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19강. 빌립보서4장14절-20절, 향기로운 제물

변명섭 2022. 4. 10. 05:38

빌립보서 19강. 향기로운 제물(빌4:14-20)

빌립보서4장14절에서20절까지 말씀입니다 오늘은 빌립보서강해 열아홉 번째인데 다음시간까지 해서 빌립보서를 끝내려고 합니다. 빌립보서강해 스무 번째로 해서 오늘 말씀14절부터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이제 그의 마지막부분입니다

오늘 말씀은 열아홉 번째로 제목을 제가 향기로운 제물이라는 이러한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지난시간에 말씀을 잠깐 되돌아보겠습니다. 지난시간에는 제목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라는 제목으로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분이 배웠노라 할 때 현재완료형을 썼다고 제가 말씀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완료형은 고거에 어떤 경험한 것들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진다는 말입니다 이분이 사역을 시작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것을 배워왔다는 겁니다. 하루아침에 끝난 것이 아니고 그래서 하나님은 사도바울도 그랬지만 하나님의 어떤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사람을 훈련시키는데 그 사람을 어느 정도 레벨까지 가기 위해서는 시간을 요구를 합니다.

그러니까 젊은 나이에 모든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경험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경험하는 동안에 그냥 경험이 아니고 이 속에는 역경이 따라오고 훈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경험에는 아픔이 들어있습니다

왜냐면 아픔이 있어야만 내가 죽습니다. 경험은 그냥 경험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계속 죽어갈 때 자신이 죽어가면서 자기의 나약성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나의 한계성을 깨닫는 겁니다. 내 실력으로는 안 되는구나.

그다음에 우리는 주님과의 관계에서 내 삶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불려 가면 나는 끝나는구나. 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 힘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 나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는 어려움을 자꾸 주는 겁니다. 그 어려움 속에서 깨닫게 되는 겁니다. 빨리 깨닫는 사람은 빨리 졸업을 시킵니다.

주님이 볼 때 목적이 빨리 이루어졌을 때는 질질 끌 필요가 없습니다.

빨리 끝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고집이 센 사람들 아집이 센 사람들은 그것을 오래 동안 매를 때려야지만 끝나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나이20에서부터 시작했는데 60이 되어도 아직도 그 버릇을 못 고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집이 센 사람은 끝까지 하나님이 손을 봅니다.

나이70되었어도 말을 안 듣는 사람은 주님이 할 수 없다 너는 그냥 내 백성으로만 끝내자 쓰지 못하는 사람으로 그런 사람 많습니다. 완악한 사람이라고 그럽니다. 말 안 듣는 사람 완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것을 빨리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분은 훈련과정에서 그랬습니다. 내가 풍부할 때도 나는 자족함을 배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은 아주 전천후사람이 되었습니다. 아주 비천하게 만들어 놓아도 거기서 주님을 잘 섬기는 겁니다. 풍부하게 만들어 놓아도 이분은 마음이 변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렇게도 잘하고 저렇게도 잘하고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중에서 경제가 어려운 사람 중국 사람들은 돈을 못 번다는 것을 경제가 어렵다고 그럽니다. 경제가 어려운 사람들을 연습시키는 겁니다. 그러다가 주님이 언제 졸업을 시키느냐면 경제가 좋아질 때 저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 그걸 보는 겁니다. 경제가 좋아지면 변한다면 좋게 안 해줍니다. 그걸 주님이 압니다. 그러니까 당신한데는 경제가 어려운 것이 낫다는 겁니다. 좋게 해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계속 어렵게 만들어 놓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나의 마음을 보시는 겁니다. 딱 보시고 아주 완전한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제는 마음이 변하지 않겠구나.

그때 조금씩, 조금씩 체크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그렇게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그러는 겁니다. 나는 전천후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나에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전천후식으로 다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말을 우리가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다 한다. 이게 뭐냐면 내가 전천후사람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의 겸손훈련을 사도바울이 받아 왔습니다. 겸손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 뭐냐면 이렇게 자기한계성과 자기의 나약성과 나는 언젠가는 죽는다는 자기 자신의 종말적인 부분까지 다 깨달은 사람은 주님과 가까이 하려면 딴 길이 없습니다. 보좌의 기도를 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보좌의 기도를 하면 그런 걸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성품을 내가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주님과 깊은 인격적인 교제하는 길이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할 수 있다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생활을 보좌의 기도생활을 하다 보면 나의 눈이 거시적으로 변하는 겁니다. 눈의 위치가 변하는 겁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구나.

이 세상이 내 세상이 아니구나. 나는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고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나를 조금 괴롭히는 사람도 용서해줄 수 있고 저사람 몰라서 그래 욕심이 없어지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유혹하는 것들이 나를 지배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눈을 어디에 뜨느냐 입니다. 눈을 거시적으로 뜨려면 보좌의 기도를 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분의 성품을 내가 받아드리는 길 밖에 딴 길이 없습니다. 그것을 세상 사람들은 뭐라고 그러느냐면 페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라 그럽니다.

생각을 바꾸어버리는 겁니다. 나의 생각의 구조를 바꾸어버리는 겁니다.

주님을 섬기는 자녀들도 생각의 구조가 바뀌어 있는 사람들이 많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지만 생각의 구조는 세상에 가 있는 겁니다.

눈이 땅에 가 있는 겁니다. 벌써 욕심이 많아 보이는 겁니다. 그리고 질투가 많고 세상 사람들이라는 게 여기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안수 받은 목사들도 그런 사람들이 많거든요. 왜냐면 이 페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가 안 된 겁니다. 제가 지난시간에 이 말씀을 했습니다.

오늘은 이런 빌립보교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사도바울에게 내가 이런 전천후교육을 받고 있는데 또 지금 받아오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감옥에서 받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괴로움이 있을 때마다 너희들이 나의 동역 자가 되어 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고맙다는 겁니다. 물질의 동역 자가 되어 왔고 어떤 때는 기도의 동역 자가 되어 왔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다른 교회들 특히 데살로니가교회나 고린도교회나 에베소교회같이 이런 교회들은 나의 동역 자 역할을 너희들같이 신실하게 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지금 이분들에게 말씀하는 겁니다. 너희들에게 내가 말할 것이 있다면서 오늘 말씀하시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너희들이 이렇게 나에게 동역 자 역할을 해온 것들이 이것이 나에게도 말할 것도 없지만 주님이 이렇게 볼 때는 그것이 향기로운 제물이라는 겁니다. 향기로운 재물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제물인데 어떤 향기로운 제물이냐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이라는 겁니다. 오늘 재물에 관한 이야기를 제가 말씀을 드리려고 그럽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로 이렇게 올라가지 않으면 소위 우리가 영광체로 옷을 입지 못합니다.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다시 말하면 상급이 없는 겁니다. 제가 항상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상급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할 때는 제물이 예를 들어서 쉽게 말하면 기뻐하시는 향기 향내가 나는 제물로 하나님이 향내 나는 제물을 이렇게 마시면서 기뻐하신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로 우선 제물이라고 그랬으니까 제사라는 말을 잠깐 보세요. 제사라는 말의 정의가 뭐냐면 산 동물입니다 영어로 세커리파이서(sacrifice)라는 무엇입니까? 희생이라는 말입니다 그것을 한국말로 제사라는 말로 표현을 했습니다. 그래서 세커리파이서(sacrifice)제사라는 것은 산 동물을 죽여가지고 피를 흘리게 한 다음에 피는 피대로 뿌리고 그다음에 몸은 그대로 하나님께 이렇게 받쳐서 어떤 때는 불로 태워버리는 겁니다. 그것을 제사라 그러는 겁니다. 이 개념을 우선 잊지 말아주세요 그래서 제사에 쓰이는 제물은 양이나 염소 또는 소 또는 비둘기 돈 없는 사람들은 비둘기를 이렇게 받쳤습니다. 제물의 모습을 보면 거기에는 항상 희생이 따라왔습니다. 첫째 물질적인 희생이 따라왔습니다.

제물을 시장에 가서 사와야 합니다. 돈으로 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물질에 제물을 받치는 것이 사오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물질의 제물을 그런데 이것을 그냥 물질을 주님께 받치는 그 자체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 제물의 모습은 동물자체를 희생시키는 겁니다. 거기에는 아픔이 있습니다. 육신의 아픔이 있습니다. 또 마음에 아픔이 그기에 따라 옵니다.

그런데 온전한 제물의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받으실 만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조건이 있습니다.

일 년 된 허물없는 수컷으로 예수님의 모습으로 일 년이라는 말은 예수그리스도가 인간으로 말하면30대를 말하는 겁니다. 동물의 일 년 된 것은 수컷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남자로 태어나심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흠이 없다는 것은 예수님의 죄가 없음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런 받으실만한 조건에 맞는 제물이라야 되는 겁니다. 그다음에 뭐라고 그랬냐면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그랬습니다. 프레그렌트(fragrant)를 원어로 아로마(aroma) 이게 뭐냐면 냄새가 아주 향기로운 이런 제물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조건이 있어야 되고 향내가 나야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는 사도바울이 똑같이 빌립보교회교인들에게 말씀하시고는 너희들이 나에게 이렇게 한 것이 아주 향기로운 제물이라는 겁니다.

우리기독교는 제사와 제물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나오는 그림자로 동물을 잡았는데 그분이 누굽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진리로 다시 말하면 제물에 관한 제사에 관한 진리가 아주 중요한 진리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냥 예수께서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여기서 내가 마무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자녀가 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제물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보면 제사의 방법이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제물의 종류가 첫째 다섯 가지를 이렇게 보시면 제가 항상 강조하는 겁니다. 우리크리스천의 삶의 모습을 다섯 가지의 제사모습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기독교인의 삶은 크게 대별하면 우리인간의 삶은 세 가지로 대별합니다. 첫째 주님을 만나기 전에 비 기독교인의 삶입니다. 그다음에 뭐냐면 유월절어린양의 사건을 통해서 십자가사건을 통해서 기독교인이 된 구원받은 사람의 삶입니다. 이 구원받은 삶이 두 가지로 갈라집니다. 첫째는 광야40년 동안의 삶입니다. 그다음에 요단강을 건너간 사람들의 삶 다시 말하면 가나안에 들어가서 영적전투를 하면서 영적약속의 땅을 넓혔던 사람들의 삶입니다. 그것을 헌신의 삶으로 제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첫째가 주님을 만나기 전에 세상 삶입니다. 그걸 뭐라고 그러느냐면 육의사람이라고 그럽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났는데 40년의 광야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났지만 하나님과 관계없이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지만 그래서 싸우고 다투고 불평하고 감사가 없고 감격이 없고 이런 사람들을 40년 광야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성경에서는 육신의 사람들이라고 그럽니다. 이 사람들은 로마서7장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로마서8장의 사람들이 요단강을 건너간 헌신된 사람들을 영의 사람들이라 그러는 겁니다. 이렇게 다릅니다. 고린도전서2장과3장에 똑같이 그렇게 나옵니다. 세 가지사람들이 있습니다. 육의 사람, 육신의 사람, 영의 사람 이렇게 셋이 나옵니다. 그리고 제목을 바꾸어서 다섯 가지의 제사방법을 우리가 봅시다. 첫째 제사를 뭐라고 그러느냐면 화목제라 그럽니다.

영어로는 피스 오프닝스(Peace offerings)이라고 피스(Peace)라는 게 화평 평화 레위기3장1절과2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 오프닝(offering)은 어떤 오프닝(offering)이냐면 소를 잡아다가 회막문, 성막에서 성소에 들어가는 문과 성소에서 지성소에 들어가는 문이 있습니다. 성소 바깥뜰에 있는 사람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구원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문을 통해 들어가야 합니다. 화목제는 문 바깥에서 드리는 겁니다.

소를 잡는 겁니다. 그다음에 화목제를 드린 제물을 가지고 성소로 들어가는 겁니다. 이게 뭐냐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름을 화목제라고 그러는 겁니다. 화목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화평을 누리는 상징입니다 그래서 우리예수님을 화목제물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제사는 구원 받기 전에 구원을 위한 제사입니다 수직적인 관계에서 원수관계로 하나님과 예수 안 믿는 사람과의 관계가 수직적인 관계입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과 화목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 사람들이 크리스천공동체 안에 들어와서 또 화목을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수평적인 화목입니다 여기서는 수평적인 화목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고 수직적인 화목(vertical Peace)입니다

두 번째 제사는 속건제 영어로 결트 오프닝스(Guilt Offerings)또는 조금 더 고상한 영어로 트레스패스 오프닝tm(Trespass Offerings) 주기도문에서도 우리가 매일매일 짓는 잡음 죄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매일매일 짓는 죄들입니다 광야생활에서 짓는 죄들입니다 그것을 용서받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가 속건제입니다. 레위기5장14절에서16절입니다. 그런데 광야에 들어와서 짓는 죄를 용서 받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속건제입니다

이 속건제는 어떤 죄들을 용서받느냐면 일반적으로 겉으로 나타나는 죄들입니다. 예를 들어서 도둑질을 했거나 강도질을 했거나 또 남을 거짓말을 해서 사기를 쳤거나 이런 일반적인 눈에 보이는 죄들입니다. 이런 죄들을 성경에서 어떻게 하라고 그랬냐면 그냥 죄의 가치만큼 배상을 시키게 했습니다.

이것이 속건제입니다. 그러니까 눈이 보이는 거니까 가벼운 죄들입니다

이 오프닝(offering) 다음에 광야생활에서 하는 오프닝(offering)이 세 번째로 속죄제입니다. 이게 뭐냐면 영어로 신 오프닝(Sin-offering)이라 그럽니다. 레위기4장 전체가 여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신 오프닝(Sin-offering)은 어떻게 하느냐면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이나 또는 회중이나 또는 족장이나 또는 일반평민 이런 사람들이 죄를 지었을 때 특히 마음에 깊은 죄를 지었을 때 드리는 제사입니다 깊은 단계입니다

어떻데 드리느냐면 흠 없는 수송아지를 제물로 가지고 와서 기름을 다 도려냅니다. 그래서 수송아지의 기름을 번제 단에다가 태웁니다. 그다음에 나머지고기들은 성소밖에 가지고가서 재 버리는 곳에 가지고 가서 불로 태워버립니다. 성소밖에 가서 여기까지는 죄를 고백을 해서 죄가 용서를 받지만 깊은 지성소까지 들어가 가지고 주님과 교제하면서 죄를 용서 받는 그런 단계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갚은 보좌의 기도를 하면서 주님과 대화하면서 받는 그런 죄의 용서가 아닙니다. 그래서 광야의 사람들이 죄의 용서를 받는 겁니다. 간단간단하게 그래서 주여! 제가 잘못했습니다. 기도도 막연하게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지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서 주님과 대화하면서 보좌에서 그분과 직접 하는 그런 맛이 없으니까 죄의 용서가 아주 주님과 깊은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지 않는 그러한 죄의 용서들입니다

이분들은 지금 구원은 받은 사람들입니다 지금 광야에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다음에 한 단계 높은 제사가 있습니다. 그것을 번제라 그럽니다.

영어로는 번트 오프닝(burnt offering)으로 한국말로 번제라 그럽니다.

이 번제는 요단강을 건너간 소위 이제 약속의 땅에서의 회개방법입니다

다시 말하면 헌신 자들이 주님과의 관계에서 보좌의 기도를 하면서 깊은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주님 앞에 죄 사함을 받는 그러한 단계입니다.

번제 안에 두 가지의 번제가 있습니다. 첫째 번제는 동물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겁니다. 회막문 어귀에서 번제물에게 안수를 합니다. 소나 양입니다

잡아가지고 피를 회막문 앞단 사방에다가 뿌립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는 어떻게 하느냐면 그 동물의 가죽을 벗겨버립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가죽을 벗겨 버려버리는 겁니다. 그다음에 뿔을 뽑아버리는 겁니다. 그다음에 온 몸을 각을 뜹니다. 그리고 내장을 끄집어냅니다. 그다음에 각을 뜰 때 정강이까지 다 각을 뜹니다. 그래가지고 내장과 정강이는 따로 물로 씻습니다.

그래가지고 번제 단에다가 태우는 겁니다. 이게 레위기1장 전체 이야기입니다 번제를 드릴 때 하나님이 향기로운 냄새라는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태워서 연기가 올라갈 때 향기로운 냄새라는 말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번제를 화제라고도 합니다. 왜 가죽을 벗기는지 아세요. 가죽은 나의 위상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나의 거짓입니다. 외식입니다 광야에 생활 때는 가죽으로 살았습니다. 이걸 다 벗기는 겁니다. 내가 다 죽어버리고 겸손해지는 단계입니다 그러니까 주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 솔직해지는 겁니다.

가식이 없어지는 겁니다. 우리가 이걸 연습해야 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게 제 잘못입니다 항상 이렇게 나오는 사람입니다 가식이 없어야 합니다.

뿔을 뽑아버립니다. 뿔은 무엇입니까? 권위, 교만 내가 공부조금 했다고 나 같은 사람은 뿔이 있잖아요. 자기가 공부 조금 했다고 학벌이 있다고 박사학위가 있다고 저 같은 사람은 뿔이 많습니다. 그 뿔을 계속 뽑아야 합니다.

내장은 꺼내서 씻으라고 그랬습니다. 이 내장은 내 속 깊이 있는 우리 마음이 두 레벨이 있습니다. 위의 레벨을 영어로 푸쉬케(Psyche)라 그래가지고 이것은 영어로 마인드(mind)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밑으로 내려가는 문이 있습니다. 그것을 원어로 카르디아(Kardia)라 그랬는데 영어로는 하트(Heart)입니다 이게 속마음입니다 내장은 이 두 마음을 다 포함한 겁니다. 그러니까 내속깊은 곳에 있는 것을 다 씻어버리고 이걸 나중에 완전히 태워버리는 겁니다. 이게 보좌의 기도가 아니면 안 됩니다.

그리고 다리를 정갱이를 절단하라고 그랬습니다. 이 다리로 안 갈 때를 가고 그래서 예수님의 나무다리를 성령다리를 달고 다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성령다리를 달면 미얀마도 가고 여기저기 막가는 겁니다.

이 단계부터 향내 나는 제사를 드리는 단계입니다. 가다보면 점점 더 깊어집니다. 그러면 우리가 실제적으로 사도바울이 이 단계를 가고 있는데 사도바울이 로마서는 성경 중에 성경인데 로마서8장까지는 기독교의 기본교리들이 그기에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9장부터11장까지는 이스라엘사람들과 관계된 기독교의 교리가 들어 있습니다. 그걸 다 설명한 후에 12장으로 들어와서 사도바울이 로마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그러므로 그랬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너희들 기독교의 교리가 무엇인지 알지 이제는 이렇게 살아라. 해놓고는 그러므로 하면서 이렇게 살아라. 라는 말씀이 12장1절에 유명한 말입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라 이는 너희가 드리는 영적예배니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적으로는 기독교가 무엇인지 다 안 다음에 그다음에 영적예배를 드리라는 말이 뭐냐면 번제를 드리라는 겁니다. 번제를 드릴 때 주님이 기뻐하시고 내가 드리는 이 번제가 내 삶을 기쁘게 받아주시고 내 삶을 이렇게 그분이 매일 마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향내 난다. 향내 난다 그러시는 겁니다. 내 삶을 보고 그래서 로마서12장13장14장15장이 산제사를 드리는 구체적인 방법을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산제사냐면 제가 시간이 없어서 다 말씀을 못 드리지만 간단하게 한마디로 말하면 뭐냐면 산제사 중에 제일 먼저 12장3절부터8절까지 나오는 게 뭐냐면 각자가 다 은사가 다 다르다는 겁니다.

그런데 다른 것을 서로 조화하는 하모니 잘 하는 사람이 되라는 겁니다.

어느 교회나 어느 기독교인이나 단체 속에서 제일 먼저 사도바울이 말하는 게 뭐냐면 하모니를 잘 하는 사람을 제일로 꼽습니다. 그걸 다른 말로 표현하면 피스 메이커입니다 화평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화평을 잘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삶 속에서 주님이 아주 맛있는 향내를 드십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고 헌금을 많이 내고, 기도 많이 하고 해도 하평을 못하는 사람은 그분의 기도가 향내가 없습니다. 그분이 드리는 물질이나 이것이 향내가 없습니다. 한국교회 문제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화평이 없습니다. 서로경쟁하고 서루 다투고 서로 물어뜯고 그러니까 우리민족을 하나님이 사랑하시지만 그냥 광야레벨의 사랑으로 깊은 정말 사랑하는 사랑이 없습니다. 왜냐면 이 부분에서 주님의 스텐다드에 기준이 맏지 얺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화평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뭐냐면 아가페사랑해라 충성해라 잘 참으라. 이게 12장에 나오는 이야기들입니다. 남을 배려해라 손 대접을 잘 해라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해주어라 겸손해라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그런 말들이 쫘악 여기에 나옵니다.

이게 다 뭡니까?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입니다 그 말을 이렇게 풀어서 쓴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을 섬기면서 다투고 질투가 있고 이 안에서 서로가 자비가 없고 남을 배려하지 못하고 참지 못하고 이러면 벌써 내 삶이 아무리 내가 기도를 많이 하고 찬양을 잘하고 뭘 잘해도 주님이 볼 때는 향내가 나지 않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향내가 안 난다는 말은 면류관이 없다는 겁니다. 그게 영광체로 내가 변모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처음에 네 번째는 동물번제고 그다음에 다섯 번째는 곡식입니다 곡식을 드리는 번제입니다

그것을 소제라고 그럽니다. 레위기2장1절에서3절 말씀입니다.

번제는 레위기1장 전체라고 그랬습니다. 이게 제일 높은 단계의 제사입니다

그래서 가장 지극히 거룩한 것이라고 2장3절에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이것은 열매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우리가 복음농사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농사를 지어서 마지막에 맺는 열매로 우리가 지금 주님을 섬기는 것도 열매 맺는 일을 하는 겁니다. 주님을 섬기는 이 자체가 열매입니다

내가 지금 주님을 섬기잖아요. 지금 농사를 지어서 어느 정도 열매를 맺어졌는데 그 열매가 맺어진 그것을 열매자체로 그대로 있으면 안 된다는 소리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아홉 가지의 열매로 맺혀 있습니다. 겸손하고 사랑이 많고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아주 거룩한 사람으로만 되어 버리는 겁니다. 주님은 우리가 거룩한 사람으로 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아닙니다. 그 열매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루로 만들어야 합니다.

1절에 가루로 만드는데 가루로 만드는 것은 내 자신이 또 깨어지는 겁니다.

거기다가 기름을 부으라고 그랬습니다. 가루를 만들어서 기름은 무엇입니까?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라 그러지 않습니까? 그 위에다가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거기다가 얻으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를 완전히 가루로 만든 다음에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얻고 그 위에다가 유향을 단위에 놓으라는 겁니다. 유향을 우리는 기도라 그럽니다. 그래서 단위에 놓고 그다음에 고운 가루를 불사르라는 겁니다. 이것을 화제라 그러는 겁니다. 고운가로로 이렇게 해서 불을 사르면 기름을 집어놓고 향을 뿌려 놓고 가루를 태우는 겁니다.

이것을 화제라는 겁니다. 또는 소제라 그럽니다. 그러면 거기서 나오는 향기로운 냄새가 있는데 그 냄새가 하나님이 지극히 거룩한 냄새라 그랬습니다.

레위기2장3절에 가루로 만들어서 하는데 이 가루를 가지고 무엇을 만드느냐면 일부는 그렇게 태우고 가루를 가지고 무엇을 만드느냐면 무교병을 만드는 겁니다. 레위기2장4절부터 누룩을 집어넣지 않는 무교병입니다

무교병은 누굽니까? 무교병은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내가 완전히 가루가 되고 내 자신이 완전히 없어지고 다시 나를 통해서 누구를 만듭니까? 예수님을 만듭니다. 예수님의 성품으로 내가 온전히 완전히 변화되는 겁니다.

가루로 적당히 만들면 그게 빵이 됩니까? 안 됩니다. 온전한 예수님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완전한 가루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예를 들어서 한 말을 가루로 만들었는데 그중에 진짜 완전하게 된 가루는 한 홉 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전부가 다 덩어리들입니다 그러면 나는 조그만 예수님밖에 안 됩니다 예수의 마음을 닮으라고 그랬지 않습니까?

빌립보에서 항상 말하는 게 있잖아요.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으려면 가루를 많이 만들어서 그것도 아주 정교한 가루가 되어가지고 완전히 내가 가루로 변해가지고 그다음에 다시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새롭게 무교병을 만드는 겁니다. 이 소제가 그래서 누가 나를 보면 저분을 보면 예수의 모습이 약간 보인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려면 내가 죽어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모습으로 지금 빵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왜 예수님을 빵이라고 그럽니까? 요한복음6장48절에 예수님이 말하기를 나는 생명의 떡이다 그랬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떡이라는 겁니다. 51절에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그 떡을 우리가 먹으면 영적으로 살아난다는 겁니다. 54절에는 그랬습니다. 내가 참된 양식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양식은 가짜 양식으로 그 양식은 먹으면 또 배고픈 겁니다. 먹으면 또 배고픕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런데 너희들이 나를 먹으면 너희들은 배도 안고프고 영원히 사는 그러한 해택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참 음식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루가 되면 내 스스로가 참 음식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처럼 그렇게 큰 참 음식은 아니지만 조그만 떡이 하나 되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지금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 떡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떡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생명이 없는 자에게 그 생명을 나누어주었습니다. 내가 전도한다. 선교한다는 것은 이 레벨에 들어왔을 때 내 속에 있는 내 떡을 나누어주는 겁니다. 생명을 가지도록 이렇게 그 떡을 나누어줄 때 내가 죽고 그리스도를 내가 나누어줄 때 지극히 거룩한 향기로운 제물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라 2절에서 그랬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이 레벨까지 들어가는 겁니다. 소제레벨까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향기로운 제물은 어느 단계부터 시작하느냐면 번제단계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처음의 세 단계가 아닙니다. 가죽을 벗기고 뿔을 자르고 내장과 다리를 절단하고 이때 나의 삶속에서 나오는 향기가 이때부터 주님이 기뻐하시는 향기지만 그보다 더 한 단계깊이 들어가는 것은 나를 완전히 가루로 내어버리는 겁니다. 가루를 낼 때는 아픔이 있습니다. 자존심이 다 나갑니다. 아픔이 있을 때마다 주님이 나를 가루로 내시는군요. 내 아픔이 향기로 받아지기를 바랍니다. 아플 때마다 거기서 향기가 나타납니다.

내가 아플 때 잘 참으면 아프다고 해서 남을 물어뜯으면 안 됩니다.

아플 때 참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는 주님에게만 내가 넋두리를 하는 겁니다. 주여 아픕니다. 아픕니다. 그러면 그때 주님이 너 향기를 내가 맡는다.

이렇게 해서 아픈 사람이 화를 내어서 아픔의 가루로 무교병을 만들어서 이것이 내 이웃들에게 내 민족에게 또는 우리는 타민족까지 나누어줄 때 소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이게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선교의 노하우를 배워서 선교하는 사람일수록 소제단계까지 들어갈 때 선교를 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교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 에바브로디도 편에 나에게 향기로운 제물을 보냈는데 이것은 나는 물질자체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너희들이 희생을 했고 너희들이 번제를 나에게 드렸구나.

하나님 앞에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소제까지 드리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렇게 향기로운 제물을 주님 앞에 드리는 사람이 빌립보교인들 전부다가 아닙니다.

그 안에 소수만 그랬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이 안에 다툼이 있었고 허영이 있었고 질투가 있었고 분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희들 이것을 없애고 소제의 제물을 드리면서 기뻐해라 그런데 이 안에는 진정으로 기쁨이 없었습니다. 우리빌립보교회를 기쁨의 편지로 알지만 기뻐하라고 부탁을 한 거지 실제로 그 안에는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뻐하라고 한 겁니다. 기쁨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 다섯 가지의 제사 중에서 세 번째까지 만으로는 기쁨이 없습니다.

네 번째 다섯 번째의 제사를 드리면서 기쁨을 찾아야 되는데 이런 제사를 드리려면 보좌의 기도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번제와 소제의 전제조건은 희생을 수반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수반해야 합니다. 또는 하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상을 투철하게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페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를 한 사람이 이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과 같이 동역자라는 의식이 우리가 사역을 같이 하면서 여러분들은 동역자의식이 뚜렷해야 됩니다. 그래서 서로서로를 위해주고 격려해주고 위로해주고 화평케 할 때 우리 삶속에서 번제와 소제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사도바울에게는 기쁨이었습니다.

이런 분들이 저에게도 우리 같은 공동체 안에서 기쁨이 되고 또 저에게는 면류관이 되고 왜냐면 그런 분 때문에 내가 면류관을 받기 때문에 사도바울도 빌립보교회에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너희들이 이런 사람들이 되어라 그러면 너희들이 나의 기쁨이요 나의 면류관이다 그랬습니다. 이런 분들이 소위 영광체로 변모되고 이런 분들이 자동적으로 면류관을 받고 이런 분들이 하늘나라에 가서 주님가까이 보좌가까이 있게 되면서 지도자계급으로 영원히 주님과 그 엄청난 하늘나라를 같이 지배하는 주님의 좋은 파트너가 되는 겁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런 파트너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과연 제가 하늘나라에서 어떤 계급에 속해 있습니까?

이건 심각한 질문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계급이 아무리 높고 그래도 잠깐입니다. 과연 내가 하늘나라에서 어떤 계급에 속한 사람입니까?

번제를 드리는 사람이 특히 그중에서도 소제를 드리는 사람이 무교병을 많이 만드는 사람이 주님과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보좌의 기도를 하려면 영의 눈이 떠야 되는데 영의 눈이 밝히 떠야 되는데 영의 눈이 밝히 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양섭취를 해야 됩니다. 영의 음식을 잡수시고 영양섭취를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말씀은 절대적입니다 그러면 눈을 감고 주님 앞에 엎드리면 내 자신이 보좌의 밑에 앉아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보좌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아버지의 영광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옆에 계신 예수그리스도가 내 눈에 보이고 보좌 주변으로 움직이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움직이심이 내 피부에 느끼게 되고 그 성령님이 내 입을 열어서 주님과 대화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시고 어떤 때는 내가 무슨 말씀을 드려야 좋을 지도 모를 때 성령님이 나의 연약함을 아시고 대신 기도해 주십니다.

그러면서 주님 앞에 주님! 주님의 아름다운성품을 나에게 주시옵소서.

오래 참으시는 성품 화평케 하시는 성품 화평스러운 그 모습 모든 조건 없이 사랑하시는 아가페사랑 변화지 않는 충성된 마음 누구에나 다 친절한 그 친절 모든 사람을 자비롭게 보는 그 자비 나를 괴롭히는 사람 용서해주는 주님의 용서의 자비로운 마음 주여 주님의 성품을 나에게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