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

요한복음강해 33강. (요21장1-25)지상명령과 승천

변명섭 2021. 10. 25. 13:29

요한복음강해 33강. 지상명령과 승천(요21:1-25)

요한복음강해 마지막 시간입니다 지난시간에 우리가 무엇을 공부했느냐를 잠깐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은 정리할 것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지난시간 제목이 왜 예수님이 부활하셔야 하는가? 라는 제목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억이 나시는 분은 날 겁니다

이 제목을 가지고 제가 뭘 말했느냐면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다 타종교와 차이점이 있다면 이분분에서 특이하게 차이가 난다 그리고는 부활과 소생은 다르다 그리고 우리가 나중에 부활체로 나타날 텐데 부활체의 특성이 특징이 열 가지가 있다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큰 내용으로 예수님이 왜 부활하셔야 하는가? 라는 대 제목을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그기에 다섯 가지 이유를 말씀 드렸습니다. 다시 한 번 적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첫째이유는 예수님이 부활하신다고 예언하셨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자신이 누군가를 자신의정체성을 증거해주기 위해서 부활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성도들이 앞으로 죽은 후에 부활이 있을 것을 확인시켜주기 위해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로 네 번째로는 부활은 성도들의 삶 속에서 성화를 해야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부활하셨습니다.

다섯 번째로는 성도가 죽으면 성도는 낙원에 간다는 믿음과 소망을 가져야 데는데 이것을 넣어주기 위해서 부활했습니다. 이 다섯 가지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이 부활하여야만 했다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제자들은 부활의 다섯 가지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그들의 주 임무였습니다. 제자들의 주 임무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가지고 제자를 뽑을 때도 나중에 맛디아를 뽑을 때도 이 다섯 가지의 내용에 합당한 자가 맛디아라고 생각하고 주님께서 뽑게 하셨습니다. 우리크리스천들은 다섯 가지에 대한 것이 분명해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가 제자가 됩니다. 이렇게 다섯 가지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내용을 전하다 보면 꼭 핍박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인들에게 또는 유대인들에게 그래서 언젠가는 제자가 된 사람은 순교를 당하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준비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섯 가지가 기독교의 핵심메시지기 때문에 이 다섯 가지를 간드리는 일들이 과거 2천년 동안에 계속해서 일어났습니다. 기독교의 본질을 건드리는 일들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이단이라 그러는 겁니다.

이단이다 이단의 가르침들이 우리기독교역사 속에서 주욱 있었고 오늘날 마지막 때 증거 중에 하나는 기독교 안에 다섯 가지 내용을 부인하는 다가 아니고 일부를 부인하거나 다를 부인하거나 하는 그러한 소위 가짜 기독교인들이 또는 교단들이 일어날 것을 예수님께서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전하는 사람들은 그 숫자가 적다는 겁니다. 소수라는 겁니다. 과거2천년 역사 속에서 소수만 이 다섯 가지의 메시지를 생명을 바치면서 전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러시는 겁니다. 바울도 이것이 이해가 안 되니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것은 신비다 그랬습니다.

내가 감추어놓은 히든 신비라는 겁니다. 소수만 이것을 전하면서 목숨까지 마다하는 이러한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은 이것은 미스터리(mystery)라는 겁니다. 미스터리 오브 크라이스트(mystery of christ)예수님의 신비라는 겁니다. 이것은 우리의 이성으로 해결이 안 된다는 겁니다. 이 말씀을 하신 것이 20장입니다 요한복음은 20장 마지막 31절에 이 책을 기록한 목적을 요한이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보통 목적을 말씀하시고 이를 위해서 썼다 했으면 이제는 요한복음은 20장에서 끝나야 됩니다. 결론적인 말씀이니까 끝내어야 되는데 21장이 또 따라오는 겁니다. 21장은 왜 주님께서 21장을 섰냐면 이런 내용들을 제가 설명을 할 텐데 지금 20장21장 이 내용들 다 무슨 내용이냐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부활을 증거 했던 분들 또 부활 후에 일어났던 일들 그러다가 나중에 승천까지 갔습니다. 이 내용을 담은 내용이 요한복음20장21장입니다 지금부터 약간 복잡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걸 잘 정리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4복음서를 보면 4복음서에는 예수님의 부활부터 승천까지 내용이 조금씩, 조금씩 내용이 다릅니다. 그러니까 소위 신신학자들은 왜 다릅니까? 이것은 사람이 쓴 거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내용이 다른 부분을 제가 시간이 안 되어 짧게 설명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근방 이해가 될 것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걸 이해가 되어야지만 4복음서가 이해가 됩니다. 우선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여러분들에게 나타나셨잖아요. 나타나셨는데 성서를 주욱 앞뒤를 다보면 나타나신 것이 열두 번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번을 그래서 순서대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래서 이 순서를 머릿속에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다음에 예수님이 나타나셨는데 주로 예루살렘에서 나타나시고 나중에 갈릴리에서 나타난 것은 두 번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부활 후에 나타난 부분이 주로 예루살렘에 나타났다 이렇게 기억하시면서 우성 열두 번 나타난 부분을 제가 간단하게 불려드리겠습니다. 첫째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다고 마가복음16장9절과 요한복음20장에서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연인들에게 나타났다

여인들 이름이 쪼악 나옵니다. 이것은 마태복음28장9절에서10절에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여인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세 번째로 나타난 것이 그 유명한 글로바와 그와 동행자입니다 그것은 엠마오도상에서 나타난 이야기 누가복음24장13절에서15절에 자세히 써놓았습니다 다음 복음에는 없는 게 있고 잠깐 한 줄로 끝난 게 있습니다. 엠마오도상 이야기는 누가복음24장으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네 번째로 시몬베드로에게 나타나시고 이것도 예루살렘입니다 열두제자 중에 특별히 베드로에게 개인적으로 나타난 장면입니다 누가복음24장34절 고린도전서15장15절에 그다음에 다섯 번째로 도마를 제외한 열 제자들에게 나타난 것이 요한복음20장19절에서23절입니다.

이것도 예루살렘입니다 여섯 번째는 도마를 포함해가지고 열한제자에게 나타난 것이 요한복음20장24절에서29절입니다. 도마가 손 보여주십시오.

하는 그런 장면입니다 그다음에 일곱 번째가 오늘 본문입니다

일곱 번째로 나타난 것이 갈릴리로 예수님께서 올라가셨습니다.

디베랴바다에서 일곱 제자들이 고기잡이하는 장면에서 예수님이 나타는 장면이 오늘 본문21장1절에서14절입니다. 오늘 본문은 부활 후에 일곱 번째 나타나시는데 이렇게 나타나심은 제자들에게만 나타났다고 할 때는 세 번째 나타나신 겁니다. 여덟 번째로 갈릴리의 소위 말하는 마태복음28장16절에서20절입니다. 갈릴리 어느 산에서 예수님께서 너희들은 그러므로 가서 모든 족속에게 제자를 삼아 하는 그 이야기가 여덟 번째입니다. 이것도 갈릴리에서입니다 아홉 번째는 5백여 형제에게 나타난 겁니다. 고린도전서15장6절 이것도 예루살렘이고 열 번째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에게 나타났다고 그랬습니다. 개인적으로 고린도전서15장7절에 이곳도 예루살렘에서 나타나신 겁니다. 열한 번째는 예수님승천 바로 직전에 감람산에서 열한제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 누가복음24장50절에서51절에 사도행전1장4절에서11절에 감람산에서 나타나시고는 거기서 승천하신 겁니다. 이것이 제일 마지막 장면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1장8절의 말씀이 여기에 해당이 됩니다. 그리고는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신 후에 성서에 보면 또 한 번 나타나신 게 있습니다.

열두 번째 다메섹 도상에서 사도바울에게 나타나신 장면입니다 사도행전9장5절과 사도행전15장8절에 이렇게 열두 번을 열둘이라는 숫자는 4곱하기3입니다 열두제자들 열두지파들 열둘이라는 뜻인데 오늘 본문을 보시면 21장14절을 보시면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디베랴바다에서 고기잡이를 끝난 다음에 요한이 뭐라고 써놓았느냐면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로 하니까 전체로 볼 때는 몇 번째입니까?

일곱 번째입니다 그룹으로 모여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난 것은 세 번째라는 겁니다. 첫 번째로 그룹들에게 나타난 것이 도마를 제외한 열 제자들에게 두 번째로 나타난 것이 도마를 포함한 열한제자들에게 세 번째는 지금 갈릴리에서 고기잡이하는 일곱 명의 제자들에게 나타난 것이 세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난 겁니다. 지금은 제가 정보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왜냐면 이런 지식이 우선 있어야 됩니다. 구조적인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제자들에게 나타날 때는 몇 번째입니까? 세 번째 전체로 나타났을 때는 일곱 번째 이렇게 기억하세요. 4복음서의 마지막부분들을 보면 부활에서부터 승천까지 이야기들입니다 이걸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태복음이 조금 다르고 누가복음이 다르고 마가복음이 다르고 요한복음이 다릅니다. 우리가 요한복음도 마지막부분을 보고 있잖아요. 조금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내용이 다르고 어떤 때는 이 내용은 이 복음에만 있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제가 간단하게정리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한 가지 질문이 왜 다를까요? 그러면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면 각 복음마다 복음을 쓰신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저자들에게 내용을 이것은 뽑아라. 이것은 쓰라 이것은 이렇게 표현해라 표현방법이 다르고 접근방법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강조가 달랐습니다.

다시 말하면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표현방법 접근방법 강조점이 달랐습니다.

마지막 부분이 그래서 우리가 4복음서가 어떻게 다른가를 마태복음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은 마지막부분이 28장전체입니다 28장1절부터20절 28장 전체가 부활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의 승천하시는 승천내용은 마태복음에는 없습니다. 28장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느냐면 첫째는 막달라 마리아 다른 마리아 천사 이렇게 세 그룹들이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고 세 그룹들의 이야기가 부활하시고 예수님과의 관계가 1절에서7절까지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큰 내용이 8절에서부터10절은 막달라 마리아 다른 마리아 이분들이 제자들에게 빈 무덤을 보고하는 장면입니다, 그 보고내용은 나중에 여러분들이 주욱 보세요. 세 번째 큰 내용이 무엇이냐면 빈 무덤을 본 파수꾼이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보고하는 장면들입니다 이것은 11절에서15절입니다. 이 파수꾼이 대제사장들에게 보고하는 장면이 마태복음에만 있는 겁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 큰 내용이 16절에서20절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갈릴리로 가셔서 열한제자들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이분들은 이미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예수님을 의심하는데 예수님이 이분들에게 하시는 유명한 말씀입니다. 내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아버지에게

받았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모든 곳으로 가서 지상사명을 주시는 겁니다.

마태복음28장19절에서20절의 지상사명입니다 이 지상사명은 제가 자주 이야기하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승천까지 지상사명을 몇 번 말했습니까? 다섯 번을 말했습니다. 다섯 번을 말했는데 마태복음이때 주신 지상사명은 세 번째 주신 말씀입니다 세 번째 지상사명을 주신 내용이 마태복음28장19절에서20절입니다. 이렇게 해서 마태복음은 정리가 됩니다. 마가복음을 보시면 마지막부분을 마태복음과 또 다르게 표현을 했습니다. 첫째 마가복음은 16장전체가 예수님의 부활과 예수님의 승천까지 이야기입니다

16장1절부터20절 여기에도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첫째구조가 뭐냐면 마가도 똑같이 자세하게 여자들 이름을 써놓았습니다. 아까 마태복음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이 정도로 했는데 마가는 자세하게 썼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이렇게 썼습니다. 그리고 천사를 만난 이야기도 1절부터9절까지에 다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10절11절에 이 여자들 다가 아니고 막달라 마리아에 초점을 맞추고 이분이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고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슬피 울고 있었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이 여자의 보고를 믿지 않았다고 마가는 써놓았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구조가 엠마오로 행하는 두 형제에게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누가복음에 자세히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은 딱 두절로 이 사건을 표시했습니다. 12절과13절에 마태복음에는 없고 요한복음에도 없습니다. 엠마오도상 사건은 누가복음에는 자세하게 있는 데 마가복음에는 두절로 표시했습니다. 그래서 성서를 읽다가 보면 여러분들이 구조를 아셔야 됩니다. 그다음 네 번째 구조가 예루살렘에서 열한제자에게 나타난 것이 마가복음16징14절에서18절에 나오는데 15절16절에 보면 마가가 예수님이 지상사명을 내린 내용을 이야기해줍니다 너희들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마가복음에서 나오는 지상사명이 안식 후 첫날이라고 이렇게 보면서 제일 먼저 하신 지상사명입니다

아까 마태복음에서의 지상사명은 몇 번째라 그랬습니까? 세 번째로 한 겁니다. 그러니까 부활 후에 정확한 날짜가 언제인지 모르지만 열흘 후가 아닐까 라고 생각되지만 마가가 쓴 지상사명은 안식 후 첫날 정도로 부활하자마자 그러니까 4복음서에서 지상사명을 다 이렇게 표시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는 우리가 항상 들어온 내용들이 하나 있는 게 예수님께서 지상사명을 내리시면서 17절18절에 보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가복음에만 있는 내용입니다 너희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다보면 믿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믿는 사람들이 표적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뭐냐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고 뱀을 잡고 어떤 독이라도 해를 받지 않고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는 이 말씀은 마가복음에만 있는 말씀입니다. 너희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 그러면서 믿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 텐데 그 믿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표적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이렇게 마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은 더 계속해서 하신 말씀이 19절에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고는 승천하셨다는 이야기가 마가복음에 나옵니다. 마태복음에는 승천하셨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이 승천하셨다 그뿐 아니라 마지막20절에 어떻게 정리했느냐면 승천하시고는 서도행전이야기를 잠깐 한 절로 비추었습니다. 뭐냐면 제자들이 나가서 두루 전파할 새 예수님께서 자들과 함께 하시고 제자들에게서 많은 표적들이 일어났다 이렇게 끝을 맺었습니다.

그러니까 마가는 마태보다도 더 자세히 마지막 부분을 마태가 정리하지 않는 부분을 정리했습니다. 이런 배경을 아셔야 지만 성서를 정확하게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복음을 봅시다. 누가복음은24장 전체가 그렇습니다. 마태복음은28장 마가복음은 16장 전체가 그렇습니다.

누가복음24장을 보면 구조가 있습니다. 첫째 구조가 여자들 이야기를 전혀 안하고 그냥 여자들이 그랬습니다. 예수님 무덤을 찾아가는 장면으로 그래놓고 나중에 10절에 괄호를 열어가지고 여자들 이름을 다시 써놓았습니다

그런데 처음시작은 여자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번째로 빈 무덤을 보고 여자들이 똑같이 제자들에게 보고하는 장면입니다 9절에서11절에 보고하는데 누가복음에는 뭐가 있느냐면 세 번째는 이 보고를 받은 베드로가 무덤을 방문하는 장면으로 베드로를 이렇게 부각시켰습니다. 베드로가 빈 무덤을 봤는데도 베드로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에게 대해서 별로 좋은 평가를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가 이 양반은 빈 무덤을 보고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이런 이야기를 적혀놓았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구조가 뭐냐면 아까 말한 엠마오도상의 두 제자이야기를 강하게 했습니다. 누가는 여기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13절에서32절까지입니다 그러면서 엠마오의 두 제자에게 하시는 말씀이 구약을 봐라 구약에 나오는 모든 내용들이 다 나에 관한 이야기들이라고 말씀하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다음에 다섯 번째로 누가복음의 구조가 열한사도에게 나타나시는 겁니다. 33절에서43절에 그리고 여섯 번째로 예수님이 열한 사람들에게 지상사명을 내리시는 겁니다. 47절에서49절에 이것을 네 번째 지상사명으로 보시면 됩니다. 약40일 가운데 30일 정도 되었을 때 내리지 않으셨냐. 보는 겁니다. 예수님의 지상사명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된 것이 이루어질 때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간접적으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 지상사명이 이루어진 게 다섯 번째인데 언제입니까? 사도행전1장8절입니다. 누가는 더 자세하게 이렇게 지상사명을 내리시고는 일곱 번째로 예수님의 승천의 내용을 자세하게 해놓았습니다.

왜냐면 누가는 예수님의 승천내용을 누가복음 마지막 편에 써놓은 이유는 누가복음 제2편이 무슨 책입니까? 사도행전입니다 사도행전1장을 우리가 공부하겠지만 사도행전1장은 누가복음의 마지막24장과 중첩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승천을 누가가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그러면 요한복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요한복음은 마지막 순간을 20장과21장 두 장을 다루었습니다. 다시 보겠습니다. 마태복음은 몇 장을 다루었습니까? 28장 마가복음은 16장 누가복음은24장 그런데 요한복음은 20장21장을 다루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어떻게 주님이 요한을 통해서 구조적으로 만들었냐면 첫 번째 구조는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와 요한이 빈 무덤을 봤다는 이야기를 20장1절에서10절까지 간단하게 적었습니다. 두 번째는 막달라 마리아와 천사 둘과 예수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면서 아주 자세하게 설명이 된 것을 제가 지난시간에 다 했습니다. 세 번째로는 20장19절에서25절인데 예수님이 도마를 제외한 제자들에게 나타나는 장면을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도마가 의심하는 이야기는 요한복음에만 나옵니다. 도마를 제외한 제자들에게 나타나가지고 예수님이 지상사명을 내리시는 겁니다. 20장21절에서23절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지상사명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 말씀이 요한에게 주시는 지상사명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사명입니다

그라고는 요한복음의 네 번째 구조가 뭐냐면 도마를 포함한 열한제자에게 나타나신 겁니다. 20장25절에서29절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다섯 번째로 기록목적을 말씀하십니다. 그게20장30절에서31절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20장이 끝납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21장입니다

오늘 공부할 것을 하기 위해서 제가 서론이 이렇게 길었습니다. 서론을 알아야지만 본론을 우리가 이해를 할 수가 있는 겁니다. 21장의 구조를 보면 21장은 어디이야기냐면 예수님이 갈릴리로 올라가는 사건입니다

갈릴리로 올라가서 일곱 명의 제자들이 고기잡이 하던 곳에 가서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부활하신 자기 자신을 나타내시면서 그래서21장은 크게 둘로 구별이 됩니다. 디베랴. 갈릴리바다입니다 그다음에 누가복음5장1절에 보면 게네사렛 호숫가라 그랬습니다. 디베랴. 갈릴리. 게네사렛 이렇게 세 이름이 같은 이름입니다. 여기서 일곱 제자가 고기잡이하신데 나타나신 장면이 첫째 21장의 구조입니다 이들에게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우리가 보겠습니다.

그다음에 그 장면이 끝나면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만 말씀하시는 장면이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시고 베드로가 나중에 순교까지 할 것을 말씀하시는 장면이 요한복음21장입니다 디베랴 바다에서 일곱 제자들과 어떻게 서로 이야기하며 어떻게 그분들과 주님이 숨겨놓은 메시지를 나누는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일곱 제자들이 누구였냐면 베드로, 도마, 나단나엘, 요한, 야고보 그리고 다름 두 제자라 그랬는데 이름은 모릅니다. 베드로가 주동이 되어가지고 완전히 예수님과 헤어진 상태에서 우리 고기잡이 가자면서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와서 고기잡이를 하는 겁니다. 밤을 새도록 고기잡이를 했는데 한 마리도 못 잡았다 그랬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이들에게 나타나신 겁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서 하시는 말씀이 애들아 고기 있느냐 물어보는 겁니다.

제자들이 그냥 없나이다. 대답하는 겁니다. 배 오른편에 던져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그랬잖아요. 제자들이 그물을 그냥 던졌습니다. 고기가 엄청나게 잡혔습니다. 이분들이 그물을 오른쪽에 던져라한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던진 겁니다. 요한이 베드로에게 말하는 겁니다. 형! 우리에게 말한 분이 예수님이라고 요한이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성질이 급해가지고 벗었던 옷을 다시 입고는 바다로 뛰어 들어갔다고 그랬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인줄 몰랐다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배에서 육지까지가 오십 간이라고 되어 있는데 약90m정도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니까 이분들이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보고는 말씀하시는 겁니다.

애들아 숯불과 생선과 떡을 가져와라 같이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는 베드로가 고기 잡은 것을 육지로 끌고 나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몇 마리냐면 153마리라는 겁니다. 그물이 찢어 졌습니까? 안 찢어 졌습니까? 그물이 안 찢어졌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았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분들과 식사를 같이 하면서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고 14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내용들입니다 이 내용은 조금 있다가 보시고 그다음에 두 번째 구조가 뭐냐면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시고 순교하는 내용입니다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시는 내용을 우리가 알잖습니까? 너 나를 사랑하느냐 너 나를 사랑하느냐 이런 내용인데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이유는 뭐냐면 요한복음은 누가 썼습니까? 요한이 썼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지금 베드로에게 초점을 맞추어가지고 21장을 그냥 도배를 했습니다. 요한만이 베드로에 대해서 자세하게 글을 썼지 4복음서에 보면 나머지 마태나 마가나 누가는 베드로에 대한 이야기를 그렇게 자세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특히 마태 같은 사람은 베드로를 기술할 때 베드로의 약점을 많이 노출시켰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성령님은 사람의 관계를 이용하셔가지고 그렇게 쓰도록 하신 겁니다. 열두제자들 사이에서 마태는 어떤 분입니까? 마태는 세리출신으로 귀족 형입니다 사회에 지위가 높은 분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하층출신입니다 이러누 상황 속에서 마태가 베드로를 볼 때는 베드로의 약점들이 많이 보이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령님께서는 마태를 통해가지고 베드로의 약점을 많이 지적하도록 마태복음에는 그렇게 방행 설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일곱 가지 예를 드릴 테니까 다 아는 내용들을 제가 저목을 시켜드리겠습니다. 첫째 마태복음8장14절에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 장모를 고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른 제자들의 장모를 고쳤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는 마태복음14장31절에 베드로가 물위를 걷다가 빠져서 예수님에게 믿음이 없는 자라고 꾸중을 받는 장면을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마태복음16장23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도대체 내가 누구냐 그러니까 주는 그리스도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그러니까 이분을 칭찬하시는데 베드로가 실수를 했습니다. 무슨 실수를 했느냐면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대제사장들과 모든 높은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고 죽었다가 3일 만에 살아나리라는 말씀을 16장21절에 했거든요 이 말씀을 하시니까 베드로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그러지 마십시오. 그랬잖아요. 예수님이 그분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이런 말을 했잖아요.

이런 내용은 마태복음에만 있는 내용입니다 마태가 베드로의 코를 조금 낮추시려고 이런 일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네 번째로는 마태복음18장21절22절에 보시면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그랬습니다. 너희들 가서 용서해주어라 일곱 번 용서해주라 그러니까 일흔 번씩 일곱 번 이렇게 말하잖아요.

다른 분들에게 아주 베드로의 인격에 상처를 주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마태는 다 기록하도록 성령님께서 인도하셨습니다. 그뿐입니까 마태복음26장40절에 잠자고 있는 모습을 보시고 앞으로 큰 하나님의 종이 될 사람들의 치부를 드러내게 하시는 겁니다. 마태는 이런 부분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특히 베드로에 대해서 성령님이 그렇게 하라고 그래서 한 겁니다.

여섯 번째는 마태복음26장51절에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자르는 이야기 예수님께 꾸지람을 받는 이야기 일곱 번째로 마태복음26장75절에 닭 울기 전에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하는 장면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사건 이외도 마태는 예수님이 베드로를 직접 만났다는 이야기를 안 합니다. 다른 분들은 하지만 그만큼 베드로와 관계가 미묘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다릅니다.

요한은 베드로에 대해서 21장 전체를 할애한 겁니다. 그리고는 베드로에 대한 리드 십을 부각시켜주고 그렇습니다. 저자마다 성령님께서 가르치는 것이 다릅니다. 마가를 보면 마가는 베드로와 무슨 관계입니까?

베드로전서5장13절에 보면 베드로가 마가를 뭐라고 그랬습니까?

마가는 내 영적 아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두 분 사이는 상당히 좋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면 마가의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부동산 마가의 다락방을 항상 제자들이 모임장소로 사용했거든요 그러니까 마가의 어머니와 베드로가 친했던 겁니다. 베드로가 그중에 대표니까 그래서 관계가 좋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가는 마가복음을 쓸 때 베드로의 이런 약한 부분을 그의 쓰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인간관계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성령님께서도 인관관계가 안 좋은 경우에는 나타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은 베드로에 대해서 간단하게 기록한 게 뭐냐면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다는 그것도14장66절에서72에 아주 간단하게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누구를 좋아합니까? 누가는 누구에 의해서 크리스천이 되었습니까? 바울입니다

누가는 열두제자입니까? 아닙니다. 누가가 기독교인이 된 것은 언제 되었습니까? 바울이 2차 선교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사도행전16장에 누가는 고향이 어디입니까? 안디옥입니다 이방인입니다 그러니까 누가는 열두제자들과 가깝습니까? 안 가깝습니까? 그분들과 영적인 교감이 별로 없었던 분입니다

그러니까 누가의 영적 줄기는 누구줄기입니까? 바울줄기입니다 바울의 영적 유산을 가졌던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복음은 아주 객관적으로 이방인의 시각에서 열두제자와 교감이 별로 없는 이 사람이 아주 객관적으로 글을 쓴 겁니다. 누가는 이방사람으로서 그래서 누가는 베드로의 약한 부분들을 아까 말한 대로 마태처럼 아주 적나라하게 쫘악 썼습니다. 누가도 왜냐면 베드로와 직접적인 제자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요한은 다릅니다. 요한은 항상 베드로와 가까웠던 사이입니다

왜 그럴까요. 열두제자 중에 수제자 세분이 계셨잖아요. 세분 중에 항상 베드로와 요한과 그다음에 야고보와 이렇게 나오잖아요. 요한과 야고보 요한은 항상 베드로 옆에 계셨던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가 좋았습니다.

좋았기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는 요한에게 베드로에 대한 장점을 부각시켜라 그래서 지금 요한복음21장은 완전히 베드로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면 21장을 조금 자세하게 봅시다. 첫째 왜 물고기가153마리가 잡혔나 이겁니다. 모든 주님이 하시는 기적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153마리 속에 숨겨져 있는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153마리

제가 간단하게 말하지만 하나하나 적으시길 바랍니다. 첫째 153마리라는 것은 우선 생선을 헬라어로 뭐라고 그랬습니까? 잌투스I X O U S (Ι χ θ Υ Σ ) 그랬습니다.

다섯 개의 알파펫이 예수님은 구원자시다 예수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1장21절에 저들을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그게 I : Iesus (예수스 : 예수) 예수라는 뜻입니다. 그다음에X : Christus (크리스투스 : 그리스도)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생선의 두 번째 뜻이 그다음 θ : Theos (떼오스)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다음에 U : Huios (휴이오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다음에 Σ : Sojomete (소조메테)내 죄를 대신 져주셨다 대속 주 그래서 주님께서는 생선을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래서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도 갈릴리바다에 가시고 부활 전에도 항상 그분의 사역이 갈릴리바다에 가서 고기잡이와 관계되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잖아요. 왜 그럴까요.

예수님이 물고기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 제일 먼저 153마리를 잡은 목적과 교훈이 뭐냐면 첫째는 예수님의정체성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이 정체성과153마리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면 첫째 1은 유일신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유일신이시다 5는 무엇이냐 모세오경의 주체가 누구라는 겁니까?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3은 뭐냐면 예수님이 삼위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153마리의 고기를 잡게 하신 겁니다.

두 번째 의미는 제자들의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153마리가 왜냐면 제자들 너희들은 사람 낚는 어부라는 겁니다. 마가복음1장17절에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베드로야 너는 생선 잡고 있지 이제는 생선을 잡지 말고 사람을 잡으라는 겁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실 때 고기잡이할 때 불렸거든요. 그때 뭐라고 그랬냐면 너희들 지금은 고기 잡는 어부지만 너희들은 나중에 사람 잡는 어부가 될 거라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했잖아요. 그러시고는 3년이 지나간 후에 153마리의 사건을 보여 주면서 이제는 너희들이 누군지 아느냐 153마리가 무엇인지 아느냐 그게 예수님이 나다 그리고는 너희들이 나가서 조그만 생선들 그게 누굽니까?

우리크리스천들을 뭐라고 그럽니까? 예수님이 선택하신 장차 복음을 받을 사람들인 우리가 조그만 생선들입니다 그래서 조그만 생선을 뭐라고 그러느냐면 조그만 예수입니다. 그래서 크리스천 그러는 겁니다. 크리스천 사도행전11장26절에 안디옥교회 교인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는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는 겁니다. 크라이스트(Christ)는 예수님입니다. 또는 예수께 속해있다고 할 때 크리스천(Christian)이제 베드로보고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 나가서 조그만 생선들이 조그만 예수들이 깔려있는데 그 사람들에게 가서 그물 던져가지고 잡아오라는 겁니다. 너희들의 정체성이 뭐냐면 이것을 하는 것이 너희들이라는 겁니다. 물고기153마리를 잡게 하시면서 마태복음25장40절에도 그랬습니다. 너희들이 조그만 소자에게 하는 것이 나에게 하는 거라는 겁니다. 마태복음25장40절에 그러니까 우리하나님의 예정된 기독교인들 아직 크리스천이 아니지만 예정된 사람들에게 가서 낚아오는 일이 사람 낚는 어부 일을 그분들이 해왔고 우리도 하고 있잖아요.

제자들의 정체성이 세 번째로 무엇이냐면 크리스천(Christian)들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크리스천(Christian)들인 우리는 뭐냐면 조그만 고기들을 우리크리스천들은 조그만 고기들을 잡아오는 일을 하고 내 자신이 또 조그만 고기라는 겁니다. 크리스천의 우리정체성이 우리도 조그만 생선이고 우리가 또 뭘 하느냐면 그 생선을 잡아오는 일을 하는 다시 말하면 영적어부들이라는 겁니다. 네 번째로 153마리가 무엇을 가르쳐주느냐면 베드로의 사명을 고취시켜 주기위한 겁니다. 베드로가 나가서 영적어부역할을 할 텐데

영적고기잡이는 네가 밤새워 해야 아무 소용없다는 겁니다. 네가 고기잡이를 평생 했지만 그 실력으로 세상고기 안 잡히잖아. 어제 밤에 봤지 그르듯이 영적 고기잡이는 네 힘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네 경험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네 상식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네 이성으로 잡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어저께 밤새워 잡아봤자 안되지 똑같이 그걸 경험으로 삼아서 앞으로 네가 영적고기잡이를 할 텐데 이것은 완전히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어가면서 예수님이 오른쪽에 던져라 순종을 했기 때문에 된 거지 예수님의 순종 이게 영적고기잡이의 원칙입니다. 영적고기잡이의 다섯 번째의 메시지는 뭐냐면 예수님의 음성과 그분의 가르침에 귀를 기우리는 겁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라 그러니까 이분이 들었지만 그다음에 조건은 순종을 했다는 겁니다.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러니까 고기가 엄청나게 잡힌 겁니다. 그러니까 영적고기잡이는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우려야 되고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서 우리가 고기잡이를 해야지 내 상식 내 경험 네 이성 내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못 잡습니다. 이렇게 베드로가 이런 메시지를 받은 다음에 이게 요한복음21장의 첫째 구조입니다 그리고는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시는 겁니다. 유명한 세 질문을 하는 겁니다. 이 질문을 잘 보세요.

이렇게 하시고는 식사가 끝난 후에 베드로에게 초점을 요한이 맞추는 겁니다. 베드로야 너 나를 사랑하느냐 그런데 뭐냐면 이 사람들보다도 너 친구들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렇게 세 번 물어 보잖아요 세 번 물어본 다음에 베드로에게 예언을 합니다. 너는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니지만 늙어서는 네팔을 벌린 체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않는 곳을 데리고 가리라 이분이 나중에 제자가 된 후에 순교당할 것을 말씀하시고는 나를 따르라 그러니까 베드로가 그럽니다. 요한은 어떻습니까? 물어보는 겁니다. 23절에 보면 요한도 베드로와 같이 순교당할 것을 암시적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똑같이 요한도 에베소에서 기름 가마에 들어가서 순교 당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사명이 다른 겁니다. 같이 예수님께 부리 움을 받고 예수님을 전하는 자들이지만 서로가 다르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요한에 대해서는 걱정 하지 마 너만 나하고 이야기하자요한은 따로 계획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사명 자들은 다 사명이 조금씩 다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 죽을 가오를 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요한복음은 결론이 뭐냐면 너희들 나를 전하기 위해서는 순교를 각오하고 이것이 계획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게 요한복음의 메시지로 마지막으로 끝나는 장면입니다. 지금부터 베드로의 사명 세 가지를 우리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럽니다. 베드로야! 너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어보는 겁니다. 그때 예수님이 아가페사랑으로 물어보는 겁니다.

베드로야 너 나를 아가페 사랑하느냐? 아가페 사랑은 하나님의 무조건 적인 사랑입니다 너 나를 그런 식으로 사랑하느냐 그러니까 베드로의 대답이 아닙니다. 필레오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는 겁니다. 필레오 사랑은 그냥 친구 간에 사랑입니다 나는 당신을 그렇게 심각하게 내 목숨까지 받쳐가면서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겁니다. 헬라사람들은 단어가 다르기 때문에 알면 그 느낌이 오잖아요. 예수님이 다 아셨습니다. 이때까지 한 행동을 보면 필레오 사랑한 거지 아가페 사랑한 것이 아니잖아요. 베드로가 아주 솔직하게 그래요 저는 필레오 사랑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입자에서 보면 너 나를 필레오 사랑하는데 내가 너에게 제자의 권한을 줄 아무이유도 없구나.

이렇게 말씀하셔야 되는데 이분이 거기다 되고 명령을 내리는 겁니다.

겁을 주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뭐냐면 내 어린 양을 먹이라 그러는 겁니다.

먹이라는 동사를 보면 헬라어로 보스코 아이들을 잘 다루면서 먹이는 겁니다. 어린양은 베이비양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그러는 겁니다.

앞으로 너를 통해서 많은 그리스도인이 나올 텐데 그게 다 내 양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내 양인데 네가 지금 나를 별로 사랑하지 않지만 친구 식으로 사랑하지만 좋을 때는 좋고 싫을 때는 도망가는 그런 스타일로 사랑하지만 너를 통해서 애기 양을 많이 낳게 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린양들을 잘 먹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여섯 단계에서 어느 단계입니까?

파이디온(PAIDION)단계입니다 유아와 파이디온 영적 베이비들을 잘 먹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너 아직 준비가 안 됐어 필레오 사랑 밖에 나는 못하지만 그래도 하라는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을 아가페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저도 여러분들을 고작해야 필레오 사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저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제가 싫으면 여러분들도 저를 씹을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저를 아가페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나를 필레오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저도 압니다. 저도 여러분들과 똑같습니다. 제가 아가페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려고 노력하는 것뿐입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 베이비들을 먹여라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교인들은 어린양(Lamb)수준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는 그다음단계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애야 너 정말 나를 아가페 사랑하느냐 또 물어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의 대답이 뭡니까 필레오 사랑합니다. 또 대답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럴 때 한 단계 높이는 겁니다. 여기 보면 내 양을 치라 했는데 이때 양은(Sheep)입니다 헬라어로 프로바톤이라고 어른 양입니다 영어사전에Lamb과Sheep하고 같은 종류인데 나이차이로 Lamb은 어린양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부를 때도 뭐라고 부릅니까? Lamb of GOD그럽니다.

유월절 어린양을 Passover Lamb이라 합니다. 왜냐면 Passover Lamb이 몇 년 된 양입니까? 일 년 된 수컷으로 어린양으로 그래서 Lamb이라는 말을 씁니다. 똑같이 두 번째 단계는 뭐냐면 어느 정도 Lamb수준에서 자라나가지고 이제 조금 성숙된 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무엇일까요 처음에 네피오스(NEPIOS) 파이디온(PAIDON) 테크니온(TEKNION)사춘기 그다음에 청년기 네아니스코스(NEANISKOS)이 단계 사람들은 어떻게 하느냐면 이제는 치라는 겁니다. 원어로 포이마이노 잘 기르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다스리고 보호하고 그냥 먹이기만 하는 단계가 아니고 시편23편에 이분은 나의 목자시니 나를 푸른 초장으로 가서 먹게 하시고 쉴만한 물가로 나를 인도하시 도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 수준은 된 것 같습니다. 음식 먹는 것은 푸른 초장에서 먹지만 스스로 잘 소화하면서 또 생수는 성령님으로 기름 부으심을 받으면서 이렇게 되는 사람들이 어디까지 가야 됩니까? 목적이 아들과 아버지단계까지 가도록 키워주는 겁니다. 그래서 세 번째로 이야기하시는 겁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께서 아시고 세 번째 질문은 너가 나를 필레오 사랑하느냐 물어보니까 네 필레오 사랑합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겁니다. 그래서 필레오 사랑한다면서 이분이 하시는 말씀이 내 양을 먹이라 그러는 겁니다.

이제 내 양은 어른 양(Sheep)입니다. 이 사람들을 이제 높은 수준으로 먹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단단 음식으로 제대로 된 음식으로 이 양들을 먹여가지고 이제는 아들 단계 휴이오스(HUIOS)까지 아버지단계 파텔르(PATER)까지 이 사람들을 올려 라는 겁니다. 지금 우리AMI에서 이 일을 제가 여러분들에게 하고 있습니다.

단계 한국어 헬라어 성경구절 나이
1 영적유아 네피오스(NEPIOS) 고전3:1,13:11,14:20,
갈4:1,히5:13
0-4살까지
2 영적어린이 파이디온(PAIDION) 마18:2, 눅1:30,
요일2:18
5-11살까지
3 영적사춘기 테크니온(TEKNION) 요1:12, 13:33 12-17세까지
4 영적청년기 네아니스코스(NEANISKOS) 행2:17, 요일2:13-14 18-24세까지
5 영적아들 휴이오스(HUIOS) 민4:43, 마5:9,45:
롬8:14-15
25-29세까지
6 영적아버지 파텔르(PATER) 고전4:15 30세 이상

※영적성장의 6단계

그런데 베드로가 자신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수제자지만 이분도 계속해서 필레오 사랑으로 계속해서 예수님을 사랑해왔습니다. 베드로가 고백했잖아요.

그리고 오순절사건을 통해서 성령세례도 받았지만 필레오 수준이 아가페수준으로 100%까지는 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언제까지 가야 됩니까? 계속 이분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을 섬기면서 어느 때가 되면 그 때가 되었을 때가 언제였습니까? 순교라는 것은 필레오 사랑가지고는 할 수가 없잖아요. 아가페 수준이 되었을 때 그분을 위해서 순교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베드로도 아가페 수준까지 갔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이 메시지를 받았을 때가 주후 몇 년입니까? 주후30년입니다 베드로가 베드로전서를 쓰실 때보면 베드로전서5장에 보면 이 부분이 발견됩니다. 베드로전서는 언제 썼느냐면 주후64년에 썼거든요. 65년에 베드로가 순교 당했다고 보거든요 64년이니까 30년에 이 메시지를 받고는 약33년34년 정도 되었을 때 베드로의 변한 모습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러는 겁니다.

우리가 잘 아는 베드로전서5장1절에서4절까지 보시면 베드로가 그동안 개척했던 교회에 소위 장로들과 지도자들과 감독들에게 이분이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너희들 복음을 위해서 많은 고통을 당했던 너희들이 나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영적생선들을 훈련시키는 부분에서 너희들이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무슨 문제가 있느냐면 너희들이 지금 지도자지만 부득이 함으로 이 일을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더러운 이득을 쫓아서 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나의 어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내 이름 날리고 나의 어떤 이익을 위해서 소위 목사라는 하나의 포지션이 생활의 수단으로 이렇게 한다는 겁니다. 세 번째는 뭐냐면 주장하는 자세로 한다는 겁니다.

독재를 쓰면서 자기의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교인들을 그냥 데리고서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한다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 이렇게 하지 말아라. 너희들은 내 제자들인데 왜 이 수준에 갔느냐 그러면서 이렇게 해라 내가 대안을 제시해줄게 하는 말씀이 하나님의 쫓아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겁니다. 풀타임 목사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하라는 겁니다.

하고 싶어서 안하면 안 되는 이런 마음으로 하라는 겁니다. 그리고는 양 무리의 본이 되라는 겁니다. 너가 리드 십을 발휘하려면 본이 되라는 겁니다.

이렇게 할 때 크리스천지도자들은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목사가 되었다고 해서 이렇게 안하면 영광의 면류관이 없다는 겁니다. 전도사 선교사 지도자는 이런 식으로 해야지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양 무리의 본이 되게 해야지 자기의 어떤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내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나의 어떤 생활수단으로 이렇게 하는 것은 이 면류관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베드로가 자기도 삶 속에서 이것을 다 깨닫고는 이렇게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치고는 그 다음해에 이분이 필레오 사랑에서 어디까지 갔습니까? 아가페 사랑까지 갔습니다. 저도 아직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아가페 사랑까지 못 간 것 같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아가페 적으로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베드로를 이렇게 보면서 힘을 받는 게 있습니다. 주님이 베드로를 처음에는 필레오 적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을 이해하시고 그런 가운데서도 이분에게 모든 중책을 맡겼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천천히, 천천히 이분이 아가페 사랑까지 가도록 오래 참으시면서 단계적으로 점진적으로 오래 참으시면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베드로를 어떻게 사용하실 것을 미리 다 예정하셨기 때문에 이분이 이렇게 가도록 잘 이끌었습니다.

이 말씀을 제가 이렇게 묵상하면서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21장에서 베드로의 특별한 부분을 주님께서 조명하시면서 이분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우리주님은 저나 여러분을 예정하셔서 어떻게 쓰시려고 하시면 지금 이 상태 여기서 머물려는 것이 아니고 지금은 부족하지만 계속해서 점진적으로 여러분들을 나름대로 점점 아가페 사랑까지 가도록 이끄실 겁니다. 왜냐면 주님이 자기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분이 영광 받으시기 위해서는 우리를 날로, 날로 성장시키는데 어디까지 성장시키느냐면 예수님을 아가페 사랑할 수 있도록 까지 그리고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너는 나를 아가페 사랑할거다 그러면서 너는 이제는 너가 원치 않는 곳으로 띠를 띠고 갈 거라는 겁니다. 순교당할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시면서 요한복음을 끝내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요한도 그랬고 베드로도 그랬고 나머지 제자들도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엇으로 끝내었냐면 예수님을 아가페 사랑하는 수준까지 순교자의 수준까지 될 것을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너희도 영적어부들이다 우리AMI공동체 형제자매들이여 우리들도 영적어부들입니다 지금은 부족하지만 주님이 우리를 영적어부의 사명을 주셨다고 하면 특히 내 민족만이 아니고 타민족에게까지 주셨다고 하면 우리를 예수님을 아가페 사랑을 할 수 있도록 키우실 겁니다.

그래서 우리 아가페 사랑은 꼭 나가서 복음만 전하는 것만이 아니잖아요.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뒤에서 중보기도도 하시고 물질 재능 봉사를 하시는데 그냥 자투리로 하시는 게 아니고 아가페 사랑은 먼저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해야 합니다. 나의 중요한 걸 다 제쳐놓고 먼저 하는 겁니다. 조그만 일도 교회에 어떤 행사도 주님 제가 지금 집안에 할 일이 많고 자녀들을 돌봐야 되고 뭘 돌봐야 되는데 내려놓고 먼저 주님의 일을 하겠습니다. 이것이 순교입니다 조그만 의미에서의 순교입니다

시간순교 물질순교 나의 마음을 순교하는 이걸 먼저 하는 사람들은 이 수준까지 갔을 때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고 여러분들을 사랑하시겠습니까?

이 세상이 지금 바쁘기 때문에 바쁜 걸 다하고 그다음에 시간 있을 때 한다는 것은 주님이 보실 때 너는 아직 영적 어린아이수준정도 되었을 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으로 어느 정도 성숙된 것은 무엇을 보느냐면 어디에 우선순서가 있느냐 요한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순교 우리가 목숨은 죽지 않더라도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가 있느냐 설정을 잘하시는 우리는 이미 주님을 향해서 순교하는 자들이고 주님을 아가페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이러다가 이분을 만날 때 주여 하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언젠가는 예수님을 우리가 얼굴과 얼굴로 대면 할 텐데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2천 년 전에 자세하게 세밀하게 열두제자들을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누구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이고 또 그 사랑을 받은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눈을 대고 있기에 영적인 부분에 소월 할 수 밖에 없는 숙명적인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는 이 영적세계로 옮겨가야 되는 존재들이기에 영적세계에 관한 모든 비밀을 말씀을 통해서 가르쳐주시니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이 두 세계를 잘 균형을 맞추어가면서 살 것을 주님 저희들에게 이런 지혜를 가질 것을 간구합니다. 그러나 이제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부분이 점점 이제는 저 세계를 향해서 우리의 삶의 많은 부분을 향해 갈 수 있는 지혜를 가지게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지혜로운 자라고 주님 앞에 칭찬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요한복음을 통해서 주신 많은 말씀들 그냥 하나의 귀로 듣고 머리에 쌓아두는 일로만 끝나지 않게 해주시고 이 모든 주님의 메시지들이 우리의 머리로부터 우리가 묵상을 할 때마다 계속해서 묵상을 할 때마다 이 말씀이 가슴으로 내려오게 해주시고 그리고 온 몸에 영양소로 퍼지게 하셔서 우리의 손과 발과 눈과 귀와 입을 사용하셔서 창조의 목적을 이루시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