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20강. 빌립보서4장21절-23절, 은혜가 너희 심령위에 있을지어다

변명섭 2022. 4. 18. 09:29

빌립보서 20강. 은혜가 너희 심령위에 있을지어다.(빌4:21-23)

빌립보서4장21절에서23절의 말씀입니다. 더디어 빌립보서강해 스무 번째로서 빌립보서1장에서4장까지 강해가 오늘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마지막 부분입니다 21절부터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21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22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오늘 말씀은 마지막 결론적인 말씀이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잘 들어 주셔서 오늘 제가 무슨 말씀을 하는지를 완전히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려운 말은 아니지만 그동안에 제가 스무 번에 걸쳐서 한 말씀의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사도바울의 결론적인 말씀이나 똑같습니다. 사도바울은 편지를 쓸 때마다 항상 제일 앞에 하시는 말씀이 너희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또는 넘칠지어다. 이런 말씀을 꼭 했습니다.

그리고는 제일 마지막 편지가 디모데후서인데 디모데후서에는 은혜와 평강 그 사이다가 한 마디를 더 붙였습니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넘칠지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 표현은 아주 붙어 다니는 표현입니다

특히 디모데후서는 사도바울이 가장 영적으로 성숙했을 때 그 말씀을 하시고는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이 가장 성숙했을 때 한 표현을 거기다가 더 첨가를 시켰습니다. 긍휼이라는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이분도 본인이 주님을 많은 기간 동안에 어려움을 통해 섬기지만 은혜가 있었고 그다음에 평강도 있었지만 긍휼이라는 표현을 자기가 썼을 때는 이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구나. 라는 의미에서 거기다가 사도바울의 수제자인 디모데에게 디모데야 너 삶속에서는 은혜가 넘쳐야 되고 그다음에 모든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한 마음이 넘쳐야 되고 그리고는 네 속에는 평강으로 가득 차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인사말로 하시고는 그다음에 신학적인 모든 표현을 그분의 서신에서 설명을 합니다. 신학적인 이론을 설명한 다음에 어떻게 살아라. 까지 말씀하시고는 결론에 꼭 하시는 말씀이 지금 오늘 이 말씀을 어느 서신이나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뭐라고 그랬습니까?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냥 은혜가 아닙니다.

무슨 은혜냐면 그리스도예수의 은혜라고 그랬습니다. 그분의 편지에는 편지마다 예외가 없이 그리스도의 예수의 은혜가 넘쳐난다 마지막 결론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기회가 있으면 그분의 편지 마지막을 다 보세요.

그러면 꼭 마지막 말에다가 그렇게 써놓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빌립보서를 보면 마지막에다가 뭐라고 그랬냐면 그리스도예수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그렇게 써놓았습니다. 심령이라는 말을 거기다가 더 구체화시켰습니다. 어디에 은혜가 거하느냐면 심령에 거한다는 겁니다. 디모데후서도 똑같이 그랬습니다. 너희 심령에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이분이 오늘 빌립보서에도 그랬지만 갈라디아서에도 똑같이 너희 심령에 원어로 프뉴마(Pneuma)에 임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 편지에는 그냥 은혜가 임하기를 바란다. 이렇게 했는데 심령이라는 말을 쓰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씀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라 그랬습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마지막13장13절에 나오는 유명한 마지막으로 목사님들이 축도 할 때 쓰는 말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제일 먼저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을지어다. 그다음에 성부하나님의 사랑이라 그랬습니다. 그다음에 성령님의 교제하심이 이 세부분에 동사가 다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제일 먼저 성부하나님보다 성자예수님의 은혜를 먼저 말했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그 은혜가 우리 삶속에 우선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 은혜가 있으려면 어디서 은혜가 흘려 나와야 되느냐면 성부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흘려 나와야 됩니다. 그런데 이 은혜가 있으려면 내 힘으로 되지 않고 성령님의 감화 감동하심이 도와주셔야 됩니다. 그래서 이 세부분이 이렇게 서로가 하나의 묽음으로 되어 있는 겁니다.

은혜라는 이 말씀이 사도바울에게만 항상 있는 게 아니고 베드로도 편지를 썼을 때 그럽니다. 베드로전서후서에 보면 이분은 하나님의 은혜가 너희에게서 자라나라 성장하여서 너희들의 삶에 평화가 넘쳐나기를 바란다.

이렇게 베드로는 항상 말하는 겁니다. 베드로전서5장13절에 보면 또는 베드로후서3장18절에 보면 그러니까 우리기독교인들의 주님의 자녀들의 아주 최고의 삶의 목표가 뭐냐면 우리에게는 은혜가 있어야 되고 그다음에 평강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성령님은 요한에게도 똑같이 그랬습니다. 요한1서 요한3서 요한계시록 항상 편지 뒤에는 너희들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 요한계시록제일마지막22장21절에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하고는 성경의 끝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주님의 백성들이 은혜와 긍휼과 평화가 없으면 진정한 의미의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기 앉아있는 주님의 백성들이여! 평화가 있습니까? 평안이 있습니까? 평화가 없으면 입만 열면 사람을 잡아먹습니다.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해도 평화가 없으면 그럽니다. 그런데 이 평화는 어디서 오느냐면 은혜를 먼저 받아야지만 평화가 옵니다. 순서가 있습니다.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순서가 있습니다. 하나님말씀은 순서를 적당히 써놓은 게 아닙니다. 다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은혜를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은혜하면 특히 우리한국교회는 은혜 많이 받았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그게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기뻐다 편안하다 오늘 예배에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 없이 쓰는 말이기 때문에 그 진정한 뜻을 오용할 수가 있습니다. 그 뜻을 모를 때가 있습니다.

남용하면 가치가 없어지는 겁니다. 넒은 의미에서 은혜는 뭐냐면 하나님이 선택받은 사람들이 구원받은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겁니다.

이게 넒은 의미에서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그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서도 하나님이 특별히 은혜를 많이 끼쳐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분은 하나님은 공평치 않다 형평성이 없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하나님은 본인이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서도 성경에는 그러한 예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우선 제가 은혜라는 뜻이 무엇인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은혜는 구약에서 나오는 은혜와 신약에 나오는 은혜는 다릅니다.

우선 구약에서 나오는 은혜를 헨(hen)이라 그럽니다. 이걸 영어로는 그레이서(grace) 또는 영어로 페이브(favor) 호의를 받는 겁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약한 자에게 베푸는 호의를 은혜라는 겁니다. 야곱이 자기 형 에서에게 둘려 싸여가지고 어려움을 당했을 때 에서에게 뭐라고 그랬냐면 내 주께 은혜를 입음이라 이런 말을 썼습니다. 그 은혜가 뭐냐면 나에게 호의를 조금 베풀어주세요. 날 좀 봐주세요. 창세기34장8절 보면 성경에는 은혜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내가 약합니다. 나를 좀 봐주세요. 그런 의미에서 헨(hen)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무엘상27장1절에서6절에 보면 다윗이 사울의 손을 피하기 위해서 가드라는 조그만 나라에 가서 지금 사울이 나를 죽이려고 하니까 내가 숨을 조그만 동네를 주십시오.

그래서 네가 당신께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그때 은혜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렇게 은혜라는 말을 구약에서 쓰고 있습니다. 똑같이 에스더도 그랬습니다. 왕에게 당신의 목전에서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에게 호의를 받기를 원한다는 의미에서 은혜라는 말을 구약에서 썼습니다. 이 은혜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은혜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 앞에 약합니다.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게 신약에 와서는 우리죄인이 의인이 된 것이 큰 은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의 은혜입니다. 네가 영생을 받을만한 자격이 되지 않는데 나를 그런 자격이 된 사람으로 나를 호의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 말이 은혜라는 말입니다 이런 은혜 받은 사람들 중에서 특수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또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골라가지고 특히 노아를 보면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노아 때 사람들이 죄가 관영되어가지고 하나님이 화가나계실 때 성경에서는 창세기6장8절에 그랬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왜냐면 노아는 하나님께 특별한 사랑을 받아왔던 사람입니다

노아 때문에 노아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였고 특수하게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노아가 그 죄를 질 수 있는 사람으로 갖추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특별히 사랑했기 때문에 그 무리 속에 놀지 못하게 하신 겁니다. 그것도 은혜입니다. 제 말이 오늘 신학생들에게 강의하는 레벨이기 때문에 오늘 말씀을 잘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세가 불리 움을 받은 많은 이스라엘사람들 영적으로 말하면 다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 속에서 전부다 은혜를 받았지만 특별히 은혜 받은 모세 같은 사람 자격도 안 되는 사람인데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를 은총을 베풀었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사람들을 끌어내는 일을 하는 은총을 베풀었다

우리도 이렇게 조그만 무리지만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지막 때 이방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한 것도 이게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저는 이와 같이 동역하는 우리 형제 동료들은 은총 받은 사람들이구나.

저는 그걸 철저하게 느낍니다. 교회들은 많습니다. 교인들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처럼 하는 이러한 일들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소수입니다 이런 사역을 주신 것도 이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은 구원을 받은 이스라엘사람들이 소위 광야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우상을 숭배했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했습니까? 내가 너희들을 다 몰살 시키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모세가 하나님께 간청했잖아요.

우리 민족을 이렇게, 이렇게 살려준다고 은혜를 준다고 해 놓고는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정말 그렇게 화가 나시면 우리백성은 살려주시고 내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주세요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네 간구를 내가 너에게 특별 은총을 주었기 때문에 너 간구를 듣고는 너희 백성 중에 아주 못된 사람들 3000명만 내가 죽여 버리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3000명이 죽었습니다.

그3000명은 제가 볼 때는 신약 때 사람들 중에서 구원이 무효가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자연사한 사람들을 하나님이 죽여 버린 사람들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인데도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 모세야 내 앞에 범죄 하면 내 마음에 안 들면 내가 은혜를 베풀지 안어면 구원을 받았더라도 나는 생명책에서 도말한다는 말을 썼습니다. 영어로는 브렛 아웃(blot out)입니다. 적혀 있는데 지워버리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받고도 주님이 그 은혜를 무효화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세는 특수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저 사람을 보면 일반적인 은혜를 받았느냐 아니면 특수한 부분에서 은혜를 받았느냐 이걸 보려면 구별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분의 성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부분을 상당히 유심히 봅니다. 사람을 볼 때마다 저분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또 하나님의 종으로써 집사, 장로, 권사, 전도사, 목사 또는 유명한 신학자까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과연 저분이 하나님의 특수한 은혜 속에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뭘 보느냐면 그분의 성품을 보면 아는 겁니다. 과연 그리스도의 마음이 그 속에 있느냐 그리스도의 마음이 없는 사람은 주님의 특수한 성품 노아와 같은 사람 모세같이 은총 속에 있는 사람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구별하는 방법이 제가 조금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은혜라는 말 Hen이라고 그랬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인데 다른 표현을 하는 동사가 있습니다. 그것을 뭐라 하느냐면 하난이라는 말로 씁니다.

이게 히브리말입니다. 헬라 말이 아니고 유대 말입니다 하난이라는 말을 원어로 보면 번역을 은혜라는 말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하난이라는 동사는 은혜를 베풀다 이런 말입니다 자비롭다 그런데 어떻게 이 말의 의미가 숨겨져 있느냐면 궁핍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값없이 호의를 베풀 때 쓰는 말입니다 나보다 연약한 사람이 또 궁핍한 사람에게 저 사람이 지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값없이 조건 없이 호의를 베풀 때 쓰는 말이 하난이라는 말로 그것을 우리나라말로 은혜를 베푼다. 이렇게 성경에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또는 자비를 베푼다.

이렇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긍휼을 베푼다고 표현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이 그렇게 되었고 실제로 의미가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와 자비와 긍휼이라는 이 세 가지는 동의어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은혜와 긍휼과 자비는 다윗의 예를 한번 들려 드리겠습니다.

시편25편16절에 보면 다윗이 그랬습니다. 이분이 아주 외롭고 괴로울 때 이 사람이 그럴 때 하난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이분이 뭐냐면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롭습니다.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을 여기소서. 그때 긍휼이 여기소서. 그 말이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제가 괴롭습니다. 다윗이 죄를 지어가지고 아주 마음에 압박이 심했습니다. 시편51편1절에 보면 하나님이여 주의인자를 쫓아 나를 긍휼이 여기사 은혜를 나에게 베풀어 주옵소서 주여 많은 자비를 쫓아 내 죄를 도말해주세요 그러니까 이분은 주님께서 나에게 긍휼을 주셨지만 조금 더 깊은 단계의 긍휼입니다 이 긍휼을 나에게 베풀어주세요. 하나님은 긍휼을 베풀 때 어떻게 주느냐면 이미 주시기를 원하시지만 하나님은 회개를 동반시킵니다. 그래서 주님이 예를 들어서 모세에게도 너는 특수한 긍휼과 자비와 은혜를 내가 너에게 주었는데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받을 만한 사람에게는 특수하게 주시려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는 그런데 꼭 그냥 주지 않고 그분은 회개를 요구를 합니다.

그러니까 주시기위해서 회개하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다음에 회개를 한 후에 회개를 받은 주님의 종이 찬양을 드리잖아요. 찬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회개를 하게끔 한 다음에 그다음에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이분의 순서가 그렸습니다. 성경에 보면 구약에 보면 항상 이 패턴이 흘려갑니다.

이분은 왜 이렇게 은혜를 모세에게나 주님이 특별히 사랑하는 자들에게 강하게 흘려 내려주느냐면 이분의 성품이 그렇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이게 중요한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어떤 성품이냐면 인자하신 성품입니다. 인자라는 말은 영어로 머시 항상 인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불쌍하게 보는 겁니다. 인간을 그래서 재들 그냥 놓아두면 제멋대로 가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돌봐주어야지 항상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계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분의 많은 성품 중에 신실하신 성품이 있습니다. 신실하다는 말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한국말로는 충성이라는 말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성품으로 하나님께서 그러는 겁니다. 내가 모세를 뽑아놓았다고 본인이 결정하셨습니다.

모세야 나는 너를 정녕 떠나지 않겠다. 내가 너와 같이 한다 그러니까 이분은 신실한 분이기 때문에 한번 약속하였으니까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는 분은 하나님은 마음이 변하지 않으십니다. 아까 백성들 중에서 구원을 시켰지만 말 안 들으니까 3000명을 죽여 버렸잖아요. 이런 분들의 관계하고는 다릅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는 분들은 이분은 그분들이 무슨 잘못을 해도 그분은 너 빨리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해라 이분이 기다리십니다.

그래놓고는 미안하다는 미자만 들어도 좋아가지고 은혜를 베푸는 겁니다.

미자만 들어도 좋아 가지고 그러니까 그런 분이심을 내가 느낄 때 내가 경험을 할 때는 그분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이분이 왜냐면 이분이 인자하신 성품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성품이기 때문에 특별히 자기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이 성품을 내가 너희들에게 주니까 너희들도 이 성품을 받아먹으라는 겁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품을 받아먹는 겁니다.

이스라엘사람들도 이 성품을 받아먹으라고 그분들에게 구약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했습니다. 끊임없이 그러다가 이 성품이 삼위하나님의 성품이신데 이 성품을 우리인간보고 한번 직접 눈으로 너희들이 보:라는 겁니다.

그래서 아들 예수님이 성육신하셔가지고 그 아들 예수님 속에 이 성품을 다 가지고 계시니까 이 성품이 그 아들예수님의 성품이 우리 눈에 이렇게 보이는 겁니다. 우리가 느끼는 겁니다. 이 성품은 예수님을 보면 저 안에 인자가 넘쳐있구나 저 안에 긍휼이 넘쳐나시구나 저 안에 은혜가 넘쳐나시구나 저 분의 성품 속에서 우리가 은혜 받았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성품을 내가 조금이라도 받았다는 말입니다 은혜 받았다는 말이 붕붕 뛰면서 뭘 하면 기분 좋았다는 이런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은혜 받았다는 말을 잘못이해하고 잘못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한국교회는 은혜 받으려고 가자 그러면서 여자집사님들 권사님들이 가방 들고 교회가자 부흥회가자 가가지고 할렐루야! 하면서 충성기도하고 그럽니다.

이래놓고는 다 끝내고는 아! 은혜 받았다 그럽니다. 이게 우리나라의 은혜 받았다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남자들은 아이구! 내 마누라 부흥회 많이 다니지만 집에 오면 마귀새끼야 그러는 겁니다. 신약에 와서 주님이 우리에게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 주님의 은혜로 주님의 은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것이 하나님의 자비의 성품을 최대한으로 나타낸 것이 십자가사건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그래서 그 은혜를 우리가 본받는 겁니다.

영생을 받을 자격이 안 되는 사람들이 받는 선물이 영생입니다 이걸 받으실 분은 주님이 그러는 겁니다. 너희들이 시민권만 변했어. 등기소에 가서 등기만 이전시킨 겁니다. 그런데 내 속에는 아직도 마귀의 성품이 그대로 다 있는 겁니다. 마귀의 성품이 무엇입니까? 미움과 질투와 용서 못하는 마음과 남을 괴롭히는 마음과 화 잘 내고 남을 아프게 하는 마음 이런 마귀의 성품들이 가득 차 있거든요 너희들이 이제는 은혜 받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는 것이 뭐냐면 그 속에 있는 마귀의 성품들을 이제는 슬슬 뽑아내고 누구의 성품으로 바꾸라는 겁니까? 예수님의 성품으로 바꾸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성품으로 바꾸어지는 그것을 신약에 와서는 이제는 구체적으로 은혜라는 말로 표현을 했습니다. 너희들 은혜 받으라. 사도바울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있을 찌어다 이 말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바뀌어 질지어다 그래서 신약에 와서 은혜라는 말을 헬라말로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카리스(caris)라는 말은 완전히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카리스(caris)라는 말은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카이로(cairo)라는 동사는 기쁨이라는 겁니다. 기뻐하다 기쁨 쾌락을 가져다주는 것을 카이로 예를 들어서 저 사람이 카리스마(charisma)가 있다는 게 다 여기서 나온 말들입니다 카리스마(charisma)가 있다 그래서 우리가 오순절사람들을 뭐라고 그럽니까? 박수치면서 기뻐하는 이것이 카리스(karis)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은혜라고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원어도 그렇고 영어번역은 그레이스(grace)로 번역이 되어 있고 한국말로는

은혜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레이스(grace)라는 이름이 기쁨이라는 이름입니다. 왜 이렇게 기쁨이라는 표현으로 은혜를 이야기했느냐면 그리스도의 성품을 받으면 제일먼저 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무엇입니까? 처음에 사랑과 희락이라는 게 기쁨입니다. 기쁨이 그냥 하하 하 이런 게 아니고 속에서 나오는 기쁨입니다. 그래서 카리스(karis)라는 말은 신약에서 은혜라는 말은 항상 기쁨을 수반합니다. 그래서 다시 제가 말씀드리지만 은혜 받았다는 말은 예수님의 성품을 전수받으면서 그 속에서 인격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기쁨이 깊은 마음속에서 흘려 나오는 것을 은혜 받았다. 그러는 겁니다. 바울의 편지 속에서 이분이 이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은 신약에서 제일먼저 4복음서를 보면 4복음서에서 주님의 백성들이 은혜를 받으라고 주님의 성품을 닮으라고 4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직접 보여 줍니다. 4복음서에서 그리고는 이분의 가르침을 통해서 그렇기 때문에 4복음서에는 은혜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4복음서에는 은혜 카리스(karis)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이분이 직접 삶을 통해서 보여 주시고 말로써 가르쳐주시면서 보여 주시는 겁니다. 이분은 4복음서에서 은혜의 본질을 삶과 가르침에서 보여 주실 때 어떻게 보여주느냐면 우리가 다 아는 이야기지만 제가 한번 간단하게 정리해드리겠습니다. 이분이 뭐라고 그러느냐면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어라 억압받은 자들 소외받은 자들 특히 과부들 어린아이들 병든 자들 옥에 갇힌 자들 나그네들 나약한 사람들 목마른 자들 헐벗은 자들 주린 자들 이렇게 다 약한 자들입니다 너희들이 약했잖느냐

그래서 약한 너희들에게 내가 은혜를 베풀어준 것처럼 너희들이 우선 육의 부분에서 내가 볼 때 이런 사람들을 너희들이 은혜를 베풀어주라는 겁니다.

나보다 못한 자들에게 그런데 우리처럼 자유신학을 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끝나버립니다. 항상 주님이 말씀하실 때는 여기서 한 단계올라가야 합니다.

영의 단계로 올라가야 합니다. 영적으로 가난한 자들 영적으로 목마른 자들 헐벗은 자들 영적으로 옥에 갇힌 자들 이런 사람들에게 또 은혜를 베풀어주라는 겁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복음을 전하라는 겁니다. 예수를 전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육의 부분을 먼저 해야지만 영의 부분에 대해서 이분들이 반응을 해줍니다. 그러니까 육적인 부분을 우리가 도와주어야 되는 겁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우리가 도와주어야 되고 그래서 마음 문을 열게 해주어야 합니다. 아하! 저분들 괜찮은 사람들이구나. 그다음에 영의 양식을 부어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베풀어주는 겁니다. 주님이 4복음서에서는 본인이 직접 그렇게 하시면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그리고는 끝까지 나중에 가서는 뭐라고 그랬습니까? 이제 그렇게 받은 너희들은 소위 예수님의 지상명령입니다 이것을 네 민족에게만 하지 말고 모든 민족에게 똑같이 이렇게 하라는 겁니다. 왜냐면 주님이 그렇게 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래서 주님의 마음은 뭐냐면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가지고 배려해주는 마음입니다 제가 항상 말합니다. 배려하는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힘을 주는 마음입니다 이게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육적으로나 혼적으로 이웃을 배려해주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그리스도가 나를 배려해주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겁니다. 또 그 위에다가 은혜를 주신 것도 나를 배려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처럼 남을 나보다 못한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면 아! 저분은 아직도 은혜 받은 사람이 아니구나. 자기만 생각하고 그래서 빌립보서2장에 그랬잖아요. 자기만 생각하지 말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는 겁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그러면서 예수그리스도가 그런 본을 보여주셨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바울이 내가 그 본을 지금 보여주고 산다. 그리고는 디모데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다음에 너희의 지도자인 에바브로디도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살라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은혜라는 개념은 패러다임 실토하는 겁니다. 우리한국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 은혜라는 개념에 대해서 잘 못 이해하는 겁니다. 그리스도는 이 배려하는 마음 때문에 십자가에서 자기의 생명까지도 받치고 우리를 배려해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똑같이 우리보고 너희들도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이 카리스(karis)라는 이 말 은혜 이것은 내가 그렇게 배려하면 이웃에게 기쁨이 된다는 겁니다.

주님이 십자가사건 때문에 나와 여러분들에게 수많은 주님의 백성들에게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기쁨을 너희들이 나누라는 겁니다.

그 은혜를 카리스(karis)를 나누라는 겁니다. 기쁨을 나누라는 겁니다.

그것이 전도고 선교입니다 이 카리스(karis)사상은 사도바울의 신학사상에 아주 주종을 이루는 사상입니다 그런데 카리스(karis)할 때마다 사도바울은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변해야지만 이 카리스(karis)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의 편지시작에도 항상 그 말씀을 쓰고 모든 영적인 이야기 교리들 이렇게 살라고 적용하고 다 설명한 다음에 마지막으로 한마디로 너희들은 꼭 카리스(karis)를 가지라는 겁니다. 이게 결론 중에 결론입니다 성경공부를 아무리 많이 하고 교회봉사를 아무리 많이 하고 산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하고 금식을 아무리 많이 해도 그리스도의 성품인 카리스(karis)가 없으면 그래서 우리가 아까 말한 고린도후서13장13절에 그랬잖아요. 예수의 은혜와 축도 할 때 제일먼저 우리가 필요한 것은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은 우리가 가지기 힘듭니다. 그 사랑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렇지만 최소한 그 사람에서 흘려 나오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지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제하심이 이것이 그냥 되는 게 아니고 성령님의 감화 감동과 나와 성령님과 교제 속에서 카리스(karis)를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축도를 허락하는 겁니다. 성경에는 이 카리스(karis)를 가지면 은혜를 가지면 항상 따라오는 말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평강이 사도바울이 디모데후서에는 뭐라고 그랬습니까? 가운데 긍휼을 집어넣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명과 같은 겁니다.

성품이 이 카리스(karis)와 긍휼과 평강이 따라와야 됩니다. 샬롬이 따라와야 됩니다. 이제는 내가 주님의 마음에 조금 합당한 사람이구나. 라고 그때 자기진단을 할 수 있습니다. 뒤집어서 저 자매가 저 형제가 평강이 없구나.

그러면 아직도 주님의 은혜가 없구나. 그걸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결론적인말씀이지만 중요한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그랬습니다. 그냥 그대로 직역을 하면 있을지어다. 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너희 성령은 그러니까 우리성령입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속에 성령님이 내제하고 계십니다. 구원을 허락하신 성령님 그 성령님이 내속에 계십니다. 또 성령님께서는 구원을 위한 성령님만이 아니고 내가 사역을 위한 성령님한분이 계십니다. 다른 성령님이 아니시고 기능의 차이입니다 이 성령님은 오순절 때 오셨던 성령님입니다 그 성령님을 보혜사성령님이라 그럽니다. 그것을 파라클레토스라고 그럽니다. 파라클레토스 성령님은 사역을 가능케 하는 능력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지식을 주시고 성령의 은사들을 주시는 주님을 더욱 잘 섬길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는 성령님으로 가능케 하시는 성령님입니다 구원케 하시는 성령님과 가능케 하시는 성령님은 기능의 차이입니다 같은 한 성령님이신데 지금 여기서 말씀하시는 성령님은 내속에 내재하고 계시는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7장38절에서39절에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내재하고 계시는 어떻게 말씀 하느냐면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의 이름과 같이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려 나오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미래형입니다 성령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이때 배에서 생수가 흘려 나온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배라는 말이 무엇이냐면 한국말로는 배라고 그래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구원을 일으키는 성령님이 내재하고 계시다는 겁니다. 우리마음에 세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도 말씀하시고 예수님께서도 하신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어떻게 사랑하느냐면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사랑하라 이렇게 말씀하신 게 있습니다.

마태복음22장37절에 이게 뭐냐면 우리마음이 세 부분이 있는 겁니다.

첫째 마음을 다하여 이렇게 말할 때 이 마음은 맡에 마음입니다.

우리마음에 1층과2층이 있습니다. 밑의 마음입니다 밑의 마음을 원어로는 카르디아(cardia) 우리 심장을 카르디아(cardia)라 그럽니다.

영어로도 똑같이 카르디아(cardia) 심장과 의사들을 카르디아로리지스터(cardiologist)라 그럽니다. 카르디아(cardia)라는 것은 마음의 아래마음입니다 깊은 마음 카르디아(cardia) 그것을 한국말로 마음이라 했는데 영어로는 하트(heart)로 표현한 겁니다. 그러니까 영어로 하트 앤드 마인드(heart and mind) 붙어 다니는 말입니다. 왜냐면 두 번째 2층 마음이 우리나라 말로 목숨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그걸 영어로는 마인드(mind)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또는 소울(soul)이라고도 표현을 했습니다. 그것이 프쉬케(Psyche)라고 원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밑의 마음과 위의 마음이 다릅니다.

그 다음에 내 마음과 목숨을 다하고 뜻을 해라 그랬잖습니까? 그 뜻이라는 말이 원어로 뭐라고 썼느냐면 디아노이아(dianoia)라는 말로 섰습니다.

디아노이아(dianoia)라는 말은 뭐냐면 나의 자유의지입니다 의지라는 말입니다 의지는 내 마음을 감싸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의 파워입니다

의지가 내 마음을 감싸고 있어가지고 의지가 내 마음을 컨트롤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보면 위의 마음이 있고 아래마음이 있습니다. 아래마음이 카르디아(cardia)입니다. 위의 마음이 프쉬케(Psyche)입니다 이걸 감싸고 있는 의지가 있습니다. 위의 마음에도 마음의 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마음에도 마음의 문이 있습니다. 이 마음의 문을 누가 엽니까? 의지가 엽니다. 디아노이아(dianoia)가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겁니다.

의지를 내 스스로가 컨트롤할 수도 있지만 성령님이 도와주셔야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벌써 이 두 마음속에 이미 많은 지저분한 마귀의 마음을 밑에 카르디아(cardia)에다가 많이 넣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릴 때부터 경험했던 아픔들이 이 큰 위의 마음 문을 들어가서 여기서 상주하고 있다가 밑으로 내려가서 여기서 완전히 침전됩니다.

미움이나 열등의식이나 질투나 공포감이나 그런 마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것들이 밑에 쫘악 깔려 있습니다. 이게 성령님의 마음입니까?

아닙니다. 성령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귀가 주는 마음입니다

마귀의 성품들입니다 이런 성품들이 있는 그런 분들에게 성령님이 이 안에 들어가 가지고 성령님이 이 깊은 곳에 구원을 주게 하시는 겁니다.

성령님이 와서 계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이 카르디아(cardia)속에 와서 계신 겁니다.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성품은 변화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자녀인 겁니다. 이런 소위 카르디아(cardia)를 가지고서 성경에서는 우리를 사도바울은 속사람이다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인 어 맨(in a man) 겉의 프쉬케(Psyche)마음은 저도 평소에 만나면 안녕하세요. 집사님 안녕하세요.

목사님 평소에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그냥 평안합니다.

겉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어려움을 당하거나 자가의 마음이 안 좋을 때 이게 기어 나와서 사람을 막 잡아먹을 듯이 합니다.

이 밑에 숨겨있는 마음이 더 무서운 겁니다. 우리 목사님들이 어려움 중에 하나가 뭐냐면 목사님 자체는 예외는 아니지만 앞에서는 목사님, 목사님하면서 뒤에 가서는 목사님을 씹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면 저 밑에 지저분한 마귀의 마음이 들어 있는 사람은 그렇습니다. 똑같습니다. 목사님만이 아닙니다. 개인관계서도 똑같습니다. 앞에서는 막 친절합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친절하지 못하고 나타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숨겨지지 않고 그 사람들은 문제 인물입니다 그래서 이중인격이라는 말을 쓰잖아요. 그러니까 예수 안 믿는 사람도 위에 부분과 아래 부분을 잘 컨트롤하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보다 더 많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과 차이점이라는 게 뭐냐면 이 밑에 성령님이 안 계신 것뿐입니다 사람의 인격을 보면 예수 안 믿는 사람의 인격이 더 깨끗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너무 깨끗한 사람은 예수를 잘 안 믿습니다. 왜냐면 나 예수 필요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대개 예수를 열심히 잘 믿는 사람들을 보면 이 밑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자기 마음이 가난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어야 되는데 끄집어 내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면서 신앙 생활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우리교회가 싸움이 붙었습니다.

교회가 싸움이 날 때보면 그 교회영성을 그대로 다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분란이 있을 때 보면 아주 이 밑에 것이 다 나옵니다.

집사고 장로고 목사고 할 것 없이 제가 그런 것을 여러 번 봤습니다.

그 사람 그대로 나타납니다. 제 말 동의하십니까?

보통 예수 안 믿는 사람도 술 한 잔 먹고 술에 취해서 그러면 평소에는 얌전한 사람이 술만 취하면 저 밑에 것이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가지고 경찰이 음주측정기 불자 그러면 경찰에게 덤벼드는 사람 평소에는 얌전한 사람이 평소에 얌전하다는 것은 위에는 컨트롤이 되는데 밑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다가 술 먹으면 의지를 자기가 컨트롤을 못하는 겁니다. 이 디아노이아(dianoia)를 그러니까 나오는 겁니다.

지금 사도바울이 말씀하시기를 너희심령에 있을지어다. 그러는 겁니다.

주님의 성품이 너희심령이라면 어디를 말합니까? 아래층입니다

그걸 뭐라고 그럽니까? 속사람 또는 원어로 카르디아(cardia) 한국말로는 심장에 또는 마음에 이런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성경잠언에 보면 지킬만한 것이 있으니 네 마음을 지켜라 그기에 뭐가 있습니까? 너희 생명이 그기에 있느니라. 성령님이 그기에 계시다는 겁니다. 네 마음을 카르디아(cardia)를 지키라고 그랬습니다. 죽고 살고 하는 것이 그기에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이 계시면 살고 성령님이 안 계시면 죽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의 신약에 나오는 주님의 말씀부터 시작해서 계시록까지 모든 부분에서 뭐냐면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쓰신 겁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 쓴 게 아닙니다. 예수를 열심히 믿는 사람에게 쓴 겁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의 편지의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 잘 믿어라 밑에 카르디아(cardia)를 없애 버려라 이 속에 더러운 것들을 없애라는 겁니다. 그것은 마귀의 성품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새 옷을 입어라 왜냐면 예수님의 성품으로 저 안에 옷을 입지 않으면 주님을 영광스럽게 하지를 못한다는 겁니다.

또 지상명령을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나를 통해서 사람들이 실족만 당한다는 겁니다. 겉으로 보면 거룩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 같은데 그 사람의 성품을 보니까 마귀의 성품으로 그러니까 사람들이 혼돈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밑에 있는 것들이 마귀의 마음들로 가득 있는데 마귀의 마음들이 무엇입니까? 시기, 질투, 다툼, 원망하는 마음, 미움, 투기하는 마음, 이기심, 용서 못하는 마음, 원수를 맺으면 끝까지 가려고 하는 마음, 열등의식, 분노, 화를 내는 마음, 억울한 마음 이런 많은 마음들이 성경에서 말하는 마음들이 우리 삶 속에서 직접 경험하는 마음들이 저 속에 깔려 있는 겁니다.

저기에 깔려 있으니까 겉으로는 위의 마음에는 평강이 있는데 밑의 마음에는 깊은 평강이 없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항상 영적으로 신진대사를 해야 합니다. 이 밑에 있는 더러운 것들 뽑아버려야 됩니다. 문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뽑아내야 됩니다. 뽑아내고는 무엇으로 다시 대체를 해야 합니까? 산소를 집어넣어야 됩니다. 산소가 무엇입니까?

탄산가스는 마귀의 성품이 탄산가스입니다 내 마음을 오염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그놈들을 뽑아낸 다음에 산소인 그리스도의 마음을 집어넣는 겁니다.

지금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너희신령에 그리스도의 마음인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채우라는 겁니다. 이걸로 대체시키라는 겁니다. 영적신진대사입니다

이 신진대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합니까? 이 신진대사는 보좌의 기도 외에 딴 길이 없습니다. 내가 보좌 앞으로 나가서 성령님이 나에게 주시는 성령님의 씻으시는 파워 제일먼저 성령님이 내 마음 문을 열게끔 하시는 겁니다.

위의 마음 문을 여는 겁니다. 그래서 깊은 기도를 우리가 하다보면 위의 마음 문이 열리는 것을 자기가 볼 수가 있습니다. 영의 눈으로 그리고는 내 위L들어가는 겁니다. 들어가니까 그냥 완전히 쓰레기통인 겁니다.

그래서 그걸 한꺼번에 다 없앨 수 없습니다. 주여 나는 질투하는 마음이 저 속에 큰 게 하나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게 1층에만 있는 게 아니고 저 안에도 쫘악 있는데 아주 깊은 데까지 시멘트처럼 굳어져 있습니다.

그게 하루아침에 다 안 되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 이걸 조금 뽑아주세요

주님께서는 이게 함부로 뽑아지지 않는다. 뽑아버리면 나중에 쉽게 그놈들이 집어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나에게 간구해라 그러면 주님의 씻으시는 파워들이 제일먼저 뭐가 들어가느냐면 기도를 할 때 제가 씻는 과정을 말씀해드리겠습니다. 제일 먼저 성령의 물로써 생수입니다 물로써 씻는 겁니다.

그래서 보좌의 기도를 할 때 성령의 물이 내 머리부터 씻으시는 것을 본인이 느끼는 겁니다. 그러면서 성령의 물이 나를 통과하는 겁니다.

내 머리 눈 입 코 이걸 느끼는 겁니다. 성령의 물로 세례주심을 그러면서 내 윗방 마음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 나머지들은 내 몸에 다 퍼져서 발끝까지 성령의 물세례입니다 그래서 이 물세례하심이 윗방 밑에 방까지 내려가서 씻는 것을 내가 느껴지는 겁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겁니다. 우리가 이 연습을 해야 합니다

주님과의 개인기도 때 물로 다 씻어내는 겁니다. 물로 다 씻어낸 다음에 그리고는 물로 씻어도 아직도 찌꺼기들이 있습니다. 처음에 물로 씻는 것보다는 순서를 바꾸어서 불로써 먼저 태웁니다. 그래서 오순절에 성령의 불이 떨어지듯이 성령의 불이 나에게 오셔서 그 불이 나를 태우는 겁니다.

특히 밑에 방까지 내려가 가지고 성령의 불이 미움이라는 그놈들을 태우고 성령님의 뜨거운 불이 임하는 겁니다. 어떤 때는 뜨겁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천천히 태우는 경우도 있고 성령님께서 이렇게 태우시는 겁니다.

태우신 다음에 재가 남잖아요. 그것을 두 번째로 물로써 씻어내는 겁니다.

그래도 내 속에 이런 가시들이 있습니다. 불로 태우면 마음의 그릇 안이 울퉁불퉁한 겁니다. 그런 것들을 자를 것들은 잘라야 합니다.

뭐로 자르느냐면 말씀의 검으로 자르는 겁니다. 말씀의 검으로 나의 울퉁불퉁한 성품들을 그릇을 아주 스무스하게 만드는 겁니다.

누가 나에게 갖다 대어도 아프지 않습니다. 나도 마찬가지고 다 그런 게 있습니다. 성질 급한 사람들은 그래서 말씀의 검으로 잘라야 내면 내 몸이 아프잖아요. 아픈 부분을 도려내었으니까 그다음에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으로 성령님의 기름은 상처를 아물게 하는 역할입니다.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으로

내 아픈 부위를 흘려가는 것을 내가 느끼는 겁니다.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으로 나를 완전히 지배하는 겁니다. 그러시고는 마지막에 뭐로 카버 하느냐면 예수그리스도의 피로써 카버를 받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나의 온 몸을 카버시켜주시고 다 씻으신 다음에 또 나를 카버해주십니다

한번 했다고 그래서 이게 다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이것을 가능하면 자주 이게 역적신진대사입니다 이런 기도를 보좌에서 하면 주님의 보좌에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이 내 눈에 보이기도 하고 그분이 성령의 불을 보내는 것도 내가 보면서 느끼고 기름 부으심도 내가 보고는 느끼고 그 단계까지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면 내 속에 있는 이놈들이 하나하나 천천히 나가는 겁니다. 김이 오르는 듯이 한꺼번에 나간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가 집을 지어놓고 시멘트로 단단하게 깔려있는데 그게 한꺼번에 됩니까? 천천히 벗겨 나가는 겁니다. 그래서 1년 전이 다르고 1년 후가 다르고 2년3년 가면서 가면서 저는 볼 때 5년에서10년이 가야 그분의 성품이 조금씩 변하는 것을 내가 느끼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도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도 성품이 변하는 것을 기다리면서, 기다리면서 기다려줍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기다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밑의 성품이 괜찮은 사람은 성령님의 임하심도 강하게 임하시고 성령님이 그 속에 들어가셔도 편하게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일 예배를 우리가 길게 드릴 때 제일 먼저 밑의 부분까지 어느 정도 정돈이 된 다음에 예배를 드려야 되잖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30분 동안 보좌의 찬양을 드리는 이유가 그렇습니다. 오늘도 찬양을 드렸잖아요. 찬양을 드리면 위의 마음 문이 열리기 시작하고 밑에 마음 문이 열립니다. 문을 활짝 열어놓으니까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나에게 임하시니까 마음 문을 열어 놓으니까 이 안에 있는 놈들이 슬슬 나가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찬양이 이렇게 중요한 겁니다. 찬양할 때 그냥 입으로 하는 것보다 아까 보좌찬양을 빛나고 높은 보좌와 주님을 쫘악 보면서 주님은 나의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이여! 그러면서 주님 앞에 찬양을 드리면 이 안에 있는 마귀의 이놈들이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이놈들이 슬슬 나가기 시작하는 겁니다.

찬양을 부르고 나면 얼굴이 빨개지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님이 나에게 이렇게 임하니까 그리고는 자꾸 때를 벗기는 겁니다.

때가 어느 정도 벗겨지고 나의 마음 문이 이렇게 열려졌으니까 그때 제가 이렇게 말씀을 집어넣어주면 제 말씀이 쫘악 들어가는 겁니다.

제가 지금 설교를 1시간을 하고 있습니다. 보통 주일날 설교를 20분이내로 끝납니다. 1시간 이상 설교를 하면 몸을 비틉니다. 왜 1시간이상을 해도 몸을 안 비틉니까? 이 마음 문이 열려 있기 때문에 위의 마음 문과 밑의 마음 문이 열려 있기 때문에 말씀이 차곡차곡 들어갈 때마다 이 안에서 이놈들이 빠져나가거나 깨달음이 있을 때 그때는 마귀는 견디지 못 하는 겁니다.

정체가 발견이 되면 이놈은 나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조직적으로 이해가 되게끔 설명해주면 이놈들은 이 안에서 견디지 못합니다. 이 원칙을 깨달을 때 그러면 나가기 시작하는 겁니다. 지금부터 그놈들을 내 쫓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놈들이 나가면서 우리가 간구하는 게 있습니다. 주여 주님의 성품을 나에게 주십시오.

갈라디아서5장22절에 사랑을 주세요. 희락을 주세요. 화평을 주세요.

모든 사람과 화평 하는 마음을 주세요. 오래 참는 마음을 주세요. 자비로운 마음을 주세요. 모든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세요. 양선을 주세요. 충성을 주세요. 온유를 주세요. 절제를 주세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주세요. 자꾸 산소를 넣어주는 저는 어떨 때는 숨을 크게 쉽니다.

휴우 이렇게 내보냅니다. 주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내가 듬뿍 마시는 겁니다. 그러면 그 마음이 확 들어갑니다. 성령님이 계시잖아요. 고린도전서13장 말씀을 성령님이 고린도교회에 은혜가 많은 교회에 싸움이 많은 교회에 밑에 더러운 게 잔뜩 깔려있는 사람이 가득 차 있는 교회가 고린도교회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고린도전서13장 말씀을 주신 겁니다. 너희들 산소동화작용을 해라 신진대사를 그래서 너희 속에 있는 탄산가스들을 뽑아내라 그러면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다른 말로 표현한 겁니다. 너희들 뽑아내는 걸 무엇을 뽑아내는 줄 아느냐면서 너희들은 사랑은 오래 참는다. 그러니까 온유하고 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자랑하지 않는다. 내가 자랑을 많이 하면 다른 사람이 상처를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걸 하지 말라는 겁니다.

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참아라. 왜냐면 배려해주는 겁니다.

온유해라 남을 배려해주는 겁니다. 투기하지 말아라. 싸움하지 말아라.

이웃을 배려해주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자꾸 내 중심입니다 나만 은혜 받고 다른 사람은 생각안하는 겁니다. 주님은 너는 아직 어린아이다 그러는 겁니다. 배려하는 마음이 그때부터 구체적으로 말하는 겁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고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을 생각하지 사람은 무례합니다. 우리민족의 제일 중요한 약점입니다

우리나라에 관광 온 외국 사람에게 한국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물어보니까 한국 사람은 무례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릅니다. 주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중국 사람은 더 무례합니다. 여기저기에 가래를 뱉고 우리나라도 그런 사람들이 아직도 있잖아요.

자기유익을 취하지 말라 이게 다 독소들입니다 그런 걸 뽑아내라는 겁니다.

왜냐면 자기 유익을 취하는 사람은 이기주의사람은 무례한 사람입니다

자기밖에 생각안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안 두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말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 말을 듣지도 않고 그런 사람들도 가끔 있습니다. 무례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항상 주여! 주님 제가 영적으로 감수성이 있게 해주세요.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끼느냐를 내가 조금 깨닫는 감수성을 나에게 조금 주세요.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아세요. 저 사람이 어떤 느낌을 가졌느냐를 내가 빨리 캐치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그것을 선진국사람들은 아주 기가 막히게 합니다. 항상 다른 사람을 배려해주고 그게 기독교선진국의 국민성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사람 그러면서 산소를 집어넣는 것이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참는 게 못된 사람이나 이런 사람을 보면 왜냐면 주님! 주님이 때가 되면 알아서 하시겠죠? 그냥 참는 겁니다, 그게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참지 못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알아서 할 텐데 저 사람이 나를 씹고 저 사람이 지금 나를 해를 끼치고 주여! 알아서 하세요. 그게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참는 겁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때가 있기 때문에 주님이 나를 훈련시켜서 저 사람이 나를 저렇게 씹는군요. 주님 감사합니다. 참는 겁니다.

모든 것을 믿으며 이게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나와 다르면 그냥 저 사람이단이다 저 사람 어떠하다. 저 사람 잘못되었다고 정죄를 합니다. 주님은 남을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분이 뭐라고 말하면 그대로 그냥 그대로 믿으라는 겁니다. 주님의 마음입니다 그래놓고는 성령님의 영 분별하는 것을 나에게 은사를 주셔서 나중에 나에게 그것을 분별하는 능력을 주는 겁니다. 처음에는 말하는 것을 믿어주어야 합니다.

그게 성숙한 사람입니다. 족집게노릇하면 안 되는 겁니다.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참으며 이게 고린도전서13장 말씀 이게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을 보좌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겁니다.

결론 중에 결론입니다 빌립보서의 결론 말씀입니다. 빌립보서교회다가 사도바울이 주시는 말씀이 이겁니다. 빌립보교인들아 너희들은 괜찮은 사람들이야 너희들이 열심히 기도하고 구제도 많이 하고 나에게 헌금도 잘 내고 봉사도 많이 하는 교인들이 거기에 있는 집사들이여 장로들이여 감독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이 왜 그렇게 기쁨이 없느냐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보통사람들이 그럽니다. 빌립보서는 기쁨의 편지입니다 기쁨의 편지가 아닙니다.

기쁨이 없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가지라고 왜 기쁨이 없습니까?

이 마음 카르디아(cardia)속에 미움이 잔뜩 들어있고 열심히 기도하는데 열심히 구제하는데 열심히 봉사하는데 그 속에는 투기가 있고 분쟁이 있고 다툼이 있고 허영이 있고 시기가 있고 질투가 가득 차있는 마귀의 마음으로 가득 차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은혜가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은혜는 카리스(caris)라 그랬습니다. 주님의 마음이 그 안에 들어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기쁨이 그 안에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빌립보서2장5절에 너희가 먼저 이 마음을 품어라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이니 그게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이것은 보좌의 기도 외에 딴 길이 없습니다. 이 마음을 영적신진대사를 우리가 매일 하면서 우리 삶 속에 이 은혜로 모든 사람을 용납하는 마음으로 내가 용납을 받았기 때문에 넓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그것을 가진 사람은 평강이 나에게 오는 겁니다.

제가 이런 말을 왜 하는지 아세요. 이렇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는 사람은 이 단계에 들어간 사람들은 이때부터 영광체로 변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예수만 믿으면 그대로 영광체가 되는 게 아닙니다.

이때부터 그리스도의 영광 하나님아버지보좌에서 흘려 나오는 영광이 나에게 임하기시작하는 겁니다. 영광이 임한다는 것은 내가 면류관을 받는다는 말로 우리가 표현을 했습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상급을 받는다고 표현을 하는 겁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적으로 계급이 높아진다는 말입니다 하늘나라에 올라가면 지도자계급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 살면서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된 것만큼 내가 영적으로 계급이 결정된다는 겁니다. 얼마나 많이 일 했느냐가 아닙니다. 그렇게 된 사람들이 주님의 일을 할 때 상급이 따라오는 겁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아야지만 주님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주님을 닮지 않는데 주님을 전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닮지 않고 주님을 전하는 것은 자기 유익을 위해서 자기 영광을 위해서 사역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나는 네가 누군지 모른다고 그랬습니다. 여기 서있는 저부터 시작해서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이 원리를 우리가 깊이 깨닫고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나를 위해서 하시는 말씀으로 매일매일 나를 이렇게 다짐해가면서 주여 과연 우리가 하는 이 모든 사역이 나의 어떤 입신을 위해서 나의 어떤 인정을 위해서 내 욕심 때문에 내가 영광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까? 주님 혹시 그런 마음이 있으면 아주 내 마음 속에서 이런 마음을 도말시켜주십시오. 이 마음이 깊이 들어 올 때 평강이 나에게 임하고 평강이 있는 사람은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의 공동체 안에서 다툼이 없습니다. 억울함이 없습니다. 감사만 넘치고 항상 내 이웃을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만 넘쳐있고 긍휼한 마음 자비스러운 마음만 가들 차있는 겁니다. 그럴 때 이 안이 조그만 천국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합니다. 가득 차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곳에 그럴 때 영광이 차고 이 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그 영광 그대로 옷을 입습니다. 우리 모두가 정말 이런 복을 받는 우리교회 동역 자들이 되었으면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저 많은 선교지에 있는 우리형제자매들도 이 영광을 그대로 전수 받는 그러한 복된 자들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이번에 빌립보서를 통해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 그리스도의 마음에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지 않으면 주님의 보좌에 있는데 이천한 몸이 이러려 그 영광을 몸소 배울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자녀는 되었지만 보좌가까이 가서 주님의 영광을 같이 맛 볼 수 없음을 저희들이 깨달았습니다. 오! 성령님이시여 저희들에게 도와주셔서 은혜로, 은혜로 다시금 채워주셔서 주님의 성품으로, 성품으로 날로, 날로 성숙되는 주님의 구한 아들들 딸들 되게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지금 이시간은 예수그리스도의 극진하신 하나님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교제하심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은혜로 다시 옷 입고 예수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기로 결단하는 우리 모두에게와 우리의 10여개 나라의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기로 결단하고 주님을 따라가는 우리 모든 동역 자들 위에와 이 지구상에 주님의 백성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히, 영원히 함께할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