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강, 종말론의4가지학설
오늘부터 요한계시록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제가 서론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서론의 주제를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다, 라고 하시길 바랍니다,
계시라는 단어가 특별히 요한계시록에 나오는데 책이름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헬라어로 계시라는 단어가 뭐냐면 아포칼립시스apokalupsis”이며, 영어로는“revelation레버레션”으로서 제거를 의미하는“아포apo”와 덮다, 감추다 을 의미하는“칼립토 kalupto”의 합성어로 덮개를 제거하므로 안에 감춰져 있던 것을 밖으로 드러냄을 의미하는데(롬16:25). 성경은 대부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것을 성령을 통하여 진리를 드러내시고 깨닫게 하심을 말합니다, 즉 감추어진 것들을 드러내어 명확하게 밝히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숨겨놓았는데 숨겨놓은 것을 여셨다 또는 숨겨놓은 것을 폭로하셨다, 폭로라는 뜻은 나쁜 의미의 폭로가 아니고 나타내셨다, 라는 단어입니다, 우리의 질문이 뭐냐면 숨겨놓으셨다는 의미자체가 어떤 의미냐면 인제 이것을 만드셨기에 숨겨놓으셨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여쭐 것이 언제 이것을 만드셨는가,
다시 말하면 신학적인 용어로 22장까지 있는 이 내용들을 언제 예정하셨는가, 라고 우리가 질문을 던지면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성서에서 우리가 쭈욱 공부해왔지만 항상 창세전에 예정하신 것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달리는사건도 창세전에 예정하셨다고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그것을 바울이 어떻게 표현 했느냐면 바울이 그리스도의 신비다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창세전에 예수그리스도를 준비하셔서 십자가에 달리게 하신 이 말은 창세전에 삼위하나님 중에 제2위되시는 하나님이 장차 인간으로 내려오셔서 십자가에서 저주 받으실 것을 미리 예정하셨다,
라는 이것을 바울이 뭐라고 부릅니까, 그리스도의 신비다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신비의 한 과정 속에서 지금 요한계시록도 예정하신 겁니다, 그리스도의 신비과정 속에서 그래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성경구절을 제가 드리면 우리성경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선 영세 전부터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게 창세전부터라고 표현하면 되는데 로마서16장25절에도 영세 전부터 이런 표현이 있고 또 어떤 표현을 썼냐면 세상에 기초가 놓이기 이전부터 이 말은 창세기1장1절 이전부터라는 말이나 같은 말입니다
세상에 기초가 놓이기 이전부터 이 말은 에베소서1징4절 베드로전서1장20절에 이렇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요한계시록의 내용도 창세전에 이렇게 예정하셨다가 때가 되어서 이때는 언제입니까, 주후95년입니다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계시 받은 해가 주후95년입니다
주후95년에 요한에게 계시를 하신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부분의 계시를 하실 때 주전600년경에 다니엘에게도 계시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서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요한계시록은 구약의 다니엘서와 버금가는 예언서라 이렇게 봅니다, 다니엘서12장4절에 다니엘에게 뭐라고 말씀하였냐면 다니엘아 이 예언서를 마지막 때까지 봉하라 그랬습니다,
봉하라는 것은 봉투에 풀칠을 해서 붙어놓고 사인까지 하는 그런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서도 그 당시주전600년경에 받았지만 봉해버렸습니다, 그래가지고 다니엘서도2600년 동안 봉해놓았기 때문에 해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감추어진 요한계시록도 이렇게 다니엘서처럼 봉해버렸습니다, 봉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소화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과거2000년 동안 신학자들이 이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해석을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알다시피 종교개혁이1517년에 일어났잖아요,
종교개혁 주체인물 중 한분이 칼빈과 루터 같은 분들인데 이런 분들이 주석을 다 썼는데 요한계시록주석만은 쓰지를 못했습니다,
왜냐면 봉해놓았기 때문에 이렇게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서가 봉함을 받은 책들이기 때문에 소화를 하지 못했는데 언제까지 봉해라 그랬습니까,
마지막 때까지 봉해라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마지막 때가 도대체 언제인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 마지막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 때라 이렇게 우리가 소화하면 되겠습니다, 그런 말씀가운데20세기 접어들어서 서서히 서양신학자들 사이에서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1980년대 이후부터 서양신학자들이 해석한 것을 기초로 해가지고 또 나름대로 본인들도 계시를 받아가지고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석한 모든 것을 우리가 읽어보면 해석이 너무나 다양한 해석들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읽는 분들도 혼돈스럽고 또 학자들도 스스로가 혼돈스러워 하는 겁니다, 해석들이 각자가 다 다르기 때문에 그러면 왜 이렇게 해석이 다를까요, 그러면 아직까지 뚜껑을 완전히 오픈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게다가 이 내용을 들여다보면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난해합니다,
그 안에 보면 숫자들이 많고 또 심벌(상징象徵, symbol)들이 많고 그러다 보니까 이것들을 은유적으로 해석하거나 또는 비유적으로 해석하기 일상이고 그것을 직역하다보면 무리가 있는 이런 책입니다, 그다음에 들여다보면 순서가 역사적인 개념이 조금 약합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 내용을 나름대로 영해(영적해석)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영적해석으로 치우치는 경우도 있고 영적해석이라는 것은 객관성이 없이 주관적 성격이 많이 들어가 있거든요, 이러다보니까 요한계시록에 모든 내용들 해석들을 보면 너무나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게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어떤 문제들이 있어 왔느냐면 혼선을 빚어온 겁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자기와 다른 해석을 한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또는 심지어 공격하거나 또는 미워하거나 나중에 적대감까지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는 심하면 이단논쟁으로 번져나가고 이런 모든 불필요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장본인이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런 문제들이 항상 있어 왔기 때문에 지난40-50년 동안 신학교에서 교수들 사이에서도 같은 신학교지만 교수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해석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신학교에서 교수들이요한계시록을 자세하게 다루기를 꺼려합니다, 왜냐면 이런 논쟁이나 또는 서로 불편한 관계가 야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들도 마찬가지로 신학교에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자세하게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또는 자기 교단에서 가르치는 것만 배웠는데 또 졸업하고 나와 보니까 또 다른 학설들과 학문들이 많으니까 본이들도 혼선에 빠져있기 때문에 교인들에게 이 책에 대해서는 다루기를 꺼려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가운데 오늘날까지 우리가 이렇게 주님을 섬겨왔는데 요 근래 와서는 웹사이트나 이런데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가르치는 분들이나 설교하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이제 평신도들이 눈을 뜨기 시작하고 또 목회자들도 마찬가지로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관심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고 또 제가 가끔 웹사이트를 보면 이런 부분을 주제를 가지고 강해하는 강해들을 보면 접속숫자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 말은 뭐냐면 아! 이 부분이 갈급 된 부분이구나, 그렇다보니까 접속할 때 그 안에 어떤 분들의 것이 접속이 많은지 보면 특수이론을 전개하는 나중에 제가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이런 분들의 내용들을 많이들 접속하고 한국의 무 천년주의나 후 천년주의 일부장로교나 타 교단에서 보면 그분들이 가르치는 것을 예전에는 다 이단적가르침이라고 말했는데 그 이단적가르침이라고 말하는 그쪽에 놀랍게도 접속들이 많고 사람들이 그기에 동의하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니까 웹사이트의 파급효과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저희 교회도 요한계시록을 정리할 때가 되지 않았나, 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이번에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질문이 하나가 있는데 왜 같은 성령님이신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같은 성령님이신데 왜 요한계시록을 성령님의 지시에 의해서 예수님의 지시에 의해서 천사를 통해서 요한에게 하신 말씀이 해석이 이렇게 다양할까 이 다양한 해석을 어떻게 타협할 수 있는 길도 이제는 그의 없습니다,
너무나 다양하고 주장들이 강하기 때문에 그러면 이 부분에 다양한 이유를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왜 이렇게 다양할까요,
그러면 이유는 어디에 있느냐면 종말론학설 때문에 그렇습니다,
종말론학설이 다양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대부분의 많은 크리스천들이 특히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것이 어디에서 기인했느냐면 잘 대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기에 기인은 종말론학설에 차이에 의해서 요한계시록해석도 달라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종말론학설에 대해서 자세히 공부했습니다, 이 종말론학설이 얼마나 중요하는가를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특히 목회자들은 절대적입니다 종말론학설의 차이가 성경해석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A라는 분의 가르침을 들으면서 요한계시록에 관계되는 말씀을 하실 때 아하 이분은 종말론에서 어떤 종말론학설을 기초로 해서 말씀하시구나, 라고 소화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그분이 가르치는 그것을 그대로 내가 안아줄 수가 있습니다,
저분은 어느 쪽 배경에 영향을 받은 분이구나 그런 것을 우리가 종말론학설을 잘 이해 못하고 그냥 들으면 많은 분들이 그냥 자기와 다르다고 소리 지르면서 열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때는 지났다고 봅니다,
제가20년 전에 한국에 와가지고 이런 부분에 대해서 한국교회가 시끄러운 것을 제 나름대로 이렇게 보면서 종말론학설에 대한 기초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종말론기초만 알지 다른 분들이 가지고 있는 종말론 기초를 잘 모르니까 남을 비난하고 배척하고 이단이라고 말하고 이러는 겁니다,
또 우리나라사람들이 남이 자기와 다르면 이단이라고 말하는 많은 나라 중에 대표적인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그러다보니까 이단이 아닌 사람도 많이 이단이 되어 버렸고 그러다보니까 진짜 이단을 가짜 이단과 구병하는 구별 역 까지도 잊어버렸습니다, 무턱대고 자기와 다르면 이단이라고 그러니까 그러면 거꾸로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이단이라고 외치는 사람은 자기는 심각하게 남을 이단이라고 그러는데 그 사람이 속에 있는 그 교리는 우리가 큰 그림으로 볼 때는 전 세계기독교인의10%도 안 됩니다 그분이 말하는 그 교리가 우리가 그렇기 때문에 큰 그림을 볼 줄 알아야합니다,
그러니까 우물 안에 개구리가 말하는 식으로 비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겸손해지지 못하는 나보다 더 많이 보는 분이 계신다는 것을 인정해주면 자기가 아는 한계성을 그냥 가지고서 그걸로 다른 사람이 예수님 안에서 교리도 존중해주면서 가주는 이러한 성숙한 모습이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나,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그러한 성숙한 사람이 되라고 이번 세미나를 우리가 하면서 이 세미나를 통해서 아! 이게 이렇구나,
그러면서 나와 다른 사람들도 내가 수용해주어야지 라는 그런 마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부터 다시 공부해야 됩니까,
종말론부터 다시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종말론부터 공부해야지만 됩니다, 그래서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말론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열심히 했기 때문에 또 한 번 해야 됩니다 자꾸 복습을 해야 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습을 할 때마다 새로운 성령님의 가르침이 그기에 붙어서 나옵니다, 나는 아니까 하고 그다음부터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성령님은 나에게 내가 한계를 가진 내 이성적으로도 내가 한계를 가졌는데 지적으로도 그렇고 종말론을 내가 어느 정도는 갖고 있지만 또 성령님이 나에게 뭘 또 가르치시려고 그러는구나,
하고 겸손히 듣고는 새로운 주님의 음성을 또 듣는 연습을 하셔야 됩니다,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 질문이 하나있습니다 이게 똑똑한 사람들의 질문입니다 저도 이런 질문을 해봤지만 저는 이런 질문을 안 하려고 그럽니다,
그러나 여러분들 중에 분명히 이런 질문을 할 것입니다
무슨 질문이냐면 왜 하나님이 진짜 진리만 말씀하시는 분이신데 왜 종말론도 그렇고 또 요한계시록도 그렇고 해석하는데 다양한 해석을 하도록 다양한 논리를 전개하도록 만드셨는가, 시원하게 제대로 단일학설하나만 우리에게 주시면 이런 잡다한 이런 세미나도 필요 없는데 실은 왜 시원하게 제대로 된 이론하나만 주시지 왜 이렇게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교단도 많아지고 서로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끼리 비난하고 왜 이렇게 하도록 디자인하셨습니까, 왜 허락하셨습니까, 라고 질문을 한다면 무엇이라고 대답을 해야 됩니까, 가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복잡합니까, 그기에 대한 대답은 추후에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로 먼저아시고 여기에 대한 대답을 우리가 할 줄 알아야 됩니다,
누구든지 여기에 대해서 물어보니까 그러면 지금까지 제가 서론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제1강으로 들어가서 제1강은 종말론의4가지학설들입니다 종말론에4가지학설들입니다 그러면 제가4가지학설들을 하나하나 불려 드리겠습니다, 간단하게 첫 번째가 역사적 전 천년주의(Premillennialism) 두 번째는 세대주의적 전 천년주의(Dispensational Premillennialism) 세 번째는 무 천년주의(Amillennialism) 네 번째는 후 천년주의(Postmillennialism) 이렇게 아시고 계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첫 번째 전 천년주의자나 후 천년주의자나 무 천년주의자나 세대주의자나 이것이 어떻게 구별되느냐면 구별하는 잣대가 어디에 있느냐면 그 잣대가 여러 개가 있지만 큰 잣대가 하나있습니다,
큰 잣대가 뭐냐면 천년왕국(millennium Kingdom)입니다,
천년왕국에 대한 해석의 차이입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 중에 하나가 이겁니다 천년왕국을 어떻게 보느냐면 우리 성서에는 천년왕국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나중에 시간 있을 때 보겠지만 첫 번째 문자적으로 실제로 천년왕국을 믿는 그룹들이 있습니다, 천년왕국이 실제로 있다고 믿는 그룹들이 역사적 전 천년주의와 세대주의적 전 천년주의의 사람들은 이걸 믿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실제로 천년왕국을 문자적으로 그대로 믿고 해석하는 분들입니다, 이것을 문자적 해석이라고 그럽니다,
그러면 언제부터 천년왕국이 시작이 되느냐면 예수님이 지상 재림 후 천년왕국이 실제로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잖아요, 예수님이 재림해오시면 실제로 천년이라는 기간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두 번째는 천년왕국을 문자적으로의 반대말은 무엇입니까,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는 겁니다, 그냥 영적으로 또는 은유적으로 보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실제로 천년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 천년은 뭐냐면 그냥 상징적으로 긴 시대를 이야기한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상징적으로 보는 분들은 어떻게 보느냐면 이분들은 예수님의 초림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이 이미 천년왕국의 시작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초림이 천년왕국이 시작되어서 그것이 긴 세월이라는 겁니다,
문자적으로 천년이 아니고 긴 세월이니까 천년보다 짧을 수도 있고 길수도 있고 심지어는 몇 만 년도 될 수도 있고 이렇게 보는 긴 세월 그러니까 스타팅 포인트가 예수님의 초림입니다 초림부터시작해서 긴 세월을 보는 겁니다, 그걸 그냥 천년왕국이라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것을 상징적이다 또는 은유적이다 또는 영적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런 시각으로 보는 예수님의 초림에서부터 긴 기간으로 보는 이런 종말론적인 두 팀이 무 천년주의고 후 천년주의 인겁니다,
무 천년주의와 후 천년주의 팀들이 이렇게 보는 겁니다,
무 천년주의는 천년왕국이 없다는 겁니다, 후 천년주의도 나중에 무 천년주의에서 나온 겁니다, 그래서 같은 가족들입니다
세 번째 전 천년주의자 안에서 들림(휴거)의 시기를 가지고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 들림을 받느냐 그러면 첫 번째는 환란 전 들림(휴거)이다 다시 말하면 7년 환란이 일어나기 직전에 주님이 공중에서 나타나시는데 그때 들림(휴거) 받는다, 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쪽을 선호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환란 전 들림(휴거)이다 이런 말을 씁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는 환란 중간에 들림(휴거)받는다 그러니까 전3년 반 후3년 반이 있는데 전3년 반이 끝나고 들림 받는다, 그래서 환란 중 들림(휴거)이라 그럽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는 환란 후 들림(휴거)받는다
이 말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교회는 7년 환란을 다 경험하고 끝나고 들림(휴거)받는 다고 믿는 분들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같은 전 천년주의 사람들인데도 성경을 가르칠 때나 설교할 때나 이걸 보시면 이 사람이 환란 전인가 환란 중간인가 환란 후인가를 듣다 보면 구별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제가 이것을 왜 말씀드리는지 알겠죠, 우리가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은 분별력을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위해서가 아니고 분별력을 키우면서 자기의 포지션은 자기가 정해놓고 제가 여러분들의 포지션을 어떻게 가지십시오,
라는 말은 저는 안 합니다, 본인들이 알아서 설정하세요,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다른 분들의 포지션을 듣고는 그분들의 설교하는 것만 성경 가르치는 것만 들어도 알 수 있습니다, 이분은 어떤 쪽에 있는 분이구나
네 번째로 그러면 천년왕국이 상징적이다 라고 보는 분들의 주장이 무엇이었습니까, 이분들은 7년 환란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상징적으로 주장하는 분들은 첫 번째로 7년 환란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두 번째로 세상 끝날 때 예수님의 공중 재림과 지상재림이 동시에 온다고 보는 겁니다,
세상 끝날 때 예수님이 공중에서 재림해 오시고 그럴 때 들림 받는다는 개념으로 이때 교회가 들림 받는다고 그럽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라는 말은 건물이나 교파가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교회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교회가 들림 받는다는 말은 모든 기독교인들은 다 들림 받는다고 보는 겁니다, 여기서 개념이 엄청나게 차이가 있습니다, 적당히 믿는 사람이나 열심히 믿는 사람이나 다 들림 받아서 신부가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것도 혼인 잔치하는 것도 모든 기독교인들이 다 한다는 겁니다, 구별을 안 하는 겁니다, 우리나라에 장로교 안에 또는 감리교 침례교도 일부가 이런 주장하는 분들이 무 천년주의자들과 후 천년 주의자들 중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혼돈하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합니다, 세상 끝날 때 예수님이 공중에 나타나시고 그럴 때 교회가 모든 크리스천들이 다 열심히 믿든 아니든 전부다 들림(휴거)받고 그러니까 우리가 다 들림(휴거)받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신부가 되고 그래가지고 예수님과 같이 재림해서 이 세상에 내려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내려오는데 크리스천들은 심판을 받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가고 예수 믿지 않는 자들은 이분들은 이때 심판을 받고 불 못으로 던져진다고 보는 겁니다, 예컨대 다시 말하면 불 못으로 던져지기 전에 이분들이 음부에 있었습니다, 음부에 있다가 부활을 받아서 요한복음5장29절입니다,
음부에서 또는 지옥에서 부활을 받아서 백 보좌심판 앞에 서는 겁니다,
요한계시록20장11절12절에 백 보좌 앞에 섰다가 심판받고는 그다음에 불 못으로 던져지는 겁니다, 마지막 이 부분은 같습니다, 그런데 뭐가 다릅니까,
전 천년주의사람들과 모든 사람이 다 들림 받는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신부가 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왕 같은 제사장들이다 이렇게들 이야기 합니다, 설교에서 성경 가르칠 때 우리는 모두 왕 같은 제사장들이다
이런 이야기 들었을 겁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이분은 어느 종말론에 의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걸로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까, 무 천년주의나 또는 후 천년주의나 이렇게 차이가 납니다, 다음시간에 뵙겠습니다,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HPBkss16c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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