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9장-11장 강해

4강. 로마서10장1절-4절, 예정된 유대인의 불순종

변명섭 2024. 12. 12. 17:51

로마서9장-11장 강해
4강. 예정된 유대인의 불순종(롬10:1-4)
로마서10장1절에서4절까지만 같이 읽겠습니다.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아멘. 
로마서10장을 다 읽어도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읽을 필요가 없는데 제가 설교를 하면서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은혜가 많이 넘치기를 주님께 제가 간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정된 유대인의 불순종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전에 전한 말씀이 토기장이의주권이라는 말
씀을 제가 전했습니다. 토기장이의 주권에 대해서 제가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이 사상이 대단히 중요한 기독교의 사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한번 듣고서 말아버리는 그러한 말씀이 아닙니다.
토기장이의 주권을 말씀하실 때 사도바울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칼빈주의적 예정론 적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그 안에 알미니안주의적인 신학사상이 숨겨져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칼빈주의적 예정론은 어떻게 말씀하였냐면 로마서9장에서 하나님은 토기장이의 비유로써 사도바울에게 하신 말씀이 이렇습니다.
뭐라고 그랬냐면 토기장이가 귀히 쓸 그릇(긍휼의 그릇)을 만들었고 또 토기장이가 반대로 천히 쓸 그릇(진노의 그릇) 이렇게 두 가지의 그릇을 만드셨다 그랬습니다. 귀히 쓸 그릇(긍휼의 그릇)을 하나님의 자녀들로 예정된 사람들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구원이 없는 마귀의 자녀들을 천히 쓸 그릇(진노의 그릇)으로 표현했습니다. 숫자를 보면 하나님의 자녀가 창조부터시작해서 지금까지 전체인류의3분지1입니다 소수입니다 나머지3분지2가 진노의 자녀들로 성경에는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걸 보면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인류에 관한 창조하실 때 하님의 비밀이 여기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긍휼의 그릇 안에도 하나님이 또 예정된 두 가지의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긍휼의 그릇 안에 첫째 유대인이 있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자녀들입니다 두 번째로 이방인이 있는 겁니다.
이렇게 둘로 갈라지는 겁니다. 그런데 유대인 안에도 또 두 가지 그룹이 있는 겁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해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소수의 그룹들이 있고 나머지 그룹들은 예수가 누군지 모르고 눈을 감는 그러한 그룹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그룹들 중에 구약 속에서 이런 사람들을 뭐라고 그랬냐면 예수가 누군지는 분명히 몰랐지만 하나님이 불려서 쓰는 분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 소 그룹들이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또는 선지자들이나 기타 등등 하나님이 특별히 사용했던 사람들을 남은 자 영어로 렘넌트(remnant)라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한 그룹이 있으면 그 속에 소수의 하나님이 특별히 쓰시는 남은 자 그룹들이 있다는 겁니다. 
신약에 와서도 많은 유대인들이 있었지만 그중에 소위 말하는 열두제자들 또70인들 또120문도들 이런 식으로 소수의 남은 자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도 여기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겁니다. 
어떻게 이렇게 소수만 예수님에 대해서 눈을 뜹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제가 다음시간에 말씀드리지만 11장에 가서 남은 자들이라는 겁니다. 너도 하나님의 은혜로 남은 자 대열에 속해있다는 겁니다. 
바울이 그것을 깨달은 겁니다.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한국을 예를 들면 한국에 교회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많지만 소수와 다수와 두 그룹으로 나누어집니다. 소수의 남은 자들이 있고 그다음에 다수의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는 겁니다. 여러분과 저는 어느 그룹에 속하려고 여기 앉아있는 겁니까?
소수그룹에 속하려고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유명해지거나 커지거나 이렇게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아! 저 사람 성공했다 이런 눈으로 보면 안 됩니다. 세상눈으로 볼 때 커졌다 성공했다 그러면 어떤 그룹 속에 속할 것 같습니까? 다수에 속합니다. 그게 기독교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항상 소수의 사람들은 외롭고 어디가든지 핍박의 대상이 되고 그렇지만 신실한 사람 뜻을 이루십니다. 그게 참으로 묘합니다. 
똑같이 제가 기독교인들 중에서 유대인이라는 한 그룹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방인이라는 그룹이 있습니다. 이방인 속에도 둘로 나눈다고 제가 말씀했습니다. 어떻게 나눕니까? 다수의 크리스천들과 소수의 헌신된 크리스천들이 이방인 속에 있습니다. 그분들을 헌신 자 또는 제자들 또는 남은 자들 또는 지혜로운 자들 여러 가지 표현으로 소수의 사람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갈라진다는 겁니다. 
사람들도 기독교인과 비 기독교인들도 이렇게 두 가지로 갈라진다는 겁니다. 
이렇게 갈라지니까 사도바울이 가지고 있는 의문점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 때문에 뭐냐면 하나님이 불공평하지 않으시냐는 겁니다.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마음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을 하나님을 모르게 만들고 소수만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고 그러면 우리가 마음대로 죄를 지어도 괜찮습니까? 이미 다 정해놓은 건데 그러니까 하는 말씀이 왜 하나님께 힐문하느뇨.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힐문이라는 말은 대꾸질하느냐 토기장이가 하고 싶어서 하는데 왜 말이 많으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지난시간에 이야기입니다 왜냐면 이게 전체로 같이 흘려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10장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10장에 바울이 뭐라고 그랬냐면 그렇지만 이스라엘사람들은 다 구원해주십시오. 그러면서1절에 말씀하시는 겁니다. 뭐냐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사도바울의 마음은 하나님이 이렇게 인간을 두 그룹으로 나누지만 그렇지만 하나님 좀 봐주십시오.
우리민족을 눈 뜨고 예수님이 누구라는 것을 알게 좀 봐주십시오.
왜냐면 이분이 1차2차3차 선교 여행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면서 이스라엘사람들 아주 소수만 복음을 듣고 예수그리스도를 인정하는 걸 보고 이분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왜 유대인들은 이렇게 안 됩니까? 눈 좀 뜨게 해주십시오.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성령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들은 겁니다.
2절을 보세요.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예를 들면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뽑아놓은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의도적으로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모르게 눈을 감겨놓았다는 겁니다. 눈을 의도적으로 감겨놓았기 때문에 이분들은 열심은 있다는 겁니다. 구약에 대한 여러 가지 의식과 법도와 규례와 계명에 대한 열심은 있는데 그런데 예수님을 초점을 맞추어서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구약에 나오는 기독교에 대한 모든 것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지식이 없다는 겁니다.
예수님에 관한 지식입니다 다른 지식이 아니고 예수님에 관한 지식이 없다는 겁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예정해놓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서 소수만 지식이 있고 나머지는 예수에 관한 지식이 초점이 흐려져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신약에 와서도 그대로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분들은 매일 새벽기도를 합니다.
금요철야도 잘 하고 교회봉사도 잘하고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을 유심히 보면 예수님에 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열심은 있는데 다시 말하면 복음에 핵심을 모릅니다. 
그리고 열심만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주위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러니까 열매가 없는 겁니다. 그것도 저희들이 이런 눈으로 볼 때 저분은 어느 그룹에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까? 이쪽 다수 그룹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더 많습니다 우리한국교회도 이렇게 보면 참으로 열심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하는 민족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보면 열매가 맺혀있지 않습니다. 이걸 보면 이것도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쓰시려고 하시구나. 크리스천으로써 열매가 맺어지지 않습니다.
이 안에도 보면 아주 소수만 있습니다. 우리나라교회도 보면 정말 예수님에 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예수님의 본래 뜻이 무엇인가? 
주님의 뜻은 우리가 성령 충만해서 예수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겁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그런 사람을 통해서 주님이 누구인가를 나가서 전하는 사람들 우리가 팔복에 관한 이야기도 했잖습니까? 
이런 팔복의 사람이 되어 가지고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이 말씀을 주님이 언제 말씀하였냐면 성만찬 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 다음 날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리고3일 있다가 다시 부활하시고 부활하신 다음에40일 동안 뭘 말씀하였냐면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내가 누구인지 나가서 전해라는 겁니다.
어떤 것이 먼저 옵니까? 나가서 전하는 것이 먼저입니까? 아닙니다.
주님이 목요일에 먼저 너희들은 예수그리스도 나의 모습을 닮아서 서로 사랑해주고 사랑은 고린도전서23장 갈라디아서5장22절에 나오는 모든 열매 이런 사람이 된 다음에 나가서 전해라는 겁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기 전에 나가서 전하기만 하니까 문제가 야기되는 겁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지식이 있으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식이 있는 사람이 소수라는 겁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로마서10장에 무슨 말씀을 하느냐면 유대인들아 너희들이 다 내 백성이지만 그중에 소수만 예수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알게 되고 예수를 믿는 의를 가지게 된다는 겁니다. 소수만 이것이 하나님의 예정이라는 겁니다. 그래서6절부터 주욱 말씀하신 것이 이랬습니다. 
소수만 예수가 누군지를 깨닫고 다수는 눈이 감기기 때문에 너희들이 예수 믿는 것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하다는 겁니다. 6절부터 주욱 보면 뭐냐면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이 예정해가지고 예수님을 믿도록 눈을 뜨게 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에게 말씀하였습니다.
성령님이 이러는 겁니다. 너희들 예수를 만나려 하늘에 올라가려고 그러느냐 올라갈 필요도 없다는 겁니다. 예수님의만나려 음부에 내려가려고 그러느냐 내려갈 필요도 없다는 겁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바로 이 앞에 와서 계시다는 겁니다. 그래서 가까이와계시기 때문에 너희들은 이 말 한마디만 하면 예수 믿는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바로 앞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정한 사람은 입만 열고 예수님! 하면 예수 믿는 다는 겁니다. 구약에 유대인들 특히 신약에 와서1세기 유대인들이 그렇게 쉽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소수고 그리고 대부분은 구약에 관한 것을 다 외우고 구약에 나오는 모든 법도를 지켜도 예수님이 누군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심히 많이 해도 또 어떤 때는 정말 하나님께 잘하려고 의를 행해도 예수그리스도의 깊은 주님의 뜻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하나님이 예정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신학적으로 볼 때 목사님 어떻데 된 겁니까?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게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소수유대인들만 눈을 뜨고 다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보느냐면 부딪치는 돌로 거치는 반석으로 밖에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는 겁니다. 예수님만 보면 마음이 불편한 겁니다. 예수님만 보면 거치는 반석입니다 죄만 더 짓게 됩니다. 이렇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보면 유대인들을 딱 보시고는 유대인들 중에 대부분은 다 그런 사람들로 만들어놓고 소수만 그렇지 않다고 제가 자꾸 강조합니다.
그래서 이분들은 이미 예수님에 대한 메시아관이 그분들의 문화 속에서나 사회적인 관습 속에서 메시아 관을 예수님을 똑바로 보지 못하게끔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를 들면 이분들은 메시아를 귀족이나 또는 왕으로 오신다고 믿고 있는 겁니다. 귀족출신으로 그런데 예수님은 거꾸로 목수출신으로 하층계급으로 특히 유대지방이 아니고 하층계급이 사는 갈릴리지방에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은 예수님이 내가 메시아다 하니까 도저히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니라는 겁니다.
어떻게 메시아가 그렇게 올 수 있느냐 아니라는 겁니다.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끔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그분들의 문화와 정치 사회 안에서 거꾸로 이해를 못하도록 만들어 놓아버린 겁니다.
그렇게 되니까 예수님이 나중에 나와서 내가 메시아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렇게 나오니까 이분들의 사고에서는 저 사람이 하나님이름을 망령되이 한다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여 버린 겁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이분들이 더 완악한 사람들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아주 완악하게 만든다고 예언해놓았습니다
그냥 완악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죽이는 자들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소수는 그기에 대해서 안타까워 하고 소수을 하나님의 사랑 안에 주고는 그 소수들이 열두제자들 70인 나중에 120문도 그리고 이분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그다음에 디아스포라유대인들에게 복음이 넘어 갔잖습니까?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왜 디아스포라를 만들었냐면 복음이 이방인에게 넘어 가기위해서 하나의 다리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디아스포라유대인들입니다 그래서 이미 바벨론 때부터 유대인들을 바깥으로 흩트려버린 겁니다. 
그래서 거기서 태어나게 하고 그 민족들과 살게 함으로써 이방사람들과 교제케 하며 우리 같으면 이민나간 사람들이 마찬가지입니다 
디아스포라 중에 바나바나 바울이나 이런 사람들이 나온 겁니다.
복음이 디아스포라에게 넘어가가지고 디아스포라가 이방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다리역할을 한 겁니다. 그래서 이방사람들이 복음을 받게 되니까 하나님께서는 주후70년에 이스라엘나라를 완전히 멸망해버리시고 이스라엘사람들 전부 유럽으로 또는 중동지방으로 흩트려버린 겁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일부로 모르게 된 겁니다. 그래가지고 그때부터 이방사람들이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이방인의 숫자를 채우기 시작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그 숫자가 차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11장25절부터 보면 이방인의 숫자가 다 차갈 때에 유대인의 눈이 떠지면서 다시 그분들이 예수님을 알게 된다는 그 말씀 기억나시죠. 유대인들이 그 후부터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핍박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주후70년에 제가 지금 말하는 순서대로 외워주시기를 바랍니다.
주후70년에 이분들이 핍박을 당해서 나라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는 완전히 예수님을 모르고 그다음에 이분들은 구라파에 전전긍긍하면서 방랑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분들은 눈은 감겨져있지만 그냥 여호와 구약의 하나님을 알고 있으면서 살고 있었는데 그와 동시에 구라파에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으면서 기독교인들이 점점 많이 나오게 되면서 313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로마제국이 복음화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했습니다. 그리고는 590년에 로마가톨릭 첫 교황이 임명된 겁니다. 그분이름이 그레고리1세입니다
그것이 첫 로마가톨릭시작입니다 그것을 유럽역사에서는 중세의 시작이라 그럽니다. 그리고는 중세가 언제까지냐면 종교개혁이 있었던1517년까지 천년 동안을 중세라 그럽니다. 이때 로마가톨릭의 신학적인 백그라운드는 누구에 의해서 설정되었냐면 유명한 성 어그스틴입니다 어그스틴이 약5세기 때 사람인데 이분이 가톨릭신학을 정립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 어그스틴이 지금까지 가톨릭신학사상의 기조를 이루는 사람으로 존경 받고 있는데 그 뒤에 약12세기13세기에 와서는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사람이 그 뒤를 이어서 다른 신학으로 났지만 제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냐면 이 사람들이 어그스틴 같은 사람은 유대인에 관한 사상이 어땠느냐면 유대인은 저주받은 민족이다 왜냐면 예수님을 핍박했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였던 민족이다 
이렇게 까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을 엔타이세미티즘(anti-Semitism)이라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이방인들이 믿었던 기독교가 반유대주의사상으로 신학을 정립했습니다. 그래서 이것도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구라파에서 구라파가 그 후에 기독교가 된 대륙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발을 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면 저주받은 민족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이분들은 엄청난 어려움을 자초하면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이런 어려움가운데서 주후1200년부터1400년까지200년 동안 소위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무슬림사람들을 침공하기 위해서 중동을 내려갔고 그와 동시에 유대교인들을 핍박하기위해서 구라파가 중동으로 진격해 내려갔습니다. 그것이 십자군전쟁입니다 오늘날 미국이 기독교국가로 이슬람과 싸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신문에도 이런 말을 합니다.
제2의 십자군전쟁을 지금 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이런 양상이 그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군전쟁 때 엄청난 이스라엘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핍박을 당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유대인들이 기독교인에 대한 반감을 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 로마가톨릭의 교황이 이스라엘나라에 가서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습니다. 십자군전쟁 때 우리들이 한 죄를 용서해달라고 그와 동시에 무슬림도 그 당시에 십자군전쟁 때 핍박에 의해서 상당한 상처를 입어서 기독교와 무슬림이 원수지간이 된 것이 십자군전쟁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 전에는 무슬림들이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별로 심하지 않았는데 그 후부터 기독교에 대해서 반감을 강하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제가 볼 때는 다 하나님의 예정 같습니다. 
이렇게 구라파 가톨릭사람들이 이스라엘사람들을 핍박을 했는데 이런  핍박 가운데서도 이분들이 그 안에서 잘 견뎌나갔습니다 
그중에 소수는 하도 핍박이 어려우니까 너희들이 유대인에서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면 핍박을 면해준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개종한 사실도 있습니다.
특히 스페인이나 프랑스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가톨릭으로 개종을 했습니다.
그런 일도 있은 후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부터 루터가 만든 루터교나 칼빈의 사상을 가지고 만든 장로교 또는 감리교 또는 영국성공회 이런 모든 종교개혁을 한 분들이 가톨릭에서 나온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사상이 어땠느냐면 반유대사상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배운 게 그것이니까 똑같았습니다. 그러니까 개신교도 완전히 반유대사상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유대인들은 갈 곳이 없었던 겁니다.
20세기 초2차 전쟁 때 보세요. 기독교국가인 독일과 그 주변국이 어떻게 했습니까? 이태리도 그 당시에 똑같이 2차 전쟁 때 같은 편이었지만 그분들이 유대인들을 학살했잖습니까? 몇 명을 죽였습니까? 6백만 명을 죽였습니다. 
그 당시에 유대인들이 2천만 명이었는데 6백만 명을 죽어서1400만 명으로 줄어들어서 지금도1400만 명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고 유대인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것 때문에 결론적으로 근2천년 동안 엄청난 어려움을 당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그사이에 뭘 했느냐면 이방인들 복음화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사이에 그러다가 이방인숫자가 어느 정도 차게 되니까 그때부터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눈을 뜨게끔 만드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눈을 뜨게 된다는 것은 뭘 말합니까? 세계복음화가 그의 끝나간다는 소리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세계복음화로 이방인의 숫자가 차고 그리고 유대인들이 눈을 뜨게 되고 이러면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분명히 신명기에도 말했습니다. 모세에게 말하기를 이 미련한 백성들 다시 말하면 이방인들입니다 신명기32장21절에서 이 미련한 백성들이 눈을 뜨는 것을 보면 나중에 노여움을 사가지고 지금21세기에 들어와서 유대인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가지고 사도바울과 똑같이 왜 우리민족을 과거2천년 동안 이렇게 만들어놓았습니까? 우리민족 속에 예수님이 나왔고 우리민족은 정말 구약에서 예수님초림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우리민족이 희생을 많이 했는데 왜 우리민족을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왜 우리민족을 장님으로 만들었습니까? 그런데 구약에서 지금 모세에게도 말씀하셨지만 이사야에게도 미리 다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65장1절과2절에 오늘날 로마서10장20절 말씀을 인용하는 겁니다. 뭐라고 인용하느냐면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게 말했잖느냐 예수님오기700년 전에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바가 되고 유대인들이 아니고 이방인들입니다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다시 말하면 이방인들에게 나타났도다. 그런데 21절에 그러는 겁니다.
이스라엘에 대하여 내가 말해주겠다 너희들이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뭐냐면 너희들 나에게 순종하지 않았지만 내가 너희들을 손을 벌려서 사랑해주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때가 되면 너희들이 눈을 뜨게 된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이 
19세기부터 다시 말하면1800년대부터 시작해서 유대인들이 눈을 뜨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중에서도 개신교사람들 중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그전까지는 개신교사람들이 반유대적인 산학이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소수의 개신교사람들 중에서 반유대적인 신학이 아니고 친유대적인 신학으로 신학사상을 바꾼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영국에서부터 영국성공회일부에서1809년에 소위 유대인들 복음화를 위한 런던협회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성공회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1820년에 루터교교인들 중에서 루터교는 유대인들을 되게 싫어하는 독일 사람들입니다 그 안에서도 유대인들을 복음화 하는 그룹이 나왔습니다. 베를린 이스라엘미션이라고 부릅니다. 1820년에 이런 선교기관이 생겨가지고 1877년에 히브리말로 신약을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유대인들 중에서 기독교신학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두 사람이 카스팔이(Caspari) 그다음에 니안다(Neader)라는 신학자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1844년에 노르웨이 이스라엘미션이라 그래서 노르웨이 사람들이 유대인들을 복음화하기 시작했습니다. 
1859년에는 핀란드 미션나리에서 1875년에는 스웨덴 1885년에는 덴마크 이스라엘미션 그래가지고 이분들이 소수지만 유대인들을 복음화하기 시작한 겁니다. 오늘날에는 유대인들이 1400만 명인데 그중에 약1%정도가 기독교인데 보통 열심히 아닙니다. 제가 다음 다음시간에는 여기에 대한 자세한 말씀을 드릴 겁니다. 결론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예정론 속에서 알미니안적인 일들을 하신다고 이렇게 말씀했잖습니까?
지금 인간을 구원하기위한 창세기3장15절 말씀 전체 틀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려다가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통해서 연극배우 식으로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인 유대인 아브라함의 자녀들도 보면 두 가지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소수가 있고 다수가 있다는 겁니다. 소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시고 다수는 눈이 감겨졌다가 나중에 그 다수가 눈을 뜨게 된다는 겁니다.
그 사이에 이방인이 복음을 받는다는 겁니다. 이방인이 복음이 다 끝나면 예수님이 재림해 오신다는 전체의 큰 틀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정된 틀이 있는데 그 틀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용하시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이렇게 보면 하나님이 저를 낳기 전에 우리어머니뱃속에서 형성하기 전에 하나님이 나에 대한 예정 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어머니 속에서 낳게 하시고 훈련을 시켜서 나이가40가까이 될 때까지 신학교에 간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지내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40가까이 되니까 하나님이 나를 신학교에 가도록 인도하시고 그리고 지금까지 하나님 일을 하는 전담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아하! 이게 하나님의 예정이었구나. 앞으로 하나님이 저를 통해서 하실 일이 예정되어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모르지만 대강은 압니다. 그것을 향해서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고 있는 겁니다.
사도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바울이30세 되었을 때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럴 때 아나니아에게 하신 말씀이 저 아들은 이방과 이방에 왕들에게 나의 복음을 전파하기위해서 어머니뱃속에 이미 생성되기 전에 내가 예정한 아들이다 그런데 처음30년은 어떻게 했습니까?
처음30년은 예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구약에 여호와하나님만 알도록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아예 그냥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을 하고 따라다니면서 가서 그 사람들을 괴롭혔던 사람이 사도바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예정 속에서 하나님의 때가 되니까 30살에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한 다음에 이분을10년 동안 또 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리고40세가 될 때 하나님이 이분을 바나바를 통해서 다소에 가서 불려다가 안디옥에 말단교육전도사로 임명했습니다. 
40살에 안디옥교회에 전도사가 된 겁니다 그리고는 1년 동안 같이 바나바와 사역한 후 41세 될 때 선교사로 임명받아서 1차2차3차 선교여행을 하게 된 겁니다. 그리고는 이분이 62세63세 되었을 때 순교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41살에 선교사로 임명받고 약21-2년을 실제로 사역하고는 주님 앞에 갔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예정이었습니다. 주욱 과거에 이렇게. 이렇게 삶을 살다가 지금까지 왔는데 이것도 하나님의 예정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자녀들에게 대해서도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자녀들에 대한 예정이 있습니다. 지금은 좀 속이 섞더라도 그냥 참고 계세요 주님! 알아서 하십시오. 주님의 뜻을 이루십시오. 이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기도는 주님의 뜻을 이루십시오. 입니다.
그런데 예정 안에서 만약에 순종을 잘하지 않으면 알미니안적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합니까? 순종을 하지 않으면 많이 돌아가게 합니다.
많이 돌지 않고 가는 것을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자녀들이 많이 돌지 않도록 지름길로 가도록 우리가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의 큰 틀의 예정은 바꾸지 않으십니다.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예정 속에서 교회를 하나님이 이렇게 주셨고 하나님의 큰 틀이 있습니다. 우리교회를 향하신 큰 틀을 향해서 하나님은 지금 하나하나 진행하고 계십니다. 건물도 제가 계획해서 하나님이 주신 게 아닙니다. 교인들도 제가 알아서 골라서 제 마음에 합당한 교인들을 내가 보내줄 터이니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겁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는 겁니다. 내가 하는 걸 보라는 겁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는 겁니다. 그리고 제 마음은 어디 까지 갑니까? 
제 마음은 주님의 뜻만을 향해서 저는 쳐다보고만 있으면 됩니다.
그것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준비된 사람들을 그때그때 불려주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 마음에 조바심이 있겠습니까? 조바심이 없습니다.
교인 많이 온다. 적게 온다. 이런 조바심이 없습니다. 주님이 알아서 하십시오. 그러니까 저는 산기도 안갑니다 제 마음만 주님 앞에 고정만 시키면 됩니다. 주님의 뜻만을 그게 산기도입니다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제 마음을 고정시키는 겁니다. 그렇지만 주님이 저에게 그랬습니다.
네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도록 기도의 역군들 내가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을 내가 골라서 보내주겠다는 겁니다. 지금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이 보내주고 있잖아요. 이 일을 위해서 뒤에서 힘을 실어주고 에너지를 집어넣어주는 하나님의 선별된 사람들을 보내주시겠다는 겁니다. 지금도 오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보면 아하! 하나님이 참으로 사랑하는 분들이구나.
저는 그러니까 우리교회에 오신 분들 한분. 한분 보면서 그럽니다. 
참으로 복도 많으신 분이구나 그럽니다. 그걸 나중에 알게 됩니다.
복이 많으신 분들이구나. 하나님의 예정! 예정 속에서 이스라엘사람들을 불순종하게 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였다는 것을 다시 우리가 전체 틀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현재까지 이렇게 살아온 것도 하나님의 예정 속에서 전체 틀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겁니다 그러니까 이 틀을 이해하시면 조바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지금 상황이 조금 어렵더라도 아하! 주님! 전체 그림 속에서 내가 전체를 볼 수 있는 지혜를 나에게 주십시오.
그래서 일어나는 조그만 일 때문에 마음이 아파하고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그러지 마시고 주여! 감사합니다. 저를 하나님이 쓰시려고 큰 그릇을 만들려고 이런 어려움을 주는군요.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할렐루야! 하고는 마음속에 평강을 가지세요. 그리고 찬양을 하세요. 그리고는 주여! 나의 눈이 주님의 뜻만을 향하도록 초점을 맞추도록 도와주세요. 그 기도만 하세요.
제 눈이 딴 데 가지 않고 주님의 뜻을 이루다가 언젠가는 삼성병원영안실에서 드러눕기를 원합니다. 안 그러면 세브란스병원영안실에서 뻔하잖아요.
우리 삶속에 있는 모든 걱정들 큰 그릇 안에서 큰 틀 안에서 다 걱정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일을 이루시기위해서 나에게 걱정거리를 주시는 겁니다. 지나가는 겁니다. 자녀들이 지금 나에게 속 섞이면 주여! 이것은 내 자녀가 주님 앞에 온전하게 되기 위해서 주님이 예정하신 하나의 틀 안에서 움직이는 뜻 인줄 알고 감사합니다.
그 문제를 문제로 보지 마시고 감사로 바꾸세요. 그리고 대범해 지세요.
그게 뭐 어렵겠습니까? 대범해 지세요. 문제를 문제로 보지 마세요.
대범해 지세요. 평강을 누리세요.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을 사랑했던 분들 문제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문제 때문에 더 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더 가난해지게 되고 더 주님께 가까이 가게 되고 그러니까 하나님이 문제를 우리에게 허락하십니다. 그렇지만 그 문제가 나를 절대로 불안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문제 때문에 나중에 감사가 넘치게 되고 오! 주님이시여! 이 문제가 나에게 유익했군요. 나를 고백하게끔 하나님이 만드십니다.
그러니까 주님과 함께 동거함을 만민이 알게끔 하는 그 일만 우리가 하면 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