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8강,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5:1-11) 2014년10월26일 말씀
오늘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오늘은 로마서5장1절에서11절까지 말씀입니다, 제목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지난시간에 로마서 4장1절부터25절까지 4장 전체였으며 제목은 믿음으로 의인이 되느니라 이 말씀을 가지고 지난시간에 로마서4장을 공부하였습니다, 지난시간 말씀을 복습을 해 보면 의인이 되는 자격조건이 뭐였습니까,
의인이 되는 조건은 은혜로 믿음을 발휘해서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믿음을 발휘하는데 제일먼저 믿음이 따라오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받는 이런 사람을 의인이라 그럽니다, 이것을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예수님이 내 대신 율법을 완성시켜주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입니다 이 믿음은 뭐가 선행되느냐면 은혜가 선행되는 겁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을 하나님이 의인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면 도대체 의인이란 뭔가 의인은 불법이 사함 받고 죄가 가리 움 받고 그 죄를 인정하며 아니함을 받는 자가 의인입니다 그래서 의인의 대표적인 인물을 로마서4장에서는 아브라함이다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은 본래 의롭지도 않았고 경건치도 않았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은혜를 받아가지고 여호와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믿었던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언제 의인이 되었나, 우리가 물어보면 그분은 할례받기 전에 의인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은 할례받기 전에는 이방인이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할례 받은 후에 유대인의 역할을 하게 되었으니까 이분은 할례받기 전에 의인이 되었으니까 이분은 이방인의 믿음의 조상을 칭함을 받고 또 유대인의 믿음의 조상으로 칭함을 받게 되는 겁니다,
모든 족속의 믿음의 조상이 아브라함입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구약에서 구원은 받았는데 애굽에서 나왔는데 이분들의 삶의 모습이 세 가지로 나타났습니다, 이분들의 삶의 모습이 애굽에서 나와서 구원받았는데 첫째로 뭐냐면 광야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감사가 없고 애굽 생활을 동경하고 자기네들을 구원시킨 여호와하나님을 열 번이나 시험했던 이스라엘사람들입니다 두 번째 이스라엘사람들의 모습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갔는데도 여러 가지 전쟁도 하고 땅도 정복하고 능력이 있습니다, 이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셨는데 다시 말하면 전도도하고 선교도하고 영적 영토를 넓혔는데도 이분들은 또 우상을 섬겼던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사람들은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들인데 영토도 넓히고 다 넓히면서도 우상을 섬기지 않았던 사람들 이 사람들은 소수였습니다,
이것을 구약의 이스라엘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습을 그림자로 비유로 모형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광야에 살았던 유대인들은 우리가 신약에 와서는 그냥 첫 번째 믿음의 소유자들이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냥 구원받고 그냥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 이런 그룹들 그다음 두 번째 그룹은 두 번째 믿음의 소유자들입니다 눈이 이 세상에만 가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만 눈이 가 있는 근거리시각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기복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고 번영신학 이 세상에서 잘되는 그 정도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돈도 좋아하고 이 세상에 명예도 좋아하고 이 세상에 모든 것을 우상으로 섬기는 하나님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있고 세 번째 믿음의 사람들은 첫 번째 시각도 가지고 있고 두 번째 시각 이 세상시각도 가지고 있지만 저 세상시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근시안적인시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분류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믿음을 가진 사람들 두 번째 믿음을 가진 사람들 세 번째 믿음을 가진 사람들 이렇게 성서에서는 구별을 했는데 이것을 바울은 뭐라고 그러냐면 믿음의 분량이 다르다 그러는 겁니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인데 믿음의 분량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교회 안에 있고 기독교공동체에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믿음의 분량이 서로 다를까 그럴 때 보면 믿음 안에서 구원도 은혜를 통해서 구원을 받듯이 믿음의 분량도 그 안에 또 은혜가 있는 겁니다,
은혜에 따라서 첫 번째 믿음의 분량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도 은혜의 차원입니다, 내가 아무리 하려고 그래도 이것은 안 되는 겁니다, 제가 은혜를 두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구원을 주기 위한 근본적인 은혜가 있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또 세 종류의 은혜의 수준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세 번째 믿음을 가진 사람들 이 사람들에게 특별한 은혜의 분량을 주는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하나님이 쓰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세 번째 믿음을 가진 사람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쓰시려면 그냥 쓸 수가 없는 겁니다, 왜냐면 이분들이 성품은 옛 성품그대로입니다 쓴 뿌리가 그대로 다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기가 잘나서가 아니고 세 번째 은혜만 받은 거지 쓴 뿌리가 다 있습니다, 성품의 변화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성품의 변화가 없고 그냥 옛 모습 그대로 사는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을 쓰시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용광로에 집어넣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그분에게 주기 시작하는 겁니다,
용광로에 집어넣어서 마음이 가난해지고 애통하는 마음이 들어오고 온유 하는 마음이 들어오고 하나님의 말씀에 배고파하고 성령님에 갈급해하고 이렇게 된다고 지난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한 사람을 볼 때 우리 기독교공동체 안에서 같은 기독교인을 볼 때 어떤 사람은 NO1에 있고 어떤 사람은 NO2에 있고 어떤 사람은 NO3에 있습니다, 자기는 N02에 있는데도 N03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어쨌든 다른 과정 속에 있는데 이 하나님의 큰 그림을 내가 보고는 함부로 내가 남을 지적하거나 비평하면 안 됩니다 왜냐면 우리는 모릅니다, 하나님의 예정가운데 저 사람은 NO1에 머물려 있다가 주님나라에 갈 사람인지 저 사람은 NO2까지 있다가 갈 사람인지 저 사람은 NO3까지 가야 될 사람인지 우리가 모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떤 사람이 NO1에 있으면 혹시 저 사람이 NO3까지 갈 사람인지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함부로 사람을 정죄하거나 하면 안 됩니다 그 대신에 우리는 NO2의 하이 레벨이거나 NO3에 있는 사람의 시각을 가져야 됩니다, 모든 사람을 볼 때 이런 큰 그림으로 보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 어느 정도 성숙된 사람은 항상 사람을 보면 나 보다 조금 못해도 또 문제를 조금 일으켜도 격려해주고 이분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도록 가르쳐주고 이끌어주고 방향제시해주고 그리고 사랑해주고 여기까지 가주는 사람 이런 사람은 많지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게 원칙입니다 그러니까 딱 보고는 저분은 정말 잘 하는구나 항상 화평케 하면서 사람들을 이끌어주는 사람 이 사람은 어느 수준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까,
NO2거나 NO3의 어느 정도 수준까지 갔을 때 이것이 가능한 겁니다,
이게 내 힘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람을 볼 때 저분의 인격이 어느 수준이나 보면 아는 겁니다,
그것을 우리가 인격이라고 그럽니다, 사람 됨됨이 저 사람은 모든 사람을 안아주고 가끔가다가 실수하더라도 안심시키고 그렇게 가는 사람 어떤 사람은 자기 고집이세고 자기방법이 최고고 남을 항상 정죄하고 자기그룹 만들어서 다른 사람 왕따 시키고 이런 바람직하지 않는 이런 모습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언젠가는 NO3의 사람이 되겠지만 지금은 아니구나, 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분별력을 키우기 위해서 지금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영적분별력 그런 사람을 지혜자다 그러는 겁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이다 이런 걸 보는 사람은 이런 지혜가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그렇지 않는 사람을 보면 그냥 사랑해주고 싶고 그런데 자기 고집이 세고 자기 의견이 강하고 자기 스타일이고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아이고. 주여. 주여. 주여 하면서 끝내버립니다 우리교회 믿음의 권속들은 때가 되어서 모두 다 세 번째 믿음으로 가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면서 오늘 바울을 통해서 5장 말씀을 하십니다,
바울도 이 글을 쓰면서 이 안에 깊은 내용은 완전히 소화를 못하지만 이분의 입을 통해서 글을 쓰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이분이 완전히 소화를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아느냐면 그분의 글을 읽어보면 우리도 소하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이분도 분명히 자기도소화하지 못하면서 그냥 쓴 거 같습니다, 이게 언제입니까, 로마서가 주후57년입니다
이분이 개종한 게 주후35년입니다 그러니까 개종22년 후입니다
그런데도 이분이 이걸 잘 소화를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보면 5장1절에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그러므로 하면서 우리가 라고 그랬습니다, 이 우리가 누군가를 알아야 됩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2절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이 두절을 읽으면 문자적으로 이게 무슨 뜻인지 구별이 잘 안 됩니다 제가 그래서 속으로 바울 선생님 선생님은 이걸 이해했습니까,
이분이 6장7장8장에 가면서 주욱 보면 어느 정도는 소화하면서 이 말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표현을 조금 시원하게 했으면 좋겠는데 표현이 시원하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원해집니다,
그러면 1절에 그러므로는 무엇을 수식하는 겁니까,
크게 보면 로마서1장부터4장까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
4장 전체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4장전체입니다 4장1절부터25절 전체를 수식한다고 이렇게 단순하게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었고 그 대표가 아브라함이고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고 그다음에 세 가지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음의 분량이 서로 다르다 그러니까 같은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은혜에 따라서 믿음의 분량이 다른 겁니다, 왜 믿음의 분량이 다를까요,
하면 우리가 저쪽사회는 계층사회이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가 이렇게 한번 볼 수가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1절에 나오는 그러므로 우리가 할 때 그 우리가 는 누굽니까 NO1.2.3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2절에 나오는 우리가가 있습니다,
이 우리가 는 누굴까요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지금 이 우리가 는 나중에 제가 설명해드리겠지만 N03크리스천들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가가 여러 군데 나옵니다,
첫째 6절에 보시면 우리가가 나옵니다, 8절에 우리가가 있습니다,
9절에 우리가가 있습니다, 10절에도 우리가가 있습니다,
11절에 우리가가 있습니다, 지금 3절에 보면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하고 2절에 우리가 하고는 세 번째 크리스천들을 지칭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우리가 는 6절.7절.8절.9절.10절.11절의 우리가 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게 NO1또는 NO2기독교인들로 잠정적으로 보시고 이렇게 보시고 나중에 성서를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성서에서 이런 부분을 정확하게 구분을 안 해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읽을 때 소화하기가 힘들고 혼돈스럽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다시 1절을 다시 보세요, 1절에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럴 때 우리가가 누구라고 그랬습니까, 첫째 먼저 바울이 1절에서 무엇을 이야기하느냐면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그랬습니다, 그러면 누리자 라는 원어는 헬라말로 에코멘입니다 이 말의 뜻은 뭐뭐를 가져야한다 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가져야한다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면 화평이라는 단어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 한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화평하자는 뜻은 뭐냐면 창조목적대로 살자 그런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러느냐면 창조목적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화평이 깨져버린 겁니다, 창조목적대로 하지 않는 일에 앞장선 분이 누굽니까 루시퍼입니다 그리고 루시퍼를 통해서 하와와 아담이 따라 왔습니다,
그러면 루시퍼가 왜 화평을 깨었습니까, 하나님처럼 되려고 창조목적에 위배되는 생각을 한 겁니다, 똑같이 하와에게도 너 이것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 창조목적에 위배되는데 동참을 한 겁니다, 또 그 남편 아담에게도 그러니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됩니까,
이놈들 창조목적을 위배했구나, 그러니까 너희들과 나와는 이제 원수관계로 화평이 깨진 관계입니다 그러면 다시 바울을 통해서 1절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해야 된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NO1.2.3번의 기독교인들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창조목적에 순응해야 된다,
그런 삶을 살아야 된다는 말로 우리가 해석을 하면 됩니다,
화평을 하지 않으면 창조목적대로 살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옵니까,
첫째 우리 하나님이 십계명을 주실 때 그랬습니다, 너희들 우상 섬기면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라는 말을 썼습니다,
출애굽기20장5절에 그러니까 질투하는 하나님이란 말은 하나님의 화를 유발케 하는 하나님의 자존심을 불편하게 하는 행위입니다 이 행위는 그러니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도저히 용납을 못하는 행위가 창조목적대로 살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창세전부터 은혜를 베풀어서 창세전에 예수님의 아픔을 경험하게 한 다음에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확인시켜주는 그렇게 해서 확인해주는 사람이 NO1.2.3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많은 대가를 지불하기로 예정하시고 지불하신 겁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이 왜 일어났고 왜 창세전에 이것을 준비하셨습니까,
하면 창조목적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도 일어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지금 로마교회 안에 바울을 통해서 딱 보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목적대로 살아야 된다고 지금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는 겁니다, 로마에 있는 세 그룹의 하나님의 자녀들이 창조목적대로 살지를 못했던 겁니다, 성령님이 바울에게 말씀하십니다,
창조목적대로 살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로마서를 읽어보면 압니다, 로마서6장7장8장9장에서11장까지 또 12장에서15장까지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로마교회 교인들이 창조목적대로 살지 못했음을 우리에게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이 교인들이 그런데 그 안에 보면 소수의 로마에 있는 교인들이 창조목적대로 살았던 것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걸 공부할 것인데 소수는 이방인 소수 또 유대인 소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들이 하나님과 화평했던 사람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2절을 보시면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여기서 우리가 는 어떤 분인가 하면 세 번째 하나님의 자녀들을 지칭한다고 우선 보면 되겠습니다, 왜냐면 이분들은 믿음으로 서있는 은혜를 받았다고 그랬습니다,
NO1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은혜의 분량이 있습니다,
NO2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은혜의 분량이 있습니다,
NO3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은혜의 분량이 있는데 우리가 NO1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광야의 기도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은혜의 분량이 무엇입니까, 이분들은 그냥 구원을 받은 은혜의 분량으로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NO2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은혜의 분량은 이분들은 구원을 주신 은혜의 분량 플러스 이 세상 근거리시각을 보는 이 세상을 보는 은혜의 분량까지 그분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NO3기독교인들은 구원을 주시는 은혜의 분량도 주시고 이 세상 근거리시각을 보는 은혜의 분량도 주시고 그다음에 저 세상을 보는 원거리시각을 보는 은혜의 분량도 주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2절에 보시면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이 우리가 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이 우리가 는 세 번째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의 시각이 뭐냐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 말은 뭐냐면 하나님이 세 번째 사람들을 통해서 영광 받으실 것을 생각하니까 세 번째 사람들이 즐거워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세 번째 사람들 시각이 저쪽 동네에 가가지고 세 번째 사람들 때문에 영광 받으실 것을 생각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그걸 통해가지고 삼위하나님이 이걸 보고는 영광 받으시구나, 내가 아주 즐거워한다, 그랬습니다,
여기 까지 온 수준에 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2절에 우리가 는 누구라고 생각이 됩니까, NO3로 업 그레이더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바라고 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엘피스라는 단어인데 히브리서11장1절에 믿음의 정의를 내릴 때 쓴 단어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할 때 이 바란다는 것은 고린도전서13장13절에 믿음. 소망 사랑 그랬습니다, 우선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예수님에 관한 믿음을 우리가 NO1, NO2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그 믿음에다가 세 번째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이 믿음을 가지면 그다음에 무슨 은사가 오느냐면 소망이 따라 오는 겁니다, 소망이라는 말은 바란다는 말입니다 뭘 바랍니까,
영의 문이 열리면서 저 세계를 보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바란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이런 말입니다 상급을 준다, 이게 히브리서11장의 믿음입니다,
이것을 영의 눈을 뜨고서 내가 보는 겁니다, 느끼는 겁니다,
정확하게 안 보이더라도 내 관심이 그쪽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그것이 실상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러면서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 왜냐면 육의 눈이나 혼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다는 겁니다, 그런데 영의 눈을 뜨고서 세 번째 눈을 뜨고서 보는 사람 또 보려고 애쓰는 그자체가 히브리서11장의 믿음이라는 겁니다, 이 믿음이 세 번째 믿음입니다, 세 번째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교회에 다니지만 그쪽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 많잖아요,
이 세상에만 눈이 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소수지만 항상 이 세상에 살면서 내 시각이 저쪽에 올라가서 나는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이 가치기준이 변화는 사람 내 고향은 저쪽이야 히브리서11장의 믿음인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겁니다,
영의 눈을 뜨고 저쪽세계를 보는 그 사건 자체를 소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2절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하면 지금 나를 통해서 내가 우상을 섬기지 않는 이 일 때문에 나를 통해서 이분이 영광을 받으시구나,
영광 받는 말을 다른 말로표현하면 기뻐하시구나, 즐거워하시구나,
만족케 하시구나, 나를 보고 그것을 내가 영의 눈을 뜨고 쳐다보는 겁니다, 그리고는 그분이 그렇게 기뻐하시는 것을 보고 내가 즐거워하는구나,
이런 사람이 세 번째 사람입니다, 바울은 지금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것을 구별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 번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어떤 조건이 필요합니까, 제일 먼저 구원에 은혜가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아야 됩니다, 세 번째 사람으로 예정된 사람이라면 은혜가 있어야지만 구원이 우선오고 그다음에 구원이 온 다음에 두 번째 사람으로 또 가주어야 됩니다,
내가 하루아침에 세 번째 사람이 되는 게 아닙니다,
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믿음의 사람으로 간 다음에 주님이 거기에서 또 업 그레이더 시키는 겁니다, 바울의 삶을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업 그레이더 시키려면 내가 마음이 순수해야 되는 겁니다,
그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복음5장8절에 마음이 순수해야 되는 겁니다, 잡다한 세상의 더러운 성품으로 있으면 이게 안 되는 겁니다,
그 사람이 순수한 사람인가 아닌가는 그 사람의 말하는 거나 라이프스타일을 보면 압니다, 마음이 순수해야지만 영의 눈이 뜨지는 겁니다,
마음이 순수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 그러니까 마음이 순수해지는 정도의 차이가 NO1이나 NO2나 NO3나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NO1은 마음에 쓴 뿌리가 많으니까 이게 안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영적인 시각장애자역할을 하는 겁니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인데 또 NO2사람은 영적으로 이 세상만 보는 눈의 시각의 두께가 이 세상만보는 이러한 시각 소유자들이 있는가 하면 저 세상까지 볼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마음이 순수해야 된다, 그러니까 성화가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인데도 믿음의 분량의 차이가 있다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믿음의 분량을 더 크게 만들어서 저쪽까지 보는 믿음의 분량의 사람으로 만들려면 마음을 순수하게 만들어야 되는데 마음을 순수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내 생머리로는 안 되는 겁니다,
바울을 봐도 아는 겁니다, 바울도 마음이 순수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그렇지만 예정론 측면에서 바울은 이미 어머니의 태중에서 이방인선교사로 하나님이 예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NO1믿음까지 주어야 되는데 그렇게 하려니까 하나님이 이분을 용광로에 집어넣은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세 번째 믿음을 가지려면 용광로를 경험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스스로가 벌써 용광로에 들어갔다 나왔다 들어갔다 나왔다 많이 하였습니다,
로마서를 쓸 때 지금 주후57년입니다 이분이 예수님을 만나고 22년 동안 용광로 생활을 많이 했습니다, 이분이 지금 이야기하는 3절을 보세요,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이 3절과4절이 중요합니다, 3절과4절은 우리가 는 세 번째 믿음의 소유자들입니다 이렇게 예정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용광로에 집어넣는데 3절에 보면 제일먼저 용광로를 집어넣을 때 우리에게 환란을 준다고 그랬습니다,
환란은 헬라말로 드맆시스라는 말로 고난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이 드맆시스를 허락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고난이라는 것은 내 뜻대로 잘 안 되는 겁니다, 고통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게 내가 원하는 되로 안 되고 내가 원치 않는 방법으로 나를 끌고 가는 겁니다, 그래서 아주 괴로워합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제일먼저 고난을 주는데 고만을 주면 따라오는 게 인내를 가진다는 겁니다,
인내는 헬라말로 슈퍼모네라 하는데 오래 참는다, 는 겁니다,
성서에 나오는 슈퍼모네는 나를 훈련시켜서 나를 더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는 다시 말하면 나의 쓴 뿌리를 제거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하시는구나, 라는 소망이 뒤에 깔려있는 인내입니다 그래서 나를 더 하나님이 높이 쓰시려고 하시는구나, 하늘나라에서 나를 더 높이시려고 하시는구나,
이것 때문에 가지는 인내입니다 여기까지 우리가 가주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참을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 안에서 예수님 안에서 인내를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내 안에서 인내를 합니다, 예수님의 뜻 안에서 인내하라는 소리입니다 그 인내를 가지게 되는데 인내를 왜 가지느냐면 쓴 뿌리를 뽑으려고 나를 성화시키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겁니다,
우리는 성질이 급해서 빨리 나를 성화시키려고 하는데 안 됩니다 바울도 엄청난 기간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오랫동안 아픔의 기간이 필요한 겁니다, 아무리 이것 고쳐주세요,
해도 안 됩니다 주님이 너 는 20년 필요하다 그러시는 겁니다,
바울도 22년을 하셨습니다, 나중에 30년까지 갔습니다,
그분이 33년을 예수님을 섬겼는데 그의 죽을 때까지 이분이 인내를 하였습니다, 조금만 풀어 놓아도 안 되니까 그래서 인내를 계속주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인내가 쌓여지면서 인내는 연단을 한국어 번역이 조금 잘못되었습니다, 영어로 푸루번 케릭터(Proven Character) 증명한다는 겁니다,
케릭터(Character)는 성품을 이야기합니다,
헬라어로는 도끼메라는 뜻은 뭐뭐의 과정을 거쳐가지고 결과가 나타났는데 그래서 재판을 받아가지고 또는 승인받는 겁니다, 허가받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 가지 과정을 통해가지고 재판관이 재판하여 승인받은 것을 이야기할 때 그 단어가 도끼메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국말로 인내는 연단을 연단이라는 단어가 그런 뜻이 아닙니다, 푸루번 캐릭터(Proven Character)로 이제는 사용할만한 예수님의 성품이 되었구나, 이런 뜻이 푸루번 캐릭터(Proven Character)입니다,
캐릭터 성품이 이제 인정받았다 승인받았다 그런 의미입니다 연단 받아서 어느 정도 승인 받았구나, 예수님의 성품으로 그다음에 연단은 소망이 온다는 겁니다, 소망이 온다는 의미는 눈이 저쪽세계로 떠졌다는 소리입니다 이렇게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 이룬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카테르가조마이로 애써서 여기까지 왔다는 겁니다, 다시 한 번 봅시다,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세 번째 사람으로 예정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이분을 어떻게 훈련시키느냐면 처음에 환란을 허락하시고 그다음에 인내를 계속해서 낳게 하고 서서히 예수님의 성품으로 내가 푸루번 캐릭터가 되는 겁니다, 성품이 조금씩 변화는 겁니다, 그러면서 쓴 뿌리들이 없어지면서 소망이 생기는 겁니다, 저쪽세계가 보이는 겁니다,
이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고 애써서 완성하는 겁니다,
이 과정이 10년20년30년 바울은 약33년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쓰실 때 고린도전서를 주후55년에 썼습니다, 55년이니까 몇 년을 훈련받았습니까, 20년을 훈련받았습니다, 바울이 예수님 때문에 생고생을 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저도 그렇고 여러분들도 그렇고 예수님 때문에 생고생을 하는 것은 복을 받는 겁니다, 이렇게 20년을 생고생한 후에 바울에게 성령님이 고린도전서13장을 주시는 겁니다, 첫째 바울아 너가 믿음이 있었다,
고린도전서13장13절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이게 사랑장인데 사랑장이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고 너는 믿음이 우선 있어야 된다, 그러니까 첫 번째 믿음이 뭐냐면 구원의 믿음 두 번째 이 세상을 보는 믿음도 있었고 세 번째 믿음이 어느 정도 되면 믿음 다음으로 소망이 따라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시각이 첫 번째 두 번째 시각에서 세 번째 시각으로 변한다는 겁니다, 쓴 뿌리가 어느 정도 빠졌다는 겁니다,
환란과 인내와 연단과 소망이 오니까 시각이 변화가 오는 겁니다,
내가 이 세상이 내 고향이 아니구나, 저 세상이 내 고향이구나 이 세상은 나그네 세상이구나 이런 것이 오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바울이 이런 것을 이때 쯤 어느 정도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소망이 있는 사람 이 사람에게 아가페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따라온다는 겁니다, 아가페사랑 동료크리스천들을 보면서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겁니다,
아가페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은 시각이 히브리서11장 시각으로 변하는 사람이 무조건사랑입니다 아가페사랑은 무조건 사랑입니다,
조건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러는 겁니다,
이 아가페사랑은 뭐냐면 사랑은 오래 참고 왜냐면 어떤 사람은 N0 1사람이야 저 사람은 NO 2사람이야 하면서 다 참을 수 있는 겁니다,
오래 참을 수 있고 내가 온유해지고 내가 질투하지 않고 자기자랑도 하지도 않고 교만하지도 않고 항상 무례히 행하지도 않고 성내지도 않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도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도 않고 이게 생머리로 되는 게 아닌 겁니다, 훈련받고 시각의 변화가 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생머리로 되는 게 아닌 겁니다, 훈련받고 시각의 변화가 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그러는 겁니다, 바울아 너가 이 시각을 가지면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다는 겁니다,
어떤 상항이 와도 모든 것을 믿는 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는 것은 이런. 이런 뜻이 뒤에 숨겨져 있어서 다 믿는 다는 겁니다,
모든 것을 바라게 되고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시각의 변화가 온 사람들입니다,
이 시각까지 가주어야 되는데 바울이 이런 말을 주후55년에 하셨지만 이분이 완전히 변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 후에 이분의 편지를 보면 이분도 이것 때문에 원칙을 알았지만 이것 때문에 이분도 많이 고민하면서 갔던 사람입니다 당연합니다, 주후55년에 바울이 성인이 되었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죽을 때 까지 성인을 향해서 가는 겁니다,
바울이 주후55년에 고린도후서를 쓰실 때 이분이 고린도교회에 말하는 것을 보면 압니다, 이분이 얼마나 용광로 속에 본인이 들어왔다 나갔다 한 것을 기록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11장23절에서27절절에 이분이 예수님 안 만났으면 그렇게 생고생할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잘 나갔던 사람입니다 예수님 만나가지고 이미 창세전에 이분을 하나님이 특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실 분이기 때문에 지금 20년 동안 생고생시키는 겁니다, 그런데 자기가 생고생했다는 이야기를 거기다가 쓴 겁니다,
쓰기 전에 고린도교인들에게 그러는 겁니다,
나는 세상 적으로 엘리트야 너 네들 내 앞에서 꼼짝 못해 내가 세상 적으로 엘리트야 그런데 내가 예수님 때문에 생고생한 이야기해줄게 왜냐면 나는 저쪽 세상에 가면 진짜 엘리트가 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생고생을 한 다음에 12장에 가서 이분이 3층천에 올라가서 낙원을 다 구경하고 온 사람이야 그러는 겁니다, 저쪽 세상을 봤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내 몸에 가시가 있고 육신적으로 괴롭고 인간적으로 나 좀 고쳐주세요 하니까 예수님이 너 그것 필요해 너 그것 없으면 너는 교만해진다는 겁니다, 너가 지금 병을 가지고 있는 게 은혜다 그걸 바울이 깨달은 겁니다, 그러면서 생고생한 이야기를 쓴 게 고린도후서11장23절부터27절입니다, 내가 수없이 옥에 갇히고 이분이 진짜 옥에 갇힌 것은 5년 후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20년 동안 동네파출소에 얼마나 많이 들어갔다 나왔다 했는지 아느냐, 왜 이분이 동네파출소에 더나들었습니까,
로마사람에게 왕 중의 왕이라고 이야기하니까 로마황제가 싫어하는 겁니다, 그다음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유대인과 로마사람들이 같이 바울을 동네파출소에 집어넣는 겁니다, 그래서 수없이 옥에 갇히고 또 들어가서 매도 수없이 맞았는데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써놓았습니다,
그다음에 내가 복음을 전하려고 강을 따라서 건너다가 강에 빠져 죽을 뻔도 하였고 또 헌금을 들고 다니다가 강도를 만나서 죽을 뻔도 하였고 유대인들이 나를 죽이려고 그러고 이방인들이 나를 죽이려고 그러고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거짓형제들의 위험도 있었고 그다음에 잠도 잘 못자고 배고픔과 목마름과 굶주리고 추웠고 헐벗고 이런 일들을 20년 동안 경험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나를 용광로 훈련을 엄청나게 시켰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전서13장을 쓸 수 있었다는 겁니다,
내가 이런 용광로 훈련을 하면서 그러면서 저 세상을 봤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시면서 내가 3층천에 올라가서 저 세상을 봤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저 세상을 보게 하려고 육신의 고통을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특히 자존심 상하게 하시게 자존심 상하게 하는 게 제일 아픈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이런 말 하지만 여러분들이 제 자존심 한번 건들려보세요 그러면 제가 고함을 칩니다, 그래서 저도 아직도 멀었습니다,
자존심 건드릴 때 잘 참는 사람 그 사람이 성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도 아직까지 성인 대열에 들어가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우리교회에 보니까 성인그룹에 들어갈 사람 몇 사람이 제 눈에 보입니다,
나보다도 나은 사람들 누구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교만해집니다,
그러면 우리 질문이 있습니다, 왜 바울을 용광로훈련을 시켜야만 했었나,
입니다, 첫째는 바울이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자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바울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바울아 너를 통해서 내가 영광 받는다,
내가 기쁨을 받는다, 만족케 한다, 너가 또 그걸 통해서 즐거움을 얻으라,
오늘 본문의 제목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용광로훈련을 시켰던 겁니다, 그런데 바울이 지금 주후55년에 용광로훈련 받는 이야기가 고린도전서 후서에 나오잖아요,
그런데 이분이 이 용광로훈련이 그때 끝났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이분은 55년부터 시작해서 앞으로13년이 더 있습니다,
이분이 68년에 주님께 갔으니까 13년 동안 바울이 용광로훈련 받을 것을 이분이 다 아셨습니다, 어느 정도 100%는 몰랐지만 그림은 그렸습니다,
그 말은 무엇입니까 이직도 바울이 성품의 변화가 아직 더 필요하다는 것을 주님이 아시고 이분을 이렇게 용광로훈련을 시켰는데 바울이 이것을 알면서도 따라갔습니다, 보세요, 이분이 지금 55년에 용광로훈련을 받으시고 그다음에 이분이 3차 여행 때거든요, 55년이면 3차여행이 53년에서57년까지입니다, 3차 여행 중간에 말씀하신 게 고린도 전 후서입니다 계속해서 여행을 했습니다, 57년에 이분이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섰습니다,
로마서를 쓰서 보내고 그다음부터 다시 생고생을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로마서를 쓰시고 예루살렘에 간 겁니다,
그게 3차 여행 끝나는 겁니다, 예루살렘에 갈 때 주변에서 가지 마십시오, 가지 마십시오, 그랬습니다, 왜냐면 예루살렘에 가면 또 선생님을 핍박할 사람들이 기다라고 있다는 것을 바울은 이미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엄청나게 받고는 계속 용광로훈련입니다, 옛날에 자기하고 같이 가말리엘 밑에서 공부하는 동창들도 자기를 우습게 알고 그래도 자기 학문적인 고향인 예루살렘에 왔는데 교계사람들도 자기를 별로 생각안하고 옛 동료들도 자기를 별로 생각안하고 그냥 자기를 죽이려고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깔려 있는 겁니다,
이분이 그걸 다 알면서도 예루살렘에 간 겁니다, 가 가지고 기회만 있으면 그분들에게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겁니다,
유대인들에게 그래가지고 그분들이 바울을 체포해가지고 가이사랴에 데리고 가서 2년 동안 가이사랴에 있었습니다, 가이사랴에서 연금 상태로 2년 동안 거기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지만 그 아픔은 말도 못합니다
자존심의 상처 옛 자기의 아카데미 엘리트 그룹들이 자기를 그렇게 생각할 때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분들을 용서하는 마음이 들어온 겁니다,
이분은 저쪽세계를 봤기 때문에 그것을 보지 못하는 저 사람들보고 불쌍히 생각했던 겁니다, 그렇지만 이분은 육신적인 고통 자존심의 깎아내림은 감당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거기에서 2년 있다가 배를 타고 6개월 로마를 행해서 항해를 한 겁니다, 그 때도 죄수의 모습으로 그 안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면서 6개월을 향해하면서 배가 파선하여 고생한 이야기들 이런 어려움을 통해서 이분이 점점 점 더 겸손해지고 성화되고 저 세계를 더 밝히 보는 그러한 사람으로 주님이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래서 로마에 도착해서 가택연금에 들어갔습니다,
2년 동안 가택연금에 들어가서 있으면서 이분이 거기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이분이 많은 부분에서 영성이 더 날카로워지고 더 넓어지고 높아지고 이러면서 옥중서신4권을 썼습니다, 빌립보서. 에베소서. 골로세서. 빌레몬서를 쓰면서 그분의 영성이 그 서신에 담겨있는 겁니다,
이걸 쓰시고는 이분이 또 선교여행이 시작됩니다,
4차 선교여행이 63년부터67년까지 4차 여행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배를 타고 스페인까지 가서 스페인에서 다시 마케도니아 쪽으로 넘어와서 고생하면서. 고생하면서 67년에 잡혀가지고 감옥에 들어갑니다,
이런 모든 아픔을 주님이 다 계획하시고 이분이 더 영성이 더 깨끗해지게 만든 겁니다, 그래서 67년에 이분이 디모데후서를 썼잖아요, 디모데후서를 쓰면서 이분이 그러는 겁니다, 내가 이제 갈 길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그러면서 디모데후서4장7절8절에 디모데에게 디모데야 내가 이제 선한 싸움 다 싸우고 내가 달려갈 길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그러는 겁니다,
이게 무슨 믿음입니까, 이분이 세 번째 믿음을 지킨 겁니다,
나는 저 세계에 간다는 이 믿음을 지켰으니 그러면서 이후부터는 이 믿음으로 내가 죽은 후에는 의의면류관이 예비 되어 있다는 것을 내가 봤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여기까지 오려면 이분이 보통 생고생한 것이 아니잖아요, 바울이 로마서를 쓰실 때 주후57년에 이미 이분이 어느 정도 영안이 떠졌기 때문에 믿음 소망도 가지고 계셨고 이분이 이제 사랑까지도 어느 정도 가지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자기가 넘쳐났고 그분의 사랑이 자기를 휩 쌓이는 겁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쓰시면서 로마크리스천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로마서8장에 표현합니다,
8장35절에서39절에 말씀 이 말씀을 우리 기독교인들 N01.NO2기독교인들이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이 이 말씀을 좋아하는 걸 보고 제가 그럽니다, 어느 정도 수준이 되지 않으면 이 말씀이 내 것이 아닌 겁니다, 이 말씀이 무엇입니까 35절에 그랬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끊을 수 없는 겁니다,
왜냐면 이분이 이미 저 세계를 본 사람입니다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가 세 번째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소수인 겁니다,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러나 이것을 바울이 이 경험을 하지 않고 저 세계를 보지 않고는 이런 고백을 할 수 없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해서 선을 이루는 겁니다, 그러니까 함부로 성경말씀을 사용하지 마세요,
바울이 주후57년에 이 고백을 하시고는 이 비전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분이 예루살렘에 가서 핍박받는 것도 마다않는 겁니다,
이분이 나중에 로마감옥에 주후60년에 들어가는 것도 마다않는 겁니다,
그 안에 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분이 로마감옥에 있으면서 빌립보를 쓰실 때 하신 말씀 빌립보서3장12절에서 14절에 빌립보교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애들아 내 제자들아 내가 이미 얻었다는 것도 아니고 온전히 이루었다는 것고 아니란다, 지금 내가 과정 속에 있어서 오직 내가 그리스도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내가 쫓아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저 세계에서 가서 주님이 나를 귀하게 여기시고 내가 하늘의 상급을 주실 것을 내가 저 세계를 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향해서 내가 쫓아간다, 그러면서 형제들아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가지일 뒤에 있는 것을 다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내가 지금 푯대를 향해서 쫓아가노라 프레스 온 그러는 겁니다,
이것은 NO1.NO2기독교인들에게는 해당이 안 됩니다 그런 비전도 없습니다, 저 세계를 본 사람들이 바울처럼 그러니까 이것을 저 세계를 하루아침에 본 게 아닙니다, 엄청난 용광로훈련을 받고서 내가 어느 정도 나의 성품이 변하여지므로 해서 영의 눈이 뜨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고백하는 겁니다,
주님께서 바울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바램이 무엇입니까 우리도 여러분들도 저도 바울처럼 하루아침에 우리가 변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우리의 삶이 언제까지인지 모르지만 바울처럼 만약에 세 번째 믿음의 소유자로 주님이 쓰시는 특별한 제자라면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이 고난의 훈련을 시키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NO1과정 NO 2과정에서 NO3과정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어떻게 우리가 NO3의 믿음의 소유자가 될 수 있을까요 그 답은 간단합니다, 저에게 이 은혜를 주십시오, 이걸 간구하세요,
이 은혜를 받은 사람은 결코 넘어지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이루시고 이 은혜를 받은 사람은 주님이 나로 하여금 기쁨이 넘치게 만드십니다, 용광로 속게 있으면서도 어려움 속에서도 점점 점 더 기쁨이 넘치게 주님이 만드십니다, 겁내지 마세요, 문제는 뭐냐면 이 은혜를 주십시오, 바울에게 주셨던 이 은혜를 저에게도 주십시오, 이 은혜를 받은 사람은 바울도 자기만이 아닙니다, 이 은혜를 받은 바울에게 주님께서 많은 세 번째 믿음을 가지도록 예정 된 사람들을 바울에게 붙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자기 삶을 통해서 저 사람들을 가이드해주고 가르쳐주고 따라오게 만들었습니다, 똑같이 저에게도 주님이 은혜를 주시면 주님이 예정된 신실한 NO3사람들을 우리교회로 불려주십시오,
그러면 주님 우리의 삶을 통해서 저의 삶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이것을 나누어주고 여러분들이 이 대열에 들어와서 같이 주님을 섬기는 복된 자들이 되게 만들기를 주님이 이 은혜를 우리에게 주기를 간구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사도바울을 어머니 태중에서 이미 이방인사역자로 예정하셨고 이분을 30년 이 세상에서 지식과 지혜와 또 율법과 모든 훈련을 시키신 다음에 다메섹에서 부르셔서 그때부터33년을 순결 겸손 훈련을 시키시고 영의 눈을 날로. 날로 밝게 더 뜨게 마드시고 주님의 뜻을 이루시는데 이분을 통해서 13권의 하늘의 비밀의 말씀을 서술하게하시고 또 본인이 직접 선교현장을 다니면서 제자들을 만들고 훈련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저희들이 바울의 삶을 통해서 한 가지 배우고 깨닫는 것은 우리도 부족하지만 우리에게 바울에게 주셨던 이 은혜를 허락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지금 우리만이 아니고 이 세상에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 바울 같은 복된 자가 각 나라에서 각 민족 가운데서 많이 나오게 하시므로 이험하고 탁하고 어지러운 영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그러한 주님의 종들을 많이 만드심으로 해서 주님의 뜻을 밝히 이루는데 모두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저희들의 사역을 통해서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를 간구합니다,
또 저희들이 영의 분별력을 가지고 이런 사람들을 볼 수 있게 해주시고 이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 저희들이 이런 사람들을 많이 격려해주고 도와주고 동역 자가 되도록 우리에게 이 믿음을 허락해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오늘 로마서5장 말씀을 통해서 주신 메시지가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게 해주시고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영적으로 더 성장되는 복된 말씀이 되도록 은혜 내려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oaWc7Wvxygs
'황용현목사 강해설교 녹취록 > 로마서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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