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 7강. 예수님의 증거자들(요1:19-28) 2010년4월4일 말씀
요한복음1장 말씀은 예수님을 증거 하는 증거의 장이다 이렇게 기억해두시고 요한복음을 쓰실 때 배경은 우리가 알다시피 요한이 68년에서70년 이전에 핍박이 아주 심했을 때 베드로도 순교당하고 바울도 순교당하고 그러므로 해서 큰 그릇들이 순교당한 후에 크리스천들이 그 후에도 계속핍박을 받으니까 여기에 대한 위로의 말씀 중에 특별히 신학적인 핍박 예수님의 신성에 관한 공격의 핍박입니다 이 공격의 핍박이 있었기에 이들에게 여기에 대한 답변을 해주려고 쓴 것이 요한복음이라 그랬습니다.
공관복음으로는 이 반격이 조금 약했습니다. 그래서 이 반격을 직설적으로 논리적으로 해주기위해서 요한복음을 쓰게 했는데 요한복음1장은 이 반격을 하면서 예수님의 신성을 증거 하는 여섯 명의 이야기로 시작이 됩니다.
그 여섯 명이 누구냐면 첫째 사도요한으로 요한복음을 쓰신 요한입니다
두 번째는 세례요한이고 그다음에 안드레와 베드로는 직접 하지 않았지만 베드로도 그기에 참가했고 빌립과 나단나엘입니다. 이 여섯 명이 예수님의 신성을 다양한 각도로 봤는데 어떻게 보면 통일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통일성을 저희들이 볼 겁니다. 우선 사도요한에 대한 배경과 그분의 특성은 지난시간에 우리가 다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에 관한 이야기는 다시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사도요한이 1장에서 예수님의 신성을 증거 했던 내용들이 적어도 아홉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사도요한이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은 말씀입니다 1장1절에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또 말씀이 하나님이시고 말씀이 창조주 되시고 말씀이 생명이 되시고 또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고 이 빛이 곧 참 빛이고 이 말씀이 육신이 되었고 이 말씀이 곧 독생자하나님이시다 이것을 사도요한이 말씀했습니다. 두 번째부터 중요합니다. 두 번째 증거자가 세례요한입니다
오늘 저희들은 세례요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공부할 것입니다
두 번째 세례요한은 우연히 등장한 사람이 아닙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등장하시기 직전에 등장한 구약의 마지막선지자로써 예수님을 증거 할 사람이라고 700년 전에 이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서40장3절에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에게 말씀하신 40장3절의 내용은 나중에 자세히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뭐냐면 이분은 예수님의 길을 곧게 하시기 위해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를 내는 자라 그랬습니다. 이런 자가 준비될 것을 700년 전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례요한에 관한 이야기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조금 더 자세히 불 터인데 마가는 마가복음1장 첫 머리부터 이사야서40장3절을 인용하십니다. 마가복음의 첫 이야기가 이사야서40장3절을 인용하는 겁니다. 마가복음1장1절부터8절까지 보면 그런 이야기들이 쓰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들입니다 제가 시간이 없어서 다 읽지는 못하지만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는 죄 사함을 주고 이 분의 세력이 얼마나 강하냐면 온 유대와 예루살렘사람들이 다 이분에게 와가지고 세례를 받고 이분의 영향력이 대단히 컸다는 이야기를 마가가 했습니다.
그리고 이분은 광야에서 약대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매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사역을 했다고 그랬습니다. 하시는 말씀이 내 뒤에 오시는 자는 나보다 능력이 많은데 나는 이분의 신발 끈 풀기도 감당지도 못한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다시피 나는 물로 세례를 주느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이렇게 마가가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세례요한이 누구냐면 구약에서 말했던 엘리아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을 보면서 자기제자들에게 저 사람은 엘리야라는 겁니다. 엘리야는 언제 사람이냐면 주전850년 때 사람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라는 뜻은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야훼 이즈 마이 갓(Yahweh is my God)그런 소리입니다 야훼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이다 그 이름을 가진 이름이 엘리야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신성을 외치는 분이 엘리야입니다 그런데 열왕기하2장11절에 보면 엘리야가 승천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엘리야를 기다리는 그러한 전승들이 있습니다. 특히 말라기4장5절 특히6절에 보면 종말에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다시 보내겠다. 그랬습니다. 엘리야를 다시 보내겠다.
그래놓고는 엘리야가 출생을 했습니다. 엘리야가 출생을 한 아버지가 누굽니까? 샤가랴와 모친 엘리자벳입니다. 레위족속들입니다 누가복음은 제일 먼저 시작이 세례요한의 출생부터 누가복음에서는 시작을 합니다.
아까 마가복음도 세례요한의 사역부터 시작했는데 누가복음은 세례요한의 출생부터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전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태복음11장14절에 하시는 말씀이 내가 오리라 한 이 엘리야가 곧 세례요한이라는 겁니다.
또 변화 산 사건이 있을 때 마태복음17장10절에서13절에 변화 산에 올라간 후에 다시 말하면 변화 산이 예수님과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낙원에 올라간 겁니다. 그기에 보니까 모세와 엘리야가 있는 겁니다. 낙원에 그래서 그분들을 만나고 내려왔는데 내려오면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이 본 엘리야가 누구냐면 세례요한이라는 겁니다. 세례요한이 목이 잘려서 죽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분이 목이 잘려서 죽어가지고 낙원에 올라갔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에서 세례요한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구약에서 엘리야는 승천해서 낙원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낙원에 올라간 엘리야가 다시 온다고 말라기에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다시 사람으로 내려오는 장면을 누가복음1장에서 이야기했습니다. 내려와서 엘리야가 지금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써 열심히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러는 겁니다. 저 사람이 엘리야라는 겁니다. 그리고는 변화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또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본 저 분이 엘리야인데 저 사람이 엘리야라고 이야기할 때는 살아있을 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목이 잘렸습니다.
목이 잘려서 올라가서 있는 엘리야를 변화 산에서 본 겁니다 그러면서 저 사람이 내가 말한 엘리야라는 겁니다. 저 사람이 내가 말한 세례요한이라는 겁니다. 세례요한이 이 세상에 계셨을 때 그분의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마가복음1장5절에 보면 온 유대지방과 예루살렘사람들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는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요한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영향력이 너무 많아가지고 그 당시에 세례요한이 교주 같은 그분의 종교가 있을 정도입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너무 따르니까 세례요한이 그랬습니다.
나에 대해서 오해하지 말아라. 나는 메시아가 아니라는 겁니다.
왜 나를 이렇게 따라 다니느냐 세례요한은 제자들을 많이 키우면서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첫째가 뭐냐면 기도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물세례를 주면서 물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는 그러한 일들을 가르치고 특히 이분의 중요한 제자 중에 하나가 안드레 빌립 나단나엘 이런 사람들이 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안드레 빌립 나단나엘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9장14절에 보면 그러면서도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세례요한에게 무엇을 배웠냐면 금식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마태복음9장14절에 우리가 잘 아는 아볼로라는 사람도 세례요한의 제자였습니다.
사도행전18장25절에 아볼로는 세례요한의 물세례는 알았지만 성령세례는 몰랐습니다. 아볼로가 있었던 에베소는 사도바울이 개척했지만 에베소교인들이 있는데 그 안에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바울의 제자들도 있었지만 그래서 사도행전19장1j절에서4절에 그 내용을 보면 에베소에도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의 제자들 중에서 성령세례를 받고 바울이 성령세례를 주어가지고 크리스천이 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분의 제자들 중에서 그래서 오늘날도 중동지방에 가면 세례요한을 교주로 생각하는 교파가 하나 있습니다. 그 교파이름이 만데안스(Mandeans)라고 그러한 교파도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교주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세례요한이 인기가 많으니까 세례요한이 자신에 대해서 증거 하는 게 나옵니다. 그러면서 내가 누구고 예수님이 누구라는 것을 그래서 첫째 세례요한이 자신에 대해서 증거 하는 내용은 요한복음1장19절에서28절에 오늘본문말씀인데 제사장들과 레위인과 바리새인들에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분들에게 뭐냐면 나는 그리스도 선지자가 아니다 그리스도도 아니고 그러면서 이분이 나는 엘리야가 아니다 그럽니다.
자기 자신은 그런데 나중에 예수님이 너는 엘리야다 그러는 겁니다.
그렇지만 요한복음1장19절에서28절에 나는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선지자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1장23절에 하시는 말씀이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는 겁니다. 그리고는 26절에 나는 물로 세례를 주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내 뒤에 오시는 분은 하도 능력이 있는 분이 되어서 그분의 신발 끈도 푸는 일을 감당하지도 못하는 그런 자라고 본인이 이야기했습니다. 1장26절27절에 1장33절에 사도요한도 세례요한에 대해서 증거 하기를 1장8절에 그분은 세례요한은 빛이 아니다 빛은 예수님이다 빛을 증거 하려 세례요한이 왔지 세례요한은 빛이 아니라고 사도요한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는 1장에서 계속해서 세례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첫째로 뭐냐면 예수님은 나보다 나이가 6개월 어리지만 나보다 먼저 계신 선재하신 분이라는 겁니다. 1장15절 또는 1장30절에 그다음에 예수님은 독생자이신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1장18절에서 또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 분이라는 겁니다. 1장33절에 그리고는 1장29절에서 유명한 예수님은 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1장32절에서 예수님은 성령이 비둘기같이 머리위에 내리심을 받는 분이라는 겁니다. 성령을 받는 분이라는 겁니다. 1장34절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예수님에 대한 증거라는 겁니다.
세례요한의 특성을 보면 세례요한은 레위 족입니다. 아버지 샤갸라와 어머니 엘리자벳 사이에서 나온 레위 족인데 예수님보다 6개월 일찍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분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여자가 낳은 자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는 겁니다. 누가복음7장28절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상당히 높은 분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로 이분의 특성은 예수님오기 직전에 예수님을 증거 하는 선지자입니다 이사야서40장3절과 마가복음1장2절에 그다음에 세 번째로 이분이 예수님을 가지고 하신 말씀이 이분은 불로 세례를 주는 분이라고 예수님을 지칭하는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물로 세례 주는 분이라고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자기는 물로 세례 주는 사람이고 마가복음1장8절에 사도행전2장38절에 그다음에 세례요한이 감옥에 들어가고 이분이 죽은 그 시점부터 예수님의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됩니다. 이분이 투옥하여 순교한 직후부터 예수님의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됩니다. 마가복음1장14절에 그다음에 이분이 구약의 엘리야가 재현된 겁니다. 말라기4장5절에 마태복음11장14절에 마가복음9장13절에 또 이 사람은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자입니다
마태복음3장2절과 4장17절에 그다음에 이분은 구약에서 마지막선지자입니다
마태복음11장13절에 또 이분은 엘리야처럼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엘리야가 광야에서 산 것은 열왕기상19장4절이고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산 것은 마가복음1장1절에서8절입니다. 그다음에 이분은 당시에 유대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대단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분의 인기 때문에 헤롯왕이 이분을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분이 헤롯왕을 꾸짓었습니다.
자기 동생의 아내를 취했다고 해서 그렇지만 그것보다 더 뒤에 죽인 배경은 뭐냐면 이분이 인기가 너무나 많아서 헤롯왕의 인기를 그 위치를 흔들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마가복음6장18절에서19절에 1세기 때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가 37년에서100년 그사이분인데 이분이 쓴 고대기18권2장에 보면 뭐라고 그랬냐면 이런 내용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헤롯왕에 의해서 참수 당했다. 그리고 세례요한의 사명이 뭐냐면 요한복음1장에 나오는 내용을 정리해서 제가 드리는 겁니다.
첫째 예수님을 이스라엘사람들에게 나타내주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1장31절에 두 번째 사명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해주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요한복음1장34절에 세 번째는 당시에 모든 사람이 세례요한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양이심을 믿게 하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요한복음1장29절에 그러면 세례요한이 어떻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습니까? 세례요한이 물세례를 예수님께 드릴 때 성령님이 비둘기같이 와서 예수님께 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성부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기뻐하는 자라는 겁니다.
요한복음1장32절에서33절 마태복음3장16절에서17절입니다.
세례요한이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우리가 지난시간에 상황 화 원칙을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이 어린 양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우리가 창세기3장15절부터 어린양 첫째로 아담에게 말한 어린양이 무엇입니까? 가죽옷의 어린양 또 아벨의 어린양 그다음에 노아시대에 와서 방주의 어린양 아브라함 때 와가지고 모리아 산의 어린양 다섯 번째는 모세 때 유월절의 어린양 그다음에 여섯 번째로 성막의 어린양 일곱 번째로 성전의 어린양 이렇게 해서 쫘악 발전적으로 왔잖아요. 그러면서 예수님이 헤롯성전을 지나가는 모습을 이분이 보고 하는 말씀이 저분이 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상황 화시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세상 죄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1장에서 이 세상은 무슨 세상입니까? 어두움의 세상입니다 죄의 세상입니다 가짜세상입니다 이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생명이 없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밝혀주는 진짜 참 빛을 비추어주는 그분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상황 화를 시켰습니다. 이 정도로 우리가 세례요한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첫 번째 예수님에 대한 증거자가 누구였습니까? 사도요한이고 두 번째 증거자가 세례요한입니다 세 번째 증거자가 안드레입니다
요한복음1장에서 세 번째 증거자 안드레를 등장시킵니다. 안드레는 안드레아라는 헬라 말인데 그 내용을 제가 찾아보니까 남성다움 그런 뜻입니다
이 안드레는 알다시피 누구의 아들이냐면 마태복음16장17절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바요나 시몬아 그랬습니다. 바요나라는 무슨 말이냐면 바(bar)라는 것은 아들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요나(jona)의 아들이라는 소리를 바요나 시몬아 그러는 겁니다. 바요나라는 것이 이름이 아니고 요나의 아들이라는 소리입니다 우리가 벤자민 그러면 벤은 아들인데 자민의 아들이라는 소리입니다 영화 벤허는 허 씨 집안에 아들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바요나 하면
요나의 아들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요나를 요한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1장42절 특히 요한복음21장15절에서17절에 그 유명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렇게 물어보는 겁니다.
그럴 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다시 말하면 안드레나 베드로의 아버지이름이 무엇이라는 겁니까? 요한 또는 요나입니다 이분의 형제가 베드로입니다
요한복음1장42절에 이분의 고향은 어디냐면 벳세다입니다. 벳세다는 갈릴리호수 가버나움 근처에 벳세다가 있습니다. 벳세다에 안드레도 고향이고 베드로도 고향이고 그다음에 나중에 나오겠지만 빌립도 벳세다가 고향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벳세다에 주로 있지 않고 이분들이 주로 어디서 살았느냐면 가버나움에 계셨습니다. 가버나움이 이분들이 거주하였던 도시입니다
이분들의 직업은 마태복음4장18절에 보면 알다시피 어부 입니다.
그런데 안드레와 베드로 두 형제만 어부를 한 게 아니고 동역 자가 있었습니다. 동업자가 누구냐면 세베데의 아들들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그러니까 이 네 분이 동업을 했습니다. 누가복음5장10절에 그런데 이분들이 이렇게 고기잡이 하면서 주님이 은혜를 베푸신 게 남쪽 지방으로 요단강을 타고 내려오면 세례요한이 요단강을 중심으로 해서 사람들에게 세례도 주고 그다음에 설교도 하고 이런 소리를 듣고는 갈릴리북쪽에서 이분들이 이리로 내려와서 특히 안드레 같은 사람은 세례요한을 따라 다니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세례요한의 제자가 된 겁니다. 요한복음1장35절과40절에 또 요한복음1장28절 이런데 보면 이분이 세례요한을 따라 다니면서 세례요한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세례요한의 메시지가 무엇이냐면 물로 세례를 주면서 회개하라, 회개하라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메시아가 곧 오신다. 메시아가 곧 오신다. 이게 세례요한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니까 안드레도 물로 세례를 받고 메시아가 오시기를 항상 기다리는 겁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이분이 예루살렘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세례요한 자기 선생님이 예수님이 지나가는 것을 보더니 그러는 겁니다. 저분이 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것을 누가 봤습니까. 예수님의 두 제자가 봤다고 그랬습니다. 요한이 지금 쓰기를 1장36절37절에 보면 두 제자가 봤는데 두 제자가 누구냐면 그 중에 하나가 누굽니까? 안드레입니다
그런데 그다음제자가 누구냐 요한인 겁니다. 요한이 지금 요한복음을 쓰면서 자기라고 안 하고 두 제자 중에 한분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요한이 겸손하게 자기 이름을 안 쓰는 겁니다. 꼭 간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안드레이야기를 해주는 겁니다. 안드레가 예수님이 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자기선생님인 세례요한이 말해주니까 안드레가 그대로 그냥 믿음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이분이 1장37절에 자기 선생님과 헤어지고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장면입니다
그리고는 이분이 예수님이 그냥 예수님이 아니고 구약에서 나오는 상황 화된 하나님의 어린양이시고 저분이 메시아라는 것을 깨닫고는 이분이 확신을 가지고는 형님인 베드로에게 알려주어야지 그래서 1장40절부터42절에 보면 자기 형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깨닫지만 그냥 공식적으로 아직도 예수님의 제자는 되지 않았습니다. 풀타임제자는 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예수님께서 이분들보고 물어보는 겁니다. 마태복음4장18절에서22절에 보면 당신은 사람 낚는 어부라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이분들이 나중에 풀타임제자가 되는데 신기한 것은 열두제자 중에서 항상 순서가 있습니다. 제일먼저 1등 제자가 누굽니까?
베드로입니다 그다음에 야고보 요한 이렇게 나갑니다. 그런데 안드레는 네 번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 열두 명 중에서 세분을 항상 심복으로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러니까 안드레는 빠져버렸습니다. 성경에는 안드레에 관한 이야기가 많지가 않습니다. 남을 세워주고 자기는 빠지는 이런 훌륭한 사람입니다 안드레가 예수님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면 1장38절에 그분은 선생님이시다 그리고 1장41절에 그분은 메시아다 그리스도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4복음서에는 안드레에 관한 이야기는 그의 없습니다. 지금요한복음 여기에 안드레에 관한 이야기가 잠깐 나오는데 4복음서 두 군데에 안드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걸 우리가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두 군데 중에 첫째가 뭐냐면 5병2어사건 때 예수님이 군중들 앞에서 설교하시다가 군중들이 배고파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런데 배고파하는 그때 예수님께 말을 건 사람이 누구냐면 빌립입니다 빌립이 예수님께 그러는 겁니다.
떡을 사서 이 사람들에게 먹게 해야 되는데 너무나 숫자가 많으니까 200데나리온의 떡을 사도 모자란다는 겁니다. 성서요한복음6장4절에서9절에 보면
예수님이 빌립에게 질문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떡을 사서 어떻게 먹게 하겠느냐 예수님이 빌립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그래서 왜 빌립에게 여쭈어볼까? 어떤 분들은 그럽니다. 빌립이 음식 장만하는 책임을 맡은 사람이다 이렇게 우리가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이 열두제자들 중에서 도시락을 책임지는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빌립에게 물어본 모양입니다 그런데 거기 보면 주님께서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빌립을 시험하시려고 이렇게 물어봤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빌립이 그러는 겁니다. 200데나리온의 떡으로도 안 됩니다
그러니까 안드레가 옆에 있다가 예수님께 물어보는 겁니다.
선생님 여기 한 아이가 있는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이 많은 사람 이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사이에서 빌립과 안드레가 항상 등장을 같이 해줍니다.
두 번째 예화는 요한복음12장20절에서22절에 이 장면도 아주 유명한 장면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뭐냐면 헬라인 몇 사람이 빌립에게 찾아와가지고 그러는 겁니다. 당신 선생 예수님을 우리에게 소개해달라는 겁니다.
빌립이라는 이름은 헬라 왕들의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헬라사람들이 유대인이 헬라 왕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야기하기가 조금 편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빌립에게 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빌립이 조금 소심해가지고 예수님께 데리고 가면 되는데 빌립이 꼭 안드레에게 가는 겁니다.
안드레보고 헬라사람들이 저런 질문을 하는데 어떻게 하니 그러니까 안드레가 우리같이 예수님께 가자 그래서 안드레와 빌립 둘이서 예수님께 여쭙는 장면입니다 저 사람들을 소개해도 되겠습니까? 그럴 때 예수님이 그분들의 말을 이어서 하는 말이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렇게 볼 때 두 분이 이렇게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튀어나오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기할 일만 하고는 숨어 버리는 그런 사람입니다 소개를 잘 하는 사람들입니다 소개꾼들입니다
그래서 빌리 그레함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안드레작전(Andre operation)이라고 뭐냐면 여러분들 안드레처럼 행동을 하세요. 안드레처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를 분명하면 꼭 사람들에게 전하세요. 전하고는 빨리 숨어버리세요 그러면 그 전함을 받은 사람이 베드로가 됩니다. 베드로는 큰 인물이 되었잖아요. 큰 인물 만드는 일들을 하세요.
한 사람 한 사람 전도하십시오. 안드레처럼 그럴 때 그것을 안드레작전(Andre operation)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바나바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거기에 대해서 자세히 안 나오지만 안드레가 분명히 빌립을 예수님께 소개한 것 같습니다. 성서에서는 안드레가 소개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1장43절44절에 보면 그렇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안드레가 성서에 그렇게 많이 안 나오지만 나중에2세기3세기 되었을 때 안드레 이름이 많이 기독교에 퍼졌습니다. 특히 유명한기독교역사가 유세비스라는 사람이 가이사라 출신인데 주후260년부터340년 때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책에 보면 안드레가 그 후에 성서에는 안 나오지만 안드레가 어디에 가서 선교를 했냐면 남 러시아 쪽으로 올라갔다는 겁니다. 스키디아라고 흑해 북단지역으로 올라가서 선교사로 복음을 전해서 스라브 민족들을 복음 화하는데 영적아버지가 되었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도 러시아정교회에 가보면 안드레가 수호성인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안드레가 수호성인으로 그런데 이분의 수호성인이 하도유명해서 어떻게 이분을 수호성인으로 하느냐면 이분이 자기네 민족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었는데 그분의 십자가는 어떤 십자가였냐면 X 모양의 십자가모양에 달려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X십자가입니다
그것인 성 안드레의 십자가라 그럽니다. 그래서 러시아정교회에 가면 X모양의 안드레십자가들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 아이디어가 퍼져가지고 나중에 그리스 희랍정교회에서도 안드레를 수호성인으로 모시게 되었고 그것이 스코틀랜드로 넘어가서 스코틀랜드에서도 안드레를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만큼 안드레를 주님이 높이셨습니다.
성서에는 안 나오지만 그다음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우리가 베드로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요한복음1장에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어떻게 증거 했다는 내용은 안 나옵니다 그렇지만 베드로에 대해서 제가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면 우리가 알다시피 베드로는 시몬이라는 이름이 있고 그것은 유대이름입니다 그다음에 게바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게바라는 이름은 갈릴리 쪽 사투리 아라메익(Aramaic)이름으로는 게바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결혼 했다는 말이 없는데 베드로는 결혼해서 장모님이 계신 걸로 성서에 나와 있고 이분이 결혼해가지고 어디에 사느냐면 가버나움에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가버나움에서 결혼해서 동생 안드레와 세베데의 두 아들들과 사업을 동업을 했던 관계였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열두제자 중에 최고의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성품이 변덕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이분의 변덕스러운 성품을 간단하게 보면 첫 째 물위로 예수님이 걸을 때 자기도 걷는다고 뛰어드는 그런 상황이 있었습니다. 변화 산에 올라가서도 마찬가지로 예수님께 하는 소리가 예수님! 초막을 셋을 지어가지고 하나는 예수님 걸로 하고 하나는 모세 걸로 하고 하나는 엘리야 걸로 합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렇게 말했는데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거기다가 토씨를 달아 놓았습니다. 뭐라고 달아 놓았느냐면 베드로가 그렇게 말해놓고는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뜻도 모르고 그렇게 말했다고 써놓았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의 성품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그런 스타일입니다 우리주님이 그런 사람도 쓰신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발 씻는 장면을 봐도 요한복음13장에 예수님이 발을 씻는데 그러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데 이분이 주여 내 말을 왜 씻습니까? 이렇게 덤벼드는 겁니다. 그러면서 내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합니다. 하면서 덤벼드는 겁니다. 다른 분들은 가만히 있는데 예수님이 그러십니다. 내가 너 발을 씻지 않으면 너와 나와 아무상관이 없다 그러니까 이분이 거기다가 한 술 더 떠서 그러면 내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주세요. 이렇게 나오는 이런 스타일의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성만찬 때도 똑같습니다. 성만찬 때도 예수님이 그러잖아요. 너희들 중에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거다 그러니까 이분이 예수님 바로 옆에 있는 요한에게 선생님께 여쭈어 봐라 누군지 빨리 여쭈어 봐라 이런 식으로 다른 분들은 가만히 있는데 이런 스타일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 사람을 사용하신 것 같습니다. 너 나를 세 번 부인할거라고 그랬잖아요. 베드로가 그러잖아요.
절대로 죽을지라도 부인안 합니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예수님을 부인하는 장면을 마태복음26장69절부터 보면 처음에는 그냥 예수님을 부인 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는 명세하면서 부인합니다. 세 번째는 저주하면서 명세합니다. 이런 스타일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려 같이 올라갔다고도 기도안하고 잠자는 사람으로 나중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잡혀 나오시는데 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자르고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막다라 마리아가 알려주니까 달려가서 무덤 속에 먼저 들어가는 사람으로 이렇게 성격이 급한 사람입니다 나중에는 자기고향 갈릴리로 다시 돌아가서 물고기를 잡는 이런 사람을 주님이 오순절 다락방에서 만나서 아주 유명한 설교자로 병 고치는 자로 지도자로 기적을 베푸는 자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서도 베드로는 바울에 대한 쓴 뿌리가 있었습니다.
바울을 싫어했습니다. 왜냐면 과거에 자기네들을 괴롭혔던 사람으로 이런 쓴 뿌리가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분이 무슨 약점이 있느냐면 이분이 소위 단순 문화 속에서 유대인문화 속에서만 살아서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원치를 않았습니다. 듣기만 했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타민족에게 가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서서히, 서서히 타 민족 복음화를 할 수 있도록 이렇게 만드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여러분들도 타민족에 대해서 관심이 없잖아요. 때가 되면 하다가 보면 주님께서 서서히, 서서히 하게끔 만드는 겁니다. 나중에 베드로 전서를 썼을 때만 해도 이분이 주후64-65년 때 이분의 제자들이 터키지방 본도나 갑바도기아나 아시아나 비두니아지방에 많았습니다. 이 때 이미 타문화선교를 해왔습니다. 전혀 그런 그릇이 아니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는 나중에 성서에 보면 이분이 로마에 있었다고 간접적으로 표현을 합니다.
이분이 그러니까 로마까지 간 겁니다. 성서에는 분명하게 없는데 베드로전서5장13절에 보면 베드로가 이것을 바벨론에서 쓰고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면 이 바벨론이 도대체 어디냐 그래서 성서신학자들은 그럽니다.
바벨론은 로마라고 보는 겁니다. 로마에서 순교까지 당했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뒷받침하는 문서가 있는데 클레멘트라는 사람이 로마의 비숍입니다 주후88년에서97년에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쓴 것이 있습니다.
이 편지내용을 보면 베드로가 로마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후에 베드로행전이라고 있습니다. 3세기 때 쓴 글인데 베드로에 관하여 쓴 책이 있습니다. 베드로행전이라고 그기에 보면 베드로가 로마를 떠나려고 하는데 예수님을 만난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어디 가고 계십니다. 그때 베드로가 한 말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그러는 겁니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베드로가 3세기 때 순교당한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요한복음21장18절에 예언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순교를 주후65년경에 당했다고 하셨잖아요. 요한복음은 68년에서70년에 썼다고 그랬잖아요. 예수님이 예언하신 장면을 우리가 잘 알잖아요. 18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봐도 이미 베드로는 죽은 몸입니다 이분은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서 죽었다고 역사적으로 보는 겁니다.
이렇게 베드로의 죽음이 로마가톨릭에서 베드로를 이렇게 높이 올리면서 베드로의 무덤이 지금 바티칸의 베드로성전 가운데 베드로의 무덤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로마가톨릭에서 베드로선전을 거기다가 지은 겁니다.
그런데 또 다른 학설은 베드로가 로마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는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주욱 계셨다 그래서 베드로는 어디서 순교 당했냐면 감람산에서 순교 당했다는 학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감람산에 그분의 무덤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베드로에 대해서 이 정도로 하고 빌립에 대해서 조금 보겠습니다. 빌립이라는 뜻은 말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말을 좋아하는 사람들
이분들은 귀족들입니다 그래서 성서에는 빌립이라는 이름이 네 개의 이름이 나옵니다. 첫째 빌립은 빌립 헤롯왕1세로 마가복음6장17절입니다.
두 번째는 빌립 헤롯왕2세로 누가복음3장1절입니다. 세 번째 빌립이 우리가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빌립으로 열두제자 중에 한명입니다
이 사람의 고향이 어디냐면 벳세다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와 안드레와 같은 고향입니다 요한복음1장45절에 보면 나옵니다. 이 빌립에 예수님을 만나서 제자가 되었는데 빌립이 다음에 나오는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소개했습니다.
요한복음1장45절에서49절에 이 빌립이라는 사람은 성품이 조금 특수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8장20절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까 빌립이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입니다 그러니까 이분의 아버지가 근방 돌아가셔가지고 장례식을 해야 되는 모양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은 죽은 자들끼리 하라는 겁니다.
죽은 자는 구원이 없는 사람들끼리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8장21절과 누가복음9장59절에 베드로 같으면 이렇게 말 안할 겁니다. 베드로 같으면 예라 모르겠다. 우리아버지 장사보다 나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따랐을 겁니다. 그런데 그분의 모든 내용들을 보면 빌립은 매우 소심했던 사람인 모양입니다 5병2어사건 때도 빌립에게 질문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빌립과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헬라인에게 이야기하는 장면 안드레와 관계 속에서 이렇게 빌립이 어떻게 보면 소심한 사람입니다
성만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복음14장1절에 예수님이 너희들 걱정하지 말라 내가 하늘나라에 가가지고 처소를 예비하고는 내가 너희들 데리려 다시 올 테니까 그래서 너희들과 그곳에 가서 영원히 같이 있을 거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가는 곳이 어딘지 너희들이 알게 될 거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도마가 뭐라고 대답하느냐면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러면서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빌립이 여기서 또 덤벼드는 겁니다. 빌립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이런걸 보면 성질 급한 베드로도 가만히 있는데 빌립이 이런 말하는 장면입니다 그러니까 빌립이 상당히 소심하면서 확실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이런 스타일의 사람 같습니다.
이분이 오순절 날 열한명의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있었잖아요.
그때도 빌립이 있었습니다. 그 후에는 빌립에 관한 이야기가 그의 기록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까 제가 말한 요세비우스의 책에 의하면 빌립이 아시아지역 다시 말하면 아시아의 일곱 교회 이 지역에 선교사로써 큰일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이분이 언제 죽었다는 것은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이분이 히에라폴리스라고 빌라델비아교회와 라오디게아교회 그 사이에 있는 조그만 마을입니다 거기에서 이분이 순교 당했다고 보는 겁니다. 그 후에는 빌립에 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네 번째 빌립은 성서에서 누구냐면 사도행전6장에 나오는 예루살렘교회에 일곱 집사 중에 한 빌립입니다 이분 이름은 4복음서에는 없습니다. 사도행전6장5절에 나오는 예루살렘교회에 안수집사님입니다.
이분은 칭찬 받고 성령 충만한 분입니다 이분도 스데반이 순교 후에 예루살렘교회가 핍박 받고 흩어질 때 빌립이 예루살렘교회에 최초로 이방선교사였습니다 사마리아에 가가지고 전도자로 사도행전8장에 보면 사마리아인들을 선교한 첫 이방인선교사였습니다. 이분이 마술사시몬 사마리아사람도 개종시키고 특히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내시를 복음화 시켜서 에티오피아선교에 아버지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이분이 주로 해변 가로 다니면서 복을 전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가이사랴에 정착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분의 딸이 넷이 있는데 딸 넷 다 예언자들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3차 여행 끝나고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에 어디에 들렀습니까? 가이사랴 빌립 집에 들렀습니다.
이렇게 성서에는 빌립이라는 사람이 넷 이 나옵니다. 이 세 번째 빌립이 요한복음1장에 나오는 빌립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똑같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다 그리스도다 그 예수님은 나사렛출신이다 이렇게 했던 겁니다. 마지막 나다나엘로 여섯 번째 증거자로 이 나다나엘은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게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제자인데 열두제자이름을 들여다보면 이 사람의 이름이 없습니다. 열두제자 명단을 보면 이 사람 이름이 없습니다. 마태복음10장3절과 마가복음3장18절과 누가복음6장14절 사도행전1장13절 여기에 보면 열두제자들 이름이 나옵니다.
그런데 나다나엘이라는 이름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서학자들이 추측을 하는 겁니다. 바돌로메가 이 사람이라고 보는 겁니다. 이 나다나엘이 성서 어디에 나오느냐면 예수님이 부활하셔가지고 갈릴리지방에 올라갔을 때 일곱 명의 제자들을 갈릴리 호수에서 153마리 물고기 잡는 사건 때 보면 나다나엘의 이름이 나옵니다. 일곱 명의 제자 중에서 분명히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래서 아마 이분이름이 바돌로메라고 보는 겁니다. 이분의 고향이 어디냐면 가나의 혼인 잔치했던 가나출신입니다 그런데 벳세다에서 주로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빌립에 의해서 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겁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만나자말자 예수님을 의심을 했습니다.
왜냐면 어떻게 나사렛출신이 그리스도가 될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 이유는 뭐냐면 그리스도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그랬고 다윗의 후손이라고 그랬거든요 요한복음7장42절에는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했는데 왜 빌립아 당신은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나셨는데 어떻게 그분이 메시아가 될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나타나서 하시는 말씀이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해소시키는 장면입니다 1장47절에 너가 진짜 참 이스라엘사람이다 네 속에 간사함이 없다 나다나엘이 어떻게 나를 아셨습니까? 라고 물어보니까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서 기도하고 있는 것을 내가 봤다는 겁니다. 무화과나무 밑에서 기도하고 있는 것을 봤다는 것은 예수님이 초자연적인 지식을 가졌다는 것을 이분이 느끼고는 그때부터 이분마음이 변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2장24절25절에는 분명히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그 이유는 뭐냐면 사람 속에 있는 것을 다 아셨기 때문에 사람을 의탁하지 않았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분의 속을 다 들여다보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보시기에 이분이 참 이스라엘사람이라는 겁니다. 참 이스라엘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면 나다나엘 같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참 이스라엘은 무엇입니까? 신약에 와서 참 이스라엘사람은 참 된 기독교인입니다 참 기독교인은 나다나엘 같은 사람입니다
순수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다나엘이 영의 눈이 뜨여진 겁니다.
그래서 요한복음1장51절에 그러는 겁니다. 진실로, 진실로 당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러면서 기가 막힌 소리가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기 전에 이분이 기도를 하는데 사닥다리가 하늘로 연결되어가지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야곱이 봤다고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이 봤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똑같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1장51절에 네가 참 이스라엘인데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에게 하면서 복수를 썼습니다.
너희에게는 지금 안드레 베드로 빌립 나다나엘 이 네 분에게 너희들에게 하면서 복수를 썼습니다.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그러는 겁니다.
이분들이 너희 네 명이 그때 구약에서 야곱이 이것을 본 것처럼 야곱도 마음이 깨끗해져가지고 마태복음5장8절에 마음이 순수한 자는 하늘나라를 보리라 그랬잖아요. 똑같이 이분이 간사한 마음이 없는 아주 순수한 마음이기 때문에 너희들도 언젠가는 나다나엘처럼 영의 눈이 떠가지고 천사가 내 머리위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너희들도 보게 되리라는 겁니다.
무화과나무 이야기를 하면서 이 당시에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밑에서 기도를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유대전승에 보면 이런 랍비들이 기도할 때 항상 무화과나무 밑에서 기도했습니다. 호세아서9장10절에 보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나다나엘이 증거 한 내용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증거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보면 여섯 사람을 가만히 보면 이분들이 장점도 있지만 문제들이 있었던 그러한 성품들이었습니다.
온전한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서에서는 이 여섯 사람을 요한복음1장에서 이렇게 등장시키면서 이분들이 다 예수님을 나름대로 증거 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1세기 때 핍박받고 예수님의 신성에 대해서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이 여섯 사람의 내용을 설명해주는 겁니다.
이것 봐라 이 사람들이 이랬다 그런데 이분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증거 하면서 이분들이 잘나서가 아니었음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보면 다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오늘 마지막 메시지였습니다. 이분들은 다 부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AMI성도들도 저 까지 포함해서 다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단점이 있고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이분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이런 은사를 주셔서 영안을 뜨게 하시고 이런 사람들이 되어서 요한복음에 1장에 등장하는 여섯 사람의 유명인사로 만드신 겁니다.
예수님을 증거 하도록 그래서 제가 이분들의 삶을 간단하게 설명해드리는 겁니다. 이분들이 그렇게 유명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니까 이 여섯 사람이 자신의 선하심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자기 의지가 내가 이런 사람이 되어야 되겠다고 해서 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 의 때문에 자기가 계획한 것도 아닙니다.
자기가 노력한 것도 아니잖아요. 이게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행운도 아닙니다. 이것은 분명히 예수님이 예정하신 겁니다. 이렇게 쓰실 것을 미리 사용하실 것을 미리 계획하시고 때가 되니까 이분들을 부르신 겁니다.
저도 이렇게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AMI공동체 우리형제자매들을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러는 겁니다. 주님 이분들도 때가 되니까 이렇게 부르셔서 말씀을 보통 2시간씩 설교를 듣고 식사 끝나고는 3시간씩 앉아서 또 셀 모임하고 이게 왜 이렇습니까? 주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그렇구나. 그것 때문에 이 교회가 왜 이렇게 길게 예배드립니까? 잔소리하고 불평하는 사람 한 사람도 내 귀에 들여오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우리교회에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게 은혜입니다 목사님이 셀 모임에 들어가라고 해서 들어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어제 어느 선교기관에서 방문 왔는데 한 사람이 그러는 겁니다. 이AMI교인들은 일당백이라는 겁니다. 이분들은 주일 날 2시간씩 설교 듣고 3시간씩 셀 모임하고 집에 안갑니다 그러는 겁니다. 끝나고도 가기 싫어가지고 자기들끼리 앉아서 또 이야기한다는 겁니다. 매주 그러는 겁니다. 이게 은혜 아닙니까?
우리가 지금 이런 성서공부를 왜 합니까? 예수님의 성품을 더 깊이 깨닫고 이분의 모습을 깊이 깨닫고 그분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다른 목적은 없잖아요. 그분을 사랑하려면 우리가 이분에 대해서 알아야 되거든요. 알지 않고 겉으로 그냥 피부적인 느낌만 가지고 그분이야기를 하면 30년40년 교회 다녀도 똑같은 겁니다. 그래서 지적인 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지적인 훈련에다가 감성적인 훈련으로 내려와야 됩니다.
그리고는 행동화되어야 됩니다. 주님께서 때가 되니까 계획대로 이들을 부르셔가지고 이끄시고 또 가르치시고 그래서 예수님을 증거 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주님께서 우리AMI공동체 사람들을 주님께서 때가 되니까 부르셔가지고 이제 이끄시고 계십니다. 그리고는 가르치고 계십니다.
거기다가 우리는 그 예수님을 증거 해야 되는 겁니다. 우리교회를 증거 하는 것이 아닙니다. 황 목사를 증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를 증거 합니까?
예수님을 초점이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겁니다. 이 여섯 명의 초점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겁니다. 예수님을 증거 하다가 이분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두다 순교 당했습니다. 순교자 반열에 들어가는 은총을 받은 겁니다. 우리AMI성도들이여 순교자 반열에 들어가기를 원하십니까?
이게 얼마나, 얼마나 감사합니까? 순교자 반열에 들어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 저의 기도는 우리AMI공동체 형제들이 순교자 반열에 들어가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것이 내 의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내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계획입니다
이 계획 속에 집어넣어 주세요. 이것이 우리의 기도제목입니다
이 여섯 명이 똑똑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 문제가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분들을 주님이 시간을 맞추어서 잘 다듬어가지고 아주 순교자까지 마드신 것처럼 지금 우리를 주님이 이렇게 만지시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아는 사람은 항상 오래 기다리고 참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런 시각에서 여러분들을 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준비가 덜 되어도 언젠가는 주님이 멋있는 그릇으로 만들 것을 제 눈으로 보는 겁니다.
그리고는 오래 기다리고 참고 격려해주고 사랑해주고 그러는 겁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런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성령님께서 저희들을 붙잡지 않으시고는 주일 설교가 2시간씩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도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상당히 건조한 그저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만 하는 이런 설교입니다 주님! 주님이 붙잡지 않으시면 주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붙잡지 않으시고는 우리AMI공동체가 이렇게 2시간씩 말씀 속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저희들을 붙잡아 주시고 여섯 명에게 주셨던 은혜를 우리에게 주셔서 이 세대에 예수님만 초점을 맞추고 증거 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 주님 앞에 귀한 존귀함을 받는 복된 자들로 인 쳐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opNc5dzYb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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