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 6강. 말씀이 되신 예수님(요1:1-18) 2010년3월28일 말씀
오늘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강해인데 요한복음1장1절부터18절까지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도 유명한 말씀이고 또 신학자들도 이 말씀이 유명하지만 이 말씀을 해석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주 특별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이 잘 소화될 수 있도록 설명을 해드리고 그럽니다. 같이 말씀을 읽겠습니다.
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6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아멘.
처음 18절은 요한복음의 서론이 되기도 하고 본론 또는 결론까지 되는 말씀입니다 다시 제가 말씀드립니다. 지금 18절은 서론의 말씀이고 또 본론과 결론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18절이 요한복음21장 전체를 액기스로 묶으신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자들도 이 부분을 해석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공관복음을 우리가 공부했잖아요.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차이점이 있다면 우선 첫 서론에서 차이점이 있습니다. 공관복음은 서론에서 예수님의 족보 탄생 유아시절 이런 부분을 먼저 서론에 쓰셨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이런 부분을 거두절미해버리고 아예 본론부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요한복음의 서론이 본론입니다 시작하는 본론의 내용이 뭐냐면 예수님은 신적존재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예수님은 이 세상분이 아니시고 저세상분이시다 이런 내용입니다 그런데 저세상에 계셨던 분이 이 세상으로 육신을 타고 내려오셨다 이런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분이 내려오셨는데 아주 신기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분이 말씀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우리말로는 말씀이라고 되어 있는데 영어성경에는 The가 붙어 있습니다. Word W가 대문자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로고스(Logos)라고 헬라어인데 로고스의 L이 대문자로 되어 있습니다. 원어성경에 대문자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에서 이 부분을 소문자화 시켜버렸습니다 여호와증인에서 자기네 성경에서 거기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겁니다. 이게 대문자나 소문자나 여기에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여호와증인이 그렇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우선 제가 1절부터18절에 나오는 본문의 말씀을 주제로 따져 보면 이 안에 열 가지의 주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뭐냐면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라는 엘로힘(Elohim)은 갓 (GOD)창조주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창조주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신적존재라는 겁니다.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이 신적존재라는 겁니다. 이런 부분을 1절에서3절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14절에 가서 또는 18절에 가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겁니다.
삼위하나님 중에 제2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겁니다. 성자라는 겁니다.
세 번째는 그런데 이분이 말씀이라는 겁니다. the Logos 말씀이라는 겁니다.
일반말씀하고 다른 말씀입니다 특수한 말씀입니다 나중에 제가 설명해드릴 겁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는 이 말씀이 곧 생명이라는 겁니다.
이것도 the Life 생명을 헬라어로지난시간에 조에(Zoe) 이생명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생명의 원천되시는 분이 이분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분에게 붙어있어야지만 그 생명을 가질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도 더 라이프(Life) 유일한 정관사가 붙은 the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말에는 분명치가 않습니다. 라이프(Life) L도 대문자입니다 그리고 4절과5절에 이 말씀이 곧 빛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더 라이트(the Light)이것도 대문자 라이트(Light)입니다 유일한 빛이라는 겁니다.
해 빛과 관계없는 차원이 다른 빛이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여섯 번째로 이 빛이 곧 참 빛(true light)이라는 겁니다. 왜냐면 주변에 내가 빛이다 내가 빛이다 하는 그런 빛들이 많은데 어떤 분들은 세례요한이 빛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이 글을 쓰는 당시에 많았는데 예수님은 참 빛(true light)이라는 겁니다. 일곱 번째로 이 말씀이 지금은 이 세상에 와계시지만 본래 저 세상에 계셨다는 겁니다. 여덟 번째로 이 말씀이 이 세상으로 내려오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되었다는 소리입니다 14절에 그랬습니다. 그다음에 이 말씀이 아버지 품에 있는 독생자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이게 상당히 어려운 개념입니다 독생자라는 의미가 영어로 only-begotten son 이걸 원어로 보면 모노게네스(monogenes)라는 뜻입니다 모노(mono)는 하나라는 뜻입니다 기차도 모노레일 그러면 기차레일이 하나라는 겁니다. 게네스(genes)라는 뜻이 뭐냐면 종자라는 뜻입니다.
저 위에 계신 분이 이 세상에 내려오신 분이 한분밖에 없다는 겁니다.
모노게네스(monogenes) 한 종자 밖에 이분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나는 아버지와 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하나다는 개념은 이때 요한복음10장30절에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그럴 때 헬라어로 단어를 썼다고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헨(Hen)이라는 헬라어는 무슨 뜻이냐면 본질이 하나라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헬라단어에서 하나라는 단어가 본질이 하나가 아닌데 비 본질이 하나인 부분을 말할 때 쓰는 하나는 헤이스(Heis)라는 단어를 씁니다.
예를 들면 갈라디아서3장28절에 유대인과 헬라인 종과 자유인 여자와 남자는 다 본질은 다른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럴 때 쓰는 하나가 헤이스(Heis)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입니다 서로가 개체가 다르고 성품이 다르고 모양이 다르고 다 다릅니다 그런데 예수 안에서 한 공동체가 되었다 할 때는 헤이스(Heis)를 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아버지와 나와 하나다할 때는 헤이스(Heis)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헨(Hen)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그 말은 뭐냐면 본질이 똑같다는 겁니다. 양도 같고 질도 같고 성품도 같고 다 같다는 겁니다.
그럴 때 쓰는 단어입니다 거기다가 이분이 그러는 겁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할 때 휴이오스(HUIOS)라는 H가 원어에 대문자로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이게 특수한 의미가 있는 겁니다. 대문자 H로 아버지의 아들(HUIOS)이다 그럴 때는 무슨 뜻이냐면 그 대문자 H가 영어로 같다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와 아들이 같다. 라고 쓸 때 대문자H를 씁니다.
그러니까 아들이라는 개념이 100%같다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한 계급이 낮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런 의미로 쓸 때는 대문자로 안 쓰고 소문자로 씁니다. 그러니까 내 아들 하면 한 단계 낮은 분입니다 그럴 때 소문자로 씁니다. 그런데 대문자 H는 같다는 소리입니다. 아버지와 같다는 소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이 아버지와 본질이 같고 그다음에 아버지와 계급이 같습니다. 이런 분이 한분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독생자라고 쓴 겁니다.
모노게네스(monogenes) 이 개념을 우리가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이렇게 이해하세요. 그러니까 이런 분은 피조물 속에 없다는 겁니다.
창조주세계에 한 분밖에 없는 관계성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피조물 쪽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걸 우리피조물들이 이성으로 이해하려니까 상당히 힘든 개념입니다 이 부분이 그래서 특히 요한복음은 누구를 상대로 썼습니까? 마태복음은 누구를 상대로 해서 언제 섰습니까?
유대인을 상대로 해서 주후50년에서52년에 그다음에 누가복음은 이방인을 상대로 해서 주후60년에서62년에 그다음에 마가복음은 핍박받는 그들을 위해서 주후65년에서67년에 쓰신 겁니다. 그러면서 68년에 바울이 순교당하고 주후70년사건 중간사이에 마태, 누가, 마가복음의 수신자들이 신성부분이 약했던 분들에게 유대인들과 이방인크리스천들에게 예수님의 신성을 이야기해주는 책이 요한복음입니다 그러니까 이방인들은 어떤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냐면 헬라문화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헬라문화는 이성주의가 강한 사람들입니다 그다음에 유대인들도 디아스포라유대인들이 어디에 나가있느냐면 헬라문화권 속에 나가있는 사람들이 500년600년을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안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도 미국에 가서 20년30년만 잇어도 벌써 미국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 식으로 수백 년을 살았으니까 유대인지만 헬라화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유대적인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모노게네스(monogenes)를 설명을 하려니까 굉장히 힘이 드는 겁니다.
왜냐면 이성주의사람들인데 이성을 가지고 이해하려고 그러는데 이성밖에 이야기를 해주려니까 힘든 겁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이 부분을 설명하도록 요한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이 지혜가 뭐냐면 지금 헬라문화와 유대문화를 잘 융합해서 지금 이 모노게네스(monogenes)의 사상을 한번 집어넣어주라
그것이 뭐냐면 하늘문화 저 위 문화를 그대로 통째로 받으라. 이게 진리다
이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늘문화를 잘 배합해서 지금 이 세상 아래세상 문화 속에 집어넣어 가지고 본질은 변화지 않으면서 아래세상문화를 알도록 설명해주는 것을 선교 학에서 뭐라고 그러느냐면 상황 화라 그럽니다.
이게 선교 학에서 나오는 용어지만 일반교회에도 이것이 퍼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1970년대에 만든 용어로서 이것은 사전에 찾아보면 없습니다.
주어진 상황을 무시하지 말고 그 상황에 맞게 나의 메시지를 그 상황에다가 집어넣어 가지고 설명해주라는 소리입니다 그것을 한국말로 상황 화라 그럽니다. 다시 말합니다. 상황화가 윗 상위문화가 아래문화로 가거나 또는 수평적으로 이문화가 저 문화로 갈 때 그러니까 이문화의 메시지가 저 문화로 메시지가 넘어갈 때 내 문화를 그냥 가지고 가서 이야기하는 것은 저쪽문화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 겁니다. 예컨대 미국문화가 한국에 와가지고 전부 미국식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우리한국 사람들이 버터 냄새나는 문화로 못 알아듣겠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미국사람들이 와서 한국에 와서 이야기할 때는 될 수 있으면 미국예화를 들면 안 됩니다. 미국스타일로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빨리 한국스타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 사람들이 편안하게 듣습니다. 그런데 말할 때마다 미국스타일로 말하면 상황 화라는 말과 토착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말입니다 토착화라는 말은 무슨 소리냐면 내가가지고 있는 내 문화의 것을 완전히 포기해버리고 받는 문화 쪽으로 가버리는 게 토착화입니다 그러다보니까 무슨 문제가 생기느냐면 내 문화에서 가지고 있는 이 진리가 저쪽 문화로 가는 과정 속에서 저쪽으로 토착화를 시켜버렸기 때문에 의미가 달라져버린 겁니다.
이런 부분이 토착화의 문제점들입니다 예를 들면 종교개혁이1517년입니다
그때부터 2차 전쟁이 언제 끝났습니까? 1945년 이 사이를 식민주의시대입니다 500년 동안 식민주의시대입니다 그 당시에 유럽의 7-8개의 강한 나라가 전 세계를 다 쥐고 있었던 시대를 식민주의시대라고 그럽니다.
이분들의 문화가 다른 나라의 문화보다 월등하게 우수했습니다.
7-8개의 큰 나라들의 문화가 그래서 이 사람들이 무조건 자기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아프리카나 아시아나 중남미에 가서 그대로 받아라. 여과 없이 그러니까 그분들은 어떻게 됩니까? 너희문화는 나쁜 문화니까 다 포기해라 다 던져버려라 그 대신에 우리 것을 통째로 받아라. 이래서 모든 토속문화들이 다 없어져버렸습니다. 그리고는 500년 동안서양문화화 되어 버린 겁니다.
그것을 식민주의라 그럽니다. 문화만이 아니고 모든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500년 동안의 역사 때문에 많은 토속 토종문화들이 파괴되고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2차 전쟁이 끝나면서 모든 조그만 나라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냐면 7-8개의 유럽문화를 가진 저놈들 나쁜 놈들이다 저놈들이 우리 것을 다 빼앗아가고 우리문화까지 다 빼앗아 갔다는 겁니다.
우리나라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일본이 그동안에 우리에게 그렇게 한 겁니다. 그러면서 2차 전쟁이 끝나면서 무슨 일이 있었냐면 우리는 조금이라도 제국주의 냄새나는 것은 다 제거해버리자 우리에게는 독소다 그래가지고 전 세계가 하루아침에 이 사람들이 민족주의로 변해버렸습니다
그걸 내셔널리즘(nationalism)이라고 그럽니다. 그러면서 여기저기나라들이 독립이 되었는데 우리나라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전 세계에 150개 나라가 독립이 되면서 UN이라는 그러한 국제기구를 창설했습니다.
UN이 창설되면서 그 안에 한 회원이 표가 하나이니까 이 조그만 나라들의 표가 엄청나게 많은 겁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그기에 가입한 겁니다.
우리나라도 민족주의가 들어와서 50년대에 이승만대통령을 보세요.
일본 냄새만 나도 다 죽일 놈들입니다 옛날에 일본 놈들과 놀던 놈들을 다 죽여 버리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자유당 때 일본출신들을 많이 썼다고 그럽니다. 그래가지고 그것이 신학에도 들어온 겁니다. 신학에 들어와서 미국 쪽 사고방식을 가진 모든 예배의식들 미국 쪽 찬송가들 자유주의기도교인들이 내셔널리즘(nationalism)을 외쳤습니다. 그래가지고 민중 신학이라는 신학을 만든 겁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하나님께 찬송드릴 때 미국악기들 다 필요 없다는 겁니다. 뭐가 필요합니까? 무당들이 북치는 무당스타일로 그다음에 꽹과리니 뭐니 조선 음악 이런 식으로 옷도 한복으로 다 입고 극우로 가는 겁니다. 그것 무슨 주의라고 그러느냐면 토속주의라고 그럽니다.
다시 말하면 제국주의적인 모든 것을 다 없애 버리고 토속화시키자 그래서 남미 쪽은 해방신학이라는 신학이 나왔습니다. 가톨릭을 중심으로 해서 아프리카는 아프리카신학이라고 해서 새로운 신학이 나오고 그러다보니까 어떻게 되느냐면 우리나라도 지금도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그런 식으로 하는 분들이 아직도 이곳저곳에 있다는 겁니다. 왜냐면 그러다 보니까 뭐가 생기냐면 이 과정 속에서 본질이 변질된 겁니다. 그래서 토속 토착화입니다
본질이 변질이 되는 겁니다. 그러다가 70년대부터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새로운 어떤 변질이 되지 않으면서 메시지를 전하되 식민주의사고방식으로 하지 말고 우리가 메시지를 받는 문화 속에 들어가서 그 문화를 존중하면서 메시지가 변질 안 되는 방법이 없느냐 그것이 상황 화라는 겁니다.
그래서 성서에 이런 게 있느냐 딱 보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겁니다.
예수님이 저 높은 문화에 계시다가 사람들과 만나서 사람들에게 아이 러브 유(I love you)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유대문화 속에 들어가 가지고 이분이 본질은 그냥 갖고 계시지만 이분이 전하는 스타일을 유대 화시켜버린 겁니다. 옷도 유대 옷 입고 음식도 유대음식잡수시고 신발도 그런 신발신고 잠도 그런 식으로 자고 대화도 그 당시에 사투리를 쓰시고 완전히 이분이 유대 화되어 버린 겁니다. 그래가지고 유대사람들과 같은 수준에서 대화를 하고 예화를 들어도 그렇고 비유를 들어도 그렇고 그 사람들의 문화에 맞는 이야기를 하지만 안에 본질은 메시지의 본질은 그대로 유지하는 겁니다.
이것을 상황 화라 그러는 겁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요한아! 너 이 상황 화 이 원칙을 나처럼 대입해가지고 유대인 사람들에게 또 헬라인 사람들에게 이분들이 그 당시에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이거든요 플라톤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내가 누구인지를 전해라 그 전하는 내용이 요한복음의 아주 중요한 내용입니다 요한은 본래 어떤 사람입니까?
이분은 예수님의 이종사촌입니다 이종사촌이니까 예수님을 볼 때 인간으로 밖에 볼 수 없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을 3년 따라다니면서 이분의 십자가사건과 부활사건과 승천사건을 다 보면서 아하! 이분은 내 이종사촌이 아니구나.
이분은 신적존재시구나 그래서 요한이 다른 사람과 다릅니다.
가족인데 내 가족인데 저 분은 사람이 아니야 저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래가지고 오늘 본문 1절부터18절까지 이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이것을 전하는데 문화적인 배경이 헬라적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선 헬라적사고가 무엇인지 제가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헬라적세계관하면 여러 가지 표현들을 합니다. 플라톤적세계관이다 또는 공간적 이원론이다 존재론적 이원론이다 이런 말을 씁니다. 왜냐면 플라톤적세계관은 이원론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계가 저 위의 세계가 하나있고 그 다음에 이 밑에 세계가 하나있다는 그러한 세계관입니다 그걸 이원론이라 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이 이렇게 했습니다.
이 이원론적사고방식이 힌두교에도 들어갔고 불교에도 들어갔고 이슬람교에도 들어갔고 가치기준이 전 세계에 철학과 종교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걸 알아야지만 우리믿음이 자랄 수 있고 성서를 보는 눈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선 플라톤이 생각하는 저 윗 세계는 어떤 특징들이 있는가?
여덟 가지의 특징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윗 세계는 이대아(IDEA)의 세계입니다 이대아(IDEA)는 본질의 세계라는 소리입니다 진짜가 그기에 있다는 겁니다. 진리가 그기에 있다는 겁니다. 진리와 본질의 세계라는 겁니다. 두 번째는 윗 세계가 어떤 세계냐면 빛의 세계라는 겁니다. 세 번째는 윗 세계는 진짜세계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실체가 그기에 있다는 겁니다.
실체의 세계입니다 네 번째는 이 세계는 영원한 세계라는 겁니다.
다섯 번째로 이 세계는 변화 없는 세계라는 겁니다. 여섯 번째로 이 세계는 비물질적 세계라는 겁니다. 일곱 번째는 시간과 공간에 제약받지 않는 세계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여덟 번째로 이 세계는 선한 세계라는 겁니다.
악이 없는 세계라는 겁니다. 이와 반대로 아래세계의 특성은 첫째로 뭐냐면 본질이 아니고 본질이 투영된 현상적 그림자모조품 가짜의 세계라는 겁니다.
두 번째로 진리에 대한 참 지식이 불 변형한 암혹의 세계라는 겁니다.
세 번째로 환상의 세계라는 겁니다. 진짜가 아니고 네 번째는 물질의 세계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몸도 물질입니다 몸의 세계라는 겁니다.
육이 있는 세계라는 겁니다. 다섯 번째로 시간의 세계 여섯 번째로 변화는 세계 일곱 번째로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는 세계 그래서 여기는 네 가지 고통이 있습니다. 4고라 그래서 생로병사 이런 게 있는 세계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여덟 번째로 악한 세계라는 겁니다. 악의 세계라는 겁니다.
우선 이 개념을 가지고 계세요 그다음에 두 번째 개념의 제목은 플라톤의 인간론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헬라 적 인간론입니다
첫째 인간의 진정한 자아는 윗 세계에 속해있는 영혼이라는 겁니다.
지금 이 세상에 있는 영원이 아니고 윗 세계에 속해 있는 영원이 인간의 진정한 자아라는 겁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인간이 소우주가 되었다 그럽니다.
마이크로코스모스(Microcosmos) 이 말은 무슨 뜻이냐면 인간이 저 윗 세계에 있다가 아래 세계로 내려왔다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인간의 영혼이 내려왔다는 겁니다. 인간의 영혼이 아래세계로 내려와 가지고 아래세계의 본질인 물질인 몸속으로 영원이 들어가 버렸다는 겁니다. 저 위에 있는 영원이 이 세계로 내려와 가지고 몸이라는 물질 속에 들어가 버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진정한 영원이 몸에 감옥이 되어버리고 몸에 무덤이 되어 버렸다는 겁니다. 그 속에 들어가 가지고 그 안에서 나오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게 인간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인간의 본질인 자아인 인간의 영원이 그래서 인간이 소우주가 되어 버렸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인간이 암혹의 세계에 살고 악한 세계에 살고 변화는 세계 속에서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헬라적인 구원관은 뭐냐면 인간이 그 소우주 속에서 인간의 영원이 싹 빠져나와가지고 거기서 저 윗 세계로 다시 복귀하는 것을 인간이 구원받았다 그게 플라톤의 구원론입니다
그런데 플라톤이 구원방법을 제시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구원을 받느냐 할 때 지식을 가지고 구원을 받는다.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헬라철학은 지식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식자체가 구원입니다 구원주가 지식입니다
그런데 지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지식이라 이것입니다 윗 세계의 특징이 무엇이었고 아래세계의 특징이 무엇이라는 것을 아는 것을 지식이라고 합니다. 아까 제가 아래세계와 윗 세계의 내용을 드렸습니다.
그것을 아는 것을 지식이라 그럽니다. 그것을 알게 되면 그것을 깨닫게 되면 이 특성을 깨닫게 되면 인간이 아래세계에서 분리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가만히 있으면 나오게 됩니다. 그래가지고 자유로워져가지고 윗 세계로 올라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뭐가 제일 중요합니까? 지식이 중요한 겁니다.
어디에 대한 지식입니까? 윗 세계와 아래세계특성을 깨닫는 것 그래서 이것을 각성이라고 그럽니다. 이해하여 깨닫는 겁니다. 이 사상이 힌두교도 그렇고 불교에도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힌두교의 이원론 불교의 이원론이 똑 같습니다. 힌두교에 예를 들면 힌두교에서는 윗 세계가 본질의 세계라 믿고 있거든요 힌두교의 철학사상이나 불교의 철학사상이 똑같습니다.
윗 세계가 있고 아래세계가 있는데 윗 세계를 힌두교에서는 뭐라고 그럽니까? 브라만 불교에서는 이 윗 세계를 극락이라고 그럽니다.
아래세계는 불교에서는 뭐라고 그럽니까? 삼라만상이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윗 세계와 아래세계를 알고 깨닫는 것을 지식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이 지식을 깨달으면 아래세계의 몸에서 벗어나오는 것을 고뇌라 그랬잖아요. 불교에서도 똑같습니다. 그래가지고 이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영겁의 윤회사상입니다 계속해서 내가 여기서 깨닫지 못하니까 이 사상에서 끝나면 강아지가 되고 다음에 소가 되고 나무가 되고 또 참새가 되고 그 안에서 뱅뱅 도는 겁니다. 돌다가 참새가 되면 깨달을 수 없잖아요. 깨달으면 사람이 되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나중에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되는 게 최고입니다 불자가 되어가지고 최대한으로 깨달을 때 이 윤회에 영겁에서 탁 벗어난다는 겁니다. 벗어나는 걸 뭐라고 그러니까?
열반에 간다고 그럽니다. 법정스님이 입적했다고 그럴 때 입적이라는 말자체가 이 윤회에 서클에서 벗어나서 윗 세계로 그러니까 이 감옥에서 벗어나서 저쪽 위 세계로 본질의 세계로 갔다는 소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과 인연을 끊는 것이 이 세상에서 해방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 욕심 이 세상에 잇는 것을 다 끊어버리는 겁니다. 왜냐면 이게 악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면 윤회에서 벗어난다는 겁니다. 법정스님이 그렇게 하셨다고 보는 겁니다. 그분이 무소유를 강조했잖아요. 그러니까 무소유할 때 구원이 된다는 겁니다. 구원된다는 말은 저쪽세계로 실체의세계로 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불교의 구원관과 우리의 구원관과는 차이가 엄청납니다.
그분의 책이 엄청나게 팔린다면서요. 무소유의 개념 기독교의 무소유의 개념과 동기와 목적이 다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도 그기에 매료되어가지고 그럴 수도 있지만 개념이 다른 겁니다. 그분들이 무소유하면 그 자체가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힌두교와 불교 또는 헬라종교의 중요한 부분이 지식입니다 그래서 기노스꼬(ginosko) 우리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겁니다. 이 지식이 무엇일까요? 윗 세상과 아래세상의 특성을 깨닫고 지식을 깨닫고 그다음에 그 지식을 행동화하는 것이 다시 말하면 인연을 끊어버리는 겁니다. 이쪽 세상의 것을 그럴 때 구원이 가능하다고 보는 겁니다. 이들의 철학사상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고 다 연계된 것이고 인도는 산스크리트어라는 언어를 쓰거든요 헬라는 헬라어를 쓰는데 이 두 언어가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근원이 다 유사합니다.
문화도 그렇고 이런 배경 속에서 요한이 예수님을 전해야 되는 겁니다.
그런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쉽지 않을 겁니다. 헬라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철학사상이 로고스(logos)사상입니다 말씀사상입니다 대문자L이 아니고 소문자l입니다. 로고스(logos)가 무슨 뜻이냐면 헬라철학에서 합리적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표현하는 말을 로고스(logos)라 그럽니다.
다시 말하면 합리적사상과 그 사상을 표현하는 말 그래서 로고스(logos)는 말인데 그냥 말이 아니고 합리적사상과 그 사상을 표현하는 말을 로고스(logos)라 그럽니다. 헬라사상에서 그런데 이 로고스(logos)가 헬라사상이 뭐냐면 우주에 이 말이 편만해 있다고 보는 겁니다. 이 말이 어떤 한 곳에만 있는 게 아니고 우주에 편만해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로고스(logos)의 본질이 뭐냐면 우주의 이치가 로고스(logos)의 본질로까지 보는 겁니다.
로고스(logos)가 우주에 편만해 있으니까 우주의 본질이 로고스(logos)로 볼수 있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로고스(logos)와 인간과의 관계는 어떤가?
헬라철학에서 로고스(logos)의 씨가 로고스(logos)의 본질이 인간의 영혼 속에 들어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우주의 모든 로고스(logos)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인간은 우주의 로고스(logos)를 우주에서 흘려 나오는 모든 논리적인 생각과 그 생각에서 나오는 말을 인간은 이해할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우주에 있는 별들이 말하는 것 나무들이 말하는 것 우주에서 모든 물체들이 말하는 것을 인간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주의 이치를 인간이 이해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때 지식을 가졌다 그러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의 이치를 계시해주는 도구가 로고스(logos)라는 겁니다.
이 말을 잊지 마세요 우주의 이치를 계시해주는 숨겨놓은 것을 나에게 계시해주는 도구가 로고스(logos)라는 겁니다. 말씀이라는 겁니다.
우주에 평만 해있는 말씀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이 구원의 도구가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이 말씀을 내가 이해할 때 지식이 되는 겁니다. 이 지식이 구원의 도구가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이 말씀을 깨달을 때 우주에 평만 해있는 우주의 로고스(logos)를 내가 깨달을 때 그것을 내가 지식을 가졌다.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식을 가진 사람은 아래세계의 특성을 깨닫고 아래 세계에서 내가 깨닫는 순간에 아래 세계에서 해방을 당하는 겁니다. 이걸 깨달을 때 그리고는 내가 윗 세계로 복귀하는 겁니다. 그것을 구원받았다는 겁니다. 이런 우주의 로고스(logos)가 계시의 수단이 되고 또 구원의 수단이 되는 겁니다. 헬라철학에서 우주의 로고스(logos)가 이런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요한이 상황 화 접근을 하는 겁니다.
복음을 이걸 가지고 그러니까 헬라사상의 이원론 헬라사상의 로고스(logos)사상을 가지고 이것을 복음에 접근을 시키는 겁니다. 그러면서 태초에 로고스(logos)가 계셨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로고스(logos)를 헬라사람들은 근방 이해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로고스(logos)가 하나님이다 그러는 겁니다. 그리고 또 이 로고스(logos)가 창조주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1장에 나오는 이 부분만 여러분들이 이해하시면 나머지는 슬슬 풀려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로고스(logos)와의 관계를 제가 간단하게 정리해드리겠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태초는 영원한 어떤 때입니다
이것도 과거형으로 대문자입니다 정관사가 들어가 있습니다.
헬라철학의 로고스(logos)는 the가 소문자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은 유일한 계시의 수단이라는 겁니다. 구원의 수단이라는 겁니다. 그 예수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겁니다. 그 예수가 참 빛이라는 겁니다. 아래의 어두움이 그 예수를 깨닫지 못했다는 겁니다. 아래세상의 어두움이 그런데 참 빛이 내려와 가지고 아래 세상을 비추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아래 세상도 로고스(logos)가 만든 세상이었습니다. 그기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아래 세상에는 두 가지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로고스(logos)가 내려왔을 때 알아보는 사람이 못 알아보는 두 가지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알아보는 사람은 인정하고는 아하! 진짜 로고스가 오셨네요. 그러면 저 위로 구원받아서 올라간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로고스는 독생자라는 겁니다. 삼위 하나님 중에 제2위 하나님인 예수님이시고 그런데 이런 분은 한분도 없다는 겁니다.
독생자입니다 이런 스타일의 분은 아래 세상에는 그런 분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윗 세상에 있는 하나님이 창조주가 아래 세상에 내려와서 내가 누구라고 60여 가지의 이름을 이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요한복음에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랬습니다. 이 이름을 믿는 자는 그 즉시로 윗 세상으로 올라간다.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러는 겁니다.
이 메시지를 듣는 일부의 사람들은 세례요한의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세례요한의 제자들아 너희선생 세례요한은 이 로고스(logos)가 아니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너희 선생님이 뭐라고 그랬는지 아느냐 그러면서 15절부터 너희선생님이 말하기를 예수님이 진짜 로고스(logos)고 진짜 빛이지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본인이 아니라고 그리고 너희선생님이 뭐라고 그랬는지 아느냐 너희 선생님이 말하기를 그 성육신한 예수가 나보다 6개월 더 늦게 나온 분인데 너희 선생님이 말하기를 나다 늦게 나왔지만 나보다 훨씬 전 영원 때부터 계셨던 분이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선재성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지금 이 글을 쓴 사람은 사도요한입니다 사도요한이 분명히 그러잖아요.
결론입니다 이분은 하나님이시다 말씀이시고 창조주시고 삼위하나님이시고 쫘악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분이 아래 세상에 내려와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는데 내가 여러분들에게 상황 화를 고려하면서 예수님에 대해서 접근했습니다.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님을 이야기할 때 항상 내가 가지고 있는 내 수준에서 이야기하면 안 되잖아요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째 항상 요한처럼 상황 화하는 연습을 해야 되는 겁니다. 목사들도 마찬가지고 평신도들도 예수그리스도를 우리가 전할 때 항상 듣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듣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파악을 해야 합니다 그것을 영어로는 오디온 스터디라 합니다.
듣는 사람을 스터디하는 겁니다. 이분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예컨대 유치원생들만 조르르 앉아 있습니다. 영적인 유치원생이 아니고 육신적인 유치원생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제가 같은 메시지를 전해도 어떻게 전해야 됩니까? 모습도 넥타이 메고 있으면 애 네들이 불편합니다.
발음도 애들아!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너 있잖아! 하면서 이런 식으로 완전히 그 수순에 내려가서 이야기해주어야 됩니다. 그럴 때 애들이 알았어요. 하면서 같이 떠들고 이러잖아요. 유치원선생이 그렇게 하잖아요. 똑같이 영적으로 유치원생들이 주르르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어른이 한두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영적인 어른이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누구를 중심으로 해야 합니까? 어른을 제쳐놓고 애들아! 이런 식으로 말해야 됩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잘 해야 합니다. 그게 지혜입니다
소피아(sophia)라는 단어가 여성명사입니다 그러니까 여성적이어야 합니다.
아주 감수성이 있어야 합니다.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선교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예를 들어서 네팔에 가서 선교하려면 그 나라문화를 습득하고 그 나라사람들의 스타일로 그 나라사람들이 어떤 스타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가 그래야 됩니다. 네팔에 가면 목사님들이 넥타이를 맨 목사님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제3세계에 가면 주일날에도 그냥 캐주얼 그냥 일반 옷을 입고 말씀전할 때가 많습니다. 이번에 제가 캄보디아에 갔는데 저는 캄보디아교회도 그런 줄 알고 제가 넥타이고 양복을 하나도 안 가져갔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설교하려고 티샤쓰 입고 갔는데 이게 완전히 미국식인 겁니다. 집사 장로 목사 다 넥타이매고 우리식으로 앉아있는 겁니다.
세상에 주 강사가 티샤쓰입고 서 있으니 그래서 제가 아하! 이분들을 위해서 더 알아볼 걸 다른 교회는 티샤쓰 입는데 그래서 제가 설교하려고 단에 올라가면서 담임목사에게 귀속 말로 그랬습니다. 내가 넥타이를 가지고 오지 않아서 그러니까 이해해 달라 그러니까 알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올라갔습니다. 왜냐면 그분들의 문화가 그 교회문화가 넥타이문화인데 웬 이상한 사람이 와서 티샤쓰 바람으로 올라오면 이게 됩니까?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같이 말씀전하는 사람은 이런 걸 신경 써야 합니다. 선교사들도 마찬가지고 우리가 앞으로 계속해서 요한복음을 보겠지만 오늘 본문에는 이분이 주로 헬라적인 단어들을 많이 썼습니다. 표현들을 말씀이다 참 빛이다 독생자다 이게 다 헬라적인 말들입니다. 그러다가 다음시간에 보면 유대적인 말도 씁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성전이다 이스라엘의 왕이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이런 말은 헬라사람들이 못 알아듣거든요 유대사람들은 알아듣습니다. 이런 말들을 잘 컴비네이션(combination)하면서 이분이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이 지혜 요한에게 주신 이 지혜를 가지고 우 리가 이렇게 있다가도 우리를 방문해오는 사람이 영적인 어린아이수준의 사람이 방문해 오는 겁니다. 그러면 그분을 그기에 맞추어서 잘 영접해주고 전도도 마찬가지고 이 사상을 우리가 가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요한을 통해서 우리에게 방대한 하나님의 뜻을 헬라문화라는 그 문화 속에서 어떻게 전하는가를 자세히 가르쳐주심에 감사합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로써 이 복음을 어떻게 주변에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전하느냐를 우리가 요한을 통해서 배우게 하시고 이것이 우리 몸에 베여서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우리 모두 AMI공동체 형제자매들에게 요한에게 주셨던 이 지혜를 허락해주시옵소서. 우리가 아무리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구원 자되시고 복음주가 되시고 왕 중의 왕이라고 우리가 알고 있어도 전하는 과정 속에서 상황 화에 맞추어서 성육신적인 방법으로 전하지 않으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다 헛것이 될 수 있습니다 내 것만 되고 이것이 전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요한에게 주셨던 이 지혜를 주셔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보물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복된 자들이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YTuZhZUkE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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