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10강. 디모데의 모범(빌2:19-24) 2000년 말씀
오늘 말씀은 빌립보서2장19절에서24절까지 말씀입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19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20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21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22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23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지를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24 나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아멘.
빌립보서 강해는 한 마디로 말하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라. 이런 소리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 말씀을 하느냐면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투기가 있고 질투가 있고 또 분쟁이 있고 또 시비가 있고 이런 부분들이 타 교회 데살로니가는 더 심했고 고린도교회는 더 심했는데 빌립보교회는 그래도 덜 심했는데도 그 교회에 그런 것들이 있는 겁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상을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면류관을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내가 변해가는 그러한 사람을 살지 않으면 나중에 우리의 달려가는 이 수고가 다 헛되다는 겁니다. 사도바울의 아주 깊은 신학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분들이 인격이 변화지 않으면 나중에 주님을 만날 때 우리의 달음질이 우리의 노력이 다 헛수고라는 겁니다. 왜냐면 인격이 변한 사람들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인격이 변한 사람들을 통해서 이웃들의 인격이 변하는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게 사도바울의 모든 편지를 보면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정확하게 우리가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빌립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빌립보서를 끝난 다음에 에베소서를 강해하려고 그럽니다. 에베소서를 보면 똑같습니다. 에베소서를 봐도 빛의 자녀가 되라 빌립보교인들이 아직은 성숙하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성숙하게 될 것을 사도바울이 확신한다고 그랬습니다. 아직은 너희들이 그렇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왜냐면 너희들이 그동안 나에게 보내준 물질과 기도의 성품들을 보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내가 너희들에게 전제로 얼마나 많이 뿌렸느냐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이 예수님의 성품으로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주님의 마음으로 성숙될 때 인격의 변화가 있어가지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고 빛의 자녀들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빛의 자녀들이 되기만 하면 내가 하늘에 올라가서 주님 앞에 나가서 자랑할 것이 생긴다는 겁니다. 이게 뭐냐면 너희들이 빛의 자녀로 성품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변하지 않으면 내가 너희들에게 이렇게 잔소리 많이 하고 너희들을 이렇게 훈련시키는 모든 것은 내가 주님 앞에 가서 내가 할 말이 없고 자랑거리가 없고 내가 면류관을 못 받는다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면류관을 받게 하려면 너희들이 변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분의 편지의 목적이 뭐냐면 우선 내가 면류관 받게 너희들이 도와주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복 된 사람은 뭐냐면 만남의 복이라는 말을 지난시간에 했습니다.
사도바울도 그렇습니다. 이분의 신학에서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 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자기생애시간 속에서 누구를 만나서 그 사람에게 내가 투자했을 때 과연 그 사람이 인품이 변화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변해 가느냐. 그래서 내가 저 사람 때문에 상급을 받느냐 안 받느냐 사도바울은 그기에 상당히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은 빌립보교인들보고 내가 너희들을 참으로 잘 만났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너희들에게 내가 이렇게 가르쳐주면 자기 말을 잘 들으면서 성장하는 모습이 보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내가 정말 투자를 잘 했구나. 사람들과의 만남이 빌립보교인들은 또 사도바울과 같은 정말 훌륭한 선생님을 만난 것이 또 만남의 축복입니다 서로가 잘 만난 겁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주님 우리의 사역 속에 한 마디만 하고 두 마디 알아듣고 과연 열매를 맺게 제가 언제까지 베이비티칭을 합니까? 한 마디 하면 열 마디 알아듣고 나보다도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사람들 그래서 주님 정말 생산성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제 주위에 보내주세요. 그리고 또 내가 그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 최선을 다해서 그분이 성장하도록 제가 최선을 다하는 그런 자가 되게 해주세요.
그래서 서로 윈 윈 게임(win-win game)으로 너가 이기고 내가 이기고 하는 게임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너희들끼리 윈 윈 게임(win-win game)을 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햇볕정책도 윈 윈 게임(win-win game)입니다 너 잘되고 우리도 잘 되고 서로 좋은 걸 찾아서 같이 살자는 겁니다.
이때까지는 그러지 않았잖아요. 이제까지는 완전히 반대였잖아요 서양 사람들은 기독교정신이 있어서 전부가 다 윈 윈 게임(win-win game)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민족은 그런 부분이 참으로 약했습니다. 너 죽고 나 죽고 하는 그러한 스타일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런 부분에서 많은 걸 경험하였습니다. 하나 예를 드려드리겠습니다. 제가 미국에 유학을 가가지고 50블 들고 미국에 도착했기 때문에 가서 7-8년을 세상에서 지저분한 일은 다 했습니다. 그 당시 60년대에 유한 간 사람들은 다 그랬습니다.
지금 우리학생들을 보면 옛날에 제 모습이 보이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이 사역을 하게 하시는 겁니다. 그런 일들을 하면서 공부를 했는데 여름 방학에는 뭘 했느냐면 가발장사를 했습니다. 그때 유학생활이 70년대 초입니다 그때 우리나라에서 가발을 만들어서 미국에 팔았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가발장사를 해서 돈 많이 번 사람들이 몇 명이 있습니다. 유학생들은 돈이 없으니까 여름방학이 되면 자동차 뒤 트렁크에다가 가발을 도매로 삽니다.
그걸 얼마에 사느냐면 2불50전에 삽니다. 시카코에 있는 한국사람 가발 도매상에서 2불50전에 사서 그 당시에 얼마에 팔렸냐면 백화점에서는 59불 이렇게 팔렸습니다. 1년 전에는 99불에 팔렸습니다. 그러니까 2불50전 짜리가 이렇게 팔리는 겁니다. 그 전에는 얼마에 팔렸냐면 500불에 팔렸습니다.
그러다가 자꾸 내려오는 겁니다. 한국 사람들이 자꾸 파니까 내려오는데 한국 사람끼리 경쟁을 하는데 어떻게 경쟁하느냐면 서로 죽이기 경쟁을 합니다. 그래서 하루는 중서부지역 흑인 동네에 찾아가도 별로 팔 길이 없었습니다. 하도 한국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그러니까 흑인 동네만 찾아다니는 겁니다. 어디까지 가느냐면 알리바마까지 내려가는 겁니다. 알리바마 지역은 완전히 흑인동네입니다 거기에는 흑인이 새까맣게 있는 겁니다. 그때는 겁도 없어서 다운타운에 가서 가발가게가 없는가. 보니까 한국사람 가게가 길 양쪽으로 마주 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들어가서 보니까 가발을 99전이라고 써놓았습니다. 원가가 2불50전인데 99전이라고 써놓았습니다.
그래서 저쪽 가게를 보니까 그쪽도 99전이라고 써놓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들어가서 아저씨 99전이면 이게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러니까 그 사람 하는 소리가 뭐냐면 건너편 저 새끼가 9불99전에서 내려 7불99전에서 내려서 내가 화가 나서 99전을 써놓았다면서 너 죽고 내 죽고 해야 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저쪽에 가서 물어보니까 저놈의 새끼 때문에 너 죽고 내 죽고 한다는 겁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그런 민족입니다.
그리고는 1년 후에 서로 다 죽는 겁니다. 전 미국의 가발장사들이 그래가지고 유대인들이 다 빼앗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사람들 가발장사가 완전히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게 조그만 한 예입니다. 우리민족이 엄청난 예들이 많습니다. 우리끼리 싸움해가지고 중국 사람들은 꼭 반대입니다
교회도 보면 그렇고 뭐든지 다 너 죽고 내 죽고 하는 겁니다. 북한도 보면 계속 너 죽고 내 죽고 하잖아요. 서울을 불바다 만든다. 어쩐다면서 이제 우리기독교의 마음은 주님의 마음은 너 살고 나 살고 우리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과 우리가 협조하면서 가치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해야 겠습니다. 이렇게 사도바울이 보실 때 그분의 삶 속에서 가장 만남의 복을 가졌던 사람이 누구냐면 디모데입니다 이분이 디모데를 1차 여행 때 디모데고향인 루스드라에 가서 젊은 아이 디모데를 보니까 마음에 드는 겁니다.
성령님께서 그렇게 말하겠지요.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눈은 사람을 보는 눈이 예리한 겁니다. 영적으로 보는 뭐가 있기 때문에 딱 보니까 괜찮은 젊은이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 젊은이를 보고는 다시 안디옥교회로 돌아와서 2차 여행 때 이분이 제일 먼저 간 것이 그 젊은이를 만나려 루스드라로 갔습니다. 사도바울이 디모데를 알고 보니까 괜찮은 젊은이로 투자할 만한 겁니다. 사도바울이 볼 때 그래서 디모데를 사도바울이 왜 투자할 만한 그러한 소위 동역 자로써 자질을 가지고 있느냐면 백그라운드가 있습니다.
좋은 만남을 줄 수 있는 좋은 파트너로써 배경이 뒤에 깔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디모데를 잠깐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디모데는 우선 성품이 굉장히 성실한 분이였습니다. 변함이 없이 성실한 분이라는 겁니다.
그 성실한 성품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닙니다. 외조모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디모데후서1장5절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었다는 겁니다. 속에 있었다는 겉은 하트(heart)에 있었다는 겁니다.
하트(heart)와 소올(soul)이 있는데 깊은 마음속에 이미 그 성품이 숨겨져 있었다는 겁니다.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는 성품이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이렇게 디모데후서1장5절에 보면 하나님이 디모데에게 사도바울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네 속에 그 성품이 들어 있었다는 겁니다. 벌써 우리가 사람을 사귀려면 저 분의 성품을 먼저 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변함이 있는 사람인가 그래서 저는 그렇습니다.
그 부분을 굉장히 심각하게 봅니다. 사람을 사귈 때 믿음이 조금 없어도 괜찮습니다. 성품이 변하지 않는 성품이 그 속에 숨겨져 있는가? 그게 소중한 성품입니다 이게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예수님이 나하고 한번 사귀면 나를 놓습니까? 안 놓잖아요. 그래서 성령의 열매 중에 충성이라는 말 그게 열심히 하는 말이 아니고 변하지 않는 한번 서로 같이 만났으면 변화지 않는 겁니다. 그럴 때 우리마음에 얼마나 평강이 있습니까? 내가 조금 실수를 해도 저분은 나를 붙잡고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편합니까? 안 편합니까?
언제 저 사람이 변해서 내 등을 칠까 이런 마음으로 살고 있으면 얼마나 불편합니까? 그 안에 성령 충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나를 계산할 때는 이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자기중심인 사람은 그렇지만 주님의 일하는 주님중심으로 갔을 때는 주님 제가 이 사역을 위해서 제가 변화지 않겠습니다. 왜냐면 주님을 제가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마음을 가지면 그때부터 요동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사역도 황 목사를 보고 하는 게 아닙니다. 황 목사는 변화는 사람입니다 저는 한계가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볼 때도 마음에 들 때도 있고 안 들 때도 있는 사람입니다. 왜냐면 나는 사람입니다.
목사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거지 저도 사람입니다 저를 쳐다보지 마세요.
주님만 쳐다보셔야 됩니다. 그럴 때는 변화가 없습니다. 저를 쳐다보지 마세요. 마음이 디모데처럼 이렇게 되려면 뒤에 할머니부터 기도가 따라오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영적인 흐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당대부터 주님을 믿었던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영적인 흐름이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 경우는 할아버지 때부터 영적흐름으로 내려왔으며 저의 어머니가 참으로 열심히 믿었습니다. 기도의 어머니였는데 어머니의 흐름으로 믿는 겁니다. 그렇지 않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렇지 않는 분들은 이런 사람으로 내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느냐면 내 속에 있는 상처들을 내가 뽑아내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그렇지 않는 분들은 위에서부터 기도하면서 큰 상처를 안고 가는 분들이 있느냐면 그렇지 않는 분들은 우리 속에 상처들이 다 있습니다. 전 세계 어디에 가나 다 있습니다. 특히 선교지에 가면 더 많습니다. 중국도 열심히 하고 뜨겁게 하지만 가서 상처이야기하면 온 바닥이 울음 바닥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런 상처들이 아픔들이 다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상처가 미음으로 변하고 질투심으로 변하고 격분, 화냄, 경쟁심, 욕심, 이간질, 다툼, 투기, 분쟁, 원망, 시비 이게 우리에게 다 있는 겁니다.
저부터 다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우리가 뽑아내어야 되는 겁니다.
내 속에 어떤 사람들은 성령세례를 통해서 뽑아 낼 수 있지만 다 나가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로 찬양 속에서도 이게 나갈 수도 있고 말씀 속에서도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보다 한 단계 더 나가서 성령님의 임재하심으로 한국교회가 과거 20년 동안 성령 충만 하는 것이 하나의 단계입니다. 그렇지만 성령 충만하고 하나님의 기적들이 많이 일어나지만 성품의 변화가 없는 게 무슨 이유인지 아십니까? 이제는 한국교회가 성품의 변화단계입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변화되어가는 이 단계가 우리들에게 필요로 하는 겁니다. 다시 기독교문화가 정착되려면 이 부분이 변화가 되어야지만 기독교문화가 정착됩니다.
삶이 기독교문화입니다. 삶 속에서 예수의 모습들이 나타나야 되지 않습니까? 기도하고 찬양 부를 때만 그런 마음이 들어오고 나가서 그런 마음이 없을 때는 아직까지 우리문화가 정착되지 않아서입니다. 완전히 몸에 베이도록 되려면 이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 합니다. 이게 우리 세대에서는 힘이 들 것입니다. 앞으로 다음세대에 가서는 끝까지 가는 사람이 있느냐면 중간에 가다가 빠지는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디모데보고 그런 부분에 조심하라는 겁니다. 왜 디모데를 하나님이 이렇게 준비시키신지 아십니까?
선교적인 측면에서 디모데를 하나님이 준비시켰습니다. 하나님은 한쪽만 보는 게 아니고 여러 각도로 보십니다. 선교는 하나님이 복음 전파하는 과정을 보면 처음에는 복음이 유대인에게 갔잖아요. 초창기에는 유대인에서 디아스포라로 넘어갔다가 그다음에 복음이 이방인에게 가야 되는데 이방인들에게 가기 전에 소위 국제 결혼한 사람으로 넘어갑니다. 그것이 디모데입니다
디모데아버지는 그리스사람입니다. 어머니와 외가는 유대인입니다
그러니까 영적으로 아직도 유대인 피가 있지만 겉으로 볼 때는 법적으로는 이방인입니다 그래야지만 복음이 쉽게 전파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희랍사람들은 유럽계 사람들은 디모데를 보면 유대인이라고 생각 안하는 겁니다. 왜냐면 이름이 이방인이름입니다 사도바울은 어디까지나 유대인입니다
디아스포라입니다 이름이 그러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방인공동체에 들어가서 마음대로 복음을 전하려면 패밀리 네임까지 완전히 이방인을 하나님이 찾고 있는 겁니다. 유대인의 성품을 가지면서 그래서 그게 점진적으로 하나님이 시간이 갈수록 변하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이방인사역을 하려면 여자들을 국제결혼을 시켜야 됩니다.
우리민족이 뜨겁잖아요. 뜨거운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여자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자들을 국제결혼을 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그 여자는 사람은 한국 사람이지만 이름은 남편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사회에 뚫고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지금 미국에는 그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전에 예를 들면 백인들 중에서도 할아버지 할머니 증조할아버지부터 열심히 하다가 뚝 대가 끊어져서 백인들이 신앙생활 안 하는 남자들을 한국여자들하고 국제결혼을 하여 특히 군인들과 결혼한 한국여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약10만 명이 될 겁니다. 국제 결혼한 한국여자들이 다 뜨거워져가지고 미국에 가면 국제 결혼한 군인가족교회들이 여기저기에 많이 있습니다.
남자들 전부 조그만 한국여자들 등살에 애기를 안고는 교회에 오는 겁니다. 제가 이것을 보면서 미국남자들 뒤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뒤에서 기도한 그 씨가 한국여자들을 통해서 다시 리바이벌이 되는구나. 그 안에서 하나님의 종들도 나오고 한국여자들을 통해서 이와 같이 디모데도 이방선교를 향해서 디모데를 다시 말하면 국제 결혼한 사이에서 나온 아이입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그래서 디모데를 하나님이 그렇게 하면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그 안에 집어넣어가지고 디모데를 통해서 이방에 복음을 전하는 역할을 하게 하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완전한 이방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유대인들을 유대인이나 아니냐를 우리가 알다시피 여자가 유대인이면 유대인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여자가 유대인이 아니면 유대인이 아닙니다.
제가 얼마 전에 미국에 갔는데 미국남자가 유대인인데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 아버지가 유대인입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미국여자입니다 그래서 이 사란이 그러는 겁니다. 자기가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 가서 종이에다가 기도의 제목을 적어 틈 속에 집어넣고는 기도를 하는데 기도하려고 들어가려니까 문지가 당신 유대인이냐 그래서 아버지가 유대인이다 그러니까 당신은 유대인이 아니라면서 쫒아내더라는 겁니다. 아버지가 유대인이라고 그러니까 너는 유대인이 아니라면서 통곡의 벽에 못 들어갔다는 겁니다. 이와 같이 어머니가 유대인이야 됩니다. 어머니의 영적교육이 중요합니다. 디모데는 유대인입니다. 사도바울의 이방동역 자 자격을 갖춘 것이 이미 이렇게 해서 준비를 시켜놓았습니다. 혈통적으로 그다음에 마음 적으로도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영적으로 보니까 마음에 딱 드는 겁니다.
그러고 사도바울의 마음에 드는 또 하나의 이유가 뭐냐면 사도행전16장에 그랬습니다. 어머니가유대인인데 이 젊은이가 그 동네 루스드라 지역주민들에게 그렇게 칭찬을 받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괜찮다는 겁니다.
칭찬을 받아왔던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 젊은이는 되었다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이 젊은이를 보고 제는 괜찮다는 겁니다.
벌써 사도바울이 1차 여행 때 디모데가 이미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갔을 때는 이미 성경공부 반에 앉았던 겁니다. 그래서 제자라 그랬습니다. 그 제자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젊은이가 디모데였던 겁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칭찬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사도바울의 신실한 동역 자가 되었잖습니까? 로마서16장에서도 그렇고 고린도전서에도 그렇고 신실한 동역자라는 이야기를 많이 쓰고 사도바울은 많은 동역 자들 중에서도 디모데를 신실한 아들이라고 그러고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그러고 참 아들이라는 말까지 썼습니다. 영적인 아들이라고 이렇게 하면서 사도바울이 디모데를 항상 데리고 다녔습니다. 1차 감옥에 들어갔을 때도 지금 빌립보서를 쓰고 있을 때도 빌립보서1장1절에 보면 바울 옆에 계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 이분이 육의 가시가 있다고 그랬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분이 눈이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사도바울이 직접 쓰지를 않고 대필해준 분이 디모데입니다
빌립보서도 사도바울이 받은 것을 옆에서 대필해준 분이 디모데입니다
이런 일들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이 자기가 개척한 교회가 문제가 있을 때 사람을 하나 보내고 싶은데 자기의 대사 격으로 보낼 만한 사람을 꼭 디모데를 보냈습니다. 그 만큼 믿었던 사람입니다. 나중에 2차 투옥 때도 정말 외로울 때도 이분보고 너 사역하는 모든 것 다 집어던지고 나에게 와라 할 때 어려울 때 가장의지하고 신뢰하고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 디모데였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과 디모데는 성품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둘이 동반자라 그래서 성품이 같지가 않습니다. 어떤 때는 반대성품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여기 보면 사도바울은 성품이 적극적이었는데 디모데는 성품이 소극적입니다 이분은 정열적이고 추진력이 있었는데 디모데는 정렬 적이 아니었습니다. 자제력이 있었고 사도바울은 주도적 인물이었는데 디모데는 항상 옆에서 협조적 인물이었습니다. 기능이 다르고 성품이 서로 달랐습니다. 사도바울은 소위 말하면 리드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을 요즘 와서는 비전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매니저입니다
리드와 매니저는 다릅니다. 저는 어떤 성품이냐면 저는 비저너리(visionary)성품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절 보고 그럽니다. 저는 큰 그림을 보고 사람들에게 이 그림을 그려주고 따라오라는 겁니다. 실제로 일일이 따라오라는 매니저일은 저는 잘 못합니다. 그래서 사무실에 앉아서 일일이 컴퓨터에 집어넣고 하는 이런 행정 하는 일은 저는 잘 못합니다. 그런 것을 잘 하는 달란트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스텝들은 그런 달란트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림그려주고 깃발을 들고 뛰자는 비저너리(visionary)맨이고 사도바울도 그런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매니저역할을 했던 사람입니다. 리드가 비저너리(visionary)맨이 매니저역할을 하면 아주 골치 아파지는 겁니다. 이것 간섭하고 저것 간섭하고 이렇게 하니까 디모데는 사도바울보다 그릇은 적을 겁니다. 그래서 디모데가 소심하니까 위장이 나빴습니다.
사도바울이 시키면 일 잘하고 아주 틀림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위가 나빠서 사도바울이 이분에게 하시는 말씀이 너 물만 먹지 말고 위가 나쁘니까 가끔 포도주도 조금 마셔라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포도주를 매일 마시지 마세요. 이런 말까지 하면서 두 분의 성품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 차이를 잘 극복 하면서 조화를 이루고 하모니를 잘 이루면서 동반자로 협력자 역할을 잘 했던 관계가 이 두 사람의 관계입니다 오늘 빌립보에서 사도바울이 하시는 말씀을 제가 말씀을 드리고 끝내려고 합니다.
디모데를 사도바울이 동반자로 정한 또 다른 이유들이 오늘 말씀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첫째 이유는 뭐냐면 디모데가 그리스도의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빌립보에서는 예수의 마음을 가지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디모데가 하나의 그런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디모데가 빌립보교회에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로 본ㄹ 수 있었던 겁니다.
왜냐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빌립보교회가 가지고 있던 문제 투기와 분쟁과 다툼과 허영과 원망과 시기와 이런 문제들을 해결을 말 잘하는 사람이 가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이야기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가서 이런 문제가 있는 그 어두움이 있는데 가서 몇 마디 하면 그 어두움이 쫓겨 나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말을 잘 못해도 괜찮습니다. 디모데는 알다시피 수줍어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가서 너희들 왜 그러느냐 하는 그 말 속에서 파워가 나오는 겁니다. 왜냐면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디모데를 보내는 겁니다. 여기 앉아 있는 여자 분들이나 조용한 분들도 이런 마음을 가지면 그 속에서 능력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디모데가 어떤 예수님의 마음을 가졌느냐면 성경말씀이 정확합니다. 분명히 2장5절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장2절에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게 그리스도의 마음이라고 그랬습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그런데 2장20절에 보면 디모데가 그런 사람이라는 겁니다. 뜻을 같이하여 나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사람밖에 없다는 겁니다. 뜻을 같이 한다는 것은 사도바울과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마음과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진실히 이 교회의 문제를 생각하는 사람은 디모데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예수의 마음의 특색 중에 하나가 2장4절에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드러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는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똑같이 그 마음을 디모데가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왜냐면 자기 일을 구하고 이기주의로 그리스도의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나 디모데는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중심적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말에 함 마음이라는 말보다도 더 깊은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뭐냐면 마음이 우선 같은 겁니다. 바울의 마음과 디모데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과 디모데의 마음이 같은 겁니다. 어떻게 같으냐면 지금 사도바울이 감옥에 앉아서 걱정하는 게 뭐냐면 자기제자들인 빌립보교회교인들이 서로 시기가 있고 다툼이 있고 미움이 있고 질투가 있고 분쟁이 있다는 겁니다. 그로니까 어떤 마음을 지금 사도바울이 가지고 있습니까? 그런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볼 때 미움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뭐냐면 저래가지고는 저 사람들이 상을 못 받는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는 겁니다. 저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저 사람들이 열매가 없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는 겁니다. 그런 문제 때문에 싸움 하지 말았으면 이게 아닙니다. 앞으로 사도바울이 내가 저 사람들에게 내가 자랑거리가 없어지는데 우리 수고가 헛된다는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있는 겁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면 인격의 변화가 없으면 아무리 신상생활을 해도 인격의 변화가 없으면 저 사람들 열매가 없으면 상급이 없는데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있는 겁니다. 그 마음이 사도바울의 마음이고 예수님의 마음인데 디모데가 그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한 단계 높은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제 있는 사란들에게 가서 이야기할 때 사랑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는 겁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명령조로 왜 이렇게 하느냐 이놈들아 이렇게 훈계하는 것이 아니고 안타까운 연민의 마음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디모데가 그런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것이 보배로운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디모데를 사랑하시고 사도바울이 디모데를 사랑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분들이 파트너가 될 수가 있는 겁니다. 똑같은 마음 우리가 이방사람들을 이렇게 봐도 서로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이유는 디모데를 뽑은 이유는 그리스도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그랬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줍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최우선으로 하나님의 일이라고 그러면 관심을 두는 겁니다. 이걸 뒤집어서 말하면 뭐냐면 주님을 주님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영어로는 로드십(Lordship)이라고 그럽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면서 로드십(Lordship)이 없으면 문제인물이 됩니다. 나는 종이다 나는 그러니까 주님의 뜻이라면 주님이 원하신다면 하면서 나를 죽여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 의견이 강하지가 않는 겁니다.
주님 내가 이렇게 생각하지만 지금 전체분위가 이렇군요. 그게 주님의 뜻이라면 제가 양보하겠습니다. 이것입니다. 그게 로드십(Lordship)입니다.
주님 제가 오늘 교회오기 싫은데 주님의 뜻이 교회에 가는 걸 원하시니까 저는 가겠습니다. 그게 종의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네가 참겠습니다. 그러니까 로드십(Lordship)이 아주 철저하게 있어야 됩니다. 자기가 강한 사람들은 이게 없습니다.
주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너는 네가 너무 강해! 그러니까 주여! 할 때는 나를 탁 밑으로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 고집을 그럴 때 주님이 나를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도 주여! 하면서 주님이 컨트롤하십시오. 주님이 내 주인이십니다. 나는 머슴입니다 내 주관이 없습니다. 이것을 매일 고백하는 마음 이게 로드십(Lordship)입니다 디모데가 이것이 강하게 있었다는 겁니다.
로드십(Lordship)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 마음 그것이 있었다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만 다 모여 있으면 공동체가 얼마나 좋겠습니까? 다 주님만 바라보고 있으니까 행복하겠죠. 내 의견이 없으니까 마지막 이유는 하나님이 디모데를 왜 자기의 파트너로 뽑았냐면 디모데 속에서 이분이 뭘 보았냐면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서 연단을 받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22절에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 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 많이 하였다는 겁니다.
디모데가 외할머니 어머니를 통해서 그런 마음의 그릇은 준비되었지만 아직까지 주님이 쓸 만한 완전한 그릇은 되지 못했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릇이 준비된 사람을 하나님이 준비를 시키는 연단을 허락하시는 겁니다.
연단을 허락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격이 성숙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우리가 성숙해지려면 연단이라는 그러한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사도바울도 겪었잖아요. 디모데도 겪었고 예수님이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스스로 그것을 겪으시면서 그래서 연단이라는 말은 도키메라는 헬라 말인데 이 말을 사전을 찾아보면 테스트를 받은 결과 인정받는다는 뜻입니다 꼭 테스트가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연단은 그냥 가서 어려움을 받는 주님의 목적아래서 나를 훈련시켜서 테스트를 받아 합격이 되었는가.
그리고 테스트가 되어서 합격이 되면 인정받는 그 단계까지 가는 것이 연단이라는 말로 계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가지려면 이런 연단이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연단이라는 말은 뭐냐면 우리가 금같이 연단하여 그런 말을 많이 쓰잖아요. 제련소입니다 처음에 원석을 뜨거운 불에다가 집어넣습니다. 태풍에 비바람에 집어넣어서 마음을 부드럽게 약하게 만들어 놓아서 고집이 센 사람은 이 과정이 깁니다. 아집이 강한 사람은 이 과정이 길수록 좋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과정을 짧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나이60이 되어도 아직도 풀무 속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려고 하는 분은 안 쓰시려는 분은 모든 걸 다 좋게 만들어 줍니다. 쓰임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이걸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비바람 태풍 풀무 불 이것을 빨리 스쳐가도록 그러니까 빨리 녹아지는 사람입니다 녹아지잖아요. 녹아진 다음에 때리잖아요. 아니면 가루로 만들거나 그러면서 내 자존심을 하나님이 다 꺾어버리십니다. 모세도40년을 괜찮게 지내다가 그다음40년은 풀무불속에 집어넣잖아요. 다윗도 풀무경험을 했습니다. 사도바울도 마찬가지고 우리도 다 그런 경험을 합니다.
자존심을 낮추는 겁니다. 예수님도 그 과정을 우리에게 몸소 보여 주었습니다. 제자들이 그런 길을 걸어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금과 은과 금이 아닌 것은 은이 아닌 것은 가루로 걸려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게 성화과정이라고 하겠습니다. 회개하고 나의 속에 들어 있는 모든 상처들 미움들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뽑아내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걸려내지 않으면 말씀이 들어가서 자리를 못 잡습니다. 위에 마음까지는 갈 수 있습니다.
말씀을 외우고 하는 것은 다 합니다. 인격의 변화가 없는 겁니다.
이 속에 아직도 그것이 꽉 들어있기 때문에 이 안을 뽑아내어야 합니다.
그래서 뽑아내는 과정을 통해서 순금이 되잖아요. 정금이 되는 겁니다.
잡것이 안 들어 있는 그러니까 내 마음의 그릇이 하트가 질투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경쟁심이 없어지고 미움이 없고 항상 그 속에 마음이 평안이 있는 겁니다. 예수님의 아홉 가지 열매 평강이 내 속에 항상 있고 바깥은 복잡한데 그것이 내 속에서 싹트는 겁니다. 하트를 깨끗하게 하시면 디모데가 그랬다는 겁니다. 디모데가 연단을 통해서 사도바울도 연단을 통해서 이런 하트가 깨끗해지면서 하트가 깨끗해지는 것이 뭐냐면 주님의 마음이 들어 있기 때문에 내 하트가 예수님만 바라보게 된다는 겁니다. 왜냐면 내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딱 차있기 때문에 주님만 바라보게 됩니다. 모든 것은 다 주님의 뜻만을 생각하면서 내 뜻이 없어져버리고 그 마음으로 변해야 되잖아요. 그것이 바울의 마음입니다 디모데의 마음입니다 제가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왜 연단을 허락하셨을까요. 이제 대답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주님의 마음으로 성화를 받으려고 우리주님을 섬기는 것은 그 마음이 없으면 선교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야고보에게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 아는 말씀들입니다 다시 한 번 결론적인 말씀으로 야고보의 말씀을 제가 참고로 드리겠습니다. 복음 때문에 사방으로 흩어졌던 사람들에게 야고보가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령님께서 야고보를 통해가지고 시험을 만나거든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시험을 만난다는 게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가 말하는 풀무에 들어가거든 어떻게 하느냐면 파도가 치거든 온전히 어떻게 하라고 그랬습니까? 기뻐하라고 그랬잖아요. 왜 기뻐해야 됩니까? 나를 청소해주시면서 그리스도의 마음이 내 속에 들어 있게끔 준비해주시기 때문에 기뻐하라는 겁니다. 그냥 기뻐하라면 그게 기뻐해집니까? 그런 걸 눈을 뜨고 아하! 주님이 나를 쓰시려고 내 속에 있는 더러운 것을 뽑아내시고 나를 더 온전하게 만드시려고 나를 이렇게 풀무 속에 집어 넣는구나. 그걸 눈으로 쳐다보고 주여 감사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면서 기쁜 곳에서 감사까지 나오는 사람 감사가 무엇입니까? 기쁜 곳은 육의 마음입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서 기쁨이 있습니다. 그 기쁨이 내 속에서 똑 튀어나오면서 내 안에 있는 저저분한 마음이 확 따라서 나와 버립니다. 기쁨이 없을 때는 어려움이 있을 때 불평합니다. 그러니까 아직까지 기쁨이 위에만 있지 밑에는 없다는 겁니다.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뻐하라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낸다는 겁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인내도 성령의 열매 중에 하나입니다 오래 참음입니다. 오래 참는 연습 너희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함이라 왜냐면 내 속에 그리스도의 마음이 오면 이미 온전한 사람으로 가까이 가는 겁니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이 우리를 쓰십니다. 내가 온전해져서 그냥 이렇게 주님을 만나는 게 아니고 온전해져야지만 주님의 뜻을 나를 통해서 이룰 수가 있거든요. 우리가 지금 그런 주님의 마음이 없으면 여기에 외국에서 온 형제자매들을 우리가 어떻게 섬깁니까? 율법적인 마음으로 섬기면 됩니까? 사랑을 베풀어주고 어떨 때는 정말 힘들 때도 참아주어야 되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이들에게 베풀어주어야 되는 겁니다. 야고보서1장12절 여기에 결론이 있는 겁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옳다고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주겠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서 주님의 마음으로 이렇게 변화가 되면 내 속에서 주님의 마음이 나오니까 내가 빛의 자녀가 되는 겁니다. 스스로 영광체로 내가 이렇게 변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를 통해서 주님이 살아계심이 주님의 사랑이 주님의 복음이 번져나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을 통해서 나중에 하나님이 잘했다고 칭찬받고는 나에게 면류관을 주시는 겁니다.
상급이 이럴 때 오는 겁니다. 상급이 인격의 변화가 없이 열심히 한다고 그래서 상급이 오는 게 아닙니다. 인격이 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변해서 변하는 과정 속에서 연단이 우리게 따라옵니다. 그렇지만 그 연단이 올 때마다 주님이 나를 주님의 모습으로 바꾸려고 합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깊은 곳에서 감사가 나오는 깊은 기도를 하셔야 합니다. 깊은 기도를 할 때 그 감사가 내 속에서 나오거든요 그러면 내 속에서 모든 어려움들이 나가고 불평들이 나가고 모든 것이 나가면서 주님의 모습으로 변할 때 내가 변하니까 내 모습이 변하고 내 입이 변하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우리주위에 이방인들이 우리를 보고는 아! 저 사람 정말 최고크리스천이구나 그러면서 나를 보면서 그분들이 변화를 받는 겁니다.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겁니다.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고 그럴 때 내가 빛의 자녀가 되고 그럴 때마다 주님이 나에게 면류관을 팍팍 씌워주시겠다는 겁니다. 면류관을 씌워준다는 것이 면류관 무거운 것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잖아요. 나에게서 빛이 난다는 겁니다. 영광체로 빛이 이렇게 많이 나니까 나중에 우리가 주님을 만날 때도 보좌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청와대 가까이 갈 수 있는 계급이 높아진다는 소리입니다 영원한 세계에서 디모데가 우리에게 그런 모든 본을 보여 주셨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하셨지만 다음시간에는 에바브로디도가 또 보여주셨다는 말씀을 드릴 겁니다. 그러한 예화들을 실제 사람들을 사도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랬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너희들이 닮으라. 사도바울이 내가 그런 삶을 살았다 그다음에 내 제자인 디모데가 이제는 너희들의 당회장인 에바브로디도도 그런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이게 2장 끝입니다.
다음시간에는 에바브로디도 이야기를 하년서 주님의 가르치심을 바라기를 바랍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QKmSHt0_I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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