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11강. 빌립보서2장25절-30절, 에바브로디도의 모범

변명섭 2022. 2. 24. 18:30

빌립보서 11강. 에바브로디도의 모범(빌2:25-30)

오늘 말씀은 빌립보서2장26절부터30절까지입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26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29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30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아멘. 제가 오늘은 에바브로디도에 모습을 가지고 계속해서 빌립보서를 강해를 하려고 그럽니다. 오늘은 빌립보서강해열한 번째로 2장을 끝내는 장면인데요. 빌립보서를 보면 그 사상이 하나로 흘려가고 있는 것을 오늘도 같이 볼 수가 있습니다, 지난주에 디모데에 관한 말씀을 드렸는데 기억나세요. 디모데에게 주님이 말씀하셨던 것을 지난주에는 디모데의 모본이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제가 간단하게 디모데의 모본에 대한 말씀을 어떻게 드렸나 한번 생각해보세요. 사도바울이 디모데를 가장의지하고 신뢰했던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뭐냐면 이분이 예수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졌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 그 성품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이 성품은 영적인 유산을 가지고 있었던 분입니다 외할머니부터시작해서 어머니를 통한 거짓 없는 믿음이라는 성품을 가진 조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조상의 영적인 흐름이 대가 이어 졌기 때문에 디모데도 똑같이 거짓 없는 믿음을 가진 성품의 소유자였습니다. 이런 소위 하트 속에 있는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준비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가정교육을 잘 받을 필요가 있는 필요성을 여기서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빌립보교회가 문제들이 있었잖습니까?

다툼이 있었고 분리가 있었고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결사의 자격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분에게 아무래도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디모데를 보내야 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항상 사도바울을 통해서 문제가 있을 때 보내는 사람이 있는데 사도바울의 대사역할을 하는 분이 디모데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도 그랬고 고린도교회도 그랬고 지금 빌립보교회도 보면 항상 문제가 있을 때 디모데를 보냅니다.

그래서 우리도 우리주변에서 이런 사람하나가 내 옆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도바울은 그런 사람이 꼭 옆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디모데를 보낼 때 성품이 좋다고 그랬는데 좋은 성품만 가지고는 그 문제가 해결이 됩니까? 안 되는 겁니다. 성품이 그냥 인간적인 좋은 성품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인간적인 좋은 성품에다가 성령님의 열매가 그기에 첨가가 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성령님의 아홉 가지 열매와 고린도전서13장에 나오는 사랑의 성품이 그기에 붙어 있어야 됩니다.

왜냐면 그 성품이 있을 때 그분이 말을 크게 하던 적게 하던 그분이 말을 할 때 그 성품이 있을 때 거기서 파워가 나옵니다. 빛의 파워가 거기서 나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게 대단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파워가 나오니까 어두움의 세력들이 물려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 어두움의 세력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그 교회 안에 있는 어두움의 세력은 질투하는 세력 투기가 있었고 원망과 시기가 있었고 이게 다 어두움의 세력들입니다 이 어두움의 세력들이 그 교회 안을 딱 쥐고 있었는데 이 어두움의 세력을 무찌를 수 있는 파워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진 사람이 한 마디 할 때 그 어두움들이 물려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디모데를 하나님이 그곳에 보내신 겁니다. 사람이 그냥 말의 기술가지고는 나갈 것 같은데 그게 안 나갑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이런 성품을 가진 것이 단시간 내에 된 게 아니고 그런 그릇이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지기 위해서는 지난시간에 바울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사람이 엄청난 연단을 통과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의 성품을 가지기 위해서는 우리는 연단이라는 훈련소에 들어가야 됩니다. 바울도 나도 엄청난 연단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디모데도 나처럼 연단을 받아서 정금같이 되어가지고 그래서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서서히 변화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연단과정은 주 안에서 내가 죽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에 주님이 달렸을 때 이미 우리 원죄는 죽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십자가상에서 주님이 나와 연합되어서 내가 죽었기 때문에 이미2천 년 전에 나의 모든 성품들이 십자가상에서 죽었거든요 죽었는데 그 죽은 것이 내 속에서 다시 역사를 하려면 십자가를 매일 바라보면서 십자가에서 나의 죽은 사건이 내 것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그래서 매일 기도 속에서 십자가 속에서 주님! 주님이 오래 참으셨던 그 성품이 나에게 다시 이제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매일 주 안에서 죽는다고 사도바울이 말씀하시는 것은 십자가를 바라보며 내가 죽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그걸 잘 안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연단으로 집어넣습니다. 그래서 내 속에 있는 상처들이 치유 받으며서 내가 죽는데 성품이 변해 가는데 치유를 안 받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속에 있는 치유 대상되는 부분들을 안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게 교만해서 그럽니다. 그러니까 겸손하게 주여! 하면서 자기 있는 것을 다 뱉어내는 일을 하세요. 이것이 안 되어 있으면 아무리 신앙생활 오래해도 어디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빌립보교회에 문제가 있는 그 문제해결사로 디모데만 보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한 사람을 바울에게 기억나게 해가지고 이 사람을 보내게 하는 그분이 에바브로디도입니다

오늘 우리가 지금 말씀드리는 에바브로디도라는 이 사람의 이름은 성경 빌립보서2장25절부터30절까지 여기에만 나오는 사람입니다 이분은 그렇기 때문에 이분에 대해서 자세하게 성경 다른 부분에서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빌립보서전체를 보면서 이분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제가 가르쳐주시는 것을 여러분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같으며 마케도니아지방 사람입니다. 이방인입니다 사도바울은 유대인입니다 이 사람은 이방인입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족속과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을 통해서 이분이 복음을 받은 겁니다. 빌립보교회가 언제 개척되었냐면 사도바울이2차 여행 때 다시 말하면 주후50년에 개척이 되어서 그 당시 에바브로디도가 복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초창기에 받았던 분이 소위 루디아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비단장사 루디아 그리고 감옥에 간수 그다음에 귀신 들렸던 여자 분 이렇게 나오지만 이와 동시에 에바브로디도도 복음을 받았던 사람이고 교회에서 가장 존경받았던 사람으로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품이 좋았던 분입니다 그리고는 지도자로 아마 부각 되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항상 교회가 어떤 결정을 하면서 중요한일을 하려고 그걸 때 꼭 누구를 필요로 하는데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분이 에바브로디도입니다. 그래서 이 교회가 모임을 가지면서 10년 후 주후60년에 그 당시에 사도바울이 로마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입니다

10년 후에 그 교회가 모임을 가지고는 우리가 사도바울을 도와야 되겠다.

그러니 누가 갈래 그러니까 만장일치로 에바브로디도가 가면 되겠다고 하고 이분도 거기에 대해서 반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에바브로디도가 사도바울에게 사랑의 편지와 물질을 들고서 빌립보에서부터 시작해서 로마까지 가는 겁니다. 이 거리가 얼마냐면 1300km입니다 그 당시에 여행수단을 가지고 약 한달 반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가면서 강도를 만나서 돈을 빼앗길 수도 있고 매를 맞아서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분이 돈을 가지고 간다는 것을 알고 나면 그런 위험 이런 것을 다 마다하고 이분이 자청을 해서 가게 된 겁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마지막4장18절에 보면 이분이 들고 갔던 물질과 사랑의 편지를 뭐라고 쓰 있느냐면 희생의 제물이라고 그랬습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제물이라는 말은 희생을 해가지고 주님에게 받친 것을 제물이라고 그럽니다. 한국말로는 그냥 제물이라고 그랬는데 항상 영어나 원어에는 희생이 따라오는 거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돈이 남아가지고 보낸 것이 아니고 희생의 제물입니다 주님은 그 희생의 제물을 기쁘게 받으시는 겁니다. 항상 그럽니다. 희생하는 사람들 똑같이 에바브로디도도 희생의 제물로 자기 몸을 그렇게 바치는 겁니다. 교회에서는 물질을 바치고 이분은 자기 몸을 육체적 정신적 제물로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그렇게 받쳤습니다.

고향을 떠나가지고 험난한 여행길을 가는 것도 희생의 제물입니다

이 사람은 핍박과 죽음을 각오하고 떠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심기려는 열망 때문이라고 이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런 특수한 성품을 가진 사람인데 에바브로디도를 왜 그러면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파송했느냐 파송의 목적을 생각해봅시다. 목적이 뭐냐면 하나님이 사도바울을 딱 보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 복음 때문에 상당히 외로움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고난을 당하고 있고 물질의 고난 육체적인 고난 또 정신적인 자존심도 상하고 모든 부분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힘이 빠져 있는 그분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이분을 보내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우리가 이해가 될 수 있지만 힘이 빠진 사람을 힘을 넣어주는 일이 성령 충만한 사람의 생활양상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사람이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왜냐면 예수의 마음을 품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예수의 마음을 품고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이분을 보내면 사도바울이 힘을 받을 것을 성령님은 아시고 바울에게 이 사람을 보내는 겁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희생해야지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분의 생활양식을 우리도 배워야 되는 게 우리도 똑같잖아요. 성경의 지식으로 나는 것으로 어떻게 작용을 하느냐면 우리도 주위에 어려운 사람들 고난당하는 사람들 외로워하는 사람들 소외당하는 사람들 멸시당하는 사람들 비난 받는 사람들 이런 사란들이 우리 주위에 항상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볼 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기에 관심을 두게 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에바브로디도 똑같이 그랬습니다. 사도바울을 격려해주고 말로써 격려해주는 겁니다. 또 물질로 격려해주는 겁니다. 그다음에 물질만 가지고는 또 안 됩니다. 마음으로 격려해주어야 됩니다. 그래서 말과 물질과 마음으로 힘을 실어주는 그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던 에바브로디도 그리스도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자비라고 그러잖아요. 그다음에 바울에게 대한 충성심 변하지 않는 마음을 충성이라고 그러잖아요. 그것도 성령의 열매 중에 하나입니다

이런 마음을 에바브로디도가 보여 주었기 때문에 이런 차원에서 빌립보에서는 뭐라고 그러느냐면 에바브로디도는 디모데와 같은 차원에서 같은 수준의 하나님의 종으로 보고 있는 겁니다. 그저 한 교회에 전도사라고 그럴까요.

안 그러면 장로라 그럴까요. 어떤 분은 목사라고 그러는데 목사까지는 아닌 모양입니다 이런 분인데 이런 하나님의 좋은 그릇으로 사용 받는 장면을 우리에게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바브로디도를 사도바울은 어떻게 표현을 하느냐면 25절에 보면 단지 그 사람이 나에게 물질을 배달하는 이런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 사람은 빌립보교회에서 나에게 보내준 동역자로 온 선교사라는 겁니다. 빌립보교회에서 물질만 배달하고 그냥 오라는 게 아니고 아예 선교사로 그곳에 파송한 사람입니다 물질과 함께해가지고 그기에 가서 사도바울을 따라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것이 왜 그렸느냐면 25절에 보면 그 내용이 나옵니다.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에바브로디도는 어떤 사람이냐면 첫째나의 형제라는 겁니다. 그리고 나와함께 수고한 자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나와 함께 군사 된 자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뭐라고 그러느냐면 빌립보교회의 사자로써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다 그랬습니다. 이분을 네 가지로 이바브로디도를 이렇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단순한 물질 배달자 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서부터 사도바울의 사상을 잠깐 나누기를 원합니다.

첫째 사도바울은 나의 형제라는 말을 제일 먼저 쓰셨습니다. 형제라는 말은 원어로 아델포스(adelfos)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그 당시 고대사회에서는 웬만한 관계에서는 이 말을 쓸 수가 없는 말입니다 왜냐면 그 당시만 해도 사회계층이 민족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날카로운 계층의 대립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예컨대 유대인과 이방인의 계층 자유민과 노예간의 계층이 있었고 헬라인과 로마인 귀족과 평민 시민들과 군인들 이렇게 해서 첨예하게 민족적으로 사회계층으로 또는 종교적 배경으로 날카로운 대립을 가지고 있었던 분들이기 때문에 이런 모든 다른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들어 왔을 때 모든 사회계층을 다 없애버리고 하나같이 나의 형제다 그러는 겁니다. 이런 말을 쓰는데 이 말 때문에 지금도 서양에서는 브라더(brothers)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그렇게 이렇게 아무개 집사님 아무개 장로님 우리는 계급을 이야기하잖아요. 미국을 보면 교인들을 아무개 장로님 아무개 집사님 이렇게 부르는 데가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그냥 기능적으로 해서 그렇게 포지션이 있는 거지 미국에 있는 사람들은 뭐라고 부릅니까? 무조건 최 장로님 이렇게 안 부르고 브라더(brothers)최 이렇게 부릅니다. 그리고 브라더(brothers)황 그러면서 브라더(brothers)라고 부릅니다.

그다음에 목사도 페스트(pastor)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저를 부를 때도 페스트(pastor)황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소위 닥터라도 교회 안에서는 웬만하면 닥터라는 말을 안 씁니다. 그 명칭은 학문 속에서 쓰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그런 것은 분명합니다. 학교 안에 가면 저 사람이 닥터면 닥터 아무개 이렇게 부릅니다. 그러다가 교회에서는 닥터라는 말을 안 씁니다. 그래서 우리주보에도 그런 말을 안 집어넣는 겁니다. 제가 아카데믹하게 PHD를 가지고 있어도 그런 것을 교회주보에다가 적어 놓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왜 브라더(brothers)라고 그러느냐면 알다시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천국에 가면 영원히 같이 살 형제자매들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연습하는 겁니다. 여기서 삶은 천국의 삶의 연습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형제 또는 자매라는 말을 우리가 많이 쓰잖습니까? 그 말이 그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계급을 다 떨어뜨리고 형제라고 하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쓰는 것 같습니다. 형제자매 그러지 않습니까?

성경적인 표현입니다 그다음에 사도바울을 이렇게 볼 때 이분의 선교개념이

브라더(brothers)라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이분은 항상 자기와 가까운 사람을 브라더(brothers) 내 형제 이렇게 부르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델포스(adelfos)라는 개념이 에바브로디도를 한번 보세요. 이 사람은 사도바울에게 형제라는 말을 들을 만한 그러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이미 꽤 높은 위치에 있었던 분이고 교계 안에서는 그다음에 종족이 다릅니다.

이방민족입니다 그런데도 복음 안에서 서로가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이분을 형제라 이렇게 불렸던 겁니다. 그래서 선교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 다 선교이야기입니다 지금 보세요. 빌립보서도 선교입니다.

이방민족에게 사도바울이 어떻게 복음이 무엇이나 또는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이방민족에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똑같이 저희들도 우리의 사역대상이 이방입니다 그러니까 성경말씀이 정확하게 대입이 됩니다. 우리의 에바브로디도는 누굽니까? 우리 주변에 에바브로디도 같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지금 에바브로디도를 이야기할 때 이방인이 없이 우리민족끼리 앉아서 이야기할 때 그렇게 의미가 깊이 오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에바브로디도가 우리에게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분들이 다 우리에게 무엇입니까?

우리브라더(brothers) 시스터들입니다.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그리고 정치가 다르고 다 달라도 다른 족속들입니다 지금 우리교회에는 8개국의 다른 이방사람들이 와 있잖습니까? 이분들에게 우리가 형제자매의 마음이 사도바울이 지금 가지고 있는 마음과 같이 깊이 있어주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이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고 시간을 요합니다. 제가 지난주에 여기 학생 중에서 한국 학생한 명이 있습니다.

그 자매가 이렇게 걸어가 길래 제가 이렇게 물어 봤습니다. 여기서 공부하는 게 불편하지 않아 외국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데 냄새나고 힘들지 않아 제가 슬쩍 물어 봤습니다. 그랬더니 하는 소리가 뭐냐면 목사님 저는 흑인인지 우리나라사람인지 구별도 안 됩니다 저는 똑같습니다. 그러는 겁니다.

전혀 외국인이라는 그러한 개념이 안 든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형제자매라는 말이 나올 수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애내들하고 우리가 영원히 같이 살 사람들인 겁니다. 항상 그걸 생각하세요. 여기 있다가 자기 모국에 가면 우리는 못 본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아주 가깝게 같이 살 사람들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동역 자로 붙여 주신 겁니다. 이 형제자매들이 나가서 또 많은 이방족속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사역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정말 지혜로운 사람들이고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많은 이방형제들을 우리에게 주셔서 그분들을 우리가 섬기고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숫자는 적지만 몽고학생들 있잖습니까? 특히 몽고 리비야라는 자매 있잖아요. 그 자매가 처음에 우리에게 와서 몇 달 있으면서 숙소가 좁아 아프리카 애들과 같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몽고여자들이 보통 무례한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아프리카 여자들이 아프리카 냄새가 지독하게 나거든요

미국에 가면 흑인들 냄새가 지독합니다. 백인들도 노량냄새가 나고 우리도 김치냄새 된장냄새가 지독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르는 겁니다.

어째든 그 냄새를 참아야 되는데 애가 냄새를 참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냄새 뿌리는 약 스프레이 이걸 가지고 흑인 얼굴에다가 막 뿌리는 겁니다. 자다가도 일어나서 뿌리고 막 뿌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흑인아이가 삿대질 하면서 머리를 붙잡고 싸움질을 하고 그래서 애내들하고 못 있겠다고 싸움질을 하는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문제를 어떻게 풀었습니까? 하여튼 그래서 나중에 자리도 옮기고 이렇게 하면서 불편한 가운데 같이 살면서 성령님이 역사하기 시작하는데 이번에 우리가 공사 하면서 여자 방을 2개를 만들었는데 몽고 리비야라는 자매가 나에게 와서 하는 소리가 자기가 아프리카 사람들과 같이 있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정말이야 그랬더니 자기는 지금 성령으로 충만해서 그 냄새가 냄새로 안 느껴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마음이 얼마나 예쁩니까? 그렇지만 실제로 아프리카 애내들에게 우리 한국 사람들이 대신 들어가서 냄새 맡으면서 같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형제자매의 맛을 서로 보게 만드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에바브로디도에게 나와 함께 수고한 자라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나와 함께 수고한 자라는 단어를 잘 씁니다. 신약에 이 단어가 열세 번 나오는 단어인데 수네르고스(suner-gos)나와 함께 수고한자라고 한국말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수네르고스(suner-gos)라는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동역자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동역자사상이 상당히 강합니다. 자기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파트너로 일한다. 그래서 에바브로디도도 네 부하가 아니고 나의 파트너라는 겁니다. 함께 동역하는 그래서 함께 군사 된 자고 그래서 내가 물질이 필요하니까 나에게 물질을 보급하는 자고 이렇게 해서 자기의 동역자의식을 분명히 해줍니다.

똑같이 우리들도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이방사역을 하는 동역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나의 동역자입니다

그 의식이 우리가 분명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황 목사혼자만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다 각자가 따로따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은사를 가지고 힘을 합하는 겁니다. 나의동역 자들입니다. 여러분들도 이 사역을 위해서 뒤에서 기도하는 분들 자원봉사하시는 분들 또 물질로 헌금하시는 분들 식당에서 봉사하시는 분들 농사짓는 분들 각자가 다 가지고 있는 자기의 주특기를 가지고 서로 동역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동역 자들입니다

저는 동역을 하는 과정에서 어떤 조직이나 거기에 누가 깃발을 들고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방향을 정해주기 위해서 깃발을 든 사람 영어로 비저나리(Visionary)비전을 던져주는 사람 사도바울도 비전을 던져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야 된다 이렇게 가야 된다면서 그 비전을 들고 깃발을 들고 나가면 그다음에 나머지 분들은 뒤에서 뒷정리하는 사람 거기에 차이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제가 하나님이 주시는 이 비전을 가지고 나갈 때 목사님 저희들이 어떻게 따라 갑니까? 하는데 그래도 지금까지 잘 따라 왔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계속해서 비전을 주십니다.

그래서 제가 어떤 때는 말을 못합니다. 이것을 했다가는 나중에 뒤로 자빠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가는 길을 분명히 주님께서 나에게 주셨기 때문에 아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따라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냥 따라만 오세요. 그러면 상당히 복을 받으실 겁니다.

이 세상 복! 그까짓 것 이 세상 복이 뭐가 그렇게 대단합니까? 주님 앞에 가서 잘했다 칭찬받을 복이 엄청나게 많을 텐데 그냥 따라만 오세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서로 형제자매들이고 우리는 함께 군사 된 자들이고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동역 자들입니다. 수네르고스(suner-gos)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무엇을 가져야 되느냐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서로 다투지 말아야 되고 질투하지 말아야 되고 투기하지 말아야 되고 분쟁하지 말아야 되고 원망하지 말아야 되고 시기하지 말아야 됩니다. 이것은 형제자매 동역자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겁니다. 그 관계를 안다면 우리는 서로서로 힘을 주는 일밖에 없습니다. 서로서로 힘주는 일밖에 없습니다. 같은 배를 탔기 때문에 전체를 보는 눈 동역자의식이 강해야 될 것 같습니다. 에바브로디도와 바울과의 끈끈한 관계를 잠깐 봅시다. 이런 관계들이 참으로 아름다운관계입니다

보면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에서 로마까지1300km를 오다가 중간에서 말라리아에 걸렸든지 아니면 어떤 풍토병에 걸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로마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이분은 완전히 실신상태까지 갔지 않았나?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27절에 보면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죽음직전까지 갔다는 겁니다. 이러니까 제일 먼저 사도바울자신이 먼저 걱정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안 그래도 여러 가지로 걱정거리가 많은데 이 형제 때문에 근심위에 근심을 내가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분이 또 무엇을 걱정하느냐면 빌립보교회가 이 소식을 들을 때 빌립보교인들이 걱정하는 걸 생각하니까 또 사도바울이 걱정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서로 마음이 괴로웠다는 겁니다.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를 아껴주고 그런 관계입니다 이런 관계가 하루아침에 되는 관계가 아니잖아요. 10년간의 관계입니다 주후50년에 빌립보교회를 개척을 해서 지금 60년에 감옥에 있으니까 10년간의 관계 속에서 이런 아름다운 사랑의 동지애가 그기에 있었던 겁니다. 저는 이걸 이렇게 보면서 우리는 주 안에서 영원히 같이 살 사람들인데 우리형제들을 이렇게 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학생들 중에서 말없이 열심히 봉사하는 것을 제가 보면서 저 형제가 내년 봄에 졸업하여 자기 나라에 갈 텐데 저 형제가 졸업하여 갈 때 내가 엄청나게 울겠다는 이런 걱정으로 졸업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문화가 다른데도 주 안에서 이렇게 정을 주고 같은 주님을 섬기면서 찬양을 같이하고 기도를 같이하다 보면 끈끈한 정이 우러나는 겁니다.

바울이 에바브로디도 때문에 자기가 같이 있으면서 동역할 귀한 형제지만 이분이 안 되겠다 빌립보교회에 다시 회송하기를 원하는 겁니다.

교인들이 이 사람을 걱정하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의 소중한 형제지만 빌립보교회로 다시 보내기를 원하는 겁니다. 그래서 곧 보내겠다는 겁니다.

여기 편지에서 내가 곧 보내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형제를 잘 따르라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이렇게 보낼 때 일방적으로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라는 그것보다도 더 기쁜 의도가 그 속에 깔려 있는 겁니다. 뭐냐면 이 형제는 디모데가 도착하기 전에 이형제가 먼저 빌립보에 도착해서 빌립보교회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사도바울이 알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빌립보서는 빌립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투기 질투 비방하고 이런 것들이 독소로 있으면 이 교회가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는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 이런 것들이 숨겨져 있어서 이것이 그 공동체를 파산시키거나 파도를 치게 해서 배가 배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 이 형제를 다시 보내는 겁니다. 우리 빌립보교회가 무슨 문제가 있었습니까? 투기가 있었습니다. 질투가 있었습니다. 시기가 있었습니다. 다툼이 있었다고 그랬습니다. 원망과 시비가 있었다고 그랬습니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을 때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 속에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이 피스메이커라는 겁니다.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마귀는 화평을 깨는 자가 마귀입니다 그래서 화평케 하는 자의 역할을 에바브로디도가 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에 주님은 바울을 통해서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는 겁니다. 왜냐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는 빛의 자녀기 때문에 어두움을 쫓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스메이커가 된 이 사람은 죽기 까지 자기를 돌보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러니까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이분이 예수님의 성품을 가지는 특 색중에 하나가 자기를 희생하는 성품입니다 30절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해서 죽기 까지 목숨을 돌보지 않았다는 겁니다.

돌보지 않았다는 분사 형으로 되어있는데 원어를 보면 파라보르사네로라는 말인데 사전을 보면 내기를 하는 모험을 하는 도박을 하는 그러니까 자기 목숨을 도박장에 갖다 놓고 죽어도 좋고 아 죽으면 다행이고 이런 마음으로 이분이 빌립보를 떠난 사람입니다. 목숨을 걸고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이게 주님의 마음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내가 죽어도 괜찮다는 마음

이게 그리스도의 마음인 겁니다. 그리스도의 마음과 부합되는 이런 마음이 들어오는 겁니다. 저는 가끔가다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조금 괜찮지만 초창기10년 전에 중국을 여행할 때 목숨을 각오하고 갑니다.

왜냐면 비행기를 타보면 홍콩에서 예를 들어서 북경 가는 중국비행기를 타보면 이게 완전히 덜커덩, 덜커덩 하는 시외버스입니다. 이게 언제 떨어질까 하는 생각이 더는 겁니다. 주여! 알아서 하십시오. 그냥 타는 겁니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92년 93년도에 키르기스스탄에 중앙아시아가 열려서 그기에 가는데 우리나라에서 중앙아시아로 가는 비행기가 일주일에 한번 있습니다. 어떤 비행기냐면 그 나라 장사꾼들이 타고 오는 비행기입니다

그런데 화물비행기로 소련비행기인데 세계에서 가장 잘 떨어지는 비행기로 아주 소문난 비행기입니다 그런데 그 비행기는 앞에 조종석이 있으면 조종석 뒤에 의자들이 열줄 정도 있고 뒤에는 완전히 화물칸입니다

그기에 이사람들이 보따리를 남대문과 동대문에서 사가지고 가득 실은 화물트럭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여행사를 통해가지고 그 비행기를 탄 겁니다. 그걸 타면 직접 키르기스스탄으로 가는 겁니다. 그런데 그 비행기를 보는 순간 이걸 타면 제가 죽을 것 같은 겁니다. 땜질하고 형편없는 비행기였습니다. 비행기의자에 안전벨트도 없고 30년 이상 된 의자였습니다.

시베리아를 통하여 돌아서 가는데 비행기 안이 얼마나 추운지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탈 때 담요를 가지고 타는 겁니다. 그러니까 전부 담요를 뒤집어 쓰고 그리고 비행기 안에 먹을 것 아무것도 안주는 겁니다.

화물비행기니까 먹을 것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전부 사발라면을 가지고 타는 겁니다. 비행기가 하도 적으니까 조금 가다가 서고 조금 가다가 서고 그러면서 시베리아 한복판에 밤11시에 내려서 공항대합실에 들어갔는데 대합실이 얼마나 추웠는지 저는 1시간정도 기름만 넣고 갈 줄 알았는데 새벽4시가 되어도 아무 말도 없다가 아침8시30분까지 추운 밤을 꼬박 새었습니다.

그 비행기에 스튜어디스 같은 여자가 둘이 있는데 한 여자는 희랍정교회교인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한 여자는 무슬림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무슬림을 전도해서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니까 자기는 결혼 한지 5년이 되어도 애기가 없다면서 애기를 낳고 싶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안수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화장실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공동화장실입니다 화장실 옆에 서가지고 안수기도를 해주었습니다. 너 이제 예수만 믿으면 애기를 낳을 수 있다고 그러니까 예수를 믿겠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이 여자가 더운물을 끓여가지고 컵라면을 나에게 가져오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한번 해주고 컵라면 얻어먹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보면 이렇게 목숨을 던져야 될 때가 있습니다. 중국 갈 때도 언젠가 주님이 원하신다면 감옥에 들어갈 각오를 하고 가는 겁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까 주님 앞에 더 의지하게 되고 그러는 겁니다. 이제 결론적인 말씀으로 29절에 보니까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교회에 보내면서 사도바울이 빌립보교인들에게 부탁하는 겁니다. 에바브로디도가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주님을 위해서 이렇게 일한 사람인데 너희들 이 사람을 기쁨으로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나를 존기하게 여기라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을 존귀히 여기라는 겁니다. 왜 이런 사람을 존귀히 여기야 됩니까? 왜냐면 이런 사람은 하늘에 올라가면 존귀함을 받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늘에 올라가면 계급이 높은 사람으로 이미 딱 설정되는 겁니다. 목숨까지 다 각오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변해서 목숨까지 각오하고 주님의 종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열심히 뛰는 분들 이런 분들은 하늘에 올라가면 상이 크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희들 지금부터 그분을 존귀히 여기라는 겁니다.

올라가면 영원히 그분 밑에서 존귀히 여김을 그분에게 드려야 될 사람이기 때문에 영원한 위치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존귀히 여기라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서부터 우리가 천국연습을 하는 겁니다. 저 사람이 나보다 영적으로 계급이 높다고 하면 알아서 존귀히 여기는 연습을 하면 같이 그분의 영광을 받아가지고 나도 같이 계급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에 그렇거나 그 사람에 대해서 뭐라고 그러면 나중에 하늘에 올라가면 그 사람 가까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들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다 존귀히 여김을 받는 분들입니다.

이 복음을 위해서 우리는 이방사람들의 복음을 위해서 왜냐면 주님의 재림은 가까이 왔는데 이방인의 숫자가 찰 때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온다.

그랬는데 이방인의 숫자가 지금 엄청나게 빨리 차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이제 상당히 급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나와 똑같이 존귀히 여김을 받도록 최선을 다해야 되는 책임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저에게 보내주신 동역 자들이기 때문에 저는 한분 한분이 계급이 높아져야 된다고 저는 믿고 그렇게 높아지도록 하는 잭임을 가진 사람입니다

빌립보서1장과2장 강해는 빌립보교회는 착한 일을 많이 해서 바울에게 감사를 항상 끼쳤던 교회입니다 물질을 도와주었고 뒤에서 기도해주고 그런데 빌립보교회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사도바울은 뭐라고 그랬냐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지 못 한다 그랬습니다. 이 말은 열매 맺는 삶을 영위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복음의 가치를 모르다보니까 그래서 그 안에는 투기가 있었고 분쟁이 있었고 다툼이 있었고 허영이 있었고 남을 없신여김과 이기주의와 원망심 이런 것들이 그 교회에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숙한 교회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말씀하시기를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달라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 2장에 들어와서 하시는 말씀이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는 겁니다. 겸손한 마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마음은 항상 주여 저는 부족합니다. 저는 나약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저 사람이 나보다도 낫습니다. 저 사람에게서 제가 배울 것이 있습니다.

항상 이런 마음을 가지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 사람이 나보다 낫습니다. 라는 마음 왜냐면 그 사람 속에 있는 장점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단점 보다는 그래서 그 속에 있는 장점을 나에게 주십시오. 이런 겸손한 마음을 그런 사람은 질투나 싸움이 없습니다. 그럼 마음을 가지면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한 단계를 더 나가서 이웃이 잘 되는 것을 바라고 그것을 한국말로는 덕을 끼친다고 그랬습니다. 나를 통해서 저 사람이 성장되는 것을 바라니까 그분을 위해서 기도도 해주고 저분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런 마음이 들어오는 겁니다. 저분이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오는 겁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마음을 달라고 우리가 기도하면서 내 영을 보좌로 끌어 올려서 주님의 마음을 매일 받아서 나에게 집어넣는 겁니다. 주님의 영광체를 매일 받아먹고 그래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나를 변화시키는 겁니다. 계속해서 그래서 사도바울은 빌립보교회에게 이것이 오늘날 과거2천년 동안 크리스천들에게 주시는 말씀이었고 이 말씀을 크리스천들은 엄청나게 사랑합니다. 빌립보서2장의 말씀을 대표적으로 성경에서 2장의 말씀을 주석으로 한 성경이 제일 많습니다.

제일 사랑을 받는 말씀이 빌립보서2장의 말씀인데 거기에서 하시는 말씀이 그러는 겁니다. 사도바울에게 하시는 말씀이 빌립보교인들아 이렇게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살았던 분들의 예화를 내가 들어줄게 그러는 겁니다.

첫째 뭐냐면 예수그리스도가 그렇게 살았다는 겁니다. 그는 본체가 하나님이신데 동등 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남을 위해서 자기가 희생하고 그래서 그분들도 살리고 그러므로 해서 그분이 부활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희생하고 이웃을 살리는 일을 할 때 주라고 존경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그르셨잖아요. 사도바울이 나도 내 삶에서 그랬다는 겁니다. 자기 예를 들어드리는 겁니다. 나도 이렇게 지금 살아왔단다.

그리고는 말씀하시기를 나만이 아니야 내 제자인 디모데도 이렇게 삶을 살았단다. 그러는 겁니다. 디모데의 모본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에바브로디도도 이렇게 살았단다. 그래서 빌립보서2장에는 유명한 네 분의 예화가 나오는 겁니다. 처음에 누구라고 그랬습니까? 예수님, 그다음에 바울, 디모데, 에바브로디도 이런 사람들이 빛의 자녀로써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두움을 무찌르는 파워를 가진 자들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이고 존귀히 받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하늘나라에 올라가서도 존귀히 받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만이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사도바울처럼 자기제자들을 주위에 사람들을 이런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빌립보에 편지하는 이유가 뭐냐면 내 제자들아 빌립보교인들아 너희들 에바브로디도 하나만이 아니고 너희들 모두가 다 이런 사람이 되기를 나는 간구한다는 겁니다. 그럴 때 너희들이 내 자랑이 된다는 겁니다. 하늘에 올라가서 주님 보세요. 내 제자들이 이렇게 열매를 맺어서 주님의 형상으로 열매를 맺고 이렇게 주님의 뜻을 잘 이루어 왔습니다. 자랑이 된다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자기를 위해서도 빌립보교인들아 너희들이 이 열매를 맺으면 내가 면류관을 너희들 때문에 많이 받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분은 그것을 강조하는 겁니다.

사도바울의 편지 다 그렇습니다. 모든 편지가 뭐냐면 사람이 변해라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그래야지만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복음이 이방사람들에게 전파된다는 겁니다. 열매가 맺혀진다는 겁니다. 그럴 때 내가 자랑거리가 되고 내가 면류관 받고 너희들이 면류관 받고 하늘의 상급을 많이 받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의 신앙에 정확한 자기의 신학이 여기에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은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사람이 되라고 그래서 디모데도 그렇게 만들어 놓고 에바브로디도도 이분이 이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나중에 디도나 두기고나 브리스길라나 아굴라 루디아 빌레몬 오네시브로 나중에 누가 마가까지 에바브라 전부 이런 사람으로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하늘에 올라가니까 영광의 빛이 많이 비치는 겁니다.

왜냐면 예수를 닮은 제자들을 많이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우리도 똑 같습니다. 복음만 전해주고 일 많이 했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우리는 그래서 지도자들을 훈련시키데 지도자들이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은 지도자로 변화시키는 일 지금 인도목사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들은 복음을 다 알고 목사님들입니다 이제는 한 단계를 높여서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되는 중국도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중국에 복음은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사람이 변화되는 일을 우리가 맡아서 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나 저나 이런 일을 하실 때 내 자신이 상급을 많이 받게 되고 그걸 통해서 우리와 관계되는 모든 동역자들이 많이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하고 그분들이 또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모습으로 보여 주어가지고 땅에서만 아니고 하늘나라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에바브로디도가 이런 모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이런 존귀함을 받는 그러한 주님의 백성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