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

30강, 누가복음6장27절-38절, 평지수훈4복과 산상수훈8복 비교

변명섭 2020. 10. 13. 18:42

누가복음 강해 30강, 평지수훈4복과 산상수훈8복 비교(눅6:27-38)   2017년3월5일 말씀
오늘본문말씀은 누가복음6장27절에서3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27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9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30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31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32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33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35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어떤 사본에, 아무에게도 실망하지 말고
36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37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아멘, 
이 말씀이 오늘 주제가 되어서 주님이 우리에게 이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깊이 상고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우리 지난사간에는 평지수훈의 네 가지 복과 또 네 가지 화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지난시간에 복 있는 자 중에 두 가지 그룹이 있는데 한 그룹은 빼앗긴 자들을 지칭할 때 또는 빼앗기지 않는 자들 이 두 가지의 사람들이 있음을 우리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 이들이 다들 사도라는 직분을 가졌는데 사도라는 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서 먼저 불리 움을 받고 그다음에 보내심까지 받는 자들을 사도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도들을 또 제자라는 이름으로 말씀하신 것 기억나시죠, 제자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선생님의 모습으로 닮아가는 자를 제자다 이렇게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계속해서 평지수훈이 두 단원이 있다,
라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단원은 지난시간에 공부했습니다, 
4복과4화 이것을 첫 번째 단원으로 공부했고 두 번째 단원은 이 안에 보면 두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 첫 번째 부분을 가지고 말씀을 나눌 겁니다, 첫 번째 부분의 주제가 뭐냐면 원수를 사랑하고 또 선대하며 자비를 베풀라는 메시지로 말씀하신 것이 첫 번째 부분입니다 
오늘은 이 부분을 가지고 같이 나누려고 그럽니다, 
예수님이 지금 이분들에게 평지수훈에서 가르치는데 뭐냐면 너희들이 내 사도가 되려면 또는 내 제자가 되려면 우선 할 일이 뭐냐면 너희원수를 사랑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속에서 예수님이 도대체 이 원수는 어떤 사람들인가 그냥 막연한 원수가 아니고 예수님이 오늘 가르침 속에 보면 일곱 가지의 원수의 개념들이 있습니다, 이 원수들이 우리 삶에서도 이런 분들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첫째는 뭐냐면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예수님이 원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원수라 그랬습니다, 세 번째는 너희를 모욕하는 사람들도 원수 중에 들어간다고 그랬습니다, 네 번째는 너희의 뺨을 치는 사람들도 원수라는 겁니다, 
다섯 번째는 너희의 겉옷을 빼앗아가는 자들도 원수라 예수님께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는 너희들에게 강제로 너희의 소유를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들도 원수라는 겁니다, 일곱 번째는 너희 것을 강제로 빼앗아가는 도둑질하는 이런 사람도 원수라는 겁니다, 그래서 원수의 개념을 오늘 본문 평지수훈에서 원수의 개념을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원수들의 특징들이 있음을 일곱 가지로 볼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나의 자존심을 깎아내리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들여다보면 그런 내용들이 있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나를 사도로써 인정하지 않는 그런 특징들도 있습니다, 세 번째 특징은 나의 장점을 보지 않고 단점만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네 번째는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 다섯 번째는 나의 인격을 손상시키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 여섯 번째는 나를 배반하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 일곱 번째는 나의 선의를 역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지금 예수님이 너희들의 원수들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원수들을 사랑하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오늘 평지수훈에서 갓 제자로 사도로 선택받은 이분들에게 말씀하시는 게 이런 사람들을 사랑하라 
그런데 예수님이 사랑하라 할 때 단어를 제가 원어를 보니까 아가파테 하면 사랑해라 하는 아주 명령형의 단어가 아가파테입니다 
이 사람들을 아가파테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우리에게 조금 불편한 단어입니다 이분들에게도 상당히 불편한 단어입니다, 
이분들은 헬라어를 알기 때문에 아가파테 하라고 그럴 때는 상당한 괴로움이 거기에 따라왔을 겁니다, 왜냐면 이 아가파테는 뭐냐면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일방적 사랑입니다, 토씨를 붙이지 않는 사랑입니다 
그러나가 아닙니다, 토씨를 붙이지 않는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성서에서 고린도전서13장에서 요구하는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13장4절에서7절의 사랑은 오래 참으라는 겁니다, 이게 아가페사랑 그런 사람에게 온유 하라는 겁니다,
또 그런 사람들을 보고 질투하지 말라는 겁니다, 또 이런 사람들에게 무례히 행치 말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대할 때 내 유익을 구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대할 때 성내지 말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이런 사람들이 나에게 악하게 대한 것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지 말라는 겁니다, 악한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은 그분들의 잘못 된 것을 항상 마음에 담고 있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참으며 믿으며 바라며 견디라는 겁니다, 이런 명령형으로 예수님께서 지금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 겁니다,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고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고 모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쪽 뺨도 갖다 대며 겉옷 달라면 속옷도 주고 구하는 자에게 그저 주고 네 것을 가지고가는 자에게 그냥 달라고 하지 말고 이렇게 하라는 겁니다, 이런 말씀을 지금 열두제자들이 듣고 있는 겁니다, 지금 이렇게 말씀하실 때 이분들만 들었습니까, 
안 그러면 주변에 또 다른 제자들도 있었습니까, 주변에 다른 제자들도 많았습니다, 이분들이 이 말씀을 들을 때 감정이 어떻겠습니까, 
이분들의 반응이 어떻겠습니까, 이분들은 유대인들이기 때문에 구약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구약의 가르침을 특히 모세오경의 가르침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모세오경의 가르침은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정반대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모세오경의 가르침을 제가 성경구절을 드리겠습니다, 출애굽기21장24절에서25절에 보면 여기에 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모세가 직접 가르친 겁니다, 그다음에 레위기24장20절에서21절에 여기에 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출애굽기21장24절25절에 보면 이렇게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스라엘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눈은 눈으로 누가 너 눈을 뽑으면 그 사람 눈 뽑아라, 이는 이로 누가 너 이빨을 뽑으면 그 사람 이빨을 뽑아라, 그다음에 손은 손으로 누가 너 손을 자려면 그 사람 손 잘라라 발은 발로 누가 너를 데운 물로 상하게 하면 너도 데운 물로 상하게 하라 누가 때리면 같이 때려주라 이 말씀이 지금 모세오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레위기24장20절21절에서도 누가 너에게 상처를 주면 상처를 주라,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하는 겁니다, 이런 말씀을 하셨고 유대인들이 과거 모세 때부터1500년 동안 예수님 오실 때까지 이런 식으로 사람을 대해 왔던 겁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라는 젊은 청년이 나타나가지고 이 사상으로 물들어 있는 유대인들에게 특히 열두 명을 선택해가지고 또 주변에 그분을 따라다니는 많은 제자들 예수님의 여덟 가지의 행한 비범한 일들을 보고 따라 다녔던 분들 이분들에게 갑자기 점잖은 젊은 청년 예수님이 구약의 가르침과 정반대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자기 상식으로 불가능한 이야기고 비성서적인 이야기고 비이성적인 가르침에 대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는 약속하시기를 너희들이 이렇게 하면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너희 상이 클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보면 너희 상이 클 것이다 그러면서 너희들이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이런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우리가 보겠지만 이와 비슷한 말씀을 나중에 제자들을 데리고 산을 올라가셔가지고 사상수훈에서 이와 비슷한 말씀을 또 하셨습니다, 산상수훈에서 하실 때는 열두제자들만 따로 데리고 올라 가셔가지고 이렇게 지금 갈등을 가진 제자들에게 주님이 갈등을 가진 제자들을 아는 상태에서 이분들을 데리고 산상수훈을 가르치기 위해서 산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너희 상이 크다 할 때 산상수훈에서는 하늘의 상이 클 거다 이렇게 산상수훈에서는 못을 밖아 놓는데 지금 평지수훈에서는 하늘의 상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너희의 상이 크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너희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거다 그랬습니다, 
우리가 나중에 산상수훈을 보면서 비교하겠지만 이분들에게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애들아 너희들이 이런 사람들이 되려면 이 세상 사람들이 너희들을 칭찬하고 너희들을 존경하고 이 세상 사람들이 너희들에게 상을 베푸는 것처럼 너희들이 인정받고 이 세상 사람들이 너희들을 상당히 좋아할 것을 예수님이 지금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영적인 의미에서 천국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고 이 세상에서 상속자가 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높임을 받고 이 세상 복을 받을 것을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말씀 한 것처럼 이 세상에서 너희들이 많은 복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왜 하느냐면 우리가 비교를 할 터인데 평지수훈을 말씀하시는 것은 육적인 부분과 혼적인 부분을 가지고서 그쪽 측면을 놓고 제자들이지만 육적인 부분과 혼적인 부분을 먼저 다르시는 부분에서 너희들이 이 부분에서 칭찬받고 복을 받고 아들의 직분을 가지게 되고 상급을 받고 하려면 이런 원수를 사랑하는 일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평지수훈의 가르침은 이 세상에서 복 받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 초점이 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서 특히 사도라는 사람들 도는 제자라는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많을 것을 예표로 보여 주시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교계의 지도자들이나 또는 정교회 로마가톨릭 우리 개신교 소위 크리스천들의 지도자들 중에 이 세상에 초점이 있어가지고 인간적으로 보면 용서 잘하고 좋은 일 많이 하고 사람들에게 칭찬 받고 상급 받는 이런 분들이 많을 것을 제자들에게 예표로 가르쳐주시는 겁니다, 
도덕적으로도 우수하고 윤리적으로도 우수하고 인간적으로도 존경 받고 이런 소위 사도들 제자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는 겁니다, 
그런 목회자들이 이분들은 우리가 말하는NO1.NO2쪽에 속한 지도자급들입니다 이분들은 어떤 부분이 강하느냐면 인본주의부분이 강한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날로 보면 인권운동도 하고 이 세상에 가치기준을 가지고 이성주의가 강하고 이런 분들을 우리가 진보주의자들이라 그럽니다, 
또는 윤리주의자들이라 그럽니다, 도덕주의자들이라 그럽니다, 
또는 기복주의 번영주의 다 여기에 속하는데 이런 사람들이 많을 것을 예를 들어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는 지금 예수님께서 사도들이지만 두 종류가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니까 평지수훈 적제자들입니다  
이분들은 일반사도라 또는 일반제자라 우리가 이렇게 부를 수가 있고 그러니까 혼적 육적수훈에 관심이 있는 분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분들에게 평지수훈을 가르치신 후에 이분들을 데리고는 다시 한 번 업그레이드된 수훈을 가르쳐주기를 계획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을 데리고서 산으로 올라가셔서 업그레이드된 산상수훈 적사도가 누군가 산상수훈 적제자가 누군가 특별사도들입니다 특별제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를 가르쳐주는 것이 산상수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상수훈은 마태복음5장6장7장에 있고 평지수훈은 누가복음6장에 있는 겁니다, 산상수훈은 업그레이드된 높은 단계의 수훈입니다, 우리가 이 산상수훈을 팔복 산에서 했다라고 신학자들이 말하기도 하고 또는 이 산이 어디냐면 우리가 생각할 때 예수님이 처음을 기도하러 올라간 그 산이라고 추측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그 산으로 올라가셔가지고 마태복음5장에 보면 이분들 제자들만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특별교육을 시키는 겁니다, 예수님의 첫마디가 뭐냐면 진짜 복 있는 자가 누군지 아느냐 입니다, 평지에서는 복 있는 자가 이런. 이런 사람들이라고 말했는데 진짜 복 있는 사람은 아느냐 그러면서 평지수훈에서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산상수훈에서는 예수님이 거기다가 심령이 가난한자가 복이 있다고 심령을 거기다가 첨가했습니다, 
심령이 무엇입니까, 그래서 우리가 심령이 무엇인지 알아야 됩니다, 
그러려면 사람의 구성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5장23절에 육 혼 영이 사람의 구성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구성 중에서 혼의 구성이 또 있습니다, 혼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느냐면 마가복음12장30절에 혼이 지하4층으로 되어 있는데 지하1층이 힘입니다, 지하2층이 뜻이고 지하3층이 목숨이고 자하4층이 마음입니다, 마음을 하트(heart)라 그럽니다, 
헬라어로 카르디아(kardia)입니다 또는 히브리어로 레브(leb)라 합니다,
그런데 성서에 보면 마음이라는 제일 아래층을 내 영이라 그랬습니다, 
내영 그러니까 저나 여러분들에게 영이 있습니다, 내영은 성령님이 아닙니다, 사람의영이라 그랬습니다, 로마서8장16절 또는 고린도전서2장11절 또는 바울의영이라고 그래가지고 고린도후서2장13절에 이렇게 영을 퓨뉴마(pneuma)라 그럽니다, 그래서 마태복음5장3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심령이 뭐냐면 하트 가장 밑바닥에 내영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영과 성령님이 만났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하트는 마음이라 하는데 잠언4장23절에도 마음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다음에 시편34편18절에 중심이라는 단어도 썼습니다, 
또는 사무엘상16장7절에 다윗의 중심이 깨끗했다 또는 바울이 쓰는 단어인데 속사람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로마서7장22절 에베소서3장16절 고린도후서4장16절 이런데는 바울이 속사람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뱃속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요한복음7장38절에 그러니까 하트라는 그릇 안에 제일 밑바닥에 나의영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나의 잠재의식이 있는 곳이 여기가 아닌가, 
라고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영을 히브리어로는 영을 루아흐(ruach)인데 루아흐 아담이라 그랬습니다, 아담이라는 것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루아흐 아담 이게 사람의영이다 그다음에 신약에 나오는 헬라어로 퓨뉴마 엔트로포스하면 사람의영이라는 겁니다, 그러데 예수님이 지금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내 속 제일 깊은 곳에 있는 영이 가난함을 느끼는 자는 이런 말입니다, 
그런데 이때 가난이라는 단어를 제가 산상수훈에서 자세히 설명했지만 오늘 보면 프토코스(ptokos)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프토코스(ptokos)라는 단어가 있고 패네스(Penes)도 가난이라는 뜻입니다,  패네스(Penes)는 어떤 의미냐면 하루세끼 먹을 수 있는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가난입니다, 그런데 프토코스(ptokos)의 가난은 완전한 가난입니다
당장 의식주도 없고 당장 먹을 것도 없는 가난을 프토코스(ptokos)가난이라
이렇게 써는데 예수님이 어떤 단어를 썼냐면 프토코스(ptokos)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그러니까 내영이 완전히 가난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내속에 뭐가 전혀 없다는 소리냐면 내속에 성령의 열매가 전혀 없다는 겁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그러니까 기독교인인데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면 내속에 있는 내영이 완전히 가난하다는 겁니다, 이것을 말하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하나님의 사람은 내영 속에 성령님이 계십니다, 
그리고는 성령님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겁니다,  
갈라디아서5장22절23절에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렇게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들이 내속에 있는 겁니다, 그런데 성령의 열매가 이 안에서 작용을 하지 않으시는 겁니다, 
성령님이 나한데 계신데 그 대신에 악령의 성품들이 내 속에 가득 있는 겁니다, 내속에 탐욕이 많고 욕심이 있고 속이는 마음이 있고 거짓말 하고 이간질 시키고 분리시키고 미움이 있고 원수 맺고는 용서 못하는 마음이 있고 음란하고 호색하는 마음이 있고 이중적인 성품이 있고 내 영광을 찾는 성품이 있고 이기주의고 이런 사람들은 바울이 그랬습니다, 
갈라디아서5장21절에 이런 마음을 가진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그랬습니다, 이 말은 뭐냐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높은 위치에 있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와 같이 지금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것은 제자들에게 너희들 속에 성령의 열매는 없고 악령의 열매만 가득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겸손한 사람으로 우리가 죽을 때까지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내속에 성령의 열매는 없고 악령의 열매가 가득 차있다고 항상 고백하는 사람 그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겸손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때 겸손은 어떤 의미에서 겸손이냐면 성령의 열매와 악령의 열매와의 관계 속에서 내가 예수님의 성품이 전혀 없다, 라고 매일 고백하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고 진짜 복 있는 사람이고 하늘나라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비밀을 우리가 철저하게 깨달아야 되는 겁니다, 
지금 제자들에게 평지수훈에서는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그냥 가난한자는 환경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어 가지고 산상수훈에서는 너 속이 가난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은 어떤 복이 있느냐면 천국이 저희 것이요 그랬습니다, 현재형으로 썼습니다, 천국이 저희 것이요 했는데 똑같이 평지수훈에서도 천국이 저희 것이요 했습니다,  
그 약속은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분별을 잘 하셔야 됩니다, 
도대체 천국이 뭡니까 우리가 알다시피 마태는 항상 천국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 )이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마가나 누가나 요한이나 바울은 주로 더 킹덤 오브 갓(the Kingdom of God)이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로 다릅니다, 
그렇지만 같은 내용인데 표현을 그렇게 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큽니까, 시간적인 개념에서 언제부터 언제까지입니까,   
창세전부터 저세상입니다 주욱 가다가 창세가 있었습니다, 
그다음에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서7000년 이 세상입니다, 
시간세계를 성서에서는 이 세상이라 그럽니다, 그리고7000년 이 세상이 끝나면 저세상으로 우리가 또 회복하는 겁니다, 그래서 시간적인 개념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창세전부터 이 세상 그리고 저세상 영원세상까지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시간적인 개념에서 그러니까 우리도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나라 속에 우리가 있는 겁니다, 공간적인 차원에서 하나님나라는 3층천은 낙원입니다 그다음에2층천은 우주입니다 그리고는1층천은 공중이라 그럽니다, 그리고1층천 밑에 지하가 있습니다, 지하에 음부가 있고 무저갱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공간적인 차원에서 보면 저 우주파라다이스부터 저 밑에 음부까지 다 하나님의 나라인 겁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 나라라는 말은 그기에 영토가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나라는 그기에 보면 왕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왕이 누굽니까 예수님입니다 삼위하나님 중에서 예수님입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디모데전서6장15절에 만유의 주 왕 중에 왕이라고 그랬습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를 실제로 통치하는 분은 누굽니까 통치자가 성자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입니다 어떻게 압니까, 마태복음28장18절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들과 땅에 모든 권세를 아버지가 나에게 주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권세를 떠맡은 분이십니다 우리가 섬기는 예수님은 대단한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과 땅에 모든 권세를 그 속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 다 예수님의 장중에 있다는 겁니다, 이게 천국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처음에 평지수훈에서 너희들이 가난하면 천국이 너희들 것이요 할 때 이 때 가난이라는 것은 마음의 가난이 아닙니다, 
환경적인 가난입니다 이렇게 가난할 때 너희들이 천국을 누린다는 겁니다, 
이럴 때 천국과 예수님이 지금 산상수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을 누린다는 것은 어떻게 우리가 비교할 수 있습니까, 
우선 평지수훈에서의 마음의 가난은 환경적인 마음이 가난입니다
이런 사람이 천국을 누린다 할 때 이 천국은 고작해야 이 세상을 지칭하는 겁니다, 이 세상 천국입니다 그러니까 시각이 이 세상에만 가있는 이런 사람들입니다 사도지만 제자지만 목사지만 신부지만 신학자지만 이 세상에만 눈이 가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 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는 뭐냐면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똑같이 천국이 저희 것인데 이 당시 심령이 가난한 것은 내 마음이 점점 순수해지는 겁니다, 
나중에 보겠지만 마음이 수순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요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순수한 자는3층천부터시작해서 저 밑에 음부까지를 들여다보는 사람입니다 그럴 아는 사람입니다 그다음에 시간적으로 시간세계부터영원세계까지 시간적인 천국개념을 보는 사람들인 겁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순수해질수록 시각이 점점 뚜렷해지는 겁니다, 
이게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진짜 복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그분의 사고방식과 그분의 말하는 것과 그분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보면 아는 겁니다, 이 사람이 어느 정도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인가 시각이 어디로 가 있느냐 그러니까 시각의 종류에 따라서 히브리서11장의 믿음을 가진 자와 똑같은 개념입니다, 히브리서11장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을1층천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다음에 음부까지 보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저세상이 내 본향이라고 보는2층천3층천까지 보는 사람입니다
그게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눈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12장에서 봤지만 사람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믿음의 분량이 다르다는 겁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영의 눈이 어느 정도 떠있느냐에 따라서 그 분량이 다르다는 겁니다, 크기가 다르다는 겁니다, 
지금 같은 제자들에게 열두 분들을 모아놓고는 업그레이드된 시각을 가르쳐주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그냥 평범한 시각을 보여주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 업그레이드된 시각을 가지려면 천국을 파노라마처럼 볼 수 있는 그런 시각을 가지려면 조건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그러는 겁니다, 
첫째조건이 뭐냐면 애통해야 된다는 겁니다,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평지에서는 그냥 운다고 그랬습니다, 
산상수훈에서는 애통하는 사람은 어떤 일에 슬퍼하는 사람은 뭘 슬퍼하느냐면 내속에 있는 사탄의 성품들 이놈들을 미워하는 겁니다, 
내속에 있는 나의 더러운 성품들을 내가 미워하는 겁니다, 내가 싫어하는 겁니다, 이것이 내속에 있는 것을 그러니까 복 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또 불편해하는 겁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성품이 안 좋구나, 
또는 후회하는 사람입니다 또는 한 단계 나가서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쫓아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뿐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이놈을 내 실력으로 쫓아내지 못한다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애통하는 겁니다, 
이게 누구 도와주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게 내 실력으로 안 되는구나 그래서 이런 사람을 다윗도 그랬습니다, 
시편51편17절에 상한 심정을 가진 자라고 그랬습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이 이 마음을 가지면 내가 위로 자를 보내 주겠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시는 겁니다, 
그 위로 자가 누굽니까 보혜사성령님이신 겁니다, 요한복음14장16절에 이 보혜사성령님이 들어오셔 가지고 나를 조금씩. 조금씩 바람으로 쫓아내기도 하고 불로 태우기도 하시고 비둘기 같이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으로 생수로 내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조금씩. 조금씩 한꺼번에 안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죽을 때까지 평생 이것을 경험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성화를 시켜주는 겁니다, 이렇게 성화가 되면 성화가 조금씩 될 때마다 예수님이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의 마음이 온유해진다는 겁니다, 
온유하다는 말은 영어성경에는 젠틀(gentle)하다 또는 미크(meek)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헬라어로 프라우스(fraus)단어를 썼습니다, 
프라우스(fraus)단어의 뜻은 온화하고 친절한사람입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프라우스(fraus)가 정확하게 어떤 단어냐면 훈련된 가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야생동물은 주인이 없습니다, 제멋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훈련된 가축은 주인이 있습니다, 주인 말을 듣는 겁니다, 
그러려면 아픔이 따라옵니다, 그래서 훈련된 가축을 묘사한 단어가 프라우스(fraus)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프라우스(fraus)적인 사람이 되려면 한참 훈련을 받아야 되는 겁니다, 애통을 하는 훈련을 계속해서 받아야 되는데 성서에서는 모세를 예를 들었습니다, 민수기12장3절에 모세가 그 당시 중동지방에서 가장 프라우스(fraus)한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어떻게 모세가 이런 칭호를 받게 되었습니까, 40년40년80년을 훈련 받은 사람입니다, 40년 궁중생활40년 광야생활 하면서 그래서 이 훈련을 받고는 나머지40년을 사용하셨던 겁니다, 그러니까 모세는80년 훈련 받고는 항상 한걸음. 한걸음 뛸 때마다 여호와께 물어보면서 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제 다루기가 편하게 된 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항상 예수님과 대화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내 뜻대로 하지 않고 주님의 뜻을 찾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분명히 예수님이 그러는 겁니다, 
이렇게 온유한 사람은 어떤 상급이 있느냐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시편37편11절에 다윗도 똑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이렇게 온유한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이렇게 온유한자가 저쪽나라에 올라가면 지도자가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지금 산상수훈 이 부분을 평지수훈에서는 안 가르쳐주었습니다, 평지수훈에서는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을 말씀안하시고 애통하는 말씀도 안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제자고 같은 사도지만 겉모습으로 타이틀이나 직분을 보면 구별이 안 되지만 분명히 두 그룹이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데 우리가 기독교2000년 역사를 보면 평지수훈 쪽으로 간 그런 종류의 지도자들 윤리적 차원과 도덕적 차원으로만 신앙생활에 초점을 둔 사람들의 숫자가 훨씬 많고 이분들이 더 많은 높은 위치에서 더 권력이 있고 더 많은 해택을 받아온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분들이 산상수훈의 사도들은 숫자가 적습니다,
이분들을 핍박하는 일에 불이익을 주는 일에 앞장섰던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온유한 사람이 되면 그다음에 따라오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게 뭐냐면 의의에 주리고 목말라한다는 겁니다, 따라오는 열매가 이게 따라오는 특별선물입니다, 그러니까 이 열매가 있느냐 없느냐를 우리가 확인해야 됩니다, 진짜 복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는 뭐냐면 의에 대해서 고만하고 의에 대해서 배고파하고 그다음에 의에 대해서 목말라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도대체 의의가 뭡니까 그러면 성서에 보면 의가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됩니다, 그래서 이것을 제가 정리한 것을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의는 첫째 존재론 적으로 의를 이야기할 때가 있습니다, 
존재론적으로 예컨대 삼위하나님을 지칭할 때 의라는 단어를 씁니다,
로마서1장17절 로마서10장3절에 또 그다음에 뭐냐면 성부하나님을 지칭할 때도 의라 합니다, 그분의 존재성으로 요한복음17장25절에 또는 성령하나님을 지칭할 때도 의라는 단어를 씁니다, 로마서14장17절 디모데전서3장16절에 세 번째로 구약에서는 여호와를 지칭할 때 그 여호와가 누굽니까 예수님입니다 출애굽기9장27절 시편119편137절 시편129편4절 역대하12장6절 이사야서5장16절 느헤미야9장8절 여기 보면 여호와 그분을 의라 그랬습니다, 의하면 여호와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을 의라 그랬습니다, 
빌립보서2장11절 디모데후서4장8절 사도행전3장14절 히브리서7장2절에 
그러니까 의라는 개념이 존재론적으로 삼위하나님을 지칭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는 기능론적으로도 성서에서는 의를 첫 번째는 사무엘상12장7절에 여호와는 말씀과 규례를 통해서 의를 향하신다, 그랬습니다, 
두 번째는 시편31편1절에 여호와의 의로 나를 건지신다, 그랬습니다, 
세 번째로 시편72편2절에 의가 주님의 의로 판단하신다, 그랬습니다, 
네 번째로 시편103편17절에 주님의 의가 자손에게 미친다, 
다섯 번째로 시편111편3절에 주님의 의는 영원하다 그랬습니다, 
그다음에 신약에 와서는 로마서1장17절에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그랬습니다, 바울이 복음 속에 하나님의 의가 있는데 예수님이 나타났다는 겁니다, 일곱 번째는 사도행전13장39절 로마서3장30절에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의롭다하심을 얻는다는 겁니다, 여덟 번째로 로마서8장34절에 의롭다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마지막으로 로마서14장17절에 성령 안에서 의의 소망이 나타난다, 존재론적으로 기능적으로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는 십계명적으로 십계명자체가 하나님의 의라는 겁니다, 시편19편9절 시편119편172절 그러니까 의에 배고픈 자는 의에 목마른 자는 할 때 이 모든 것을 지칭하는 겁니다, 삼위하나님에 대해서 목말라하고 하나님의 기능적인 부분에 대해서 배고파하고 목말라하는 사람은 이런 뜻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배고파한다는 동사가 있고 목말라한다는 동사가 있습니다, 
제가 자주 이야기하지만 배고파한다는 것은 고체음식을 배고파하는 겁니다, 
성서에서는 이 고체음식이 뭐냐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양소를 제공하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또 어떤 역할을 하느냐면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성품들 쓴 뿌리들을 잘라내는 검의 역할도 하는 겁니다, 에베소서6장17절 히브리서4장12절 계시록19장15절 계시록1장16절에 보면 말씀이 양날달린 검이라 그랬습니다, 말씀이 영양소라는 성경구절은 꽤 많습니다, 시편119편103절 예레미야15장16절 에스겔2장9절 3장3절 계시록10장10절 요한복음6장32절에서59절까지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산 떡이다 이렇게 해서 배고파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배고파하는 사람입니다, 말씀에 배고파하는 증세만이 아니고 그다음에 목말라한다는 겁니다, 생수에 목말라하다는 겁니다, 
그러면 요한이 액체음식에 대해서 말씀하신 게 있습니다, 
요한1서5장8절에 뭐라고 말했느냐면 성령님이 액체음식이라는 겁니다, 
물이 생수가 액체음식이다 또 예수님의 피가 보혈이 액체음식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액체음식은 성령님 생수 그다음에 예수님의 보혈 이게 다 같은 걸로 그래서 나중에 예수님께서 성만찬하실 때도 액체 음식인 포도주를 가지고 너희들 이걸 먹어야 진짜 음식이다 이걸 먹어야지만 너희들이 영생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액체음식은 구원을 주는 액체기능도 하고 성화를 시켜주는 액체역할을 하는 겁니다, 
디금 여기 마태복음5장에서 말하는 복 있는 자는 구원단계를 지나서 성화시켜주는 그러니까 예수님의 보혈로 나의 쓴 뿌리들 더러운 성품들이 씻겨나가고 성령님의 씻으심으로 씻겨나가고 하는 성화시켜주는 일들을 하는 말씀의 영양소 말씀의 검 그다음 성령님의 씻으심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 속에 들어오는 겁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되고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되고 그래서 우리가 예배 전에 항상 찬송을 부르는데 성령님의 세례가 우리 속에 어디까지 들어와야 됩니까, 내 하트 밑바닥 내영까지 내려와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우리가 묵상해가지고 내 머리에 머물려 있는 게 아니고 이것이 저 밑에 하트까지 내영까지 내려와 주어야 되는 겁니다, 
그게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평지수훈에서도 네 가지 복을 이야기했는데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는 이것을 더 업그레이드하셔가지고 이 네 가지 복음 또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평생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생 이 네 가지 이 부분을 계속 실습하고 묵상해야 되는 겁니다, 
이것은 발전적이고 단계적이고 항상 이것을 계속해야 되는 겁니다, 
이것을 어느 정도 하느냐에 따라서 나의 영성이 달라지는 겁니다, 
천국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겁니다, 하나님나라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겁니다, 눈이 얼마나 떴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처음 네 개를 잘 하다보면 그다음에 나타나는 선물들이 있습니다, 열매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시각에 변화가 오는 사람들의 열매 중에 하나가 제일먼저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잔다는 겁니다, 평지수훈에서 긍휼히 여김과 지금 산상수훈에서의 긍휼히 여김은 차원이 다른 겁니다, 인간적인 긍휼히 여김과 그냥 영적인 긍휼히 여김은 차원이 다른 겁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는 그런 사람에게 약속이 있는 겁니다, 우리예수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겨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열매는 마음이 청결해진다는 겁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으면서 마음이 청결해지고 하나님을 보게 된다는 겁니다, 
영안이 떠진다는 겁니다, 하나님나라를 내가 더 크게 넓게 높게 보는 시각이 일어나고 세 번째 열매는 뭐냐면 화평케 하는 자들이 된다는 겁니다, 
수직적인 화평과 수평적인 화평으로 수직적인 화평은 전도와 선교하는 사람 수평적인 화평은 교회 안에서 화평 하는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는다는 겁니다, 이분들은 특별히 높은 위치에 있는 겁니다, 
이분들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겁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영적성장 여섯 단계 중에 첫째가 영적유아. 영적어린이 단계 두 번째 영적사춘기. 영적 청년기 단계 세 번째가 여적아들과 영적아버지 단계입니다 
선서에서는 영적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로마서8장14절에도 분명히 너희들이 모마서8장의 사람이 되면 영적으로 아들이 된다는 겁니다, 지금 화평케 하는 자는 영적으로 아들인데 그냥 평지수훈에서 영적아들이라 말하는 것이고 산상수훈에서 영적아들이라고 말하는 것하고는 다릅니다, 평지수훈에서 영적아들이라는 것은 이 세상수준에서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높임을 받는 겁니다, 이 세상 수준에서 그런데 산상수훈에서 영적아들은 저세상에서 높임을 받는다는 겁니다, 
이런 열매가 있을 텐데 이런 사람들에게 마지막열매가 뭐냐면 계속해서 핍박을 가하도록 허락하세겠다는 겁니다, 핍박을 가할 때 핍박을 받을 때 약속이 있는 겁니다, 그럴 때 너희들이 더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핍박을 받아서 예수님이름을 전하다가 내 이름 때문에 핍박을 받을 터인데 천국이 저희 것이 된다는 겁니다, 
이럴 때마다 이 천국이 더 커지고 넓어지고 구체화된다는 겁니다, 
이게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약속했잖아요, 
마지막 마태복음5장12절에 그랬습니다, 너희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이런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고 큰 상급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제가 결론적으로 몇 가지를 드리려고 그럽니다, 분명히 평지수훈과 산상수훈은 다릅니다, 그런데 평지수훈 적 사도들과 제자들의 숫자가 훨씬 많습니다, 
이분들은 시각이 이 세상에만 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경도 그렇게만 해석하는 겁니다,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소위 사회복음화에 관심이 많은 겁니다, 
오늘날 진보주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소위 애꾸눈적인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게 다 이수준이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사회복음화 주의로 가는 사람들이 항상 인용하는 성경구절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성경구절을 알아야 됩니다, 이걸 가지고 기독교방송을 봐도 이걸 가지고서 교회들에게 도전을 합니다, 또 세상 사람들도 이런 구절을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잘 보세요, 
첫째 뭐냐면 마태복음5장25장35절36절을 인용합니다, 
이 구절은 굉장히 중요한 인용 구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양과 염소의 비유를 양 크리스천 염소크리스천들을 비유하는 장면입니다 이 구절이 들림과 관계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구원과 관계있다고 해석하면서 뭐냐면 예수님이 내가 주릴 때 내가 목마를 때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내가 벗었을 때 내가 병들었을 때 내가 옥에 갇혔을 때 돌본 사람과 돌보지 않는 사람과 구별하면서 돌보자 않는 사람들은 지옥에 간다는 겁니다, 
구원이 없다고 보는 겁니다, 진보주의 사람들은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 돌보지 않고 목마른 사람 돌보지 않고 사회복음을 하지 않고 감옥에 있는 사람 돌보지 않고 병든 사람 돌보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 라고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복음주의사람들아 너 네들은 이런 걸 잘 하지 않잖아 우리를 봐라 우리는 얼마나 많이 하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만 보는 겁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영적인 의미로 지금 말씀하시는 겁니다, 영적의미는 무엇입니까, 중국이나 네팔이나 티벳이나 다른 나라나 우리나라에 조그만 예수들이 많이 있는데 이직 구원은 못 받았습니다, 이 사람들이 지금 말씀에 주려있다는 겁니다, 이 사람들이 성령님에 목말라 있다는 겁니다, 나그네 되어가지고 갈 바를 모르는 겁니다, 
옷을 벗고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보혈로써 커버가 안 되고 영적으로 병들어 있는 겁니다, 영적으로 옥에 갇혀있는데 이 사람들을 구원시켜주는 일 복음화 시켜주는 일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서 들림 받느냐 못 받느냐 주님께서 예화를 드는 것이 이 구절입니다 그런데 이 물리적인 인간적인 윤리적인 도덕적인 부분에서 해석은 어떤 사람들이 합니까, 
평지수훈 적 사람들이 해석을 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성경구절은 야고보서1장27절입니다,  
야고보의 편지는 기독교인들에게 하는 편지입니다 터키지방에 흩어져있는 열두지파들을 향해서 거기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는 뭐냐면 그 크리스천들 중에서 부자크리스천들도 있었고 가난한 크리스천들도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부자기독교인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돕지를 않는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말씀하시는 겁니다, 
뭐냐면 너희들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을 지키려면 고아와 과부와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잘 돌봐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물리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 가난한 사람들이 고아와 과부들을 잘 돌봐야 된다는 겁니다, 야고보서2장17절에 그랬습니다, 
만약에 이분들을 돌보지 않으면 너희 믿음 그자체가 죽은 믿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물리적인 고아와 과부들을 돌보지 않는 기도교인들은 믿음이 없는 기독교인이고 그 사람들은 구원이 없다, 라고 보는 겁니다, 
이것은 우리가 분명히 이분들을 도와야 됩니다, 우리가 수평계명을 중시하기 때문에 십계명은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준 것이지 비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준 게 아닙니다, 십계명은 모세와 아론에게 주시면서 이스라엘사람들끼리 이렇게 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끼리 똑같이 수평계명은 하나님자녀들끼리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에게는 그러면 안 합니까 해야 됩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 우리가 모르는 겁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을 우리가 전도할 때 전도용으로 시회복음화를 위해서 고아들을 도와주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우리가 사회복음화에 관심을 두어야 되는 겁니다, 그것이 우리의 주 임무는 아닌 겁니다, 
우리가 이분들을 도와주는 목적은 뭡니까, 복음화 시키기 위한 주님께로 이끌기 위한 하나의 미끼지 이것이 주 임무가 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신학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겁니다, 소위 종교다원주의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겁니다, 
종교와 관계없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데는데 개종을 시키기 위해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개종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이게 이분들이 생각하는 사회복음화입니다
진보주의사람들 중에서도 종교다원주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도와줄 때 어떻게 하느냐면 도와주면서 이분들을 개종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아주 극소수입니다 문제는 복음주의자들도 많은 영향을 받아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일보다는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다음에 거기서 머물려버리는 복음주의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개종을 시키지 않고 그러니까 개종을 시키기 위해서 사회복음화 하는 사람들은 아주 소수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런 때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은 이사야 선지자나 또는 아모스 선지자의 말씀을 많이 인용을 합니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이 특히 이사야서1장10절에서17절에 보면 이사야에게 말씀하신 것이 제가 얼마 전에 기독교TV를 보니까CBS에서 웬 목사님인데 교수님으로 아주 유명한 구약의 전문가라면서 이분이 나와서 이사야서1장10절에서17절을 사라들에게 해석을 해주는 겁니다, 
왜냐면 중교다원주의적인 진보주의적인 해석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아주 유명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제가 보고 저런 사람들이 대부분이구나, 거기에 보면 이런 겁니다, 이사야에게 하신 말씀이 뭐냐면 제일 먼저 애들아 너희들 지금 이스라엘사람들아 무수한 재물들을 나에게 가져오는데 이것이 나에게 이익이 안 되고 내가 이 재물들을 받지 않겠다는 겁니다, 
왜냐면 수직계명을 안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너희들 우상을 섬기고 다른 싱을 섬기면서 나에게 재물을 바치고 예배드리는 이 모습 보기도 싫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뿐 아니라 너희들이 지금 돈 있고 교권을 가진 사람들이 선행을 하지 않고 공의를 하지 않고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지도 않고 고아와 과부들을 도와주지 않는 다는 겁니다, 
이분이 지금 말하는 데 수직계명에 관하여 말하지 않고 수평적인 부분을 강조하면서 기독교인들이 고아들 성수수자들 효모 하는 사람들까지 또 여러 가지 가난한 사람들 종교와 구별 없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게 교회의 사명이라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기독교계에 모든 신문이나 교계에 발표되는 잡지들을 보면 개종시키는데 관심이 있는 게 아니고 이런 사람들을 이웃을 도와주는데 관심 있는 것이 복음주의 한국교회도 이런 식으로 나가고 있는 겁니다, 사회를 우리가 변화를 시키려면 없는 사람들에게 고아나 과부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이런 일을 교회가 해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예루살렘교회도 과부들을 돌본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런 걸 보면 과부들을 도와야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되지만 순서가 있는 겁니다, 순서를 잘 지켜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순서가 지금 잘못되어 있는 겁니다, 이런 분별력을 저희들이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세대가 올 것을 미리 다 우리에게 에언 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산고라 그랬습니다, 
감람산설교에서 마태복음24장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재림 때 어떤 징조가 있겠습니까, 그럴 때 예수님이 여러 징조들을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이 산고를 겪을 거다 종교다운주의를 통해서 절대가치가 무너질 거다,
지구도 산고를 겪을 거다 지진이 일어나고 전쟁이 일어나고 자연도 산고를 겪을 것이고 가뭄이 일어나고 홍수와 태풍으로 크리스천들도 산고를 겪을 거다 예수님이름 때문에 미움 받고 너희들이 시험에 빠지게 하고 너희들이 넘어지게 하고 어렵게 만들 거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 당시에 거짓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종교다원주의적인 사고를 가진 소위 기독교인이라고 말하지만 기독교인이 아닌 거짓선지자들이 지금 판을 치는 이때 우리가 살고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닙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세계가 지금 이렇게 되어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우리는 말씀 속에서 이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되고 이것을 계속해서 묵상을 해야 되는 데 핍박을 받을 각오를 하고 해야 되는 겁니다, 
피할 수가 없는 겁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너희는 핍박받을 거다 당연히 받을 거다,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것을 바울에게 나중에 바울이 순교직전에 디모데에게 하신 말씀에 바울에게 20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가르치는 겁니다, 말세가 올 터인데 말세 중에 말세가 오늘날입니다 말세에 크리스천들이 고통을 당할 거라는 겁니다, 
크리스천들이 어떤 어려움을 당하느냐면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예수님이 바울을 통해서 하신말씀이 제일 먼저 디모데전서3장1절부터7절까지 보면 크리스천들이 돈을 사랑할거라는 겁니다, 돈을 우상화한다는 겁니다, 
두 번째로 크리스천들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겁니다, 이기주의가 강한 크리스천들이 많이 나올 거라는 겁니다, 제일 먼저 자기를 사랑하고 두 번째는 돈을 사랑하고 세 번째는 교만해서 자긍하면 스스로 자랑하는 겁니다, 
자긍한다는 것은 자기고집이 센 겁니다, 아집이 있고 그다음에 크리스천들이 서로 훼방하고 다른 사람을 방해하고 부모를 거역하고 감사하지 않고 크리스천들이 거룩하지 않고 세상과 구별되지 않고 크리스천들이 무정하고 크리스천들이 원통함을 풀지 않고 크리스천들이 참소하고 서로 욕하고 절제하지 않고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고 배반하며 마음이 조급하며 쾌락을 좋아하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쾌락을 더 좋아한다는 겁니다, 
지금 기독교인들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경건의 모양은 있어나 기독교인들이 마지막 때가 되면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다는 겁니다, 
머리로는 다 경건 하는데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항상 기독교인들이 배우나 진리에 대한 지식이 없고 진리에 대한 지식을 자기 삶 속에 적용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약하다는 겁니다, 
이게 마지막 때 일어나는 징조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이런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질문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재림 전에 이런 산고를 허락하셨습니까, 
이게 우리의 질문입니다 왜 세상이 이렇게 어렵게 되고 특히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런 산고를 겪어야 되고 왜 사탄의 자녀들이 판을 치도록 만들어 놓았습니까, 왜 이렇게 디자인하셨습니까, 이것은 간단합니다, 
너희들이 이렇게 디자인이 되어야지만 예수님 오시기 전에 더 기독론에 강해지고 더 분별력을 가지게 되고 더 말씀에 갈급하게 되고 더 자기 자신을 성화시키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미리미리 다 예언해 주셨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보면 평지수훈적사도와 산상수훈적사도 두 가지 사도가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적인 평지수훈적인 사도가 있는가하면 그냥 일반 복음주의적이지만 산상수훈 적이 아닌 사도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런 세 가지 수준의 사도들이 살고 있는데 굉장히 구별하기 쉽지 않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돈하게끔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뭐가 필요합니까, 성령의 분별은사를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려면 지혜의 은사 지식의 은사 명철의 은사 영분별 은사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겁니다, 왜냐면 가짜사도를 성서에서는 이것을 거짓선지자들이라고 그럽니다, 또는 거짓그리스도들이 많이 나온다고 예수님께서 그랬습니다, 이렇게 가짜들이 많이 나와 가지고 이 수순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혹시키고 넘어지게 만든다고 그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지어 택함을 입은 자들까지도 여기에 미혹을 당해가지고 넘어진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의 구원이 상실될 것도 예언하셨습니다, 마태복음24장23절에서28절에 보면 그러니까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적그리스도에 의해서 가짜선지자들에 의해서 가짜 목사들에 의해서 가짜 신부들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이 넘어질 것을 예수님이 예언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가 알고 철저하게 기독론을 배워야 됩니다,
철저하게 삼위일체론을 배워야 되는 겁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구원론에 무장되어야 되고 성결 론에 무장되어야 되고 또 종말론에 무장되어야 되는 겁니다, 마지막 때 기독교인들은 아직 소수만 무장된 사람이 나올 터인데 이 소수들은 하나님께 서 들림 받도록 은혜를 베푸시겠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신부로써 이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들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들림 받으려면 산상수훈의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오늘 제 말씀 평지수훈과 산상수훈의 차이점입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저희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평지수훈과 산상수훈 속에 숨겨져 있는 예수님의 마음을 깨달으려고 이곳에 앉아서 서로가 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에게 지식을 주시고 명철을 주시고 지혜를 칠 배나 더하게 하셔서 영 분별력을 칠 배나 더하게 하셔서 이 세대를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를 가르쳐주시고 이 세대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를 가르쳐주시고 혼란한 이 세대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외쳐야 되는지도 가르쳐주시고 그러기위해서는 저희들이 기독론에 강해야 되고 종말론에 강해야 됨을 알고 있습니다, 
머리로만 알고 있지 않게 해주시고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고 그러므로 들림 받는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복을 받는 자들이 되도록 주여 한 사람 한사람에게 안수해주시고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게 해주시고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예수님께서 미리 가르쳐 주셨는데 주여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는 자들이 되도록 한분. 한분 만져주시옵소서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안하면 나중에 후회하게 되어 있습니다, 
후회하는 바보 같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성령님이여 한분. 한분 만져주시고 가이드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t6wdXD1WyB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