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현목사 강해설교 녹취록/로마서 강해

44강, 로마서15장1절-7절, 약한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자가 받는 비평,

변명섭 2019. 11. 29. 13:45

로마서강해 44강,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자가 받는 비평 (롬15:1-7) 2015년11월1일 말씀
오늘 말씀은 로마서15장1절부터7절의 말씀입니다,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3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아멘, 
이 말씀을 읽으면 이해가 쉽지가 않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자세히 풀어드리려고 그럽니다, 우리가 지난시간에 제목이 믿음이 연약한 자를 비판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로마서14장 전체를 제가 설명해 드렸습니다, 
설명하는 가운데서 바울이 개종하고 22년 동안 57년에 로마서를 저술할 때까지 수없이 훈련을 받아오면서 이분이 시각의 변화를 경험했던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시각의 변화를 받은 자기의 경험을 로마서12장13장14장에 쓰도록 성령님께서 이분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시각의 변화가 뭐냐면 처음에 12장3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믿음의 분량이 다르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이 다르구나, 
두 번째는 12장6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은사가 서로 다르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나와 다른 믿음이 약한 사람을 안아줄 수 있는 그런 큰 그릇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로 이분이 깨달은 것이 13장1절에서부터7절에 그랬습니다, 네로 왕이고 모든 악한 왕까지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신거로구나 라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아주 큰 그림을 본 겁니다, 
그리고 네 번째로 깨닫는 게 뭐냐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셨는데 예수님께서 그것을 다시 말씀하시기를 제자들에게 십계명에 수직계명이 첫째 되는 계명이라는 겁니다,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큰 계명을 깨닫고 실천하는 자는 자연히 수평계명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수평계명까지 이어져야지만 율법을 완성하는 자라는 겁니다, 
수직계명에 머물려 있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수직에 머물려 있다는 말은 수평계명을 안하면 그 사람은 가짜라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1서4장1절에 요한이 거기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또 요한1서4장20절에도 보면 요한이 그랬습니다, 
수평계명을 안하면서 즉 형제사랑을 하지 않으면서 내가 하나님 사랑한다, 이것은 거짓말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바울이22년 동안 훈련 받으면서 이 부분을 깨달은 겁니다, 그래서 로마서에 정리한 겁니다, 
지난시간에도 제가 말씀드렸지만 이것은 우리가 계속 외워야 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우리가 왜 수평계명을 해야 됩니까 수평계명이라는 것은 예수 안 믿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 사랑하는 겁니다, 왜 수평계명을 해야 되느냐면 일곱 가지 이유를 저희들에게 말씀해 주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다시 한 번 복습합니다, 
첫 번째는 율법을 완성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로마서13장10절에 두 번째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님의 보혈의 대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큰 대가를 지불하고 그분을 구원시켰기 때문에 내가 그분을 미워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미워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겁니다, 세 번째는 로마서12장5절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지체이기 때문에 그렸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머리시고 그러니까 발톱이라도 건드려놓으면 다른 지체들이 불편해하고 예수님 머리도 불편해 하신다는 겁니다, 
네 번째로 우리가 이 세상사는 동안에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믿음의 분량과 관계없이 우리 모두가 지상사명을 해야 되는 동역 자들입니다, 
자기의 수준에 맞추어서 그렇기 때문에 동역 자들 끼리 하나가 되지 않으면 에너지를 낭비합니다, 다섯 번째는 우리는 저 세상에서 영원히 같이 살 사람들입니다, 천국시민들입니다 빌립보서3장20절에 그러니까 내가 저사람 보기 싫은데 천국까지 따라와서 날 속 섞여 이런 말 하면 안 됩니다, 
계속 영원히 같이 살 사람이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같이 잘 살아 주어야 합니다, 여섯 번째로 내가 수평계명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서 저 나라에 올라가면 내 상급이 설정이 되는 겁니다, 
일곱 번째로 우리가 저 나라에 올라가면 가만히 노는 게 아니고 또 창세기1장28절에 하나님의 계획처럼 또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파트너역할을 또 해야 됩니다, 여러 가지 할 일들이 많습니다, 
피조물들을 관리하고 그분들을 섬기고 하는 일을 해야 되는데 영원한 파트너들입니다 저 나라에 올라가서도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하나님의 자녀들끼리 서로 사랑해 주어야 되는 겁니까, 
이 일곱 가지를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들끼리 수평계명을 안하는 사람들을 보면 제가 볼 때는 우둔한사람입니다, 또는 바보입니다 또는 복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수평계명이 이렇게 중요한데 이것을 우리가 잘 못합니다, 
이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딜레마입니다 그러면 제가 한번 여쭈어 보겠습니다, 왜 수평계명을 이렇게 못할까요, 그러면 대답은 간단합니다, 
내가 지금 일곱 가지 부분에서 이런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겁니다, 시각의 변화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시각의 변화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내가 성화되지 않으면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옛 성품 그대로 있으면 쓴 뿌리가 마태복음5장8절에 그랬습니다, 마음이 순수한 사람이 영적 눈이 떠서 시각의 변화가 온다고 그랬습니다,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고 옛 성품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인격의 변화가 오려면 성경공부도 많이 하고 찬양도 많이 부르고 신앙생활 많이 하고 권사도 되고 장로도 되고 선교사도 되고 목사도 되고 다 했는데도 쓴 뿌리 옛 성품 그대로 있으면 성품의 변화가 없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쓴 뿌리가 내 속에 있기 때문에 이런 시각을 가지지를 못하는 겁니다, 
이런 시각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수평계명을 하지를 못하는 겁니다, 
아무리 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겁니다, 왜냐면 시각의 수준이 거기까지 밖에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 교회에서 좋은 직분도 가지고 일도 잘하고 잘 가르치고 기도도 잘하고 찬양도 잘하고 선교도 전도도 잘하는데 성품을 보면 개떡 같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사람 없지만 그런대 보면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의견이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아집이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크리스천들끼리 보면 자기가 모든 것을 자기 잣대로 보는 겁니다, 교회를 볼 때도 모든 사람은 내가 안아주는 것 보다 항상 입을 열면 부정적인 이야기부터 합니다, 그것은 사탄에 잡혀서 그렸습니다, 
그리고는 분리를 야기 시킵니다, 은근히 이간질도 만들고 그러니까 듣는 사람이 혼돈스러워할 때가 있는 겁니다, 
저분이 왜 저러지 하고 특히 믿음이 적은 자들은 실족케 하는 일들을 하는 경우가 없지 않아 있습니다, 왜냐면 자기 잣대가 강하기 때문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신앙배경이 있습니다, 거기에 맞지 않을 때 이런 식으로 나오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직도 내 속에 보이지 않는 쓴 뿌리가 있는 겁니다, 인격의 변화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는 겁니다, 자기주장만 생각하고 사랑은 오래 참고 그러는데 참지를 못하는 겁니다, 이런 분들은 이렇게 해 놓고 나중에 내가 실수했네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것 까지도 안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엠 쏘리(I`m sorry)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가 잘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정서에서 완악하다 그러는 겁니다, 왜냐면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니까 영적소경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주변을 보지 못하는 겁니다, 근시안적인 시각가지고 그러니까 주변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인지를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적감수성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기도도 많이 하고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가지고 목사들을 보면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목사가 또는 선교사가 장로가 권사가 이럴 때 혼돈스러운 겁니다, 제가 이런 것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면서 저분이 10년 전이나5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는 겁니다, 그러면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해야 됩니까, 성품이 안 바뀌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잠정적으로 이렇게 결론을 내려 봅니다, 아하 저분은 그 수준이구나,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 내가 안아 주어야지 그대하지 말고 내가 안아주는 길밖에 없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피해버리자 그러는 겁니다, 
그것도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아예 상대를 하지 않고 피해버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왜냐면 그냥 피해주는 게 더 지혜롭다는 겁니다, 
안 그러면 보면 서로 상처를 받는 겁니다, 그러니까 정답이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안아주자는 겁니다, 그러면 제 스스로가 질문을 하는 겁니다, 
왜 저렇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헌금도 많이 내고 봉사도 많이 하고 좋은 일도 많이 하고 누가 봐도 저사람 대단하다 하는데 왜 성품이 안 바뀔까 왜 사람들이 저 사람을 피할까 왜 인간성이 안 바뀔까 수평관계를 왜 저렇게 잘 못할까 이런 것 때문에 저도 고민을 많이 합니다, 
목회자로써 또는 설교하는 사람으로서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를 내가 해가지고 전해줄까 이것이 제 고민입니다 그러다가 말씀 속에서 항상 고민하다가 나름대로 개달음이 하나있습니다 이것은 은혜의 차원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은혜의 차원으로 밖에 해석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면 목사님 무슨 은혜를 이야기하십니까, 
어떤 은혜를 목사님이 말씀하십니까, 그럴 때 그 은혜에 대한 이야기를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믿음의 분량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을 삶에 실천하는 은혜입니다, 
깨닫는 자체도 은혜지만 그것을 삶에 실천하는 은혜입니다 깨닫는 자체도 은혜지만 그것을 삶에 직접 적용하는 일까지 하는 사람이 은혜 받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깨닫는 것만이 아니고 실천까지 하는 사람이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적으로 깨닫는데 실천을 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죽을 때까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소화해야 됩니까, 
저분이 은혜가 약하고 주님이 주신 은혜가 약하니까 이것이 실천까지 안 갔으니까 어디에 머뭅니까, 주로 NO2까지 머물었던 분으로 생각하면 되는 겁니다, 두 번째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은사가 다르구나, 
라는 것을 깨닫고 이것을 내가 삶에 실천까지 적용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은혜 받은 사람인 겁니다, 그런데 실천까지 가지 않는 사람은 은혜가 없거나 적다라고 해석을 하면 되겠습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로 우리 크리스천들이 믿음의 분량에 따라서 세 가지 종류의 크리스천들로 분류되는구나, 
라는 것을 깨닫고 그다음에 내가 삶에 실천하는 사람이 은혜를 받는 사람인 겁니다, 그러니까 항상 저사람 NO1.NO2.NO3,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그때그때 마다 내가 대입하는 겁니다, 저 사람은 지금 장로지만 목사지만 선교사지만 NO1같은 행동을 한다, 그러면 내가 그냥 안아주는 겁니다, 
내가 그런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비평하거나 이러지 않고 그것을 그냥 안아줄 때 은혜 받은 사람들인 겁니다, 네 번째로 어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용광로를 허락해서 믿음의 분량을 크게 시키신다는 사실을 내가 깨닫고 삶에 실천하는 겁니다, 저분은 사업도 잘 안되고 하면 자꾸 망하고 그런데 이것 때문에 더 겸손해지고 예수 믿는데 뭐가 잘 안됩니다, 
그런데 믿음은 자꾸 자라고 용광로를 경험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것이 저 사람이 복이 없는 게 아니고 진짜 복 있는 사람이라고 보는 그 시각 이런 시각을 우리가 가지는 그 자체도 은혜로 그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은혜 없는 사람은 그대로 보이는 그걸로 그 사람을 내가 해석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은혜 받은 사람들은 어느 수준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NO3사람들입니다 그다음에 다섯 번째로 어떤 하나님의 자녀들은 믿음의 분량이 변화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리해도 변화지 않는데 변화지 않는 채로 저 사람을 그냥 하늘나라에 가겠구나, 저 세상으로 그것을 내가 깨닫고 삶에 적용하는 사람을 그러니까 저 사람은 안 된다 나이가 60이 넘었어도 안 깨집니다, 
옛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러면 내가 그냥 안아주는 겁니다, 
기대하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보면서 그냥 저분은 저 수준으로 있다가 가겠구나, 그걸 내가 안아주는 그 자체가 은혜인 겁니다, 
내가 은혜적인 시각을 가져야지만 그것을 내가 안아줄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은혜가 엄청나게 중요한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이것을 깨닫고 이분은 서신을 쓸 때마다 이분도 수신자들에게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아버지와 그리스도예수의 은혜가 너희들에게 넘쳐나기를 간구한다고 그럽니다, 그러면서 거기에 따라오는 은혜와 평강이 따라오기를 내가 원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편지 끝날 때도 똑같은 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신학사상이 뭐냐면 은혜와 평강사상입니다 그러니까 이 은혜가 있는 사람은 지금 말하는 은혜를 내가 받아가지고 모든 사물을 그렇게 은혜적인 차원에서 보는 사람은 평강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모든 사물은 비평하는 잣대를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가 안아주는 평강이 있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우리 빌립보서1장9절에 항상 말씀하신 게 있습니다, 바울이 여러분 빌립보교인들아 내가 기도한다, 
뭘 기도하는지 아느냐 너희들에게 지식이 총명이 점점풍성해지기를 원한다, 그랬습니다, 은혜를 받아가지고 지식과 분별력아 점점 더 좋아지기를 원한다, 그랬습니다, 우리 골로새서1장9절에도 바울이 똑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점점 자라나기를 그래서 선한 열매 맺기를 간구하노라 그랬습니다, 이런 은혜가 없는 사람은 지식이나 총명이나 지혜나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이런 것들을 듣기는 하는데 이것이 자라나지 못하는 겁니다, 은혜가 그러니까 열매가 없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이런 것을 깨닫고는 그러는 겁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뭔지 아느냐 그러면서 이런 모든 다른 수준의 사람들을 보고는 사랑은 모든 것을 내가 참는 거란다 그러는 겁니다, 
이런 모든 것을 그 수준에 맞추어서 내가 참아주고 그다음에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이 은혜의 원칙을 깨달으면 참을 수가 있습니다, 
또 모든 것을 믿으며 그랬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원칙에 의해서 그분의 뜻 안에서 지금 이렇게 하시는구나, 그것을 믿는 겁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바라며 그랬습니다, 이 시스템이 그대로 저 나라에 가도 그대로 있겠구나, 그러니까 모든 것을 내가 견딜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개떡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도 내가 안아줄 수 있고 그걸로 그냥 껴안아 주고 이해해주고 자라도록 도닥거려주고 말 안 들으면 왜 그래 하지 않고 그냥 주님이 만지도록 놓아두고 그러니까 은혜가 있고 평강이 있게 되는 겁니다, 우리교회공동체 식구들은 이 원칙을 깨닫고 실천하는 그런 은혜 자들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소원입니다 그다음에 은혜에 관한 이야기를 몇 마디 더하면 은혜 이것이 내 자의적으로 내가 노력해서 쟁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라는 것은 프리 기프트입니다, 
무료선물이라는 뜻이 은혜입니다, 이 은혜로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자기 뜻에 따라서 그냥 베푸는 겁니다, 받는 사람의 조건과 무관하게 이걸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일방적인 주권적 섭리에 속하는 영역입니다, 
이분이 주권적으로 어떤 누구에게는 은혜를 덜 베풀고 안 그러면 안 베풀고 하신다는 겁니다, 여기에 보면 바울이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은혜 베풀어서 사랑하는 자 내가 원해서 베푸는 자 내가 불쌍히 여겨서 귀히 쓸 그릇들 멸하기를 준비된 진노의 그릇들 이것도 내가 일부러 하고 그럽니다, 일방적 주권적 섭리를 바울이 깨달은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간구함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분에게 주권적으로 예수님이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다른 기도가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예수님께 마태복음20장15절에 내가 내 것 거지고 내 마음대로 하는데 왜 말이 많느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주권적인 섭리를 이분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합니다, 
내가 이것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하는데 피조물들아 왜 말이 많느냐 이겁니다 이사야에게도 그러는 겁니다, 이사야서55장8절에 내 생각이 너 네 생각과 다르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네 이성가지고 덤벼들지 말라는 겁니다, 
다니엘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니엘서4장35절에 여호와께서 나는 내 뜻대로 내가 행했다는 겁니다, 예레미야에게도 이런 말씀을 여러 번 했는데 그중에 예레미야10장23절에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나니 걸음의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 하나이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것도 내가 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선교지에 다니면서 보면 이것도 여호와께서 예수님께서 강권적으로 이렇게 인도하시구나, 내가 좋아서 가는 게 아니고 내가 싫어서 안가는 게 아니고 강권적인 인도가 있구나, 그래서 예레미야서18장6절에도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여호와의 장중에서 일어난다는 겁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을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겁니다, 
솔로몬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잠언16장9절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하나님이라는 겁니다, 
또는 잠언 16장33절에도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은혜도 내가 원해서 되는 게 아니고 내가 노력했다고 해서 은혜를 바는 게 아니고 이것은 일방적인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라는 것을 고백하고 인정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걸 뒤집어서 말하면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이런 고백을 하도록 만드시는 겁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은 이런 고백을 안 하려고 그러고 인정도 안하려고 그러고 입에 담지도 안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하나님의 자녀인데 NO1스타일의 하나님의 자녀들은 약60-70%의 하나님의 자녀들은 신앙생활 제대로 안하고 선데이 크리스천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그만한 은혜를 끼쳤다고 보는 겁니다, 
그리고 NO2크리스천들은 열심히 신앙생활 하지만 시각이 이 세상에만 가 있는 그저 돈 생각만 하고 이 세상에서 출세하려고 하고 에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이용해가지고 내가 더 잘 살까 그런 기복적인 번영신학을 가진 사람들은 그 수준의 사람들로 우리가 인정해주는 겁니다, 
이 사람들이 20-30%의 사람들이 여기에 속해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NO3사람들은 5-10%의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서11장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나그네 세상이다 주님이 부르시면 나는 항상 떠나야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항상 고백하면서 사는 사름으로 내 고향은 저쪽세상이다 거기 올라가면 상급이 있다 그래서 저 세상에 올라가면 상급에 맞추어서 열심히 주님을 섬겨야 된다고 믿는 저 세상개념을 가진 사람으로 히브리서11장의 개념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분류된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으로 은혜를 베풀어서 이렇게 되었다, 라고 우선 믿는 겁니다, 내가 그것을 수용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NO1사람들은 별로 수용하기를 원하지 않는 겁니다,
NO2사람들은 이것을 수용하기가 쉽지가 않는 겁니다, 
왜냐면 아직도 자기의 의지와 자기의 노력이 거기에 깔려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율법 안에서 자유를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주권적으로 이 정도도로 은혜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주권적으로 진리 안에서 해방한 NO3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해방할 수 있느냐면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시각의 변화를 가진 사람들인 겁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지만 하루아침에 된 게 아니고 22년이라는 훈련을 통해서 날로. 날로 시각의 변화가 발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시각이 넓어지고 시각이 깊어지고 높아지고 길어지는 시각의 크기가 생긴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큰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의 특징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특징은 NO1기독교인들을 보면 그러니까 믿음이 연약한 자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내가 얼마든지 안아 줄 수가 있습니다, 왜냐면 로마서14장13절에 이 사람들도 내 종이다 그랬습니다, 내가 세운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들을 거침돌이 될 만한 면역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을 잘못하면 그냥 넘어진다는 겁니다, 면역력이 없어서 그냥 전염병이 들어 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은 면역력이 약한 분들이니까 잘 보살펴 주어야 되는 사람이 NO3사람들인 겁니다, 그러니까 NO1사람들은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우유만 먹습니다, 고린도전서3장1절2절에 보면 그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들은 영적 분별력도 없고 그냥 하나님의 자녀들인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있는 그대로 그냥 안아주는 이런 지혜를 가지게 되는 겁니다, 세 번째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이게 첫 번째 특징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걸 잘하는 사람을 보면 저분은 은혜 받는 자구나 그런데 그것을 못하면 저분은 세 번째 사람이 아닐 수 있다, 라고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사람들의 두 번째 특징이 있습니다, 
NO2크리스천들 믿음이 어느 정도 있는 크리스천들인데 믿음이 이 세상에서 잘 살기를 원하고 예수님을 잘 믿고 말씀공주도 열심히 하고 은혜  자로써 열심히 하는데 로마서14장4절에 이 사람들도 내 종이라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세웠다 그랬습니다, 이 사람들은 단거리 시각을 가지고 있는 근시안 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 겁니다, 
이 사람들은 NO1기독교인들을 볼 때 로마서14장1절에서12절에 이런 사람들을 업신여긴다는 겁니다, 왜냐면 시각의 차이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NO1사람들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화평을 세우지 못하고 로마서14장19절에 덕을 세우지 못하고 그 사람들을 영적으로 자라나지 못하게 하고 그러니까 NO1사람들이 NO2사람들을 보면 거침돌이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기도 많이 하고 세미나 열심히 다니고 그렇게 아는 게 많고 똑똑하다 그러고 높은 위치에 있는데 성품을 보면 NO1사람들을 우습게 알고 입만 열면 부정적인 이야기하고 그러니까 자 사람 때문에 교회 안 간다고 하는 거침돌 로마서14장15절에 그랬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특징인 겁니다, 
세 번째 분별력을 가지는 특징이 뭐냐면 NO3사람들이 그러는 겁니다, 
NO1사람들이 지금은 믿음이 없고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NO2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내가 전제해주는 그 믿음입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러니까 그것은 주님의 주권아래에 있기 때문에 모르는 겁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겁니다, 
저 사람은 지금은 믿음이 없지만 언젠가는 저 사람이 목사까지 될 수 있고 선교사까지 될 수 있고 바울같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라고 보고서 내가 그런 사람들을 안아주고 위해서 기도까지 해주는 이런 사람이 NO3의 큰 그릇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아래서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이는 그것 가지고 짧은 시각으로 낮은 시각으로 보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큰 시각으로 보는 겁니다, 
NO3사람들의 네 번째 특징은 현재는 저 사람이 기복신앙 번영신학의 NO2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인데 언젠가는 저 사람이 NO3사람으로 될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그렇게 되도록 가르쳐주고 인도해주는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다섯 번째로 NO3사람의 특징은 이것은 내 민족만이 아니고 타민족에게 가서도 이 원칙을 그대로 적용시키기를 가르쳐 주고 자기가 또 적용하는 어떤 사람들은 직접 저쪽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간접적으로 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서 기도해주는 기도의 영역이 커진 겁니다, 기도는 그분의 뜻과 나의 뜻이 맞추는 일을 하는 게 기도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 번째 사람은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된다고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연약한 자는 NO1크리스천들과 NO2크리스천들인 겁니다, 
이런 사람들의 약점을 담당하는 자가 세 번째 믿음의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것을 담당하는데 자기 자신이 기쁘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내 만족을 위해서가 순수하게 이것을 담당하는 사람은 나의 어떤 목적을 위해서 내 만족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고 NO1과 NO2의 사람들이 영적으로 자라나도록 NO1에서 NO2로 NO2에서 NO3로 자라나도록 하기 위해서 이분들에게 지식을 부어주고 총명을 부어주고 지혜를 부어주고 하나님을 아는 뜻을 부어주셔서 이분들이 듣기만 하지 이것을 열매 맺어서 잘 자라나도록 이끄는 일, 여기 까지 가주는 사람이 NO3의 지혜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지혜 있는 사람이 되려면 여러분들에게 말씀의 지식도 계속 가르쳐주어야 되고 분별을 가르쳐야 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 삼위일체론 기독론 이런 것을 제가 열심히 여러분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 이것이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여러분들이 자라나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속에서 우리가 풀리지 않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 문제가 뭐냐면 이런 NO3,사람들이 이렇게 하는데 따라 오는 게 하나 있다는 겁니다, 
비방이 따라 온다는 겁니다, 3절에 보면 비방이 따라오는데 15장3절에 보시면 예수님 이야기로 갑자기 들어가면서 그럽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니 하셨나니, 그러니까 예수님의 만족을 위해서 믿음이 역한 자들의 약점을 담당하지 않고 왜냐면 기록된바 라는 것은 구약의 기록된 바로 시편22편과 시편69편을 인용하는 겁니다,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네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니까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선한 일을 하셨는데 믿음이 약한 자들을 더 발전시키는 선한 역할을 예수님이 하셨는데 예수님이 비방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받은 비방이 나에게도 임해 왔다다는 겁니다, 이것이 그대로 2000년 동안 기독교교회사에서 세 번째 사람이 비방을 받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좋은 일을 하는데 NO1.NO2.NO3크리스천들을 잘 자라도록 하는데 거기에 꼭 비방이 따라온다는 겁니다, 
비방이라는 것은 욕을 한다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기록된 바는 시편22편과 시편69편도 메시아닉 차트입니다 이사야53장도 메시아닉 차트입니다 시편22편과 69편은 다윗이 썼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자기 자신을 보면서 이 고통을 경험하면서 썼습니다, 다윗이 예수님오시기1000년 전 분이십니다, 
다윗이 그러니까 예수님의 표상이라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경험한 그대로 나중에 예수님께 전위되었습니다, 
똑같이 미리 예수님이 다윗에게 예수님이 장차 받을 고통을 다윗이 경험하게 한 겁니다, 그래서 다윗이 자기가 경험한 것을 글로 쓴 겁니다, 
그러면서 다윗이 받은 고통을 시편22년1절에 보면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6절에 다윗이 환상을 보니까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7절과 8절에 다윗이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겁니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조롱받은 내용을 다윗이 이렇게 쓴 겁니다, 
그러니까 다윗 스스로가 이것을 경험한 겁니다, 다윗이 얼마나 순수했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을 닮은 대표적인 분이 다윗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이렇게 착한 분이 이런 어려움을 당하는 모습을 또 어려움을 당했던 경험을 쓴 겁니다, 그리고 시편69편을 봐도 똑같습니다, 
시편69편1절과7절에 그랬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 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에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2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3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나의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나의 눈이 쇠하였나이다 4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 
5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나의 죄가 주 앞에서 숨김이 없나이다 이분이 지금 이렇게 겸손해지는 겁니다, 
6 주 만군의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들이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가 나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7 내가 주를 위하여 비방을 받았사오니 수치가 나의 얼굴에 덮였나이다 이렇게 보면 다윗이라는 이 사람은 가장 예수님과 열람된 사람이고 심중이 가장 깨끗한 사람인데 이런 비난을 받는 사람으로 전락이 된 사람으로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여기에 의문이 있는 겁니다, 
다윗이 시편22편이나 69편을 쓸 때 왜 이런 어려움을 당했는지 아십니까, 다윗이 밧세바 사건 때문에 그런 겁니다, 
밧세바 사건을 통해서 그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를 훈련시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기한 게 이 사건 때문에 하나님이 다윗이 이런 경험을 하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겁니다, 그러면 이것이 예정론입니까, 안 그러면 다윗이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고통을 경험할 것인가 이것도 우리가 고민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면 의문이 풀리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다윗을 보면 다윗의 와이프가 여덟 명입니다, 
다윗의 와이프가 여덟 명이었는데 여덟 명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기록된 숫자만 2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처가 밧세바입니다, 
밧세바의 몸에서 나온 아들이 네 명이 역대상3장5절에 보면 첫째 아들이 스무아 둘째 아들에 소밥 셋째아들이 나단 넷째아들이 솔로몬입니다, 
이렇게 네 아들이 있는데 솔로몬이 그중에 제일 막내아들입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은 20명의 아들 중에서 제일 막내아들입니다, 
그리고 좋은 방법에 의해서 태어난 아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신기한 게 마태복음1장6절에 보면 예수님의 족보에서 예수님의 육신의 아들이 누굽니까, 요셉입니다 요셉이 누구의 후손이냐면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후손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3장31절에 보면 다윗의 세 번째 아들 나단을 통해서 나온 사람이 마리아의 아버지 엘리입니다 
그러니까 요셉과 마리아의 선조가 솔로몬과 나단입니다 
밧세바의 세 번째 네 번째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밧세바를 통해서 나온 아들이 예수님의 족보와 연결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면 이것이 우연입니까, 
저는 절대로 우연으로 안 보는 겁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겁탈한 것이 우연입니까 제 생각에는 아닌 겁니다, 
이것이 주님이 계획하신 겁니다, 이미 창세전에 계획하신 겁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통해서 다윗이 낮아지고 다윗이 겸손해지고 이걸 통해서 압살롬이라는 아들을 세우서 다윗을 핍박하게 하고 그 핍박을 받으면서 지금 시편22편과 69편을 기록하게 하면서 기록내용이 누구냐면 이것이 예수그리스도가 오셔서 받을 고통 내용 그대로 인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큰 주권 속에서 이것을 지금 움직이고 계신 겁니다, 이 시각을 볼 수 있는 것은 NO2크리스천의 시각으로 이게 잘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NO1기독교인들은 이것이 소화가 안 되는 겁니다, 
NO3크리스천인 들이 되어서 큰 그림을 볼 때 이것이 소화가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나 우리 모두가 우리 삶을 들여다 볼 때 여러 가지 이런 경험을 하고 실수를 할 때 주님이 나를 훈련시키고 겸손하게 하려고 하지 않았나, 라고 인정을 해야 합니다, 다윗이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예수님이 비방 받는 것이 이미 성경에 기록되었다는 것이 1000년 전에 다윗을 통해서 기록한 시편22편과 69편에 기록한 다음에 예수님이 오셔가지고 다윗이 경험한 것을 그대로 경험한 겁니다, 그래서 오늘 분문에서 예수그리스도가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시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구원받기를 예정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 그들이 덕을 받기 위해서 그들이 영적으로 자라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비방을 받으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목적이 뭡니까 연약한 자들이 자라나기위해서 NO1기도교인들이 NO2다 되고NO2가NO3 가 되고 이렇게 자라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도 비방을 받으셨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에게 그러는 겁니다, 
바울아 너가 이 법칙 이 구조 속에 들어와서 너도 비방을 받아 왔지 않느냐 개종해서부터 22년 동안 비방을 받아 온 것이 왜냐면 다윗이 이것을 경험 하였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예수님이 경험했고 현재 교회시대에서 여러분들도 경험해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NO3가 되려면 그러니까 예수님의 법칙 구조가 있는 겁니다, 이 구조 속에 다윗과 예수님의 구조 예수님과 바울의 구조 세 번째 사람이 되기 위해서 NO1에서 NO2로 성장하고 NO2에서 NO3로 성장하고 하는 이 구조가 있는 겁니다, 바울도 이 구조 속에서 이분이 22년 동안 고통을 당했습니다, 바울이 22년 동안 고통을 당할 때 무슨 이유로 고통을 당했습니까, 무슨 이유로 바울을 고통 속으로 넣었습니까, 
이게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냥 막연히 고통 준 게 아닙니다, 
바울이 전했던 예수님의 정체성 때문에 내가 고통을 당할 때 막연히 고통당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바울이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왕 중의 왕이다 그리스도다 메시아다 부활하셨다 승천하셨다 재림해 오신다, 
이 기독론 이것을 바울이 외치니까 여기에 대해서 반발하는 사람들이 나왔던 겁니다, 예수님 이름 때문에 고통을 당하시고 비방을 당한 겁니다, 이분이 개인적인 인격적으로 나쁜 점 실수나 잘못이나 비성서적인 성품 때문에 고통당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전하는 메시지 때문에 고통을 당하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겁니다, 바울도 로마서 집필을 끝내시고는 이분이 미리 다 알았습니다, 예수님 이름 때문에 앞으로 계속 비방을 당하겠구나, 
로마서 집필이 끝나자말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유대인 지도자들 공회원들에게 예수님 이야기를 하다가 고통을 당하신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이야기하다가 고통당해야지 나의 어떤 성품문제 내가 말 잘 못한 점, 내가 행동 잘못한 것 때문에 고통당하면 그것은 아닌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예수님의 정체성을 외치다가 고통을 당하고 이분이 자기가 로마까지 가야된다는 것을 알고 로마까지 갔습니다, 로마에 가서도 가택연금 당하면서 고통 속에서 옥중서신을 4권이나 썼습니다, 이분이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스페인까지 가야된다며 그러면서 앞으로 고통을 더 당해야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정체성을 전하기 위해서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스페인까지 갈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로마감옥에 갈 것이다 
참수당할 것을 다 아셨습니다, 그러니까 1차 감옥에 계셨을 때 빌립보교인들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빌립보3장13절14절에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비전이 뚜렷했던 겁니다, 
나는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난다, 그러면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라고 빌립보서3장20절에 그랬습니다, 
지금은 내가 비방 받아서 여기에 있지만 나는 계속해서 간다는 겁니다, 
나중에 순교직전에 디모데후서를 디모데에게 쓰면서 디모데에게 말했습니다, 디모데후서4장6절에서8절에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다는 것을 아시는 겁니다, 그리고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는 겁니다, 
저쪽 세상에 가야 된다는 이 믿음을 항상 지키면서 내가 이렇게 주님을 섬겨왔다는 겁니다, 이 믿음을 지켰으니 의의 면류관이 자를 기다리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NO3기독교인들은 과거 2000년 동안 바울이 가졌던 이 믿음을 가졌고 그리고 비방이 항상 따라 왔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명해지고 예수님 복음 때문에 대접받고 돈도 많이 벌고 이러면 세 번째 사람의 DNA가 아닌 겁니다, 지금도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많은 선교사들이나 목회자들이나 또는 평신도들이 세 번째 기독교인으로 비방 받아 가면서 외로워지고 돈도 별로 없고 어려운 가운데서 저쪽 세계만 바라보면서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영적분별력으로 가지고 그런 사람들을 볼 줄 알아야 되고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뒤에서 도와주어야 되는 겁니다, 친구가 되어주고 유명한 사람 따라다니는 게 아닙니다, 
세 번째 사람들은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15장4절에 그랬습니다, 
너희들이 이런 비방 속에서 어떻게 하느냐면 인내하는 자가 되고 이 비방을 계속 받으면서 그다음 거기서 안위함을 받는 안위라는 것은 격려라는 뜻입니다 비방 속에서 그냥 막연히 참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저 세계가 보이니까 격려도 받고 소망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세 단어를 썼습니다, 인내와 안위와 소망입니다 
이게 무슨 믿음입니까, 히브리서11장의 믿음입니다, 이 비방을 받을 때 마다 내가 이 세상에서 나그네구나 내 본향이 저기구나 상급이 저기 있겠구나, 
이것을 항상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 세 번째 크리스천들에게 이런 비방을 허락하신 겁니다, 이게 복된 사람입니다 제가 결론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이 부분을 정리했으면 좋겠습니다, NO2크리스천들과 NO3크리스천들이 비방과의 관계 속에서 차이점이 있습니다, NO2크리스천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을 좋아하는 크리스천들 번영신학 기복신학 열심히 전도하고 구제하고 이런 사람들 착한 일 많이 하는 사람들이 첫째 칭찬받기를 좋아합니다, 
존경받기를 좋아하고 인정받기를 좋아하고 왜냐면 눈이 이 세상에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복 받기를 좋아하고 만사형통해 주시는 하나님께 할례루야 하면서 감사하고 그리고 더 많이 달라고 요구하고 그래서 이 세상에서 행복해지기를 간구하는 사람들 기도 열심히 하면 소원 성취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다, 그러니까 항상 감사하라 왜냐면 자꾸 주시니까 그다음에 핍박이 없다 항상 좋은 일만 생긴다, 
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NO2사람들입니다 
그런데 NO3사람들은 착한 일 많이 하는데 계속 핍박이 오는 겁니다, 
기도도 많이 하고 헌금도 많이 내고 여러 가지 좋은 일 많이 하는데 이 세상 사람들이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겁니다, 
제자들에게도 예수님이 요한복음15장18절19절에 그랬습니다, 
이 세상이 너희들을 미워한다, 그랬습니다, 좋은 일만 하는데 왠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이 마태복음5장11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복 있는 자는 이렇게 팔복의 사람이 되었는데도 사람들이 너희들이 내 이름 때문에 미음을 받는 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동성애 문제 때문에 바른 말 하면 미움 받는 세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 예수님 밖에 구원이 없다, 
라고 말하고 기독교는 타종교와 다르다고 말하면 미움 받는 세대에 살고 있는 겁니다, 이런 것을 외치지 않는 사람들은 두 번째 사람들이고 외치는 사람들이 세 번째 사람인데 이 사람들은 미움을 받는다는 겁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말세의 징조 중의 하나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24장9절에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는 겁니다, 복음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예수님의 정체성 때문에 미움 받는 다는 겁니다, 그리니까 예수님의 정체성을 희석시키거나 그것을 변질시키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미움을 받아야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미움 받게끔 되어 있다는 겁니다, 
특히 예수님의 재림 전에는 미움을 받을 만한 여건들을 많이 제공하여 주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자유세계에 사는 크리스천들은 미움 받아야 하는 겁니다, 요즘 한국 사람들이 기독교를 개 독교라고 하는데 우리가 예수님의 정체성을 전하고는 개 독교소리를 들으면 괜찮지만 성품이 나빠서 개 독교소리 들으면 그것은 아니잖아요, 우리가 지금 섬기는 이슬람나라의 지하교회 사람들 그 사람들이 왜 어려움을 당하고 비방을 당합니까, 
예수님 이름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도와야 됩니다, 
메시아닉 쥬들 왜 어려움 당합니까,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북한에 있는 우리 동포들 그분들도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그렸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중보해주고 이런 사람들은 저쪽에 올라가면 상당히 상급을 많이 받을 사람들인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을 섬기는 자체가 우리에게는 복인 겁니다, 
이곳에서 우리가 편하게 있으니까 저쪽 동네 사람들을 강 건너 간 사람으로 보이는 그런 시각을 가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높은 사람들은 저쪽에 계시구나, 내가 저쪽 저 사람들과 같아 졌으면 좋겠다는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 때문에 미움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주님 저에게 예수님의 정체성 때문에 비방 받는 사람들을 저에게 붙여주세요, 제가 이분들을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그분들의 친구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공동체가 이런 사람들의 친구가 되게 만들어 주세요, 우리 멤버들이 이런데 눈이 떠지게 해주세요, 
그래서 우리 교회공동체는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내가 달려갈 길을 다녀가고 내가 믿음을 지켜서 나중에 주님이 주시는 상을 받는 이런 믿음의 소유자들이 다 되게끔 주님 우리 멤버들에게 복 내려주세요 라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언제까지 이 세상에 살게 할지 모르겠지만 항상 바울처럼 저 세상을 생각하면서 이 세상에서 무의도식하면서 노는 게 아니고 이 세상에서 열심히 할 일들을 하면서 우리의 시각은 항상 저세상에 가 있는 이런 사람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오늘 바울의 로마서 마지막부분 바울에게 하신 말씀 우리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잘 관리해주고 이분들을 사랑해주고 이분들이 주안에서 자라도록 NO1의 사람들을 NO2로 NO2가 NO3로 자라도록 잘 가이드해주는 일을 한다고 말씀하셨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니고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핍박이 따라 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것을 계획하시고 다윗을 통해서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바울의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시고 과거 2000년 교회시대에 많은 바울의 제자들이 이것을 경험해 왔습니다, 
오늘날 저희들도 이것을 경험하고 있는데 바로 기름 부은 우리 모두다 이 경험을 하는 복된 자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gImjHaiWg5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