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7강, 오직 믿음으로 의인이 되느니라,(롬4:1-25) 2014년10월19일 말씀
오늘은 로마서 열일곱 번째 말씀입니다, 로마서4장 전체 다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니까 이 말씀을 잘 집중해서 들으시고 또 이 말씀 속에서 숨겨놓은 주님의 뜻을 우리가 같이 섭력하기를 바랍니다,
지난시간에 제가 로마서 열여섯 번째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시간 강의 제목이 무엇이냐면 율법을 완성케 하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말씀 속에서 율법주신 목적이 열 가지가 있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한번 복습해보면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열 번째 목적이 뭐냐면 예수님이 꼭 필요하다, 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 우리가 그래서 율법을 예수님으로 이끌어가는 초등교사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율법이 꼭 필요한데 우리가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재판을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 재판장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재판을 우리에게 할 터인데 그 이유는 우리 예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재판을 받지 않고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누가 도와주어야 됩니까, 도와주는데 세 가지 방법이 있다 그랬습니다, 죄를 대신 뒤집어 써주는 방법이 있고 또 죄를 재판장이 간과하는 방법이 있고 또는 재판장이 벌금이나 배상금을 대신 내어주는 방법이 있다 그랬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이 일을 예수님이 하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런 계획을 하셨다고 했지만 이것을 창세전에 삼위하나님이 이미 계획을 하셨다 다시 말하면 창세전에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을 예정하시고 우리 예수님을 보여주기 위해서 율법을 주었는데 율법은 인간이 스스로가 할 수 없기 때문에 율법을 완성시켜 주는 분으로 예수님이 오셨다 그래서 예수님이 율법의 완성자다 이렇게 말씀을 제가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로마서3장31절 마지막 절에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 율법이 필요 없잖습니까, 예수님이 이렇게 완성해 주셨으니 율법폐기 론을 이야기할 때 그러면 왜 율법을 만드셨습니까, 라고 이야기할 때 바울이 그럽니다, 율법은 폐기할 수 없다 오히려 율법을 더 굳세게 해야 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율법을 우리가 폐기하면 무슨 문제가 생기느냐면 창조목적에 우리가 무지하게 되고 하나님의 정체성에 무지하게 되고 또 예수님의 필요성에 무지하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우리가 받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율법을 폐기해버리면 그러니까 우리는 율법이 필요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을 더 굳세게 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율법을 굳세게 한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면 율법을 기억하고 묵상하고 그리고는 율법 속에 숨겨져 있는 그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겁니다,
사랑의 마음. 용서의 마음. 은혜의 마음. 자비의 마음. 덮어주는 마음 예수님의 이런 마음을 율법을 통해서 배워가지고 내가 닮아갈 때 온전한 사람이 된다, 라고 말씀을 지난 시간에 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여기에 연결해가지고 4장으로 들어가서 주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러면 의인이냐 그럴 때 오늘 말씀에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예수님이 내 대신에 율법을 완성시키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 의인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이 이런 말입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완성시키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내가 믿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4장에서는 이 의인이 되는 원칙을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을 예를 들어서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주전2천년분인 아브라함을 예를 들어서 설명해주는 겁니다,
그래서 우선 우리가 아브라함이 누군가 우리가 조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오늘 4장1절에서 그랬습니다,
육신으로는 이스라엘사람들의 조상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을 보면 행위로는 의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랬습니다,
왜냐하면 이분의 부모님 데라도 우상을 섬겼던 분입니다 그러니까 이분도 우상을 섬겼던 분입니다 그러니까 행위로는 의로운 사란이 아니었고 그분의 삶을 봐도 의로운 부분이 많지 않았습니다,
5절에는 이분이 경건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런데 3절에 여호와하나님이 이분에게 말씀 하실 때 이 사람은 믿었다 그랬습니다, 믿었던 사람이다 여호와 말씀을 믿었던 사람이라는 겁니다, 3절에 그러면 여호와 말씀이 무엇인가 우리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무슨 말씀을 했기에 이분이 믿었나, 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열어봐 주시면 창세기15장1절에서5절 말씀에 아브라함이 믿었다는 겁니다, 창세기14장은 무엇입니까, 중동전쟁이야기입니다
그리고는 중동전쟁이 끝난 다음에 아브라함이 거기에서 승리해서 전리품을 가지고 살렘 예루살렘에 방문하셔서 전리품의 십 분지 일을 거기에 있는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드렸습니다, 그 멜기세덱이 누굽니까,
예수님이십니다, 그렇게 드리고는 자기 거주지인 헤브론에 내려가 있다가 15장이야기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분에게 나타나신 겁니다,
나타나셔서 하시는 말씀이 나는 너의 방패요 큰 상급이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무엇이라고 그러느냐면 저는 자식이 없습니다, 나의 상속자가 하나 있다고 하면 다메섹사람으로 하인이나 또는 아들로 한분 데리고 있는 엘리에셀이라는 남자가 있었는데 이 사람을 나의 상속자 나의 상급으로 하겠습니다, 라고 이렇게 말하니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시는 장면이 그 사람은 네 후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네 몸에서 난 자가 네 후사라는 겁니다, 미래형입니다 그런데 이때만 해도 사라의 나이도 꽤 많고 아브람도 나이가 많아서 애기를 가질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네 몸에서 난 자가 네 후사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여호와께서 이분에게 밖에 별을 좀 봐라 그러면서 너 후손이 저 뭇별이 많은 것처럼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네 자손이 많을 것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때 아브람의 환경을 봐서는 도저히 이 말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말인데 이분이 이 말씀을 믿었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창세기15장6절에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이삭을 약속했는데 환경으로는 불가능한데 그것을 그냥 믿었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의인이 되었는데 의인이 되므로 해서 이분이 받은 혜택이 있었습니다, 의인소리를 들으므로 해서 해택이 다윗에게 하신 말씀인데 시편32편1절2절입니다, 다윗이 주전1천년에 하신 말씀을 아브라함을 상대로 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본문 로마서4장 본문에서 바울이 인용을 합니다, 이 말씀을 뭐라고 인용하느냐면 의인이 받은 혜택이 뭐냐면 아브라함이 의인이라는 그런 칭호를 받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불법이 사함을 받았고 의인이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그분의 죄가 가리움을 받았고 그분이 지은 죄를 하나님이 인정하지 안했다는 겁니다, 의인이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오늘 본문에서 하십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에게 질문이 던져집니다, 어떻게 의롭지도 않고 경건치도 않았던 아브라함이 여호와하나님이 너 후손이 이렇게 많을 것이라고 말할 때 어떻게 믿게 되었나요,
어떻게 이해가 안 되는 이런 말에 믿는 일 까지 일어났습니까,
그래가지고 이런 혜택을 받게 되었습니까,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어떻게 아브라함이 이런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 까요 우리가 환경을 보면 그분의 성품을 보면 도저히 이게 불가능한 겁니다,
그런데 창세기18장3절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입은 자라는 겁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사라도 당신 앞에서 은혜를 입은 자라고 고백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신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래서 칼빈주의에서는 항상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주권인데 이 주권적인 하나님이 은혜를 어떤 사람에게 베푸느냐면 겸손한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라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겸손한자에게 잠언3장34절에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선천적으로 이렇게 의롭지도 않았고 경건치도 않았지만 하나님 앞에서 겸손했던 사람이었다고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그분을 만들어 놓은 겁니다, 겸손한사람 그러니까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그릇이 준비된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우리 알다시피 이분이 겸손했다 그래서 온전히 겸손한 것도 아닙니다,
이분이 자기 고향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 여호와하나님이 나타나서 너 고향을 떠나고 친척과 부모를 떠나라 그럴 때 이분이 그때 바벨론 신을 믿었던 사람입니다, 그럴 때 이분이 겸손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랬습니다,
그때 이분이 그래요 그럼 떠나겠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이 겸손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우리 창세기12장1절이고 창세기12장1절에 이 말씀으로 고향을 떠났다는 겁니다, 또 부모를 떠나라 했는데 부모님을 모시고 또 자기 조카 롯을 데리고 갔기 때문에 그 말씀을 100% 순종하지 않았지만 고향을 떠난 겁니다, 그 하나는 지켰습니다,
이것을 스데반이가 설교할 때 이 말씀을 하는 겁니다,
사도행전7장1절에서4절에 스데반이가 그래서 이분은 겸손했던 사람입니다 완전한 겸손은 아니지만 떠나라 그러니까 이분이 떠났던 겸손했던 사람이니까 예수님께서 이분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겁니다,
은혜를 받으니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믿음은 그냥 생머리로 되는 게 아니고 은혜가 주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2장8절에 은혜로 인하여 믿음을 발휘한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구원받는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는 것이 은혜가 주어져야 되는 겁니다,
그냥 생머리로 되는 게 아닙니다, 밖에 나가면 우리보다도 더 똑똑하고 논리적이고 더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이 깔려 있는데 이 사람들은 아무리 말해도 믿음을 발휘를 못하는 겁니다, 왜 그러느냐면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니까 저나 여러분은 저에게 예수님.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이것이 내 생머리로는 안 되는데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네요, 라고 항상 고백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이렇게 말할 때 마다 예수님 입장에서 그러는 겁니다, 너 참으로 겸손하구나, 너 참으로 겸손하구나,
이 겸손한 자에게는 더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겁니다, 겸손한자는 은혜를 계속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계속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인의 칭호를 받을 때가 언제였습니까, 라고 바울이 질문을 하는 겁니다, 때가 언제였습니까,
그러면서 바울이 거기에 대한 대답이 뭐냐면 할례받기 전이다 그러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받기 전이다 이때에 의인의 칭호를 받았다는 겁니다,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왜 할례받기 전인가 하면 창세기15장을 다시 한 번 열어보세요, 창세기15장6절에 줄을 그으시고 의인의 칭호를 받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16장16절을 보시면 거기도 줄을 그어놓으세요,
아브라함이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았다고 써 놓았습니다,
그러면 창세기15장6절에는 이스마엘이 없었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나이가 몇 살 때인지 모르지만 15장6절에 의인의 칭호를 받았을 때는 분명 86세 이전입니다, 분명히 86세 이전에 의인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86세 때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러고 있다가 99세가 되었을 때 헤브론에서 창세기17장을 보시면 99세가 되었을 때 이스마엘이 13살 때 이때 여호와하나님인 예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가지고 아브라함과 계약을 하시는 장면입니다, 아주 유명한 계약입니다,
계약을 하시면서 이것은 영원한 계약이다 그러시는 겁니다,
17장4절에 너 이름은 본래 아브람인데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아브람이란 뜻은 귀한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아브람은 고귀한 아버지라는 뜻인데 이름을 바꾸면서 하시는 말씀이 아브라함이다 17장4절에 열국의 아버지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사람만의 아버지가 아니고 모든 만민의 아버지다,
라는 이름이 아브라함인 겁니다, 그리고는 이분이 그러시는 겁니다,
가나안 땅 전체를 내가 너에게 영원한 기업으로 주겠다,
이분은 그 당시에 헤브론에서 이민자로 잠깐 방문자같이 있을 때인데 가나안 땅 전체를 너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겁니다, 17장8절에 그리고는 이 언약을 너와 나와 표준으로 하기위해서 내가 너에게 말하니 할례를 받으라, 할례는 이 언약의 표준으로 이분이 화장실갈 때마다 이 언약을 생각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후손들 전부 할례를 받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언약을 대단히 중요한 언약입니다,
그러니까 태어 난지8일 만에 남자들을 할례 시켜라,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아브람이라고 할 때는 유대인의 조상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하면 유대인차원에서 벗어나서 만민 중에서 의인이 된 만민입니다 믿음으로 은혜로 믿음을 표현한 사람들을 의인입니다, 소위 그런 분들이 크리스천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아버지라는 겁니다, 유대인만의 아버지가 아니고 이제는 만민의 아버지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아브라함처럼 은혜를 받아야 되고 믿음을 표시해야 되는 겁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믿음으로 예수님이 이런 분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아야 됩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내가 딱 끼고 있는 겁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게 되는 겁니다, 이것은 생머리로는 안 됩니다 은혜를 받아야 되는 겁니다, 그다음에 은혜 플러스 능력을 받아서 말씀의 능력을 받아서 내가 이제 믿음이 나와서 입으로 시인하는 겁니다,
이것을 제일 먼저 보여 준 분이 아브라함이라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이걸 할 때 이름이 바뀌기 전입니다 그러면서 이름이 바뀌기 전에 했기 때문에 할례와는 관계없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은 우리가 할례 받았으니 우리만 하나님의 자녀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할례받기 전에 그러니까 이 언약이 있기 전에 이미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의인의 칭호를 주었기 때문에 이방인들도 다 의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해주는 겁니다, 할례 안 받은 사람도 의인이 될 수 있다,
라는 것을 시사해주는 겁니다, 사라도 보면 사래라고 그럽니다,
사래라는 뜻은 공주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분도 사라라고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열국의 어머니 17장15절16절입니다, 그리고는 아들을 낳을 텐데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고 까지 준 겁니다, 19절에 이때가 이스마엘이 13세 되었을 때입니다 그래서 분명 100세 되었을 때 아브라함이 창세기21장2절에 그랄(브엘세바)에서 이삭이 출생하였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아브라함이 할례받기 전에 의인의 칭호를 받았다, 라는 말은 뭐냐면 할례가 없을 때 의인의 칭호를 받았다는 겁니다, 이 말은 뭐냐면 이방인들도 의인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바울이 본문에서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은 유대인의 조상이 되지만 만민의 조상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은 이방인들이 믿음으로 예수님을 인정하는 그러한 일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다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게 되는 역사가 일어날 터인데 아브라함이 대표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만민의 영적아버지라는 겁니다, 오늘 이렇게 설명하는 겁니다, 이걸 기초로 해서 중요한 말씀들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구약은 신약의 예표 또는 그림자 또는 모형 비유로 보면 아브라함부터시작해서 아브라함의 육적후손들이 이스라엘사람들의 모습을 그림자로 보여준 게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에게 보여주느냐면 신약의 기독교인들의 모습들을 구약의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보여주는 겁니다,
그림자로 하나님의 자녀들인 이스라엘사람들을 통해서 신약에서 평소에도 많이 공부했지만 제가 간단하게 정리해드리겠습니다,
어떻게 보여주느냐면 구약에서 이스라엘사람들은 하나님이 애굽나라 사람들과 비교를 시키면서 그러는 겁니다, 애굽이라는 나라는 이 세상에 사탄이 지배하는 이 세상입니다 그리고 애곱 왕은 사탄으로 간주하는 겁니다,
그리고 애굽 백성들은 사탄의 자녀로 이렇게 비유하는 겁니다,
그런 속에다가 하나님의 자녀인 이스라엘사람들을 오예로 그 속에 집어던져버린 겁니다, 그래서 똑같이 우리가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 안에 소수의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고 있는 거나 똑같은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임금인 그 임금의 노예로 우리가 사는 거나 마찬가지인 겁니다, 지금 이 세상크리스천들은 우리가 지배세력이 아닙니다, 이같이 노예로 집어 던졌다가 언젠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끄집어내어야 됩니다, 언젠가는 구원을 시켜야 되는 겁니다,
구원시키는 방법을 보면서 우리가 배우는 겁니다,
신약의 기독교인들이 구원받는 모습을 이분들이 구원을 어떻게 받았습니까, 어린양의 보혈로 구원받았잖아요, 그래서 유월절어린양의 보혈로 노예 된 이스라엘사람들이 거기서 구원받고 나왔습니다, 똑같이 신약에서도 예수그리스도 십자가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구원받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겁니다, 출애굽이 구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구원받은 사람들이 구원받아서 나올 때 분명히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게 뭐냐면 내가 너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 그랬습니다,
너희들이 애굽에 가서 400년 동안 노예로 있다가 다시 가나안 땅으로 오리라 창세기15장13절에서17절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구원을 받아서 애굽에서 나왔으면 어디로 가야 됩니까, 가나안 땅으로 가야 되는 겁니다, 최종목표가 그런데 신기한 게 가나안 땅으로 보내지 않고 이분들을 광야로 보낸 겁니다, 광야로 그래가지고 40년을 거기서 살게 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인데 광야에서 산겁니다, 본래의 종착역에 가지 않고 하나님이 그렇게 이분들을 인도하신 겁니다, 광야에 살면서 구원받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 거기에서 삶이 나무도 없고 물도 없고 삶이 아주 어려웠습니다, 애굽에서의 삶이 훨씬 좋았습니다, 먹을 것도 많았고 그래서 이분들이 불평을 하는 겁니다, 구원에 대한 감사도 없었습니다,
고마운 마음도 없고 감격도 없고 아예 다시 돌아가자는 마음이 더 많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의 구원받는 사람들이 이런 모습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세에게 모세야 광야에 사는 이 사람들이 열 번이나 여호와를 시험했다 열 번이나 민수기14장22절에 그래서 광야에 사는 사람들은 광야에 건너간 사람들은 죽을 때 까지 40년간 거기 있었다는 겁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기독교인들이 똑같이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은 것에 대한 감사도 없고 애굽을 더 좋아하고 이 세상을 더 좋아하고 그냥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문화와 음식과 기타 등등 가치기준이 그 쪽을 더 좋아하는 겁니다,
이런 기독교인이 있을 것을 하나님이 지금 이스라엘역사 속에서 나타내 주시는 겁니다, 두 번째로 이분들이 다 40년 지난 후에 광야에서 태어난 2세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지만 이 안에서 전쟁을 해서 땅을 정복하는 일들을 이분들이 하는데도 능력이 나타나서 사탄의 세력이 가나안 세력을 무찌르고 땅도 점령하고 다시 말하면 전도도하고 선교도 하고 교회개척도 하고 여러 가지 일들을 하는데 이스라엘사람들이 그 안에서 우상을 동시에 같이 섬기는 겁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우상을 섬기는 겁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 소수를 빼놓고는 우리 봤지만 북이스라엘에 왕이 20명 있었지만 그중에 우상을 어느 정도 타파하고 예수님만 섬겼던 분은 11대 왕 예후 왕입니다, 그리고 남 유다는 20명의 왕중에서 6명이 우상을 일부만 타파하고 그랬습니다, 3대 왕 아사, 4대 왕 여호사밧, 8대 왕 요아스, 9대 왕 아마샤, 10대 왕 아샤랴(웃시야), 11대 왕 요담 이 왕들은 그래도 예루살렘에 있는 우상들을 타파해 버렸지만 산당에 있는 우상들은 그대로 놓아두었습니다,
나머지 20명의 왕 중에 6명을 제외한 나머지 왕들은 우상으로 가득채운 겁니다, 그중에서 우상을 완전히 타파했던 왕 2분이 계십니다,
예루살렘성전에 있는 우상을 완전히 타파해버리고 산당도 타파해버린 두 왕이 계십니다, 13대 왕 히스기야, 16대 왕 요시야 그러니까 진짜 하나님만 사랑했던 왕은 이 두 분입니다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왕입니다 40명의 왕 중에서 두 사람이니까 5%밖에 안 됩니다 이렇게 가나안 땅에 들어갔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갔지만 이런 우상 창조목적에 어긋난 행동들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 왔다는 겁니다, 똑같이 신약에서도 그대로인 겁니다,
신약에도 이런 교계 영적지도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겁니다,
과거2천년 기독교역사를 보면 그렇게 해 왔습니다, 그리고는 가나안 땅에서 우상을 섬기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 5%는 선지자들 그래서 선지자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23장37절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아. 유대인들아 내가 너희들이 구약 때 너희들이 그렇게 우상을 섬기기에 내가 선지자들을 보내가지고 우상을 섬기지 말라 했더니 너희들이 여호와 이름으로 그 선지자들을 돌로 쳤다 그럴 때마다 내가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계도 이런 모습 그대로입니다
우상을 섬기지 않는 영적 사람들은 소수라는 겁니다, 대부분이 우상을 섬긴다는 겁니다, 그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겁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성서에서 그것을 다 보여주신 겁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문제가 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로마서1장17절에 그래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래서 우리가 다 구원을 받은 겁니다, 무엇 때문에 은혜로 인해서 우리가 믿음을 발휘했는데 그래서 우리가 다 의인이 된 겁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는데 그런데 의인인데 이스라엘사람들도 의인인데 그런데 우리가 비추어 보니까 광야의 사람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우상섬기는 사람들 또 우상 안 섬기는 사람 이렇게 세 가지로 구별이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같은 믿음을 가지고 이렇게 의인이 되었는데 의인이 된 후에도 또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의인이 된 후에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의인이 된 구원이 되는 은혜 플러스 구원받는 사람들이 또 성화되는 하나님 예수님을 닮아가는 은혜가 필요하고 믿음이 필요한 겁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두 가지 믿음입니다, 구원을 향하는 믿음과 성화되는 믿음이 또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이 성화되는 믿음은 최소한 세 가지 하나님의 자녀를 보듯이 믿음의 분량이 다르다는 겁니다,
믿음의 분량이라는 단어를 바울이 씁니다, 믿음이 같은 하나님의 자녀인데 하나님의 자녀가 은혜를 따라서 믿음의 분량이 다르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광야스타일로 사는 사람이 있고 또 우상 섬기는 가나안에 사는 사람과 우상을 전혀 안 섬기는 사람과 구별이 된다는 겁니다,
신기한 게 바울도 이것이 미스터리라는 겁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인데 믿음의 분량이 다르나, 입니다, 그래서 좀 더 깊이 들어가서 믿음에 대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믿음의 원천이 무엇입니까,
믿음의 발원지가 그러면 하나님의 은총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 은총은 하나님의 호의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호의를 베푸시는 겁니다, 그분의 주권에 의해서 그래서 믿음의 발원이 어디냐면 하나님의 은총이 주어지는 겁니다, 그것이 발원지입니다 에베소서2장8절에 그러면 은총이 주어진 이 믿음이 성령의 은사 중에 하나입니다 성령의 은사 고린도전서12장8절에 주욱 보면 9개의 은사가 있는데 그중에 한 은사가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은사 중 하나가 믿음이다 고린도전서12장9절에 보면 그런데 고린도전서12장11절에 똑같은 내용 속에서 그러는 겁니다,
은사 중 하나인데 성령의 뜻대로 나누어 주신다 그랬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다 믿음의 은사를 가지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나누어 주신다 그러는 겁니다, 은사의 분량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많이 주고 어떤 사람은 조금 주고 어떤 사람은 중간으로 주고 하나님의 뜻대로 나누어 주신다는 겁니다, 어떻게 나누어 줍니까 로마서10장17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해주는 겁니다, 먼저 믿음이 생기려면 그래서 믿음이 들으면서 나며 들으면 하나님의 말씀이다, 라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던지면 그 말씀을 착착 빨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냥 적당히 듣고 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은혜가 있으면 말씀을 쭉쭉 빨아들이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냥 적당히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믿음을 전하려면 들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서10장10절에 입으로 시인까지 가는 그것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나에게 주신 은혜의 분량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볼 때 믿음의 분량에 따라서 다른 눈을 가져야 됩니다, 은혜에 따라서 믿음의 분량이 어떤 사람은 크고 또는 많고 강하고 또는 자라고 이런 일들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분량이 적다가도 시간이 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받고 하면서 분량이 점점 많아질 수가 있는 겁니다,
믿음의 분량이 발전되는 겁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입니다, 아까 봤지만 광야사람의 믿음 가나안에 들어 왔지만 우상을 섬기는 믿음 또 우상을 전혀 안 섬기는 믿음 이렇게 구별되듯이 기독교인들도 이 믿음의 분량이 다르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빌립보서1장25절에 너희들이 믿음의 진보가 있음을 내가보고 기쁘다 그랬습니다,
이 믿음의 진보라는 단어를 씁니다, 똑같이 데살로니가후서1장3절에 너희들이 믿음이 자꾸 자라나는 구나 그러면서 감사하다 그랬습니다,
믿음이 자라나는 구나 또 고린도후서10장15절에 너희들 교인 중에 믿음의 분량이 자라나는 것을 내가 보고 기쁘다 똑같이 바울의 서신이나 야고보나 베드로 서신 속에 들여다보면 하나님이 예정하셔가지고 믿음을 크게 하고 강하게 하고 예를 들면 세 번째 믿음을 가지도록 하는 예정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냐면 용광로 속에 집어넣습니다, 용광로 속에 집어넣어가지고 여러 가지로 어렵게 만드신 다음에 그 안에서 믿음의 시련을 격어면서 그 믿음의 시련이 나중에 때가 되면 어떻게 되느냐면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칭찬과 존귀히 여김을 받도록 만드는 그러한 일한다는 겁니다,
베드로전서1장7절에 베드로에게 그랬습니다, 믿음의 시련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겁니다, 외냐면 생머리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예정 속에서 저 사람 믿음을 크게 만들어야지 하면 그만큼 크게 하게끔 하기 위해서 믿음의 시련을 허락하신다는 겁니다,
그게 없이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도 이 경험을 하였습니다,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바울의 제자들 베드로의 제자들 다 이 경험을 한 겁니다, 믿음의 시련을 야고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고보서1장2절에서4절에 1장12절 그러면서 이 믿음의 시련이 있을 때 너희들은 기뻐해라 이것이 어느 정도 때가 되어 잘했다 하면 면류관을 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서1장17절에 믿음의 발전이 일어나는데 믿음에서 믿음으로 발전하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NO1믿음에서 NO2믿음으로 옮겨가고 N03믿음으로 복음을 깨달은 사람에게는 이 믿음의 발전 과정이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래서 성경을 보면 믿음의 수준에 따라서 영적으로 여섯 단계하나님의 자녀들이 있음을 우리가 배웠습니다,
믿음의 분량에 따라서 첫 단계가 영적 유아기(네피오스) 두 번째가 영적 어린이(파이디온) 세 번째가 영적 사춘기(테크논) 네 번째가 영적 청년기(테아니스코스) 다섯 번째가 영적 아들(휴이코스) 여섯 번째 영적 아버지(파텔르) 이렇게 여섯 단계로 성서에 보면 믿음의 분량에 맞추어서 계층이 있음을 볼 수가 있는데 우리가 이것을 셋으로 대변하면 영적유아와 영적 어린아이를 첫 번째 믿음의 소유자 첫 단계로 광야의 기독교인들로 우리가 보면 되겠습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사춘기와 청년기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우상을 섬기는 기독교인들의 단계로 보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아들과 아버지는 세 번째 믿음의 단계로 가나안에서 우상을 타파하고 지상계명과 자상사명에 순종하는 자들로 보면 되겠습니다,
이것을 머릿속에 두시고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이 믿음은 무슨 믿음을 말하는 가 우리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 믿음의 소유자들은 어떤 믿음의 소유자들입니까, 그분의 믿음은 구원을 향한 믿음을 가진 분으로 그분은 다른 믿음이 없습니다, 구원을 위한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입니다
고린도전서2장5절에 구원에 관한 믿음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하박국2장4절 말씀을 로마서1장17절에서 인용을 했는데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 암이라, 이때 믿음은 무슨 믿음이냐면 구원을 지칭하는 믿음입니다,
그다음에 사도행전20장21절에 내가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하나님에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증거 한 것이니라,
그때 이 믿음은 구원을 향한 믿음을 바울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로마서1장16절에도 믿음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럴 때 믿는 자 할 때 이것은 무슨 믿음입니까, 구원을 지칭하는 믿음입니다, 로마서1장17절에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할 때 이 믿음은 구원입니다 로마서3장22절에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는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라 다 구원과 관계 된 겁니다, 로마서3장28절에도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가 아니고 믿음으로 되는 줄 너희가 알리라 이 믿음은 이 믿음은 구원과 관계 되는 믿음입니다, 갈라디아서2장16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에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믿음입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은 어떤 혜택을 입습니까,
첫째 심판에 이르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영생을 받게 됩니다,
요한복음5장24절에 그리고 영원한 멸망을 받지 않습니다,
요한복음3장16절에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요한복음1장12절에 갈라디아서3장26절에 이렇게 이런 믿음이 그래서 디모데후서3장15절에는 디모데에게 바울이 말하는 겁니다, 너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공부했지 이 성경은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는 책이다 그랬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예수님의 십자가사건도 깨닫고 구원에 이르게 하고 믿음을 만들어주는 지혜의 책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이런 구원과 관계되는 믿음이 첫 번째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도 삶에 변화가 안 된 사람들이 여기에 속하는 겁니다,
바울의 편지를 보면 그분의 편지 그의 대부분이 이분이 개척한 교회 교인들이 대부분이 첫 번째 믿음 속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구원은 받았는데 삶의 모습이 변화지 않는 겁니다, 믿음의 분량이 아주 없는 겁니다,
조금 밖에 그러니까 서신에서 너희들 좀 더 믿음을 키우라 좀 더 변해라 그래도 죽으라고 안 변하는 겁니다, 2천년 기독교역사속에서도 똑같은 모습이 오늘날 우리에게 까지 있는 겁니다, 바울도 이것이 미스터리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날도 이 수준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우리나라는 모르겠지만 미국에 이런 걸 이야기하는 신학자들이 그럽니다, 왜 미국에 썬데이 크리스천들이 많으나, 그것은 노미날 크리스천이라고 그럽니다,
오늘날 미국교회에 가장 큰 이슈가 뭐냐 할 때 명목상기독교인들이 60%에서70%의 크리스천은 대부분 썬데이 크리스천들 노미날 크리스천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계의 가장 큰 문제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미국만이 아니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고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 사이에 이 문제로 그대로 상존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기도생활도 안 합니다,
성경을 읽지도 않습니다, 교회출석도 매주 하는 사람도 있고 또는 가끔 성탄절이나 부활절이나 특별한 날에만 참석하는 사람들 교회행사에 별로 참여도 하지 않고 이분들은 똑똑해가지고 교회사역자들이나 교회에 자기 이성적인 시각을 가지고 비평하고 성경도 전혀 모르면서 아는 체하고 성경 말씀조각을 여기저기에서 가져와가지고 잘난 체하며 떠들고 그럽니다,
전도에 관심도 없고 선교에 관심도 없고 헌금은 가끔가다가 형식적으로 안내면 창피하니까 조금씩 내고 예배를 참석해도 잡생각하고 있고 그리고 비평이나 하고 구원에 대한 감사도 없고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대부분이 그럽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이 많아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 목사님 왜 많아야 됩니까, 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저쪽나라가 계층사회입니다 그래서 하층계급의 백성들이 많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광야의 40년의 기독교인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이런 사람들이 많을 것을 예표로 보여 주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2천년 동안 이런 사람들이 기독교 교계에 주종을 이루었던 겁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뭐냐면 나는 거기에 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주님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저는 이 그룹에 안 끼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문제는 나입니다 나, 이 시스템을 우리가 안 다음에 두 번째 단계의 믿음의 소유자들을 보면 첫 번째 단계보다 조금 업그레이드 된 사람입니다
이분들은 영적사춘기나 영적청년기의 기독교인들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분들은 신앙생활 열심히 합니다 기도도많이하고 새벽기도도 하는 사람도 있고 금요철야 작정기도 예배도 참석 잘하고 수요 금요예배 잘 참석하고 헌금도 십일조 잘 내고 감사헌금 건축헌금 선교헌금 특별헌금 잘 냅니다,
성경공부도 잘하고 세미나에도 많이 참석하고 신학교에 다니는 분도 계시고 전도, 선교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분들은 능력이 있어가지고 기도하면 병도 낫게 하고 귀신도 쫓아내는 능력을 발휘하고 가정사역도 잘하고 전도 선교훈련 잘 가르치고 제자훈련 잘 가르치고 이렇게 하는데 이분들의 초점이 어디에 있느냐면 이 세상에 가 있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믿으면 잘 된다 예수 이렇게 열심히 믿고 기도생활 열심히 하고 교회생활 열심히 하는 것은 내가 이 세상에서 복 받기 위해서다 내 자녀가 복 받기 위해서다 이것을 우리가 기복신앙이라 그럽니다, 그리고 번영신학이라 그럽니다, 이렇게 예수 열심히 믿는 사람들 이 세상에서 내가 이렇게 축복받고 이런 시각을 가지고 신앙생활하고 있는 사람들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하면 교회가 성장되고 교세가 확장되고 교인들이 증가되고 헌금도 많이 들어오고 그러니까 이렇게 해야 됩니다
할례루야, 아멘 하면서 열심히 하는 겁니다, 그래서 교인이 많아지면 더 유명해지고 TV에 나오고 여기저기에 부흥사로 다니고 사람들이 볼 때 저 사람 성공한 목회자다 그런데 보이는 쪽에만 관심이 있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영적 시각으로 볼 때 아까 썬데이 크리스천들은 영적장님 영적으로 눈 가린 자 보이지 않으니까 그런 겁니다, 두 번째 이분들도 눈은 떴는데 시각이 이 세상에만 보이는 이런 기독교인 이라는 겁니다,
이 세상만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마태복음6장에서 그랬습니다, 이 세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영적 거룩한 행위들을 잘 한다는 겁니다, 왜냐면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구제도 잘하고 금식도 종교행위는 잘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계에 많이 일어날 것을 예수님이 예언하셨습니다,
마태복음6장에 그런데 예수님이 그럽니다, 저분들 열심히 하는데 상은 이미 이 세상에서 다 받았다는 겁니다, 저쪽 세상에 가면 상이 없다는 겁니다,
이런 사춘기 청년기적인 크리스천들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보면 우리 한국교계에 이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하면 그 중에 하나가 이 문제라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번영신학 기복신학 예수 믿고 잘 되자 성공하자 그러다 보니까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신앙생활 하니까 목회자들 끼리 모여가지고 서로 높은 자리 가지려고 그러고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앉으면 그 사람 깎아내리고 왜 이래야 됩니까,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그러니까 세 번째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은혜를 받지 못한 겁니다,
첫 번째 두 번째 믿음까지는 받았는데 세 번째 믿음까지 들어가려면 은총을 받지 못한 겁니다, 그런데 나빠서가 아닙니다, 이분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겁니다, 두 번째 믿음에 관한 이야기들을 성경에서 보면 첫째 마태복음8장10절에 백부장이 자기 하인이 중풍 병들었을 때 예수님 보고 예수님 우리 하인 좀 고쳐주세요, 그러면서 예수님 갈 필요 없이 예수님이 말만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뭐라면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백부장이 가졌던 믿음을 무슨 믿음입니까,
두 번째 믿음입니다, 백부장이 가졌던 것은 예수님은 병고쳐 주시는 분이다, 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걸 우리가 구별할 줄 알아야 됩니다, 저쪽 세계에 가고 싶은 믿음이 아닙니다, 당장 지금 급한 것은 병고쳐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것도 칭찬해주는 겁니다, 이런 믿음도 필요하다는 겁니다, 마태복음9장2절에 보시면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님 앞에 왔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저희 믿음을 보시고 고쳤다는 겁니다,
그때 그 믿음은 무슨 믿음입니까, 예수님을 병 고치시는 분이시다, 라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필요한 겁니다, 마태복음9장22절에 보면 열두 해 혈루 병 앓은 여자가 예수님의 겉옷을 만질 때 예수님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할 때 이 믿음도 똑같은 겁니다, 예수님이 병 고치시는 분이시다 또 마태복음15장28절에 가나안여자 딸이 귀신 들었을 때 예수님께 고침을 받으려고 그러니까 제자들이 가나안 이방여자와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니까 이 여자가 개들도 부스러기를 먹는데 예수님 저를 조금 생각해 주세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러니까 이분도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이유가 예수님의 병 고치시는 소문을 듣고 따라 다닌 겁니다, 이 믿음이 필요한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두 번째 믿음이 필요한 겁니다, 마태복음17장20절에도 간질환자 이야긴데 그럴 때 예수님제자들이 간질 환자를 고치지 못하는 겁니다,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는 겁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뭐라고 그러느냐면 내 제자들의 믿음이 적은 연고다 그러는 겁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이 병 고침을 봤지만 믿음이 약했습니다,
그 당시 3년 공생애에 따라 다닐 때 그러니까 나중에 다 도망가잖아요,
예수님이 그러시는 겁니다, 너희들이 믿음이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옮길 수 있다는 겁니다, 그때 이 믿음이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이라는 것은 우리가 물리적으로 산을 옮길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산이라는 것은 우리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 내가 누구라는 것을 내가 병 고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겨자씨만큼 이라도 믿음이 있더라도 이 기적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만한 믿음도 없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사도행전3장16절에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성전 미문에서 구걸하고 있는 앉은뱅이를 고치시는 겁니다, 그때 이분들이 내 주머니에는 돈은 없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면서 믿음을 주니까 앉은뱅이를 고쳤습니다, 사도행전14장9절에도 보면 바울이 그 믿음을 발휘하는 것이 나옵니다, 사도행전16장4절5절에도 그다음에 디모데에게 디모데전서6장10절에 그랬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그러니까 지금 어떤 사람이 돈을 사랑합니까, 두 번째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게 된다는 겁니다,
돈을 많이 사랑하면 두 번째 믿음을 가졌는데 능력도 있고 말씀도 잘하고 뭐도 잘하고 다 잘하는데 돈을 사랑하면 두 번째 믿음에서 첫 번째 믿음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발전도 되지만 후퇴도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제 세 번째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세 번째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많이 했습니다, 세 번째 믿음은 소수의 나중에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지도자급의 사람들의 모습인데 이분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시각이 이 세상을 보면서 저 세상까지 올라다보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11장의 믿음이라고 제가 여러 번 이야기했습니다, 이 세상을 보는 시각이 히브리서11장13절에 이 세상은 잠시 우리가 방문하는 우리는 나그네다 잠깐 있는 곳이다, 라는 시각입니다 그리고 저 세상이 내 본향이다 14절에서16절에 그리고는 6절에 그랬습니다,
저 세상에 올라가면 상급이 주어진다, 계급이 설정된다, 라고 믿는 이 믿음이 히브리서11장의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히브리서11장을 가진 사람은 시각이 저위까지 보는 현미경시각도 가지고 있고 근거리시각도 가지고 있고 장거리시각도 가지고 있으면서 저 위쪽에 있는 테레스코프시각도 가지고 있고 또 옆으로 보는 광야시각도 가지고 있는 이런 사람들은 이 세상사는 것도 열심히 살면서 저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5%에서10%정도라고 전문가들이 보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영적아들 또는 영적아버지 또는 귀 뚫린 종 제자나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자 세상에 소금과 빛 팔복의 사람 충성되고 지혜로운 자 이런 많은 이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한 성경구절을 몇 개를 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6장30절에서34절에 공중에 나는 새들과 백합화이야기를 주욱 하시면서 예수님이 그러시는 겁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그러면서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때 믿음이 없는 자여 할 때 무슨 믿음입니까, 이 믿음은 세 번째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적은 자여 그러니까 적다는 말은 조금은 있다는 겁니다, 분량에서 조금은 있는데 꽉 차 있지 않다, 라고 우리가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사도행전6장5절에 일곱 집사를 뽑을 때 자격요건을 이야기할 때 믿음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 그럴 때 이 믿음은 무엇일까요 일곱 집사의 믿음은 세 번째 믿음까지 올라가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냥 예수만 믿는 그런 믿음이 아니고 세 번째 믿음 이런 믿음이 있는 사람 그러니까 스데반이 집사가 이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스데반이가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면 저 세계가 보이니까 저 세계를 보았으니까,
그러니까 스데반이가 하늘나라를 봤다고 그랬습니다,
사도행전7장55절에 문제는 우리가 이 믿음까지 가주는 우리교회 권속들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이게 복 있는 믿음입니다,
바나바도 어떤 사람이나 할 때 누가가 사도행전을 쓰면서 그러는 겁니다, 사도행전11장24절에 이 사람은 착한 사람인데 그런데 성령과 믿음이 충만했다, 라고 그랬습니다, 이분의 시각이 세 번째 시각으로 충만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자기 땅을 팔아가지고 교회에 바칠 수 있었던 겁니다,
시각이 저쪽시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자기가 개척한교회 안에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칭찬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빌립보서2장17절에 빌립보교회 안에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다음에 골로새교회에도 골로새서1장4절5절에 데살로니가교회 안에도 데살로니가전서1장3절에서부터10절까지 거기 보면 데살로니가교회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21장21절22절에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면서 하시는 말씀이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할 때 이 때 믿음은 세 번째 믿음을 예수님이 이야기하시는 것 같습니다, 마가복음4장40절에도 예수님이 광풍을 잠잠케 하시는 분이였는데 왜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예수님이 그러시면서 너희가 어떻게 믿음이 없느냐 이럴 때 이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제 생각에는 두 번째 믿음도 해당되고 예수님이 광풍을 지배하시는 분이라는 믿음입니다, 또는 이분이 저 하늘에서 내러온 하나님이라는 그러한 믿음 자연을 정복하시는 이러한 차원에서 예수님이 지금 믿음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믿음을 가져야 되는데 한 가지 우리가 해석하기 힘든 부분이 하나가 있습니다, 누가복음18장8절의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가르치시는데 낙심하지 말고 항상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하나의 예를 드시는 게 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에게 그 원한을 풀어달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그러시는 겁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이 말씀을 하시는 게 있습니다, 도대체 이 말씀은 어떤 믿음입니까, 지금 이 예화를 드시고는 예수님이 인자가 올 때 그 말은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본다고 가정을 하고 그럴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그때 이 믿음은 무엇입니까 이 믿음은 한 과부와 연계되어 있습니다, 낙심하지 않고 항상 기도하는 그래서 예수님께서 꼭 들어주신다는 그런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이성주의가 발달이 되어가지고 하나님의 자녀인데도 첫 번째 두 번째 정도의 믿음은 있지만 이런 믿음의 소유자가 많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디모데전서1장2절에 디모데를 보고 바울이 하시는 말씀이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야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야 그러는 겁니다, 그리고는 디도서1장4절에도 디도에게 똑 같이 같은 믿음에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야 그러니까 디도와 디모데나 바울과 같은 믿음의 소유자들입니다 두 번째 만이 아니고 세 번째 만이 아니고 두 번째와 세 번째를 다 가진 그래서 디모데전서3장13절에 디모데에게 그랬습니다,
너희가 특히 세 번째 믿음을 가지면 디모데야 너가 큰 담력을 갖게 된 단다, 그러는 겁니다, 왜냐면 세상의 환경을 무서워하지 않는 겁니다,
눈이 이 세상도 보지만 저 세상에까지도 보고 있기 때문에 담력이 생기는 겁니다, 두려움이 없어지는 겁니다, 저 세상은 보지 않고 이 세상 사람들만 보다보면 담력이 없어지는 겁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을 저쪽 세상으로 올려다 볼 수 있도록 그 사람을 가이드 해주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그러는 겁니다, 디모데전서6장11절에 디모데야 너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그러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에게 세 번째 믿음 저쪽 세계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라 이것이 쉽지가 않다 선한싸움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디모데야 디모데후서1장5절에 너는 이 세 번째 믿음을 너가 잘나서가 아니고 이 믿음이 너 외할머니 로이스에게 있었고 너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구나,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믿음은 부모에게서 전수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내 자녀들이 때가 되어서 이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엄마 아빠가 첫 번째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아이들도 그 수준으로 머물 수 있고 예외는 있을 수 있겠지만 특히 엄마 아버지가 세 번째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디모데처럼 이런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순교직전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4장7절8절에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순교1년 전입니다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디모데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내가 달려갈 길을 마치고 바울이 언제부터 달렸습니까, 주후35년부터 시작해서 주후68년까지입니다 33년 동안 달린 겁니다, 33년 동안 달려가면서 무엇을 지켰냐면 믿음을 지켰다는 겁니다, 세 번째 믿음을 가질 수 있게끔 저쪽 동네 구경까지 해온 사람입니다 3층천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은 세 번째 믿음이 뚜렷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 믿음을 지켰는데 그러면서 이 믿음을 지킨 사람은 의의면류관이 예비 된 것이 눈에 보인다는 겁니다, 나만이 아니고 이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줄 거라는 겁니다, 너도 마찬가지다 디모데야 이 믿음을 가져라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마찬가지고 결론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은총을 입으면 그게 선제조건입니다 믿음을 가지게 되고 구원을 받는 의인되는 것을 우리가 배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첫 번째 믿음을 가진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겁니다, 크리스천들은 다 여기에 해당이 됩니다, 그런데 거기에만 머물려있는 분이 있는데 그것도 은총이 임해야지만 발전이 되는 겁니다, 은총을 받도록 우리가 노력하지만 또 은총위에 은총이 필요합니다, 은총을 달라는 이런 이야기를 우리가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총의 규모에 따라서 믿음의 분량이 다른 겁니다,
그뿐 아니라 믿음의 분량이 적은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커지고 발전하고 이런 사람들도 있고 발전안하고 그대로 머물려있는 사람들도 있고 이것은 그때. 그때 얼마만큼 그분의 은혜를 받았나,
그런데 이 은혜는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창세전에 하나님의 예정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그 안에서 은혜의 사이즈가 달라진다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예정 안에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저도 그런 겁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어떤 분은 우리교회에 첫 번째 믿음을 가진 분들은 그의 없습니다, 두 번째 믿음을 가진 분들 중에서도 하이 클래스 두 번째 믿음을 가진 분들이 많이 있고 세 번째 믿음을 가지고 계신 분도 있는데 그런데 지금 저부터 시작해서 여러분들이 조금 더 높은 분량이라고 해서 작은 분량의 사람들을 함부로 무시하거나 깔보거나 비평하거나 정죄하거나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왜냐면 언젠가는 그분이 나보다도 더 큰 분량의 사람이 될 수 있는 확률이 있는 겁니다, 내가 지금 이만큼 있는데 그러니까 어떤 분들은 늦게 믿음 사람이 더 빨리 가는 사람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함부로 내 주변에 사람들을 정죄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 원칙을 깨달은 사람은 그러니까 정죄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우리 예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다음에 그분의 크심을 내가 인정하는 겁니다, 이분의 큰 그림 속에서 각자 우리를 다루고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주권적인 크심과 은혜 베푸심과 다양성을 내가 인정할 때 함부로 내가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 없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보다 지금 낮은 자리에 있는 형제자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령의 은사 중 하나가 인내를 가지고 이끌어주고 격려해주고 가르쳐주고 방향제시해주고 사랑 안에서 그러면서 우리 예수님께 맡겨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은사 중에 가장 큰 은사가 무엇이라고 그랬습니까,
사랑의 은사입니다 사랑의 은사는 함부로 가지지 못합니다,
이 믿음의 큰 시스템을 알게 되면 그리고 내 자신이 세 번째 믿음 속에 어느 정도 올라가서 그 맛을 본 사람은 내가 아가페 사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바울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이 아무리 구제를 많이 하고 아무리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아무리 방언 많이 하고 예언 많이 한다,
그래서 사랑이 없으면 다시 말하면 이 세 번째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의 사랑과 우리는 다릅니다,
완전히 차원이 다른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비전을 가지면 오래 참을 수가 있고 내가 그분을 껴안을 수 있고 무례히 행치 않고 그분에게 항상 유익되는 이야기해주고 그런 마음이 들어오는 겁니다,
이 믿음의 분량이 크진 사람은 이렇게 되는 겁니다, 왜 그럽니까,
왜 기독교인들을 싫어하고 교회를 싫어하고 왜 그렸습니까,
그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가 뭐냐면 기독교인들 중에 첫 번째 믿음의 기독교인들은 이미 기독교인들이지만 이 세상 사람과 같이 사니까 괜찮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두 번째 믿음의 크리스천들이 문제입니다 뭐냐면 두 번째 믿음의 크리스천들이 말하는 것이 뭐냐면 예수 안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 믿어라 예수 믿으면 복 받는데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
그러니까 예수 안 믿으면 너는 마귀의 자녀들이다 하면서 이런 식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들이 두 번째 믿음의 사람입니다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기도생활 하는데 예수 믿으면 너희들 복 받는다 그런데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보고는 너희들이 전하는 복음이 절대적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너 행동을 보면 너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너는 기도 열심히 하고 산기도 다니고 하는데 너 사업 때문에 너 돈 벌기 위해서하지 그러니까 말하는 것 하고 상당히 차이점이 있는 것을 이분들이 보는 겁니다,
너 네들이 절대적으로 가치가 있는 종교라고 이야기하면서 행동하는 것 보면 상대적인 가치가 있는 종교를 믿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니까 외식주의고 너 네들은 이중인격자들이고 이렇다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으면 서로 사랑해라 하는데 교회들 봐라 그냥 모이면 싸움질 하지 않느냐 우리나라에 고소사건 중에 18%가 교회에 관계되는 고소사건이라는 겁니다, 20%로 따지면 5분지1입니다 그런데 서로 사랑하라.
사랑하라 하면서 대표적으로 싸움질 하는 게 기도교인들인 겁니다,
그러니까 안티 기독교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말세가 되면 더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교입장에서 보면 저 사람들 우리 법적으로 고소하자 우리를 망신시킨다, 이것은 아닙니다,
그걸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변해야 되는 겁니다, 우리는 법정에서 싸움하는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왜 로마 가톨릭의 법을 저렇게 좋아합니까,
왜 로마 가톨릭을 사람들이 점점 좋아합니까, 그분들은 이 복음을 상대화시키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두 번째 믿음까지 보는 거지 세 번째 믿음은 이분들은 안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두 번째 수준에 있는 이 세상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문제는 세 번째 복음을 전하는 우리들이 핍박받을 것을 인기 없을 것을 각오하고 있어야 됩니다,
그게 복인 겁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저희들이 오늘 바울을 통해서 주신 예수님의 은혜로 우리가 믿음을 가지게 되면 의인이 된다고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의인이 된 후에도 또 계속적인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필요함을 보았습니다, 이중에도 은혜의 분량에 따라서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믿음의 소유자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느 위치에 있던지 또는 내가 제3의 위치에 있더라도 모든 사람들을 우리가 껴안아주고 이런 천국시스템이 있어야만 된다는 것을 알기에 다른 사람을 비교해서 또는 경시하거나 이러한 일들을 하지 않게 해주시고 오히려 주님의 백성들이 믿음이 자라나도록 우리가 격려해주고 가르쳐주는 이 일에 동참하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TFtMaExC9w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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