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강해 17강. 신비로운 남녀관계(고전11:2-16) 2009년11월15일 말씀
오늘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11장입니다
오늘말씀은 상당히 이해가 쉽지가 않을 수도 있고 아주 쉬울 수도 있고 그러면서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에 제가 천천히 최선을 다해서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말씀해 드리려고 합니다. 지난시간에 말씀10장 마지막부분까지 주욱 나왔습니다. 그런데 11장1절이 10장 마지막과 연계가 되어 있는 절입니다. 성서를 장을 구별할 때 구별하는 분이 몇 가지 오류를 범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것도 그 중에 하나인데 11장1절이 실은 10장34절이 되어야 되는데 11장1절이 되어 버렸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이게 지난시간에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11장2절부터 읽겠습니다.
2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4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6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의)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13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14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5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16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아멘.
바울이 지금 하시는 말씀이 유대인전통인데 뭐냐면 여자는 예배드릴 때 특히 기도하고 예언할 때 여자는 꼭 머리에 수건이나 무엇을 쓰라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편을 욕되게 한다. 그랬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욕되게 하는 게 아니고 남편을 욕되게 한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대안으로는 뭐냐면 여자는 꼭 긴 머리를 해라는 겁니다. 머리를 길게 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남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머리에 무엇을 쓰면 안 되고 만약에 예배 때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고 있으면 그리스도를 욕되게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남자는 긴 머리를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머리에 무엇을 쓰면 안 된다는 겁니다. 머리에 무엇을 쓴다는 것은 긴 머리를 했다는 말과 같은 내용입니다 지금 3절에는 뭐라고 쓰여 있느냐면 순서가 있습니다.
여자의 머리가 남자고 남자의 머리가 그리스도라 그랬습니다.
그다음에 그리스도의 머리가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이 말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그리스도의 머리가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은 무엇입니까? 삼위하나님을 지금 이야기하는 겁니다. 엘로힘 그런데 그리스도가 예수님입니다
어떻게 예수님과 하나님 중에 예수님의 머리가 삼위하나님입니까?
이게 말이 안 됩니다. 같은 분이신데 우선 이렇게 알고 계세요
그리고 머리는 헤드(head)하고 그럽니다. 머리를 무엇으로 상징하느냐면 명예를 상징하고 욕되게 한다. 그러니까 명예가 손상 받는다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머리를 권세로 표시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남자는 여자의 머리라는 겁니다. 이 말은 뭐냐면 남자는 여자의 명예고 권세라는 겁니다.
그리스도는 남자의 머리라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님은 남자의 명예고 권세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삼위일체부분을 우리가 꼭 한번 봐야 합니다. 삼위일체부분을 보시면 이 신비가 조금 풀립니다. 성부, 성자, 성령하나님이 같은 분이신데 한 하나님이신데 기능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은 높이도 같으시고 질도 같으시고 양도 같으시고 격도 같으시고 다 같은 분이십니다 그런데 한분은 낮게 보이고 한분은 높게 보이는 누가 높게 보입니까? 성부하나님이 대표성을 가지고 높게 보이고 성자하나님이 그 밑에 있어서 순종하는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분이신데 그러면서 서로가 내가 성부다 내가 성자다 이렇게 하지 아니하시고 꼭 서로가 증거를 해줍니다. 성부하나님이 성자하나님이 내 아들이다 이렇게 말하시고 성령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사도행전1장8절에 너희들이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받아서 예수님을 성자하나님을 증거 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서로 존중하며 서로 증거 합니다. 이게 삼위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역동적관계입니다 똑같이 여자와 남자의 문제도 보면 하나님이 남자를 먼저 만들었습니까? 여자를 먼저 만들었습니까? 남자를 먼저 만들었습니다. 남자를 먼저 만들고 그다음에 여자를 만들 때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남자의 갈비뼈를 택해가지고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하시는 말씀이 이 여자는 남자의 돕는 배필이라는 겁니다. 영어로는 헬퍼(helper)다 그랬습니다. 돕는 자다 그러면서 성서에서는 남자가 여자의 머리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남자가 여자의 권세고 명예라는 겁니다. 그런데 10절을 보면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의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그랬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여자가 남자에 의해서 나왔지만 남자에게 순종을 해야 되고 남자를 도와야 되지만 여자는 남자와 질도 같고 위치도 같고 격도 다 같다는 겁니다. 똑같이 삼위하나님 중에 성부하나님이 센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성자하나님과 성령하나님과 똑같다는 겁니다.
파워가 그다음에 높이가 그렇지만 성자가 성부를 대표적으로 올리시고 성부하나님께 순종도 하시고 그럽니다. 이 역동성이 그대로 남녀관계에 적용이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보이지 않는 우리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신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는 예배를 들릴 때 어떻게 드리느냐면 수건을 쓰라는 겁니다. 아니면 긴 머리를 하는지 그러면서 10절에 뭐라고 그랬습니까? 수건 쓴 것을 뭐라고 그랬습니까?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의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그랬으니까 수건이 무엇입니까? 권세의 표입니다. 수건은 권세의 표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여자가 머리위에다가수건을 쓰는 그 순간에 여자가 남자와 똑같은 권세를 가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남자가 가지고 있는 권세를 여자가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11절12절에 남자와 여자는 공존하다는 겁니다. 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하나님으로 중심으로 해서 여자와 남자는 공존하고 격도 같고 모든 위치도 같다는 겁니다. 그런데 권세의 표로 수건을 왜 써야 된다고 했습니까? 여자가 남자와 같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격이 같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건을 쓰지 않는다면 또 다른 방법으로 14절15절에 뭐라고 쓰여 있습니까?
14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5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긴 머리는 쓰는 것으로 대신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자가 긴 머리가 있을 때는 쓸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10절을 다시 보면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의 표를 그 머리 위에 쓰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걸 가지고 주님 이게 왜 이 말을 썼습니까? 어떤 주석에도 여기에 대해서 시원한 대답이 없습니다. 주님이 저에게 지혜를 주시는데 천사가 히브리서1장14절에 무엇입니까? 천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를 섬기기 위해서 부리는 영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여자가 이 권위를 쓰지 않으면 남자의 권위를 쓰지 않으면 아마도 천사가 여자들을 우습게 알 확률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여자는 남자의 권위를 가져야 된다는 겁니다. 여자가 그러기 위해서는 머리를 길게 하든지 아니면 수건을 쓰든지 하라는 겁니다. 아니면 천사가 볼 때 너 남자보다 낫구나. 그래가지고 무례한 행동을 여자에게 할 가능성이 있어서 이렇게 쓰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천사 때문에 머리위에다가 권세를 뒤집어 올려 쓰라는 겁니다.
만약에 여자가 머리가 길지 않고 수건을 쓰지 않고 예배를 드린다면 누구를 욕되게 한다고 그랬습니까? 5절에 보면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그 머리가 누굽니까?
남자입니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입니다 머리를 욕되게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자는 꼭 남편을 생각하면서 머리에다가 수건을 쓰라는 겁니다.
안 그러면 머리를 길게 하라는 겁니다. 이 말을 가만히 보면 왜 그럴까요?
왜냐면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여자가 자기 자신이 남자의 동역자임을 부인하는 행위입니다 머리를 만약에 짧게 한다거나 이걸 쓰지 않으면 이걸 쓰 뭐로써 남자의 권위를 받잖아요. 남자의 권위를 받는 다는 것은 남자의 동역자라는 것을 시인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남자와 여자는 서로가 한 몸임을 확인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본인이 항상 아! 나는 남자의 권위를 전수받은 자라는 겁니다. 자기 스스로가 된 게 아니고 이것은 남자에게서 내가 권위를 전수받았다고 그렇게 인정하는 겁니다. 다시 말합니다.
왜 여자가 수건을 써야 합니까? 여자가 수건을 쓰 뭐로 해서 남자의 헬퍼라는 것을 확인하고 또 이 권위를 남자에게 권세를 자기가 전수 했다는 것으로 그러므로 남자에게 보여주고 본인 느끼게 해서 여자가 스스로 자기가 잘나서 된 게 아니고 나는 남자에게서 이것을 내가 받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하나의 예표 같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여자가 머리를 길게 하거나 머리에 썼다는 것은 남자와 같은 수준의 존재라는 것을 우선 표시해주고 두 번째는 남자의 동역자임을 확인하고 남자를 돕는 자임을 남자와 한 몸임을 머리인 남자의 권세를 자기가 전수받았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여기에는 성부와 성자와 관계성처럼 여자는 스스로가 이것을 다 가진 게 아니고 남자를 통해서 이것을 다 가진 거라는 겁니다. 갈비뼈를 통해서 여자가 나온 것처럼 모든 권위도 남자를 통해서 가진 거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남자에게 순종해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성부에게 순종하듯이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하도록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이 창조의 법칙에 어긋나면 서로가 불편해지는 겁니다. 남자와 여자가 삼위하나님의 역동적 관계를 우리가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 그대로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그대로 받았기 때문에 삼위하나님의 이 관계를 우리가 잘 지키지 않으면 이 안에 숨겨져 있는 이 비밀을 우리가 우리 삶 속에 대입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데 신기한 게 남자가 머리에 쓰고 있다고 그럴 때는 누구를 욕되게 한다고 그랬습니까? 그리스도를 욕되게 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리스도를 왜 이런 말씀을 하실까요?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은 뭐냐면 머리에 썼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면 그분과 이꼬르(equal)되었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아까 여자가 수건을 쓰면 누구와 이꼬르(equal)됩니까? 남자와 같은 수준의 이꼬르(equal)이 되었다는 소리거든요.
자기머리와 그런데 남자가 무엇을 쓰거나 긴 머리를 하면 누구와 이꼬르(equal)되었다는 소리입니까? 그리스도와 같은 수준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이걸 쓰면 예수님을 욕되게 하는 겁니다.
남자는 머리를 길게 하거나 또는 수건을 쓰면 안 된다는 겁니다. 남녀는 같은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까? 없습니까? 같은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창조질서에서 여자가 남자의 부속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창조질서에서 갈비뼈에 의해서 창세기2장21절에서22절에 그리고 기능적으로 남자를 돕는 자로 지음 받았습니다. 창세기2장20절에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하나님의 영광이지만 여자는 남자의 영광입니다 여자는 남자에 속해 있는 겁니다. 7절에 보면 그렇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의 권세의 표를 받아야 합니다. 10절에 보면 이유는 여자의 머리가 남자에게 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게 남자가 집안에서 권세가 있어야 됩니다. 성부하나님이 권세가 있듯이 남자는 권세가 있어야 됩니다. 남자다워야 됩니다. 신앙생활도 집안에서 남자가 먼저 시작해야 됩니다. 남자가 다 인도해야 됩니다.
안 그러면 여자가 불편해집니다. 이게 하나님의 자연 질서입니다 남자가 권세 있게 지도자역할을 안하면 집안에서 여자가 불편하고 온 가족이 불편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생물이나 또는 동물 자연계에서도 능히 볼 수 있습니다. 똑 같습니다.
동물을 창조하실 때도 식물을 창조하실 때도 남녀를 창조하시고 또는 암수를 창조하시면서 쌍으로 창조하시고 창세기1장에 보시면 우리ABA에서 배웠습니다. 진화론에서는 그렇게 이야기안합니다. 그런데 우리성서에서는 암수를 쌍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사람도 남자를 먼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남자에게 너는 이 모든 피조물들을 지배하고 관리하라고 그랬습니다.
여자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여자를 갈비뼈에서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면서 여자보고 이 남자를 도와라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성부와 성자와의 관계처럼 상하관계가 아니면서도 같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대표성은 남자에게 주셨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남녀는 어디서 차이가 있느냐면 기능적으로 차이가 있는 겁니다. 모든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이꼬르(equal)지만 기능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구별이 있습니다. 여기 삼위하나님도 기능적으로 차이가 있듯이 남녀는 기능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남자의 기능은 우리가 바깥사람이라고 그러잖아요. 여자는 안 사람이라고 그럽니다. 남자는 집안에서 일 안하고 집안청소만하고 있으면 그게 남자가 아닙니다. 남자는 의식주를 책임지고 가정의 머리고 가정을 대표하고 호주고 그러니까 그 집안에서 나온 아이들은 다 남자의 성을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어디나 가면 그의 다 똑같습니다. 여자는 안 사람입니다.
집안에서 출산을 하고 가사를 돌보고 자녀를 돌보고 된장찌개 맛있게 하고 이런 게 여자입니다. 동물세계를 봐도 똑같습니다. 자연계를 보면 틀림없습니다. 성서 속에서 봐도 여성들의 모습들을 보면 아주 대표적인 구약에서의 여성상이 사라입니다 아브라함의 처 그분의 모습을 봐도 단순순종형가정부입니다 신약에서의 대표적인 여자라면 마리아입니다 그런데 여자들 중에서 사업형 돕는 배필들도 성서에서는 몇 사람을 지적했습니다.
루디아든지 브리스길라든지 이런 사업을 하면서 가정을 돌보면서 남편을 뒤에서 이렇게 밀어주었던 여자들이 있습니다. 또는 성서에서는 사회적인 지도자형인 여성도 몇 분 있습니다. 그중에 드보라든지 또는 에스더든지 이런 분들도 있지만 이런 특수한 여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가정 형들입니다.
남자를 돕는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서 제가 지금부터 하고 싶은 말들이 있습니다. 우리현실과 관계해서 예수님께서 종말이 가까이 올 때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올 때 많은 징조들을 성서에 나타내어 주었습니다. 그 중에 징조 중에 다섯 가지정도는 창조와 관계되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징조들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이 창조질서를 파괴할 거라는 겁니다. 창조질서의 파괴 중에 공기오염, 물 오염, 햇볕 오염, 그다음에 복음오염입니다 복음은 무엇입니까 삼위하나님을 오염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성자하나님이 하나님이 아니다 또는 성자하나님의 죽으심이 타종교에도 그 성자하나님이 다 계신다는 종교다원주의적인 이 모두가 복음을 오염시키는 겁니다. 이런 일들이 지금 우리주변에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다음에 다섯 번째 오염 중에 심각한 오염이 남녀신비관계 지금 오늘 말씀드리는 신비관계를 오염시키는 겁니다. 지금 이런 게 오래전부터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남녀신비관계를 깨뜨려버리는 겁니다.
그것을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 탈 현대주의라고 그럽니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에서 20세기 말부터 포스트모더니즘은 뭐냐면 창조주의 자연 질서와 또 그동안 우리가 지켜왔던 전통을 깨뜨려 버리지는 겁니다. 그게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라 그럽니다. 현대화시키는데 이런 모든 전통을 깨뜨려버리자 다시 말하면 어떤 절대가치가 있었던 것이 그것이 전통적으로 그냥 절대가치였는데 상대적으로 볼 때도 절대가치가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걸 상대화시켰다 그럽니다.
예를 들면 내가 누구 돈을 훔쳤습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그걸 보면 나쁜 짓입니다. 왜 남의 돈을 훔쳤어 그러면 그 사람 돈 번 것은 우리 같은 사람에게서 이익을 남겨서 번 것으로 그 사람 돈이 내 돈이야 내가 훔치는 게 뭐가 나빠 그러면서 상대화시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지나가는 여자와 마음 맞아서 하루 밤을 잤습니다. 그것은 안 되잖아 그러면 우리 좋아서 했는데 왜 그래 상대적으로 생각해도 너와 관계없어 내가 당신을 해치지도 않았는데 모든 것을 상대화시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절대적인 룰이 없어지는 겁니다. 남자가 머리를 여자처럼 길게 하고 남자가 치마를 입고 귀 걸이하고는 돌아다닙니다. 그러면 1970년80년부터 시작되었거든요 남자가 왜 그래!
내가 좋아서 하는데 왜 말이 많아 그러는 겁니다. 전통을 다 깨뜨려버리는 겁니다. 시험 칠 때 컨닝해도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데 이러면서 이게 모든 게 법이 없어져버리는 겁니다. 그걸 상대주의라 그럽니다.
그러다보니까 여자들이 예전에는 예쁜 치마입고 다니고 하이힐 신고 다녔는데 이제는 여자들이 남자 진 바지에 지퍼달린 것 입고 남자처럼 하고 다니고 여자가 남자 화되어 버리는 겁니다. 남자는 또 거꾸로 여자 화되어 버리고 제멋대로 사는 겁니다. 그것을 절대가치가 상실된 시대입니다
절대가치를 뭐라고 그러느냐면 엑설런티즘이라고 그럽니다. 이런 것 중 하나가 미국에서 인권헌장(The Charter of human right)이라고 미국에서 이것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헌법보다도 우선되는 사람의 인권이 제일 소중하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남자가 귀 걸이를 하던 남자가 뭘 하든 그것은 인권이야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인권이 들어 왔습니다.
그 인권이 전 세계를 다 무너뜨려 버리는 겁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인권이 들어온 걸 보면 아하! 이게 조금 있으면 큰일 나겠구나 왜냐면 저는 서양에 살면서 그것을 다 제 눈으로 봤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나라를 완전히 잘못하면 무너지게 만듭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전통을 다 깨뜨려버립니다
그것이 지금 젊은이들 속에 다 들어와 있습니다. 인권 중에 페미니즘(여권신장, feminism)입니다 여자는 약자다 이제는 여자의 권리를 증진시켜야 된다.
여자는 남자와 똑같이 되어야 된다. 여권신장입니다 성서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서 엄청난 오류를 범할 수 있는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그러다보니까 여자가 예전에도 그랬지만 여왕도 나오고 여자대통령도 나오고 지금 미국에는 여성하원의장도 있고 아무렇지도 않는 겁니다. 여자가 국회의원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여성장관도 있고 우리나라는 요 근래에 와서 여성부도 만들었습니다.
저쪽에서 하는 것을 다 배워와 가지고 우리나라도 하고 있습니다.
여자들 기분 나쁘지 않죠. 그러다보니까 직장 다니는 여자도 많아지고 직장에 여자수가 점점 많아지고 심지어는 여자군인들도 있고 대학을 가 봐도 세계적인 추세인데 과거에는 여자대학생이 많지 않았잖아요. 이제는 대학교가면 서구사회는 여자학생이 더 많습니다. 똑똑한 학생 중에 여자가 더 많습니다. 이게 마지막 때 종말의 징조 중에 하나입니다 왜냐면 남자여자의 신비성을 깨뜨려버리는 겁니다. 사회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사탄의 징조 중에 하나입니다 여자가 세어지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모르겠지만 서구의 특히 미국이나 캐나다에 전문대학원에 가보면 여자숫자가 더 많습니다.
그걸 보면서 세상이 말세구나 그러는 겁니다. 왜냐면 시험치고 들어오는데 똑똑한 남자들이 많아지지 않고 점점 줄어드는 겁니다. 이게 자유경쟁이니까 여자들의 숫자가 더 많아지고 공부할 때도 보면 여자가 공부도 더 잘하고 졸업식에 상 받는 사람은 대부분이 여자들입니다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이 추세가 점점 더 심해집니다. 그러다보니까 남자가 주눅이 들어가는 세대가 지금 이 세대입니다 사회가 지금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여성이 남성화되고 있는 겁니다. 여성이 남성화되면 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있습니까?
제일먼저 나타나는 게 뭐가 나타납니까? 이혼율이 증가되는 겁니다.
동의하십니까? 맞벌이부부가 많아지는 겁니다. 맞벌이부부가 많아지면 어떻게 됩니까? 아이들 키우려니까 천상 파출부가 있어야 됩니다. 그다음에 탁아소와 아이들 학교 끝나면 가는 어린이집 이런 것들이 우리나라에 점점 많아지는 겁니다. 딴 나라는 말할 것도 없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그렇게 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어떻게 됩니까? 어머니가 자녀들과 있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이제 자녀교육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어떤 곳은 심하게 남자가 육아를 하는 곳도 있고 부인이 나가서 돈 벌고 남자는 집에서 살림하는 그러니까 남편이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겁니다. 여성화되는 겁니다.
남편이 상대적으로 여성의존 화되어 버리고 무력화되는 사회로 되어 가는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여자가 가족부담책임감이 더 커지고 그러다보니까 여자가 남자할 일까지 다 신경 쓰니까 여자가 각종성인병에 걸릴 수 있는 확률이 많은 겁니다. 여자가 남자할 일을 해야 되니까 남편의 권위가 약 하 되고 남자의 권위가 약해지니까 어떻게 됩니까? 요즘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자기 행위를 잘 못합니다 며느리가 무서워서 시어머니노릇을 잘 못합니다
며느리눈치 보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겁니다. 그러니까 아들 있는 집 미안합니다. 시집식구들이 세력을 못 부리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겁니다.
거꾸로 처갓집이 세력을 부리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어떻게 됩니까? 자연의 법칙과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성서의 법칙과 이게 반대로 가기 때문에 남편이 자존심이 상실되니까 남편이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권위거든요 그것이 깨져버리니까 남자들이 뭘 합니까? 외롭고 술 먹고 담배 피워야 되고 도박도 해야 되고 나가서 자기마누라와 반대되는 상냥한 여자 만나면 홀딱 반해서 연예하고 그러다보니까 싸움하고 지금 사회가 그렇게 되어 가고 있는 겁니다. 이런 현상이 사회만 있는 게 아니고 이런 현상이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현상이 교회 안에도 들어와 있는 겁니다.
아까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신학대학원에 목사 되는 과정에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은 겁니다. 서구사회에 그것이 지금 우리나라에도 오고 있습니다.
선교사후보생도 남자보다 여자가 점점 더 많아집니다. 그러다보니까 기독교 안에도 자유주의 교단들이나 안 그러면 이런 부분에서 조금 더 허용하는 교단들은 여자목회자들을 안수하는 것이 어제 거저께 일이 아닙니다.
세계의 대부분의 교단들이 지금 여자목회자를 안수합니다.
하나님의 성회라고 우리나라 순 복음교단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감리교는 모르겠지만 감리교도 여자 목사님이 계십니까? 세계감리교는 여자목사님들이 다 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에 장로교도 대개 다 그렇습니다.
캐나다의 연합교회라고 장로교 감리교 회중교회를 합한 가장 큰 교단인데 여자들이 목사가 다 됩니다 우리나라기독교장로교단도 여자 목사님이 있습니까? 얼마 전에 이런 부분에서 남성위주인 교단이 소위 성공회 남자들이 결혼 했지만 신부라고 부르는데 성공회도 자유주의가 들어오면서 종교다원주의로 가면서 얼마 전에 성공회 세계총회에서 여자도 신부로써 안수해야 된다고 해서 투표해서 가결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반대하는 보수그룹들이 이러면 어떻게 하느냐면서 반대그룹들이 있는데 엊그저께 뉴스를 보니까 로마가톨릭에서 바티칸에서 반대하는 사람들 로마가톨릭으로 옮겨오라고 메시지를 계속 보낸다는 겁니다. 그래서 로마가톨릭과 성공회가 아주 복잡한 긴장관계에 있습니다. 여자신부 안수 때문에 이런 일들은 나쁘다고 제가 보는 게 아니고 이런 일들은 주님의 재임 전에 있어야 되는 하나의 현상들입니다 그러니까 저희들도 이 조류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여성지휘향상 이 조류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미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하셨고 이렇게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복음 전하는 사람입장에서 이 조류를 그냥 따라가는 겁니다. 저희들도 그러니까 여자 목사님을 안수하잖아요. 그러니까 여자파워가 점점 커질 것은 앞으로 일어날 추세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막을 길이 없고 막았다고 해서 이게 딴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세계인의 기독교인의 퍼센트지를 보면 여자가 약70-80%입니다 남자기독교인이 많지가 않습니다.
대부분이 다 여자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요즘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면 소위 복음주의라는 이런 분들이 만들어낸 성경이 평신도나 쉽게 읽기 위해서 만든 것이 NIB라는 성경입니다 뉴 인터네셔널 버전(New Interpreter's Bible Commentary)이라고 NIB를 요즘 와서 여성인권을 보호하는 의미에서 NIB성경해석을 다시 해야 된다고 그래서 지금 그의 끝내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번역을 끝내느냐면 그기에 번역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보니까 다 복음주의사람들입니다 복음주의까지도 이게 들어왔습니다. 뭐냐면 성서에 보면 남성위주로 된 글들이 너무나 많다는 겁니다. 예컨대 성서에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리라.
그러면 여자는 뭡니까? 그러니까 그걸 중성화 만들자는 겁니다.
그러니까 번역을 아들이라는 말을 쓰지 말고 중성적인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그래야 여자들을 기분 좋게 만든다는 겁니다. 왜냐면 여자들이 그걸 가지고 덤벼드니까 이게 우리는 뭐냐는 겁니다. 이꼬르(equal)이 되어야 되는데 그래서 그걸 성경을 다 바꾸고 있습니다. 성경요한복음1장18절에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그때 사람이라는 말을 개인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번역을 노 맨(no men) 맨(men)은 남성적인 표현을 다 없애버리자는 겁니다. 그러면 뭐라고 해야 합니까 원스(one,s)하면 중성적인 표현입니다
요한복음3장4절에 보면 예수님이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니고데모에 이야기할 때 사람이 거듭나지 아나하면 하는 표현이 뭐냐면 원어에도 보면 맨(men)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맨(men)은 아니다 맨(men)을 중성화시키자 로마서3장28절에도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할 때 여기도 사람이 할 때 중성화시켜버리자는 겁니다. 지금 세계가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갑니까?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부터 사탄은 이런 모든 주님이 주신 남녀의 신비를 깨기 시작하는 일들을 이곳저곳에서 하는데 그중에서 정치세력화 되어 가지고 막스 레닌주의 공산주의 그분들은 무신론자들입니다 기독교를 말살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유물론적인 사상을 가지고 남자와 여자를 평등화시켜버린 겁니다. 왜 그러느냐면 여자도 유물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생산을 해야 되는 노동자라는 겁니다. 남자와 똑같이 만들어 놓아가지고 공산당에서는 남녀구별을 시키지 않습니다. 그래가지고 여자들 치마 입은 것 치마 못 입게 하고 다 바지 입게 만들어버리고 그다음에 농장에 내보내서 일을 시키고 여자는 아이를 낳으면 탁아소에 아이를 보내고 여자가 남자구실을 하게 된 겁니다. 그것이 100년 가까이 여자가 남자 화되어 버린 겁니다.
지금도 중국에 가보면 중국에 요즘은 조금 나아졌지만 중국여자들 다 바지입고 다니지 중국여자들 치마 입은 여자들 봤습니까? 요즘은 도시에 유행으로 변했지만 나라전체가 여자가 남자 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 가보면 중국남자들이 다 병신이 되어 버렸습니다. 여자들이 세니까 여자와 남자가 이꼬르(equal)가 아니고 여자가 위니까 남자들이 다 힘이 없어지는 겁니다.
그저 술이나 먹고 소리 몇 번 지르다가 여자가 소리 지르면 꽥 들어 가버리고 중국과 구소련 전부다 그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남자들이 알콜 먹고 남자들이 사회에서 생산적인 입장에 있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가정이 다 깨져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는 여자가 더 힘든 겁니다. 여자가 더 악을 쓰고 일해야 되는 겁니다. 자기 남편을 병신 바보 이러면서 남편을 다 병신으로 만들어 놓아버렸습니다.
전 공산사회가 남자들이 남자구실을 못하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겁니다.
여자가 득세하고 여자가 득세하면 좋습니까? 여자는 집에서 밥이나 하고 아이들 돌보면 얼마나 행복합니까? 여자가 나가서 돈 번다고 하다보니까 여자도 피곤한 겁니다. 그게 여자에게 도움이 됩니까? 안 되는 겁니다.
그와 같이 자녀들도 다 거기서 희생양이 되는 겁니다. 사회가 이렇게 되고 가정이 이렇게 되어 버리니까 그러다 보니까 구소련이나 중국에 가서 꿈을 집어넣어주면 여자들이 잘 받습니다. 잘 받지만 남자들이나 여자들이 공산권 속에서 다 마음이 약해져가고 사람들이 성령의 열매를 맺지를 못합니다.
성품이 그냥 세속적 크리스천들입니다 그냥 크리스천들입니다
인격의 변화가 없는 것이 지금 공산권나라에 크리스천들입니다
쓴 뿌리가 너무 많기 때문에 이게 오늘날 공산권나라의 복음화에 큰 과제 중에 하나입니다 제가 결론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추세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이런 성서적인 남녀신비관계는 계속 오염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여권신장이 더 득세할 것이고 더 촉진되고 여성의 남성화속도도 더 빨라질 것이고 여성 지도자들이 급증할 것이고 여성전문대학원의 여성들이 더 많이 들어가 가지고 맞벌이 부부가 점점 더 많아 질 것이고 이혼율도 더 많아지고 남자가 여성화되고 무력화되고 권위가 약 하 되고 자존심이 땅에 떨어지는 일이 여기저기서 많이 일어날 것이고 이것이 교회도 들어올 것이고 교회 안에서도 이런 영향을 받아서 여성목회자들이 많이 나오고 여성 지도자들이 많이 나오고 여권이 증진되고 이렇게 될 것입니다 그럴 우리가 막을 길이 없습니다. 성서적 남녀관계를 주장하는 사람이나 교회나 사회는 미움을 받게 되고 배척당하고 당신 너무나 보수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꽉 막힌 사람이구나. 당신은 남성우월주의자구나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래가지고 공격당하고 미움 비난 배척을 당할 겁니다. 세상은 지금 그렇게 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남자들 까지도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여성을 올려주어야 된다.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지만 지금 이미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도록 하나님이 그대로 놓아둘까요? 우리예수님께서 마태복음24장에 그랬습니다.
본인의 재림에 여러 가지 징조들이 있을 텐데 전쟁도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지진도 일어나고 자연재해도 일어나고 그리스도인들이 나 때문에 핍박받게 되고 순교자들도 나오겠고 그러면서 이것이 꼭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마태복음24장7절에 뭐라고 말씀 하였냐면 재난의 시작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번역이 잘못 되었습니다. 재난의 시작이 아니고 산고가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왜 산고가 있어야 됩니까? 누가 나오려고요?
기쁜 소식인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나타나기 전에 이 산고를 겪어야 된다는 겁니다. 이 자연이 우주가 인간이 피조물들이 그래서 이제는 못 견디겠구나 여자들이 애기 나올 때쯤이면 죽고 싶다는 말까지 한다면서요.
이렇게 가서 완전히 포기할 때 애기가 나온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시는 겁니다. 그런데 왜 이런 방법을 쓰십니까? 예수님 왜 이런 방법을 쓰십니까? 그러면 창세기3장16절에 아담이 죄를 지은 후에 창세기3장15절에 아담이 죄를 지은 후에 예수그리스도를 약속하셨는데 그렇지만 여자가 잉태하는 고통을 가져야만 된다는 겁니다. 굿 뉴스가 나오기 전에는 아픔을 경험하는 산고가 있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 산고 속에 지금 있는 겁니다.
세계는 점점 더 이 산고 속에 들어갈 것이고 이 산고는 지금 우리 눈에 보이고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산고가 있어야 되는 것은 확실하고 있어야 되고 그 속에 우리는 살고 있지만 그렇지만 우리는 아하! 이 산고 속에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지금 세상은 이렇게 가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가게 되어있지만 우리는 그 물결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그 물결에 반대로 해서 이 물결을 이길 수 없지만 이기는 방법으로 이기는 방향으로 계속가주어야 됩니다. 싸움해서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마음으로 가주는 겁니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우리는 이 조류에 밀려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주는 그 마음 그러면서 빨리 예수님이 오셨으면 하는 그 마음으로 가는 겁니다. 왜냐면 언젠가는 남자와 여자의 신비스러운 이 관계가 회복될 때가 오잖아요. 예수님이 오시면 사회를 그렇게 만들어 놓거든요. 그럴 때 남녀관계가 그때 보면 창조 때의 오리지널 목적대로 서로가 존경해주고 사랑해주고 서로가 증거 해주고 그러면서 진정한 행복과 기쁨과 만족과 평화와 은혜와 사랑이 부부관계 속에 나왔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럴 때가 온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크리스천들도 부부관계가 불편하드라도 이것은 이 세대가 지금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세대기 때문에 이렇게 가는구나.
그렇지만 이 안에서 내가 잘 견디면서 이겨내도록 지혜를 주십시오.
능력을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시면서 가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예수님 해산의 고통이 있어야지만 기쁜 소식이 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해산의 고통을 당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저희들은 믿고 성서적 창조의 질서가 지금 파괴되고 있지만 언젠가는 회복될 것으로 믿으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 속에서 성서적 창조적 질서가 무너지고 있지만 이것 때문에 우리가 넘어지거나 좌절하지 않게 해주시고 이 모든 어려움들을 잘 견뎌나며 그 견뎌나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전수받아 우리의 삶을 잘 영위하도록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황용현 목사님 설교내용영상으로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TdwOBZB1x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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