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시리즈

32강. 마태복음23장39절, 이제부터 나를 보지 못하리라

변명섭 2022. 9. 20. 12:12

이스라엘시리즈 32강. 이제부터 나를 보지 못하리라(마23:39) 2022년9월18일 말씀
오늘주님이 주시는 말씀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시리즈 중에서 화있을진저, 화있을진저 일곱 번 하시고는 주님이 고통당하시는 고난주일 화요일에 하시는 말씀을 계속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주욱 하실 때 오늘은 마태복음23장 마지막 한 절 이 말씀을 하시는데 그 말씀이 상당히 소화하기가 쉽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우리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이렇게 보시면 이 말씀 속에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내가 내가가 누굽니까? 예수님이십니다. 내가 예수님이 십자가 달리시는 그 주 화요일에 말씀하시는 겁니다. 내가 너희에게 할 때 너희는 누굽니까?
좁게 이야기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이고 또 그 주변에 있는 유대인지도자급 되는 바리새인들아 서기관들아 그랬잖아요. 거기까지 다 포함할 수 있습니다. 하여튼 유대인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내가 말한다.
하시면서 이제부터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이제부터 그러면 제가 한번 여쭈어 보겠습니다. 이제부터니까 언제입니까? 문자적으로 그대로 보면 지금 화요일부터입니다. 그것을 조금 정리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3일 있다가 부활하시고 그리고는 40일 계시다가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10일 있다가 오순절 때 첫 교회가 시작된 겁니다. 그러니까 조금 넓게 보면 첫 교회가 시작된  때부터 이렇게 보면 되겠습니다. 이제부터 이 말은 뭐냐면 교회시대부터 이런 표현입니다 주후30년 교회시대부터 다시 말하면 교회시대부터 시작해서 너희 유대인들아 이제부터는 교회시대시작부터 이때부터 유대인들아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라고 말할 때가 오는데 이걸 그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라고 말하는 겁니다. 이 말이 뭐냐면 나가 누굽니까? 예수님입니다 너희 유대인들아 너희들이 언제까지인지 모르지만 지금부터 교회시대부터시작해서 너희들이 눈이 감겨가지고 내가 주님이다 
내가 너희들에게 로드(Lord)다 주님이다. 라고 너희들이 언젠가는 부를 때가 온단다. 지금 은 안 부르지만 너희들이 지금은 나를 주님이라도 부르지 않지만 그런데 언젠가는 너희들이 나를 로드(Lord)주라고 부를 때가 올 터인데 그때까지 너희들은 내가 누군지 모르도록 눈이 감기게 될 것이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예수님의 계획입니다. 플랜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눈이 감기는 것이 예수님의 플랜입니까? 아닙니까?
지금 이 말씀을 보면 유대인이 예수님을 보지 못하도록 된 것이 예수님의 계획인 겁니다. 디자인 겁니다. 오늘 이 말씀이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시대에 유대인이 눈이 감기는 것이 교회시대에 예수님을 못 보게끔 하는 것이 예수님의 디자인 겁니다. 그런데 이 디자인이 이때 디자인 된 겁니까? 창세전입니다 그래서 창세전에 디자인 된 것을 모세에게 말씀하셨고 이사야에게도 말씀하셨고 그러다가 호세아에게도 말씀하셨고 이걸 우리가 다 공부했습니다. 바울이 다 확인한 걸 우리가 다 공부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로드(Lord)로 보는 주님이라고 보지 못하도록 창세전에 디자인 한 것을 예수님이 지금 화요일에 다시 제자들에게 재확인시켜주는 겁니다. 창세전에 디자인한 것을 이분들에게 다시 재확인시켜주는 겁니다. 이 말씀이 유대인들이 너희들 나를 주라고 보지 못할 것을 유대인들이 눈이 감길 것을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눈이 감기는 것은 누구의 잘 잘못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은 철저한 하나님의 계획인 겁니다.
이렇게 해놓고 왜 유대인을 교회시대에 눈을 감겨 놓았느냐며 유대인들은 조교그룹들입니다 유대인들이 눈이 감겼다는 의미는 유대인인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은밀한 의미에서 유대인은 영적으로 죽었다는 의미나 똑같습니다. 영적으로 죽었다 그러면 왜 유대인을 영적으로 죽도록 하셨나?
그러면 우리가 요한복음12장24절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지만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랬습니다. 이것은 생명을 살리는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를 살리려면 누가 죽어야 됩니다. 그래서 99%의 이방인들이 영적으로 눈이 떠져서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게 하려면 소수의 유대인이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죽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이방인을 복음 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자녀들로 예정된 사람들을 복음 화시키기 위해서 누가 눈이 감겨서 죽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것이 언제 디자인되었냐면 창세전에 디자인된 것을 구약의 유명 인사들에게 다 말했다가 지금 예수님께서 실제로 인간이 되셔가지고 십자가사건 직전에 교회시대 시작하기 직전에 이분이 지금하시는 말씀이 내가 디자인한 것이 이제부터 교회시대부터 이루어 질것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시대부터 유대인들이 눈이 감길 거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않을 거다. 그런데 신기하게 이 말씀이 이루어 져야 됩니까? 안 이루어져야 됩니까? 이루어 져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교회시대에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복음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독교인들이 실은 이스라엘사람들을 고맙게 생각해야 되는데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안 믿게 하기 위해서 다른 말로 표현하면 크리스천들이 교회가 유대인들을 아주 핍박하는 반유대주의로 되어버린 겁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을 핍박하는 그룹이 기독교그룹이 되어 버린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우리가 상식적으로 보면 어떻게 기독교가 교회가 유대인들을 이렇게 핍박하고 미워하고 왕따 시키고 하는데 앞장을 서느냐 그러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미니안적 사고방식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자유의지입니다 인간책임을 이야기할 때 뭐라고 말합니까? 
왜 유대인들이 저렇게 예수를 안 믿느냐 그러면 이 사람들이 왜 우리가 유대인을 핍박해야 되느냐 그러면 뭐라고 그럽니까? 저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인 놈들이야 그렇게 제가 칼럼에 자세히 썼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교회가 유대인을 눈감기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사용하도록 예수님이 하였냐면 
저놈들 너희들 반유대주의로 가는데 근거로 무엇으로 하느냐면 예수님이 이분들에게 마음을 준 겁니다. 저 사람들이 나를 죽인 놈들이야 예수님을 죽인 놈들이야 그렇기 때문에 저놈들을 죽여야 돼 이런 논리로 한 겁니다.
그러니까 초대교회부터 로마가톨릭 정교회 초대교회 이 사람들이 왜 유대인을 저렇게 못된 사람이라고 저주를 했느냐 저주받은 놈들이야 저 놈들은 구약 때 선택받았지만 신약에 와서 예수님을 죽인 놈들이기 때문에 그리고는 실제로 예수님이 구원자로 오셨는데도 저렇게 못되게 놀고 한 나쁜 놈들 그리고는 나중에 자기네가 우리가 예수님을 죽여서 피 값을 우리가 다 받을 거야. 라고 말한 겁니다. 그러니까 저놈들이 나쁘기 때문에 저 유대인 놈들을 우리가 혼내주어야 되고 나중에 죽이기까지 해야 되고 사회적으로 완전히 개 취급하고 돼지 취급해야 된다고 보는 겁니다. 그게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서 그런 짓을 한 겁니다. 과거2000년 동안 지금도 그 그룹들이 있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때 왜 유대인들을 교회가 저렇게 난리를 치고 저렇게 하도록 허락합니까? 그러면 우리가 보통 이야기할 때 뭐라고 합니까? 저놈들이 예수님을 죽여서 그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어느 시각입니까? 병아리나 참새시각입니다 그런 게 필요 합니다
그런 시각을 가졌기 때문에 과거2000년 동안 유대인들을 반유대주의로 나간 겁니다. 그런데 반유대주의가 나쁩니까? 좋습니까?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나쁜 겁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이 사람들이 눈이 감겨서 예수님을 안 보게 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인들을 사용해가지고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예수님을 믿지 않도록 기독교인들이 한 겁니다. 왜냐면 기독교인들이 예수님 할렐루야 하는데 이 그룹들은 유대인들을 무지무지하게 싫어하고 죽이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믿는 예수 우리유대인들은 안 믿는다는 겁니다. 너 네들이 우리유대인들을 싫어하는데 어떻게 너희들이 믿는 예수를 우리가 믿게 되겠니.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죽어라고 예수님을 안 믿는 겁니다. 왜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안 믿는 겁니까? 우리를 핍박하는 놈들이 예수를 믿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핍박하는 놈들이 믿는 예수를 우리가 왜 믿어 그러니까 안 믿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알미니안주의자들은 반유대적사고를 가진 사람들을 예수님이 디자인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디자인하신 겁니다. 과거1900년 동안 교회시대에 반유대주의가 나오도록 디자인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그 기간 동안에 1900년 동안에 유대인들이 죽어라고 예수님을 안 믿는 겁니다. 눈이 감겨서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한 겁니다. 너희들이 나를 주님이다. 라고 고백할 때가 온다.
그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그러는 겁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도표로 보면 눈이 감겨서 반유대주의가 생기고 역사적전천년주의자들도 초대교회시대에 반유대주의자들이었습니다 무 천년주의자들도 반유대주의고 나중에 후 천년주의자들은 산업혁명 이후입니다. 전부 반유대주의였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라는 것이 반유대주의로 나가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언제까지의 까지가 뭐냐면 하나님의 카이로스 타임입니다  
크로노스(chronos)는 긴 시간을 이야기하고 카이로스(kairos)는 타임입니다 전도서3장1절에 카이로스(kairos)가 있습니다. 카이로스가 언제였냐면 유대인들이 눈뜨기 시작하도록 만든 카이로스(kairos)가 세대주의를 만든 1900년입니다 갑자기 세대주의종말론이 나타난 겁니다. 제가 칼럼에 자세히 썼습니다. 다비(John Nelson Darby: 1800-1882)와 스코필드(Cyrus Ingerson Scofield: 1843-1921) 이 사람들이 나타나가지고 갑자기 친 유대주의신학 종말론을 만드는 겁니다. 그게 세대주의신학인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대주의가 나온 예수님이 까지 할 때 까지 1900년입니다
이때까지는 교회들이 유대인들을 핍박해가지고 그 핍박 때문에 이 사람들이 죽으라고 예수님을 안 믿도록 디자인 된 겁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친유대주의사람 크리스천들이 나오면서 유대인들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리고 당신네들 잘못이 아니다 우리가 잘못 했어 이렇게 하니까 세대주의 사람들이 친유대주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들이 유대인들을 앉아주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소수의 유대인들이 이 사람들 때문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겁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소수지만 그때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지금 100년이 흘렸잖아요. 이 기간에 유대인의 숫자가144000명이 차게 되는 겁니다. 
오늘날 제가 때가 되면 유대인에 대해서 더 자세히 이야기할 텐데 오늘은 그냥 이 정도로만 알고 계세요. 그래서 유대인의 숫자가144000명이 찰 때 이방인의 충만한 그 숫자가 얼만지 모르지만 차고 그러니까 예수님의 시각에서 이방인이 복음화가 되어서 예정된 이방인들이 전 세계에 깔려 있는 이방인들이 예수님 앞에 나오는 숫자가 있는데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찰 때 비례해서 같이 이스라엘사람들의 144000명의 숫자도 같이 차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방인숫자를 채우는 전문가들은 그 숫자를 채우고 또 어떤 분들은 유대인만 전문적으로 하는 분들은 분명히 있잖아요. 이 사람들은 또 유대인들을 이렇게 채우는 겁니다. 채우는데 그 디자인 속에서 두 그룹이 숫자를 완전히 찰 때까지 그 일들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차게 되는데 지금 우리가2022년에 살고 있잖아요. 아직까지 차지 않았다고 저는 보는 겁니다. 그렇지만 많이 근접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근접해오는데 그렇기 때문에 교회 안에 아직도 이런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반유대주의사람들과 친 유대주의사람들과 서로 싸움질을 하는 겁니다. 
이런 큰 그림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러니까 반유대주의를 하는 사람들은 우리가2000년 가까이 반유대주의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세대주의 이놈들이 나타나가지고 친 유대주의를 하니까 너 네들 이단이라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싸움질을 하는 겁니다. 제가 칼럼에 쓴 걸 다 읽었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싸움질하면 됩니까? 안 됩니까? 이제는 싸움질 하면 안 됩니다. 이런 큰 그림을 본 사람들은 이렇게 우선 배경설명을 듣고 그러면 소위 우리가 주의이름으로 이야기입니다 주의이름 제가 여러 번 강의를 해서 알겠지만 다시 한 번 우리교회 외에 딴 분들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우리교인들도 다시 한 번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름을 보기 전에 굉장히 중요한 기독교의 삼위하나님에 대해서 간단히 보시면서 정리를 제대로 하셔야 됩니다. 
우리AMI그룹은 정리를 어느 정도 했지만 또 하셔야 됩니다. 
기독교하나님은 삼위하나님이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 어디에 삼위하나님이라는 말이 없는데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댓글에 한두 명이 나옵니다.
그런 사람들의 댓글을 보면서 성령님이 이 사람을 통해서 나에게 메시지를 주시는구나. 저는 항상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하! 이런 사람들이 있구나. 구약에 보면 엘로힘(Elohim)이라는 영어로는 갓(God)이라고 그랬습니다. 이 갓(God)자체가 세분이라는 소리입니다 삼위입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삼위입니다 그러면 목사님 삼위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나옵니까?
그러면 제가 성경구절을 다 드렸습니다. 창세기1장26절에 보면 우리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 창세기3장22절에 보면 우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다음에 창세기11장7절 이사야6장8절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삼위하나님이 나타나신 겁니다.
마태복음3장16절 또 예수님이 지상사명을 내리실 때 아버지의 이름과 아들 이름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그랬습니다. 삼위가 나타납니다.
또 사도바울이 축도 할 때도 삼위의 이름이 나옵니다.
고린도후서13장14절에 요한이 또 말합니다. 요한1서5장7절에 보면 정확하게 삼위이름이 나옵니다. 이렇게 성경에 보면 구약에도 삼위가 분명히 나오고 신약에도 삼위가 분명히 나옵니다. 우리하나님은 삼위하나님이십니다
삼위하나님이 어떻게 서로가 역동적으로 관계를 하느냐면 다 아는 이야기지만 다시 간단하게 보세요. 삼위는 동위고 동질이고 동량이고 동등합니다.  
누가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누가 더 크고 적음이 없습니다.
이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아버지와 이꼬르(equal)다 그랬습니다. 동등하다는 겁니다. 요한복음5장18절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그냥 열을 받는 겁니다. 그다음에 예수님이 또 아버지와 나와 동등하다 그랬습니다. 요한복음10장30절에 또 빌립보서2장6절에 바울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이꼬르(equal)하신 분이다 
성부와 성령님과 이꼬르(equal)하신 분이다 크리스천들은 성경구절 세 개를 반듯이 외우셔야 됩니다. 누가 물어보면 그냥 말씀하셔야 됩니다. 
그런 사람을 주님이 예뻐하실 겁니다. 그런데 또 잊어버리고 또 잊어버리고 그럽니다. 그런 사람을 예뻐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아버지와 나와 성령님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겁니다. 아버지 것이 내 것이고 내 것이 아버지 것이라는 말 있습니다. 성경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럽니다. 요한복음16장15절에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야 됩니다.
삼위하나님이 이렇게 있는데 삼위하나님이 항상 공동회의를 하십니다.
이렇게 이꼬르(equal)신데 성부하나님은 기능적 최상위자가 되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의장역할을 하시고 공포 자 역할을 하시고 또는 기능적 상위로써 자기네가 결정했을 때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자 할 때도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3장16절에 아버지가 나를 이 세상에 보냈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성자하나님을 통해서 성령님을 주시는데 아버지가 성령님을 주십니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십니다. 그런데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주십니다. 요한복음14장6절에 보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에게 부탁을 해서 너희들에게 성령을 보내주게 할 거다 그랬습니다.
이게 성부하나님의 역할입니다 그다음에 성자하나님은 우리가 알다시피 결정된 것을 수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성자하나님이 제일 바쁘신 분 같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만유를 통치하시고 창조하실 때도 실제로 자기 손가지고 다 창조하시고 말씀으로도 창조하시고 만유를 다 컨트롤하시고 소유하시고 만물을 발아래에 두시고 통치하시고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러니까 진짜 예수님이 구원을 위해서 죽으신 분도 예수님이시고 이렇게 예수님이 하신 일이 많다는 겁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이 이런 일을 하도록 능력을 예수님께 부여하시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고통을 당하실 때도 성령님께서 천사를 보내가지고 예수님께 힘을 주는 겁니다. 
누가복음22장43절에 우리크리스천들에게도 성령님이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사도행전1장8절에 너희들이 성령을 받으면 너희들이 나를 증거할거다
능력을 받아서 사도행전1장8절에 그러니까 령이 은사들도 부여하시고 고린도전서12장8절에서10절에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들이 있잖아요. 
그다음에 성령의 열매 갈라디아서5장22절23절 이렇게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 있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너희들이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구약을 우리가 제쳐놓고 신약 때부터 유대인들이 삼위하나님 중에 누구를 믿었습니까? 
이분들이 믿는 신관은 뭐냐면 성부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은 겁니다.
그리고는 성부하나님의 접속된 그분의 신을 성령님으로 믿은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의 생각은 성부하나님만 진짜 하나님으로 믿은 겁니다.
제일 높으신 분이고 유일하신 제일위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삼위하나님을 믿는데 유대인들은 눈이 감겨가지고 삼위를 보지 못하고 구약을 보면 이렇게 삼위하나님이야기를 했는데도 이 사람들이 보지를 못 하는 겁니다.
분명히 자기네가 들고 다니는 성경에 삼위가 있는데 엘로힘(Elohim)이라는 이름도 있는데 그게 복수이름입니다 그리고는 시편22편도 그렇고 이사야서53장도 그렇고 다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을 이사야가 본 겁니다.
시편22편은 다윗이 본 겁니다. 그런데도 이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는 성경에 그게 있는데도 이 사람들이 눈이 감겨가지고 그 성경구절을 그 성경내용을 삼위하나님으로 보지 못하는 겁니다. 눈이 감겨서 그러면 이게 자기네 잘못입니까? 아닌 겁니다. 예수님의 디자인 겁니다. 유대인들은 눈이 감겨서 삼위하나님을 보지 못하도록 만들어놓은 겁니다. 그래가지고 삼위 중에서 일위 되시는 성부하나님만 하나님으로 보게 만들고 구약에 나오는 성령하나님은 그기에 하나의 부속품으로 보고 그러면 구약에서 삼위하나님을 지칭할 때가 언제냐면 창세기1장1절에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더라. 
그때 엘로힘(Elohim)이라 그랬습니다. 영어로 갓(God)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창세기2장4절부터는 갓(God)앞에 야웨 갓(yahweh God)그래서 야웨(yahweh)라는 단어가 창세기2장4절에 딱 붙는 겁니다. 
그래서 야웨(yahweh)가 누구냐면 예수님인 겁니다. 구약에 이제부터 성부하나님은 그냥 계시고 구약에 모든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들은 야웨 갓(yahweh God)입니다. 야웨(yahweh)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계약하시는 분 그런 뜻입니다 이때부터 실제로 우리 역사 속에 내려와서 운행하시는 예수하나님의 이야기가 구약에 쫘악 나오는 겁니다. 
구약에 야웨(yahweh), 야웨(yahweh) 여호와 이렇게 나오는 이야기가 다 예수님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아는데 유대인들은 구약에 나오는 야웨(yahweh)가 예수님인 걸 모르는 겁니다. 왜 모릅니까?
모르도록 디자인되어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야웨(yahweh)라는 이름이 창세기2장4절인데 이 야웨(yahweh)가 예수님의 피 흘리심을 계약하시는 커버넌트 갓(covenant God) 영어로 야웨(yahweh)이렇게 했다가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을 때 십계명에 제3계명에 뭐라고 그랬냐면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마라 이것 때문에 유대인들이 야웨(yahweh)라는 이름을 그때부터 부르지를 못했습니다. 십계명의 제3계명 때문에 그래서 유대인들이 성경에다가 야웨(yahweh)의 모음 두 개(a e)를 없애버렸습니다. 
없애가지고 유대인들이 성경을 자음만(yhwh)만 하니까 발음을 하지 못하는 겁니다. 발음하지 못하는 야웨(yahweh)가 되어 버린 겁니다. 
그때부터 성경을 바꾼 게 주전1446년 출애굽한 그 해입니다 
이래가지고 주욱 성경에 야웨(yahweh)가 (yhwh)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을 제가 가끔 이야기하지만 성경을 읽으면서 야웨(yhwh)가 나오면 발음을 못하니까 주욱 읽다가 절을 하는 겁니다. 
이게 뭐냐면 야웨(yhwh)가 나왔을 때 발음을 못하고 그기에 존경을 의미하기 위해서 절을 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이분들이 주전2세기3세기 때 안 되겠다 발음을 하는 야웨(yhwh)를 하나 만들어내자 그래가지고 아도나이(Adonai)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습니다. 아도나이(Adonai)라는 이름이 뭐냐면 능력자 그런 소리입니다 아도나이(Adonai)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그러면 아도나이(Adonai)라고 발음이 되니까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야웨(yhwh)대신에 계속해서 아도나이(Adonai)로 사용하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유명한 사본인데 마소라사본(Masoretic Text)이라고 주후7세기에서10세기 때 만든 제일 유명한 성경사본입니다. 우리가 쓰는 킹 제임스니 모든 성경을 마소라사본(Masoretic Text)을 참고로 해가지고 성경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의하면 이 야웨(yhwh)를 라틴어로 바꾸어가지고 여호와(Jehovah)로 바꾸어버렸습니다. 제호바(Jehovah)이게 라틴말입니다 
제호바(Jehovah)라고 바꾸어 버렸습니다. 마소라사본(Masoretic Text)에서 그러니까 제호바(Jehovah)라고  라틴말인 겁니다. 그래서 여호와(Jehovah) 
여호와(Jehovah)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여호와(Jehovah)가 야웨(yhwh)와 같은 분입니까? 아닙니까? 같은 분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름이 변천이 된 겁니다. 그러다가 70인 역이 주전284년에서247년에 애굽에 유대인들이 제일 많이 사는 도시가 알렉산드리아입니다 그기에 유대인들이 오랫동안586사건 때부터722년 사건으로 해외에서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유대 말을 못하는 겁니다. 그리스말을 하는 겁니다. 
헬라 말을 해서 이 사람들에게 구약이 유대인말로 되어 있는 것을 구약을 그리스말로 바꾸어야 되겠다. 그래서 70인 학자들이 구약에 나오는 오리지널 유대 말을 그리스말로 바꾼 그 책을 70인 역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70인 역(七十人譯,Septuagint)이라 그럽니다. 이분들이 유대 말을 헬라 말로 바꾼 책입니다 이때 유대 말인 아도나이(Adonai)를 그리스말 뭐로 바꾸었냐면 꾸리오스(Kyrios)로 바꾸었습니다. 이때부터 꾸리오스(Kyrios)라는 말  뜻이 뭐냐면 주님이라는 뜻입니다. 또는 더 로드(The Lord) 또는 마스트​(Master) 이게 꾸리오스(Kyrios)라 그럽니다. 그래서 킹 제임스성경이1611년에 만들어 졌는데 이때 제호바(Jehovah)라고 구약에서 말하기도 하고 신약은 더 로드(The Lord) 꾸리오스(Kyrios)그래서 우리도 주님, 주님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하면 누굽니까? 성부하나님입니까? 성자하나님입니까? 성령하나님입니까? 주로 성자하나님을 말할 때 쓰는 말이 더 로드(The Lord)주님 마스트​(Master)라 합니다. 이걸 놓고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을 다시 한 번 보세요. 제가 이것을 여러분들이 소화하라고 이렇게 하는 겁니다. 다시 보세요. 내가 너희는 누굽니까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떤 개념이 있습니까? 구약에 나오는 야웨(yhwh)를 누구라고 보는 사람들입니까? 성부하나님으로 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이 말씀을 하실 때 이게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 배경을 우리가 꼭 알아야지만 이게 해결이 됩니다. 예수님이 지금 구약에 나오는 야웨(yhwh)니  아도나이(Adonai)니 제호바(Jehovah)니 꾸리오스(Kyrios)니 이것을 유대인들은 누구로 보는 겁니까? 성부하나님으로 보는 겁니다. 지금도 유대교에서는 그런데 우리기독교인들 중에서도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훈련이 안 된 사람들은 그래서 예수님이 이 배경을 가지고 다시 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유대인으로 성부개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할렐루야 하겠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로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너희들이 유대인들아 너희들이 내가 꾸리오스(Kyrios)다 너희들이 부르는 내가 주다 내가 제호바(Jehovah)다 내가 아도나이(Adonai)다 내가 야웨(yhwh)다 라고 불릴 때가 오는데 그때까지 너희들은 나를 보지 못하리라.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이 눈이 감겨가지고 인간으로 내려오신 예수가 구약에서 우리가 믿어왔던 야웨(yhwh)였구나 구약에서 우리가 믿어왔던 아도나이(Adonai)였구나 저분이 제호바(Jehovah)였구나 
그리고 신약에서 꾸리오스(Kyrios)였구나 라는 것을 눈을 뜨는 사람들이 나올 거라는 겁니다. 지금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이걸 고백하는 겁니다.
그래서 메시아닉 주라고 그러는 겁니다. 구약에 나오는 야웨(yhwh)  아도나이(Adonai) 제호바(Jehovah)가 예수님이었다는 겁니다. 
예수님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메시아닉 주라고 그러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이 나를 이렇게 구약에 나오는 이 이름들이 성부가 아니고 이게 나다 그러면서 찬양 드립시다.
이분이 예수님이시군요. 이렇게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그것이 언제 일어나기 시작합니까? 세대주의가 생겨나면서부터 지금부터100년 전부터 이런 일들이 여기저기서 조금씩, 조금씩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다가 오늘날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숫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겁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이 숫자가 점점 많아진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이방인의 숫자가 차가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그러면 제가 다시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유대인들이 눈이 감기는 게 이게 누구의 잘잘못입니까? 
아닌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미니안식으로 보면 우리자유의지 쪽으로 보면 유대인이 눈 감긴 게 왜 감겼느냐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을 핍박해서 그렇다는 겁니다. 그게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 뭐가 깔려 있습니까?
핍박하도록 예수님이디자인하신 겁니다. 왜 핍박하도록 디자인하셨습니까?
창세전그리스도의 신비를 이루기위해서 그리고 교회시대 때 이분들이 눈이 감겨져야 되는 겁니다. 왜냐면 이방인들이 눈 뜨게 하기 위해서 이분들이 눈이 감겨져서 죽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야지만 이방인들이 눈을 뜨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들이 눈이 감겨서 교회를 주님이 사용하시는 겁니다. 반유대주의로 교회를 만드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반유대주의가 된 것은 하나님의 예수님의 철저한 계획 속에서 된 겁니다.
교회도 아무리 친 유대주의로 하려도 1900년 동안 안 되는 겁니다.
죽어라고 하려도 그러니까 하나님의 디자인을 사람이 바꿀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상식적으로 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유대인들을 저렇게 고생시키느냐 왜 이렇게 반유대주의를 하느냐 누구를 위해서입니까?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를 채우기 위해서 이 사람들을 죽이는 일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지금 차가고 있습니다. 
차가고 있으니까 어떻게 진행되어가고 있습니까? 이제 점점 점 친유대주의 세력이 점점 많아지는 겁니다. 갑자기 교회 안에서 그러면서 반유대주의를 했던 사람들도 친 유대주의로 지금 많이 바꾸고 있습니다. 
신기하게 왜 그럴까요? 그러면 아하! 이제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차가고 있구나.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이 눈이 뜨고 있다는 것을 시사해주는 겁니다. 
정리해보면 첫 번째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차가고 있구나. 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11장25절26절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의 공중 재림이 가까이 오고 있구나. 이것도 알 수 있는 겁니다. 세 번째는 아하! 앞으로 더 심한 산고가 있겠구나.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되는가? 그러면 첫 번째 이방인 숫자 채우는 사역에 집중해야 되겠구나. 우리가 직접 간접으로 이걸 하고 있잖아요.
두 번째는 이방인 숫자만 채우는 게 아니고 유대인의 숫자도 채워야 됩니다.
유대인의14000 그래서 우리에게 유대인들을 또 붙여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유대인사역을 직접간접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저희들이 유대인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이분들을 우리에게 붙여주면 우리가 무엇을 가르쳐야 됩니까?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을 우리에게 붙여주시면 우리가 무엇을 가르쳐야 됩니까? 그러면 창조목적에 절대성과 중요성을 가르쳐주어야 되는 겁니다.
네 번째로 우리가 뭘 해야 되느냐면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하나님나라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어야 되는 겁니다. 저세상 이 세상 저세상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어야 되는 겁니다. 다섯 번째로 이 세상7000년이 창조목적학교라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되는 겁니다. 여섯 번째로 창조목적학교가 이제는 곧 4년제 대학이 끝나는 예수님의 지상 재림이 그때라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더 심한 산고들이 올 것을 우리가 가르쳐주어야 됩니다. 어떤 분은 이런 댓글을 단 분이 있습니다. 굉장히 좋은 댓글인데 목사님 우리는 패배주의자들입니까? 이런 단어를 썼습니다. 아주 좋은 단어를 썼습니다. 우리가 패배주의자들입니까? 자포자기한 자들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패배주의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지혜자인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 또 사명 자가 되기 위해서 이런 공부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미리 알고 이것을 대비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겁니다. 이 지혜를 우리가 가지기위해서 이렇게 공부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자포자기하는 그냥 패배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제가 강조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지혜를 가지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베푸느냐면 결론적인 말씀인데 이런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똑같은 은혜가 아니고 사명에 따라 다르고 분량에 따라 다르고 그기에 맞추어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은혜를 받은 자의 첫 번째는 어떤 결과의 열매들이 나오느냐면 은혜의 분량에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써 서서히 변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식과 명철과 지혜를 받으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써 우리가 이렇게 지식을 쌓잖아요. 명철을 쌓고 지혜를 쌓을 때마다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변해가주어야만 되는 겁니다. 
그게 우리과제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려면 이렇게 지식과 명철과 지혜를 이렇게 받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성품의 변화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세계관에 변화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시대분별력을 가지게 됩니다. 시대통찰력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분별력을 가질 때마다 우리입술에 능력을 베푸십니다. 그래서 내가 어디 가서 한 마디하면 사람들이 듣습니다. 내가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에 어두움이 쫓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더 좀 배웁시다. 그럽니다. 우리가 이런 은혜 자가 되기 위해서 오늘도 이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공부입니다
이 어려운 공부를 제 나름대로 잘 소화해서 여러분들입에다가 집어넣으려고 이렇게 나름대로 최선을 다 했는데 제가 한 것이 아니고 성령님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설교를 하기 직전에 이 자리에 앉아서 항상 주님과 대화를 합니다. 주님! 이 방대한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한꺼번에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드리지 못하지만 조금씩이라도 제 입술을 통해서 주님 말씀해주세요
그러면서 저는 그냥 아멘하고 담대하게 여기에 서는 겁니다.
그다음부터는 지금 제가 말하는 것들 여기에 다 정리해놓았지만 읽는 게 아니잖아요. 그때그때 성령님이 저에게 말씀해주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 찬송을 이렇게 한번 부르고 싶습니다. 오 나의 자비로운 주여 이 찬송을 우리가 부를 때 한번만 부르지 마시고 몇 번 부르면서 기도하면서 이 찬송을 부릅시다. 그래서 이 찬송 속에서 성령님이 우리에게 강하게 역사하시면서 이 세대에 세대를 분별하는 도구가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깨우는 도구가 되도록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들림 받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아무나 들림 받는 게 아니잖아요.
들림은 자동적으로 받게 되어 있는 겁니다.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사람은 그러기 위해서 오늘 이 찬송 속에서 성령님의 은혜, 주님의 은혜 할 때는 누구의 은혜입니까?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주님 하면 꾸리오스(Kyrios)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우리가 체험하여 더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이런 자가 되도록 찬송을 같이 기도하는 심정으로 부릅시다.                       

우리 예수님은 삼위하나님 중에서 행동을 취하시는 수행하시는 창조주하나님이시고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고 만유가 그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하나님이시고 이 하나님이 하찮은 인간이 되셔서 우리에게 창조목적의 절대성과 중요성을 가르쳐주셨던 엄청난 겸손한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창세전부터시작해서 7000년 이 세상창조목적학교의 신비를 깨달으라고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이 세상에 잠깐 있다가 다시 본향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고백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이런 것을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여! 이 엄청난 예수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지식과 명철과 지혜로 넘쳐나게 하셔서 날로, 날로 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도록 주여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옵나이다. 아멘. 

※이제부터 나를 보지 못하리라(마23:39)
1. 오늘의 본문 말씀을 함께 읽고, 그 속의 뜻을 함께 나누어 봅시다.
2.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란 무슨 의미입니까?
3. 예수님 이름의 변천사를 나누어 봅시다.
4. 성서 어디에 기독교 하나님이 삼위하나님으로 표현되어 있습니까?
5. 삼위하나님의 특성에 대해 나누어 봅시다.
6. 성부 하나님의 특성?
7. 성자 하나님의 특성?
8. 성령 하나님의 특성?
9. 오늘날 메시아닉 유대인 출현이 무엇을 시사해 줍니까?
10. 우리가 패배주의나 자포자기 주의자들입니까? 우리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PhwqcjkM0C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