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

3강. 누가복음1장1절-4절; 사도행전1장1절-3절, 누가복음배경, 저자, 개요

변명섭 2021. 6. 20. 04:45

요한복음강해 3강. 누가복음배경, 저자, 개요(눅1:1-4; 행1:1-3) 2010년2월21일 말씀
오늘은 누가복음말씀을 같이 나누려고 합니다. 누가복음말씀은 마태복음과 또 다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말씀을 들었던 분들은 셀 모임에서도 같이 나누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머리에 남아 있지만 CD나 태입(tape)을 만들어서 여러 번 듣고 소화하셔야 지만 성경을 읽을 수가 있고 신구약이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똑같이 누가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복음을 신학자들도 이런 부분에서 해석하기가 상당히 어려워하고 이렇게 집중적으로 요약하기를 꺼려하는 책입니다 왜냐면 이 안이 복잡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복잡한 것을 제가 주님이 주시는 영감으로 여러분들에게 나누어주려고 그럽니다. 누가복음핵심 절들이 적어도 2개 정도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뭐냐면 누가복음1장1절에서4절입니다. 1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4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이 말씀입니다 우선 제가 배경적인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누가복음은 누가 썼느냐면 누가가 썼습니다. 그렇다면 누가가 언제 섰느냐 할 때 여러 학설 중에 가장 확실한 학설 중에 하나가 주후60년에서 62년에 썼습니다. 이때가 사도바울이 로마에 1차 투옥 되었을 때입니다 이 때 이미 누가가 사도바울을 따라가서 그 옆에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이 투옥되었지만 그 곳이 일반 감옥이 아니고 소위 가택연금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같이 갔던 제자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로마서에 보면 약35명 그 외에 또 많은 사람들이 따라 갔기 때문에 바울이 그기에 계셨을 때 그분의 제자들이 상당히 주변에 많아가지고 거기서 복음들을 이방사람들 특히 로마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로마에 특히 관료들 군인들 이런 분들에게 전했습니다. 이 분들이 복음화가 되어야지만 유럽이 복음화가 되기 때문에 그런 가운데 누가도 바울 옆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누가는 언제 사도바울을 만났습니까? 
사도행전16장에 보면 2차 선교여행을 시작할 때 안디옥에서 그래서 누가는 안디옥출신으로 보고 있습니다, 안디옥출신 의사입니다 사도바울의 제자로써 사도바울이 이분에게 복음을 전해서 이분이 이때부터시작해서 사도바울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는데 2차 선교여행부터 따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이분을 데리고 다니면서 무엇을 가르쳤느냐면 누가에게 지금부터 선교여행을 따라다니면서 발로 밟고 다닐 때마다 모든 것을 다 기록하라는 겁니다. 왜냐면 누가가 의사로써 또 그리스말을 누구보다도 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의 문장체를 보면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이나 요한복음보다도 훨씬 그분의 헬라어 내용이 문체와 단어표현력과 또 서술한 문장구조와 이런 부분이 아주 탁월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이런 모습을 보고는 기록하기를 원했던 모양입니다 
바울이 1차 감옥에 투옥해 있을 때 옥중서신을 썼습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썼잖아요. 이걸 쓰실 때 분명 누가도 자기 선생님이 편지를 쓰시니까 자기도 그동안 모아놓았던 모든 자료들을 가지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 두 어른이 같이 앉아서 편지를 쓴 것 같습니다. 도대체 누가는 어떤 사람인가? 제가 다시 한 번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안디옥출신으로 누가는 유대인이 아니고 이방인입니다
그리고 헬라문화에 아주 탁월한 지식을 가졌고 헬라 언어도 그렇고 거기다가 이분은 의사면서 역사가로써 식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사라는 말은 골로새서4장14절에 이분은 의사라고 표현했습니다. 
골로새서4장14절에 바울이 골로새교인들에게 뭐라고 그랬냐면 나의 절친한 친구다 그랬습니다. 그만큼 누가와 바울은 아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그리고 빌레몬서24절 빌레몬에게 쓰실 때도 누가에 대해서 말하기를 누가는 같이 일하는 나의 동역자다 그랬습니다. 그런 믿음직한 관계로써 바울과 지냈는데 나중에 68년에 바울이 순교하기 직전에 디모데후서를 썼습니다.
66년 67년에 2차 감옥에 투옥해서 디모데후서를 썼는데 디모데후서4장11절에 보면 옛날에 아시에서의 자기제자들은 다 떠나고 디모데는 에베소에 있고 또 마가도 에베소에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때 바울 옆에 한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누가였습니다. 그러니까 누가는 의사로써 역사가로써 바울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사람입니다 디모데후서4장11절에 보면 그러니까 누가는 바울에게는 특별한 분이고 바울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 관한 내용들을 주욱 보면 누가가 크리스천이 되기 전 사건들을 쫘악 썼습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은 예수님탄생부터시작해서 글을 씁니다. 예수님탄생 전 세례요한의 탄생부터 그 때가 주전4년입니다
누가복음의 시간적인 배경은 뭐냐면 주전4년부터의 스토리로 시작해서 예수님이 승천했던 30년까지 스토리를 역사적으로 쓴 겁니다. 
그러니까 주전4년부터 주후30년까지의 스토리를 아주 연대적으로 순서적으로 쫘악 역사적인 개념으로 쓴 겁니다. 그게 누가복음입니다 
그런데 34년 동안에 누가는 크리스천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누가는 그 당시에 예루살렘이나 갈릴리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인데 누가는 안디옥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전혀 경험을 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다음에 이분이 누가복음을 쓰고는 그 다음해인 63년부터 시작해서 4차 선교여행을 67년까지 했는데 63년에 바울이 출옥하자말자 누가가 제 생각에는 안디옥 자기 고향으로 갔던 것 같습니다. 그래가지고 안디옥 고향에 가가지고 또 계속해서 누가복음의 후편을 쓰기 시작한 겁니다. 
그게 사도행전입니다 누가복음의 후편은 시간적으로 어떻게 되느냐면 예수님의 승천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그게 주후30년입니다 사도행전1장8절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승천하기 직전에 지상명령을 내리는 겁니다.
예수님의 승천부터시작해서 사도행전15장 까지는 베드로에 관한 사역을 설명해줍니다 예루살렘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베드로에 관한 베드로를 소개하는 그분의 사역을 소개하는 이야기가 사도행전15장까지입니다 
그리고 16장부터 바울이 등장하는데 실제로 바울등장은 그전11장부터 하는데 바울의 이야기는 구체적으로 11장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야기를 시작해서 마지막 사도행전28장까지 갑니다. 
그런데 이분이 28장 스토리가 뭐냐면 주후62년 1차로 로마에서 가택연금 된 스토리가 사도행전28장 스토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후부터의 스토리는 누가가 기록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감옥에서 나와 가지고 그 다음 스토리는 누가가 쓰지를 못했습니다. 그다음 스토리는 우리가 간접적으로 아느냐면 4차 여행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가 성서에 없습니다. 그것을 간접적으로 우리가 알아내는 게 그 사이에 디도서를 썼고 디모데 전 후서를 썼거든요 
그 세 성서를 보면서 학자들이 찾아내는 겁니다.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느냐 
그러니까 누가는 그걸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누가는 어디까지 썼습니까?
사도행전28장 로마감옥에 가서 2년간 가택연금 당하셨다는 그때까지입니다
그런데 누가가 사도행전16장에 보면 2차 여행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2차 여행 시작할 때 누가가 합류한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행전16장에서 누가가 크리스천이 된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행전16장 전 이야기들은 누가가 경험한 게 아닙니다. 누가가 경험 한 것은 사도행전16장부터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16장9절을 보면 그때부터 말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10절11절에도 보면 우리가라는 단어들이 계속 나옵니다. 그 전에는 이런 단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간혹 가면서 우리가, 우리가 이 말은 뭐냐면 누가가 이제는 그 그룹 중에 하나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누가가 책을 몇 권 썼습니까? 두 권을 썼습니다. 그래서 역사책입니다 1권과 2권을 썼습니다.
1권은 시대적으로 몇 년 스토리입니까? 예수님의 탄생한 주전4년부터 승천한 주후30년 그다음에 2권은 주후30년부터 62년까지 약30년 가까이 그러니까 첫30년 후30년 이렇게 쓰신 겁니다. 그런데 수신자가 있습니다. 
이분이 첫 편지를 쓸 때도 수신자를 데오빌로 각하라 그랬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1장을 보면 수신자가 누군가 또 나옵니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이게 누가복음입니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이 내용이 누가복음내용인 겁니다. 그러면 신기한 게 누가복음 제일 마지막 24장50절부터 보면 
50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베다니 앞이 어디냐면 감람산입니다 감람산에서 예수님이 승천하셨습니다. 51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52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이게 다른 4복음서를 보면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누가복음만 아주 정확하게 예수님의 승천했다는 이야기를 하시고 또 그것을 이어서 2권에 들어가서 사도행전이야기를 하실 때도 승천한 이야기를 다시 재확인하십니다. 그리고 수신자가 데오빌로 각하여 그랬습니다.
데오빌로라는 사람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학설들이 있는데 이분이 데오빌로라는 이름을 해석해가지고 억척으로 학설을 만든 것들이 있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군가? 그래서 데오빌로라는 단어를 보면 데오는 하나님입니다 빌로라는 것은 사랑 중에서 필레오 사랑이 있습니다. 친구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친구여 이런 뜻입니다 이것을 하나의 상징적으로 보고 이것이 막연히 실제인물이 아닌데 그냥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하고는 그냥 막연히 해놓고는 상징적으로 썼다고 하는 학설이 있습니다. 저는 이 학설을 탐탁지 않게 생각합니다. 
두 번째 학설은 뭐냐면 데오빌로라는 사람은 실제인물이라는 겁니다.
왜냐면 각하라고 그랬습니다. 각하라는 것은 정부의 높은 분을 부를 때 또는 높은 군인들 부를 때 각하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로마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이방인인데 이분이 분명히 누가를 통해서 복음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에 대해서 기초적인 복음만 받았지 기독교에 대해서 깊이는 모르는 겁니다. 그리고 이분이 그때부터 10년 전에 쓴 마태복음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이 주후50년에서 52년이라 그랬습니다. 2차 선교여행 때입니다 데오빌로가 마태복음도 아마 접했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을 읽어보니까 예수님에 대한 역사적인 이야기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데오빌로가 그게 답답했던 모양입니다 또 누가도 마찬가지였고 그 당시에 이미 쓰여 진 성경이 몇 개가 있었습니다. 이때가 60년에서62년 때입니다 이 전에 쓴 글들이 많습니다. 그 전에 쓴 글들이 성경은 되지 않았지만 문서들로 여기저기 다녔던 것이 많았습니다. 
첫째가 마태복음입니다 마태복음 전 49년에 쓴 책들이 갈라디아서 그다음에 야고보서 이런 책들이 출판되어 가지고 많이 퍼지지는 않았지만 이미 이사람 손으로 저사람 손으로 다녔던 겁니다. 그다음에 주후51년에 바울이 쓴 데살로니가 전후서가 있습니다. 그다음에 바울이 또 주후55년에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 전 후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주후57년에 로마서를 썼습니다.
그러니까 데오빌로 이분이 다른 문서들은 접하지 못했더라도 로마서는 접했을 것 같습니다. 로마서를 접해서 보니까 데오빌로가 볼 때 이게 이해가 잘 안 되는 겁니다. 왜냐면 로마서를 보면 하나의 교리적인 이야기가 있고 그다음에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살라는 이야기가 있지 역사적인 자료를 가지고 예수님의 탄생부터 승천까지의 체계적인 가르침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누가도 이것 때문에 답답했지만 특히 데오빌로에게 성경을 가르치다보니까 이분이 이런 걸 질문하는데 이게 대답이 잘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아마 이분에게 철저하게 복음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한번 쓰서 드리고 싶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어떤 문서를 보면 데오빌로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면 출판발행인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누가의 마음속에는 이 사람에게 복음을 체계적으로 역사적으로 잘 써가지고 데오빌로보고 당신 출판업을 하니까 로마제국에 영향력도 있고 하니까 이 책을 출판하여 돌리십시오. 그런 선교마인드를 가지고서 데오빌로에게 쓰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는 다른 매체보다 문서매체가 가장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누가에 대해서 계속공부하다 보면 이분도 대단한 분이라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을 쓸 때 주위의 대부분의 책들을 보면 단편적인 책들이었습니다. 전체를 보는 시각이 없었던 책들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누가가 이걸 쓰면서 주 독자를 겨냥했습니다. 누가 주 독자가 될까 할 때 이방인들 중에서 새롭게 신자가 되는 사람들을 주 독자로 봤습니다.
누가 스스로가 이방인이기 때문에 이방인의 관점에서 예수님을 조명했습니다. 그다음에 유대인이나 이방인 중에서 앞으로 기독교인이 될 사람들을 겨냥하면서 특히 세 번째는 이방인 중에서 어떤 사람들이 그 당시에 많았냐면 하나님을 경외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 말은 뭐냐면 이방인인데 유대종교에 발을 밟지는 않았지만 유대인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이라고 그래서 유대종교에 들어와서 완전히 할례를 받지 않았지만 유대회당을 더나들었던 이방인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하나님을 경외했던 사람들이라 그럽니다. 이런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이 문서를 읽고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도록 이런 마음에 착안하고는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데오빌로에게 편지를 보낸 이유는 이런 모든 뒤에 깔려 있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첫째 목적이 뭐냐면 지금 이런 부분보다 더 앞서가는 목적이 뭐냐면 데오빌로가 이 책을 읽고는 확실하게 예수님을 만나도록 동기 부여시키는데 첫째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데오빌로가 이 책을 읽은 다음에 대계명과 대 사명에 헌신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또 세 번째 목적이 뭐냐면 데오빌로가 파워가 있기 때문에 그 당시에 핍박 받는 크리스천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 사람들을 도와라고 당신이 이제 복음에 확실히 서면 당신의 힘으로 핍박받는 크리스천들을 도우세요. 네 번째 목적이 뭐냐면 당신이 이 책을 읽은 다음에 당신이 출판업을 하니까 로마제국전체에 대량으로 복음을 전하십시오. 하는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이분에게 책을 쓰는 겁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여섯 번째가 될지 모르지만 숨겨진 앞으로 크리스천이 될 만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아까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이방인새신자들 유대인이나 이방인들 중에 아직 신자는 아니지만 신자가 될 만한 사람들을 위해서 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런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이 책을 쓴 겁니다. 복음의 중요성이 얼마나 중요하느냐면 그 전에 쓴 책들 바울의 편지들이 무엇들이냐면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전후서, 고린도전후서, 로마서 이런 바울의 편지들을 가만히 보면 바울의 편지들은 수신자가 누구였습니까? 바울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수신자가 아주 제한적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편지들을 보면 이런 역사적인 측면보다는 이분이 주로 교리적인 측면을 다루고 그다음에 어떻게 살아라하는 삶의 측면을 다루었습니다. 바울의 편지들은 역사적인 이런 개관을 바울의 편지에서는 볼 수가 없습니다. 그다음에 야고보가 쓴 야고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제한된 유대인들의 열두 흩어진 지파들을 상대로 그분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글을 써준 겁니다. 요한이 쓴 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복음은 훨씬 나중에 썼지만 마태가 쓴 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편지들은 소수의 어떤 특정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기 때문에 소위 편지를 받은 사람들끼리 자기네끼리 받아가지고 서로 나누어가지고 서로 자기가 읽고 누구 주고 하는 요즘 말로 하면 서클(circle)이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누가 이분의 생각은 이래가지고 안 된다 좀 제대로 된 역사적인 측면을 보고 연도가 제대로 되어 있고 그다음에 이것을 대량으로 생산해서 한번 뿌리자 이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이걸 보면서 황 목사도 이 생각을 배우면 되겠구나. 그래서 데오빌로를 픽업한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을 제대로 훈련시켜가지고 이 일을 하도록 마태복음하고는 또 다릅니다. 제목을 바꾸어서 누가복음에는 주 내용과 Key되는 절들이 있습니다. 주 내용이 뭐냐면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1장1절2절3절을 보면 됩니다. 주 내용이 첫째 뭐냐면 예수님의 삶에 대해서 설명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먼저 설명해주고 그다음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또 설명해주는 겁니다. 그분이 무엇을 가르쳤나. 제가 사도행전1장1절2절3절을 보면  
1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대계명과 대 사명을 명하고는 승천하셨다 이게 누가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래놓고는 누가복음의 Key되는 말씀 중 하나가 19장10절입니다. 뭐냐면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선교적인 마인드를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다음에 제목을 바꾸어서 누가가 누가복음을 쓰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제가 아까도 조금 비쳤지만 다시 정리하면 쓰게 된 동기가 뭐냐면 복음을 포괄적 신학총서라고 그랬는데 이때까지는 역사적으로 글을 쓴 일이 없었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쓰게 된 동기는 첫째가 역사적 측면에서 글을 쓴 종합적인 복음 총서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쓰기 위해서 이분이 펜을 든 겁니다 체계적이고 연대순으로 써야 되는 이런 부분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 본문누가복음1장3절에 보면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차례대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목적 중에 두 번째 목적은 그 당시에 이단학설들이 난무했거든요. 어떤 것이냐면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인성을 부인하고 부활을 부인하고 예수님이 역사 속에 계셨다는 역사성을 부인하고 동정녀 탄생과 승천까지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시원한 문서가 없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누가도 안타까워하는 겁니다. 사도바울의 책 가지고 어느 정도는 되지만 잘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안 되겠다. 내가 써야 되겠다.
그래가지고 이분이 쓰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이걸 쓰는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 30년은 자기가 경험한 것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두 번째 20년까지도 자기가 경험한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걸 성령님이 가르쳐주셔야 되잖아요. 50년의 역사는 자기가 경험한 게 아닙니다. 
이것을 논리적으로 역사적인 증거자료를 가지고 쓰려니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래서 이분이 누가복음1장1절을 다시 보세요, 우리 중에 거기다가 동그라미를 쳐놓으세요. 지금 누가가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 당시에 그 주변에 있는 크리스천들입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에 목격 자되고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았다는 겁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이 조각조각 스토리들을 적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겁니다. 그 당시에 그런 문서들이 여기저기에 많았다는 겁니다. 이런 문서들을 제가 지난시간에 큐 문서라고 기억나십니까? 그다음에 어떤 신학자들은 또 엘 문서라고 엘 다큐멘터리라고 이야기도 하고 그렸습니다. 그렇게 참고로만 알아두시고 이런 게 많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문서들을 봐도 누가의 입장에서는 이게 총체적인 개념으로 자기에게 오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3절을 보면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다시 말하면 주전4년부터 일어난 모든 일을 자세히 조사하여 정돈했는데 어떻게 정돈 했냐면 차례대로 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역사적인 안목을 가지고 차례대로 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누가복음이 재미있겠습니까? 재미없겠습니까? 재미있겠습니다.
누가는 바울과 야고보와 이런 사람들과 차이점이 있는 게 이 사람은 유대인이 아니고 이방인입니다 이방인의 관점에서 이방인의 지식인이면서 역사가로써 관점으로 아주 철저하게 조사해가지고 집대성한 겁니다.
그런데 바울 같은 사람들의 편지를 보면 바울은 어디까지나 유대인의 관점에서 예수님을 조명했습니다. 야고보도 마찬가지로 수신자가유대인의 관점에서 썼고 바울은 이방인을 수신자로 하는 자기 제자들을 생각하면서 쓴 겁니다. 그러니까 폭이 어떤 부분에서 전체를 커버를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누가는 완전히 이방인으로써 처음부터 끝까지 커버해보자는 겁니다.  
커버를 해보는데 이 분이 경험을 못하고 이분이 그런 부분에서 신학적으로 약하니까 미리 야고보가 쓴 것 바울이 쓴 것 마태가 쓴 것 이런 걸 다 조사하고 또 바울선생님 옆에 따라다니면서 얼마나 물어봤겠습니까? 
바울선생님이 옆에서 얼마나 가르쳐주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분이 정돈이 된 겁니다. 그래가지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쓴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바울서신을 읽으면서 시대적인 부분이나 이런 구조적인부분에서 의문 나는 게 조금 있습니다. 그럴 때는 바울서신을 읽으려면 무엇을 먼저 통달해야 되는지 아십니까? 사도행전을 먼저 통달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사도행전이 바울서신의 근간입니다 기초입니다 그래서 제가 시도행전과 여러분들에게 숫자이야기하고 년도이야기하고 지도이야기 하는 이유를 알겠습니까? 시대적인 감각 없이 역사적인 개념 없이 설교 듣고는 성경공부해가지고는 이게 안 됩니다 왜냐면 성경을 잘못 해석하게 되어 있습니다. 시대적인 배경과 전체적인 모든 흐름을 다 꿰뚫어야지만 이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소제목으로 하나님께서 누가를 쓰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왜 누가로 하여금 이런 글을 쓰게 했느냐면 다른 사람이 없었냐면 
첫째로 이런 글을 쓸 만한 사람이 있다면 누구냐면 사도바울입니다.
그런데 왜 성령님께서는 이런 역사적인 스토리들을 사도바울을 통해서 쓰지 않게 했을까요? 그 이유는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열두제자들과 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열두제자들이 사도바울을 싫어했습니다. 왜냐면 바울이 그들을 핍박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류계급인 열두제자들이 바울이 크리스천이 되었을 때 환영을 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바울이 받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이게 다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리 훌륭한 하나님의 종이지만 그 속에 이런 상처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상처를 바울이 갈라디아서2장에서 그것을 표출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이런 편견과 상처를 가지고서 열두제자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또 그들과 예수님과 같이 다녔던 예수님의 이야기들을 처음30년 이야기들을 또 베드로에 관한 집중적인 사도행전에 1장부터15장까지의 이야기들을 바울이 쓴다면 편협 적으로 또는 편파적으로 볼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글을 쓸 때 성령님의 조명이 바울에게 내려오지만 자기 속에 있는 쓴 뿌리와 연계되었을 때는 이것이 순수한 말씀으로 전파되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특히 이분들과 관계성에서 볼 때 성령님이 바울아 너는 안 되겠다. 그러니까 바울도 온전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너는 안 되겠다 그 대신에 너 옆에 있는 누가가 훨씬 낫겠다. 누가는 역사적인 개념도 가지고 있는 분이고 글도 잘 쓰고 또 너를 따라다니면서 많이 배웠다 그러니까 누가에게 이것을 맡겨라 아마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래 나는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쓸 테니 너는 그동안에 연구하고 자료수집한 모든 것들 사람들과 인터뷰해서 받은 모든 자료들을 가지고 또 내가 너에게 가르쳐준 것들을 가지고 그다음에 기도 가운데 주님이 조명해주시는 것들을 가지고 잘 엮어봐라 
그러면 왜 누가가 썼냐면 첫째 바울은 열두제자들과의 관계 때문에 하나님이 쓰지를 않으셨다는 겁니다. 누가는 아까 말한 대로 자격이 되는 사람입니다 교육수준도 높고 또 연구가고 표본조사 가입니다 분석가고 선교사고 또 저자로 글 쓰는 사람입니다 그다음에 복음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분입니다 선교마인드가 투철하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누가를 이렇게 쓰신 것 같습니다 세 번째로 이분의 성품을 보면 상당히 객관성을 띄고 있는 사람입니다 객관성을 띄고 있으면서 상당히 예리한 성품입니다
이분이 열두제자들을 잘 모르는데도 그분들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분들의 사역을 아주 객관적으로 썼습니다. 그분들이 자기 선생님인 바울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것도 압니다. 그걸 알면서도 객관적으로 아주 조금도 편견을 가지지 않고 썼습니다. 성령님이 조명해서 그랬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기 선생님과 조금 서먹서먹한 관계에 있는 베드로인데도 성령님이 너 베드로가 대단한 분이라는 것을 자꾸 말씀하신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에 대해서 사도행전1장부터 15장가지 베드로의 사역을 집중적으로 조명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베드로를 높이셨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바울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나머지는 바울에 관한 사역을 쫘악 쓰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누가는 두 어른을 성령님께서 들어 올리는 격려시켜주는 일을 했습니다. 다른 유명한 분들도 많겠지만 두 지도자들을 그분들의 사역에 초점을 맞추어가지고 성령님이 쓰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두 분을 초점을 맞추어서 아주 자세하게 쓰시면서 그분들과 성령님께서 함께 하셨고 성령님께서 그분들을 사용하는 이야기를 쪼악 써주었습니다. 아주 격려하고 화평케 하는 그러한 일을 했습니다.
이분은 그러면서도 아주 예리해가지고 세 번째로 뭐냐면 예리한 판단력을 가지고 어떤 때는 집고 넘어가야 될 때는 비평하는 판단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보면 예루살렘교회가 이방선교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집고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열두제자들도 특히 베드로도 사도행전1장8절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다는 것을 집고 넘어갔습니다. 유대인만 생각하지 이방인에 대한 생각이 약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무엇을 이야기하느냐면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 가가지고 그것도 가기 싫은데 억지로 간 겁니다. 이방인이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을 세 번 먹는 환상을 봤습니다. 그래가지고 고넬료 집에 가서 설교를 하는데 오순절다락방사건이 일어나니까 이방인들도 이런 걸 경험하는가? 해가지고 베드로도 놀랬고 베드로를 따라 다녔던 분들도 다 같이 놀랬다는 그런 것을 써놓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방인인 누가가 예루살렘교회교인들이 이방인사역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지적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은 이방인이니까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누가가 사도행전9장에 보면 사도행전7장8장에도 나오지만 자기 선생님인 바울이 스데반을 죽일 때 죽이는 역할을 했고 9장에서는 자기 선생님이 다메섹에서 크리스천들을 죽이려고 하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혼쭐이 났다는 이야기까지 다 써놓았습니다 자기 선생님스토리를 그러면 누가 말했겠습니까? 분명히 자기 선생님인 바울이 가르쳐주었을 겁니다. 
그걸 그냥 적나라하게 써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예루살렘교회의 약한 부분을 지적하고는 진정한 의미의 교회는 안디옥교회라는 것을 이분이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안디옥교회의 선교과정을 주욱 설명해주고 이렇게 이분이 하셨습니다. 그다음 제목으로 서술형식에 대해서 한번 보겠습니다.
이분이 글을 쓸 때 어떻게 쓰는가? 특히 누가복음9장51절부터19장44절은 큰 부분인데 이 내용은 다른 복음서의 내용과 형식이 다릅니다.
여러분들의 눈으로 보면 잘 모르지만 학자들의 눈으로 볼 때 다릅니다.
누가복음은 또 사도행전은 다른 복음서보다 단어선택이 아주 다르고 문장구조와 문장형식이 다르면서 아주 탁월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이분이 독자들을 생각하면서 항상 글을 씁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이런 성품의 사람에게 조명해 준 겁니다 이게 다 성령님이 쓴 것이지만 누가가 쓴 게 아니지만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그런 그릇이 있는 사람에게 성령님이 조명해주는 겁니다. 누가는 글을 쓰면서 이게 이해가 되어야 되겠다. 하면 어떤 때는 반복을 해줍니다. 꼭 반복을 해줍니다. 똑같은 말로 반복할 때도 있고 안 그러면 다른 표현으로 변형시켜서 또 설명해줍니다 아주 특수한 서술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스토리가 쫘악 나가다가 이제 한 단원이 끝났다 그러면 그 단원제일 끝에다가 소결론을 내려 줍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읽기가 아주 편하고 이해하기가 아주 편합니다. 예를 들면 세례요한에 관한 이야기인데 누가복음1장80절에 그랬습니다. 아기 때 예수님의 이야기인데 1장 끝나면서 세례요한이야기로 결론을 내려줍니다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 까지 빈들에 있으니라 이렇게 결론을 내려줍니다.
다른 복음서에도 사도바울도 이런 식으로 글을 안 써는 겁니다.
또 누가복음2장40절에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이것도 소결론입니다 그다음에 2장52절을 보면 여기에 대한 결론을 또 내리는 겁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이렇게 결론을 내려 주는 겁니다.
사도행전도 보겠습니다. 누가복음은 사도행전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2장47절에 오순절다락방사건이 일어나고 3천명이 회개하고 그래서 교회가 서로 모여서 기도하고 떡을 떼며 서로가 재미있게 지내더라는 결론을 47절에 내렸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그랬습니다, 그리고 가다가 4장4절을 보면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주욱 나가다가 그 스토리의 결론으로 내려주는 겁니다. 또 5장11절을 보세요. 아나니아와 삽비라이야기까지 끝나다가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그랬습니다. 5장16절을 보세요. 예루살렘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5장42절을 보세요.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6장7절을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그리고 주욱 나가다가 8장25절을 보세요.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9장31절을 보세요.
사도바울이 다메섹에서 회심하고 그 후에 이야기입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이렇게 나가는 겁니다. 
12장14절25절을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이렇게 하면서 13장에 들어가서 안디옥교회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나오는 겁니다. 이렇게 이분의 문장구조나 스타일을 보면 어느 정도 설명하고는 결론을 내려주고 그럽니다. 제목을 또 바꾸어서 누가복음의 특징 열 가지를 보겠습니다.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과 차이점이 열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이것은 역사책입니다 두 번째 문학적으로 우수한 책입니다
세 번째 이방인의 시각으로 쓴 책입니다 네 번째 당시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인정받았던 책입니다 다섯 번째로 전도와 선교마인드를 기록한 책입니다.
여섯 번째 예수님을 인자라는 용어를 반복해서 사용해서 쓴 책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인성 쪽에 집중을 많이 한 책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관복음이라 그러는 겁니다. 그다음에 일곱 번째로 누가는 특별히 성령님의 역사에 대해서 아주 강조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는 사도행전보다는 덜하지만 그의 전체가 성령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누가는 성령 쪽에 아주 강하게 강조를 하는 분입니다 여덟 번째로 누가는 예수님의 족보를 마태복음과 다르게 쓰셨습니다. 지난시간에 봤지만 요셉의 조상이 아브라함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아브라함 다윗 요셉 이렇게 나옵니다. 남성위주로 그리고 이스라엘사람위주로 쓴 겁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아닙니다. 누가는 접근방법을 거꾸로 썼지만 시작은 예수님부터 시작하지만 끝은 아담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은 예수님의 인성을 강도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아담으로 끝을 맺습니다. 거기다가 누구의 족보냐면 누가복음에 나오는 족보는 마리아의 족보입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여자에 대해서 강조를 합니다.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러니까 이분은 이방인으로써 그 당시에 약자들 가난한 사람들 여자들 과부들 고아들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사회복음 쪽입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 요한복음도 그렇고 마태복음 마가복음을 보면 사회복음 쪽이 조금 약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은 사회복음 쪽에 예수님의 인성을 중심으로 한 사회복음 쪽에 이분이 집중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성서는 종합성서기 때문에 어떤 한 저자가 바울이나 마태나 요한이나 이런 사람들이 사람이 다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릇이 그분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그분의 그릇사이즈만큼 이미 주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가지고 있는 않는 부분은 다른 분에게 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이 저자가 그렇게 많은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면 모든 저자의 것을 다 소화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저자의 배경을 알아야 되고 그 저자의 교육수준과 문화수준을 다 알아야 됩니다.
알아야지만 그걸 소화하면서 전부 종합해서 할 때 하나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아홉 번째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열 번째는 고난주일을 상대적으로 덜 강조했습니다. 제가 지난번에 데이터를 드렸잖아요. 누가복음은 24장중에 21%밖에 안 됩니다 지난시간에 우리가 봤지만 마가복음은 고난주간의 스토리가 38%입니다 마태복음은 전체의 28% 요한복음은 우리가 나중에 보겠지만 그의 절반으로 48%입니다
그의 50%가 예수님의 예루살렘입성부터 마지막 예수님의 십자가사건 부활사건 까지를 요한복음 전체의 절반정도를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약20% 밖에 안 됩니다 그만큼 이분의 초점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이쪽 보다는 다른 부분에 초점이 갔습니다. 4복음서 중에서 누가복음에만 기록한 내용이 있습니다. 이것은 여기만 있는 겁니다, 누가가 이런 부분에서 상당히 특수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다음시간에는 마가복음을 볼 텐데 마가복음하고는 또 다릅니다. 1장에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예수님보다 먼저 나오는 게 세례요한이 출생할 것을 예언하고 그분이 출생했고 예수님이 탄생할 것을 예언하고 마리아이야기부터 자세하게 나옵니다. 
그다음에 예수님이 탄생했고 2장에 가서는 그 유명한 목동과 천사들이야기 이게 다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자세한 이야기도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하여 예언한 게 시므온이 예언하고 안나가 예언하고 하는 이야기들 예수님의 열두 살 때 성전에 가서 선생들과 대담하는 이야기들 다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겁니다.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뭐냐면 나사렛 자기 고향에서 배척당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그다음에 비유 중에서도 등불의 비유 그다음에 사마리아사람들과 대립하는 이야기 그다음에 마태복음은 열두제자를 파송했다고 나오는데 누가복음에는 70인을 파송했다 어떤 성서 원어에는 72인이라고도 나옵니다. 그래서 70인 또는 72인 또는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이야기도 다 누가복음에만 나옵니다. 그다음에 화있을 진저가 마태복음에는 7개였는데 이분은 모양을 달리해가지고 여섯 번을 말했고 그다음에 어리석은 부자에 관한 이야기 돈 많은 사람을 꾸중하는 이야기와 시대적인 분별력도 없다는 이야기로 회개하라 그다음에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안식일에 귀신들려 가지고 18년 동안 꼬부라져가지고 펴지 못하는 여자를 치료하는 안식일의 이야기 그다음에 좁은 문 이야기가 마태복음에 나오는 이야기와 조금 다르게 나옵니다. 14장에 안식일 날 병 고치는 이야기 그 다음에 겸손에 대한 교훈 가난한 자, 다리 저는 자, 앉은뱅이, 소경 이 사람들을 초청해가지고 예수님과 서로 교제하는 이야기 그다음에 14장에 유명한 제자가 되려면 처자식 다 미워해야 되고 하는 제자 도에 관한 이야기가 14장에만 나옵니다. 
그다음에 15장은 유명한 잃어버린 은잔의 비유를 하면서 그다음부터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비유 이런 것을 누가만 쓴 겁니다. 16장에 가서는 옳지 않는 청지기이야기도 그렇고 그다음에 그 유명한 부자와 나사로이야기도 다 누가복음에만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브라함의 품과 음부에 관한 이야기 17장에 가서는 회개하는 자는 용서해주고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어야 된다고 그러고 그다음에 문둥병자가 열 명이 병을 고쳤는데 한 명만 와서 감사한다는 이런 이야기도 다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겁니다. 
그다음에 끈질긴 과부이야기 나쁜 재판관이 재판을 잘못해서 이 여자가 그 집에 가서 밤을 새는 이야기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이야기 그다음에 19장에 예수와 삭개오 이야기 은 열 므나의 비유도 나오고 그다음에 24장에 가서는 예수님이 부활한 후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이야기가 다른 복음에는 없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로 가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분은 갈릴리에 가시기 전에 예루살렘에서 여자들을 만났습니다. 
이런 것들이 누가복음에는 자세히 나옵니다. 그리고 승천한 이야기도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누가복음이 대단한 복음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이 포괄적인 산학총서입니다 이분이 예수님의 인성을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하나의 매인 이슈가 아닙니다. 이분의 매인 이슈는 기독론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동정녀로 탄생하셨다 메시아다 그리스도다 시므온 안나가 예언했고 또 예수님은 선지자다 첫째는 기독론입니다
두 번째는 뭐냐면 기독교역사론을 전개한 사람입니다 1권을 쓰시고 2권을 쓰시고 그다음에 세 번째는 이분은 전도와 선교론을 강조했습니다. 
아까 말한 대로 문서선교 대량으로 보급하는데 신경을 썼습니다. 
누가복음에는 7병2어가 없습니다. 5병2어는 있는데 7병2어는 마태복음에만 있습니다. 그렇지만 5병2어도 선교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사마리아인을 우대하는 것도 이방인을 우대하는 겁니다. 70인을 파송하는 것도 선교와 관계되는 것입니다 아들비유도 다 선교와 전도와 관계되는 일입니다
네 번째는 구원론입니다 구원론에 관한 이야기는 굉장히 많습니다.
그중에 요나의 표적이야기도 이분이 하셨습니다. 11장29절에서 32절에 구원론에 관한 성구들은 15개 정도 됩니다. 다섯 번째로 성결 론입니다 
성결 론을 강조했습니다. 이분이 산상수훈을 마태복음5장6장7장에 나오는 이야기를 줄어가지고 표현방법을 바꾸었습니다. 산상수훈을 6장220절에서 49절까지입니다 어떤 분은 누가의 산상수훈과 마태의 산상수훈은 다른 거다. 하는데 다른 게 아닙니다. 같은 산상수훈인데 성령님이 누가에게 다르게 조명시켜서 보여준 겁니다. 여섯 번째는 성령 론입니다. 성령 론은 굉장히 강합니다. 그기에 나오는 성구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일곱 번째로 이분이 아주 강한 것 중에 하나가 사회복음 론입니다 누가복음에만 이것이 아주 꽉차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 어리석은 부자이야기 가난한자 다리 저는 자 앉은뱅이 소경 이런 사람들을 초청해서 예수님과 관계 맺는 이야기 부자와 나사로이야기 그다음에 문둥병자 열 명 치료해 준이야기 끈질긴 과부이야기 다 사회복음입니다 과부의 헌금이야기도 있고 바리새인과 세리이야기 이런 모든 이야기들은 사회복음과 관계있습니다. 불쌍한 사람들 병든 자들 소외된 자들 여자들 가난한자들 이런 사람들을 돌봐주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여덟 번째로 이분의 특색 중 하나가 여성우대 론입니다 
이분은 마리아족보로 시작합니다. 안나 선지자이야기를 초창기부터 하고는 여자의 우대 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끈질긴 과부도 대단한 여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다른 복음에는 여자를 우대하는 이야기가 그의 없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이런 부분에서도 통이 큰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누가가 통이 크다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크신 부분을 다른 사람들은 한 부분 한 부분 이야기했는데 이분들이 다루지 않는 이런 부분들을 다시 다루어서 우리가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겁니다. 아홉 번째로 제자 론입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희생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를 사랑하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겁니다. 그래서 부모나 처자나 형제나 아이들이나 이런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라는 겁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희생이 따를 것을 14장25절에서35절에 말씀하시고 9장57절에서 62절에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종말론입니다 12장35절에서48절에 마태복음에 나오는 감람산설교를 이분이 참고로 해가지고 그것을 잘 정리했는데 누가복음에는 그걸 안 집어넣었습니다. 감람산 설교 마태복음에서 휴거 받을 사람들의 일곱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누가복음에는 안 썼습니다.
그리고 소제목으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중요성입니다 누가가 쓴 두 책이 왜 중요하느냐면 바울서신13권을 해석하려면 이 두 복음이 기초문헌으로 꼭 필요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바울신학을 이해하려면 누가가 쓴 두 책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두 번째로 이 두 책이 없으면 초대교회교부들의 모든 문헌들을 이해하는데 그의 힘들어 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분을 사용하셨는데 문제는 기독교의 역사기록 책인데 (1세기 기독교역사기록 책) 1세기 동안에 중요한 기독교역사들을 처음60년 까지는 누가가 기록했습니다. 
누가가 주전4년 예수님부터 시작해서 주후30년까지 누가복음에 주후30년부터 주후62년까지 사도행전에 기록했는데 그 후에 기독교의 역사가 분명하게 기록한 책들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도바울의 그 후에 문헌들을 보면 63년부터 68년까지 사도바울이 쓴 책 세권이 디도서 디모데전후서 이 세권을 보면서 연대순으로 안 되어 있지만 어느 정도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후80년 까지 역사를 대강 짐작은 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문헌들이 많지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베드로가 언제 순교했습니까? 이러면 까릿까릿 한 겁니다. 그러니까 보통 64-65년에 순교했습니다.
이렇게 추정을 하지만 그기에 대한 분명한 문헌들이 없는 겁니다.
아쉬운 것은 누가가 언제 주님나라에 갔는지 모릅니다. 이분이 더 오래 살아가지고 100세까지 살았으면 아주 기가 막힌 역사책을 만들었을 텐데 저는 그기에 대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였냐면 하나님은 이런 방법을 썼습니다. 그 당시에 유대인 중에서 유대역사를 아주 기가 막히게 쓴 유명한 유대역사가가 있었습니다. 요세푸스라고 요세푸스라는 사람은 100년 동안의 역사를 비 기독교인으로써 자세하게 이스라엘역사를 썼습니다. 그가 쓴 역사 속에서 누가가 쓴 모든 내용들이 뜨문뜨문 나오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사건 승천사건 이게 요세푸스가 쓴 역사책 안에서 나오는 겁니다. 기독교인이 아닌데 그래서 역사가들은 사물을 볼 때 정확하게 보고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써야 되잖아요. 요세푸스가 그렇게 쫘악 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요세푸스의 문서를 보고는 아! 1세기 때 기독교역사 이게 진짜구나 역사성이 있구나. 누가가 쓴 이게 진짜구나라고 주님께서 이렇게 뒷받침을 해주는 겁니다. 누가가 쓴 이것을 우리는 믿지만 딴 분들은 안 믿을 수 있잖아요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객관성이 없다 이것은 너 네들끼리 크리스천들끼리 한 게 아니냐. 그런데 요세푸스가 쓴 책을 봐라 하면서 말하면 이게 딱 들어맞는 겁니다. 이제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기록문화입니다 기록문화의 중요성입니다 우리하나님께서는 우리인간들에게 모든 사건들을 기록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이때도 보면 다 기록했잖아요.
구약도 보면 주님의 종들을 통해서 다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나 유대문화는 기록문화입니다 기록인데 여러 차원에서 기록문화입니다 역사적인 차원에서도 기록하게 하시고 시적인 차원 예언적인 차원에서 기록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타종교를 보면 기록문화가 약합니다.
힌두교 같은 데도 보면 그분들의 경전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경전을 베다(vede)라 그럽니다. 이 사람들의 문헌을 보면 제가 목사지만 그분들을 문서를 읽습니다. 왜냐면 어떤 힌두학자들이 베다 문서 속에 예수님의 보혈사건이 있다고 하여서 제가 그걸 보고 있는데 베다는 기록을 잘 해놓았는데 그 후부터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힌두교도 종교가 전부다 구술 구두전승으로 종교가 지금까지 이루어지니까 이게 단단하지 못하는 겁니다.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교경전이 있지만 우리기독교처럼 이렇게 잘 되어 있지 않거든요 대부분이 구두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구두전승입니다
이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호메트가 메시지 받았다 그래서 쓰기는 썼지만 마호메트가 쓴 것은 제가 볼 때는 별로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이 하디스라고 그래가지고 구두로 해놓은 겁니다. 마호메트가 써놓은 것도 적당히 써놓은 것이 많고 기록문화가 엉망입니다 그래서 코란을 보면 앞뒤가 안 맞고 정말 답답합니다. 그걸 믿는 걸 보면 그게 사탄의 문이니까 그게 보이죠. 앞뒤가 안 맞는데 그걸 제가 이슬람강의 한 게 있습니다. 그걸 한번 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니까 기독교문화는 하나님의 문화는 문서로 만들어가지고 그것을 다 보관하게 하는 문화입니다 그래서 서양기독교문화는 도서관시스템이 기가 막히게 되어 있습니다. 장서시스템이 그래서 모든 데이터들이 수 천 년 전 데이터들이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 같은 곳도 미국하버드대학교가 유명한 이유 중에 하나가 하버드대학에 도서관이 제일이기 때문에 유명하다는 겁니다. 하버드대학도서관에 책이 1500만권이 있다는 겁니다. 
세계에 휘귀문서들은 다 그기에 있고 어떤 데이터라도 찾아보려면 그기에 다 있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로 미국의 국회의사당 도서관입니다
그 안에 세계 모든 게 다 들어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은 이런데 철저합니다. 예일대학교가 하버드대학 다음이라고 그러는데 예일대학교도서관은 장서숫자가 800만권으로 뚝 떨어집니다. 1500만권에서 800만권으로 그만큼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중요한 보물단지 책들은 국회의사당 아니면 하버드대학도서관 속에 숨겨져 있는 겁니다. 우리한국문화는 제가 이렇게 보면 우리는 불교 유교문화기 때문에 기록문화가 아닙니다. 
심지어 100년 전 역사도 우리가 제대로 가지고 있지 않고 100년 전 기독교의 역사를 보려면 그 당시에 미국 영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왔던 선교사들이 일기를 쓰면서 모아놓은 것들이 요즘도 가끔 발견이 되는 겁니다.
그분들이 쓴 일기가 그 후손들이 가지고 있다가 우리할아버지 우리할머니 하면서 요즘도 나타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걸 보면 그 당시에 우리가 어떻게 하였구나. 우리나라문화가 정치하는 사람들이 기록을 해놓지 않는 겁니다. 사진도 없고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이런 부분에서 선진국이 되려면 기록을 잘 해야 된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AMI사역을 제가 하면서 우리스텝들과 선교사들에게 항상 강조합니다. 언젠가는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텐데 기록해놓자 그래서 제가 선교사들보고도 그럽니다. 매일 읽기를 쓰라 나중에 10년20년 후에 그걸 보면서 우리가 하던 일들을 우리후손들에게 넘겨주고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섬겼다는 것이 나타나지 않느냐 사진을 많이 찍어 놓고 글을 쓰라고 강조를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꾸 글을 쓰서 남겨놓고 일기에도 제가 그 생각을 하면서 자세하게 다 써놓습니다. 제가 죽은 후에 누가 보면 아! 그 당시에 황 목사님이 어떻게 살았구나? 하는 것을 기록으로 남겨놓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우리아이들 보고 그랬습니다. 너희들 아빠가 일기를 쓰고 있으니까 내가 나중에 주님나라에 가면 너희들이 언젠가는 아빠를 기억하고 아빠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으면 일기를 보면 다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그 중에 일부가 AMI이야기입니다 기록을 해놓아야 되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우리스텝들에게 항상 그럽니다. 사진 찍어 놓으라. 앞으로 10년20년을 생각하면서 사진 찍는 겁니다. 10년 후에 20년 후에 우리후손들이 보고는 아! 그때 우리아무개권사님 그 할머니가 그래도 젊은 할머니였네 지금은 90인데 이런 역사적인 생각을 하면서 사진도 많이 찍어놓고 이런 역사적인 사상을 가지라는 겁니다. 누가는 그걸 가졌잖아요. 
그래서 누가복음을 우리가 이렇게 공부하면서 누가는 이런 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이렇게 멋있는 글을 썼구나. 그리고 이분의 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느냐 그래서 우리도 이런 역사적인 개념을 가지고 앞으로 우리 남은여생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은 역사의 주인이 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고 역사를 펴시는 분이시고 또 마무리하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한 피조물로서 역사의 한 구석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통해서 하시는 일들을 경험하며 그 경험이 이제는 누가처럼 기록으로 남기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가정생활을 하면서도 자녀들에게 기록으로 삶을 남겨주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도록 하시고 사진으로 글로써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이렇게 남기면서 우리의 모습을 우리가 어떻게 살았느냐를 글로써 일기로써 자녀들에게 나누어주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누가복음을 생각하면서 이러한 성숙된 크리스천으로 발전되기를 소원하면서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NJgSFIjrcE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