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시리즈 30강.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23:37) 2022년9월4일 말씀
오늘도 계속해서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그 유명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라는 이야기인데 이 속에 깔려있는 주님의 엄청난 비밀의 말씀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오늘 우리가 하나하나 같이 공부하려고 그럽니다. 우리가 지난시간까지 예수님께서 일곱 화있을진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일곱 화있을진저 말씀을 하시고는 그다음에 이어서 그냥 하시는 말씀이 오늘마태복음23장37절의 말씀입니다 이어서 하시는 말씀을 제가 여기다가 적어 봤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한절입니다
뭐라고 그러느냐면 예루살렘아 오! 예루살렘아 예수님의 감정이 들어 있습니다. 일곱 화있을 진저를 설명한 다음에 제자들이 보는데서 오! 예루살렘아 그러는 겁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고 두 번이나 오! 예루살렘아 오! 예루살렘아 이런 감정표현을 하시는 겁니다. 그래놓고는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 선지자들을 죽이고 그럴 때 여기서 우리가 알게 오! 예루살렘하면 예루살렘이 누굴까요? 예루살렘은 유대인들 엘리트그룹들을 지칭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그러니까 엘리트그룹들이여 하는 소리나 똑같습니다. 그래서 오! 예루살렘아 오!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 그런 소리입니다
그러면서 애들아 너희들 선지자들을 죽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구약시대입니다 아브라함부터시작해서 과거2000년 동안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내가 보낸 선지자들을 너희들이 죽였다는 겁니다. 어떻게 죽였느냐면 돌로 쳐서 죽였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뭐냐면 내가 이 사람들을 보냈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지금 말씀하시기를 이 당시에 예수님이 주후30년이니까 33세 되는 때입니다 예수님십자가사건 바로 직전 그 주 화요일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고난주일화요일에 하시는 말씀인데 너희들 내가 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을 다 보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소화하지 못하는 겁니다. 어떻게 33세 된 갈릴리출신 예수가 구약의 유명한 선지자들을 다 내가 보냈다 예수님이 그러시는 겁니다. 이분들에게는 도저히 이해 못하고 소화 못하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이 속에는 기가 막힌 주님의 뜻이 숨어있는 겁니다. 우리는 그냥 쉽게 읽어봤지만 내가 너희들에게 선지자들을 파송했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지금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네 자녀들을 모으려고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네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여기 보면 암탉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걸 제가 뽑아내었습니다.
암탉이 자기 병아리들을 모아서 폼 속에 집어넣기 위해서 모으려고 해도 너 네들이 암탉의 날개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러면 제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암탉이 누굽니까? 예수님입니다 암탉이 예수님이십니다.
왜 예수님을 암탉이라고 그랬습니까? 병아리들은 누굽니까?
그러면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니까 병아리들은 암탉이 품어가지고 암탉이 새끼를 낳는 겁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을 창조하신 분이 만드신 분이 누구라는 겁니까?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암탉이고 너희들은 병아리들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너 네들이 그렇게 내 품에 오라오라 했는데도 내 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다 이렇게 기가 막힌 말을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품으로 안 들어왔다는 겁니다.
지금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 이 속에 깔려 있는 기가 막힌 예수님의 심정을 우리가 오늘 공부하려고 그럽니다. 그리고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오! 예루살렘하실 때는 그 속에 굉장히 예수님의 여러 가지 복합적인 심정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심정을 한번 꽤뚫어 봅시다. 우선 예수님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이분들이 미워서 이렇게 말했을까요? 너 네들이 내가 이렇게 했는데 내 품에 들어오지 않고 내가 보낸 선지자들을 다 돌로 쳐 죽인 이놈들아 라는 개념으로 볼 때 이 나쁜 놈들아 라는 의미에서 오! 예루살렘 오! 예루살렘 하셨을까요?
이게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제가 볼 때는 아닌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신학적으로 보면 두 개념이 있습니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입니다 칼빈주의에서는 뭐냐면 알미니안주의에서는 이걸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이 유대인들아 너희들 봐라 이렇게 예수님이 너희들을 구약 때 사랑해주고 선택해서 복을 받으라고 여러 가지로 했는데 너희들이 구약 때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계명을 지키지 않고 우상을 섬기고 바벨론종교를 섬기고 이런 못된 짓을 너희들이 자의적으로 했기 때문에 너희들 주전722년 앗수르 제국사건이 있었고 주전586바벨론사건 너희들 경험했잖아. 그러니까 이것은 전적으로 너희들 잘못이다 이놈들아 이렇게 보는 겁니다. 알미니안주의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 너희들 과거 구약시대는 너희들 그래도 하나님의 선택 안에서 봐주었지만 너희들 그래가지고 조금 있다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까지 너희들이 한 놈들이다 이런 측면으로 보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이것 봐라 예수님도 이놈들 예루살렘, 예루살렘하면서 꾸중을 하듯이 너희들은 저주받은 족속이라고 보는 겁니다.
이게 알미니안주의적 해석인 겁니다. 왜냐면 인간책임입니다 인간이 책임을 잘못했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래서 그 해석을 가지고 과거2000년 신약시대에 교회들이 반유대주의사상으로 간 겁니다. 반유대주의를 뭐라고 그럽니까? 안티세미티즘(Antisemitism)이라 그럽니다.
안티세미티즘(Antisemitism)으로 간 겁니다. 교회들이 다 이스라엘사람들을 그때부터 로마가톨릭 나중에 개신교에 들어와서도 루터나 칼빈이나 쯔빙글리나 다 개신교의 유명 소위 목사들 학자들 전부 유대인들을 나쁘게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독일의 루터 교에 소위 나치의 히틀러도 이런 개념으로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을 데려다가 혼내고 뒤에서 로마가톨릭이 다 도와주었습니다. 이게 뭐냐면 소위 알미니안주의적인 사상을 가지고 유대인들이 이렇게 잘못했기 때문에 이놈들은 핍박을 받아야 된다는 그 사상이 깔려 있는 겁니다. 교회들이 그렇게 해온 겁니다. 그러다가 지금부터100년 전부터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선택한 특별한 사람들이고 하면서 유대인을 보는 시각을 달리해서 그 사람들을 사랑해주고 친하게 해주고 그분들에게 복음을 전하자 하는 운동이 나온 게 세대주의 사람들입니다 친유대주의가 나온 겁니다. 그러면서 칼빈주의 사람들도 신기하게 다 반유대주의로 갔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전체가 반유대주의로 갔던 것이 교회사 이야기입니다
그런 걸 우리가 배경으로 놓고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이러면서 예수님이 지금 마음이 울적한 마음일까요? 이 말씀을 하실 때 지금 일곱 화있을진저, 화있을진저 하시고는 지금 이것이 어느 때를 조명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재림 전 때 이야기로 점프해서 우리가 계속 화있을 진저도 그때로 우리가 보잖아요. 이것도 똑같습니다. 화있을진저, 화있을진저 그러면서 1세기 때 예수님의 감정이나 지금 감정이나 똑같은데 이게 뭐냐면 저는 이렇게 보는 겁니다. 이 예수님의 표현이 상당히 은유적이고 어떤 측면에서는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이렇게 눈이 감겨가지고 예수님을 보지도 못하고 예수님의 말에 순종도 안 하고 지금 이렇게 주욱 하면서 예수님께서 너 네들이 내가 이렇게 사랑해서 너희들을 암탉이 병아리를 않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너희들이 원치 않는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실 때는 여기에 지금 깔려 있는 게 우리가 예정 적 측면에서는 어떻게 우리가 해석해야 됩니까? 예정 적 측면에서는 아하! 이 사람들이 창세전부터 예수님을 모르게 만들어 놓았구나? 라고 까지 우리는 알고 있는데 예수님은 이미 그렇게 디자인하신 겁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디자인을 하시고는 역설적으로 은유적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은 압니다. 이분들이 저렇게 예수님을 영접을 안 하는 겁니다.
그 모습은 안하게끔 되어 있습니까? 안 되어 있습니까? 예정적인 측면에서는 안하게끔 되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안 하는 걸로 우리가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온전히 정반대개념입니다. 알미니안주의에서는 안 했기 때문에 너희들 이렇게 혼쭐이 났잖아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지금 뭐냐면 안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을 우리에게 지금 보여주고 그분들이 실제로 안 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디자인하신 대로 안하니까 예수님이 오! 예루살렘, 오! 예루살렘 할 때는 예수님의 속마음은 무엇이라고 보는 겁니까? 아주 흐뭇한 마음을 그 속에 가지고 있는 겁니다. 이 친구들이 내가 디자인한데로 지금 움직이는구나. 그러니까 은유적으로 역설적인 개념이 그 속에 숨겨져 있는 겁니다.
제 말을 소화하십니까? 그게 우리 생각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인간들은 뭐냐면 그저 내 인간자유의지 내가 책임이 있어서 이 사상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게 있다 보면 이 사람들이 잘못했기 때문에 저렇게 오! 예루살렘 오! 예루살렘 하신다고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기독교인이지만 괜찮습니다. 그렇게 보는 사람들은 나중에 제가 이야기하겠지만 사물을 볼 때나 성서를 봐도 고작해야 병아리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고작해야 병아리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어 무슨 시각입니까?
참새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큰 그림을 보는 사람은 아! 이것이 창세전에 디자인이 되었구나. 라고 보는 사람숫자는 많지 않습니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지만 이런 사람들은 이 사건들을 어떻게 봅니까?
독수리시각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큰 그림으로 제가 지금 여러분들에게 큰 그림 속에서 예수님이 지금 오! 예루살렘 오! 예루살렘 하시는구나. 라는 이야기를 해드리려고 지금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제게 물어볼 겁니다. 목사님 도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지금 이런 설명을 할 때 이 설명을 들으면서도 자기의지로 이것을 소화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볼 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소화를 못합니다.
그런데 그 속에 은혜가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소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AMI식구들은 또는 우리AMI를 통해서 구독을 하면서 열심히 매주 영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최소한 제가 가지고 있는 이 시각에 동의하거나 이것을 더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을 향해서 저는 매시지를 전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질문이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사람들을 창세전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도록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구약의 여호와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모르도록 창세전에 이렇게 디자인하셨나? 이것이 우리의 질문 중에 질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가 공부했잖아요. 예수님의 선재 론이라 그랬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여호와하나님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이 지금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자녀들을 모으려고 했다 33세 되신 예수님이 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을 보냈던 분이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선지자들을 보내가지고 무슨 매시지를 전하기 위해 선지자들을 만들었습니까? 이사야 선지자, 예레미야 선지자, 하박국 선지자, 말라기 선지자 그 선지자들을 부르실 때 구약성경에는 여호와께서 아무개에게 여호와께서 여호와하나님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여호와가 나라는 겁니다. 여기서 분명히 그랬습니다.
내가 그 선지자들을 보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분명히 여호와, 여호와 구약에 나오는 여호와가 누구라는 겁니까?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이게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서 몇 가지 말씀하신 게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예수님이 내가 아브라함과 만나고 아브라함에게 모든 걸 지시했다고 그러는 겁니다. 요한복음8장56절에서59절입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33세 되기 전에 젊은 갈릴리출신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말하는 겁니다. 유대인들아 2000년 전에 아브라함 있잖아 그러니까 예, 그분이 우리조상입니다 그 아브라함이 나를 방문하고 내가 아브라함을 방문하고 그 당시 아브라함과 나와 같이 지냈단다.
그러시는 겁니다. 젊은 청년예수님이 그러니까 이분들이 여보시오 당신이2000년 전에 우리조상 아브라함과 같이 지냈어요? 그분에게 명령을 내렸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맞다 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애들아 내가 아브라함 있기 훨씬 전부터 내가 있었단다.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놀래 자빠져가지고 돌로 쳐 죽이려고 하는 겁니다.
어떻게 감히 네가 이런 말을 하느냐 요한복음8장56절에서59절입니다.
똑같이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이 요한에게 1장8절에 그러는 겁니다.
요한아!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내가 알파와 오메가다 그러시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계시록을 오메가로 끝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역사를 시작한 알파고 내가 오메가다 그러시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록1장8절에 그러시면서 나중에 계시록마지막에 또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도대체 알파와 오메가는 역사의 주인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구약 때 보니까 이사야서44장6절에 이사야에게 예수님이 그러는 겁니다. 내가 알파와 오메가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던 그분이 알파와 오메가인데 예수님이 그 알파와 오메가가 누구라는 겁니까? 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구약 때 여호와가 누구라는 겁니까?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구약 때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가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너희들 유대교의 엘리트그룹들아 내가 선지자들을 보냈단다.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너희들이 말을 안 들었단다.
그런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에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선지자들을 보내가지고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고 보냈습니까?
이게 질문입니다 여러분들은 뭐라고 대답할 겁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너희들 내 백성들아 선지자들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창조목적에 위배하지 말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바벨론종교를 섬기지 말라 너희들 말 안 들으면 어떻게 된다. 저주받는 단다. 그래서 이방인들에게 매도 맞고 이방인들에게 나중에 나라도 빼앗기고 이렇게 다 하겠단다 이 말씀을 모세 때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모세 때 신명기28장1절에서부터14절은 이걸 잘 하면 창조목적대로 잘 하면 복을 내린다. 네 자손들에게 돈도 많이 벌게 하고 출세시키고 다 하겠다는 겁니다. 1절에서14절에 그랬습니다.
그런데15절부터 마지막65절까지 뭐냐면 안하면 엄청난 어려움과 저주를 받겠다는 겁니다. 그대로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들 창조목적대로 안 하면 내 자식이지만 저주를 받겠다. 그런데 이분들이 실제로 안 하는 겁니다.
구약시대에 안 하니까 누구를 보냈습니까? 선지자들을 누가 보냈습니까?
예수님이 보낸 겁나다. 그러니까 모세에게도 예수님이 말씀한 겁니다.
어떻게 압니까? 모세에게도 예수님이 말씀하셨다고 히브리서11장24절26절에 보면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모세에게 다 말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말하는 초점이 뭐냐면 구약의 여호와가 누구라는 겁니까?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말을 안 들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722년사건586사건 다음시간에 보겠지만 주후70년사건 이 말씀을 하시고는 37절38절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너희나라 성전이 다 없어지겠다는 겁니다. 그게38절입니다. 다음 시간에 제가 자세하게 설명해드리려고 합니다. 이런 가운데 보세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저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목사님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눈이 감기는 것이 하나님의 디자인입니다 유대인들이 눈이 감긴다는 소리가 뭐냐면 유대인들이 구약에서 나타나는 여호와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모르도록 눈이 감기는 겁니다.
이것이 누구의 디자인입니까? 예수님의 디자인이군요. 그러면 제가 뭐라고 대답할까요? 예 맞습니다. 예수님의 디자인입니다 그러면 또 여러분들이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주님께서 유대인들이 눈이 감기는 것을 바울이 뭐라고 표현하느냐면 창세전부터 눈이 감기는 것을 바울이 그리스도의 신비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베소서3장4절에 에베소서1장에 그 이야기가 있고 2장3장에 전부 그 이야기들입니다 바울이 깨달은 겁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신비라 그러는 겁니다. 창세전에 유대인들이 눈이 감겨서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될 거라는 겁니다. 이것을 우리가 이런 식으로 배웠습니다.
요한에게 요한계시록12장1절에 해 입은 여자의 모습으로 그래서 해 입은 여자가 이스라엘이다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인데 해를 입었고 다시 말하면 해가 누구입니까? 바알신이 누굽니까? 니므롯입니다 니므롯의 옷을 입고 그다음에 바알은 달을 밟고 있다 그게 무엇입니까? 달은 누굽니까?
세미라미스 그다음에 열두 별의 면류관을 쓰고 있다 별리 누굽니까?
담무스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그 여자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었냐면 요한계시록12장1절2절은 창세전이야기입니다 창세전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이렇게 바벨론종교의 옷을 입고 나타날 것을 그런 행동을 할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겁니다. 그 이스라엘 속에서 나중에 계시록12장에 보면 예수님이 탄생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이미 암시적으로 그리스도의신비가 요한에게 창세전에 이런 것을 있을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준 겁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서 모세 때 모세가 하늘나라에 가기 바로 직전에 주전1407년에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신명기32장15절에서21절에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 모세야! 네 백성이 눈이 감겨서 나를 보지를 못할 거다. 그랬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눈이 감겨서 나를 보지 못할 거다
이방사람들이 나를 보게 될 거라는 말씀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방사람들 보고는 네 백성들이 질투심을 가지게 될 거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게 신명기32장15절에서21절에 이때 이미 유대인들이 눈이 감겨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보지 못할 것을 여호와로 보지 못하는 겁니다.
유대인들이 영적으로 눈이 감겨서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을 성부하나님한분으로만 보는 겁니다. 구약에 나오는 모든 하나님 여호와 이레 모든 하나님을 성부하나님으로만 보는 겁니다.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다가600년이 지나서 다윗 때 주님이 보여주시는 겁니다.
다윗이 시편을 쓰는데 시편69편23절에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내 백성이 눈이 감겨가지고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이방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게 될 거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 말씀을 1000년 후에 바울에게 다시 확인시켜주는 겁니다. 바울이 이 말씀을 그대로 인용을 하는 겁니다. 로마서11장9절에서10절에 그러니까 이 도표를 가지고서 이야기해야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중에 바울하면 바울이 언젠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시간 개념이 없습니다. 그냥 목사님이 단에 서서 말로만 해가지고는 안 됩니다. 도표로써 쫘악 설명하여 시간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는300년 있다가 호세아에게 또 반복적으로 말해주는 겁니다.
호세아서2장23절에 호세아에게 말씀하셨던 것을 나중에 바울에게 또 확인시켜주는 겁니다. 바울아 이런 사건이 있다는 것을 호세아에게 내가 말했잖아 그러면서 로마서9장25절26절에 또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학자기 때문에 아하! 호세아에게도 말씀하셨네요. 다윗에게도 말씀하셨네요.
그러면서 이것을 자꾸 확인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바울에게 로마서11장8절에 이사야에게도 말씀하셨다 똑같은 내용을 그래서 이사야서6장9절10절 내용을 인용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몇 번 확인하는 겁니까?
창세전에 있었던 이것을 암시적으로 말했던 것을 모세 때 와서 이야기하시고 다윗에게 이야기하시고 호세아 이사야에게 이야기하시고 그리고 예수님이 나오셨습니다. 이걸 이분들에게 말한 분이 누굽니까? 예수님입니다
창세전부터 사건을 예수님이 사람으로 내려오셔 가지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요한복음12장37절40절에 이사야에게 하신 말씀 이사야서6장9절10절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시는 겁니다. 제자들을 교육시키는 겁니다.
애들아 너희들 나중에 나가다 보면 이스라엘사람들이 눈이 감겨가지고 날 영접 안한다. 이방인들이 주로 영접 할 거다. 내가 이미 이사야에게 말했단다. 이걸 요한복음12장37절에서40절에 예수님이 직접말씀하신 겁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비유를 드십니다. 비유가 누가복음에도 있지만 마태복음에도 있습니다. 비유가 뭐냐면 성대한 만찬을 초대하는데 유대인들을 만찬에 오라하는데 안 오는 겁니다. 그래서 길거리에 가가지고 아무나 잡인들을 불려 와라 잡 사람들이 와가지고 만찬에 앉아 있는 겁니다. 그게 뭐냐면 이방인들입니다 예수님이 밥상을 차려놓았는데도 이스라엘사람들은 안 온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말만 들으면 이스라엘사람들 나쁜 놈들 그렇게 밥상을 차려 놓았는데도 오지도 않고 이놈들 저주받을 놈들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독수리시각을 가지고 이걸 다 보면 아하! 알 수 있는 겁니다. 제가 지금 무슨 시각으로 이야기합니까?
우리가 지금 이 사건을 병아리시각으로도 보고 참새시각으로도 보고 그다음에 독수리시각으로도 보고 여러분들이 들고 다니는 성경을 보는 학자들마다 시각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지는 겁니다. 우리AMI공부는 무슨 시각으로 제가 여러분들에게 계속해서 말합니까? 독수리시각으로 이야기하려면 참새시각도 알아야 되고 병아리시각도 알아야 되는 겁니다.
바울이 독수리시각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 유명한 바울도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니까 잘 보세요. 그래서 바울이 로마서를 썼을 때 이 사람이 개종을 언제 했습니까? 35년에 개종 해잖아요. 개종하고서22년 동안 예수님을 나름대로 열심히 섬겼습니다. 그리고는 이때까지 이분이 책도 몇 권을 썼습니다. 이분이 49년에 갈라디아서를 썼습니다. 51년에 데살로니가 전 후서를 썼습니다. 55년에 고린도 전 후서를 썼습니다. 그러니까 책도 많이 쓰고 22년 동안 선교도 많이 하고 1차2차3차 선교여행까지 했던 대단한 사람입니다
대단한 사람인데 이스라엘을 보는 시각이 무슨 시각이냐면 고작해야 참새시각으로 대부분은 이분이 무슨 시각이냐면 병아리시각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글도 많이 썼는데 어떻게 아느냐면 로마서9장3절에 보면 이분이 어떤 시각을 가졌나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22년을 이렇게 주님을 섬겼는데 책도 많이 쓰고 유명한 학자였는데 이 사람의 시각이 뭐냐면 이스라엘을 보는 시각이 로마서9장3절에 뭐라고 그랬습니까? 내가 왜 로마서1장부터8장까지 유명한 복음스토리를 내가 알고 있는데 이 아름다운 예수님의 복음스토리를 내 백성은 모릅니까?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왜 내 백성은 눈이 감겨가지고 예수님의 아름다운복음을 영접을 안 합니까?
왜 이렇게 완악합니까? 그러면서 이분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내 백성을 눈 뜨게 안 해주시면 내 이름도 생명책에서 지워버리세요
이렇게 덤벼드는 이야기가 로마서9장3절입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어떤 사상을 가진 겁니까? 로마서를 쓰기 전까지는 병아리시각을 가진 겁니다.
딴 것은 제대로 했는데 이스라엘을 보는 시각은 병아리시각을 가졌던 분입니다. 그러니까 그때 예수님이 쫘악 이분에게 가르쳐주는 겁니다.
그릇이 준비가 되었으니까? 22년을 훈련 받았으니까 여러분들도 그동안 병아리 참새시각을 가졌던 분들 중에 인간 자유의지론 이런 걸 했던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생각을 바꾸세요. 안 바꾸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바꾸면 도움이 됩니다. 화면을 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안 바꾸어도 괜찮습니다. 다 구원받고 하나님나라에 가십니다.
이런 큰 그림을 보면 사람이 넓어집니다. 모든 걸 내가 다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사람이 평화스럽게 됩니다. 내가 안 해서 인간이 이런 걸 안했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항상 얼굴이 심각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그 수준으로 알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해야 돼 인간이 해야 돼 인간이 안하면 예수님이 혼내셔 왜냐면 항상 내가 하려고 하는 마음 그 마음을 가지고는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왜냐면 크신 예수님을 모르는 겁니다. 큰독수리시각을 가진 큰 그림을 모르기 때문에 자꾸 그런 수준으로 모든 걸 보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까? 적습니까? 하나님자녀들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디자인입니다 왜냐면 천국에 올라가면 어떻게 영적으로 세상을 보았느냐에 따라서 계급이 설정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높은 계급에 있으려면 독수리시각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면 지금 짐승들이 까불고 있는 모든 산고를 보고는 하하 하고 웃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산고를 아무리 공부해야 이놈의 산고하고 내가 싸워야 되는 사람은 싸워 도록 놓아주세요.
싸우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많잖아요. 이것 때문에 싸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싸우는 사람은 싸우게 하세요. 왜냐면 싸움을 통해서 아하!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졌구나. 라는 것을 볼 수 있는 겁니다.
그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는 보는 겁니다. 싸우는데 들어가서 내가 이렇게 해도 되지만 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 사람들보고 하라고 그러세요.
역사는 그대로 흘려가게 되어 있는 겁니다. 하든 안하던 그런 사람들이 하나도 없기를 바랍니다. 바울에게 이 도표를 설명해주는 겁니다.
다시 바울아 이것은 나의 주권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로마서9장이 유명한 겁니다. 9장6절부터23절의 모든 디자인은 이스라엘사람들을 눈 감기게 내가 디자인하고 지금까지 온 것은 나의 주권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를 듭니다 야곱과 에서의 예를 듭니다 내가 왜 야곱을 사랑했고 에서를 미워했는지 아느냐 그다음에 애굽의 바로 왕을 내가 완악하게 만들어 놓은 것도 내가 다 한 거라는 겁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토기장이 예를 드는 겁니다. 토기장이가 어떤 것은 귀하게 만들고 어떤 것은 천하게 만들고 다 내가 디자인한 거다 그러니까 나의 주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이 프렌을 만든 것도 눈감긴 프랜을 만든 것도 내 주권이라는 겁니다. 바울이 여기서 무릎을 꿇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정론은 하나님의 주권론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움직이는 겁니다. 독수리시각을 가진 사람은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주권이 아니고 인간노력 내 책임이라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지만 병아리시각입니다.
바울에게 예수님이 그러는 겁니다. 내가 다윗에게 이미 말했잖느냐 하면서 내가 호세아에게도 말했잖느냐 이 디자인을 내가 이사야에게도 말했잖느냐 그러면서 유대인들이 눈감길 것을 그리고 이방인들이 눈을 뜰 것을 말했잖아.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로마서11장에 가서 그렇다면 이스라엘사람들 망한 겁니까? 바울아 이스라엘사람들 내가 결코 버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버리는 것 같이 보이지 안 버렸다는 겁니다. 잠깐 눈 감겨놓았다는 겁니다.
왜 감겨 놓았습니까? 누굴 살리려고 이방인들을 그러면서 이스라엘사람들 중에 조금 남은 자들을 만들어가지고 그분들을 눈 뜨게 만들어 놓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남은 자들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엘리야 때를 봐라 예리야 때 그렇게 사람이 많았는데 이스라엘사람들이 소수만 눈 뜨지 않았느냐 그러면서 소수만 내가 눈 뜨게 7천명을 남겨놓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말하는 겁니다. 이사야에게도 말했잖아 이사야1장9절에 바벨론포로로 다 갔지만 소수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남은 자가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잘 섬기는 자가 있다는 겁니다. 그게 남은 자 이론입니다 그러면 지금 여기서 왜 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이 피를 흘려야만 하는가? 이게 굉장히 중요하고 우리가 해결해야 될 질문입니다 그 착한사람들 정말 열심히 남은 자들입니다
열심히 예수님을 섬겼던 분들인데 열심히 구약의 여호와가 예수님이라고 믿고 열심히 섬겼던 분들인데 이분들이 왜 돌에 맞아서 피를 흘려야 되느냐 이겁니다 이게 우리질문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을 우리가 찾아야 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구약시대는 예수님십자가사건 전입니다 그러니까 이때 죽었던 유대인들은 죽어서 어디에 갔을까? 두 번째 질문은 우리가 예정적인 측면에서 보는 겁니다. 이때 인구는 많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된 사람들 이때 세계 각 나라에 여러 족속들 이 사람들은 죽어서 어디로 갔을까?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왜냐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걸 모르고 그냥 살지만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걸 우리가 깨달으면 엄청나게 주님 앞에 가까이 가고 그분을 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지적수준을 높일수록 영적수준이 더 크지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들 제가 예전에 여기에 대한 답을 다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의 품이 무엇인가? 기억나십니까?
아브라함의 품에 대한 성경구절은 누가복음16장24절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품인데 두 번째는 베드로가 말하기를 베드로전서3장18절 4장6절과 예수님이 요나에 관한 말씀으로 마태복음12장40절 그리고 요나서1장17절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3일 동안 들어갔다 그랬는데 요나서2장2절에 요나가 음부의 배속에 들어갔다 그랬습니다. 스올의 뱃속 음부 또는 지옥 그런 말입니다 음부의 뱃속에 들어갔다 그러니까 요나가 고래뱃속이 음부라고 상징적으로 표현한 겁니다. 요나서1장17절과 요나서2장2절에 그랬습니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들에게 표적을 줄 텐데 요나의 표적밖에 줄 것이 없다 그랬습니다. 그게 마태복음12장40절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요나의 표적을 주겠다는 말은 예수님이 죽었다가 3일 안에 다시 살아난다는 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거기다가 예수님이 3일 동안에 요나의 음부 속으로 내려가셨다는 겁니다. 그것이 어디에 나옵니까?
베드로전서3장18절과4장6절입니다. 3일 동안에 내려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랬습니다. 이것을 누가복음16장24절에서 아브라함의 폼이라는 겁니다.
왜 아브라함의 품이냐면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가는 데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하나님의 자녀들 그게 아브라함의 품에 가는 사람들입니다
땅 속에 내려가지만 음부보다 더 좋은 음부라고 제가 예전에 말했습니다.
이걸 염두에 두시고 도표를 보시면 이 기간 동안에 예수님의 십자가사건 전입니다 하나님의 예정된 자녀들 유대인들 또는 이방인들은 죽어서 어디로 갔을까? 그러면 분명히 우리는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아하! 아브라함의 품으로 내려갔구나. 이렇게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 보세요. 우리가 적어도 아브라함의 품에 가려면 우리가 구원받으려면 뭐가 있어야 됩니까?
피 가 있어야 됩니다. 피를 흘리는 누가 있어야 됩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피를 흘렸습니다. 그리고 순교자들이 피를 흘렸습니다. 신약시대는 그런데 구약시대는 예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이 피를 흘렸습니다. 구약시대는 예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이 피를 흘려서 그분들의 피에 의해서 그 기간에 예정된 하나님의 유대인들과 또 이방인들이 아브라함의 품으로 내려가서 특별교육을 받은 걸로 우리가 생각하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예수님의 보혈 구원론을 철저하게 공부했을 것 같습니다. 그 밑에 내려가서 구원론을 철저하게 공부하고 그다음에 일곱 가지의 주제들을 간략하게 공부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졸업해가지고 낙원으로 올려 보냈다고 저는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구약 때 선지자들이 피를 왜 흘려야 되는가? 할 때 대답이 나왔습니까? 똑같이 신약시대도 예수님이 피 흘렸잖아요. 그런데 복음을 중동지방에만 주로 퍼졌지 나머지나라들은 복음이 안 퍼졌잖아요.
그러니까 미전도 족속들이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굉장히 많았던 겁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똑같이 하나님의 예정된 사람들의 피도 있지만 예수님의 피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으로 갔다가 특수교육을 받고 올려 보냈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님 그러면 미전도 족속복음화가 필요 없네요. 실은 필요 없습니다. 필요 없지만 주님이 우리에게 지상사명을 준 겁니다. 필요 없지만 열심히 전해라 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겁니다. 열심히 전하는 그러니까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우리가 전하지 않으면 예수님이 안 오신다고 볼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전해야지만 된다. 그런데 우리가 논리적으로 지금 미전도 족속이 아직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아직도 복음을 못 들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뿐입니까. 복음을 못 듣고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 사람들이 지옥으로 갔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삶이 편합니까? 안 편합니까? 그런 사람들은 항상 얼굴을 찡그리고 있습니다. 심각하고 설교를 해도 그런 사람들은 난리 납니다.
얼굴 보면 저 사람이 어느 정도구나 알 수 있는 겁니다. 매일 내가 안하면 안 된다고 보는 사람들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까? 적습니까?
많아야 되는 겁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디자인하셨습니다. 그러면 제가 마지막으로 결론적인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우리크리스천들은 세 종류의 크리스천들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시각적으로 첫 번째는 병아리시각 자들이 있습니다. 병아리시각 자들은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입니다
이렇게 많아야 됩니다. 병아리시각 자들은 삶을 어떻게 보느냐면 주변만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변에 모든 상황에 매몰되어 있는 겁니다.
예수님을 잘 믿지만 예수님을 우리가 믿는다고 하지만 내 주위라고 하지만 그저 매일 우리가정 아이들 직장문제 건강문제 여기에 매몰되어가지고 주변의 삶을 그렇게 보는 겁니다. 그다음에 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고는 못 살겠다 신문 들여다보면 신경질만나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만 우리기독교인들 중에서도 그것만 보면 신경질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병아리시각이라서 그러는 겁니다. 병아리시각이기 때문에 그런데 이 병아리시각은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병아리시각도 필요하지만 주변이 이럴 때는 점프해서 참새시각으로 올라가야 하거든요 참새를 보니까 참새면 우리나라만 보는 게 아니잖아요. 주변나라들 중국도 보고 일본도 보고 다 보니까 또 골치 아픈 겁니다.
그렇지만 참새시각 자가 또 필요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아리시각에서 참새시각으로 보는 것은 우리기독교인들만이 아니고 세상 사람들도 이 시각이 이렇게 둘로 갈라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도 참새시각을 가지기 위해서는 세상지식도 많이 가져야 되고 상식도 가져야 되고 그러니까 TV에 보면 시사 평론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뭘 보여주는 겁니까?
이 세상을 조금 더 참새시각으로 보라고 우리시각을 조금 더 넓혀보라고 상식을 가르쳐주고 학교 다니면서 공부도 하고 교육도 받고 카운슬링도 받고 철학공부도 하고 하는 게 무엇입니까? 이 세상을 높이 보라고 그런데 일반세상사람들은 거기까지만 보는데 창세전부터 쫘악 해서7000년 이 세상을 보는 시각은 우리기독교인들만 가지고 있는 특권적인 시각이 독수리시각인 겁니다. 독수리시각을 우리가 가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15장19절에 그랬습니다. 열두 명 이분들도 병아리시각 자들이고 고작해야 참새시각 자들인 겁니다. 그 당시에 그러니까 이분에게 예수님이 그러시는 겁니다. 애들아! 너희들은 이 세상이 너희 고향이 아니다 요한복음15장19절에 너희들은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고 말해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잠깐 이 세상에 있는 나그네라고 말할 때 베드로도 들었지만 베드로가 제 생각에는 한참 있다가 깨달은 게 베드로전서 후서를 쓸 때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 전후서는 64년에 썼습니다. 그리고65년에 이분이 순교 당했잖아요. 우리베드로선생님은 제가 그냥 추측하는 겁니다. 그분의 편지에 의하면 그때 자기 제자들에게 그랬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순례자고 나그네다 그러는 겁니다.
여기가 우리고향이 아니라고 말한 게 베들로 전 후서에 그런 말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선생님도 그 전에 이미 큰 시각을 가졌겠지만 그분이 그것을 표현한 게 다시 말하면 베드로의 제자들이 베드로전서에 의하면 갈라디아, 본도, 갑바도기아, 비두니아 이런 데 흩어진 내 제자들아 하면서 너희들 시각을 이 세상에 잠깐 있는 나그네시각을 가져라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분들입니다 그런데도 시각은 아직 참새시각정도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자기가 깨달은 독수리시각을 이분들에게 이야기해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큰 그림을 이렇게 볼 때 우리에게 도움이 됩니까? 안 됩니까? 시각을 바꿀 때 바꾸는 게 내가 바꾸는 게 아니고 주님이 이런 공부를 통해서 이런 그림을 쫘악 보면서 시각을 성령님이 바꾸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면 시각을 바꾸었다고 그래서 내가 독수리시각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나도 병아리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병아리시각에서 주변을 다 볼 줄 알아야 됩니다. 또 참새시각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거기다가 옷을 입혀서 독수리시각까지 다 가지고 있으면 주변에 어려운 환경을 보시고는 이것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웬만한 내 주변에 자녀문제 무슨 문제 이런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가 내가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 문제를 내가 잠깐 위에 올라가서 참새시각으로 보는 겁니다.
그게 안 되면 또 독수리시각으로 보는 겁니다. 나에게 태풍이 오면 성서에서 독수리는 뭐라고 그럽니까? 태풍 칠 때 독수리는 창공을 향해 쫘악 올라간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독수리시각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칠판에 도표를 그리면서 이 공부하는 것은 뭐냐면 이 세상이 지금 두 짐승세상입니다.
이 산고시대에 큰 태풍들이 몰려오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올 것이고 거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제가 엊그제 칼럼에다가 직접 썼습니다.
그러니까 이 칼럼을 꼭 읽으시길 바랍니다.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하는 분들은 우리AMI교회 커뮤니티에 들어오시면 다 있습니다. 칼럼을 자세히 보세요. 그기에 댓글 쓴 사람들 제가 오늘 아침에 보니까 정말 고맙습니다.
댓글 쓴 사람 모두들 정말 잘 썼습니다. 댓글을 보면서 아하! 이 칼럼을 잘 소화하시는구나. 그리고 이 칼럼을 쓴 사람들 그분들의 글을 읽은 사람들이 크게 은혜를 받고 도움을 받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칼럼사역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제가 말하는데 옷을 입혀가지고 성령님이 깨달은 것을 쓰게 하는 그냥 목사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도 되지만 자기가 깨달은 것을 성령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쫘악 쓰시는 이게 다 사역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걸 보잖아요. 볼 때 내가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으로 생각하시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칼럼사역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성령님의 감동이 올 때 쫘악 쓰시는 겁니다. 너무나 고맙습니다.
이런 칼럼을 읽으면서 여러분들의 댓글을 읽으면서 힘을 받고 새롭게 사람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집니까? 이 산고시대에 우리가 태풍이 올 때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 어떻게 해야 됩니까?
쫘악 독수리처럼 올라가면 되는 겁니다.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아하! 이 문제를 주님이 왜 주셨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 세상에 이 모든 태풍들도 두 짐승의 모든 산고들도 아하! 왜 주셨구나. 위에서 다 보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뭐가 옵니까? 마음에 평강이 오는 겁니다. 그리고 소망이 보이고 나의 라이프에 방향이 보이고 그리고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되겠구나. 이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알려주어야지 보게 해주어야지 하는 간절한 소망이 나에게 있게 되어 있는 겁니다. 큰 그림을 본 사람은 저는 그것을 봤기 때문에 부족하지만 여러분들에게 내가 깨달은 것을 이렇게 나누는 겁니다. 이 나눔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왜냐면 주님이 조금씩, 조금씩 저에게 이렇게 가르쳐주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배운 것을 여러분들과 나누는 것뿐입니다. 성령님! 성령님! 우리 모두에게 나눔 속에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를 이 세상의 모든 산고들을 어떻게 내가 소화해야 되는지가 아니고 이것을 깨닫기를 원하고 여기에 대한 질문들을 기다리고 있는 사랑하는 주님의 백성들에게 우리가 직접간접으로 내가 깨달은 것을 내가 아는 것을 나누는 핍박이 있더라도 어려움이 있더라도 불편함이 있더라도 내가 순교의 피를 흘려가면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복된 자들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옵나이다. 아멘.
우리가 세상등지고 십자가보네 하면 상당히 막연한 표현입니다 구체적으로 세상등지고 십자가보네 하면 무엇을 봐야 합니까? 창세전부터 쫘악 저 그림을 보는 연습을 합시다. 아멘.
삼위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가운데 성령님이여 우리에게 더 큰 은총을 주셔서 이 두 짐승세대에 이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독수리시각을 가지고 이 세상을 보는 그 은혜가 넘쳐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23:37)
1.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를 왜 두 번씩이나 하셨습니까?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하셨습니까?
2. 예루살렘은 누구입니까?
3. 이들이 선지지자들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왜 이들이 선지자들을 죽였습니까?
4. 이 선지자들을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자신이 파송했다고 하셨는데, 구약 때 예수님이 안 계셨는데, 어떻게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할 수 있습니까?
5. 왜 구약의 선지자들이 피를 많이 흘려야만 했습니까?
6. 왜 예수님이 자신을 암탉이라 하셨습니까?
7. 왜 이들이 암탉의 품에 들어오길 원치 않았습니까?
8. 그리스도의 신비를 창세전부터 바울까지 도표로 확인해 봅시다.
9. 왜 예수님께서 창세전 그리스도의 신비를 디자인 하셨습니까?
10. 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극렬히 반대했습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할 예정입니까?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cCGLUgb4J4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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