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강해 5강. 감추었던 하나님의 지혜(고전2:6-16) 2009년4월26일 말씀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6절에서16절의 말씀을 제가 읽겠습니다.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제가 설교라기보다는 강해를 해드리려고 여기에 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하나 잘 풀어드리려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오늘 본문 말씀을 잘 보시길 바랍니다. 지난시간에 제가 고린도전서2장1절에서5절까지 말씀을 지난시간에 드렸습니다. 그때 바울이 하신 말씀이 뭐냐면 본인이1년6개월 동안 고린도교회에서 성경공부와 설교를 했는데 거기에서 중요한 가르침에 제목들이 기독론과구원론이라 그랬습니다. 이것만 전했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분의 마음속에 이 말씀을 전하면서 뭐가 있었다고 그랬습니까?
마음이 약하고 본인이 두렵고 떨렸다 그랬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바울이 왜 이렇게 자기 심정을 표시했습니까? 이 교회 안에 본인이 전하는 기독론과구원론을 소화를 못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이 앉아 있었기 때문에 소화를 못하는 분들이 그렇지만 바울이 이분들이 소화를 못한다고 그래서 소화할 수 있도록 사람의 지혜로운 말로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예컨대 설화이야기나 미사어구나 또는 설득력이 있는 언어구사나 또는 유명 인사들의 말씀을 인용하거나 재미있는 예화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만 전했다는 겁니다. 이분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6절에 보니까 그러나 그랬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고 순종했다는 겁니다. 고린도교회에서 이분들을 6절에서 뭐라고 말씀했냐면 온전한 자들이다 그랬습니다. 온전한 자들은 이해를 했다는 겁니다. 소수가 누구였다는 겁니까? 우선 회당 장 출신 두 분이 계십니다. 그리스보, 소스데네, 그다음에 브리스길라 아굴라 그다음에 고린도교회 출신들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 이런 소수들은 바울이 전했던 기독론과구원론을 잘 듣고 이분들이 예수께 헌신했던 분들입니다. 그래가지고 바울의 동역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다수는 같은 말씀을 들었는데 머리로 이해는 했습니다. 그런데 밑에까지 소화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이 말씀이 이분들에게는 감당하지 힘든 말씀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분들의 삶 속에 연결을 하지 못했던 것이 지적 이해까지 갔던 겁니다.
이런 두 그룹의 크리스천들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다수의 크리스천들에게 바울이 편지를 쓰신 것이 성령님이 바울을 통해서 이분들에게 편지를 쓰라는 겁니다. 너희들 이렇게 소중한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은 데도 왜 아직도 서로 이 세상 사람들처럼 서로싸움하고 분쟁하고 다투고 파벌 만들고 그러느냐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하는 짓을 그대로 하느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리고는 또 하시는 말씀이 왜 바울의 사도 권을 너희들이 인정 안하려고 그러느냐 그런 부분을 저희들이 나중에 다룰 겁니다.
그다음에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말들이 많으냐. 그리고 기독론을 분명히 가르쳤고 구원론을 분명히 가르쳤는데 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느냐 이런 부분을 고린도전서에서 다루는 겁니다.
아까 말한 소수들은 여기에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다수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 문제를 가지고 본인스스로도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이렇게 1년6개월을 여기에 복음을 전하는데 왜 같은 그룹인데 왜 이렇게 소수와 다수로 갈라지느냐 딴 것이 아니고 이분이 그러는 겁니다. 내가 세상지혜를 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지혜를 전했는데 왜 이렇게 반응이 두 가지로 나타나느냐 이겁니다. 이분이 자기스스로도 여기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고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이분도 그럴 때 성령님께서 바울에게 가르쳐주시는 겁니다. 바울아 네가 가지고 있는 딜레마 내가 안다 내가 한 가지 가르쳐줄게 하시는 말씀이 이 세상에는 적어도 세 가지의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첫째는 어떤 사람들이냐면 육의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2장14절입니다. 육의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을 영어로 네추럴 맨(Natural man)이라 그랬습니다. 또는 워드리 멘(세속적인, Worldly man) 또는 카날 맨(Canal man)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면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구원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이 세상 영을 소유한 자들이다 그랬습니다. 이 세상 영은 누굽니까 사탄의 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어떤 사람이 있느냐면 영의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15절에 말씀했습니다. 그 사람들을 신령한 자 또는 영의 사람 영어로는 스피리철 맨(Spiritual Man)이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한국말로는 신령한 자라고 번역이 되어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성령님이 내재하고 계시다는 겁니다. 11절을 보세요.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이라 그랬습니다. 사람 속을 뭐라고 그럽니까? 성서에서 하트(heart)라 그럽니다. 카르디아((Kardia) 또는 중심, 속사람, 양심, 본성 이것을 내 마음 하트(heart)라 그랬습니다. 그 속에 있는 퓨뉴마(pmeuma)성령님이 계시다는 겁니다. 이 성령님이 지금 있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영의 사람들이 다시 말하면 크리스천들이라는 겁니다. 우리다 크리스천들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교회 안에는 이런 크리스천들이 있는데 그런데 그 안에 크리스천인데 크리스천답게 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3장1절에서 이야기합니다.
육신에 속한사람이라고 그랬습니다. 육신의 사람은 구원은 받았는데 그러나 삶의 스타일은 세상 적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그러는 겁니다.
바울아 그런데 소수는 영의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다수의 사람들은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그분들의 라이프스타일과 그분들의 윤리적인 삶은 육신의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세상방법으로 사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 엄청나게 많다는 겁니다. 이것을 바울에게 가르쳐주면서 고린도교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육신의 사람으로 속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분들에게 그런 식으로 대해주라는 겁니다.
육신의 사람의 방법으로 다음시간에 제가 육신의 사람에 대한 자세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하시는 말씀 중에 아주 독특한 말씀하나가 하나님의 지혜라는 말씀을 1장과2장에서 끊임없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 그래서 제가 고린도전서1장과2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지혜를 바울이 여러 부분으로 설명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십자가의 도라고도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라고도 말씀하시고 또는 하나님의 지혜를 그리스도 예수님이라고도 말씀하십니다. 한마다로 말하면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그걸 또 다른 말로 표현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이라고 2장2절에 말씀하십니다. 또는 2장7절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지혜라 그랬습니다. 그다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한 것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여기서 누굽니까? 영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을 위해서 감추어지고 예비한 것입니다 육신의 사람들도 그걸 받았지만 이분들도 예수님을 받았지만 이분들은 예수님을 엔조이를 못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예수님을 만세전에 미리 정하신 지혜라고 2장7절에 말씀하시고 영원부터 감추어졌던 비밀이라고 미스터리라고 이렇게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에베소서3장9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또 마태복음13장44절에 이것은 감추어진 보화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좋은 진주도 감추어져 있는 것을 나중에 찾아내는 이야기입니다 마태복음13장45절46절에 이 모든 것을 누구를 이야기하느냐면 예수님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2장6절7절이 굉장히 중요한 성서적인 신학적인 개념입니다 그래서 우리크리스천들은 다 이걸 소화해야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이것을 해석할 수 있으면 참으로 좋습니다.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이 온전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영의 사람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지혜는 누구라고 그랬습니까? 예수님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신비한 가운데 미스터리(mystery)입니다.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영어로 히든(hidden)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는 겁니다. 이 말에 엄청난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게 다른 말로 표현하면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을 만세전에 구원 주로써 준비해놓았다는 겁니다. 이 말은 거꾸로 말하면 루시퍼가 타락하도록 주님이 계획하셨구나. 그래서 예수님을 미리 준비해놓은 겁니다.
예컨대 아담도 타락하도록 준비해놓으셨구나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인간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한번 그렇게 실수 했을 때 내가 너희들에게 나의 사랑을 한번 보여주고 싶다면서 예수님을 미리 다 준비해놓고 있었다는 겁니다. 만세전에 이것을 우리인간의 이성으로는 이게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미스터리(mystery)라는 겁니다. 인간의 지혜로서는 이게 이해가 안 된다는 겁니다. 신학자들도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이것은 미스터리(mystery)신비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러는 겁니다.
8절에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이미 예수님께서 그 일로 인하여 십자가에서 다 준비 예비하였다는 겁니다. 이걸 알았더라면 이분들이 겁나서 그기에 참여를 못할 거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바울에게 인용하라고 그러는 겁니다. 9절에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크리스천들을 위해서 예비하신 모든 것이 누굽니까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어떤 사람들이냐면 육의 사람들은 육의 눈과 혼의 눈은 있는데 영의 눈이 떠있지 않다는 겁니다. 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귀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마음속에 이 세상신이 있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게 무슨 논리입니까 칼빈주의 아닙니까? 이게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겁니다. 우리생각으로는 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랬습니다. 10절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이 들어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보도록 눈을 열어 놓고 귀를 열어놓고 마음을 열어 놓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12절을 보세요. 12절이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여기에 우리라는 것은 누굽니까? 영의 사람과 육신의 사람입니다. 크리스천들입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은혜로 이런 선물을 받았다는 겁니다. 우리가 잘 나서가 아니고 내가 노력해서도 아니고 이것은 나의 어떤 의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고 운이 좋아서 된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은혜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일방적으로 주신 은혜라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나 같은 사람에게만 주고 나 보다도 더 잘난 사람이 많은데 왜 저 사람에게는 안 줍니까? 그게 나도 모르겠는 겁니다. 이것은 미스터리(mystery) 이 미스터리(mystery)를 깊이 깨달은 사람은 눈물이 안 나올 수 없는 겁니다. 영으로 그러는 겁니다.
왜 내가 이 은혜를 받습니까? 나보다도 잘 난 사람이 많고 똑똑한 사람이 많은데 여기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려면 미스터리(mystery)인 겁니다.
그다음에 또 한 가지 미스터리(mystery)가 있는 겁니다. 지금 바울도 이 미스터리(mystery) 때문에 딜레마에 빠져있는데 여기에 대한 해답은 여러분들도 같은 미스터리(mystery)가 있습니다. 뭐냐면 왜 크리스천 중에 이렇게 소수만 하나님의 지혜를 알고 근방 순종하고 이러는데 다수의 크리스천들은 왜 세상 사람들처럼 법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인데 왜 영적으로 눈이 감겨져있어 가지고 하나님의 지혜를 보지를 못하느냐 이겁니다 왜 고린도교회에 이런 사람들이 많으냐. 이겁니다. 고린도 전 후서를 우리에게 주신 것은 그 당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교회에 그런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참고서로 주신 것이 아닙니까? 과거 2천년 동안 똑같았습니다. 소수의 사람들만 영의 사람들이고 다수의 크리스천들은 육의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어떤 사람을 통하여 그 뜻이 이루어나갑니까? 소수를 통해서 바울에게 소수를 성서에서는 램런트(remant)라 그럽니다. 또는 헌신 된 자 이분들에 대한 이름은 상당히 많습니다. 이것은 제가 다음시간에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도 미스터리(mystery)인 겁니다.
여러분들도 이 두 그룹 중에 한 그룹에 속해 있습니다. 저도 이 두 그룹 중에 한 그룹에 속해 있습니다. 그런데 저가 이 그룹인지 저 그룹인지는 예수님 밖에는 모릅니다. 이렇게 가운 입고 있지만 저 그룹에 들어갈 가능성도 많습니다. 가운 입었다고 다 이 그룹이 아니잖아요. 목사라고 해서 다 이 그룹이 영의 그룹이 아니잖아요. 집사, 장로, 권사라고 그래서 다 여기에 아시잖아요. 직분하고 관계없는 겁니다. 이제부터 문제가 있습니다. 바울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왜 고린도교회교인들 중에 대부분이 이 하나님의 지혜를 만세전에 숨겨놓은 이 비밀을 그래도 들었고 그래도 깨달았는데 왜 저분들이 아직도 모든 것이 삶의 형태가 세상 적이고 세상을 더 좋아하고 우상을 섬기고 돈을 섬기고 명예를 섬기고 예수님보다 그것들을 더 사랑하고 입만 열면 세상이야기하고 주일 날 교회 와서 예배드릴 때는 잠깐 거룩하지만 나가면 딴 사람이고 성품이 변화지 않고 싸움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세상 사람들과 구별 안 되는 삶을 사는데 바울이 왜 하나님 이 사람들은 이렇게 하다가 죽습니까? 그런데 왜 자기 같은 사람은 왜 이런 은혜를 나에게 주셨습니까? 하고 이분이 고민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바울이 깨달은 게 뭐냐면 아하!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깊이 깨달은 겁니다. 하나님의 신비인데 우리인간의 지혜로는 도저히 이해를 못하는 우리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이것은 창조주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이 주권에 무릎을 꿇어야 되는 겁니다. 여기에 무릎을 꿇지 않으면 크리스천이지만 계속해서 육신의 사람의 대열에 끼게 됩니다.
우선 여기에 무릎을 꿇어야지만 그 다음에 진급할 수가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문제를 제자들이 나중에 자기에게 물어볼까봐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13장에서 천국의 비유를 일곱 개를 드시면서 그중에 두 비유가 이와 관계되는 비유입니다 애들아 너희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 내가 누구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다닐 때 보면 놀랍게도 소수만 너희들에게 반응을 긍정적으로 하고 다수도 반응을 하지만 삶은 변하지 않을 거다. 그러면서 이런걸 보여주시는 겁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감추어진 보화 비유를 탁 되시는 겁니다. 마태복음13장44절에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어진 보화와 같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이것을 발견 해가지고는 숨겨놓고는 기뻐가지고 저 안에 보화가 있구나. 기뻐가지고 집에 돌아가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팔아가지고 그 밭을 샀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영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딱 보고 야! 이것은 상대적으로 저쪽 거와 이것은 비교가 안 되는구나. 가치관의 급격한 변화입니다. 이것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영의 눈이 열리면서 영의 귀가 들리면서 영의 마음이 열리면서 이걸 딱 본겁니다 그런데 이것도 내가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에게 그러는 겁니다. 베드로야 야고보야 너희들 이것 잊지 말아라 이런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그러면서 또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다음말씀이 무엇입니까?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꾼이라는 겁니다.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꾼 같다는 겁니다. 좋은 진주가 누굽니까? 예수님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장사꾼인데 이 장사꾼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게 장사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진리를 발견하고 이 진리가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기를 고대하면서 진리를 찾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나도 그냥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눈을 비비면서 찾아다니는 장사꾼입니다 이런 사람이 극히 값진 진주를 보니까 자기 것을 다 팔아가지고 그 진주를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본 사람은 그다음에 하나님의 은혜로 내 지식적인 지적인 나의 어떤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가치기준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라고 이렇게 설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되라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들이 원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는 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 보니까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꾼이라 그랬으니까 구하는 그런 것이 따라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안 되는 겁니다. 그기에 은혜가 있어야 됩니다. 이런 사람을 은혜를 받은 사람을 성서에서는 여러 가지로 표현하는데 고린도전서2장에서는 그랬습니다.
이런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온전한 사람은 6절에서 그랬고 9절에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다음에 15절에서 신령한 사람이다 그랬고 그다음에 16절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첫째 뭐라고 그랬습니까?
6절에서 이런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다 그다음에 신령한 자다 그다음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이런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겁니다. 다 우리 예수님의 장중에 있는 겁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냐 저런 사람이냐 하나님의 자녀 중에서도 그렇다면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막말로 이런 사람 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네.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듭니다. 또 심하게 자포자기도 할 수 있습니다.
애라 모르겠다. 주님이 나에게 은혜만 베풀어주면 되지 이런 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안 그러면 소위 숙명론적 태도라고 할까요. 애라 구원은 받았으니까 적당히 살다가 주님이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면 되고 안 베푸시면 치워버리세요. 이런 식으로 할 수도 있고 우리가 별난 생각을 다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러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 아니시잖아요. 제 생각에는 공평하신 분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럴 겁니다.
하나님공평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너 뭔데 그렇게 까부느냐 이놈아 그럴 겁니다. 너 이리와 그러시면서 내 목을 비틀어 버릴 겁니다. 나의 생명을 쥐고 계시는 분 앞에 함부로 까부는 사람이 많은 겁니다. 공평하지 않다고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그러다 보니까 결론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으로 밖에 결론이 안 나오는 겁니다. 칼빈이 여기에서 납작 엎드린 겁니다.
바울도 여기에서 납작 엎드려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주권밖에 그런데 고집이 센 사람은 여기까지도 인정 안하려고 그러다가 집안에 누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장례식에 앉아 있을 때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인정하면서 장례식 끝나고 한 달만 지나면 다 까먹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못된 사람입니다
그것도 우리 마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지만 이런 마음을 가질 수가 있는 겁니다. 제가 오늘 말씀드리는 초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과 그분의 주권을 제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누가 신령한사람이고 누가 육신의 사람인지를 어떻게 구별하며 대강은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분이 지금은 육신의 사람이라고 해서 죽을 때까지 육신의 사람인지 아니면 그대로 머물려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어떤 분은 지금은 육신의 사람이지만 언젠가는 신령한 사람으로 될 가능성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우리 상태를 보고 당신은 육신의 사람으로 예정된 사람이야 나는 아니야 할렐루야 이러면 안 되는 겁니다.
우리가 남을 그렇게 판단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언젠가는 내가 변할 수 있고 저 형제자매도 변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창세전에 우리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미 예정해놓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앞으로 여러분들이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예정론 속에서 지금 있는 것뿐이니까 우리주님만 아시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숙명론적으로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잖아요
우리의 간구는 무엇이야 되겠습니까? 제 개인적인 간구는 예수님 제가 창세전에 어디로 예정 된지는 모르지만 그렇지만 이제 제가 알았습니다.
영의 사람이 되는 것이 복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주님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제가 영의 사람대열에 들어가도록 은혜 베풀어 주세요.
주권자에게 납작 엎드리면서 은혜 베풀어 주세요. 이것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 가운데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보다는 은혜 베풀어 주세요. 기도의 말투를 바꾸어야 됩니다.
그분이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은혜 베풀어 주세요. 라고 말투를 바꾸시길 바랍니다. 저 개인적으로 힘이 되는 게 하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봐도 아브라함도 60세에 고향을 떠날 때 그때만 해도 이분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아브라함은 육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화란에 가서 15년을 계시다가 75세에 가나안에 들어오셔서 시작은 육신의 사람으로 시작을 했을 겁니다. 가끔 가짓말도 하시고 그랬잖아요.
그러다가 이분이 성장해가지고 영의 사람이 되어서 175세에 주님에게 갔습니다. 모세도 보면 마찬가지입니다 처음40년 그다음40년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처음40년은 육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다음40년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마지막40년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분은 영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발전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발전하는 것이 본인이 잘해서 발전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인데 그전에 미리 창세전에 예비하신 겁니다.
바울은 어떻습니까?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도 30세까지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육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30세 때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이분이 육신의 사람에서 영의 사람으로 서서히 발전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메섹에서 변화를 받을 때 우리예수님께서 아나니아에게 하신 말씀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저 사람은 이미 어머니의 배속에서 잉태되었을 때 이미 이방사도로써 내가 쓸 그릇이다 이미 어머니 배속에 잉태되기 전 이미 창세전에 예정하셨던 겁니다. 그것이 이렇게, 이렇게 그냥 이루어진 것뿐입니다. 이제 제가 이 말씀을 전하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가 결론적인 말씀을 같이 나눕시다.
고린도교회에 두 가지의 크리스천들이 있었는데 소수가 신령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잘 나서가 아니고 바울이 기독론과구원론을 전할 때 잘 소화했고 또 순종도 하고 이분들이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하고는 완전히 가치관을 바꾸어 버렸고 좋은 진주를 발견하고 완전히 삶의 가치관이 변해서 우선순위가 변해서 사도바울을 따라다니고 사도바울의 좋은 동역 자들이 되었습니다. 제가 바라기는 우리AMI교회도 또 바깥에 있는 우리AMI동역자들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우리가 바라기만 해서 되는 게 아니고 예수님이 은혜를 베푸셔야 되는데 그 은혜는 달라고 해서 주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가 달라고 할 권리는 있잖아요. 그렇지만 그것이 극단 칼빈주의라면 그것까지도 다 예언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 또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극단칼빈주의자는 아니기를 제 자신도 바랍니다.
어느 정도 아르미니안적인 부분으로 우리의 노력도 어느 정도 칼빈주의에 첨가해서 나에게 그 은혜를 베풀지 않으려고 결정하셨지만 창세전에 그렇지만 제가 이걸 깨달았으니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고 부탁할 수는 있잖아요. 한번 해봅시다. 그래서 내가 육신의 크리스천이 되지 않게 20년30년40년 교회 다니고 많은 직분들도 가지고 주님을 많이 섬기고 헌금도 많이 하고 했지만 아직도 하님의 지혜를 깊이 소화하지 못하고 우상 섬기고 이 세상 것에 관심이 많고 24시간 중에 23시간55분은 그것만 생각하고 이런 사람 또는 교회 안에서 뭔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평하고 사람들 선동하고 이간질 하고 다투고 파벌 만들고 자기도 원치 않는데 자꾸 이렇게 가는 것은 이게 왜 이렇습니까? 라고 그것 때문에 고민하는 또 그런 사람들이 되면 주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이쪽으로 옮겨주실 수도 있잖아요.
저도 육신의 사람 속에 지금도 아마 속해 있는지 모릅니다. 명색이 목사지만 그렇지만 주님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내가 이 그룹에 속하지 않도록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고 제가 주님 만날 때까지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도 이 간구를 같이 합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이라는 이 핵심을 알고만 있어도 안 되고 이것을 내 속에 깊이 집어넣고 그 다음에 예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겁니다. 나의 지성적인 부분 여기에 기대지 말고 나의 지적 감성적 부분이 필요하지만 여기에 완전히 기대하지 말고 이것은 필요하지만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그러한 사람들이 되었을 때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자비를 베풀 수가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매일 은혜를 받아야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은혜를 주변에 나누어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이게 같이 가는 겁니다. 내가 은혜를 간구하면 나만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고 그걸 체험할 때 나의 부족한 모습을 보면서 이분이 은혜를 베푸시니까 그 은혜를 내가 남에게 전해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누어 주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은혜 받은 사람은 자비를 받은 사람은 그것을 자동적으로 나누어주게 되어 있는 겁니다.
우리가 다 이런 사람들이 되었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이 은혜를 받은 사람은 다시 원론적인부분으로 돌아가서 이걸 받은 사람은 우리가 수직계명인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물질과 지위와 자녀와 가족을 주님께 다 맡겨버리는 겁니다.
맡겨버리고는 예수님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도 은혜입니다
이게 논리적으로 이야기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도 은혜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은혜를 주셨습니까?
라고 눈물을 펑펑 흘릴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게 어떻게 설명이 되는 게 아닙니다. 이런 은혜를 우리가 가졌으면 합니다. 이 은혜를 가진 사람은 자동적으로 수평적인 사랑을 할 수 있잖아요. 이웃을 용서해줄 수 있고 이웃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잣대로 보지 않고 그냥 자비를 베풀 수 있고 그것이 내 이웃만이 아니고 그것이 타 민족까지 갈 때 선교가 되는 겁니다.
자동적으로 그러니까 고린도교회소수들이 받았던 그 은혜를 우리받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오! 예수님 예수님의 구원사역은 우리 피조물들의 머리로 아무리 계산하고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따져도 도저히 알 길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나 착하고 법도 없이 살고 무슨 일을 해도 정말로 멋있는 사람인데 육에 속한 사람들이 있음을 볼 때마다 우리에게 딜레마가 옵니다. 반면에 교회 안을 들여다보면 성품들도 별로 안 좋고 입만 열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런 사람들은 또 영의 사람이고 육신의 사람인 것을 우리가 또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교회다가 손가락질하는 것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이 모든 것 우리의 지식으로 우리의 논리로 생각할 수가 없고 결론 내릴 수가 없습니다. 주님 바울도 이것을 깨닫고 이것이 미스터리(mystery)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 미스터리(mystery)를 경험하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미스터리(mystery)를 나의 어떤 힘으로 나의 노력으로 해결하려고 들지 말고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영의 눈을 뜨게 하시고 하나님의 마음과 내 마음을 하나로 연합시켜서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만 이것이 해결될 수 있는 그러한 마음가짐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러므로 해서 우리가 은혜로만, 은혜로만 나의 삶을 살게 하시고 은혜로만 주님을 보게 하시고 은혜로만 하나님을 보도록 우리의 시각을 변화시켜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Ze1jIJeCT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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