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51강, 계시록2장3장, 아시아의 일곱 교회로 보여주신 예수님의 교인 관

변명섭 2021. 1. 23. 17:50

요한계시록강해 51강, 아시아 일곱 교회로 보여주신 예수님의 교인관 (계2장3장)
계속해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시간에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여주신 예수님의 교회 관에 대해서 가르쳐주심을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통해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라는 것은 세계교회를 의미한다고 그랬습니다, 
세계교회 안에 일곱 가지의 크리스천들이 있음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일곱 가지 만이 아닙니다, 훨씬 더 많은 다양한 크리스천들 하나님의 자녀들이 숨겨져 있음을 일곱 교회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부분을 심도 있게 같이 나누려고 그럽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시아의 일곱 교회 그 속에 숨겨져 있는 다양한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잠깐 섭력해보기를 원합니다, 제가 다음시간부터는 교회를 하나하나 집중해서 또 우리가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 교회에 들어있는 다양한 종류의 크리스천들의 모습들을 우리가 볼 터인데 첫 번째 에베소교회 속에 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열심히 수고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크리스천들이 있느냐면 니골라 당의 행위 인본주의 행위를 하는 자들을 미워하는 아주 열심히 수고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인본주의를 배척하는 그러한 크리스천들이 그 속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이 교인들 중에 대개 지도자들이라고 보게 되는데 수직계명을 첫 계명을 저버린 자들도 이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교회교인들보고 너희들이 수직계명을 잘 지켜라 그러면 생명나무의 열매를 낙원에서 먹게 된단다, 이 말이 뭐냐면 구원적인 측면이 아니고 상급이 있겠단다,
이런 약속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에베소교회를 이렇게 보면 그냥 우리가 추측하는 겁니다, 다음 시간에 제가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50%의 좋은 기독교인들50%의 좋지 않는 다시 말하면 베이비크리스천들 이렇게 갈라진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에베소교회를 보면 두 번째로 서머나 교회를 보면 서머나 교회는 이 교회는 그의 대부분의 교인들이 열심이고 환란을 잘 견뎌나고 궁핍도 잘 견뎌나고 모독을 받아도 잘 견뎌나고 고난 시련 감옥까지 잘 견뎌나는 교인들의 무리들이 이 교회에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교회는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받은 교회입니다 조그만 교회인데도 이런 교회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교회는 보면 그의 대다수가 괜찮은 크리스천들이 모여 있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엄청난 핍박 속에 있는 그런 교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겁니다, 세 번째 교회는 버가모 교회입니다 이 교회 안에는 순교자 안디바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순교자도 있는가하면 발람의 교훈과 이것은 오늘날 혼합주의 종교다원주의로 보시면 됩니다,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 이것도 다 인본주의 자유주의 다원주의 이런 걸 따르는 엄청난 큰 그룹들이 이 교회 안에 있는 겁니다, 
순교자들도 있는가하면 그러니까 소수의 괜찮은 그룹들이 이 교회 안에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네 번째로 두아디라 교회를 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봉사도 잘하고 사랑도 베풀고 인내도 잘하는 그러한 열심 있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계시록2장24절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열심인 사람들인데 그 안에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도 있는 겁니다, 이것도 혼합주의 다원주의입니다 그러니까 이 교회 안에 열심인 크리스천들과 비 열심이면서 잘못된 가르침에 따르는 교인들이 섞여있는 여기도 제가 볼 때는 반반인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교회들도 이런 모습들로 어디든지 다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스스로가 보세요, 다섯 번째 교회는 사데 교회입니다
이교회는 겉으로는 살았다고 하나 죽은 교회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이교회는 구원이 이미 없어진 사람들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이 이교회를 다니는데 겉으로 사람들이 다 볼 때 살아있는 교회 같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안에는 또 죽어가고 있는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곧 죽는 다시 말하면 구원이 소위 말하면 무효화되는 이런 사람들도 그 안에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교회 안에는 소수가 있는데 소수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소수들보고 하는 말씀이 너희들은 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우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도전이 옵니다 도대체 우리나라에 있는 교회들은 어디에 속해 있을까 여러분들이 알아서 성령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결정하셔야 합니다, 
여섯 번째 빌리델비아 교회를 보면 이교회는 열린 문을 가진 교회고 작은 능력을 가진 작은 교회고 예수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예수님의 이름을 만방에 나누는 교회기 때문에 예수님의 시험의 때에 이 교회를 지켜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성전에 기둥이 되도록 새 예루살렘에 드나드는 그러한 교인들이 이 교회출신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교회는 대다수가 괜찮은 기독교인들이 모여 있는데 사데 교회와 정반대교회입니다
일곱 번째로 라오디게아교회를 보면 이교회는 미지근한 교회라 그랬습니다, 이분들이 스스로가 자기네가 부자다 그랬습니다, 자기네가 부요하고 물질적으로 그렇지만 영적인 측면에서도 자기네가 부요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교회를 보고 뭐라고 그랬냐면 너희들이 영적으로 비참하다 그랬습니다,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또 헐벗었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본인들이 모르는 겁니다,
거기다가 예수님이 그 유명한3장20절에 내가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노니 그러니까 이교회는 예수님이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잔뜩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교회는 문밖에서서 너희들이 나를 영접하라는 일이 있을 터인데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런 교회 안에 예수님께서 뭐라고 약속했냐면 이기는 자는 예수님 보좌 옆에 앉게 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상당히 높은 위치로 모셔서 올리겠다고 약속하시는 겁니다,
뭐냐면 이교회가 이런 문제교회인데도 이 안에 하나님이 귀하게 쓰는 사람들이 숨겨져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높임을 받을 거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숨겨져 있는 이런 교회들을 어느 교회들이 도와주어야 됩니까,
서머나 교회나 빌라델비아 교회가 이런 사람들을 도와주게끔 그렇게 디자인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질문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이 뭐냐면 왜 교회시대에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보여주시는 겁니다, 교회시대1세기부터 예수님 재림까지 주욱 교회시대에 이런 다양한 교회들을 디자인 하셨나, 미리 예언적으로 다 가르쳐준 것이거든요 요한에게 요한아 봐라 이런 교회들이 있을 거다,
그래서 일곱 교회를 보여 주었습니다, 왜 교회들도 이렇게 다양하게 만들어놓았지만 그 안에 소위 예배를 드리는 신앙 생활하는 교인들도 다양하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이게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 이렇게 다양하게 만드셨나,
그냥 우리 같으면 우리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왜 한 가지 교인으로 만들어 놓으면 좋을 텐데 다 할렐루야 아멘 하면서 교인전체가 믿음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놓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면 싸움도 안하고 전부다 헌신된 사람이면 일곱 가지 교회도 그렇고 교인들도 왜 이렇게 다양하게 만들어 놓았을까
이 질문에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합니다, 이 질문에 대답을 해야 되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걸 가지고 우리에게 덤벼듭니다, 
왜 이렇게1세기 때부터 교회시대2천년을 이렇게 다양하게 만들어 놓아서 왜 이렇습니까, 그럴 때 똑똑한 사람들은 그러는 겁니다,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런 걸 보고는 이런 하나님이 과연 사랑의 하나님인가 하나님이 도대체 사랑의 하나님입니까?
왜 이렇게 교회를 교인들을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습니까,
또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까, 또는 자비의 하나님이십니까,
은혜의 하나님이십니까, 왜 이렇게 불공평하십니까, 좋은 기독교인들도 만들어 놓고는 중간정도 만들어놓고 미지근한 것도 만들어 놓고 교회 안에 마귀의 자녀들이라고 그래서 구원이 없는 사람들도 그 안에 왔다 갔다 하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러니까 기독교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어떤 때는 비민주적인 것 같기도 하고 일방적인 독재자적인 하나님 같기도 하고 별난 이야기가 다 이 안에서 만들어질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해답을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겁니다, 첫 번째 해답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다양하게 만들어 놓았습니까, 그러면 기독교하나님의 속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속성이 어디에서 나타나느냐면 이분의 이름 속에서 나타납니다, 우리기독교하나님의 속성이 그분의 이름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하면 엘로힘(Elohim)그럽니다, 엘로힘(Elohim)이라는 이름이 복수이름입니다, 직영하면 하나님들입니다 그래서 삼위하나님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성부. 성자. 성령 그러면서도 한 하나님입니다, 한 하나님이면서도 삼위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하나님자체가 한분이면서도 다양성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가지고 다양성을 어떻게 나타내느냐면 기능적으로 다양성을 나타내고 또는 존재적으로 다양성을 나타내십니다,
이러시면서 다양한 이분들이 서로가 존경하고 서로가 격려해주고 서로가 사랑하시고 서로가 증거를 해주시고 그다음에 서로가 협동하시고 또 서로가 균형을 밸런스를 맞추시고 또는 서로가 조화를 이루시는 이런 기능을 삼위하나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것을 다양 속에 하나라는 우리하나님의 이름 속에서 존재 속에서 이미 다양하신 분이심을 이미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제가 질문이 뭐냐면 왜 일곱 교회 이렇게 다양한 교회들이 많고 다양한 기독교인들이 많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할 때 그기에 대한 답을 제가 드리는 겁니다, 첫째 답이 우리하나님의 속성이 다양성을 가지신 분이시라는 겁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섬기는 우리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그분의 창조에서도 다양성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6일간 창조하실 때 봐도 우주도 창조하실 때 별들도 온갖 별들이 다 있습니다, 
동물들도 보면 다양한 동물들 그 종류대로 다 만드시고 식물들도 보면 온갖 모양의 식물들 색깔이 다 다르고 모양이 다르고 다 만들어 놓았습니다, 
우리 인간도 만드실 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지었지만 나중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와 사탄의 자녀들까지 다 만드셨습니다, 요한일서3장10절에 보면 이 세상에 사탄의 자녀들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는 겁니다, 
이렇게 보면 그분의 창조 속에서도 다양성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겁니다, 
또 우리가 다시 세분화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들여다보면 이 안도 다양합니다, 마귀의 자녀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안에도 복잡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공동체를 보면 이 안이 다양합니다, 
어떻게 다양 하느냐면 1,DNA가 다 다릅니다 유전자가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얼굴이 다 다릅니다, 인상이 다릅니다, 피부도 다릅니다, 손금도 다릅니다,
2,언어의 다양성입니다 언어가 다 다릅니다 언어가 다르다는 말은 언어 때문에 문화가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언어 때문에 관습이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언어 때문에 전통이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언어 때문에 족속이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3,생활환경의 다양성입니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경제에서 다르고 교육에서 다르고 사회에서 다르고 정치에서 다르고 기후에서도 다르고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다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4,은혜의 다양성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은혜의 분량이 다 다릅니다, 
에베소서4장7절 로마서12장6절에 하나님의 자녀인데 은혜의 분량이 다 다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은혜의 분량이 다르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면 세분화하면 ①로마서12장6절에 보면 은사의 분량이 다릅니다, 
②로마서12장3절에 믿음의 분량이 다릅니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인데 
③디모데후서2장20절21절에 수용하는 그릇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금 그릇도 있고 하나님이 주심 메시지를 하나님의 신비를 주면 금 그릇처럼 또는 은그릇같이 놋그릇 나무그릇 질그릇 이렇게 그릇의 재료가 다르고 모양이 다르고 크기가 다르고 용도가 다르고 이게 다 다른 겁니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④고린도전서12장12절에서31절에 보면 기능의 다양성입니다 그러니까 이 원칙을 보면 제거 여러분들을 이렇게 섬기면서 이 원칙에 의해서 제가 목회자로써 여러분들을 제가 이렇게 보는 겁니다, 
이분은 이렇구나, 저분은 저렇구나, 여러분들에게 제가 이렇게 주는 이유가 사람을 보는 지혜를 가지라고 제가 주는 겁니다, 사람마다 다 다른 겁니다,
이 다른 모습을 바울이 주후35년에 개종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쓸 때기 주후55년입니다 그러니까 몇 년 후입니까, 20년 후입니다 
20년 후에 이분이 고린도에 몇 번가가지고 열심히 복음을 전해서 교회도 개척하고 그 안에 일꾼들도 많이 나오고 했는데 고린도교회가 안에서 다툼이 있고 그 안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음을 이분이 알고는 그 교회에 성령님께서 예수님이 편지 쓰라 그래가지고 편지 쓴 것이 고린도 전 후서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에 보면 그 교회에 여러 가지문제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속상하는 겁니다, 바울의 시각으로 볼 때 예수 믿는다고 해서 헌신하고 했는데 어떤 분들은 성경도 많이 깨닫고 어떤 분들은 방언도하고 예언도 하고 여러 가지로 많이 하는데 이 교회 안에 문제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 그럴 때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가르쳐주는 겁니다, 
그 유명한 고린도전서12장12절부터31절에 가르쳐주는 겁니다, 
뭘 가르쳐주느냐면 바울아 교회라는 교회의 머리는 나다 예수님께서 내가 머리다 이 교회는 지체다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지체를 봐라 눈도 있고 코도 있고 오각이 있습니다, 오장육부가 있습니다, 또 보이지 않는 지제들이 우리 몸에 많은데 그분이 이걸 설명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머리가 되시는 교회 안에는 수많은 지체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다 보면 모양도 다르고 기능이 다르다는 겁니다, 
그리고 눈 같은 지체는 내가 최고다고 말하고 또는 귀나 눈 입이나 잘 보이는 지체들은 그런데 전혀 안 보이는 발톱 그것도 새끼발톱 전혀 안 보이는 지체들 이런 지체들은 잘못하면 눈이 그런 지체들을 얏 보거나 그럴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렇다는 겁니다, 
이 모든 지체들은 다 소중하다는 겁니다, 특히 말씀하시기를 눈에게 너 몸이 다 눈이라면 어떻게 하느냐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듯이 새끼발톱의 조그만 지체도 신발 속에 숨겨가지고 보이지 않는 지체지만 이 지체가 더 요긴하고 더 사랑스럽고 아름답다는 겁니다, 보이는 지체만이 지체가 아니라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지체들이 굉장히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발톱에 상처만 나도 온 몸 전체가 아프고 머리가 되는 예수님도 아프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보이는 눈만 아픈 게 아니고 눈이 다쳤다고 그래서 옴 몸이 아픈 게 아니고 조그만 보이지 않는 지체들도 똑같다는 겁니다, 
조그만 보이지 않는 지체들 이것도 중간 것들 또 괜찮은 전체가 다 하나라도 아프면 몸 전체가 연결이 되어가지고 아프다는 겁니다, 
그러시면서 바울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바울아 이 교회 안에 떠들고 시끄러운 고린도교회에 이런 사람들 그냥 놓아두라 애 네들은 이러다가 말거야 그런데 그것 때문에 그 안에서 정말 신실한 이름도 없는 약하게 보이는 이분들이 상처받지 않게 이 사람들을 잘 보호해주라는 겁니다, 
그래야 교회가 아프지 않고 예수님이 아프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기에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몸이 다 다른 지체들을 고르게 해주라는 겁니다, 하모나이즈(harmonize)하모니를 잘해주는 조화 피스메이커(peacemaker)화평을 잘 해주는 사람이 아주 존귀한 분이고 그렇게 하모나이즈(harmonize)할 때 옴 몸이 편안해진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예수님도 편안해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가장 기쁘게 하는 일이 뭐냐면 이 교회라는 다양한 기능을 가진 다양한 모양을 가진 공동체 안에서 똑똑한 사람 일 잘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전혀 그렇지 못한 사람들 그냥 와서 앉아있는 사람들 앉아있다가도 예배중간에 나가는 사람들 셀 모임에 나오라 해도 안 나오는 사람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람들을 얏 보거나 그러지 말고 그런 모든 사람들을 다 고르게 밸런스를 잘 맞추어 주라는 겁니다, 이게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말씀공부 잘하는 사람들 중간 정도사람들 또는 못하는 사람들 참석을 잘 못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 다 필요하다는 겁니다,
다양성을 왜 강조합니까, 다양성은 우리하나님의 속성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편지를 쓰실 때 이미 디자인하셨습니다, 이 교회가 다양화 될 것이고 그 안에 있는 교인들도 다양할 것을 다 디자인 하셨습니다, 또 우리가 보면 4,왜 이렇게 다양하게 하나님이 하였냐면 이 세상이 창조목적학교입니다 창조목적학교구조가 다양해야 됩니다, 이구조가 또 5,왜 이렇게 다양하게 하였냐면 우리가 이제 죽어서 하늘나라에 올라갈 텐데 우리 본향사회구조가 다양한 구조입니다
단순한 구조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창조 또 이 세상 저세상 모두가 다 다양하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겁니다, 
그러니까 다양 속에서 하나님이 뭘 강조하십니까, 고르게 하는 사람 하모나이즈(harmonize)를 잘하게 하는 사람을 이쁘하시는 겁니다, 
그 사람이 주님에게 기쁨을 받는 사람입니다 이럼 개념 속에서 우리하나님의 자녀들만 한번 봅시다,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 안에 나오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면 크게 둘로 구분이 됩니다, 첫 번째로 예수 안에 있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인 크라이스트(In Christ)두 번째 그룹은 뭐냐면 교인은 교인인데 그 안에 내용을 보면 예수님 밖에 있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아웃 오브 크라이스트(Out of Christ) 예수님 안에 있는 교인들은 누굽니까
그분들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죽어서 본향으로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밖에 있는 교인들도 일곱 교회 안에서 보이는데 교인은 교인인데 예수님밖에 있습니다, 이런 교인들은 뭐냐면 교회는 다니는데 지옥 가는 교인들입니다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 사람들도 있는 겁니다, 또는 아예 처음부터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사람들도 있는 겁니다, 
이렇게 크게 두 종류의 교인들을 디자인 하신 것이 일곱 교회 안에 들여다보면 나옵니다, 그러니까 우리질문이 왜 예수님밖에 있는 교인들을 허락하셔가지고 교회 안에다가 집어넣어 섰는가, 이것도 우리의 질문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2천년 교회 역사 속에서 예수님의 재림 때를 한번 점프해서 올라가보면 예수님의 재림 전에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디자인하셨습니다, 
재림 전에는 교회 안에 예수님밖에 있는 소위 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목에다가 힘을 주고 그분들이 아주 숫자도 많고 영향력도 있으면서 교회를 시끄럽게 할 것이라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밖에 있는 교인들이 교회에 다니고 있는데 교회를 시끄럽게 할 때가 오는데 그게 예수님의 재림 전에 징조 중에 하나라는 겁니다, 
그것을 복음의 산고다 이렇게 우리가 표현을 해보는 겁니다, 
복음이 산고를 당하는 겁니다, 이 사람들 때문에 그래서 이 사람들에게 이름을 붙인 게 뭐냐면 거짓선지자들이다 이렇게 이름을 예수님이 붙였습니다, 
거짓선생들이다 이렇게도 이름을 붙이시고 적그리스도들이다 이렇게 예수님이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이놈들이 날개를 펴고 난리를 칠거라는 겁니다, 
교회 안에서 이것을 복음의 산고 겪는 일이 있을 텐데 이 사람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가지고 교회 안에서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을 혼동시키고 실족시키는 일을 할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이 세대에 살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속해있는 일곱 가지의 교회들 안에 이런 산고를 주동하는 분들이 있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에 있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대에 살고 있는데 크리스천들 중에서 그러니까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크리스천들이 지금 이런 상황을 보고서 반응을 하는 겁니다, 반응을 하는데 제가 이렇게 보니까 일곱 가지의 크리스천들이 있습니다, 
지감 산고를 만드는 이 양반들을 향해서 보는 시각이 일곱 가지의 시각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있는 겁니다, 첫 번째 시각을 가진 시각 자들 제가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만든 말들입니다 근시안적 시각 자들 근시안적인 시각이라는 이분들은 가까이 있는 이 세상주변 이것만 보는 시각 자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사람들이 적그리스도 거짓선지자들 거짓선생들 이런 사람들이 지금 왔다 갔다 하는 이 주변에 많은 것을 근시안적인 눈으로만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어떤 분들이냐면 그런걸 보면 못 참는 겁니다,
그러니까 비판을 하는 겁니다, 이런 나쁜 놈들이 교회 안에 많습니다,
또 우리가 이런 사람들을 향해서 싸움을 해야 됩니다, 무찌르야 됩니다, 
이놈들 때문에 예수님이 안 오십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의 개념은 예수님이 오시려면 이놈들을 없애버려야 됩니다, 그러니까 항상 심각합니다, 
예수님이 지금 코앞에 와 계신데 이놈들 때문에 예수님이 지금 못 오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력을 무찌르면 나와서 우리끼리 회의도하면서 어떤 분들은 정치그룹들과 같이 하는 분들도 있고 지금 이런 식으로 성경을 가르치는 분들이 웹사이트에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소위 복음적이고 보수적입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시각이 이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시끄럽고 잘못 가르치고 많은 교인들이 실족당하고 있는 겁니다, 
이 사람들 때문에 그러니까 이것을 제거해버리자 안 그러면 이 사람들이 이제 못하게 힘을 합해서 우리가 싸움을 합시다, 이런 분들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황 목사님 이런 분들 싫으십니까, 
저는 싫어하지 않습니다, 이런 분들이 필요합니다, 이런 분들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왜냐면 예수님의 다양성입니다 시각을 그 정도로만 만들어 놓은 겁니다, 이 사람들의 시각을 그래서 제가 근시안적인 시각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왜 근시안입니까 이 사람들은 은혜의 분량이 그 수준입니다
믿음의 분량이 그 수준입니다 그릇의 분량이 그 수준인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분들을 이용하셔서 많은 잠자는 사람들을 깨우는 역할을 하시는 겁니다, 눈뜬 사람들도 눈이 고작 떠야 어디까지 뜹니까, 
이 수준까지밖에 눈을 못 뜨는 겁니다, 전체그림을 못 보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교인들은 그런걸 보면 아하 이 사람의 시각이 어느 수준이구나,
볼 줄 알아야 되는 겁니다, 우리가 그런 분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겁니다, 
그런 분들이 많아야 되는 겁니다, 왜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시각만 가지고 있어도 굉장히 좋은 겁니다, 두 번째 시각을 가진 분들은 뭐냐면 원시안적시각을 가진 분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멀리만 보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저세상만 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빨리 가까이 왔다 우리는 조금 있으면 들림 받아서 저세상으로 올라간다, 
그것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재림을 학수고대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악한 세상이야 그러니까 이 세상을 깊이 관여하지 말고 현실도피적인 사람들입니다 적그리스도들 그놈들 그러다가 나중에 없어질 거야 지옥 갈 거야 우리는 열심히 들림 받아서 저 나라에 가서 살 생각만 하자 그러니까 기도원에 가서 기도만 열심히 하고 조금 극단적인 이야기지만 기독교역사 속에서 항상 이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청교도적 사람들이라 그러고 또는 이분들을 경건주의자들이라 그럽니다, 수도원주의자들 그러니까 현실을 너무나 무시하고 현실을 피하려고 그러고 다가올 미래를 위해서 저쪽만 열심히 보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나쁩니까, 안 나쁩니다, 이런 사람들도 필요한 겁니다, 
왜냐면 이런 사람들은 경건한 사람들이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면서 열심히 기도하며 경건하게 사는 사람들이니까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는 또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배워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왜 이 사람들은 그렇게 밖에 안 되었습니까, 주님께서 은혜의 분량이 그 분량까지만 주신 겁니다, 은사의 분량을 그 수준으로 주신 겁니다, 믿음의 분량도 그 수준으로 주신 겁니다, 다양하신 우리하나님을 항상 생각하세요, 다 나와 같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을 항상 이렇게 보면서 참으로 훌륭하시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내가 다 껴안아줍니다, 그리고 칭찬해주고 그러면서 그분들에게 배울 것을 찾아냅니다, 그렇지만 마음속에 뭐가 있습니까, 
아하! 이분들이 한쪽을 보지를 못 하는구나 라는 것을 혼자서 중얼중얼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런 쪽을 보는 게 뭐냐면 세 번째 시각은 전천후시각자들입니다 전천후시각자들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근시안적시각도 가지고 있고 원시안적시각도 가지고 있고 그러면서 이 시각을 컨비네이션(combination)을 결합을 잘하여 이 세상도 근시안적으로 열심히 보고 그러면서 저세상도 보면서 지금 적그리스도가 까불고 할 때 적그리스도가 나쁜 놈들이라고 말하지만 제가 그놈들과 싸워서 이기지도 못합니다, 왜냐면 이기지 못하도록 주님께서 디자인해놓았습니다, 그놈들이 세게끔 만들어 놓았습니다, 
싸움하는 그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그런데 싸움하는 사람도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것만 가지고 악을 쓰는 사람들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기까지 들어가면 안 되는 겁니다, 그대로 놓아주는 겁니다, 전천후시각자들은 독수리시각입니다 창공으로 올라가서 멀리도보고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우리가 항상 공부하는 저세상 이 세상 저세상의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7천년이 창조목적훈련학교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학생이다 이 학교의 교장은 예수님이다 부 교장은 사탄이다 나쁜 교사가 있고 좋은 교사가 있다
그러니까 이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항상 이 세상에서 열심히 살지만 나그네신학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나그네신학을 그리고 우리는 학생들입니다 창조목적을 공부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곳에 보낸 학생들입니다 이 시각을 가지고 전체를 들여다보는 사역을 하니까 이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앞에 말하는 근시안적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예쁩니까, 밉습니까, 그 사람들도 예쁩니다, 그런데 한쪽을 못 보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원시안적인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다 예쁩니다,
그 사람들도 한쪽을 못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전체를 다보는 겁니다, 첫 번째는 근시안적인시각 두 번째는 원시안적인시각 세 번째는 전천후시각 네 번째는 소경적인시각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완전히 눈이 감긴 사람들입니다, 소경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다섯 번째는 색맹들입니다 빨간 현실인데 파랗게 보고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성경을 봐도 색맹으로 보고 제대로 보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색맹적인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근시안적이나 원시안적인 사람은 괜찮은 사람들입니다
여섯 번째는 애꾸눈시각입니다 이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이 세상이나 저세상을 볼 때 애꾸눈으로 보는 겁니다, 일곱 번째로 난시입니다
초점이 잘 안 맞는 이렇게 일곱 가지의 시각으로 한번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나 중국교회나 아프리카교회나 미국교회나 다 일곱 가지 시각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각의 차이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인식하는 게 다릅니다, 다시 말하면 관(觀)이 다릅니다, 어떤 사물을 보는 또는 사람을 보는 물질을 보는 또는 사건들을 볼 때 그걸 인식하는 관(觀)이 다릅니다,
일곱 가지로 다르게 보는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관(觀)이 다릅니다,
이 세상 관(觀)도 다릅니다, 가치관(觀)도 다릅니다, 세계관(觀)도 다릅니다,
인생관(觀)도 다릅니다, 내세관(觀)도 다릅니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종교관(觀)도 다릅니다, 물질관(觀)도 다릅니다, 또는 가정관(觀)도 다릅니다, 출세 관(觀)도 다릅니다, 자녀관(觀)도 다릅니다, 직업관(觀)도 다릅니다, 왜 다를까요, 이분들에게 주신 은혜의 분량이 다른 겁니다, 
은사의 분량이 다른 겁니다, 믿음의 분량이 다른 겁니다, 그릇의 분량이 다른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다 다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일곱 교회교인들 모습을 보면 다 다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신기한 게 아닙니다, 이 안에 엄청난 하나님의 신비가 들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양 속에서 어떻게 잘하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복 있는 사람입니까 조화를 잘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전천후시각자가 되면 융합적인 사고를 가지기 때문에 모든 일곱 가지 시각 자가 필요하다는 그런 사고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렇게 디자인하셨다는 그런 사고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애꾸라고 그래서 우리가 비난하거나 난시라 그래서 비난하거나 또는 좁은 소견을 가진 이 세상만보는 그런 사람들을 우리가 다 안아주는 겁니다, 안아주면서 이것을 잘 조화를 시키는 사람 고르게 만드는 사람들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조화만 하는 일만 해서는 안 됩니다 구체적으로 조화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이 사람들은 나머지사람들이 소화를 하든 못하든 관계없습니다, 나머지사람들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시각을 가지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시각에서 한 단계 두 단계 세 단계 업그레이드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내 민족에게도 하고 우리가 지금 타민족에게도 하고 있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도와줍니까, 창조목적이 무엇인가 가르쳐주는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가 가르쳐주는 겁니다, 이 세상이 무엇이고 저세상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겁니다, 창조목적학교가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겁니다, 이 세대가 어떤 세대인가를 가르쳐주는 겁니다, 가르쳐준 다음에 이것을 수용하느냐 못하느냐 그것은 우리의 책임이 아닙니다, 그냥 나머지는 예수님께 맡겨버립니다,
우리는 조화하는 일만하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우리가 교인으로써 이 세대에 살고 있는 크리스천으로써 다른 크리스천들의 부분을 이렇게 조화시켜주면서 도와주는 일 하모나이즈(harmonize)하는 일 교회적인 측면에서 하는 겁니다, 민족적인 측면에서도 하고 그렇지만 이것을 조금 더 스케일을 줄여서 내 주변에 가정을 들여다봐도 원칙이 똑같습니다, 
가정을 들여다봐도 자녀들도 다 다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우리주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부부도 성품이 똑같은 부부 봤습니까, 주님께서 부부는 성품을 거꾸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서로 보완하라고 그러니까 결혼안한 사람들도 복입니다 다른 사람과 산다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혼안하고 서로 사는 게 조화를 하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뒤늦게 깨달은 겁니다,
아하! 주님이 나하고 다른 여자를 주셨구나, 그걸 빨리 깨달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이걸 빨리 깨달으면 굉장히 행복해집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은 나와 다르구나, 특히 내 가족에게 부부간에 자녀들도 그렇고 자녀들도 다 다르잖아요, 하나하나 그러니까 똑같으면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내 파트너가 가지고 있는 겁니다, 내 파트너가 안 가지고 있는 것을 또 내가 가지고 있고 서로 보완시켜주는 일이 부부입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이게 창조의 원리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같이 살면서 성품이 다른 사람들끼리 잘 하모나이즈(harmonize)하는 일 이게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걸 어떻게 우리가 해결합니까, 제가 깨달은 것을 오늘 설명해드리는 겁니다, 아! 우리하나님은 그분의 속성이 다양성을 선호하시는 분이시구나 항상 이것을 묵상을 해주면 속상할 때가 많습니다, 나하고 다를 때 교인들을 볼 때 선교 지를 볼 때 내 생각과 다를 때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주변에 같이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를 때 우리는 성질이 급하니까 어떤 때는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묵상을 하는 겁니다, 
주님 주님이 다양하게 모든 걸 만들었잖아요, 그래서 이분의 다양성을 제가 묵상을 합니다, 그렇지만 그걸 묵상을 해놓고 한 시간 있다가 또  밥맛없는 일이 생깁니다, 또 힘들어지는 겁니다, 스트레스 받고 그럴 때마다 또 묵상하는 겁니다, 시행착오를 통해서 자꾸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속성을 내가 자꾸 묵상합니다, 그러다보면 조금씩. 조금씩 실수를 통해서 내가 이것을 배우게 되는 겁니다, 지금 이 나이가 되면서 많이 그런 걸 깨닫고 내가 스스로 내가 양보할 것 양보하고 참을 것 참고 그걸 어떻게 참아요,
세상 사람들은 의지로써 참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고서 참는 겁니다, 그리고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 모습을 보면서 내가 아하! 하나님이 이렇게 디자인하셨구나, 전 세계교회들을 보면 이게 다 다르고 아하! 이렇게 디자인 하셨구나, 내가 하나로 만들려고 별짓 다해도 안 되더라고요, 
내가 손들어버렸습니다, 우리나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주변교회들도 보세요, 다 예수님 믿지만 다 다릅니다, 서로 말도 잘 안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속성을 항상 보시고 그다음에 그분의 창조를 봅니다,
세 번째는 이분의 창조목적학교도 다양하게 만드셨구나,  
네 번째로 저세상에 올라가면 다양한 세상이구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을 보여준다는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랑을 우리가 함부로 보여줄 수가 없습니다, 못합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다양성을 내가 먼저 깊이 깨닫고 묵상하고 그것을 내 삶에 적용할 때 사랑이 나오는 겁니다, 사랑이 딴 게 아닙니다, 오래 참는 겁니다, 사랑은 오래 참을 수가 있고 안아줄 수가 있고 내가그분을 용납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면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해놓아야 됩니다, 이게 같다, 라고 생각하니까 사랑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이 원칙을 깨닫고 시행착오를 하면서 시행착오를 할 때마다 하나님의 속성 이분의 창조의 속성 창조목적학교의 속성 저 세상도 다양한 세상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우리가 이것을 깨달으면 나에게서 사랑이 커집니다,
사랑이 내가 잘나서 커지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너 그릇을 조금 크게 가져라 너 생각을 조금 더 크게 가져라 그러면 아! 그렇군요, 주님의 속성을 다 다르게 만들어 놓으셨군요, 
다르게 만든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이분이 예뻐하신다고요,  
고르게 하는 일 다른 것들을 잘 고르게 하는 일 이걸 하는 사람이 사랑을 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우리피조물들을 창조하시고 그 가운데도 두 가지의 사람들을 창조하시고 우리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창조의 신비들 이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또 창조하시고 그 안에 다양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또 만들어 내시고 교회시대에 다양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역동적으로 서로 관계를 맺는 그러한 일들을 디자인하신 이 신비 이 속에서 저희들이 지금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 바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이 다양한 문제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하지만 그 다양성을 이해를 못하고 서로가 질타하고 미워하고 서로가 비난하고 하는 모든 것들 그것 때문에 이 지체 전부가 다 아파하는 이 모습 주님바울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신비로운 가르침 우리 삶 속에서 적용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사라하시는 것은 곧 교통정리해주며 조화를 해주며 화평케 해주며 격려해주며 이런 것이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잘 하는 사람이 저 세상에 가서 귀히 여김을 받는다고 말씀하신 것 우리가 잊지 않기를 성령님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시아 일곱 교회로 보여주신 예수님의 교인 관(계시록2-3장)
1, 아시아 일곱 교회에서 보여주신 다양한 교인들의 모습들을 교회별로 살펴봅시다, 
2, 왜 교회시대에 교회와 교인들을 다양하게 디자인 하셨습니까?
그 성서적 대답을 4가지로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3, 하나님의 자녀들의 다양성8가지가 무엇입니까?
4, 이 다양성이 우리나라 교인들에게 어떻게 나타나고 있으며 우리교회에도 어떤 모습으로 표출되고 있습니까?
5, 바울이 고린도교회에서 발견한 교인들의 다양성의 문제를 어떻게 소화했습니까?(고전12:12-31)
6, 아시아 일곱 교회 안에 있는 다양한 교인 중 크게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는데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를 분별하는 분별력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특히 재림 전에 더욱 그러합니다, 이에 대해 의견을 나누세요,
7, 재림 전 말세는 예수님께서 영적 혼돈시대인 ‘복음의 산고시대’로 디자인 하셨습니다,(마24:8)오늘날입니다 이를 분석하고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으며 자신과 다른 분들을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 하며 이들과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지 논의해 봅시다,
8, 예수님 안에서 ‘전천후 시각 자’란 어떤 교인입니까? 이런 교인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이런 교인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YA0JkUj2p7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