 마음이 편안한데 그 대신 내가 삼위하나님을 내가 이렇게 모시고 있을 때 오는 평강, 지금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바랄 지어다 할 때 이 평강 창조주와의 관계를 정립했을 때 오는 평강 이 평강을 누리려면 이게 내 힘으로 안 되는 겁니다,
은혜를 받아야 되는 겁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큰 선물 중에 하나가 뭐냐면 피조물에 의지하지 않는 은혜를 주시는 겁니다,
우상을 의지하지 않는 은혜를 주시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돈에 연연하지 않게끔 은혜를 주시는 겁니다, 자식 때문에 내 모든 삶이 거기에 들어가서 허둥거리지 않도록 은혜를 주시는 겁니다, 이게 기가 막힌 은혜인 겁니다,
그리고는 내 자식도 예수님께 다 맡겨버리는 겁니다,
내 직장도 뭐도 이게 안하는 것이 아니라 내 실력으로는 안 되는 겁니다,
이것은 은혜가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러시는 겁니다,
우리 출애굽기20장6절에 십계명을 주셔서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 이 우상을 섬기면 너희들이 피조물을 섬기면 이스라엘사람들에게 그러는 겁니다, 내 자녀들아 내가 너희 후손을 삼대에서 사대까지 내가 은혜를 베풀지 않겠다고 그러는 겁니다, 이분이 그러시는 겁니다, 그래도 백대까지가 아니고 그래도 삼대에서 사대까지 내가 은혜를 베풀지 않겠다는 겁니다, 너희 후손들에게 그런데 만약에 너희들이 이 피조물보다 내 말을 더 섬기면 내가 천대까지 너 후손들에게 은혜를 베풀겠다고 그러는 겁니다,
출애굽기20장5절6절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항상 묵상합니다,
그래서 내 세 자녀들을 사랑하고 내 손자 손녀들을 사랑할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이 뭘까 하니까 내가 우상을 섬기지 말아야지 내 손자 손녀들 들여다보면서 그럽니다, 너 네 할아버지가 우상 안 섬길 게 그러는 겁니다,
너 한데 하나님이 복을 주실 거야, 내 손자 손녀를 쳐다보면서 그러는 겁니다, 내 자식들도 쳐다보면서 혼자서 중얼중얼 거립니다, 혼자서 왜냐면 이 비밀을 제가 알기 때문에 그래서 손자 손녀를 나이 젊은 사람들은 이해가 안가지만 시간이 가면 다 나오게 하는 겁니다, 내 후손들을 하나님의 장중에서 복을 받게 하고 이놈들이 은혜를 받게 하려면 내가 돈 좋아하면 안 되겠구나 예수님보다 내가 명예나 학위나 또 권력이나 예수님보다 내가 이런 걸 더 좋아하면 안 되겠구나 어떤 분은 골프 어떤 사람은 또 연속극 어떤 사람은 기타 여기까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좋아하지만 예수님 다음으로 좋아 하겠구나 우선순위를 바꾸는 연습을 저는 지금 이 나이가 되어도 계속해야 됩니다,
안 그러면 나도 모르게 우선순위가 또 바뀌어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그러니까 이것을 끊임없이 이해해야 되는 겁니다,
끊임없이 그러니까 저도 보면 이렇게 말하는 내 자신을 보면 어떨 때는 내 자신도 한심할 때가 있습니다, 너가 말해놓고는 너는 말을 안 지키면서 이럴 때가 저도 있습니다, 그만큼 이게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런 측면에서 우선순위의 중요성을 깨달은 자를 뭐라고 그러는지 아십니까, 겸손한 자라 그럽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의 입장에서 우리를 보면 우선순위를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을 보고 겸손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잠언3장34절과 베드로전서5장5절에 베드로도 그러고 뭐냐면 겸손한 자에게는 우리 예수님이 은혜를 베푸신다,
그랬습니다, 그냥 우리 인간적인 의미에서 겸손한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창조주 앞에서 겸손한 자입니다 이것 잊지말아주세요 사람들 앞에서 겸손한 자 이것을 잘 못하면 가식이 되어 버립니다,
자기 영광을 위해서 겸손해질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보여주기 위해서 이런 게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창조주 앞에서 내가 겸손해지는 겁니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 원칙을 항상 깨닫고 그럽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예수님 오늘 제가 눈을 떠네요,
예수님이 나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내가 눈을 뜨고 건강한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네요, 이럴 때 세상에 도대체 주님이 주시는 은혜가 얼마나 컨가 그리고 주변을 보면서 손자 손녀들도 보면서 주님 저놈들 그래도 숨 쉬고 있네요, 지금 병원에 어린아이들 입원해있는 아이들도 많고 이상아로 태어나서 고생하는 아이들도 많고 또 이런 아이들 저런 아이들 정말 주님이 주신 은혜가 너무나 크시네요, 이렇게 이분에게 저절로 나오는 겁니다,
저절로 나오니까 예수님 입장에서 보면 야 황 목사야 네가 너를 목사로 안수해주었더니 너 점점 겸손해 지는 구나 나는 이 소리를 듣고 싶은 겁니다, 겸손한 게 딴 게 아닙니다, 사람들 앞에서 잘 난체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례하게 하는 것 창조주 앞에 무례하게 하는 것 그러다가 어려움이 엄습하여 올 때 아이구 예수님 날 조금 도와주세요,
이렇게 되면 이것은 어쩔 때는 너무 늦은 겁니다,
어렵지 않을 때 더 잘나갈 때 저에게 은혜를 주셔서 이런 식으로 주님 제가 이 잘나가는 것 제가 이걸 가지고 자랑하지 않게 해주시고 예수님이 나에게 주신 이 잘나가는 것 주님 겁니다, 주님이 내 잘나가는 것을 빼앗아버리면 저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잘 될 때도 항상 그분에게 꼬리를 딱 내리는 이런 사람을 겸손한 사람이라고 그럽니다, 그런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분의 은혜도 이게 수준이 있는 겁니다, 이만한 은혜 더 많은 은혜 은혜가 점점 점 더 많아지는 겁니다, 바울은 이 은혜를 경험을 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편지마다 은혜 받아라, 우리는 그저 부흥회나 어디가면 예배드리고 자기 기분 좋으면 오늘 은혜 받았다,
하면 어떻게 생각해야 됩니까, 창조주의 위대하심 여기에 내가 꼬리 내렸다, 이런 마음을 표현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의 위대하심에 나는 찍 소리가 안 나오는구나 이렇게 말하는 걸 은혜 받았다 내 기분 좋게 해서 내 느낌이 조금 좋았다고 은혜 받았다는 것은 아닌 겁니다,
이것은 개념이 다른 겁니다, 이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이 은혜를 일 시간에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계속 있는 사람은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평강으로 나타납니다, 평강으로 이 은혜를 매일 경험하는 사람은 시각의 변화가 오는 겁니다, 육의시각 혼의시각 영의시각 이 세 부분의 모든 시각이 영의 시각이 혼의시각을 컨트롤하고 혼의시각이 육의시각을 컨트롤합니다, 영의시각에서의 차원이 달라지면 혼의시각 사물을 보는 모든 것이 다 달라지고 내 눈에 육의 시각이 보는 이것이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세계관이 변했다 또는 인생관이 변했다 또는 가치관이 변하였다 신앙관이 변하였다 여러 가지가 요즘 말로는 페러다임 시프트가 사고전환이 오는 겁니다,
은혜를 받으면 예수님 중심으로 그분에게 꼬리를 딱 내리는 사람은 겸손해 지면서 평강이 오면서 사고의 전환이 오니까 평강이 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환경은 그대로 다 있습니다, 환경의 변화는 하나도 없습니다,
똑같습니다, 그런데 나의 시각이 변해버린 겁니다,
어떤 시각이냐면 예수님에 대한 정체성을 보는 시각이 저는 그래서 제 개인적으로 그럽니다, 예수님, 예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이시죠 맞습니다,
자꾸 대화합니다, 그러면 다시 말하면 예수님 지금 예수님은 아프리카정글에도 계시고 유럽에 파리에도 계시고 미국에 뉴욕에도 계시고 우리 손자손녀유치원에도 계시고 지금 우리아들 직장에도 계시고 내 딸 직장에도 계시고 이 시간 같이 계시죠, 그러면서 저는 예수님이 계신 그 쪽을 쳐다보는 겁니다, 우리아들 쳐다보고는 예수님이 같이 계시구나,
내 딸을 보고는 내 손자손녀보고 같이 계시구나,
예수님의 무소부재하심이 이걸 항상 인정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무소부재하시구나 그러니까 예수님이 내 아들 내 딸 내 손자손녀하고 같이 계시구나, 내가 이렇게 영의 운을 뜨고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내 아들 실수하더라도 이렇게 안아 주세요 말로 안 합니다,
그냥 내 소원으로 이렇게 아들을 보면서 그리고는 어떤 사람이 예를 들어서 나에게 내가 없는데서 예를 들어서 황 목사 그 사람 뭐가 어떻고 하면서 나를 불편한 말을 하여도 그런대 그 말이 나중에 내 귀에 들려왔습니다,
그러면 저는 뭐라고 하느냐면 주님 주님이 다 들으셨죠, 옆에 계셨죠,
그렇게 하는 것을 주님 무소부재하심을 그리고 그분이 아직도 부족해서 그러는데 아직도 더 많이 훈련받기 위해서 그러는데 주님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사람에게 위로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 무소부재하신데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무소부재하신데 주님이 계셨는데 그리고 전지하신데 다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주님이 다 아시는데 그러니까 내가 원수 갚을 필요가 없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말할 필요도 없는 겁니다, 가만히 놓아두면 되는 겁니다, 그런 평강이 나한데 있는 겁니다, 거꾸로 뒤집어서 말하면 평강이 없으면 시끄럽습니다, 시끄럽지 않게까지 가는데 한참 가야 됩니다
젊은 사람들은 특히 더 합니다 나이가 50. 60이 되어도 여기 까지 가려면 쉽지가 않습니다, 나이가 든 사람들도 대부분이 여기까지 가지를 못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교회 식구들은 젊더라도 여기까지 가주면 좋겠습니다,
영의시각이 이렇게 뜨이는 겁니다, 평강을 가진 사람은 우리 항상 이야기하지만 영의시각이 이렇게 떠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께서는 주님이 쓰셨던 사람들 아브라함부터시작해서 유명인사들 보면 하루아침에 이런 사람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한참 걸리면서 했습니다,
그리고 훈련 많이 시키시고 하루아침에 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이런 사람이 되려면 주님이 우리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나쁜 성품들 있잖아요, 태생적인 성품들 질투심이니 화를 내는 것 여러 가지 참지 못하는 것 미워하는 마음 이런 것 태생적으로 우리 다 있잖아요,
이런 것들이 제거가 되어야 되거든요 그것도 한꺼번에 안 되잖아요 조금씩. 조금씩 제거 시키는 겁니다, 성품의 변화를 그러시면서 이것이 없어져야지만 나에게 평화가 있습니다, 평화가 오려면 내가 영의 눈이 떠 지면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 속에 있는 내 마음을 순화시켜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나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볼 것이요 그래서 성품이 소위 예수님의 성품으로 조금씩 변해가는 변해갈수록 영의 눈이 조금씩. 조금씩 떠지기 시작합니다, 성품과 영의시각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5장8절 말씀 마음이 순수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볼 것이요 영의 눈이 떠 질것이요 그렇기 때문에 인격이 변해야 됩니다, 인격이 예수님화가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다 인격이 변화를 시도 시키고 훈련시켰습니다, 우리가 항상 말하지만 인격의 변화는 쓴 뿌리입니다
쓴 뿌리가 조금씩. 조금씩 변화를 받으려면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계속 묵상하고 말씀의 검 영의 양식입니다 그다음에 성령님의 태우시는 것 성령님의 씻으시는 역사 이런 성령님과 말씀으로 은혜가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도록 은혜를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에게도 이게 내가 하려도 안 됩니다
변화되도록 나의 인격이 변화되도록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말씀을 열심히 노트정리하시고 또 공부하시고 이것은 보통 은혜가 아닙니다, 나도 그러니까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이건 은혜 받은 교인들하고 같이 주님을 섬기는 게 제게는 보통 목회자로써 행복이 아닙니다, 교인들이 황 목사님20분만 설교하고 끝내세요,
만일 이러면 저는 큰일 납니다 저는 목회 못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주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들이 되어서 이렇게 열심히 말씀 속에 들어 있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성품이 변화기를 이미 주님께서 계획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도 모르게 말씀을 자꾸 묵상하는 겁니다, 공부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성품이 변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말씀이 영의양식이고 그다음 날 센 양날달린 검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역사하시면 성령님은 같이 역사하시는 겁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따라서 같이 역사하시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보면 조금씩. 조금씩 여러분들의 성품이 변화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시각의 변화로 연결되는 겁니다, 눈이 뜨여지니까 시각의 변화가 되니까 어떤 환경 속에서도 내가 조금씩. 조금씩 옛날에는 이렇게 반응했는데 평화가 없었는데도 이제는 내가 평화를 가지는 평강을 가지는 사람으로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는 것을 스스로가 느끼게 되는 겁니다,
그것이 얼굴ㄹ에 나타나고 입에 나타나는 겁니다, 항상 나보다 조금 부족해도 한번 실수하더라도 미안합니다, 안 그러면 격려해주고 항상 이렇게 달라지는 겁니다, 바울도 보통 성질이 급한 사람이 아니었잖아요,
주님이 그분을 그렇게 잘 만져 주셔가지고 고난 속에 집어넣었다가 뺐다가 용광로에 집어넣었다가 뺐다가 자존심 상하게 했다가 뺐다가 이러면서 이분을 성화시켰습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영의 눈이 어느 정도 뜨니까,
이분이 고린도전서13장의 글을 쓰도록 만든 겁니다, 고린도전서는 주후55년이니까 이분이 개종하고20년 후에 예수님의 신비를 바울에게 주신 겁니다, 고린도전서13장 우리 알잖아요, 바울이 그 당시에 이 글을 썼지만 이분이 이렇게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거든요, 그 후에도 주욱 보면 바울도 실수가 많았고 설질도 부렸고 싫은 사람 있으면 한마디하고 이런 모습을 성령님이 우리 눈에 보여주셨습니다, 고린도전서13장의 사람이 되어야 된다면서 그러면서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사랑은 오래참고 바울도 여기에 대해서는 힘든 겁니다, 특히 우리한국 사람들은 참지 못하는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오래 참지 못하는 겁니다,
이것만 잘하면 은혜 속에 이미 들어온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오래 참고 나와 다른 사람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우리는 뱉어버리거든요 그런 사람들은 주님이 사랑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더 고통을 주어서 고통하게 하시고 그런데 우리 교인들 중에 그런 사람은 그의 없습니다, 제가 보면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고린도전서13장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이 뭐냐면 모든 것을 참으며 기가 막힌 말입니다 이제 시각이 이렇게 변해버리면 모든 것을 내가 참을 수가 있는 겁니다, 왜 참을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다 아시니까 왜 참습니까, 예수님이 다 알고 계시니까 보고 계시고 듣고 계셨는데 그러니까 내가 참을 수가 있는 겁니다,
그분께 맡겨 버릴 수가 있는 겁니다, 모든 것을 믿으며 그랬습니다,
이게 기가 막힌 말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믿는 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장중에 있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루어실 것입니다 믿어버리는 겁니다,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
이게 소위 말하면 NO3믿음을 가진 히브리서11장 믿음을 가지면 어떤 믿음이냐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잠깐 있는 나그네 세상이다 잠깐 있다가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는 이 믿음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리고는 우리 본고향은 저위다 그리고는 거기 올라가면 상급이 기다리고 있다, 라는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이 세 번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소망이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리고는 이 소망이 있는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13장에 믿음, 소망, 사랑 이 단계가 있는 겁니다, 우선 이 시각이 변해야 되는 겁니다, 여기가 내 고향이 아니다 여기는 사탄을 주님이 주셔서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우리 예수님이 그렇게 허락하신 세상이다 그 세력이 더 강하다 그 인구가 더 많다,
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여기 잠깐 나그네로 던져주셨다
그러니까 이 믿음이 있는 사람은 소망은 그냥 따라오게 되어 있고 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내가 안아 줄 수가 있는 겁니다,
사랑을 베푸시는데 모든 것을 참을 수가 있고 무례히 행치 않고 모든 사람을 내가 이렇게 교통정리해주고 이렇게 해주는 겁니다,
이런 마음이 들어오게 되어있는 겁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는 주후55년에 쓰시고는57년에 로마서를 쓰실 때 우리가 지금 로마서공부하잖아요 로마서를57년에 쓰시면서 로마에 있는 자기제자들30여명을 먼저 보내놓고는 그분들이 교회개척을 해놓고는 여러 가지 교회 안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받고는 거기에 편지를 쓴 것이 로마서입니다,
그런데 이분들 자기 제자들의 보고서에 의하면 로마에 있는 교인들이 크리스천들이 이런 것이 없었던 겁니다, 은혜도 없었고 평강도 없었고 그리고 이 안에 여러 가지 다툼이 있었고 그런 상항 속에서 이분이 로마서를 쓰시면서 너희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바라노라 그러면서 이분이 그 유명한 로마서12장에 구체적으로 이분들에게 삶의 가이드라인을 드렸습니다,
이게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적용이 됩니다, 너희들 영적 예배를 드려라 그러면서 주욱 하시다가 12장9절부터 주욱 보시면 거기에 중요한 부분들 몇 가지를 보면 바울이 가지고 있는 신학관이고 이분이 가지고 있는 라이프스타일입니다 교인들을 어떻게 대할까 이분이 대화하는 모습이9절에 보면 사랑에는 거짓이 없단다, 로마 크리스천들아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이 말은 우리 항상 듣는 말입니다 이래 놓고는 이분이 그러는 겁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는 겁니다, 눈을 저쪽에다가 뜨고 환란 중에 참으라는 겁니다, 이분이 시각을 바꾸라는 겁니다, 은혜가 있어야지만 이 시각이 우선 바꾸어지는데 그러면서 이분이 아무리 말해도 이분들이 안 듣지만 바울이 가지고 있는 신학의 핵심을 지금 말씀하시는 겁니다,
바울 자신도 지금 여기에 대해서100%따라 가지 못하지만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것을 가이드라인해주는 겁니다, 성령님이 바울에게 그러는 겁니다,
너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해주고 저주해주지 말라는 겁니다,
이것은 시각의 변화가 없으면 안 되는 겁니다, 은혜가 없으면 안 되는 겁니다, 그다음에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을 도모하라 이것도 시각의 변화가 없으면 안 되는 겁니다, 불가능합니다,
그러면서 할 수만 있거든 성경에서 이런 말을 쓰는 곳이 그이 없습니다,
가능하다면 모든 사람과 화평 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화평하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는 겁니다,
모든 사람과 화평 하는 것이 그러니까 성경에서도 화평해라가 아니고 할 수 있다면 해라는 겁니다, 그만큼 우리 성령님도 우리에게 이렇게 너 네들 할 수 있으면 조금 해봐라 라고 부탁하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서 19절에 보면 기가 막힌 말이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이게 특별히 은혜를 받은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겨라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전능하시고 전지하시고 다 아시는 분이 기다라라는 겁니다, 그분이 때가 되면 할 수 있으면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신명기32장35절을 인용을 했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리라 이런 말은 우리가 수없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내 삶 속에서 작용이 되려면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 됩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은 자가 평강이 나에게 있을 때 이것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특히 성서에는 내가 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라고 문자적으로 그대로 말한 사람이 몇 사람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분이 노아입니다 창세기6장8절에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노아시대에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세상 죄를 짓고 노아만 은혜 받은 식으로 이렇게 말해놓고는 성서에서는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노아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된 사람이 아니잖아요, 은혜를 받았지만 120년 동안 방주를 지어면서 사람들에게 비난도 받고 조소도 받고 자기도 갈등도 오고 이게 진짜 홍수가 날까 안 날까 여러 가지 갈등 속에서 사람들에게서 손가락질 받아가면서 고작해야 식구들만 호응해 주었잖아요,
이렇게 해서 이분을 훈련시킨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외로움의 훈련 갈등의 훈련 그러니까 은혜를 받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은혜 받은 사람에게 갈등을 경험하게 하시면서 나중에 은혜 받은 사람이 마음에 평강이 있을 때까지 엄청난 기간 동안 훈련 시켰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도 만약에 은혜 받은 사람들이라면 제가 볼 때는 우리교회식구들은 다 은혜 받은 사람으로 확신하고 있거든요 야곱 같은 사람에게도 창세기32장12절에 은혜를 베풀어서 그랬습니다,
그런데 야곱도 보면 그분의 아픔이 뭡니까, 요셉이 죽은 줄 아는 겁니다,
나중에 보니까 애굽에 가 있잖아요, 그분의 아픔도 상당히 많았잖아요,
성경에 모세도 보면 출애굽기33장12절에서16절에 보면 은총을 받은 자라고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모세도 보면 40년 40년 훈련 받고 이제 80세 때부터 주님의 일 할 때도 보면 이분도 엄청난 갈등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나가서 이스라엘사람들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라고 그러니까 이분이 저는 못합니다, 라고 일곱 번씩이나 하시고 불려 냈는데도 이스라엘사람들이 이분의 리드 쉼에 반기를 들고 불평을 하고 심지어는 고핫의 후손 고라도 불평을 하고 광야에서 이분은 이분 나름대로 고생을 엄청나게 하면서 이분이 나중에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평강을 누리는 것은 한참 가서 누렸습니다, 은총을 받은 우리를 이런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주듯이 훈련과정이 따라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로 자기 아들 압살롬에게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고 사무엘상16장22절 역대하1장8절 사도행전7장46절에 보면 다윗이 은총 받은 사람이라고 그랬습니다,
솔로몬도 열왕기상3장6절 다니엘도 다니엘서9장23절에 다 은총 받은 사람들이라 마리아도 누가복음1장28절 또는30절 바울도 주님께서 로마서11장5절에 또 예수님의 사도들도 성서에 보면 은총 받은 자들이다
그런데 이분들이 하루아침에 평강을 가진 게 아니고 부단한 용광로 훈련을 시키면서 평강으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분명 은총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은총이 더욱 은총 화되기 위해서 이것이 나에게 평강으로 오기 위해서 우리 계속해서 용광로 속에 집어넣었다 뺏다 시행착오를 경험하게 하시고 그러면서 말씀훈련을 계속 시키시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오늘이 조금 달라지고 내일이 조금 달라지고 조금 조금씩 한 달 후가 달라지고 6개월 후가 달라지고 일 년 후가 달라지고 날로. 날로 달라지는 모습 어떤 부분에서 달라지느냐면 나의 시각이 달라지고 나의 성품이 달라지고 그래서 입만 열면 항상 은혜로운 말만하고 화평 하는 말만하고 평강의 말만 하고 내 입에서 남을 깎아내리는 말 불평이나 이런 말이 아니고 서로서로 항상 격려해주고 이런 사람들이 우리가 지금 되어가고 있습니다, 안 그렸습니까, 제가 이렇게 보면 그런 사람들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분한분 다 예쁩니다, 서로가 다 성품들이 다르지만 하나가 되는 모습을 이렇게 보면서 주님이 우리교회공동체를 이렇게 사랑하시는구나,
우리가 이렇게 주님 앞에 은혜를 받는 자고 우리에게 또 평강까지 허락하시는 그러한 하나님이시구나, 앞으로 주님이 이런 공동체를 어떻게 사용하실까 저는 기대가 큽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저희들을 멋있게 사용하실 것이고 언젠가는 제가 먼저 갈지 모르지만 여러분들이 저보다 먼저 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삶을 살다가 언젠가는 주님에게 가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은혜와 평강을 누리다가 저 동네로 올라가면 저 동네에 올라가서 똑같이 은혜와 평강 속에서 영원히 살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여기서 살 때 연습을 많이 하시길 바랍니다,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바울과 주님이 사랑하는 많은 분들의 삶 속에서 이분들이 하루아침에 은혜를 경험한 것도 아니고 평강을 누린 것도 아니고 부단한 훈련 속에서 경험 속에서 좌절 속에서 갈등 속에서 용광로 속에서 우리 예수님께서 은혜로 주신 그 은혜를 현실화시키기 위해서 훈련시킴을 보아 왔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저희들이 훈련 과정 속에서 예수님 부탁드리기는 우리 모두가 이 훈련과정에 있기에 누가 잘 났고 못 났고 가 아니고 모두가 다 훈련과정에 있음을 우리가 인지하고 서로가 서로를 격려해주고 밀어주고 서로가 서로를 인정해주고 그러면서 갈 때 우리 속에는 이미 조금씩. 조금씩 평강이 싹틈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 우리에게 이 은혜와 평강의 삶이 날로. 날로 발전되도록 성숙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gA2gm3nvVrM&list=PLJXDDlXMklslx2GGPLYakD7KGUXDcLw0f&index=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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