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16강. 빌립보서4장1절-3절, 주 안에서 굳게 서라

변명섭 2022. 3. 19. 09:16

빌립보서 16강. 주 안에서 굳게 서라(빌4:1-3)

빌립보서4장1절부터3절까지 말씀입니다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 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아멘.

지 지난시간에 제목이 무엇이냐면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노라 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시간에는 나를 본받으라. 그랬습니다. 지난시간에 하신 말씀 중에 사도바울은 왜 그랬냐면 빌립보교인들이 면류관의식이 약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눈물을 흘리며 이분들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겁니다.

왜냐면 너희들 행위가 마귀의 마음을 가지고 다시 말하면 마귀가 좋아하는 마음 질투하고 다투고 분쟁하고 자기욕심이 가득한 이런 마음으로 너희들이 신앙 생활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그래서 너희들 면류관의식이 없구나. 그러는 겁니다.

면류관의식이 없기 때문에 이 교회가 아무리 봉사를 많이 하고 주님 일을 많이 해도 상이 없으니 어떤 때는 그것 때문에 네가 그동안에 쌓아왔던 상이 감소되거나 또는 상실되니까 이분이 안타까워서 눈물로 기도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말씀하시기를 당신들 보니까 이런 영적인 문제가 있는데 이 영적인 문제에 대한 자각증세가 없다는 겁니다. 내가 이런 영적 병을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결론적으로 말씀하시기를 자각증세를 스스로 진단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잡수시고 주님과 깊은 영적교제를 해서 영의 눈이 뜨기 전에는 내가 이런 병이 있다는 것을 자각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알고 나면 그다음부터 내 눈이 근시안적인 이 세상을 바라보는 이런 눈에서 원시안적으로 내 눈이 변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랬습니다. 원시안적인 눈을 가져라 왜 당신들이 자각증세가 없는지 아느냐 눈이 이 세상에 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천국시민인데 우리는 곧 저쪽나라에 가서 살 사람인데 생각의 눈은 왜 이 땅에 내려와 있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우상을 섬긴다는 말을 썼습니다.

우상을 섬긴다는 말은 이 세상에 있는 것에 내가 기대고 있고 그기에 기대야만 마음이 편안하고 기대야만 내가 살 것 같은 겁니다. 예를 들어서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인데 돈이 없으면 못 살아요 어딘가 허전합니다.

주님은 어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은 일부로 돈을 빼앗아 갑니다.

왜냐면 돈이 없어야지만 눈을 위로 뜨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돈이 있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주십니다. 그러면 그 돈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잘 쓰는 사람에게는 돈을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웬만한 사람에게는 돈을 안 줍니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돈을 주면 관심이 땅에 가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릇을 보고 돈을 줍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안타까워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지난시간에 결론적으로 그랬습니다.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방법론을 제시했는데 그것이 닮음의 원칙이라 그랬습니다.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너희들 나를 닮으라는 겁니다. 나를 본받으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자기 이야기를 합니다. 나만이 아니고 내 제자인 디모데를 본받아라. 또 에바브로디도를 본받아라. 말할 것 없이 예수님을 본받아라. 그래서 2장에 예수님이 항상 말씀하시잖아요.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 이렇게 밖에 다른 길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를 본받아라. 이런 말씀을 지난시간에 제가 말씀한 겁니다.

이 말씀을 깊이 들여다보면 로직(Logic)이 있습니다. 저는 로직(Logic)이 서지 않으면 단에 서지 못합니다. 제가 로직(Logic)을 깨닫지 못하면 단에 서서 말을 못합니다. 제 성품이 그래서 제가 하는 말이 로직(Logic)에 맞아 들어옵니까? 그것만 맞아 들어오면 2시간3시간 시간이 문제가 아닙니다.

설교가 왜 졸리느냐면 로직(Logic)에 맞지 않으면 졸립니다. 영성을 깊이 뜨지 않으면 말씀 속에 들어있는 로직(Logic)에 맞지 않으니까 말씀이 지루한 겁니다. 계속해서 사도바울의 로직(Logic)을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도바울이 1절에서 오늘 말씀하시는 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제목이 주안에서 서라 입니다. 한국말로는 주안에서 서라 했는데 영어로는 그렇게 안 쓰 있습니다.

서는데 견고이라는 말이 한국말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4장부터 원어로 보면 전부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안타까우면 이렇게 명령형으로 부탁하는 겁니다. 명령형으로 이렇게 하지 않으면 면류관이 상실되거나 또는 감소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래서 1절 말씀이 빌립보교인들을 사랑하고 사모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면류관을 받으라고 이렇게 말을 하는데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1절에서 당신들이 면류관을 받는 삶을 살지 않으면 내가 당신들에게 사역한 것이 헛것이 된다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꼭 우리시스템과 똑같습니다. 위에 사람이 아무리 잘해도 밑에 사람이 안 해주면 윗사람이 그레딧(credit)을 못 받습니다.

하늘나라의 천국시스템도 똑같습니다. 제가 아무리 여러분들에게 설교를 한 시간 두 시간을 해도 여러분들이 생활에서 열매가 없으면 제가 한 것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이 네가 누군지 모른다는 겁니다. 열매를 맺어주어야 됩니다. 우리학생들도 마찬가지고 2천여 명의 바깥에 있는 우리 동역 자들도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열매 맺게 하는 것이 일이 더 많습니다.

성숙하게 하는 겁니다. 이게 영적인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더 힘든 겁니다.

진짜 아이들은 키우는 게 힘든 겁니다. 그래서 제자훈련의 중요성이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제자들을 만들어 내는 일입니다 성경지식만 집어넣는 일이 아닙니다. 이럴 때 이분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이렇게 닮아가는 사람들이 되었을 때 기쁨의 면류관이 있다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기쁨의 면류관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동료들이 나를 기쁨의 면류관을 받게 해주시려면 나를 조금 도와주세요. 그 소리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4장에서 상급 받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습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것은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걸 안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명령을 했느냐면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하는 것이 명령형 중에 명령형입니다 이와 같이 라는 말이 그다음 절에 나오는 모든 말씀들입니다 이와 같이 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느냐면 주안에서 하라는 겁니다. 면류관을 받으려면 주안에서 하라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주안에서 하라 주라는 말이 로드(Lord)노예와 주인과의 관계에서 그분이 완전히 나를 지배하시는 분으로 나의 생사화복을 그런 마음을 우선 가지고 있으라는 겁니다. 그래서 로드십(Lordship)이라 그럽니다. 영어권 사람들은 로드십(Lordship)이라는 말을 대단하게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대개 문제 있는 사람들은 로드십(Lordship)이 약합니다.

이분이 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분이다 그러니까 이분의 마음에 내가 들게 살아야 된다는 이것이 철저하게 안 들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이 철저했습니다. 그리고 주안에서라는 말이 뭐냐면 이분이 상급을 나에게 나중에 주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의 마음에 들라는 겁니다.

내 스타일이 아닙니다. 이분의 마음에 드는 것을 이분이 가장 좋아하는 게 뭡니까? 어떤 사람을 가장 좋아합니까? 부모님들이 자녀들 중에 어떤 자녀를 가장 좋아합니까? 자기를 닮은 사람입니다 성품이고 모든 것이 주님을 닮은 성품을 가진 자녀들을 가장 주님이 사랑하는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그랬습니다. 사도바울은 하루아침에 그렇게 된 사람이 아닙니다. 이분의 신학은 예수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으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면 면류관은 자동적으로 오는 겁니다. 예수님의 성품만 닮아가지고는 안 됩니다. 우리자녀들도 내 성품만 닮아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다음에 자녀가 자라나야 됩니다. 성품을 자꾸 발전시켜서 그다음에 시집장가 가서 내 성품을 닮은 자녀를 낳아서 키우는 겁니다. 그럴 때 손자손녀도 이쁜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성품을 닮는 그 자체가 중요하지만 거기서 한 단계를 더 지나가야 됩니다. 그렇게 닮도록 나를 통해서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나오도록 많은 사람을 낳아주어야 됩니다. 제자를 만들어야 합니다.

씨를 뿌리는 겁니다. 저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여기 앉아 있는 형제자매들이 내가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내속에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이면 그것을 닮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보이면 제일 이쁜 겁니다. 오늘날은 성경공부 한다면서 공부만 하는데 삶에 적용이 안 되는 이유가 그래서입니다.

적용을 시키려면 내 속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들을 뽑아내는데 그것이 치유사역입니다 그것이 선진국에서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겁니다.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중에 하나가 트르스트(trust)사역입니다 치유사역은 인격적인 대화를 장시간 동안 하기 때문에 트르스트(trust)사역과 함께하면 금상첨화입니다 그러면 왜 굳게 서라고 그랬습니까? 이런 성품이 되려고 하는데 방해세력이 너무 많은 겁니다. 주님께로 나아가려고 하는데 그러니까 굳게 서라는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왜 그럴까요? 마귀는 우리사도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다니면서 나의 문을 자꾸 밑으로 깔게 만들어 놓습니다.

나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근시안적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래서 원시안적인 눈을 뜨지 못하게 만들어 놓는 겁니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것을 보면 다 내 마음에 안 들고 눈에 보이는 것을 내 성품에 안 맞고 그러니까 사람들과 다투게 되는 겁니다.

불편한 겁니다. 저쪽을 보지 않고 마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구원을 캔슬시킬 수가 없습니다. 특별한 예외를 빼놓고는 그렇지만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눈을 자꾸 밑으로 깔게 해놓고 너 네들끼리 서로 다투게 만들어 놓습니다.

여기 나오는 유오디아와 순두게 라는 여자도 똑같습니다. 눈을 밑으로 깔게 만들어 놓습니다. 그래서 서라는 말이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원어로 스테케테에 이게 무슨 말이냐면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군인이 보초를 설 때 쓰는 말입니다 적군들이 접근할 때 쓰는 말입니다 두 번째는 마라톤선수가 마라톤으로 뛰는데 길을 따라서 달려가는데 다른 길로 가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경주로를 이탈하지 못하게 하는 그래서 서라 그랬습니다. 스테케테에 에라는 말이 명령형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절대로 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내 혼자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유오디아와 순두게 문제입니다 이분들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면류관을 받으려면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에게 주안에 굳게 서라

그랬잖습니까? 굳게 서 있지 않는 신자가 빌립보교회에 여기저기에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굳게 서 있지 않는 사람들에게 홀로 굳게 서라 이렇게 하지 않고 이 사람들이 굳게 서도록 옆에서 힘을 모아서 도와주라는 겁니다. 힘을 모아서 안 그러면 마귀들에 쫓겨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실제로 주안에 굳게 서 있지 않는 예를 한번 봅시다.

그것이 2절입니다. 교회 안에 갈들과 알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특별히 대표적으로 두 여인을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입니다

이분들이 마귀의 공격을 받은 겁니다. 이분들은 실제로 누군지는 모릅니다.

일곱 여덟 가지의 학설들이 있는데 그냥 그 교회에 지도자들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지도자들인데 우리 같으면 교회에 어떤 분은 목사사모님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여튼 교회에 우리식으로 말하면 권사님정도 되지 않을까? 안 그러면 전도사든지 어떤 분은 그럽니다. 빌립보교회가 개척될 때 간수의 처가 유오디아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초창기 멤버들입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교회에서 세력이 상당히 강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알력과 갈등이 있으니까 전 교회가 상처를 입는 겁니다. 그래서 뭐라고 명령하느냐면 그분들에게 뭐라고 명령을 합니까?

2절에 같은 마음을 품어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한국말 번역이 잘못되었습니다. 같은 마음을 품어라가 아니고 제가 영어로 말하면 근방 여러분들이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모니(harmony) 서로 조화를 주안에서 잘 맞추라 조율을 잘해라 이런 말입니다 그것을 한 마음을 가져 라고 그랬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 마음이지만 의미가 다릅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사도바울이 대단한 세력가들이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또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어떻게 권하느냐면 2절에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고 그랬습니다. 권하고 라는 말이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권하고 하지 않고 각자에게 권한다는 말을 따로 따로 붙어 놓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다시 말하면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권하노라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유오디아에게 권하고 순두게에게 내가 권한다. 이것은 아주 개인적으로 말하고 싶어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분들 한 사람 잘못이 아니고 둘 다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양쪽 다 거기다가 두 번씩 말하는 반복은 항상 보면 강조 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런 식으로 강조 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안타까움과 심각성과 중요성을 여기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분들에게 이렇게 권한다는 말은 파라칼레오 라는 말로 이것은 촉구한다는 말입니다 또는 호소한다. 또는 간청한다.

간구한다. 왜 이렇게 썼느냐면 당신들이 이렇게 안 하면 순종안하면 그동안 쌓아놓은 면류관이 감소되거나 상실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는 겁니다. 호소한다는 겁니다.

너희들이 그렇게 싸움을 하면 사도바울이 내 면류관도 감소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발(please)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들의 갈등이 개인들이 해결할 수 있는 갈등이 아니라고 그랬습니다. 왜냐면 교회에 부탁하는 겁니다. 이들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공동체생활에서 야기된 문제기 때문에 공동체와 이들 문제와 상호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3절에 보면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도우라 그랬습니다. 저 여인들이 누굽니까? 유오디아와 순두게입니다. 그런데 몇 사람이 도우라고 쓰 있습니까? 멍에를 같이한 자라 그래서 빌립보교회에 말씀을 하는 겁니다.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입니다 사도바울과 멍에를 같이한 자로 이방사역을 위해서 마케도니아지방과 남부유럽 복음화를 위해서 내가 멍에를 쓰고 있는데 빌립보교회공동체야 너희들도 나와 같이 멍에를 쓰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같이 복음농사를 위해서 농사를 짓는 겁니다.

이렇게 같이 하는 이러한 교회야 이 여자들의 문제를 도우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문제가 있을 때는 아 그것은 그 사람문제야 그러면서 가만히 놓아두면 안 됩니다. 우리가 힘을 써서 서로 도와주어서 이 문제가 빨리 녹아나도록 기도해주고 그래야 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아시아복음농사를 위해서 멍에를 준 것 아십니까? 여기 서있는 황 목사가 멍에를 메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우리 모든 동역 자들도 멍에를 메고 있습니다. 한쪽에서 멍에를 벗으면 이 수레가 가지를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멍에를 다 벗으면 저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사도바울이 왜 이분들에게 도와라 그랬습니까? 첫째로 바울이 이 두 분을 꽤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초창기에 같이 교회를 개척한 멤버들입니다 또 바울이 이분들에게서 사랑을 많이 받아왔던 겁니다. 그래서 기대가 남다른 겁니다.

거기다가 이분들은 공동체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영적싸움에서 함께 고난을 받았고 함께 슬픔과 외로움에 동참했던 동역자입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말하기를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 그랬습니다.

복음에 힘쓰던 저 여인들이 서로 사이가 안 좋고 제자들에게 영향을 주니까 본인들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요. 그다음에 사도바울의 마음이 아프고 예수님이 제일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예수님의 지체들이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한 지체가 병이 나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지체의식 그래서 3절에 그랬습니다. 참으로 형식적으로 돕지 말고 참으로 도우라는 겁니다.

바울의 안타까움과 심각성을 말하는 겁니다. 왜냐면 이들의 수고가 수포로 돌아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동료교인들아 너희들이 피스메이커가 되어서 모두가 다 기뻐할 수 있는 그러한 천국시민의 역할을 해라는 겁니다.

왜냐면 당신들 이름과 두 자매이름은 천국생명책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불편할 때 이 세상에서 피스메이커를 해야 된다는 겁니다. 왜냐면 우리는 좋던 바쁘던 영원히 같이 살아야 하는 운명의 공동체라는 겁니다. 우리 동역 자들이여 우리는 하늘나라에 가면 우리끼리 모일 겁니다. 싫어도 어쩔 겁니까? 그러니까 여기서 연습을 하라는 겁니다.

마귀는 계속해서 분리자로 우리의 특권을 방해합니다. 이놈들의 책략에 속임을 당하면 안 됩니다. 마귀들은 우리의 신분을 압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이렇게 영원히 같이 가서 산다는 것을 압니다. 천국시민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까 이놈들이 왜 덤비느냐면 이놈들이 질투를 하는 겁니다.

루시퍼가 본래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많이 받은 놈입니까?

그런데 그놈이 자녀 권을 빼앗긴 겁니다. 빼기니까 질투가 난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렇게 방해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일부로 방해하도록 놓아둔 겁니다. 그래서 우리를 훈련시키려고 그러다가 나중에 가서 때가 되면 잡아다가 무저갱 지옥에다가 집어넣습니다. 지금은 무저갱에 있지만 나중에는 지옥으로 가는 겁니다. 무저갱과 지옥은 다릅니다.

그러니까 이놈들은 뭐냐면 자기네가 못 먹는 바벨론의 재를 뿌리는 겁니다.

에라 나는 먹지도 못하는데 재나 뿌리자 그래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들의 공동체에 들어와 가지고 서로 이간질 시키고 질투심을 불어넣어가지고 질투의 마음은 마귀의 마음입니다 그래가지고 공동체를 갈등을 일으키게 하고 어지럽게 하는 그러한 일들을 하는 우리가 거기에 속임을 당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왜 안 될까요? 우리공동체는 목표가 뚜렷한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공동체는 어떤 목표입니까? 우리는 그냥 모여서 북 치고 장구치고 말씀 듣고 말씀배우고 이렇게 놀라라고 만들어놓은 공동체가 아니잖아요.

우리공동체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마귀에 잡혀있는 자녀들을 해방시켜서 하늘나라로 이끌어 오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공동체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이 사명을 못하게 하는 겁니다. 너희들 모여서 북 치고 장구치고 놀아라. 싸움하지 말고 그러다가 너희들 다 하늘나라에 갈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그렇게 하라 왜냐면 너희들이 그렇게 하면 너희들끼리 약해져가지고 관심이 나에게 없어진단다. 그러는 겁니다. 그놈들은 우리의 관심을 딴 데 다가 보내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마귀이야기도 안 합니다. 순두게와 유오디아 이분들은 마귀의 전략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들을 도와주어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도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이다 보면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할 겁니다. 그러면 초창기멤버들은 이진리만 깨닫게 되면 피스메이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분들이 무슨 마음을 가지고 우리공동체에 오더라도 우리들의 영성에 의해서 이분들이 녹아져버립니다 영력이 생기니까 사랑의공동체 안에 들어오면 그냥 녹아져버립니다 왜 녹습니까? 마귀가 얼씬도 못합니다. 그러한 능력자들이 한사람, 한사람 다 되어야합니다

거기에 한 두 사람 문제 있는 인물이 3절에 보면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 자들을 도우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누군지 모르는 겁니다.

이렇게 도우므로써 빌립보교회가 굳건히 설 수가 있습니다.

이래야지만 빌립보교회가 계속해서 사도바울의 사역을 도울 수 있고 물질만이 아니고 기도로 그래서 사도바울이 스페인까지 가는데 큰 추진력이 되어주는 그러한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겁니다. 사도바울은 그러한 기대를 가지고 이 교회에 이런 편지를 쓰셨던 겁니다. 그렇게 되면 분명히 사도바울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이렇게 주안에서 단단히 강권하게 서 있으면 틀림없이 나만이 아니고 너희들이 기쁨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철저하게 주안에서 하나가 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위한 것이지만 알고 보면 나를 위한 겁니다. 그런 어머니와 아버지는 하나님이 엄청나게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들 기도 별로 안 해도 괜 찬습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다 하십니다 그런 삶을 안 살면서 기도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이 이쁘니까 물어보기 전에 알아서 주시잖아요.

이쁜 사람은 그냥 주고 싶은 겁니다. 받을 만한 그릇이 되면 그냥 다 주십니다. 문제는 그릇입니다 한국교회는 기도 많이 하는 교회로 소문났는데 그 기도 속에는 열매가 없는 겁니다. 제가 가끔 이야기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제가 언젠가는 그러한 이슈만 가지고 한두 달 다룰 때가 올 겁니다.

그런 이슈만 가지고 제가 결론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 다른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격도 다릅니다. 교육환경도 다릅니다.

가정환경도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것이고 그의 불가능합니다. 내 몸에서 나왔지만 부모자식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어머니 배속에 나왔지만 형제들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바울은 여기서 하나가 되라는 의미는 아까 뭐라고 그랬습니까?

하모니(harmony) 조화를 이루라는 겁니다. 조화라는 말은 무엇을 전제로 하느냐면 서로가 다 다르다는 겁니다.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해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조화를 이루라는 겁니다. 우리는 자꾸 저 사람과 나와 같게 만들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같을 수가 없습니다. 다릅니다.

조화 하모니(harmony)라는 말은 공동체가 아름답게 평화롭게 잘 유지되는 아주 아름다운 말인데 조화라는 말을 다른 말로 말하면 피스메이킹하라는 말입니다 피스메이킹이라는 말은 항상 다른 것이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화평케 하라는 말은 항상 그기에 다른 것이 있다는 겁니다.

그게 전제조건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한 단계 올라가서 이걸 깨달으면 됩니다. 하나님은 다양성을 선호하는 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 주세요.

하나님은 다양성을 선호하시는 분이시고 이 다양성 속에서 조화를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게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분의 타고난 성품으로 교회도 보면 그분의 지체의식을 항상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한분이시고 그분이 교회에 몸이신데 여러 지체가 있다고 그랬습니다. 기능이 다 다르게 기능별다양화를 이런 걸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자체가 다양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삼위일체를 보세요.

세분이신데 한분입니다 세위로 한분이신데 위가 셋입니다 기능이 다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분이 아닙니다. 한분이신데 위가 다릅니다.

성부, 성자, 성신 이래서 이분들이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기능이 다릅니다.

기능이 다르면서 하나입니다 그러면서 서로 존중하십니다.

서로 상하가 없으십니다. 그러면서 세분이 온전하게 조화를 이루고 계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항상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성만찬에서 기도하시를 아버지! 아버지와 나와 하나인 것처럼 우리제자열한명도 하나가 되게 해주세요. 서로가 조화를 잘 맺게 하세요. 각자가 다른 은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교인들도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은사가 다 다릅니다.

다 같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의 뜻은 다르게 한 겁니다.

하나님의 다양성에 대하여 제가 예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기독교가 왜 저렇게 교파가 많으나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대답도 됩니다. 첫째 하나님의 다양적인 성품은 자연에서 들어납니다. 하나님은 전 세계 산을 전부 다 모양이 다르고 높이가 다르고 모습이 다 다릅니다. 나무도 보세요. 열대나무 아열대나무 북쪽나무 우리나라에 있는 나무들은 다른 나라에 가면 없습니다. 우리지역에만 있습니다.

소나무도 다 종류가 다릅니다. 열대지방에 가면 소나무가 가끔 있는데 완전히 우리나라와 모습이 다릅니다. 나무들도 다 다양하게 만들었습니다.

꽃을 보세요. 봄에 피는 꽃 그것도 이른 봄 중간 봄 늦봄 여름에 피는 꽃 나중에 늦가을에 피는 꽃이 무엇입니까? 국화 코스모스입니다 기후도 보면 사철이 있잖아요. 여름에 장마 지는 때가 있고 눈만 오는 때가 있고 다양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우리보고 다양성을 엔죠이하라는 겁니다. 우리하나님도 그걸 보고 엔죠이하시는 겁니다. 두 번째로 인간창조에서도 보면 하나님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세계인구가 60억입니다. 60억 명의 얼굴이 다 다릅니다. 손금이 다 다릅니다. 모습이 다릅니다. 성품이 다르고 다 다릅니다. 그중에 종족으로 따지면 14000종족이 있습니다. 14000종족이라는 것은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습관이 다르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인종이 다르다는 겁니다. 일부로 하나님이 그렇게 다 다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한 어머니의 몸에서 나온 열 자녀들을 보세요. 같습니까?

비슷비슷하면서도 다 다릅니다 성격도 다 다릅니다 어떤 놈은 어머니아버지에게 효자 하는 놈이 있고 어떤 놈은 감옥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놈이 있고 어떤 놈은 공부 잘하는 놈 못하는 놈 하나님은 다 다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전부다 공부 잘하면 어떻게 합니까? 부모가 재미가 하나도 없을 겁니다. 못하는 놈도 있어야 재미있을 겁니다. 하나님은 그때그때 다른 가운데서 하나님이 다 목적이 있어서 쓰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자녀를 키울 때도 왜 너네 형은 저렇게 잘하는데 너는 수능으로 4등 학교 밖에 못 들어가느냐 이런 부모들은 그것은 부모잘못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를 모르는 겁니다. 어떤 놈은 집에서 TV앞에 앉아 있는 놈이 있습니다.

그냥 가만히 놓아두세요. 주님에게 주여! 알아서 하세요. 난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세요. 그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었잖아요. 하나님이 여러분들이나 저에게 다리를 묶어서 이래라 저래라 합니까? 아니잖아요.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라는 울타리 속에서 우리 마음대로 뛰어놀게 하잖아요. 그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겁니다. 내 자식이라고 감방 속에 집어놓고는 내가 만든 감방을 만들려고 하지 마시고 자유를 주세요. 다른 것을 인정하세요. 절대로 비교하지 마세요.

우리는 같은 단일민족이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이 안에도 엄청나게 다른 것이 많습니다. 우리민족이 약8천만 인구입니다 남한이 5천만입니다

북한이 2천5백입니다. 거기다가 바깥에 나가있는 교포들이 5백만입니다

다 같은 말을 쓰고 김치를 똑같이 먹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민족은 대단히 단일민족 중에 큰 민족입니다 굉장히 큰 민족입니다 그런데 이 속에 얼마나 다른 게 많습니까? 호남과 영남 하나님께서 다르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다른 걸 인정하고 들어가야 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다른 안에서 조화를 잘 이룰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교회에도 9개 나라사람들이 와 있지만 다 다르니까 얼굴색이 다르고 같은 아프리카사람들도 우리가 볼 때는 같은 것 같은데 다릅니다. 성품이 다르고 자기네들끼리도 보면 다른 것이 있습니다. 똑같이 우리 아시아 사람들이 구라파에 가면 그 사람들은 다 똑같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보면 다 다르잖아요

제가 예를 하나 드려드리겠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예를 드려 드리겠습니다.

오케스트라를 보세요. 거기에는 관악기가 있습니다. 타악기가 있습니다.

금관악기가 있습니다. 현악기가 있습니다. 콘트라베이스 같은 큰 악기가 있습니다. 트럼벳 같은 악기 음색이 다 다릅니다. 제일 바이올린 같은 악기도 있고 북 치는 사람들로 있고 지휘자가 누굽니까? 지휘자가 예수님입니다

전체의 우주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예수님이십니다. 지휘자에 따라서 움직이지 각자가 뛰는 오케스트라가 어디 있습니까? 각자가 자기가 잘났다고 다 뛰어보세요 그게 무슨 노래가 나옵니까? 그리고는 이상한 노래가 나옵니다. 하모니가 안 되는 겁니다. 지휘자가 하모니를 만드는 겁니다.

전체 다른 악기들은 지휘자 말을 잘 들으면 아름다운 베토벤 넘버 파이브가 쫘악 나오는 겁니다. 기가 막힌 황제 심포니가 나오는 겁니다. 저는 오케스트라 중에 제일 좋아하는 게 뉴 월드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엄청나게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 걸 들어보세요. 얼마나 조화를 잘 이루나 거기서 아름다움이 나오는 겁니다. 똑같습니다. 하나님을 주님을 믿는데 각 나라를 보면 다 믿는 방법이 다릅니다. 한 나라 안에서도 예를 들면 장로교는 장로교스타일로 믿습니다. 예를 들어서 조용히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서 장로교보다 더 한 것은 성공회나 이런 사람들은 앉았다 일어났다 여러 번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것이 체질에 맞으면 그렇게 하는 겁니다.

체질에 맞고 그렇게 배워왔으면 또 침례교는 뭐라고 하느냐면 물에 들어가서 세례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면 그게 그분들의 체질이면 들어가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한바탕 뛰지 않으면 도저히 예수 믿는 같지 않는 겁니다.

그러면 다 오순절로 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단이 자기 성품에 맞추어서 전 세계에 교단이 몇 개인지 아십니까? 22000개입니다. 개신교만 22000개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선교하다보면 이것을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미얀마에 가서 우리가 예배 볼 때 학생들 어땠습니까?

그냥 눈을 감고 앉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서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그것도 영국의 영향을 받아서 그렇습니다. 웬만한 다른 나라에 가면 그런 것도 없습니다. 목사들도 마찬가지로 슬리퍼 신고 와서 기도합시다,

그럽니다. 그래도 그 안에서 성령님의 강한 역사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저 있는 대로입니다 그런데 한국목사들은 가면 그대로 티가 납니다.

까만 양복에 데가 더운데도 넥타이 메고 성경 우리식으로 들고 이런 식으로 한국목사들은 아주 티가 납니다. 그런데 그것을 버리지 못합니다.

우리문화를 그대로 가지고 가서 그대로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왜 코리안들은 코리안 스타일로 하느냐는 겁니다. 타 문화에 와서 중국 사람들도 똑같이 말합니다. 어떻게 한국 사람들은 변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스타일 외에 다른 스타일로 가지고 갈 수가 없습니다.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선교지에 갈 때도 김치와 깻잎과 김 등을 들고 가야 됩니다.

다양성을 준비하고 인정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선교하려면 다양성에 대한 준비를 많이 해야 합니다. 다양성의 조화를 영어로 뭐라고 그러느냐면 하모니 인 디프니시티라(harmony in diversity)라 그럽니다. 다양성의 조화를 잘 하는 사람이 주안에 굳건히 선 사람입니다 예수 안에서 이런 사람은 교회 안에서 다투지 않습니다. 왜냐면 저분이 나와 다르구나. 저렇게 다른 것을 하나님이 이 공동체를 위해서 쓰시려고 보내셨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내가 저 형제 저 자매 왜 보냈는지 아느냐 너 마음에 안 든다고 제쳐 놓으면 안 돼 저는 이런 눈으로 모든 사람을 보는 겁니다.

주님! 저분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분이 이 공동체 안에서 잘 기능을 발휘하게 해주세요. 주님이 기뻐하게 제가 마음이 아플 때는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이분들이 잘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는 소위 구세력들이 어느 조직에나 다 있습니다. 구세력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우리교회는 아직 구세력이 없지만 여러분들이 앞으로 다 구세력들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교인이 더 많아지면 구세력들인 여러분들 메시지를 잘 받으세요. 그래서 다시 사도바울이 빌립보교인들에게 명령으로 하신 말씀을 여러분들이 다시 기억하시면서 묵상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 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