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

요한복음강해 30강.(요18장3-19장42)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시는 예수님

변명섭 2021. 10. 25. 13:26

요한복음강해 30강.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시는 예수님

(요18장3-19장42)

오늘 말씀은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시는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요한복음의 그이 마지막 부분입니다 18장3절부터19장42절까지 내용적으로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우리가 크리스천이라면 이 부분을 잘 정돈한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조각조각 많이 들어봤던 이야기들인데 이 내용들을 오늘은 조직적으로 또 순서적으로 잘 제가 설명을 해드리려고 합니다.

왜냐면 예수님의 겟세마네동산부터 시작해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그 과정을 한 복음서가 한꺼번에 자세하게 쓴 것이 아니고 4복음서가 서로가 조각조각 써놓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조각을 잘 맞추지 않으면 이해가 힘들어 집니다. 그래서 이것을 제한된 시간 내에 제가 이걸 다 맞추어 드리는 게 쉽지는 않지만 제가 맞추어 드리려고 합니다. 지난시간에 겟세마네기도에 대해서 우리가 같이 상고했습니다. 겟세마네기도를 주님이 하실 때 알다시피 고민을 하셨다 슬퍼하셨다.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너희들 깨어있어라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몇 번을 겟세마네기도를 하셨습니까? 세 번을 하셨습니다. 겟세마네기도를 예수님이 왜 하셨나요. 그럴 때 지난시간에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이 인성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이분도 완전한 인성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앞으로 다가올 잔 을 생각하시니까 견디기가 힘드신 겁니다. 앞으로 다가올 잔이 겟세마네동산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이 숨을 거두시는 그 과정을 앞으로 일어날 잔이다 그랬습니다. 이 잔을 제가 열 가지로 기록해드렸습니다 우리예수님이 이 잔을 본인이 받으실 것을 이미 다윗에게도 예언하셨고 또 이사야에게도 예언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는 시편22편 또 이사야에게는 53장에 이렇게 예언하셨거든요 하셨는데도 이분이 이것을 될 수 있으면 우회하시려고 거르는 겁니다. 이걸 거치지 않고 그냥 죽으시려고 그러시는 겁니다. 그만큼 이 잔이 이분에게는 괴로웠던 겁니다. 그래서 이 잔 통과는 본인이 다윗에게나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는데 본인이 이것을 통과해야 되잖아요. 통과하시려면 이분이 인성만 가지고는 힘든 겁니다. 그래서 천사가 와서 도와주고 그러면서 이분이 보좌의 기도를 하면서 영적파이프라인을 연결을 시키고 보니까 아하 내가 이것을 견뎌야 되겠구나. 라고 확인을 받으시는 겁니다. 우리크리스천들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지만 우리는 이쪽나라사람이 아니잖아요. 우리는 저쪽나라에 속해 있는 사람이지만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 파이프라인을 올리지 않으면 우리도 힘들어지는 겁니다. 이 세상에 우리에게 있는 많은 잔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될 잔들이 많습니다. 예수님도 이 잔들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왜냐면 이 잔을 겪어야지만 생명이 일어나는 겁니다.

왜냐면 겟세마네라는 뜻이 무엇이라고 그랬습니까? 감람유를 짜는 틀이라 그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 속에 들어가는 것이 겟세마네부터 시작해서 숨을 거두는 그 잔입니다 그래서 특 속에 들어가니까 아픕니다.

그래도 나중에 나오는 마지막 열매가 무엇입니까? 감람유가 예수님의 보혈을 흘리기 위해서는 틀 속에 들어가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보혈은 생명을 우리에게 주는 생명수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보혈을 흘려야 되는데 그냥 보혈을 흘릴 수가 없는 겁니다. 이 과정은 틀 속에 들어가야 되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우리를 통해서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려면 우리가 틀 속에 들어가서 우리도 이 잔이 우리 삶 속에서 나가야 됩니다.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잔들이 있습니다. 어떤 잔이냐면 우리에게도 열 가지 잔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열 가지 잔이 있습니다. 우리도 자존심 상처를 받아야 됩니다. 자존심 상처의 잔이 있고 핍박의 잔이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비난도 받아야 되는 잔이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재물도 손해를 봐야 합니다. 건강을 손해 보는 잔도 있고 예수님 때문에 가족도 손해 보는 잔이 있습니다. 명예도 상처받아야 되는 잔이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여덟 번째로 권리도 포기해야 되는 잔이 있습니다.

아홉 번째로 시간도 손해를 봐야 되는 잔이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미움과 배척을 받는 잔을 우리가 받아야 됩니다.

이런 것 없이는 우리를 통해서 생명을 일으키는 일을 못하는 겁니다.

그냥 누구 때문입니까? 예수님 때문인 겁니다. 우리예수님께서 겟세마네기도를 하셨던 목적이 무엇일까요? 시각의 변화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이분이 이 세상에 살면서 눈을 이 세상에만 두고 계셨거든요 예수님도 기도를 자꾸 하시면서 인간이기 때문에 이분도 자꾸 이 세상으로 눈꺼풀이 내려가는 겁니다. 우리도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저쪽세상으로 눈꺼풀을 올리기 위해서는 파이프라인을 연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분도 기도하시는 겁니다. 기도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항상 묵상 하면서 아버지의 뜻을 묵상하면서 이분도 기도했습니다. 안 그러면 자꾸 이분도 넘어지시는 겁니다.

죄가 없으신 분인데도 그래서 우리 성서에서는 특히 구약에서는 또는 신약에서도 눈을 항상 이 세상에 살면서 위로 뜨면서 저쪽세계를 직접 보면서 기도했던 분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다윗이 그랬습니다. 시편91편이 하나의 예입니다 또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도 9장10장에 보면 그랬습니다. 이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사야서6장에 보면 이분도 3층천으로 기도하면서 올라갔습니다, 에스겔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스겔서1장부터 주욱 10장까지 보면 다 그이야기들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세도 이분이 시내 산으로 자꾸 올라가서 저쪽을 향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스데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분도 죽을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을 우르르 보면서 3층천을 올려다 본 겁니다. 사도행전7장에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분도 3층천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올라가시면서 하늘을 보면서 아버지의 뜻을 이분이 재확인하는 겁니다. 하박국 같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하박국이 고백한 내용을 우리가 잘 아는 3장17절에서19절의 내용은 하박국도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시각으로 사물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이 기도를 하면서 깨닫게 있잖아요. 17절에 보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의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의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뭐가 잘 안 되는 겁니다. 그리고는 18절에 이분이 그러는 겁니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이분이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신다는 겁니다. 이분의 고백이 왜 이분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나요 보좌의 기도를 하면서 눈을 저쪽에다가 뜨니까 자기의정체성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구나.

나는 저세상사람이구나. 이것을 계속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예수님도 이것을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를 세 번 하시면서 확인하셨기 때문에 앞으로 올 본인의 잔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 확인 없이는 예수님도 이 잔을 피하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앞으로 받으셔야 할 잔 열 개를 제가 순서대로 드렸습니다. 첫 번째 잔은 예수님이 체포를 당하시는 순간에 받는 잔입니다 두 번째는 안나스의 뜰에 들어가서 받는 심문의 잔입니다

세 번째는 가야바의 뜰에 들어가서 받는 심문의 잔입니다 네 번째는 빌라도 뜰에 들어가서 받는 심문의 잔 다섯 번째는 헤롯왕의 뜰에 들어가서 받는 심문의 잔 여섯 번째는 다시 헤롯왕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보내서 재차 심문을 받는 잔 일곱 번째는 십자가 죽음을 준비하는 잔 여덟 번째는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라는 슬픔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이 과정 속에서 받으시는 잔이 있습니다. 아홉 번째는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받는 잔이 있습니다. 열 번째는 죽으시면서 받는 잔이 있습니다. 이 열 가지 잔을 예수님이 생각하시면서 이분이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던 겁니다. 이제 우리가 간단히 열 가지 잔을 상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체포 장면입니다.

제가 아까 말씀드렸지만 4복음서를 다 봐야지만 이것이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제가 시간이 없어서 다 보지 못하지만 하여튼 다 보도록 제가 소개 해드리려고 합니다. 겟세마네기도가 끝나자마자 예수님이 준비되셨잖아요.

이제 열 개의 잔을 받을 준비가 되니까 예정된 대로 가룟 유다를 보내시는 겁니다. 그기에 대제사장과 바리새인이 파송한 많은 무리들과 같이 가룟 유다를 보내는데 보니까 이분들이 검과 뭉치를 들고 오는 겁니다.

그리고는 가룟 유다가 이분들과 짜가지고 소위 사인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군호라 그랬습니다. 사인을 만들어가지고 내가 예수님을 만날 때 그분에게 가서 랍비여 안녕하십니까? 하면서 입을 맞출 테니까 그때 저분이구나. 이렇게 알라는 겁니다. 가룟 유다가 그렇게 한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 왔는지 빨리 행하라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또 무리들에게 그러는 겁니다. 애들아 너희들 누구를 찾느냐 이렇게 물어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나사렛 예수를 찾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나다 그러는 겁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예수님께서 이분들에게 어떤 대접을 받느냐면 강도를 잡는 그러한 대접을 받는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취급받을 것을 선지자들의 글을 통해서 다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태복음26장56절에 이런 과정을 겪는 것이 지금 체포과정입니다 선지자들의 글을 다 이루러함이니라 이 과정 속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잡히자마자 제자들이 다 도망갔습니다. 예수님을 버리고 마태복음26장56절 마가복음14장50절에 이런 것도 다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을 다 하셨던 겁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잡아서 죄인처럼 결박을 했다 그랬습니다.

마태복음26장57절 요한복음18장12절에서 누가복음이나 마가복음에는 이런 말씀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다 섞어서 같이 봐야 합니다.

이게 체포과정인데 우리질문이 있습니다. 왜 가룟 유다를 하나님이 사용하셨을까? 이것은 예전에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가룟 유다를 사용할 것을 이미 창세기3장15절에서 이미 준비하신 겁니다. 삼위하나님께서 그리고는 가룟 유다가 스가랴에게 예언 하신 게 있습니다. 스가랴11장12절13절 또 예레미야18장2절에서12절 또 예레미야19장1절에서13절 스가랴나 예레미야 선지자들을 통해서 다 예언 하셨습니다. 무슨 예언을 하였냐면 이제는 예수님이 은30냥에 팔릴 것을 나중에 그 돈 가지고 토기장이 땅을 사고 나중에는 이분이 그걸로 해서 그 밭이 피밭이 되는 이런 모든 이야기들이 나중에 성취가 다 되었습니다. 이 고정 속에서 성경구절을 보면 마태복음27장5절에서10절 마태복음26장15절에 이것이 다 예언이 되었습니다. 그대로 다 성취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스케줄을 다 짜가지고 하시는 겁니다. 요한복음6장70절에 가룟 유다는 마귀라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그냥 잡는 것이 아니고 강도를 잡는 것같이 잡는다고 그랬습니다. 이 말씀도 이사야서53장7절12절에 다 예언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언이 성취되는 것이 이렇게 잡아가지고 두 번째 잔을 잡수시려 주님이 가시는 겁니다. 두 번째 잔은 어디냐면 두 번째 잔은 안나스에게 끌려가는 겁니다. 지도를 보시면 지금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님이 성만찬설교를 하셨던 곳입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감람산으로 갔다가 겟세마네로 가셨다가 겟세마네서 잡히신 겁니다.

잡혀가지고 지금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안나스 관저로 묽어가지고 끌려가는 겁니다. 강도처럼 예수님께서 그러니까 창조주예수님이 이 피조물들에게 이런 수모를 당하시는 장면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그래서 이 지도를 보면서 겟세마네에서 안나스의 관저로 가는 겁니다. 안나스에게 간다는 이야기는 요한복음에만 있습니다. 공관복음에는 이 내용이 없고 공관복음에는 그냥 가야바에게 갔다고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런데 가야바에게 직접 간 게 아닙니다. 제일 먼저 안나스에게 간 겁니다. 요한복음18장12절에서13절에 그러면 안나스가 누군가 이걸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겁니다.

이 안나스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당시 1세기 때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언제 대제사장을 하였냐면 주후6년부터15년입니다 주후15년이니까 예수님이 3년 공생애 때는 아닙니다. 대제사장인데 이분이 아들이 다섯 명이 있는데 아들 다섯 명이 다 대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집안이 완전히 로얄 패밀리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십자가당하는 당시는 이분의 사위가 가야바입니다. 사위가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이분의 손자가 있는데 맛디아라는 손자까지도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나스는 아까 주후6년에서15년을 대제사장을 하셨기 때문에 이미 그분은 예수님십자가사건 때는 대제사장타이틀은 없었습니다.

없었는데도 막강한 실세입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모든 파워를 가지고 있는 실세기 때문에 로마 군인들이 안나스에게 데리고 가야 되는 겁니다.

항상 세례요한을 빈들에서 부를 때도 대제사장이름들을 열거합니다.

아무개, 아무개 대제사장 때 세례요한이 빈들에서 외쳤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누가복음3장2절에 보면 안나스와 가야바가대제사장으로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갸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안나스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아닌데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그 사람이름을 집어넣어 줍니다. 사도행전4장5절6절에도 보면 그분이 대제사장이 아닌데도 그분이름이 꼭 들어갔습니다. 안나스와 가야바와 이런 식으로 가야바 때인데 안나스를 꼭 집어넣어 줍니다. 그러니까 안나스는 대단히 권력이 있는 영향력이 있는 사람인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안나스의 뜰로 갔다고 말을 하는 겁니다. 안나스의 뜰에 갔는데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니을 뒤에서 따랐다고 했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묽어가지고 가는데 베드로와 요한이 그런데 요한복음에 보면 요한이라는 사람이 안나스와 서로가 안면이 있고 아는 사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안나스의 뜰로 들어갈 때 요한은 따라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분은 문 밖에 이렇게 서서 있었다고 그랬습니다. 베드로는 교육수준이 낮고 소위 정부 파워그룹들하고는 조금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문지기 여자에게 부탁하는 겁니다.

지금 베드로가 문 밖에 있는데 그분을 가서 데리고 들어오세요. 이렇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문지기가 베드로에게 가가지고 딱 보니까 문지기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는 겁니다.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나 이렇게 물어보는 겁니다. 베드로가 말하기를 요한복음에는 그랬습니다.

요한복음18장17절에는 아니요 그러면서 첫 번째 부인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부인은 요한복음과 4복음서를 종합적으로 보면 첫 번째 부인은 안나스의 뜰에서 베드로가 부인하는 겁니다. 이것을 마태복음26장69절에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 여자가 물어보는 질문이 조금 다릅니다.

너는 갈릴리사람 예수와 함께 있지 않았느냐 이렇게 물어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나 있지 않았다고 대답하는 겁니다. 당신 갈릴리 액센트를 들어보니까 당신이 맞는데 이런 식으로 있지 않았다. 모른다는 내용을 마태와 마가는 다르게 표현을 했습니다. 아까 베드로에게 너 예수의 제자가 아니나 물어보니까 모조건 아니라면서 단 답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는 어떻게 대답하였냐면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에는 더 심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다. 이렇게 하면서 문을 차고 나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게 4복음서가 조금씩, 조금씩 표현을 달리 했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요한복음18장19절부터 보면 안나스가 예수님에게 질문하시는 게 나옵니다. 질문이 뭐냐면 당신이 제자들과 당신이 가르치는 교훈에 대해서 나에게 설명하시오 그러는 겁니다. 이분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파워가 있는 종교지도자입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목에 힘을 주고는 예수님께 물어보는 겁니다. 당신의 제자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당신이 가르치는 게 무엇이나 도대체 이렇게 물어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대답하시는 겁니다.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스토리들입니다 내가 되어놓고 이 세상에 말했잖느냐 그러니까 너도 다 들었을 텐데 왜 나에게 물어보느냐 이런 식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에서 성전에서 항상 내가 공개적으로 가르치지 않았느냐 은밀히 하는 것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나에게 물어보느냐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겁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였든지 들은 자에게 네가 물어봐라 그러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 높은 사람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옆에 있던 대제사장의 하속들이 열을 받은 겁니다. 이 하속들이 열을 받아가지고 네가 우리 대제사장 중에 대제사장인 우리 어른 앞에 이게 불 공손하게 왜 이러느냐 하면서 이 하속들이 손을 가지고 예수님을 딱 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가만히 매를 맞는 겁니다. 이놈들 한데 창조주가 매를 맞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얻어맞으시고는 왜 때려 그러지 않으시고 예수님이 그러시는 겁니다. 내가 말을 잘못했으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증거를 대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잘 했으면 너희들이 왜 나를 치느냐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안나스가 자기 사환들과 예수님과 실갱이 하는 걸 보더니 아하! 내가 예수 이 사람을 다루기는 내 실력으로는 안 되겠구나. 내가 지금 실세는 있지만 이분을 내 사위에게 보내야 되겠구나. 그래서 이분이 이 예수를 사위에게 보내라 그래서 사위 가야바에게 보내는 겁니다. 이것이 몇 시냐면 성서적으로 보면 약 새벽1시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초저녁에 겟세마네에서 기도를 주욱 하시고는 그다음에 밤11시경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체포가 된 겁니다 그래가지고 지금 가야바에게 와서 또 심문을 받으시고는 새벽1시쯤 되어서 가야바 뜰에 다시 도착한 겁니다.

가야바 뜰에 도착해서 가야바와 대화하는 장면은 4복음서에서 마태복음이 제일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마태복음26장57절에서68절입니다.

요한복음은 18장25절27절에 아주 짧게 말만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대한 자세한 것을 보려면 마태복음을 자ㅔ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가야바 뜰에 가니까 마태복음26장57절의 내용을 나중에 하나하나 보세요.

이미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거기가 공의회입니다 산헤드린이라고 우리 같으면 국회입니다 거기에 베드로도 하속들 틈에 끼여 가지고 딱 있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대제사장들과 공의회원들이 무엇을 심문하느냐면 예수님을 죽이려고 이미 결정을 자기들 나름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증고를 찾아야 되는 겁니다. 증거를 찾으려고 애쓰는데 그 중에 공의회 멤버 두 사람이 나와서 하는 말이 있는 겁니다. 뭐라고 말하느냐면 이 두 사람이 요한복음2장19절을 인용하는 겁니다. 뭐냐면 이 자가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후에 짓겠다고 큰 소리 친자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의 생각은 거룩한 성전을 마음대로 무너뜨리고 자기가 짓는다고 하는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소위 거짓말로 예수님을 죽일 건수를 찾아내는 겁니다. 그 말을 하니까 예수님이 딱 쳐다보고는 아무 대담도 하지 않으시는 겁니다. 왜냐면 이사야53장도 시편22편에서 예수님이럴 때마다 대답 안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은 자기가 안한다고 그랬으니까 안 하십니다. 그러니까 대답을 안 하니까 대제사장이 또 질문하는 겁니다. 내가 너에게 묻겠는데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맹세하나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는데 맹세하면서 말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서로가 너도 종교인이고 나도 종교인이고 우리 다 구약의 하나님을 믿지 않느냐.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해봐라 네가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나 그리스도냐 그게 대제사장 가야바가 질문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인지 아세요. 내가 말하였도다. 그러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열 받는 겁니다. 그러면서 거기다가 토씨를 예수님이 다시는 겁니다. 네가 말하였구나. 그러시면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가 그러니까 본인이 인자라는 겁니다.

인자라는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늘에서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인자라는 소리가 이미 그 단어하나가 이 사람들에게 굉장히 문제를 야기 시키는 단어입니다. 그러면서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는 것과 하늘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아주 핵도는 겁니다. 인자가 내가 하늘보좌에 있는 삼위하나님 중에 한 하나님이고 내가 나중에 재림까지 하리라 구름타고 예수님이 아주 상당한 자기 계획을 이분들에게 소화를 하든 못하던 뱉어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대제사장이 열을 받아가지고 자기 옷을 찢는 겁니다. 자기 옷을 찢으면서 가로되 저자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증인이 필요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대제사장이 옷을 찢는 것은 이것은 큰 죄를 범하는 겁니다. 레위기10장6절에 똑같이 레위기21장10절 여기에 보면 제사장은 본래 제사장 옷을 찢으면 안 된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겁니다. 제사장 옷에 피를 발라 놓으면 예수님의 몸이나 같은 겁니다. 그걸 찢어버렸으니 어떻게 합니까? 왜 찢었겠습니까? 이 양반이 감정폭발이 그러니까 하나님을 대단하게 믿는 강한 종교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애꾸 종교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만 믿고 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약점이 자기가 다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숭네 대해서는 모르면서 다 안다고 하니까 열이 나는 겁니다.

예수님이 내가 그리스도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내가 인자다 그러니까 이렇게 그냥 감정폭발을 하는 겁니다. 이성을 상실해버리는 겁니다.

이런 크리스천들도 가끔 있습니다. 제대로 모르면서 뭘 조금 전해주면 아는 체하고 열 내는 사람 있습니다. 대제사장이 공의회원들에게 질문하는 겁니다. 지금 봤지 이 사람이 참람하는 말을 하는 것을 모두 들었지 하면서 동의를 구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들 고개를 끄덕끄덕하니까 내가 이 예수를 사형을 구형하겠다는 겁니다. 마태복음26장66절 마가복음14장64절 이 자는 사형에 해당된다. 그 이유는 뭐냐면 레위기24장16절에 보면 여화와의 이름을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어다. 그러니까 대제사장은 사형구형을 어디를 참고로 한 겁니까? 레위기24장16절입니다. 사형구형을 내리는 겁니다.

그러면 열이 났으니까 예수님에게 침을 뱉었다고 마태는 이렇게 이야기했는데 마가는 거기다가 또 하나를 더 집어넣었습니다. 마가복음14장65절에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이나 요한복음에는 안 적혀있습니다. 마가복음14장65절에 침을 뱉으면 그의 얼굴로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노릇을 해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예수님이 이것을 경험해야 하기 때문에 이분이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피해서 가게 해주십시오.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섬기려면 예수님이 이렇게 했듯이 우리는 이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 보고 너희십자가라 져라 그랬잖아요.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이 잔의 과정들입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는 이 과정을 겪어야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뺨을 맞으시고 침을 뱉으시면 침을 맞으시고 이러고 있을 때 저쪽에서 베드로가 두 번째 세 번째 부인하는 그 모습을 주님이 쫘악 보게 됩니다.

제사장의 하속이 베드로에게 질문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은 다 말들의 투가 조금씩 다릅니다.

마태복음26장71절에는 아 사람이 나사렛예수와 함께 있었구나. 이렇게 말하고 마가복음14장17절에는 너는 갈릴리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다. 이렇게 말하고 요한복음18장25절에는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이렇게 질문의 모양새가 조금씩 다릅니다. 그런데 대답을 하는 것도 대답하는 모양새가 조금씩 다릅니다. 베드로가 요한복음에는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아니다

마태복음에는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마가복음에는 또 부인하드라 이렇게 짧게 말하고 누가복음에는 이 사람아 나는 아니다 이렇게 아니다.

라는 표현을 이렇게 다양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다가 1시간 후에 다시 비자들이 질문하는 겁니다. 누가복음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장담하여 가로되 이는 갈릴리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이렇게 말하고 마가는 뭐라고 그랬냐면 너는 갈릴리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다 이렇게 말하고 마태는 너도 진실로 그 당이다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이렇게 말하고 요한복음에는 아주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했습니다.

요한복음18장26절에 어떤 질문을 했냐면 누가 비속 중에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면 말고의 귀를 자를 때 기억나십니까? 말고의 귀를 자를 때 옆에서 같이 있었던 비속이 베드로에게 말하는 겁니다. 베드로 너 예수와 함께 있으면서 겟세마네동산에서 나오는 것을 내가 그때 봤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이 말을 요한복음18장26절에서는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그렇게 증거가 있는데도 예수님을 부인하는 겁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뭐라고 말했냐면 내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 마가복음14장71절에서는 베드로가 저주하여 맹세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이렇게 부인하는 겁니다. 누가복음22장60절에는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아까 결정적인 증거가 있었잖아요. 요한복음에서 그 증거를 가지고 이야기할 때 대답이 베드로도 양심이 있잖아요. 아주 심플하게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그냥 아니다 부인하니 그 말만 했습니다. 저주하면 이런 말을 요한복음에는 안 썼습니다. 그냥 결정적인 증거가 있으니까 아니다 이렇게 표현한 다음에 닭이 우는 겁니다.

베드로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이 마태복음26장34절에서 말씀하셨잖아요.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나를 3번부인하리라 그럴 때 이분이 절대로 안 합니다 그랬잖아요. 그 약속한 것이 이제 생각이 났더라. 그랬습니다.

왜 베드로가 예수님을 3번 부인하도록 했을까요? 왜 이렇게 허락하셨을까요? 저는 여러 가지로 생각이 나지만 주님께서 베드로를 정말 사랑하시기 때문에 더 낮아지고 낮아져서 더 예수님을 더 사랑하시라고 예수님께 크게 빚진 자니까 12명 중에서 최고로 빚을 많이 진 자니까 은혜도 제일 많이 받은 사람이 교육수준도 가장 적고 가장 성품도 안 좋고 이런 사람이 이렇게 낮아지도록 함으로써 나중에 주님을 더 사랑하라고 그래서 이분도 다른 제다들과 같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이렇게 가야바의 뜰에 있는 잔입니다

그런데 가야바의 뜰에서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겁니다. 왜냐면 가야바는 사형을 구형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형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가야바는 유대인 종교지도자입니다 산헤드린 공의회에서는 그 당시 로마정부 로마황제 속에 있었기 때문에 로마황제가 유대인들에게 어느 정도 자치권한은 다 주었지만 종교의 자유도 주고 다 주었지만 사형권한은 안 주었습니다. 사형권한은 로마사람이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황제가 그 당시에 디벨리우스황제입니다. 이 황제가 자기의 대리인으로 전 로마제국에 대리인을 파송했는데 그 당시에 유대지방 또 사마리아 사해지방 이쪽 지역을 담당하는 자기의 대리인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빌라도입니다

또는 총독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행정관입니다 이 사람은 로마시민입니다

빌라도가 다섯 번째 유대지방 총독으로 주후26년에 부임한 겁니다.

그러니까 빌라도가 결정을 해야지만 예수님이 사형을 받을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결정을 해야 되지만 빌라도보다도 직속상관이 한분 있었습니다. 이 직속상관이 누구냐면 헤롯왕입니다 헤롯 왕조를 우리가 알아야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마카비 하스모니안 왕조라고 말씀드린 것 기억나십니까? 이것은 이스라엘사람들이 자기네가 독립국가가 된 때로 주전166년부터 주전63년 로마가 점령하기 전 왕조입니다 이 왕조가 로마에 의해서 무너졌습니다. 하스모니안 왕조가 무너지면서 로마황제가 빌라도 같은 자기 민족도 파송했지만 시리아 이스라엘 전체를 관장하는 지역왕조를 또 하나 만들어 주었습니다. 지역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그래서 그 지역왕조가 이스라엘과 시리아를 관장하는 지역왕조 이름이 헤롯 왕조입니다.

헤롯이라는 사람은 에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큰 파워는 없습니다.

왜냐면 로마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지만 상징적으로 지역 왕으로써 있는 겁니다. 그래서 왕조가 첫째 왕조가 헤롯대제입니다 주전37년에서 주전4년까지 이분이 유대지방 왕으로 그다음에 이분의 아들 헤롯 안디바라고 아들이 다섯 명이 있습니다. 다섯 명의 아들들이 그 지역을 다 나누어서 가졌는데 헤롯 안디바는 우리성경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분이 갈릴리지방을 관장했던 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그 때가 헤롯 안디바 때입니다

주전4년에서 주후32년입니다 나중에 이 왕이 끝나고는 3대 헤롯 아그립바 사도행전에 나오는 왕입니다 그리고 4대가 헤롯 아그립바2세입니다

주후50년에서70년인데 서도바울과 같은 시대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25장26장에 나오는 헤롯 아그립바 왕으로 사도바울과 연계되어 있는 겁니다.

빌라도와 헤롯하고는 갔습니까? 다릅니까? 다릅니다. 다르면서도 서로가 파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까 서로 사이가 안 좋습니다. 성서에서도 보면 둘이 사이가 안 좋았다. 그랬습니다. 실제로는 누가 실세입니까? 빌라도와 헤롯왕하고는 빌라도가 더 실세입니다 나중에 우리가 빌라도에 대해서 조금 더 보겠지만 빌라도의 처가 꿈을 꾸고는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 분이다

그랬잖아요. 그리고 빌라도도 마찬가지만 예수님이 죄 없으신 분으로 끝까지 이분은 믿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도신경에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그러잖아요. 실은 빌라도는 예수님을 그렇게 고난을 주지 않았습니다. 조금 있으면 우리가 그 내용을 자세히 볼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애굽에 곱틱 교회에서는 자기네가 가지고 있는 전례인데 매회 마다6월25일에 빌라도의 처와 특히 빌라도를 성인으로 생각하고 성인추대를 하는 그러한 전통이 있습니다. 같은 크리스천인데 우리는 빌라도를 죽일 놈 하는데 그 쪽 크리스천들은 빌라도를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여러 가지 전설에 의하면 빌라도가 자살했다는 전설도 있고 또 황제 티벨리우스에 의해서 목이 잘려서 참수 당했다는 그러한 전설도 있는데 거기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습니다.

이제 빌라도에게 갔습니다. 왜 빌라도에게 갔습니까? 가야바가 사형언도는 했지만 실제로 예수님을 죽이려면 누구의 허락을 맡아야 됩니까?

빌라도의 허락을 맡아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빌라도에게 간 겁니다.

빌라도 관저가 어디에 있습니까? 예루살렘성전에 보면 베데스다연못 근처에 안토니아 요새 안에 있는 겁니다. 우리 같으면 수도방위사령부와 같은 곳입니다 현재 가야바 관저에서 빌라도에게 간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빌라도가 대화하는 장면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18장29절부터 나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앞에 세워놓고 유대인들에게 질문을 하는 겁니다.

너희들이 도대체 무슨 연고로 이 사람을 고소하는가? 이렇게 물어보는 겁니다. 빌라도는 로마 사람으로 파워가 가장 큰 사람입니다 야! 유대인 이놈들아 너희들이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려고 나에게 까지 데리고 왔느냐 이겁니다. 그러니까 요한복음18장30절에 유대인들이 그러는 겁니다.

이 사람이 행악자입니다 그러는 겁니다. 아주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빌라도가 대답하는 겁니다. 너희가 그렇다면 예수를 데리고 가서 너희 법대로 재판 하여라 나한데 데리고 오지 말라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대답하는 겁니다. 우리는 이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습니다. 요한복음18장31절에 그러니까 빌라도도 기가 막히는 겁니다. 자기가 볼 때 이 사람을 죽일 권이 없는데 유대인들이 죽이라고 그러니까 빌라도가 예수님께 질문하는 겁니다. 요한복음18장이야기들입니다 요한복음은 이 부분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놓았습니다.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여쭈어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대답하시는지 아세요. 예수님이 이런 대답을 하십니다. 34절에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예수님이 아주 당돌하게 높은 분에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빌라도가 예수님께 대답하는 겁니다. 빌라도가 내가 유대인이냐 예수님께 물어보는 겁니다. 네 나라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이렇게 나에게 넘겨왔는데 네가 무엇을 했기에 나에게 데리고 와서 나의 속을 섞이느냐 이런 식으로 대답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대답하시냐면 야!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임금이다 내가 왕 중의 왕이다 말하는데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말하는데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고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내 종들이 아까 겟세마네 나올 때 내 대신에 싸워가지고 저 유대인들을 그냥 한 놈도 남겨두지 않고 다 없애버렸을 거라는 겁니다. 내 나라는 여기에 있다면 내가 천사들을 보내가지고 다 죽였을 거라는 겁니다. 내 나라는 이 나라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빌라도가 또 물어보는 겁니다.

그렇다면 네가 왕이냐 또 물어보는 겁니다. 예수님이 대답하기를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다 그러는 겁니다. 영성이 없으면 빌라도도 혼돈스러운 겁니다.

예수님이 내가 왕이다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으니 곧 진리를 위하여 중언하려 함이 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알아듣는다. 그러는 겁니다. 37절에 그러니까 빌라도가 그래도 말귀를 알아듣는 모양입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이렇게 물어보는 겁니다. 그러면서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그러는 겁니다.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예수는 죄가 없다 그러는 겁니다. 도저히 죄를 찾을 길이 없구나.

요한복음18장38절에 그리고는 누가복음23장4절에도 같이 말하는 겁니다.

이 이후부터 이야기가 누가복음에 자세하게 나오는 겁니다. 여기 까지 요한복음에서 이야기하고 누가복음에서 자세하게 계속합니다. 누가복음23장5절부터 빌라도가 이렇게 죄가 없다 그러니까 옆에 구경하고 있던 무리들이 제사장하속들이 빌라도총독님 저 예수가 온 유대에 돌아다니면서 가르치고 갈릴리부터 시작해서 여기 예루살렘까지 와서 모든 사람들을 소동시키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빌라도가 뭐라 하느냐면 저 사람이 갈릴리사람이냐 이렇게 물어보는 겁니다. 갈릴리사람으로 이야기하니까 여기서 부터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저 사람이 갈릴리사람이냐 그러니까 빌라도에게 가장 떠오려는 게 있는 겁니다. 뭐가 떠오르느냐면 헤롯이 떠오르는 겁니다. 헤롯 안디바 갈릴리지방에 분봉 왕입니다. 그런데 이 헤롯이 이 당시가 유월절이기 때문에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잖아요. 그러니까 예루살렘도시가 진동을 하니까 소란스럽고 하니까 헤롯왕이 갈릴리지방에 있다가 그 당시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내려와 있었던 겁니다.

헤롯 안디바의 관저에 빌라도가 저 사람이 갈릴리사람이냐 그러고는 누가복음23장7절에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자기가 해결 못하니까 내가 갈릴리지역에 분봉 왕으로 계신 그의 소관인 헤롯에게 내가 예수를 보내야지 그래서 예루살렘에 잠깐 방문 왔던 헤롯에게 아예 예수님을 보내버린 겁니다. 그래서 빌라도 관저에서 헤롯 안디바 관저로 예수님이 또 옮기어 오는 겁니다. 지금 이게 밤중입니다 새벽으로 예수님이 잠을 한잠도 주무시지 못하고 헤롯을 만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뒤에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하속들이 다 같이 따라다니는 겁니다. 예수님을 묽어가지고 그러니까 예수님이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어디에 왔습니까? 헤롯 관저에 온 겁니다.

헤롯이 보니까 예수님이 와 계신 겁니다. 그러니까 헤롯이 누가복음23장8절에서부터12절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누가복음에만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뭐냐면 헤롯이 예수님을 보고 아주 기뻐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러는 겁니다. 내가 너 소문 많이 들었다 내가 너를 보려고 상당히 애썼는데 왜냐면 갈릴리에서 이적을 많이 행하고 아주 인기가 대단한데 여기서 만나니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성서에 보면 그랬습니다. 이렇게 만났으니까 내가 보는데서 이적을 한번 행하여봐라 이런 호기심이 있었습니다. 헤롯이 그래서 아주 기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 말을 듣고는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아무 말도 안하시고 가만히 계셨다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가가 찬 겁니다. 9절에 보면 꾸욱 참았다 그랬습니다. 조용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그냥 소리를 지르는 겁니다. 헤롯이시여 헤롯왕이시여 저자를 빨리 혼 좀 내주세요.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헤롯이 가만히 있다가 보니까 마음이 변하는 겁니다. 아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소위 말하면 이스라엘의 파워그룹들이 이 자를 싫어하는구나. 내가 이분들 편을 들어야겠구나. 생각한 겁니다. 안 그러면 자기 위치가 흔들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갑자기 헤롯이 마음이 변해버린 겁니다. 그러면서 군병들과 함께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희롱을 하면서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버려라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누가복음23장12절에 뭐라고 그러느냐면 헤롯과 빌라도는 전에는 서로가 원수였으나 그날만은 친구였다는 겁니다.

성서를 보면 아주 재미있게 써놓았습니다. 누가복음23장12절에 왜냐면 헤롯은 로마사람이 아니잖아요. 사형을 시킬만한 파워가 없는 사람입니다

헤롯은 그러니까 이 골치 아픈 건수를 내가 처리하기는 힘 든다.

다시 빌라도에게 보내라 그래서 다시 헤롯 관저에서 빌라도관저로 다시 가는 겁니다. 누가복음23장12절에서23절에 빌라도와 예수님과 이스라엘사람들과 대화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이게 마지막 장면입니다 빌라도도 예수님이 다시 자기 관저에 왔으니까 대제사장들과 관원들과 주변에 말썽부리는 사람들을 다 모아놓는 겁니다. 모아 놓고는 빌라도가 이 사건을 처리하려고 빌라도가 그분들에게 설명해주는 겁니다. 너희들이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고 나에게 끌어 왔잖아 그런데 내가 아무리 봐도 14절에 그랬습니다.

이 예수가 죄지은 것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죽일 일이 없다는 겁니다.

봐라 헤롯왕도 죽일 일이 없다고 그래서 무죄라고 선언하고 나에게 보내버렸잖아. 그러니까 나는 이 예수를 석방하겠다는 겁니다. 이렇게 빌라도가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빌라도가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제안을 하는 겁니다.

첫째 제안이 뭐냐면 예수를 놓아주고 싶다는 겁니다. 왜 놓아주어야 되느냐면 요한복음18장39절에 재미있게 써놓았습니다. 유월절이 되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잖아 우리 같으면 8.15특사처럼 내가 너희들에게 유대인 왕을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물어보는 겁니다.

한 사람을 특사로 놓아 주어야 되는데 빌라도의 생각은 예수님을 특사로 놓아주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무리들은 반대로 일제히 나와서 소리 지르면서

이 사람 말고 바라바를 놓아달라는 겁니다. 바라바라는 사람은 감옥에 있는데 살인자입니다 강도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감옥에 들어가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을 놓아주고 예수님은 죽여라는 겁니다. 이분들이 이렇게 나오니까 빌라도가 두 번째로 제안을 하는 겁니다. 누가복음23장22절에 내가 아무리 봐도 그렇게 할 수는 없고 내가 도저히 예수를 죽일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무리들이 또 반대를 하는 겁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면서 무리들이 계속 반대를 하니까? 빌라도가 세 번째 또 제안을 하는 겁니다. 애들아 이분이 악한 일을 한 것이 하나도 없다 나는 도저히 이 사람을 죽일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 대신에 내가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너희들이 원한다면 내가 이 사람을 채찍으로 때리고 이 사람을 때려서 그냥 던져서 석방시키겠다는 겁니다. 너희들이 원하면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요한복음19장1절에서3절에 그래가지고 이분이 자기가 로마 사람이니까 군병들을 시켜가지고 예수님이 왕이라고 그러니까 가시 면류관을 씌워주라는 겁니다. 그리고 왕은 자색 옷을 입잖아요. 그러니까 왕 복인 자색 옷을 입혀라 그리고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그 앞에 가서 예수님을 조롱하여라.

유대인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 그리고는 왕 얼굴에다가 손바닥으로 때리라는 겁니다.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께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저 사람에게 이렇게 했으니까 너희들 이제 속 시원하니 이 사람은 무죄야 그러는 겁니다.

죄가 없는 분이야 너희들 속 시원하게 내가 이렇게 해주었다 그런데도 이 사람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라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빌라도는 계속해서 무죄를 주장하는 겁니다. 요한복음19장6절에도 보면 죄를 찾을 길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빌라도에게 거르는 겁니다. 저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랬기 때문에 유대 법에는 사형감입니다.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빌라도에게는 그게 들어오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빌라도가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 나에게 이제 그만 말해라 나는 총독으로써 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나는 이미 살리겠다고 말했는데 왜 자꾸 나를 괴롭히느냐 그러는 겁니다. 그럴 때 거기에 한 유대인이 나타나가지고 이것이 하나의 터닝 포인트입니다. 이게 역사 속에서 주님께서 다 하신 겁니다.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 분임을 빌라도를 통해서 계속해서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면서 한 유대인을 등장시키는 겁니다. 그 유대인인 빌라도에게 말하는 게 기똥찬 말을 하는 겁니다. 유대임이 빌라도에게 그러는 겁니다.

빌라도야 당신이 만약에 예수를 석방하면 당신은 로마제국의 황제인 가이샤(시저)에게 충신이 아닙니다. 당신은 가이샤를 반역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는 겁니다. 그 이유는 뭐냐면 저자가 자기가 왕이라고 했습니다.

왕 중의 왕이라고 했습니다. 시저가 왕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자꾸 자기가 왕이라는 사람을 죄 없다 합니까? 당신이 만약에 이 자를 살려주면 당신 목이 날라 갑니다. 시저에게 이러니까 빌라도가 정신이 번쩍 드는 겁니다.

양자택일을 하는 겁니다. 자기 목숨이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러니까 빌라도에게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겁니다. 그러면 너희들은 이 두 사람 중에 바나바와 예수 중에 누구를 죽이기로 원하느냐 예수그리스도를 죽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할 수 없다 그래가지고 이분이 박석이라는 장소가 있는데 박석이라는 장소에 재판 석이 있습니다. 요한복음19장13절 마태복음27장19절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 재판 석에 앉아가지고 재판을 하려고 하는데 공식적으로 예수님을 사형을 선고하려고 하는데 바나바는 살려주고 그런데 갑자기 자기 와이퍼의 하속이 달려오는 겁니다. 그러면서 주인님 자기 마누라가 꿈을 꾸었는데 이 사람은 옳은 사람이라 그럽니다. 또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빌라도가 그러는 겁니다. 물 좀 가져와라 물에다가 손을 씻으면서 유대인들보고 애들아 나는 이 사람이 죽는데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 나는 무죄다 그러는 겁니다.

너 네들이 하도 괴롭히니까 내가 할 수 없이 하는데 그러니까 유대인들에게 맹세를 요구하는 겁니다. 이 죄는 너희들 것이다 유대인들이 그러는 겁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책임지겠습니다. 이피를 우리와 우리자손에게 돌리겠습니다. 그러는 겁니다. 이것 때문에 유대인들이 얼마나 어려움을 당했습니까?

그래서 빌라도가 사형선고를 내리는 겁니다. 요한복음19장16절에 바라바를 석방하고 사형선고를 어디서 내렸습니까? 빌라도관저에서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사형선고가 떨어지니까 예수님에게 채찍을 치면서 십자가에 못 박는 준비를 하는 겁니다. 이제 일곱 번째 잔입니다 십자가준비를 보시면 로마 군인들이 자기 상관이 결정을 내렸으니까 예수님 옷을 벗기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홍포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면류관을 머리에 씌우고 왕이라고 했으니까 그다음에 갈대를 오른 손에 들게 하고 그리고는 로마 군인들이 무릎을 굵고 주님 앞에 희롱을 하면서 유대인 왕이여 평안 할지어다.

그러면서 갈대를 가지고 예수님의 머리를 치면서 침을 뱉고 희롱을 하고 그러면서 다시 옷을 갈아입히는 겁니다. 그리고는 아주 간단한 옷만 입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 올라가는 장면입니다. 이렇게 될 것을 누구에게 다 예언을 했습니까? 이사야서53장 시편22편을 보세요. 시편22편은 우리의 교과서입니다 시편22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있을 때 여섯 시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을 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있을 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있는 표현을 그것을 다윗이 본 겁니다. 유대인들은 다윗이 그런 줄 압니다.

그런데 다윗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을 다윗에게 보여준 겁니다. 22편1절을 보세요.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니이까.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니이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사람의 조롱거리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삐죽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12절에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14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다윗이 환상을 보니까 예수님이 목이 밑으로 쳐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갈비뼈가 쫘악 보이는 겁니다. 매달렸기 때문에 그래서 그것을 그대로 묘사한 겁니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기가 막히게 미리 다 주님께서 예언 하신 겁니다. 지금 우리예수님이 실제로 하시는 장면입니다 이래도 예수님을 안 믿습니까? 믿는 것만이 아니고 이래도 예수님께 나의 삶을 바치지 못합니까? 안 하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이사야서53장3절을 보세요.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전인적인 구원을 말한 겁니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이사야서53장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죽음을 준비하시고는 이제 재판 석에서부터 골로다까지 가시는 길입니다

이 길을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비아(Via)라는 것은 길이라는 뜻입니다 돌로로사(Dolorosa)라는 말은 슬픔이라는 소리입니다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이것은4복음서에서 누가복음에서 자세히 기록해놓았습니다. 누가복음23장26절에서33절에 예수님이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의 길을 갈 때 두 강도도 같이 십자가를 메고 갔습니다. 누가복음23장32절에 두 강도도 같이 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이 길 사이에 예수님께서 열 네 번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열네 곳의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것을 참고로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뭐냐면 예수님이 사형선고를 받았던 지점입니다. 두 번째 십자가를 받은 지점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첫 번 넘어진 지점이 있습니다. 네 번째 슬퍼하는 어머니 마리아를 만난 지점이 있습니다. 다섯 번째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여섯 번째는 베로니카라는 여자가 예수님의 얼굴을 닦던 지점이 있습니다.

일곱 번째는 예수님이 두 번째 넘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여덟 번째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여자들에게 말씀하셨던 지점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여자들아 나를 위해서 울지 말라 자기 어머니랑 막다라 마리아랑 이런 분들이 예수님 뒤를 따라다니면서 울었거든요. 그때 울지 말라 내 대신에 유대인들을 위해서 울라는 말입니다 아홉 번째는 세 번째 넘어진 지점이 있습니다.

열 번째는 옷 벗기신 지점이 있습니다. 열한 번째는 못 박히신 지점이 있습니다. 열두 번째는 숨을 거두시는 지점이 있습니다. 열세 번째는 시체가 내려오던 지점이 있습니다. 열네 번째는 무덤에 묻힌 지점이 있습니다.

구레네 시몬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디아스포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디아스포라입니다 리비아에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방문했다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장면을 보고 가까이 와서 있다가 로마 군인들에 의해서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된 특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주님의 특별한 계획 속에서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특권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부활할 때도 분명히 이분이 주위에 계셨을 것이고 십자가사건 때는 아주 코 밑에 있었고 열두제자들은 없었잖아요. 그러니까 아주 가까이에 계셨던 특별한 분입니다 여자들과 같이 그리고는 부활하실 때 분명히 주변에 계셨을 것이고 첫 이방인기독교인이 된 사람 중에 한분일 것이 틀림없을 겁니다. 분명120문도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 중에도 한분이었을 겁니다.

이분이 예루살렘교회가 핍박해서 흩트려질 때 안디옥에 가가지고 바나바다음으로 높은 두 번째 부목사님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13장1절에 보면 그런데 마가복음15장21절에는 이분을 이야기할 때 아들 두 사람의 이름을 되었습니다. 마가복음15장21절에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두 아들이 있는데 두 번째 아들 루포가 주님의 사역자였습니다.

이분의 부인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서16장13절에 루포의 어머니가 나의 어머니다 이런 말을 한 게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과 상당히 가까웠고 바울의 사역에 어머니역할을 주욱 해왔던 것으로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이만큼 주님이 구레네 시몬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우리도 이런 은혜가 필요합니다. 주님께 기도하실 때 주님 이분에게 내려졌던 이런 은혜를 나에게도 또 내 자녀에게도 내려주십시오.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장면에서 특히 누가복음23장26절에서33절 사이에서 예수님이 슬프게 우는 여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이 과정 속에서 이 장면은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기록했는데 이 장면을 잠깐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분들이 슬프게 울면서 예수님을 따라오니까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서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자녀들을 위해서 울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지금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로 걸어가시면서 이러는 겁니다. 날이 오면 이 날이 뭐냐면 오순절 날입니다

날이 이르면 이방인들이 복을 받겠다는 이야기를 주님이 이 여자들에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29절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29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이 말이 뭐냐면 이방인들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지금 울고 있는 여자들이 장차 예루살렘교회에 아주 핵심 권사님들이 될 사람들입니다 이분들에게 선교비전을 주는 겁니다. 너희들 울지 말아라 왜냐면 이방인들이 이제 복을 받고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가고 유대인은 눈이 감길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을 위해서 울라는 겁니다.

나를 위해서 울지 말고 그러면서 3절에 주후70년 사건을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이게 유대인들을 덮는다는 겁니다.

산들과 작은 상들이 주후70년 사건을 이야기하시면서 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여기 푸른 나무는 뭐냐면 1세기 때 유대인크리스천들입니다 유대인크리스천들도 작은 산들에 의해서 덮힘을 받는데 핍박받는다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마른 나무는 예수님을 모르는 유대인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는 소리입니다

다 어려움을 겪는다는 겁니다. 이렇게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로 가면서 예수님의 구원계획을 특히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향한 계획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다가 골고다에 도착하신 겁니다. 골고다라는 것은 해골이라는 뜻입니다 또는 갈보리 해골 같은 뜻입니다 예수님이 못 박히십니다

골고다에 도착해서 못 박히는 시간이 아침9시입니다 강도 두 분도 같이 못 박히십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직접 폐를 하나 써가지고 그 폐가 히브리말 헬라어 로마어로 쓴 폐입니다 뭐라고 썼느냐면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이렇게 써놓은 겁니다. 요한복음19장19절에서22절에 폐를 써놓으니까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겁니다. 왜냐면 총독님 왜 유대인 왕이라고 거기다 씁니까? 이렇게 쓰세요. 자칭 유대인 왕이라고 쓰세요. 라고 하는 겁니다. 이놈들이 끝까지 이렇게 괴롭히는 겁니다. 예수님에 대한 왕권을 이해를 못하는 그러한 일들이 끝까지 괴롭히는 겁니다. 주님이 그렇게 다 계획하신 것이 아닙니까? 자칭 유대인이라고 쓰십시오. 그러니까 빌라도도 고집이 있는 겁니다. 야! 내가 썼는데 왜 말이 많아 그러면서 유대인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놓는 겁니다. 그리고는 군병들을 시켜서 예수님의 옷을 취하게 하면서 자기네끼리 속옷 겉옷 까지 서로가 가지려고 하면서 제비뽑기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이게 시편22편18절에 예언 했던 것을 그대로 하는 겁니다. 개들이 이런 짓을 한다고 했는데 그대로 하는 겁니다. 요한복음19장23절에서24절에 보면 그런 장면을 예수님이 내려다보시면서 자기 어머니를 내려다보시는 겁니다.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가 있는데 자기 어머니 옆에 요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요한복음을 썼기 때문에 자기라고 말하지 않고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게 요한입니다 요한이 어머니 옆에 있는 모습을 예수님이 내려다보면서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 여기 있나이다.

그러니까 요한이 그 후에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고 27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하는 말이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고 큰소리 친 자여 내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와라 그러는 겁니다. 이것이 아까 예언이 되었습니까? 안 되었습니까? 예언된 말씀을 그대로 이 무리들이 뱉어내는 겁니다. 그다음에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함께 예수님을 희롱하는데 이런 말을 하는데 이것도 예언된 말입니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뿐입니까 옆에 왼쪽에 있는 강도 이놈이 하는 소리가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님이 저를 기뻐하심은 이제 구원 하실지라. 저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는데 하면서 이렇게 그냥 말하는 왼쪽 강도 다 예언 된 겁니다. 그런데 오른 쪽 강도는 뭐라고 그랬습니까?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해서 주님께서 너는 나와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죽으시는 열 번째 잔입니다 오후3시에 예수님이 죽으시는 겁니다. 여섯 시간을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죽으시기 바로 직전에 하시는 말씀이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예수님이 법적으로 모든 죄를 떠맡는 순간입니다 아사셀염소가 되는 순간입니다

징계를 받는 순간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으니 우리는 평화를 얻게 되었다 이사야서53장5절에 징계부분을 이루시는 순간으로 예수님이 목마르다 하셨습니다. 왜냐면 시편22편15절에 예언하셨기에 그다음에 신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여 예수의 입에 대니 받으셨다는 다 예언된 것들입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그리고는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고 영혼이 떠나 가시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휘장이 위로부터 밑으로 찢어졌다 그랬습니다. 이렇게 휘장이 갈라진 것은 히브리서10장19절20절에서 이제 우리는 보좌의 기도를 직접 할 수 있다는 예수님의 십자가사건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성서에 보면 이날은 예비일이라 그랬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그 날은 예비라는 것은 무엇에 대한 예비입니까? 그 다음날이 무슨 날입니까? 안식일입입니다. 안식일이 언제부터 시작입니까? 저녁6시부터 시작입니다 예수님이 몇 시에 숨을 거두었습니까?

오후3시에 숨을 거두었기 때문에 3시간 남았습니다. 3시간 있으면 안식일이 되면 예수님이 숨이 다 그치고 밑으로 무덤까지 가주어야 됩니다.

안식일이 되면 그럴 걸 못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강도나 누구를 죽여 놓고는 숨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 다리를 꺾고 그다음에 창으로 찌르고 이런 일들을 다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다리를 꺾으려고 보니까 이미 숨이 멈추어서 꺾을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아까 시편34편에 꺾이지 않는다고 그랬습니다. 이런 일들을 주님이 다 이루신 겁니다.

시편34편20절에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그랬습니다. 왜냐면 출애굽기12장5절에 유월절 어린양은 절름발이 어린양이 되면 안 됩니다. 온전한 양이 되어야 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다리를 꺾으면 큰 일 납니다. 꺾일 수가 없는 겁니다. 출애굽기12장46절 민수기9장12절 시편34편20절 그리고 예수님을 창으로는 찔렸습니다. 왜냐면 창으로는 찔려야 됩니다. 상함은 우리의 잡음 죄와 우리의 쓴 뿌리를 제거해야 되기에 그분이 창으로 찔림을 받아야 합니다. 이사야서53장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원죄입니다. 그가 찔림은 손발이 찔렸다는 겁니다.

우리의 때문이요 원죄입니다. 그가 상함은 창에 찔리는 겁니다.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우리의 잡음 죄와 쓴 뿌리를 제거하는 우리를 성화시켜주기 위해서 처음 것은 원죄를 해결시켜주기 위해서 두 번째는 우리를 성화시켜주기 위해서 그분이 창에 찔림을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손발에 못으로만 찔리는 게 아닙니다. 그다음에 징계 받는 것은 무엇입니까? 법적으로 이분이 우리의 모든 죄를 뒤집어 써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아사셀 염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걸 어떻게 뒤집어썼습니까? 숨 거두는 순간에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 아버지, 아버지 나를 왜 이렇게 버리시니까? 이분이 버림을 당하는 순입니다 모든 죄를 뒤집어 써는 순간입니다 과거의 죄 우리인류의 현재의 죄 미래의 죄 그리고 그분이 채찍으로 맞았잖아요. 채찍에 맞은 것은 우리의 육혼영의 나음을 위해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이라는 것은 전인적인 구원을 지금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과정들 이 잔의 과정은 왜 하셔야 됩니까? 우리를 전인구원을 시켜주시기 위해서 전인 구원이 아니고 그냥 구원이었다면 이런 과정 필요 없이 십자가에서 그냥 피만 흘리시면 되는 겁니다. 손발이 못에 달려서 그냥 끝내시면 됩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그러려고 하시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구원이 안 되는 겁니다.

창조목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너희들이 전인구원이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인격이 변하여야 된다는 겁니다. 몸도 건강해야 된다는 겁니다.

육도 건강하고 혼도 건강하고 영도 건강해야 된다는 겁니다.

몇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서6시간 계시는 동안에 일곱 가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을 여러분들도 많이들은 이야기입니다 십자가상의 7언 그래서 가상7언 그럽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일곱 가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걸 참고로만 알고 계세요 어떤 분들은 이 안의 내용보다는 일곱 가지를 머리로만 기억하시면 별의미가 없습니다.

첫째가 여자의 보소서 아들이나이다. 요한복음19장26절에 두 번째는 요한에게 내 어머니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19장27절에 세 번째는 예수님이 강도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누가복음23장43절에 네 번째로는 내 아버지여 내 영원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누가복음23장46절에 다섯 번째로는 예수님이 다 이루었도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19장30절에 여섯 번째로는 엘레, 엘리 라마 사막다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15장30절에 일곱 번째로는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요한복음19장30절입니다.

결론적인 말씀 몇 마디만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열 가지의 잔을 받으시는 과정 속에서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 분이라는 것을 일곱 경우에서 증거를 했습니다. 대제사장들이 나중에 그랬습니다. 마가복음14장55절에 두 번째로 가룟 유다도 나중에 고백했습니다. 마태복음27장4절에 세 번째로 빌라도의 아내가 마태복음27장19절에 네 번째로 빌라도가 마태복음27장24절에 그다음에 무리들이 누가복음2348절에 그다음에 오른편 강도가 누가복음23장40절에 일곱 번째로 백부장이 누가복음23장47절에 일곱 이라는 숫자는 완전 숫자입니다 일곱 가지 케이스로 예수님을 죄 없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왜 예수님이 죄가 없다고 이분들에게 증거를 받으셔야 합니까? 왜냐면 유월절어린양이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출애굽기12장5절6절에 어린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이라고 그랬습니다. 흠 없는 어린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항상 이야기하지만 동물의 일 년은 사람의 약30세 전후로 수컷은 예수님이 남자로써 내려오신 겁니다.

지금부터 잘 들으세요. 평소에 많이들은 이야기를 제가 정리하는 겁니다.

유월절어린양 때 양을 1월 며 칠 날에 잡습니까? 1월10일 날에 사오잖아요

1월10일 날이 주일날입니다 그래가지고 1월14일까지 나흘 동안 보관하라고 그랬습니다. 왜 보관합니까? 죄가 있는지 없는지 이 양이 병이 있는지 없는지를 점검하는 4라는 숫자입니다 그리고 온전한 양이면 1월15알에 잡으라는 겁니다. 똑같이 예수님께서 이 말씀대로 종려주일인 1월10일 날에 예루살렘에 들어오셔서 어린양으로 붙잡힘을 받았습니다. 나귀를 타고 들어오신 겁니다. 네 발 달린 나귀를 타고 어린양의 모습으로 들어오신 겁니다.

그래가지고 나흘 동안에 월화수목 나흘 동안 이분이 설교를 하시면서 죄 없는 분이심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는 특별히 이 마지막 열 가지 잔을 경험하시면서 이 분이 흠 없는 분이라는 것을 본인이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지금 일곱 팀들이 예수님이 죄 없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지금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는 겁니다. 창조의 목적을 회복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가장 힘들어 하셨던 부분이 3년 공생애 중에서 지금 이 열 가지의 잔을 잡수시는 이 부분이었습니다 이것을 이기기 위해서 어떻게 했습니까? 겟세마네기도를 하셨던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겟세마네기도가 필요합니다. 보좌의 기도가 필요한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시각이 이 세상시각을 보면서 저 세상도 동시에 같이 볼 수가 있는 겁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이 잔을 잡수시는 과정 속에서 틀 속에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틀에 들어가야지만 생명수인 올리브 감람유가 나오거든요. 똑같이 우리도 이 훈련이 있어야지만 우리가 겟세마네 틀 속에 들어가는 훈련이 있어야지만 우리도 우리를 통해서 생명이 살아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열 가지 잔을 우리도 받아야 되는 겁니다. 우리를 통해서 살아나는 일이 일어나려면 이 잔이 뭐냐면 자존심 상처를 받는 잔 예수님 때문에 이걸 받아야 됩니다.

핍박의 잔, 비난의 잔, 재물 손해의 잔, 건강 손해의 잔, 가족 손해의 잔, 명예 상처의 잔, 권리 포기의 잔, 시간 손해의 잔, 미움 배척받기의 잔, 이 잔들을 우리가 받아야 되는 겁니다. 이 잔을 받지 않고 그저 예수 믿으면 모든 게 다 잘되고 예수 믿으면 할렐루야 하고 예수 믿으면 아주 지상천국이다 이것은 영적어린아이들에게 하는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제자 수준이 되면 이 잔을 우리가 받아야 되는 겁니다. 내 중심으로 살지 마시고 주변의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 때문에 살아나는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계실 때 우리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긴 시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