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현목사 강해설교 녹취록/로마서 강해

45강, 로마서15장8절-13절, 할례의 수종자 예수님,

변명섭 2019. 11. 29. 13:47

로마서강해 45강, 할례의 수종자 예수님(롬15:8-13) 2015년11월22일 말씀
오늘 주시는 로마서 강해는 특별히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잘 소화하시면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난시간에 로마서 강해를 했을 때 제목을 제가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자가 받는 비방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면서 로마서는 특히 12장부터 주욱 13장 14장 15장 이렇게 계속해서 나가는데 여기에서 사도바울이 경험하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하나가 뭐냐면 우리가 왜 수평계명이 안되느냐 이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같은 천국시민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끼리 서로 사랑 하지를 못하는가, 
나하고 배경이 다르다고 그래서 싫어하거나 배척하거나 안 그러면 나에게 상처를 주면 내가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거나 여러 가지 하나님의 자녀들끼리 수평 계명을 잘 하지는 못 하는 것은 선교 지를 다녀 봐도 선교지에가도 이 문제가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입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 기독교인들이 에너지를 낭비하고 이것 때문에 실족당하는 사람도 많고 그런 겁니다,  우리 교회는 감사하게도 이런 관계가 그렇게 우리 에너지를 낭비 하지 않는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그 목회자들의 고민이 뭐냐면 교회 안에서 이 문제 때문에 목회가 너무 힘들다는 겁니다, 목회자들의 공통적인 고백이 이 부분인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 안 믿는 제3자들이 교회라는 공동체를 볼 때 이분들이 이해를 못 하는 경우가 있는 겁니다, 저분들이 저렇게 예수님이 좋다고 그러고 복음이 좋다고 그러면서 나와서 전도를 하는데 왜 자기네들끼리 싸움질하느냐 이겁니다, 자기네들끼리 미워하고 이것이 그분들에게 소화가 안 되는 겁니다,  또는 믿음이 나주 연약한 사람들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NO1기독교인들이라 그럽니다, 이분들이 교회 안에 약 60-70%의 사람들이 이 그룹 속에 들어간다고 전문가들이 말하는 겁니다,
이분들이 교회를 볼 땐 어떻게 목사들 보면 자기네들끼리 싸움하고 장로들도 보면 자기네들끼리 싸움하고 권사들도 그렇고 이런 모습을 이렇게 교회 다니면서 보는 겁니다, 보니까 이게 왜 이런가 하면서 이분들이 갈등을 느끼는 겁니다, 수평계명의 문제가 우리에게는 상당한 문제점인데 과거 2000년 기독교역사 속에서 이 문제가 교회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한번 질문을 던져 보는 겁니다, 
왜 기독교인들이 수평계명을 잘 하지를 못하는가, 
그러면 여기에 대한 답이 무엇입니까, 지난번과 지지난번에 계속해서 여기에 대하여 말하는 겁니다, 답은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답은 뭡니까 
시각에 변화가 없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시각의 변화 그러면 우리가 또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어떤 시각의 변화를 말씀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에 대한 답은 뭘까요 어떤 시각입니까 지금 로마서12장에서 어떤 시각의 변화를 우리에게 기대 하는가, 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믿음의 분량이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먼저 인정해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또 믿음의 은사들을 다르게 주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자기 뜻에 따라서  은사들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 중요한 사건들을 우리가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공동체 안에는 이것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다들 믿음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구나, 이것을 하나님이 하신 겁니다, 
하나님이 믿음의 분량을 나누어주신 겁니다, 
두 번째는 은사도 하나님이 다르게끔 만들어 놓은 겁니다, 
이 개념을 가진 다음에  이 개념에다가 크게 부친 게 하나 있습니다, 
뭘 부쳤냐면 이것은 전적인 내 실력으로 하는 게 아니고 내 실력으로 믿음을 크게 하는 게 아니고 내 실력으로 은사를 크게 하는 게 아니고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안에서 일어나는 은혜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이렇게 각자사람마다 다르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이 개념을 우리가 철저하게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이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그분의 편지 속에서 빌립보서1장9절에도 로마서12장 무슨 말씀하였냐면 이것을 깨닫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면 지식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 다음에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이 명철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거기다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면 뭡니까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이런 영적 분별력을 가지게 된다는 겁니다,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서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정도까지 올라가는 수준의 크리스천들은 많지가 않는 겁니다, 지금 우리는 이 수준까지 라가기위해서 우리가 지금 이 말씀을 상고하고 있습니다, 이 수준까지  올라간 사람들은 우리가 수평계명을 철저하게 잘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수평계명의 핵이 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13장입니다 고린도전서13장에서 이것을 깨닫고 묵상하고 내 삶의 적용하는 사람은 내가 오래 참을 수가 있습니다,  남에게 무례하게 안 합니다, 
항상 친절하고 그러면13장7절의 말씀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바울이 이 말씀을 깨달은 것을 성령님에게 고백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모든 것을 것을 참을 수가 있는 겁니다, 
이것도 성령님이 나에게 능력을 베풀어야 되는 겁니다, 
또 모든 것을 내가 믿으며 지금은 믿을 수 없는 환경이지만 믿어 버리는 겁니다, 그것도 은혜로 믿을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바랄 수가 있는 겁니다, 
이것이 나중에 어떻게 이렇게 되겠구나, 바라는 겁니다, 
또 낙원에 올라가면 이런 것들이 나중에 적나라하게 다 보이겠구나, 
그리고 모든 것을 견딜 수가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떤 믿음을 바울이 말씀하십니까, 
히브리서11장의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믿음은 이 세상은 나그네 세상이다 이 세상은 우리는 잠깐 있는 세상이다 우리 본 고향은 저위다 그리고 저기에 올라가면 상급이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 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변화를 받은 이 정도까지 변화를 받은 사람들은 수평계명을 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 이런 사람이 되어야 되는데 지금은 아니더라도 시간이 가면서, 가면서 이런 사람들이 되는 겁니다, 
이 원칙을 깨닫고 이 원칙을 적용하는 뜻에서 그렇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들 보면 오래 기다려 주어야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이런 부분에서 이것이 약하구나, 하는 분별력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분별력을 가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을 뭐라고 그럽니까, 성숙한 사람들이라고 그럽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은혜를 받은 사람은 시각의 변화가 이렇게 오니까 믿음이 적은 첫 번째 믿음을 받은 소유자들은 그냥 교회 다니는 선데이 크리스천들입니다 이 사람들을 안아 줄 수가 있어야 됩니다, 
정죄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면 그 수준이니까 그냥 있는 그대로 안아 주는 겁니다, 그분들이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내가 채워주고 안아주고 격려해주고 그러니까 이것은 어떤 수준이 되어야지만 이것이 가능합니까, 
세 번째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지만 이것이 자동적으로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 또 두 번째 수준의 기독교인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열심히 기도하고 성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헌금들의 생각은 저 세상에 생각이 가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 내가 잘 사는 예수님을 잘 섬겨서 이런 생각입니다, 이 세상에 눈이 가있는 사람들을 제가 두 번째 크리스천들이라 그랬습니다, 잔소리처럼 자꾸 반복 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툼을 잘 합니다 왜 그럴까요, 
네가 이렇게 교회를 열심히 섬겼는데 이렇게 기도 많이 하는데 이렇게 헌금도 내고 주님의 일을 많이 하는데 왜 나를 알아주지 않지 이렇게 되는 겁니다, 왜냐면 이 세상에서 상급 받기를 원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어떨 때는 더 무섭습니다,  교회 안에 이런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열심히 하는데 기도도 잘하고 어떻게 보면 일등교인입니다, 
그런데 아주 경쟁심이 많고 질투심이 있고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기분 나빠 하고 패거리 만들어서 자기 힘 만들고 그러니까 눈이 저 세상에가 있지 않고 이 세상에만 있는 믿음의 소유자들입니다 그런데 세 번째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야 하는 겁니까,  
이런 사람들은 이 수준이니까 이런 사람들을 그냥 안아 주는 겁니다, 
싸움하면 안 됩니다, 그냥 안아 주는 겁니다, 이분은 이 수준이구나, 
그러면 세 번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 뭐냐면 첫 번째 선데이 크리스천들을 잘 키워서  두 번째로 옮겨가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 두 번째 사람들을 잘 키워서 저쪽나라까지 볼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게 우리의 사명입니다 최소한 저의 사명인 겁니다, 
우리 교회도 보면 대부분이 두 번째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세 번째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교회 부인이 세 번째 사람인데 남편은 첫 번째인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이 예배가 아주 부담스러운 사람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도 그냥 죽치고 앉아 계십니다, 그러다 보면 때가 되면 두 번째 사람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냥 죽치고 앉아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순 모임에는 안 옵니다, 괜찮지만 언젠가는 오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래 참아야 되는 겁니다, 기다려주고 왜냐면 소망을 가지고 참는 겁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주님이 어떤 메시지를 주님이 주느냐면 바울아 네가 지금 세 번째 사람인데 네가 이렇게 수평계명을 잘하는데 또 선교일도 지금 로마제국복음화 시키는 일을 이게 주후57년에 썼으니까 네가 로마까지는 안 갔지만 그리스가 다 복음화 되었고 터키가 복음화 되었고 시리아가 복음화 되었고 엄청난 복음화 일을 해 왔던 바울에게 네가 이렇게 삶이 편하고 너의 사역도 커지고 네가 이렇게 너의 인격도 시각도 커졌는데 세상 사람들의 너를 미워하고 비방하고 그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우리의 상식으로 이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걸 두 가지 시각으로 봐야 되는 겁니다, 
첫째는 뭐냐면 두 번째 믿음의 소유자들인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착한 일을 합니다, 복음을 열심히 전하는 겁니다, 
또 선교도 많이 하고 또 목사 입장에서는 교회도 커지고 교회당도 새로 짓고 하여튼  누가 보면 일반 사람들이 볼 때도 저분은 성공했다, 
라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두 번째 수준을 가진 사람이라고  우리가 가정을 합니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하여 성공한 목회자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보이는 일 사업도 잘 되고 자녀들도 잘 되고 다 잘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님이 많이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이 세상 것이 잘 되니까 예수님 때문에 잘 되니까 이런 것 때문에 예수님을 더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사랑하는 수준이 뭐냐면 이게 자기에게 잘해줘야지만 사랑하는 겁니다, 더 복을 받아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복을 더 받기 위해서 더 열심히 하는 겁니다, 동기가 거기에 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은 예컨대 뭘 좀 빼앗아 버리면 물질과 명예를 빼앗아 버리면 그냥 기도원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더 달라고 이것 왜 이럽니까, 내가 이렇게 했는데 왜 안 됩니까 하고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빼앗아 버렸을 때 두 가지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세 번째로 올라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 번째 수준에 있는데 다 빼앗아 버리면 세 번째로 올라가는 사람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또 두 번째에서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두 번째 수준의 기독교인들은 제가 아까 무섭다고 그랬습니다, 왜냐면 경쟁심이 대단합니다, 거룩한 경쟁심입니다 우리나라의 교회들이 이수준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쳐다 도 안 봅니다, 
같은 예수님을 섬기는데 교단이 다르면 관계도 안 합니다, 
같은 예수님을 섬기는데 같은 값이면 저 교회 교인들 데리고 와야 됩니다, 그러니까 서로 경쟁하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보이는 것에 마음이 가있는 겁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칭찬 받기 위해서 마음이 가 있는 겁니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기독교인들이 많아야 되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두 번째 사람들이 헌금을 제일 많은 내는 사람들입니다 왜냐면 열심히 사업해서 돈을 많이 버니까 그러니까 이런 그룹이 많아야 되는 겁니다, 절대로 제가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이런 사람 많아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이렇게 해서 주님을 섬기는 겁니다, N01그룹들은 헌금 많이 냅니까,  
있어도 그냥 조금 냅니다, 두 번째 그룹들은 헌금 많이 내고 십일조 생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눈이 이 세상에만 가 있는 겁니다, 
예컨대 자기에게 서운한 일이 일어나면 자꾸 나팔을 부르기를 원하고 나팔이라는 것은 자기가 불면 안 되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불어 줘야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마태복음 6장에 자기가 불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가끔 딴 사람이 불어주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딴 사람이 자주 불어 주면 안 좋습니다, 
가끔 한 번씩은 나팔을 불어줄 필요가 있는 겁니다, 
왜냐면 용기를 주기 위해서 예수님도 그렇게 칭찬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세 번째 기독교인들은 착한 일을 하면 할수록 어떻게 됩니까,
N01기독교인들도 이분들은 별로 안 좋아 합니다, 
왠지 모르게 두 번째 기독교인들을 더 안 좋아합니다, 
세 번째 사람들은 왜냐면 보면 저 사람은 눈이 항상 저쪽동네만 가 있고 세상모르는 사람들이다 그저 주여, 주여만 한다, 이렇게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꼴통 크리스천이라고 보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꽉 막힌 사람들이다 세상모르는 사람들이다 그 다음에 청치 할 줄도 모르고 인간관계도 잘 모르고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렇게 볼 수도 있는 겁니다, 그리고 입만 열면 예수님 이야기하고 제가 극단적인 이야기를 하지만 세상을 모르는 사람 같은 그러한 인상을 주는 바울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도 보면 세상을 잘 모르는 사람들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세상을 잘 아는 사람들인데 손님이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 번째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그랬습니다, 요한복음15장에서 성만찬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세상이 너희들을 미워할 거라는 겁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마태복음24장에 감람산 설교에서 그러는 겁니다, 재림의 징조 중에 하나가 이 세상이 너희들을 미워할 거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미움의 대상이 누구겠습니까 NO1기독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친합니다, 두 번째 크리스천들도 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는다는 겁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고 특히 이런 사람들은 첫 번째 기독교인들도 이런 사람들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두 번째 기독교인들도 이런 사람을 별로 안 좋아 합니다, 주님께서 세 번째 기독교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환경으로 집어놓으십니다, 왜 그럴까요,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데 열심히 주님을 사랑하는데 이게 잘 풀리지가 않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그러면  히브리서11장 믿음을 가지라고 뭡니까 너희들은 이 세상이 네 고향이 아니다 너는 잠깐 이 세상에 나그네로 있는 거다 이것을 항상 깨닫게 하기 위해서 또는  너는 언젠가는 올라갈 텐데 너 고향은 저위다, 
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저기 올라가면 상급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저기는 이 그룹에 있는 사람들은 팔복의 사람들입니다, 
복 있는 사람들인데 너희는 이 세상에서 쓸데없는 소리 듣고 그렇게 예수님을 잘 섬기는데도 예수님이름 때문에 미운 당하고 질투당하고 말 만들어서 너희들을 거슬려 핍박 한다는 겁니다, 견디기 힘들지만 주님께서 이럴 때 너희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같은 기독교인들인데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겁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은 우리가 수평계명을 왜 못 하느냐할 때 이 차이나는 것을 분석하는 분별력이 있어서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이 분별력을 우리가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고린도전서13장 7절 말씀처럼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내가 바라며 모든 것을 참고 견디는 이런 사람들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에게는 뭐가 있습니까, 평강이 있는 겁니다,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난번에 사도바울이 이야기해주신 말씀이 그랬습니다, 
너희들은 이런 사람들을 다 인정해주고 있는 그대로 안아 주어라는 겁니다,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면 로마서12장1절2절에서 우리에게 답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것이 이것이 영적 예배라 그랬습니다, 
이렇게 하려면 이 세상을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하고 다시 말하면 쓴 뿌리를 뽑아가지고 인격적으로 새로운 내가 다른 인격자가 되는 이렇게 했을 때 내가 영의 눈이 떠지면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분별력이 생기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내 속에 있는 더러운 성품들이 나가면서 성화가 되었을 때 우리가 마태복음5장8절에 그랬습니다, 마음이 순수해지면서 영의 눈이 떠지고 하늘을 볼 수 있다고 그랬습니다, 문제는 내가 마음이 순수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이것이 분별력이 생기느냐 안 생기느냐 여기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한 것을 제가 다시 정리를 해본 겁니다, 
그런데 바울이 오늘 주시는 말씀 뭐냐면 이 관계를 이 분별력을 시작은 네 민족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유대인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렇게 세 가지가 구분을 되는데 문제는 NO1크리스천을 NO2로 만들고 NO2크리스천을 NO3로 만드는 이 일을 너 동족끼리 하라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 동족끼리 먼저 해야 됩니다, 
그렇지만 사도행전1장8절에 예루살렘부터시작해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것이 동시다발적으로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이 다 복음화 된 다음에 유대로 가라는 것이 아니고 동시다발적인 겁니다, 
똑같이 우리가 지금 내 민족에게 계속해서 이 말씀을 전해야 되지만 타민족에게 가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이 말씀을 전해야 되는 겁니다, 
바울이 지금 이것을 도전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로마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너희들이로마크리스천끼리만 하지 말고 너희 같은 족속끼리 하지 말고 이제는 이것을 로마제국 전체로 나가라는 겁니다, 그래서 각 나라 다른 족속들에게가 가지고 이 신비를 나가서 전해라는 겁니다, 
NO1.NO2.NO3의 관계 이것을 전할 때 갈라디아나 또는 마케도니아나  또는 스페인이나 각 나라의기독교 공동체 안에 보면 NO1.2.3의 이 그룹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이 왜 NO1.2.3 가  있는 걸 가르쳐 주고 서로서로 그것을 안아주는 이 메시지를 전해 주라는 겁니다, 그래서 뭡니까 서로가 믿음의 분량이 다르다는 것을 전해주고 또 은사가 다르다는 것을 전해주고 그리고 넘버원크리스천은 어떤 스타일의 사람들이며 이런 사람은 많아야 된다는 것을 전해주고 NO2크리스천들은 어떤 스타일을 이며 이런 사람들은 20-30%가 있다는 것을 전해주고 이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기독교공동체 안에서 중추멤버들입니다, 왜냐면 이분들은 열심히 하고 사업도 성공하고 출세도 하고 이분들이 이 세상에서 잘 되어야 될 사람들입니다, 
왜냐면 주님의 왕국을 위해서 이분들이 NO3크리스천들을 바울과 같은 사람들을 뒤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가서 전해라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의 분량도 다양하게 만들어 놓고 은사도 다양하게 만들어 놓고 이걸 우리가 인정해야 됩니다, 항상 우리는 자칫하면 내 기준으로 모든 걸 보는 겁니다, 내 문화 수준으로 내 이성으로 사물을 보니까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금 눈을 뜨게 하는 것을 우리를 창조해서피조물들을 다 다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인데도 얼굴 모양을 다르게 만들고 생각을 다르게 만들고 예수님 안에서 또 믿음을 다르게 만들고 은사도 다르게 만들고 다 다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내 민족 안에서도 이런 다양성 있는데 우리가 타 민족으로 넘어가면 예를 들어서 중국에 가도 그 안에 대표적인 소수민족만 56개나 있습니다, 그 안에 또 작은 소수민족들을 포함해서 약1500-2000개 가까이 있습니다, 문화가 다른 이런 사람들이 그 안에 깔려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 다르게 만들어 놓았구나, 
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 다른 사람들을 내가 수용연습 하는 사람이 선교사인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NO2믿음의 스타일 그 그릇을 가지고 선교사로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는 NO3믿음을 가지고 나가는 선교사들도 있는데 어떤 선교사가 더 많을 것 같습니까, 
NO2믿음을 가지고 선교지에 나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교사들이 할 일이 뭡니까, 하나님의 다양성을 이야기해주고 가르쳐 주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선교지에 나가서 선교지에서 한 교회를 섬겨도 그 안에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음의 수준이 다르고 은사가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선교사가 NO2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것을 보지를 못 하는 겁니다, 
이 다양성을 그런 선교사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제가 30년을 선교지에 돌아다니면서 선교사들의 모습들을 보면 선교사들이 특히 우리한국선교 사들이 많다고 자랑 하잖아요 한국선교사들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한국선교사들끼리 서로 싫어하는 게 굉장히 많은 겁니다, 같은 교단에서 온 선교사들인데도 서로 싫어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겁니다, 서로 경쟁하는 사람들이 왜 그럴까요, 
그분들이 어느 수준이니까 그렇습니까, NO2수준의사람들입니다, 
어떤 선교사들은 NO2도 아니고 NO1수준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즘은 신학교가서 목사 되고 선교사 되는 것은 간단합니다, 
깔린 게 신학교입니다 미국에 가서도 한국말로 하는 신학교에서 1년에 5천 명 나옵니다,  미국에서 영어 한마디 안 쓰고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목사가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어디 가서 목사란 말하는 게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요즘 목사가 영적인 삶을 살지 않는 겁니다, 
성경도 읽지 않고 성경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평신도들이 보면 목사라고 하니까 성경을 아는 것 같이 보입니다, 요즘 신학교라는 게 제가 20년 가까이 신학교에서 교수생활을 하면서 본 게 신학이 잘못되었구나, 
라는 것을 봤습니다, 왜냐면 성경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신학 박사까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몰라도 박사까지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누가 어떤 학자가 말한 것 어느 교단에서 말한 것 이것을 섞어가지고 잘 짜깁기해서 논문 쓰면 박사가 됩니다, 제가 박사 논문을 많이 점검하면서 박사 학위공부를 했기 때문에 제가 박사논문을 점검하면서 봐도 이것은 아닌데 이것은 아닌데 해도 시스템이 그렇게 되었으니까 할 수 없이 저도 따라가는 겁니다, 지금 전 세계 신학교 시스템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서 나온 사람이 목사고 선교사니까 불 보듯 뻔한 겁니다, 
그러니까 선교지에 가면 선교사들이 더 무습니다, 자기보다 잘난 사람 있으면 깎아 내리고 서로 물어뜯고 그럽니다, 그것을 우리끼리 하면 괜찮습니다, 현지인들이 다 알고 있는 겁니다, 현지인들이 바보입니까 현지인들이 다 보고 있는 겁니다, 한국선교사들의 현주소를 다 알고 있습니다, 
그게 지금 한국선교의 문제점입니다, 왜냐면 NO1믿음의 선교사들이 많기 때문에 그러니까 우리는 NO1목사님들이나 선교사님들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있는 그대로 안아 주어야 되는 겁니다,  변하를 기대하면 안 됩니다, 제가 근30년을 변화를 위해서 소리 지르고 해 봤는데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70이 넘어서 깨달은 겁니다, 아 이거는 안 되는구나 제가 50대에 설교한 것을 가끔 가다가 사람들이 듣고는 나한테 목사님목소리 커고 막 열변을 토하시면서 말씀하시는데 그때 저는 열 내면 변화가 될 것 같아서 했는데 그런데 제가 한 60 중반 정도 되면서부터 아하 이게 아니구나, 
라는 것을 제가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장중에서 움직이는구나, 선교사들도 그렇지만 민족들도 보면 하나님이 다양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주님께서 선교사들도 NO1선교사도 있고 NO2선교사도 있고 NO3선교사도 있는데 그 안에서 NO3의 스타일의 선교사는 항상 NO1,NO2선교사에게 핍박을 받습니다, 같은 동족선교사들인데 그런데 어떤 사람은 NO3성격을 보면 개떡 같습니다, 은혜가 없는 다른 사람은 안아 주지도 못하고 그런데도 NO3라 합니다, 그러니까 분별력을 우리가 가져야 됩니다, 성품이 주님을 닮아서 모든 사람을 안아주고 은혜 베풀어 주고 이러면서 열심히 주님을 섬길 때 NO3입니다,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싸움하면서 그 사람은 NO3 가 아닌 겁니다, 타민족 사회에 가면 민족적인 차이가 또 많은 겁니다, 
민족의 다양성이 있습니다, 이것도 우리가 다 인정해 주어야 되는 겁니다, 제가 지금 하나님의 다양성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겁니다, 
다양성을 내가 인정해주는 겁니다, NO1,NO2가 그게 약합니다, 
NO3 가 되어서 이것을 인정하는  그릇이 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도 유대인입니다, 이분이 유대인이면서 같은 유대민족을 들여다보니까 이 안에서도 여러 가지로 다양성이 있는 것을 바울이 발견한 겁니다, 
예를 들면 같은 유대인인데 문화적 차이가 있는 유대인들을 바울이 본 겁니다, 예컨대 헬라파유대인들 이민자유대인들 디아스포라들 해와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 그다음에 히브리 파 유대인들은 뭡니까 본토 출신들입니다, 이 두 유대인그룹이 서로가 알력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6장에 보면 나오잖아요, 이렇게 다른 것은 예수님 당시만 해도 예수님이 오시기 200년 전만 해도 예수 안 믿는 유대인 사회에서도 여러 가지 파가 있었습니다, 
보수파인 바리새파 진보파인 사두개파 또 극 보수파가 있습니다, 
에센파라고 그다음에 정치적인 파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열성 당이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만 해도 예수님 오시기 200년 전에 이런 당이 결성되었는데 예수님 때도 보면 유대인 안에서도 네 가지 당이 있는 겁니다, 네 가지 당의 배경에 따라서 복음을 받는 방법이 다른 겁니다, 또 복음을 받아도 수용하는 레벨이 다른 겁니다, 
바울은 어떤 파였습니까, 바리새파 출신입니다, 
그러니까 바리새파들은 아주 보수니까 그 그릇에다가 복음을 집어넣으니까, 복음도 보수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배경이 중요한 겁니다, 
오늘날 유대인사회를 보면 유대인을 두 가지로 나눕니다, 
아시케냐지이라고 유럽계의 유대인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럽 사람처럼 생긴 유대인들입니다 미국이나 캐나다에 있는 유대인들도 다 여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약 70%가 이 아시케냐지 유대인이라고 보면 됩니다, 아시케냐지 유대인 안에도 또 여러 가지 분파들이 있는 겁니다, 
겉으로 생김새는 같아도 러시아 폴란드 스페인 독일 캐나다 미국 오스트리아 서로 같은 아시케냐지이지만 다른 배경을 가지고 생각이 다른 문화가 다르고 그릇이 다른 겁니다, 우리가 이런 걸 다 수용할 줄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다른 것을 보고서 또 유대인 중에 세파르딤이라고 있습니다, 
중동 아프리카계로 얼굴이 까맣고 이런 사람들이 30%정도 됩니다, 
그중에 우리가 아는 에티오피아쥬를 뭐라고 불렸습니까, 
팔라샤라고 불렸습니다, 이 사람들은 같은 유대인이지만 문화가 다르고 얼굴 모양이 다르고 다 다른 겁니다, 제가 말한 이 사람들이 알리아 운동이라 그래가지고 본국으로 갔는데 본국에서도 이렇게 아는 것 때문에 서로 지금 다투는 겁니다, 같은 유대인인데 그런데 이 안에서 유대교라는 종교를 이 사람들이 ALE는데 유대교 안에도 네 파가 있는 겁니다, 
제일 먼저 오토톡스라고 까만 옷 입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약5%정도 됩니다, 두 번째는 컨쇼브티라고 이 사람들은 오토톡스보다 조금 자유적인 사람들입니다 세 번째는 리품이라 그래가지고 이 사람들은 완전 진보주의적 사람들입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는 리번트탁스라 그래가지고 이 사람들은 완전 진보주의적입니다, 이 사람들은 유대인 행세를 안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그룹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렇게 네 그룹이 있습니다, 
같은 유대인들을 봐도 신학적으로 이분들이 어느 그룹인가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또 민족적으로 어느 배경인가 중동계인가 유럽계인가 또 미국인인가 캐나다인인가 다 그릇이 다른 겁니다, 하나님께서 같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오늘날 이렇게  다양하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 중에서 메시아닉쥬가 나타나는 겁니다, 크리스천들이 나타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메시아닉쥬 그러면 우리는 단세포적으로 저 사람은 유대인크리스천들이구나 그러니까 할렐루야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겁니다, 
왜냐면  이런 다양한 배경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났기 때문에 메시아닉쥬 안에도 보면 적어도 한 30개에서 40개 다른 그룹들이 이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메시아닉쥬들은 하나같이 그분들의 신학은 주로 어디에 가있냐면 세대주의인 겁니다, 세대주의가 친 유대신학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이 러시안쥬인가 에티오피아쥬인가 아메리카쥬인가 다 다른 겁니다, 같은 메시아닉쥬인데도 그러니까 우리가 단순히 메시아낙쥬가 14만4천 명 이렇게 우리가 쉽게 계산할 수없는 겁니다, 
제가 지난 40년 동안 유대인들과 같이 삶을 살았기 때문에 유대인문화를 제가 누구보다 잘 압니다, 제가 지금 이 말씀하는 이유가 여러분들의 생각을 바꾸게 만들고 싶어서 그러는 겁니다, 우리는 단일민족 출신이고 단일문화 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 생각이 아주 좋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피조물들을 다 다양하게 만들었습니다, 한 가지도 같게 만들지 않고 그래서 창세기1장에 보면 다양하게 만들어 놓고는 그 종류대로 그러니까 암놈 숫놈을 만들어 가지고 종류대로 생육하고 번식하게 해놓은 겁니다, 그리고 인간은 인간대로 시간이 가면서 문화가 다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바벨탑 사건 이후에 언어까지 다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언어까지 다르게 만들어 놓으니까 문화 간의 소통이 단절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자민족 중심사상이 더 극대화해지고 배타성이 생겨나고 나와 다른 민족하고 대화도 안 되니까 그러니까 전쟁이 일어나는 겁니다, 분리가 일어나고 다툼 있고 경쟁이 있고 그러니까 이 세상에 사는 피조물들은 이런 죄 성을 가진 한계성을 가진 그러한 존재인 것을 우선 알고 있어야 됩니다, 다양 속에서 죄 성을 가지고 나와 다르면 내가 안아주지 못하는 배타성을 가진 다양 속에서 연합을 못하는 나와 다른 사람을 내가 안아 주지 못하는 이런 피조물의 한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낙원에 올라가면 한계성들이 다 극복이 됩니다, 
이런 걸 바탕으로 해서 우리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을 불러 가지고 아브라함에게 계약하시는 겁니다, 
아브라함과의 계약 속에 들여다보면 인종의 다양성이 거기에 담겨져 있습니다, 아브라함과의 계약에서 아브라함아 내가 네 민족을 복 주겠다 그래놓고는 너로 인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는 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땅에 있는 모든 비 유대인들이 다시 말하면 이방사람들입니다 복을 받을 것을 말하는 겁니다, 이 말은 이 땅의 많은 족속들이 있을 텐데 그 족속들 중에서 하나님의 선별된 자녀들이 거기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지금 암시적으로 가르쳐 주는 겁니다, 그리고는 아브라함을 불러서 하시는 말씀이 이때는 아브람입니다, 창세기17장 이야기입니다 아브람의 뜻은 고귀한 자 다시 말하면 너 민족이 유대인 중에서 고귀한 자입니다, 
그런데 이분에게 새 이름을 줄게 그러고는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줍니다, 이 이름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소리입니다, 창세기17장4절에 아브라함에게 지금 사고의 전환을 시켜주는 겁니다, 너는 너 민족만의 아버지가 아니고 너는 열국 전 세계 많은 족속의 아버지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족속이 예수님의 예정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들을 지금 이야기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여러 족속들이 있는데 거기에 너가 아버지가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복을 나누어주는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아 너는 이제 너 민족이라는 그 민족의 틀에서 벗어나라는 타민족 배타사상을 없애라는 겁니다,  
이 땅의 모든 민족을 아우르는 사람이 되라는 겁니다,  
그 말씀을 하시고는 이분에게 애야 이게 하나님의 뜻이다 예수님의 뜻이다 너 이것 있지 말라고 할례하자 라고 그러는 겁니다, 
할례를 한 이유는 할례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영원한 계약입니다, 
그러니까 이 계약이 무슨 계약일까요, 너는 이제 너 민족만의 아버지가 아니고 모든 인류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들을 예정 했는데 그 사람들의 복의 근원이 되는 아버지라는 의미에서 할례를 시킨 겁니다, 
할례를 그래서 너 만이 아니고 유대인들 또는 너의 집에 있는 이방인들까지 다 할례를 받으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시작해서 2000년 동안 거기에 속해 있는 유대인들 또는 일부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은 겁니다, 
그러니까 할례의 뜻이 뭘까요 할례의 뜻이  아브라함과의 계약을 확인하는 겁니다, 아브라함과의 계약이 뭡니까 자민족중심주의 아니고 너 민족을 통해서 타민족 다른 민족을 복 주는 일을 하라는 게 아브라함의 계약입니다 
제가 다시 말합니다, 아브라함과의 계약은 내 민족만 복 받은 게 아니고 내 민족 이 받을 복을 가지고 타 민족에게 나누라는 그 의미가 아브라함과의 계약이고 또 할례의 목적을 이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 하례의 목적인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그러는 겁니다, 예수님이 할례를 받았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누가복음2장21절에 할레의 추종자가 되셨다는 겁니다, 
할례의 추종자라는 뜻은 할례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기위해서 몸소 할례를 받은 자 이런 뜻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 로마서15장87절에서13절에 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예수님이 할례의 추종자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에게 하시는 말씀이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이 할례를 받으셨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왜 받으셨느냐 그러니까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견고케 하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그러면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이 뭡니까 아브라함과의 계약인 겁니다, 그러면 아브라함과의 계약을 아브라함에게 몇 번 했습니까,
세 번 했습니다, 창세기12장2절3절, 창세기18장18절, 창세기22장17절18절 그다음에 이삭에게 한번 했습니다, 창세기26장4절에 또 야곱에게 한번 했습니다, 창세기28장14절에 똑같은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에게 이야기하는 게 조상들에게 하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약속을 견고케 하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이 할례를 받은 겁니다, 
그다음에 9절을 보시면 예수님이 할례를 받은 이유가 뭐냐면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할례를 받은 목적이 뭐냐면 첫째 그 조상들에게 하신 말씀을 견고케 하기 위해서 그다음에 두 번째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이 구원 받는다는 겁니다, 구원을 받게 하므로써 이분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할례를 추종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과의 계약 속에 숨겨있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선택한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서 삼위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일을 하는 것이 아브라함과의 계약 속에서 숨겨있는 목적이라는 겁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어느 한민족이 복음을 받으면 그것은 자기 민족만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받자말자  어떻게 해야 됩니까 타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게 아브라함과의 계약인 겁니다, 
그러면 성경에 보면 할례의 중요성과 할례의 목적을 지금 본문에서 바울이 설명하는 과정 속에서 구약에서 아브라함을 빼놓고 구약에서 모세니 다윗이니 시편기자니 이사야니 이 사람들에게 다 이것을 알려 주었다는 겁니다, 
할례의 중요성을 그러면서 15장9절 보면 기록 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이게 다윗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시편 18편49절을 인용하시는 겁니다, 
이 말은 뭐냐면 예수님이 할례를 받으신 목적이 뭐냐면 이방인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올 텐데 그분들이 예수님께 감사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찬송 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할례를 받으셨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왜 할례를 받으셨냐면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해서인데 여기에 깔린 목적이 이방인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구원받고 예수님께 찬양 드리고 감사드리고 하는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선교사들의 목적이 뭡니까 목적이 다른 나라에 가서 아브라함과의 계약을 이루는 일을 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선교사로 가서 예수님을 찬송하게 하고 경배 드리고 예수님의 지상계명과 지상사명에 순종하도록 만드는 일이 선교사의 사명인 겁니다, 
그 다음에 10절에 보면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라 는 이 말은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신명기 32장43절에 이 말씀을 그대로 우리가 지금 다시 받은 겁니다, 그러면서 주전1500년에 모세가 이 말씀을 외쳤는데 이 말씀이 지금 예수님이 지금 할례의 추종자가 되기 위한 하나의 미리 예정된 말씀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이방사람들이 그 중에 주의백성들과 함께 이스라엘사람들과 함께 이방사람들이 예수님께 찬양 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또 예화를 드는 겁니다, 11절에 보면 모든 열방 들이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주를 찬송하라 이 말씀은 시편 117편1절의 말씀을 바울이 인용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12절에 보면 이사야에게 하신 말씀을 인용하는 겁니다,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예수님이 할례의 추종자가 된 것은 이방사람들이 열방의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소망을 두게 하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할례의 추종자가 되신 겁니다, 그리고는 3년 공생애 끝나면서 이분이 제자들에게 지상 사명을 주신 겁니다, 너희들은 예루살렘에만 있지 말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나가서 이제 나의 증인이 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누구라는 것을 증거 하라는 겁니다, 
이 말씀에 맞추어서  주님께서도 사도 바울을 불러서 지금 바울이 자기 삶의 고백 중에 하나가 이 말씀입니다, 바울이 주후35년에 개종해가지고 처음 10년 동안 고독훈련 받으면서 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그리고는 45년부터 실제사역을 하면서 지금 57년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12년 동안 1차 2차 3차 선교여행까지 하면서 그리스까지 간 겁니다, 
지금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쓰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이 말씀 그대로 이분의 삶에서 적용하는 겁니다, 
이방사람들을 복음화 시켜서 이분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찬양 드리고 예수그리스도가 나의주다 그러면서 천국의 소망을 가지도록 바울이 주욱 했습니다, 바울이 이런 삶을 자기가 경험한 것을 지금 아브라함을 인용하면서 모세를 인용하면서 다윗을 인용하면서 이사야를 인용하면서 예수님의 할례의 추종자를 인용하면서 우리가 다음 시간에 하겠지만 내가 이 일을 위해서 이제는 이쪽 동네에서는 다 끝났다 나는 이제 더 전진 하겠다 스페인까지 가겠다는 겁니다, 왜 이분이 스페인까지 가도록 이끄시나요, 그러면 아브라함과의 계약의 참여자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의 계약의 참여자 다시 말하면 선교를 하기 위해서 우리가 불리 움을 받았는데 아까 내가 말씀드렸지만 크게 두 가지의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NO2크리스천들도 선교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겁니다, 
이 숫자가 훨씬 더 많은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압니까, 
이분들의 시각이 모든 사람들이 믿음의 분량이 다르다, 
라는 것을 모르는 겁니다, 은사가 다른 것도 모르는 겁니다, 
분별력이 없이 그냥선교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시각이 이 세상에 가 있는 이 세상에서 복 받아라 고 외치는 선교사들이 많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선교지에 가서 그분들에게 복음을 받은 그 사람들도 그 수준으로 밖에 발전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선교사들의 숫자가 많은 겁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내선교가 더 유명해지고 성공하고 사람들에게 선망의대상이 되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선교기금도 많이 거두어서 더 건물 많이 짓고 더 유명해지고 이런데 신경이 가득 차 있는  선교사들이 많은 겁니다, 그뿐 아닙니다, 본국에 있는 목사님들도 그런 선교사들을 이용해가지고 돈 많이 지원해 주어가지고 우리가 선교한다, 
저렇게 건물 세웠다, 우리가 뭘 했다고 신문에 나오고 서로가 북 치고 장구치고 이런 일들이 많은 겁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나쁩니까, 
이런 일들이 있어야 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이 많은데 그 안에 NO3사람들이 달라붙어 가지고 이 사람들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는 일을 하게끔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앞에 가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먼저 가서 깔아놓아야 됩니다, 우리교회의 사명은 뭡니까 우리는 우리 일을 광고내면 안 되고 자랑할 것도 없고 주님이 은혜를 주셔서 우리는 미리 깔아 놓은 사람들에게 가서 우리가 뒤에 숨어서 조금씩. 조금씩 그 사람들이 NO3 가 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게 우리의 사명인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매스컴을 타면 안 되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면 안 되고 오히려 비방 받아야 되는 겁니다, 
그래야지만 겸손해 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두 번째 선교사들과 세 번째 선교사는 두 번째 선교사들을 수직계명을  철저히 안 하면서 수평계명을 조금 한다고 하면서 지상사명을 한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돈을 더 사랑합니다, 
명예를 더 사랑하고 자기 교단을 더 사랑하고 교회를 더 사랑하고 이러면서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그러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우리주변에 많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와 반대로 예수님을 제일 먼저 사랑하고 두 번째로 이웃을 사랑하고 그리고는 복음 전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순서가 잘못되면 나중에 주님 앞에 우리가 상급이 없습니다, 제가 여쭤 보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복음을 전화하면서 광고내거나 소문내거나 자랑하거나 그러면 안 되고 또 복음을 전하면서 다투면 안 되고 복음을 전하면서 우리가 더 우리끼리 사랑해야 되고 복음을 전하면서 우리가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라는 것을 제3국의사람들이 알도록 나의 삶의 스타일이 변화야 되는 겁니다, 
우리가 민족적인 배타성을 가지면 안 되고 주님이 이 사람들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으니 지금은 이 사람들 중에 NO2도 있고 NO3도 있겠지만 다 NO3 가 되어야 되겠구나, 라는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서 우리가 이분들을 섬겨야 되는 겁니다, 자기를 들어내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고 우리교회 이름 날리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결론적인 한 마디만 드리면 문제는 저나 여러분들이나 지금 이디에 속해 있느냐입니다, 
지금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느냐 분명 NO1은 아닙니다, NO2에 속해 있을 가능성이 다분히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언젠가는 이렇게 주님을 섬기다가 보면 조금씩, 조금씩 나의 시각이 변화를 받는 경험을 하면서 어떤 시각이냐면 이 세상은 내 고향이 아니구나, 나는 이 세상을 언젠가는 떠나는 존재구나 이 시각을 항상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끔 그런 사람도 있지만 그 사람들은 떠나면 그냥 무덤 속에 들어가서 그걸로 흙이 되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런 수준이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을 언젠가는 떠나야 되는 준재라는 것을 항상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사람을 이렇게 봐도 같은 크리스천끼리 우리를 봐도 저분은 진흙이구나, 이렇게 저는 항상 봅니다, 저분은 멀쩡하게 생겼는데 진흙이구나, 
언젠가는 저기 육은 흙덩어리로서 그냥 끝나는 사람이구나, 
그러니까 진흙으로 우리가 빗어졌기 온전한 존재가 아닙니다, 
항상 그걸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 인간은 진흙이구나, 
그리고는 언젠가는 섞어지는 존재구나 저는 사람을 볼 때 그렇게 봅니다, 
언젠가는 섞어질 존재구나 앞으로 10년 20년 30년 40년 후에도 일어나겠지만 당장 내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저 사람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 같은 존재구나 허무주의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서 저 세상에 가서 빛나는 영광 속에서 영원히 사는 존재구나 이 세상을 볼 때는 안개구나 그리고 변화는 존재들이구나, 
저 사람은 항상 자기중심으로 세상을 보고 모든 것을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자기중심이기 때문에 이기주의기 때문에 자기에게 맞지 않으면 변하는 존재구나 항상 우리가 그것을 읽고 들어가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 사람이 변하더라도 나는 변하면 안 되잖아 이런 생각 저 사람은 변화는 존재야 똑같습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우리 교인 중에서 어떤 분은 목사님 하면서 다 좋아 하다가 언젠가는 목사님 싫어요, 
하고  떠날 수도 있습니다, 떠날 때는 잘 가세요 하는 겁니다, 
왜냐면 변화는 존재들인데 내가 무엇을 기대합니까, 그러면 다른 교회 가서도 주님 잘 섬기세요, 그러니까 또 그렇지 않는 사람 죽으라고 같이 가는 겁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변화면 자기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제가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겁니다, 
사람은 변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니까 변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내가 기대고 있으면 그 사람이 변하면 나도 같이 불렀었던 변하는 존재 따라다니면 내가 돈이 생길 땐 좋지만 돈이 무너져버립니다, 돈도 들어왔다 나갔다 하면서 변하는 겁니다, 돈을 따라다니면 내가 돈이 생길 때는 좋지만 돈이 무너지면 나도 같이 무너져버립니다, 변하는 존재에 내 몸을 내 마음을 맡기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이것은 넘버원 넘버 투 크리스천들은 그렇게 합니다, 
NO3크리스천들은 이 지혜가 생기는 겁니다, 
그리고 이 능력이 생기는 겁니다, 여기에서 차이가 나는 겁니다, 
사물을 볼 때 그렇기 때문에 같은 아브라함과의 계약을 순종하지만 다른 시각을 가지고서 아브라함의 계약을 순종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것 자체도 우리가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저분은 어떤 시각으로 지금 아브라함의 계약을 지금 하고 있는가, 
이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되는 겁니다, 
우리교회 공동체들은 이런 지혜 자들이 되기를 저는 간구합니다, 
이 지혜를 가지면 평강이 모든 사람을 내가 안아주는 큰 그릇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뼈가 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뼈가 단단하게 있으면서도  내가 다 안아 주는 겁니다, 
왜냐면 이런 큰 시각이 깊은 시각이 높은 시각이 넓은 시각이 긴 시각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누구라도 내가 다 안아주고 그리고 힘을 넣어주어서 NO1에서 NO2로 NO2에서 NO3로 옮길 수가 있습니다, 
제 사명이 그 사명입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어쩌다가 주님의 크신 은혜 안에서 창세전에 우리 하나님의 자녀로 인 치심을 받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특별한 섭리 속에서 저희들이 이 시간세계 속에서 다양한 문화와 언어와 배경 안에서 다른 수준의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음을 섭렵했습니다, 간절히 간구하기는 저희들이 세 번째 수준의 주님의 자녀들이 되므로 해서 사도바울에게 주었던 영적 지혜와 지식과 명철과 통찰력이 우리 것이 되도록 이 세대에 특별히 우리가 이런 사도바울적인 사람이 필요한 이 세대에 우리가 이런 사람이 다 되어서  주님을 섬기는데 귀하게 사용 받게 해 주시고 또 우리를 통해서 주변에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저희들을 통해서 힘을 얻고 새 비전을 가지고 영적으로 성장하는 일이 되는 그러한 도구가 되도록 저희들이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주실 줄 믿습니다, 내 민족만이 아니고 이제는 저희들은 타민족에게 가서도 아브라함과의 계약 때문에 우리가 이 신비를 전화기를 소원합니다, 우리가 직접 갈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직접 간접으로 이 일에 참여할 수 있사오니 저희들에게 참여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며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 주님께 영광 홀로 드리시기를 소원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N27EUATTC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