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현목사 강해설교 녹취록/창조론

24강, 사도행전15장, 예루살렘 총회

변명섭 2019. 10. 3. 08:41

창조론 24강, 예루살렘 총회(행15장)

지난시간에서 1차 선교여행이 주후46년에서48년입니다,

49년에 일어나는 이야기가 예루살렘총회입니다,

예루살렘총회가 끝난 다음에 주후50년에서52년에 또 2차 선교여행을 갑니다,

이 부분은 제가 다음시간에 할 것입니다,

2차와3차 그다음에 4차까지 가는데 2차.3차.4차 이 부분을 정확하게 아셔야 됩니다, 이 부분을 아시면 사도바울의 편지를 아는데 엄청난 도움을 받습니다, 예루살렘총회는 이게 전 세계기독교계의 어떤 교단이든지 그 교단의 1차 교단총회가 예루살렘총회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기독교인들이 모여가지고 총회한다고 그러면 꼭 거기에 보면 다툼이 있습니다,

여기도보면 다툼이 있습니다, 모이면 다툼이 있습니다,

교리적인 다툼입니다, 어떤 문제로 다툼이 일어났느냐를 보겠습니다,

15장전체가 예루살렘총회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15장하면 예루살렘총회라고 머릿속에다가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이제 성경을 보겠습니다, 지금1차 여행 끝나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지금 어디를 이야기하느냐면 이분들이 안디옥으로 내려와 있는데 안디옥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하는 것은 실은 지도를 보면 안디옥은 유대예루살렘보다 북쪽이니까 예루살렘에 갈 때는 올라간다,

그러고 거꾸로 다른 곳으로 갈 때는 내려간다, 그럽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는데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이분들이 예루살렘에서12제자들 밑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분들이 안디옥교회를 개척자여 성경공부를 하는데 너 네들 구원받으려면 구약의 모세율법을 철저하게 잘 지켜야 되고 특히 할례를 받아야 된다,

특히 디아스포라 너희들 할례 받으라,

그리고 개종자들도 할례를 받았잖아요,

그런데 어떤 분들이 할례를 받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1차 여행을 다니면서 성경을 가르칠 때 할례무용론을 가르쳤습니다, 구약의 할례는 다 필요 없다,

라고 말한 이것 때문에 바울을 공격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2절에서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했다는 겁니다,

이게 자기네 문제로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에 있는 지도자들에게 가서 이 문제를 해결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나바와 바울에게 목사님들 이 문제 여기서 해결이 안 됩니다, 이 문제 안에 정치적인 문제가 들어있으니까 예루살렘에 내려가서 정치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과 바나바가 그 말을 수용하였습니다,

3절에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과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겁니다,

4절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그럴 때 교회 하면 에클레시아라 그래가지고 교인들의 무리를 교회라 그럽니다,

교인들과 그런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1차 여행 때의 모든 스토리들과 이분들에게 선교보고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의 보고를 통해서 거기에서 열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항상 있습니다, 열 받은 사람이 5절에 나옵니다,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다시 말하면 당신들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기독교공동체에 들어오게 했는데 왜 할례를 안 주느냐 그러니까 모세율법을 왜 정확하게 지키지 않느냐 은혜만 이야기하고 왜 그러느냐 하면서 열 내는 그룹들이 있는 겁니다,

그 그룹들이 소위 바리새파들인 겁니다,

우리 같으면 소위 보수파들로 왜 우리교단에서 가르친 것을 제대로 안 가르치고 하면서 자기네교리와 맞지 않는다,

라고 그래가지고 문제를 야기 시키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지도자들에게 지혜를 주는 겁니다,

첫째 베드로에게 지혜를 주는 겁니다,

6절에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이게 무슨 말입니까,

지난시간에 우리가 봤습니다, 베드로도 본의 아니게 이방인들을 복음화 시키는 일에 참여를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나도 하나님이 외모로 취하지 않으신 것을 깨달았다는 것을 베드로가 경험하셨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바리새인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까 아니거든요 나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분들에게 할례를 꼭 받으라는 말을 자기도 안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 입장도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을 달래는 겁니다,

보세요,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복음 안에서 같다는 겁니다,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이분의 생각이 많이 변하였습니다,

이제는 이방인들도 우리와 똑같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래서 이분이

나와서 바리새인출신들 너희들 생각이 틀렸다 그러면서 한마디 하는 겁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하셨지만 나중에 베드로도100%이런 마음을 가지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 나중에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12절에 반응을 보면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베드로가 그런 식으로 말하니까 지금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겁니다, 지금 거기에 누가 있습니까, 바나바와 바울이 앉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분들을 지금 시작하는 겁니다,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지금 이분들이 선교보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분이 별로 안 좋은 겁니다,

어떻게 이 사람들이 우리 유대전통을 무시하고 이렇게 이방인편에 들어가서 복음의 색깔을 변하게 하면서 복음을 전할까 이러면서 기분이 언잖아 하시는 겁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어느 민족이나 다 있습니다,

어느 교단이나 그게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화의 한계점이라고 지난 시간에 제가 말씀드렸듯이 그러니까 야고보가 나와서 한마디 하는 겁니다,

왜냐면 예루살렘총회 총회장이 야고보라고 일반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이 야고보가 누구냐면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를 쓰신 분이십니다 항상12제자들 중에서 베드로보다는 더 파워를 가지고 영향력을 가지신 분이 야고보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중요한 결정을 해야 되는 입장에 있을 때 베드로가 나와서 한마디 했지만 결론과 절충안은 야고보가 내고 야고보가 결론을 내려 줍니다,

여기서 보면 그래서 야고보가 이런 상황을 보면서 우리가 야고보가 베드로가 베드로보다 더 높은 분이구나 이렇게 우리가 짐작을 합니다,

그러면서 13절에 이분을 바나바와 바울이 이렇게 선교보고의

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이때 이분이 지금 말씀하시는 것이 이방인을 주님께 이끌러 오기 위해서 바나바와 바울을 하나님이 택하여서 지금 이 일을 하고 있지 않느냐 이 사건을 시므온이 여러분들에게 고했지 않느냐 시므온이 누굽니까, 시므온이 베드로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베드로가 여러분들에게 고했지 않느냐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야고보가 더 어른입니다 그러면서 구약 아모스를 인용하는 겁니다, 아모스는 주전700년 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 하도다 기록 된 바 야고보가 아모스9장11절과12절을 인용하는 겁니다, 16 이 후에 내가(예수님)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는 겁니다,

구약에 보면 유대인들을 통해서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을 것을 항상 예언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는데 그 중에 하신 말씀을 이렇게 아모스에게 주신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이분들에게 이방인들도 복음을 받아야 된다는 것을 이야기해주는 겁니다, 그러면서 절충안을 냅니다,

야고보가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이게 절충안의 결론입니다,

지금 이런 말들을 하는 것을 우리 주님이 보고 계시는 겁니다,

내가2000년 전에 아브라함과의 계약 속에서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야 되고 이방인들의 숫자가 차야지만 내가 온다는 것을 그렇게. 그렇게 말하고 구약에 그렇게 말을 많이 하였는데 아직도 모르고 있는 소위 민족주의자들 유대인들의 좁은 마음 이 사람들을 변화시키기가 쉽지가 않는 겁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지금 하고 계시는 겁니다,

아브라함과의 계약을 이루기 위한 사람은 디아스포라나 이방사람들과의 타 문화권에서 생활했던 사람들이 이것이 이해가 되지 자 문화중심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보면 절충안을 내는데 어떻게 내느냐면 20절에 이방인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단 예외조항이 있다는 겁니다,

뭐냐면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다시 말하면 구약에 나오는 구약의 요구사항 이 부분만을 고려해서 당신들이 할례를 받지 않더라도 이런 부분은 조심해라 하고 절충안을 내는 겁니다,

이것만은 고려해라 이렇게 해서 편지로 사도바울이 1차 때 전한 지역에 편지를 보내고 안디옥교회에도 그런 편지를 쓰서 보내라는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결정했다는 절충안을 그러니까 바리새파도 자기네 의견을 어느 정도 들어갔으니까 절대로 무시하지 않고 그래서 이러게 절충안을 내어가지고 문제가 해결이 되었습니다, 사도바울도 이제 한숨을 돌리는 겁니다,

바울에 대한 공격이 많아서 골치가 아팠거든요

그래서 22절에 보면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니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교회에서 안디옥교회에 바나바와 바울을 돕는 자들 그러니까 이분들이 가서 이것을 설명해주어야 되니까 자기네 예루살렘교회교인들을 보내서 그분들을 조금 달래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을 붙여 줍니다,

누구를 붙여주느냐면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라는 사람을 붙여줍니다, 나중에 실라라는 사람이 사도바울의 오른팔역할을 하는 사람이 됩니다, 바나바가 떠나면서 바나바 대신 바나바역할을 해주는 분이 실라라는 분입니다 그래서23절에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면서 이 문제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렇게 해가지고 30절에 보면 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31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32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이분들이 가서 계속해서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일을 그분들에게 계속 이야기하여 마음을 돌려놓는 겁니다, 33절에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

35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이것이 예루살렘총회의 내용입니다

여기에 이어가지고 제가 관심 있는 한 부분을 다루려고 그럽니다,

그게 갈라디아서입니다 갈라디아서에 대해서 제가 말씀을 간단하게 드리겠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사도바울이 쓴 편지 중에서 학설이 두 가지 학설이 있는데 제가 볼 때는 제일먼저 쓴 편지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말이 뭐냐면 갈라디아지역이 북쪽에도 있고 남쪽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 학설이 뭐냐면 북쪽에 있는 갈라디아사람들을 위해서 편지를 쓴 것이라는 겁니다, 이게 3차 여행 때 쓴 편지라는 겁니다,

북쪽 사람들을 위해서 편지를 썼다 그런데 또 다른 학설은 남쪽지역사람들을 상대로 해서 글을 썼다는 학설입니다 남쪽 갈라디아지방은 알고 보면 바울이 1차 여행 때 전도를 했던 그 지역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남쪽 갈라디아지방에 편지를 쓴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쪽 갈라디아지방에 쓴 편지라고 믿는 학자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갈라디아서를 언제 썼느냐면 바울이 예루살렘총회 다녀와서 2차 선교여행 가기 전에 주후49년에 썼다, 라고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49년에 예루살렘총회를 갔다 오자마자 그다음에 갈라디아서를 집필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를 보면 갈라디아서는 로마서와 비슷합니다, 율법과 은혜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쓰신 건데 왜냐면 아까 봤지만 예루살렘총회에서 율법과 은혜에 관한 여러 가지 의견들 이걸 가지고 서로가 논쟁하였잖아요, 그와 같이 우리 지난시간에 갈라디아서에서 자기가 어머니 태로부터 택정 받고 아라비아에 가서3년 있었고 이런 이야기는 지난시간에 조금 했습니다, 갈라디아서2장에 들어와 가지고 갈라디아사람들에게 바울이 자기 자신과 예루살렘에 있는 지도자들과의 관계성이 그렇게 시원찮다, 라는 것을 총회를 갖다 와서 신학적인 차원에서 율법과 은혜적인 차원에서 또 아브라함과의 계약에 이방인중심으로 선교를 해야 되는데 예루살렘에는 아직도 그런 생각이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에 대해서 답답함을 이야기할 것이 갈라디아서2장3장입니다 그래서2장과3장을 같이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 눈으로 직접 보면 느끼실 겁니다,

1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십사 년 후면 지금 몇 년에 갈라디아서를 쓴 겁니까,

49년에 썼습니다, 35년에 다시 예루살렘에 갔다 그랬으니까 처음 예루살렘 갈 때가 언제였습니까, 다시 말하면 14년 후에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그런 소리입니다 다메섹에서 주후35년에 예수님을 만나고 아라비아에 왔다가 3년 후에 예루살렘에 갔다는 소리입니다,

내가 14년 후인 49년에 또 예루살렘에 갔다 왔다는 소리입니다

예루살렘총회를 위해서 갔다 왔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로 보세요,

예루살렘에 올라갔더니 그때 누굴 데리고 갔느냐면 디도를 데리고 갔습니다, 디도는 헬라 계 사람입니다, 디도서1장4절에 보면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디도는 괜찮은 사람으로 나중에 목회자가 된 분입니다, 이 디도를 데리고 가는데 2절에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개인적으로 저 사람들에게 가서 보고를 드린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내가 예루살렘에 가서 유명하다는 사람에게 가서 보고를 드리는 이유가 내가 전하는 복음이 계속해서 방해를 받고 있다는 겁니다,

그 사람들에게서 그렇기 때문에 할 수없이 내가 가서 말씀드리고 이해를 시키고 제발 내가 전하는 복음 방해하지 마십시오,

라고 부탁을 하러 갔다는 겁니다, 3절에 보면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예루살렘출신들은 뭐라고 그랬습니까, 할례를 받으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못 받는다,

실은 구원이 없다 그래서 우리가 받으라면 받지 왜 말이 많으나,

이런 식으로까지 갈 수 있잖아요, 그런데 바울은 고집을 부리는 겁니다,

난 못한다는 겁니다, 다시3절을 보면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러는 겁니다, 소위 말하면 스파이들이 있는 겁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스파이들이 있어가지고 혹시 바울이 뭘 잘못 전할까봐 뭔가 꼬투리 있으면 잡아가지고 못하게 하려고 이런 게 있었다는 겁니다,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디도가 할례 안 받는 것이 진짜 복음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복음 안에 있으려고 자기는 최선을 다했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복음 안에서 자유를 가지고 있는 율법에서 자유를 받은 이것을 자꾸 제치려고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겁니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6절을 보면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이게 이분의 감정입니다,

뭐냐면 유명하긴 뭐가 유명해 속으로 그러는 겁니다,

나보다 조금 일찍 예수님의 제자로써 불리 움을 받고 그랬지만 내가 볼 때 별거 아니야 내가 조금 늦게 주님을 만났지만 자기가 볼 때는 별것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다는 겁니다, 헌금 보내 준 것도 없고 실은 거꾸로 안디옥교회에서 예루살렘교회가 기근이 오니까 그분들에게 헌금을 거두어서 갖다 주었습니다,

이분들이 실은 사도바울에게 신세 진 분들입니다,

이분들이 바울이 그렇게 나가서 선교하면서 욕먹고 해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교회출신들 중에서 바리새파 이런 사람을 일부로 풀어놓고 가서 계속트집을 잡는 겁니다, 그리고는 안디옥교회까지 와 가지고는 트집을 잡고 그러니까 성질 급한 사도바울이 사역하기가 힘들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걸 또 선하게 보면 바울선생님을 사람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 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더 큰 종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런 구조가 과거2000년 동안 어느 조직이나 다 있었습니다,

다시 보면 내게 더하여준 것이 없고 7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그러니까 자기는 이방인선교사고 베드로는 유대인목사님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8절에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이 말은 바울이 속으로 어떤 의미로 갈라디아사람들에게 이야기합니까,

베드로는 유대인(유대지방)사도고 바울은 국제사도다 라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9절에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그러니까 바울이35년에 개종하여가지고 38년에 예루살렘에 갔을 때는 갈라디아서1장18절19절에 보면 예루살렘에 올라가 저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베드로와 야고보외 다른 사도를 보지 못하였다는 겁니다,

이분들이 그 당시에 바울을 도와주었습니까,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도와준 사람이 바나바였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이 두 번째 49년에 예루살렘총회 하러 갔을 때도 거기에 기둥같이 여기는 지도자들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을 만났다는 겁니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는데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 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누가 더 인구가 많습니까, 이방인숫자가 전세계인구의99.9%아닙니까,

유대인은 고작해야0.1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할 때 저희가 누굽니까,

저희는12제자들 대부분을 다 이야기합니다,

사도바울이 지금 생각하는 것은 그분들은 소위 이방인들을 위해서 불리움을 받은 분들이 아니라고 사도바울이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10절에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다시 말하면 그래도 너희들이 가난한자들에게 헌금 좀 보내달라는 겁니다,

그 당시에 예루살렘교회가 가난했던 모양입니다 지난번에도 그랬고 주님께서 예루살렘지역에 가뭄을 자꾸 주어가지고 농사가 잘 안됐던 모양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계속해서 11절을 보면 게바(베드로)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갈라디아사람들에게 또 이야기하는 겁니다,

왜냐면 게바를 봐라 안디옥에 한번 오셨다는 겁니다,

안디옥에 왔을 때 자기가 책망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 이분이 베드로보다 높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바울을 좋아했겠습니까,

베드로가 봤을 때 건방진 겁니다, 베드로생각에는 내가 예수님제자로 선배인데 보니까 베드로의 제자들을 자기 제자들로 만들고 국내도 아니고 해외에서 이러니까 기분이 나쁜 겁니다, 그러니까 서로가 껄끄러운 사이인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베드로를 한번 혼내주었다는 겁니다,

왜 혼내 주었는지 아느냐 하면서 말씀하시는 것이 12절입니다,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다시 말해 베드로와 야고보도 오고 주변사람들이 오고 그러는데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면 되는데 베드로마음에는 율법적인 개념이 그대로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고 있는데 다른 분들이 오니까 슬쩍 피하는 겁니다, 나는 이방인과 밥 먹지 않는 사람이다 하면서 그때 바울이 당신 말이야 치사하다는 겁니다, 지도자가 왜 이렇게 이중성이 있느냐면서 한마디 해주었다는 겁니다, 여기서 바울과 베드로의 차이점입니다

그뿐 아니라 나를 많이 도와주었던 바나바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성품이 상황에 따라서 좋은 게 좋고 이런 스타일인데 이분도 똑같이 오리발을 내밀었다는 겁니다,

13절에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느냐 하고 이렇게 훈계를 하시는 겁니다,

이것을 예루살렘총회가 끝난 이후에 갈라디아교회 사람에게 자기가 전한 복음에 대하여 이런 말 저런 말이 있으니까 이분이 갈라디아교회에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겁니다,

그래서 율법이 중요하지만 은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갈라디아서에서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3장으로 넘어가서 중요한 절 몇 절을 보겠습니다, 결론이 뭐냐면 3장7절부터 보면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에 의해서는 아브라함의 아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유대인들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제는 이방인들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8절에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이게 무엇입니까

지금 이 말씀이 아브라함과의 계약입니다 성경은 아브라함과의 계약을 이루기 위해서 끊임없이. 끊임없이 성경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나 예루살렘에 있는 지도자들은 아브라함과의 계약에서 상단 복만 가지고서 자꾸하는 겁니다,

하단으로 내려가지를 못하는 겁니다, 하단으로 내려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자기민족에서 타민족으로 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것 때문에 바울은 끊임없이 성서를 쓰고 이분의 편지를 보면 모든 편지가 그 소리들입니다 9절부터 읽어보면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항상 사도바울은 아브라함의 복이 유대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하단 복입니다,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15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계약입니다, 그러니까 상단과 하단과의 계약입니다 그래서 약속들은 이라고 복수로 써놓았습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이게 무슨 말이냐면 상단 복은 그렇고 하단 복은 어떻게 말했냐면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할 때 네 자손들이 아닙니다, 하나로 말했습니다, 그 하나가 누구냐면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만민이 복을 받겠다는 말씀입니다,

23절에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초등교사는 가정교사라는 소리입니다 어떤 가정교사냐면 예수님께로 이끌어가는 가정교사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율법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만 율법의 주체가 아닙니다,

예수가 누구라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보여주는 가정교사라는 겁니다,

그것을 초등교사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 보고 율법아래 있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마지막28절29절을 보면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라디아서는 이 정도로 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12제자들이 선교 일을 했는가,

이분들이 예루살렘근방에서만 살다가 하늘나라에 가신 분들인가 안 그러면 이분들이 도대체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가, 입니다,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사도행전에는 베드로이야기가11장18까지나오고

11장19절부터 마지막28장까지는 바울의 이야기입니다

나머지 12제자들이 어떻게 어디 가서 뭘 했다는 것이 자세하게 기록된 게 없습니다, 그래서 이 12제자들은 선교를 안 했느냐 제가 여러 문사들을 보면 이분들 그의 다 제3세계에 나가서 선교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어디 어디로 갔느냐면 안드레는 전통에 의하면 스키티아 쪽으로 갔다는 겁니다, 이게 오늘날 러시아 쪽으로 갔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도마는 우리가 알다시피 인도로 갔습니다,

인도 고아지방 쪽으로 갔다는 학설이 있고 그다음에 마드라스지방으로 갔다는 학설이 있습니다, 어쨌든 인도 기독교인들은 도마가 자기네 영적인 선배라고 보고 있습니다, 마태는 에티오피아로 갔다는 학설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5장12장13절을 보면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실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13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그러면 이분이 지금 바벨론에 있습니다,

베드로 전 후서를 언제 썼느냐면 주후64년입니다,

이때 이분이 바벨론에서 쓴 겁니다, 그러면 바벨론에서 썼는데 도대체 바벨론이 어디냐는 겁니다,

바벨론에 대한 학설이 신학자들이 억지로 만들어 낸 것이 4개가 있습니다,

신학자들이 상상해서 억지로 만들어 낸 것이 첫째가 이라크에 있는 바벨론입니다 지금 문자적으로 그대로 보면 여기입니다

그런데 어떤 신학자들이 이분이 로마로 갔다고 가톨릭에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이 바벨론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면 로마다,

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분이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한다, 이 말은 로마에 있는 교회가 문안한다고 이렇게 억측주장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로마에 있다고 보는 겁니다,

또 뭐냐면 알렉산드리아라고 보는 겁니다,

애굽에 있는 항구도시입니다 알렉산드리아도시를 바벨론이라고 주장하는 학설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바벨론을 상징적으로 예루살렘을 바벨론으로 보는 학설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베드로를 가톨릭사람들이 볼 때는 로마에 계셨다고 하지만 실제로 이분이 로마에 계신 게 아니고 예루살렘 아니면 문자적으로 본다면 이라크에 있는 바벨론에 계시지 않았나,

이렇게 보는데 그 당시에 이라크에 바벨론도시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학설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전통적으로 본다면 이분이 예루살렘에서 쓰신 게 아닌가, 라고 보는 겁니다, 이 바벨론은 예루살렘이다,

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가톨릭에서 보는 베드로는 로마에 가서 선교사로 계셨다고 보지만 그렇지 않는 우리가 볼 때 이분은 해외 선교를 전문적으로 하셨던 분이 아니었다, 라고 보는 겁니다,

그러나 여기저기에 영향을 많이 주었지만 해외에 나가는 선교사가 아니었다, 라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분명히 갈라디아서에서도 그랬지 않습니까,

이방사도가 아니고 할례자의 사도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고 이렇게 정치적인 영향들 때문에 해석들이 달라지고 그럽니다,

요한을 보면 요한은 주후95년에 밧모 섬에 귀향 갔다가 거기에서 순교당하지 않았나, 이렇게 봅니다, 밧모 섬이 어디에 있냐면 에베소에서 약100km남쪽으로 내려오면 조그만 섬이 하나 있습니다, 여기가 밧모 섬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밧모 섬에 가기 전에 에베소에 계시지 않았을까 이렇게도 보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은 그래도 해외에 나가서 선교하다가 주님 앞에 가셨다, 라고 보는 겁니다, 그리고 마가는 애굽 기독교교단의 본산인 애굽 곱틱 교회 처어치 라고 그럽니다, 곱틱 교회의 교주입니다

지금도 곱틱교회가 있습니다, 그래서 애굽 정교회라 그럽니다,

마가는 분명히 애굽에 가서 복음을 전한 선교사였습니다,

이분들을 보면 마가니. 요한이니. 도마니. 안드레 이분들을 보면 한 지역에 가서 지역선교사로써 이렇게 봉사하다가 주님께로 간 분들로 바울하고 조금 다릅니다, 바울은 남유럽과 터키지방을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한 분이었습니다, 바돌로메 이분은 아르메니아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분으로써 지금도 아르메니아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세계최초의 기독교족속이라고 그럽니다,

이 사람들은 지금도 자기나라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터키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아가면서 지금도 아르메니아인들은 서구나라에 많이 와서 사는데 이 사람들의 패밀리 네임이 항상 이안으로 끝납니다,

이안이 아르메니안 인들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유대인지역이 있고 아랍사람들 지역이 있고 그다음에 가톨릭지역이 있고 그다음에 아르메니안 지역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르메니아인이 기독교 역사 속에서 큰 흔적을 남긴 민족입니다, 그런데 바돌로메 그분이 이 민족에게 복음을 전했다,

라고 전통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결론적으로는 사도바울은 이방을 향해서 복음을 전한 전문이방사역자고 나머지 제자들도 궁극적으로 나중에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예루살렘총회와 갈라디아서와 바울과 12제자들과의 관계성을 우리가 섭력을 했습니다, 다음시간에는 2차3차 이야기하고 그다음시간에 마지막 결론적인 이야기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주신 말씀 하나하나가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상고하고 이해하고 실천하고 순종하는데 도움이 되는 말씀이 되게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렇게 되기를 간구하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