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

28강. 요한복음17장6절-26절, 제자들과 제자 될 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기도

변명섭 2021. 10. 8. 07:31

요한복음강해 28강. 제자들과 제자 될 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기도(요17:6-26)

요한복음 강해 17장 두 번째 부분입니다 제가 몇 절만 그냥 읽겠습니다. 11절입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그 다음에15절부터19절까지입니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지난시간의 말씀을 잠깐 복습을 해보면 지난시간에 제목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소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예수님의 첫 기도인데 17장1절에서5절까지 말씀인데 예수님이 첫 부분은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셨거든요 그래서 아버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를 영화롭게 하소서 그러면 아버지도 영화롭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창세전에 이미 우리가 함께 영화롭지 않았습니까? 이런 말씀입니다 그런데 루시퍼가 타락을 하고 아담이 타락을 한 후에 창조목적에 위배했기 때문에 피조물들이 우리가 영광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분들 때문에 이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창조목적이 다시 회복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래서 곧 십자가사건과 부활사건이 일어날 터인데 그것이 일어나면 내가 영광 받고 아버지도 영광 받습니다. 이 말은 창조목적이 회복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아버지에게 보좌의 기도를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아버지에게 그러는 겁니다. 눈을 들어서 하늘을 올려다보시고는 아버지여 이제 때가 왔습니다. 그러시는 겁니다. 때라는 것이 무슨 때입니까? 아버지와 내가 영광 받는 때가 왔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창조목적이 회복되는 때가 왔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겁니다. 우리질문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왜 같은 하나님에게 기도 했을까? 이것은 예수님이 신성을 비웠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이야기했습니다. 17장에 구조를 지난시간에 봤습니다. 구조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눈다고 그랬습니다.

첫째 1절에서5절은 예수님이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하셨고 그다음에 6절에서19절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20절에서26절은 제자들을 통해서 제자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을 통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니고 제자들을 통해서 또 제자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17장의 기도는 일반크리스천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게 아니고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미래의 제자들을 위한 기도가 20절에서26절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두 번째와 세 번째입니다 제자들을 위한 기도와 또 미래의 제자들이 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장면을 같이 섭력해보려고 그럽니다. 예수님이 그분들을 위해서 어떻게 기도하셨나. 그 내용을 우리가 알기 위해서는 17장 나머지부분들의 구조를 우리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기도의 내용이 넷 으로 구조적으로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첫째 뭐냐면 예수님이 어떻게 기도하였냐면 제자를 위해서 기도하시면서 이런 기도를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어떤 사람들이라는 제자들의 정체성을 아버지와 같이 대화를 하신 겁니다. 제자들이 이런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하신 다음에 두 번째로 예수님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기도하신 겁니다. 아버지! 저는 이제 세상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피력하시고는 거기다대고 끝까지 이야기하십니다. 13절에 이제 아들은 아버지께 갑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제자들을 이 세상에 두고 갑니다. 15절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세 번째 예수님의 관심거리가 제자들에 대한 걱정거리가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인간이시니까 인간적인 차원에서 인간들을 보고 걱정하는 겁니다.

이 세상은 악합니다. 예수님이 걱정하는 첫 번째 조건은 이 세상은 악합니다. 이들이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14절16절에 이 세상이 이들을 미워합니다. 여기 보면 현재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과거에도 그래왔지만 계속해서 미워할 것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14절에 보면 이렇게 예수님의 걱정을 아버지께 고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진짜 핵심입니다 제자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하신 겁니다. 오늘 여기에 대해서 중보기도내용을 구체적으로 다루려고 그럽니다. 첫째 중보의 내용이 뭐냐면 제자들이 이 세상의 악에 빠지지 않도록 도전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15절에 두 번째는 뭐냐면 이분들이 이렇게 도전을 받는 것과 같이 또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이 곧 진리인 겁니다. 말씀인 진리로 거룩하게 하십시오. 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17절에 그리고는 이 두 부분이 충족이 된 후에 이렇게 되면 온전한 사람이 되는데 온전한 사람이 되어서 그다음에 온전한 사람들끼리 하나로 되기를 주님이 기도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 기도의 세부분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우선 첫 번째로 예수님이 제자들에 관한 정체성이야기를 하셨잖아요. 그 부분을 제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성만찬 때 13장14장15장16장17장까지 다섯 장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이 누구라는 것을 최소한 열다섯 가지로 제자들의 정체성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제가 하나하나 불려드리겠습니다. 첫째 아버지께 예정하셔서 예수님께 주신 자들이라는 겁니다. 그냥 적당히 여기저기서 뽑은 자들이 아니고 예정된 자라는 겁니다. 요한복음15장19절과 17장2절 그리고6절에 지난시간기도에 나옵니다.

두 번째 제자들은 뭐냐면 이; 세상에서 선택하여 뽑아낸 자들입니다이 세상에서 뽑아낸 자들이라는 겁니다. 제자들은 요한복음15장19절과 또 17장기도 속에서 6절에 이 세상에서 뽑아낸 자들이라는 겁니다.그다음에 세 번째는 제자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제자들이라는 게 일반크리스천하고는 다른 겁니다. 네 번째로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미움 받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15장19절, 17장14절에서 다섯 번째로 제자들은 아버지의 소유라는 겁니다. 17장6절 17장9절에 여섯 번째로 이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킨 자들이라는 겁니다. 15장10절 17장6절에 일곱 번째로 뭐냐면 예수님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로부터 이 세상에 오신 분임을 알고 믿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가 보내서 이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라고 그런 예수님이라고 알고 믿는 자들이 제자들이라는 겁니다. 요한복음17장6절 17장8절과25절에 그뿐 아니라 여덟 번째로 예수님이 이런 사람이라고 앞으로 제자 되는 사람들이 장차 알게 되고 또 믿게 될 자들이라는 겁니다. 17장26절에 지금 예수님의 열두제자 말고 나머지제자들도 장차 이 부분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아홉 번째로 이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거하면서 전지를 당하여 과실을 많이 맺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15장2절에서8절에 열 번째로 이들은 기도응답을 받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요한복음15장7절 16장23절에 열한 번째로 이들은 예수님의 기쁨을 가진 자들이라는 겁니다. 15장11절 16장24절 17장13절 열두 번째로 예수님의 평화를 누리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14장27절 16장33절 또 이들은 지상계명에 순종하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15장10절 17장19절 또 이들은 지상사명에 순종하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사람 낚는 어부들이라는 겁니다. 사람 낚는 어부는 마가복음1장17절입니다. 요한복음17장19절에 이렇게 지상사명에 순종하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이분들은 요한복음에는 안 나오지만 누가복음14장26절에서27절에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면 자기부모나 처자나 형제나 자매나 자기 목숨까지 예수님보다 덜 사랑하고 예수님을 더 사랑하면서 자기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최소한 열다섯 가지 제자들의 정ㅊ[성을 이렇게 머릿속에 두시면서 아버지와 대화를 먼저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예수님이 아버지에게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피력하는 겁니다. 이제 아들은 아버지께로 갑니다.아버지께서 주신 제자들을 제가 이 세상에 두고 갑니다. 이렇게 기도를 두 번째로 하시고는 세 번째 기도는 우리가 알다시피 이 세상은 악합니다.라고 기도하시는 겁니다. 그러면 이 세상은 무슨 뜻입니까? 이 세상을 의미하는 최소한 예수님이 열 가지 표현들을 했습니다. 지난번에 제가 여덟 가지를 드린 것 같습니다. 열 가지 이 세상에 대한 표현에 첫째가 뭐냐면 우주를 이 세상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두 번째 지구를 세 번째는 지구에 사는 사람들도 이 세상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네 번째는 어두움의 세상을 이세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다섯 번째는 하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이 세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여섯 번째는 창조목적에 반대되는 인간조직들을 일곱 번째는 장차구원받기로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들을 이 세상으로 표현했습니다. 장차구원받기로 선택된 하나님의 자녀들을 또는 여덟 번째로 윗 세상 아랫 세상 할 때 아래세상을 이 세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홉 번째로 이 세상 임금인 사탄을 표현할 때도 요한복음14장30절에 열 번째로 이 세상은 일시적이며 그림자세계라는 의미로서 이 세상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열 가지를 다 생각하시면서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것을 들어보시면 그럽니다.제자들은 아버지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17장14절16절에 그러니까 여기에 우리를 대입하세요. 저나 여러분들도 이 세상에 속해 있습니까? 안 있습니까?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제자라면 제자가 아닌 사람은 이 세상이 좋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기를 싫어하는 겁니다. 벌써 그런 사람들은 제자가 아닙니다. 이 세상이 영원한 것으로 생각하는 크리스천들이 상당히 많거든요. 벌써 사고방식이 그렇게 가 있는 겁니다. 대부분의 모든 정력과 시간을 이 세상에다가 쏟는 사람은 제자입니까? 아닙니까? 아닙니다. 왜냐면 제자는 주님이 그래놓고 이 세상이 제자들을 미워한다고 그러는 겁니다. 14절에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대화가 안 되는 겁니다. 대화가 덴다고 그러면 제자가 아닙니다.동창회니 향우회니 이런데 가서 같이 있다가 대화하는 걸 보면 도저히 나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여러분은 제자입니다.그런데 거기 가서도 같이 잘 노는 겁니다. 화투치기도 하고 같이 잘 놀면 제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런 제자들을 향해서 핍박을 받아야 되는 제자들 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아야 되는 제자들을 향해서 예수님이 중보기도를 하시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또 앞으로 제자 될 사람들을 행해서 중조기도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중보기도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이 중보기도 속에 들어와야 되기 때문에 만약에 우리가 제자라면 주님이 어떤 중보기도를 하시냐면 첫째 제자들이 이 세상 악에 빠지지 않도록 보존해 주시옵소서. 하는 겁니다. 보존을 하는 데 누구에게 부탁을 하는 겁니까? 아버지에게 부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예수님이 보존을 직접 안 하십니다 직접누구에게 하는 겁니까? 아버지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에게 부탁하시면 보존하는 파워가 누굽니까 보혜사성령님이십니다. 보혜사성령님이 누구의 이름으로 옵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혜사성령님이 오시게 되어 있는데 이것을 향해서 예수님이 아버지에게 부탁하는 겁니다. 아버지 제 이름으로 제가 부탁드리는데 제자들에게 보혜사성령을 보내주십시오. 라는 말이나 똑 같습니다. 그러면 보혜사성령님이 오시면 어떻게 됩니까? 보혜사성령님과 내속에 내제하시는 성령님이 다 같은 성령님입니다 그런데 역사하시는 기능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있는 겁니다.다시 말하면 어떤 이야기냐면 제자들은 내속에 있는 성령님과 우선 대화를 해야 되는 겁니다. 제자가 되려면 이악한 세상에서 이것이 팔복에서 첫째가 무엇입니까? 마음이 가난한 자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가난해서 내 속에 있는 성령님과 대화하는 자입니다 그러면 애통하게 되니까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위로가 온다고 그랬습니다. 그 위로 자가 누굽니까? 보혜사성령님입니다 같은 성령님인데 위치와 가능적인 차이입니다 이렇게 성령님과 교제하는 이야기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렇게 할 때 보존이 된다는 겁니다.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쓴 뿌리가 제거되면서 나의 더러운 쓴 뿌리들이 제거되면서 영의 눈이 밝아지게 되는 겁니다. 제자가 되려면 영의 눈이 밝아져야 되잖아요. 이렇게 밝아지는 사람에게 주님이 주시는 약속이 첫째 보호천사들을 보내신다는 겁니다. 시편33편7편에 그뿐 입니까 예수님이 직접 내 옆에 와서 계시기도 한 겁니다. 그래서 우리 시편91편1절에서부터 주욱 11절까지 보시면 예수님이 이런 사람들에게는 피난처가 되시고 요새가 되시고 방패가 되시고 손방패가 되시고 이렇게 예수님이 하신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제자가 되려면 이미 예수님이 내 옆에 와 계시고 방패로써 피난처로써 또 보호천사도 옆에 와 계시고 그러니까 이 세상이 악하고 우리를 미워하고 하지만 든든한 겁니다. 왜냐면 이런 보호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첫째 기도가 뭐냐면 이런 보호를 받도록 제자들을 아버지여 보호해주십시오.  그다음에 두 번째로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게 이분들이 말씀인 진리로 거룩하게 해주십시오.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이 사람들이 이제 무엇을 합니까? 진리 이꼬르 말씀은 그런데 그것으로 거룩하게 해달라고 그러는 겁니다. 여기에 중요한 개념이 숨겨져 있습니다.첫째로 거룩하다는 말을 먼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거룩이라는 말은 하기오스(hagios)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뭐냐면 구별되었다는 소리입니다 우리가 자칫하면 거룩하면 오! 거룩 이런 걸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런 거룩이 아닙니다. 거룩이라는 말은 구별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과 나는 구별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영어로 말하면 이 세상과 분리되었다는 소리입니다 분리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면 지금 보혜사성령님 프뉴마성령님과 교재하면서 내가 쓴 뿌리가 빠지게 되고 그다음에 말씀으로써 내가 말씀을 먹어서 말씀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야지만 내가 이 세상과 분리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구별되었다는 뜻은 이 어두움의 세상 하나님을 반대하는 세상 아까 열 가지 있었잖아요 창조목적에 반대하는 인간조직들 속에 사라고 있으면서 이들에게서 미움과 배척과 핍박을 받고 있지만 제자들은 아까 그런 조건을 가지고 있을 때는 이 세상에서 실족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만찬설교에서 예수님이 항상 말하잖아요. 저들이 실족하지 않고 세속화되지 않고 그래가지고 이분들은 그 안에 살고 있지만 물과 기름처럼 둑 떠가지고 전천후시각자가 되는 겁니다. 영의 눈. 혼의 눈, 육의 눈이 이 세상도 보고 저 세상도 보면서 이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을 보는 눈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렇지만 거기만 있는 게 아니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겁니다. 전천후시각입니다 그러니까 가치관이 이 세상 가치관에 사는 게 아니고 저 세상 가치관 저 세상 세계관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 이게 제자들이라는 겁니다.이렇게 사는 사람들을  우리가 거룩하게 산다고 그러는 겁니다. 구별된 사라들입니다 여기서 끝나면 안 되는 겁니다. 이 사람들이 해야 될 일이 뭐냐면 주님이 제자들에게 무엇을 주었냐면 너희들 그렇게 살고 있는 게 아니고 지금 예수님 말씀이 아버지가 예정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두움 속에서 살고 있는 겁니다. 이 사람들을 우리가 보는 눈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그 사람들이 가가지고 애들아 너희들도 특별한 사람들이다 거기서 나와라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들입니다 그걸 뭐라고 그럽니까?전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거기서 나와라 제자들이라는 사람들은 전도하고 가르쳐주는 겁니다, 상실했던 창조목적을 회복시키기를 가르쳐주는 겁니다.그러니까 창조목적은 이 세상을 섬기지 말고 창조주만 섬겨라 그러니까 그분들에게 지상계명을 가르쳐주는 겁니다. 지상계명을 가르쳐주고는 이것을 나가서 우리민족과 타민족에게 전해라 이것을 가르쳐주는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을 가르쳐서 거룩한 사람들이라 그러는 겁니다. 그냥 거룩하게 산다는 것이 하나의 존재적인 의미만이 아닙니다. 액션이 필요한 겁니다. 거룩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이렇게 거룩한 사람들이 될까요? 분명히 말씀했잖아요. 너희들이 보혜사성령님과 프뉴마성령님과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해지라는 겁니다. 이것을 위해서 예수님이 아버지께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겁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그러니까 진리가 뭡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은 곧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진리의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말씀을 성경전체에서 누구를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 됩니까?예수님입니다 그러니까 성경공부도 예수님이 빠져버리면 안 됩니다.그러니까 우리는 기독론이 강해야 되는 겁니다. 예수가 빠진 말씀으로는 이 파워를 가지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입만 열면 누구이야기 해야 됩니까? 예수님이야기 해야 됩니다. 입만 열면 그런데 말씀도 분명히 가르쳐주었습니다. 유월절음식을 잡수셔야 됩니다. 무엇입니까? 흠 없는 일 년 된 수컷의 어린양의 고기와 무교병과 쓴 나물입니다. 출애굽기12장8절입니다. 쓴 나물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보혜사성령님이십니다 프뉴마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보혈이라고 그랬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거룩해지는데 예수님이 분명히 거르는 겁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거룩하게 되어야 되는데 거룩하게 되는 목적을 예수님이 분명하게 18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거룩해지는 목적이 뭐냐면 18절에서 거르는 겁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예수님도 선교사입니다 저쪽 동네에서 이쪽동네로 선교사로 오신 겁니다. 나도 세상에 보내었고 그러면 현재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보낼 것이고 미래형이 되어야 되는데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미 예정된 겁니다. 이미 예전에 태어나기 전에 이미 이분들을 보내신 겁니다. 그래서 과거부터 주욱 보내가지고 지금까지 앞으로도 계속 가야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현재완료형으로 표현했습니다. 예정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도 그렇고 여러분들도 정말 제자면 여러분들이 싫어도 주님이 제자로 만들어 버리십니다. 싫어도 예정된 사람은 빼도 박도 못합니다. 그렇게 주님이 이끄십니다.그러니까 생각해보면 우리 AMI우리 권속들을 보면 아하! 이분들은 제자 감들이구나 하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이게 우리가 보통으로 공부하는 겁니까? 다들 열심히 적고 있고 오후에 열심히 대화하고 이것은 주님이 예정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이분이 19절에 이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너무나 멋있는 분이십니다. 이분이 아버지와 대화하는 장면이 뭐냐면 본인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되라고 모본을 보였다는 겁니다. 본인이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제자들에게 뭐라고 그러느냐면 예수님이 먼저 자신을 거룩하게 유지했다는 겁니다. 제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3년 공생애 동안에 이분이 이렇게 했다는 겁니다. 인간으로 오셔가지고 그것을 제자들이 동기유발 되어 가지고 제자들이 자기를 따라가도록 내가 삶을 살았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 아버지가 세상에 가라고 그래서 내가 왔잖습니까? 내가 인간으로 있으면서 신성을 다 포기했기 때문에 나도 유혹이 많았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렸을 겁니다. 인간의 유혹들 우리의 약한 부분들을 봤잖아요. 그런데도 나는 제자들에게 이 어두움의 아간 세상에 나도 살면서 저분들에게 내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나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것을 내가 제자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19절에서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유혹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 절제하면서 기도하시면서 말씀 속에서 항상 자기를 재충전하면서 전천후시각을 예수님도 항상 가졌습니다. 아버지와 대화하시면서 그 모습을 제자들이 3년 동안 따라다니면서 다 본겁니다. 보니까 우리 선생님이 대단히 영적이시구나. 이렇게 보도록 예수님이 내가 최선을 다 했습니다. 아버지 이렇게 기도를 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창조 주되시는 예수님이 이 수준까지 내려오셔서 하시는 것을 보면 대단히 고맙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까지 하십니까? 이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후에 기도를 하신 후에 그러는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 제자들이 온전해지는데 아버지 이 온전함을 충족시킨 후에 이분들이 서로 하나가 되게 해주세요. 그러는 겁니다.그러니까 그냥 하나가 아닙니다. 우선 영적으로 전천후시각이 되도록 된 다음에 이분들이 하나가 되기를 원하는 겁니다. 우리기독교인들이 그냥 고회 다니면서 우리끼리 서로 사랑해서 하나가되자 그래서 우리 테이블끼리도 하나가 되자 우리교인들도 하나가되자 이런 수준의 하나가 아닌 겁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하나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게 무너져버린 겁니다.이해관계가 맞지가 않으니까 예수님은 지금 하나가 되는 게 조건이 무엇입니까? 보혜사성령님 프뉴마성령님으로 쓴 뿌리가 뽑아지고 말씀으로써 쓴 뿌리가 뽑아지고 해서 완전히 예수님 화 되면서 성화되면서 그다음에 거룩해 지는 겁니다. 이 세상과 구별되는 사람이 되어서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고 행동화 하는 겁니다. 주변사람들에게 가서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창조의 목적을 이야기하고 너희들 이렇게 살아라. 해서 내 민족만이 아니고 타민족에게까지 가서 예수님의 창조목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이 수준까지 된 사람들은 제자들이 그렇게 될 텐데 그러면서 저들이 각개동작하지 말고 하나가 되라는 겁니다. 이 수준까지 올라간 사람들은 왜냐면 예수님이 그러는 겁니다. 아버지와 나와 하나인 것처럼 우리가 하면서 하나의 기준을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아버지 저도 아버지가 나를 여기에 보내서 선교사로 와가지고 완전한 인간이 되어 가지고 이 세상과 구별되는 삶을 제가 살아 왔습니다. 아버지가 택하신 저 제자들도 우리와 똑같이 쓴 뿌리가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뽑으면서 거룩하게 되어 가지고 내가 선교사로 온 것처럼 저분들도 이제 선교사로 나가가지고 주님이 이 세상을 창조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다시 깨닫고 회복시키는 일을 우리대신 할 터인데 그러려면 저들이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삼위하나님이 하나인 것처럼 저들도 하나가 되게 하십시오.그러면서 제자가 왜 하나가 되어야 되는지를 목적을 최소한 일곱 가지를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제가 이렇게 들여다보니까 첫 번째가 뭐냐면 21절과23절에 나옵니다. 저분들이 하나가 되면 다시 말하면 이런 준비된 제자들이 하나가 되면 세상 사람들이 제자들을 볼 때 어떻게 보느냐면 아하!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셨구나. 제자들이 하나 된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믿게 된다는 겁니다. 제자들이 하나가 된 모습을 보고는 두 번째로는 23절에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신 것같이 아버지께서 제자들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된다는 겁니다. 일반 세상 사람들이 저분들은 특별한 분들이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분들이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된다는 겁니다. 하나가 되었을 때 세 번째는 뭐라고 그랬냐면 13장35절에 내가 너희들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그렇게 하면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 사람들이 너희가 예수님을 제자인 것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가 된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 영적생활을 하면서 공동체 속에서 하나가 되는 일을 못할 때는 아직까지 열매가 맺어지지 않았다고 보면 됩니다. 왜냐면 하나가 되는 것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보고서는 놀라는 겁니다. 네 번째로 뭐냐면 22절과24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전수받은 제자들이 장차 낙원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이분들이 하나가 되면 다섯 번째로 26절에 하신 말씀입니다 아버지와 예수님의 사랑이 제자들 안에 있게 된다는 겁니다. 26절에 하나가 되었을 때 여섯 번째로 지상계명 지상사명 창조목적이 회복되는 겁니다. 이 사람들을 통해서 일곱 번째로 이 사람들은 하나가 됨으로 해서 화평케 하는 일을 합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화평으로 만드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은 높은 위치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위치에 있는 겁니다. 마태복음5장에 그러니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제자들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제자로써 진정한 의미로써 포지션을 잃게 됩니다. 그러다보니까 상급이 있고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높은 계급에 있게 됩니다. 제가 서론적인 부분을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것이 무엇입니까? 제자들이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제가 말씀드린 대로 이렇게 해야 되는 것이 제자의 요건들입니다 제가 주욱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의 기도가 제자의 요건입니다. 그런데 지금 문제가 하나있습니다일반적인 질문입니다 요한복음17장은 예수님이 아버지에게 기도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예수라는 그분이 하님이신데 그분이 요한복음에서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인데 왜 기도를 하십니까? 아버지에게 이런 질문이 아버지에게 있습니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데 왜 기도하십니까? 예수님이 지금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는데 왜 기도하십니까? 이것이 또 우리를 괴롭히는 겁니다. 이 괴로움이 우리 괴로움이 아닙니다. 1세기 때 기독교로 들어온 대부분의 성직자들이나 교인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고민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삼위일체라는 말이 그 당시에는 없었습니다. 1세기 때도 없었고 2세기 때도 없었고 4세기 때가서 삼위일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전까지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예수님이 하나님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전혀 하나님 같지도 않고 그러니까 그분의 완전한 신성과 뚜렷한 부분이 교리 화 되지 않았습니다. 4세기까지 그러니까 초대교회가 문제가 상당했습니다. 교회라면 1세기만이 아닙니다. 1세기 2세기 3세기 4세기까지 그렇기 때문에 삼위일체에 관한 여러 가지 의견들이 분분하고 교회가 혼돈스럽습니다. 그래서 제가 간단하게 우선 삼위일체의 학설의 역사적인 발전부분을 제가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이것은 알 필요가 있을 겁니다.우리가 예전에도 약간씩 다루었지만 다시 한 번 역사적인 측면에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신성을 부인한 이단인성을 부인한 이단성령을 부인한 이단삼위를 부인한 이단에비오니즘(Ebionism)그노스티시즘(gnosticism)영지주의몬타니즘(Montanism)사벨리아니즘(Sabellianism)아리아니즘(Arianism)도 케 티 즘(Docetism)금 욕 주 의(Asceticism)첫째 1세기 때 이단들이 갈라디아교회에 있었던 이단들이 에비오니즘입니다. 에비오니즘은 어떤 이단이냐면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이단입니다. 1세기 때 신성을 부인하는 이단이 이게 하나의 큰 이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성을 부인하는 이단들이 1세기 때 있었습니다. 그 이단들의 제일 큰 사상이 무엇이냐면 영지주의자라는 겁니다. 영지주의가 그노티시즘(Gnocism)이라고 그러는데 헬라어로 그노시즈(Gnocis)가 무엇입니까? 지식이라는 뜻입니다 이분들은 지식에 신경을 많이 쓰는 지식위주주의입니다 이것을  그노시즘(Gnocism) 한국말로 영지(靈智)주의 성령의 영(靈) 지식의   (智) 영지(靈智)주의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데 마르시온(marcion)이라는 사람이 창시자 중에 한 사람인데 특히 세계 유대인 지식인 사회에서 이 사상이 유행되었는데 이 사상은 뭐냐면 첫째가 무지한 것은 죄라는 겁니다.그래서 이것을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식을 강조하는 겁니다.이 부분은 괜찮은데 두 번째 부분이 문제가 있는 겁니다. 이 사람들이 거기다가 무엇을 말했느냐면 모든 영(Spirit)만 진짜 진리지 몸이나 물질은 다 악이라는 겁니다. 영만 선인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학설입니다그러니까 구원이라는 개념이 뭐냐면 바디(bady)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보이는 물질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을 구원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측면에서 이 사람들은 무엇을 이야기하느냐면 예수님은 영적인 분이지 예수님의 인성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는 겁니다. 영적부분만 인정하고 이 영지주의사상의 분파가 세 분파가 있습니다. 도케티즘(Docetism)이라는 것은 도케오(Doceo)라는 헬라어로 영어로 그렇게 보인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완전 인성을 부인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세링티아니즘(Cerinthianism)이라고 세링토스(Cerinthus)라는 사람이 만들어 낸 학설인데 예수님이 세례받기 전까지는 사람이었지만 세례 받은 후에 완전히 하나님이 되었다는 그런 학설입니다 그다음에 아세티즘(asceticisma)이라고 금욕주의라고 합니다. 금욕주의라는 것은 뭐냐면 이 세상의 육의 것들은 다 악이다 그러니까 우리 육은 마음대로 다루어도 되고 금식도 마음대로 하고 몸을 때려도 되고 영적으로만 발전시키면 된다는 학설입니다. 금욕주의라고 그럽니다. 이런 것들이 1세기에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이나 바울의 편지에 보면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언급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바울에게 주신 부분이 골로새서2장21절에서23절 디모데전서1장4절 4장3절 6장20절 디모데후서2장18절 3장6절 디도서1장14절 그리고 요한에게는 요한1서1장17절 2장22절 4장23절 그러다가 2세기에 들어와서 유명한 신학자 터툴리안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160년에서230년에 살았던 사람인데 터툴리안니즘도 이런 부분에서 삼위하나님을 부인했습니다. 터툴리안니즘은 하나님이 한분이신데 삼위가 있는데 삼위를 희미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이 이 사람의 사상을 잘못되었다고 보는 겁니다. 그리고 2세기 말에 가가지고 데오도투스라는 사람에 의해서 하나님이 한분으로써 제일 높은 분이라는 건데 이분도 삼위를 제대로 설명을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고민하는 겁니다. 삼위를 어떻게 설명할까? 무지무지하게 고민했던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4세기에 들어와 가지고 샤벨리우스(Sabellism)라는 사람이 이 사람도 유명한 사람인데 샤벨리우스(Sabellism)라는 사람이 한국말로는 양태론이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게 뭐냐면 이분의 학설이 오늘날 기독교 안에 많이 평배 되어 있습니다. 뭐냐면 하나님이 한분이신데 삼위하나님도 삼위라기보다도 한 하나님인데 어떤 때는 아버지 역활을 하고 어떤 때는 아들 역할을 하고 어떤 때는 성령님의 역할을 하는 것뿐이지 삼위가 뚜렷하게 나누어진 게 아니다 이런 개념의 가르침이 오늘날에도 꽤 많습니다. 이것을 양태론이라 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신성을 부인했던 유명한 분이 있습니다. 아리아니즘(Arianism)입니다 아리우스(Arius) 이 사람은 270년에서 330년 때 사람인데 이분은 알렉산드리아 교회에 지도자급 목사님이었습니다. 목회자이면서 신학자였습니다. 이분이 가지고 나왔던 학설이 예수님을 신성을 부인하는 학설입니다. 성부하나님만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은 사람이시다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했던 분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리우스(Arius)라는 사람이 엄청난 영향을 많이 끼쳤습니다. 그 당시에 5대교구 기억나시죠?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 안디옥, 콘스탄티노플, 로마 이렇게 영향을 많이 끼치는 가운데 그 당시에 알렉산드리아 교회에 아주 유명한 교부가 있었습니다. 그 교부이름이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입니다 293년에서373년입니다이 사람을 애굽 곱틱 정교회에서 아브라함같이 보는 사람입니다지금도 애굽 사람들은 아타나시우스(Athanasius)하면 애굽 정교회의 대주교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애굽 정교회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마가입니다그러니까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마가의 직속영적후예라고 보는 겁니다. 아타나시우스(Athanasius)가 자기 밑에 있는 아리우스가(Arius) 엉뚱한 교리를 가지고서 막 퍼뜨리는 것에 대해서 열을 받은 겁니다. 그래가지고 아타나시우스(Athanasius)가 로마교회 콘스탄티노플교회 안디옥교회 예루살렘교회 지도자들을 모아가지고 공의회를 만들었습니다.그게 381년입니다 콘스탄티노플에 공의회를 연 겁니다 2차 공의회입니다 1차 공의회는 니케아 공의회입니다 2차 공의회에서 만나가지고 아타나시우스(Athanasius)가 150명의 비숍들 높은 분들을 모아놓고 삼위일체를 제대로 정돈하자 그래가지고 그 당시에 유명한 학자들이 갑바도기아3인이라고 그럽니다. 갑바도기아는 갈라디아 바로 옆에 있는 터키지방입니다 갑바도기아에서 이름난 세 명의 신학자들이 중심으로 해서 이분들이 삼위일체론을 만들어 낸 겁니다. 바실리(Basil)라는 사람과 그레고리(Gregory)라는 사람인데 그 당시에 그레고리(Gregory)라는 이름이 많으니까 항상 자기고향이름을 붙이는 겁니다. 그래서 그레고리 오프 나지안쥬스(Gregory of Nazianzu) 그다음에 그레고리 오프 니샤(Gregory of Nisa)이렇게 갑바도기아3인이 주님의 영적 감동으로 오늘날의 삼위일체교리를 만들어 낸 겁니다. 시기장소의결사항1주후325년니케아아리우스 배격. 니케아신조(사도신경)채택2주후381년콘스탄티노플아리아니즘. 몬타니즘 이단정제, 삼위일체 확립3주후431년에베소인간의 전적타락 인정, 마리아 종신 처녀설. 마리아 성모설 제안4주후451년칼케돈예수님의 인성. 신성 확립, 마리아 종신 처녀설, 마리아 성모설 채택그래서 삼위일체 교리가 로마가톨릭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정교회들 그다음에 종교개혁 후에 모든 개신교분들도 이때 콘스탄티노플에서381년에 만들어낸 이 삼위일체교리가 정통교리로써 지금 까지 이렇게 흘려내려 오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난 김에 삼위일체교리를 잠깐 봅시다.이게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들이니까 하나하나씩 보세요. 도대체 기독교의 하나님은 누군가? 우리가 볼 때 삼위일체하나님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갓(GOD)이라는 헬로힘(Elohim) 이게 복수로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성경에는 복수적인 개념은 우리가, 우리가라는 단어를 쓴 것이 성경 여러 군데 나오는데 특히 창세기1장26절에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대로 할 때 우리라는 단어를 그다음에 이사야6장8절에 이사야에게도 우리가, 우리가 그러는 겁니다.그러면 항상 단수동사를 받는다고 그랬습니다. 이렇게 하는데 삼위하나님을 우리가 여러 군데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태복음28장19절에 지상사명에서도 아버지의 이름과 아들의 이름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그랬잖아요. 삼위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목사님들이 축도하실 때 축도내용이 어디에 있느냐면 고린도후서13장14절입니다.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너희에게 항상 있기를 간구하노라 여기도 보면 삼위하나님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삼위하나님이 나타났습니다. 비둘기 같이 예수님이 거기 계시고 성부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마태복음3장16절에서17절에 그런데 이 삼위하나님은 기능적으로 삼위가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계획자시고 성자하나님은 수행자시고 성령하나님은 힘주시고 보존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그다음에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는 말씀을 계속하셨습니다. 거기에 대한 개념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첫째 요한복음10장30절에 예수님이 그러시는 겁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그다음에 요한복음14장7절부터10절에 보면 아들을 본 자는 아버지를 봤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또 요한복음16장15절에서는 아버지 것이 다 내 것이다 그러시는 겁니다. 네 번째로 보시면 요한복음15장23절에 제자들에게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을 미워하면 나를 미워하는 것이고 나를 미워하면 아버지를 미워하는 거라는 겁니다.또 요한복음14장24절에는 그러는 겁니다. 내 말이 다 아버지 말이다 그러시는 겁니다. 요한복음17장21절에 예수님이 오늘 기도하시는 장면에서 그러는 겁니다. 아버지! 아버지와 나는 하나입니다 그다음에 아버지에 의해서 아들이 보냄을 받았다고 항상 그러는 겁니다. 요한복음3장16절에 요한복음20장21절 요한복음17장8절에 또 뭐라고 그러느냐면 아버지에 의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신다는 겁니다. 이 시스템에 있습니다. 아버지가 보내는데 누구의 이름으로 보내느냐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신다는 겁니다. 요한복음14장26절에 그러시면서 이분이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꼭 내가(예수님이) 낙원으로 올라가셔야 된다는 겁니다. 요한복음16장17절에 이런 부분이 삼위하나님의 관계성에 있습니다. 다음에는 더 중요한 관계성이 있습니다. 삼위하나님은 서로 서로 증거를 하십니다. 그 이유는 뭐냐면 스스로 증거는 참 증거가 아니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자기가 내가 이랬습니다. 내가 이랬습니다. 하는 것은 참 증거가 아니라는 겁니다. 요한복음5장31절에 그리고 그 이유 중에 두 번째는 스스로 증거 하면 자기영광을 구하는 거라는 겁니다. 자기 소리를 자꾸 하는 사람은 자기영광을 구하는 거라는 겁니다. 요한복음7장18절에서 그렇기 때문에 꼭 제3자가 증거를 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첫째 아버지가 예수님을 증거 하는 장면을 봅시다. 아버지가 예수님을 증거 하는 장면이 성경구절 네 개를 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3장16절. 17장5절 요한복음5장37절 8장17절입니다. 또 예수님이 아버지를 증거 하는 장면입니다 요한복음1장18절 요한복음3장16절 요한복음8장19절 요한복음14장9절 그다음에 예수님이 성령님을 증거 하는 장면이 요한복음14장16절 또 성령님이 예수님을 증거 하는 장면이 사도행전1장8절에 그다음에 아버지와 관계에서 예수님의 정체성입니다 예수님의 정체성이 상당히 많은데 특히 아버지와 관계 속에서 예수님의 정체성은 성서에 보면 열 가지가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성서를 읽으면서 제가 뽑아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참고로 아시라고 첫째는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다 예수님을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아버지의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다 요한복음1장18절에 두 번째 아버지의 맡 아들이다 히브리서1장6절에 장남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로 예수님이 아버지의 영광에 광채시고 본체의 형상이시다 히브리서1장3절에 세 번째로 아버지와 하나이신분이다 요한복음10장30절에 다섯 번째로 아버지는 아들의 친아버지시며 아버지와 동등하시다 요한복음5장18절 요한복음14장1절에 여섯 번째로 하나님의 거룩한 자시다 요한복음6장69절에 일곱 번째로 하나님아버지의 아들이시다 요한복음3장16절 5장32절에서37절 10장36절 17장5절에 여덟 번째로 아버지가 아들 안에 계시고 아들이 아버지 안에 계신 것을 보혜사가 알게 해주는 삼위일체의 관계 시다. 보혜사성령님이 그렇게 알려준다는 겁니다. 요한복음10장38절 14장10절 14장20절 아홉 번째로 아들을 믿는 것이 곧 아버지를 믿는 것이고 아들이 믿음의 주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믿음의 주다 요한복음12장44절 히브리서12장2절 마지막으로 열 번째로 아들을 보는 자가 곧 아버지를 보는 자고 아들이 독생하신 하나님이라고 우리가 고백하는 겁니다.요한복음1장18절 12장45절 14장9절에 그다음에 예수님이 아버지를 높이시는 장면도 우리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분이 같은 분이신데 동격이시고 동질이신데 높이시는 장면을 우리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첫째 예수님이 아버지보고 제자들에게 그럽니다. 이분은 만물보다 크신 분이시다 아버지가 요한복음140장29절에 두 번째로 자기가 아버지에 의해서 이 세상 파송을 결정 받았다는 겁니다. 아주 겸손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에 의해서 거기에서 첫 번째 개념이 뭐냐면 아버지가 자기를 여자의 후손으로 성육신하도록 결정했다는 겁니다. 창세기3장15절입니다.그리고 두 번째로 이 결정이 성취되었다는 겁니다. 이사야서7장14절 마태복음1장18절에서25절에 그리고는 성육신 되어 오신 자기가 세상에 구원자로 임명받았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에게서 요한복음3장16절 요한1서4장14절에 세 번째로 예수님이 그러는 겁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전권대사라는 겁니다. 자기가 이 세상에 아버지가 보내서온 전권대사라는 겁니다. 거기에 제가 성서를 주욱 보면서 열 가지 전권대사 개념을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열 가지를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이 열 가지를 알려면 성경을 다 뚫어 보아야 합니다. 첫 번째 아버지의 명에 의해서 아들이 만물을 직접 창조했다는 겁니다. 요한복음1장3절 골로새서1장16절 히브리서1장2절에 두 번째는 예수님이 그러십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기 위해서 아들이 이 세상에 왔다는 겁니다. 요한복음3장16절 5장24절 32절 43절 요한복음8장42절에 세 번째로는 예수님이 그럽니다.아버지가 모든 것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다는 겁니다. 요한복음13장3절에 네 번째로 심판도 아들에게 맡기셨다는 겁니다. 요한복음5장22절 27절에 그 이유는 아버지와 내가 너희들에게서 공경받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5장23절에서 그러니까 심판주가 예수님입니다 다섯 번째로 내가 인간으로 오신 목적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러 왔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자기 뜻을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항상 겸손하신 겁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러 왔다는 겁니다. 요한복음5장30절 6장37절에서39절에 여섯 번째로 아버지가 아들 안에 계시면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신다는 겁니다. 요한복음14장10절에 일곱 번째로 아버지가 행하는 것은 다 아들에게 보이신다는 겁니다. 아버지가 계획하시고 행하는 것을 아들이 다 알고 아들에게 보이신다는 겁니다. 요한복음5장20절에 그랬습니다.그다음에 여덟 번째로 아버지가 예정한 자들이 있는데 아버지가 예정한 자들을 다 아들에게 주신다는 겁니다. 요한복음6장37절에 요한복음17장6절에서8절에 아홉 번째로 아들이 예정한 자들에게 할 말을 가지고 있는데 극서도 다 아버지가 예수님께 주신다는 겁니다. 예정된 자들에게 할 말을 예수님이 하셔야 될 텐데 그것도 다 아버지가 주셔서 내가 말한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겸손하십니까? 요한복음12장49절에 그다음에 열 번째로 이렇게 예정된 자들이 아들에게 가도록 아버지가 이끄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예수님께 온 것이 누가 이끌어서 온 겁니까? 아버지가 이끌어서 예수님께 간 겁니다. 아니면 아무도 아들에게 얼 수 없다는 겁니다.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이끌어 주지 않으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가 없다는 겁니다. 요한복음6장44절65절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여기까지 삼위하나님의 협동적인 관계성을 섭력했습니다. 제가 섭력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냥 지식적으로 여러분들이 이해수준은 꼭 해야 되고 이것을 우리가 묵상하면서 발전을 시켜야 됩니다. 왜냐면 오늘 예수님이 기도를 이렇게 하셨습니다. 아버지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저들도 하나 되게 하십시오. 그러는 겁니다. 깊은 성서적인 철학적인 개념이 여기에 숨겨져 있습니다. 아버지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저들도 하나 되게 하십시오. 이것을 엄청나게 우리가 묵상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삼위하나님이 하나임을 우리가 묵상을 해야 합니다. 그 묵상을 기초로 해서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되는 겁니다. 이해가 되세요. 그러니까 이 부분을 묵상을 많이 하셔야 됩니다. 이 부분을 묵상하기 위해서 삼위일체에 관한 이야기를 제가 드린 겁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이 부분을 저는 묵상을 많이 합니다. 그러면서 삼위하나님의 하나 되심이 무엇입니까? 이분들은 본질적으로 영광체입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잖아요. 17장5절에서 영광체시고 본질적으로 하나이면서 삼위가 있는 겁니다. 기능적으로 서로 다른 삼위가 있으면서 이분들은 서로 존경했습니다. 자기자랑자기가 안하고 다른 위가 말해주도록 해준 겁니다. 서로서로가 칭찬하시고 서로가 증거하고 그랬습니다. 이 말은 이분들은 서로 아가페사랑을 하셨습니다. 삼위하나님이 엄청나게 아가페사랑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에게 준 고린도전서13장에 나오는 아가페사람의 모습이 삼위하나님 속에 있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삼위하나님은 서로가 오래 참으시고 서로 온유하시고 친절하시고 절대로 질투하지 않으시고 자랑도 안하시고 교만도 안하시고 절대로 무례하지 않으시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도 않고 성내지도 않고 그러십니다.이분들은 항상 모든 것을 참으시고 믿으시고 서로 바라며 서로 견디는 겁니다. 엄청난 삼위하나님의 협동적관계성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게 아버지! 우리가 파송하는 저 제자들이 우리관계처럼 아버지가 나를 선교사로 파송한 것처럼 제자 이제 파송할 터인데 저 제자들이 우리의 관계와 똑같은 관계로 그대로 닮아가기를 위해서 제가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그러십니다. 이렇게 기도하시면서 하나가 되라고 그러는데 우리크리스천들은 삼위하나님처럼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만 완전히는 될 수가 없지만 그 원칙을 우리가 깨닫고 그렇게 되기를 우리가 소원해야 됩니다. 왜냐면 우리들은 예수님 때문에 삼위하나님의 본질이 하나인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 때문에 본질적으로 하나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크리스천들이 DNA가 하나가 되어 버린 겁니다. 유전인자가 삼위하나님의 유전인자를 우리가 가지게 된 겁니다. 그래서 천국백성이 되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가 되어 버린 겁니다. 예전에 그랬는데 그것이 타락되었다가 다시 회복된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 되기가 힘든 게 우리는 기능적으로 다양합니다.삼위하나님도 기능적으로 다양한 것처럼 우리는 그것보다 더 다양합니다.우리는 족속이 다른 겁니다.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전통이 다르고 또 교육수준도 다르고 가정배경도 다르고 경제적인 차이도 있고 직업에 차이도 있고 사회적인 차이도 있고 성격도 차이가 있고 성별도 차이가 있고 삼위하나님보다 우리는 더 다양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 때문에 하나가 됩시다. 이게 쉬운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항상 요구하는 게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된 것처럼 하나가 되어라 그러면 아버지가 기뻐하신다는 겁니다. 이 말은 뭐냐면 다양 속에서 조화를 이루라는 겁니다. 다양성을 인정해주고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주고 그러면서도 예수님 안에서 조화를 하모니를 이루라는 겁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겁니다. 하모니 그래서 다양 속에서의 하나 오케스트라에서 음색이 다 다르고 다 다른 기구가 지휘자의 지휘에 의해서 하나가 되었을 때 아름다운 향기로운 음악이 나오듯이 우리가 이렇게 다양 속에서 하나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너희들의 오케스트라가 아주 향기로운 제사로 연기로 나에게 올라온다. 예수님이 그러시는 겁니다. 제가 성경구절을 시간이 없어서 읽지는 앓지만 여러분들이 제가 드릴 테니까 나중에 자세히 보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로마서12장1절에서21절 에베소서4장1절에서16절 요한1서4장7절에서8절, 요한1서4장20절에서21절 이런 모든 성경구절을 나중에 보시면서 다양 속에서 하나 되는 연습을 하실 때 주님이 기뻐하십니다.그러면 다양 속에서 하나가 되려면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쓴 뿌리를 제거해야 합니다. 말씀의 진리로써 무장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거룩해지는 겁니다. 시각이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저세상시각으로 가는 사람은 이것이 가능한 겁니다. 이 세상이 내 세상이 아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발하려 왔구나. 라는 것을 깨닫고 우리가 언젠가는 저 세상으로 간다. 그런데 그냥 가는 게 아니고 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택하신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회복시켜주는 일 내 민족과 타민족에게 해야 되겠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불리 움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우리가 다양 속에서 조화를 잘 이루게 할 수가 있습니다. 어느 민족에게 가도 이것이 가능한 겁니다. 그런데 마귀는 이름이 디아볼로스(diabolos)아닙니까? 파괴자, 분리자입니다 마귀는 이것을 못하게끔 교회 안에 들어와서 계속하는 겁니다. 전도를 한다고 그러지만 다투면서 분리하면서 경쟁하면서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빌립보서1장15절에서18절에 보면 빌립보교회 안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다투면서 하는 것을 외모로 한다고 그랬습니다. 외모로 하나 또는 참으로 전도를 하나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시니 내가 기뻐하고 또 기뻐한다고 그랬잖아요. 이 말 자체를 딱 보면 다투면서 해도 괜찮아요. 다투면서 해도 경쟁하면서 해도 예수님은 전파되지만 그 안에 열매는 잘 맺어지지 않고 그걸 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나중에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실큰 해놓고 왜냐면 다투면서 하는 것은 자기영광을 위해서 하는 거라는 겁니다. 자기 욕심 경쟁하면서 하는 것도 자기가 인정받으려고 창조의 목적에 위배되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크리스천이 하나되는 개념입니다 이것을 다시 한 번 간단하게 정리하면 세상 적으로 하나가 아닙니다. 아까 그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을 가지고서 하나가 되어야 되는 겁니다. 안 그러면 그 조건 없이 다시 말하면 거룩해지지 않고 하나가 되는 일들이 일어날 때는 그 하나가 나의 끔을 이루기 위해서 나의 비전을 나의 영광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창조목적에 위배되는 하나가 되는 겁니다. 이렇게 되어서 하나가 될 때는 무서운 하나가 됩니다.그룹이기주의가 나오고 파벌이기주의 교회나 교단 또는 민족이기주의가 여기서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함부로 하나가 되었다가 이게 독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래서 제자들보고 이렇게 함부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고 순서가 있는 겁니다. 순서를 맞추어서 하나가 되기 위해서 아버지께 기도하라는 겁니다. 우리가 다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니까? 간단합니다. 다투지 않으려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은사나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역이나 이런 것들은 나와 저 사람과 은사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다. 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강한 부분은 나 한데는 없다, 라고 인정하는 겁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저 사람에게 없다고 인정해주는 겁니다. 서로가 그래서 내가 없는 걸 저 분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 사람은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없는 것과 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서로 잘 보완해서 우리가 하나로 하면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경쟁할 필요가 없잖아요 우리가 참으로 감사한 것은 우리AMI공동체가 이런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고 끝내겠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기도를 하셨는데 그렇다고 해서 제자들이 하루아침에 변했습니까? 아닙니다. 이분들도 이 기도의 기대까지 가는 되는 한참 걸렸습니다. 예수님이 떠난 후에도 계속 그러니까 천천히, 천천히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까지 왜 변하게 되어 있습니까? 변해야지만 됩니다.왜냐면 이분들은 아버지께서 제자로써 예정되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하나님이 변하게 만든 겁니다. 우리도 예정된 사람이라고 간주를 한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우리가 말씀 속에서 나를 자꾸 닦아 내고 보혜사성령님을 통해서 나를 자꾸 닦아 내고 그걸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ABA공부 열심히 하시고 이렇게 주일 설교에 열심히 적어시고 그것을 가지고 셀 모임 열심히 하시고 그러다보면 말씀으로서 또 우리 찬양인도를 통해서 보혜사성령님의 흐름을 우리가 경험하시면서 나를 조금씩. 조금씩 이렇게 씻어 나가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만큼 변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겁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잘나서 되는 게 아니고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구나 이것을 깨닫고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겁니다.이런 사람이 많습니까? 이런 사람이 제자인데 이런 제자는 많지가 않는 겁니다. 제자는 소수입니다 그리고 이 제자는 세상에서 핍박을 받습니까? 안 받습니까? 받습니다. 이렇게 주님과 제자로써 관계를 맺게 되면 이 세상이 점점 나를 싫어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 나도 이 세상을 싫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주변에서 당신 이상하고나 이상하다는 말을 들을 때 할렐루야 해야 되는 겁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주님 앞에 간구해야 합니다. 주님 저를 선택하셨습니까? 안하셨으면 뒤늦었지만 선택 좀 해주실래요. 이렇게 우리가 협상도 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저를 제자로써 선택하셔가지고 저에게 과거20세기 동안 제자들을 불려서 그분들에게 은혜를 부으셨던 것을 저에게도 이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것 밖에 기도제목이 없습니다. 저는 그의 확신하는데 우리AMI 식구들은 소수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분명 제자로써 예정되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은사들이 다 다릅니다. 은사가 다 같으면 큰일 납니다. 다 달라야 됩니다.어떤 사람들은 부엌은사  어떤 사람들은 찬양은사 어떤 사람들은 테이블 리더 은사 어떤 사람들은 은사가 없는 것 같은데 앉아만 있는 은사가 있습니다. 다 은사가 다릅니다. 그러면서 안자만 있어가지고 옆에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은사입니다 이런 모든 은사들을 우리가 잘 조화해가지고 아주 아름다운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것이 우리AMI의 목적 아닙니까? 계속 이렇게 나갑시다. 기도드리겠습니다.하나님아버지! 하나님아버지의 삼위하나님의 그 부분을 정말 우리의 제한된 이성으로 지식으로 이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만 보혜사성령님의 조명하심과 프뉴마성령님의 조명하심과 가르치심이 없으면 이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말씀 속에서 주님의 이 삼위하나님의 엄청난 다양한 음성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고 이 다양 속에서도 삼위하나님이 하나가 되시는 부분을 저희들에게 가르쳐주셔서 이것이 우리의 삶 속에서 그대로 적용 될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서 기도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진정 주님의 제자가 될 수가 있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한분 한분을 이런 부분에서 기름 부어 주셔서 우리가 진정 주님이 기대하시는 이 세대에 제자가 되어 지상계명과 지상사명을 순종하면서 내 민족과 타 민족에게 창조목적을 회복시키는 일에 귀한 도구로 저희들을 사용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