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아는 시리즈

9강. 신명기21장23절; 요한복음8장32절. 십자가에 담겨진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가?

변명섭 2021. 10. 6. 06:55

하나님의 아는 시리즈 9강. 십자가에 담겨진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가?(신21:23; 요8:32)

신명기21장23절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요한복음8장32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오눌 저희들이 공부하는 주제는 십자가에 담겨진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가? 라는 상당히 중요한 아주 기초되고 가장 근본이 되는 기독교의 교리입니다 교리라 그러면 점점 어려운 감이 있지만 우리 복음의 진수가 오늘 제가 말씀드리는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드리는 말씀을 평소에 여러분들이 일부는 들었겠지만 또 다시 한 번 정돈을 하면서 이 말씀을 하나하나 잘 정리하시길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또 그렇게 인도하실 겁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할 때 항상 우리가 시작하는 것이 뭐냐면 창세전십자가사건입니다 그래서 이 도표를 보지만 창세전십자가사건을 뒤늦게 바울이 깨달았습니다. 바울이 언제 깨달았습니까? 고린도전서2장7절을 기록할 때입니다

주후55년입니다. 이분이 개종을 35년에 했으니까 약20년 후에 깨달은 겁니다. 그전에는 바울이 어떤 복음을 깨달았습니까? 원시복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알아도 다 적어놓으세요. 원시복음이라는 것은 뭐냐면 아담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기로 약속하셨다는 복음입니다 이것은 인간책임론과 연결되어 있는 복음입니다

알미니안주의입니다. 지금도 약80-90%의 하나님의 자녀들 전 세계에 어디가나 원시복음을 그냥 편하게 믿고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이렇게 믿는 것이 훨씬 우리가 볼 때 소화하기가 쉽습니다. 바울도 개종20년 동안은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원시복음을 그런데 우리가 다시 보면 원시복음보다 훨씬 이전에 창세전에 삼위하나님이 십자가사건을 디자인하셨다는 복음 그것을 하나님의 신비다 이렇게 바울이 표현했습니다. 로마서16장25절26절과 고린도전서2장7절에 성경구절은 그 외에도 상당히 많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복음이 같은 복음이지만 이 두 복음이 항상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항상 머릿속에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이러면서 아담을 창조하셨습니다. 아담을 창조하실 때 아담에게 복을 내렸습니다. 어떤 복을 내렸냐면 육의 복, 혼의 복 영의 복을 내렸다는 겁니다.

그러면 지난시간에 제가 육의 복이 무엇이냐 혼의 복이 무엇이냐 영의 복이 무엇이냐를 적어 드렸는데 여러분들이 다시 간단하게 적으시길 바랍니다.

육의 복은 무엇입니까? 육의 복은 첫째 음식의 복, 열매먹는 것 그다음에 마음대로 먹는 것 농사짓지 않는 복, 그다음에 생로병사가 없는 복, 주택도 무료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복. 통신, 대화 이동을 마음대로 다니는 이런 육의 복입니다. 혼의 복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에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복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모든 피조물들 중에서 최상위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존귀함을 받는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창조목적파트너의 일을 하는 이런 복을 받았습니다. 영의 복은 뭐냐면 하나님과 연합되는 아담의 영이 하나님의 영과 연합되는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 하나님의 씨를 받은 복 이런 복을 이분이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타락되었을 때 육혼영이 저주를 받은 겁니다. 저주의 내용을 간단하게 적어보세요 육의 저주를 어떻게 받았느냐면 시간세계로 떨어졌습니다.

생로병사를 경험하고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고 통신과 대화와 이동도 제한받고 그다음에 땀을 흘려야 농사를 지어서 곡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노동의 고통을 경험하고 그다음에 애기를 낳을 때도 산고를 경험해야 되고 그다음에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가죽옷을 입어야 되는 이런 모든 것이 육의 저주입니다 혼의 저주는 어떻게 받았냐면 사탄의 성품을 가지게 되었고 가인이 질투하고 살인하는 예입니다. 그다음에 최상위피조물인데 거기에 대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무지하게 되고 무관심하게 되었습니다.

창조목적파트너의 권한을 부여받은 자였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무지하고 무관심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두더지시각자로 되어가지고 자신의 당면한 생존문제에만 다급한 그런 사람으로 변해버린 겁니다.

이게 저주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런 상황 속에서 살고 있는 겁니다.

영의 저주는 어떻게 받았느냐면 하나님의 씨를 상실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권도 상실 받고 대신 사탄의 씨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탄의 자녀가 되어 버린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을 때는 지옥으로 가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리고는 때가 되면 이제7천년이 끝나면 불 못으로 던져지는 이런 저주를 받았던 겁니다. 지난시간에 우리가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어서 저주 때문에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나타나셔서 원시복음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와 너의 후손과 싸움이 있을 거다.

그런데 내가 승리할 거다 이 말씀이 원시복음입니다 창세기3장15절에 그런데 이 원시복음에는 정확히 십자가의 저주이야기는 구체적으로 없습니다.

상징적으로만 그렇게 원시복음을 이야기했지 구체적으로 십자가사건에서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것은 상징적으로 했습니다. 내 머리를 칠 것이요 나는 내 발이 상처를 입을 거다 이렇게 해서 간접적으로 십자가사건을 이렇게 예표로 보여주셨지만 구체화는 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지난시간에 저희들이 이런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여기서 십자가사건을 조금 더 깊이 조명해서 보려고 그럽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항상 이걸 하실 때 기독교의 하나님은 누군가를 먼저 집고 넘어가야 됩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누군가?

그러면 우리는 항상 기독교하나님은 엘로힘이라고 공부했잖아요.

그 뜻은 창조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보면 복수로 하나님들입니다 창조자들입니다 어떻게 복수냐면 삼위로 되어 있는 분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삼위라고 우리가 알 수가 있느냐면 그러면 마태복음28장19절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 이렇게 그리고 바울이 축도를 할 때 똑같이 그랬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또 요한도 요한1서5장7절에 똑같이 그랬습니다. 삼위하나님을 말씀하셨습니다. 축도는 고린도후서13장14절에 그래서 최소한 신약에서 세 성경구절은 항상 기억해두실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28장19절, 고린도후서13장14절, 요한1서5장7절입니다. 이분이 창조자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창조목적을 공부하기 때문에 창조자라는 이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창조자하나님인 삼위하나님이 전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전지하다는 말이 뭐냐면 과거도 아시고 현재도 아시고 미래도 아신다는 의미가 전지입니다 이렇게 전지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창세전에 창세전이라는 개념을 꼭 잊지 말아주세요

창세전에 하나님의 꿈이 무엇이었습니까? 장차 피조물들을 만들어서 아주 좋았더라. 면서 이분이 그렇게 기분 좋은 것이 뭡니까? 앞으로 혼인잔치가 있지만 그것 보다는 더 멀리 보면 행복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사랑공동체입니다 우리에게 창조목적파트너십을 주셔가지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게 하면서 이 피조물들에게 창조목적을 가르쳐주고 또 가이드해주고 또 격려도 해주면서 모두가 피조물들과 함께 창조주 삼위하나님에게 경배 드리고 찬양 드리고 이분들을 행복하게 해드리는 일 그러면 행복을 받으시는 삼위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신다는 겁니다. 우리에게 모든 자기의 행복을 나누어주는 공동체 이것이 창세전에 삼위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창세전에 피조물들을 만들기 전에 이렇게 하실 것을 삼위하나님이디자인 하신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피조물들을 창조해가지고 이 피조물들과 함께 우리가 멋있는 행복한 영원한 삶을 살자 라는 것이 삼위하나님의 창세전디자인입니다. 그런데 항상 지도자급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인간을 설정한 겁니다.

그러니까 최상위피조물로 그래서 사람을 만들어서 이 일을 수행하시려고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님의 꿈이라고 제가 이렇게 만들어 봤습니다. 꿈, 그런데 창세전에 이런 디자인을 하시고는 삼위하나님이 이 꿈이 실현되지 못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꿈을 가지고 있지만 이 꿈이 실현하기가 힘들겠구나. 불가능은 아닙니다. 실형하기가 힘들겠구나. 이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왜 실현되기가 힘들까? 라는 것을 어떻게 미리 알았냐면 피조물들이 특히 최상위 피조물인인간이 삼위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이게 중요한 개념입니다 경외하지 않을 것을 그러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뜻이 뭐냐면 하나님의 속성이 열두 가지 속성이 있습니다. 삼위하나님은 존재적으로는 삼위시고 자존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시고 사역 적으로는 창조자시고 전지하시고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성품 적으로는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고 공의로우시고 최소한 열두 가지의 속성들입니다 열두 가지 속성들에게 대해서 이분들이 경외하지 않을 것을 머릿속으로 알고 있지만 경외하지 않을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삼위하나님이 언제 알았냐면 창세전에 왜냐면 전능하시기 때문에 미리 아신 겁니다.

사람을 만들기 전에 왜냐면 이분들에게 앞으로 육혼영의 복을 주실 것인데 이분들이 자기네가 노력을 해서 복을 받는 게 아니고 무료로 이 복을 받기 때문에 아까 제가 말했습니다. 세 가지 복들 이것을 자기네의 노력 없이 무료로 받기 때문에 이게 피조물의 한계성입니다. 피조물은 모든 것을 이 엄청난 복을 육혼영의 복을 자기네가 노력 없이 그냥 받게 될 터인데 하나님이 창세전에 생각하시는 겁니다. 이 피조물들이 자기네의 노력 없이 대가없이 이런 것을 받게 되면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도 있고 이게 피조물의 한계점입니다 또 세복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하는 겁니다.

왜 세복을 받았는지에 대한 목적을 가볍게 생각하고 관심이 없게 되고 또는 무지하게 되고 또 감사도 하지 않는 이런 분들이 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게 피조물의 한계성입니다 피조물은 무엇이던지 무료로 노력 없이 가지면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만이 아니고 복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반면 이 세 가지 복을 주시는 분에 대해서도 별로 경외함이 없는 겁니다.

주신분의 열두 가지 경외함이 없는 겁니다. 시편111편11절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에 근본이다 시작이다 그랬습니다.

지혜의 시작이다 그런데 잠언1장7절에는 솔로몬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고 그랬습니다. 시편111편11절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다 그러니까 지식의 기본이라는 겁니다. 지식이 있다는 것은 뭐냐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겁니다. 이 속성을 잠언1장7절에는 뭐라고 그랬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열두 가지 속성을 항상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왜 바벨론사건이 일어났느냐 왜 앗수르 사건이 일어났느냐 그럴 때 호세아에게 가르치는 겁니다. 호세아서4장6절에 호세아야! 내 자녀들이 왜 이렇게 722년사건 586년 사건이 일어났는지 아느냐 내 자녀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이 없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지식이 아주적다는 겁니다. 결여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들도 노력 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사람들도 그러니까 그렇게 십계명을 받고 온갖 가르침을 받았는데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없었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호세아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호세아서6장6절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 지혜를 가지는 것이 지식을 가지는 것이 권세보다 낫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배드리는 것은 아니고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겁니다. 예배드리는 것은 경외하기 위하여 하나의 도구지 예배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배가 살아야 된다.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런데 앉아있는 사람들이 예배는 잘 드립니다.

그런데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거꾸로인 겁니다. 다시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과 지혜가 왜 없게 되어 있습니까? 이게 피조물의 한계성입니다 모든 것을 좋은 것을 대가 없이 받으면 이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혼영의 복 받은 것에 대해서도 가볍게 생각하고 주신분이 왜 주었나? 그분이 누군가에 대해서도 그분을 경외하지 않고 가볍게 생각하고 뿐만 아니라 중요한 개념입니다.

주신 분의 꿈이 있습니다. 주신분의 꿈이 무엇입니까? 저쪽나라에서 행복공동체에서 사랑을 주고받고 하는 이 관계를 하려고하는 것이 삼위하나님의 꿈입니다. 이 꿈을 언제 만들어 놓았습니까? 창세전에 이걸 다 디자인해놓으신 겁니다. 그런데 창세전에 삼위하나님이 회의를 하셨습니다.

창세전이라는 것은 아담을 만들기 전입니다 삼위하나님이 회의를 하셔가지고 이분들이 장차우리가 창조할 인간피조물들이 분명히 우리를 경외하지 않을 것을 다 아시고는 우리가 이 인간들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우리가 인간들을 훈련시켜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준 모든 복들을 한번 다 빼앗아버리자 훈련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빼앗아 버리자 그래가지고 고생을 실컷 시키자 빼앗아 버리자하는 것이 저주인 겁니다. 빼앗아가지고 고생을 시킨 다음에 다시주자 이것이 창세전에 디자인 된 겁니다. 그러니까 창세전에 저세상 이 세상 저세상을 삼위하나님이 디자인 하신 겁니다. 디자인하셔가지고 이분들을 역기능적 교육프로그램을 디자인하셔가지고 훈련시키자 그러는 겁니다.

그기에 의해서 아담을 창조하신 겁니다. 이 디자인을 해놓고 아담을 창조하시고는 육혼영의 복을 준 겁니다. 우리가 지난시간 지 지난시간에 항상 이야기했습니다. 아담을 창조하시고는 제가 열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사탄을 당장 불 못에 던지지 않으셨나? 등 여러 가지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그 기초가 있어야지만 오늘 공부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제가 매주 마다 여러분들에게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순서적으로 가르쳐주는 겁니다.

그래서 영상으로 공부하는 분들 중에 그냥 들어와서 보면 어렵습니다.

예전 것을 공부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아담에게 복을 줘가지고 이 복을 빼앗아버리자 저주를 주자 그랬습니다. 그래서 시간 속으로 떨어진 겁니다.

시간 속으로 아담이 타락한 겁니다. 아담타락이라는 말은 다시 말하면 삼위하나님이 주신 육혼영의 복이 어떻게 됩니까? 저주받은 겁니다.

그러면 저주받았을 때 그다음에 중요한 개념이 창세전에 다 디자인 하신 겁니다. 저주받은 인간이 어떻게 이 복을 회복 받을까? 전지하신 하나님이 아셨습니다. 이 친구들이 스스로는 회복을 못 받는다. 그러니까 누가 도와주어야 된다는 겁니다. 스스로 회복 못 받는다는 것은 바울에게 나중에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3장20절입니다. 로마서3장20절은 뭐냐면 사람이 율법을 잘 지키면 다시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된다. 다시 말하면 복을 회복 받는다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랬습니다. 율법을 100%지키면 회복 받습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양심입니다 그런데 율법만100%지키면 OK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깨닫는 겁니다. 바울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바울아 사람이 저주에서 다시 복으로 회복받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도록 다시 시도해봐라 율법을 아무리 지키도록 구약의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연습 시켜봤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킬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율법을 열심히 지키려고 하면 아하! 내가 죄인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겁니다.

그게 기가 막힌 로마서13장20절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켜가지고 내가 이 저주를 회복 받고 복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이게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로마서3장20절에 그다음에 이사야에게도 말하는 겁니다. 사람이 아주 선행을 많이 합니다. 착하게 삽니다. 그런데 이사야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사야야! 인간들이 착하게 하는 행동은 내 눈에는 냄새나는 걸레조각 같다는 겁니다. 이사야서64장6절에 이 두 성경구절을 꼭 기억하세요.

로마서3장20절과 이사야서64장6절에 아무리 선한 행동을 해도 내가 잊어버린 복을 회복 받지를 못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자기 실력으로 이렇게 빼앗긴 복을 회복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것을 창세전에 이미 다 디자인하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위하나님이 회의를 하면서 뭐냐면 예수하나님이시여 당신이 인간세계로 내려가라 내려가서 십자가에서 저주를 말살하는 일을 해라는 겁니다. 그래서 성자예수님이 성육신하셔가지고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저주를 이분이 십자가에서 완전히 본인이 대신 받아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대속자라고 말하는 겁니다. 대속자라는 것은 대신해서 그 죄를 뒤집어 쓰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영어로 리딤머(Redeemer)라 그럽니다. 그래서 한국말로는 대속자라 그러는 겁니다.

이것을 언제 디자인 했습니까? 그래서 제가 지금 말하는 걸 창세전에 대속자를 디자인 하신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신비기 때문에 우리피조물들이 이것을 소화하기가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무슨 주의라고 보면 됩니까? 이게 칼빈주의입니다. 창세전 하나님의 신비는 칼빈주의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예정하신 겁니다. 그런데 이 예정에 의해서 루시퍼가 타락하고 루시퍼에게 이 세상 왕이라는 타이틀도 주고 이 세상 신이라는 타이틀도 주고 공중권세 잡은 자라는 타이틀도 주고 그러면서 사탄과 그 세력들을 당장 불 못에 던지지 않고 이 세상7천년이 다 끝난 후에 학교가 끝날 때 불 못에 던지는 디자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담을 창조하기 전에 이미 에덴동산에 사탄이 놀고 있었습니다.

아담을 창조하시고 아담을 이놈이 유혹을 할 때도 예수님이 성령님이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창세전에 예수님이 이 세상으로 내려와서 이 리딤머(Redeemer)대속 자가 되실 것을 미리 다 디자인하셨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이 말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7천년 창조목적학교가 디자인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을 전제로 깔아놓고 아담이 타락하자말자 예수님이 사탄에게 원시복음을 던져준 겁니다.

그러면서 십자가라는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구원의 스케줄을 우리가 많이 압니다. 가죽치마를 입고 나중에 가서는 아벨의 어린양 주욱 해서 나오잖아요. 모세 때 주전1500년입니다 모세 때 모세가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율례를 주시면서 아주 특별한 말씀을 모세에게 하셨습니다.

뭐라고 그랬냐면 모세도 그걸 받기만 했지 이것이 어떻게 이 모든 큰 그림은 내가 볼 때 이분은 이 그림을 보지를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냥 이것을 받은 겁니다. 뭐라고 하느냐면 그 유명한 신명기21장23절입니다.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우리가 다 공부했지만 항상 기억하세요.

신명기21장23절에 모세에게 여호와께서 예수님이 모세에게 말씀했습니다.

모세야 이제부터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이렇게 해라 살인자들 돌로 친 사란은 돌로 쳐 죽이고 목 벤 사람은 목을 베 버리고 이렇게 하는데 눈은 눈, 이는 이 우리가 알잖아요. 그런데 특별한 아주 못된 최악의 살인자가 있는데 그 살인자는 뭐냐면 십자가에 달려서 죽여라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살인자는 뭐냐면 저주를 받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다른 살인자들은 죽임을 당할 때 저주를 받는 분이 아닌데 십자가에서 죽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가 볼 때 저주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꼭 십자가에 매달려 죽여라는 겁니다. 이것은 누구를 보여주기 위해서 모세에게 보여주시는 겁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저주받으실 것을 대속 자가 되실 것을 미리 예표로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사람들이 저주의 대상되는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죽이는 겁니다. 그러다가 500년 후에 다윗시대가 온 겁니다. 다윗도 이 십자가에 대한 것을 자세히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다윗에게 환상을 보여 주신 겁니다. 다윗이 이 환상을 시편22편1절에다가 적은 겁니다. 시편22편은 메시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에 관한 이야기가 시편22편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환상을 봤는데 무슨 환상을 보느냐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서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 아버지, 아버지 왜 나를 버리십니까? 라는 것을 다윗이 직접 듣고 본 겁니다. 주전1000년에 시편22편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받은 이것이 500년 후에 현실화되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이 이것을 보면서 아하! 내가 그냥 봤구나. 해서 기록만 해놓았는데 천년 후에 예수님이 실제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겁니다. 주후30년에 이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마지막 순간에 다윗이 본 이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시는 겁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 아버지, 아버지 왜 나를 버리십니까? 그러는 겁니다. 마태복음27장46절에 그대로 하신 겁니다. 천 년 전에 다윗에게 보여주었던 것 그대로 예수님이 재현하시는 겁니다. 왜 이렇게 예수님이 울면서 소리 지렵니까? 이 순간에 과거에 있었던 하나님의 자녀들 현재하나님의 자녀들 미래 앞으로 태어날 하나님의 자녀들의 저주들을 이 순간에 뒤집어쓰시는 장면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과거입니다 아담타락부터시작해서 심판 때까지 앞으로 하나님의 예정된 자녀들의 저주를 뒤집어쓰시는 그 순간이 십자가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 하는 순간인 겁니다. 그렇게 하신 다음에 이분이 요한복음19장30절에 다 이루었다 그러고는 숨을 거두신 겁니다. 그러면 다 이루었다는 것은 언제 시작한 겁니다. 창세전에 디자인 하신 것을 이제 다 이루었다는 겁니다.

요한복음19장30절에 그러니까 더디어 대속 자가 되셨다 그 순간에 리딤머(Redeemer)가 되셨다 그리고는 이 사건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쓸 때 주후49년에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서 바울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기가 막힌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갈라디아서3장13절에 바울에게 확인시켜주는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셨다는 겁니다.

저주가 되셔서 율법의 저주에서 왜 율법의 저주라 합니까? 로마서3정20절에 율법을 100%지키면 저주가 말살된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 율법 가지고는 저주가 말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의 저주입니다

율법 가지고는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대속하였느니라. 다시 말하면 이 율법의 저주를 뒤집어 쓰셨느니라. 뒤집어 스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리딤머(Redeemer)라 그럽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는 겁니다. 기록되었으되 신명기21장23절에 나무에 달린 자는 누구나 저주받은 자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십자가에서 죽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바울이 깨달은 겁니다.

창세전저주이야기가 이것이 이것이구나. 그리고는 베드로도 깨달은 겁니다.

베드로전서2장24절에 베드로는 주후64년에 이분이 65년에 순교 당했거든요.

베드로전서2장24절에 우리가 다 들은 이야기지만 오늘 여러분들이 성경말씀을 보면서 이것을 깊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 저주 복사건을 깨달은 겁니다. 그가(예수님이)친히 나무에 달린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우리의 죄들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저주들입니다 우리의 죄들을 우리의 저주들을 담당하셨노라 뒤집어 쓰셨노니 이는 우리가 죄들(저주)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가 이렇게 깨달은 겁니다.

그래가지고 베드로가 계속 이야기하는 겁니다. 베드로전서3장18절에 그리스도께서 죄들을 저주로 인하여 한번 고난을 받으사 의인으로써 불의한 자들을(저주받은 자들)대신하여 그들을 살리셨느니라.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다는 겁니까? 우리의 저주를 뒤집어쓰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예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실현된 복과 지현된 복이라는 걸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사건 때문에 우리는 이미 저주받은 자들이 아닙니다. 그러면 복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저주를 다 뒤집어쓰셨기 때문에 우리는 복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복을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지현시키는 복이 있습니다. 이미 우리가 받아 놓았는데도 이게 뭐냐면 육의 저주는 그대로 있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육의 저주 속에 그대로 살고 있는 겁니다. 혼의 저주도 그대로 있는 겁니다.

사탄의 성품을 그대로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지연된 복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나중에 이 세상에서 우리가 졸업하면 이것을 회복 받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보증 받은 지연된 복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지연시켰나?

왜냐면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얼마만큼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지고 사느냐에 따라서 저쪽에 올라가면 내 계급이 설정이 됩니다.

얼마만큼 성화되었느냐 그런데 실현된 복음 무엇입니까?

이미 영의 저주가 영의 복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 살면서 천국시민권을 가진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로 이것은 실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저주의 흔적들이 그대로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저주받은 자들이 아닙니다.

육의 저주도 아직 지연되어서 있는 것뿐이지 혼의 저주도 지연 되어서 있는 것뿐이지 우리가 이 세상을 끝나면서 그대로 다 회복이 자동적으로 되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지연된 복이라고 그러고 실현된 복은 무슨 복입니까? 영의 복입니다 지금부터 중요한 개념이니까 지금 이 아이디어를 가지고서 그다음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에 요한복음8장32절에 진리를 알지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이 말씀의 뜻도 모르고 사람들이 할렐루야 아멘입니다 이 말씀이 미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미래형입니다 진리가 누굽니까? 예수님입니다

어떻게 압니까? 요한복음14장6절에 예수님이 내가 곧 진리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 진리는 예수님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알지니 나를 알지니 그래서 나를 알면 미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진리가 내가 너희를 자유케 되리라 그러니까 이 예수님을 알면 지금 예수님이 공생애 때입니다

아직까지 십자가사건이 안 일어났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십자가사건의 뜻을 너희들이 알게 되면 너희들은 이제 자유케 되겠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자유케 된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복을 회복 받게 되리라 그런 소리입니다 저주에서 벗어나서 복을 회복 받게 되리라 율법의 저주에서 복을 회복 받게 되리라 자유케 되리라 이런 말입니다 그러면 진리를 보는 두 시각이 있습니다. 진리라는 게 지금 무엇입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이 진리 속에 뭐가 들어있느냐면 예수님의 창세전십자가사건 또 이 세상7천년스토리 그다음에 다시 회복되는 스토리 저세상 이 세상 저세상 이 스토리의 주인이 누구고 이 스토리를 만드신 분이 누굽니까? 예수님입니다

진리입니다 너희들이 이 스토리를 완전히 알게 되면 너희들은 자유케 되리라 그러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너희들이 이 저주 속에 있는데 거기에서 자유케 되리라는 겁니다. 그러면 두 가지 시각이 있습니다. 진리를 보는 두 시각입니다 이게 뭐냐면 진리는 누구라고 그랬습니까? 예수님입니다

참새시각이 있습니다. 참새시각이라는 게 뭐냐면 근거리시각입니다

예수님의 복, 저주스토리를 어디서부터 보느냐면 원시복음부터 보는 사람들입니다 참새시각 자들은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와서 왜 죽으셨냐. 할 때 원시복음부터 이야기를 합니다. 아담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게 되어서 이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여기까지 보는 겁니다.

여기까지를 제가 참새시각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게 알미니안적인 시각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책임이 있다 사람이 잘못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이분이 저주를 떠맡았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진리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은 자들은 십자가사건의 진리를 깨달은 너희들은 자유케 되리라 다시 말하면 너희들은 이 복음 회복 받으리라 그런데 이 복음 무슨 복입니까? 육혼의 지연된 복이고 영은 실현된 복입니다 이것을 받으리라 그런 말입니다 그런데 독수리시각으로 보는 진리는 뭘까요 독수리시각으로 보는 진리는 제가 여러분들에게 독수리시각 자가 되라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독수리시각으로 보는 진리는 창세전에 이 진리가 십자가사건을 아버지와 성령님과 함께 디자인 하시고 창세전에 인간으로 내려올 것을 다 디자인 하시고 실제로 내려오셔서 이분이 아담타락 때 사탄에게 말씀하시고 원시복음을 주시고 그기에 의해서 4천년을 지나다가 이분이 실제로 저주를 떠 맞으시고 그뿐 아니라 교회시대가 시작이 되면서 이 진리를 너희들은 나가서 외쳐라 그것이 2천년인 겁니다. 교회시대입니다 그럴 때 이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내가 가짜 진리들을 적그리스도들을 많이 만들어낼 거다.

왜냐면 이것은 역기능적 교육방법입니다 가짜를 많이 만들어 낼 거고 내가 재림해올 때는 이 가짜들이 두 짐승이라는 이름으로 아주 활보를 칠거다

지금 우리가 이런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그리고는 내가 공중 재림했다가 7년 환란이 있다가 지상 재림 할 텐데 지상 재림 직전에 공중혼인잔치가 있을 거다 이 혼인잔치는 뭐냐면 진리를 제대로 따르고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제대로 나누는 특별한 신부들이 있단다. 그분들을 수고했다고 내가 이제 혼인잔치를 할 거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분들이 천년왕국 때 왕 노릇하고 또 저 세계에 가서도 왕 노릇할 거다. 그런데 혼인잔치에 관한 이 디자인은 이미 창세기1장 여섯째 날에 보아라! 아주 좋았더라. 면서 보여주지 않았느냐

이 디자인을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우리가 독수리시각으로 보는 사람은 창세전부터 시작을 해서 아담타락해서 이 세상7천년 그다음에 심판 후에 저 세상까지 이것을 다 보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디자인의 책임자가 누굽니까? 예수하나님이신 겁니다. 진리의 하나님이신 겁니다.

변하지 않는 그러니까 이 진리를 아는 사람은 자유를 얻으리라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은 자유 저주에서 해방된 것뿐 아니라 너희들은 행복을 느끼고 지금 두 짐승이 있어도 두 짐승이 있다고 해서 내가 거기에서 위축되어 있는 게 아니고 이 두 짐승은 언젠가는 불 못에 던져질 텐데 천년왕국을 지나서 사탄도 불 못에 던져진다. 사탄의 자녀들도 이것을 다 아는 사람이 진리를 아는 사람인 겁니다. 진리를 알지니 이 진리가 너희들을 자유케 하리라 이런 사람들은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분들입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진리를 깨달은 분은 독수리시각을 가진 사람은 자질구레한 집안의 문제들 건강문제들 자녀문제들 사업문제들 이런 것 때문에 나의 진리가 변질되지 않는 겁니다. 이런 것이 나에게 엄습해올 때마다 진리에 대해서 더 초점을 맞추게 되어 있는 겁니다. 역기능적 창조목적학교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역기능적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많이 일어나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초점을 진리에다가 맞추는 분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 중요한 질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십자가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하세요? 이게 굉장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가 자주 십자가를 보잖아요. 십자가를 달고 다니고 여기저기에 십자가가 있잖아요. 십자가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하세요? 두 가지 생각을 하는 겁니다.

두 가지 사람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참새시각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하! 아담이 죄를 지어서 나도 죄인이 되어가지고 나 때문에 예수님이 오셔서 고생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구나.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구나. 오! 십자가, 십자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정도까지 보는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봐야죠. 그런데 십자가를 볼 때 하나님의 독수리시각으로 십자가를 보는 사람은 아하! 저세상 이 세상 저세상을 딱 보고 이 세상은 창조목적학교구나 창조목적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우리인간들이 아담부터 시작해서 저주 속에 들어갔다가 그 저주를 예수님께서 대신 지셨구나. 그리고는 이 예수님이 저주를 대신 지신 예수님이 나에게 큰 그림을 보여주시는구나. 그리고는 아하! 내가 사는 이 세상은 잠깐 나그네로 와 있는 존재구나 훈련 받으러온 순례자구나 안개 같은 존재구나

내가 꽃같이 예쁘지만 언젠가는 시들어지는구나. 들의 풀이구나 이것을 항상 느끼며 경험하며 외치며 또 나누고 십자가를 보면 이런 것을 총체적으로 다 보는 사람입니다. 십자가가 그러니까 질문입니다 십자가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합니까? 그리고 십자가에 담겨진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입장에서 십자가를 보면 엄청나게 고생하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분이 창조주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창조목적을 훈련시켜주시기 위해서 이 복, 저주, 복 프로그램을 디자인하시고 본인이 직접 인간 역사 시간 속에 내려오셔서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기가 막히게 고마운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저 나라에 올라가면 아버지에게

감사하지만 성령님에게도 감사하고 예수하나님께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랬습니다. 빌립보서2장5절에서부터11절에 뭐라고 그랬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참으신 것이 왜 참으셨습니까? 모든 피조물들이 예수님 앞에 찬양을 드리고 감사를 드리는 그때를 이분이 상상 하시면서 그때가 올 터인데 그것 때문에 참으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섬기는 우리는 십자가를 보면서 오늘 제목이 십자가에 담겨진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가? 조금 어렵지만 이 설교는 한번 들어서는 안 됩니다 또 듣고 또 듣고 그래가지고 십자가에 의미가 이렇게 큰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우리가 명심하기를 바랍니다.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우리피조물들이 이 조그만 머리로 이성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적능력으로 이 엄청난 예수님의 디자인을 소화한다는 것은 그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우리에게 세미한 음성으로 가르쳐주시고 말씀해주시고 성령님의 감화 감동으로 우리마음을 건들려 주셔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지금 여러 가지 산고들이 일어나는 이것을 보면서 이 산고를 내가 누누이 소화하면서 이 세상을 승리하는 자들로 만드는 그 일에 주변에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십자가사건을 잘 나누는 지혜 자들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가 십자가를 생각하며 지금 찬송을 계속 하겠습니다.

성령님, 성령님 우리에게 더욱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고 역사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끊임없이 가르쳐주심과 깨달게 하심과 순종케 하심이 우리를 항상 지켜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십자가에 담겨진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가?(신21:23; 요8:32)

1. 기독교하나님은 누구십니까? 이분들의 창조목적은 무엇입니까?

이분들의 꿈은 무엇입니까?

2. 전지하신 하나님이 장차 창조될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창조목적대로 살지 못할 것을 창세전에 미리 아셨습니다. 무슨 이유로 인간들이 이런 행위를 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까?

3. 인간이 창조시 받았던 “영혼영의 복”은 무엇이었습니까?

4. 타락으로 받은 “영혼영의 저주” 8가지는 무엇이었습니까?

5. 이 저주의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인간이 스스로 이 저주를 말살 시킬 수 있습니까?

6. 왜 그리고 어떻게 창세전에 삼위하나님이 이 저주말살계획을 디자인 하셨습니까?

7. 이 “저주말살계획”에 관한 성구들을 리뷰해 봅시다. (신21:23; 갈3:13; 시22:1; 벧전2:24, 3:18; 마27:46; 요19:30)

8. 요8장32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리란” 무엇인가요? “참새시각”으로 이 “진리”를 해석하기와 “독수리시각”으로 해석하기로 구분해 봅시다.

9. “지연된 복”과 “실현된 복”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10. 우리가 십자가를 볼 때 무엇을 생각해야 합니까? 그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