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현목사 강해설교 녹취록/인간론

17강 고린도전서12장8절-12절, 성령의 은사론(1)

변명섭 2021. 2. 9. 10:35

인간론 17강, 성령의 은사론(1)(고전12:8-12)

성령의 기름 부으심에 대하여 계속 말씀드렸는데 오늘부터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연관이 있는 성령님의 은사 론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성령의 은사 론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분도 우리가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우선 성령의 은사라 그러면 영어로는 the gift of the Holy Spirit 그러는데 열매는 fruit 인데 그냥 단수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왜 은사라고 하느냐면 한국말로는 은사라고 그랬지만 영어로는 gift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그냥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의 무료선물로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임해야지만 그래야지만 은사가 뒤에 따라옵니다, 은사가 가만히 앉아서 임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과 역사가 있어야지만 됩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지난시간에 계속해서 성령의 그름 부으심을 계속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베드로를 예를 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가 성령의 기름 부으심 예컨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성령세례라고도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성령세례를 받은 후에 베드로가 오순절에 이분의 지혜의 은사가 생기고 지식의 은사가 생기고 또 가르치는 은사도 생겼고 설교하는 은사도 생겼고 예언하는 은사도 생기고 병 고치는 은사, 기적을 일으키고 또 지도력을 발휘하는 은사들이 베드로에게 임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베드로 예를 봐도 알겠지만 이런 은사들이 베드로에게 임한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은사라는 것을 몇 가지 이야기하면서 도대체 성서에서는 은사라는 것을 몇 개를 주었나, 이겁니다,

그래서 은사의 종류가 상당히 많습니다, 약30개 정도가 됩니다, 30가지의 은사들이 있습니다,

30가지의 은사가 있는데 이 은사들을 웬만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 받아야 되거든요 그런데 은사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한 성경의 장수가 몇 곳에 있습니다, 특히 고린도전서12장은 은사 장으로써 아주 유명한 장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린도전서13장하면 사랑장이였잖아요, 이와 같이 고린도전서12장하면 은사장입니다 5절과6절에 보면 이런 게 있습니다,

은사는 다 한분이 주시는 건데 이게 한 성령님이 주시고 한 예수님이 주시는 거다 이겁니다,

삼위하나님이 주시는 건데 그런데 은사의 직임이 다 다르다는 겁니다, 직임은 서비스라는 말입니다,

서비스가 다르고 다시 말하면 하는 일이 다르다는 겁니다, 직임(서비스)이 다르다는 겁니다,

은사는 직임만 다른 것이 아니고 또 역사하는 것이 다르다는 겁니다, 역사한다는 것이 뭐냐면 하는 일이 다 다르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실제로 역사하는 모습이 다 다르다는 겁니다, 성령의 은사가30가지가 다르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선 저희들이 30가지은사가 성경에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을 우리가 하나하나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들을 많이 명시한 곳이 고린도전서12장8절에서12절을 보면 성령의 은사가 9가지로 대표적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성경을 봐도 좋고 안 보셔도 괜찮습니다, 제가 하나하나 적어 드리겠습니다,

첫째 지혜의 은사입니다, 두 번째는 지식의 은사입니다, 세 번째는 믿음의 은사입니다, 이런 지혜와 지식과 믿음은 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다음에 병 고치는 은사 다섯 번째는 능력행하는 은사 다시 말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은사 여섯 번째는 예언의 은사가 있습니다, 일곱 번째는 영을 분별하는 은사가 있고 그다음에 여덟 번째는 방언의 은사가 있고 아홉 번째는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가 있습니다, 이게 다 은사들입니다,

지혜. 지식. 믿음. 병 고치기. 능력 행함. 예언. 영분별. 방언. 방언 통역 이렇게 고린도전서12장에 은사들 9가지를 기억해 주시기를 바라고 그다음에 대표적으로 은사가 있는 곳이 로마서12장6절에서8절에 보면 열 번째가 가르치는 은사입니다, 그다음에 권위 한다, 안위시켜준다 격려하여주는 입을 열면 힘을 주고 그런 말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열세 번째로 남을 구제해주는 은사가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열네 번째로 다스리는 치리를 잘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열다섯 번째로 긍휼를 베푸는 겁니다, 항상 이웃을 불쌍하게 여기는 그러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그다음에 열여섯 번째로 손 대접을 잘하는 분 항상 자기 집을 열고는 손님대접 잘하고 우리 교인들 중에서도 자기 집에 교인들을 초대해서 먹이고 하는 이런 분들도 그 중에 있습니다, 그다음 열일곱 번째로 성도의 쓸 것을 잘 공급해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로마서12장에 보면 일곱 개의 은사가 있는데 고린도전서12장과 연결되는 은사가 무슨 은사냐면 예언의 은사도 로마서12장에서도 말했습니다, 이것은 이미 고린도전서12장에서 예언의 은사가 있다고 했으니까 숫자를 메길 필요가 없습니다, 그다음 세 번째 성경에서 은사를 말하는 곳이 어디냐면 에베소서입니다,

에베소서4장11절에 열여덟 번째 사도직을 하는 것도 은사라 그랬습니다, 사도는 지도자인데 역사적인 눈을 가지고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그런 분들을 사도라 그랬습니다, 그다음에 선지자들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다음에 목사들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한국교회에서는 신학교 나오고 은혜를 받으면 다 목사라고 생각하는 개념입니다, 어떤 부분에서 보면 비 성서적입니다, 목사라는 말은 뭐냐면 양들을 치는 목자라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목자로써 교인들을 키우고 양들을 키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이고 또 이렇게 울타리를 쳐가지고 그분들이 다른데 가지 못하도록 이리에게 잡혀 먹이지 못하도록 보호해주고 하는 그러한 역할을 하는 분이 목사입니다,

신학교 나왔다 해서 다 목사는 아닙니다, 신학교 나온 전도사님 중에서도 앞에 나온 모든 은사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목사가 되어야 된다는 그 개념이 성서적으로 맞지가 않습니다, 많은 은사 중에 한 부분입니다,

그다음에 스물한 번째 교사가 있습니다, 남을 가르치는 일을 전적으로 하는 분들 풀타임으로 전임으로 남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분들 이런 분들은 교사라 합니다, 스물두 번째 전도자도 이 분은 자기교회가 없고 소속은 있겠지만 이곳저곳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분들도 우리 주변에 가끔 있습니다,

선교사도 여기에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다, 한군데 머물려있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다음에 고린도전서12장28절에서31절에 보면 예컨대 앞에 나온 것들을 다 이야기했습니다,

사도, 선지자, 교사, 능력행하는 자, 병 고침, 다스리는 것 이런 것이 여기에 다 나옵니다,

그러면서 앞에 나오는 것 중에서 없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뭐냐면 서로 돕는 일을 도모하는 자 이 사람이 그렇다는 겁니다, 또 베드로전서4장11절에 보면 스무네 번째로 봉사를 잘하는 사람 그다음에 경영을 잘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은사를 가진 자들이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다 합해서 약30개입니다,

이렇게 우선 아시길 바랍니다, 그러니까 지금우리 모두가 이런 30개 은사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가지고 있다고 하면 이상하지만 내 속에 구원을 주신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이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이기 때문에 우리 속에 이 은사30가지가 다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이것을 모든 사람에게 다 들어놓지를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일부를 주고 어떤 사람에게 일부주고 그렇습니다, 그러면 제목을 바꾸어서 은사는 누가 받는가, 입니다, 이 30개의 은사들을 누가 받느냐 어떤 지침에 의해서 은사를 주느냐 입니다, 그런데 특별한 지침이 없습니다,

특별한 지침이 있어서 주는 게 아니고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딱 보시고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겁니다, 어떤 한 사람에게가 아니고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겁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12장11절에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각 사람들을 하나님이 보고는 저 사람에게는 내가 뭘 주어야겠구나, 저 사람에게는 내가 뭘 주어야겠구나, 이렇게 해서 은사를 나누어주시는 겁니다,

고린도전서12장11절에도 있지만 18절에도 똑 같은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가 원하는 대로 이렇게 은사를 주신다,

그랬습니다, 다시 제가 정리하면 은사가30가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냥 무료로 주는 것이기 때문에 기프트(gift)라 그럽니다, 내가 이렇게 잘나서 안 그러면 내가 특별히 어떤 부분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잘 봐서 이런 게 아니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저 사람에게는 어떤 은사를 주어서 어떤 일을 이루시겠다, 그런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거기에 의해서 은사를 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은사를 왜 나누어줄까요, 소위 다양성 나누어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하나님이 은사를 가지고 그러시겠습니까, 하나님은 항상 관심이 뭐냐면 사람이 교만하지 못하게 어떤 사람이 모든 은사를 다 가지면 예를 들어서 제가 예언도하고 방언도하고 병도 고치고 또 봉사도 잘하고 구제도 잘하고 말씀도 잘 전하고 지도력도 있고 비전도 있고 하여튼 여기 있는 걸 다 가졌다고 생각하면 제가 얼마나 교만하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시고 황 목사야 너는 목사로써 너는 선교사로써 또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써 너는 이것 이것만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선교지에 나가 다니니까 너는 이런 이러한 것이 더 필요할거다 그렇지만 나머지는 너가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예컨대 중보기도은사 같은 것은 제가 시간이 없어서 하루 종일 남을 위해서 중보기도 못 하다잖아요, 그런 걸 그런 걸 또 다른 사람에게 주시는 겁니다, 또 섬기는 은사 같은 것 이런 것도 다른 분에게 주시는 겁니다,

그다음에 구제하는 은사나 또 긍휼을 베푸는 은사가 저에게 있나 모르겠습니다, 조금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다음에 영 분별하는 은사가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또는 성도가 쓸 것을 공급해주는 은사가 있습니까,

저에게는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중에는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쓸 것을 미리아시고 준비하고 섬김을 잘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걸 하나님께서 다 하시는 겁니다, 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고 다양성으로써 이사람 저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두 번째는 뭐냐면 하나님의 취향이라고 할까요, 하나님의 취향이 뭐냐면 다양성으로 지연을 봐도 하나님은 다양하게 만드셨고 또 우리 사람을 봐도 다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사를 주실 때도 여러 사람에게 다양하게 주십니다, 왜 그럴까요, 자영질서를 보면 다양 속에서 사계절이 있고 모양도 다 다르고 온도가 다르면서 그 안에 조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 속에서 조화를 하나님이 아주 좋아하십니다,

다양 속에서의 조화 그래서 영어로 Harmony in variety 다양 속에서 조화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엄청나게 좋아하시고 이것이 하나님의 취향입니다, 모든 게 다 한 색깔이고 한 모양이고 하나가 되는 걸, 주님이 원치를 않으십니다,

다양 속에서 하나가 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이 개념을 우리가 철저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면 우리가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이 다 다른 은사를 주신 사람들을 앉혀놓았습니다,

가치공동체에서 삶을 살게 하려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뭘 요구하십니까, 서로서로 조화를 잘 이루도록 하시는 겁니다,

그것을 뭐라고 말합니까, 화평케 한다, 그러는 겁니다, 화평케 한다는 말을 할 때는 그 속에는 다양성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놓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것을 우리가 일단락하면서 하나님의 취향이 그렇다는 것을 전제로 해놓고 신앙 생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이 넓어집니다, 아하 하나님은 이런 다양성을 요구하시는 분이시구나 그런데 그 안에서 조화를 원하시구나, 그러니까 내가 그 조화를 잘 이루도록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지 그것을 잘 하는 분을 하나님이 굉장히 사랑하십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마음에 열람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칫하면 내 스타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스타일이 있어서 나와 스타일이 다른 사람을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고 신앙 생활을 오래해도 주님이 보실 때는 아니다,

라는 겁니다, 고집이고 자만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혼의 모습이 사회경험을 많이 하고 잘 정돈이 되면 다양성을 엔조이합니다, 그리고 다양성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고 엔조이하십니다,

그래서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덤벼들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은 힘듭니다,

그것을 조금 넓히면 내 민족 안에서 편안하고 타민족이 있을 때는 싫어하는 그런 사람들도 똑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꼭 잊지 말아주시길 바라고 마귀는 어떻게 하나님의 취향에 반대역할을 할까요,

마귀의 작전은 마구는 거꾸로 다양성을 역이용합니다, 그래서 다양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창조가 다양성을 가지고 잇기 때문에 다양성을 가지고서 서로 싸우게 하고 혼돈하게 하고 하는 것이 마귀의 전략입니다,

다양성은 우리가 꼭 인정하게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서론적인 말씀이지만 이 정도 하시고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사로 주신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는가, 이 부분을 우리가 잘 이해하면 앞으로 제가 설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고린도전서12장7절에 있습니다,

이게 뭐냐면 자신과 교회에 유익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이 개념을 우리가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에베소서4장12절에서 어떤 부분에서 유익을 주느냐면 내가 가지고 있는 은사를 가지고 주변에 있는 우리 크리스천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일을 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목적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 이렇게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은사를 주신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라고 이 말은 제가 다음시간에 자세하게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이 목적을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봅시다, 성도를 온전하게 한다는 것은 성도를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잘 키워서 봉사의 일을 많이 해주고 서로 도와주고해서 성도가 자라는데 그렇게 하므로써 그리스도의 몸이 몸이라는 것은 교회를 예수그리스도의 몸이라고 그럽니다, 교회가 잘 세워지게 하는 목적이 있다는 겁니다,

30가지의 은사를 준 목적이 거기에 있다는 겁니다, 다른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고 예컨대 그 은사를 가지고 내가 영광을 위해서 쓴다든가 또는 나의 욕심이 들어가 있다든가 나와 관계되는 나의 이해관계와 관계되는데 은사를 쓰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은사의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첫째 은사가 방언의 은사가 있습니다,

방언의 은사는 14장2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께 하는 거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아듣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방언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덧을 세우기 위해서 방언을 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방언은 내가 영적으로 자라나는데 도움이 되는 나를 위한 은사라는 겁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은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방언에는 두 가지 방언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3장1절에 보면 대신방언 이것은 지금 말하는 자신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 하는 방언입니다,

라라라라 하는데 무슨 소리이지 모르는 영의 기도입니다, 그리고 대인 방언이 있습니다, 한국말이나 소련 말이나 또는 아프리카 어떤 부족 말을 하는 대인 방언이 있습니다, 대인 방언은 전도목적입니다,

그래서 오순절사건 때도 마찬가지로 15개나라 말로 복음을 전했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언은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방언이 터졌습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이 바울에게 말씀하시기를 대중 앞에서는 방언을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14장5절에 대증 앞에서 만약에 방언으로 말을 하려면 꼭 통역이 따라 붙어야 된다는 겁니다,

통역이 왜 그런지 아십니까, 방언이라는 것은 나를 위한 건데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닌데 사람들 앞에서 라라라라 하면서 떠들 때는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꼭 그 앞에서 통역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 통역을 해주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뭐냐면 교회 안에서 지금 300명이 앉아있는데 그 중에 한명이라도 방언하는 소리를 듣고는 시험을 받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미쳤구나, 이게 악령에 사로잡혔구나, 그래가지고 그 사람이 시험을 받을까봐 그러는 겁니다, 교회에 덕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거침돌이 되기 때문에 절대로 교회 안에서 통역이 없는 한 소리 지르면서 방언기도를 하지 말라는 겁니다, 한사람이라도 실족할까봐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에 300명이 앉았는데 300명이 다 방언을 해도 괜찮다 그렇다면 해도 괜찮지만 그러니까 방언은 절대로 대중 앞에서는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게 고린도전서14장에 나옵니다, 그래서28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만약에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 잠잠하고 자기 자신과 하나님과 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방언을 조금 한다 그러면 폼을 재려고 그러는지 막 라라라라 하면서 절제를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절제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방언은 꼭 절제를 해야 합니다, 예언을 하는 은사를 조금 봅시다,

14장에 예언하는 은사가 나옵니다, 예언의 은 사 중에서 제일 먼저 하시는 게 이겁니다,

예언하는 사람은 교회에 덕을 끼치기 위해서 예언한다는 겁니다, 방언하고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예언은 교회에 덕을 끼치기 위해서 한다는 겁니다, 교회에 덕을 끼치는 데 제가 몇 주 전에 말씀한 게 있습니다,

예언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그랬습니까, 똑같이 고린도전서14장의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14장3절에 보면 예언은 첫째 교회에 덕을 끼치고 그다음에 권면 격려와 안위라는 말은 편안하게 해주는 것 교회가 자라나게 한다는 말이 덕을 끼친다는 말입니다, 교인들이 자라나게 하고 이웃이 힘을 받고 평강을 누리는데 목적을 가지고서 사용하는 은사가 예언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22절에 뭐라고 그랬느냐면 예언은 예수 안 믿는 사람 것이 아니고 예수 믿는 삶을 위한 은사라는 겁니다, 왜냐면 예수 믿는 사람이 역적으로 자라나게 하고 힘을 받고 평강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그런데 예언은 29절에 그랬습니다, 한사람이 예언을 합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한사람이 또 예언을 합니다, 그러면 나머지 한사람은 어떻게 하느냐면 예언을 분별하라고 그랬습니다, 14장29절에 그래서 32절에 그랬습니다,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서 제재를 받는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누가 뭐라고 예언을 합니다, 또 누가 뭐라고 예언을 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그 예언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꼭 확인을 하라는 겁니다, 왜 그럽니까,

교회에 덕을 끼치기 위해서 예언하기 때문에 또 예언은 이게 악령이 가장 많이 덤벼드는 은사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예언은 정말 신경 쓰고 주변에서 그것을 확인하면서 해주라는 겁니다, 제가 몇 주 전에 예언에 대한 말씀을 한 기억이 있는데 고린도전서의 이 말씀 외에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5장19절에서22절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모든 예언은 무시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 예언을 일단 듣고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온 것이다, 라고 우선 믿고서 그다음에 그 예언을 예의주시해서 잘 평가하라 잘 조사하라 이것을 잘 비평하라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비평의 기준은 어디에 있느냐면 3절에서 봤잖아요, 우리교회가 또는 우리교인들이 자라나게 하느냐 또는 격려를 주는 말인가 안 그러면 안위를 주는 말인가 이것을 꼭 비교를 해 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언은 그런 것이 없이 그냥 내가 이러니까 이 사람이 만을 보니까 이렇더라, 저렇더라, 나쁜 이야기만 하는 것은 마귀가 주는 예언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말씀을 분명히 드렸습니다, 사도행전21장8절에서13절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울이 3차 여행이 끝난 후에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을 때 가이사랴에 도착해서 빌립집사 집에 들어가서 딸 셋이 여선지자고 거기에 아가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분이 예언을 바울에게 하는 장면입니다, 예루살렘에 가지 마세요,

거기가면 당신 어려움 당하는 것을 황상으로 보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분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전에 이미 받은 겁니다, 바울은 이미 받고 자기는 예루살렘에 가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언은 자기가 어떤 예언을 받았는데 그것을 해석을 잘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도 우리가 조심해야 됩니다, 해석을 잘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은사를 받아서 사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로마서에 주욱 나오는 말인데 로마서12장6절에서부터 나오는 말인데 뭐냐면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다 다른데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하라는 겁니다, 우리가 아까 예언은 누구를 위해서 한다고 그랬습니까,

교회를 위해서 하는데 그 주신 믿음의 분수대로 하지 분수를 넘지 말라는 겁니다, 믿음의 분수는 세 가지의 예언의 범주 안에서 하라는 겁니다, 혹 섬기는 일이면 아주 잘 섬기라는 겁니다, 가르치는 은사를 가진 사람은 잘 가르치라는 겁니다, 그리고 8절에 혹 위로하는 자는 다시 말하면 격려를 잘 하는 사람은 격려 일에 집중해서 사람을 살리는 일을 잘하라고 그럽니다, 구제하는 은사가 있는 사람은 성실하게 변함없이 구제 일을 열심히 하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히 잘 다스리라는 겁니다, 그리고는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운 마음으로 긍휼을 베풀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고린도전서12장31절에나14장1절에 그랬습니다, 뭐냐면 모든 은사들을 이렇게 나누어주고 하는 일을 할 때마다 아주 중요한 개념이 하나 있다는 겁니다, 이게 뭐냐면 사랑 안에서 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랑 안에서 하지 않으면 나에게 주신 모든 은사는 다 이게 잘못된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빌립보서2장1절에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교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모든 은사는 사랑 안에서 하는데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 있느냐, 권면이라는 것은 누구를 격려해주는 그러한 일을 하려고 그러느냐, 또 위로하려는 무슨 일을 하려고 그러느냐, 또 주 안에서 서로 교제하느냐 긍휼을 베푸느냐 자비를 베푸느냐 이것도 서로 마음을 하나로 묽어서 사랑 안에서 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교회 안에서 은사들이 다 있는데 그것을 사랑 안에서 하지 않으면 빌립보서2장2절에 그랬습니다, 다툼이 있고 허영이 있고 허영이라는 것은 내가 영광 받으려고 하는 내 욕심대로 하려고 하는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교회가 시끄러워 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은사를 잘못 사용하면 교회가 유익이 오는 것이 아니고 교회에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더 높이고 남을 더 낫게 생각하면서 저분이 나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면서 은사를 사용하되 사랑 안에서 하라는 겁니다, 이것이 지금 은사와 관계되는 우리의 삶의 태도입니다, 이제 다음시간에는 아주 중요한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