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시리즈 7강. 왜 네 제자들에게만 산상수훈을 가르치셨나.(마4:17-5:2) 2023년
이번에 터키에 지진이 난 모습을 보면서 저는 한 가지 느끼는 게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산고 중에 자연의 산고 지진의 산고를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알다시피20세기에 들어와서부터 지진의 횟수 빈도가 그 강도가 10배20배 이상 늘어난 것 우리가 다 알고 있잖아요. 궁금하시면 구글에 들어가서 한번검색해보면 아십니다. 주욱 데이터가 나옵니다. 미국의 지진전문센터에서 발표하는 걸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이 말씀에 따라서 설교하는 우리들에게는 그런 세상의 모든 데이터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그럴 겁니다. 목사님 지진은 여기저기서 가끔 나는 것이 수 천 년 동안 있어왔는데 뭐가 그렇게 대단합니까?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라고 그러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에 모든 데이터들이 그기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 데이터들을 보시고 특히 우리는 성서적인 측면에서 이번에 터키에 지진을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터키라는 나라는 안디옥부터시작해서 사도바울이 로마제국을 복음화 하는 전초기지가 터키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터키라는 나라는 성서적인 측면에서 보면 세계복음화를 하는데 전초기지가 터키였습니다.
그래서 터키에 아시아 일곱 개 교회들을 시작으로 해서 터키이야기를 많이 공부했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신기한 것은 예루살렘교회를 사용하셔서 세계복음화 다시 말하면 로마제국복음화를 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항상 공부했듯이 안디옥을 통해서 복음이 퍼졌잖아요. 바울을 중심으로 해서 그런데 이번에 지진이 안디옥을 중심으로 해서 그 위에 소위 성서에서 말하는 갈라디아지역입니다 그리고 갑바도기아 지역입니다. 그다음에 시리아이쪽을 강타를 했는데 저는 이런 생각이 번쩍 저에게 스쳐가는 겁니다.
아하! 복음도 그 지역을 통해서 시작되어서 지금까지 흘려왔듯이 지진도 거기서부터 시작하시는구나. 이때까지 온 지진들은 다 하나의 게임이었고 이제 다시 복음이 퍼지듯이 안디옥을 통해서 복음이 퍼지듯이 지진도 이렇게 퍼지겠구나. 라는 생각이 번쩍 머릿속에 들어옵니다.
이것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모르겠지만 눈여겨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산상수훈을 공부하고 있는데 오늘도 우리에게 주님이 주시는 특별한 메시지들이 있습니다. 지난칼럼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산상수훈을 왜 주셨나? 할 때 우리가 대답할 것이 뭐냐면 특히 제자 되는 분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 영적아들수준 거기서 더 나가서 영적아버지까지 되어야지만 영적자녀들을 낳으면서 온전해질 수 있는데 그렇게 되어도 온전해 질 수가 없단다. 그렇지만 그 정도가 되었을 때 팔복을 어느 정도 지킬 수가 있고 또 우리가 열 가지 덕목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들 되는 덕목을 지난시간에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것도 어느 정도 지킬 수가 있는데 어느 정도냐면 부분적으로밖에 못 지키고 또 어린아이수준으로 밖에 못 지키고 또는 약간 희미하게 지킬 수밖에 없단다. 그러면서 나중에 우리가 낙원에 가면 아하! 우리가 제대로 지킬 수가 있구나? 삼위하나님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것을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아하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주님의 자녀들이나 저를 포함해서 우리는 팔복을100%지킬 수가 없는 존재구나
또 열 가지의 덕목을100%지킬 수가 없는 존재들이구나.
또 고린도전서13장의 사랑을100%지킬 수가 없는 존재들이구나.
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마음속에 항상 갖고 있는 분들이 겸손한 분들이고 지혜로운 분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면 이 제혜를 가진 사람은 주변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면 이것을 제대로 지키는 사람은 하나도 없구나. 라고 인정하셔야 됩니다.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하! 나도 못하지만 내 주변에 이런 걸 지키는 사람 하나도 없구나. 라는 것을 인정하실 때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 수준으로 그리고 인정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평을 하지 않게 되어 있고 비난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수준까지 가는 것이 우리가 산상수훈을 깨닫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을 있는 그대로 안아주는 연습을 하는 큰 그릇이 되는 겁니다. 그런 사람 옆에 가고 싶습니까?
안 그러면 항상 비평적이고 다른 사람을 항상 자기잣대에 대고 비평하고 비난하고 하는 그런 사람 좋아합니까? 싫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을 있는 그대로 안아주는 사람 왜냐면 내가 그 모습이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모를 때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그런 수준으로 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산상수훈을 공부를 계속할 터인데 이 산상수훈 속에 숨겨져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모든 사람을 내가 이렇게 안아줄 때 나에게 은혜는 말할 것도 없고 평강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평강이 그러면 스트레스가 없으니까 성인병 안 걸립니다. 성인병 왜 걸립니까? 요즘 의사들이 그럽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음식 잘 못 먹어서 그렇지만 스트레스가 이유라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스트레스가 없어야 됩니다.
그런데 왜 예수 믿는 사람이 스트레스가 많습니까? 어떤 때 보면 더 많이 자기 스타일로 남을 비난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이 문제를 해결받기를 간구합니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고 자녀들 간에도 마찬가지고 모든 부분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직장에서도 다 이런 식으로 사물을 볼 때 나에게 평강이 있습니다. 오늘 계속해서 산상수훈을 이야기할 터인데 그런데 중요한 부분을 성령님이 저에게 깨닫게 하셔서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이 성경에 산상수훈이 두 곳에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두 곳에 있다고 보고 어떤 분들은 아니다 한 곳에 있다고 보는 두 의견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목사님 어떤 부분에서 말씀하십니까? 그러면 우리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마태복음5장에서7장을 산상수훈이라고 이렇게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 보면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6장20절에서49절에 보면 산상수훈과 상당히 비슷한 말씀이 그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가 말씀하신 마태복음5장6장7장의 말씀과 비슷하면서 어디에 비슷하지 않은 부분이 또 있습니다.
그래서 혼돈스러워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두 말씀이 다 같은 말씀이다 그러니까 산상수훈은 마태도 말했고 누가도 말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저에게 질문하는 겁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저는 이 두 말씀은 다른 말씀이라고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다릅니까? 목사님 가르쳐주십시오. 그것은 제가 하나하나 가르쳐드릴 겁니다. 오늘은 이렇게 피상적으로 약간만 다루려고 합니다.
우선 마태복음에 대해서 잠깐 보세요. 마태복음에 나오는 산상수훈은 어떤 특징들이 있는가? 그러면 마태복음은 마태가 기록한 겁니다.
언제 기록했느냐면 주후50년에서52년입니다 이때 이 편지를 받는 수신자들이 누굽니까? 그 당시에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크리스천들입니다
유대인크리스천들을 상대로 해서 마태복음을 쓰신 겁니다.
그러면 이 유대인들이 무엇을 기다리느냐면 예수님의33년의 삶에 대해서 가르침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기를 원했던 겁니다. 이분들은 구약의 여호와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삶을 살았느냐?
그래서 이분의 탄생부터 이분의 죽으심과 승천까지의 33년의 이야기가 유대인들을 생각하면서 글을 쓰도록 성령님이 마태에게 말씀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마태도 유대인세리출신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을 쓰셨는데 특히 마태복음에서 나오는 산상수훈을 제가 말씀드립니다.
이때 마태복음에서 나오는 산상수훈은 마태복음5장6장7장입니다
이걸 어디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였냐면 마태는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북쪽 가버나움에서 약간 떨어진 조그만 언덕 팔복언덕이라고 오늘날 그렇게 말을 합니다. 거기에서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언덕이 아니고 산이라는 겁니다. 원어를 봐도 산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5장1절에 분명히 산에서 말씀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이라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산에서 말씀하셨다는 말이 5장1절에 나옵니다. 그리고는 5장6장7장까지가 산에서 하신 말씀을 산상수훈이라고 하잖아요. 그래놓고는 8장 들어오면서1절은 유명한 백부장하인이 중풍 병 걸려서 병 낫게 하는 이야기인데 8장1절에 뭐라고 쓰여 있느냐면 산에서 내려오시니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산상수훈은 어디서 말씀하셨다는 겁니까? 산에서 말씀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유가 성서어디에 있습니까? 5장1절에 산에서 말씀하셨다
그다음에 끝내고는 8장1절에 산에서 내려오셨다 이걸 아셔야 됩니다.
그러면 어떤 분들은 목사님 그런 걸 어떻게 따지십니까? 따져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이라 그러는 겁니다.
논리적으로 맞는 산상수훈입니다 이 산상수훈을 우리가 조금 있다가 보겠지만 누구에게 말씀하였냐면 네 분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무리들도 있지만 집중적으로 말씀하신 게 네 분의 제자들입니다
그게 누구냐면 베드로와 안드레 마태복음4장18절입니다.
그다음에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두 형제들입니다 마태복음4장21절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와 안드레는 형제입니다 그다음에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도 또 형제입니다 이 두 가족의 형제들에게 예수님이 집중적으로 산상수훈을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 네 분만인가? 그것은 제가 나중에 설명해드릴 겁니다. 이때만 해도 열두제자들을 선택하기 전입니다
그러면 열두제자는 언제 선택했습니까? 마태복음에 보면 나옵니다.
마태복음10장2절에서4절에 보면 마태가 기록했습니다.
열두제자들을 선정해서 이름이 주욱 나옵니다. 그러면 산상수훈은 누구에게 집중적으로 말한 겁니까? 네 분에게 말한 겁니다. 그다음에 나머지 제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그때는 제자를 뽑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러면 제자를 언제 뽑았습니까? 10장2절에서4절입니다. 그러니까 열두제자를 뽑기 훨씬 전에 이 네 분에게 집중적으로 산상수훈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네 분에게
그러면 누가복음에서 말하는 산상수훈을 잠깐 봅시다. 누가복음은6장20절에서49절에 누가가 기록한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알다시피 누가는 주후60년에서62년에 누가복음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보다 10년 후에 썼습니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것은 제가 쓴 책 사 복음서를 자세히 보시면 아십니다. 10년 후에 썼는데 누가는 이방사람입니다 마태는 유대인이지만 누가는 이방사람이고 의사면서 바울의 오른팔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성령님께서 바울을 통해가지고 네가 누가복음을 쓰라 누가복음의 목적이 뭐냐면 주후30년부터 주후60년까지 30년 동안 많은 이방인들이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출신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님의33년 라이프스토리를 기록하게 한 겁니다. 그게 이방인들이 알아듣기 쉽게 그것이 누가복음입니다
마태복음을 누가가 참고로 했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강해에서도 누가복음강해에서도 제가 말씀을 많이 드렸지만 이분이 마태복음도 참조하고 또 많은 사람들과 인터뷰도 하고 그렇게 해가지고 기록한 것이 누가복음입니다
그러니까 누가는 이 복음을 쓰시면서 지금 우리가 말하는 산상수훈이라고 말하는 이 분야를 어떻게 기록했느냐를 보면 누가복음6장20절에서49절이 누가가 쓴 산상수훈이라고 우리가 보는 겁니다. 그런데 이 누가가 쓴 산상수훈 바로 직전에 모슨 스토리가 나오느냐면 열두 명 제자를 선정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직전에 그게 누가복음6장12절에서16절까지입니다
열두 명의 제자들을 뽑는 그러니까 누가는 지금 받은 메시지가 제자를 열두 명 뽑은 후에 그다음에 산상수훈이라고 말하는 이쪽 분야를 받은 겁니다.
16절까지 열두 제자들을 뽑고17절에 뭐라고 그러느냐면 가버나움 평지에서 이 말씀을 하셨다는 겁니다. 평지라고 나옵니다. 가버나움인데 그기에 평지에서 말씀하셨다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산상수훈은 가버나움 산에서 했고 이 말씀은 가버나움평지에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저는 평지수훈이다 이렇게 제가 말을 붙여 보았습니다. 이제 누가복음6장에 나오는 말씀은 평지수훈이고 마태복음은 산상수훈이다 이렇게 다른 겁니다. 다르기 때문에 여러분들 집에 가서 평지수훈을 보시면 제가 언젠가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내용이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다시 말하면 원어를 보는 사람들이 보면 문장구조도 다르고 내용도 아주 짧고 그다음에 마태의 산상수훈을 인용했지만 인용만 했지 문장표현 할 때 다른 표현을 썼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메시지를 받을 때 대상이 누구냐면 대상이 누굽니까? 누가복음은 열두제자들입니다 이 메시지를 하기 직전에 열두 명을 뽑은 후에 이 말씀을 평지에서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은 뽑기 훨씬 전입니다
아까 말한 네 분만 뽑았지 그분들도 그냥 불렸지 제자로 임명하기 전입니다
이걸 전제로 해서 우리가 공부할 게 있습니다. 우리가 마태복음1장부터4장을 간단하게 섭력해봅시다. 굉장히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누가복음은 이제 제쳐놓고 오늘은 마태복음을 잠깐 섭렵해봅시다 그러면 마태복음을 섭력해보면 첫째 마태복음1장1절부터17절은 뭐냐면 예수님의 족보를 이야기합니다. 그다음에 1장18절부터25절까지는 가브리엘천사가 와서 요셉에게 예수님이 출생할 것을 예고를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는 2장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2장에 들어가서 처음1절부터12절까지는 유명한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시는 이야기와 함께 동방박사가 경배 드리는 이야기 그다음에2장13절부터18절까지는 헤롯왕이 아기예수님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합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피신하는 이야기가 그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2장 마지막부분인19절부터23절은 뭐냐면 애굽에서 귀환하셔가지고 어디로 가시느냐면 자기부모님의 고향인 북쪽 나사렛으로 올라가는 장면입니다
그 이야기를 주욱 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사렛사람이다 이렇게 불렸던 겁니다. 지금2장 마지막부분입니다 지금 아기예수님이 어디로 올라갔습니까?
나사렛에 올라간 장면이 2장 마지막부분입니다 그리고는3장으로 들어오면서 30년의 시간을 점프를 합니다. 30년의 시간을 점프해서 예수님이 이제는 30세가 되었을 때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면서3장1절부터12절에 첫째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두 번째 3장13절에서17절에 세례요한이 광야유대지방 요단강가에서 외칠 때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내려와 가지고 세례요한을 만나서 세례요한을 통하여 세례 받으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시작하기 직전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마태복음3장이야기입니다 그다음에 4장으로 들어가서 마태가 어떻게 하느냐면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40일 광야에서 금식하시는 이야기입니다 4장1절에 보면 예수님이 금식하시는데 금식 40일끝나자마자 4장1절에 보면 마태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이끄셨다 그랬습니다.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이끄시고는 사탄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예수님을 보내셨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하나님의 디자인입니까?
아닙니까? 하나님의 디자인인 겁니다. 예수님이 사탄에게 소위 창조목적학교에 교감에게 교장선생님이 시험받으시는 장면입니다.
그래가지고 세 번 시험을 했는데 시험할 때마다 사탄이 꼬리를 내렸습니다.
그러니까 교감이 교장선생님에게 꼬리를 내리도록 가르쳐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포지션이 교장포지션이고 너는 교감이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겁니다. 창조목적학교구조로 본다면 그렇기 때문에 4장7절에 아주 기가 막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놈아! 사탄아 너의 여호와 그러니까 영어로 로드(Lord)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는 그 로드(Lord)가 누굽니까? 여호와라고 우리가 항상 공부를 했습니다. 사탄에게 그러는 겁니다. 너의 주님 너의 여호와를 너는 시험하지 마라 이놈아! 그러니까 꼬리를 내리고 도망을 갔습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해줍니까? 아하! 사탄의 여호와도 예수님이시구나. 우리의 여호와도 예수님이시지만 사탄의 주인도 여호와 꾸리오스(Kyrios)를 어떻게 시험하려고 까부느냐 그러니까 꼬리를 내리고 도망갔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줍니까? 아하! 사탄도 예수님의 지시에 의해서 움직이는 놈이구나. 그러니까 이놈은 교감이구나.
예수님이 교장이고 이것을 우리가 깨달을 수가 있는 겁니다.
마태복음4장7절에 이런 모습을 마태가 기록하게 했습니다.
사탄이 도망가니까 4장11절에 뭐라고 그러냐면 예수님이100%인간이 되셔서 지금 이렇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신성을 다 비우시고는 4장11절에 천사가100%인간이 되신 예수님을 수종드니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천사의 도움을 예수님이 필요하셨던 겁니다.
성령님의 도움도 필요했고 그리고는4장12절에 하시는 말씀이 세례요한이 유대광야에서 예루살렘에서 나중에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예수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4장12절에 그 소식을 듣고는 나사렛으로 다시 올라가셨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유대광야에 계시다가 북쪽으로 올라가셨다 그 이야기가 4장12절입니다. 그러다가 나사렛에서 예수님이 자기 고향에서는 목수 일을 하시면서 고향사람들이 예수님을 선지자로 보지 않는 겁니다.
그분을 높은 분으로 보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 있잖아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사렛이 선교센터가 아니고 예수님이 앞으로3년 공생애기간에 선교센터가 어디냐면 가버나움인 겁니다. 갈릴리호수 북단 왼쪽에 있는 조그만 항구도시입니다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가신 겁니다. 이 가버나움이 예수님이3년 동안 사역하시는 선교센터입니다 항상 예수님도 그랬지만 바울도 그러고 우리도 그럽니다. 중심센터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도착해서 하시는 말씀이 4장17절이 중요합니다. 마태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때부터 가버나움에 도착해서부터 예수님이 이때부터 비로소 천국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했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목사님! 천국이 가깝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천국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또는 하늘나라입니다
여기서 천국은 제가 생각할 때는 7천년 중에서도 교회시대2천년입니다
예수님초림부터 예수님 재림까지2천년 그 천국입니다. 그것을 우리식으로 말하면 교회시대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천국이 가깝다는 말은 교회시대가 시작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창조목적학교시스템으로 보면 초급대학교가 이제 시작된다고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그게4장17절입니다. 그다음18절에서22절까지가 4장의 마지막부분인데 여기에 중요한 정보가 들어있는 겁니다. 이 정보를 우리가 잠깐 섭력하려고 그럽니다. 18절에 뭐라고 그러느냐면 예수님이 갈릴리지방가버나움에 계신데 여기 호숫가에서 고기 잡는 두 젊은 형제를 본 겁니다. 그게 누구냐면 베드로와 동생인 안드레입니다 이 두 형제가 고기를 잡는데 이분들에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 고기잡이 그만하고 나를 따라와라 그랬습니다.
나를 따라와라 그러니까 기가 막히게 이분들이 일체 다른 말없이 그냥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어부기구들을 그물들을 다 버려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신기한 게 전혀 관계없는 분이 와가지고 나를 따르라 그러니까 자기 모든 전 재산인 그물들을 다 놓고는 그냥 예수님을 따랐다고 그랬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이게 일반적 상식으로 가능합니까? 이게 불가능합니다. 이걸 어디에 잣대를 맞추어야 합니까?
이 두 젊은 형제는 은혜 받은 형제들이구나. 이 두 형제가 그때 자기자유의지를 발동해서 한 게 아니잖아요. 이게 은혜가 있었기에 하나님의 디자인이 있었기에 탁 놓고 갔지 자기자유의지로 가능합니까?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으로 선택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때가 되면 탁 놓고는 자기자유의지를 지배해버리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이분들이 가족걱정 다 잊어버리고 생활비걱정 다 잊어버리고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그대로 탁 놓고는 예수님께 딱 달라붙어서 그때부터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장면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저것 따지는 사람은 아직 때가 안 되었다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 카이로스(kairos) 그런데 신기한 게 이 형제 베드로와 안드레를 보면 항상 형이 앞장서지 동생 안드레는 형 의견을 따라서 졸졸 따라다니는 사람같이 보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제일 먼저 부른 분이 누굽니까?
베드로와 안드레 어디에서 가버나움해변에서 그러면 베드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베드로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으며 어떤 사람이 되어왔느냐면 이렇게 은혜를 받은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열두제자들 중에서도 최상위 제자입니다 베드로자신은 몰랐습니다. 지금 고기 잡다가 따라다니는데 그런데 예수님은 다 아시잖아요 최상위제자입니다
그뿐입니까? 다른 제자들보다도 교육수준이 가장 낮은 분으로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인데 이 사람이 나중에 제자가 되어가지고 바울은 이방인선교에 대부가 되었지만 베드로는 유대인선교에 대부가 된 분입니다
로마제국을 힙 쓸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던 사람입니다 어부출신 이분이 예수님은 미리 다 아셨지만 이런 하나님의 특별한 기름 부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분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분을 때가 되어서 부를 때 착 덤벼드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앉아있는 분들 중에서도 탁 집어던지고 주님 일을100%하는 사람 아직까지 제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저것 계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아직 때가 안 되었거나 불리 움을 안 받은 사람이거나 못 받은 사람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이분은 로마제국을 다니면서 부흥집회도하고 세미나도하고 제자들을 훈련시켰잖아요. 그러다가 이분은 주후65년에 네로 왕에 의해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은 순교자입니다
순교1년 전에 베드로 전 후서를 쓰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야! 너 나를 따르라 그럴 때 그물을 집어던지고 따를 때 예수님이 쫘악 보셨을 겁니다. 이놈 정말 대단하구나. 대단한 게 아니죠. 예수님의 디자인 속에서 움직이니까 예수님이 그냥 그럴 걸로 다 아셨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볼 때 베드로는 자기가 잘났어도 아니고 운이 좋았어도 아니고 이것은 특별히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분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권적으로 은혜를 베푸신 분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입장을 볼 때 어느 누구나 보면 아하! 저분은 어느 정도의 은혜를 받은 분이구나 저분은 어떤 스타일의 은혜를 받은 분이구나 이걸 우리가 보게 되는 겁니다. 저는 최소한 그런 시각으로 사람을 보는 겁니다. 사물을 보는 것도 그렇고 역사를 보는 것도 그렇고 그러면 안드레를 잠깐 봅시다.
안드레는 항상 형님을 따라다니면서 형님을 잘 섬기면 형님의 말에 잘 순종하는 좋은 동생으로 우리가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형제우애가 지극했던 것 같습니다. 형님이 우리 저분 따라가자 하고 탁 집어던지니까 알았어요. 형
다 같이 집어던지고는 따라가는 동생 기가 막힌 동생입니다
이 안드레 동생은 성품도 상당히 착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나중에 슬라브족 러시와 관계되는 주변에 있는 슬라브족의 선교의 대부가 된 겁니다. 그래서 지금도 슬라브족들은 안드레 그러면 아주 특별히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어로 안드리오 여자이름은 안드리아 그럽니다. 이렇게 슬라브족의 선교사로써 이분이 나중에 자리매김이 되었는데 이분이 언제 순교 당했느냐면 아가야지방에서 주후69년에 십자가에 달려서 순교 당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로마제국의 황제가 베스파니안 황제라 그럽니다. 주후69년부터79년까지 이 황제 시대에 주후70년 사건이 일어난 겁니다. 이렇게 안드레는 누구의 동생입니까? 베드로의 동생인데 예수님께서 나중에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네 명을 제일 먼저 뽑았잖아요.
이 네 명에게 특별한 관심이 있고 이 네 분을 특별히 훈련시켰는데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신기한 게 이 네 명 중에서 변화 산 사건을 봐도 그렇습니다.
변화 산 사건은 마태복음17장입니다 변화 산사건 때 천국에 데리고 올라가서 천국구경을 시킬 때 보면 안드레는 제외 되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누구와 올라갔습니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항상 3총사입니다 3총사들을 주님이 특별히 훈련시켰습니다. 안드레는 그냥 형님 따라서 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베드로와 안드레이야기를 했는데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딱 부르시고는 그물을 버리고 이분이 따를 때 그다음에4장21절에 보면 그다음으로 나오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두 번째 형제를 부르는 장면입니다 4장21절에 또 다른 두 형제를 부르는데 이 형제들은 그물을 깁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물을 수선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물을 깁고 있는데 이 두 분은 누구의 아들이라 그랬습니까?
세베대의 아들들이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와 안드레 아버지이름은 우리가 모릅니다. 그런데 야고보와 요한의 아버지이름은 세베대의 아들이다
세베대의 아들인데 큰 형이 야고보고 작은 동생이 요한인 겁니다.
이분들에게도 똑같이 너희들 나를 따라와라 그러니까 이분들은 배도 버려버리고 그 말 듣자마자 즉시 예수님을 쫓았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기가 막힌 스토리들입니다 주님의 불리 움이 있는 사람은 때가 되면 다 집어던지고 뛰는 사람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저도 다 집어던지고 뛰었습니다. 가족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이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내가 잘난 것도 아니고 주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셨습니다. 지나고 보니까 이렇게 했는데 참고로 야고보하면 항상 우리가 혼돈스러운 게 있습니다. 왜냐면 성경에는 예수님과 가까이 있었던 야고보가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걸 우리가 정돈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 야고보가 누굽니까?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입니다
이 야고보는 누구의 형님입니까? 그 유명한 요한의 형님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야고보입니다 그런데 이 야고보는 주님께서 열두제자 중에서 첫 순교자로 만들었습니다. 사도행전12장2절입니다. 헤롯왕이 야고보를 칼로 참수시켰습니다. 예루살렘교회중심리드였는데 이 야고보입니다.
이 야고보가 요한의 형님입니다 그러면 목사님 또 다른 야고보가 어디에 있습니까? 열두제자 중에 보면 어떤 성경에는 작은 야고보다 이렇게 소개하기도 하고 또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이렇게 쓰 있습니다.
이 야고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열두제자들 중에 야고보이름이 둘이 있습니다. 지금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한국성경에 작은 야고보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세 번째 야고보는 누구겠습니까?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인 야고보입니다 이 사람은 열두제자는 아니었지만 나중에 이분이 크리스천이 된 사람입니다 왜냐면 예수님과 관계되는 분이기 때문에 이 야고보가 야고보서를 쓴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를 때 처음에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고 그다음에 야고보와 요한을 불렸습니다.
그런데 이 야고보는 나중에 순교 당했습니다. 그리고 야고보를 부른 다음에 요한을 부른 겁니다. 요한은 어떤 분입니까? 형님보다 동생이 더 유명한 동생입니다 요한은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요한이었습니다. 요한자체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예수님이 식탁에 앉아계시면 바로 옆에 앉아 있었던 그래서 요한의 특색은 이분은 예수님의 신성에 전문가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신성을 아주 구체적으로 메시지를 받은 분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을 쓴 겁니다. 예수님이100%하나님이시다
그다음에 요한1서2서3서 이게 주후85년입니다 요한복음은 주후68년에서70년 사이라고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1서2서3서는 주후85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주후95년에 요한계시록을 쓰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은 예수님에 대한 특별전문가인데 어떤 부분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 100%하나님이라는 전문가로써 예수님이 요한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형제를 부르시고 데리고는 그때부터 예수님이 갈릴리지방으로 다니면서 천국복음을 전했는데 특히 소위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하는 치유사역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형제들을 데리고서 그러니까 이 형제들을 데리고 하시면서 이 소문을 아래에 있는 예루살렘 유대지방에서도 예수님이 이런 걸 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그다음에 이쪽에 요르단지역입니다 데가볼리스라고 그러는데 이쪽 지역사람들과 또 두로와 시돈지역 사람들까지 다 이 소문을 듣고는 치유사역을 하시니까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서 이 사람들이 다 이 지역으로 모였다는 이야기가4장 마지막에 나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이 치유사역을 하면서 유명해졌다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4장을 마칩니다. 4장을 마칠 때 옆에 누가 따라다녔습니까?
졸졸 두 형제들이 따라다닌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관심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두 형제들에게 관심이 있는 겁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치유사역 했다는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치유사역 했다 예수님이 어떻게 했다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예수님의 관심은 사람에게 관심이 있는 겁니다. 누구냐면 자기가 선택한 네 명에게 관심이 있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예수님께서 이 네 명을 앞으로 멋있게 쓰실 텐데 로마제국복음화에 아주 중요한 리드로 사용하시려고 준비하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5장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5장1절에 뭐라 그러느냐면 예수님이 치유사역 때문에 많은 무리들이 따라다니는데 무리들을 제쳐놓고는 네 명을 데리고서는 산에 올라가셨다 그랬습니다. 그 산이 우리가 말하는 산상수훈의 산이고 팔복 산이다 그럽니다.
이 산이 제 생각에는 가버나움에서 얼마 되지 않는 곳에 있는 팔복 산이다 그러는 겁니다. 저 산에 가셔서 그 유명한 산상수훈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래서5장1절에 보면 산에 올라갔다 제자들을 데리고 그때 제자들이라는 게 누굽니까? 네 명입니다 열두 명 뽑기 전입니다 열두 명을 언제 뽑았습니까?
마태복음10장2절에서4절입니다. 그러니까 열두 명을 공식화하기 전에 네 분을 모시고서 팔복 산에 올라가서 5장2절에 보면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입을 여시고 가르치기를 시작하셨다 그러는 겁니다.
그리고는3절부터 그 유명한 팔복말씀입니다 주욱 해서 7장 마지막까지 가는 겁니다. 그리고 다 끝난 다음에 8장1절에 가서 산에서 내려오셔서 어디로 가느냐면 다시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시는 겁니다. 거기에서 누구를 만났습니까? 백부장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그러면 오늘 설교의 질문이 무엇입니까?
왜 예수님께서 네 명을 집중적으로 불려서 이렇게 산상수훈을 말씀하셨나? 입니다. 누가복음의6장은 산상수훈이 아니고 무슨 수훈입니까?
평지수훈이다 이렇게 아시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 질문이 있습니다.
왜 네 명에게 그 어려운 산상수훈을 말씀하셨나? 이게 오늘 우리질문이고 오늘결론입니다 제가 조금 있다가 결론말씀을 드릴 겁니다.
제가 깨달은 겁니다. 이 네 분이 예수님의 디자인 속에서 어떤 분들입니까?
우리가 역사를 쫘악 보면 이 네 분이 예루살렘교회만이 아니고 1세기 때 로마제국을 복음 화하는 아주 키(Key)멤버입니다 그중에 한분은 순교까지 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이분들을 볼 때 아하! 이분들은 대단한 분들이구나. 라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들에게 예수님이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은 앞으로1세기 때 로마제국 복음 화하는데 내가 특별히 선택한 내 사람이다 지금은 어부지만 너희들 지금은 선택받아서 나의 제자가 공식적으로 되지 않았지만 너희들은 앞으로 내가 이렇게 사용할 특별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예수님이 염두에 두시고는 산상수훈을 이분들에게 던져놓은 겁니다. 이 산상수훈을 이분들이 소화했겠습니까? 그냥 귀로만 듣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5장2절에 뭐라고 그랬냐면 이분들에게 가르치셨다고 그랬습니다. 가르쳤다는 아주 어려운 단어를 썼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다음에 설명할 겁니다. 그런데 가르친 내용을 우리는 알잖아요. 이분들에 무엇을 가르쳤습니까? 애들아! 복 있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 복 있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다 이분들은 그냥 귀로만 듣고 있는 겁니다. 네 분이 그리고는 애들아! 열 가지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는 덕목이 있단다. 그 덕목들을 쫘악 했습니다. 내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을 갖다 되며 하면서 열 가지 덕목들을 주욱 듣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6장에 들어가서 뭐냐면 너희들 외식하는 사람들 되지 말라 기도할 때 나팔 불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인정받으려고 까불고 구제할 때도 그렇고 또 금식할 때도 그렇고 이렇게 외식하는 자가 되지 말라 하는 겁니다. 이 사람들이 지금 기독교인들이 되지도 않았을 때입니다
이렇게 쫘악 가르쳐주는 겁니다. 그리고는 너 네들은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
너 네들은 의식주도 걱정하지 말라 공중에 나는 새를 봐라 백합화를 봐라 의식주도 걱정하지 말라 그리고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찾아라.
이런 말씀까지 하시는 겁니다. 그게 6장입니다 그리고 7장에 들어와서는 뭐라고 그러느냐면 애들아 너 네들은 네 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봐라 다른 사람 눈에 있는 티눈을 보지 말고 이런 말씀도 하시는 겁니다.
또 하시는 말씀이 거짓선지자들이 많이 나올 텐데 양의 옷을 입고는 약탈하는 이리 같은 놈들이 많이 나온단다. 영 분별력을 가지라는 이런 말씀도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는 반석위에 집을 지어라 모래위에 짓지 말고 이런 모든 내가 볼 때 열 가지 덕목을 이분들에게 가르치는 겁니다.
그런데 이분들을 보세요. 전혀 준비도 안 된 사람들입니다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잊어버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볼 때는 이분들이 자기들도 모르게 하루아침에 로마제국에 기독교계에 탑 리드들이 된 겁니다. 탑 리드들이 되면서 항상 성령님이 이분들에게 산상수훈을 기억하게 하셨다고 저는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탑 리드들이 되었을 때마다 항상 팔복을 생각하게 하고 항상 자기 자신이 부족함을 이야기하고 두 주인을 섬기지 않고 외식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티눈을 보지 않고 자기 눈에 들보가 있다는 것을 항상 고백하게 하고 그리고 주변에 거짓선지자들이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탐 리드가 되면서 이분들이 생각했을 겁니다.
낙원에 올라가서 이분들이 아하! 예수님! 그때 우리를 팔복 산에서 하신 말씀 기억나네요. 그러면 예수님이 그때 자세하게 풀어주었을 겁니다.
그분들에게 저게 올라가서 이 세상에 계셨을 때는 그 정도로 알다가 희미하게 알다가 부분적으로 알다가 그 유명한 사람들인데 이분들도 희미하게 부분적으로 어린아이수준으로 알다가 그냥 올라가신 겁니다.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만이 아닙니다.
제가 깨달은 겁니다. 2세기3세기4세기 때마다 로마제국에 있는 5대 교구들 크리스천들이 이 네 분을 아주 자기네 교회에 하나의 성장을 위해서 자기네 이익을 위해서 이 네 분들을 이용했습니다. 어떻게 이용했느냐면 이분들을 성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가지고 이분들의 사진들도 만들고 동상도 만들고 이분들을 통해서 예수님께 기도할 때 이분들에게 기도하면 성인 숭배하는 겁니다. 이분들이 예수님께 부탁하도록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겁니다. 이분들을 통해서 그래가지고 이분들이 본인들은 아예 생각도 안 했는데 이분들이 이 세상에 계셨을 때는 핍박받고 교계에 리드였지만 핍박받는 리드들이었습니다. 별로 유명한 분들도 아니고 그런데 이 후손들이 이 사람들을 유명하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래가지고 성인으로 만들어 가지고 로마가톨릭이나 그리스정교회나 아프리카정교회나 시리아정교회들이나 이 네 분의 이름을 사용해가지고 교회 이름도 다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성 베드로성당, 성 안드레교회, 성 야고보, 성 요한 그래서 교회이름들도 만들고 뭘 만들고 그냥 이분들을 우상화시켜버린 겁니다.
이것도 예수님의 디자인 속에 있다고 보는 겁니다. 사람들은 본인들의 의도와 다르게 이런 짓들을 해오고 지금까지 해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회만이 아닙니다. 이 팀들이 개신교도 마찬가지로 요즘 와서 성 요한병원 전 세계 어디를 가 봐도 성 베드로병원, 성 안드레병원, 성 야고보병원 병원만이 아닙니다. 학교이름들도 로마가톨릭의 학교들 성공회학교들 전부 이 사람들 이름을 붙어가지고 학교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유럽이나 미국에 가보세요 이 사람들 이름으로 도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마을 이름도 그뿐입니까? 학교들도 다 이 사람들 이름들 가지고 그뿐입니까? 유럽이나 영어권사람들은 비영어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 아이들 이름들을 다 이 네 명의 이름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저는 토마스로 이 사람들 틈에 끼지 못합니다. 전부 이 사람들을 이렇게 높여놓았습니다. 제가 이제 결론 중에 결론입니다 지금 낙원에서 이 네 분이 교회가 그동안 자기네 이름을 사용해가지고 이런 짓 하는걸 보면서 예수님 앞에 이분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지금 사람들이 교회라는 게 이분들이 자기네를 우상화시킨 겁니다. 예수님 앞에 이분들이 예수님! 죄송합니다.
그럴 겁니다.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훈련을 시키지 못했네요.
우리가 떠날 때 우리가 주님나라에 올 때 제자들에게 절대로 이런 짓하지 말라고 말을 했으면 좋았을 걸 자기네들이 말을 못했네요.
예수님께 아마 그렇게 무릎을 꿇고서 죄송합니다. 그럴 겁니다.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고 저는 이런 걸 생각하면서 제가 주님나라에 여러분들 보다 먼저 가면 목사님기념센터 이런 걸 하지 마세요. 서양 사람들 보면 아무개 기념교회 요한기념교회 어쩌고저쩌고 온 천지에 깔려 있잖아요. 이걸 예수님이 원하십니까?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유명해지면 사람은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네 명은 그런 유명세를 타지 않고 예수님께서 불러갔습니다 고생을 열심히 시키고 그런데 그 후에 팀들이 이 사람들을 이용해가지고 그렇게 한 겁니다. 그런데 똑같이 오늘날 교회들이 유명세를 타는 것은 이게 내가 볼 때는 복이 아닌 겁니다.
사람들에게 유명세를 타는 것은 그래서 가톨릭이나 정교회나 역사적으로 유명한 분들 오늘날 우리 개신교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명한 목사들 뜨기만 하면 수만 명이 접속을 하는 그게 복인 것 같습니까? 제가 볼 때는 아닌 겁니다. 사람들은 그런 곳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게 아닌 겁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숨겨놓으십니다 왜냐면 이런 유명세를 타면 변질되기 때문에 그게 인간의 부족한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랑하는 이분을 숨겨놓으시는 겁니다. 핍박받게 하시고 그러다가 이분들이 다 낙원에 간 사이에 후에 딴 놈들이 이 사람들을 가지고 딴 짓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의 목사인 저도 뜨면 안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목사님 기념 사업회 한다. 절대로 그러면 안 됩니다 그게 다 주님이 원하는 게 아닙니다. 창조목적에 위배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칼럼에서 이야기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소금이 되는 것을 원하시지 소금이 되었을 때 빛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거꾸로 빛이 먼저 되는 겁니다. 유명세를 먼저 타게끔 하는 겁니다. 그게 사람들의 죄 성입니다. 창조목적에 어긋나는 죄 성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교회는 주님께서 대형교회로 안 만드시는 이유가 그기에 있습니다. 왜냐면 그래도 목사님이 대형교회 목사가 되면 저는 완전히 변질되어 버리는 겁니다. 자동차도 고급차 타고 다니고 어디가도 고급으로 놀고 이러면 그런 사람 우리가 볼 때는 성공한 목사로 보지만 그게 성공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의 시각에서 볼 때는 성공한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시각에서는 성공이 아닙니다. 그걸 볼 줄 아는 한분 한분되시기를 간구합니다.
오늘 주제가 무엇이었습니까? 왜 이 네 사람 이 네 사람에게 산상수훈을 주셨나?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예수님의 종들은 특히 소위 말하는 성직자들은 높아질수록, 높아질수록 더 낮아져야 되고 겸손해야 되고 그래야 되는 겁니다. 매스컴을 타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거꾸로 매스컴을 타서 인기 있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관심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보시면 되는 겁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우리에게 이 영성을 허락해주었사오니 우리에게 이 세대를 볼 때 이 영적 분별력을 가지는 지혜 자들이 되도록 세상 사람들의 시각으로 따라가지 않게 해주시고 소위 이런 시각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무리 속에 들어가지 않도록 저희들을 보호시켜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찬송이 항상 저의 고백이고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기를 삼위하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예수님 저희들의 이 고백을 받으시고 저희들의 삶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홀로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 왜 네 제자들에게만 산상수훈을 가르치셨나. (마4:17-5:2)
1. 우리에게 산상수훈을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2. 산상수훈이 2곳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디입니까?
3. 이 두 곳이 어떻게 다릅니까?
4. 마태복음 1-4장까지의 내용을 순서대로 살펴봅시다.
5. 베드로에 대해 살펴봅시다.
6. 안드레에 대해 살펴봅시다.
7. 야고보에 대해 살펴봅시다.
8. 요한에 대해 살펴봅시다.
9. 왜 예수님이 이들 서 이게 주후 네(4) 명에게 집중하여 산상수훈을 가르치셨습니까?
10. 우리도 이 네(4) 명의 반열에 들어오려면, 어떤 덕목을 가져야 합니까?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Xj2p0iGHq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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