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현목사 강해설교 녹취록/로마서 강해

42강, 로마서13장8절-14절,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변명섭 2019. 11. 29. 13:35

로마서강해 42강,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롬13:8-14) 2015년10월4일 말씀
오늘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로마서13장8절부터14절까지 말씀입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아멘, 
오늘 말씀은 지난시간말씀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시간말씀을 복습을 해보면 제목은 권세에 복종하라고 바울선생님께서 말씀하시고는 그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뭐냐면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는 자이고 이 거스르는 자를 반듯이 심판을 자취한다하게 된다, 
이런 말씀을 바울께서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주권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통치권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이 사상이 바울이 가지고 있는 사상이고 우리크리스천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입니다 이 사상을 철저하게 가질 때 이렇게 모든 권세까지도 하나님이 정한 것을 우리가 소화할 수 있습니다, 
바울에게 이런 시각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고 이것은 일반기독교인들은 상당히 힘든 시각입니다, 왜냐면 바울 때 보면 네로 왕에 의해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받고 죽임을 받았던 시대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바울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주후57년에 로마서를 썼는데 11년 후 68년에 바울이 네로 왕에 의해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자기를 죽인 사람입니다 
또 65년에는 베드로까지 순교를 당했고 또64년에 로마에 화제가 일어난 때입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리의 논리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바울이 네로 왕과 모든 로마 정권에 있는 관료들 그분들 말에 복종하라는 겁니다, 어떻게 바울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까, 
제가 지난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사상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로마서12장1절2절 말씀 때문에 이 사람이 이런 시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이 시각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로마서12장1절2절의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하루아침에 된 게 아닙니다, 
바울이 개종을35년에 했잖아요, 35년에 개종하고는 지금 로마서를 쓰는 것이 57년이니까, 22년 동안 용광로훈련을 많이 받아서 많은 부분에서 영의 시각이  많이 열려있을 때입니다 그래서 이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로마서12장부터 시작해서 16장까지 주제되는 말씀이 12장1절2절입니다, 주제되는 말씀이 뭐냐면 시각의 변화가 와야 된다는 겁니다, 
시각의 변화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면 먼저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된다는 겁니다, 이 말이 뭐냐면 이 세대라는 것은 이 세상을 이야기할 때 쓰는 말입니다 이 세대 임금이 누굽니까 사탄과 그 세력들입니다 그러니까 사탄과 그 세력들이 가르치는 라이프스타일 이것을 본받지 말라는 겁니다, 첫째 시각을 넓히려면 바울이 과거 30년 동안 예수님이 만나기전에는 이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사탄의 성품을 미움과 질투와 이런 것들을 가지지 말라는 겁니다, 시각이 변하려면 두 번째로 뭐냐면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내 속에 있는 쓴 부리들 사탄의 성품들을 이것을 제거 시키라는 말과 똑같습니다, 심령이 새롭게 하는 겁니다, 
성화시키라는 겁니다, 성화시키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뭐냐면 팔복을 연습하는 겁니다, 이러다 보니까 예수님의 성품으로 조금씩. 조금씩 옷 입게 되는 겁니다, 오늘본문말씀에서 예수그리스도로 옷 입어라 하는 것은 이 과정이 필요한 겁니다, 이렇게 되면 그다음 결과로 변화를 받는다고 그랬습니다, 
변화를 받는다는 말은 한국말로는 그냥 변화라고 썼지만 아예 모양을 바꾸라는 겁니다, 내속에 있는 성품을 사람의 인격이 변하게 그래서 바울이 이것을 새사람으로 오늘분문에서는 예수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입니다 
골로새서3장10절에는 창조하신자의 형상으로 변해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해라는 겁니다, 
이 안에 있는 세상의 성품들 사탄의 성품들이 없어져야지만 변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들도 질투심. 미움. 용서 못하는 마음 이런 마음들이 이작도 깔려있으면 이렇게 완전히 예수님의 모습으로 변하지 못합니다, 변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느냐면 시각의 변화가 안 오는 겁니다, 
왜 그렸습니까, 예수님이 마태복음5장8절에 마음이 순수한자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영의 사람들은 마음이 순수해야지만 영안이 떠지면서 시각의 변화가 오는 겁니다, 바울이 이 시각변화를 지금 로마서를 주후57년에 썼으니까 얼마동안 시각변화훈련을 받았습니까, 
22년을 받아온 겁니다, 
그러니까 로마서를 이렇게 쓸 수가 있었습니다, 
이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로마서를 쓰시면서 자기가 시각변화를 받았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바울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이렇게 시각변화를 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면 그 사람들의 이름들을 보면 로마서12장1절과2절에 나열해 줍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를 드리는 자라는 겁니다, 두 번째로 이런 사람들은 영적예배를 드리는 자라는 겁니다, 
세 번째로 이런 사람들은 이 세대 이 세상을 본받지 않는 자라는 겁니다, 네 번째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자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분별력을 가진 자는 영의 눈이 떠진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훈련 없이 제가 드리는 네 가지의 이런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리수가 따라옵니다, 알고 보면 아닙니다, 
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바울이 이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서 바울에게 너 이제 로마서12장부터16장을 쓰라는 겁니다, 경험을 안 했으면 쓰라 그래도 이 사람은 쓸 수가 없습니다, 
여기 앉아있는 젊은 분들은 한참을 경험하셔야 됩니다, 
그렇지만 제가 나이가 이렇게 되어 보니까 조금 깨닫는 것이 있어서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렇지만 젊었다고 해서 그냥 방치해두면 안 됩니다, 주님께서 특별히 사명자로 히브리서11장의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이 특별히 바울처럼 쓰시려고 하는 사람 꼭 선교사로 나간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국내외에 하여튼 바울처럼 요긴하게 쓰시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조금씩. 조금씩 이 훈련을 시키시는 겁니다, 
이 훈련이 있다는 것은 이런 복인 겁니다, 
여러 가지 훈련을 하나님이 주시는데 오늘 그래서 바울이 지난22년 동안 이 훈련을 받았기에 이분이 이 고백을 하시는 배경을 한번 섭력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들의 삶속에서 그대로 적용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말씀을 주신 것은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다 가르쳐주시는 겁니다, 바울은 바울의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고 그냥 그것은 바울의 삶이었다고 객관적으로 보지 마시고 이것을 내 삶에 적용을 시키는 그러한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우선 바울의 삶을 보면 이것을 나에게 대입하는 연습을 합시다, 
첫째 바울이 이런 시각을 가지기 전에 30년 동안 이분이 주후5년에 태어나서 주후35년에 개종한 겁니다, 30세에 개종하기 전에 이분의 모습을 보면 첫째 이 세상 좋아해서 살았던 겁니다, 자기가 지금 로마서12장에서 이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이분이 과거에는 이 세상을 본받았던 사람입니다 본인이 어떤 측면에서냐면 이분이 보면 아주 교만했던 사람입니다 바울이 교만했던 여러 가지 여건들이 있습니다, 
학벌도 좋고 가정배경도 좋고 또 로마시민권도 가졌고 공회원이었고 오늘날 국회의원입니다 이분이 그러니까 안하무인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치관도 물질관도 출세관도 다 이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그러한 공통적인 관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그뿐 아니라 성품도 많은 부분에서 사탄의 성품들이 그분에게 많았습니다, 예컨대 질투심이 많았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그분의 질투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을 죽으라고 싫어하고 또 화도 잘 내고 거기다가 교만해서 자존심이 강했습니다, 바울이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또 이분이 어떤 부분에서 보면 시각이 아주 좁은 사람이었습니다, 
시각이 좁기만 한 것이 아니고 좁고 얕았습니다, 높지 않고 낮았습니다, 
또 시각이 길지 않고 짧았습니다, 그러니까 조그만 그릇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은 시각이 조그만 그릇이니까 그저 자기 가족밖에 모릅니다, 거기에 한단계업그레이더 되면 그저 내 고향사람들 자기 고향과 다르면 배척하려고 그러고 또 내 동창 초등학교부터 따집니다, 
그래서 요즘도 제가 아는 분들 보니까 초등학교동창끼리 등산도가고 중고등학교 동창도 등산모임이 있고 대학동창 군대동창 직장동창 동창들이 많아서 바쁩니다, 그러니까 이분도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조금 나아진 게 나중에 자기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자기민족중심사상이 강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타민족을 별로 안 좋아했던 그러니까 이분은 좁은 그릇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저 고작해야 이 세상에서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돈 좀 넉넉히 가지는 것 그저 자녀들 잘되는 것 이 수준에서만 오락가락 했던 사람입니다, 바울만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있는 것들입니다, 
개종 전에 이분은 이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을 어머니 태에 있을 때 벌써 로마제국복음화를 위해서 기름부음을 예정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 모습을 놓아두면 안 되는 겁니다, 이 사람을 변화시켜주어야 되잖아요, 
시각을 변화시켜주려면 주님께서 이분을 훈련시켜야 됩니다, 어떻게 훈련시킵니까, 가치관 물질관 출세 관 또 옛 성품을 좁고 얕고 짧은 시각을 변화시켜서 가치관 물질관 가족관이 변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데 예수님도 바울의 삶을 봐도 적어도 20년은 걸리는 겁니다, 
그런데 30년을 살다가 20년을 예수님 손에 잡혀서 있을 때인데도 나중에 우리가 보면 이분이 완전히 변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변했습니다, 
오늘본문의 말씀13장 이 말씀을 바울에게 주실 때는 22년 변화과정을 겪은 바울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바울이 22년 동안 용광로훈련을 받으면서 쓴 뿌리도 어느 정도 제거되어서 옛 성품이 많이 정리가 되고 새 사람으로 정리되었다는 것은 성령의9가지 열매가 그분들에게 들어와서 자리 잡고 성화된 겁니다, 이러면서 자기가 좋아했던 모든 것들 세상에서 우상들 이런 것들이 없어지고 이분이 상류계층사람이기 때문에 이분이 가장 어려웠던 것 중 하나가 자존심이 부셔지는 게 상당히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분을 다루실 때 자존심을 부서뜨리는 일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가끔 사람을 이렇게 대할 때 그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려보면 압니다, 이분이 어느 정도 성화된 사람인지 제 말에 동의하십니까, 
누구든지 그분의 자존심을 한번 건들면 그 반응을 보시면 근방 압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울이 개종한 후 첫3년 동안 어떻게 자존심이 부셔졌나를  우리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후35년부터38년에 이분이 예수님을 다메섹에서 만나고 그 후에 아라비아로 내려갔다고 그랬습니다, 
바울이 시내 산 모세가 율법을 받았던 산입니다 엘리야가 주님을 깊이 만났던 산입니다 이분을 거기에 던져놓고는 3년 동안 우상을 부수는 훈련을 시키는 겁니다, 이분이 혼자서 그 광야에 계시면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많이 했을 겁니다, 이분이 이제 자기가 그동안 믿었던 유대인동료들이 있습니다, 또 제사장들 이런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심지어 이런 분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상황 속에서 지금 시내 산에 앉아있는 겁니다, 
거기서 오는 자존심 상처는 말도 못합니다 
내가 어쩌다가 예수라는 분을 만나가지고 이렇게 여기까지 와 가지고 옛 친구들 동창들 고향선후배들이 나를 외면하고 도리어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이런 자존심상하는 일을 하나님이 시키시는 겁니다, 
그렇게 안 해도 되는데 이런 과정을 겪게 하시는 겁니다, 
두 번째로 자존심 상하게 하는 것은 기독교 교계에서 받는 상처입니다 
예루살렘에 계신12제자들도 특히 요한이나 베드로나 야고보나 이런 리드들이 이분이 이렇게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다 듣고도 축하메시지 한 장 보내지 않는 겁니다, 그뿐입니까 누구하나 보내지도 않는 겁니다, 
그것보다 사도행전9장26절에 보면 이분들이 바울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믿지 않았고 그다음에 두려워했다고 그랬습니다, 
왜냐면 바울이 예루살렘교회를 핍박해가지고 흩트려놓았던 장본인이거든요 그러니까 베드로나 야고보입장에서 보면 자기교회 교인이 2만 명 정도 되었는데 다 흩트려버리고 지금 지도자들만 남아 있는 조그만 교회로 된 이 사실은 바울 때문이라는 그 불만이 들어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을 싫어하고 이 사람에 대한 섭섭함과 미움이 가득 차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바울도 알고 있었던 겁니다, 
시내 산에 앉아가지고 그러니까 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과거에 가졌던 좋은 학벌들 공회의 위치들 이런 모든 세상 것들이 다 의미가 없는 것으로 되어 버리고 이제는 이 세상 것들을 내가 기될 수 있는 입장도 못되고 이제는 주류사회에서 내가 완전히 버림받는 존재가 되고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사회에서도 내가 인정받지 못하고 이런 인간이 되어 버린 겁니다, 
한계인간이 되어 버린 겁니다, 한계인간이라는 것은 내가 이쪽에도 끼지 못하고 저쪽에도 끼지 못하고 경계선에 서있는 사람입니다 
본인이 지금 그렇게 되어 있는데 예수님이 보고는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너 이제 혼 좀 나봐라 이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계획 속에서 이 일을 이루는 겁니다, 
그리고 3년이 끝났잖아요, 3년 끝나고 바울이 예루살렘에 방문하는 겁니다, 예루살렘에 왔는데 야고보와 베드로만 만나고 갈라디아서1장에 보면 나옵니다, 그리고 1장18절19절에 바나바가 소개해가지고 그런데 거기서도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하니까 15일밖에 예루살렘에 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분을 고향 다소로 보내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소에서 7년 동안 우상부수는 훈련을 시켰습니다, 
바울이 고향에 오니까 부모님들이 자기를 배척하는 겁니다, 
바울이 결혼했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거든요 저도 그분이 결혼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처자식이 분명히 있을 테인데 처자식도 이분을 배척하고 가족들도 어디 가서 당신이 이렇게 이상한 사람이 되어서 왔느냐면서 배척하고 지금 이런 상항입니다 이분이 주후38년에 고향다소에 가서 41년에 3층천에 올라가는 경험도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돈도 없고 직업도 없고 동네어른들도 바울보고 패인이 되었다고 취급을 받는 사람이 된 겁니다, 
주변사람이 바울보고 저렇게 똑똑한 사람이 저렇게 되었다고 사람들이 측은하게 보기도하고 이런 모습으로 우리가 바울을 연상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저나 여러분들에게도 다 적용이 되잖아요, 
저도 이런 과정 많이 겪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다보니까 이 과정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이제는 초등학교동창도 생각나지 않고 이제는 동창회에서 부르지도 않고 중고등학교동창회에서도 부르지 않고 가봐야 재미가 없는 겁니다, 
고향사람을 만나도 그렇고 외톨이가 되는 겁니다, 
사람들이 보면 외골수처럼 보이기도 하고 너는 왜 광신자나 실은 우리가 광신자가 아닌데도 그런 소리 듣는 겁니다, 
이런 취급을 받아 본적이 있습니까,  이분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데 10년이 걸렸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정도까지 만드는데 10년 걸린 후에 예수님께서 이제 됐다 이제는 실제로 사역지에 들어가서 한번 뛰어봐라 그래서 사역을 시키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바나바를 통해가지고 이분이 안디옥교회 전도사로 임명시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게 주후45년부터입니다 45년부터 이분이 안디옥교회 전도사로 가가지고 사람들이 볼 때 말랑말랑한 사람이 된 겁니다, 
바울에 대해서 소문 들었던 것하고는 다른 사람이 된 겁니다, 
안디옥교회 전도사 생활할 때 사람들에게 겸손한 모습이 보였던 겁니다, 
그러니까 성령님께서 때가되니까 1년 사역한 후에 성령님께서 안디옥교회 지도자들에게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보내라 하여 선교사로 가게 된 겁니다, 그래가지고 45년부터49년까지4년 동안 선교사훈련을 시키는 겁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지도자훈련 시키고 교회개척훈련 시키고 그러다 보면 또 교만 끼가 나타나면 핍박훈련 시키시고 그래서 1차 선교여행 때 이분이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서 예수님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데 거기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모욕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도행전13장50절에 보면 처음으로 핍박을 경험하는 겁니다, 
왜냐면 예수님의 정체성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 이분이 인간으로 내려오셔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셨고 이분은 죽으셨다가 부활하셨고  이분은 승천하여 올라가셨고 이분을 믿어야만 너 네들이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을 전하니까 유대인들이 바울을 핍박을 하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바울이 이고니온으로 옮겨가는데 거기에 가가지고는 사도행전14장5절에 보면 돌팔매질로 맞고 우리가 핍박 받는 게 예수님을 전할 때 받는 핍박이 진짜 핍박입니다, 사도바울이 받았던 핍박입니다, 
그리고는 루스드라로 갔습니다, 사도행전14장19절을 보면 바울이 돌에 맞아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전도사로1년 있다가 선교사로 선교지에 나갔다가 그냥 혼쭐이 난 겁니다, 그냥 죽에 된 겁니다, 
이런 경험도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바울이 되시려면 이 과정이 필요한 겁니다, 
왜냐면 자존심을 없애는 훈련 중에 중요한 과정이거든요 그래가지고 이분이 1차 여행을 끝내고는 이제 이분이 이걸로 훈련이 끝난 게 아니고 이제부터 더 심한 훈련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1차 여행 끝나고 안디옥교회에 오니까 예루살렘에 있는 크리스천들이 바울이 이단적인 말씀을 한다고 해서 그때 이분의 지존심이 얼마나 깎이었습니까, 은혜복음을 전하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구원받으려면 율법을 지켜야 된다는 그 사상을 가진 12제자들과 그분의 제자들이 바울을 공격하는 이야기입니다 자존심이 엄청나게 깎이어서 바울이 하는 수 없이 예루살렘으로 바나바와 내려가 가지고 무릎 꿇고는 선배님 제가 받은 메시지는 이겁니다, 라고 전하니까 성령님이 야고보와 베드로에게 말씀하여가지고 바울의 신학을 인정해주는 장면이 예루살렘총회라 그럽니다, 
그게 주후49년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총회를 통해서 바울이 많이 낮아진 모습이었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베드로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야고보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저사람 대단히 교만했던 사람인데 저렇게 겸손해졌냐고 과거와는 완전한 다른 모습으로 형님들 제 잘못한 것 있으면 고쳐주세요, 
하고 나오니까 그분들의 마음이 감동되어가지고 바울을 최초로 기독교교계에서 수용해주는 인정해주는 일이 있었든 겁니다, 
바울이 이분들에게 인정받았지만 바울이 자기가 받은 신학을 마음대로 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만 바울 속에는 아직도 깔려있는 게 있었습니다, 
12제자들에 대한 특히 야고보와 베드로에 대한 감정이 있었습니다, 
그 감정을 안디옥으로 돌아와 가지고 갈라디아서를 49년에 쓰실 때 갈라디아서2장에 보니까 갈라디아교인들에게 베드로와 야고보를 질타하고 그분들은 나보다도 더 센 사람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내가 더 센 예수님의 제자라는 이야기를 거기다 비치는 겁니다, 그리고는 내가 바나바도 질타했고 베드로도 한번 질타했다 그분들이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하면서 자기를 높이는 겁니다, 자기를 높이면서 베드로와 야고보를 깎아 내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도 아직까지 한참가야 되는 겁니다, 
이게 주후49년의 바울의 모습입니다, 개종해서 14년 후입니다 
그렇게 훈련을 받았는데도 아직도 그분에게 쓴 뿌리가 있는 겁니다, 
성서에서 그러한 모습을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성화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러니까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쓰시면서 성령님이 바울에게 가르쳐주는 겁니다, 
갈라디아교회에 본인이 그 교회를 개척해놓고 또 갈라디아교회에 많은 베드로와 야고보의 제자들도 많이 있는데 그 안에 교인들의 모습을 조면하여주는 겁니다, 바울에게 갈라디아교인들의 모습을 바울을 보면서 성령님이 가르쳐주시면서 갈라디아서를 쓰시는 겁니다, 
갈라디아서를 쓰시면서 자기의 모습이 그 속에 있는 것을 자기도 보는 겁니다, 갈라디아교인들의 모습 속에서 자기모습도 있다는 것을 스스로가 보게 되면서 바울의 편지들은 다 양면성이 있습니다, 
수신자들을 향해서 썼지만 자심을 향해서 쓴 것도 그 안에 깔려있습니다, 
바울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그래서 갈라디아서교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바울이 그랬습니다, 애들아 너희들 사랑으로 종노릇하지 않는 모습이 보인다,
 너희들이 성령을 쫓아서 행하지 않는 모습이 보인다는 겁니다, 
갈라디아서5장11절13절 이런데 보면 그러면서 또 그러는 겁니다, 
갈라디아교인들아 너희들 육체의 소유로 행한다는 겁니다, 
갈라디아서5장20절21절에 그러면서 너 네들 크리스천들인데 이렇게 베드로에게 설교를 많이 듣고 야고보에게 많이 듣고 또 내가가서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많이 전했는데 너 네들을 보면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도 교회 안에 있고 점쟁이에게 가서 점치는 사람도 있고 원수 맺는 일도 있고 분쟁하고 시기하고 분내고 당 짓고 질투하는 이런 사람들이 거기에 다 있다는 겁니다, 크리스천들인데 너 네들 삶을 보면 잔부 세상 사람들과 똑 같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계속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26절에 너희들이 헛된 영광을 구하기위해서 서로격동하고 싸우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잘났다고 자기가 더 나타내려고 자기가 더 인정받으려고 서로 싸움질하는 그 모습이 갈라디아교회에 있는 겁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바울이 나도 이런 모습이 여기에 깔려있구나 이것을 자기가 보게끔 성령님이 하신 겁니다, 
그러면서 갈라디아서5장15절에 이런 말씀을 하시잖아요, 
바울이 그럽니다, 너희들이 피차 물고 먹으면 피차 망한다는 겁니다, 
피차 망한다는 말을 원어를 보면 아나니스코 라는 단어인데 소비하다 다시 말하면 교회 안에 교인들끼리 서로 자기성격대로 서로 남을 물어뜯고 이러면 이게 교회 안에 에너지가 낭비된다는 이런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지상계명과 지상사명을 해야 되는데 이런 것 때문에 묵사님도 이것 때문에 새벽기도 금식기도 매일하고 이것 때문에 장로님들 권사님들 서로가 불편하고 이것 때문에 에너지가 낭비한다는 겁니다, 
너희들이 이런 짓하면 하나님나라에서 유업을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존귀함을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바울이 지금 자기 자신을 갈라디아교인들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이렇게 들여다보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바울에게 그러는 겁니다, 
바울아 성령을 따라서 행하라고 그럽니다, 
16절에 성령을 따라서 행한다는 말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성령에 의해서 걸어 다니라는 겁니다, 항상 걸어 다녀도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다니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라, 
18절에 다시 말하면 성령님의 이끄심에 따라서 행동을 하라는 겁니다, 
모든 행동들을 성격이 먼저 나가는 대신에 성령님의 조정에 의해서 나가라는 겁니다, 바울도 그렇지 못한 부분을 갈라디아서2장에서 우리가 봤습니다, 이분도 성령에 의해서 성령을 따라서 하지 않았는데도 갈라디아서를 쓰게끔 하셨는데 우리도 이런 과정이 있다는 겁니다, 
분명히 바울이 갈라디아서5장에서 성령을 따라서 행하고 성령의 인도하시는 데로 살라 그랬는데  2장에 보니까 본인이 그렇게 안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봐라 너도 아직 조금 더 가야된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이러면서 1차 여행이 끝나고 예루살렘총회 끝나고 갈라디아서를 쓰도록 하면서 49년이 끝나는 겁니다, 
이분이 이러면서 성품이 어느 정도 정돈이 되어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다가 50년부터52년에 바울의 2차 선교여행입니다 
2차 선교여행을 시작하면서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교회들을 다 개척하였습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와 골로새교회를 개척하시고 또 마케도니아의 비전을 보고는 마케도니아에 올라가서 빌립보교회를 개척하시고 또 밑으로 내려와서 데살로니가교회를 개척하시고 그리고 베뢰아교회를 개척하시고 또 아덴에 들려서 교회개척하시고 고린도교회 개척하시고 고린도에 계시는데 데살로니가교인들이 바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메시지를 바울이 듣는 겁니다, 예컨대 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내용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서 바울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지지하는 사람들도 데살로니가교회 안에서 나오는 겁니다, 성령님께서 바울의 성질을 그대로 나타내게 하면서 데살로니가 전 후서를 쓰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바울의 성품을 그대로 시용하시는 겁니다, 데살로니가 전 후서를 쓰면서 이분이 옛날 같으면 그냥 강하게 나올 텐데 데살로니가 전 후서를 보면 자기감정을 잘 다스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많이 변해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말투가 아주 부드러운 말투로 이야기하는 겁니다, 
너 네 교회를 보니까 게으른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5장14절에 보면 게으른 사람에게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는 말까지도 하시는 겁니다, 데살로니가후서3장10절에 그다음에 보니까 힘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고 데살로니가전서5장14절 이야기들입니다, 
그다음에 모든 사람들을 향해서 오래 참으라면서 아주 좋은 말로 이 사람이 많이 변한 겁니다, 또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 항상 선을 따라서 사람을 대하고 그러면서 데살로니가전서5장16절에서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말이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너가 지금 이것을 안 한다는 이 말이 깔려 있는 겁니다, 바울도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이런 부분에서 약했습니다, 데살로니가교인들을 거울로 삼아가지고 바울이 계속 우리에게 말씀하지만 알고 보면 그분이 자신에게 하는 말입니다, 
목사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를 하면서 알고 보면 자신을 위해서 설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해서 2차 선교여행을 하는 도중에 주후51년에 데살로니가  전 후서를 썼습니다, 대게 후서를 쓸 때는 전서를 보내놓고 이게 별로 효과가 없을 때 후서를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2차 선교여행을 끝난 다음에 이분이 현장에서 많은 훈련을 받으면서 현장에서 자기가 최선을 다해서 주님의 일을 하는데도 자기 제자들이나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 자기의 자존심 건들리는 것을 경험하면서 3차 여행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3차 여행에 들어가서 이분이 2차 여행 때 주님이 주신 비전이 뭐냐면 에베소에 가서 신학교를 세우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3차 여행 때는 주후53년부터57년까지 3차 여행 때입니다 
52년에 에베소에 가서 두란노 서원을 세워서 지도자훈련을 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분이 어느 정도 지도자훈련을 시킬 수 있는 성품의 변화가 있었고 어느 정도 영성이생기고 어느 정도 자격이 있기 때문에 본인도 이제 자신감이 생기고 그러면서 로마제국복음화 시키려면 이제는 제도적으로 지도자들을 훈련시켜서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성령님의 가르침이 있고 해서 두란노 서원을 53년에 세운 겁니다, 한 단계 업 그레이더 된 겁니다, 
그래서 2년 동안 두란노 서원에서 신학교학생들을 80명에서100여 명 되지 않을까 이렇게 추측하는데 이중에 30여 명 핵심멤버들을 2년 동안 훈련시켜서 로마로 선교사로 파송한 겁니다, 그분들의 이름이 로마서16장에 있는 겁니다, 바울은 아직 로마에 가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지금 에베소에 있으면서 30여 명의 자기제자들을 먼저 로마로 파송시킨 겁니다, 이렇게 하면서 이분이 로마제국복음화에 대한 비전을 가지게 된 겁니다, 영의 눈이 더 크게 떠지면서 그러면서 이분이 에베소에 있는데 갑자기 고린도교회에서 바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메시지를 받은 겁니다, 
신학교훈련도 하고 이제 어느 정도 에베소에서 자리 잡혔다, 라고 생각하는데 고린도교회에서 또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겁니다,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교회 하면 상당히 바울의 정성이 많이 들어간 교회입니다 이분이 2차 선교여행 때 고린도교회에 가서 교회를 개척하면서 1년6개월을 거기서 머물려 습니다, 그러니까 제일 정성을 드린 교회가 고린도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어떤 소문이 들어오느냐면 고린도교인들이 다 당신의 제자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안에 이미 여러 파들이 있다는 겁니다,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볼로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바울이 들어보니까 아볼로는 자기제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성경공부 했던 사람인데 바울이 생각할 때 아볼로는 자기 제자에게 훈련받은 제자인데 그다음에 신 신학적인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인데 자기가 개척한 고린도교회에 하나의 파벌을 만들어서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겁니다, 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질투심이 나고 자존심도 깨지고 어떻게 제자들이 이렇게 변질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뿐입니까 그 안에 자기파도 있지만 예수님파도 있다는 겁니다, 
이분이 그말을 듣고는 그러는 겁니다, 
내파도 소용없고 아볼로파도 소용없다 베드로파도 소용없다 
왜냐면 베드로가 고린도에 갔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아직도 쓴 뿌리가 있으니까 내 영향력이 약하구나, 라는 것을 느낀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이런 부분에서 이것이 아직 해결이 안 된 겁니다, 누가 잘 될 때 그러니까 바울이 아볼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고린도전서3장6절에 아볼로를 칭찬하는 겁니다, 
나는 씨 뿌렸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 그리고 자라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면서 자기 스스로 자기 감정을 자기가 정돈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고린도교회를 향해서 아주 섬섬한 내용들을 정한 겁니다, 애들아 내가 그렇게 정성 드렸는데 아직도 너 네 교회 안에 어떤 사람은 자기아버지아내와 음행하는 놈들도 있고 교인들끼리 서로 법정에 고소하는 놈들도 있고 우상 섬겨서 우상에게 제사지낸 음식가지고 서로가 왈가불가하고 어떤 사람은 예언 방언의 은사를 받아서 교회를 시끄럽게 하는 사람도 있고 바울의 자존심이 깎이는 겁니다, 그렇게 1년6개월을 정성을 드렸는데 아직도 교인들이 열매가 맺어지지 않는 이런 걸 보고 바울에게 주님이 가르쳐주는 겁니다, 너 봐라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하는 게 아니다 
너가 가서 1년6개월 했다고 그래서 사람들이 변하는 게 아니야 봐라 그러는 겁니다, 그다음에 이분에게 은혜 받았던 사람들이 바울에 대한 사도권입니다, 리드 쉽. 사도 권에 도전하는 사람이 있는 겁니다, 
바울이 없는데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바울 그 사람은 사도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 헌금가지고 막 쓴다는 소문이 퍼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화가 나가지고 고린도후서를 쓰시는 겁니다, 
고린도후서11장에 그러는 겁니다, 
사도 권에 대해서 헌금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는 겁니다, 또 그린도전서9장에도 헌금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나는 당연히 받을 권한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너 네 것 안 받았다는 겁니다, 
왜냐면 이것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실족할까봐 고린도후서에서 이런 말을 쫘악 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정성 드려서 고린도교회 사람들에게 이렇게 했는데 뒷소문은 별로 안 좋게 나오는 겁니다, 
열매도 별로 없고 이런 모든 일들을 목회자가 되는 사람들은 다 경험을 해야 됩니다 신학교에 가서 목회자가 되려면 이런 경험을 해야 됩니다, 
이런 경험 없이 잘 나가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종이 되려면 끊임없이 뒤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어야 됩니다, 
바울도 듣는데 들어야 됩니다, 그러면서 그것 자체가 나에게 복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내가 더 겸손해지고 더 겸손해지고 더 주님에게 의지하고 주님에게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는 대상이 아니구나, 
내가 그냥 사랑을 해주는 대상이구나, 이것을 가르쳐주는 겁니다, 
바울이 이런 과정 속에서 이분이 로마서를 57년에 쓰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로마서가57년이니까 예수님을 만나고 몇 년 후입니까, 
22년 후입니다 로마서를 쓰실 정도의 바울의 영성이 이렇게 되었을 때만해도 이분은 지난22년 동안 받아왔던 그 훈련을 우리가 간과하기가 쉽습니다, 깔려있는 여러 가지 자존심 깨는 훈련을 이분이 받았고 많은 부분에서 이분이 이제는 성화가 어느 정도 되었기 때문에 시각이 커진 겁니다, 시각이 커졌기 때문에 시각이 깊어지고 넓어지고 높아지고 길어졌기 때문에 큰 그릇이 된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에게 로마서를 주신 겁니다, 
그냥 하루아침에 준 게 아닙니다, 로마서는 성경에서 꽃 중의 꽃이라고 그러잖아요, 봉우리 중에 봉우리인 그것을 받을 만한 그릇이 준비되었던 겁니다, 로마서1장에서8장까지는 기독교의 심오한 교리들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을 이분이 받는 겁니다, 순수한 깨끗한 마음의 그릇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다음에 9장부터11장은 이방인과 유대인간의 신비로운 일들을 다른 신학자들이나 다른 사람들 12제자들도 이 신비를 소화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이 신비를 소화하도록 해서 그 유명한 9장10장11장을 던져주신 겁니다, 이분이 그럴 소화했습니다, 
이분이 이걸 소화했는데 나중에 1세기2세기3세기 중에서 기독교인의 지도자들이나 신학자들이 이것을 소화를 못해가지고 기독교가 유대인을 향한 교리가 많이 반유대인주의로 간일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 주님의 뜻 가운데 그렇게 했지만 그런데 로마서 이제 마지막부분입니다, 12장부터16장 이 부분은 이런 큰 시각을 가졌기 때문에 이제 이분이 산제사를 드리는 그러한 일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그러는 겁니다, 로마서12장1절2절은 제가 말씀드린 그 부분이고 3절부터21절까지는 이분이 큰 그림을 보니까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기독교인들을 볼 때 믿음의 분량이 다 다르다는 것을 너희들이 바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다룰 때 다 믿음의 분량이 다른 것을 보면서 거기에 맞추어서 사람을 대하라는 겁니다, 
은사도 다 다르다는 겁니다, 거기에 맞추어서 대하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너를 핍박하는 축복해주라는 겁니다, 
저주하지 말고 그것이 큰 그림 속에서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모든 사람에게 악으로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겨버리라는 겁니다, 모든 사람과 할 수 있으면 다 평화 하라는 겁니다, 
이 말씀이 로마서12장3절에서12장 끝까지입니다 이게 가능합니까, 
바울이 지금 이런 사람이 된 겁니다, 22년 훈련을 받고 어떻게 됩니까, 
마음이 순수해지면서 시각에 큰 변화를 경험하는 겁니다, 
경험했기 때문에 이 말씀을 던져주는 겁니다, 
그리고는 13장에 계속해서 말하는 겁니다, 이 시각을 가진 바울아 권세를 보는 시각도 이제는 변해라 네로 왕을 조그만 그릇으로 볼 때는 죽일 놈이야 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임금들 파워 자들 대기업 소기업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 랍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고 그것을 거스르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면 심판을 받게 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오늘 분문의 말씀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사랑은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는 겁니다, 
이분에게 십계명을 보는 시각을 주시는 겁니다, 
십계명을 보는 시각이 뭐냐면 수평계명이 율법의 완성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의 시작이 수직계명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수직계명만 해가지고는 안 된다는 겁니다, 
수직계명을 철저하게 해야 되는데 첫째 되고 가장 큰 계명입니다, 
마태복음22장37절38절에 그런데 수직계명을 하는 사람은 자연히 수평계명까지도 하게끔 되어 있다는 겁니다, 요한1서4장21절에 보면 그랬습니다, 
그래서 수평계명으로 끝내어 줘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수평계명이 모든 계명의 마지막 완성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이것만 자꾸 하고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거랍니다, 요한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요한1서4장20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연히 백성들도 사랑해야 된다는 겁니다, 

십계명

지상계명 구 약 신 약
수직계명
(Vertcal
Commandments)
1,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출20:3)
2,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을 섬기지
말라(출20:4-5)
3,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출20:7)
4,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20:8)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며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신6:5, 마22:37,
막12:30, 눅10:27)
수평계명
(HorizonalCommandments)
5,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20:12)
6, 살인하지 말지니라(출20:13)
7, 간음하지 말지니라(출20:14)
8, 도적질하지 말지니라(출20:15)
9,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지니라
(출20:16)
10,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출20:17)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3:39)

그러면 우리가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우리가 왜 사랑해야 됩니까,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이유는 우리하나님의 자녀들은 다 창세전에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로 이뿐 아니라 예정된 사람들을 예수님이 십자가의 보혈에 의해서 대가를 치러서 하나님의 자녀를 구원시킨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킨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지체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어디 아프면 다른 지체들도 아프기 때문입니다, 
이게 첫째 이유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다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대가를 지불한 분들입니다, 두 번째 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서로 사랑해야 되느냐면 지상사명을 수행해야할 동역 자들입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에게 맡겨주신 중국선교 소련선교 일본선교 아프리카선교 아시아선교 이 일을 우리가 직접 간접으로 해야 되는 동역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동역 자들끼리 서로 사랑해야지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가 에너지를 안비를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사랑해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세 번째로 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되느냐면 우리는 영원히 함께 살 사람들입니다 천국에 올라가서 우리는 같이 살면서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잘 관리하고 잘 섬기는 일을 하는 파트너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서로가 파트너 쉼을 가지고 하나님과의 파트너 우리끼리 파트너가 되어서 창세기1장28절을 이루는 파트너들입니다 
이 파트너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사랑해주어야 됩니다, 
이 개념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바울이 이런 시각의 사람이 되게끔 하기 위해서 우리 예수님이 바울을 최소한 로마서를 쓸 때까지 몇 년을 훈련 시켰습니까, 22년을 훈련시켜서 이분이 이런 시각을 가지게 된 겁니다, 그러면 한 가지 제목을 간단하게 적고 제가 끝내겠습니다, 
이런 시각변화를 시키는 방법을 바울이 터득하였는데 22년 동안 이 훈련을 받으면서 그 방법을 우리가 한번 봅시다, 
첫째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 이런 시각을 크게 하는 훈련을 시키지 않습니다, NO1크리스천들은 눈이 감긴 크리스천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60-70%라 그랬습니다, 
NO2크리스천들은 눈이 이 세상에만 보는 크리스천들입니다 
20-30% 소위 번영신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기도도 많이 하고 말씀도 많이 보면서 주님을 잘 섬기면서 이 세상에서 복 받기만 원하는 이런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다 필요한 겁니다, 필요하지만 여기에 끝나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NO3크리스천들이 히브리서11장의 믿음의 기독교인들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잠깐 있는 나그네이고 본고향은 저쪽나라다, 라는 이런 관념을 가진 크리스천들 바울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시각들은 어떤 사람들이냐면 전적으로 나의 의의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 그러니까 은혜로 훈련받는다는 사상입니다, 
그런데 우리교회 식구들도 주님의 은혜로 여기에 동역자로 보내주셔서 지금 이 훈련을 박고 있는 겁니다, 이 훈련을 조금씩. 조금씩 항상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훈련의 가장 중요한 초점이 뭐냐면 우상을 부서뜨리는 겁니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물질도 내 자존심도 내 가족도 그러니까 예수님이 누가복음14장16절에 네가 내 제자가 되려면 내 부모나 처나 자식이나 내 자신까지도 나보다 더 사랑하면 내 제자가 아니라고 했잖아요, 
여기 까지 가려면 한참가야 되는 겁니다, 이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닙니다, 이 훈련 그래서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용광로훈련을 시키는 겁니다, 
용광로 훈련을 시킨 다음에 어느 정도 들어갔다 나왔다 자꾸 하다보면 정금같이 되면서 이제 존귀한 자로 세우시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시각의 변화가 오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을 보는 시각의 변화가 오고 이 세상의 권세 자들을 보는 시각의 변화가 오고 십계명을 보는 시각의 변화가 온다고 오늘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런 용광로훈련이 올 때마다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시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시고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게 성품이 예수님의 성품으로 이렇게 닮아가는 자기는 모르지만 주변사람들이 이렇게 보도록 예수님의 성품을 가지면 제일먼저 오는 게 평강이 오는 겁니다, 
환경의 폭풍이 부는데 평강이 오는 겁니다, 
이런 훈련 이런 은혜를 바울이 받았기 때문에 로마서를 쓸 수 있었다, 라는 것을 제가 긴 시간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우리교회는 에너지를 다른데 낭비하지 않고 우리가 이렇게 주안에서 주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가 되는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그것은 기적입니다 
왜냐면 저나 여러분들이 이 용광로를 통해서 바울처럼 직접간접으로 많은 훈련을 받아왔기에 지금의 오늘날 이 시각까지 갈수 있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더 시각을 넓히시고 그래서 바울이 강조하는 시각이 넓어진 사람은 모든 사람을 다 안아줄 수가 있고 또 각자가 다른 은사들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주고 다른 사람을 껴안아주는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영적 예배드리는 사람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이런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올 수 있도록 우리의 그릇이 더 넓어지고 높아지고 깊어지고 길어지고 시간이 갈수록 저도 지금 이 나이에 계속 이런 사람이 되려고 주님에게 간구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한참 가야됩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나이가 70-80된 사람보다도 그릇이 더 큰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같이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저희들이 이렇게 고백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기대에 맞는 수직계명과 수평계명을 지키기를 소원합니다, 하지만 저희들이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주님 주님이 귀하게 사용하셨던 1세기 때 바울을 보면서 그분도 엄청난 훈련을 받았던 것을 오늘 상고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사랑 안에 있기에 바울에게 한 것처럼 그보다도 조금 덜하게 하드라도 저희들에게 훈련을 시키고 있으며 앞으로도 시킬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사랑한다는 사랑의 사인이고 존 귀히 여긴다는 주님의 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간절히 간구합니다, 
저희들이 날로. 날로 이 용광로훈련을 통해서 우리의 인격이 예수님의 인격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아픔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가르쳐주신 것이 훨씬 우리에게는 편안합니다, 
주님 우리들에게 쓸데없이 용광로를 허락하지 마옵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말씀 속에서 우리의 성품이 변화되고 그러므로 해서 우리의 시각이 사도바울에게 주셨던 로마제국을 들여다보는 시각 모든 사람이 믿음의 분량이 다르다고 보는 시각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은사가 다르다는 시각 모든 사람은 내가 안아줄 수 있는 시각 나에게 불이익을 주는 사람을 내가 안아주고 용서해줄 수 있는 그러한 시각 이런 시각을 가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 세대에 귀하게 사용 받고 저 세상에서도 우리주님 앞으로 더 존귀함을 받는 복된 자들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ALW3eo5XC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