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0강, 예수와 함께 세례 받은 우리(롬7장1절-23절) 2014년11월16일
로마서는 이해가 쉽지도 않고 또 상당히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잘 집중해서 들으시길 바랍니다, 지난시간에 말씀하신 제목은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는 말씀으로 했습니다, 한사람 아담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 되었는데 또 두 번째 아담인 예수님 때문에 모든 사람이 할 때 모든 사람은 칼빈주의에 의하면 하나님이 선택한 모든 사람은 복을 받게 된다,
구원 받게 된다, 라는 개념으로 지난시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오시는 예수님의 표상이다 그럴 때 타입(Type)이라는 소리는 예표라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예표인데 안티 타입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이렇게 생각하십니다, 안티라는 말은 뭐냐면 그리스말로 반대로 이런 뜻이 있습니다, 또는 대신하여 그래서 반대되는 예표다 이런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안티타입이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면 아담은 저주의 전위 자였는데 예수님은 복의 전위자라는 의미에서 안티타입으로 다시 말하면 반대로 나타나신 패턴은 같은데 반대로 나타나신 분이시다, 라는 겁니다,
저주의 전위 자였는데 복의 전위자로 이런 개념이니까 그냥 참고로 아시고 우리가 지금 로마서5장을 공부하고 오늘은 6장으로 들어갑니다,
로마서5장은 원칙적으로 구원론을 설명하는 장입니다 이것은 뭐냐면 한사람의 죄의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인이었는데 한사람의 의의 행위 때문에 하나님이 택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 라는 그게 큰 제목입니다 로마서5장은 그러면서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뭐냐면 구원받는 전제조건이 은혜가 임해야 된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강조하는 겁니다,
은혜 없이는 안 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선택한 사람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그래서 그 은혜에 의해서 이분이 자유의지를 발동해가지고 예수님을 구원자로서 고백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 자유의지도 은혜 속에서 자유의지인 겁니다, 그래서 그렇지 않다, 라고 했던 신학자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펠라기우스이야기도 했고 에라스무스이야기도 했고 루터이야기도 했고 쯔빙글리 이야기도 했고 그러면서 이런 모든 분들을 종합적으로 그것을 정리해주신 분이 칼빈이다 그랬습니다, 신학적으로 이 이론을 칼빈이다, 라고 제가 말씀했는데 칼빈이 나타나면서 그 후에 아르미니우스라는 사람이 나타나가지고 이 부분에 대해서 또 반대의견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르미니우스영향을 받은 감리교 창시자인 웨슬리가 이 부분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했던 이야기를 제가 지난시간에 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6장1절에 보면 그런즉 이라는 말을 합니다, 바울은 논리적으로 사상을 전개해가기 때문에 항상 그런즉 그러므로 라는 단어를 항상 씁니다, 그러니까 사상이 연결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5장까지 다 끝내놓고는 6장에서 시작을 그런즉 이라고 그럽니다,
그러면 또 우리가 고민이 바울에게 이렇게 조명하여 주면서 그런즉 할 때 무엇을 수식하는가, 제가 이렇게 말씀을 보다보면 5장 전체를 일방적으로 수식하지만 5장 전체를 요약한 게 있습니다, 5장 마지막 3절이19절에서21절입니다,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이 말씀은 다 아는 소리입니다 이 말씀을 19절에서 종합적으로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래놓고는 그다음에 중요한 게 어떻게 의인이 되었는가, 입니다,
어떻게 그럴 때 선한행위로 의인이 되었습니까, 우리 자유의지를 발동해서 이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바울의 지금 개념은 그래서 성서에서 보면 이사야서64장6절에는 우리 인간의 선한행위는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냄새나는 걸레라고 했습니다, 이사야서64장6절에서 우리의 선한 행위로 우리가 의인이 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이렇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은혜가 선결조건입니다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발동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의 고백이 나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의인이 되었다는 겁니다, 이게 바울신학입니다
에베소서2장8절9절 말씀입니다, 이렇게 은혜를 주었기 때문에 자유의지가 발동되어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행위가 나와서 그래서 의인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9절에 내가 자유의지를 발동했기 때문에 내가 의인이 되었다고 말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의 생각 나의 의지로 나의 선한행동 때문에 했다는 겁니다, 에라스무스나 그전에 펠라기우스나 그리고 이런 사상이 루터에도 있었습니다, 루터도 이것 때문에 고민을 하는 겁니다, 이 사상이 쯔빙글리에게도 약간 있었습니다,
나중에 이 사상이 아르미니우스에게 강하게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사상이 웨슬리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상이 이것은 아니다 전적인 은혜다, 라고 말하는 분이 누굽니까, 칼빈인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제가 보면 칼빈주의자입니다, 저도 그래서 칼빈주의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전적인 은혜로 구원받은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은혜가 전제조건입니다 그래서 은혜의 성경성이라고 제가 말을 붙어봅니다, 은혜가 성결 되어야 됩니다,
그다음에 성결 되어야 될 뿐 아니라 은혜가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은혜의 절대성이라고 제가 말을 만들어보았습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그다음에 은혜의 귀중성입니다,
이 은혜가 없으면 안 되는 겁니다, 이걸 소중하게 우리가 생각해야 됩니다, 은혜의 귀중 성 그뿐 아니라 구원을 받으려면 은혜를 통해서 은혜가 구언을 완결시켜주는 것이기 때문에 은혜의 완결성이라고 제가 말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다음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이것 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은혜의 유일성이라고 또 한번제가 말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만큼 우리가 은혜를 강조해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은혜에 약한 부분이 많은 겁니다, 이 은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고 이 은혜를 알아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이 은혜를 우리가 공기로 이렇게 마음껏 마시듯이 은혜를 당연히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는 어떤 사람들은 은혜를 왜곡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은혜를 그래서 우리가 기독교역사 속에서 나온 신학자들을 보면 펠라기우스도 이 은혜문제 이것을 왜곡하고 에라스무스도 루터도 루터를 보시면 우리 지난시간에 공부했지만 루터는 솔라 스크맆투라 구원을 위해서는 솔라 스크맆투라 솔라 피데 까지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으려면 성경중심이고 믿음이 있어야 된다는 그것까지 이야기 했는데 이분은 뭐가 빠졌습니까, 솔라 그라지아가 빠진 겁니다, 그라지아는 은혜입니다 이게 빠졌습니다, 왜냐면 이분 속에 깔려 있는 게 우리 자유의지를 발동이 필요하다는 그 개념이 약간 숨겨져 있습니다,
쯔빙글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쯔빙글리도 솔라 스크맆투라와 솔라 피데의 신학을 가졌지 거기에 그라지아가 빠져버렸습니다,
아르미니우스는 정반대로 이제는 하나님이 은혜로 모든 만민이 구원을 받게 기회를 허락했지만 내가 스스로 자유의지를 발동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노력이 필요하니까 인간책임론이라는 말을 합니다,
인간책임이 따라주어야 된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인간이 같이 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신인 동력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주는 장은 열어놓았지만 사람이 그것을 따라 해야 된다는 겁니다, 사람의 자유의지를 통해서 이런 알미나안니즘의 사상을 웨슬리가 나중에 받아가지고 웨슬리도 이 부분이 강한 겁니다,
그래서 감리교. 성결교. 나사렛교단들 이런 교단들이 대표적인 웨슬리사상을 가진 교단들입니다 오늘날 W. C. C에 속해 있는 대부분의 교단들은 다 그 사상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다가 칼빈이 이 사상에 대해서 정돈을 한 것이 그래서 우리가 5대 솔라 솔라 스크맆투라. 솔라 피데. 솔라 크리스투스. 솔라 그라지아. 솔리 데오 그로리아 아주 정확하게 칼빈이 다섯 개의 솔라를 정돈해준 겁니다, 그리고는 칼빈이 5대 강령 기억나십니까,
튜립(TULIM)입니다, 전적타락(Total Depravity),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조건 없이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그분이 선택했다는 겁니다, 제한적 속죄(Limited Atonement):뽑힌 사람들만 속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able Grace):저항할 수 없는 은혜 그 은혜를 나에게 베풀어 줄때는 내가 저항할 수 없다는 겁니다,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Saints):한번 구원받으면 구원이 무효화 되지 않는 다는 겁니다, 여기에 대하여 그분이 사용하는 중요한 성경구절이 요한복음10장28절입니다, 이 말은 뭐냐면 너희들이 구원을 받을 터인데 누구든지 내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는 겁니다,
이 말씀한절만 보면 한번구원 받으면 이게 빼앗길 수 없다는 겁니다,
100%개런티라는 겁니다, 이것을 강하게 주장하는 잘못된 사람들을 하이퍼 칼비니즘 극단주의적 킬빈주의입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
이미 구원받았기 때문에 이 세상은 이미 악의 세상이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나쁜 짓 하면서 돈도 많이 벌고 이 세상에서 우리가 마음껏 살아도 된다, 심지어는 회개할 필요도 없다 그게 소위 구원파라는 겁니다,
이미 우리는 구원받았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해도 된다, 그러면 우리 다시 한 번 간단하게 왜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나, 이게 5장 마지막 절에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왜 율법을 주셨나, 이 율법을 주신 목적을 열 가지를 드렸지만 이것은 다른 차원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뭐냐면 인간이 자유의지로 스스로 선행을 하므로 의인이 될 수 없다는 그 진리를 가르쳐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가지고 의인이 될 수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을 배제시켜주기 위해서 그것은 안 된다는 것은 율법을 주신 겁니다, 그러면서 뭐라 그러느냐면 5장 마지막 절에 보면 만약에 이 자유의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자유의지로 의인이 된다고 주장하면 이걸 계속 주장하면 어떻게 되느냐면 내가 더욱 죄인임을 깨닫게 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사망이 더욱 왕 노릇하게 한다는 겁니다, 아무리해도 이게 안 되니까, 점점점 더 이게 본인이 의인이 되는 길에서 멀어진다는 겁니다, 성령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5장20절21절에서 이런 문제를 놓고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애들아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려하게함으로 이때 범죄라는 말은 원죄를 이야기합니다, 일반적인 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5장6장은 원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죄라는 것은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에 가입한 것은 원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그래서 율법에 가입한 것은 원죄의 삶이기 때문에 사망이 이때 사암은 원죄 때문에 오는 사망입니다 다른 일반적인 죄 때문에 오는 사망이 아닙니다, 율법이 온 것은 율법을 너희들이 계속묵상하며 율법을 지키다보면 아하 나는 원죄 속에서 원죄가 나를 왕 노릇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자유의지를 발동해서 원죄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원죄가 자유의지를 통해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구약에서 율법을 모세를 통해서 주어 놓고는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도록 강요를 했습니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은 특히 철저히 율법을 지켰던 분들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아무리. 아무리 철저히 지켜도 예수님이 나중에 그러는 겁니다,
제 네들 아직도 멀었다는 겁니다, 저렇게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데도 그것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구약의 이야기는 율법을 지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셔가지고 제자들에게 3년 공생애에서 처음 가르치는 게 뭐냐면 율법에 관한 걸 가르쳐주시는 겁니다,
율법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제자들은 율법에 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주 피에 묻혀있는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가르치는 겁니다, 산상수훈이 그러니까 3년 공생애를 시작할 때 주신 메시지입니다 산상수훈교육은 율법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의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특히 산상수훈에서 마태복음5장21절부터48까지 나오는 내용입니다, 5장17절을 먼저 보세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시면서 이분이 그러는 겁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그랬습니다, 이 말은 율법을 철저히 지켜라 너희들 율법을 철저히 지키라고 이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겁니다, 지키면서 뭡니까,
율법을 철저히 지키라고 강요하면서 율법의 일점일획도 너희들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철저히 지키라는 겁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뒤에 깔려있는 예수님의 생각이 무엇입니까, 너희들 율법을 철저하게 지켜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 철저히 지켜야 된다는 겁니다,
안 해보고 안 됩니다, 가 아닙니다, 철저하게 해보라는 겁니다,
그래서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너희들 알았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이야 그런데 그들보다도 더 지켜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야지만 천국에 들어간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이 너희 원죄가 해결이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놓고는 이분이 설명을 하는 겁니다, 애들아 내가 구약에서 너희들에게 준 율법은 이것은 알고 보면 이것은 가짜야 그러는 겁니다,
진짜 율법이 아니야 그것은 가벼운 율법이야 그것도 못 지키는 판에 진짜 율법을 주면 너희들 어떻게 할래,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내가 진짜 율법 말해줄까 그러면서 율법 중에 살인죄가 구약에서는 사람을 죽여야지만 살인죄지만 예수님이 그러는 겁니다, 형제를 노하게 하거나 또는 형제의 인격을 무시하거나 미련한 놈이라고 말하거나 화를 한번 냈거나 그래도 그것이 살인이라는 겁니다,
진짜 율법은 너희들이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겁니다,
두 번째 간음에 관한 이야기 기억나시죠, 이성을 보고 이상한 생각 조그만 하여도 간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만약에 눈이 그렇게 눈을 뽑아버리고 손이 그러면 손 잘라버리고 그러면 전 세계 사람들 눈과 손이 다 없다는 겁니다, 이 율법에 의하면 이 말은 뭐냐면 진짜 율법은 지킬 길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의인이 되려고 하는 이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나중에 그러잖아요, 너희들 진짜 율법은 누가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 갖다 대고 오리가자면 십리도 같이 가주어야 되고 돈 꾸어달라면 무조건 주어야 되고 달라하면 그냥 주어야 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기도하고 이게 진짜 율법이라는 겁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그런 사람 있느냐 그러는 겁니다, 오리가자면 십리 가는 바보가 있느냐 없습니다,
누가 오른뺨 때리면 화를 내면서 덤벼들지 누가 왼뺨 때려라 그러는 사람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마태복음5장 마지막에 그러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그러는 겁니다, 이게 마태복음5장의 결론입니다 이 말은 뭡니까 아버지는 온전하신 분이십니다 너희들이 아버지수준까지 가주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합니까, 가능하지 못합니다,
가능하지 못하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율법을 준 겁니다 다시 말하면 너희들의 의지로는 너희들의 선행으로는 이게 안 된다, 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준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율법을 100% 지키지 못한다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을 지킨 자로 간주 받으려면 우리에게 누가 필요한 겁니까,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 아담타락부터 모세까지 기간 동안에 율법을 주지 않았지만 그것을 가르쳤고 그다음에 지난시간에 그러는 겁니다,
율법을 받은 것이 언제입니까, 모세가1446년 그때부터시작해서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율법을 받았는데도 너희들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에게 계획하신 겁니다, 너희들은 율법 가지고는 안 된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대타로 보내줄 텐데 창세전에 이미 다 계획하신 겁니다, 그러면서 창세전에 예수님의 필요성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율법을 아담타락부터시작해서 예수님까지 율법을 주었다는 겁니다,
그 이야기가 지금 로마서5장 마지막부분인 겁니다,
19절20절 그래서 율법에 어긋난 행동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필요 없이 율법을 가지고서 덤벼드는 사람은 너희들은 심판이 따르고 영벌에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을 이렇게 오늘 설명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이분이 결론적으로 5장에서 그러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로마교회에 있는 기독교인들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 때문에 의인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죄인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제는 원죄에서 벗어났다는 겁니다, 이제는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또 사망에서 벗어난 존재라는 겁니다, 영벌에서 벗어난 존재라는 겁니다, 사망이 왕 노릇하는 데서 벗어난 존재라는 겁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예수님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11장28절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율법 때문에 율법을 지키려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율법 때문에 너희들 유대인들아 이렇게 고생하지 그런데 거기에 매여 있지 말고 율법 가지고는 안 된다, 라고 고백하라는 겁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을 내가 깨달았습니다, 율법 가지고는 안 됩니다, 라고 고백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율법에서 자유를 가지라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복음11장32절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진리를 알지니 예수님을 알지니 예수님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제 율법에서 자유를 얻으라는 겁니다, 그 대신에 그냥 자유가 아니고 예수님을 더 깨닫고 그분을 더 사랑하고 이분이 왜 인간으로 오셔서 율법에서 자유를 주셨나,
창조목적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렇게 하셨다는 겁니다, 율법에서 자유를 얻으려면 율법에 메이지 말고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율법을 주신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이 뭐냐면 창조목적을 훈련시키려고 이렇게 하셨다는 것을 깨닫고는 창조목적에 이제는 집중하라는 겁니다,
바울이 그걸 깨닫고는 갈라디아서2장19절에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그러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이제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은 성서에서는 관계가 끊어졌다는 그런 소리입니다
율법의 무용론이 아닙니다, 이것은 율법의 유용 론입니다, 절대성입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노예가 아니라는 겁니다, 19절에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그리고 20절 말씀 우리가 즐겨하는 말씀입니다, 즐겨할 때 이 말은 여러분들이 이런 의미로 즐겨하지 않습니다, 뭐라고 그럽니까,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내가 이제 율법의 저주를 없애버렸다는 겁니다, 거기에서 내가 죽었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다시 말하면 이분이 율법을 주신 목적이 우리로 하여금 창조목적대로 살도록 가르쳐주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구나,
그래서 이분이 이렇게 인간으로 내려오셔서 창세전에 인간으로 내려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이 일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려고 오셨구나,
라는 그 믿음 그 믿음으로 바울이 살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로마서6장 시작입니다 제가 서론이 이렇게 길었습니다,
그런데 이 서론이 없으면 로마서6장이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6장절에 뭐냐면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할 말이 없다 내가 잘나서 은혜를 받고 영생 받은 게 아니라는 겁니다, 내 자유의지에 의해서 영생 받은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은 적전으로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신 거랍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할 말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다음 말을 잘못오해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보세요,
그다음에 중요한 말이 그러면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이런 말을 써놓았습니다, 이 말은 여기 죄라는 것은 일반적인 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원죄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지금 은혜를 받아서 원죄 문제가 해결 되었는데 은혜를 더 받으려고 그러면 우리가 원죄를 더 짓겠느냐 이런 말이나 똑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는 원죄문제가 해결된 하나님의 자녀인데 그 원죄문제 창조목적에 위배되는 행위 어떻게 그렸냐면 루시퍼가 창조목적에 위배되는 행위가 무엇입니까,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려고 그러는 겁니다,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려는 것은 자기가 이제는 피조물이 하나님처럼 되어 가지고 피조물의 실력으로 살려고 그러는 겁니다,
이제는 하나님과 관계가 없습니다, 내 실력으로 내 인권으로 피조물의 인권에 맞추어서 내 멋대로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겠다는 그 착상이 원죄인 겁니다, 창조주와 관계가 끊어지는 그게 원죄입니다, 아담과 하와 중에서 하와가 먼저 원죄를 지었잖아요, 아담도 따라 해서 똑 같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과 독립해서 내 실력으로 내 의지로 살겠다는 인본주의적인 착상이 원조인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로마교회에 그러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하나님은 계속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니까 우리가 더 원죄 다시 말하면 창조목적에 위배되는 행동할 때 마다 그분은 계속 우리에게 은혜 베풀지 않겠습니까,
이런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뭐라고 그러느냐면 2절에 그럴 수 없다는 겁니다, 이게 중요한 개념입니다, 너 네들이 자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도 또 우상섬기고 그래가지고 우상을 심하게 섬길 때 하나님이 문제를 제기했거든요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분이니까 내가 이 원죄를 가볍게 생각하고 원죄를 좀 더 짓겠다는 겁니다,
우상도 섬겨보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별로 고맙게 생각 안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느냐 그렇게 사람들이 원할 때가 있다 하나님은 좋은 분이시니까 은혜로운 분이니까 그럴 때 바울이 뭐냐면 그럴 수 없다는 겁니다,
왜 그럽니까, 그러면서 바울이 대답하는 걸 잘 보세요,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다시 말하면 이 죄에 대하여 라는 것은 원죄입니다 원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그러니까 우리 기독교인들은 원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말은 원죄와 이제는 관계가 끊어진 우리가 그런 표현입니다 원죄에 대해서 관계가 끊어진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다시 말하면 어찌 원죄가운데서 더 살리요, 라고 그랬습니다, 더 라는 말이 한국말로 번역이 잘못되었습니다,
원어로는 에더라는 단어를 썼는데 그 말은 아직도 다시 말하면 우리는 원죄에 벗어난 사람들인데 어떻게 우리가 아직도 원죄 속에서 원죄를 짓고 살겠느냐 이런 말입니다 원죄를 해결 받은 사람들인데 원죄를 해결 받지 못한 사람처럼 우리는 살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여기서 우리가 한번 집고 넘어갈게 원죄의 죄가 무엇입니까, 원죄라는 죄는 아까 제가 말한 루시퍼의 죄. 하와와 아담의 죄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필요 없다, 라고 생각하는 하나님을 가볍게 생각하는 죄. 피조물이 창조주에서 독립하려고 하는 죄. 인본주의 사상 인간중심적인 사상에서 짓는 죄. 신분주의가 아니고 이런 창조목적에 대해서 원죄를 짓는다는 것은 우선 창조목적에 무지한 것도 원죄를 짓는 기독교인들이 이미 원죄가 해결이 되었는데 또 원죄를 지으려고 하는 그러한 기독교인들의 모습이 창조목적에 무지할 때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또는 창조목적을 가볍게 여기거나 또는 창조목적에 무관심하거나 또는 불순종하거나 또는 피조물이 대신 영광 받으려고 하거나 우리 기독교의 지도자들의 문제점들이 자기가 영광 받는 겁니다, 또는 우리가 창조주 되시는 피조물을 우상화해서 경배하고 의지하는 원죄에서 벗어난 하나님의 자녀들이 또 이런 죄를 지어면 원죄를 다시 짓는 거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기독교인 중에 우리가 이렇게 원죄를 다시 지으려고 해도 은혜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은혜로운 분이시니까 은혜를 더해주신다고 믿는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원죄를 조금 지어도 우리 피조물이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은혜를 또 베푸실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또 원죄문제를 해결하여 주실 거랍니다 이런 개념이 그러니까 바울이 그럴 수가 없다는 겁니다, 왜 그럴 수 없는가, 바울신학에서 왜 우리는 원죄에서 해결된 사람이 또 원죄의 모습을 또 우리가 닮아가지고 가는 것은 안 된다는 겁니다, 왜냐면 우리가 쉽게 원죄가 해결되었으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은혜를 또 내려주시면 되지 않습니까, 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히브리서9장12절에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사건 그리고 부활하신사건은 한국말로는 단번에 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그것도 번역이 잘못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사건은 한번만 있는 것이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선택된 사람들을 위해서 이게 자주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은 단번에 한번 은혜를 베푸신 거지 또 베풀지 않는다는 겁니다, 원죄를 해결하는 은혜는 그러니까 원죄를 해결해주신 이 은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최대의 은혜입니다, 최선의 은혜입니다 그 이상도 없고 그 이하도 없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이 은혜에 뭘 보탤 수도 없는 겁니다, 최대한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이 은혜로 자기 자신을 이 세상에 던져가지고 자기 자신이 이 은혜를 베푸신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엄청난 희생을 하시고 창세전에 이걸 계획하셔가지고 그러니까 이분이 피조물화가 되어가지고 성육신해가지고 뭘 했습니까,
이분이 인간의 원죄를 본인이 뒤집어 쓰셨습니다, 그다음에 이 죄는 간과하셨습니다, 기억나세요, 그리고 이 죄를 위해서 보상금도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엄청나게 최선을 다하시고 이제는 끝났다 한 번에 끝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피조물들이 이것을 공짜로 받았으니까 그걸 경시하고는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니까 그냥 또 원죄를 닮아가는 행동을 또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창조목적에 위배되는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했다가도 사랑이 많으시고 은혜가 많으신 분이시니까 은혜를 또 더하게 해줄 때 이렇게 할 때 바울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결코 이럴 수 없느니라,
그것은 안 된다는 겁니다, 일반적인 죄는 용서해주지만 원죄는 안 된다는 겁니다, 원죄는 지금 로마서5장6장을 일반적인 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겁니다, 이것은 원죄이슈입니다 그러면서 6장21절에서23절에 그랬습니다,
이 은혜 받을 자가 원죄의 종노릇을 다시하게 되면 사망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시 영벌로 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지만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서 원죄문제를 해결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서 이 원죄문제를 가볍게 생각하고 원죄 쪽으로 가면 케이스에 따라서 완전히 원죄를 해결해준 구원까지도 없애 버린다는 겁니다, 구원까지도 하나님의 자존심을 건들면 그래서 이 문제를 가지고 소위 지난시간에 말한 유명신학자들이 칼빈이나 알미니안주의자들이나 웨슬리 이 사람들이 이것 때문에 고민하는 겁니다,
우리 다시 한 번 보면 칼빈이 튜립(TULIP)에서 제일 마지막이 무엇입니까 성도의 견인입니다, 칼빈이 여기에서 실수를 한 겁니다,
칼빈이 요한복음10장28절에 한번 구원받으면 계속 유지된다,
하나님이 보장한다,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그랬습니다,
이 문제만 가지고 칼빈이 자꾸 고집을 부리다 보니까 구원 파 같은 사람들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무엇입니까 성경을 보니까 성도의 견인이 아니라는 겁니다, 창조의 목적에 위배되는 행위를 했을 때는 성도를 놓으신다는 것을 성서에 보면 나오는 겁니다, 원죄문제를 없애는 그래서 알미니안주의가 나타난 겁니다, 알미나안주의에 여러 학설이 있지만 그 중에 성도의 견인문제에서 알미나안주의에서 고전적 알미니안주의에서 뭐냐면 한번 배교를 하면 한번 원죄를 해결해준 예수님의 이 사건을 부인하면 그러니까 그분만이 유일한 구원 주라는 것을 부인하면 구원이 상실된다고 아르미니우스가 말하는 겁니다, 이것은 안 된다 그러니까 아르미니우스와 칼빈과는 반대사상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웨슬리가 알미니안사상을 가졌지만 같은 자유의지의 그 사상을 가졌지만 웨슬리가 하나님의 사랑이신 차원에서 성서를 보니까 이 문제를 아르미니우스와 동일하지 않는 겁니다,
웨슬리가 뭐냐면 이 문제를 본인이 만약에 회개를 하면 내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그것도 그냥 입술회개가 아닙니다, 마음속 깊은데서 회개를 하면 구원이 회복될 수 있다, 라고 보는 겁니다, 웨슬리는 그런데 웨슬리 쪽으로 봐도 맞는 말입니다 성서를 보면 예컨대 구원이 상실되는 무효 되는 성서에서 예들이 여러 군데에 있습니다, 첫째 출애굽기32장1절에서35절입니다,
이게 금송아지사건입니다 금송아지사건 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유대인들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생활양식이 신학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생활양식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약200만 명이 넘었지만 그 사람들 중 대부분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율법을 받을 때 40일 동안 이분들이 마음이 허전하니까 우리 눈에 보이는 우상을 만들자 그래서 금송아지를 만들어가지고 아론도 거기에서 그 금송아지를 볼 때 눈에 보이는 여호와를 생각한 겁니다, 그래가지고 보이는 여호와하나님이라고 간주하고 그 금송아지를 섬기니까 여호와하나님이 모세에게 그러는 겁니다,
모세야 내가 이놈들 다 죽어버리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몇 명이 죽는다는 소리입니까, 200만 명을 다 죽이겠다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의 구원받은 200만 명을 다 죽이겠다는 겁니다, 창조목적에 위배되는 행위를 한 겁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그러지 마십시오, 우리민족 좀 봐주십시오, 우리민족이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하였습니까, 당신 때문에 하면서 협상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회개했다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회개했지만 아주 악한사람들 회개를 안 한 사람 3000명을 죽여 버린 겁니다, 그러니까 그때 보면 이게 웨슬리안적인 측면이 있는 겁니다, 회개를 하니까 모든 나머지200만 명을 그냥 살려주고 3000명만 죽여 버린 겁니다, 죽이면서 하시는 말씀이 32절과33절입니다, 이게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게 뭐냐면 너희들이 이런 짓을 하면 내가 내생명책에서 너희이름을 지워버리겠다고 그러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이름이 적혀 있는데 지워버리겠다는 겁니다,
이런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칼빈의 말과 안 맞습니다, 누구의 말과 맞습니까, 내가 볼 때는 웨슬리의 말과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르미니우스는 안 된다, 구원된 백성이 한번 그런 짓하면 용서가 안 된다 그런데 감리교의 창시자인 웨슬리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분야에서 저는 감리교인은 아니지만 그런 부분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 많은 겁니다, 장로교의 칼빈주의만이 배울 점이 있는 게 아닙니다,
다 주님께서 골고루 쓰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칼빈을 이런 부분에서 하나님이 애꾸로 만든 겁니다, 이 부분에서 그 부분이 다 맞았으면 그분이 하나님이 됩니다, 그러니까 피조물은 피조물인 겁니다,
그분의 신학도 문제가 있는 겁니다, 어느 누구나 그리고는 지금까지 500년이 지나갔잖아요, 500년 동안 칼빈보다 못난 사람이 다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칼빈보다 또 영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냈습니다, 그렇지만 칼빈이 중요한 큰 그릇을 제공한 사람은 틀림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을 잘 정리해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그런 부분에서 칼빈은 우리가 존경해야 될 사람이고 부러워해야 될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그분의 약한 점을 또 웨슬리가 잡아가지고 또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경건주의로 나가는 감리교는 경건주의자들입니다 똑같이 구약에서 구원이 무효 되는 사건을 보면 민수기16장30절에서35절입니다, 모세의 리드 쉼을 반영했던 고라자손들 그 가족까지 해서 250명이 산채로 음부에 내려간 사건이 있습니다, 또 민수기16장49절에 보면 이런 사건 때문에 여호와하나님께 불평하고 모세에게 불평하니까 주님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염병에 걸리게 해가지고 14700명을 또 몰살해버렸습니다,
민수기25장9절에도 똑같이 우상을 섬기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염병으로24000명을 없애버렸습니다, 구약에서 이런 모습을 이렇게 보여주시는 겁니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약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우선 마태복음18장6절에서9절을 보면 제자들에게 한 소자를 잘 키워야 되는데 나희들의 실수로 믿음이 적은 소자를 넘어지게 하면 거침돌이 되면 연자 맷돌을 메고 물에 빠져 죽어야 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너희들이 책임지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성직자들은 우리의 잘못 때문에 저 사람에 때문에 교회 안 나와 저 사람 때문에 예수 안 믿고 타종교로 갈래 하는 그러한 일들이 있으면 이것은 상당히 심각한 겁니다, 그런데도 한국교회가 회개해야 할 것이 한국교회의 유명한 교역자들이 지금 이런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때문에 나 예수 안 믿어 저 사람 때문에 이러면 책임을 이분이 물으신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구원받은 것 내 멋대로 살자 이게 아닌 겁니다, 왜냐면 구원받은 뒤에 뭐가 깔려있습니까,
삼위의 하나님의 희생이 뒤에 엄청나게 깔려 있는 겁니다, 별것 아닌 구더기 같은 우리에게 엄청난 선물을 주셨는데 이 구더기새끼들이 이것을 모르는 겁니다, 가볍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럴 때 자존심이 깎기니까 이놈의 새끼들아 하고 한바탕 이렇게 하실 때도 있다는 겁니다,
한번 우리가 구원받았으니 할례루야 아멘, 이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로마서9장3절에도 바울이 이 사상을 가진 겁니다, 바울이 그러잖아요,
내 민족을 왜 구원시키지 않으십니까, 왜 내 민족이 영적으로 눈이 감깁니까, 이분이 1차2차3차 여행을 하면서 이것 때문에 고민했던 겁니다,
그러다가 이분이 그러는 겁니다, 여호와하나님 예수님 내 민족 좀 구원시켜주십시오, 그렇게 나오는 것이 로마서9장3절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주세요 만약 안 해주시면 하면서 덤벼드는 게 9장3절입니다, 그러니까 바울도 자기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로 해놓고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계시록3장1절에서5절까지 사데 교회이야기를 했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가 오늘날의 일곱 가지 교회 모습인 겁니다,
사데 교회 같은 모습을 겉으로는 살아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 사람들이 그의 죽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너희들 죽게 된 것을 회개하지 않으면 너희들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리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아직까지 지워지지 않지만 회개를 요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한계시록3장1절에서5절에 그다음에 중요한 게 히브리서6장4절에서6절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 같이 생각하여 봅시다,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4 한 번 빛을 받고 이 말은 원죄가 해결되었다는 소리입니다 크리스천 중에서 한번 빛을 받고 원죄만 해결 받은 것이 아니고 이 사람이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다시 말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까지도 맛본 사람입니다 은사는 그라지아입니다 은사도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압니다, 그다음에 내세의 능력도 압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고 있는 것도 알고 있고 저 세상에 간다는 것을 다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6 타락한 자들은 이런데도 타락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성서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겁니다,
그러면 타락이라는 말에 우리가 정의를 내려야 됩니다,
어떤 타락을 했는가, 그러면 그다음 말들을 보면 대강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다, 라고 그랬습니다, 이런 사람은 회개가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아까 웨슬리는 회개하면 된다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지금 여기에 어떤 부류들은 그렇기 때문에 아르미니우스는 회개가 안 된다는 겁니다, 왜 회개가 안 되느냐면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이 말은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예수님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그런 소리입니다 공개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의 인격을 상하게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사람은 회개가 안 된다는 겁니까, 그분을 위해서는 내가 십자가에서 다시 죽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여기 깔려있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을 부인하는 다시 말해서 이것을 우리가 넓게 보면 종교다원주의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은 예수님이 선택한 예수님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자유의지를 발동해가지고 믿음을 가지게 해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했을 때 원죄가 해결 받은 사람들인데 이렇게 해서 이 사람도 원죄가 해결 받았는데 갑자기 마음이 변한 겁니다,
변해가지고 기독교의 핵심 구원론을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이게 아니다 타 종교도 구원이 있다, 왜 예수님이 타 종교도 거기에 그리스도가 있다 타 종교 사람들도 구원 받을 수 있다,
라고 우리가 확대 해석을 할 수가 있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타 종교만이 아니고 나는 예수 안 믿어 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테고 어쨌든 예수님이 창세전에 창조목적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 삼위하나님이 성부하나님께서 특히 성자하나님을 이 세상에 보내서 이 사건을 우리에게 창조목적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이것을 깨달게 해가지고 그래서 이분들에게 자유의지를 발동해서 예수님을 그런 분으로 믿는 사건 이 사건 이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회개하는 기회를 다시 주지 않겠다는 겁니다,
우리 하나님도 인격적으로 자존심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이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자존심을 건드린 겁니다, 그럴 때 자존심에 상처가 심하게 받을 경우에는 안 한다는 겁니다, 왜냐면 이분은 자기가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이런 혜택을 주었는데 이놈이 까부는 겁니다, 자기가 뭔데 피조물 이놈이 이분을 기분 나쁘게 했을 때는 이때는 이분이 사랑을 베풀지 않고 공의를 베푸시는 겁니다, 사랑을 베풀지 않고 우리는 다 그분은 사랑이시니까 다원주의사람들은 사랑이시니까 은혜를 베푸시니까 그것도 한계가 있는 겁니다,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과의 관계에서 자식 놈이 자기아버지를 자기아버지로 생각안하고 옆집 아저씨를 자기아버지라 그러고 그러면서 아버지를 우습게 압니다, 그러면 족보에서 뽑아버리는 겁니다,
족보에서 뽑아버리는 그런 마음까지 가도록 만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다음에 오늘 제목이 예수님과 연합입니다, 바울이 지금 6장에서 이걸 깔아놓고 우리에게 설명해주는 겁니다, 원죄문제가 이렇게 심각하다는 것을 그리고 이걸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지금 6장3절에서부터11절까지 이 원죄문제를 이렇게 바울을 통해서 설명해 주는 겁니다,
보시면 예수님과 우리는 연합된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연합되었냐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은 뭐냐면 이것은 우리도 십자가에서 죽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과 연합되었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여기 성경이 예수님인데 내가 여기 프로그램에 들어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나도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에 나도 예수님처럼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겁니다,
이 말은 뭐냐면 나의 모든 원죄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무슨 말씀을 하느냐면 너희들 세례 있지 하면서 세례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은 내가 세례를 받기위해서 물속에 들어갔다는 소리입니다, 내가 물속에 들어가서 나의 모든 더러운 원죄를 가지고서 물속에 들어갔다는 겁니다, 그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이분이 십자가에 달렸다가 장사지내셨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으로 내려오셨다는 겁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셔 가지고 장사된 이 사건이 우리가 가운을 입고 밖에 있다가 물속으로 들어간 사건입니다 예수님을 장사한 사건이 우리가 물속에 들어간 사건입니다, 그래가지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건은 내가 물속에 나왔다는 사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장사하시므로 하는 말이 바울이 그랬습니다, 6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원죄문제를 해결시켜주기 위해서 이제는 죄의 노예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는 것은 원죄를 가지고 물속으로 들어간 사건입니다 그래서 물속에서 나오는 사건은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물에서 나오면서 예수님이 부활하시면서 내가 너희들을 모든 죄를 다 사했다 원죄는 이게 부활의 사건입니다,
그 말씀은 뭐냐면 물에서 나올 때 이제는 내가 원죄를 해결 받고는 의인이 되었다 세상을 가진 자가 되었다 영생을 소유한 자가 되었다고 보는 겁니다, 7절에서11절까지 이게 예수님과 연합사상입니다 그러니까 일반 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죄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세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다시 한 번 보면 세례의 의미가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내 원죄를 사하여 주셨다는 겁니다, 이분이 죄를 뒤집어쓰신 겁니다, 내 원죄를 그래가지고 무덤에 그냥 머물려 계시면 문제가 있는 겁니다, 이분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원죄가 해결되고 이제는 영생을 우리가 소유한자가 되었다는 겁니다,
이게 강한 바울의 신학입니다, 이제는 우리는 원죄의 노예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겁니다, 그러면 물에서 나왔다는 말이 무엇이라고 그랬습니까, 다시 말하면 새 생명을 얻고 영생을 받은 의인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겁니다, 물에서 나왔다는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건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보고 세례를 받게 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례의 중요성은 예수님께서 직접 3년 공생애시작하시면서 세례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으로 예수님께서 실제로 우리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주신 겁니다, 마태복음3장17절에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나오실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특히 성부하나님이 자기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서 지금 이 일을 하는 그것은 창세전에 계획하였던 것인데 이분이 지금 이루시는 장면입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기뻐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에게 그러시는 겁니다, 세례요한아 너는 내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기뻐하는 자라는 겁니다,
왜 이런 말을 합니까, 우리 피조물들에게 창조목적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하늘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초라한 인간이 되셔가지고 지금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분이 피조물인 세례요한에게 세례까지 받아가면서 우리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눈높이교육으로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이렇게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부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겁니다,
이 세례 때문에 지난500년 동안 교계가 시끄러웠습니다,
피조물들이 세례 때문에 싸움질하고 그랬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세례문제가 부각이 되었습니다,
뭐냐면 로마 카톨릭의 세례는 물 뿌리는 세례입니다,
물속에 들어가지 않는 겁니다, 그리스정교회 러시아정교회 모든 정교회들도 물 뿌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볼 때 이것은 비 성서적이다,
라고 보는 겁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구원 지금 나타내주고 창조목적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물에 들어가야 되고 나와야 되는데 이것이 없이 뚝뚝뚝 뿌리는 것으로 끝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들고 일어난 겁니다,
그 사람들을 뭐라고 부르냐면 아나뱁티스트(anabaptist)라고 그럽니다,
아나 라는 말은 다시라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재 침례파라 그럽니다,
그 아나뱁티스트(anabaptist)들이 타지스탄 그쪽에도 과거에는 조금 있었습니다, 아나뱁티스(anabaptist)들이 자기네 모임을 만들고 교단을 만들었습니다, 1523년에 그러니까 개신교교단 중에서 제일 먼저 만들어진 교단입니다, 루터교는 그것보다도 7년 후1530년에 만들어진 겁니다,
종교개혁6년 후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교단이 아나뱁티스트(anabaptist) 교단입니다, 아나뱁티스트(anabaptist)들이 나와서 뭐라고 거르느냐면 너희들 로마 카톨릭들아 정교회들아 너희들이 지금 물 뿌리는 사람들아 너희들은 구원이 없다 물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된다, 그것을 침례라 그럽니다,
침례를 해야지만 구원이 있다, 라고 까지 이야기하면서 그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너무 한쪽으로 세게 나가다보면 다른 쪽에 상처를 주거든요 그게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그 큰 교단들 그동안 1000년 이상을 하나님의 사람들이 물 뿌리는 일만 하였는데 너희들 사탄의 자녀들아 이렇게까지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자존심을 건들면 다 똑같습니다,
자존심을 건들다보니까 아나뱁티스트(anabaptist)들이 로마 카톨릭에게 엄청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역사를 보면 그러는 가운데 아나뱁티스트(anabaptist)가 만들어지면서 1530년에 루터교가 만들어진 겁니다, 루터교는 로마 카톨릭에 물 뿌리는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겁니다, 그리고 4년 후에 1534년 영국 헨리8세 왕이 성공회를 만들었습니다, 로마 카톨릭에서 나와 가지고 이 사람들도 물 뿌리는 겁니다, 그다음에 1541년에 칼빈이 개혁교단을 만들었습니다,
칼빈도 물 뿌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전통이라는 게 무시를 못합니다, 로마 카톨릭의 잔재를 그리고는 칼빈의 제자 중에 한사람이 약20년 후에 장로교를 만든 낙스라는 사람이 1560년에 낙스가 스코틀랜드에 가가지고 장로교를 만들면서 그 사람도 물 뿌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낙스의 후예이기 때문에 우리도 물 뿌리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는 회중교회라고 있습니다, 1602년에 영국사람인 로버트 브라운이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회중교회를 만들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이제는 계급화 되지 않고 평민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평민중심교회 또 이분들도 회중교회 사람들도 물 뿌리는 겁니다,
회중교회 사람들이 물 뿌리는 것을 하면서 파워게임 때문에 교회는 평신도들이 중심이 되어야 된다고 그래가지고 이분들은 교회가 순수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람들을 청교도라 부릅니다, 그래서 교회가 물 뿌리는 것은 똑같이 하지만 장로교도 혼을 내고 개혁교단 성공회 루터교 로마 카톨릭 전부다 이 사람을 공격하는 겁니다, 이것은 아니다 밑바닥 평신도들이 해야 된다, 그래서 회중교회라 그럽니다, 회중이 주인이 되어야 된다,
그러니까 이게 싫습니까, 안 싫습니까, 조직화된 계급 화된 교단들은 싫어하는 겁니다, 그래서 쫓겨나서 미국으로 간 게 청교도들입니다,
순수한 평민그룹들입니다 그런데 이 청교도들 중에서 세례는 물속에 들어가야 된다고 하는 청교도그룹도 있었습니다, 너 네들 말이야 다른 것은 다 좋은데 세례만은 아직도 저놈들 닮아서 하잖느냐
그러니까 아예 물속에 들어가야 된다, 그게 1608년입니다 네덜란드에서 존 스미스라는 사람이 만든 게 침례교입니다,
회중교회 조직이지만 물속에 들어가야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뱁티스트(baptist)을 만든 겁니다, 이분들은 회중교회의 시스템을 주장했기 때문에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기존 계급 화된 교단에 대한 대항이 침례교가 강했습니다, 회중교회처럼 그런데 물속에 들어가야 된다, 라고 나오니까 재 침례파 사람들과 비슷한 겁니다, 물속에 들어가야 된다고 그러니까 침례교도 핍박을 많이 당하니까 미국으로 도망나온 겁니다, 1663년에 그러니까 교단을 만들어놓고 60년 후에 미국에 도착한 라저 월리엄이라는 사람이 미국동부지역에 와가지고 그 쪽에서 침례교를 만든 것이 미국의 침례교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미국 침례교가 미국에서 가장 큰 교단이 된 겁니다, 침례교의 미국사람들의 사상이 뭐냐면 회중사상과 침례교사상이 미국을 지배하고 있는 겁니다, 민주주의 그래서 미국의 민주주의가 이분들에 의해서 싹이 턴 겁니다, 권위주의를 없애버리고 그러면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목사님 그러면 물 뿌리는 것은 그것은 다 이단입니까,
물속에 들어가야 되는데요, 왜 우리교회에는 물통이 없습니까, 지금 오늘날도 대부분의 교단들은 아직도 물속에 안 들어갑니다,
우리나라에 하나님의 성회는 물속에 들어갑니다,
교단마다 몰속에 들어가는 교단이 있는가 하면 강대상 뒤에 물통이 다 있습니다, 그러니까 물통이 있는 교회들은 여기에 집념이 강합니다,
그렇다면 왜 아직도 대부분의 교단들이 물 뿌리는 것만 하느냐입니다,
이분들의 주장은 물 뿌리는 것은 오늘 예수님과 연합사상에 중요한 것은 세례를 받아서 들어가고 나가고 이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이것은 하나의 상징적이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원죄를 가지고서 들어가서 다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준 부활하셨다는 이 특권이 중요한 겁니다, 물리적으로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은 하나의 이 사건을 강화시켜주기 위한 이 사건을 우리에게 더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보조 기구지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라고 보는 겁니다, 하나의 상징적 제스처다, 오늘 교회에서 몇 분이 세례를 받을 겁니다, 세례를 받을 때 그러니까 물을 뿌립니까, 물속에 들어갑니까, 저는 물을 뿌립니다, 물을 뿌릴 때 우리 모두가 무슨 생각을 해야 합니까, 오늘 예수님과 연합ㅁ사상에서 물 뿌리는 사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원죄를 안고서 이분이 죽으셨다가 장사지내서 우리 모든 죄를 지고서 보상금 다 내면서 눈감아주시고 이분이 직접 우리의 원죄를 다 안으시고는 이제는 3일 있다가 다시 부활하신 것을 너희들 원죄문제 이제 해결되었다 너희들은 이제 영원한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다, 라는 것을 우리가 선포하는 것이 세례인 겁니다, 우리가 세례 할 때마다 우리 모두가 그것을 생각하면서 이분의 원죄가 이제는 해결되었구나, 그래서 이제는 예수님 때문에 의인이 되었구나, 이것을 공포하는 겁니다, 그래서 물속에 들어가면 더 좋지만 몰속에 들어가지 않는 것도 로마서6장 말씀을 가지고 조금 더 상징적 역할을 하면 거기까지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침례나 물 뿌림을 가지고 싸움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이런 말씀을 오늘 6장1절부터11절까지 말씀 하시고는 그리고 또 그러므로 그럽니다, 그러므로는 제가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입니다, 또 그러므로 너희는 원죄가 해결 받은 너희들은 원죄를 지으려고 그런 짓 하지 말라는 겁니다, 6장은 원죄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너희 몸의 사욕에 따라서 너희 인본주의사고방식 이성 주의적 사고방식 이런 것 때문에 원죄의 사람으로 다시 전략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이 이런데 전략되지 말고 너희들 생각을 너희자신을 불의의 무기로 사용하지 말고 의의무기로 사용해서 하나님께 드리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22절에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는 이제 원죄에서 해방된 사람이다 이제 하나님의 종이 된 사람이다 그리고는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나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이 말씀이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금 원죄가 해결된 사람들인데 우리는 거룩함에 이룬 다음에 열매는 의의열매를 얻어 우리가 의인이 된 겁니다, 그런데 거룩함이라는 것은 창조의 목적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거룩함을 향하여 가라는 겁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영생이 온다는 겁니다,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원죄가 해결되었지만 원죄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100%영생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중간에 떨어져나간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거룩함을 향해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향해서 너희들이 전진하여 나가주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영생에 이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부분을 훼슬리가 굉장히 강조한 겁니다, 그래서 성결 쪽을 강조한 겁니다, 우리가 예수다 믿고 할례루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이 수준이 아니고 우리는 영생을 향해서 계속 전진해나가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날로. 날로 영생을 향해서 이렇게 하다보면 우리가 점점점 예수님 화되고 예수님 닮아가게 되고 그러다보니까 이렇게 순종하는 사람이 되고 원죄를 해결 받고 그냥 사는 NO1사람들 NO2사람들 이 말씀대로 은혜로 사는 사람들은 NO3의 믿음으로 갈 수 있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저쪽나라에 가면 우리가 알다시피 큰 상급이 따라온다는 겁니다, 우리가 여기서 왜 이렇게 공부합니까,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서 입니까,
이 거룩함을 향해서 가기위해서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겁니다,
열심히 지금 말씀공부하고 안 해도 다 하늘나라에 갑니다,
앉아있는 자체도 은혜인 겁니다, 구원만이 은혜가 아니고 거룩함을 위해서 가는 것도 은혜가 필요한 겁니다,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지금 오늘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마지막 때 징조 중에 하나가 예수님이 마태복음24장 감람산설교에서 그러잖아요,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서 원죄문제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나온다는 겁니다, 원죄를 해결하여 주었는데 원죄문제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게 뭐냐면 종교다원주의자들입니다 그래서 원죄문제를 해결하면서 모든 종교는 같다 하나님의 원죄문제는 이것은 기독교에 들어오지 않아도 타 종교에 있는 사람들도 원죄문제를 다 해결 받은 사람들이다 여기 까지 나온 것이 종교다원주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러는 겁니다, 계시록에서 요한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사람들이 나오는데 이것은 바벨론종교 사람들로 보는 겁니다,
바벨론 화 여기 자세한 것은 계시록에 나오잖아요,
그래서 큰 음녀로 나온다는 겁니다, 계시록17장에서 음녀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큰 성 바벨론이라고 말합니다, 가증한 것이라고 그리고 그러면서 음행의 포도주를 먹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섞은 잔을 가지고 다시 말해서 모든 종교는 섞어버리는 계시록17장2절 18장6절에 보면 나옵니다,
이런 사람들은 바벨론종교가 예수님의 지상 재림 전에 계시록19장18절까지 바벨론종교가 무너지는 겁니다, 그래서 멸망으로 던져진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지막 때 이런 그룹들이 나올 것을 예수님이 허락하신 겁니다, 계획하신 겁니다, 그러면 우리 질문이 왜 이런 그룹들을 허락하셨나, 그러면 제가 지난시간에 잠깐 말했지만 이 창조목적에 집중하도록 하나님의 자녀들이 순수복음에서 우리가 깨어있으라고 예수님이 초점을 맞추라고 예수님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을 붙잡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창조목적에 초점을 맞추고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무료로 받았기 때문에 어두움이 있어야지만 빛의 중요성을 알 수 있잖아요 이산화탄소 탄산가스가 있어야지만 산소의 필요성을 느끼듯이 이런 잡다한 이산화탄소를 하나님이 마지막 때 허락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 기독교인들은 너희들은 산소를 먹어야 되잖느냐 산소의 중요성을 알려면 탄산가스를 내가 많이 뿌려놓을게 이렇게 지금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지금 이런 세대에 살고 있는데 우리는 내 민족만이 아니고 다른 민족에게 가서 이 탄산가스 속에 질식하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우리가 이분들에게 산소를 집어넣어주어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데도 혼합된 술잔 속에 허덕이는 겁니다, 종교다원주의가 지금 전 세계기독교인의 76%가 이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가가지고 우리가 이분들에게 이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는데 은혜를 받아야만 이것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은혜 받은 것만 가지고 안 되고 훈련받아야 되는 겁니다,
이것을 성서적으로 조직적으로 신학적으로 훈련을 우리가 지금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3년 훈련시키시고 평생을 훈련시키신 겁니다,
바울은 33년을 훈련받으면서 이 일을 해나갔습니다, 그러므로 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겁니다, 저도 지금 이 나이까지 계속 훈련받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선교지에 나가기보다는 계속 훈련받으면서 우리 교회 그룹들은 중국에 가서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또 우리는 일본에도 가서도 할 겁니다, 또 인도에 가서 말레시아에 가서 미얀마에 가서 러시아에 가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이 비밀을 깨달은 사람들은 이제 그냥 메시지만 가지고 가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성품으로 내가 변화를 받아야 되는 겁니다, 인격이 변화하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겁니다,
인격이 변화되어 겸손한 사람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는 겁니다,
항상 용서해주고 자비를 베풀어주고 부정적인 이야기안하고 항상 은혜를 이야기하는 사람 자기도 모르게 그런 사람으로 변하여버리는 겁니다,
그렇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은 예수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하나님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끊임없으신 우리에게 역사하심과 가르쳐주심과 깨닫게 하여주심과 순종케 하심이 우리 모두에게 항상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ou7S_RHFw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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