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12강. 빌립보서3장1절-3절, 참 할례당이 되라

변명섭 2022. 2. 24. 18:33

빌립보서 12강. 참 할례당이 되라 (빌3:1-3)

빌립보서3장1절에서3절까지 말씀을 같이 봉독하겠습니다.

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이렇게 사도바울의 편지를 읽다보면 일반적으로 무슨 말인가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한국말로 읽다보면 원어에 충실하지 못한 부분들이 번역 가운데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제가 이 세절을 주님의 도우심으로 자세히 하나하나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전해드리려고 그럽니다. 그래서 과거에도 그랬지만 내용을 잘 들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일반적으로 빌립보서하면 기쁨의 서신이라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는 기쁨의 서신이라는 그 자체가 빌립보서는 아닙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신학자들은 그렇게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고 목사님들의 설교도 그렸습니다. 왜 그러느냐면 여기서도 주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기뻐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말을 많이 쓰잖아요. 주 안에서라는 말은 다름 말로 쉽게 표현하면 무슨 말이냐면 주님이 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런 말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은 자기가 죽는 연습을 하셔서 그래서 죽으셨잖아요.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것 때문에 주위에 많은 사람들을 살리셨잖아요. 이렇게 남을 살려주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으로 예수님은 남을 살려주기 위해서 성육신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안에서 이야기할 때는 항상 남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남을 살려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예수 안에서라는 이야기입니다 이걸 잊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항상 거꾸로 입니다. 꼭 남을 살려주는 일을 하는 것보다 죽이는 일을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겁니다. 살려주는 일을 할 때 자동적으로 뭐가 옵니까? 기쁨이 오는 겁니다. 나도 기쁘고 모든 사람이 다 기뻐지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반적으로 교회에 오면 기쁨이 사라지고 예배 끝나고 집에 갈 때 더 마음이 우울해지고 누구 보기 싫어지고 누구 때문에 내가 상처받고 이러면서 교회에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거꾸로 주님의 말씀에 반해서 신앙 생활하는 경우가 우리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니까 성령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가 끝난 후에 집에 갈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가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꼭 우리가 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그게 주 안에서 기뻐하는 사람들이고 주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소위 성령 충만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말씀을 가지고 3장1절을 한번 보세요. 끝으로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 말이 번역이 잘 못되었습니다. 이 말이 어떤 때는 종말이라는 뜻도 있지만 앞뒤로 볼 때 이것은 그런데 이런 말입니다. 1장과2장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라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면 너희는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라 그런데 이 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마음에 투기가 있었고 분쟁이 있었고 다툼이 있었고 허영이 있었고 그다음에 원망과 시비가 있었다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지금 빌립보교회에 말씀 한 것은 교인들이 그런 것이 가득 차 있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주욱 설명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본을 보여주신 분들이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이 나다 그다음에 디모데다 그다음에 에바브로디도다

그래서 내가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너희들에게 보내서 모본을 보여 주겠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3장에 들어와서 그런데 하면서 주안에서 기뻐하라는 겁니다. 이렇게 기뻐하라, 기뻐하라 하는데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기뻐해야 되는 겁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그런데 기뻐 안하면 마귀가 우리마음을 지배하는 겁니다. 명령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기뻐하라고 명령을 했을까요? 빌립보교회에 있는 교인들은 기쁨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기쁨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명령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쁨의 서신이 아닙니다. 기쁨이 없었기 때문에 기뻐하라 이렇게 명령하는 겁니다. 왜 기쁨이 없습니까? 그 안에 뭐가 있기 때문입니까?

인간관계에서 질투가 있고 시기가 있고 투기가 있고 원망 시비가 차있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쁨이 없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감옥에서 기쁨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인데 그분의 깊은 마음속에 기쁨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명령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3절에 들어와서 더 구체적으로 이렇게 교회 내에서 기쁨을 빼앗아가는 그러한 인물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2절부터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 겁니다. 기쁨을 빼앗아가는 사람들이 빌립보교회에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2절에서 뭐라고 그랬냐면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그랬습니다.

이 사람들이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고 기쁨을 빼앗아 가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이것은 과거2천년 동안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항상 있어 왔습니다.

첫째 개들을 삼가라 그랬습니다. 이게 단수가 아닙니다. 개들 그다음에 행악 자들 그다음에 순 할례 당들 이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질투를 야기 시키고 투기를 야기 시키고 다툼을 야기 시키고 원망 시비가 그칠지 모르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교인들 간에 기쁨이 없는 겁니다.

본인도 기쁨이 없습니다. 여기 보면 삼가라는 동사를 세 번을 썼습니다.

이것도 명령형입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 자들을 삼가고 순 할례 당들을 삼가라 그랬습니다. 삼가라고 한국말로 이렇게 되어 있지만 이것은 전통적으로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또는 경계하라 이런 뜻인데 내용상으로 보면 이런 사람들을 주의를 기우려서 그분들을 항상 이렇게 조심해서 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관심을 두고 보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런 사람들을 피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을 교회에서 쫒아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항상 그런 사람들을 영의 통찰력으로 자세히 들려다보라는 겁니다. 주위를 기우리면서 다시 말하면 같이 그러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한 것을 보고는 아하! 저분이 지금 이러이러한 부분에서 이렇구나.

그러니까 같이 그러지 말고 그분이 그러지 않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라는 겁니다. 왜냐면 이런 사람들은 파괴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그것이 습관화되어 가지고 그렇기 때문에 그렇지 못하도록 주위에서 우리가 도와주어야 됩니다. 그러면 첫째 개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개는 어떤 사람을 칭하는가? 그 당시에 이스라엘사람들은 우리처럼 애완용 개를 집에다가 놓고 집에서 키우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의 개라는 것은 떼를 지어가지고 사람의 인가를 돌아다니는 주인 없는 들개를 말합니다. 인도가면 인도 소들이 그럽니다. 그래서 쓰레기더미에서 쓰레기를 먹고 아무데나 배설물을 싸고 또 배설물을 먹고 이렇게 길거리를 배회하면서 사는 것이 개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개들을 성가신 동물로 취급을 했습니다. 더럽고 성가신 집 앞에 와서 성가시게 하니까 그러면서 개들이 어떤 일을 하느냐면 사람을 보면 사람을 공격하기도 하고 왜냐면 이 개들은 자기와 조금 다른 사람을 보거나 다른 동물을 보면 친해서 같이 노는 것이 아니고 공격을 하고 잘 싸우는 동물들입니다 자기네들끼리도 먹는 걸 가지고 잘 싸우고 또 다른 동물들과 싸움을 잘하는 동물이 개입니다. 그래서 욕심이 많은 동물이었다는 겁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게 개라는 겁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보고는 뭐라고 그랬냐면 개라 그랬습니다. 성경에는 이방인들을 지칭해서 유대인들이 개라고 지칭을 했습니다. 요즘도 이방인들에게 그럽니다.

제가 10여 년 전에 집을 누가 산다고 그래서 그분과 같이 집 보러 갔는데 유대인 집입니다. 그런데 집 보러갈 때 전화하잖아요. 몇 시에 간다고 그리고는 갔는데 유대인여자가 할머니인데 대문을 열어주지도 않고 해서 계속 문을 두드리니까 이 여자가 목욕을 하고는 타월을 입고는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니 손님이 집 보러온다고 그러면 미리 준비를 해야지 목욕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그러니까 이 여자가 하는 말이 개들이 오는데 우리가 뭐 신경 쓸 것 있느냐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이방사람들을 개로 생각하는 겁니다. 지금도 그래서 내가 아하 못된 사람들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분들의 생각이 그렀습니다. 그분들은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들로 자기네생각으로 말하면 유대교를 그리고 이방인들은 불결하고 이 사람들은 투기와 분쟁을 잘하는 민족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개라는 말로 표현을 했습니다.

지금 사도바울도 똑같습니다. 사도바울도 빌립보교회 안에 그런 개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개 하면 대부분의 신학적인 주석을 보면 이방인으로 생각합니다. 교회 안이 아니고 교회 바깥으로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교회 안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교인들을 가지고 지금 사도바울은 개들을 삼가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교회 안에 평화가 없다는 겁니다. 기쁨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 개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아까 제가 개의 특징을 말했습니다.

개는 첫째로 교회 안에서 떼를 지어가지고 그룹을 만들어가지고 예를 들어서 고향사람들이나 동창들이나 기타 등등 떼를 지어서 당을 짓고는 투기하고 분쟁하고 서로경쟁하고 다투고 원망시기하고 하는 이것이 일방적인 교회 안에 형태입니다 영의 눈으로 볼 때는 강아지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믿음이 적은 자들에게 거침돌이 됩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교회에 왔다가 저 사람들 꼴 보기 싫어서 나 교회에 안 나온다는 사람들 있습니다.

거침돌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 때문에 믿음이 자라지 못하는 겁니다. 또 이 개들은 앉아가지고 자기네들끼리 모여 그룹을 만들어서 뭘 하느냐면 입만 열면 가십(gossip)을 만듭니다. 그리고는 공격하고 나와 생각이 다르면 다 공격대상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모습이면 다 공격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대개 보면 자기의견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자기생각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주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하면 내 생각은 자꾸 죽어지고 그리스도의 생각만 내속에 오고 그리스도의 생각이 올 때 그것을 강하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상처를 입히지 않으면서 말하는 것이 주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개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개의 마음을 가지면 항상 말을 해도 상처를 입힙니다.

그리고 조금 누구의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 그것을 잡아서 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못 견디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두가 다 물리니까 이게 괴로운 겁니다. 그런 걸 경험하십니까? 그러니까 공동체 안에는 말로는 예수님의 공동체지만 그 안에는 뭐가 없습니까? 기쁨이 없습니다.

기쁨이 없으니까 평강이 없습니다. 파도만 칩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교회를 보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 개들이라는 겁니다. 주인한데 또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구원을 공짜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기에 대한 감격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남을 씹는 일만 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도 씹는 겁니다. 우리목회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 중에서 가장 제일 힘든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저는20년 전에 신학을 시작하면서 서양 목사님으로 나이가70정도 된 분인데 우리 목사 후보생들을 앉혀놓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너희들 이제 하나님의 종이 될 터인데 제일 목회하면서 힘든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제일 가슴 아픈 게 나는 최선을 다해서 그분들에게 해주려고 하는데 교인들이 자기마음을 모르고 자기를 씹을 때 제일 마음이 아프다는 겁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해주는데 그쪽에서는 그걸 모르고 배반할 때 그것이 베일 마음이 아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그걸 각오하라는 겁니다.

목회자들은 씹히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왜냐면 교회 안에 개들이 많기 때문에 씹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목회자들이 씹이야 목회를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일부로 개들을 많이 만들어 놓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런 개가 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자기는 하나님의 일을 많이 했지만 나중에 하늘에 올라가면 상급이 없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도 빌립보교회가 그렇게 씹는 사람이 많으면 사도바울이 자랑거리가 없어지는 겁니다. 하늘에 올라가서 야! 이놈이 너 제자들 봐라 다 씹던 개들이 여기에 올라왔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너 훈장이 없다고 그러면 이분이내가 자랑거리를 가지지 못하니까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자랑할 수 있게 하려면 제발 좀 그러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를 위해서 그러지 말라는 겁니다. 정말 감사한 것은 우리 동역 자들이 그런 일들을 안 하는 성숙한 분들이라는 것을 제가 이렇게 보면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그런 사람이 주위에 있으면 항상 그러지 못하도록 중화작용을 잘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중화적용을 잘하는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중화작용을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피스메이커라 그러는 겁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입니다. 이걸 잘하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주님이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문제 있는 사람들을 첫째로 개라고 말했잖습니까? 두 번째로 사도바울이 뭐라고 표현 했느냐면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그랬습니다. 두 번째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그게 행악하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이게 한국말 번역이 시원찮게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이 뭐냐면 악한일꾼들을 한국말로 행악하는 자들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악한일꾼들 이게 무슨 말입니까? 교회 안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대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 부류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일은 열심히 하는데 악한 일꾼들이 있다는 겁니다.

빌립보교회 안에서 열심히 일은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많은데 다시 말하면 초신 자들이 아닙니다. 그 교회도 신앙생활한지 10년 정도 되었으니까 그 안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 직분도 다 가지고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 보고 성령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악한이라는 형용사를 그분들에게 붙어주었습니다. 왜 이런 말을 붙었을까요? 이런 형용사를 거기다가 붙었을까요? 열심히 일은 하는데 그런데 깊은 마음에 봉사하는 동기가 불순하다는 겁니다. 주님이 항상 그것을 보십니다. 깔려 있는 마음의 동기가 뭐냐면 나 중심적인 동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 항상 그럽니다.

그것을 투기라는 말로 표현을 했습니다. 뭐냐면 내가 인정받고 내 본 뜻이 이루어지고 내 의견이 통과가 되어야 되고 내 고집대로 되어야 되는 그런 강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공동체가 항상 물과 기름처럼 됩니다. 그런 사람들 보고 악한 열심 있는 자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이타적인 다른 사람들처럼 낫게 여기고 겸손해지고 나보다도 저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도록 내가 도와주고 이런 마음하고 내 중심적인 마음하고는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으라고 그랬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지 않고 내 중심적인 마음을 가지면 뭐가 나오는지 아십니까? 결론은 투기가 옵니다. 질투가 옵니다. 시기가 옵니다. 분쟁이 있습니다. 원망과 시비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만 다 모여 있으면 이 조직체는 끊임없이 소용돌이를 칩니다. 왜냐면 무든 사람이 다 자기중심적이니까 누구 중심이 되어야 됩니까?

예수님의 중심으로 가 있을 때는 모든 사람이 다 그분을 쳐다보고 있으니까 원망과 시비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걸 다 주님 앞으로 초점을 맞추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똑같이 일하면서 황 목사님이 내 마음에 안 든다면 저도 사람이니까 안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원망과 시비를 가지면 주여! 저 종이 지금 이런 부족한 부분이 보입니다. 그러면서 위해서 기도해주는 겁니다. 그리고 내가 더 똑바로 서도록 나를 위해서 뒤에서 격려해주는 겁니다. 그런데 악한 마음을 가지면 어떻게 되느냐면 황 목사님이 어디가 잘못 되었어 하면서 나팔을 불고 다닙니다. 그러면 이 공동체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소용돌이를 치는 겁니다. 말하고 싶어도 참아야 되는 겁니다.

주여! 저 불쌍한 황 목사 불쌍히 여겨 주세요. 그러셔야 됩니다. 그래야 주 안에서 성숙한 사람입니다. 그래야 주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부족한 부분을 말하기 전에 주님이 먼저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는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 아십니까? 이런 성숙한 동역 자들이 주위에 많이 있을 때 거기에서 행복을 느끼는 겁니다.

아하! 주님 감사합니다. 나의 부족함을 보지 않고 나의 미련함을 보지 않고 그래도 나를 위해서 뒤에서 저렇게 밀어주는 동역 자들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런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런 목회자들의 잘 못 때문에 교회가 소용돌이치고 성숙한 당 회원들은 목회자 한 사람이 부족하지만 그분을 쫘악 밀어줄 때 그 목회자가 거기서 자라납니다.

교회가 조용해지는 겁니다. 그런데 지도자 한 사람이 부족함을 보고 씹을 때 교회는 나중에 가서는 깨지는 겁니다. 아픔을 당하고 아픔을 당하고하면서5-6년 있으면 그 교회는 갈라집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다 상처입고 갈라지는 겁니다. 사분오열로 그런 교회가 우리나라에 엄청나게 많습니다.

다 상처입고 나중에 그렇게 가까이 지냈던 친구를 전철에서 만나면 얼굴도 쳐다보지 않는 겁니다. 안녕하세요. 하고 웃기만 하고 그걸로 끝나는 겁니다.

미움이 있고 사탄이 다 갈라놓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 이방을 위해서 복음을 전해야 되는 영적으로 최전방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모여서 주일날 예배드리고서 한주일 힘 받아 살겠다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힘을 받아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이방인들에게 전해주어야 되고 힘을 부어주어야 되는 사람들이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그냥 나만을 위해서 앉아있는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우리는 내 민족만을 위해서 앉아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복음을 모르는 저 형제자매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나님의 종들을 불려준 이방 종들에게 힘을 부어주는 일을 해야 되는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마귀는 어떻게 합니까? 너희들이 힘을 넣어주지 못하게 너 네들끼리 먼저 힘 빼라는 겁니다. 힘을 빼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그걸 굉장히 신경을 씁니다. 누가 봐서 힘 빠진 사람이 있으면 힘을 집어넣어주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힘 빠지면 안 됩니다. 그런데 마귀는 끊임없이, 끊임없이 개 같은 일을 하게하고 악한 일들을 하게 해서 서로서로 힘을 빼게 하는 일을 하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힘이 빠졌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합니다.

우리가 힘이 빠지면 우리형제자매들이 동시에 영적으로 다 힘이 빠져버립니다. 그대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힘이 빠지면 안 됩니다.

그래서 서로서로 힘을 넣어주는 일을 우리가 같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교회라는 공동체가 힘을 받으려면 기뻐해야 되거든요

기뻐하려면 그냥 기뻐하라. 기뻐하라 해서 기뻐 게 됩니까? 안 됩니다

힘을 서로 주어야지만 기뻐 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용납해주고 그래서 4장에 가서는 그러잖아요. 항상 기뻐하라 그다음에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어라 우리가 다 들은 소리들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눈으로 보라는 겁니다. 내 눈으로 보면 관용이 안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있습니다. 4장6절과7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염려는 왜 합니까?

염려하는 사람은 지금 이런 관계 속에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공동체 안에서 문제가 파도가 치니까 염려가 생기는 겁니다.

이 교회가 어떻게 될까? 저 사람이 어떻게 될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라는 겁니다.

나에게 훈련시키기 위해서 이런 파도를 주는군요. 그리하면 지각이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이 평강을 우리가 가져야 됩니다. 이 공동체 안에서 평강이 흘려 나와야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그리스도의 예수 안에서 너희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는 겁니다. 이 평강이 올 때 주님을 섬기는 기쁨이 있고 보람이 있고 그래서 평강을 가지려면 보좌의 기도를 해서 우리가 찬양 속에서 주님의 평강을 맞보잖아요. 찬양도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찬양으로 하고 기도도 그렇고 그러면 환경의 파도는 치지만 내속에 평강이 오는 겁니다.

내가 평강이 없으면 태풍이나 똑같습니다. 내 마음에 태풍이 오면 내 마음에 태풍이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내 속에 소용돌이치는 나산형태의 태풍이 폭풍이 내속에 있으면 평안한 이웃을 하루아침에 침수시켜버립니다.

경작물들을 가옥들을 침수시켜버립니다. 나에게 태풍이 있으면 가만히 있다가 한마디 하는 그것이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건물도 파괴시키고 인명피해도 주고 온 세상을 뒤집어버립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내가 평강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내 속에 있는 태풍을 제거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보좌의기도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문제인물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손할례당(損割禮黨)을 삼가라 그랬습니다.

사도바울이 쓰는 말로 카타토메(katatomhv)라는 말인데 피부가 상처 입는다는 뜻에서 할례입니다. 손할례라는 말은 구약의 할례는 피부가 손상을 입은 겁니다. 그래서 손할례인데 그것은 가짜 할례라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손할례당이라는 그런 이야기를 쓰시면서 참할례 3절에 보면 할례파라 그랬는데 이게 마음의 할례로 할례를 페리토메(peritomhv)포경수술로 영어로 세컴시즌(circumcision)이라고 하며 이제는 마음의 할례가 더 중요한데 손할례를 받은 사람들 다시 말하면 구약에서 할례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겁니다. 교회에 들어 온 사람은 다 할례를 받았는데 손할례 다시 말하면 겉으로 나타나는 할례 구원받은 것만 대해서 나타나는 거지 깊은 마음속에 진짜 하례는 저 사람들에게 없다는 겁니다. 겉으로 교회 다니고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었으니까 그냥 할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형식적인 구원받은 사람들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할례의 정의는 하나님의 특별한 관계에 있는 것을 다시 계약적으로 확인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피로써 그리고는 성령 충만함을 그기에 덧입혀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뜻을 이루는 그것이 신약에서 할례의 정의입니다

손할례자들은 기독교인지만 형식적인 기독교인들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데이크리스천들입니다 그다음에 소위 명목상기독교인들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있지만 헌신하지 않는 사람들을 즉 광야의 기독교인들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스타일로 그냥 살고 있는 40년 광야생활 했던 유대인들의 모습들입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광야의 기독교인들로 이분들은 구원의 기쁨이나 감격이 없습니다. 구원의 감사도 없습니다. 그리고는 애굽에서 살던 세상에서 살던 삶을 그대로 영위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애굽음식을 더 좋아하고 애굽의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사고방식과 세상의 가치기준을 그대로 가지고 사는 소위 크리스천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손할례당(損割禮黨)으로 형식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다시 표현하면 광야에서 애굽에서 유월절 피에 의해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지만 이분들이 뭘 하였냐면 우상을 섬겼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동시에 섬긴 사람들입니다

손할례자들은 그러니까 구원은 받았지만 완전히 마음이 하나님께 가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상이라는 것은 하나님보다 더 기대는 것을 우상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어떤 사물에 대해서 또는 어떤 일에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그것을 우상이라고 그럽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의 우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물질입니다 물질이 있으면 다 될 것 같습니다.

또 교회들은 건물이 우상이 될 수가 있습니다. 건물만 있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단이 우상이 될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학벌이 우상이 될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연 학연 자기지식 명예 이런 것이 다 하나님보다 의지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손할례당(損割禮黨)을 율법주의자라 이렇게 말합니다. 율법주의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대해서 깊이 압니다.

그런데 깊지가 않습니다. 깊은 율법주의에 대한 말씀을 주님이 마태복음5장6장7장에서 말씀하셨는데 율법주의자들은 팔복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고는 헌금을 해도 남에게 보이려고 하고 기도를 해도 남에게 보이려고 하고 구제를 해도 그렇고 다 자기 중심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율법에 의해서는 잘하지만 그 속에는 은혜와 평강이 없는 겁니다. 왜냐면 자기중심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헌금을 하여도 주보에 자기이름이 안 나오면 벌써 화를 내는 사람 섭섭하게 생각하는 사람 우리교회에는 그런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기가 조그만 어떤 일을 주님 앞에 했는데 그것이 알려지지 않고 알아주지 않고 목사님이 인정을 하지 않으면 섭섭해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으면 목사님은 대개 피곤합니다. 저는 그럽니다. 주여! 그런 사람들은 우리교회에 보내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교회는 할 일이 너무 많은 교회입니다. 교통 정리하다보면 저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저는 바깥으로 나가서 뛰어야 되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들 교통 정리하다가보면 대신 그런 사람들을 교통 정리할 수 있는 동역 자들을 많이 보내주세요. 네가 못하는 부분들을 저는 이렇게 주님에게 간구합니다. 오늘 본문이 3절이지만 이 안에 엄청난 가르침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처음에 개 같은 사람 두 번째 행악하는 자들 열심히 일을 하는데 동기가 불순한 사람들 그다음에 세 번째로 손할례당(損割禮黨)이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사도바울이 3절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겁니다. 이런 사람이 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되지 말라 이런 사람을 삼가라 그리고 대신에 기뻐하라

이랬는데 그러면 말만 해놓고 방법을 가르쳐주어야 되잖아요.

그 방법이 3절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이 말이 조금 이상하지만 3절이 번역이 조금 잘못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성경을 다 개정해야 합니다. 옛날 중국성경을 한국식으로 해가지고 원어하고 차이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성경의 많은 부분에 원어하고 거꾸로 된 말이 있습니다.

반대로 된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바꾸자 그러면 바로 난리를 치는 분들이 계십니다. 상당히 보수적인 분들이 계십니다. 3절을 보면 첫째 방법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는 자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원어를 보면 봉사를 라트루오라는 말로 썼는데 이 말이 뭐냐면 예배라는 뜻입니다.

그것을 한국말로 봉사라는 말로 번역을 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예배하는 자 영어성경에는 분명하게 because we worship by the power of God's Spirit 그랬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봉사 서비스라고 이렇게 해버렸습니다. 이런 세 가지의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제일먼저 해야 되는 게 뭐냐면 성령으로 예배하는 일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오늘도 찬양 속에서 성령으로 찬양을 드리는 겁니다.

과거 기독교의 예배는 신학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운 하나님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가지고 예배는 엄숙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이런 일을 하면 하나님이 때리신다. 그러니까 까만 옷 입고 넥타이 메고 아주 엄숙하게 거룩하신 분이니까 조금만 거룩 성에서 벗어나면 이게 구약적인 사고방식인 겁니다. 그래가지고 요 근래에 와서는 안 되겠다. 예배형식도 순서대로 앉았다 일어났다 순서에서 뭐가 하나 빠지면 예배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이런 형식에 빠져있는 예배가 오늘날까지 연결되어 있는 그게 가톨릭에서 만든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선진국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먼저 이루시는 경우가 많거든요. 특히 미국 같은데 보면 그 나라도 이런 고정관념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다가 거기서 깨어나는 성령님께서 깨어나는 예배를 그분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미국에서 성령 충만하고 교회가 성장하고 교인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교회들을 보면 주일 대 예배가 순서가 없는 교회가 많습니다. 우리는 주보에 순서가 있습니다. 찬양부터 시작하여 찬양을 한 시간이상을 하고 보통 대 예배가 두 시간 세 시간씩 합니다. 성령님에 완전히 젖어가지고 그럴 때 그 안에서 내 속에 들어있는 이 모든 나쁜 동기들이 빠져나가고 내 속에 있는 질투들이 빠져나가고 죄 성들이 빠져나가야 되는 겁니다.

이렇게 나가게 하는 길은 성령으로 예배드리는 길 밖에 없습니다.

성령 안에 완전히 잡혀가지고 나의 모습을 주님의 보좌 앞에 끌어올리고는 주님이 주시는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매일 체험해야 합니다.

이런 예배를 안 드리고는 형식적으로 앉았다 일어났다 설교 듣고는 축도 받고 나가는 이런 예배 가지고는 절대로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됩니다.

더 문제 있는 사람들로 만듭니다. 그래서 분명히 사도바울도 그러잖아요.

성령의 예배를 드리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성령의 예배를 드려야 겠습니다. 찬양도 영의 찬양을 기도도 영의 기도를 그래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 진정이라는 말이 영어로 터루트(truete)로 표현했습니다. 터루트(truete)가 누굽니까? 예수님입니다

주님이 나는 진리요 진정이라는 말이 번역이 잘못 되었습니다.

진정이란 말이 열심히 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영으로 예배를 드리는데 어떻게 드리느냐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예배를 드리라는 겁니다. 그게 신령과 진정이라는 겁니다. 지금 종교다원주의교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께 포커스를 안 맞추는 겁니다. 사회개혁이니 타 종교와 나와의 관계에서 좋은 사람이 되자 예수가 빠져버린 그러한 예배들 우리는 포커스를 예수님께 맞추는 겁니다. 예수님이시여! 주님의 성품을 나에게 주세요. 이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예배를 이런 예배로 드릴 때 내 속에서 부정적인 부분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겁니다. 천천히 빠져나가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에 중요한 기독교의 교리를8장까지 말씀하시고 그다음에 9장10장11장에서 유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주님의 선교의 비밀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는 12장부터15장까지는 이런 것을 깨달은 자들아 너희들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아느냐 하면서 그러므로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은 지금부터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면 내가 너희들에게 권하노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를 드려라 이것이 너희가 드리는 영적예배니라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영적예배를 한 차원을 높이는 겁니다. 주어진 공간 속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말하지만 교회 안에서 예배드리는 예배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예배 이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이것은 나가서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 힘을 받는 예배 나가서 진짜 삶 속에서 드리는 예배 하루24시간 일주일 내내 365일 그러면서 그것을 어떻게 드리는지 아느냐 하면서 이분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 그러니까 내 속에 있는 하트를 새롭게 해서 변화를 받으라는 겁니다. 마음에 있는 지저분한 것들을 싹 뽑아버리고 변화를 받아 온전히 새롭게 성령님으로 다시 대체시켜가지고 그다음에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는 겁니다. 그렇게 되어야 분별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이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하는 겁니다. 이렇게 전파되려면 내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나를 통해서 전파가 되지 않습니다.

이 뜻을 분명히 알고서 로마에 있는 크리스천들아 너희들이 살라는 겁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12장13장14장15장입니다

16장에 30여명의 사람들의 이름을 주욱 대면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이름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제일 먼저 하시는 말씀이 뭐냐면 이렇게 살아라 하면서 12장3절부터 나오는 유명한 말씀입니다. 옛날에 제가 남은 자에서 잠깐 비쳤습니다. 3절부터8절에 하시는 말씀이 사도바울은 그분의 편지에서 제일 먼저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서로 분리가 있고 투기가 있고 질투가 있고 경쟁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 제일 먼저 지적합니다. 영적예배는 우리의 삶 속에서 먼저 투기하지 않아야 됩니다. 아무리 예배에서 할렐루야 찬양 하면서 예배를 드려도 삶 속에서 투기가 있고 질투가 있고 비방이 있고 나가서 평강을 가지지 않고 은혜를 베풀지 못하면 그분은 영적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제한된 공간 속에서만 예배를 드리고 나가서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보실 때 너는 아직도 어린아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로마서12장3절에서8절에 간단하게 보세요.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행하라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마음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니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로마교회 안에 각자가 다 지체가 다른 겁니다.

예수님이 몸이신데 어떤 사람은 예언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섬기는 사람이 있고 격려하는 사람이 있고 구제하는 사람이 있고 다스리는 사람이 있고 긍휼을 베푸는 사람이 있는데 각자가 다 다른 지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기가 다 하려고 그럽니다. 그리고 자기와 다른 지체를 가진 사람을 씹고 자기에게 준 믿음의 분량만큼 가지고 전체 몸인 예수님의 몸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일을 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겁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주님의 몸이 아파합니까? 이것을 잘하는 사람이 피스메이커입니다 이것을 잘하는 사람이 영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서 이 예배를 드리면서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 밸런스를 조화를 잘 맞추어가는 사람들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잘 알 필요가 있습니다. 3절 마지막으로 예수그리스도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다. 예수그리스도로 자랑한다.

이런 사람은 겸손한 자입니다 모든 것을 다 주님께 영광 드리는 자입니다

주여! 저는 이 조직체 안에서 네가 한 것은 없습니다. 매일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주여! 저는 소유도 없습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주님 앞에 우리AMI사역이 제 것이 아닙니다. 주님 저는 언제라도 주님이 놓고 가자 그러면 저는 갈 사람입니다 항상 이것을 고백해야 됩니다. 내 소유가 아니구나.

내 소유라고 생각하면 다툼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미움이 있습니다.

경쟁이 있습니다. 이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교회를 건축하신 권사님이 남편 몰래 모아놓은 쌈지 돈을 주님께 바치는 겁니다. 그 30년을 모아놓았다는 겁니다. 권사님 남편은 사업하시는 분으로 비즈니스맨으로 사업에 성공한 분입니다. 그러니까 돈에 대해서는 정확한 겁니다. 그분은 마음이 변하기 전에는 그분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하나님께 내놓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권사님이 남편 몰래 모아놓은 돈을 주님에게 바치는 겁니다.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주님이 불러 가면 나는 맨손으로 가는데 저는 이렇게 주님의 전을 짓는 것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너무 평화스럽고 너무 좋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디로 가든지 자기는 기쁨이 넘친다는 겁니다.

자신의 한계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기업의 회장사모님이신데 그런 겸손한 마음으로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권사님을 볼 때마다 아하! 그래서 이런 일을 하시는구나.

제가 그랬습니다. 권사님 그런 마음만 가지고 계세요 그리고 교회 짓는데 그냥 물질만 바치지 마시고 그것만 해도 권사님은 상이 많을 겁니다.

평소에 골프도 치러 다니세요. 권사님의 사역은 그것만 해도 되겠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건강을 위하여 골프도 치시고 즐거운 마음으로 주님 앞에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사세요. 그랬더니 목사님 고맙다는 겁니다.

마음 놓고 골프를 치라니까 이분이 그렇게 편안해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두 번 골프를 치는 겁니다. 가끔 전화하면 목사님 그러면서 아주 성품이 겸손하십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시고 내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시고 나는 언제라도 다 놓고 가야 되는 사람이라는 걸 항상 마음에 가지고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나이 들면서 그것이 자꾸 나를 엄습해옵니다 야! 너 내가 불러 가면 끝날 놈이 네 것이 어디 있느냐 그러면 주님 알았습니다. 너는 이 세상을 떠날 때 네가 사랑하는 세 자녀들도 다 놓고 갈 거고 너 처도 놓고 갈 거고 네가 해 놓은 모든 걸 다 놓고 빈손으로 갈 건데 그런 걸 느끼잖아요. 나 홀로 입니다. 나와 주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참 할례 당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영적예배를 드리고 예수님을 매일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으면 그리고 내가 죽어가면서 내 속에 있는 시기와 질투와 미움과 경쟁의식과 투기가 없어지고 이간질하는 마음도 없어지고 그러면서 내 속에 평화가 매일 깃드는 겁니다. 이 평화가 있을 때 내 하트에서 나오는 기쁨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주 안에서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기뻐하라 그러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이 기쁨을 맛본 분이기 때문에 우리보고 이 기쁨을 맛보라는 겁니다. 이 기쁨을 맛보시면 이 세상이 천국이 되고 바깥에는 파도가 쳐도 내 속에는 천국이 오는 게 아닙니까? 우리가 이 천국을 맛보는 복된 자들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바람이고 또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