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강해 50강, 아시아의 일곱 교회로 보여주신 예수님의 교회 관(계2장,3장)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주일이 아시아의 일곱 교회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라는 질문을 우리가 한번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에서 지난시간에 각 교회에 보낸 예수님의정체성 기억나십니까, 예수님의정체성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서머나 교회에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요 그리고는 죽었으나 살아난 하나님이다 계시록2장8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서머나 교회에 부활절메시지를 가르쳐주신 겁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께서 스스로가 말씀하시기를 나는 죽었다가 이게 주후95년에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 사건이 언제 일어난 사건입니까,
주후30년에 죽었다가 살아난 사건이 일어났는데 예수님께서 주후95년에 요한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내가65년 전에 죽었다가 살아났단다,
그러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메시지가 아시아의 일곱 교회 속에 계속 들어가서 담겨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때부터시작해서2천년교회시대는 이 메시지가 변질되지 않고 계속 이어져야 됩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다른 일곱 교회에 보낸 예수님의정체성을 보면 예수님이 누구신가 이분은 하나님이시고 또 이분은 창조주 되시고 그리고 이분은 역사의 주인 되시고 알파와 오메가 되시고 그리고 이분은 그리스도 되시고 메시아 되시고 구원주 되시고 그리고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이라고 예수님이 직접 자기 자신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래서2천년교회시대에 기독교인들이 이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의정체성메시지를 그것을 일곱 교회에 첫 인사말에서 보면 그대로 알 수가 있습니다, 이미 받은 겁니다, 받았는데 예수님께서는 어떤 예언을 하였냐면 이 교회시대에 나의정체성에 누룩이 들어갈 것을 또 예수님이디자인 하셨습니다, 이정체성에 누룩이 들어갈 것을 디자인하셨습니다,
언제부터 디자인하셨습니까, 우리지난시간에 공부했습니다,
마태복음13장35절에 창세전에 그런데 이 누룩이 처음에는 한 여인이라는 것은 크리스천들을 공격하는 겁니다, 한 여인이 몰래 집어넣었다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그것이 부풀어지고. 부풀어지고 그러다가 오늘날 예수님의 재림 전에는 이 누룩이 온천지에 온 교회 안에 퍼질 것을 예수님이 예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예언이 오늘날 우리에게 보이는 교회에 이 누룩이 전 세계에 퍼져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겁니다, 그것이 뭐냐면 종교다원주의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 되심을 기독교가 주축이 되어가지고 로마가톨릭이 주축이 되어가지고 정교회 개신교주류교단들이 주축이 되어 가지고 예수님의정체성을 변형시켜버린 겁니다, 누룩 화시킨 겁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가 이슬람의 마호메트가 그리스도다 그러는 겁니다,
또 불교의 부처가 그리스도다 그러는 겁니다, 힌두교의 비슈냐 신도 그리스도라는 겁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그리스도는 예수라는 겁니다,
이렇게 기독교의 그리스도는 예수라는 말만 들으면 진짜입니다 그런데 토씨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는 기독교인들만 부르는 그리스도고 타종교사람들은 자기네종교에 따라서 그리스도가 따로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누가 디자인 한 겁니까, 로마가톨릭신학자들이 정교회신학자들이 개신교의 주류신학자들이 만들어낸 겁니다, 이 그룹들을 뭐라고 부릅니다,
WCC라 그럽니다, 지금 전 세계의 기독교의80%가까이가 이들 교단 속에 속해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안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곱 교회를 계속공부하고 있는 겁니다,
그 안에 소수가 그렇지 않는 사람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왜 이렇게 되었나, 라고 질문을 던져보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대답을 해야 됩니까, 이것은 누구의 잘잘못도 아니고 예수그리스도의 디자인이구나, 이것을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것을 우리가 지난시간에 무슨 기능이라고 말했습니까, 역기능이라고 그랬습니다, 어떻게 아느냐면 예수님이 미리 그걸 다 예언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예수님이 디자인 하셨기 때문에 예언하시는 겁니다, 우리의 잘못 때문에 아닙니다,
이게 우리가 봉착해있는 우리의 딜레마입니다 대부분의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것을 무찌르고 지금 무척 애를 쓰는 소위 복음주의사람들이지만 이게 무찌려 집니까, 못 무찌르게 되어 있는 겁니다, 더 강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마태복음13장11절에서는 천국의 신비라 그랬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오늘 우리가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한번 볼 텐데 특히 지난시간에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 속에 숨겨진 예수님의정체성을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일곱 교회 속에 숨겨진 예수님의 교회 관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교회시대에 교회들을 디자인하셨나,
그러면 우선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이 교회라는 뜻이 무엇인가 그러면 항상 교회라는 그 단어가 신약의 헬라어로 엑클레시아(ecclesia)라 그럽니다,
이게 합성어로 되어 있습니다, 엑(ec)이라고 하면 문 옆에 보면 비상구(EXIT)로 화재예방을 위해서 표시되어있는 출구(出口)라는 표시인데 이 엑(ec)이 뭐냐면 ̴로부터 나간다, 또는̴ 00에서 00로부터 나간다,
이런 뜻이 엑(ec)이라는 뜻입니다, 또는 00로부터 분리된다는 겁니다,
또는 사람과 사물로부터 관계를 끊거나 끊어져서 있어야 할 때 다시 말하면 사람과 사물로부터 관계를 끊거나 끊긴 채 있어야 할 때 그런 의미가 엑(ec)이라는 단어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끊어지고 사물과의 관계도 끊어지는 성서에서는 요한복음17장15절 디모데후서2장26절 계시록15장2절에 보면 여기에 관계되는 표현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클레시아(clesia)라는 단어는 원어는 뭐냐면 칼레오라는 원어에서 나온 단어가 클레시아(clesia)라는 단어입니다, 사전을 보면 00라고 부른다, 00에 이름을 부른다, 또는 이름을 짓다
또는 초대하다, 오라고 부른다, 또는 직책이 주어진다, 직책을 받기위해서 부른다, 또는 임명받기위해서 부른다, 이런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면 복합된 이 두 단어 엑클레시아(ecclesia)이걸 교회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처어치(Church)라고 그러고 또 영어로 어셈브리(assembly)이렇게도 표현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엑(ec)과 클레시아(clesia)를 합하면 어떻게 정의를 내릴 수 있냐면 교회라는 뜻이 이 세상과 관계를 끊고 분리되어 불리 움 받아 직책에 임명되어 사명감당하는 자들이 모인 개인 또는 그룹 또는 은밀한 의미에서 보면 장소입니다, 성서에 보면 교회를 크게 두 가지로 대별을 합니다, 첫째는 비기독교적용어로 다시 말하면 비 기독교인들이 모인 공동체를 사용한 부분이 성경에 한번 있습니다, 사도행전19장39절에 보면 그런 모습이 있지만 두 번째는 기독교용어로 사용한 겁니다,
첫 번째 기도교용어로 사용하신 것을 보면 구약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의 모임을 어셈블리(assembly)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그러니까 거룩한 목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백성들의 모임의 성경구절을 드리겠습니다,
신명기4장10절 31장30절 사사기20장2절 사무엘상17장47절 이게 다 이스라엘사람들의 모임을 말할 때 이 단어를 썼습니다, 신약에 와서는 더 다양하게 이 단어를 썼습니다, 첫 번째 이 단어를 쓰고는 교회라고 번역이 되어 있고 또는 공회라고 번역이 된 곳도 있습니다, 마태복음18장17절 고린도전서11장18절 또는 두 번째는 회중이라고 번역된 것이 있습니다,
이 회중이라는 뜻이 뭐냐면 한 지역에 모여 사는 기독교인들을 총괄할 때 사도행전5장11절 사도행전11장26절 15장3절 등 여러 군데에 있습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로 같은 원어인데 표시를 어떤 때 했느냐면 가정교회 아무개, 아무개 집에서 예배드리는 이 무리들아 그럴 때 이 단어를 썼습니다,
보면 로마서16장5절에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로마에 있을 때 그 분집에서 가정교회를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 가정교회를 문안하는 장면입니다
또 고린도전서16장19절에 보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고린도에 있을 때 또 자기 집에서 가정교회를 했습니다, 그다음에 골로새서4장15절에 보면 바울이 그랬습니다,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그랬습니다,
또는 빌레몬서1장2절에 보면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이렇게 해서 이 단어를 가정교회를 지칭할 때 썼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단어가 있는데 우리가 앞뒤를 보면 뭐냐면 너희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면 그곳에 내가 너희와 함께한다고 그랬잖아요,
그럴 때 보면 한 개인 또는 몇몇 사람이 모였을 때 마태복음18장20절에 그것도 교회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교회와는 성서에서 말하는 교회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하면 건물을 주로 봅니다, 물리적인 건물 그런데 그것은 아닙니다,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이야기할 때 교회라는 생각으로 바꾸시길 바랍니다,
교회머리가 누굽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에베소서4장15절에 그런데 우리가 계속해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보잖아요, 그러면 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교회시대에 있을 일곱 가지 형태의 교회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2천년교회시대에 일곱 가지의 그러한 형태의 교회들이 있을 것을 예언적으로 가르쳐주시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질문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교회시대에 예수님은 한 분이신데 한가지의 교회스타일로 해서 전 세계에 뿌려놓으시지 왜 교회모양이 이렇게 다 다르게 디자인하셨습니까, 심지어는 왜 전 세계에 교단이 이렇게 많습니까, 지금 현재 전 세계에 교단이 3만개가 넘는다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우리예수님을 모르는 분들은 이걸 가지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왜 이렇게 교파가 많고 교단이 많습니까,
한분인 예수님이신데 한 복음인데 우리가 지금 부활절을 이렇게 지켜도 전 세계에서 부활절. 부활절 하지만 부활절의 의미가 각자가 다른 의미를 가지고서 부활절을 지금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절이라 그래서 공영방송에서 부활절 예배드리는 모습을 몇 군데 보여주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 정도로 알고 있지만 우리가 영적인 측면에서 들여다보면 엄청난 다른 모양들의 부활절을 지금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질문을 조금 던지세요, 왜 예수님이 교회시대가 시작하기 전에 왜 이런 다양한 교회들을 디자인 하셨나, 교회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인데 왜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을 미리예정하시고 요한에게 이런 교회들에 대해서 쫘악 설명해주는 겁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정체성까지도 각 교회다가 다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교회시대의 2천년역사를 보면 예수님의 정체성그대로 예수님을 따랐던 교회들이 많지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정확하게 정체성들을 가르쳐주었는데도 왜 이렇게 다양하게 교회들을 디자인하셨나, 그러면 첫 번째 이유는 뭐냐면 이건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는 겁니다,
우리예수님이 전지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제가 지금 변증적으로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러면 전지하다는 뜻은 무엇인가 그러면 과거도 아시고 현재도 아시고 미래도 아시는 분이시라는 뜻이 전지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이라고 그러면 성경에 여러 군데 나오지만 몇 군데 성구를 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10장30절 로마서8장29절 로마서11장33절 히브리서4장13절 시편147편5절 이 외에도 여러 군데 있지만 제가 이렇게 몇 개를 드렸습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이 예수님이 교회시대에 한 복음을 떨어뜨려 놓았지만 똑같은 예수그리스도의정체성과 복음을 떨어뜨려 놓았지만 교회시대에 사람들이 이 복음을 받아가지고 각자가 다르게 반응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전지하신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의정체성을 일곱 교회를 향해서 다 드렸고 복음을 정확하게 다 드렸는데도 하나님의 자녀들인 교회가 수용하는 쪽에서 자기네의 입장에 맞추어서 이것을 다르게 해석하거나 수용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 이유는 뭐냐면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첫째 수용하는 그릇을 다 다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그릇이 색깔이 다르고 크기가 다르고 재료가 다르고 용도가 다르고 모양이 다르고 다 다르게끔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았습니다,
두 번째는 에베소서4장7절에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은혜의 분량을 다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세 번째로 로마서12장3절에 하나님의 자녀지만 믿음의 분량을 다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네 번째로 하나님의 자녀지만 족속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사회. 정치. 경제. 교육. 관습. 전통. 습관이 다 다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하나님의 자녀인데 인생의 가치관이 다르고 세계관이 다르고 종교관도 다르고 예수님을 보는 시각의 차이도 있고 내세관도 같은 것 같은데 다르고 인생관도 또는 물질관도 가정을 보는 가정관도 교육관도 다 다양하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저세상에 올라가면 영광이 서로가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5장41절에 또 계층이 다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5장19절 18장1절 23장11절 디모데후서2장20절21절에 그렇기 때문에 2천년 교회역사 속에서 보면 이렇게 다 다양하게끔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교단이 지금 엄청나게 많고 같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인데 예수님에 대한 이해와 복음에 대한 이해가 다양하게 표출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보면 세 부류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냐면 교회라는 정의가 있습니다, 그 정의에 따라서 정의에 완전히 부합된 교회가 일곱 교회 중에서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두 번째는 절반정도 부합된 교회가 있는 겁니다,
그 교회들이 에베소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교회까지 볼 수가 있습니다,
세 번째로 완전히 비 부합된 교회들도 있습니다, 사데 교회 라오디게아교회
이렇게 우리가 편의상 분류를 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예수님이 교회를 만드셔가지고 교회가 단순 적으로 하나의 똑같은 교회를 만들지 않으시고 다양한 교회를 예수님이 만드신 겁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의 본성 때문에 피조물은 다른 문화 다른 언어 분량이 다르고 하나님의 자녀인데도 믿음의 분량이 다르고 은사의 분량이 다르고 다 다르게 차별화해서 만드셨기 때문에 교회도 획일적으로 한 교회가 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이렇게 보면서 질문이 있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들을 보면 그 안에 하나님의 거룩 성이 잘 보이지 않는 겁니다, 교회 안에 말썽부리는 모습들이 잔뜩 있는 겁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성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보면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 못하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왜 교회가 이렇게 골치 아프게 되어 있느냐 그뿐 아니라 인간의 상식으로 봐도 일곱 교회가 왜 이렇습니까, 이게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봐도 그렇게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번 아시아의 일곱 교회 안에 들어있는 교회의 특징들을 봅시다, 예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의 특징들을 제가 볼 때 20가지는 최소한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걸 설명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때 왜 이렇게 교회들이 복잡하고 왜 이렇게 부활절 예배를 드려도 교회마다 다릅니까,
교단마다 다릅니다, 왜 그런가, 그런 것을 스스로가 소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제가 이렇게 깊은 이야기들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한번 아시아의 일곱 교회 속에 들어있는 교회의 특징들을 보면 ①영적으로 부자교회도 있고 가난한 교회도 있으면서 서로 공존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곱 교회 안에 순기능과 역기능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순기능이라는 게 뭐냐면 예수님의정체성에 맞추어서 운행되는 교회라고 보시면 됩니다, 또 역기능은 그와 반대로 예수님의정체성에 반하는 교회들로 보시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적으로 부자인 교회가 있고 영적으로 가난한 교회가 있는 겁니다, 서로 공존하고 있습니다,
②물질적으로 부자인 교회와 가나한 교회가 있는 겁니다,
일곱 교회 안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인데도 ③환란과 궁핍을 받는 교회가 있는가하면 잘 나가는 교회도 있는 겁니다, ④건전한 교회와 다시 말하면 순기능교회와 사탄의 회당이라고 불리 움을 받는 교회들이 있는 겁니다,
⑤면류관을 받는 교회가 있는가하면 못 받는 교회도 있는 겁니다,
⑥미지근한 교회가 있는가하면 뜨거운 교회도 있는 겁니다,
⑦열린 문교회가 있는가하면 닫힌 문교회도 있는 겁니다,
⑧적은 능력을 가진 교회도 있는가하면 큰 능력을 가진 교회도 있는 겁니다,
⑨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교회가 있는가하면 불순종하는 교회도 있는 겁니다, ⑩예수님의 이름을 외치는 교회가 있는가하면 부인하는 교회도 있는 겁니다, ⑪시험의 때에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지킴을 받는 교회가 있는가하면 못 지킴을 받는 교회가 있다는 겁니다, 지킴을 받는 다는 것은 예수님의 정체성이 변질되지 않도록 지킴을 받는 교회가 있습니다,
시험의 때에 마지막 때에 다원주의가 범람하는 때에 지킴 받지 못하고 많은 교회들이 다원주의에 빠져버리는 교회들이 많은 겁니다,
⑫민족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은 교회가 있고 못 받는 교회가 있는 겁니다,
계시록에 다 기록된 것을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⑬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는 교회가 있고 아닌 교회가 있습니다,
⑭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교회가 있느냐면 못 들어가는 교회가 있습니다,
⑮사탄의 깊은 것을 아는 교회가 있느냐면 알지 못하는 교회도 있다는 겁니다, ⑯귀가 열린 교회가 있느냐면 귀가 닫힌 교회들이 있다는 겁니다,
⑰이기는 자가 있느냐면 실패하는 자들도 있다는 겁니다,
⑱살아있는 교회가 있느냐면 죽은 교회도 있다는 겁니다,
⑲예수님의정체성을 수호하는데 비 타협하는 교회가 있느냐면 예수님의정체성을 수호에 타협하는 교회도 있다는 겁니다, ⑳신본주의교회가 있느냐면 인본주위교회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 교회시대에 이렇게20가지의 순기능과 역기능이 공존하면서 교회시대에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특히 예수님의 재림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산고가 있을 거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애기를 벤 것이 언제입니까 임신한 것이 교회시대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임신하여 예수님이 태어나고 예수님이 부활하셨잖아요, 그래서 교회시대가 시작되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초림 때 이미 예수님이 교회 안에서 임신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재림 때가 되면 예수님이 소위 다시 태어난다고 보면 됩니다, 승천해 올라가셨다가 예수님의 재림을 그래서 어떤 표현을 썼냐면 산고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예수님을 주욱 베고 있다가 임신하고 있다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올 때쯤이면 산고가 아주 심해진다는 겁니다,
산고가 일어난다는 것은 누가 나타나기 위해서입니까,
예수님이 나타나기 위해서 산고가 심하게 일어날 텐데 마태복음24장8절에 보면 그랬습니다, 산고가 심하게 일어나는데 복음의 산고 중에 가장 심한 산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정체성에 상처를 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부활절도 정체성에 상처를 가한 메시지들이 전 세계에 엄청나게 많은 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부활절메시지가 그런 메시지입니까,
예수님의 교회가 신성을 부인하는 겁니다, 오늘날 자유주의 종교다원주의사람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인데 예수님이 불교그리스도나 유교그리스도나 이슬람그리스도나 같은 레벨의 그리스도라는 겁니다,
그 말은 뭐냐면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시고 부처레벨이고 마호메트수준인 예수님이 그냥 유명한 현명한 인간이라는 겁니다, 누룩이 여기까지 내려온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냥 괜찮은 인간이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배드릴 때 말은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그 속에 깊이 들어가 보면 말이 그런 말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속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교회가면 예수그리스도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하면서 찬송 부르고 다하는데 80%의 전 세계의 기독교가 부활절예배가 그렇게 되어 버린 겁니다,
그러니까 부활절을 어디에다가 갖다 맞추느냐면 여러분들 지금 고생하시지요, 사업이 잘 안 되지요 건강이 조금 나쁘지요 부활하신 예수님이 고쳐주십니다 돈 벌게 해주십니다, 이런 식으로 부활절을 변형시켜버리는 겁니다,
이 사회가 악하죠, 부활하신 예수님 때문에 더 좋아집니다,
이런 식으로 다 바꾸어 버리는 겁니다, 왜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이 산고가 있게 하셨나, 그러면 우리가 지난시간에 어떻게 했습니까,
순기능을 더 강하시켜주기위해서다 그랬습니다, 왜냐면 이 세상은 창조목적학교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창조목적학교인데 지금 신약교회시대는 창조목적학교에서 처음천년은 초급대학교 그다음에 나머지천년은 4년제 대학교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세대가 4년제 대학교에 졸업반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정체성에 대해서 가장심하게 공격할 때가 지금 이 세대인 겁니다, 그러니까 역기능이 엄청나게 강하게 일어나고 있는 때인 겁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역기능이 많이 강하게 일어나야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저 손 놓고 있어야 됩니까,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오실 예수님에 대해서 더 초점을 맞추시고 그 예수님의정체성에 더 초점을 맞추고 우리교회가 또는 우리개인이 초점만 맞추면 됩니까, 내가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예수님의정체성에 대해서 다시 말하면 필수과목들에 대해서 더 공부하고 더 메모리하고 더 음미하고 묵상하고 그리고 이것을 내가 항상 외치고 이것을 내 민족에게도 외치고 타민족에게도 외치고 이런 사람들이 되라고 이런 모습을 빌라델비아 교회가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감사한 것은 우리교회교인들이 이 연습을 많이 하면서 우리가 지금 타민족에게까지 나가서 이것을 외치고 있고 또 가정교회들 우리가 성서공부하면서 셀 공부하면서 이것을 연습하고 배우고 무장하고 있음을 볼 때 저는 주님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교인들 그의 대부분이 이 반열에 들어온 우리권속들 주님 우리에게 엄청난 이 세대에 사명을 주셨군요,
이런 사명을 받은 사람들은 일곱 가지모양대로 교회들이 있지만 이 사명을 잘 감당한 그룹들을 높이시는 겁니다, 면류관을 주시기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분들은 이 험난한 마지막 때 누룩이 꽉 차있는 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남북문제 진보정부가 저렇고 그 사람들은 그렇게 해야 되는 겁니다, 이런 정부가 있어야 되는 겁니다,
전 세계가 지금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 외에는 생명이 없다고 외치는 사람들 저쪽 코너에 몰리게 되어 있는 세상이 이 세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이 사상에 접해있으면 우리가 열린 문의 교회가 되어가지고 이방사람들 내 국민들이 주님의정체성을 배우려고 부활절이 무엇인지 배우려고 교회에 드나들 때 주님은 우리 자녀들을 책임지십니다, 왜냐면 호라 페이라스모스 때 내가 너희들을 지켜주겠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자녀들이 지금 믿음이 없는 것 같지만 우리가 이것을 열린 문교회가 되어서 우리가 이것을 외칠 때 가르칠 때 중국에도 나가고 일본에도 나가고 여기저기 나가고 내가 헌신하면서 할 때 가정교회를 운영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자녀들을 책임지고 지키십니다,
지금은 믿음이 없어 보이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이게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그 자녀를 우리가 좋아서 낳은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주신 자녀들입니다
자녀없는 사람들은 조카들 삼촌 때문에 이모 때문에 고모 때문에 복 받는 가정들도 있습니다, 나는 자녀가 없으니까 나는 해당이 안 됩니다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부활절에 뭘 해야 됩니까, 이 날이 예수님의정체성을 재확인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십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십니다 예수님은 구원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재림주십니다 산고의 시대에 1세기 때 바울의 메시지가 베드로의 메시지가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메시지가 초점이었습니다, 그 말이 뭐냐면 예수그리스도의정체성을 드러내었던 겁니다, 똑같습니다, 우리가 지금 중국에 가서 일본에 가서 러시아에 가서 또는 어디에 가서든지 성서 공부할 때 뭘 전해야 됩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 정체성에 완전히 무장되어 있어야 됩니다, 무장되지 않고는 안 되는 겁니다, 정체성을 신랄하게 공격하는 이때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을 잊지 마시고 부활절이 무엇입니까 다시 물어보면 예수님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날입니다 이날이 부활절의 메시지입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이곳에 계신 예수님 저희들이2천년교회시대에 긴 기간시대 속에서도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가장 마지막 때 산고가 심한 때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정체성이 최대한으로 누룩으로 가득차고 있는 이 세대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감사한 것은 저희들에게 사명을 주셨기에 이 세상에서 부르시고 외치도록 훈련받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저희들이 예수님에 대한 정체성에 더욱 갈급하게 도와주시고 배고파하도록 도와주시고 그래서 겸손히 우리예수그리스도를 더욱 길게 넓게 높게 또 넓게 소화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시고 믿음을 허락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시아 일곱 교회로 보여주신 예수님의 교회관”(계2-3장)
1,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절 서머나 교회에 가르쳐주신 예수님의 정체성과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교회시대 전반에 이 정체성에 누룩을 허락하셨습니자, 그가 누룩을 허락하셨고 이 누룩이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온 교회에 버져나갔습니까?
2, 교회(ekklesia, church)란 어떤 단어와 의미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정의가 무엇입니까?
3, 교회가 일곱 가지 형태로 디자인된 이유와 목적이 무엇입니까?
4, 그런데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보면 예수님의 본래의 교회정의에 맞게 행동하는 교회가 많지 않게 디자인 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일곱 교회로 보여주신 예수님의 교회관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5, ‘교회사’가 ‘두 그룹의 갈등사’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6, 왜 예수님이 교회시대를 이렇게 ‘두 그룹의 갈등사 시대’로 디자인하셨습니까?
7, 오늘날은 어떤 시대입니까?
8, 오늘날 부활절 메시지는 어떻게 구분됩니까? 우리는 역기능적 부활절메시지를 가르치는 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9, 오늘날 빌라델비아 교회는 어떤 교회이며 그 교인들과 교회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tEyX2yGa8m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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