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강해 20강. 은사의 다양성과 조화(고전12:12-31) 2009년12월6일 말씀
고린도전서12장12절부터 마지막31절까지입니다 고린도교회교인들이 은사에 관한 이야기를 바울로부터 듣고 있는데 이 교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문제를 이번에 제시를 한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지난시간에는 우리가 이런 말씀으로 공부했습니다. 은사와 직분은 주신 목적이 있는데 주신 목적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유익을 주기 위함이라는 말씀 공부 많이 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입니까? 나 자신과 이웃 그다음에 교회와 삼위하나님께서도 유익을 받기위해서 은사를 주셨고 직분을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런 은사를 주신 목적에 위배되는 행위들을 고린도교회교인들이 했다는 겁니다. 특히 어떤 분들이냐면 28절에 보면 은사를 받은 사람들 중에서 눈에 보이는 은사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중에 몇을 세웠는데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격려해주는 은사)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이런 은사 자들이 있는데 이 은사 자들이 각자가 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직분에 목적에 열납되는 그러한 행의들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그 문제가 여기에 나옵니다. 그기에 대해서 사도바울이 은유적으로 지금 말씀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우리가 같이 한번 읽어 봅시다.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4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이렇게 세 가지 약하게 보이는 것 더 귀하게 보이는 것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것 24절에 그런즉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고르게 하는 목적이 분쟁이 없고 서로 돌보게 하셨다는 겁니다.
26절에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아멘. 고린도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고린도교회만이 아니고 루리 전체의 문제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보이는 은사를 가진 분들입니다
우리 같으면 목사나 또는 선교사나 또는 전도사나 또는 장로 안수집사 권사 이런 분들은 교회 안에서 눈에 보이는 은사를 직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런 분들이 교회에서 자칫하면 자기를 내 세우고 자신의 고집과 자기 자신의 자랑과 자기 자신의 어떤 이해관계로서 공동체 전체를 보지 못하고 전체에 아픔을 가져오게 되는 역사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만이 아니고 어느 나라나 어느 문화권에 가도 이 문제는 다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님의 원칙을 알려주는 내용이 오늘 이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가 잘 서로가 소화하고 이것을 우리 삶 속에서 우리가 적용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 제가 도표를 하나 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라는 도표를 보면 바울이 은유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은유방법입니다
몸의 제체사상과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 몸, 머리, 교회, 성도 이런 모든 단어들을 사용하시면서 우리에게 문제를 해결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었습니다. 우선 그림을 보시면 골로새서1장18절에 고린도전서12장12절에서31절 이 말씀들을 다 종합해보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있는데 머리부터시작해서 전체가 다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 몸에 머리가 있는데 머리가 예수님입니다
몸도 예수님이지만 머리는 소위 최고 사령관입니다
컴퓨터 같으면 COU로 결정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머리가 그래서 예수님은 머리시다 머리신데 또 어떤 표현을 했느냐면
예수님의 온 몸을 교회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교회라는 것은 건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교회라고 표현을 했는데 그리스도의 머리가 있고 몸 전체가 교회입니다 그걸 다른 말로 무엇으로 표현하느냐면 지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각자의 교인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로 지체가 엄청나게 많은 겁니다. 예수님의 몸 안에 이 부분이 이해가 되어야지만 그 다음부터 제가 설명하기 쉬워집니다. 머리가 예수님입니다
그다음에 몸 전체도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몸 전체 예수님 안에 지체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몸을 보면 머리가 예수님인데 그 머리 안에 또는 몸 안에 여러 지체들이 있습니다. 그 지체를 크리스천들이라고 그랬습니다.
고린도전서12장27절에 보면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그랬습니다. 이 개념을 우선 가지고 보면 몸의 지체사상을 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그 뜻대로 지체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원해서가 아니고 지체마다 은사들이 있는데 또는 직분들이 있는데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만드신 겁니다. 그것을 똑같이 우리 몸으로 생각하면 손, 발, 귀, 눈 이것도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 몸에서 만드신 겁니다. 어떤 사람은 발 역할하고 어떤 사람은 귀역할하고 눈 역할하고 이런 지체를 만드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18절에 보면 이 지체들이 적절히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겁니다.
독립적이 아닙니다. 그리고는 각 지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기능들이 있다는 겁니다. 14절에서16절에 보면 그리고는 각 지체가 다른 지체의 고유기능을 서로 인정해주어야 되고 존중해주어야 된다고 14절15절16절21절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지체를 보면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있습니다.
우리교인들을 보면 재직이 아닌 분들을 보면 약하게 보이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덜 귀하게 보이는 지체들도 있습니다. 또 아름답지 않게 보이는 지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새끼발가락에 발톱입니다 그런 지체가 있습니다.
그런 역할을 하는 분 또는 코 수염역할을 하는 사람 눈이나 코나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들과 차이가 있습니다. 또 어떤 지체가 있습니까?
별로 아름답지 않는 지체 우리 배꼽도 그런 것 같습니다 보이지도 않잖아요.
우리 몸에 보이지 않는 지체들이 있듯이 하나님은 교회라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 보이는 지체들도 만들어 놓았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보이지 않는 지체들도 만이 만들어 놓으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보이는 지체와 보이지 않는 지체가 서로가 연계되어 있는 겁니다. 연계되어 가지고 보이지 않는 지체는 자칫하면 보이는 지체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존귀함을 당하지 않거나 또는 발에 차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 지체들은 다 소중하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교회라는 공동체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지상계명과 지상사명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 분량에 맞추어서 그 뜻에 따라서 하나님이 지체를 그렇게 만드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지체들이 자기네들끼리 서로 연계되어 있어서 보이는 지체가 보이지 않는 지체를 잘못 다루다보면 책임이 더 크다는 겁니다. 왜냐면 보이지 않는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새끼발가락에 발톱이 고통을 당하면 이 모든 전체의 예수님이 고통을 당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온 교회가 고통을 당한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고통을 당한다는 겁니다. 또 보이는 지체가 아주 해피하고 즐거우면 그 즐거움이 발가락 발톱까지도 가주어야 된다는 겁니다. 같이 이게 서로가연합사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몸, 머리, 지체, 교회, 성도, 이 단어들은 다 같은 단어들인데 이것이 서로가, 서로가 연계되어 있어서 서로가, 서로가 케어해주고 하나님의 뜻을 서로가, 서로가 깨닫고는 인정해주어야 되는데 지금 고린도교회나 또는 일반우리교회는 그것을 못한다는 겁니다. 그것을 못해가지고 지금 여기28절에 그랬습니다. 너희들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보이는 지체들아 너희들은 서로 잘 났다고 그러고 아름답다 그러고 힘이 세다고 그러는데 너희들 사도들아 너희들 선지자들아 교사들아 능력을 행하는 자들아 병 고치는 자들아 방언하는 자들아 예언하는 자들아 다스리는 자들아 너희들이 뭐가 잘 났다고 혼자서 뻐기면서 보이지 않는 지체들을 마음 아프게 하느냐 이겁니다. 왜냐면 보이지 않는 지체들이 볼 때 우리도 소중한 하나님의 자녀인데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해서 나도 너도 다 구원을 받은 자녀들인데 네가 무엇이 잘 났다고 하나님이 그분의 뜻에 따라서 이런 보이는 지체로써의 직분과 은사를 준 것 뿐이지 너희들 잘난 것 아무것도 없다는 겁니다.
이 말씀을 제가 묵상하면서 항상 아하 목사로써 저는 보이지 않는 지체들을 더 사랑해주고 관심을 베풀어야겠구나. 또 우리 선교사님들 전도사님들 우리간사들 이런 풀타임으로 일하는 분들은 특히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되고 또 이번에 임직 받은 장로님들 안수집사님들 권사님들도 똑 같습니다.
이 사상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목사나 전도자나 전도사나 장로나 이런 분들이 자기가 잘났다고 교회 안에서 자기 파워를 만들어 내고 목소리가 커고 자기 조직 속에서 수장노릇하려고 그러고 그러면서 보이지 않는 저런 지체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분들은 그냥 우리가 하는 대로 따라오라고만 하는 그러한 사상을 가졌을 때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교회라고 성령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발은 은사 중에서 어떤 은사일까요?
전도자라는 수도 있습니다. 발이 말하기를 나는 손이 아니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몸에 붙여있지 않다 15절에 그러는 겁니다. 귀는 무엇입니까?
설교잘 듣는 사람입니다 공부 잘 하는 사람일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나는 눈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몸에 붙어있지 않다 몸에 붙어있지 않다는 말은 나는 그리스도의 종속물이 아니라고 하는 겁니다. 실은 행동을 그렇게 하는 겁니다. 이 교회 주인이 나라고 생각하고 예수님도 쳐다 안 보고 몸에 종속이 안 되어 있다 나는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지체들 을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런 착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무슨 문제가 생깁니까? 우리교회는 이런 문제가 그의 없지만 그런 문제가 있는 교회가 되면 교회가 몸살을 앓습니다. 보이는 한 지체가 이런 행동을 할 때 교회전체가 몸살을 앓습니다. 왜냐면 이게 다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지체를 22절23절에서 무슨 말씀을 했습니까? 세 가지 부분을 바울이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약하게 보이는 지체 덜 귀하게 여기는 지체 아름답지 못한 지체라 그랬습니다. 이 세 가지 이런 지체들을 24절에 뭐라고 표현하느냐면 부족한 지체라 그랬습니다. 새끼발가락 발톱이나 배꼽이나 우리 귀 안에 균형을 잡는 달팽이관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 몸을 균형 잡게 해주는 것이니까 얼마나 중요합니까? 콧수염하나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게 없으면 감기를 달고 살아야 합니다. 병균들을 그냥 통과시키니까 임파선 눈썹들도 얼마나 중요합니까? 우리 몸에 보이지 않는 디스크 이게 얼마나 중요합니까? 신경 근육 이런 모든 것들이 엄지손가락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교회 안에 이런 분들이 많거든요. 이런 분들을 자칫 잘못 다루지를 말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어떻게 하느냐면 24절에 몸을 고르게 하라고 그랬습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오늘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여기에 있습니다. 몸을 고르게 하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보이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은사들의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자기의 것을 다 주어가지고 그 사람들은 5%밖에 없습니다. 나는 95%있고 그러면 나의 것을 주어가지고 그분들이 내 수준까지 오도록 평균치를 만들라는 겁니다.
50%로 그래서 이쪽도50% 저쪽도50% 이것을 몸을 고르게 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볼 때 겉으로 보면 우열이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안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쪽에 있는 약하게 보이는 지체들을 오히려 요긴하게 만들어주고 요긴하게라는 말뜻이 아주 피치 못하게 숨어있는 존재들이라는 뜻입니다. 약하게 보이는 존재들이 주님이 볼 때는 더 요긴하다는 겁니다. 왜냐면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혀 재직도 아닌 분들도 있잖아요.
이런 분들 자칫하면 우리가 그분들에게 실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재직들은 이런 분들을 요긴하게 생각하고는 이분들을 잘 교회 안으로 끌어와서 이 안에서 같이 주님을 섬길 수 있게끔 만들어야 됩니다.
이게 지혜 있는 자입니다. 덜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 이런 분들이 우리교회 안에 있습니다. 이런 자들을 더 귀한 것으로 입혀주어야 된다는 겁니다.
이런 분들은 아름답지 못하지만 더욱 아름답게 해주어야 된다는 겁니다.
이런 일을 잘 해서 그것을 밸런스를 잘 맞추는 사람을 보고 몸을 고르게 하는 사람이라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몸을 고르게 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주일마다 관심을 누구에게 많이 두느냐면 그런 사람들에게 관심을 더 많이 둡니다. 그러다 보면 보이는 은사를 가진 지도층에 있는 우리교회 분들이 목사님이 나를 별로 안 좋아하는 모양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지만 우리교회는 그런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왜 목사님의 생각은 누구에게 더 관심이 있습니까? 눈에 안 보이는 이분들에게 더 관심이 있는 겁니다. 왜냐면 성서에서 주님이 나에게 그걸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 전도자들도 간부들도 다 그기에 관심을 두셔야 되는 겁니다. 왜냐면 몸을 고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몸을 왜 고르게 해야 되느냐면 25절에 보면 우리 몸 가운데 분쟁이 없고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아보게 하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자칫하면 이런 부분에서 우리가 실수합니다. 그러면서 고린도교회 안에 은사를 받았고 직분을 받은 사람들이 누굽니까? 사도요 선지자요 교사요 능력 받은 자들이고 병 고치는 은사 있는 자들이고 남을 돕는 자들 다스리는 자들 각종 방언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보고 애들아 너희들 왜 몸을 고르게 하는 일들을 못 하느냐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런 은사들 이런 직분도 중요하지만 이런 직분을 100개 가져야 소용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다음에 13장 사랑장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면서 사랑 장을 말씀하시기 전에 12장 마지막에 뭐라고 그랬습니까?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이게 누구에게 말하는 겁니까? 보이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너희들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다시 말하면 이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몸을 고르게 하라는 말과 똑같은 소리입니다
몸을 고르게 하라 이 말은 다시 말하면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더욱 큰 은사가 무엇입니까? 사랑을 베풀라는 소리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발가락 발톱은사 자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서 고르게 하라는 겁니다.
50%씩 50%씩 해서 중간에 만나게 하라는 겁니다. 그것이 사랑을 베푸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13장에 분명히 그랬습니다.
너희들 방언하고 천사의 말을 하고 소련 말하고 미국 말을 하고 방언을 해도 그것이 소리 나는 구리요 울리는 꽹과리라는 겁니다. 만약에 고르는 일을 하지 않으면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서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다 알아도 우리가 성경을 아무리 알고 다 압니다. 그런데 고르는 일을 하지 않으면 다 소용없다는 겁니다. 믿음이 있어서 산을 옮길만한 파워가 있어도 아무 소용없다는 겁니다. 구제하고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해도 고르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입장에서 보면 아무 소용없다는 겁니다. 왜 그럽니까?
우리에게 주신 은사들은 내가 잘나서 받은 게 아닙니다. 주님이 그분의 뜻에 의해서 나에게 목사직과 부목사직과 선교사와 전도사와 장로 안수집사 권사 직을 주신 겁니다. 내가 잘 나서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걸 가지고 주님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어야 되는 겁니다. 이 몸이 편안하게 해주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내가 이걸 사용해가지고 주님의 몸에 고통을 주면 왜냐면 조그만 지체들을 아프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몸을 고르는 것을 뭐라고 그랬습니까? 사랑이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 사랑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겁니다.
야! 눈에 보이는 은사를 가진 너희들아 너희들 사랑이라는 게 뭔지 아느냐?
사랑은 오래 참는 거라는 겁니다. 여기에 대하여 제가 다음시간에 자세히 이야기할 것입니다 사랑은 잘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들 보고 오래 참아주는 거다. 이게 고르게 하는 거다 그러면 오래 참아주면 어떻게 됩니까?
주님의 몸이 따뜻해지는 겁니다. 왜냐면 보이지 않는 저 사람들을 따뜻하게 해주니까? 사랑은 온유한 거야 그분들에게 친절하게 나이스하게 해주고 사랑은 투기하지 않는 거야 그게 뭐냐면 다투면서 질투를 야기합니다.
사랑은 질투하지 않는 거야 사랑은 자랑하는 것이 아니야 자기가 조금 더 잘 났다고 자랑하면 꼭 잘나지 않는 사람이 상처받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입만 열면 자기자랑하고 그런 사람 보면 상대방이 상처 받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우둔한 사람인 겁니다. 상대방이 상처를 받으면 누가 아픕니까? 예수님이 아프신 겁니다. 이걸 잊지 마세요? 상대방이 상처를 받으면 예수님이 아프신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날 예뻐하시겠습니까?
안 예뻐하신다는 겁니다. 이게 예수님의 몸과 지체사상입니다 사랑은 무엇입니까? 교만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저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을 두고 있는 겁니다. 내가 잘 났다고 괜히 폼 재고 목에 힘주고 교회 안에서 내가 누구다, 누구다 이래가지고 그러니까 우리가 말씀에 깊이 들어와서 주님과의 관계를 맺을 때는 더욱 겸손해지고 더욱 자신이 부족함을 느끼고 더욱 눈이 넓어져서 주변에 상처받을 만한 작은 자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분들에게 가서 위로해주고 붙잡아주고 한 번씩 악수해주고 그분들 더 좋은 자리에 앉히려고 하고 이런 마음을 가지라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누가 기뻐합니까? 예수님이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지상계명에 무엇을 지금 하는 겁니까? 지상계명에 수직도 하고 수평도 지금 우리가 하는 겁니다. 이걸 하는 사람은 예수님만 생각하기 때문에 수직계명입니다.
내가 저 형제를 저 자매를 왜 사랑합니까? 주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몸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어디와 관계가 있습니까? 수직계명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또 수평은 무엇입니까?
그렇게 함으로써 그 형제가 기뻐하고 그 자매가 기뻐하는 겁니다.
힘을 받는 겁니다. 이런 사고를 내 민족과 타 민족에게까지 가지고 가는 것을 전도와 선교라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저는 주님 앞에 주님! 왜 사람을 만들 때 특히 크리스천들을 만들 때 왜 이렇게 많은 은사를 주셔가지고 우리를 골치 아프게 만드십니까?
그냥 모든 크리스천을 다 국화빵씩으로 만들어서 우리가 지난시간에 30가지은사가 있었습니다. 모든 크리스천들이 다 30가지은사를 다 가지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면 비교도 안하고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저에게 답을 주신 게 있습니다. 애야 다 똑같이 만들어 놓으면 만약에 내 몸이 전부다 눈이야 그러면 내가 재미 있겠니 그러시는 겁니다.
전부다 발이야 그러면 이게 창조주입장에서 보면 하나도 재미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보기도 흉하고 창조주입장에서는 다양하게 만들어놓는 것이 그분에게는 굉장히 기분이 좋은 겁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 입장만 생각하지 마세요. 창조주입장에서는 다양하게 만들어 놓아서 다양한 것들이 서로가 연계되어가지고 서로서로가 케어해주면서 서로가 조화를 잘 맞출 때 창조주가 좋아하시는 겁니다. 이게 창조주의 창조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보면 전 세계인구가 70억입니다 70억의 인구를 보면 생긴 모습이 다 다릅니다.
손금이 다 다릅니다. 성품이 다르고 개인적으로 볼 때 한 가족을 봐도 같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왔는데 열 명이면 열 명 다 다릅니다 모습이 다르고 손금이 다르고 성품이 다르고 한국 사람이 다르고 일본사람이 다르고 각 나라마다 민족의 모습이 다 다릅니다. 저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보통 하나님이 아니시다 이렇게 자상하게 다 다르게 만드셨구나.
국화빵처럼 한번 찍어버리면 끝나실 것을 얼마나 자상하게 하나하나 다 다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피부색깔이 다른 것을 보면서 다양하신 하나님이구나. 그걸 보고 아! 하나님 찬양 드립니다. 이 다양한 하나님을 찬양 드립니다. 그러면서 눈을 들고서 자연을 보는 겁니다. 자연을 보니까 산의 높이가 똑같은 산이 하나도 없고 전 세계를 돌아다녀도 산의 높이가 다르고 모습이 다르고 산세가 다르고 지형이 다르고 나무를 봐도 각 나라마다 나무의 모양이 다르고 종류가 다르고 그럽니다. 또 뭐가 다릅니까? 꽃을 보세요. 러시아지방 꽃하고 남쪽지방 꽃이 다릅니다. 꽃도 색깔이 한두 가지 색깔입니까? 풀을 보세요.
다 다르잖아요. 잔디도 다 다릅니다 미국잔디와 우리나라잔디가 다릅니다.
같은 잔디인데 동물을 보세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부터 보세요. 여러 종류가 있잖아요. 땅에 다니는 큰 동물들 기어 다니는 조그만 곤충들 물속에 있는 고기들 이게 다 다른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다르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단순사회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만약에 사람이 다 같다고 가정해보세요 생긴 게 같고 마음씨도 같고 모든 게 다 같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재미가 있습니까? 나와 같으면 친구가 안 됩니다. 같다고 그러면 사랑이라는 표현도 필요가 없습니다.
결혼이라는 것도 필요가 없습니다. 다 같다면 만나서 똑같은 이야기하고 상대방 말이 내말이고 내말이 상대방말인데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동물을 전부다 코끼리로 만들어 놓았으면 동물원에 왜 갑니까? 필요가 없습니다. 다 같다고 그러면 영화가 무슨 재미가 있습니까? TV가 무슨 재미가 있습니까? 단순한 사회를 만들어 버렸으면 우리도 재미없지만 하나님도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단순세포사회에서 다세포사회로 만들어 놓은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고 창조의 목적이고 다양화속에서 하나님은 다양한 피조물들이 서로가 서로 연계되어 가지고 자기네들끼리 창조주를 존경하고 창조주를 인식하고 창조주에게 경배를 드릴 때 창조주가 기분이 좋아지는 겁니다. 창조주의 성품을 우리가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대로 다양성은 모든 부분에 다 적용이 됩니다. 한 가족 안에도 부부와의 관계 속에서도 부부간에 서로 성품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생긴 게 다르고 대부분 부부가 성품이 똑같으면 그 두부부가 싸움합니다. 성품이 달라야지만 싸움을 해도 사랑싸움을 합니다.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교회도 지금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해야 합니다. 문제는 하나님은 우주도 다양해야 되고 자연도 다양해야 되고 인류사회도 다양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뭐라고 그랬냐면 예수님이 이렇게 다양한 것을 만드셨기 때문에 만물이 예수님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그다음에 예수님을 위해서 만들어 졌다고 그랬습니다. 골로새서1장16절입니다. 그리고는 골로새서 3장11절에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이 만유의 주인이시고 만유를 통치하시고 그리고 예수님이 만유시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만유가 예수님의 몸입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만유 속에 계시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만물의 주인이 되시고 만물자체가 예수님이라고 우리가 은유적으로 표현합니다.
그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이 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게 예수님의 머리로써 연결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분이 그러니까 만물을 통치하시고 통치하시는 목적이 뭐냐면 그분을 위해서입니다. 그분을 위해서니까 무엇입니까? 창조의 목적입니다 창조주에게 영광을 드리고 찬양을 드리는 겁니다.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만유가 그렇기 때문에 만유가 예수님을 찬양을 해야 되는데 찬양을 못하게 방해하는 놈이 누굽니까? 사탄인 루시퍼가 타락했잖아요. 루시퍼가 타락해가지고 그 이름을 뭐라고 불렸습니까?
데블(Devil)라고 불렸습니다. 데블(Devil)대한 두 가지의미가 있습니다.
디아볼로스(Diabolos)가 의미가 무엇입니까 파괴자와 분리자라 그랬습니다.
파괴와 분리가 무엇입니까? 창조의 원리를 파괴시키고 분리시키는 자라는 겁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피조물들이 서로가 연계되지 않고 서로가 분리하고 서로가 우열이 있어 싸움하여 창조주에게 한 마음으로 찬양 드리고 경배 드리는 일을 못하게 하는 그것이 데블(Devil)디아볼로스(Diabolos)마귀의 꿈이라는 겁니다. 그것이 이놈들이 현재 벌이고 있는 녹색혁명이 무슨 뜻입니까? 자연을 다시 회복시키자는 겁니다. 교회 안에서 교회가 생긴 예수님의 몸이 여러 가지 은사가 있는데 은사 자들끼리 서로싸움을 하고 서로가 케어 하지 않고 하면 무엇에 위배되는 겁니까? 창조원리에 목적에 위배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다르게 만들어 놓았는데 이렇게 다른 것들이 자기네들끼리 자기네의 은사를 직분을 서로 알고는 약하고 보이지 않는 직분이나 은사를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그렇지 않는 강하고 아름답고 잘 하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이분들과 서로가 하나가 되어 가지고 이분들을 끌어주는 일을 성서에서 뭐라고 그랬습니까? 몸을 고르게 한다고 그랬습니다.
몸을 고르게 해주면서 서로가 조화를 이루는 그것을 화음 하는 화음을 할 때 조화를 이룰 때 창조주가 화음 하는 그 행위를 보고는 기뻐하시고 그분들의 화음 하는 거기서 나오는 향내를 맡으신다고 그랬습니다.
창조주가 그럴 때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신다는 겁니다. 가정도 마찬가지고 교회도 마찬가지고 사회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예수님 안에서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그것이 빠져버린 겁니다. 예수 밖에서 그렇게 하지만 우리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이 우리 몸에 주인이시기 때문에 우주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하는 그러한 조화와 화평은 크리스천들이 해야 하는 일이고 비 그리스도인들도 조화와 화평을 하지만 예수님 밖에서입니다
창조주와 관계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예화를 하나 드렸습니다.
오케스트라예화입니다 오케스트라를 보시면 관악기가 있습니다.
관악기는 트럼펫, 색소폰, 트럼본입니다. 목관악기는 바순, 오보 플루트. 클라리넷이 있습니다. 현악기는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버블 베이스, 하프
타악기는 드럼, 팀파니, 심벌 건반악기는 오르간, 피아노, 아코디언 이렇게 있고 그 뒤에는 찬양 팀이 있습니다. 합창단이 있습니다. 합창단 안에도 뭐가 있습니까? 여자들은 소프라노, 알토 남자들은 테너, 베이스, 바리톤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기에 누가 있습니까? 지휘자가 있습니다.
지휘자가 지휘에 맞추어서 베토벤 심포니 NO5을 하는데 이 중에 가장 소리를 계속 내는 악기들은 어떤 악기들입니까? 제가 보니까 목관악기 중에서도 클라리넷 현악기 중에서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까지 한 시간 내내 소리를 냅니다. 그다음에 건반악기 오르간과 피아노가 한 시간 내내 쳐주어야 됩니다. 그런데 나머지 악기들을 보면 한 시간짜리에서 마지막 2초만 하는 악기도 있습니다. 한 시간 그대로 서 있다가 그런 악기가 무엇입니까?
심벌 같은 악기는 한번 치고는 끝나는 겁니다. 그래도 똑같이 봉급을 받습니다. 1초만 해도 되는 악기들이 그냥 지휘자 말을 안 듣고 제 멋대로 치는 겁니다. 이러면 어떻게 됩니까? 바이올린을 연주하다가 줄이 끊어져가지고 바이올린리스트가 화가 나가고 있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 바이올린은 연주 끝날 때까지 삑삑 그려야 되잖아요. 그게 안 되면 어떻게 됩니까?
주님이 음악가들에게 이런 걸 다 보여주신 겁니다. 보여주셔서 봐라 베토벤 NO5가 정말 아름답게 들리려면 나타날 은사들은 한 시간 내내 나타날 필요가 없고 지휘자의 지시에 의해서 나타날 때는 적극적으로 나타나고 죽을 때는 팍 죽고 그 대신에 가끔 나타나는 숨어있는 악기들이 팡팡 나타날 때마다 이게 조화가 되어 가지고 멋있는 심포니가 되니까 듣는 사람들이 돈을 심만 원씩 내고 들어와서 앉아서 듣고는 아! 괜찮다. 좋다 화음이 기가 막히구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화음이 잘 되었을 때 우리 듣는 사람들이 좋아하잖아요. 그러니까 여러 가지로 다른 가운데 다양 속에서 화음을 잘 할 때 우리도 좋아하지만 창조주가 어떻게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마귀는 이렇게 화음을 못하도록 하는 겁니다. 내지 말아야 할 소리를 막 내는 사람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교회는 참으로 감사한 게 이렇게 화음을 깨는 사람이 그의 없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러니까 제가 담임목사로써 화음이 깨지는 것을 교통정리하기 위해서 저는 시간을 일주일에 그의 10분도 안 보냅니다. 왜냐면 화음을 깨는 사람이 우리교회에는 없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주님이 기뻐하실까요? 우리의 예배를 주님이 받으시겠습니까? 안 받으시겠습니까? 받으십니다. 왜냐면 화음이 깨지지 않았기 때문에 화음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 뭐냐면 셀 모임에 들어와서 주님의 비밀의 말씀을 서로가 상고하며 깨닫고 삶에 실천하는 그러려면 하나님말씀을 알아야 됩니다. 말씀을 모르고 화음을 하려고 그러면 딴 화음을 만들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교인들 중에서 85%-90%가까이는 셀 모임에 들어와서 열심히 화음을 만드는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는 분들이 조금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누구냐면 그런 분들이 발톱 콧수염 이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보고 왜 안 오느냐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근방 실족해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됩니까?
안 오니까 그래도 은혜스럽느냐? 그렇게 말해야 됩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오실 겁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말씀을 잘 하셔야 됩니다. 잘못하면 실족하니까? 왜냐면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셀 모임이나 화요일이나 토요일에 성경모임에 나오는 분들 아주 조심하셔야 됩니다.
안 나오는 사람들을 잘못하면 정죄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겸손해져야 합니다. 사랑은 고르게 해야 합니다. 오래 참아야 합니다.
사랑은 온유해야합니다. 그게 고르게 합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말아야 합니다. 왜냐면 그분들이 상처입기 때문에 사랑은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은 자기유익을 구하지 말아야 됩니다. 내 생각 내 기준으로 사람을 보지 말아야 됩니다. 이게 지혜가 필요한 겁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저 사람이 상처받지 않았을까 그걸 생각하시면서 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온전치 않기 때문에 항상 상처 입을 수 있는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부족하니까 아직도 이 부분에 대해서 온전치 못하구나.
라고 자기스스로가 인정을 하고 나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야 됩니까? I'm Sorry 내가 미안해 I'm Sorry잘 하는 사람들을 주님이 상당히 예뻐하십니다. 제가 결론적인 말씀을 드리고 끝내겠습니다.
우리교회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교회 안에 주님이 다양한 사람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은사와 직분을 보기 좋게 아름답게 강하게 보이는 그러한 분들도 주님이 주셨고 그렇지 않는 분들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두 그룹을 주님께서 잘 보완시키기를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그것이 곧 사랑이라고 그랬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이러한 일을 할 때 우리AMI교회가 이러한 일을 할 때 저희들이 주님이 사용하셔가지고 우리 주변사람들에게 이러한 일을 하도록 가르쳐주게 하고 또 저희들을 통해서 이방사람들도 이러한 일들을 하도록 우리를 통해서 가르쳐주게 하고 우리를 통해서 보여주게 하는 겁니다. 이럴 때 우리는 진정으로 주님이 보실 때 너희들은 화평케 하는 자들이구나. 고르게 하는 자들이구나.
왜냐면 다양한 다양 속에서 조화를 이루면서 화평케 하는 자들이구나.
이런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으리라.
아주 높은 위치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올리시겠다는 겁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사란이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최선만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이 되도록 말씀으로 주님이 가르쳐주고 또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가 어디에 있던지 이런 화평케 하는 자 다양 속에서 조화를 잘 이루는 이러한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저희들이 바울사도를 통해서 가르쳐주신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어느 정도 깨닫고 이제는 그 목적에 부합되는 삶을 사는 은혜로운 자들이 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항상 우리하나님은 다양을 좋아하시고 그 다양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화음을 내는 것을 좋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입니다 예수님 밖에서는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서 왜냐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주전체의 주인이 되시고 몸이 되시기에 교회의 주인이 되시고 몸이 되시기에 예수님 밖에서 화음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 안에서 화음을 이루는 그러한 말씀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화음을 위해서 주님이 가르쳐주시는 말씀을 잘 공부하고 깨닫고 우리의 살에 적용하는 지혜 자들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xQIxIbCW8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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